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9-10 17:54:32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국가별 전적


파일:상위 문서 아이콘.svg   상위 문서: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1. 개요2. 유럽(UEFA 소속)
2.1. 네덜란드와 상대전적(라이벌)2.2. 잉글랜드와 상대전적(라이벌)2.3. 프랑스와 상대전적(라이벌)2.4. 이탈리아와 상대전적(라이벌)2.5. 러시아와 상대전적(라이벌)2.6. 폴란드와 상대전적(지역 라이벌)2.7. 튀르키예와 상대전적(라이벌)2.8. 스페인과 상대전적(중요 경기)2.9. 동독과 상대전적(해체)2.10. 자를란트와 상대전적(해체)2.11. 그 외 유럽팀 상대전적
3. 아시아(AFC 소속)
3.1. 대한민국과 상대전적3.2. 주요 아시아팀 상대전적3.3. 그 외 아시아팀 상대전적
4. 아프리카(CAF 소속)
4.1. 주요 아프리카팀 상대전적4.2. 그 외 아프리카팀 상대전적
5. 북중미카리브(CONCACAF 소속)
5.1. 주요 북중미카리브팀 상대전적5.2. 그 외 북중미카리브팀 상대전적
6. 남미(CONMEBOL 소속)
6.1. 아르헨티나와 상대전적(라이벌)6.2. 브라질과 상대전적(라이벌)6.3. 주요 남미팀 상대전적6.4. 그 외 남미팀 상대전적
7. 오세아니아(OFC 소속)
7.1. 주요 오세아니아팀 상대전적7.2. 그 외 오세아니아팀 상대전적

1. 개요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의 국가별 전적 및 관계를 다룬 문서.

1990년 독일 통일 이후 서독 축구 국가대표팀의 전적을 승계하였기 때문에 1949~1990년까지의 기록은 서독 대표팀의 기록이며 동독 및 자를란트 대표팀의 기록은 승계하지 않는다.

세계적으로 성공한 축구 대표팀이자 중요한 무대에서 상대팀과의 많은 혈투를 벌였고 역사적으로도 많은 업보를 쌓아 온지라 세계적으로 수많은 라이벌을 가진 대표팀으로 유명하다.
2025.09.10. 기준 (최근경기: vs 북아일랜드 3:1 승)

2. 유럽(UEFA 소속)

2.1. 네덜란드와 상대전적(라이벌)

파일: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colcolor=#fff> 역대 전적
파일: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파일:독일 국기.svg GER A매치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NED
<nopad> 48
<colbgcolor=#006><colcolor=#fff> 18 <nopad> 18 <colbgcolor=#006><colcolor=#fff> 12
90 득점 (+11) <nopad>
파일:독일 국기.svg 우세
79 득점 (-11)
요제프 푀팅거(5) 최다득점자 얀 토메이(5)
<nopad> 최근경기: 독일 승 (2024)
<keepall>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folding [ 독일(통일 이후) 단독 상대전적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파일:독일 국기.svg GER A매치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NED
<nopad> 18
<colbgcolor=#000><colcolor=#fff> 6 <nopad> 7 <colbgcolor=#000><colcolor=#fff> 5
26 득점 (-2) 1990~ 28 득점 (+2)
}}}}}}}}} ||
<keepall>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folding [ 서독 시절 상대전적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파일:독일 국기.svg FRG A매치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NED
<nopad> 15
<colbgcolor=#000><colcolor=#fff> 8 <nopad> 5 <colbgcolor=#000><colcolor=#fff> 2
33 득점 (+15) <nopad> 1949~1990 18 득점 (-15)
}}}}}}}}} ||
<keepall>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folding [ 나치 독일 시절 상대전적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파일:나치 독일 국기.svg DEU A매치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NED
<nopad> 2
<colbgcolor=#000><colcolor=#fff> 1 <nopad> 1 <colbgcolor=#000><colcolor=#fff> 0
5 득점 (+1) <nopad> 1933~1945 4 득점 (-1)
}}}}}}}}} ||
<keepall>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folding [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 상대전적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파일:독일 국기.svg DEU A매치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NED
<nopad> 8
<colbgcolor=#000><colcolor=#fff> 3 <nopad> 3 <colbgcolor=#000><colcolor=#fff> 2
12 득점 (+1) <nopad> 1919~1933 11 득점 (-1)
}}}}}}}}} ||
<keepall>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folding [ 독일 제국 시절 상대전적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파일:독일 제국 국기.svg DEU A매치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NED
<nopad> 5
<colbgcolor=#000><colcolor=#fff> 0 <nopad> 2 <colbgcolor=#000><colcolor=#fff> 3
14 득점 (-4) <nopad> 1908~1918 18 득점 (+4)
}}}}}}}}} ||
독일의 최대 라이벌이 누구인가에 대해 잉글랜드, 프랑스, 이탈리아 어쩌면 메이저 대회에서 명승부를 펼치던 스페인 혹은 다른 대륙의 브라질, 아르헨티나까지 서로가 자진납세하면서 독일의 라이벌이라 자처하겠지만, 진정 독일인들의 답은 도이치-더치 더비 이른바 헤이트 더비를 가장 먼저 뽑을 것이다. 독일과 네덜란드 사이의 역사적인 관계에서 비롯된 감정의 골과 함께 요한 크루이프프란츠 베켄바워세기의 라이벌로 대표되는 관계는 축구계에서 가장 유명한 국가대표 라이벌전을 형성하게 되었다.

두 팀의 첫 만남은 1910년으로 독일 제국 시절 네덜란드가 4-2로 승리한 것이다. 가까운 나라인만큼 메이저 맞대결은 없었지만 서독 시절까지도 수 많은 친선전을 치러왔다. 1960년대까지 전적은 네덜란드가 독일에 6승 6무 7패로 엄청난 경합을 펼쳤다. 하지만 이 때까지 메이저 무대에서 만남은 한 차례도 없었다.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네덜란드 <nopad> 1974-07-08 파일:독일 국기.svg 서독
<nopad> 1:2
<nopad> 파일:1974 FIFA 월드컵 서독 로고.svg 1974 FIFA 월드컵 결승전
1974년, 드디어 두 팀의 사상 첫 메이저 맞대결이 펼쳐진다. 그것은 바로 월드컵 결승전에서 요한 크루이프와 프란츠 베켄바워가 드디어 맞붙게 된 것이다. 전반 2분만에 요한 네스켄스가 페널티골로 앞서나갔지만 파울 브라이트너가 페널티킥으로 동점을 만들었고 게르트 뮐러의 역전골이 터지며 전반을 2-1로 마무리한다. 후반전에 치열한 경합은 계속되었지만 서독이 우세한 가운데 경기가 그대로 종료되었고 끝내 네덜란드의 사상 첫 월드컵 우승의 꿈은 서독에 의해 물거품이 되었다.

2.2. 잉글랜드와 상대전적(라이벌)

파일: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colcolor=#fff> 역대 전적 파일: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파일:독일 국기.svg GER A매치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ENG
<nopad> 35
<colbgcolor=#440><colcolor=#fff> 13 <nopad> 8 <colbgcolor=#440><colcolor=#fff> 14
46 득점 (-11) <nopad>
백중세
57 득점 (+11)
리하르트 호프만(3) 최다득점자 해리 케인(4)
<nopad> 최근경기: 무승부 (2022)
<keepall>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folding [ 독일(통일 이후) 단독 상대전적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파일:독일 국기.svg GER A매치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ENG
<nopad> 16
<colbgcolor=#000><colcolor=#fff> 7 <nopad> 4 <colbgcolor=#000><colcolor=#fff> 5
27 득점 (-9) 1990~ 36 득점 (+9)
}}}}}}}}} ||
<keepall>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folding [ 서독 시절 상대전적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파일:독일 국기.svg FRG A매치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ENG
<nopad> 16
<colbgcolor=#000><colcolor=#fff> 6 <nopad> 3 <colbgcolor=#000><colcolor=#fff> 7
19 득점 (-5) <nopad> 1949~1990 24 득점 (+5)
}}}}}}}}} ||
<keepall>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folding [ 나치 독일 시절 상대전적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파일:나치 독일 국기.svg DEU A매치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ENG
<nopad> 2
<colbgcolor=#000><colcolor=#fff> 0 <nopad> 0 <colbgcolor=#000><colcolor=#fff> 2
3 득점 (-6) <nopad> 1933~1945 9 득점 (+6)
}}}}}}}}} ||
<keepall>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folding [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 상대전적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파일:독일 국기.svg DEU A매치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ENG
<nopad> 1
<colbgcolor=#000><colcolor=#fff> 0 <nopad> 1 <colbgcolor=#000><colcolor=#fff> 0
3 득점 (0) <nopad> 1919~1933 3 득점 (0)
}}}}}}}}} ||
  • 두 나라 관계와 라이벌리
잉글랜드가 독일 대표팀을 놀릴 때 흔히 “Two World war and one World cup.”이라는 구호를 외치는데, 여기서 옅볼 수 있듯이 두 나라는 두번의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오랜 정치적, 역사적 라이벌 의식을 갖는다. 근래 독일 통일 이후에는 유럽 내 주도권 경쟁도 이어지며 감정의 골은 아직도 여전하다. 사실 이런 정치적 맥락에 더해 축구가 오히려 더 큰 적대적 감정 기폭제가 되었는데, 두 팀의 첫 국제경기는 1909년에 잉글랜드가 9-0으로 승리한 것이고 첫 메이저 만남은 이로부터 한참 뒤인 그 유명한 1966년 월드컵으로 여기부터 양 팀의 라이벌리는 소란스럽게 시작되었다.
  • 잉글랜드의 월드컵 우승과 논란
<nopad> 1966-07-30
<nopad> 4:2
[A.E.T]
<nopad> 파일:1966 FIFA World Cup Official logo.png 1966 FIFA 월드컵 결승전
제프 허스트가 해트트릭을 하면서 잉글랜드를 우승시켰던 1966년 웸블리에서 열린 서독과의 결승전 경기 논란으로 인해 두 팀의 라이벌 의식은 매우 공고해졌다. 사실 그 이전까지 독일 및 서독은 잉글랜드에 한 수 아래에 불과했다. 그때까지 잉글랜드는 독일에 7승 1무로 압도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후 2000년까지 둘의 상대전적은 잉글랜드 입장에서 10승 5무 9패까지 좁혀진다. 특히 1966년 결승전 이후로 2000년까지 잉글랜드가 독일에 거둔 승리는 단 3경기 뿐에 불과하다. 특히 메이저 대회에서 독일은 한동안 잉글랜드의 저승사자로 군림하게 된다.
  • 잉글랜드의 천적으로 돌아온 독일
<nopad> 1970-06-14
<nopad> 3:2
[A.E.T]
<nopad> 파일:1970 FIFA 월드컵 멕시코 로고.svg 1970 FIFA 월드컵 8강 준준결승전
4년 뒤인 1970년 월드컵 8강전에서 잉글랜드와 서독이 다시 맞붙게 되었다. 전반전에 터진 앨런 멀러리의 선제골과 마틴 피터스의 추가골로 후반전 2-0으로 잉글랜드가 리드했지만 지난 대회의 복수를 다짐했던 서독은 이후 프란츠 베켄바워, 우베 젤러의 골이 터지며 승부를 2-2로 다시 원점으로 돌렸다. 이후 혈투는 연장전으로 이어졌고 게르트 뮐러의 역전골로 서독은 지난 대회의 원한을 제대로 복수하고 4강에 올랐다.

