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4 12:45:03

봉중근/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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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마추어 시절

파일:YBMe0kL.jpg
신일고시절 타자 봉중근.
나는 영원히 내가 베이브 루스를 잡았다고 믿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최소한 스탠 뮤지얼을 잡았다고 믿을 것이다.
빅리그 스카우트 경력 36년 동안 나는 그런 재능을 가진 선수를 본 적이 없다.
빌 클라크 당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스카우터의 평가
신일고 시절 투수로서 뿐 아니라 타자로도 대단한 재능을 보여주었던 선수다.

1997년 캐나다 몽튼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에서 4게임 연속 홈런, 타율 5할을 기록하며 최우수선수가 되었다. 심지어 대한민국 대표팀은 5위였다.

같은해 1997년 52회 청룡기 전국고교야구 선수권대회에서는 배명고와의 결승에서의 4타수 4안타를 포함 대회 타율 .688이라는 후덜덜한 기록을 보여주며 MVP, 타격, 타점왕을 휩쓸기도 했다. 1997년 신일고의 황금 클린업 트리오[1] 봉중근-안치용-김광삼 그리고 1번타자 현재윤[2]은 국내 4개 대회에서 신일고의 3관왕을 이끌었고 세명은 최우수타자, 최우수선수, 최우수투수, 대회MVP 등 각종 상을 휩쓸었다.

이 놀라운 활약들 중 특히 청소년 국대에서 활약을 눈여겨 본 LA 다저스에서 박찬호와 친분이 있었던 중앙일보 이태일 기자를 통해 80만 달러의 입단 제안을 했고, 곧 이어 애틀란타 브레이브스에서도 더 많은 액수인 120만 달러[3]의 입단 제안을 해왔다. 이때의 봉중근은 자신이 LA 다저스에 입단해서 많은 활약을 해도 박찬호의 그늘에 가려 제2의 코리안으로 불릴 것이고 애틀란타 브레이브스는 당시 그렉 매덕스, 톰 글래빈, 존 스몰츠가 있던 투수의 왕국이었기에 애틀란타 브레이브스를 선택한다.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무대를 밟게 된 봉중근은 당시 1997년 고2의 어린 고등학생이었다.

2. 애틀란타 브레이브스

원래 애틀란타에서는 타자로 키울 생각이었으나[4] 좌완에 148km/h를 찍는 것을 보고 투수로 전향시켰다.[5] 이와 관련 봉중근 선수 본인이 인터뷰 및 자신의 자서전에 기록한 내용을 토대로 설명하자면, 훈련장에 간 첫날 타격연습을 시작했는데, 자신의 스윙이 잘못된 것인지 계속해서 배트가 부러졌다고 한다. 그 당시 알루미늄 배트를 쓰던 고교 무대에서 바로 미국으로 왔기 때문에 나무 배트에 익숙하지 않았고 게다가 그날따라 투수코치가 던져주는 공들의 구질이 더러웠다고 한다. 4, 5자루의 배트가 전부 부러진 상태에서 여분의 배트도 없던 중에 좌완인 걸 보고 투수쪽 연습에 합류하라고 얘기하였고, 그때부터 투수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한다. 본인은 당시 어려서 다른 의견을 내고 말고 할 여지가 없었다고 하는데, 훗날 은퇴 전 팀에서 허락한다면 딱 1년만이라도 타자로 전향해보고 싶다고 했다.

2002년 원래 선발 투수였던 제이슨 마퀴의 부상으로 인한 대타로 메이저리그로 콜업됐다. 2002년 4월 23일 터너 필드에서 열린 애리조나전전 선발투수로 메이저리그 첫 경기 등판. 애리조나의 에이스 커트 실링과 맞대결을 펼쳤으나 6이닝 5실점을 기록했다. 1회초 2사 만루에서 치퍼 존스가 좌익수 수비도중 라이트에 타구를 잃어버려서 3타점 2루타로 만들어줬다. 관련 기사[6] 경기 후 외야로 전업한 첫 해라 잘 못했다. 스타트가 늦었다고 사정 설명과 함께 사과했다고 한다. 이날 호투를 이어가던 커트 실링을 상대로 좌측에 큼지막한 타구를 만들어내면서 관중의 박수를 받기도 했지만 경기 후 다시 마이너리그로 내려갔다.

3. 신시내티 레즈

파일:신시네티 봉중근.jpg

이후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를 오가며 2004년 시즌 시작되기 직전 신시내티 레즈로 트레이드되었다. 2004년 6월 21일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원정경기에 등판, 6이닝 무실점으로 메이저리그 처음이자 마지막 선발승을 거둔다.[7] 참고로 봉중근의 메이저리그 첫 승은 2003년 7월 6일 몬트리올 엑스포스와의 경기에서 거둔 구원승이었다. 이후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를 오가다가 2005년 팔꿈치 부상으로 한 해를 통째로 쉬고 2006 WBC 이후 LG 트윈스에 입단한다.

4. LG 트윈스

LG 트윈스 No.51
봉중근
奉重根 | Bong Jung-Keun

11시즌 321경기 899⅓이닝 55승 46패 109세이브 2홀드 ERA 3.41 WHIP 1.32 WAR 23.63

4.1. 2007 시즌

파일:47번 봉중근.jpg
당시 47번을 달던 시절. 팀에서 얼마나 기대가 컸는지 알 수 있는 장면이다.[8]

2007년에 LG 트윈스에서 수준급의 선발을 기대했으나 초반에 반짝하고 후반엔 두들겨 맞았다. 4월에는 2승에 1점대 ERA로 호투했으나, 5월 4일 두산과의 경기에서 5회말 안경현에게 머리로 향하는 투구를 하였고 이에 화난 안경현이 달려들자 난투극을 벌였다. 그리고 벤치클리어링이 일어났으며 심판진에 의해 퇴장당한다. 이때부터 봉중근은 4경기 연속으로 5이닝도 채우지 못하는 부진으로 ERA가 1점대에서 5점대까지 폭풍 상승하면서 결국 6월 들어 2군행 통보를 받게 됐다. 당시 패스트볼 구속은 140이 겨우 나오는 수준으로 구위가 받혀주지 못해 난타당하는 경우가 잦았다.

Don't Try this at Home
파일:eMMpvJN.gif
[9]

여담으로 봉중근의 말에 따르면 고의로 바디드랍을 한 것이 아니라, 그냥 주먹을 피하려고 몸을 숙였을 뿐인데, 안경현의 몸이 쏠리며 엎어졌고, 그 상황에서 몸을 피하려고 일어나다보니 바디드랍을 한 것처럼 된 것이라고 한다. 심지어는 글러브를 벗으려고 했는데 하필이면 당시 봉중근이 쓰던 글러브가 조이는 글러브라 쉽게 벗기 힘들었다고.[10] 덤으로 저 백 바디 드랍에 쓰러진 안경현은 다시 일어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봉중근을 붙잡고 쓰러트려, 얼떨결에 백 바디 드랍-롤업 반격이라는 프로레슬링에서나 볼 법한 기술들이 시전되는 진풍경이 연출되었다.

또한 2022년 8월, 스톡킹에 나온 또 다른 당사자 안경현의 말에 의하면, 봉중근에게 주먹을 날리면서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드는 와중, 봉중근이 피하고 자신이 백 바디 드랍을 당했을 때 속으로 '야, 이거 엿 됐다'라는 생각을 했다고 하며, 그 뒤에 홍성흔하고 김동주가 놀렸다고 한다.[11] 그러면서 안경현이 말하길 조인성이 자신을 안 말리고 공을 주으러 갔다고 하면서 당시 벤클의 최대 지분은 조인성이 갖고 있다고 평했다.

안경현과 심수창에 의하면 봉중근보다 1년 늦게 한국에 들어온 김선우도 초구는 직구로 던졌다가 타자들에게 두들겨 맞았다고 한다. 이는 당시 메이저리그와 KBO의 레벨 차이, 그리고 당시 메이저리그 내에서 초구를 변화구로 던지면 비겁한 겁쟁이라고 놀림을 받는 일이 많다 보니 그러한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실제로 봉중근 역시 당시에는 이런 영향이 많이 남아있던 것으로 보인다.

