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width=320><tablebordercolor=#e10510><tablebgcolor=#e10510> | 포뮬러 1 월드 챔피언십 역대 드라이버 챔피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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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C - 플로이드 반월 레이싱 팀 No.4 | ||||
자크 빌르너브[1] Jacques Villeneuve | ||||
<colbgcolor=#013d23> 이름 | 자크 조제프 샤를 빌뇌브 Jacques Joseph Charles Villeneuve | |||
출생 | 1971년 4월 9일 ([age(1971-04-09)]세) 퀘벡주 생장쉬르리슐리에 | |||
국적 | [[캐나다| ]][[틀:국기| ]][[틀:국기| ]] | |||
소속 (드라이버) | F1 | 윌리엄스 레이싱 (1996 ~ 1998) 럭키 스트라이크 BAR 혼다 (1999 ~ 2003) 르노 F1 팀 (2004) 자우버 F1 팀 (2005 ~ 2006) | ||
르망 24시 | 팀 푸조 토탈 (2007 ~ 2008) | |||
WEC | 플로이드 반월 레이싱 팀 (2023 ~) | |||
포뮬러 E | 벤추리 포뮬러 E 팀 (2015-16)[2] | |||
정보 더 보기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colbgcolor=#eeeeee,#191919> 출전 횟수 | 165경기 | ||
월드 챔피언 | 1회 (1997) | |||
그랑프리 우승 | 11회 | |||
포디움 | 23회 | |||
폴 포지션 | 13회 | |||
패스티스트 랩 | 9회 | |||
첫 경기 | 1996 호주 그랑프리 | |||
첫 그랑프리 우승 | 1996 유럽 그랑프리 | |||
마지막 그랑프리 우승 | 1997 룩셈부르크 그랑프리 | |||
마지막 경기 | 2006 독일 그랑프리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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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전성기 | 과거 | 현재 |
캐나다 출신의 전 F1 드라이버. 페라리의 전설적인 드라이버이자 1982년 벨기에 그랑프리에서 사고로 사망한 질 빌르너브의 아들이기도 하다.[3]
아무래도 F1보다는 나스카나 인디카 시리즈가 인기 있는 북미 대륙국가 출신이다 보니 모터 스포츠 커리어는 인디카 시리즈였다. 1994년 데뷔하자마자 그해 인디 500레이스에서 준우승을하고 인디카 시즌 신인상을 받으면서 두각을 나타내더니 바로 다음해 인디카를 정복하는 괴물같은 능력을 보여주며 관계자들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다.[4] 그런 그를 매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던 윌리엄스 레이싱의 수장 프랭크 윌리엄스 경은 인디카를 정복한 다음해인 1996년에 자신의 팀 소속 F1 드라이버로 발탁했고, 그렇게 팀의 기대를 한껏 받은 자크 빌르너브는 1997년 캐나다인 최초의 F1 챔피언에 올랐다.
2. 선수 경력
2.1. 포뮬러 1
2.1.1. 윌리엄스 레이싱
1996년, 윌리엄스에서 데뷔하자마자 또 관계자들을 충격으로 밀어넣었는데, 리타이어한 경기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그랑프리를 우승 아니면 포디엄 피니시하면서 팀 동료인 데이먼 힐과 챔피언 경쟁은 물론 미하엘 슈마허까지 발라버렸다.[5]2.1.1.1. 챔피언이 되다
다음해인 1997년, 윌리엄스 레이싱는 빌르너브를 믿고 쿨하게 데이먼 힐을 방출했고, 팀의 퍼스트 드라이버가 된 빌르너브는 또 한번 대단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미하엘 슈마허와 챔피언십을 다투게된다.그리고 시즌 마지막전인 유럽GP에서 슈마허에 챔피언십 포인트 1점차로 뒤진상태에서 경기를 시작한 빌르너브는 설상가상으로 경기중에도 슈마허의 바로 뒤로 처지면서 어려운 상황을 맞게 된다. 하지만 빼어난 실력으로 슈마허를 추월한 기회를 얻었고 슈마허를 추월하려했다,
하지만 슈마허의 고의충돌로 차가 손상을 입게되었고, 빌르너브랑 충돌하면서 그래블에 빠진 슈마허는 바로 리타이어. 손상된 차를 끌고도 포인트가 필요했던 빌르너브는 하키넨과 쿨싸드에 추월당했지만 결국 3위로 포디엄 피니시를 이룬다! 여기에 보너스로 고의충돌로 인정된 슈마허는 시즌 기록이 모두 몰수당했다. 이로써 아버지가 이루지 못했던 챔피언의 꿈을 아들인 자크 빌르너브가 이루게 된 것이다. 포디엄에서 하키넨과 쿨사드가 자크를 들어올려주며 환호하는 장면이 뭉클하다. 뭔가 웃는 모습이 케빈 마그누센을 닮은거 같기도 하다.