1972년 유로 예선에서 두 팀은 다시 맞붙었고 잉글랜드는 홈에서 서독에 1-3으로 완패를 당하는 수모를 겪는다. 울리 회네스의 골 이후 프란시스 리의 동점골이 터졌지만 귄터 네처게르트 뮐러의 득점으로 패배하고 말았다. 서독 원정에서 0-0으로 무승부를 거둬 합산에서 밀린 잉글랜드는 본선 진출권을 서독에게 내어주게 된다.
<nopad> 1982-06-29
<nopad> 0:0
<nopad> 파일:1982 FIFA 월드컵 스페인 로고.svg 1982 FIFA 월드컵 12강 2차 조별리그 B조 1경기
1982년 월드컵에서 양팀은 12강 2차 조별리그에서 마주한다. 서독, 잉글랜드 그리고 개최국 스페인이 함께 묶여 조 1위만이 4강에 오를 수 있었는데 첫 경기에서 0-0을 거둔 양팀은 스페인에게 서독이 2-1 승리를 거둔 반면 잉글랜드가 스페인에 0-0 무승부를 거두면서 서독이 4강에 진출하게 되었다.
<nopad> 1990-07-04
<nopad> 1:1
3[P.S.O]4
<nopad> 파일: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 로고.svg 1990 FIFA 월드컵 4강 준결승전
가장 치열했던 경기는 1990 이탈리아 월드컵 준결승전이었고 안드레아스 브레메의 선제골로 서독이 앞서지만 게리 리네커가 동점을 성공시킨다. 연장전 혈투까지 1-1 무승부로 결국 승부차기에 돌입했고 잉글랜드 4-5번 키커 스튜어트 피어스크리스 워들이 승부차기에 실패하면서 서독이 결승에 오른다. 이후 서독은 아르헨티나마저 제압하고 우승한다. 잉글랜드는 1966년 이후 월드컵 본선에서 무려 3번의 패배를 연달아 맞는다.[4]
  • 웸블리에서 독일의 우승과 잉글랜드의 눈물
<nopad> 1996-06-26
<nopad> 1:1
5[P.S.O]6
<nopad> 파일:UEFA 유로 1996 로고.svg UEFA 유로 1996 4강 준결승전
독일 통일 이후 유로 1996 4강에서 잉글랜드와 독일이 다시 처절한 승부를 펼치게 되었다. 유로 우승이 없던 잉글랜드는 자국에서 펼쳐진 유로 대회에서 만드시 우승하겠다는 간절함으로 네덜란드-스코틀랜드-스페인을 이겨내고 4강까지 도달한 상태였다. 경기 역시 전반 3분만에 앨런 시어러의 선제골이 터지며 앞서지만 슈테판 쿤츠에게 동점골을 허용한다. 이후 경기는 득점 없이 연장전까지 끝났고 결국 승부차기에 접어든다. 양 팀의 희비는 7번째 키커에서 갈렸다. 잉글랜드의 가레스 사우스게이트의 슛을 독일 골키퍼 안드레아스 쾨프케가 막아냈고 안드레아스 뮐러가 마지막 슛을 성공시키며 독일이 결승에 오른 것. 결국 독일은 결승전에서 체코를 연장전에서 누르고 잉글랜드 축구의 성지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정상에 오른다. 이를 바라본 잉글랜드는 통한의 눈물을 흘린다.
  • 2000년대 이후 맞대결
<nopad> 2000-06-17
<nopad> 0:1
<nopad> 파일:UEFA 유로 2000 로고.svg UEFA 유로 2000 16강 조별리그 A조 2차전
4년 후인 유로 2000 조별리그에서 다시 만난 양 팀은 데이비드 베컴의 패스를 받은 앨런 시어러의 결승골로 잉글랜드가 34년만에 독일을 메이저 본선에 꺾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그다지 시원한 승리는 아니었던 것이 당시 잉글랜드와 독일 모두 엉망의 경기력을 보여주면서 포르투갈과 루마니아에게 밀려 두 팀 모두 조별리그에서 대회를 마감했기 때문이다.
<nopad> 2010-06-27
<nopad> 4:1
<nopad> 파일: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로고.svg 2010 FIFA 월드컵 16강 토너먼트
1990년 혈투 이후 20년만에 독일과 잉글랜드가 월드컵 무대 녹아웃 스테이지에서 격돌했다. 바로 16강전에서 맞붙은 것인데, 사실 독일은 예상 가능한 정상 루트로 조 1위로 진출했으나 잉글랜드가 미국에 밀려 조 2위로 넘어오는 바람에 두 팀이 16강부터 마주하게 된 것이다. 피 튀기는 혈투가 될 것이라는 예상이 무색하게 전반전부터 독일의 파상공세에 잉글랜드는 정신을 못차리고 미로슬라프 클로제루카스 포돌스키에게 연달아 실점을 내준다. 웨인 루니저메인 데포의 잉글랜드 투톱은 무기력했으며 간신히 세트패스에서 스티븐 제라드의 패스를 받은 매튜 업슨의 헤더로 1골을 따라간다. 이후 프랭크 램파드의 엄청난 중거리 슛이 골라인을 넘겼지만 심판이 골을 선언하지 않는 어처구니 없는 오심으로 결국 흐름을 잃어버렸고 후반전에 토마스 뮐러에게 2골을 잇달아 내주면서 4-1이라는 참사를 맞이하게 된다.[6]
<nopad> 2021-06-30
<nopad> 2:0
<nopad> 파일:UEFA 유로 2020 로고.svg UEFA 유로 2020 16강 토너먼트
유로 2020 16강에서 양 팀의 10년만의 메이저 재대결이 성사되었다. 하필 지난 1996년 잉글랜드 대회에서 앙금이 있던 양팀이었는데 또 다시 잉글랜드에서 25년만[7]의 맞대결이 펼쳐진 것이다. 경기 결과는 라힘 스털링해리 케인의 골로 잉글랜드가 정말 오랜만에 메이저 대회에서 독일에 2-0 완승을 거두었다.
현재까지 독일은 13승 잉글랜드가 14승일 정도 박빙의 전적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치열하며 서로를 매우 미워한다. 당장 독일이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한국에 패배해 32강 조별리그에서 탈락(22등)하자 한국만큼 환호했던 사람들이 잉글랜드 사람들이다.

2.3. 프랑스와 상대전적(라이벌)

파일: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colcolor=#fff> 역대 전적 파일: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 2024.svg
파일:독일 국기.svg GER A매치 파일:프랑스 국기.svg FRA
<nopad> 35
<colbgcolor=#600><colcolor=#fff> 11 <nopad> 8 <colbgcolor=#600><colcolor=#fff> 16
50 득점 (-3) <nopad>
파일:프랑스 국기.svg 우세
53 득점 (+3)
게르트 뮐러, 루디 푈러(3) 최다득점자 앙투안 그리즈만(5)
<nopad> 최근경기: 프랑스 승 (2025)
<keepall>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folding [ 독일(통일 이후) 단독 상대전적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파일:독일 국기.svg GER A매치 파일:프랑스 국기.svg FRA
<nopad> 16
<colbgcolor=#000><colcolor=#fff> 4 <nopad> 3 <colbgcolor=#000><colcolor=#fff> 9
11 득점 (-9) 1990~ 20 득점 (+9)
}}}}}}}}} ||
<keepall>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folding [ 서독 시절 상대전적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파일:독일 국기.svg FRG A매치 파일:프랑스 국기.svg FRA
<nopad> 15
<colbgcolor=#000><colcolor=#fff> 5 <nopad> 4 <colbgcolor=#000><colcolor=#fff> 6
29 득점 (+1) <nopad> 1949~1990 28 득점 (-1)
}}}}}}}}} ||
<keepall>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folding [ 나치 독일 시절 상대전적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파일:나치 독일 국기.svg DEU A매치 파일:프랑스 국기.svg FRA
<nopad> 2
<colbgcolor=#000><colcolor=#fff> 2 <nopad> 0 <colbgcolor=#000><colcolor=#fff> 0
7 득점 (+6) <nopad> 1933~1945 1 득점 (-6)
}}}}}}}}} ||
<keepall>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folding [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 상대전적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파일:독일 국기.svg DEU A매치 파일:프랑스 국기.svg FRA
<nopad> 2
<colbgcolor=#000><colcolor=#fff> 0 <nopad> 1 <colbgcolor=#000><colcolor=#fff> 1
3 득점 (-1) <nopad> 1919~1933 4 득점 (+1)
}}}}}}}}} ||

