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4 23:28:07

러시아/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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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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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iii 카자흐스탄 트란스니스트리아ii
i: 우랄 산맥 서쪽 지역은 동유럽에 속한다고 본다.
ii: 미승인국
iii: 기준에 따라 서아시아로 분류 될 때도 있다.

1. 개요2. 유럽아시아 사이의 애매함3. 관광4. 언어5. 문학6. 음악7. 발레8. 미술9. 영화10. 음식
10.1. 음주10.2. 차() 문화
11. 전통공예12. 학문13. 교육14. 스포츠15. 성문화16. 비디오 게임17. 관련 문서

1. 개요

소련 붕괴 이전인 1980년대 말 소련 정부가 미국 문화에 대해 개방조치를 취한 이후 패스트푸드, 청바지, 팝 등의 미국 문화는 1년도 안 되어 소련 국민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물론 그 전에 서방 문화가 완전히 차단되어 있었다는 건 아니고, 펩시 콜라가 인기를 끌고 일부 예술영화도 상영되는등 암암리에 들어올 건 다 들어왔다.[1]

실제로 1960년대 소련에서는 재즈 페스티벌이 열린 바 있고# 소수이긴 하지만 로큰롤이나 서구음악을 연주하는 뮤지션들이 존재했다. 많은 음반들이 밀수를 통해 소련 국내로 흘러들어왔고, 1970년대에는 언더그라운드 펑크 록 씬도 있었으며, 1980년에는 록 페스티벌도 열렸다! 당장 메드베데프 총리도 소련 시절부터 락 음악 덕질을 시작한 인물 중 하나. 게다가 많은 영화나 음반이 불법 복제품으로 유통되었다. 이는 유럽의 현실사회주의 국가들은 동양의 공산국가들이나 알바니아 같은 일부 특이케이스들과 달리 정치나 사상면에서는 억압적이라도 개인들의 사생활에는 어느 정도 여유있는 태도(국가가 관여할 것이 아니라는 시각)로 일관한 것에서 기인한다.

2. 유럽아시아 사이의 애매함

러시아의 근원은 유럽이며 그에 따라 러시아의 문화 또한 기본적으로 슬라브 문화가 바탕에 있다. 그러나 정교회 동로마 문화와 몽골 지배로 흘러들어온 몽골 문화러시아인들에게 강한 영향을 끼쳤다. 몽골의 지배(킵차크 칸국)는 서구화를 지향하는 러시아인들에게 매우 부정적으로 묘사되곤 했으나, 러시아 역사에서 전반적으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여기에 표트르 대제의 급격한 서구화에 맞물려 러시아는 여러 문화가 혼합된 매우 특수한 문화를 갖게 되었다. 이렇듯 다양한 러시아의 모습과 정체성은 바로 이런 역사적 특수성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동쪽으로의 확장으로 러시아는 유럽 러시아와 함께 아시아 러시아도 아우르게 되면서 러시아는 유럽 문화와 아시아 문화가 필연적으로 혼합되게 되었다. 때문에 아시아인들은 러시아를 가보면 서구적이라고 느끼지만, 서양인들은 러시아에 오면 아시아적이라고 느낀다고 한다. 그래서 유럽인들과 미국인들 중에서는 러시아를 유럽이 아니라 아시아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생각은 러시아의 역사적인 발전 과정을 고려한 것일수도 있으나 러시아를 비하하려는 의도를 가진 것일 수도 있다.

역사적으로 러시아는 오랜 시간 동안 서유럽과는 별도로 독자적인 역사적 과정을 밟아 왔으며, 이 때문에 역사적으로 러시아는 아시아로 취급되는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으로 나폴레옹이 러시아와의 전쟁 때 러시아인을 타타르족이라고 불렀으며, 제2차 세계 대전나치 독일도 소련을 몽골이라고 불렀다.

미국 등 서구권에서 만들어진 중, 근세 러시아 역사를 배경으로 하는 시대물에서는 러시아로 결혼해서 살러가는 유럽의 왕녀나 귀족 여성이 "동토의 아시아 국가로 가게 됐다."고 말하는 장면이 종종 등장한다. 실제로 잉글랜드 여왕 엘리자베스 1세에게 청혼했다가 거절당한 이반 뇌제가 엘리자베스 1세의 시녀에게 청혼을 했는데, 시녀가 저런 말을 하며 뇌제의 청혼을 거절했다.[2]

러시아인들도 서유럽인들의 이런 인식을 모르는 게 아닌지 러시아에서 제작한 사극에서도 러시아 제국 황태자에게 시집가는 독일인 여주인공이 아시아 국가 운운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유럽에서는 '유럽' 문화와 이질적이거나, 혹은 낙후된 국가들을 아시아라고 비하하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대표적으로 헝가리는 19세기까지 아시아라는 소리를 들었고, 폴란드, 슬로바키아, 체코, 발칸반도 국가들도 학술적인 분류로는 유럽일지라도 아시아라는 소리를 들으며 무시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카프카스 지역의 조지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에 관한 논란은 현재 진행형이다. 덤으로 스페인은 나폴레옹에게서 "유럽이라기보다는 아프리카에 더 가깝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3]

유럽 내 민족과 유럽 국가들이 유럽의 범위에 포함되기 시작한 순서와 미국에 이민을 가서 미국 사회의 주류에 합류한 순서는 매우 비슷하다. 미국은 대항해시대 당시 유럽인들이 발견하고 개척한 아메리카 대륙인 만큼 미국에 가장 먼저 이민 온 민족은 유럽계이다.[4]

여기까지는 당연한 사실이고 흥미로운 건 유럽계 이민자들도 미국에 정착하여 주류 민족으로 자리잡은 시기가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미국에 가장 먼저 정착하고 미국을 건국한 건 누가 뭐래도 영국계이다.

여기까지도 당연하지만 중요한건 누가 영국계 다음인가? 라는 질문인데, 영국계 다음으로 미국에 정착하여 그 사회에 주류가 된 건 독일계, 오스트리아계, 스위스계이고, 유럽의 범 게르만계인 네덜란드계는 이보다 더 빨랐다.

그리고 스웨덴계, 노르웨이계, 핀란드계, 덴마크계, 아이슬란드계와 같은 북유럽 출신 게르만[5] 이민자들은 서유럽 이민자들보다는 늦었다. 그래서 이들은 주로 중서부 지역에 정착했다.

영국계와 게르만계를 제외하고 미국에 가장 먼저 발을 들인 이민자는 캐나다에서 미국으로 재이민한 프랑스계 미국인[6]들의 후손들이고, 19세기 후반 이후 유럽계 중에선 그리스계가톨릭이탈리아계, 아일랜드계, 폴란드계 그리고 동유럽 유대인 이민자들이 미국에 수백만 명 단위로 대거 이민을 온다.

지금이야 미국 이민 시기도 늦고 중남미의 정치 경제 상황과 지리적 인접성 때문에 이민이 현재진행형인 히스패닉계가 미국 사회의 하류층을 구성하며 등에 종사하기도 하지만 그 당시엔 미국 이민이 늦은 이탈리아계, 아일랜드계가 미국 사회의 하류층을 구성하며 마피아에 종사하기도 했다.

유대인들은 유럽계 이민자가 아님에도 이탈리아계, 아일랜드계와 비슷한 시기에 이민을 왔으며, 가톨릭 이민자들과 마찬가지로 2차대전이 끝난 이후에야 사회적 차별이 철폐되었다. 그래도 존 F. 케네디 대통령 이전 미국 대통령들은 WASP에서만 나왔다.

2차 대전 전후로 동유럽의 반공 난민들이 미국으로 이민 정착하고 냉전이 본격화한 이후 유럽계 이민자들의 미국 사회 합류 작업은 서서히 마무리된다. 유럽계 이민자들이 미국 사회의 주류가 될 무렵 인도계동아시아계 이민자들이 미국 이민을 선택하여 앞선 유럽계 이민자들의 노선을 밟고 현재는 히스패닉계가 이민 및 동화 노선을 밟고 있다.

물론 이건 세부적인 이야기이며 세계적 인식으로 따지자면 러시아의 수도나 중심지가 유럽 땅에 있으며 인종(인도유럽어족), 문화적(기독교)으로도 러시아를 유럽으로 보는 편이 우세하다.

당연히 이 문제를 두고 러시아 내부에서도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가령 러시아를 유럽의 일원으로 여기던 (서)유럽주의자들과 "러시아는 러시아다."라며 러시아 자체적인 특수성을 신봉하던 러시아주의자(슬라브주의/유라시아주의)로 나뉘어 논쟁하기도 했다.

역사적으로 러시아는 서유럽에서 많은 문물을 받아들여왔다. 나폴레옹 시대의 러시아는 왕족과 귀족들이 프랑스에 조그마한 땅이 있거나 잠시 활동하고 온 걸 자랑하기도 했으며 러시아어보다 프랑스어를 쓰는 것을 더 자랑스러워했다.

