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하지야 관련 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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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하지야 공화국 Аԥсны Аҳәынҭқарра[1] | Республика Абхазия[2] Republic of Abkhazia | |||
국기 | 국장 | ||
<colbgcolor=#00993e><colcolor=white> 국가 | 〈승리(Аиааира)〉 | ||
면적 | 8,660㎢ | ||
인구 | 244,926명(2021년) | ||
민족구성 | 압하스인 50.7%, 조지아인 19.2%, 아르메니아인 17.4%, 러시아인 9.1%, 기타 0.6% | ||
수도 최대도시 | 수후미 | ||
정치 체제 | 이원집정부제의 요소가 들어간 대통령제 | ||
대통령 | 아슬란 브자니야(Аслан Бжания)[3] | ||
총리 | 알렉산드르 안크바프(Александр Анкваб)[4] | ||
공용어 | 압하스어, 러시아어 | ||
종교 | 정교회 62%, 이슬람 26%, 토착신앙 7% | ||
시간대 | UTC +3 (압하지야 전 지역) | ||
통화 | 아프사르(명목) 러시아 루블(사실상) | ||
ccTLD | .su[5] | ||
주요 사건 | 1991년 12월 26일 (소련으로부터 조지아로 독립) 2008년 8월 8일 (조지아로부터 독립) | ||
여행경보 | 출국 권고: 전 지역[6] |
위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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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언어별 명칭 | |
<colbgcolor=#00993e,#00993e> 압하스어 | Аԥсны (Apsnə)[7] 아프스느 |
한국어 | 압하지야 |
러시아어 | Абха́зия (Abxázija) 압하지야 |
아르메니아어 | Աբխազիա(Abxazia) 아프하지아 |
아제르바이잔어 | Abxaziya 아브하지야 |
영어 | Abkhazia 애브카지어·애브케이지어 |
오세트어 | Абхаз(Abxaz) 아브하즈 |
조지아어 | აფხაზეთი(apxazeti) 아프하제티 |
튀르키예어 | Abhazya 아브하지아 |
2. 역사
고대에는 콜키스 왕국에 속했고, 이후 동로마 제국에 의해 임명된 아르콘이 다스리는 아바스기아(Αβασγία, Abasgia)가 세워졌다. 8세기에는 압하지야 왕국이 세워졌다가 11세기에 압하지야의 왕인 바그라트 3세가 다비트 3세 쿠로팔라티의 뒤를 이어 조지아의 왕위를 계승해 조지아와 하나의 왕국이 되었다. 이후 오스만 제국이 조지아를 차지하면서 오스만 제국에 충성한 샤르바시제(შარვაშიძე 또는 셰르바시제·შერვაშიძე)가가 압하지야 공국을 다스렸다. 19세기에 압하지야 공이었던 미헤일 샤르바시제(მიხეილ შარვაშიძე)가 추방당하면서 러시아 제국의 영토가 되었다. 1917년의 러시아 혁명 이후 그루지야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수립되었으나, 1921년 볼셰비키들이 만든 그루지야 SSR의 헌법에서는 압하지야와 그루지야(조지아)의 민족적 관계가 제대로 설정되지 않았다.소련이 들어선 이후 압하스인인 네스토르 라코바의 주도로 압하지야 사회주의 소비에트 공화국이 수립됐으나, 1931년에 그루지야 SSR의 자치공화국인 압하스 자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격하되었다. 당시 그루지야(조지아) 출신이었던 소련의 이오시프 스탈린과 압하지야 출신이던 라브렌티 베리야는 압하스어 문자를 조지아어 문자로 바꾸는 등 압하스인의 전통문화에 대한 가혹한 탄압을 가했으며 특히 대숙청 당시 압하지야의 토착 엘리트들 대부분이 살해당했다. 그래서 조지아에 통합된 기간 압하지야는 급격히 조지아화되었다. 1926년 압하지야에서 조지아인과 압하스인의 비율은 각각 33%, 27%로 조지아인이 근소하게 우세한 수준이었는데, 1959년에는 조지아인(39%)이 압하스인(15%)보다 압도적으로 많아지게 되었다. 50년대 이후 소련 정부는 압하스인에 대해 유화 정책을 폈으나, 이번에는 인구 중 다수를 차지하는 조지아인이 이에 대해 차별당한다는 불만이 생겼다.