일명 보불전쟁으로 통하는 독-프전은 이 두나라가 치열하게 부딪히며 살아온 역사를 토대로 뿌리 깊은 라이벌전을 자랑한다. 과거 수 많은 전쟁의 역사를 뒤로하고 오늘날 많은 관계 개선을 이루어냈지만 여전히 유럽의 대장을 자처하는 강대국들로 분야를 막론하고 만났다하면 기싸움을 벌이는 것이 바로 두 나라이다. 두 나라의 정치-역사적 라이벌 의식은 독일-프랑스 관계 참고.
1931년 양 팀의 첫 맞대결에서 프랑스가 1-0으로 승리한 이후 제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의 전적은 4전 2승 1무 1패로 독일이 앞서지만 종전 이후 2차례의 평가전에서 프랑스가 서독에게 2연승을 따내면서 상대전적을 역전시킨다. 전쟁으로 이미 원수가 된 두 나라인지라 특히 독일의 점령지로 전락했던 프랑스와 패전국 서독의 대결은 그야말로 처절했다.
<nopad> 1958-06-28
<nopad> 3:6
<nopad> 파일:1958 FIFA World Cup Official logo.png 1958 FIFA 월드컵 3위 결정전
1958년 스웨덴 월드컵에서 사상 첫 메이저 맞대결을 펼쳤는데 양 팀 모두 준결승전에서 프랑스는 브라질에게 서독은 스웨덴에게 패하며 3-4위전에서 만난 것으로 이 경기에서 쥐스트 퐁텐이 무려 4골을 터뜨리는 등 도합 6-3으로 프랑스가 승리했으며 퐁텐은 13골로 득점왕에 오른다. 여담으로 이 기록은 단일 대회 최다골로 현재까지 깨지지 않는 기록이다.
<nopad> 1982-07-08
<nopad> 3:3
4[P.S.O]3
<nopad> 파일:1982 FIFA 월드컵 스페인 로고.svg 1982 FIFA 월드컵 4강 준결승전
이후 서독과 프랑스는 관계 개선을 점진적으로 이루어내며 여러차례 친선전을 치른다. 그러다 1982년 FIFA 월드컵에서 드디어 녹아웃 스테이지 맞대결을 펼치는데.. 바로 4강 준결승전에서 마주하게 된 것이다. 이 경기는 월드컵 역사에서 손꼽히는 명승부로 프랑스가 피에르 리트바르스키의 선제골로 앞서가지만 미셸 플라티니의 페널티골로 1-1로 균형이 맞춰지며 연장전에 돌입하게 된다. 연장전에서 마리위스 트레소르의 역전골과 알랭 지레스의 쐐기골로 프랑스가 사상 첫 결승을 눈 앞에 두지만 카를하인츠 루메니게클라우스 피셔가 3-3 동점을 성공시키며 승부는 결국 최후의 승부차기로 이어진다. 승부차기에서 서독은 3번째 키커 울리 슈틸리케가 실축하지만 프랑스 4번째 키커 디디에 식스의 슛을 하랄트 슈마허가 막아냈고 마지막 8번째 키커였던 막심 보시스의 슛을 막아내며 팀을 결승으로 이끈다. 하지만 결승에서 이탈리아에게 패하며 서독은 준우승에 머무른다.
<nopad> 1986-06-25
<nopad> 0:2
<nopad> 파일:1986 FIFA 월드컵 멕시코 로고.svg 1986 FIFA 월드컵 4강 준결승전
4년전 혈투의 여운이 채 가시기 전에 1986년 월드컵 4강전에서 두 팀은 또 다시 격돌하게 된다. 유로 우승을 이끈 프랑스의 축구 영웅 미셸 플라티니의 마지막 국가대표팀 대회로 그 방점을 월드컵 우승으로 짓고자 했던 프랑스는 오히려 서독의 공세에 크게 고전하고 4년전보다 훨씬 일방적인 경기를 당하며 안드레아스 브레메루디 푈러의 연속골에 0-2로 패하며 허무하게 탈락하고 말았다.
<nopad> 2014-07-04
<nopad> 0:1
<nopad> 파일: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로고.svg 2014 FIFA 월드컵 8강 준준결승전
1990년 독일이 통일되고 이후 한 동안 메이저 격돌은 크게 없었다. 2006년 독일 월드컵에 두 팀이 4강에 진출했지만 프랑스가 포르투갈을 꺾고 결승에 오른 반면 독일은 아주리 징크스에 발목을 잡히며 두 팀의 월드컵 결승전에서의 만남은 불발된다. 멕시코 월드컵 이후 28년만에 양 팀이 다시 격돌한 것은 2014 브라질 월드컵 8강전이었다. 양팀 모두 화려한 스쿼드를 자랑하며 우승후보로 뽑혔고 이 경기는 8강전의 하이라이트였다. 디디에 데샹이 새롭게 세대교체를 시킨 프랑스는 요하임 뢰브가 이끄는 독일에게 고전했고 전반전 프리킥 상황에서 토니 크로스의 크로스를 받은 마츠 후멜스의 헤딩골을 잘지킨 독일이 4강에 오른다. 그리고 그 4강전을... 완파하고 결승에 오른 독일은 리오넬 메시의 아르헨티나도 꺾으면서 자신들의 4번째 월드컵 트로피를 들어올린다.
<nopad> 2016-07-08
<nopad> 0:2
<nopad> 파일:UEFA 유로 2016 로고.svg UEFA 유로 2016 4강 준결승전
프랑스에서 열린 유로 2016 4강에서 독일과 프랑스의 맞대결이 펼쳐졌다. 이는 유로 대회 사상 양 팀의 첫만남이다. 당시 독일이 아직 건재하다는 평이 많았지만 개최국 프랑스 역시 만만치 않았고 결과는 지는 태양과 뜨는 태양의 맞대결로 앙투안 그리즈만이 2골을 터뜨리며 독일을 2-0으로 꺾고 결승에 오랐다. 하지만 결승전에서 프랑스는 포르투갈에 충격전이 패배를 당하며 본국에서 호날두의 사상 첫 메이저 트로피의 조연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nopad> 2021-06-16
<nopad> 1:0
<nopad> 파일:UEFA 유로 2020 로고.svg UEFA 유로 2020 24강 조별리그 F조 1차전
4년 후 맞붙은 유로2020 조별리그에서는 프랑스가 독일에 1-0으로 승리했는데 뤼카 에르난데스의 크로스를 6년전 결승골의 주인공 마츠 후멜스가 자책골을 넣었고 이것이 결승골이 되었다. 한편 두 팀은 각각 프랑스 조 1위, 독일 조 2위로 함께 16강에 진출했다.
가장 최근 경기는 2025년 네이션스리그 3-4위전에서 프랑스가 독일에 2-0으로 승리한 것이다.

2.4. 이탈리아와 상대전적(라이벌)

파일: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colcolor=#fff> 역대 전적 파일: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파일:독일 국기.svg GER A매치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ITA
<nopad> 39
<colbgcolor=#440><colcolor=#fff> 10 <nopad> 14 <colbgcolor=#440><colcolor=#fff> 15
52 득점 (-5) <nopad>
백중세
57 득점 (+5)
프란츠 바인더(5) 최다득점자 아메데오 비아바티 등(2)
<nopad> 최근경기: 무승부 (2025)
<keepall>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folding [ 독일(통일 이후) 단독 상대전적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파일:독일 국기.svg GER A매치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ITA
<nopad> 17
<colbgcolor=#000><colcolor=#fff> 5 <nopad> 7 <colbgcolor=#000><colcolor=#fff> 5
24 득점 (+2) 1990~ 22 득점 (-2)
}}}}}}}}} ||
<keepall>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folding [ 서독 시절 상대전적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파일:독일 국기.svg FRG A매치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ITA
<nopad> 13
<colbgcolor=#000><colcolor=#fff> 3 <nopad> 6 <colbgcolor=#000><colcolor=#fff> 4
14 득점 (-1) <nopad> 1949~1990 15 득점 (+1)
}}}}}}}}} ||
<keepall>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folding [ 나치 독일 시절 상대전적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파일:나치 독일 국기.svg DEU A매치 파일:이탈리아 왕국 국기.svg ITA
<nopad> 4
<colbgcolor=#000><colcolor=#fff> 1 <nopad> 1 <colbgcolor=#000><colcolor=#fff> 2
10 득점 (0) <nopad> 1933~1945 10 득점 (0)
}}}}}}}}} ||
<keepall>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folding [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 상대전적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파일:독일 국기.svg DEU A매치 파일:이탈리아 왕국 국기.svg ITA
<nopad> 5
<colbgcolor=#000><colcolor=#fff> 1 <nopad> 0 <colbgcolor=#000><colcolor=#fff> 4
4 득점 (-6) <nopad> 1919~1933 10 득점 (+6)
}}}}}}}}} ||
한국에서 흔히 추축국 더비라 부르는 이탈리와 독일의 라이벌전은 총 5번의 월드컵 본선 맞대결을 펼쳤을 정도로 중요한 경기도 많았고 경기 내용 역시 세기의 경기라 불릴 정도로 명승부가 많았다. 특히 강력한 공격력으로 골 폭격을 일삼는 독일의 공격 축구와 카테나치오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수비 축구는 이 라이벌전의 묘미로 불린다. 하지만 메이저 대회로 가면 그 실상은 달라지는데...

두 팀의 첫 대결은 1923년이었고 이탈리아가 독일에 3-1로 승리를 거두었다. 이후 나치 집권 시기 특히 이탈리아와 우호적인 교류에 따라 많은 친선전을 치렀다.[9] 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양 팀의 전적은 이탈리아가 독일에 6승 1무 2패로 우세했다.

메이저 대회에서 처음 맞대결한 것은 서독 시절인 1962년 칠레 월드컵으로 그 당시에는 몰랐지만 이후로 이어지는 이른바 독일의 아주리 징크스가 이어진다. 이후 자세한 사항은 해당 문서 참고.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아주리 징크스 문서
#!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를
#!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아주리 징크스#s-|]]번 문단을
#!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아주리 징크스#|]]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2.5. 러시아와 상대전적(라이벌)