20분짜리 풀버전을 보면, 당시 기묘한 불운, 답이 없는 LG의 수비, 그리고 아직 그런 LG를 감당할 수준이 못된 봉중근의 멘탈을 다 볼수 있다.[12]

4.2. 2008 시즌

2007년도 기대치 이하의 성적으로 인해 연봉이 1억이나 깎이는 폭풍세일을 당하기도 했으나, 2008시즌에 들어와서 LG 마운드의 당당한 에이스가 되었다. 새로 얻은 별명은 봉타나… 하지만 팀 성적이 팀 성적인지라 8이닝을 무실점으로 던지고 내려가도 9회에 역전당하는 일은 예사였고, 9이닝 1실점을 해도 타선이 1점을 못뽑아 그대로 완투패를 당하는 일도 간간히 있었다.# 이런 가슴 아픈 순간을 자주 겪어서 2007년의 윤석민을 보는 듯 하였다는 평이 다수 존재한다. 그리하여 평균자책점 2.66의 뛰어난 호투에도 불구하고 11승으로 두자리 승수를 겨우 넘긴데다 8패나 당하는 바람에 2008년 윤석민상의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그러한 상황 속에 아래 짤방이 마리오의 노래 'Good bye'의 뒷 부분에 가사 'Don't Cry'가 반복되는 부분이 브금으로 깔려 돌아다니며 봉크라이라는 별명이 붙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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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30일 문학에서 열린 디펜딩 챔피언 SK와의 개막 시리즈 2차전에서 김광현과의 맞대결로 시즌 첫 등판에 나섰다. 여기서 7.2이닝 4피안타(1피홈런) 3BB 7K 1실점으로 호투해 시즌 첫 승과 팀의 첫 승을 모두 책임졌다. 1실점은 박재홍에게 내준 솔로홈런이며 김광현과의 맞대결 3전 전승 기록도 이어갔다. (1승)

4월 4일 롯데와의 잠실 경기에서 손민한과 맞대결했는데 7.1이닝 6피안타(2피홈런) 3볼넷 7K 4실점(3자책)으로 2경기 연속 QS+ 했으나 1비자책점이 8회에 나온 자신의 에러로 인한 결승점으로 패전투수가 됐다. (1승 1패) 팀도 4연패 수렁에 빠졌다.

4월 10일 목동 히어로즈전에서 이현승과 맞대결했는데 두 번의 실점 이닝이 모두 실책에서 비롯되어 5.2이닝 6피안타 4볼넷 1사구 6K 5실점(비자책점)으로 패전투수가 되었다. ERA는 2.40에서 1.74로 낮아졌다. (1승 2패)

4월 15일 잠실 KIA전에서 메이저리그 출신 투수 호세 리마와의 맞대결이었는데 5.2이닝 8피안타(1피홈런) 5K 4실점으로 부진했으나 타선이 리마를 탈탈 털어버리면서 승리투수 요건은 갖췄다. 그러나 4점차 리드를 9회에 한꺼번에 날리면서 시즌 2승이 날라가버렸다. ERA는 2.77로 상승했다.

4월 20일 대구 삼성전에서 6.2이닝 8피안타 2볼넷 1K 3실점으로 무난한 투구를 펼치며 시즌 2승(2패)째를 따냈다. 3회말 박석민을 스트레이트 볼넷으로 내보내고 심광호와 김재걸에게 연속 안타를 맞으며 무사 만루의 위기가 있었으나 박한이의 좌중간을 가르는 타구를 이대형이 다이빙 캐치하면서 1실점으로 막았다. 그리고 1사 만루에서 양준혁을 유격수 병살타로 처리하며 대량실점을 모면했다. LG는 삼성에 위닝시리즈를 거두며 공동 5위로 올라갔다. ERA는 3.03으로 상승했다. (2승2패)

4월 26일 잠실 히어로즈전에서 8이닝 3피안타 4볼넷 1사구 2K 1실점으로 호투했지만 황두성이 나선 히어로즈를 상대로 득점 지원이 없어 그대로 패전투수가 되었다. 봉크라이 1실점 해서 죄송합니다. ERA는 2.66으로 낮추었으나 승보다 패가 더 많아졌다. (2승3패)

5월 1일 사직 롯데전에서 6⅓이닝 동안 6피안타 4볼넷 5실점을 기록, 시즌 4패째를 당했다. 손민한과의 맞대결에서 또 밀린 봉중근은 롯데전 3연패를 기록했다. ERA는 3.26으로 상승했다. (2승4패)

5월 6일 잠실 SK전에서 팀의 4연패를 끊기 위해 등판했으나 5.1이닝 8피안타(1피홈런) 5볼넷 1사구 2K 7실점으로 시즌 최다 실점을 기록하며 패전투수가 되었다. 통산 SK전 3연승 끝에 첫 패배를 당했고, 개인 3연패 팀 5연패와 함께 ERA는 4.13으로 올라갔다. 데뷔 시즌인 지난해에 이어 4월에 호투하고 5월부터 부진하는듯 했다. (2승5패)

5월 11일 대전 한화전에서 8.1이닝 4피안타 3볼넷 4탈삼진 1실점의 완벽한 호투를 펼쳐 시즌 3승째를 따냈고 9연패 수렁에 빠진 팀을 구해냈다. 5회까지 득점지원 없이 1-0으로 지고 있었으나 6회초 신일고 선배 안치용이 결승 투런포로 LG 킬러 류현진을 무너뜨렸다. ERA는 3.71로 3점대로 떨어트리는데 성공했다. (3승5패)

5월 17일 광주 KIA전에서 7.1이닝 4피안타 2볼넷 7K에 시즌 첫 무실점 호투로 KIA의 4연승을 저지하며 시즌 4승째를 올렸다. 지난 한화전에 이어 15.2이닝 연속 무실점을 이어갔다. ERA는 3.71에서 3.31로 낮췄다. 1회말에만 안타 2개, 볼넷 1개를 내주며 위기를 맞이했을 뿐 그 이후에는 KIA 타선을 확실히 눌렀다. 5회말 1사 이후에는 연속 5명의 타자를 연속 삼진으로 잡기도 했다. 완봉승까지 노려볼 수 있었지만 투구수가 123개나 되면서 일찍 내려와야 했다. (4승5패)

5월 23일 잠실 KIA전에서 4회까지 무실점을 기록하고 있다가 5회에 2사에서 김원섭에게 중전 안타를 내준 뒤 왼쪽 종아리 근육통으로 인해 김민기로 교체되었다. 김민기가 봉중근이 남긴 주자 한 명을 분식하면서 선취점을 내줘 4.2이닝 1실점이 되어 패전 위기에 몰렸으나 곧바로 타선이 5회에 4득점 빅이닝을 만들어내며 N/D가 되었다. ERA는 3.22로 낮췄다.

5월 28일 두산전에서 6.1이닝 6피안타 7K 5실점(3자책)으로 퀄리티 스타트를 기록하였고 팀 타선의 득점지원이 뒷받침해주면서 개인 3연승으로 시즌 5승째를 올렸다. 이 활약으로 팀은 3연패와 두산전 4연패를 끊었고 시즌 20승째를 달성했으며 두산의 최근 4연승 및 원정 10연승이 중단되었다. ERA는 3.30으로 소폭 상승했다. (5승5패)

6월 3일 잠실 삼성전에서 7회까지 113구를 던지며 5피안타 1볼넷 7K 1실점으로 4연승과 함께 시즌 6승째를 올렸다. 단 한 명의 선두타자도 출루시키지 않았고 시즌 65개의 탈삼진으로 김광현을 제치고 탈삼진 선두에 올랐다. 이날 삼성 선발은 봉중근과 신시내티 트리플 A에서 한솥밥을 먹은 바 있는, 훗날 전설적 먹튀로 회자되는 톰 션이었다. ERA는 3.14로 낮췄다. (6승5패)

6월 10일 문학 SK전에서 6.2이닝 7피안타 2사사구 7K 2실점으로 호투하고 승리 요건을 갖췄으나 9회에 마무리 정재복이 무너지면서 N/D가 됐다. ERA는 3.11

6월 15일 잠실 한화전에서 5.2이닝 6피안타 6볼넷 3K 3실점으로 다소 좋지 않았으나 승리요건은 갖췄는데 정재복이 8회에 무너지면서 N/D를 기록했으며 팀은 졌다. ERA는 3.20이 되었다.

6월 20일 잠실 롯데전에서 8이닝 동안 127구를 던지며 6피안타 2볼넷 8K 1실점으로 시즌 3번째로 8이닝 투구를 했음에도 타선이 장원준에게 꽁꽁 묶여 득점 지원이 1점밖에 없어 3경기 연속으로 승패를 기록하지 못했다. 팀은 연장전 끝에 4:1로 졌고 5연패를 당했다. ERA는 3.05가 되었다. 이날 리그에서 가장 먼저 100이닝을 넘기며 106.1이닝을 소화했다.