일부러 하층민들이 자기네들끼리 하는 말을 못 알아듣게 하면서 무시하려고 사생활에서 자기들끼리 프랑스어를 쓰는 러시아 귀족들도 흔했다. 당시 러시아에서 프랑스어는 상류층의 상징이며 필수 교양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러시아에서는 러시아 5인조의 예에서 알 수 있듯 유럽권 국가에서 서유럽이 이끌던 클래식 음악과는 다른 자신들만의 음악을 시도하고 그것을 기존의 클래식 음악과 같은 위상으로 올려놓은 국가이기도 하다.

소련 시절에도 이 논쟁은 지속되었는데 레닌의 후계자 자리를 둘러싼 트로츠키스탈린의 권력투쟁을 유럽주의자와 러시아주의자의 투쟁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트로츠키는 신생 소련은 세계혁명, 우선적으로는 서유럽에서의 혁명이 없다면 생존할 수 없을 것(세계혁명론 또는 영구혁명론)이라고 봤고, 스탈린은 러시아가 독자적으로 공산주의를 건설할 수 있을 것(일국사회주의론)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광범위한 러시아주의자의 지지를 업은 스탈린이 승리했으나, 소련 말 고르바초프, 옐친같이 서방에 유화적인 지도자가 나오는 한편, 푸틴 같이 친서방을 취하다가 다시 독자노선을 걷는 등 시대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3. 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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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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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문학

러시아 문학의 선구자 알렉산드르 푸시킨(1799~1837)이 1825년 예브게니 오네긴을 발표한 이래 19세기를 황금 시대(Golden Age), 20세기를 은의 시대(Silver Age)로 칭한다. 알렉산드르 푸시킨, 니콜라이 고골, 미하일 레르몬토프, 이반 투르게네프,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레프 톨스토이, 니콜라이 레스코프, 안톤 체호프, 막심 고리키, 이반 부닌,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미하일 불가코프, 미하일 조셴코, 안드레이 플라토노프, 블라디미르 나보코프[7], 미하일 숄로호프,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등은 러시아가 세계에 자랑하는 작가들이다. 열거된 문인들은 대부분 소설가인데 사실 러시아 산문보다는 시야말로 러시아 문학의 정수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상당히 유명하다. 알렉산드르 블로크, 오시프 만델시탐, 빅토르 흘레브니코프, 블라디미르 마야콥스키, 마리나 츠베타예바, 안나 아흐마토바, 조지프 브로드스키 등 현대 문학사에 발자취를 남긴 시인들을 많이 배출해냈다. 미래주의 문학이 러시아에서 출발한 건 덤. 이처럼 러시아가 세계 문학사에서 남긴 자취는 정말 크다.

놀라운 건 이마저도 이오시프 스탈린때문에 정말 꺾이고 또 깎인 뒤 남은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이는 그 악명 높은 스탈린마저 러시아 문학의 유구한 전통을 완전히 소멸시킬 수는 없었음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한때 시인이기도 했던[8] 그가 미친 악영향이 심히 지대했음을 보여주는 모습이기도 하다. 보리스 필냐크와 이삭 바벨은 처형당했다. 유리 올레샤와 안나 아흐마토바는 강제로 붓을 꺾어야 했고, 마리나 츠베타예바는 가족이 수용소로 끌려갔으며 자신 또한 그 뒤를 따를까 두려워하여 자살했다. 오시프 만델시탐은 유배당했다가 결국 대숙청에 휘말려 수용소에서 사망했고, 다닐 하름스는 아사했으며, 예브게니 자먀틴은 망명지에서 객사했다. 안드레이 플라토노프는 아들을 볼모로 창작 활동이 꺾여버렸고[9] 미하일 조셴코는 작가동맹에서 제명되어 생계 곤란을 겪었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와 미하일 불가코프는 그나마 처지가 나았지만 이들 또한 스탈린의 눈치를 지속적으로 봐야 했다. 그의 탄압은 개별 문학가에 그치지 않았다. 이디시어 문학은 철저한 숙청의 결과 뿌리 채로 뽑혀나갔고, 본인의 모국어이기도 했던 조지아어 문학은 스탈린 사후 숙청의 여파에서 벗어나 상흔을 복구하는데 수십 년이 걸렸다.

18세기까지만 해도 유럽에서 크게 주목 받지 못했지만 19세기에 접어들면서 앞에서 열거된 작가들이 러시아 문단에 등단했고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19세기부터 20세기 중반까지의 러시아는 조국전쟁, 데카브리스트의 난, 크림전쟁, 농노해방령, 서구주의와 슬라브주의의 갈등, 산업혁명, 1차 세계 대전, 러시아 혁명, 적백내전, 대숙청, 독소전쟁 등 정말 다양하고 처절한 사회적 혼란과 격변을 겪었고, 이는 작가들에게 무궁무진한 소재를 제공했다.

일찍부터 해외문학을 번역해온 일본에선 메이지 시대의 작가들이 러시아 문학가들의 주옥같은 작품들에 기가 죽어 공로병(恐露病)이라고 불렀을 정도이다. 나쓰메 소세키가 일본 작가들이 러시아 문학에 가지고 있던 공로병 증상을 비판한 적도 있다. 러시아 문학은 일본 근대문학은 물론이고 현대(19세기~20세기) 한국 문학에도 지대한 영향을 주었는데 일제강점기 때 러시아 소설들이 많이 알려졌다. 현대 한국 작가들 중엔 시인 겸 소설가 이장욱이 러시아 문학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읽다 보면 한국인들의 정서에도 꽤나 맞는 작품들이 많기 때문인지 러시아 고전문학은 현대에도 한국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다만 이시절에 나온 세계적인 수준의 작가들은 기이하게도 20세기 후반부터는 더 이상 나오지 않고 있다. 이는 국제 도서전에서도 여러차례 지적된 상황. 1900년대 초반에 태어나 스탈린 사후 해빙기에 활발히 활동한 아나톨리 리바코프,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블라디미르 두딘체프, 유리 트리포노프, 칭기스 아이트마토프, 발렌틴 라스푸틴, 아나톨리 김[10]을 마지막으로 세계적인 작가가 나오지 않고 있다. 오죽하면 블라디미르 지리노프스키가 대문호 배출을 위해서 사람들을 감옥에 처넣자는 개드립을 칠 지경.(...)

한국에서 러시아 문학 번역이 활발해지는 시기는 철의 장막이 무너지고 북방외교라는 표어 아래 공산권 유화정책을 취했던 노태우 정권 부터다. 1990년에 닥터 지바고의 최초 러시아어 완역본이 열린책들에서 출간되는 등 과거 중역으로 접해온 대작들이 원어로 번역되고 중앙일보사에서 중국현대문학전집과 함께 기획한 소련동구현대문학 전집을 통해 은의 시대와 해빙기에 활동한 주옥같은 작가들의 작품이 번역되어 한국 독자들을 즐겁게 했다.[11] 노문학 번역붐은 2000년대 초반까지 이어졌는데 이때 번역되었다가 절판되고 재간되지 못한 작가, 작품들도 상당히 많다. 특히 솔제니친을 제외한 해빙기 작가들의 작품들이 그렇다.

2020년대 한국에서 러시아 문학하면 보통 19~20세기 초반 태생 작가들의 근대 문학과 드미트리 글루홉스키메트로 시리즈, 세르게이 루키야넨코의 위치 시리즈 같은 현대 SF/판타지 소설을 떠올린다. 소련 해체 이후에 등장한 빅토르 펠레빈,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타티야나 톨스타야, 보리스 아쿠닌, 이리나 제네쥐끼나 같은 작가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인문학에서 다음 같은 사건도 있었다. 영국에선 식료품점에서 어제한 축구 얘기하다 주먹싸움이 벌어진다면, 러시아에선 식료품점에서 칸트 사상 논쟁 하다가 총을 쏜다.(...) 실제로 러시아에서는 철학에 대한 토론이 매우 빈번하게 일어나는 편이다.

6. 음악

독일과 더불어 클래식 음악의 본 고장이며, 차이콥스키, 라흐마니노프, 쇼스타코비치, 스크랴빈, 프로코피예프, 메트너, 미하일 글린카, 러시아 5인조, 스트라빈스키, 안톤 아렌스키, 드미트리 카발레프스키, 알렉산드르 글라주노프, 아람 하차투리안 등이 현재까지도 사랑받는 러시아의 세계적인 음악가이다.

러시아 민요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검은 눈동자, 칼린카가 대표적인 러시아 민요이다. 워낙 많은 민족이 있는 나라이다보니 카자크 민요라든지 집시 민요가 러시아 민요에 흡수되었다. 이런 민요들 중에서도 유명한 게 꽤 있다. 테트리스의 음악이 모두 러시아 민요이다보니 노래 제목은 몰라도 들어보면 아 이노래 하고 대부분 알 것이다.

