최근 수정 시각 : 2024-10-07 03:08:16

2008년 촛불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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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과정
2.1. 발단2.2. 전개2.3. 최고조2.4. 극단화와 자연적 소멸2.5. 이후
3. 여담4. 논란
4.1. 참여정부 설거지론 논란4.2. 이명박 정부의 발언
5. 광우병 음모론 유포
5.1. 미국산 소고기의 안전성에 대하여5.2. 미국의 광우병 발생 현황5.3. 특정위험물질(SRM) 논란5.4. 전수검사 논란5.5. 동물성 사료 논란
6. 참고 자료7. 평가
7.1. 긍정적 평가
7.1.1. 야간옥외집회 금지 철폐7.1.2. 쇠고기 추가협상
7.2. 부정적 평가
7.2.1. 반정부 여론과 이명박 지지율 조기 하락7.2.2. 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 제1항위헌 판결과 폐지7.2.3. 일베저장소 극우화의 원인7.2.4. 사회/경제적 피해7.2.5. PD수첩의 오보7.2.6. 각종 불법 폭력 시위7.2.7. 시위 비난자들 비난7.2.8. 권력범죄로 빠져버린 이명박 정부7.2.9. 집회, 시위에 대한 부정적 인식 확산7.2.10. 학문 커뮤니케이션의 실패
8. 관련 문서

1. 개요

2008년 5월 2일부터 2008년 8월 15일에 걸쳐 한미 FTA 개정 당시 광우병 논란의 핵심이 된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 문제를 주요 쟁점으로 하여 대한민국에서 서울특별시를 중심으로 대규모로 일어난 시위.

2. 과정

2.1. 발단

2003년 말 미국에서 광우병에 걸린 소가 발견되면서 미국산 쇠고기의 한국 수입이 중단되었지만 당시 참여정부에서 한미 FTA를 추진하자 미국 측에서 협상의 선결조건으로 쇠고기 재수입을 요구했고 이는 논란을 낳았다. 광우병 논란에 대한 공포 및 대한민국의 1차 산업 종사자들의 반발로 인해 보수, 진보 할 것 없이 부정적 여론이 80% 가까이 되었지만 임기 말인 2007년 6월 30일 참여정부는 미국 워싱턴 D.C.에서 결국 한미 FTA에 서명했다.

참여정부가 내걸었던 조건인 최소한 30개월 연령 미만의 살코기만 수입한다는 제한도 논란이 있었고 당시 일본대만에서는 20개월 미만의 쇠고기만 수입했지만 타결된 협상안에는 부위 제한도 30개월 이상 소의 위험 부위로만 한정되었고 '수입 중단권'과 '도축장 취소권' 등 검역 권한까지 포기한다는 내용이 들어갔으니 반발은 더 심해졌다. 특히 이러한 결정이 있기 전까지 한나라당에서도 수입에 대한 신중론이 컸을 정도로 민감한 사안이었고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 언론, 진보 언론 상관없이 미국산 쇠고기의 위험성을 강조해 온 탓에 극렬한 반발이 나타났다. 당시 여론이 얼마나 수입 소고기에 민감했냐면 협상 타결 전 여론조사 결과 80%의 국민들이 소고기 수입에 부정적이었다. 그야말로 한나라당, 민주당 지지자 할 것 없이 광우병에 대한 불신과 두려움이 팽배했다.

참여정부 임기 막판인 2007년 11월에 열린 관계장관회의 회의록을 가지고 당시 참여정부에도 책임이 있다는 주장이 있었으나# # 11월 회의록 자체에 1단계로 30개월 월령 제한을 하자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으며 2007년 12월에 열린 소고기 협상 대책회의에서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30개월 미만으로 최종 결론지었다고 민주당에서 반박한 바가 있다. #

그러나 인수위 보고서에 따르면 2008년 1월 노무현 전 대통령은 1단계로 30개월 미만의 쇠고기를 수입하고 강화된 사료금지 조치가 이행됐을 때 한해 30개월 이상의 쇠고기를 허용하는 입장이라고 나와 있는데 실제 쇠고기 협상에서는 강화된 사료금지 조치가 공포되었을 때 월령제한을 해제하는 것으로 우리가 한 발 후퇴하는 쪽으로 결정되었다. 이것을 두고 민동석 농업통상정책관은 우리 정부가 미국을 설득해 얻은 성과물이라 말해 임기 말 업적을 남기려 미국과 무리한 굴욕적 협상을 한 정부의 이중적 태도를 은폐하려는 거짓말이 아니냐고 비판했다. #

2.2. 전개

이후 2008년 들어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고, 한미 FTA 국회 비준을 위해 2008년 4월 19일 쇠고기 전면 개방 및 검역기준 하향을 내용으로 하여 한미 쇠고기 2차 협상을 당시 임기 말이던 17대 국회에서 타결시켰다. 이때 한미 FTA 관련 내용은 국회의원들만 열람할 수 있었고 언론에서 일부만 보도됐을 뿐 협상 진행 내용을 알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 반발이 온라인에서의 항의 표출과 산발적인 오프라인 시위 등으로 나타났다. 이후 4월 29일 PD수첩에서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성에 대한 방송을 내보내면서 분위기는 더욱 더 달아올랐다.

정부에 대한 불신의 증가로 5월 2일 시민 연대와 인터넷 모임에서 집회를 열었고 이런 모임들과 시민사회단체, 정당 등이 합쳐진 대책회의가 꾸려지면서 집회를 진행했다. 대책회의의 공식명칭은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을 반대하는 국민대책회의'였다.

이러한 시위는 김장훈, 윤도현 등 인기 연예인을 초빙한 '촛불 문화제'라는 이름으로 진행되었으며 당시 이명박 정부의 0교시 수업과 학교자율화 정책 추진으로 인해 반정부 여론의 고조로 참가한 10대 청소년의 비율이 가장 높았다.

경찰은 행진할 경우를 대비하여 집회현장 전체를 차벽으로 둘러 차단하였고 오후 8시가 되면 해산 경고 방송을 했는데 당시에는 야간 옥외집회를 집시법에서 금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초기에는 시위가 불법이냐, 아니냐는 바로 이 야간 옥외집회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하지만 당시까지는 물리적 충돌은 없었다.

2008년 5월 22일 이명박 전 대통령은 사건 약 한 달 만에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
"정부가 국민들께 충분한 이해를 구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노력이 부족했습니다.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데 소홀했다는 지적도 겸허히 받아들입니다. 국민여러분께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중략)
정부의 방침은 확고합니다. 국민 건강은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정부는 미국과 추가로 협의를 거쳐 수입 쇠고기의 안전성이 국제기준과 부합하는 것은 물론, 미국인 식탁에 오르는 쇠고기와 똑같다는 점을 문서로 보장받았습니다. 국민 건강을 위협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바로 수입을 중단하는 주권적 조치도 명문화하였습니다. 차제에 식품 안전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도록 모든 조치를 강구하겠습니다. (중략)
전례 없이 임기 말에 국회를 열어주신 여야의원들께 감사드립니다. 이제 회기도 임기도 며칠 남지 않았지만, 여야를 떠나 부디 민생과 국익을 위해 용단을 내려주실 것을 다시 한 번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17대 국회가 한미 FTA 비준동의안을 여야 합의로 통과시켜 주신다면, 이는 우리 정치사에 큰 공적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중략)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앞으로 정부는 더 낮은 자세로 더 가까이 국민께 다가가겠습니다. 지금까지 국정 초기의 부족한 점은 모두 저의 탓입니다. 저와 정부는 이번 일을 계기로 심기일전하여 경제를 살리고 일자리를 만드는데 더욱 매진하겠습니다.
5월 24일부터 촛불집회는 서울특별시 도심의 주요도로를 점거하는 가두시위로 변했다. 5월 24일에 열린 미국 쇠고기 수입 반대 제17차 촛불문화제에서 밤새도록 해산하지 않고 남아 있던 250여명의 시위대가 다음날 새벽 4시경 해산 과정에서 충돌했는데 경찰에 대한 폭력 사태가 발생하여 37명이 연행되었다. #, #