파일: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colcolor=#fff> 역대 전적 파일:러시아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파일:독일 국기.svg GER A매치 파일:러시아 국기.svg RUS
<nopad> 20
<colbgcolor=#006><colcolor=#fff> 15 <nopad> 2 <colbgcolor=#006><colcolor=#fff> 3
51 득점 (+36) <nopad>
파일:독일 국기.svg 우세
15 득점 (-36)
고트프리드 푸흐스(10) 최다득점자 이고리 도브로볼스키, 안드레이 아르샤빈(2)
<nopad> 최근경기: 독일 승 (2018)
<keepall>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folding [ 러시아 단독 상대전적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파일:독일 국기.svg GER A매치 파일:러시아 국기.svg RUS
<nopad> 6
<colbgcolor=#000><colcolor=#fff> 5 <nopad> 1 <colbgcolor=#000><colcolor=#fff> 0
12 득점 (+9) 1992~ 3 득점 (-9)
}}}}}}}}} ||
<keepall>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folding [ 독립국가연합 시절 상대전적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파일:Germany DFB 1978-1994.png <colcolor=#fff> 역대 전적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00px-CIS_football.svg.png
파일:독일 국기.svg GER A매치 파일:독립국가연합 기(1991~1996).svg CIS
<nopad> 1
<colbgcolor=#000><colcolor=#fff> 0 <nopad> 1 <colbgcolor=#000><colcolor=#fff> 0
1 득점 (0) <nopad> 1992 1 득점 (0)
}}}}}}}}} ||
<keepall>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folding [ 소련 시절 상대전적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파일:Germany DFB 1970 1974.png <colcolor=#fff> 역대 전적 파일:소련 축구 연맹 로고.svg
파일:독일 국기.svg FRG A매치 파일:소련 국기.svg URS
<nopad> 12
<colbgcolor=#000><colcolor=#fff> 9 <nopad> 0 <colbgcolor=#000><colcolor=#fff> 3
22 득점 (-11) <nopad> 1922~1991 11 득점 (+11)
}}}}}}}}} ||
<keepall>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folding [ 러시아 제국 시절 상대전적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파일:독일 제국 국기.svg DEU A매치 파일:러시아 제국 국기.svg RUS
<nopad> 1
<colbgcolor=#000><colcolor=#fff> 1 <nopad> 0 <colbgcolor=#000><colcolor=#fff> 0
16 득점 (+16) <nopad> 1912~1917 0 득점 (-16)
}}}}}}}}} ||
이미 1차대전에서 피의 동부전선을 보여준 것으로 모자라 지구 역사상 최악의 전쟁으로 불리는 아돌프 히틀러이오시프 스탈린독소전쟁을 치르며 인종청소 등 현실 캐삭빵을 제대로 치렀던 두 나라는 한 마디로 피의 숙적 관계이다. 전쟁의 상처가 채 가시지 않고 냉전이 한창이던 시기 서독과 소련의 대결은 그야말로 냉랭 그 자체였다. 시간이 흘러 독일 통일 및 소련 해체 이후에는 양국 관계가 많이 좋아졌으나[10] 여전히 두 국가는 씻을 수 없는 감정을 주고 받았기 때문에 모든 분야에 있어 서로를 경계하고 패해서는 안되는 라이벌 의식이 자리잡고 있다.

축구에서 양 팀이 처음 맞붙은 것은 무려 1912년 독일 제국러시아 제국이 존재하던 시절로 고트프리드 푸흐스가 10골을 몰아넣으면서 16-0이라는 기록적인 결과가 나왔고 이는 현재에도 각각 독일과 러시아 대표팀의 최다 득점-실점차 경기로 남아 있다. 이후 다시 만난 것은 격동했던 2차례 세계대전이 지난 뒤인 1955년으로 당시 친선 교류전에서 소련이 서독에 3-2, 2-1로 연달아 승리했다.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양 팀은 사상 첫 메이저 대회 대결을 펼친다. 당시 소련의 골키퍼는 레프 야신으로 4강전까지 단 2개의 실점만을 기록한 상태였다. 하지만 서독은 헬무트 할러의 선제골로 앞서간다. 이고르 치슬렌코가 퇴장을 당한 상황에서 후반전 프란츠 베켄바워의 골이 터지면서 야신에게 처음으로 2골을 얻어냈고 소련은 발레리 포르쿠얀의 추격골이 터지지만 결국 2-1로 서독이 결승에 오르게된다.

이후 1972년 유로 선수권 대회에서 서독과 소련의 재대결이 펼쳐지는데 심지어 결승전에서 격돌하게 된다. 당시 소련은 과거에 비해 전력이 약해졌지만 여전히 견고한 수비를 갖춘 탄탄한 팀이었다. 하지만 서독의 황금세대는 게르트 뮐러의 2골과 헐버트 빔머의 득점을 앞세워 소련을 무려 3-0으로 격파하며 유로 사상 첫 우승을 이룬다.

이후 소련 축구는 점차 퇴보하는데 반해 서독은 세계적인 팀이 되어가면서 상대전적은 독일로 많이 기울게 된다. 1985년 소련이 승리한 경기가 현재 러시아까지 포함하여 마지막으로 독일에 승리한 경기이다.

독일 통일 이후 소련은 독립국가연합이던 시절 출전한 유로 1992에서는 1-1 무승부를 거두었다. 독일의 득점자는 토마스 헤슬러, 독립국가연합은 이고르 도브로볼스키이다.

유로 1996 조별리그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메이저 대회에서 러시아라는 국명으로 맞붙게 되었다. 하지만 결과는 위르겐 클린스만에게 2골을 먹히는 등 0-3으로 독일에게 패했다.

러시아 수립 이후에는 현재까지 독일에게 1무 5패로 처참한 성적을 거두고 있다. 여담으로 2018 러시아 월드컵 당시 독일이 카잔의 기적을 당하며 한국 대표팀에 0-2로 패하면서 러시아 본토에서 충격적인 패배를 당하자 현지 러시아인들은 ‘러시아 온 독일은 필히 망한다’면서 기뻐하며 독일을 조롱하는 댓글들이 달리기도 하였다.

2.6. 폴란드와 상대전적(지역 라이벌)

파일: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colcolor=#fff> 역대 전적 파일:폴란드 국장.svg
파일:독일 국기.svg GER A매치 파일:폴란드 국기.svg POL
<nopad> 22
<colbgcolor=#006><colcolor=#fff> 13 <nopad> 7 <colbgcolor=#006><colcolor=#fff> 2
34 득점 (+21) <nopad>
파일:독일 국기.svg 우세
13 득점 (-21)
요제프 가우헬, 게르트 뮐러(3) 최다득점자 야쿠프 키비오르 등 13명(1)
<nopad> 최근경기: 폴란드 승 (2023)
<keepall>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folding [ 독일(통일 이후) 단독 상대전적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파일:독일 국기.svg GER A매치 파일:폴란드 국기.svg POL
<nopad> 9
<colbgcolor=#000><colcolor=#fff> 4 <nopad> 3 <colbgcolor=#000><colcolor=#fff> 2
10 득점 (+4) 1990~ 6 득점 (-4)
}}}}}}}}} ||
<keepall>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folding [ 서독 시절 상대전적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파일:독일 국기.svg FRG A매치 파일:폴란드 국기.svg POL
<nopad> 13
<colbgcolor=#000><colcolor=#fff> 5 <nopad> 3 <colbgcolor=#000><colcolor=#fff> 0
12 득점 (+9) <nopad> 1949~1990 3 득점 (-9)
}}}}}}}}} ||
<keepall>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folding [ 나치 독일 시절 상대전적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파일:나치 독일 국기.svg DEU A매치 파일:폴란드 국기.svg POL
<nopad> 5
<colbgcolor=#000><colcolor=#fff> 4 <nopad> 1 <colbgcolor=#000><colcolor=#fff> 0
12 득점 (+8) <nopad> 1933~1945 4 득점 (-8)
}}}}}}}}} ||
폴란드는 독일과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나라들 중 하나로 오랜 시간 역사-정치적인 사건들을 공유하면서 자연스럽게 오늘날의 민족적 라이벌 의식을 갖게 되었다. 특히 프로이센 왕국 시절부터 폴란드는 독일과 독일이 끌어들인 강대국에 의해 18세기 후반부터 대략 150여년의 세월 동안 분할되고 합쳐지고를 무려 5번이나 반복하는데...특히 마지막 5번째 분할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졌고 여기서 폴란드 땅에서 일어난 아우슈비츠 수용소 등의 잔혹한 사건은 두 나라의 관계에 있어 영향을 미치는 가장 큰 사건이었다고 볼 수 있다. 두 나라의 정치적-역사적 관계는 독일-폴란드 관계 참고.

독일과 폴란드 사이의 첫 대결은 1933년 있었고 독일이 1-0 승리를 거두었다. 이후 독일은 폴린드에 압도적인 우위를 가져갔다.

양 팀의 월드컵 본선 첫 맞대결은 1974 서독 월드컵 8강 준결승리그 경기로 당시 서독은 게르트 뮐러의 골로 1-0 신승을 거두었다. 폴란드는 나름 선전했지만 서독에 밀리며 조 2위가 되어 3-4위전에서 디펜딩챔피언 브라질을 이기고 3위로 대회를 마감한다.

1978년 월드컵 16강 조별리그에서 같은 조에 편성되어 맞대결을 펼친다. 하지만 경기결과는 0-0 무승부에 그친다. 당시 의외로 튀니지가 분전한 가운데 폴란드가 조 1위, 서독이 간신히 조 2위로 8강에 진출했다.

이후 한동안 메이저 본선 무대에서 마주하지 못하다가 다시 조우한 것은 21세기에 들어선 2006 독일 월드컵 조별리그였다. 당시 1차전 독일은 개막전이서 코스타리카에 4-2 완승을 거둔 상황이었고 폴란드는 에콰도르에 0-2로 완패를 당했다. 2차전에서 맞붙은 양 팀은 독일이 우세했지만 워낙 독일을 잘알던 폴란드가 수비를 잘해낸다. 하지만 막판 올리버 뇌빌에게 통한의 실점을 허용하면서 0-1 분패를 당했고 최종전에서 코스타리카에 승리했지만 에콰도르에 패배가 워낙 컸던지라 조별리그 탈락을 맛본다. 독일은 3전 전승으로 16강에 올랐다.

유로 2008에서 유로 대회 첫 맞대결을 펼쳤다. B조 첫경기에서 맞붙은 양 팀은 루카스 포돌스키가 2골을 넣으며 2-0 독일의 완승으로 끝이 났다.

2014년 10월 11일, 유로 예선 경기에서 폴란드와 독일이 같은 조에 편성되어 폴란드의 홈경기를 치렀다. 이 경기에서 폴란드는 아르카디우스 밀리크, 세바스티안 밀라의 득점으로 독일과 맞대결을 펼친지 19번째 경기만에 처음으로 폴란드 홈팬들 앞에서 독일을 꺾어냈다. 원정 경기에서는 독일이 3-1로 승리했다.

유로 2016에서 양 팀은 조별리그 경기를 치렀으나 0-0 무승부를 기록했다. 리그 결과는 독일이 조 1위, 폴란드가 조 2위로 16강에 진출했다.

가장 최근 경기인 2023년 친선경기에서 폴란드가 독일에 야쿠프 키비오르의 결승골에 힘입어 1-0 승리를 거둔다.

여담으로 두 나라는 사이는 여러 역사적인 부분으로 영토소유권이 자주 바뀌면서 축구계에서 독일-폴란드 사이에 공동의 혈통을 갖는 경우가 빈번하게 이루어진다. 대표적인 선수로는 미로슬라프 클로제, 루카스 포돌스키 등이 있다. 유수의 폴란드 선수들이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하는 경우도 많다.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 야쿠프 브와슈치코프스키, 우카시 피슈체크 등이 대표적이다.