또한 러시아의 대중 가요가 꽤나 더디게 발전한 것은 사실이지만, 차이콥스키로 유명한 러시아인들의 음악적 재능이 달아나는 것은 아닌지라 좋은 곡들이 많이 만들어졌고,특히 예고르 레토프의 그로즈단스카야 오보로나(민방위), 레닌그라드 록의 전설 아크바리움, 레오니트 표도로프의 아우크치온, 빅토르 초이키노, 비체슬라프 부투소프의 나우틸루스 폼필리우스, 고르쇽-크냐지의 카롤 이 슈트, 유리 호이의 섹토르 가자, 유리 셰프추크의 ДДТ 등으로 대표되는 1980~90년대의 격동기에 여러 밴드들이 내놓은 수많은 곡들은 시같은 느낌의 환상적이고 수준높은 가사들과 폭발적인 멜로디를 가지고 있다.

한국인들에게는 러시아인들이 대중 가요는 못 만들고 군가와 민요만 발달했다는 묘한 선입견이 있는데, 이것은 우리가 광복 이후 냉전기 약 40여 년간 러시아와의 제대로 된 교류가 없어서 몰랐던 것이지 러시아 대중 가요가 수준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백만송이 장미도 소련 시절 가요다.[12]

친정부적 가요 장르인 에스트라다 가요 중에서도 지금 들었을 때 꽤나 훌륭한 것들이 많고, 그 중 상당수는 서구로도 건너가 인기를 많이 끌었다. 물론 서정적인 가곡도 많이 발전했다. 소련 시절에 비정치적이라고 하여 많은 디스를 받았지만, 많은 가수들의 노력으로 러시아 로망스는 그 나름의 맛을 인정 받고 있다.

또한 체제의 폭압을 거부하며 러시아 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만들어낸 바르드 가요라는 것이 있다. 기타 한 대를 들고 자신들이 쓴 시에 자신들의 곡을 붙여 부른 것들을 바르드 가요라고 한다. 음유시라고 번역된다. 이것도 마찬가지로 비정치성과 반항성으로 체제의 탄압을 받았다. 그러나 바르드 가요의 인기는 어마어마한 것이어서, 80년대 러시아 록의 발전에 주요한 영향을 끼치기도 하였다. 이러한 음악들은 주로 마그니티즈다트라는 카세트 테이프 녹음집에 담겨져 유통되었다. 블라디미르 비소츠키불라트 오쿠자바를 바르드의 양대산맥이라고 일컬으며 율리 킴과 1세대 바르드 가수인 알렉산드르 갈리치를 더하여 4명을 주요 가수로 꼽으며, 이들 이후로는 알렉산드르 바실라초프[13]가 전통을 이어받았다고 이야기한다.

싱어송라이터 레지나 스펙터는 러시아의 유대계 가정에서 태어나 9세때 가족과 함께 뉴욕으로 이주하여 현재는 미국에서 주요 무대로 활동하고 있다.

러시아에서 유래한 악기로 바얀(아코디언의 일종) 등이 있다.

7. 발레

볼쇼이와 마린스키라는 라이벌 발레단이 세계적으로 매우 유명한 것처럼 발레는 러시아 문화를 상징하는 행위문화예술 중에 하나이다.

8. 미술

일리야 레핀, 샤갈, 칸딘스키 등 러시아의 미술 작품과 화가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9.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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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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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음주

보드카의 나라. 대표적인 보드카로 스톨리치나야가 있으며, 과거에는 스미노프[14]도 생산했다. 옛날부터 남자들이 에 쩔어서 사는 것이 거의 전통이다.[15] 일단 러시아에서 제일 유명한 사람 중 한명인 표트르 대제가 가뜩이나 건강이 안 좋은데 술을 끊지 못하고 지나치게 마셔서 죽었다는 것만 봐도 러시아인이 얼마나 술을 사랑하는지 짐작 할 수 있다. 대낮에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축축 늘어져 있을 정도.[16]

근래에 들어서는 큰 사회문제가 되고 있어 러시아 정부는 오래 전부터 술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이럴수록 불법으로 밀조되는 술들이 늘어나고, 그 질도 조악한 화학합성물이 많아 잘못 먹으면 큰일이 생길 수 있다! 고르바초프가 일시적으로 금주령을 제정했을 때 특히 밀주가 심했다. 참고로 러시아인들에게 감히 금주령 따위를 선포한 고르바초프는 지지율을 모조리 날려먹고 차기 대선에서 보기 좋게 낙선하게 된다. 자세한 것은 금주령 문서 참조.

이렇게 술이 극도로 대중적이다 보니 음주운전도 예사에 교통사고도 많이 일어난다. 여기에 신년 때는 과음을 하고 길거리에서 자다가 동사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 따라서 당국에서도 이 때만큼은 평소의 3배에 달하는 경찰력을 풀어 취객들을 안전하게 귀가시키는 데 전력을 다한다.

얼마나 전 국가적으로 에 대한 개념이 관대했는가 하면, 금주 정책의 일환으로 주류를 구매할 때 전용매장에서 허가 하에 구입해야 하는 러시아에서 맥주는 2011년까지도 음료수로 분류되어 슈퍼에서 탄산음료 사는 듯한 개념으로 구입, 판매가 허용되었다.[17] 이 정도의 도수는 느껴지지도 않았다는 듯이. 하지만 금주정책을 더 강화하는 와중에 러시아 국가두마(하원)가 2009년 9월에 맥주를 술로 인정하는 '알코올 제품 생산과 유통에 관한 국가통제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제는 맥주도 밤 10시 이후에 구입할 수 없다.

"크바스"라는, 맥주와 유사한 전통적인 알코올성 음료가 있는데(알코올 도수는 맥주의 절반 정도), 이것의 경우 러시아인들은 어린 시절부터 즐겨 마시며, 술로 취급하지 않는 듯하다. 예부터 러시아에선 온도가 -40도보다 높으면 추운 날씨가 아니고 알코올 도수 40% 이하는 술이 아니라고 할 정도로 도수 40% 이상의 독한 술을 즐겨 마신다.

유달리 남성에게 음주가 더 권장되고 관대한 문화가 있는데, 여성에게는 이것이 훨씬 덜하다. 실제로 많은 러시아 여성들은 남자들의 무분별한 음주를 그다지 좋게 보지 않는다. 그래서 러시아에서 남자들과 친해지려면 술을 좋아한다고 하고, 여자들과 친해지려면 술을 멀리한다고 말해야 한다고 할 정도. 물론 러시아에도 술 좋아하는 여자, 술 싫어하는 남자는 있다. 러시아의 전반적인 마초적 문화상 분위기가 그렇단 것이며, 통계로도 남녀 격차가 대놓고 드러날만큼 나름대로 뚜렷한 경향이다.

그래서 러시아 남성의 알코올 의존증은 러시아의 큰 고민거리이다. 인구 문단에서 상술했다시피 여성 평균 수명보다 남성 평균 수명이 15년 가량 적다.[18] 통계에 따르면 남성들 중 무려 25%가 55세 이전에 사망한다고 한다! 원인은 대부분 알코올 중독과 간암, 간경화 등 간 관련 질환. 러시아 남성의 평균 수명이 64년[19]에 불과하여 자녀가 아직 20대인데도 불구하고 아버지가 사망하는 경우가 흔하다. 또한 알코올 중독으로 인한 범죄와 가정폭력, 이혼이 심각해서 러시아 내에서도 큰 문제일 정도다. 비록 2010년대 들어서 맥주 주류 지정 등의 반 알코올 정책으로 알코올 소비가 줄고있기 때문에 평균수명이 점차 연장되어가고 있다지만 아직 한참 멀었다.

운전자가 술을 마시면 자동차 시동 자체가 걸리지 않는 특수 안전장치 개발을 추진 중이다.#

10.2. 차() 문화

보드카의 이미지가 워낙 강렬해서 삼시세끼 보드카만 마시는 고주망태의 나라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상당수 사실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러시아는 전 세계에서 손 꼽히는 대표적인 차 소비국중 하나이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전 국민의 98%가 차를 즐기며 초등학생들도 학교에 보온병을 가져와 쉬는 시간마다 개인 컵에 자연스럽게 차를 우려 마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물론 보드카의 이미지가 워낙 크기 때문에 러시아와 같이 차를 즐겨마시기로 유명한 중국, 영국에 비해 차 문화는 크게 알려지지는 않은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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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차 문화는 사모바르(самова́р)라고 불리는 주전자가 유명하며 러시아의 소설에선 소품으로 사모바르가 꼭 등장할 정도. 사모바르는 주전자 중심부에 원통형으로 빈 공간이 있고 그 공간에 불을 피워 물을 끓이는 구조로 이름도 "스스로 끓이는 용기"라는 의미이다.