1991년 3월 소비에트 연방 유지에 관한 주민투표에서 그루지야 SSR는 투표를 보이콧하고 자체 독립투표를 시행했으나, 압하지야 ASSR와 남오세티야 자치주에 거주하는 오세트인들은 투표를 보이콧하지 않고 참여했다. 투표율은 52.4%였으며, 98.6%에 가까운 사람들이 개혁된 소비에트 연방 유지에 투표했고, 두번째 질문에서는 1930년대 이전처럼 압하지야가 조지아에서 분리되어 독립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되어야 한다는 것에 찬성표가 압도적이었다. 1991년 그루지야 SSR가 소련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이후, 압하지야는 다음 세 가지 제안을 신생 조지아 정부에게 하였다.
결국 세 제안을 조지아가 모두 거절하고, 1992년 7월 23일 압하지야 최고회의의 결정에 따라 압하지야는 조지아로부터 독립하겠다고 나섰다. 그러자 조지아는 압하지야의 독립을 무력으로 진압하려고 했다. 결국 1992년 8월 14일에 압하지야 전쟁이 발발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수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특히 1989년 당시 압하지야 인구의 45%까지 늘어났던 조지아인의 경우 최소 5천명이 학살당하고 20만여 명이 쫓겨난 것으로 추산된다. 1994년 5월 14일에 러시아의 중재로 모스크바에서 준군사조직 므헤드리오니(მხედრიონი)의 지도자인 자바 이오셀리아니(ჯაბა იოსელიანი)[10]와 압하지야의 총리인 소크라트 진졸리야(Сократ Джинджолия)가 만나 휴전협정을 성사시키면서 내전은 일단락되었고 압하지야는 사실상 독립 상태가 되었다.
이후에도 압하지야와 조지아의 충돌은 몇 번 계속되었으며, 조지아에서 친서방 성향의 미헤일 사카슈빌리 정권이 집권한 이후 2008년 8월 8일 조지아가 남오세티야를 상대로 선제 전면전을 시작하며 남오세티야 전쟁이 발발하자 조지아로부터 완전히 독립을 선언하였다. 러시아는 2008년 8월 26일에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를 독립국으로 공식 승인했다.
2011년 당시 대통령이던 세르게이 바갑시(Сергей Багапш)가 공무 중 사망하면서 갑작스럽게 대통령 선거가 진행됐고 알렉산드르 안크바프(Александр Анкваб)가 당선되었다. 2014년 봄, 라울 하짐바(Рауль Хаджимба)가 이끄는 시위대가 급진적인 개혁을 하라는 내용의 최후통첩을 안크바프에게 보냈고, 그는 쿠데타 시도라고 판단해 6월 1일, 국가의 안정성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사임하였다. 시위대는 저항의 이유가 지속적인 경제침체로 인한 가난이라고 밝혔으나, 당시 안크바프가 조지아와의 접경지대였던 압하지야의 갈리 지역에 사는 조지아인들에게 유화 정책을 베풀었기 때문에, 압하지야의 민족정체성에 위기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 주요 이유인 것으로 보인다. 안크바프는 사임 하루 전인 5월 31일에 수도인 수후미에서 도망쳤다. 이후 압하지야 의회는 발레리 브간바(Валерий Бганба)를 임시 대통령으로 임명하였다. 6월 2일, 그는 당시 총리였던 레오니트 라케르바야(Леонид Лакербая)의 사표를 수리하였다.[11] 이후 블라디미르 델바(Владимир Делба)를 임시 총리로 임명하였다. 의회는 2014년 8월 24일을 대통령 선거일로 정하였고, 당시 시위대의 리더였던 라울 하짐바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참고로 이때 안크바프도 출마를 선언했지만, 실제로 후보로 등록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하짐바는 이후 11월, 블라디미르 푸틴과 만나 압하지야의 군대를 러시아군 산하로 편입시킨다는 내용의 조약에 합의하였다. 조지아는 이를 합병을 위한 절차라며 맹렬히 비난했다.