5월 26일 새벽 경찰이 시민기자를 폭행하는 일이 벌어지자 # 언론계에서도 촛불시위가 격화된 이유에 대하여 논란이 과열되었다. #

5월 29일 농림수산식품부가 행정안전부에 ‘미 쇠고기 수입에 대한 장관고시 관보 게재’를 의뢰한 후부터는 시위대가 청와대 진출을 시도하면서 차단선으로 설정한 경찰 버스를 뚫으려고 시도하였다.
당시 시위 모습
5월 31일 밤 시위대가 경찰의 차단선을 뚫고 청와대 부근인 내자·적선 사거리와 동십자 사거리까지 진출하지 경찰은 청와대로의 집단진출을 막기 위해 처음으로 물대포를 사용하였다. 그러나 경찰은 물대포 사용을 두고 과잉진압이 아니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

6월 1일 새벽 2시 30분경 동십자사거리에서 청와대로 진격하려는 시위대와 경찰이 대치하던 중에 여대생이 군홧발로 전경에게 밟히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 #
파일:external/ojsfile.ohmynews.com/IE000919976_STD.jpg
2008년 6월 1일 새벽 서울특별시 광화문 인근에서 경찰 군홧발에 머리를 밟힌 여대생 이 모 양
이 사건으로 인해 반정부 여론, 경찰에 대한 반감, 시위의 폭력성이 더욱 강해졌다. 반정부 구호 확산(뉴스데스크)
서울특별시에서 시위대의 가두행진은 종로구, 율곡로뿐 아니라 서대문구, 신촌 등 서울특별시 시내 여러 곳에서 기습/산발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참가 인원이 점점 늘어나면서 광화문과 서울광장으로 고정되기 시작했다.

2.3. 최고조

파일:attachment/erg34A74kokkilii0607.jpg
2008년 6월 7일, 서울특별시청서울광장
달아오른 시위의 분위기는 2008년 6월 현충일 전후로 그 절정을 이루기 시작했으며# 10일에는 최고조에 이르렀다. 당시 시위 참가자는 경찰 추산 8만 명, 시위 주최측 추산 70만 명이었다. # 이때 서울특별시의 광화문-안국동-종로3가-종로2가-종각이 모두 사람으로 덮였다. 명박산성이 등장한 것도 이 날이다.
파일:attachment/erg34A74kokkilii0610.jpg
2008년 6월 10일, 서울특별시청
이후 대책회의 측은 의료 및 수도 민영화, 한반도 대운하 사업, 언론 탄압과 같은 정부 정책 전반에 대한 비판들로 의제를 확산했다. 여러 주제를 다루게 되면서 광우병에 대한 비중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같이 다루고 있었음을 당시 사진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1 #2

결국 6월 18일 이명박 전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 성명을 냈다. 6월 10일 시위에 대한 반응이었다. 한반도 대운하 정책도 이때 철회, 축소되어 4대강 사업으로 변경되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지난 6월 10일 광화문 일대가 촛불로 밝혀졌던 그 밤에 저는 청와대 뒷산에 올라가 끝없이 이어진 촛불을 바라보았습니다.
시위대의 함성과 함께 제가 오래전부터 즐겨 부르던 <아침이슬> 노래 소리도 들었습니다. 캄캄한 산중턱에 홀로 앉아 시가지를 가득 메운 촛불의 행렬을 보면서, 국민들을 편안하게 모시지 못한 제 자신을 자책했습니다.
식탁 안전에 대한 국민의 요구를 꼼꼼히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자신보다도 자녀의 건강을 더 걱정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세심히 살피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시급히 해결해야 할 국가적 현안이라 하더라도, 국민들이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또 국민들이 무엇을 바라는지, 잘 챙겨봤어야 했습니다. 저와 정부는 이 점에 대해 뼈저린 반성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미국 부시 대통령에게 우리의 요구 사항을 구체적으로 분명히 밝혔습니다. 이를 계기로 지금 이 시각에도 양국 대표들이 모여 협상을 하고 있습니다.
국민들이 원하지 않는 한 30개월령 이상의 미국산 쇠고기가 우리 식탁에 오르는 일이 결코 없도록 할 것입니다. 미국 정부의 확고한 보장을 받아내겠습니다. 미국도 동맹국인 한국민의 뜻을 존중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이번 일을 계기로 모든 식품의 안전성을 담보하기 위해 철저한 조치를 취하도록 하겠습니다. (중략) 청와대 비서진은 처음 시작하는 마음으로 대폭 개편하겠습니다. 내각도 개편하겠습니다. 첫 인사에 대한 국민의 따가운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여서 국민의 눈높이에 모자람이 없도록 인선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대선 공약이었던 대운하 사업도 국민이 반대한다면 추진하지 않겠습니다.
6월 19일 대통령의 사과 기자회견과 함께 미 쇠고기 수입과 관련된 추가협상이 타결되는 등 수습되던 분위기로 인해 시위 참여자가 감소하기 시작하였다. 광우병 국민대책회의는 6월 20일부터 22일까지 소위 ‘48시간 릴레이 투쟁’을 벌였다.

이 시기에는 자체적인 시민 기자단이 조직되어 운영을 이어갔고 # 아프리카TV가 24시간 인터넷 생중계를 시작하면서 진보신당의 ‘칼라TV’, ‘라디오21’, ‘참세상TV’, ‘6·15TV’, ‘오마이TV’ 등 정치적 목적을 띈 인터넷 방송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1] 이 외에도 카이스트를 포함한[2] 다수의 대학 학생회들도 참여하였고 많은 사회 단체들이 참여하였다.

2.4. 극단화와 자연적 소멸

정부의 사과 담화문 발표에도 시위는 경찰의 진압, 정부의 미숙한 대처로 인한 국민들의 신뢰 상실, 시민들의 감정 격화 등의 복합적인 이유들로 인해 시위대와 경찰 사이의 폭력적인 전투로까지 발전하였다.

6월 25일 장관 고시 의뢰가 발표되자 내자 사거리에서 이를 반대하는 기습시위가 벌어졌으며 26일 아침 9시 관보 게재에 따라 협상의 효력이 발효되자 일부 시위대가 이에 대한 불복종을 선언하면서 밤을 새워 가며 야간 집회 금지를 어겼다.
파일:PYH2008070311020001300_P2.jpg
한국기독교협의회의 시국기도회
6월 29일 밤 12시 30분경에는 프레스센터 앞에서 시위대에 고립된 부대를 구조하기 위해 경찰이 시위대를 밀어내는 과정에서 대원들을 구타하던 시위대에 밀리면서 넘어진 시위대 측의 한 여성을 몇몇 대원이 극도로 흥분한 상태에서 발로 밟고 경찰봉으로 폭행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6월 30일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시국미사’를 시작으로 7월 4일까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불교 환경연대 등이 연달아 종교집회를 개최하여 시위는 다시 절정을 이루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소강상태로 접어드는 분위기가 되었다. 이때 참여한 시민 사이에서 의견이 통일되지 않은 상황에 정부가 대국민 담화로 입장 후퇴를 보여 점점 시위 참여가 감소하였다.

7월 7일 광우병 국민대책회의가 ‘평일 촛불집회 개최 중단 및 주말과 부시 방한일 등 특정일에만 개최’한다는 입장을 발표하면서 평일에는 일부 네티즌 중심의 소규모 집회가 개최되었고 광우병 국민대책회의가 주관하는 주말 집회도 참가 인원이 급감하였으며 이슈도 미국산 쇠고기 문제보다는 ‘방송장악 규탄’ 등으로 변화하였다.

이 시기의 시위는 정권의 퇴진을 직접적으로 요구하는 등의 모습을 보였고 시위 진압으로 대응하는 경찰, 여론 분열, 폭력시위에 대한 반대로 인해 지지자가 서서히 줄어들었다.

이전에는 시위대의 규모가 워낙 커서 방어 위주 진압을 하거나 새벽/아침 무렵 진압/해산을 시작했으나 이때부터는 시위 진압 시각도 당겨지고 그 강도도 훨씬 높아졌다. 시위가 오래 지속되면서 시위에 참여하는 인원은 줄어들고 남은 소수는 자연히 극단화되었다. 이런 사람들 중 유명한 사람이 안마열사#, 새총열사, 염산열사# 등이며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짤들이 발생한 것은 대부분 이 때의 일이다.

