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6:08:20

경복궁 비현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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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정부상징.svg 대한민국 사적 제117호 경복궁
<colbgcolor=#bf1400> 경복궁 비현각
景福宮 丕顯閣
소재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로 161 (세종로)
건축시기 1463년 (창건)
1866년 (중건)
1999년 (복원)
파일:경복궁 비현각.png
<colbgcolor=#bf1400> 비현각[1]
1. 개요2. 역사3. 구조4. 매체에서의 등장

[clearfix]

1. 개요

경복궁의 건물로, 왕세자가 업무를 보고 공부를 하는 동궁전각이다. 쉽게 말해 공부방사무실이다. 조선 초, 중기동궁처소자선당북쪽에 있었으나 고종 때 중건한 이후 현재동쪽에 위치해있다.

이름은 《서경(書經)》의 ‘매상비현(昧爽丕顯)’이란 구절에서 따왔으며, ‘(새벽에) 덕을 크게(丕) 밝히다(顯)’라는 의미이다.

현재 현판은 각자장[2] 철재(鐵齋) 오옥진(吳玉鎭. 1935 ~ 2014)이 새겼다.

2. 역사

1463년(세조 9년)에 사정전 동쪽 모퉁이의 내상고 2칸을 ‘비현합(丕顯閤)’이라 이름 지은 것이 비현각 역사의 시작이다.#. 조선 초기에는 의 별당이었다.[3] 명종 시기 이후로 ‘비현각(丕顯閣)’으로 칭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경복궁의 다른 건물들과 함께 불 타 없어지고 270년 간 버려진 채 방치되었다가 1866년(고종 3년) 경복궁 중건 때 다시 지어졌다. 이 때 이름도 정식으로 비현각이 되고, 동궁에 속해져 왕세자공부방사무실로 바뀌었다.

일제강점기인 1915년에 ‘시정 5년 기념 조선물산공진회’를 경복궁에서 열면서 헐렸다. 건물은 어느 일본인에게 팔려가 당시 경성부 니시오켄마치(西四軒町)[4]로 옮겨져 별장 '남산장(南山莊)'으로 변모했다. 옮긴 이후 어떻게 되었는 지는 알 수 없으며, 지금 건물은 1999년 12월에 복원한 것이다.

3. 구조

복원현재의 비현각을 기준으로 한다.
파일:비현각 배치도.png}}} ||
파일:비현각 대청.png
||
<colbgcolor=#bf1400> 비현각 배치도 <colbgcolor=#bf1400> 비현각 대청
파일:비현각 서쪽 방 내부.jpg}}} ||
파일:비현각 동쪽 방.png
||
비현각 서쪽 방 내부[5] 비현각 동쪽 방 내부
  • 정면 6칸, 측면 2칸의 총 12칸으로 대청이 정면 3칸에 측면이 1칸 반이다. 이런 애매한 수가 왜 나왔냐면 대청 앞에 밖으로 나온 툇마루를 놓았기 때문이다. 툇마루는 대청 남쪽에만 놓고 동, 서, 북쪽엔 두지 않았다. 그리고 온돌방은, 서편이 정면 2칸, 측면 2칸의 총 4칸이며 동편은 정면 1칸, 측면 2칸의 2칸이다. 이는 대칭으로 되어있는 대부분의 궁궐 전각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서쪽 에서 대청과 연결된 쪽의 방 남쪽엔 정면 1칸, 측면 1칸의 쪽방을 놓고 대청의 툇마루로 바로 나갈 수 있게 하였다. 대청은 전부 한 공간으로 트여있고, 서쪽 방은 남, 북 축으로는 트여있으나 동, 서 축으로는 구분되어 있으며 동쪽 방은 전체 공간이 뚫려있다. 공간 구분은 완자 장지문을 설치한 것으로 하였다.
  • 공포는 초익공으로 쇠서[6]를 둥글게 가공한 물익공을 설치하였다. 처마는 겹처마이고, 지붕은 팔작지붕이며, 원래는 양성바름이 되어있었지만 복원당시 옛 사진이 발견되지 않아서 용마루와 내림마루, 추녀마루는 기와로만 얹고 장식잡상, 용두 없이 취두만 설치했다. 기둥은 네모나게 세웠으며 안에 1개의 고주[7]를 세운 ‘1고주 5량가’ 형식을 띄고 있다.# 단청은 모로단청[8]으로 하여 깔끔한 화려함을 나타내었다.

4. 매체에서의 등장

파일:여인천하 비현각.jpg
파일:명성황후 비현각.jpg
<colbgcolor=#bf1400> 《여인천하》 136회의 비현각 등장 장면 <colbgcolor=#bf1400> 《명성황후》 108회의 비현각 등장 장면
복원 직후 사극에 많이 등장했으며, 주로 동궁으로 자주 나왔다. 대표적으로 SBS 드라마 《여인천하》가 있다. 그리고 극 중 설정 상 다른 건물로 나온 적도 몇 번 있었다. 한 예로, 2002년 KBS 드라마명성황후》에서는, 초반엔 영보당 이씨(정선경 분)의 처소로, 후반에는 명성황후(최명길 분)가 머물던 건청궁 곤녕합으로 나왔었다. 그러나 2000년대 중, 후반 부터 궁궐 촬영이 어려워진 이후엔 실제 비현각이 등장한 적은 없다.

[1] 사진 출처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2] 나무판에 글자그림을 새기는 각자(刻字)의 제작 기능을 가진 장인.[3] 경연을 하거나 신하를 밤에 따로 불러 만나고, 이외에도 잔치국문 등 다양한 활동을 했던 곳이다.#[4] 현재의 서울특별시 중구 장충동.[5] 사진 출처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6] 모양의 부재.[7] 高柱, 이름 그대로 굉장히 높은 기둥을 말한다.[8] 부재(部材)의 두 끝 부분에만 칠한 단청.[9] 가운데에만 창을 낸 뒤 위, 아래를 종이로 바른 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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