2020년 1월 10일에 압하지야에서 대통령인 라울 하짐바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가 발생했다. 관련 기사. 압하지야 법원은 2019년 대통령 선거의 결과를 무효화하였고, 라울 하짐바는 대통령의 지위를 상실하게 된다. 2020년에 3월 20일, 대통령선거가 다시 치러졌고 야당 후보였던 무소속 아슬란 브자니야가 결선투표 없이 당선되었다. 당선 후, 3대 대통령이었던 안크바프를 총리로 지명했다.
2022년 6월, 압하지야의 휴양도시 피춘다(Пицунда)에 있는 별장들을 러시아 정부에 증여한다는 발표가 나와,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다. 시위대는 대통령 관저까지 찾아가서 주권을 침해하는 일이라고 반발했다. 압하지야의 헌법에 따르면 압하지야의 있는 각종 부동산등의 재산은 외국인이 소유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이에 따라, 정부의 결정이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면을 볼때 압하지야가 친러 미승인 국가이고 자치정부도 괴뢰국 수준이지만 국민들은 러시아 괴뢰국이 되는 걸 원치 않는 듯하다. 조지아 정부도 압하지야를 자국 영토로 간주하기 때문에, 시위대의 영상을 인용하며 이번 결정은 러시아의 합병을 위한 절차라며 비난했다.
3. 정치
동유럽의 정치 | |||
남오세티야ii, iii | 러시아i | 몰도바 | 벨라루스 |
아르메니아iii | 아제르바이잔iii | 압하지야ii, iii | 우크라이나 |
조지아iii | 카자흐스탄 | 트란스니스트리아ii | |
i: 우랄 산맥 서쪽 지역은 동유럽에 속한다고 본다. ii: 미승인국 iii: 기준에 따라 서아시아로 분류 될 때도 있다. |
서아시아의 정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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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메니아 iii | 아제르바이잔 iii | 압하지야 ii, iii | 예멘 | ||
오만 | 요르단 | 이라크 | 이란 | ||
이스라엘 | 이집트iv | 조지아 iii | 카타르 | ||
쿠웨이트 | 키프로스iii | 튀르키예iii | 팔레스타인 | ||
i: 도데카니사 제도만 서아시아에 속함. ii: 미승인국 iii: 기준에 따라 유럽으로 분류 될 때도 있다. iv: 시나이 반도만 서아시아에 속함. | }}}}}}}}} |
이원집정부적 요소가 가미된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다. 국회는 단원제에 총 의석수는 35석이며, 소선거구제로 5년 임기를 지낸다. 모든 선거는 결선투표제로 진행된다. 만 35세 이상 65세 이하의 압하지야 국적자만이 대통령에 출마할 수 있다. 5년 중임제를 실시하고 있다.
다른 친러 국가와는 다르게, 정치적으론 민주적인 편이다. 2010년대부터 여러차례의 혁명 및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고 있으며, 이에 따른 정권교체도 일어난 편이다. 특이하게, 대부분의 의원이 무소속이다. 정당들이 있긴 하나, 압하지야의 여러 민족 중 특히 압하스인들의 경우[12]에는 정책으로 선거가 이루어진다기 보다는 씨족과 세부 민족으로 이루어진 혈연과 지연으로 인한 투표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정당의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적다. 이에 따라 아직 완전한 민주주의 국가라고는 보기 힘드나, 다른 구소련 국가들과는 달리 독재정권 하에 있지는 않았다. 물론 대선에서는 각 정당들이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선언을 낸다. 대부분의 정당들이 민족주의와 친러 성향을 띄고 있다.