같은 시기 국제앰네스티 측이 경찰의 과잉진압을 부각한 조사결과를 발표하자 경찰청 측은 해당 조사 자료의 허위사실과 오역 등을 지적하는 반박자료를 뿌리고 어청수 경찰청장도 법적 대응을 표명했다.

파일:external/sgsg.hankyung.com/20080705020544907.jpg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가 장기화되면서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참여단체 내부에서 촛불집회 지속 여부를 둘러싸고 의견이 엇갈리자 광우병 국민대책회의는 8월 15일 대학로에서 5,500여명이 참여하여 ‘100일 기념 촛불집회’를 마지막으로 개최하고 앞으로는 미국산 쇠고기 판매 저지 등 소위 ‘생활 속 투쟁’으로 전환할 것이라는 입장을 발표하면서 사실상 ‘미 쇠고기 촛불집회’가 마무리되었다.

2.5. 이후

2010년 5월 11일 이명박 전 대통령은 촛불시위에 대한 조선일보의 비판적 기사를 극찬하며 촛불시위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였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많은 억측이 사실이 아니었음이 밝혀졌지만 당시 참여했던 지식인과 의학계 인사 누구도 반성하는 사람이 없다. 이런 큰 파동은 역사에 남겨져야 한다."면서 각 부처가 촛불시위에 대한 보고서를 만들 것을 주문했다.

한겨레로 대표되는 진보 계열 언론에서는 촛불시위의 주 참여 계층 혹은 원동력을 2, 30대 여성으로 파악했지만# 학계는 10대부터 중년층까지의 남성들, 월 소득 300만원 이상의 중산층들이 주류를 이루었다고 분석했다. 오히려 정치적, 지역적인 성향이 참여에 더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3] 이러한 현실과 함께 한때 강남 좌파 혹은 20대 여성에 대한 찬양론이 잠시 일기도 했다. ###

2008년 7월 시민과함께하는변호사들, 바른사회시민회의 등으로 구성된 ‘바른 시위문화 정착 및 촛불시위 피해자 법률지원 특별위원회(이하 시위피해특위)’는 광화문 주변 상인들의 위임장을 모아 광우병국민대책회의와 국가 등을 상대로 손배해상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불법·폭력적 시위를 조장한 광우병국민대책회의와 졸속협상으로 시위를 촉발하고도 시위대를 방치하고 차벽을 설치해 통행을 금지한 국가로 인해 매출액이 감소했다”고 주장하면서 전년 대비 카드매출액 감소분과 위자료를 청구했다. # 시위피해특위는 신상털이 및 협박에 대한 피해와 방지에 대한 수사 촉구를 했지만 그것까지 받아들였는지는 의문이다. #

하지만 재판부는 “현행 집시법은 공공의 안녕질서와 조화를 이루는 범위 내에서 집회·시위의 자유를 보장해 국민 전체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지, 집회·시위로 인해 피해를 입은 개개인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라며 “집시법 위반이 손해배상 책임의 부담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이어 “2008년 5~7월 해당 세무서 조회 결과 원고들이 운영하는 업소에서 오히려 신용카드 매출액이 증가한 경우도 있어 손해를 입었다는 증거가 부족하다”며 “또 손해를 입었다 할지라도 불법행위의 간접적 손해는 가해자가 그 사정을 알거나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인정되는 경우에만 배상 책임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그리고 상인들의 증거마저도 신용카드 매출이 증가했다는 법원의 심리에 의해 부정되었다. #

3. 여담

  • 당시는 숭례문붕괴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기 때문에 '관악산의 화기를 막으려 세웠던 숭례문'이 무너진 이후 들어오게 된 '화기'가 이 시위대를 말한다는 평도 있었다.[4] 그리고 숭례문의 개방을 추진했던 당시의 이명박 서울시장(임기 2002~2006년)에 대한 비판이 시위와 연결되기도 했다.
  • 시위가 한창이었을 때 군대를 제대한 예비역 남성들이 경찰과 시위대의 사이에서 스크럼을 짜고 충돌을 막은 적이 있다. 자발적으로 벌어진 일이며 덕분에 해당 지역에서는 충돌로 인한 부상자가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 반이명박의 기치를 가지고 박근혜박사모도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물론 박사모는 당시에도 좌파 공작 같은 이야기를 꺼내긴 했지만 해당 시위에 있어선 공작이 아니라 시위 경험이 없는 시민들이 우왕좌왕하는 걸 좌파의 소행으로 몰고 있다는 식의 입장 표명을 하기도 했다. ###

4. 논란

4.1. 참여정부 설거지론 논란

자세한 내용은 참여정부 설거지론 논란 문서 참조.

4.2. 이명박 정부의 발언

"한·미 FTA의 걸림돌이 됐던 쇠고기 문제가 합의됐다는 전화 보고를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으로부터 받았다"
"양국 대표들이 어젯밤에 한숨도 안 자고 밤을 새서 협상을 했다고 들었다"
"새벽에 두 사람이 잠결에 합의한 것 같다"
- 이명박 대통령
양국의 공식 발표가 나오기 전에 이명박 대통령이 말실수를 해서 협상타결 소식이 미리 알려졌다. #
"대통령이 웃으며 박수치는 걸 국민이 보면 기분 좋겠나"#
- 이동관 대변인
“(미국 쇠고기를) 강제로 공급받는 게 아니고 마음에 안 들면 적게 사면 되는 것” #
- 이명박 대통령
"신문만 봐도 나오는 걸 왜 보고하느냐. 1만 명의 촛불은 누구 돈으로 샀고, 누가 주도했는지 보고하라"# #
- 이명박 대통령

5. 광우병 음모론 유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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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는 당시 각종 언론이나 백분토론과 같은 매체를 통해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을 어필하였으나 이명박 정부는 초기부터 BBK 논란이나 한반도 대운하 관련 문제로 인해 신뢰도를 잃어 정부 자체의 설득력을 잃었다. # 게다가 전 정권인 참여정부 시절에 (이명박 본인은 딱히 나선 적은 없지만) 야당으로서 광우병 문제로 정부를 극딜하다가 자기들이 정권을 잡자마자 태세전환을 한 것이라 역풍을 맞은 측면이 크다.

5.1. 미국산 소고기의 안전성에 대하여

문제가 된 미국은 300,000,000명 넘는 인구 중 vCJD로 인한 사망자가 단 3명만 보고되었으며 BSE 발병 건수는 3건이었다. 이 중 2명은 영국 장기 체류 경험이 있고 나머지 1명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인생의 대부분을 산 케이스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BSE와 vCJD의 연관성을 확정하게 할 수 없다. 다시 말해 미국산 쇠고기를 먹고 인간 광우병에 걸린 사례는 아직까지는 없다. 이것은 광우병 파동 당시 우희종 교수 같은 촛불시위 지지 측 전문가들도 인정한 사실이다.

미국에서 생산된 쇠고기의 대다수를 미국인이 소비하고 위에 적힌 대로 미국에서만 살면서 일상적으로 미국산 쇠고기를 먹던 사람들 중에 적어도 공식적으로 광우병에 걸린 사람은 없다. 그러니 '혹시 모를 위험성에 대비한 검역주권을 침해함'이나 '강대국의 경제적 횡포'를 근거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개방 확대를 반대한다면 모를까 단순히 치명률이 높다는 이유만 가지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개방 확대를 반대하는 것은 매우 과학적 설득력이 부족하다.

이러한 효율 때문에 미국의 정육용 소는 20개월 정도에서 도축되고 그보다 나이 들어 도축되는 것은 젖소나 어미소들로 이 소들은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뒤에야[5] 도축된다.

참여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관한 입장(2008년 청문회)[6]

또 36개월 이상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관해서도 제17대 대통령 이명박이 일방으로 수입을 주도했다고 서술되어 있었으나 참여정부 시절에 한미 FTA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은 한국 측 협상 카드로 사용되었고 또 참여정부 말기인 2008년 초까지 연령 제한 없는 수입을 검토하였다. 미국산 쇠고기 연령 제한 푼다…'전면 개방' 눈앞(2008년 1월 8일)

결국 소의 연령과 관계 없이 모든 미국산 소고기 수입 금지에 관한 촛불 집회가 지속되던 가운데 2008년 6월 21일 30개월 미만 미국 쇠고기만 수입되도록 양국 간 협의가 체결되었다. 이후 통관 계류 중인 미국산 쇠고기가 수입되었으며 현재까지 먹는 쇠고기는 30개월 미만의 쇠고기다. 논란의 핵심이었던 36개월 연령 쇠고기 문제는 해결되면서 촛불 정국은 소기의 목적을 이루고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2010년부터 SRM 부위인 소머리 고기와 내장이 수입되면서 문제가 이어졌다.