2.7. 튀르키예와 상대전적(라이벌)

파일: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colcolor=#fff> 역대 전적 파일:튀르키예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파일:독일 국기.svg GER A매치 파일:튀르키예 국기.svg TUR
<nopad> 22
<colbgcolor=#006><colcolor=#fff> 14 <nopad> 4 <colbgcolor=#006><colcolor=#fff> 4
54 득점 (+35) <nopad>
파일:독일 국기.svg 우세
19 득점 (-35)
막스 모를로크(6) 최다득점자 유수프 사리 등 19명(1)
<nopad> 최근경기: 튀르키예 승 (2023)
<keepall>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folding [ 독일(통일 이후) 단독 상대전적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파일:독일 국기.svg GER A매치 파일:튀르키예 국기.svg TUR
<nopad> 9
<colbgcolor=#000><colcolor=#fff> 4 <nopad> 2 <colbgcolor=#000><colcolor=#fff> 3
17 득점 (+7) 1990~ 12 득점 (-7)
}}}}}}}}} ||
<keepall>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folding [ 서독 시절 상대전적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파일:독일 국기.svg FRG A매치 파일:튀르키예 국기.svg TUR
<nopad> 13
<colbgcolor=#000><colcolor=#fff> 10 <nopad> 2 <colbgcolor=#000><colcolor=#fff> 1
37 득점 (+30) <nopad> 1949~1990 7 득점 (-30)
}}}}}}}}} ||
독일과 튀르키예의 관계는 예로부터 세계대전 당시 몇 안되는 독일의 동맹을 들 정도로 매우 우호적인 편에 속했고, 특히 라인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독일 경제 성장에 있어 튀르키예 출신 노동자들이 대거 이주하여 독일 사회에 편입되면서 양국의 우호관계 교류는 깊어졌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외국인 노동자 문제이민 문제 등이 독일 내에서 큰 사회적 갈등을 일으키며 감정적인 충돌이 발생하게 되었고, 특히 독일 내에서 반이슬람 정서가 확산되고 네오나치의 튀르키예계 독일인 대상 범죄도 기승하고 있다. 튀르키예 에르도안 대통령과 독일 메르켈 총리의 갖은 외교적 마찰이 발생하며 결국 감정의 골이 문드러지고 말았다. 독일에서도 꽤나 심각한 이슈로 자국 내 튀르키예 문제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양 팀의 첫 맞대결은 1951년으로 놀랍게도 튀르키예가 서독에 2-1 승리를 거두었다. 이후 1954년 스위스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양팀은 처음 메이저 맞대결을 벌인다. 이 경기는 또한 튀르키예 역사상 첫번째 월드컵 경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결과는 1-4로 패했고 튀르키예는 한국을 상대로 7-0으로 승리 서독이 헝가리에게 패하면서 다시 플레이오프를 치를 기회를 얻지만 2-7로 참패하면서 한국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월드컵 여정도 아픈 역사로 끝이 난다.

이후 반세기 동안 주로 유럽 예선에서 자주 맞붙어왔다. 그러다가 오랜만의 메이저 맞대결을 펼치게 된것은 유로 2008 경기로 돌풍의 튀르키예가 8강에서 크로아티아를 승부차기 끝에 제압하고 올라온 것이었다. 독일 역시 포르투갈과의 혈투 끝에 3-2로 승리하며 올라온 상황. 하지만 부상과 징계가 몰린 튀르키예가 더 불리한 실정이었는데 오히려 경기는 튀르키예의 재빠른 역습에 독일이 크게 고전하고 만다. 우우르 보랄이 선제골을 터트리며 앞서간 튀르키예는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에게 동점을 허용한다. 후반전에 미로슬라프 클로제가 역전을 성공시키지만 세미흐 셴튀르크의 동점골로 팽팽해졌던 경기종료 직전 필립 람의 결승골이 터지면서 독일이 천신만고 끝에 결승전에 오른다.[11]

가장 최근 맞대결인 2023년 11월 19일, 독일 베를린에서 양 팀의 경기는 원정팀 튀르키예가 3-2로 승리하며 독일에 승리를 거두었는데 이보다 더욱 독일인들에게 충격을 선사했던 것이 바로 경기장에 입장한 자국 독일팬보다 튀르키예를 응원하는 팬들이 훨씬 많아 독일에서 큰 논란이 불기도 했다.

상술한 바와 같이 독일 내 많은 튀르키예 이주민의 후손들이 독일 대표팀에서 뛰는 경우도 많아 졌다. 메수트 외질일카이 귄도안 등이 대표적인 케이스. 이외에도 독일 분데스리가는 유망한 튀르키예 선수들의 최우선 진출 무대이기도 하다.

2.8. 스페인과 상대전적(중요 경기)

파일: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colcolor=#fff> 역대 전적
파일: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 엠블럼.svg
파일:독일 국기.svg GER A매치 파일:스페인 국기.svg ESP
<nopad> 27
<colbgcolor=#440><colcolor=#fff> 9 <nopad> 9 <colbgcolor=#440><colcolor=#fff> 9
32 득점 (-2) <nopad>
백중세
34 득점 (+2)
메흐메트 숄, 알렉산더 치클러(2) 최다득점자 라울 곤살레스, 페란 토레스(3)
<nopad> 최근경기: 스페인 승 (2022)
<keepall>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folding [ 독일(통일 이후) 단독 상대전적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파일:독일 국기.svg GER A매치 파일:스페인 국기.svg ESP
<nopad> 12
<colbgcolor=#000><colcolor=#fff> 2 <nopad> 5 <colbgcolor=#000><colcolor=#fff> 5
11 득점 (-7) 1990~ 18 득점 (+7)
}}}}}}}}} ||
<keepall>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folding [ 서독 시절 상대전적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파일:독일 국기.svg FRG A매치 파일:스페인 국기.svg ESP
<nopad> 12
<colbgcolor=#000><colcolor=#fff> 6 <nopad> 3 <colbgcolor=#000><colcolor=#fff> 3
17 득점 (+5) <nopad> 1949~1990 12 득점 (-5)
}}}}}}}}} ||
<keepall>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folding [ 나치 독일 시절 상대전적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파일:나치 독일 국기.svg DEU A매치 파일:스페인국 국기(1938-1945).svg ESP
<nopad> 3
<colbgcolor=#000><colcolor=#fff> 1 <nopad> 1 <colbgcolor=#000><colcolor=#fff> 1
4 득점 (0) <nopad> 1933~1945 4 득점 (0)
}}}}}}}}} ||
독일과 스페인의 첫 맞대결은 1935년 나치의 아돌프 히틀러와 그에 협력하던 스페인의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있던 시절이다. 당시 스페인이 독일에 2-1로 승리한다. 이후에도 나치 시절 양팀은 3전 1승 1무 1패를 기록한다.

독일과 스페인의 첫 메이저 대회 맞대결은 서독 시절이던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조별리그 경기로 스페인이 주제프 마리아 푸스테의 선제골로 앞서지만 로타어 에머리히우베 젤러의 연속골로 서독에 1-2로 패한다.

이후 다시 월드컵에서 만난 것은 1982년 스페인 월드컵 조별리그였다. 당시 개최국 스페인도 만만치 않은 전력이었으나 노련했던 서독은 피에르 리트바르스키클라우스 피셔의 득점으로 리드를 잡는다. 스페인이 헤수스 마리아 사모라의 골로 만회하지만 이번에도 서독에 1-2로 패하고 말았다.

양 팀의 맞대결은 곧이어 유로 1984에서도 성사된다. 조별리그 같은 조에 편성되었던 양 팀은 대결은 스페인이 1-0으로 승리했고 유로 1988에서도 같은 조에 편성되었으나 이번에는 서독이 스페인에 2-0 승리를 가져간다.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도 같은 조에 편성되었는데 양 팀은 혼 안도니 고이코에체아위르겐 클린스만이 득점한 가운데 1-1 무승부를 기록했다. 여담으로 이 조에 대한민국도 편성되었었다.

독일과 스페인의 맞대결에서 가장 중요했던 경기는 2008년 펼쳐진다. 유로 2008 결승전이 바로 그것으로 황금세대를 맞이했던 스페인은 이 경기에서 페르난도 토레스의 결승골로 독일을 제압하고 유로 챔피언에 오른다.

2010년 월드컵 4강전에서 맞대결 역시 손 꼽히는 명승부로 뽑힌다. 치열했던 승부의 균형은 카를레스 푸욜의 헤더슛에서 결판났고 이 득점에 힘입은 스페인은 독일을 누르고 사상 첫 월드컵 결승에 진출한다. 그리고 네덜란드 마저 꺾으며 사상 첫 월드컵 트로피를 들어올린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 다시 같은 조에 편성되었다. 양 팀은 알바로 모라타니클라스 퓔크루크의 골로 1-1 무승부를 거두었는데, 무난이 조 1, 2위를 독식할 것으로 보였던 두 팀은 일본과 코스타리카에 고전했고 일본에 밀린 스페인은 간신히 조 2위로 16강에 오른 반면 끝내 독일은 2018년에 이어 두 대회 연속 조별리그 탈락을 경험하게 된다.

유로 2024 8강전에서 또 다시 맞붙게 되었다. 전반전 성과 없이 끝낸 두 팀은 후반전에 다니 올모가 선제골을 넣었지만 플로리안 비르츠의 동점골이 터지면서 연장전 승부에 돌입하게 된다. 치열했던 승부는 연장전 종료 직전 극적인 미켈 메리노의 헤딩골로 스페인이 2-1로 승리하며 4강전에 진출했다.