LG가 9연패를 당하고 있던 6월 26일 대구 삼성전에서 5이닝 4피안타 4볼넷 2K 1실점으로 호투했고 타선이 무려 20점을 내면서 시즌 7승째를 올렸다. 봉중근은 개인 5연승과 함께 시즌 삼성전 3전 전승 행진을 이어갔다. 공교롭게도 지난 5월 9연패 탈출에 이어 이번에도 9연패 탈출에는 봉중근이 있었다. 이날 신일고 선배 안치용이 사이클링 히트를 쳤다. ERA는 2.99로 2점대에 진입했다. (7승5패)

7월 3일 잠실 SK전에서 7이닝 3피안타 5사사구 1실점으로 호투했으나 타선이 송은범의 호투에 막혀 패전 위기에 몰렸다. 다행히 타선이 8회와 9회에 집중력을 보여 봉중근의 패전을 지웠고, 팀은 연장전에서 안치용의 끝내기 안타로 승리를 거뒀다. ERA는 2.89로 더 낮아졌다.

7월 8일 두산전에서 8회까지 1피안타 무실점으로 완벽한 투구를 하면서 완봉승을 눈앞에 뒀으나 9회에 집중타를 맞으면서 2실점해 끝내 9이닝 5피안타 2볼넷 8K 2실점으로 N/D를 기록하고 말았다. 팀은 연장 가서 졌다. ERA는 2.83으로 더 낮아졌고 리그에서 가장 먼저 100K를 달성한 투수가 되었다.

7월 13일 잠실 삼성전에서 7.2이닝 7피안타 사사구 1개 탈삼진 3개에 무실점을 기록하며 개인 6연승과 개인 삼성전 4연승과 시즌 8승째를 올렸고 팀은 2008 시즌 처음이자 유일한 3연전 스윕에 성공했다. ERA는 2.67로 낮췄다. (8승5패)

7월 22일 잠실 히어로즈전에서 이택근에게 3회 쓰리런을 맞았고 8.2이닝 9피안타 4실점으로 이닝은 잘 먹었으나 팀 타선이 1점도 내지 못하면서 개인 6연승을 마감하고 패전투수가 됐다. 히어로즈와의 3경기에서 22.1이닝 5자책 ERA 2.01을 기록하고도 모두 패전투수가 되는 불운을 이어갔다. ERA는 2.76으로 소폭 올라갔다. (8승6패)

7월 27일 문학 SK전에서 4이닝 6실점으로 시즌 최소이닝 소화에 그치면서 패전투수가 되었다. 1회에만 3점을 헌납한 뒤 2회에 정근우에게 솔로홈런을 맞았고 4회에도 2실점을 내줬다. ERA 2.93으로 전반기를 마무리했다. (8승7패)

올림픽브레이크 이후 후반기 첫 경기는 8월 29일 두산전이었다. 그러나 영 제구가 잡히지 않으면서 고전했고 홍성흔과 김동주에게 1회 2타점 3루타와 4회 투런홈런으로 장타를 얻어맞으며 4이닝 4실점으로 패전투수가 되었다. ERA는 3.09으로 두 달여 만에 다시 3점대로 올라갔다. (8승8패)

9월 3일 사직 롯데전에 등판하여 롯데 자이언츠의 12연승 가도를 막았다. 6⅔이닝 5피안타 3볼넷 5K 1실점으로 호투하여 롯데 자이언츠의 폭발적인 화선을 잠재웠다. 덕분에 12연승을 노리던 롯데 자이언츠에게 고춧가루포를 제대로 먹였다. 만약 9월 3일에 LG가 승리하지 못했더라면 롯데는 19연승까지 가능했기에 롯데 팬들에게 원망의 대상이 되었다. ERA는 2.96으로 다시 2점대에 진입했다. (9승8패)

9월 9일 잠실 한화전에서 7.1이닝 1피안타 8K 무실점으로 호투하며 국내무대 2년 만에 시즌 10승 투수가 되었다. 다만 사사구 5개는 아쉬운 점이다. ERA는 2.82로 줄어들었다. (10승8패)

9월 21일 잠실 삼성전에서 8이닝 8피안타 1볼넷 3실점으로 좋은 피칭을 했지만 패전위기에 몰렸다. 8회말 동점에 성공하며 N/D가 되었지만 팀은 연장 승부 끝에 졌다. ERA는 2.85로 소폭 올랐다.

9월 27일 광주 KIA전에 등판해 6이닝 2피안타 1볼넷 5K로 호투했으나 타선이 KIA 선발 양현종으로부터 단 1점도 뽑지 못하며 N/D가 되었고 팀은 연장전 끝에 졌다. ERA는 2.76으로 낮췄다.

10월 4일 잠실에서 롯데를 상대로 가진 시즌 최종전에 선발등판해 6.2이닝 4피안타 6K 무실점으로 호투했고 시즌 11승8패 ERA 2.66으로 마쳤다.

2008 베이징 올림픽 대표팀에 차출되어 미국전과 대만전 2경기 선발 등판했지만 각각 3실점, 5실점하였으며 ERA 8.31을 기록하였고 한기주에 이어 두번째로 나쁜 성적을 기록했다.[13]

4.3. 2009 시즌

2009년 초엔 이런 투수를 마무리로 기용한단 기사가 나와 논란이 일었다. 몇년 앞을 내다본것이냐(참조) 야구팬들은 김재박 감독이 또 사고쳤다면서 맹비난하였다.

하지만 WBC 이후 선발로 기용하기로 다시 방침을 변경했다. (참조)

4월 4일 개막전 대구 삼성전 윤성환과의 맞대결에서 5이닝 동안 8피안타 3사사구(2볼넷 1사구)를 허용했으나 2실점(1자책)으로 잘 막았다. 그러나 타선 지원이 부족해 패전투수가 됐다. 삼성전 4연승을 마감했다.

4월 9일 잠실 롯데전 장원준과의 좌완 맞대결에서 7이닝 5피안타 2볼넷 1실점으로 호투했고 타선 지원이 뒤따르면서 시즌 첫 승리를 거뒀다. 유일한 1실점은 3회초 김주찬에게 허용한 선제 솔로홈런이다.

2008년 4월 15일, 잠실 KIA전에서 선발 투수로 등판해서, 타선이 무려 8점씩이나 내준 덕에 손쉽게 승리하나 했으나, 우규민정찬헌의 불질로 날려먹었다. 그리고, 정확히 1년 후인 09년 4월 15일, 문학 SK전에서 먼저 3실점하긴 했으나 타선이 4점을 내 준 덕에 승리투수가 될 뻔 했으나, 이번에도 우규민의 부진으로 무산. 게다가 09년 4월 15일 새벽에 봉중근 딸이 태어났고, 봉중근은 '딸을 위해 승리투수가 되겠다'라며 등판했었다. 이때 잠시 "딸아, 네가 태어나던 날 아빠는 선발투수였단다. 아빠가 내려가기 전까진 이기고 있었지. 그런데 규민이 삼촌이..." 라는 드립이 유행했었다.

4월 21일 잠실 삼성전에서 6이닝 8피안타 5실점(4자책)으로 좋지 않았고 삼성 상대로만 시즌 2번째 패배를 당했다.

시리즈 스윕이 걸린 4월 26일 사직 롯데전에서 6이닝 3실점(1자책)을 기록했으나 자신의 견제구 실책이 빌미가 된 비자책점 2점과 부족한 득점지원으로 인해 시즌 3패째를 당했다. 선발 장원준의 호투를 앞세운 최하위 롯데는 6연패에서 벗어났다. 봉중근은 4월 2.81의 좋은 ERA에도 불구하고 1승밖에 챙기지 못했다.

5월 1일 잠실 히어로즈전에서 8이닝을 소화하며 5피안타(1피홈런) 1사사구 2실점으로 호투해 시즌 2승째를 올렸다. 2008 시즌 좋은 투구내용에도 히어로즈에 3패를 당했던 봉중근은 통산 첫 히어로즈전 승리를 거뒀다. 봉중근이 마운드에 있는 통안 LG는 타선이 9점째를 뽑아 9-2로 리드했음에도 9회초 불펜이 3실점하며 불안감을 안겼다.