대부분의 의원이 무소속이지만, 정치성향은 크게 친-바갑시 계열과 친-하짐바 계열 2개로 나뉜다. 이념적인 차이는 크지 않지만 차이점이라면 바갑시 계열이 조지아인에 더 유화적이라는 점이다. 또한, 앞서 말했든 압하스인들의 지역별 씨족도 정치에서 영향을 미친다. 동부의 압주아(Абжуа) 압하스인과 서부의 브지브(Бзыбь) 압하스인으로 나뉜다. 압주아 압하스인들이 주로 친-바갑시 계열이며, 브지브 압하스인들이 주로 친-하짐바 계열이다. 이런 지역간의 세부적인 차이가 압하지야 정치에 중대요소로 작용한다.
2022년 3월에 제 7대 압하지야 의회선거가 이뤄졌다. 35개 선거구에 123명의 후보들(남자 107명, 여자 16명)이 출마했으며, 이 중 현직 의원은 19명이다. 1차투표는 3월 12일, 결선투표는 3월 24일에 이뤄진다. 반정부 성향의 의원들은 아슬란 브자니야 대통령에 대한 의회의 탄핵심의가 이뤄지는 중이기 때문에 선관위에 투표 연기를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보고에 따르면, 몇몇 후보들이 후보자 토론회를 무시하고 도로 정비와 같은 지역사회봉사를 한다고 한다. 앞서 말한 지연과 혈연에 의한 선거라는 문제점이 고쳐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선거 결과 무소속 30석, 암차하라 4석, 아이타이라 1석으로 현 대통령인 아슬란 브자니야를 지지하는 의원들이 과반수를 차지하였다. 다만 1차선거에서 51.2%, 결선투표에서 54.5%로 낮은 투표율이 문제되었다.
3.1. 역대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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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슬라프 아르진바 | 세르게이 바갑시 | 알렉산드르 안크바프 | 라울 하짐바 | |
제5대 | ||||
아슬란 브자니야 | }}}}}}}}} |
1994년에 헌법 제정을 통해 대통령직이 만들어졌다. 1990년 8월 25일 주권 선언과 1992년 7월 23일 완전한 독립 선언 사이에는 소련의 방식인 최고 소비에트 의장[13]이 국가원수를 맡았으며, 1994년 헌법 제정 전까지는 압하지야 의회의 장[14]이 국가원수직을 맡았다.
대수 | 집권 시기 | 대통령 | 출신 정당 |
초대 | 1994.11 ~ 2005.2.12 | 블라디슬라프 아르진바 | 무소속 |
2 | 2005.2.12[15]~ 2011.5.29[16] | 세르게이 바갑시 | 통합 압하지야당[17] |
3 | 2011.5.29[18] ~ 2014.6.1[19] | 알렉산드르 안크바프 | 아이타이라[20] |
권한대행 | 2014.6.1 ~ 2014.9.25[권한대행] | 발레리 브간바 | 무소속 |
4 | 2014.9.25 ~ 2020.1.12[22] | 라울 하짐바 | FNUA[23] |
권한대행 | 2020.1.13 ~ 2020.4.23[권한대행] | 발레리 브간바 | 무소속 |
5 | 2020.4.23 ~ 현직 | 아슬란 브자니야 | 무소속 |
4.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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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 조지아 | 남오세티야 |
압하지야를 조지아와 별개의 독립 국가로 인정한 곳은 러시아, 니카라과, 베네수엘라, 나우루, 시리아 5개국이다. 관련 기사. 같은 미승인국 중에서는 남오세티야와 트란스니스트리아가 인정했다.
미승인국인데다 유엔 회원국이 아니라는 점을 이용해서 북한 노동자 체류를 허용하고 있다. 관련 기사.
당연히 현재 수교를 하고 있는 5개국들과의 외교가 주를 이루고 있고, 정상들이 서로 많이 회담을 하기도 한다.