2.1.2. 그러나 이후에는..
이렇게 괴물같은 데뷔와 개인적인 가족사로 인해 해피엔딩으로 끝나면 참 좋은 드라이버가 되었을 텐데 챔피언이 된 이후 행보가 좋지 않다. 르노 엔진을 버린 윌리엄스의 성적이 1998년부터 곤두박질 치기 시작한다. 여기에 빌르너브 역시 팀에 대한 안좋은 소리를 언론에 대놓고 하는등 불화를 보이다가 1999년에 신생팀 BAR로 이적하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이는데[6] 퀄리파잉과 레이스 내내 팀메이트인 리카르도 존타와 미카 살로를 압도하는 모습을 보며주며 레이스에서도 포인트권인 5,6위에서 꾸준히 경쟁해주는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BAR의 차의 내구성 문제로 계속 리타이어만을 반복했고[7] 결국에는 개막전부터 내리 11경기를 리타이어하기에 이른다.. 결국 시즌 16경기중 12경기를 리타이어 하며 시즌을 마쳤고 97년 월드챔피언이 된후 단 2년만에 0포인트로 시즌을 마감하게되며 전례가 없는 챔피언의 추락을 보여준다.[8]이후 2001년 BAR 혼다 시절에는 개막전 호주 GP에서부터 논란이 발생되었다. 본선 레이스에서 4랩째에 BMW 윌리엄스의 랄프 슈마허와 고속에서 충돌하였는데, 당시 충돌하면서 방호벽에 부딪이면서 부서진 파편들이 코너 펜스에 서 있던 마샬(그래이엄 베브릿지, Graham Beveridge)가 맞아 즉사하였다.[9] 이 때문에 빌르너브는 살인자라는 오명을 얻었으며 이는 나중에도 막스 베르스타펜이 2016년에 여러 미성숙한 충돌 사고를 일으키자 다시 재언급된다. 그리고 팀 메이트로 이적 해온 젠슨 버튼을 까다가 버튼만도 못한 성적으로 보이며 팬들의 조롱을 샀다. 결국 2004년 르노로 이적했지만 여기서도 신통치 않은 모습을 보이다가[10] 시즌 막판에 2006년 BMW 자우버에서 시즌 도중 로버트 쿠비차와 교체되면서 F1을 은퇴하게 된다.
1997년 챔피언이 된 이후로 단 한번의 그랑프리에서 우승하지 못했고, 한때 미하엘 슈마허의 강력한 라이벌이라는 인식도 그가 챔피언이 된 이후 더블 챔프가 되는 미카 하키넨에게 내주게 되어, 화려했던 그의 데뷔가 무색하게 말년이 안 좋았던 드라이버로 남았다.
왕년의 챔피언이 왜 이렇게 무력한 경기를 펼쳤는가에 대한 추측은 여러가지가 있는데, 가장 유력한 것은 TCS나 ABS 등의 전자장비에 의존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혐오수준의 거부감을 가지고 있어서,[11] 적어도 TCS가 재도입된 2001년부터의 부진은 나날이 전자장비의 도움으로 빨라져 가는 드라이버들을 따라잡지 못했다는 의견이 주류이다.
2015-16 시즌에는 포뮬러 E에 벤추리 그랑프리 소속으로 출전하였다. 가장 높았던 순위는 19위를 기록했다.
이후 나스카에 참가하면서도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또한 최근에 F1 드라이버들은 게임을 하는거 같다는 발언으로 팬들의 어그로를 끌었고 얼마나 평이 안좋았으면 모국의 캐나다 그랑프리 기간에 살해 위협까지 받았던 적이 있었다.