5월 7일 시리즈 스윕 및 6연승 여부가 걸린 두산전에서 MLB 출신 김선우와 맞대결했고 봉중근은 두 경기 연속 8이닝을 소화하며 9탈삼진과 함께 2피안타 1볼넷 1실점의 완벽투로 시즌 3승째를 올렸다. 4회까지 사사구 1개만 내주는 노히트 피칭을 하며 두산 타자들을 요리했다. 2안타를 모두 김동주에게 5회 2루타, 7회 솔로홈런으로 내주며 김동주 상대로 약한 모습을 이어갔다.

5월 13일 잠실 SK전 고효준과의 좌완 맞대결에서 8이닝 7피안타 1볼넷 7탈삼진 2실점(1자책)으로 3경기 연속 8이닝을 소화했으나 전날 무박 2일의 대혈투를 펼치며 지칠대로 지친 타선이 달랑 1점만을 지원해주면서 패전투수가 됐다. 8이닝 2실점(1자책)해서 죄송합니다 ERA 2.25로 3승 4패다.

5월 19일 광주 KIA전에서 경기 전부터 감기 몸살로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탓인지 시즌 최소이닝인 3이닝 5피안타 3볼넷 5실점의 최악투로 무너졌다. 타선도 KIA 하위 선발 곽정철과 불펜을 전혀 공략하지 못하면서 무득점해그대로 시즌 5패째를 기록했다.

5월 24일 잠실 한화전에서 9이닝 무사사구 3피안타 1실점[14]으로 시즌 최다이닝 및 국내무대 최다 이닝 타이기록을 세웠으나 타선이 1점만을 지원하는데 그쳐 N/D가 됐고 경기는 무승부로 끝났다. 봉크라이

5월 29일 잠실 KIA전에서 국내 에이스 윤석민과 맞대결을 펼쳤는데 3회초 먼저 3실점한 뒤 타선이 3:2로 쫓아간 8회초 고비를 넘기지 못하면서 7.1이닝 8피안타 5사사구 7실점의 아쉬운 기록을 남기며 패전투수가 됐다. 시즌 6패째. 2.65였던 시즌 ERA는 3.23으로 불어났다. KIA전에서만 2패에 ERA 10.45로 좋지 않은 상성이다.

2009년 6월 4일 한화 이글스와의 대결에서 6이닝동안 9개의 탈삼진을 잡아냈지만 타선의 도움을 받지 못해 패전투수가 됐다. 이날 한화는 류현진이 완봉승을 거뒀다. 지난 이틀간 10득점씩 뽑고도 1점차로 진 LG였는데 정작 봉중근이 등판한 날에는 침묵했다. 이날까지 시즌 3승7패에 불과했다. 등판 시 팀 성적도 3승2무7패. 봉중근이 승리투수 되지 못하면 이기지 못한다.

6월 10일 잠실 두산전에서 8이닝 5피안타 2사사구 7탈삼진 무실점으로 호투하며 5월 7일 두산전 8이닝 1실점 승리 이후 34일 만에 시즌 4승째를 거뒀다. 봉중근 등판시 유독 안 터지던 타선이 이날은 8점을 지원해줬다. 이날 4회를 제외하고 매 이닝 주자를 내보냈지만 4차례의 병살타, 7탈삼진 등으로 두산 타선을 제압했다.

6월 16일 류현진과의 리턴매치였던 대전 한화전에서 7이닝 4피안타 5사사구 4탈삼진 1실점으로 호투하면서 시즌 5승째를 올렸다. 이날 류현진은 6이닝 8피안타(1피홈런) 3사사구 2탈삼진 4실점으로 패전투수가 되면서 12일 전과는 다른 결과가 나왔다. 류현진과의 맞대결 결과는 2승 2패로 동률이 됐다. 5-1로 앞선 상태에서 8회말 우규민이 올라오자마자 장작을 쌓고 1사 만루에 2실점까지 하면서 5-3으로 쫓겨 또다시 호투하고도 승리가 없어질 뻔했다.

6월 21일 잠실에서 열린 삼성과의 더블헤더 2차전에서는 7이닝 1실점으로 호투해 시즌 6승째를 올렸다. 봉중근과 삼성 선발 윤성환의 호투로 투수전으로 전개된 이 경기에서 7회말 박용택이 오승환을 상대로 만루홈런을 터뜨리는 등 6득점하면서 LG는 4연승과 함께 삼성을 스윕하고 주간 5승 1패로 5위까지 올라섰다. 또 봉중근은 리그에서 처음으로 시즌 100이닝을 돌파했다.

6월 27일 문학 SK전에서 김광현과의 맞대결을 했는데 7이닝 4피안타 3실점을 하고도 패전투수가 됐다. 4회에 사사구 3개로 급격히 흔들리며 정상호에게 희생플라이, 모창민에게 2사 2,3루에서 배트가 부러지는 2타점 적시타로 3실점한게 아쉬웠다. 김광현과의 통산 맞대결 3경기에서 전승 중이었으나 4경기 만에 패전을 당했다. 김광현은 이날 완봉에 성공할 뻔하다가 9회에 실점하면서 8.2이닝 1실점을 기록하며 승리투수가 됐다.

7월 3일 잠실 두산전에서 8이닝 1실점의 호투로 어김없이 두산에 강한 모습을 이어가며 시즌 7승째를 올렸다. 두산과의 3경기 모두 8이닝 이상 소화하면서 ERA 0.75를 기록했고 모두 승리투수를 거뒀다. 봉중근은 ERA 2.66으로 SK의 송은범(ERA 2.68)을 제치고 리그 ERA 선두에 올랐다. 이날 LG 타선은 대량 득점으로 봉중근을 도왔다.

7월 9일 광주 KIA전에 선발 등판 예정이었으나 경기 개시 전 우천취소되면서 7월 10일 잠실 한화전에 선발투수로 나섰다. 이 경기에서 봉중근은 1회에 이범호김태균에게 백투백 홈런을 허용하며 2실점했으나 7회까지 133구를 투구하며 3실점을 기록하고 마운드를 내려왔다. 마운드에서 내려온 시점에서 패전 위기에 몰려있다가 7회말에 LG 타선이 동점을 기록하면서 승패를 기록하지는 않았다.

7월 16일 잠실 SK전에서 1회에만 52구 타자일순을 허용하며 6실점하는 낯선 모습 끝에 2이닝 7실점으로 물러나며 패전투수가 됐다. 1회 2-0인 2사 1,3루 상황에서 정상호의 평범한 유격수 땅볼을 권용관이 굳이 1루가 아닌 선행주자 2루에 던지려다가 야수선택이 된 것과 2회 2사 후 SK 벤치의 투구동작 지적 이후 급격히 흔들리며 추가 1실점한 것이 아쉬웠다. 봉중근의 7실점은 한 경기 최다실점 타이 기록이고 2이닝은 시즌 최소이닝 소화다.[15] 이 경기 하나로 봉중근의 ERA는 2.73에서 3.18로 크게 올라갔다.

7월 21일 광주 KIA전에서 7이닝 6피안타 3볼넷 1실점의 호투로 KIA전 2패 ERA 10.45의 약세와 지난 등판 부진을 극복하고 시즌 8승째를 따냈다. 1-1로 맞선 7회초에 박용택이 결승 솔로홈런을 기록하면서 승리요건을 갖출 수 있었다. LG는 2009 시즌 KIA 타이거즈를 상대로 거둔 2승 1무 16패라는 굴욕적인 성적을 기록했는데 그 2승 중 중 1승이다. KIA 타이거즈/2009년, LG 트윈스/2009년 참고. 참고로 이 해 LG 트윈스승점자판기로 써먹은 KIA 타이거즈2009년 페넌트 레이스를 우승하고 2009년 한국시리즈에 직행해 7차전 9회말 나지완채병용을 상대로 끝내기(야구) 홈런을 터뜨려 우승 트로피를 거머쥔다.

봉중근은 전반기 20경기에 나와 134.1이닝 소화로 가장 많은 이닝을 소화했다.

올스타브레이크 이후 왼쪽 팔꿈치에 뻐근한 느낌으로 인해 등판일정이 뒤로 밀렸다.

부진한 팀내 사정 때문에 선발과 마무리 보직을 오가며 컨디션까지 흔들렸던 윤석민과 함께 2009년 윤석민상 타이틀을 경합 중이었지만 윤석민이 폭발한 팀타선을 배경으로 호투로 승수를 쌓고있던데 반해 봉중근은 여전히. 다만 류현진이라는 변수가 등장했다. 참고로 류현진과 함께 다패 공동 2위였다. 참고로 다패 1위는 김혁민. 하지만 평균자책점의 차이가 넘사벽이다.