4.1. 튀르키예와의 관계
튀르키예는 압하지야를 공식적으로 국가로 승인한 적은 없으나, 튀르키예에 압하스인들이 많이 살고 있기 때문에 비공식적으로 경제적인 교류가 잦다. 비공식적으로 경제협약도 맺었고, 튀르키예 내 압하지야 관련 축제도 있다. 실제로 이 문제를 조지아 정부에서도 골치 아프게 생각하고 있다.4.2. 러시아와의 관계
자세한 내용은 러시아-압하지야 관계 문서 참고하십시오.조지아를 싫어하는 만큼 조지아로부터의 자신을 보호하고 조지아로부터의 독립을 지지한 러시아와는 사이가 좋다. 다만 압하지야가 러시아에게 적극적으로 달라붙은 것도 어디까지나 조지아의 지배가 싫어서 동조한 것인지라 압하지야 자국내 러시아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도 꺼린다. 때문에 남오세티야와 달리 러시아에 편입하려고 하는 움직임이 약하다.
4.3. 조지아와의 관계
자세한 내용은 조지아-압하지야 관계 문서 참고하십시오.조지아와는 역사적, 정치적 이유로 크게 갈등하고 있으며 압하지야 독립을 짓밟으려는 조지아의 침공을 받아 1990년도 전쟁까지 치르면서 오래전부터 압하지야의 여론은 완전히 반조지아 성향이다.
조지아에서 제안한 압하지야 자치공화국 국기.[25]
조지아측에서 인정하고 있는 압하지야의 합법 정부는 압하스계 압하지야 공화국이 아닌 조지아계 압하지야 자치공화국(აფხაზეთის ავტონომიური რესპუბლიკა / Аԥснытәи Автономтә Ареспублика)이다. 자치공화국 정부는 2008년부터 트빌리시에 망명 정부로서 지금까지 존속하고 있다.
4.4. 남오세티야와의 관계
자세한 내용은 압하지야-남오세티야 관계 문서 참고하십시오.5. 군사
자세한 내용은 압하지야군 문서 참고하십시오.6. 경제
서아시아의 경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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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화는 러시아 루블을 사용하고 있으며, 후술한 고유의 법정통화가 있긴 하나 사실상 수집가들을 위한 기념품 형태로만 발행하고 있다.
2021년 기준 국가예산의 절반 가까이인 43.6%를 러시아에게 지원받는 매우 가난한 지역이다. 1인당 국민소득은 2020년 기준 $1,795에 불과하여 유럽에서는 물론이고 세계 기준으로도 최빈국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인구도 적고 별다른 산업도 없는데 미승인국이라 국제적인 지원을 받기도 어려우니 당연한 이치.
6.1. 아프사르
Аԥсар/Āpsār복수형은 Aԥсарк/Apsark(아프사르크)
환율은 루블당 10 아프사르 고정환율제.
- 동전
1, 2, 3, 5, 10, 20, 25, 50, 100아프사르가 발행되었는데 모두 통용 목적이 아닌 기념주화이다.
- 지폐
2023년에 압하지야 전쟁 승리 30주년 기념 25아프사르권을 발행했다.
2024년 표범이 들어간 10아프사르권과 코카서스붉은사슴이 들어간 100아프사르권을 발행했다.
7. 인구
2011년 인구 조사에서는 압하지야의 인구를 240,705명으로 추산했다. 조사 시기 및 조사 주체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18만 명에서 22만 명 정도로 추정된다.8. 문화
8.1. 민족
이 지역에는 조지아인, 압하스인, 러시아인, 아르메니아인, 흑해 그리스인 등이 정주하고 있다. 1992년 압하지야 전쟁 이전까지는 조지아인이 절반 이상을 차지했으나 전쟁 이후 조지아인 20만여 명이 압하지야에서 쫓겨났고, 압하스인이 다수가 되었다.1989년 당시 압하지야의 인구는 52만 명이었으며, 조지아인(45.7%)이 가장 많았고, 압하스인(17.8%)과 러시아인(14.3%)이 뒤를 이었다. 2011년 통계에서 압하지야의 인구는 52만 명에서 24만 명으로 줄어들었고, 압하스인(50.7%), 조지아인(19.2%), 아르메니아인(17.4%), 러시아인(9.1%), 흑해 그리스인(0.6%) 등이 거주하고 있었다.