또한 홍차에 과일 을 곁들여 먹는데 이런 방식을 '러시안 티'(Russian Tea)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는 러시아에선 차를 진하게 타거나 여러번 찻잎을 우려내서 홍차가 쓴맛이 강한 편이라서 주로 입에 잼을 머금거나 홍차에 잼을 타서 먹는 방법이 생긴 것. 물론 무조건 잼만 쓰는건 아니고 각설탕을 홍차에 적시거나 갉아 먹으며 홍차를 한 모금 마시는 식도 있으며 영국처럼 달달한 과자나 케이크[20]등의 간식들을 곁들여 먹기도 한다.폴로늄설탕넣은 홍차. 너 홍차

11. 전통공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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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료시카(Матрёшка)

흔히 러시아 인형(Russian doll)이라고 부르는 마트료시카는 엄마라는 뜻의 ма́ма의 지소형이다. 러시아어에선 작은 것을 뜻하거나, 애정을 담거나, 조서의 의미로 원래의 단어에 지소형을 붙인다. 주로 슈카나 치카를 붙인다. 즉 작은 엄마라는 뜻이다. 다산의 상징이기도 하다. 전통 방식은 전통복장을 입은 러시아 여성 모양이지만 요즘에 기념품으로 만드는 건 여러가지 인물이나 캐릭터를 자유롭게 넣기도 한다. 마트료시카는 관광객들에게도 빼놓을 수 없는 기념품이다.

또한 동로마 이후 정교의 중심지 역할을 수행한 국가답게 이콘부활절 달걀 공예도 정교한 편이다. 기념품을 사려고 하나 돈이 없을 경우엔 허접한 기념품가게 마트료시카보다 이런 기독교 관련 민예품들로 시선을 돌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12. 학문

과거 러시아 제국에는 귀족과 개혁 이후 늘어난 중산층 지식인들 사이에서 과학 연구가 활발하였으며, 소련 시대에는 세계적인 과학 강국[21]으로 손꼽혔으며, 기초과학이 탄탄하기로 유명했다. 그러나 소련 붕괴의 여파로 현재 러시아의 기초과학은 물론 특히 연구에 돈이 많이 드는 응용과학 분야는 매우 침체되어 있는 상황이다. SCI 등재논문의 피인용율을 통한 과학기술분야의 연구성과 측정에서 한국은 물론이고 대만이나 인도보다도 연구성과가 뒤떨어질 정도.# 해당 보고서를 확인해보면 단 한 번도 러시아가 거론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단 하나의 분야에서도 7위 이내에 거론되지 못하고 있으며 SCI 논문 피인용 상위 1%에서는 20위권에도 들지 않는다는 사실은 러시아의 기초과학이 세계 최고수준과 거리가 있음을 명확히 드러낸다. SCI 논문수로 보면 러시아는 2006년(35813편, 14위) 이후 꾸준히 증가하여 2019년 기준 111,820편의 논문을 냈고 이는 세계 10위에 해당하는 수치지만 논문 1편당 인용수가 0.38에 불과해 50위 내의 국가 중 인도네시아 다음으로 낮아 실제 학문 분야에 끼치는 기여도는 논문 수에 비해 미미하다. 또다른 지표인 네이처 인덱스에서 러시아는 2021년 기준으로 18위에 불과하여 싱가포르, 이스라엘, 스웨덴보다도 연구 성과가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난다.

대학으로 보면 네이처 인덱스 내의 500개 대학 중 러시아 대학은 모스크바국립대학과 상트페테르부르크국립대학 단 2개만이 순위에 있을 뿐이며 이는 대만(500위 내에 5개)보다 적으며 대학 순위도 각각 299위, 397위에 불과한데 전자는 한양대학교(250위), 후자는 GIST(390위)보다 연구 성과가 떨어진다는 평가이다.

2013년에는 푸틴이 직접 “현재 러시아 기초과학 수준은 소련 시절 구축한 성과에서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고 언급하면서 대대적인 투자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 다음해인 2014년에도 푸틴은 인재유출에 대해서 심각한 우려를 표시하였다. ‘두뇌 말라가는’ 러시아, 푸틴의 또다른 고민

이렇게 러시아의 기초과학이 침체된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우선 소련 붕괴 후 경제난으로 인해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가 급격히 감소한 데에서 비롯된것이다 2010년 기준으로 러시아 최고 연구 기관들의 예산은 유사한 미국 연구기관들의 5% 정도에 불과한 수준이었다. 또한 소련 붕괴 후 한동안 학자들과 연구원들의 급여가 미화 월 수십달러, 많이 받아봐야 수백달러 수준에 불과했기 때문에 8만 명에 달하는 고급 연구인력들이 먹고살기 위해 대거 빠져나갔고,[22] 2000년대에 경제가 정상화된 이후로도 부족한 투자로 인해 두뇌유출이 지속되고 있다. 러시아 정부에서는 어떻게 도로 데려와보려고 똥줄이 타는 듯 하나, 관료들과 해외 러시아 과학자들 간 의견이 잘 안맞아서 해외 러시아 과학자들이 불만을 토로하는 상황이다. 설상가상으로 루블화 가치가 폭락하자 과거에 책정했던 예산의 가치가 반토막 밑으로 떨어지면서 그저 묵념.

또 러시아 과학계의 폐쇄성도 지적을 받고 있다. 러시아 연구자의 다수는 논문을 국제 저널이 아닌 러시아 자국 내의 저널에만 게재하는 경향이 있는데 2005년~2017년 사이에 국제 저널에 논문이 게재된 정도로 분석한 세계화 지수에서 러시아는 0.38점으로 주요국 중 독보적으로 낮다.[23][24] 상위 1% 인용 과학자의 수는 고작 5명에 불과하다. 거기에 국제협력연구 비율은 지난 10년간 꾸준하게 낮아졌다. 특히 러시아가 2014년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한 후에 미국 과학계와의 연결 고리가 끊긴 점은 향후 러시아의 과학계가 세계화될 가능성을 완전히 없애버렸다.

여전히 러시아 과학계의 인력 자체는 많은 편이지만 고급 인력이 외국으로 빠져나가 러시아에 남은 인력은 상대적으로 저질이라는 것도 심각한 문제. 러시아 논문의 질적 수준은 단순히 상위권이 아닌 정도가 아니라 전 세계 국가를 통틀어도 최하위 수준인데, 2019년 SCI 논문 1편당 인용 수에서 러시아의 순위는 213위로 이라크나 쿠바와 비슷한 수준이었고, 논문 수로는 10위 안에 들지만 상위 논문으로 보면 20위 안에 간신히 드는 수준이다. 표절 문제도 심각하다. 러시아가 논문을 게재한 저널 94개 중 37개에서 거짓 협력 사례가 발견되고 61개에서 표절 논문이 드러났으며 이러한 러시아 과학계의 비윤리적 관행은 빙산의 일각이라는 평.[25] 러시아 과학 아카데미는 약 2,528개의 논문을 철회할 것을 자국 과학자들에기 권고했는데 자국에서의 검사가 저 정도이니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나마 수학, 물리학 등 일부 분야에서는 어느 정도의 경쟁력은 유지하고 있다. 즉, 막대한 재정을 투자하지 않아도 머리만 있으면 연구가 가능한 분야[26]는 그나마 명성이 유지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현재도 고등학교(10-11학년) 교육과정중 물리와 화학은 한국의 고교 교과 과정과 비슷하거나 그 이상으로 어렵다.[27] 우리나라의 교육 수준을 고려하면 상당한 것.

2016 U.S. 뉴스 & 월드 리포트의 대학평가에 따르면 모스크바 국립대학교가 종합 순위에서는 227위로 231위인 한국의 성균관대학교와 비슷한 수준으로 나왔다. 세부 분야별로는
물리학 23위
물성물리학 180위
임상의학 집계안됨
생명공학 및 화학생명공학 196위
화학 103위
컴퓨터공학 집계안됨
미생물학 집계안됨
수학 51위 로 나타났다. 수학, 물리학에서는 강세를 보이나 나머지 분야에서는 한국과 비슷하거나 뒤쳐지는 것으로 집계되었다. 참고로 한국, 러시아 둘 다 집계가 안된 분야는 이 항목에서 명시하지 않았다. 또한 집계가 안된 것은 아예 순위 밖으로 나가떨어진 것이거나 평가기관 측에 제공된 자료가 없어서 집계가 불가한 경우 중 하나이니 섣불리 뭐가 높고 뭐가 낮다고 여기지 말 것을 당부한다. 애초에 대학평가가 절대적인 것도 아니고.

상하이교통대학 세계대학평가에서 모스크바 대학교는 [28] 동 시기 서울대학교의 경우 [29] 물리학이 모스크바 대학교보다 앞서고 수학에서 뒤쳐지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종합 평가에서는 모스크바 대학교가 86위, 서울대학교가 101~150위 사이로 모스크바 대학교가 약간 더 우위라고 평가되었다.

그러나 물리학에 있어서도 다른 학문에 비해 상황이 나은거지 딱히 러시아가 해당 학문을 주도하는 수준은 절대 아니다. SCI 논문 인용수로 러시아는 9위, 네이처 인덱스에선 15위에 불과하다. 수학으로 보면 러시아는 분명 세계적인 수학자를 많이 배출했으나 이들은 거의 외국 대학에서 연구하지 러시아에서 연구를 하지 않는데 예를 들어 러시아 내 필즈상 수상자 9명 중 7명이 외국 대학 소속이다.