2.9. 동독과 상대전적(해체)

파일:Germany DFB 1970 1974.png <colcolor=#fff> 역대 전적 파일:동독 축구 국가대표팀 엠블럼.svg
파일:독일 국기.svg FRG A매치 파일:동독 국기.svg GDR
<nopad> 1
<colbgcolor=#000><colcolor=#fff> 0 <nopad> 0 <colbgcolor=#000><colcolor=#fff> 1
0 득점 (-1) <nopad> 1952~1990 1 득점 (+1)
없음 최다득점자 위르겐 슈파르바서(1)

1945년 분단 이후 서독과 동독 사이의 맞대결은 주로 올림픽 대표팀에서 이루어졌다. 1964년 도쿄 올림픽 출전권을 두고 처음 맞붙은 대결에서 동독이 홈에서 3-0 승리, 원정에서 1-2 패배를 당하나 합산 스코어 우세로 독일 대표로 올림픽에 출전한다.[12]

이후 1972년 서독이 개최한 뮌헨 올림픽 본선에서 양 팀은 올림픽 대표팀 사이의 첫 메이저 대회 맞대결을 펼친다. 준결승리그 마지막 3차전에서 동메달 결정전 진출권을 두고 치열한 혈투를 벌인 두 팀은 3-2로 동독의 승리로 끝났고 이후 소련과 무승부를 거두어 공동 동메달을 획득한다.[13]

그간 굵직한 올림픽 대표급 경기는 가졌지만 A대표팀급 경기에서는 단 한 차례도 만난 적 없던 두 분단 국가 사이의 라이벌전은 아이러니하게도 1974 서독 월드컵에 동독이 사상 첫 월드컵에 진출하는 것에 모자라 같은 조에 편성되면서 펼쳐지게 된다. 양 팀의 격돌한 것은 함부르크에서 펼쳐진 조별리그 3차전으로 양팀은 이미 칠레와 호주를 밀어내고 서독이 2승으로 1위 동독이 1승 1무로 2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사실상 조 1위를 가르는 경기였고 여기서 위르겐 슈파르바서에게 선제 결승골을 얻어 맞은 서독은 동독에게 패하며 조 2위로 밀려나고 말았다. 탈락한 것은 아니지만 안방에서 라이벌에게 패한 결과값은 엄청난 여론에 뭇매였고 헬무트 쇤 감독이 공식적으로 사과하기에 이른다.[14]

이후로 양 팀의 A매치 맞대결은 없었다. 따라서 저 월드컵 본선 1경기가 유일한 전적으로 남아있다. 이후의 라이벌리는 주로 독일 분데스리가와 동독의 DDR 오버리가 사이의 유로피언컵 그리고 컵위너스컵에서 많이 나타났다.

1990년 독일 통일이 이루어지면서 동독과 서독의 라이벌리는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2.10. 자를란트와 상대전적(해체)

파일:Germany DFB 1970 1974.png <colcolor=#fff> 역대 전적 파일:Logo_Saarländischer_Fußball-Verband.svg.png
파일:독일 국기.svg FRG A매치 파일:자르 보호령 국기.svg SAA
<nopad> 2
<colbgcolor=#000><colcolor=#fff> 2 <nopad> 0 <colbgcolor=#000><colcolor=#fff> 0
6 득점 (+5) <nopad> 1950~1957 1 득점 (-5)
막스 모를로크(4) 최다득점자 허버트 마틴(1)
파일:득점 아이콘.svg 득점 순위[15] 선수 기록 파일:득점 아이콘.svg 득점 순위[16]

1945년 독일 패망 이후 프랑스가 차지했던 자르 보호령 대표팀으로 1957년 서독에 다시 흡수되기 전까지 존재했던 팀이다. 자세한 사항은 자를란트 축구 국가대표팀 참고.

서독과 자를란트 사이의 첫 맞대결은 1954년 스위스 월드컵 유럽 예선에서 만난 것이다. 당시 자를란트의 감독은 훗날 서독 대표팀을 이끌고 사상 첫 월드컵 우승을 이루는 헬무트 쇤이었는데, 이 당시 서독이 자를란트에 2경기 모두 승리를 가져가면서 월드컵 예선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이후 1957년 다시 자르 보호령이 서독에 반환되면서 짧았던 두 분단 국가 사이의 라이벌전은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2.11. 그 외 유럽팀 상대전적

파일:유럽 축구 연맹 로고.svg 유럽 축구 연맹
<keepall>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rowcolor=#fff> 국가 경기 <colcolor=#0f0> <colcolor=#ff0> <colcolor=#f00> 득점 실점 득실차 비고
<rowcolor=#fff> 파일:알바니아 국기.svg 알바니아 14 13 1 0 38 10 +28
파일:안도라 국기.svg 안도라 A매치 전적없음
파일:아르메니아 국기.svg 아르메니아 5 5 0 0 25 3 +22
<rowcolor=#fff>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오스트리아 41 25 6 10 90 59 +31
<rowcolor=#fff> 파일:아제르바이잔 국기.svg 아제르바이잔 6 6 0 0 24 4 +20
<rowcolor=#fff> 파일:벨라루스 국기.svg 벨라루스 3 2 1 0 8 2 +6
<rowcolor=#fff> 파일:벨기에 국기.svg 벨기에 26 20 1 5 60 29 +31
<rowcolor=#fff> 파일: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국기.svg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4 3 1 0 13 3 +10
<rowcolor=#fff> 파일:불가리아 국기.svg 불가리아 21 16 2 3 56 24 +32
<rowcolor=#fff> 파일:크로아티아 국기.svg 크로아티아 8 5 1 2 18 10 +8
<rowcolor=#fff> 파일:키프로스 국기.svg 키프로스 6 5 1 0 29 1 +28
<rowcolor=#fff> 파일:체코 국기.svg 체코 18 11 4 3 40 19 +21 [CZE]
<rowcolor=#fff> 파일:체코 국기.svg 체코[단독] 9 7 0 2 16 10 +6
<rowcolor=#666> 파일:체코 국기.svg 체코슬로바키아 17 10 4 3 36 24 +12
<rowcolor=#666> 파일:보헤미아-모라바 보호령 국기.svg 보헤미아 모라바 1 0 1 0 4 4 0
<rowcolor=#fff> 파일:덴마크 국기.svg 덴마크 29 16 5 8 57 38 +19
<rowcolor=#fff> 파일:에스토니아 국기.svg 에스토니아 5 5 0 0 22 1 +21
파일:페로 제도 기.svg 페로 제도 4 4 0 0 10 1 +9
<rowcolor=#fff> 파일:핀란드 국기.svg 핀란드 23 16 6 1 82 19 +63
<rowcolor=#fff> 파일:조지아 국기.svg 조지아 5 5 0 0 12 2 +10
<rowcolor=#fff> 파일:지브롤터 기.svg 지브롤터 2 2 0 0 11 0 +11
<rowcolor=#fff> 파일:그리스 국기.svg 그리스 10 7 3 0 23 10 +13
<rowcolor=#fff> 파일:헝가리 국기.svg 헝가리 39 15 12 12 81 68 +13
<rowcolor=#fff> 파일:아이슬란드 국기.svg 아이슬란드 6 5 1 0 18 1 +17
<rowcolor=#fff> 파일:이스라엘 국기.svg 이스라엘 5 5 0 0 14 1 +13
<rowcolor=#fff> 파일:카자흐스탄 국기.svg 카자흐스탄 4 4 0 0 14 1 +13
<rowcolor=#fff> 파일:코소보 국기.svg 코소보 A매치 전적없음
<rowcolor=#fff> 파일:라트비아 국기.svg 라트비아 4 3 1 0 13 2 +11
<rowcolor=#fff> 파일:리히텐슈타인 국기.svg 리히텐슈타인 6 6 0 0 38 3 +35
<rowcolor=#fff> 파일:리투아니아 국기.svg 리투아니아 2 1 1 0 3 1 +2
<rowcolor=#fff> 파일:룩셈부르크 국기.svg 룩셈부르크 13 12 0 1 60 11 +49
<rowcolor=#fff> 파일:몰타 국기.svg 몰타 9 8 1 0 38 3 +35
<rowcolor=#fff> 파일:몰도바 국기.svg 몰도바 4 4 0 0 18 3 +15
<rowcolor=#fff> 파일:몬테네그로 국기.svg 몬테네그로 A매치 전적없음
<rowcolor=#fff> 파일:북마케도니아 국기.svg 북마케도니아 2 1 0 1 5 2 +3
<rowcolor=#fff> 파일:북아일랜드 국기.svg 북아일랜드 2 2 0 0 6 1 +5 [NIR]
<rowcolor=#fff> 파일:노르웨이 국기.svg 노르웨이 22 15 5 2 59 17 +42
<rowcolor=#fff> 파일:포르투갈 국기.svg 포르투갈 20 11 5 4 34 20 +14
<rowcolor=#fff> 파일:아일랜드 국기.svg 아일랜드 20 9 5 6 35 24 +11
<rowcolor=#fff> 파일:루마니아 국기.svg 루마니아 15 10 3 2 41 19 +22
<rowcolor=#fff> 파일:산마리노 국기.svg 산마리노 4 4 0 0 34 0 +34
<rowcolor=#fff> 파일:스코틀랜드 국기.svg 스코틀랜드 18 9 5 4 31 24 +7
<rowcolor=#fff> 파일:세르비아 국기.svg 세르비아 29 15 6 8 50 34 +16 [SRB]
<rowcolor=#fff> 파일:세르비아 국기.svg 세르비아[단독] 3 1 1 1 3 3 0
<rowcolor=#666> 파일:세르비아 몬테네그로 국기.svg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1 1 0 0 1 0 +1
<rowcolor=#666> 파일: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 국기.svg 유고슬라비아 25 14 4 7 46 31 +15
<rowcolor=#fff> 파일:슬로바키아 국기.svg 슬로바키아 12 8 0 4 25 14 +11
<rowcolor=#fff> 파일:슬로베니아 국기.svg 슬로베니아 1 1 0 0 1 0 +1
<rowcolor=#fff> 파일:스웨덴 국기.svg 스웨덴 37 16 9 12 72 61 +11
<rowcolor=#fff> 파일:스위스 국기.svg 스위스 54 36 9 9 143 70 +73
<rowcolor=#fff> 파일:우크라이나 국기.svg 우크라이나 10 5 5 0 20 10 +10
<rowcolor=#fff> 파일:웨일스 국기.svg 웨일스 17 9 6 2 26 10 +16
: 우세 | : 백중세 | : 열세
}}}}}}}}} ||

3. 아시아(AFC 소속)