8.2. 언어
공용어는 북캅카스어족의 압하스어와 러시아어이며, 그 외에 조지아어, 아르메니아어, 그리고 조지아어의 방언인 메그렐어 등이 사용된다.8.3. 종교
2003년 조사에 따르면 기독교(주로 정교회와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 신자가 60%, 수니파 무슬림이 16%, 압하스 전통 종교[26]가 8%, 무종교·무신론자 8% 등으로 나타났다.8.4. 요리
압하지야의 토속 요리문화로 압하스 요리가 있다. 압하스 요리는 압하스의 지리적 환경에서 비롯된 고유 요리문화가 러시아인, 조지아인, 아르메니아인 등 주변 민족의 요리문화와 교류하여 만들어진 결과이다.9. 교통
수도인 수후미에서 22km 떨어진 곳에 관광명소인 아할리아토니(ახალი ათონი) / 아폰츠츠(Афон Ҿыц)[27]라는 도시가 있는데 이곳의 동굴까지 지하철이 있다고 한다.간선 철도 노선으로 러시아 소치와 조지아의 주그디디(ზუგდიდი, Zugdidi)를 연결하는 간선 철도인 압하지야 철도가 존재하나, 압하지야 전쟁 때 철도가 파괴되어 현재는 소치와 수후미를 연결하는 구간만 운행되고 있다.
10. 국가
1992년 압하지야의 조지아로부터의 독립 선언 이후부터 가사 만들기 작업에 들어갔으며, 조지아 민주 공화국 시절에 쓰였던 압하지야인 혁명 노래 '키아라즈'로부터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1994년 조지아와의 독립 전쟁 이후 작곡가인 발레리 치카두아가 압하지야 초대 대통령인 블라디슬라프 아르진바의 개인적인 부탁으로 작곡을 하였다. 쇼스타코비치 하에서 공부를 하였던 치카두아는 압하지야의 전통 음악을 국가에 담아내려고 노력하였다. 치카두아는 작곡으로 인한 저작권료를 받기를 거부한 채, 난방이 되지 않는 추운 집에서 겨울 내내 작곡에 매진하였다. 이후 대통령으로부터 감사의 표시로 집을 받았다. 여담으로 2018년 치카두아는 소아성애자라는 죄목으로 징역 20년형을 선고받았다.
11. 관광
특히 세계에서 가장 깊은 수직동굴도 압하지야에 자리 잡고 있다. 베료브키나 동굴Пещера Верёвкина)로 1968년에 최초로 발견되었으며 이름은 러시아의 탐험가 알렉산드르 베룝킨(Александр Верёвкин)에서 따왔다. 확인된 총 길이는 2,212m 깊이까지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2018년까지 이곳을 탐사하고 동굴의 깊이를 최종적으로 확인한 러시아 탐험대는 탐험 도중 동굴 안에서 홍수가 나서 카메라 메모리 카드를 제외한 장비들까지 버려가며 대피했다. 2020년 11월 이곳을 탐사하러 간 러시아의 세르게이는 이곳에서 나오지 못하고 저체온증으로 사망해서 2021년에 시체로 발견되었고, 시신은 조각조각 절단되어서 수습되었다. 자세한 건 문서 참고.