즉 2020년대의 러시아 과학계는 고급 인력의 유출 + 급격히 낮아진 국제협력으로 인한 과학계의 갈라파고스화 + 표절을 비롯한 비윤리적 관행의 만연 + 과학 인력의 고령화 + 논문의 저질화 등으로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 또한 러시아가 경제적으로 기초 학문에 투자할 여력도 거의 없고, 소련 붕괴 후 30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대학 자체의 경쟁력도 유럽, 미국에 비해 심각하게 낮아졌다는 점, 무엇보다 크림 사태 후 미국, 유럽 등과의 학문 교류가 크게 줄어버린 점 탓에 반등하기에 요원하다. 다만 과학계는 정치적인 이슈에 그렇게 민감하지 않은 편이고 우주나 생물학등 여러 분야에서 학문적인 교류는 이어나가고 있으며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이후에는 빠르게 바이러스 벡터를 이용한 백신을 만드는 등 기초과학 분야에 대한 쇄신이 없지는 않다.

13. 교육

기본 학제는 초등 4년, 중학교 5년, 고등학교 2년을 합쳐 11학년제로 운용되고 있으며, 한국보다 1년 짧다. [30]그 대신에 대학과정은 1년 더 길어서 5년을 다니지만, 학교이름의 경우에는 지명을 따기보다는 숫자명을 붙이는 경우가 많다.

소련 해체 이전의 러시아의 공교육은 초중고 10년제(체르넨코때 11학년제가 입법되어서 고르바초프 시대때 11학년제로 개편되었다.) 영미권 국가보다 2년이 더 쩗았음에도 교육수준은 괜찮았다 평가받았다. 물론 당대에도 문제지적이 없지는 않아서 소련 말기에는 11학년제로 연장되었지만 소련 붕괴 이후로는 예산부족으로 교육의 질이 급속히 퇴화해버렸다. 명목상 무상교육제도는 유지되었고, 또한 교육의 민주화를 표방하며 학교의 자율적인 운영이 가능해졌으며, 교복과 두발단속도 완전히 없어지는 식의 학생들에게 자유를 보장하려는 식의 교육체계를 갖추려는 변화가 있기는 했지만, 현실은 많이 시궁창이었다. 경제상황이 나쁘던 시절인지라 교육예산은 늘 부족하기만 했고, 마피아가 창궐할정도로 치안이 나빠서 사회분위기 또한 어수선하면서도 암울했던 시절이었기 때문이었다. 이게 어느정도였냐면 교사월급과 학교난방비도 제때 못주어서 못주서 보드카나 여러가지 잡물건으로 월급을 주고, 하루종일 벌벌떨며 수업을 듣는것이 당연시되었고, 학생들도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가정에서 용돈받기 힘들던 시절이었고 미래도 불확실하다보니 일찍부터 알바와 부업전선에 뛰어들거나[31], 어수선한 분위기에 물들어서 마약에 찌드는 경우가 태반인 등 탈선을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32] 교사는 교사대로 박봉이라 의욕이 없고, 학생들은 불확실한 미래때문에 따른 일을 하는 경우가 태반이니 교육이 제대로 돌아갈리가 없는것이다.

그나마 2000년대와 2010년대에 걸쳐서 교육예산이 정상적으로 편성되기 시작하면서 공교육이 정상화되었다지만, 여전히 문제가 많다고 지적되며 시장화와 더불어 사립학교들이 난립함에 따라 교육격차도 커졌는데 이게 해결이 되지 않고 있다. 대학별로 입학시험이 있었을 뿐 한국의 수능에 대비되는 이렇다 할 대학 진학시험이 없었다. 사립 대학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학생선발 시스템에 끊임없이 문제가 제기되자 2008년에 고등학교 졸업시험이자 대학 진학시험인 Unified State Exam(Единый 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Экзамен)이 도입된다.[33]

교육은 소련 시절에서 더 후퇴한 것 같다는 평가를 들으며, 교육부의 탁상행정, 아직도 공정성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졸업시험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더미지만, 가장 큰 문제는 그야말로 처참한 공교육의 질이다. 이유를 들어보자면

1. 교사의 월급이 매우 낮아[34] 경쟁력 있는 교사의 수가 극도로 부족하다. 실제로 대부분의 학교 교사는 수업 후 과외 수입으로 먹고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촌지 문제가 있기도 하다.

2. 명목상 초등, 중등, 고등학교의 구분은 있지만, 많은 학교에서 초등교육반과 중등교육반이 같이 있는데다가, 무엇보다 반이 바뀌지않기 때문에 1학년부터 11학년까지 한 학교에서 쭉 공부하는 특성상 물갈이가 전혀 되지 않는다. 사실 이건 꽤나 심각한 문제인데, 한국처럼 학교가 나뉘어져 있다면 초등학교, 혹은 중학교 졸업 후 자신에게 맞는 학교로 갈 것인데 공부가 맞지 않는 아이들이 반에 계속 남아있게 되면 면학 분위기를 크게 해치게 된다. 실제로 최상위권이나 최하위권의 학교를 제외한 중위권 학교들의 졸업시험 성적을 보면 졸업 기수마다 평균 점수 차이가 매우 큰데(많게는 100점 만점 기준으로 30점 차이) 이것을 보면 반의 학습 분위기가 얼마나 반 구성원들의 실력에 영향이 큰지 알 수 있다.

3. 사실상 가장 근본적이고도 근원적인 문제로, 교육부로부터의 재정 지원이 말 그대로 참담하다. 사립교는 재단이라도 있지만, 대다수의 국립학교들은? 다 낡아 떨어져가는 학교 시설에서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렇게 받는 것도 없으니 학생들의 애교심과 소속감은 바닥을 치고, 안 그래도 낮은 교육열을 더욱 나락으로 떨어지게 만든다.

외국인의 러시아 유학을 지원하는 러시아 정부 장학금(Российские государственные стипендии)이 시행되고 있다.

14. 스포츠

냉전시절 미국과의 경쟁을 위해 스포츠를 전폭 지원하였으며, 실제로도 세계적인 선수들을 많이 배출했다. 소비에트 연방 해체 후에도 세계적인 스포츠 강국이긴 하지만 소련 시절에 비하면 살짝 약체화됐고, 해체 과정에서 다수의 국가들의 독립으로 다른 국가들로 인재들이 퍼진 감이 있다.

소련에는 러시아만 있는게 아니라 다른 국가들도 있었지만 소련 시절도 따지자면 1991년에 해체한 소련의 기록이 레슬링, 배구, 역도, 카누, 체조, 핸드볼에서 아직도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즉 다른 나라들이 1991~2022년 동안 추가로 쌓은 성적 다 포함해줘도 소련의 누적 기록을 아직도 못 깨고 있다. 네이버 하계올림픽 우승국 정보에 따르면 프랑스, 영국, 독일, 중국이 자국에서 열린 올림픽에서 1위를 해본 것을 제외하고는 미국이 하계올림픽에서 1위를 차지하였는데, 이 1위 자리를 소련이 6번이나 차지했다.

대표적으로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로 평가받는 레프 야신, 레슬링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는 알렉산드르 카렐린, 피겨 스케이팅의 황제로 불리는 예브게니 플루셴코, 전설적인 테니스 선수인 마리아 샤라포바 등이 있다.

체스로도 유명하다. 현재 국가랭킹 세계 1위를 하고있으며 그랜드 마스터를 무려 203명이나 보유하고 있는 나라다.[35] 그 외에도 인터내셔널 마스터 수, 평균 레이팅, 레이팅 등록자 수 등 모든 면에서 압도적인 1위를 하고 있다. 16년간 챔피언 자리를 지켜낸 가리 카스파로프가 이 나라 사람이다. 역대 최고의 레이팅을 기록하기도 했으며 세계 최초로 슈퍼 컴퓨터와 체스 대결도 했던 전설적인 플레이어다.

축구유럽 축구 연맹에 속해 있다. 소련 시절에는 월드컵 4강 진출도 하는 중상위권 수준의 강팀이었지만, 해체 이후에는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UEFA 유로 2008에서 4강,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8강으로 체면 치레는 했다. 국대에 대해 자세한 것은 러시아 축구 국가대표팀 문서 참조. 현재 유일한 골키퍼 발롱도르 수상자인 레프 야신도 러시아(정확히는 소련) 출신이다. 자국 리그에 대한 투자가 대단하지만 그만큼 쇄국화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테니스계에서 러시아는 원래도 강국이었지만, 최근 들어서 훨씬 더 강세를 보여주며 사실상 국가별 기량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36] 러시아는 앞서 언급한 여자 테니스의 전설 중 하나인 마리아 샤라포바를 비롯해 예브게니 카펠니코프, 마라트 사핀 등 다수의 슬램 위너와 세계 랭킹 1위를 배출한 국가다. 현재는 다닐 메드베데프(세계랭킹 최고 1위)를 선두로 안드레이 루블레프(최고 5위), 카렌 하차노프(최고 8위) 등의 엄청난 성적을 내고 있는 선수들이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9년 이후부터 2022년 현재까지 러시아 테니스는 국가별 선수 라인업과 기량 면에서 최강의 위치에 자리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농구도 세계적인 강호이다. 유로컵 바스켓 대회에선 소련 시절 모두 14번 우승했으며 러시아 시절에서도 1번 우승했다. 1950~1970년대만 해도 유로컵 바스켓은 유럽 최강을 자랑했으며 그나마 유고슬라비아가 유일한 유럽 내 라이벌이었고 세계적으로도 미국이 유일한 상대 국가였을 정도로 농구에선 세계 최강을 자랑했다. 소련 시절에는 리투아니아를 비롯한 나라들이 독립해서 예전보다 못하다고 해도 여전히 유로컵 농구 대회에선 8강권에 드는 강호로 활약하고 있다.