2009년 8월경 팔꿈치 통증으로 인한 컨디션 난조라는 LG트윈스 최악의 악재가 벌어지고 말았다. 근데 자고 났더니 통증이 사라졌다고. 하지만 8월 27일에 결국 시즌 아웃 기사가 나왔다.

10월 25일 일요일에 같은 팀의 박용택과 함께 현대백화점 신촌점에서 사인회를 가졌다.

결혼한 아내와의 이야기가 특이한 듯. '날 때린 여자는 네가 처음이야'식 발언부터해서 부모님에게도 맞은적 없는데등등의 발언을 했다고. 기사를 한번 보자

2009년에 랩퍼 이비아와 함께 사랑해요 LG 힙합 버전을 불렀고, 수준급의 랩을 했다. 이곳에서 들어보자

팀의 유일무이한 에이스였는데...연봉 동결. 이쯤 되면 이 사람이 선수인지 자원봉사자인지 구분이 안 갈 지경.

4.4. 2010 시즌

2월 25일, 훈련을 하던 중 햄스트링 부상을 당했다. 최훈의 GM카툰에 의하면 이곳 부상은 완치가 쉽지 않다고 하는데...

4월 4일 경기에서 3이닝 동안 많은 실점을 하고 강판 당한 직후에 몸 상태도 안 좋은 데다가 에이스 답지 못한 태도의 경기를 했다는 이유로 감독과 트러블이 생겨서 2군행이 결정되었다. 그런데 감독과의 트러블이 생긴 과정에서 봉중근이 부인에게 감독에게 들은 말을 옮겼고 위의 이야기에서도 봤듯이 기가 센 것으로 보이는 부인이 그 말을 듣고 열이 뻗쳐서 싸이에 감독을 욕하는 심경문을 올렸다. (링크바람) 이형종의 싸이 감독 맞짱신청 사건이 있은지 1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서 터진 싸이홈피 사건이었다. 이로 인해 봉중근과 박 감독과 봉중근 부인에 대해 보는 시점에 따라서 각자 다르게 까였다.

그러나 그 이후로 서서히 페이스를 살려서 언제 그랬냐는 듯이 팀의 에이스로 자리매김중. 마운드가 불안하면 언제든지 구원투수로 나갈 수 있다고 밝히는 등 팀 케미스트리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2010년 8월 25일까지 10승(리그 9위) 8패, 평균자책점 3.31(리그 5위), 탈삼진 112개(리그 5위) 160⅓이닝(리그 2위)를 기록중. 거듭된 혹사와 부상으로 직구 구속을 크게 떨어뜨린 채 던지고 있다고 한다.

2010년 최종성적은 178⅓이닝 10승 9패 평균자책점 3.58, 탈삼진 130개를 기록. 08년 이후로 정상적인 선발로테이션을 돌린 적이 거의 없는 LG 트윈스에서 유일하게 3년동안 자기 자리를 지켜왔지만 완만하게 성적이 하강곡선을 그리고 있는것이 안타까울 따름. 또한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에도 류현진-김광현-양현종 과 함께 좌완 에이스부대의 맏형 노릇을 해야 한다.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국가대표 주장으로 발탁됐으나 훈련기간 불미스러운 루머[16]에 시달렸다.

아시안 게임 1차전 대만전에서는 7회초에 원래 윤석민이 등판하려고 했는데, 윤석민이 경기 전 등록된 선수 명단에 없어서 쫓겨나고 대신 급히 등판했다. 그리고 역시나 몸이 안 풀린 건지 볼은 볼대로 많고 상대 타자들도 잘 잡지 못했다. 그나마 손시헌의 센스로 무실점으로 잘 막았으니 다행이었다.

성균관대학교 스포츠과학부에 10학번으로 입학했다. 셋째 누나가 성균관대 대학원에 다니고 있어서 도움이 많이 되었다고. 조무근과 대학동기다

산다라박를 격하게 아낀다는 말을 했다.

김성근이 탐나는 선수 톱3중 하나라고 밝혔다.어디서 큰일날 소릴 나머지 둘은 당연히 이대호류현진.[17][18][19]

4.5. 2011 시즌

3년간의 혹사 때문에 몸에 무리가 많이 가서 전훈 때도 2월이 지나서야 공을 만졌다고 한다. 그런데 시범경기에서 '덜컥!' 하고 팔꿈치 통증을 느껴 팬들을 놀라게 했으나 이상 없다는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무리하면 안 되기에 4월말에 복귀한다고 했다.

관중석에서 LG 경기를 관람하는 게 카메라에 잡혔는데, LG가 찬스를 놓치거나 역전을 당할 때 역동적인 안타까움을 몸으로 표현해서 '관중근'이라는 별명이 새로 생겼다.

그렇게 재활과 준비의 시간 끝에 5월 1일날 볼질로 판을 거하게 말아먹은 심수창과 교체되어 등판했다. 이때의 환호성은 그야말로 잠실이 떠나가라 수준. 봉중근은 이날 3⅔이닝 4볼넷 3탈삼진 2실점 2자책점을 기록했다. 아직 몸상태가 완전하지 않다는 걸 고려하면 그렇게 나쁜 편은 아니었다.

5월 3일 두산 베어스 전에서 역동적인 응원이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박용택이 적시타를 때리자 기뻐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5월 10일 한화 이글스와 경기전에 류현진과 반갑게 인사하는 모습이었는데 그 포즈가 꽤나 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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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때 이외에는 다 선후배간이니 친해서 그런것이겠지만 봉중근이 좀 장난스럽게 들이댄 듯한 모습이다. 거기에 난감해하는 류현진의 모습이 인상적.

그러나 시즌 시작 전부터 봉중근을 괴롭혔던 부상문제가 결국 완전히 그의 발목을 잡고야 말았는지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되고 말았다. 관련 기사

박종훈 감독이 부상사실을 빨리 말하지 않은 데 대해 봉중근을 책망했다고 한다. 봉중근은 팀 분위기가 좋은 이때에 꼭 보탬이 되고 싶어 부상을 참았다고.

인대접합수술을 마치고 재활에 들어갔다. 다시 150km/h를 던질 수 있을 거 같다는 말을 덧붙이며 수술소감을 밝혔다.

6월 26일 다시 LG선수단을 방문해서 인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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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5월을 복귀시점으로 잡고 재활에 매진한다고 했다.

2012시즌 연봉협상에서 신연봉제의 칼날을 피해가지 못하고 무려 전년대비 61%가 삭감된 1억 5천만 원에 사인했다.

4.6. 2012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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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활 후 시즌 초 마무리로 전향했던 레다메스 리즈가 불안한 모습을 보이자 대신 마무리로 활약하기 시작했다. 이후 좋은 성적으로 LG의 불펜진을 안정시키며 팬들을 설레게 했으나, 6월 말 엘 꼴라시코에서 강민호에게 동점 투런을 맞고 소화전에 화풀이하다 윤석민처럼 오른손을 다치고 만다. 마무리 부재로 결국 LG는 다음날에서도 9회에 동점을 허용하고 연장에서 역전을 당했고, 마지막에는 이용훈에 퍼펙트게임 직전까지 끌려간 끝에 엘꼴라시코에서 스윕패를 당했다. 이후 7월 10일부터 1군에 복귀했다.

4.7. 2013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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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정규시즌 두산 베어스와의 마지막 경기에서 정규시즌 2위 확정 세이브를 한 직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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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훈 때의 개그 본능

그리고 2013시즌 위의 저 패션을 경기중 덕아웃에서 또다시 보여줘 네이버 중계창의 팬들을 제대로 웃겨주었다. 영상 링크

4.8. 2014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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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적으로 난타당하기도 했지만 극한의 타고투저 속 마무리로서는 평균자책점이 제일 낮았다. 이 해 세이브왕 손승락이 4.33, 2위 임창용이 5.84의 평균자책점에서 놀았던 것을 감안한다면.