5.2. 미국의 광우병 발생 현황

최초 발생은 2003년이었으며 이 소는 캐나다에서 생우로 수입된 정형(감염)광우병이었고 2018년까지 5번의 추가 발견이 있었는데 전부 비정형(자연발생)광우병이었다. 영어 2003년 발병 소는 미국에서 소를 위시한 반추동물에게 포유류유래사료를 금지하는 조치가 실시된 1997년 이전에 태어난 소였으므로 이후 발견된 사례들이 비정형이라는 점은 정형광우병에 있어서 포유류유래사료금지의 억제 효과를 방증하는 것이다.

주장에 따라서는 영국의 광우병 사례를 따져 보았을 때 월령이 높은 소가 (정형)광우병 발병 사례가 많으므로 월령과 정형광우병의 발병간에는 상관관계가 있다고 하지만 광우병이 애당초 잠복기가 긴 병임을 생각해본다면 그것은 상관관계가 아니라 30개월 이하는 잠복기임을 알 수 있다.

5.3. 특정위험물질(SRM) 논란

이명박 정부는 2008년 30개월 소를 들여오는 협상에서 국제수역사무국(OIE) 기준에 따라 SRM범위를 변경했다. # 즉, 참여정부 시절에 했던 수입위생조건은 미국에 대한 국제적 기준이 정해지지 않고 양자간 협의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며 이번엔 미국이 광우병 통제국가란 지위를 공식적으로 부여받고 국제적 지침이 세워지자 한미FTA에서도 그 기준을 지켰다는 의미다. 이는 이명박 정부 시절에 OIE에서 정한 SRM 범위가 아닌 미국의 SRM 범위를 기준으로 대한민국의 SRM 범위를 수정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2006년 2월 2일 당시 농림부가 공고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에는 한국으로 수출시 SRM이라고 함은 당시 모든 연령 소의 뇌, 눈, 척수, 머리뼈, 척주(척추부분의 기둥), 편도, 회장원위부(소장의 밑단부)를 말한다. 한국인의 식문화 특정상 소의 모든 부위를 먹기 때문에 이 협상 내용은 굉장히 민감했다. 결국 촛불시위의 여파로 미국과 재협상을 벌여 30개월 이상은 모든 SRM 부위, 30개월 이하는 6가지 SRM 부위를 수입하지 않기로 했다.

다만 소의 내장이 식용으로만 쓰이는 것이 아니라 공업용 소재로도 사용되므로[7] 광우병 소의 내장이 식탁 위에 올라간다는 진보 언론의 보도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5.4. 전수검사 논란

일본(전체)과 유럽에서는(30개월 이상) 도축 시 전수검사를 하는데 미국에서는 극소수만 한다는 것이 큰 논란이 되었다. 그러나 미국에서 하는 것은 도축검사가 아니라 예찰활동(surveillance)인데 샘플링 검사로 잘못 알려져서 벌어진 해프닝이다. 미국에서는 도축검사에서 관능검사 이외에 생화학검사가 아예 없다. 그러므로 0.1% 샘플링이라는 것은 틀린 말이고 0%가 맞다. 다만 별도의 예찰활동으로 병들어 죽은 소만 집중적으로 검사하고 있다.[8] 그런 과학연구활동으로 발병의 추세를 관찰하는 것이다. 미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도축 시 SRM 제거로 광우병 위험요소는 제거된다고 주장했다.

5.5. 동물성 사료 논란

한국과의 쇠고기 협상에 맞물려 미국에서 2008년 4월 25일 동물성사료금지강화조치가 공포되었는데 이전에는 반추동물용 사료에 대한 금지만 있었다면 모든 미국내 가축(애완동물포함)의 먹이에서도 30개월 이상 소의 뇌와 척수를 제외하는 것이 추가됐다. 그런데 이것이 한국에 잘못 알려져서 미국의 개도 안 먹는 SRM이 한국인의 밥상 위에 올라온다고 알려져 큰 논란이 일었다. 물론 이것은 명백한 유언비어로서 한국에서 당초 수입하기로 했던 것은 30개월 이상 소에서 뇌와 척수 등 7부위를 제외한 나머지 내장부위였다.

한국의 기준은 다음과 같은 과정을 통하여 강화되었다.
년도 내용
2000년부터 육골분 사료 및 반추 동물 유래 사료 금지
2001년 음식물 찌꺼기 반추동물 사료화 금지
2008년 앉은뱅이소(기립불능소)와 과민반응 소 전수검사 및 도축 전면금지
2009년 법률 제10219호 '사료관리법' 및 농림수산식품부고시 제2009-195호 '유해사료의 범위와 기준' 개정 시행령에 의거하여 소 등 반추동물에 동물성 사료 전면 금지(제5조 사료사용 제한물질 및 제6조 동물등의 질병과 관련한 사료종류)

6. 참고 자료

  • 도서
    • 촛불, 그 65일의 기록 - 경향신문 촛불팀 편. 경향신문사 출판국. 2008.

7. 평가

7.1. 긍정적 평가

7.1.1. 야간옥외집회 금지 철폐

집시법 제10조(옥외집회와 시위의 금지 시간) 누구든지 해가 뜨기 전이나 해가 진 후에는 옥외집회 또는 시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다만, 집회의 성격상 부득이하여 주최자가 질서유지인을 두고 미리 신고한 경우에는 관할경찰관서장은 질서 유지를 위한 조건을 붙여 해가 뜨기 전이나 해가 진 후에도 옥외집회를 허용할 수 있다.
헌법 불합치, 2008헌가25, 2009.9.24.,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2007. 5. 11. 법률 제8424호로 전부개정된 것) 제10조 중 ‘옥외집회’ 부분 및 제23조 제1호 중 ‘제10조 본문의 옥외집회’ 부분은 헌법에 합치되지 아니한다. 위 조항들은 2010. 6. 30.을 시한으로 입법자가 개정할 때까지 계속 적용된다.
한정위헌, 2010헌가2, 2014.3.27.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2007. 5. 11. 법률 제8424호로 개정된 것) 제10조 본문 중 ‘시위’에 관한 부분 및 제23조 제3호 중 ‘제10조 본문’ 가운데 ‘시위’에 관한 부분은 각 ‘해가 진 후부터 같은 날 24시까지의 시위’에 적용하는 한 헌법에 위반된다.

야간옥회집회 금지는 94년에 집회 및 시위의 자유로 인한 법익보단 공공의 안녕질서에 위협으로 보호하는 법익이 더 크다고 판단하여 합헌으로 규정된 바가 있었다.[9]

하지만 광우병대책회의 안진걸 조직팀장이 집시법 '야간 집회 금지' 조항에 대한 위헌법률제청을 한 결과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하였고# # 결과적으로는 한정위헌과 헌법불합치 판정을 받아 야간집회를 법적으로 보장하면서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인 집회결사 및 표현의 자유를 증진시키는 데 제도적으로 큰 역할을 한 측면이 있다.

7.1.2. 쇠고기 추가협상

① 미 정부가 보증하는 '한국 수출용 30개월령 미만 증명 프로그램'의 운영을 통하여 국민적 우려가 제기되었던 30개월령 이상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실효적으로 차단
② 국내검역 및 미 도축장 현지 점검시 우리 정부의 검역권한 강화
③ 4개 부위(뇌, 눈, 척수, 머리뼈)를 SRM 범위와 무관하게 수입차단
④ 합의사항을 수입위생조건 부칙에 명시하여 상기 3개 사항의 실효적 집행을 확보
- 미국산 쇠고기 추가협상 결과, 외교통상부 농림수산식품부 2008. 6. 21

이명박 정부는 촛불시위의 의견을 일부 받아들여서 위의 요약대로 쇠고기 추가협상을 받아들였다. #

이에 따라 광우병 발병 사례가 있었던 미국산 30개월 이상 소까지 수입하려던 한미 FTA가 시위 이후 30개월 이하로 FTA 체결된 것으로 종결되었다.