다만 한국인이 관광 목적으로 방문하려 할 경우 절차가 좀 복잡해진다. 한국 정부가 조지아 측의 입장을 지지하므로 분리독립에 따른 분쟁지역이기 때문에 조지아-압하지야-조지아, 또는 러시아-압하지야-러시아의 경우로만 여행이 가능하다. 전자의 경우 조금 더 복잡하나 좀 더 국제적으로 합법적이라 인정받는 방법으로 방문이 가능하다. 조지아 외교부는 한국인과 같은 제3국인이 압하지야 및 남오세티야를 방문하려 할 경우 자국의 허가를 받아야 두 지역 방문이 가능하다고 통보한 적이 있다. 조지아에서 압하지야를 거쳐 러시아로 넘어가는 방법이 존재하긴 하나, 이 경우 조지아에서 위험인물로 지정되어 조지아 재입국이 불허된다. 또한 러시아에서 이 지역을 거쳐 러시아로 다시 나오지 않고 조지아로 입국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절차가 약간 까다롭긴 하나 조지아-압하지야-러시아 경로가 아닌 다른 두 경로의 경우 지극히 합법적인 방법이다. 압하지야 및 남오세티야 여행을 법적으로 금지하는 여러 선진국들과는 달리 한국 외교부에서는 안전단계 3단계(출국권고)[28]이 지역 여행이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 국민은 입국 시 비자가 필요하며, 입국 전 사전에 여행 허가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또한 입국 후 3일 내 수후미에서 이 허가를 정식 비자로 바꿔야 한다.
수후미 바부샤라라는 이름의 1960년대 소련 정부에 의해 지어진 공항이 있긴 하다. 국내선만 취항을 하였으며, 압하지야의 해변때문에 오는 관광수요를 부담하기 위해 지어졌다. 현재 내전으로 인해 공항부근에 매설된 지뢰는 전부 제거하는 데 성공하였다고 한다. 2006년 압하지야 정부에서 이 공항을 국제공항으로 개항하려는 욕망을 드러내긴 하였으나, ICAO에서 시설을 승인받지 못하였고, 현재 여기에 비행기가 취항하려면 조지아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한다. 현재는 인구 200명 남짓의 산촌 프스후에 위치한 군사 공항으로의 이동과 러시아 공군을 위해 사용되고 있다. 아직까지도 압하지야 정부는 이 공항을 국제공항으로 개항하려는 욕망을 접지 못하였다. 구다우타 시 변방에도 공군부대를 위한 군사공항이 하나 위치하고 있다.
압하지야에 위치한 동굴을 관광하려는 관광객들의 편의를 위해 협궤 철도가 설치되어 있다. 영상
12. 스포츠
축구가 제일 인기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른 것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미승인국이기 때문에, IOC나 FIFA 같은 국제기구에 가입하지 못하고 있다.12.1. 축구
UEFA와 FIFA 미회원국으로 ConIFA에 가입하였다. 압스니 수페르 리가라는 자체적인 아마추어리그도 가지고 있다. 1994시즌에 시작을 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잘하는 선수들은 러시아 하부리그에서 뛰는 듯하다. 리그는 춘추제로 운영된다. 2021시즌은 서로 3번씩 맞붙어 21라운드에서 리그가 종료되었다.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컵 대회와 수퍼컵도 존재한다. 다만, 2부리그인 내셔널 압하지야 풋볼 리그와의 승강제는 현재 시행하지 않고 있다.다음은 2023시즌 참가구단이다.
- FC 나르트 수훔 - 2021시즌 우승팀.
- FC 리차 구다우타 - 2021시즌 준우승팀.
- FC 가그라 - 2020 압하지야 컵 우승팀. 리차 구다우타를 상대로 2대1 승리를 거두었다. 조지아에도 2004년에 창단된 같은 이름의 팀이 존재한다.
- FC 디나모 수훔 - 압하지야를 연고로 하는 구단 중에서는 최고의 명문팀이다. 소련 2부리그까지 진출한 적이 있다. 한 때, 러시아 3부리그에 편입하려는 논의도 진행되었다. 러시아어 위키백과에 따르면 외국인 선수도 보유하고 있다! 현재 이 구단은 압하지야에 남아 2010년경에 재창단된 팀으로, 조지아로 건너간팀은 현재 조지아 5부리그에서 뛰고 있다.
- FC 예르차후 오참치라
- FC 아폰 노비 아폰
- FC 사즈 찬드리프시(간티아디)
- FC 사무르자칸 갈
아르메니아 프리미어 리그의 FC 우라르투에서 뛰는 레온 사부아가 압하지야의 가그라 출신이다. 조지아 여권과 러시아 여권도 소유하고 있다.