2.2. 월드 인듀어런스 챔피언십
2.2.1. 플로이드 반월 레이싱 팀
<colbgcolor=#013d23> |
바르셀로나 테스트에서의 자크 빌르너브 |
3. 연도별 성적
3.1. 포뮬러 1
시즌 | 팀 | 경기 | 우승 | 폴 포지션 | 패스티스트 랩 | 포디움 | 포인트 | 순위 |
1996 | 윌리엄스 레이싱 | 16 | 4 | 3 | 6 | 11 | 78 | 2위 |
1997 | 17 | 7 | 10 | 3 | 8 | 81 | 1위 | |
1998 | 16 | 0 | 0 | 0 | 2 | 21 | 5위 | |
1999 | BAR | 16 | 0 | 0 | 0 | 0 | 0 | 21위 |
2000 | 17 | 0 | 0 | 0 | 0 | 17 | 7위 | |
2001 | 17 | 0 | 0 | 0 | 2 | 12 | 7위 | |
2002 | 17 | 0 | 0 | 0 | 0 | 4 | 12위 | |
2003 | 15 | 0 | 0 | 0 | 0 | 6 | 16위 | |
2004 | 마일드 세븐 르노 F1 팀 | 3 | 0 | 0 | 0 | 0 | 0 | 21위 |
2005 | 자우버 페트로나스 | 18 | 0 | 0 | 0 | 0 | 9 | 14위 |
2006 | BMW 자우버 F1 팀 | 12 | 0 | 0 | 0 | 0 | 7 | 15위 |
4. 여담
-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 개막식때 오륜기를 들고 입장한 캐나다 대표 8인중 한명이다.
- 99년에 애드리언 뉴이로부터 맥라렌으로 와라는 러브콜을 받았지만 이를 거절하고 BAR로 향했다. BAR에서 커리어의 내리막을 걸었지만 그는 이 이적에 대해 본인 위주의 팀을 만들 수 있는 드라이버는 거의 없으며 새로운 도전이었기에 후회하지 않는다고 한다.
- 후회하지 않는다는 것과는 별개로 BAR과 두번째 계약을 체결하기 전인 2001년에 팀을 떠나려고 했었다. 그러나 팀 프린시플인 크레이그 폴럭[12]이 울면서 자크를 붙잡았고 결국 잔류했다. 후에 자크는 이에 대해 본인 커리어에서 처음으로 원치 않는 결정을 내린 순간이었다고 밝혔다.
- 결혼만 세 번을 했다. 2006년에 첫번째 결혼을, 2012년에 두번째 결혼을, 그리고 2023년에 라스베이거스 그랑프리에서 세번째 결혼을 했다. 아내마다 각각 두 명씩 총 여섯 명의 자녀를 두고있다. 자녀들의 이름은 첫째부터 쥘, 조아킴, 뱅자맹, 앙리, 질, 올리비아이다.[13]
- 2024시즌 캐나다 그랑프리 레이스 위켄드 도중 부진을 겪고 있는 다니엘 리카도를 강한 어조로 디스했다. 다니엘 리카도는 이에 대해 본인은 그런 말들을 신경쓰지 않는다
(며"똥이나 처먹어"라고 답했다.)
[1] 참고로 외래어 표기법/프랑스어에 따라 표기하면 자크 빌뇌브이다. 영화 감독 드니 빌뇌브와 같은 성씨.[2] 1, 2라운드 참가[3] 현재 캐나다 그랑프리가 열리는 몬트리올의 서킷 이름이 그의 이름을 딴 질 빌르너브 서킷이다[4] 당시 빌르너브가 인디카에서 탔던 차량의 엔진이 포드 코스워스였다.[5] 이런 상황은 2007년에 루이스 해밀턴이 데뷔하기 전까지는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6] 훗날 브런 GP, 그리고 메르세데스가 되는 팀이다.[7] 물론 자신의 실수로 리타어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8] 97,98년 당시 자신의 세컨드 드라이버였던 하인츠하랄트 프렌첸이 조던으로 이적해서 시즌 막바지 까지 챔피언쉽 경쟁을 이어나간것과 대조된다.[9] 사건 발생 1년 후 호주 GP 운영위원장은 당시 사고는 마샬인 그레이엄이 피할 수도 있었을 사고라는 발표를 하여 더욱 안타까움을 샀다.[10] 야르노 트룰리가 브리아토레와의 불화와 시즌 초반 알론소도 압도하던 성적에서 후반 갑자기 운을 잃고 도요타로 이적한 뒤의 땜빵이었다. 당시에도 꽤나 논란이 많았는데 프랑스에서의 막판 추월, 그리고 실버스톤에서의 사고 이후 급격히 꼬였다는 평이 많다. 사실 어차피 몇 경기 안남은 시점이었으므로 그냥 테스트 드라이버 몬타니로 시즌을 보낼 것이란 예측이 우세했지만 빌르너브를 영입해 버렸다.[11] "자크, 왜 TCS를 안써? 이렇게 편한데." / "응 내 발이 더 정교해"[12] BAR F1 팀의 창립자이자 CEO이자 팀 프린시플[13] 앙리와 질은 본인의 아버지로부터 따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