4.9. 2015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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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0. 2016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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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량이 하락하였다. 2군에서도 방어율이 심각하게 처참할 정도이니... 그래도 9월부터 선발진에서 나름 나쁘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었고 가을야구까지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 시즌이 1군 마운드에서의 마지막 모습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4.11. 2017 시즌

2016시즌 후 FA 자격을 취득해 LG 트윈스와 2년 15억 원에 FA계약을 체결했다. 관련 기사

그런데 4월 이후 2군 등판 기록이 전혀 없어 팬들이 의아해하던 중 어깨 부상으로 인해 수술 또는 재활이 필요하다는 꽤나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결국 2017년 6월 28일 미국 조브 클리닉에서 수술을 받았으며 재활 기간이 1년 정도 소요된다고 했다. 2017시즌은 이렇게 날렸고 2018시즌도 복귀가 불투명하게 됐다.[20]

시즌 이후 인터뷰에 따르면 4월 30일 1이닝 등판을 마지막으로 1군 콜업 통보를 받았는데, 이날 등판서 아웃카운트를 잡고 나서 인대 파열 부상을 당했다고 한다.

4.12. 2018 시즌

시무식에서 탈모가 매우 극심한 근황이 발견되고 말았다..문제는 목표가 2018년 5월이라지만 이미 수술을 여러번 받은 몸에다 불혹을 앞둔 나이라 2018년에도 시즌을 통으로 쉴 가능성이 높아보이는게...

사이판으로 갔다고 한다. 여태 봉중근은 재활할때 약속의 땅 사이판으로 갔던만큼 복귀의 의지가 강력한듯. 팬들도 제발 돌아오기를 바라고 있다.

마무리 투수 정찬헌이 시즌 개막 한 달만에 3블론세이브를 터뜨리면서 LG팬들은 봉중근을 너무나 그리워했다.

6월 잠실야구장을 방문했을 당시 봉중근을 만나본 LG팬의 말에 의하면 7월말 복귀를 예상하고 있다고 했다.

은퇴기사에서 봉중근은 얼마 전까지도 지인들에게 “과분한 사랑을 준 팬들 앞에서 마지막으로 한번이라도 공을 던져보고 싶다”며 사이드암으로 투구폼까지 바꿔 안간힘을 썼다고 한다.

그러나 아시안 게임 브레이크가 지난 이후에도 돌아오지 못했고 결국 2018년 9월 19일 봉중근은 재활을 중단하고 은퇴하기로 결정했다. 끝내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LG 관계자에 따르면 봉중근은 최근 구단과 상의 끝에 파란만장했던 선수 생활을 마감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6월 28일 어깨 수술을 받고 1년이 넘게 재활에 몰두해 왔지만 더딘 회복 속도에 한계를 느껴 은퇴 결심을 굳힌 것으로 보인다. 관련 기사 은퇴식은 9월 28일 KIA전에서 가진다.

9월 28일 은퇴식을 가졌다. 특유의 견제동작을 한 차례 보여준 후 포수로 김정민 코치를 앉히고 시구를 했다. 캐스터의 말처럼 어깨가 상당히 좋지 않아 보였고 그로 인해 전력투구까지는 하지 못했다. 투구 후 김정민 코치와 함께 손으로 하늘과 팬들을 향해 하트를 그렸다. 하지만 경기에서는 에이스인 타일러 윌슨을 하루 당겨쓰고도 패했다. 윌슨은 잘 던졌지만 8회초 2:2 상황을 맞은 이후 올라온 신정락이 장작을 쌓았고 마무리인 정찬헌이 이범호에게 만루홈런을 맞으며 무너졌다.[21] 윌슨은 봉크라이 시절을, 정찬헌은 수준급 마무리 시절의 봉중근을 그립게 한 씁쓸한 모습이었다. 가을야구 탈락에 7위로 하락해 버린 최악의 경기였다. 원래 두산 전에 나와야 했을 윌슨까지 당겨쓰고도 대참패하면서 봉중근이 마냥 웃으면서 떠나지는 못하게 되었다.

차명석 단장이 단장 부임 후 가장 먼저 연락한 선수 중 한 명이다.

5. 국가대표 경력

5.1. 2006 WBC

대한민국 대표팀 개인별 성적
경기 선발 이닝 방어율 홀드 세이브 피안타 실점 피홈런 자책점 사구 삼진 상세
3 0 2⅔ 0.00 0 0 1 0 0 0 0 0 2 1

메이저리그에서 롱릴리프 불펜 겸 대체 선발자원으로 활약하던 봉중근은 2005시즌 부상으로 단 한경기도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서지 못했다. 하지만 김인식 감독은 2002~2004시즌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한 봉중근의 구위를 믿고 그를 2006 WBC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에 선발했다. 이는 봉중근의 커리어 첫 성인 국가대표 경력이다.

사실 이 당시 대표팀의 투수코치였던 선동열은 봉중근의 선발을 반대했다고 한다. 부상 여파로 직구 구속이 130KM 밖에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희관 하지만 봉중근이 직접 김인식 감독에게 자신의 투구를 한 번만 보고 판단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이후 김인식 감독은 봉중근의 투구를 보고 커브 하나는 써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그를 선발했다.

봉중근은 2006 WBC에서 1이닝 정도를 막는 불펜투수의 역할을 수행했다.

한일전에서 한국이 0:2로 뒤진 4회 1사 2, 3루의 위기 상황에 등판했지만 승계주자 실점을 허용하지 않았다. 기록은 ⅔이닝 1볼넷 0실점. 2사 만루의 상황에서 니시오카 츠요시에게 싹쓸이 장타를 맞을뻔 했지만 그 유명한 국민 우익수의 다이빙 캐치로 위기를 모면했다.[22] 천운이 따른 셈. 봉중근은 그 호수비가 아니였으면 지금쯤 미국 마트에서 캐셔로 일하고 있을 거라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

이후 경기들에서 역시 불펜투수로서 제 소임을 다한 봉중근은 최종성적 3경기, 2⅔이닝 0실점을 기록하며 팀이 3위를 기록하는 것에 크게 기여했다.

5.2. 2008 베이징 올림픽

대한민국 대표팀 개인별 성적
경기 선발 이닝 방어율 홀드 세이브 피안타 실점 피홈런 자책점 사구 삼진 상세
2 2 8⅓ 8.31 0 0 0 0 14 9 0 8 4 6
2008 베이징 올림픽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서 참가했다. 백넘버는 51번을 달았다.
파일:2008 베이징 봉중근.jpg
봉중근은 예선리그 첫 경기인 미국[23]과의 경기에 선발등판했다.[24] 류현진, 김광현 등을 제치고 1선발로 출격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아무래도 봉중근의 미국 무대 경험을 코칭 스테프가 높게 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기대가 무색하게도 봉중근은 4.1이닝 3실점으로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강판 당했다. 다행스러운점은 팀이 이후 역전에 성공하여 8:7 신승을 거뒀다는 점이다.

봉중근은 이로부터 5일후 치루어진 대만과의 조별리그 5차전 경기에 다시 한번 선발등판 했다. 마이너리그 AAA 올스타로 구성된 미국과 달리 한 수 아래로 평가받는 대만이었지만 봉중근은 최악의 피칭을 선보이며 팀을 위기로 밀어넣었다. 지난 경기와 똑같은 4.1이닝을 소화하면서 실점은 두배나 증가한 6실점을 기록했다. 이번 경기 역시 팀타선의 폭발로 한국이 9:8 신승을 거두게 되면서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다.

한기주가 워낙 스포트라이트를 많이 받아서 그렇지 봉중근도 만만치 않았다. 한기주 덕분에 부진이 묻힌 것이 본인에게는 천만다행. 대회 최종성적은 2경기, 8.2이닝 6K 9실점(8자책), ERA 8.31로 최악의 모습을 보였으나 팀 동료들의 선전으로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고 귀국하게 되었다.

5.3. 2009 WBC

대한민국 대표팀 개인별 성적
경기 선발 이닝 방어율 홀드 세이브 피안타 실점 피홈런 자책점 사구 삼진 상세
4 3 17⅔ 0.51 2 0 0 0 14 1 0 1 6 4
파일: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로고.svg
2009 WBC ALL-WORLD TEAM AWARD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파일:일본 국기.svg OF

파일:쿠바 국기.svg OF

파일:쿠바 국기.svg O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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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WBC에 출전하는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었다. 3번째 국제대회 출전이자, 2번째 WBC 출전이다.

봉중근의 첫 등판은 1라운드 대만전 구원등판 이었다. 봉중근은 4회 무사 1루의 상황에서 류현진의 뒤를 이어 등판하여 승계주자 실점없이 1이닝 0실점으로 막아내었다.
파일:2009 wbc 봉중근.jpg
일본과의 1라운드 2차전에서 본인이 지망해서 선발투수로 출전했다. 이 경기에서 봉중근은 일본을 상대로 압도적인 투구를 보여줘 국내야구 갤러리등에서 엄청난 찬양을 받았다. 그리고 야갤에서는 안중근 의사와 이름이 같은 것을 빗대서 만든 짤방까지 나왔다. 일명 의사 봉중근. 그리고 LG 트윈스는 이걸 프린트한 티셔츠를 한정판으로 팔았다.이런거로 장사를 할줄은....