3.1. 대한민국과 상대전적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bordercolor=#E6002D> 파일:대한축구협회 엠블럼.svg국가별 상대전적
파일:유럽 축구 연맹 로고.svg 유럽
}}} ||
{{{#002395,#6b90ff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555555,#ABABAB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파일:유럽 축구 연맹 로고.svg 유럽 축구 연맹(UEFA) | 38/55 조우
<colcolor=#fff> 대표팀 국가 최다득점 최근 전적
<colcolor=#fff> M <colcolor=#0f0> W <colcolor=#ff0> D <colcolor=#f00> L <colcolor=#fff> + <colcolor=#fff> - <colcolor=#fff> ±
<rowcolor=#fff>
파일:그리스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파일:그리스 국기.svg 그리스 박주영(2) 2:0 승 (2014)
4 3 1 0 6 1 +5
<rowcolor=#fff>
파일: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네덜란드 없음 0:2 패 (2007)
2 0 0 2 0 7 -7
<rowcolor=#fff>
파일:노르웨이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파일:노르웨이 국기.svg 노르웨이 김도훈(2) 0:0 무 (2006)
4 1 1 2 5 6 -1
<rowcolor=#fff>
파일:덴마크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파일:덴마크 국기.svg 덴마크 조재진(1) 0:0 무 (2009)
2 0 1 1 1 3 -2
<rowcolor=#fff>
파일: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홈 로고.svg
파일:독일 국기.svg 독일 손흥민 등 7명(1) 2:0 승 (2018)
4 2 0 2 7 5 +2
<rowcolor=#fff>
파일:Latvia_national_team_logo.png
파일:라트비아 국기.svg 라트비아 김재성, 김신욱(1) 1:0 승 (2018)
2 2 0 0 2 0 +2
<rowcolor=#fff>
파일:러시아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파일:러시아 국기.svg 러시아 지동원 등 4명(1) 2:4 패 (2017)
3 0 1 2 4 7 -3
<rowcolor=#fff>
파일:루마니아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파일:루마니아 국기.svg 루마니아 신홍기(1) 1:2 패 (1994)
1 0 0 1 1 2 -1
<rowcolor=#fff> 파일:몰도바 축구 국가대표팀 엠블럼.svg 파일:몰도바 국기.svg 몰도바 조영욱 등 5명(1) 4:0 승 (2022)
2 2 0 0 5 0 +5
<rowcolor=#fff> 파일:몰타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파일:몰타 국기.svg 몰타 하석주 등 3명(1) 1:1 무 (1991)
2 1 1 0 3 2 +1
<rowcolor=#fff> 파일:벨기에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파일:벨기에 국기.svg 벨기에 유상철, 고종수(1) 0:1 패 (2014)
4 0 1 3 2 6 -4
<rowcolor=#fff> 파일:벨라루스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파일:벨라루스 국기.svg 벨라루스 없음 0:1 패 (2010)
1 0 0 1 0 1 -1
<rowcolor=#fff> 파일: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파일: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국기.svg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이재성 등 3명(1) 1:3 패 (2018)
2 1 0 1 3 3 0
<rowcolor=#fff>
파일:북마케도니아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파일:북마케도니아 국기.svg 북마케도니아 박지성 등 4명(1) 2:1 승 (2000)
2 1 1 0 4 3 +1
<rowcolor=#fff>
파일:북아일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파일:북아일랜드 국기.svg 북아일랜드 권창훈(1) 1:2 패 (2018)
1 0 0 1 1 2 -1
<rowcolor=#fff>
파일:불가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파일:불가리아 국기.svg 불가리아 김종부(1) 0:1 패 (2003)
2 0 1 1 1 2 -1
<rowcolor=#fff>
파일:세르비아 축구 국가대표팀 엠블럼.svg
파일:세르비아 국기.svg 세르비아 구자철 등 9명(1) 1:1 무 (2017)
11 2 4 5 9 16 -7
<rowcolor=#fff>
파일:스웨덴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파일:스웨덴 국기.svg 스웨덴 김영철 등 3명(1) 0:1 패 (2018)
5 0 2 3 3 18 -15
<rowcolor=#fff>
파일:스위스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파일:스위스 국기.svg 스위스 홍정호, 이청용(1) 2:1 승 (2013)
2 1 0 1 2 3 -1
<rowcolor=#fff> 파일:스코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파일:스코틀랜드 국기.svg 스코틀랜드 안정환(2) 4:1 승 (2002)
1 1 0 0 4 1 +3
<rowcolor=#fff>
파일: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 엠블럼.svg
파일:스페인 국기.svg 스페인 주세종 등 5명(1) 1:6 패 (2016)
6 0 2 4 5 16 -11
<rowcolor=#fff>
파일:슬로바키아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파일:슬로바키아 국기.svg 슬로바키아 없음 0:0 무 (1998)
1 0 1 0 0 0 0
<rowcolor=#fff> 파일:아이슬란드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파일:아이슬란드 국기.svg 아이슬란드 송민규 등 6명(1) 1:0 승 (2022)
2 2 0 0 6 1 +5
<rowcolor=#fff>
파일:우크라이나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파일:우크라이나 국기.svg 우크라이나 황선홍 등 3명(1) 2:0 승 (1994)
2 2 0 0 3 0 +3
<rowcolor=#fff>
파일:웨일스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파일:웨일스 국기.svg 웨일스 없음 0:0 무 (2023)
1 0 1 0 0 0 0
<rowcolor=#fff>
파일:이스라엘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파일:이스라엘 국기.svg 이스라엘 황선홍 등 4명(2) 5:4 승 (1996)
11 5 4 2 17 12 +5
<rowcolor=#fff>
파일: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이탈리아 안정환 등 4명(1) 2:1 승 (2002)
2 1 0 1 4 4 0
<rowcolor=#fff>
파일: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잉글랜드 박지성(1) 1:1 무 (2002)
1 0 1 0 1 1 0
<rowcolor=#fff>
파일:조지아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파일:조지아 국기.svg 조지아 황의조(2) 2:2 무 (2019)
1 0 1 0 2 2 0
<rowcolor=#fff>
파일:체코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파일:체코 국기.svg 체코 석현준 등 5명(1) 2:1 승 (2016)
5 1 2 2 5 14 -9
<rowcolor=#fff> 파일:카자흐스탄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파일:카자흐스탄 국기.svg 카자흐스탄 최용수(4) 1:1 무 (1997)
2 1 1 0 4 1 +3
<rowcolor=#fff>
파일:크로아티아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파일:크로아티아 국기.svg 크로아티아 이근호 등 7명(1) 1:2 패 (2013)
7 2 2 3 7 11 -4
<rowcolor=#fff>
파일:튀르키예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파일:튀르키예 국기.svg 튀르키예 김은중 등 4명(1) 0:0 무 (2011)
7 1 2 4 4 13 -9
<rowcolor=#fff>
파일:포르투갈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파일:포르투갈 국기.svg 포르투갈 황희찬 등 3명(1) 2:1 승 (2022)
2 2 0 0 3 1 +2
<rowcolor=#fff> 파일:폴란드 국장.svg 파일:폴란드 국기.svg 폴란드 황희찬 등 4명(1) 2:3 패 (2018)
2 1 0 1 4 3 +1
<rowcolor=#fff>
파일: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 2024.svg
파일:프랑스 국기.svg 프랑스 박지성(2) 1:1 무 (2006)
3 0 1 2 3 9 -6
<rowcolor=#fff>
파일:핀란드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파일:핀란드 국기.svg 핀란드 황선홍(2) 2:0 승 (2010)
3 3 0 0 5 0 +5
<rowcolor=#fff>
파일:헝가리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파일:헝가리 국기.svg 헝가리 없음 0:1 패 (1985)
2 0 0 2 0 10 -10
: 우세 | : 백중세 | : 열세
파일:아시아 축구 연맹 로고.svg | EAFF | ASEAN | SAFF | WAFF | CAFA
파일:아프리카 축구 연맹 로고.svg CFA | 파일:오세아니아 축구 연맹 로고.svg OFC | 파일:유럽 축구 연맹 로고.svg UEFA
파일:북중미카리브 축구 연맹 로고.svgCONCACAF | 파일:남미 축구 연맹 로고.svgCONMEBOL
}}}}}}}}}}}}}}} ||
파일: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홈 로고.svg <colcolor=#fff> 역대 전적 파일:대한축구협회 엠블럼.svg
파일:독일 국기.svg GER A매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KOR
<nopad> 4 [🏟️]
<colbgcolor=#440><colcolor=#fff> 2 <nopad> 0 <colbgcolor=#440><colcolor=#fff> 2
5 득점 (-2) <nopad>
백중세
7 득점 (+2)
위르겐 클린스만, 미하엘 발락(2) 최다득점자 김영권, 손흥민[현역] 등 7명(1)
파일:득점 아이콘.svg 득점 순위[24]
파일:퇴장 카드 아이콘.svg 누적 퇴장(0)
선수 기록 파일:득점 아이콘.svg 득점 순위[25]
파일:퇴장 카드 아이콘.svg 누적 퇴장(0)
<nopad> 최근경기: 대한민국 승 (2018)

성인팀 전적으로만 따지자면 A매치 한정으로 2승 2패를 기록중이다. 월드컵으로 한정할 경우엔 1승 2패인데 1994년 미국 월드컵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3-0으로 리드 중이던 경기를 황선홍홍명보의 골로 3-2 신승했고, 8년 후인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전에서 미하엘 발라크의 골로 역시 1-0 한골차 승리를 거뒀다. 이후 2년 뒤, 아시아 투어를 겸해 부산에서 가진 평가전에서 1-3, 두골차 패배를 당해 아시아 국가에게 최초로 패한 기록을 쓰게된다. 무엇보다도 이 부산 경기에서는 먼저 일본에서 열렸던 경기에서는 시차적응차 출전하지 않았던 정예 주전들이 총출동한 경기였다는점과 무려 2골차 패배를 당했다는 사실에서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후,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에게 한 번 더 두 골차 패배를 당했다. 특히나 이 당시의 독일은 역대 최고의 성적으로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었다는점과 현 조별리그 시스템 제정이후 처음으로 결선리그 진출에 실패했다는점이 충격과 공포였다.