해외는 크로이펠츠 야콥병(CJD)환자 발생이 100만 명당 1명 추이로 발병하였고 대한민국도 CJD 감염 사례는 100만 명당 1명 꼴로 세계 감염 수준과 유사하다. 아직까지 미국 쇠고기에 의한 vCJD는 감염은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대한민국 역시 2012년 이후 단 한 건의 발병 사례도 나타나지 않았다. # #

보수 지지층에선 이 시위를 광우뻥이라 칭하며 깎아내린다. 당시 인터넷에서 많은 가짜뉴스가 확산된 건 사실이지만, 이는 잘못된 비난인데 이 시위의 요지는 반미와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가 아닌 30개월 이상 소고기 수입 반대였기 때문이다.

7.2. 부정적 평가

7.2.1. 반정부 여론과 이명박 지지율 조기 하락

파일:2018050349032174.jpg
안티MB가 주최한 촛불 문화제의 장면. 즉, 시위가 시작된 5월 2일에 나온 장면이다. #
파일:5172627031.jpg
다음 아고라에 시작된 이명박 탄핵 서명운동. 4월 6일에 시작되어 130만명이 서명했다. 서명을 주도한 사람은 당시 고등학생이였으며 아고라 아이디 '안단테'를 사용하였다. #
이명박 탄핵 시위가 논란이 되었다. 시위 주최 측은 후일 2008년 촛불집회의 목적이 '강대국의 경제적 횡포와 검역주권 침해, 그리고 이에 대한 한국 정부의 굴욕적 자세'에 있다고 주장했다. 원래는 시위주권을 위해 시위를 벌였는데 (정부의 불통과 강압시위 때문에) 탄핵을 외쳤다'는 논지다. '이명박 탄핵을 위한 범국민운동본부'(안티MB)[10]도 참여했다.

광우병 논란은 가장 시국에 가까운 명분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공존한다. 즉, 4대강이나 의료민영화 등등 이명박 정부의 정책 때문에 딱히 한미 FTA가 아니더라도 이명박 정부에 대한 야권 시민들의 반감은 시위 전부터 컸다는 의미다. 단지 미국소를 명분으로 반정부 세력들이 이들을 규합했고 매스컴의 오보와 주변의 미지의 병에 대한 본능적인 공포심까지 합쳐서 이른바 '탄핵'의 목소리가 온ㆍ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팽배해지기 시작했다는 해석이다. 즉 처음부터 탄핵을 외쳤으며 단지 탄핵여론이 시위가 고조되면서 같이 거세졌을 뿐이라는 것이다.

어찌됐건 광우병 논란과 이 시위의 여파로 출범 초 50%대였던 이명박의 지지율은 2008년 6월에 17%까지 떨어졌으며# 분기별 조사상으로도 21%까지 떨어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최저 지지율 기록은 2013년 2월 24일 퇴임까지 깨지지 않았다.

2007년 17대 대선과 허니문 선거였던 2008년 18대 총선에서 압승하며 일본의 자유민주당처럼 일당 독주 시대를 열 것만 같았던# 한나라당은 총선 한 달도 되지 않아 지지율이 폭락하며 전성기가 조기 종료되고 말았다.

7.2.2. 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 제1항위헌 판결과 폐지

대한민국의 인터넷 검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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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3478><colcolor=#fff> 이전 간윤위(1970-) · 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 제1항(1984)[폐기] · 정보통신망법(1986-)
1990년대 방통위&방심위 (구 정통윤)(1992-) · 정보통신심의규정(1992-) · 통신보안법(1997)[폐기] · 영등위(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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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 제1항 문서 참고.

이 사건 이후 논란이 된 허위통신죄 1항은 훗날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판정된 이유와 같이 해당 법률이 말하는 공익의 범위가 모호하기 때문에[11] 집행에 따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여지가 많았다. 한마디로 침해대상이 특정되어 있지 않더라도 특정한 의도를 가진 채 유포한 사실이 허위라면 처벌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조항이다. 결국 촛불시위 전후부터 영향을 끼친 미네르바 사건 판결에서 2010년 10월경에 위헌 결정이 나왔다. #

인터넷 검열로 쓰일 수 있는 법이 사라지고 표현의 자유가 확대된 것은 좋은 일이지만 자유에 따른 가짜뉴스, 악의적 루머 등 허위사실유포, 고인드립 등 타인의 권리 침해 등 부작용이 크기 때문에 부정적인 영향이라고 하겠다.

7.2.3. 일베저장소 극우화의 원인

박가분도 지적했지만[12], 일베의 태동근거는 진보좌파가 오버했던 2008년 촛불시위다. 이 시위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일부 진보 좌파의 과욕 또는 가벼움이 진보 좌파의 책임윤리에 대한 의구심 촉발과 더불어 촛불을 소멸케 하는 결과를 초래했기 때문이다.
― 강준만 《싸가지 없는 진보》
노노데모라는 보수 성향의 인터넷카페 개설로부터 시작된 디시인사이드, 이글루스 등 각종 커뮤니티의 우경화, 나아가서 일베저장소 극우화의 원인이라는 주장이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 '일베저장소'에서 나타나는 혐오와 열광의 감정동학》 36쪽 참고.

실제로 강준만의 《싸가지 없는 진보》를 읽어보면 극우 성향의 일베저장소 회원들 중 대다수는 자신이 촛불시위를 계기로 진보에서 일베로 전향했다고 말했다. 한 국가의 수장이자 국가를 대변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이름은 놀림감처럼 쥐박이가 되었고 국가가 가지고 있는 정당한 권력을 독재, 자유 탄압이자 악의 힘처럼 표현하는 글귀들이 널려 있었던 것에 분노를 느끼고 일베로 전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국가정보원·국방부 여론조작 사건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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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초창기에 디시인사이드의 대안 사이트에 불과했던 일베저장소의 극단화에도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베저장소2010년에 개설되었으나 문제는 당시 디씨의 거대 갤러리(와갤, 코갤, 야갤, 정사갤 등)들은 여옥대첩의 여파로 이미 우경화된 상황이었다. 디시의 우경화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용인이 작용되었는데 촛불시위 이후 지지율의 추락과 함께 이를 주동한 인터넷 커뮤니티의 정치적 영향력과 이때까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영향력을 보이던 노사모를 비롯한 당시 30~40대 민주당 지지자들의 단합력에 위기감을 느낀 MB정부가 우리도 인터넷에서 보수 스피커를 키워야겠다고 인터넷 커뮤니티 여론 조작에 신경쓰며 국정원-기무사 여론조작을 시작한 것도 촛불 시위의 간접적엔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 더 자세한 내용은 국가정보원·국방부 여론조작 사건 참고.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지역드립/전라도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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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사회 갤러리에서 유행하던 전라도를 폄하하는 지역드립과 기타 보수적 유행어들이 2009년 한국시리즈에서 KIA 타이거즈의 12년만에 우승으로 인해 국내야구 갤러리로 넘어와 히트를 치고 혐진보적 유행어와 드립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과 함께 당시 디시의 수도 갤러리였던 국내야구 갤러리의 파급력으로 인터넷으로 퍼지는 효과를 낳았다는 설도 있다.

지금도 네이버나 구글에서 '광우병 시위‘라고 검색하면 일베가 출처거나 극우 성향 사이트에 올라온 게시글이 많이 나온다. 그만큼 대한민국의 인터넷 우경화에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이 사건을 계기로 보수 성향 유저들이 ‘팩트’나 ‘선동’이란 단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본질적으로는 인터넷이 우경화되었다기보단, 원래도 반권위적, 냉소적 경향의 인터넷 유저층이 촛불시위를 기점으로 인터넷 커뮤니티들의 정치적 성향이 본격적으로 노출하면서 유저들이 각자의 성향에 따라 분리되고, 그 과정에서 보수적인 유저들이 조직화를 해야겠다는 필요성이 여옥대첩, 야갤의 전라도 혐오정서 등 트리거를 착착 당기면서 만들어진 것이 지금의 일베라는 조직화, 집단화된 커뮤니티의 출현인 것이다.