파일:tETj1wW.gif
51 vs 51
3월 18일 벌어진 일본과의 2라운드 경기에서 두차레에 걸친 견제구 동작(퀵모션)만으로 이치로슬라이딩을 할 정도로 당황스럽게 만들어 이치로 전용 조련사 라는 소리를 들었다. 실제로도 국내에서 주자견제능력은 최고수준. 견제율이 약 7할에 근접한다. 후에 밝히기는 첫번째 견제 때는 자기는 잡을 수 있을 줄 알고 견제를 했는데, 이치로가 엄청난 반응속도로 슬라이딩을 하면서까지 귀루를 해서 던지지 못한거라고 한다. 하지만 이거다 하는 감을 잡았다고, 이후에는 노린거라고.

한일 베이스볼 클래식 5차전WBC 결승 대 일본전에 세 번째로 선발 등판했다. 지난 2경기에서 당한 것에 칼을 갈고 나온 일본 타자들의 집요한 커트 신공에 말리고, 심판의 석연치 않은 판정에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꾸역꾸역 상대 타선을 막아내며 4이닝 1실점(비자책)을 기록한 이후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파일:봉중근 클래식.jpg
최종성적은 4경기, 17.2이닝, 2승 0패, ERA 0.51을 기록했다. 대회내내 엄청난 퍼포먼스를 보이며 류현진, 김광현, 윤석민 등을 재치고 팀의 1선발로서 활약했다.[25]

당연히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에이스로서 준우승의 일등공신이라 말할 수 있었고, 결국 WBC 공식 베스트 12에 선발되는 영광까지 누렸다. 반년전 올림픽에서의 부진을 만회했다. 그야말로 봉중근 본인 야구인생의 최고 황금기.

5.4.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서 참가했고, 국가대표 주장을 맡았다. 이는 자신의 커리어 첫 아시안 게임 출전이다.

봉중근의 첫 출전은 예선리그 1차전 대만과의 경기였다. 대표팀 선수들은 4년전 도하 참사로 인해 굉장한 부담을 가진 상태였다. 하지만 선발투수 류현진이 6이닝 1실점으로 호투를 펼쳤고, 뒤를 이어 봉중근이 1.1이닝을 0실점으로 깔끔하게 막아내며 6:1 승리를 지켜냈다.

이후 대표팀은 홍콩, 파키스탄, 중국, 대만을 차례로 꺾으며 5전 전승으로 8년만의 금메달 탈환에 성공했다.

5.5.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2014 인천 아시안 게임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서 참가했다. 자신의 커리어 두번째 아시안 게임 출전으로 2연속 금메달을 노리게 됐다.

봉중근은 8강 예선리그 홍콩과의 경기에 구원 등판해 1이닝 0실점으로 막아내며 대회 첫 승을 기록했다.

이후 대만과의 결승전 6:3으로 대한민국이 리드중인 9회말 1사후 등판했다. 봉중근은 대만을 0.2이닝 0실점으로 막아내며 대한민국의 우승을 매듭지었다.

이로써 봉중근은 지난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 이어 두 대회 연속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게 되었다.

6. 연도별 성적

6.1. MiLB

  • 한 연도에 동일 구단 산하 여러 레벨의 기록이 존재할 경우, Rk → A- → A → A+ → AA → AAA 순으로 서술.
역대 기록(투수)
연도 소속팀 경기수 투구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1998 GCL 브레이브스(Rk) 11 48⅓ 1 1 0 0 .500 1.49 31 2 20 56 9 8 0.93
1999 메이컨 브레이브스(A) 26 108⅔ 6 5 1 0 .545 3.98 111 8 61 100 61 48 1.48
2000 20 112⅔ 7 7 0 0 .500 4.23 119 4 59 90 65 53 1.46
머틀비치 펠리컨스(A+) 7 41⅓ 3 1 0 0 .750 2.18 33 1 12 37 14 10 0.97
2000 시즌 합계 27 154 10 8 0 0 .556 3.68 152 5 71 127 79 63 1.32
2001 머틀비치 펠리컨스(A+) 28 168 13 9 0 0 .591 3.00 151 7 51 145 67 56 1.18
2002 그린빌 브레이브스(AA) 27 122 7 8 2 0 .467 3.25 136 6 48 107 59 44 1.48
2003 리치몬드 브레이브스(AAA) 3 11⅓ 1 2 0 0 .333 5.56 11 1 3 15 7 7 1.24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04 GCL 레즈(Rk) 2 3 0 0 0 0 - 12.00 3 0 2 3 5 4 1.67
루이스빌 배츠(AAA) 19 94⅓ 8 8 0 0 .500 5.82 118 13 33 65 66 61 1.58
2004 시즌 합계 21 97⅔ 8 8 0 0 .500 6.01 121 13 35 68 71 65 1.58
2005 사라소타 레즈(A+) 1 4 0 0 0 0 - 4.50 4 0 1 1 3 2 1.75
2006 채터누가 룩아웃츠(AA) 4 17⅔ 1 1 0 0 .500 5.09 20 2 8 17 11 10 1.31
<colbgcolor=#ffff88> MiLB 통산
(9시즌)
148 731⅓ 47 42 3 0 .528 3.73 737 44 298 636 367 303 1.35

역대 기록(타자)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출루율 장타율 OPS
2002 그린빌 브레이브스(AA) 29 33 .121 4 0 0 0 3 2 0 1 .147 .121 .268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출루율 장타율 OPS
2004 루이스빌 배츠(AAA) 19 10 .400 4 1 1 0 2 1 0 1 .455 .700 1.155
2006 채터누가 룩아웃츠(AA) 4 5 .600 3 2 0 0 1 1 0 1 .667 1.000 1.667
MiLB 통산
(3시즌)
52 48 .229 11 3 1 0 6 4 0 3 .275 .333 .608

6.2. MLB

역대 기록(투수)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fWAR bWAR
2002 ATL 1 6 0 1 0 0 .000 7.50 8 0 2 4 5 5 1.67 0.2 -0.1
2003 44 57 6 2 1 2 .750 5.05 56 8 33 47 32 32 1.53 -0.3 -0.3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fWAR bWAR
2004 CIN 3 15⅓ 1 1 0 0 .500 4.70 17 3 10 11 13 8 1.76 -0.1 -0.3
<colbgcolor=#ffff88> MLB 통산
(3시즌)
48 78⅓ 7 4 1 2 .636 5.17 81 11 45 62 50 45 1.58 -0.2 -0.7

역대 기록(타자)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출루율 장타율 OPS fWAR bWAR
2002 ATL 2 2 .000 0 0 0 0 0 0 0 0 .000 .000 .000 0.0 -0.1
2003 42 5 .000 0 0 0 0 0 0 0 1 .167 .000 .167 0.0 0.0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출루율 장타율 OPS fWAR bWAR
2004 CIN 2 4 .000 0 0 0 0 0 0 0 0 .000 .000 .000 -0.1 -0.1
MLB 통산
(3시즌)
46 11 .000 0 0 0 0 0 0 0 1 .083 .000 .083 -0.1 -0.2

6.3. KBO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07 LG 24 111⅔ 6 7 0 0 0.462 5.32 121 6 60 56 71 66 1.56
2008 28 186⅓
(1위)
11 8 0 0 0.579 2.66
(3위)
153 13 80 140
(3위)
66 55 1.19
2009 26 172⅓
(4위)
11 12 0 0 0.478 3.29 160 13 71 127 70 63 1.26
2010 28 178⅓
(3위)
10 9 0 0 0.526 3.58 166 13 85 130
(5위)
74 71 1.32
2011 4 16⅓ 1 2 0 0 0.333 4.96 13 1 14 7 9 9 1.35
2012 40 38 0 1 26 0 0.000 1.18 26 1 14 36 5 5 0.95
2013 55 61 8 1 38
(2위)
0 0.889 1.33 44 2 30 54 10 9 1.16
2014 50 49⅔ 2 4 30
(3위)
0 0.333 2.90 51 2 23 45 16 16 1.37
2015 47 49⅓ 5 2 15 0 0.714 4.93 60 10 33 39 28 27 1.68
2016 19 36⅓ 1 0 0 2 1.000 4.95 41 4 24 20 23 20 1.73
2017 1군 기록 없음
2018
<colbgcolor=#ffff88> KBO 통산
(11시즌)
321 899⅓ 55 46 109 2 0.540 3.41 835 65 434 654 372 341 1.32


