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6-01-06 21:26:19

문용

파일:건국포장 약장.png
건국포장 수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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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colbgcolor=#0047a0> 초명 문창석(文昌錫)
자 / 호 사헌(士憲) / 겸산(謙山)
본관 남평 문씨[1]
출생 1861년 8월 27일
경상도 삼가현 대평면 오동동
(現 경상남도 합천군 대병면 성리 3구)[2]
사망 1926년 3월 15일[3]
묘소 경상남도 합천군 대병면 성리 3구 오동골
상훈 건국포장

1. 개요2. 생애

1. 개요

대한민국독립유공자. 1996년 건국포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문용은 1861년 8월 27일 경상도 삼가현 대평면 오동동(현 경상남도 합천군 대병면 성리 3구)에서 아버지 문재화(文在和, 1841 ~ 1907. 4. 12.)와 어머니 탐진 안씨(耽津 安氏, 1838 ~ 1911. 12. 2.)[4] 사이의 4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이후 자식 없이 요절한 큰아버지 문재욱(文在郁, 1838 ~ 1860. 6. 5.)에 양자로 입적되었다. 이후 인천 이씨 이규석(李奎錫)의 딸과 혼인하여 아들 1명[5]을 두었다. 일찍이 허유(許愈)와 곽종석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그는 1919년 3월 파리 강화 회의에 한국독립을 호소하기 위하여 김복한을 중심으로 한 충청도 유림과 김창숙 등의 영남유림 137명이 대표가 되어 작성한 독립청원서에 영남유림의 한 사람으로서 서명하였다. 이들은 '파리장서'를 통해 일제가 자행한 명성황후·고종황제의 살해와 한국 주권의 찬탈과정을 폭로하면서 한국독립의 정당성과 당위성을 주장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 일은 1919년 4월 12일 경상북도 성주군의 만세운동과 관련하여 당시 독립청원서 서명자의 한 사람이었던 송회근이 붙잡히는 바람에 발각되었다. 이 때문에 문용도 일경에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다만, 일제는 이들 유림이 한국인의 존경을 받는 인물들이었으므로 민족적 감정이 더욱 번질 것을 우려한 나머지 크게 부각하지 않았다.

출옥 후 옥고의 여독으로 고통을 겪던 중 1926년 3월 15일 사망하였다.

1996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

저서로 『겸산문집(謙山文集)』이 있다.


[1] 판도판서공파-오동 문중 26세 金변 항렬.[2] 인근의 역평리·회양리와 함께 남평 문씨 집성촌이다.[3] 음력 2월 2일.[4] 안처정(安處貞)의 딸이다.[5] 문존호(文存浩, 초명 문정호文正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