튀르키예 국가대표 골키퍼인 알타이 바이은드르가 압하스인이다.
12.1.1. 국가대표
2016년 자국에서 열린 ConIFA 월드 풋볼컵에서 극적인 우승을 하는 등, 피파 비회원국 중에서는 나름대로 강호로 평가받았으나, 2018년 런던 대회에서는 조별리그 탈락, 2020년에는 아예 예선단계에서 떨어지는 등 점점 실력이 하락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ConIFA 유로 대회에서는 2017년 대회에서 4위, 2019년 대회에서는 3위를 기록하였다. 2016년 월드풋볼컵 유치를 위해 수도인 수후미에 인조잔디로 된 새로운 축구 경기장을 하나 만들었다.2020년 2월 말 현재 ConIFA 랭킹에서 8위를 차지하고 있다.
현재 압하지야 국가대표로 뛰고 있는 선수들 중 가장 높은 수준에서 뛰고 있는 선수는 세르비아 1부리그의 OFK 바치카 소속의 샤바트 로구아, 카자흐스탄 명문팀 FC 카이라트의 유소년 팀 소속인 로만 지크라치, 러시아 2부리그 알라니야 블라디캅카스 소속의 알란 후가예프 정도가 있다. 하지만 압하지야를 국가로 인정하는 곳이 많지 않기 때문에 보통은 러시아 국적으로 소개된다.
[1] Apsnə Aḥʷəntkarra[2] Respúblika Abxázija[3] 압하스어 표기는 아슬란 브자니아(Аслан Бжьаниа).[4] 압하스어 표기는 알렉산드르 안콰브(Александр Анқәаб).[5] 소련의 도메인이었으나 소련의 해체후 현재 친러 미승인 국가인 남오세티야, 압하지야가 사용하고 있다.[6] 외교부 해외안전여행(조지아 정보, 이유는 미승인국 문서 참고.)[7] [apʰsˈnɨ\][8] 압하스어 명칭은 아콰(Аҟәа).[9] 당시 압하지야는 조지아가 제안한 자치공화국의 수준보다 이상의 자치를 원했다.[10] 조지아 마피아의 대두목이기도 하다.[11] 압하지야는 이원집정부제를 운영하고 있다.[12] 압하지야에는 압하스인 이외에도 소수의 러시아인, 아르메니아인, 메그렐인, 조지아인이 살고 있다.[13] 발레리안 코바히야(Валериан Кобахия, 1990), 블라디슬라프 아르진바[14] 블라디슬라프 아르진바(1992.7~1994.11)[15] 원래 2004년 10월에 대선이 이루어졌으나, 결과를 놓고 친정부 성향 라울 하짐바와 세르게이 바갑시가 논쟁을 벌이면서 재선거를 하기로 결정하였다.[16] 공무 중 사망[17] 공화주의, 사회보수주의 정당[18] 9월 26일까진 권한대행[19] 공무 중 사임[20] 반-하짐바 성향의 정당[권한대행] [22] 반정부 시위 이후 대통령 지위 박탈[23] 압하지야 국가 단결을 위한 포럼. 친 하짐바 성향의 친러민족주의 정당이다. 2024년 현재 야당 역할을 맡고 있다.[권한대행] [25] 한 국가에서 독립한 미승인국가에 대해 대부분 해당 국가에선 미승인국 영토의 국기, 국장 등의 상징을 따로 제작하는 경우는 없는데, 조지아는 압하지야 자치공화국에 대해선 자체적으로 국가와 국장 도안을 제안, 제작하였다.[26] 토착 신앙을 바탕으로 현대에 종교의 형태로 부흥시킨 것이다.[27] 러시아어 명칭은 노비아폰(Новый Афон). '새로운 아토스'라는 뜻으로 1874년 아토스 산에서 온 수도자들이 세운 수도원이다.[28] 조지아 정부에서 자국의 허가 없는 외국인 방문에 대해 벌금 부과, 체포·구금 등 입장으로 설정하고 있어 2019년 상반기 등급 상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