[1] 신일고 다이너마이트 타선 내지 신일고 봉삼이(봉중근+김광삼)라고도 한다[2] 웃길지 모르지만, 현재윤은 발 빠른 포수였다!! 그래서 발 빠른 포수라는 유니크한 점은 그가 드래프트할 때 큰 도움이 되었다.현실은 통산 도루 10개 취소선을 치긴 했지만 현재윤이 포수라서 혹시라도 도루하다가 다치면 진갑용-현재윤으로 꾸렸던 삼성은 대체재가 없던터라 가급적 주의를 시킨 것. 실제로 현재윤이 다치자 부랴부랴 심광호채상병을 영입했지만 결과는 신통치않았다. 프로와서도 주루센스 자체는 좋은 편에 속했고, 가끔씩 깜짝 상위타선에 배치하기도 했다.[3] 사이닝 보너스 20만 달러는 또 따로 있었다고 한다.[4] 봉중근 본인은 중견수로 계약했다고 한다.[5] 반대로 투수로 입단한 부산고 에이스 추신수는 타자로 컸다.[6] 이는 실책성이 섞인 플레이였지만 안타로 기록되면서 들어온 점수가 몽땅 봉중근의 자책점으로 기록되었다.[7] 이날 경기에서 켄 그리피 주니어는 통산 500홈런을 기록했다. 국내에서조차 봉중근의 선발승이 묻혀버릴 뻔 할 정도.[8] LG팬이면 절대 잊지 못할 이상훈의 번호인 47번은 이상훈의 은퇴이후 오승준(2004) - 김광우(2005~2006) - 봉중근(2007~2008) - 이형종(2009) - 서승화(2010~2011) - 조윤준(2012~2015)순으로 달았으나 영 좋지 못하던 징크스가 있었으며 이상훈의 번호를 더럽힌다는 평만 받았었다. 봉중근만 유일하게 에이스급 성적을 내었으나 승운이 처첨하게 안좋았던, 여러모로 이상훈에게 어울리던 번호였다. 2016년부터는 이상훈이 아카데미 원장으로 들어오며 주인을 찾았지만 2019년도부터 물러나며 다시 공석. 차명석 단장이 이상훈을 제외한 누구에게도 주지 않겠다며 임시결번 처리했다. 그리고 4년만에 김윤식에게 돌아갔다. 물론 이상훈의 허락은 받고 달았다.[9] 이 당시 동영상이 2012년 5월 6일 잠실 두산-LG 경기의 SBS ESPN 중계 때 재연되었는데(6회초 최준석 아웃 이후), 이 경기 해설자인 안경현은 "이 사람들 너무 하네~"라며 멘탈붕괴했다. 그리고 옐카3에서도 '잠실의 주인은 누구인가' 토론에서 이 장면이 나와 멘붕하기도 했다.[10] 스톡킹 33편 4부 및 후술할 63편 5부 참고[11] 스톡킹 63편 5부에 이 이야기가 나온다. 봉중근편을 미리 보고 안경현 편을 보는 것이 좋다.[12] 시간이 없는 사람을 위한 요약. 선두타자 7번 고영민 정상적인 2루타 → 8번 이대수 보내기 번트 시도. 타구 굴절로 1루수 최동수 넘어지면서 올 세이프 → 9번 민병헌 느린 땅볼. 1루 베이스커버 실패로 세이프(1실점)(심지어 정상적인 스윙도 아니고 체크스윙이다.) → 1번 이종욱 정상적인 보내기 번트 → 2번 윤재국 스퀴즈 시도했으나 피치아웃 성공으로 3루주자 런다운 상황. 그러나 포수 조인성이 주자와 충돌하여 주루방해(1실점) → 정상적인 안타(1실점) → 그리고 안경현 보기만 해도 숨이 턱턱막힌다[13] 첫번째로 나쁜 성적을 거둔 투수는 그 한기주인데 이때 한기주는 첫 경기에서 아웃카운트를 단 한개도 잡지 못하고 실점을 하는 바람에 평균자책점이 실제 기록상으로 무한대(매이저리그 기준으로는 INF라고 표기한다), 방송 표기상으로 99.99가 되는 바람에 속이 꽉찬 99.9라는 불명예스런 별명까지 얻고 말았다. 최종 기록은 3경기 2⅓이닝 평균자책점 19.28.[14] 1실점은 김태완에 허용한 솔로홈런이다.[15] 봉중근의 선발 최소이닝은 2007년 7월 3일 잠실 두산전 1.2이닝이다.[16] 부산에서의 국가대표 평가전 후에 봉중근, 류현진, 이용규가 여성들과 어울려 술마시고 숙소까지 데려갔다는 주장이 KBO 게시판에 올라왔다. 실명제인 KBO 게시판에 올라와서 신빙성있다는 측과 증거가 없고, 기사화되지 않았기에 신빙성이 없는 루머라고 하는 측이 엇갈린다.[17] 류현진은 2006년에 한화에 지명받았고 김성근은 2007년에 SK로 왔다. 결론은 SK 프런트 또는 조뱀의 실수.[18] 하지만 결과론적으로 실수라고 하는 거지, 실제로 고교때 아무리 특급이었다고 해도 수술이나 부상경력이 있는 선수를 쉽게 뽑을 순 없다. 삼성의 STC같은 재활시설이 잘 갖춘 곳이라면야 고쳐쓴다는 마음으로 지를수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팀에서는 망설일 수 밖에 없으니. 더군다나 그 시절 SK에는 투수 자원은 상대적으로 부족한 게 없었고 박경완의 뒤를 이을 포수재원 마련이 더 시급했기에 이재원을 택했을 뿐이다. 그러나 김성근 시절의 이재원은 플래툰에 의한 대타로 기용된 적이 많아 포수로서의 성장이 더뎠고 결국 군 입대를 미루라는 감독의 압박을 부모님이 찾아와 막아낸 뒤 군 팀에 입대하는 등 막장스러운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19] 실제로 지명되었다쳐도 류현진도 살을 빼게 시키겠다고 공헌했던 김성근의 행보로 미뤄볼 때 15시즌 초반의 양훈처럼 안 되었으리란 보장도 없고... 전병두, 데럴 마데이, 살려조를 생각하면 봉중근이 SK에 지명되지 않은 건 신의 한 수라고 생각할 수 있다. 봉중근 정도의 실력이었으면 김성근 감독에 의해 무지막지한 혹사를 당했을 가능성이 크다.[20] 은퇴 후 스톡킹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원래 병원에서는 수술을 해줄 수 없다고 말했을 정도로 부상 상태가 심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봉중근 본인이 수술하는 것을 간절하게 원하면서 원래 예정되어있던 훌리오 유리아스의 수술을 미루고 봉중근을 먼저 해줬다고 한다. 허나 수술 과정에서 상황이 더 최악이었다는데, 진통 주사를 맞았던 어깨 쪽 근육이 진통제 액 때문에 너덜너덜해진 상태였다고 한다. 이후 수술은 잘 마무리했지만 담당 의사에게 다시는 공을 던질 수 없을 것이라는 말을 들었고, 결국은 그 말이 사실이 되었다고 한다.[21] 그리고 이 홈런이 이범호의 현역 마지막 만루홈런이었다. 이범호는 이듬해인 2019년 은퇴했다.[22] 사실 당시 봉중근은 구속이 떨어져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당시 일본 타선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오죽하면 이치로에게 몸맞는 볼을 던지겠다고 자원했는데도 불구하고 구대성이 "125km/h로는 맞아도 아프지도 않다"며 대신에 배영수를 낙점했을 정도.[23]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불참한 팀이다. 주로 마이너리그 올스타 수준의 선수들이 참가했다.[24] 미국팀의 선발투수는 후에 KBO 리그에서 뛰게 되는 브랜든 나이트였다.[25] 당시 류현진은 대만전에서는 좋은 모습을 보였으나 멕시코전에서는 컨디션 난조를 보이며 난타 당했고, 김광현은 일본전에서 완벽히 분석 및 공략 당하며 불펜으로 주로 나왔다. 윤석민의 경우 베네수엘라전에서 인생경기를 펼치는 등 좋은 모습이었으나, 그외에는 주로 불펜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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