레슬링 역시 올림픽 레슬링에서 남성부에서 자유형과 그레코로만 상관 없이 가장 금메달을 많이 따는 추세이며, 세계레슬링선수권대회에서도 남성부에서 우승국을 휩쓰는 모습이다. 반면에 여성부에서 강세는 일본이다.

배구 역시 세계적인 강호이다. 올림픽, 세계선수권, 유럽선수권, 월드리그, 월드컵 등 주요 국제대회에서 수많은 메달을 수확하였다. 월드리그에서 개편된 네이션스리그도 2년 연속 우승했다. FIVB 랭킹 남자부 5위, 여자부 7위를 자랑하는 배구 강국이다.

아이스하키소련 시절부터 캐나다 다음으로 강호인데, 1956년을 시작으로 동계올림픽에서 총 8개의 금메달을 따냈다. 다만 1992년 독립국가연합의 이름으로 금메달을 따낸 뒤로는 러시아의 이름으로는 금메달을 따내지는 못하고 있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선 당해 NHL MVP를 수상한 알렉산드르 오베치킨을 비롯, 예브게니 말킨일리야 코발추크의 공격진을 필두로 최강전력을 꾸리며 간만에 금메달 사냥에 나섰으나, 8강에서 홈버프를 받은 캐나다에게 7-3이라는 스코어로 무참하게 개박살나버리면서 금메달은 커녕 동메달도 못 건졌다. 냉전시대 해체 이후로는 NHL에 진출하는 선수가 굉장히 많았으나 최근 들어서 그 숫자가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는데, 그 이유는 바로 자국에서 KHL이라는 리그가 급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캐나다인이나 미국인들과의 엄청난 경쟁을 뚫어야 하는 NHL과는 달리 KHL은 헬게이트를 돌파할만한 수준은 아니고, 거기에 최근 러시아의 경제력 성장과 맞물려 이 KHL에도 상당한 자본이 들어오고 있기 때문에 러시아 선수들이나 러시아와 가까운 동유럽 선수들이 KHL행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이렇듯 KHL이 성장하는 와중에 당시 서부지구에서 정규시즌 1위를 했던 로코모티프 야로슬라블 팀 선수단이 탑승한 비행기가 추락하여 단 1명만이 생존하고 44명이 사망하는 비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로코모티프 구단은 다음시즌인 2011-12 시즌을 아예 참가하지 못했으나 2012-13 시즌 다시 리그에 복귀하여 비극을 딛고 정규시즌을 4위로 마감하며 선전했다.

리듬체조에서도 압도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대체로 세계랭킹 1, 2, 3위는 모두 러시아 국내랭킹 1, 2, 3위이며 2000년부터 2016년까지 5번의 올림픽 리듬체조 금메달리스트는 모두 러시아 선수였다. 쿼터제에 의해 메이저 대회 결승전에 2명 밖에 출전을 못하지만 그 결과가 금, 은메달이 모두 러시아가 가져가고 있다. 명실상부한 21세기 리듬체조 강국으로, 많은 타국 리듬체조 선수들이 러시아 전지훈련에 참가한다. 이런 실력의 뒷배경은 리듬체조라는 스포츠 자체가 발레에서 유래했는데[37] 알다시피 러시아는 고전 발레의 분수령이라고 할만큼 고전 발레가 민족예술이다. 그 예로, 러시아 혁명 당시 황가가 무너지는데도 황실발레단은 이름만 바꾼 채 현재까지 명맥을 유지 중이다. 이 정도면 러시아인들의 발레와 무용에 대한 자부심과 사랑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다른 예로는 당장 고전발레 최고의 명작인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 인형이 모두 러시아 고전발레 작품이다. 세계랭킹을 매기는 포인트가 주어지는 월드컵 대회가 러시아에서 많이 열려 국민적 관심도 높다. 정부의 지원도 전폭적이어서, 러시아 국가대표 리듬체조 선수들의 후원사는 러시아 국영 기업인 가스프롬이다.

국토의 상당 부분이 영구동토이고 사람이 사는데도 1년의 절반은 눈과 얼음에 덮여 있는 추운 나라다 보니 아이스하키 말고도 동계 스포츠는 전 종목 골고루 꽤 잘 한다. 피겨 스케이팅에는 유명한 선수들이 셀 수 없으며, 알파인 스키도 곧잘 한다. 대통령 푸틴과 총리 메드베데프가 직접 스키를 타기도 한다. 2007년 소치가 강원도 평창군을 꺾고 2014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낙점된 데에는 푸틴 정부의 적절한 사전 득표 운동도 있었지만, 동계 종목에 대해선 우리 나라와 비교할 수 없는 저변과 실력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1980 모스크바 올림픽 이후 러시아 연방 명의로는 올림픽을 한 번도 열었던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렇기도 하였다. 러시아는 2005년 2012 하계올림픽 개최지 후보에 모스크바를 선정하여 구소련 이후 32년 만에, 그리고 러시아연방으로서는 최초로 하계올림픽 유치를 하려고 했으나 영국 런던에 밀려서 탈락한 적이 있다. 2010년에는 2018년 FIFA 월드컵 개최국이 되었다. 이로서 4년 사이에 다시 러시아의 국력을 과시하게 되었다. 비슷한 예는 2014년 월드컵, 2016년 올림픽을 개최하는 브라질과 1994년 월드컵, 1996년 올림픽 공동 개최지만 2026년 월드컵 2028년 올림픽의 미국이 있다.

2011년 안현수가 귀화하면서, 러시아 쇼트트랙 국가대표 팀의 사실상 에이스로 활약하며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쇼트트랙 종목에서 러시아 최초의 메달을 따내는데 성공했다. 안현수가 금메달과 동메달을 따내고, 다른 선수들까지 은메달까지 따내면서 쇼트트랙 종목 최전성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 결과 안현수는 러시아의 영웅으로 급부상하게 되었다.

소련 시절까지 합치자면 최다 동계올림픽 최다 우승국이다. 물론 그냥 러시아로만 따지자면 노르웨이독일보다 우승 횟수가 적은데 러시아로 나간 기간이 별로 없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하지만 러시아 국가대표팀 도핑 스캔들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는 국가 자격으로 참가도 못 했다.

육상 계열 역시 강국이었지만 2015년 연말을 뒤흔든 러시아 국가대표팀 도핑 스캔들 파문으로 인해 러시아 국적의 모든 육상 선수들은 국제경기 출장 금지를 당했으며 반도핑 기구는 해체되었다. 그리고 이 도핑 파문은 해가 지나서도 계속되고 있으며 이젠 수영과 빙상 계열까지 연루되었단 소식이 전해지면서 파문이 커진 상태다. 국가 전체적으로 관여한 걸로 파악되어가면서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 러시아 선수단 전체가 출전 금지될수도 있다고 IOC에서 밝혔다. 하지만 이후 태도를 바꾸어 각 종목 연맹이 출전금지 결정하기로 결단하였다. 한편, 국제 패럴림픽 위원회는 러시아 선수단 전원의 2016 리우데자네이루 패럴림픽 출전을 금지시켰다.

2019년 12월 9일 세계 반도핑기구에서 올림픽이나 월드컵 등 국제 스포츠 대회에 4년 간 출전 금지 결정이 내려졌다. 도핑과 무관한 선수들은 중립국 신분으로 출전할 수 있으나 단체 종목에서 어느 정도 성적을 내고 있는 러시아에겐 큰 타격이라고 할 수 있다.

결정적으로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모든 스포츠에서 퇴출하기로 하면서 만약 징계가 장기적으로 갈 경우 스포츠 쇠퇴기를 가질 가능성이 높다. 다만 IOC는 러시아 출신 선수들의 국제무대 참가를 원천 봉쇄하기보다는 중립국 선수 자격으로 참가를 허용하는 식으로 결정했으나, 우크라이나가 영향력 있는 피겨스케이팅은 출전 금지하고 있다.

14.1. 웨이트 트레이닝

올림픽 역도 소련이 역대 1위, 현 러시아가 16위 #

운동기구 케틀벨의 종주국이다.

파워 리프팅에서 선전하고있다. IPF 대회 성적. #

14.2. 격투기

격투기를 상당히 잘 한다. 권투의 경우 올림픽 아마추어 권투 역대 6위다.위키백과 영어판 출처 해체 전 소련은 5위를 하고있다. 그러니까 소련은 이미 과거라서 기록 정지인데도 역대 5위 기록인거다.

