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사적 제117호 경복궁 | ||
<colbgcolor=#bf1400> 경복궁 빈청 景福宮 賓廳 |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로 161 (세종로) | |
건축시기 | 창건시기 미상 1867년 (중건) 1932년 이전 (철훼 추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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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경복궁의 빈청이다. 유화문의 서쪽에 있었다.2. 이름과 용도
빈청은 삼정승[1]과 정 2품 이상의 고위 관료 및 비변사 당상관들이 평상시에, 아니면 임금을 뵙기 전에 잠시 머물면서 회의하던 곳이었다.그러니까 특정 건물의 고유한 이름이 아니다. 당연히 다른 궁궐에도 빈청들이 있었다. 그러나 다 사라지고 오직 창덕궁 빈청만 지금까지 있다.[2]
‘비궁(匪躬)’의 뜻은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국가에 충성을 다한다'로, 《주역》에서 유래한 말이다. 국가를 이끌어가는 관료들이 나랏일을 의논하는 곳의 이름으로 알맞다.
3. 역사
《성종실록》의 이 기사에서 달성군 서거정이 창덕궁 빈청에 대해 쓴 ‘비궁당기(匪躬堂記)’를 언급한다. 이로 보아 최소 성종 시기에는 존재한 듯 하다. 처음부터 현재 자리에 있었는지는 확실히 모른다. 1592년(선조 25년)에 임진왜란으로 불탄 후 1867년(고종 4년)에 현재의 위치에 재건했으나 이미 1865년(고종 2년)에 당시 섭정 중이던 흥선대원군의 명령으로 비변사가 폐지된 상태여서 고위 관료의 대기실로만 활용한듯 싶다. 이후 일제강점기에 헐리고 현재는 없다.경복궁 2차 복원 공사 2단계(2023년~2034년)에서 제외되지 않고 복원될 예정이다.4. 구조
※ 현재는 없는 건물이기 때문에 《북궐도형》의 모습을 토대로 서술하였다.
<colbgcolor=#bf1400> 《북궐도형》의 빈청 일대 내부 구성도 |
- 빈청 사방을 담당이 둘러싼 뒤에 동,남,북쪽에 쪽문을 두고 서쪽에 부속 건물인 협찬당(協贊堂)이 있다.[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