7.2.4. 사회/경제적 피해

2009년에 서울중앙지검에서 《美 쇠고기 수입반대 불법폭력 시위사건 수사백서》를 발표하여 언론에 보도된 자료에 의하면 2008년 5월 2일부터 8월 15일까지 106일 동안 전국적으로 벌어진 촛불시위는 모두 2,398회였고 연인원 93만 2,000여명이 참가했다.[13] 이에 동원된 경찰력은 7,606개 중대, 연인원 68만 4,540명이었다. 시위대와 경찰의 충돌으로 500여명의 경찰이 다치고 177대의 경찰버스가 불에 타거나 부서졌다. 이 기간 중 1,476명이 입건돼 구속(43명), 불구속(165명), 약식기소(1,050명) 등 총 1,258명이 기소됐고 나머지는 기소유예나 법무부의 ‘법 체험 프로그램’ 이수를 조건으로 한 기소유예, 혐의없음, 기소중지 처분 등을 받았으며 직접적으로는 1조 574억 원, 간접적으로는 2조 6,939억 원의 경제적 피해가 발표되었다.

경찰 501명이 부상당하고 경찰장비 2,275점이 파손돼 약 11억원의 피해가 발생했으며 집회 참가자들도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14] 2008년 9월 한국경제연구원이 발표한 ‘촛불시위의 사회적 비용’에 따르면, 청계광장, 종로 등 시위장소 주변 상인들이 영업손실 등으로 9,042억원 상당의 재산상 손해를 입는 등 불법폭력시위로 인한 사회경제적 손실이 총 3조 7,513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2007년도 GDP의 0.4%에 해당하는 규모다. 시위를 저지하기 위해 동원된 경찰력만 7,606개 중대, 연인원 68만 4,540명이며, 시위 참가자도 1,476명이나 형사입건됐다. #

7.2.5. PD수첩의 오보

우선 광우병 논란은 참여정부 말기 한미 FTA에서 벌어졌으며 보수 언론이 참여정부를 공격하기 위한 도구로 이용되어 왔다. #1#2 다만 이는 당시 정부의 치적쌓기 논란(한미FTA)에 대한 학계와 보수권의 견제일 뿐이고 대선을 얼마 앞둔 시점이라 반정부 여론이 대선에 대한 관심으로 쏠려 있었기 때문에 인터넷에서만 논란이 되었을 뿐 대규모 시위가 발생한 적은 없다.

그러다가 이명박 정부 시기인 2008년 4월 29일에 MBC PD수첩에서 《긴급취재 -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편을 방영하면서 여론이 심화되기 시작했고 "유전자형에 비춰 한국인의 발생확률은 94%로서, 영국인의 3배, 미국인의 2배", "SRM 0.1그램으로도 감염, 100% 사망",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을 잘 모르거나 은폐했고, 미국에서 인간광우병이 발생해도 정부가 독자적 대응을 할 수 없다" 등의 보도를 내보냈다. 이 촛불시위에는 PD수첩의 보도가 큰 영향을 끼쳤다. 때문에 반대측에서는 아예 악의적인 가짜 뉴스였다고 지적하기도 하였다.

대검찰청은 이 사건을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형사 2부에 배당했는데, 임수빈 부장은 이건 기소할 사안이 아니라며 기소를 거부하고 사직해 버리는 바람에 형사6부로 사건이 재배당되었다. 형사6부는 조능희 책임 피디(CP) 등 제작진 5명을 명예훼손, 업무방해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1

이에 대해 법원은 '사실과 다르긴 하지만 악의적으로 허위사실을 유포한 것은 아니다'라고 판단하여 무죄를 선고하였다.

MBC PD수첩은 2010년 12월 재판에서 '미국산 쇠고기 과연 안전한가' 편에 대한 정부의 명예훼손업무방해에 대한 고소로 2심 재판이 열렸으나 2010년 12월 2일에 2심 내용의 일부에 허위의 사실은 인정되나 고의성이 없기에 죄를 물을 수 없어 무죄 판결이 되었다.[15] 참조 기사 1, 참조 기사 2

이후 대법원에서도 같은 이유로 죄를 물을 수 없어 무죄 판결이 났다. 참조

이에 대해 MBC가 경솔한 보도를 사과하자 문화방송 노조 측은 대법원은 주요사실이 허위보도라고 말하지 않았는데 MBC가 공연히 사과한다며 거세게 반발했다. 참조

판결을 보면 쟁점은 크게 7가지다.
  1. 주저앉은 소가 도축되는 장면을 담은 동영상을 내보내면서 주저앉은 소들이 광우병에 걸린 소라는 취지의 보도.
  2. 아레사 빈슨이 인간광우병에 걸려 사망하였다는 취지의 보도.
  3. 30개월 이상의 소는 7가지 부위, 30개월 미만의 소의 경우 편도와 이 중 2가지만 SRM(특정위물질)에 해당하나(국제수역사무국 기준), 모든 소의 특정위험물질이 7가지라는 전제하에 5가지 특정 위험물질이 그대로 수입된다고 보도.
  4. 한국인의 경우 MM형 유전자형을 가진 사람이 94%이므로 광우병에 걸린 쇠고기를 섭취할 경우 인간 광우병이 발병할 확률이 94%에 이른다는 취지의 보도
  5. 미국에서 인간 광우병이 발생하더라도 우리 정부가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보도
  6. 쇠고기뿐만 아니라 라면스프, 알약캡슐, 심지어는 화장품 등에도 쇠고기 성분이 들어가기 때문에 (쇠고기 안 먹으면 된다는 정부의 주장이) 실효성이 의문시된다는 보도
  7. 미국의 도축시스템에 대하여 정부가 그 실태를 본 적이 있는지 보려는 노력을 했는지 의문이라는 보도

1, 2번은 이미 추가보도를 하였으므로 정정보도 불요로 판단하였고 3, 4번은 각각 반론보도와 정정보도를, 5~7번 같은 경우에는 의견표명으로 청구기각을 하였다.

즉, 대법원은 일부 핵심적인 보도 내용에 허위 사실이 있음을 적시하고서도 “공적 사안에 대한 비판에서 언론의 자유가 보다 폭넓게 인정돼야 한다”며 무죄를 선고했으며# 이에 덧붙여 2심에서는 "일부 내용이 사실과 다르지만 고의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며 항소심이 기각되어 무죄를 선고받았다. # 말인 즉슨, 한국인의 발생 확률이나 SRM 정도는 사실이 아니지만 의혹 보도는 언론의 자유로 인정될 수 있는 부분이며 정부의 고의적인 광우병 은폐 뉴스는 사실이라고 방송한 것이 아니라 (언론 사설 같은) 의견표명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즉 간장 두 종지 같은 기자 개인의 의견으로 여겼다는 것.

이후 PD수첩 측은 수사 유출 등과 관련해 정병두 서울중앙지검 1차장검사, 전현준, 박길배, 김경수, 송경호 검사와 문제의 왜곡기사를 보도한 <중앙일보> 송필호 대표와 박유미 기자에 대해 명예훼손으로 손해배상을 각각 청구했다. #, # 조 PD 등은 피고들이 각각 자신들에게 5천만원 손해배상금 및 문제의 기사 보도시점인 2009년 6월 15일부터 지금까지 정정보도를 하지 않은 데 대한 지연손해금도 함께 청구했다. #

7.2.6. 각종 불법 폭력 시위

5월 24일 첫 가두시위를 벌인 후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촛불시위는 폭력의 강도가 더해지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고시 발표 시점에 시작한 ‘72시간 릴레이 투쟁(6. 5~8)’, 대통령 기자회견 이후 시민 참여가 감소하자 집회 열기 회복을 위한 ‘48시간 릴레이 투쟁(6. 20~22)’, 재협상 고시 발표 이후 이에 반대하는 폭력시위(6. 25~29) 등 특별한 이슈에 따라 집중 투쟁일을 선정하여 폭력시위를 벌였다. ‘주말 촛불’ 다시 폭력으로 변질 2008.06.23