같은 그래플링 계열인 삼보 종주국답게 레슬링도 강력한데 구 소련이 역대 1위고, 현 러시아가 역대 4위. 역사상 최강의 격투가이자 가장 위대한 레슬러를 꼽을 때 반드시 거론되는 전설적인 레슬러 알렉산드르 카렐린이 특히 유명하다.

종합격투기에서 유명 러시아인들 많은데 UFC 라이트급 챔피언 하빕 누르마고메도프, 이슬람 마카체프도 러시아 다게스탄 출신이다.
에밀리아넨코 효도르도 러시아 출신이고 그 제자 바딤 넴코프벨라토르 라이트헤비급 챔프다.
아나톨리 말리킨원 fc 챔피언이다.

올림픽 유도, 펜싱에서도 소련시절까지 따지자면 꽤 강국이다. 블라디미르 푸틴이 유도 유단자이자 유도 철학에 빠져있는 매니아인 것으로 유명하다. 러시아 언론에서 카자흐스탄 출신 복싱 세계 챔피언인 게나디 골로프킨을 러시아인으로 불렀다가 호된 서리를 맞은 적이 있다.[38]

수많은 서양인들 중에서도 특히 러시아인들이 유독 싸움꾼, 괴물 이미지가 강한데 스포츠 중에서도 특히나 투기 종목에서 강하다.

박준용(종합격투기) 선수의 주장으로는 국내단체 챔프가 러시아 아마추어 상위권 수준이라고 딱 말했다

14.3. 국제대회

15. 성문화


19세기 대가들의 소설에서처럼 당시부터 러시아의 성문화가 개방적인 관점이 시작되기도 했다. 현재도 한국 기준으로는 상당히 개방적인 것도 있고 미혼모 및 미혼부나 동거에 대한 인식도 관대한 편이다.[39] 한편, 대체적으로 프랑스독일 같은 서유럽보다 보수적이며, 체첸이나 인구시, 다게스탄처럼 한국 기준에서도 보수적인 지역이 다수 있다.

시대에 따른 차이도 나타난다. 특히 옐친 때는 경제적 파탄으로 돈 없는 사람들이 대거 성매매에 뛰어들었고 커리어 우먼, 여대생들을 포함한 엘리트 여성도 매춘부로 전직할 정도였다. 오죽하면 지하철에서 매춘부들이 나와서 광고를 해댈정도였다. 포르노 시장도 활성화되었다. 지하철이나 공공장소에서 대놓고 매춘광고를 하는 풍경은 2000년대 초반을 기준으로 해서 사라졌지만 인터넷 시대가 열리면서 포르노 시장은 시장은 더욱 커져서 현재도 그 영향을 강하게 받는다.

대중매체에서 성문화를 다루는 정도도 시대에 따라 차이가 있다. 소련 시절에는 대중매체에서 성문제를 보수적으로 다루었지만, 고르바초프 때부터 심의가 완화되었다. 옐친 때부터는 대중매체에서 성 묘사가 매우 노골적인 수준으로 드러나서 교포들이 러시아TV를 보면서 민망해 했다거나 북한 벌목공들이 러시아TV를 보면서 므흣해 했다는 기사도 신문에서 났다. 하지만 푸틴 중반기부터는 동성애에 대한 묘사를 청소년 이용불가로 지정하는 등 일부 묘사에 대한 규제가 신설되어 옐친 때 수준만큼 심하지 않다.

연인 간의 진도도 대한민국유교 문화권에 비해 빠른 편이며 성적인 주제를 대하는 태도도 개방적인 편이다. 하지만 동성애에 있어서 유교 문화권 국가보다 더욱 보수적이며 반동성애적이다. 지금도 문화산업에서 동성애 등 일부 소재는 검열을 하기도 하지만 중국 등 대놓고 검열하는 나라들보다도 훨씬 표현의 자유에 관대한 편이다. AV 포르노 산업도 합법은 아니지만 활성화되었다. 예를 들면 여교사가 자신의 부업이었던 포르노 배우로도 일했다가 해고되기도 했다.

현재의 러시아는 소련 이래로부터 여성의 사회 진출 자체는 활발하지만 정교회 근본주의를 추구한다. 때문에 여성과 아동들을 향한 가정폭력이 만연하게 발생하지만 오히려 처벌을 완화하는 공평하지 않은 모습도 있다. #러시아는 기본적으로 마초 문화를 추구하고 여권은 어떤 면에서 보면 같은 서구권에 속하는 유럽이나 북미보다도 동북아시아가 더 나은 면도 제법 적지 않다. 그리고 동성애를 혐오한다.

러시아에서 동성애에 대한 인식은 동성끼리 손잡고 다니기만 해도 주위 사람들한테 쌍욕듣는건 기본에, 심지어는 지나가는 쌩판 모르는 사람한테 얻어맞는 것도 가능할 정도로 나쁘다.

23년 6월 14일, 러시아 의회가 성전환 수술을 금지하는 내용의 법안을 통과시켰다. 러시아는 어린이들의 치료를 제외한 모든 성전환 시도는 불법화될 예정이다. #

16. 비디오 게임

게임 자체는 구소련 시절부터 만들어지기는 했다. 과거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게임[40]이자 가장 많은 기기에 이식된 범지구적인 명작 테트리스가 바로 러시아 게임이다. 유명한 일화로, 테트리스가 처음 개발되었을 때는 소련 시절이라 미국인에 대해 매우 적대적이었는데, 어떤 한 용자가 목숨을 걸고 테트리스의 라이선스를 따내며 닌텐도 게임보이에 이식했고, 이게 대박을 쳐서 게임보이가 대중적으로 성공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또한 시뮬레이션, 하드코어 등 매니악한 장르의 작품으로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는 사례가 유독 많은데, 워 썬더, Escape from Tarkov 등 유튜버들이 플레이하는 동영상을 한 번쯤은 봤을 법한 유명 게임들이 대표적이다. 반대로 수준미달의 회사 혹은 아마추어 수준의 개발자들이 똥겜, 혹은 똥겜에서 간신히 벗어난 셔블웨어[41] 게임만 찍어내는 경우도 그 만큼이나 비일비재하다.[42] 이러한 러시아산 B급 게임들은 동유럽산 B급 게임들을 일컫는 속어인 Eurojank의 일부로 취급되기도 한다.

그러나 게임유통시장은 소련 붕괴후 신생 러시아 시절에는 조악했다. 저작권 의식은 희미한데[43] 돈은 없으니 값싼 복제품이 엄청난 인기를 끌게 된것은 당연지사였다. 옛날 한국이나 중화권 국가, 동남아처럼 패미클론같은 블랙마켓 콘솔시장이 시대를 주름잡기도 하였다. 심지어 러시아 시장에서 패미클론 셰어를 확보한 Dendy라는 브랜드도 있었다. 상세는 항목 참조.[44]