일부 시위대는 청와대를 직접 타격 대상으로 삼아 5월 24일 이후 지속적으로 청와대 진출을 시도하였으며 경찰이 청와대 접근로를 차단하기 위해 경찰버스를 이용하여 차벽을 설치하자 비교적 차벽 설치와 차단이 어려운 골목길 등을 통해 청와대 방면으로 집단진출을 시도하였다. 청와대 진입을 방지하기 위해 설치된 경찰버스에 손상을 입히기도 하였다. # 타이어를 손상시키거나 주유구에 불순물을 투입하여 경찰 버스를 무력화하려 하기도 하였다. 경찰과의 충돌 과정에서 전경들을 끌어내거나 고립시키고 대치중인 경찰을 향해 물병 등 불법 시위용품을 사용하였으며 경찰버스나 대원에게서 탈취한 경찰 장비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또 공사장에서 철근 등 공사자재를 무단으로 반출하여 시위 용품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시위대는 촛불시위에 대해 긍정적인 기업과 부정적 혹은 비판적이거나 미온적인 기업들을 나누었다. 전자는 삼양식품, Daum, 한경오, 미디어오늘, MBC 등이었고 후자는 삼성그룹, 농심[16], 롯데그룹, 조중동, KBS, 네이버 등을 지목하였다. 후자는 조중동 계열 및 그들의 대형 광고주다.[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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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박산성에 반대해 삼양라면 산성을 쌓자는 운동을 벌인 시위자들
또 이들은 삼양식품을 우호기업으로 표방하며 시위에 참가할 때 삼양식품의 제품들을 산성처럼 쌓아 놓고 삼양식품 제품을 이용하자는 운동을 펼쳤다. 이렇게 정치적인 논리를 끌어들이며 특정 기업 제품만 사자거나 사지 말자는 움직임은 이후에도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남양유업 불매운동, GS25 불매운동이 그 예.[18] 물론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선호하는 기업의 제품을 사는 건 소비자의 자유지만 정치적인 논리에 의해 농심이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기사도 애써 모른 척하기도 했다. #[19]

"조중동" 절독 및 불매운동#, 조중동에 광고를 게재하는 기업상품에 상품 불매운동도 벌이는 등 이들 기업에 대해서 반(反)기업 시위로 연장하기도 하였다. #[20][21]

이윽고 조중동은 7월 7일부터 미디어다음에 뉴스공급을 중단했고# 다음 측도 이에 2011년까지 조중동 관련 매체의 뉴스 게재를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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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사옥에 반대 스티커를 도배하는 시위자들
서울 광화문에 있는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는 본사 사옥이 시위대에 의해서 입구가 점령되었고 테러를 당했다. 당시 동아일보 깃발이 강제로 끌어내려질 뻔도 하였고 사옥 외부 종이신문 열람대는 시위대가 불 끈 초로 낙서하여 훼손되는 등 기물테러를 당했다.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그리고 코리아나호텔과 일민미술관 등이 시위대의 습격을 받아 간판이 파손되고 입구가 파손되어 봉쇄되는 등 수난을 겪었다. 시위 현장을 취재하던 기자들의 취재장비를 빼앗으려던 사람도 있었다. 시위대들로 인해 훼손된 조선일보 사옥 대문

반대로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시위대 몇 명이 중상을 입어 국가가 배상하기도 하였다. #

7.2.7. 시위 비난자들 비난

온라인에서는 반정부 성향 사람들을 비난하는 사람들에 대한 조리돌림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실제로 수많은 커뮤니티에서 촛불시위에 대해 부정적인 글을 썼다는 이유로 40대 후반~50대 보수 기성세대로 몰려 악플 테러를 당하고 유저 및 블로그가 폭발당한 사례가 빈번했으며 신상털이까지 당한 사람들도 있었다.[22] '폭력 전의경 신상리스트 업데이트'라는 사실관계가 의심스러운 게시글까지 올라왔다. 오프라인 촛불 반대 1인 시위자도 마찬가지였다. #1, #2, #3

이에 대해 반대 측에서는 '반국가적 행위라고 할 수 있는 과도한 반정부 여론이 조성됐다. 반정부 감정이 넷상을 떠돌았고 이로 인해 여론이 악화되어 시위로 이어졌다. 부분적인 사례 정보를 돋보기처럼 확대하여 기재하며 촛불시위 비판자들을 대가리가 깨져도 지지할 친정부 콘크리트라고 조리돌림한 반정부 선동이다'라고 발언하였다.

대표적인 피해자로 촛불집회에 대해서 소신 발언했다가 마녀사냥까지 당하고 결국 남편 안재환까지 자살하는 원인이 된 정선희가 있다.

7.2.8. 권력범죄로 빠져버린 이명박 정부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이명박 정부의 방송장악 블랙리스트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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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이명박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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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국정원 불법 사찰 사건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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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국가정보원·국방부 여론조작 사건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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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집회로 인해 엄청난 정치적 피해를 입은 이명박은 미디어에 의한 선동을 극도로 경계하게 되었고 이는 과도한 권력남용으로 인한 국가범죄로까지 이어졌다. 우선 국가정보원을 동원해 촛불시위에 찬동하거나 적극적으로 참여한 문화인 및 연예인들에 대한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사찰했으며# 블랙리스트 사례 중에는 국세청에 표적 세무조사를 당한 경우도 있었다. ##

또 국정원을 이용해 지지단체들에게 돈을 주고 친위활동을 시킨 정황이 포착되었는데 이 시위 이후 지지단체의 설립이 집중화된 것도 사실이었다. # 여론 선동의 근원 중 하나인 언론과 인터넷도 표적이 되어 공영방송사 사장 일방교체와 진보 성향 기자 정리, 인터넷 임시조치 남용, 실명제 확대 등으로 이어졌다.(진보네트워크 자료) 또 인터넷 여론을 반전시키기 위해 일베저장소를 이용한 것은 인터넷 문화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쳤다.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야기한 박연차 게이트 수사에 대해서도 당시 변호사로 입회했던 법무법인 부산 소속 문재인 변호사는 여러 저서에서 촛불집회의 배후에 참여정부가 있다고 의심하고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수사를 한 것 같다는 주장을 했다. 안희정 충청남도지사 또한 비슷한 주장을 내놓았다. #

자세한 내용은 이명박 정부의 방송장악 블랙리스트, 이명박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국정원 불법 사찰 사건, 국가정보원·국방부 여론조작 사건 참고.

7.2.9. 집회, 시위에 대한 부정적 인식 확산

촛불시위 이전부터 1000일 농성을 벌이던 금속노조에서는 촛불시위에 대해 '인터넷에서 사람들이 촛불집회 얘기는 많이 해도 비정규직 얘기는 잘 하지 않는다.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이 비정규직이어도 우리 아이는 비정규직이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라고 비판했다. # 이후에도 비정규직이나 노조의 시위에 대한 인식은 매우 좋지 않고 장애인 단체 등의 합법 시위도 조롱당하지만 자신이 피해 보는 것은 분노하는 이기주의가 강해졌다.

7.2.10. 학문 커뮤니케이션의 실패

광우병 촛불집회는 황우석 논문 조작 사건 이래 과학기술사회학 학계에서 가장 주목한 국내 이슈였다. 과학적 불확실성과 과학커뮤니케이션의 부재로 사회적 논란이 증폭되는 양상이 학계의 주요 관심 대상이었다.

과학사회학적으로 접근하면 2008년 촛불집회는 광우병의 원인이나 발병기제, 인간 전염 가능성 등이 거의 알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의 과학커뮤니케이션 노력의 부족, 불투명한 집행 과정, 과학이슈의 정치쟁점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사건이다. 대중은 생명/신체에 대한 위험에 특히 예민하기 때문에 어느 나라에서나 유전자조작식품, MSG 등 식품과 관련한 논란 및 갈등이 격렬하며 많은 관심을 불러모은다. 그 갈등과정을 위험 관리의 차원에서 얼마나 평화롭게 해결하느냐의 문제가 과학커뮤니케이션의 역할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이명박 정부는 완전히 실패한 사례로 꼽히게 되었다.