17.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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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련의 명장 게오르기 주코프는 2차대전 당시 소련에 코카콜라가 제공되자 그 맛을 보고 아예 콜라에 빠져 살았다. 단, 숙청 좋아하는 그 분께서 매의 눈으로 지켜보고 계신 탓에 대놓고 마시진 못했다. 자세한 건 문서 참조. 전쟁 이후 일찍부터 소련에 정식으로 도입된 펩시에 비해 코카콜라는 1990년대에야 정식 진출을 성공한다.[2] 시녀가 저런 표현을 써가며 왕가의 청혼을 거부했다는 것에 의아함이 들 수 있는데, 이는 하녀와 시녀를 혼동해서 생기는 일이다. 유럽 세계에서는 전통적으로 시녀는 높은 직위를 지닌 집안의 여성이 맡는 일이었고, 특히 왕족을 모시는 시녀들은 대귀족 출신 여인들만이 될 수 있었다. 실제로 이반 뇌제의 청혼을 받은 시녀, '메리 헤이스팅스'는 당시 헌팅턴 백작의 막내딸이었다.[3] 정확히는 "피레네 산맥 이남은 아프리카다." 라고 했는데 이 당시 아프리카는 우리가 아는 사바나흑인이 사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를 지칭하는 곳이 아니고 아랍북아프리카를 말하는 것이다. 스페인의 덥고 건조한 기후와 우마이야 왕조에 점령당해 이슬람 세력에 통치당했던 역사를 합쳐서 비꼬는 말이었다. 레콘키스타를 통해 이를 극복하고 기독교 세계로 되돌아 온 스페인의 건국 역사를 생각해 보면, 이 말은 대놓고 스페인을 비하하는 말인 셈. 물론 스페인과 포르투갈에는 실제로 아랍 유적이 많다.[4] 물론 유럽보다 먼저 발견한 아메리카 원주민이 있었고 유럽인들이 아메리카를 발견한 것도 9세기경 바이킹이 먼저긴 하지만 그래도 전 세계에 아메리카를 알리고 개척한 건 대항해시대 당시 유럽인들이다.[5]핀란드인은 게르만이 다수는 아니지만 이웃 국가들의 영향으로 인해 게르만 문화가 많이 있다.[6] 프랑스계 미국인들은 라틴 + 가톨릭 조합이 있지만 타 남유럽 이민자들보다 훨씬 좋은 대우를 받았다.[7] 자기 작품을 러시아어에서 영어로 번역하다가 나중에는 아예 영어로만 작품을 썼는데, 어렸을 때부터 영어를 사용하던 환경에서 성장해서인지 문장 구사력이 굉장히 빼어났고, 20세기 최고의 영어 명문장가로 꼽혔다.[8] 후하게 평가해 주어도 오늘날 '커미션 그림쟁이' 정도의 실력에 그쳤던 아돌프 히틀러와 달리 스탈린의 재능은 진짜배기였다. 정치인으로 이름을 알리기 이전 그가 발표한 시는 조지아 문학 교과서에 수록될 정도였다.[9] 15살 아들에게 국가 전복 혐의가 뒤집어 씌워졌다. 참고로 당시 소련은 젖먹이 아기에게도 형법 58조에 따른 반역죄를 선고할 수 있는 나라였다.[10] 고려인 3세 소설가. 한국인 혈통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어 한국 언론과 인터뷰할때 강릉 김씨, 김시습의 후손이라는 점을 강조했었다. 마술적 리얼리즘을 구사하는 작풍으로 알려졌다. 소련문단에 등단해 러시아어로 작품 활동을 했으나 소련이 해체되며 카자흐스탄 작가가 되었다. 한국에선 노태우 정권 시기 북방외교로 러시아 문학 번역이 한창 활발할 때 대표작들이 여럿 번역되었으나 지금은 번역이 끊겼다. 한국 노문학과에선 해빙기 작가들에 이어 소수민족 작가를 거론할때 언급된다.[11] 소련동구현대문학전집은 황토색 장정, 중국현대문학전집은 붉은색 장정으로 냈다. 참고로 중국의 현대문학은 1917~49년 사이의 문학사조를 말한다. 한국은 해방기점으로 근대와 현대문학으로 나누는게 일반적이지만 중문학은 1917년 5.4 운동과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을 기준으로 5.4 운동 이전은 고전문학, 5.4운동부터 중화인민공화국 성립까지를 현대문학이라 칭하고 1949년 이후의 지금까지의 문학은 당대문학(當代文學)으로 부른다.[12] 다만 원래는 라트비아에서 작곡된 곡이다. 라트비아 자체가 소련의 일부였던만큼 그렇게 알려졌던 것이다.[13] 이 사람은 후일 러시아 락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락 뮤지션 예고르 레토프는 러시아 락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로 바실라초프를 꼽았다.[14] 미국 자본에 팔려서 영국에 공장을 두고 운영하고 있다.[15] 사실 보드카의 어원이 '물'이라는 뜻이다.그래서 허구한 날 물처럼 마셔댄다. 참고로, 어원의 어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영어의 water도 같은 어원에서 유래되었다.[16] 술 사랑의 유래가 오래되었는지, 14세기의 책인 동방견문록에 '러시아인들은 온종일 술을 마시고 심지어 자식을 담보로 돈을 빌려 술을 사 마시기까지 한다'(...)라는 카더라 통신이 나온다.[17] 당연히 가격도 매우 저렴했다. 술의 종류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맥주 정도는 거짓말 안 하고 탄산 음료 사 마시는 것보다 더 싸게 먹혔다.[18] 한국은 남성 평균 수명이 여성 평균 수명보다 7년가량 짧다.[19] 한국과 미국 남성의 평균 수명이 76년임을 감안하면 상당히 짧은 편. 북한(!)의 남성 평균 수명(67년)보다도 짧다.[20] 러시아에서 초코파이가 주로 이런 식으로 소비된다.[21] 나머지는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22] 북한의 핵개발이 이루어진것도 북한 당국에서 부족한 예산에도 이들 러시아 과학자들을 미화 수천달러를 주면서 유치했기 때문이었다.[23] 미국이나 EU는 0.7 이상이고, 일본은 0.66, 인도는 0.61점이다. 러시아와 점수가 비슷한 국가는 아제르바이잔 정도밖에 없는데 이 쪽도 0.4점 이상이다.[24] 출처: http://globalizationofscience.com/[25] https://www.natureindex.com/news-blog/top-officials-rectors-russian-universities-embroiled-plagiarism-scandal[26] 수학 같은 경우를 예로 들면, 구미권의 중년 이상 학자들과 교수들은 꽤 많은 이들이 러시아 수학자의 저서로 공부한 이들이고, 그들 중에는 아예 러시아어를 할 줄 아는 사람들도 있다. 국내에도 출판되는 전공서적 번역에 소개된 저자들 중에는 적지 않은 이들이 아예 러시아 수학 서적의 영역 작업을 주도하기도 한다. 이들이 꼭 학부, 대학원 수준 전공서적만 번역한 것도 아니라서 소련 올림피아드 기출문제 같은 책들은 꼬맹이 영재들 가르치는 영어권 올림피아드 교사들도 참고할 정도고, 이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타서 한국(!) 같은 경시대회 열기 알아주는 다른 나라로도 퍼진다.[27] 수학은 겹치지 않는 영역이 상당해서 비교가 조금 곤란하다. 한국과 달리 문제풀이보다는 이해와 증명을 더 요구하는 쪽. ЕГЭ(러시아식 수능)의 수학 과목에는 객관식이 아예 없고 주관식 12문제에 서술 or 증명 문제가 7개다.[28] http://www.shanghairanking.com/ko/World-University-Rankings/Moscow-State-University.html 수학이 물리학보다 더 좋게 평가되었다.[29] http://www.shanghairanking.com/ko/World-University-Rankings/Seoul-National-University.html[30] 이러한 사정은 타 구소련권 국가도 비슷하나 학력향상 및 국제적인 추세에 맞추기 위한다는 명분으로 발트3국, 우크라이나,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처럼 12학년제로 개편된 나라들도 많이 있다.[31] 심한 경우에는 아동, 청소년 포르노에 출연하거나, 직접 매춘일, 마약장사에 뛰어들기도 했다.[32] 러시아는 겨울이 길기로 유명하지만 미국, 호주, 프랑스, 스위스 등처럼 여름방학을 길게보내고 겨울방학을 짧게 지낸다.[33] 전국 도입은 2008년이지만, 2000년부터 일부 지역에서는 시범 시행을 하고 있었다.[34] 교사뿐만 아니라 원래 공무원 월급 자체가 평균에도 못 미치는 수준으로 낮다. 다만 공공 주택을 싸게 받을수있기때문에 이걸로 버티는 수준이다.[35] 미국(89명), 독일(89명), 우크라이나(87명)등의 다른 체스 강국과도 비교 불가 수준이다.[36] 라파엘 나달, 로베르토 바우티스타 아굿, 파블로 카레뇨 부스타, 카를로스 알카라스가 선두 라인업인 스페인과 비등비등하다.[37] 많은 선수들이 하는 포에테 피봇, 그리고 기본 동작인 턴아웃 등 기본기 동작이 발레에서 유래한 기술이다.[38] 그가 구소련시절 태생이고 아버지가 러시아인이라는 이유에서였다.[39] 독소전쟁에서 위낙에 남자들이 갈려나가서 남는 여자들도 많았기에 한부모 가정이나 미혼모들도 많았다. 소련 당국에서는 인구 복구를 위해 미혼모에 대한 차별을 강하게 없애고자 노력해 차별이 어느 정도 시정되었다. 스탈린이 신 같은 존재였기에 위에서 까라고 하면 까야 했다.[40] 현재는 마인크래프트.[41] Shovelware의 뜻이 꽤 포괄적이지만(1990년대에 상업적으로 판 셰어웨어 게임 CD 모음집도 여기로 분류됨), 좁혀 말하자면 '실속없는 양산형 인디 게임' 정도로 해석된다.[42] 당장 스팀에서 아주 싼 값에 팔리는 저질 게임들의 출신지를 살펴보면 러시아인 경우가 비일비재하다.[43] 사실 소련시절 게임업게도 저작권 의식이 희미해서 인기 만화영화 누가파디를 소재로 게임을 만들었고 엄청난 인기를 끌었지만, 그 게임이 알고보니 닌텐도 게임의 표절이었던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사실 이 당시 미국도 아타리 쇼크라고 해서 단순 표절은 양반으로 보일정도로 복마전이 되었다가 게임업계 자체가 한번 대침체에 빠져버린적이 있었고, 일본도 1970~80년대 초반에는 표절게임이 판을 치는 등 게임저작권 인식은 처참했던것은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게임시장이 성장하면서 저작권 관념이 정상회된데 반해서, 러시아는 돈이 없던 나라라서 저작권 개념이 정착되는데 시간이 걸렸다는 차이는 있었다.[44] 단, Dendy의 패미클론 기계 라인업은 대만산 패미클론의 리브랜딩 제품이 주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