학계에서 숙의민주주의에 대한 논의가 격렬하게 이루어지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단순히 투표권을 주고 표를 던지라는 단순한 대중민주주의가 아니라 선거권자에게 충분한 자료를 주고 이슈에 대해 이해를 하도록 해 "숙의"의 과정을 거쳐 합의를 도출하는 민주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광우병처럼 위험의 불확실성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이슈에서 요구되는 방식인데 앞으로 사회가 점점 더 전문화/세분화될 것이라는 점에서 학계의 제안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인터넷 커뮤니티의 도입 후 숙의 민주주의와 과학 커뮤니케이션의 완전한 실패는 2020년대 초반에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가 유행했을 때도 똑같이 반정부 여론에 기반한 백신 반대 운동을 일으켰다.

숙의민주주의적 절차로는 유전자조작식품의 허용 여부를 둘러싸고 촉발된 논란을 해결하기 위해 영국 정부가 전 국민을 상대로 진행했던 GM Nation의 사례를 참고해 볼 만하다. 또 GM Nation과는 전혀 다르게 전문가들 및 이해관계자들 간의 장시간 토론과 합의를 통해 결론을 이끌어냈던 독일의 원자력발전 폐기 결정 역시 검토해 볼 만한 사례다. 참고 웹사이트1 참고 웹사이트2 독일 원전 폐쇄를 두고 끝장토론

소위 '위험사회학'은 단순히 과학적 정합성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과연 어느 정도를 "위험하다"고 해야 할지를 정하려면 사회적 합의[23]를 도출하는 과정과 수용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2008년의 광우병 논란이야말로 전문가가 나서 가능한 정확한 정보를 제시하고 그 정보를 바탕으로 위험성에 대한 숙의민주주의적 절차가 필요했다. 그런데 광우병 논란 당시 대한민국에는 제대로 된 광우병 전문가도 없었고 그나마 관련 있는 전문가들도 당시 분위기에 위축되어 나서기를 주저했다. 이로 인해 전문가들의 사회 참여에 대해 학계 차원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그나마 실질적인 개선이 일어나서 비슷한 형태의 논란이 일어난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대해서 상당수의 전문가들이 대중적 비난을 감수하고 전문지식과 논리를 통한 가짜 뉴스 논파에 나섰다. 다만 이 부분은 vCJD라는 미지의 신생 희귀병에 대해 학자들 자신들조차 자신의 지식이 통할지 말지를 확신할 수 없었던 데다 대중도 잘 모르는 영역이었지만 방사능은 100년이 넘는 경험적 데이터와 영미와 유럽권의 원전 등 명확한 대조군이 존재한다는 점, 무엇보다 물리/화학/원자력공학 전공자 출신 대중들이 적게나마 존재하고 이들이 여론을 같이 형성해 준다는 무시할 수 없는 환경적 차이점이 존재한다.

8. 관련 문서



[1] 당시의 여파로 아프리카TV 운영사인 나우콤의 문용식 사장이 구속당했다가# 1심에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 벌금 3000만원을 선고받았지만 항소심에서 벌금 1000만원으로 감형됐다. 죄명은 저작권법 위반 방조 혐의다. #[2] 카이스트 참가단은 이 시위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학칙을 어겼다며 징계 밎 감시를 받았다. #[3] 《촛불집회 참여자의 인구 ․ 사회학적 특성 및 정치적 정향과 태도.》 이갑윤, 2010. 2. 10. 서강대학교.[4] 삶과 생명의 공간, 집의 문화 - 국사편찬위원회. 2010. 11. 25. 52p[5] 경제적으로 모두 사용된 뒤에야[6] 참고로 방청석에 앉아 있는 사람 중 왼쪽의 사람은 참여정부 시절 농림부 농업통상정책관을 거쳐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8년 한미 쇠고기 협상 때 수석 대표 자격으로 참가했던 농림부 전 차관 민동석이다. 한나라당은 참여정부가 처리하지 못한 쇠고기 협상을 마무리지었다는 '설거지론'을 꺼내고 민동석 본인은 '쇠고기 협상은 미국이 우리에게 준 선물'이라고 발언해 논란이 있었다.[7] 대표적으로 광우병 파동이 일어난 2004년에 정부는 소 부산물에 대해서 공업용 한정(우지)으로 수입하기로 했다. # 우지는 양초, 광택제, 윤활제 등으로 쓰인다.[8] 물론 이런 소는 도축되지 않는다.[9] 91헌바14[10]서울의소리 카페.[11] 죄의 특성상 사건에 따라 침해하는 공익이 한정되어 있지 않아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그 상당성을 추정하기 매우 어렵다는 말이다.[12] 박가분의 저서 《일베의 사상》을 말한다. 박가분은 이 저서에서 일베를 촛불의 쌍생아라고 주장했다. #[13] 시위 주최 측은 6월 항쟁 21주년 기념일인 2008년 6월 10일 하루에만 100만이 시위에 참가했고, 전체 시위에 참가한 연인원은 300만 명이라고 주장했다. #[14] 진보 성향 시사 만화가 박건웅도 당시 경찰의 폭력에 뇌진탕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15] 허위의 사실이면 위법성이 조각되지 않는다. 단지 허위사실로써 농림부장관 등의 명예를 훼손할 고의가 없었기 때문에 죄가 성립하지 않는 것.[16] 특히 삼양식품과 대비되어 비난을 받았으며 우지 파동 당시 검찰총장이었던 김기춘이 2008년에 농심의 비상임 법률고문으로 위촉된 점 역시 영향을 끼쳤다.[17] 물론 이후에 보면 네이버는 여전히 압도적인 검색엔진 점유율 1위를 자랑하고 있고 인터넷 뉴스의 등장으로 종이신문 전체가 하락세긴 하지만 조중동은 여전히 메이저 언론사고 롯데그룹도 문제 없이 장사하고 있다. 농심 역시 논란이 많지만 여전히 업계 1위고 해외에선 높은 평가를 받는다. KBS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야당 성향의 시민들에게 꾸준히 비판받지만 회사 내외로 심각한 상태인 MBC보단 상황이 나은 편. 결국 소위 '촛불시민'들이 밀어줬다는 기업들은 여전히 업계 비주류고 불매운동 타겟이 된 기업들에겐 별다른 타격이 없었던 것이다. 이는 2010년대 들어 여성 우월주의 커뮤니티 관련 논란이 촉발됐을 때 여성 우월주의, 소위 꼴페미 커뮤니티에서 조직적으로 밀어주었던 기업, 창작자가 잠깐 반짝했을지언정 꾸준히 잘나가지 못했던 것과 일맥상통한다. 시장원리에 의한 자연스러운 선택이 아닌 정치적 고려가 들어간 인위적인 선택은 오래 가지 못한다는 것.[18] 다만 혜택은 보수적인 상층부로 인해 업계 3위가 된 삼양식품이 아닌 탁월한 이미지 메이킹과 저가전략으로 업계 2위로 올라선 오뚜기가 보았다.[19] 실제로 삼양식품을 제외한 나머지는 시위대의 넷상 결집장소였던 다음 아고라가 있었던 Daum이나 이들에게 우호적인 한경오, 미디어오늘, MBC 등의 언론사인데 삼양식품이 끼어 있는 이유는 안티조중동 운동과 관련되어 있다. 조선일보가 삼양라면에 이물질이 있다고 저격 보도를 하자 삼양식품이 조중동의 희생양으로 보고 시위의 상징으로 삼은 것이다. #[20] 실제로 조중동은 광고손실이 110억에 달할 정도로 큰 피해를 입었다. #[21] 삼양식품이 조중동에 광고 거부를 했다는 설이 돌았지만 사실무근이다. #[22] 당시엔 대형 커뮤니티뿐만 아니라 이글루스, 네이버 블로그 같은 블로그성 SNS도 여론의 각축장이었기 때문에 이런 피해가 가장 심했다. 전자는 마녀사냥과 신상털이 피해가 심하다 못해 여론이 뒤집어지자 이글루스 내 쇠고기 촛불 지지자가 가짜 뉴스 신봉자로 매도되어 우경화되었다.[23] 그 사회적 합의가 각 나라 별로 조금씩 다르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환경규제, 식품규제 등에 있어서 기준치가 각 나라마다 다르게 나타나게 된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에서는 널리 쓰였던 은나노 세탁기는 미국에서는 인체에 대한 유해성을 아직 알 수 없다며 아예 수입금지가 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