3.1.1. 대한민국과 역대 경기결과

3.1.1.1. 1994 FIFA 월드컵 미국
<nopad> 1994-06-27
<nopad> 2:3
<keepall>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folding [ 1994 월드컵 본선 경기 상세내용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파일:1994 FIFA 월드컵 미국 로고.svg 1994 FIFA 월드컵 미국 24강 조별리그 C조 3차전
일시: 1994년 6월 27일 15:00[UTC-6] 👁️‍🗨️ [27] 장소: [[미국|{{{#fff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댈러스
주심: 파일:프랑스 국기.svg 조엘 퀴니우 경기장: 코튼 볼
<colbgcolor=#fff><colcolor=#997000> - 2:3
(0:3)
<colbgcolor=#fff><colcolor=#997000> 위르겐 클린스만 파일:득점 아이콘.svg 12’[T.헤슬러], 37’[T.헤슬러] 파일:경고 카드 아이콘.svg 28’
카를하인츠 리들레 파일:득점 아이콘.svg 20’[T.헤슬러]
안드레아스 브레메 파일:경고 카드 아이콘.svg 24’
슈테판 에펜베르크 파일:경고 카드 아이콘.svg 44’
황선홍 파일:득점 아이콘.svg 52’[박정배]
홍명보 파일:득점 아이콘.svg 63’
최영일 파일:경고 카드 아이콘.svg 89’
-
감독: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김 호 감독: 파일:독일 국기.svg 베르티 포크츠
파일:유튜브 아이콘.svg[H][SBS]

C조 타팀 결과 파일:볼리비아 국기.svg BOL 1:3 ESP 파일:스페인 국기.svg
조별리그 3차전 종료 후 C조 최종순위
<rowcolor=#fff> 국가 R <colcolor=#14f> P M <colcolor=#0f0> W <colcolor=#ff0> D <colcolor=#f00> L + - ±
<rowcolor=#fff> 파일:독일 국기.svg GER • 1 7 3 2 1 0 5 3 +2
<rowcolor=#fff> 파일:스페인 국기.svg ESP • 2 5 3 1 2 0 6 4 +2
<rowcolor=#fff> 파일:대한민국 국기(1949-1997).svg KOR • 3 2 3 0 2 1 4 5 -1
<rowcolor=#fff> 파일:볼리비아 국기.svg BOL • 4 1 3 0 1 2 1 4 -3

<rowcolor=#fff> 대회마감 R <colcolor=#14f> P M <colcolor=#0f0> W <colcolor=#ff0> D <colcolor=#f00> L + - ±
<rowcolor=#fff> 조별리그 20 2 3 0 2 1 4 5 -1
}}}}}}}}} ||
[ 경기 상세설명 ]
양국 간 첫 맞대결.[34] 지금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지만 당시에는 독일은 대한민국이 절대로 넘을 수 없는 최강의 팀 중 하나였으며, 실제로 이 날 독일이 위르겐 클린스만의 2골을 포함해 전반에 3:0으로 앞서며[35] 싱겁게 끝날 것으로 여겨졌다. 승패를 따지는 게 아니라 전차군단이 앞으로 몇 골을 더 넣을 것인가를 화제로 삼았을 정도였다.

후반 시작 후 10분만에 경기 양상이 뒤집혔다. 교체 투입된 골키퍼 이운재의 하드캐리로 대한민국의 수비력이 급상승되었고 이에 힘 입어 황선홍홍명보가 중거리 슛을 연달아 성공시키며 순식간에 스코어가 3:2로 좁혀졌으며, 설상가상으로 습도가 높은 댈러스의 40도가 넘어가는 무더위에 당시 베테랑으로 구성된 독일 선수들이 급격한 체력 저하를 보이기 시작했는데, 막강한 공격력을 트레이드마크로 삼는 독일이 오히려 극단적인 수비에 급급하면서 대한민국이 독일 쪽 진영을 전세내고 일방적으로 가둬놓고 팼다. 한국 쪽은 상대적으로 선수층이 젊었고[36] 여름에 경기를 치르는 특성상 이런 고온다습한 무더위에서 경기를 치르는 것에 익숙했던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는데, 후반부에서 고온다습한 기후 때문에 급격한 체력 저하를 겪어야 했다.

여기서 졸전을 하는 독일 국대를 향해 미국 관중들은 물론이고 독일 관중들도 야유를 보냈는데, 슈테판 에펜베르크는 그 성질머리 못 죽이고 전 세계인들이 보는 앞에서 뻐큐를 갈겼다가 교체는 물론 강제귀국까지 당했다. 이 사건 이후로도 에펜베르크는 일부 경기에서는 소집되었으나 메이저 대회는 두 번 다시 나가지 못하는 등 그다지 활약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37]

일진일퇴의 공방 끝에 경기는 결국 독일의 3:2 승리로 끝났지만, 이때 독일 축구 팬들은 말할 것도 없고 당대 최고의 선수이자먼 훗날 대한민국의 역적이 되는 당시 2골을 넣은 클린스만이 "만약 한국이 전반전부터 이런 경기력을 보였거나, 후반 연장 시간이 5분만 더 길었더라면 무승부 혹은 역전패를 당했을지도 모른다."라고 훗날 언급할 정도로 대한민국은 독일 축구계에 깊은 인상을 심었다.[38] 뒤집어 말하자면 이 날 대한민국이 좀더 잘했거나 독일이 집중력을 완전히 잃었더라면 디펜딩 챔피언 독일이 축구 비주류 아시아 국가에게 역전패, 그것도 3골차 리드가 뒤집히는 희대의 개망신을 당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만약 이게 실제로 벌어졌다면 월드컵 최대 이변으로 기록되었을 것이며, 독일 현지 축구 팬들은 당장 포크츠 감독을 경질하라고 베를린 시내로 몰려가서 시위를 했을 것이다.[39]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김호호/1994 FIFA 월드컵 미국/독일전 문서
#!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를
#!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김호호/1994 FIFA 월드컵 미국/독일전#s-|]]번 문단을
#!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김호호/1994 FIFA 월드컵 미국/독일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3.1.1.2.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nopad> 2002-06-25
<nopad> 0:1
<keepall>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folding [ 2002 월드컵 본선 경기 상세내용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파일: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로고.svg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4강 준결승전
일시: 2002년 6월 25일 20:30[UTC+9] 👁️‍🗨️ [41]
👣 [42]
장소: [[대한민국|{{{#fff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주심: 파일:스위스 국기.svg 위르스 마이어 경기장: 서울월드컵경기장
<colbgcolor=#fff><colcolor=#997000> - 0:1
(0:0)
<colbgcolor=#fff><colcolor=#997000> -
최진철 파일:부상 아이콘.svg 56’
이민성 파일:경고 카드 아이콘.svg 90+4’
미하엘 발락 파일:경고 카드 아이콘.svg 71’ 파일:득점 아이콘.svg 75’
올리버 뇌빌 파일:경고 카드 아이콘.svg 85’
감독: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거스 히딩크 감독: 파일:독일 국기.svg 루디 푈러
파일:유튜브 아이콘.svg[H][SBS]
}}}}}}}}} ||
[ 경기 상세설명 ]
8년 전에 고전한 기억 때문에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4강에서 대한민국과 만나게 된 독일의 반응은 썩 좋지 않았다. 차라리 스페인이 낫다는 의견까지 있었고 별로 그럴 것 같진 않지만 솔직히 대한민국에 질 수도 있다는 독일 축구 팬의 발언도 있었다.[45][46]대회에서 독일이 준우승을 차지하기는 했지만 대회 전 독일이 결승전까지 갈 것이라고 예측한 전문가는 거의 없었다. 녹슨 전차라고 비아냥을 들을 만큼 경기력이 예전만 하지 못했던 까닭이다. 물론 객관적인 전력상 독일이 한 수 위인 것은 분명했으므로 웬만하면 이길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이었다. 그래도 대한민국이 그 쟁쟁한 포르투갈-이탈리아-스페인을 꺾고 4강까지 올라왔으니 한국이 이길 수도 있다고 기대하는 축구 팬들도 많았고, 한국이 홈 어드밴티지까지 있어서 유리할 것이라는 말도 있었다.

실제 경기 내용은 후반 30분까지 0 : 0으로 팽팽하게 맞설 만큼 일진일퇴의 공방전이었다. 대회 골든볼&야신상 수상자인 올리버 칸의 신들린 선방 쇼가 있었지만 스페인과의 8강전 승부차기에서 선방을 기록하고 온 이운재의 플레이 또한 활약을 했고, 이천수가 벼락같은 슈팅을 날리는 등의 감각적인 플레이도 돋보였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주전 선수들의 계속된 풀 타임 출전과 2연속 토너먼트 연장전으로 체력이 바닥난 상태였고 결국 후반 30분에 미하엘 발락을 순간적으로 놓쳐 결승골을 허용해 0:1로 독일에 패배하고 3·4위전으로 가게 되었다.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히딩크호/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독일전 문서
#!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를
#!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히딩크호/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독일전#s-|]]번 문단을
#!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히딩크호/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독일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3.1.1.3. 2004년 독일의 아시아 원정
<nopad> 2004-12-19
<nopad> 3:1
<keepall>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folding [ 친선경기 상세내용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친선경기
일시: 2004년 12월 19일 19:00[UTC+9] 장소: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부산광역시
주심: 파일:말레이시아 국기.svg 숩키딘 모드 살레 경기장: 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
<colbgcolor=#fff><colcolor=#666> 김동진 파일:득점 아이콘.svg 16’ 3:1
(1:1)
<colbgcolor=#fff><colcolor=#666> 미하엘 발락 파일:프리킥골 아이콘.svg 24’[A.프리드리히F]
김상식 파일:경고 카드 아이콘.svg 59’
이동국 파일:득점 아이콘.svg 71’
조재진 파일:득점 아이콘.svg 87’[차두리]
미하엘 발락 파일:승부차기 실패 아이콘.svg 85’[선방]
감독: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조 본프레레 감독: 파일:독일 국기.svg 위르겐 클린스만
파일:유튜브 아이콘.svg[F][SBS]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H][SBS]
}}}}}}}}} ||
[ 경기 상세설명 ]
이 경기는 단순한 친선경기가 아니었는데, 독일 축구 연맹에서 추진한 독일 국가대표팀의 아시아 투어 행사의 일환으로서 구체적으로는 일본, 대한민국, 태국 등 아시아 지역의 국가대표팀과 평가전도 치르고 차기 월드컵과 자국 국가대표팀의 홍보를 꾀했던 것이다. 이 당시 있었던 에피소드로 유명한 해운대 굴욕(?) 사건이 있다. 일본과의 경기 후 대한민국에 도착한 독일 선수들은 부산 해운대에서 산책하며 휴식을 취했다. 그런데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타 선수들이 길을 걷고 있는데도 시민들이 알아보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의 꽃게탕집 수족관 사진도 이때 나온 것이다.

일본과의 경기는 시차 적응 문제도 있고 해서 후보 선수들을 대거 내보낸 2군으로 3:0 대승을 거뒀고, 대한민국과의 경기에서 비로소 분데스리가 주전 멤버들로 구성된 최정예 라인업을 내보냈다. 오히려 박지성, 이영표 등의 유럽파 소집이 안 됐던 한국이 1.5군 정도의 멤버로 이 경기에 임했다. 이 경기에는 월드컵 최다 득점 기록 소유자인 미로슬라프 클로제도 출전했다. 그런데 도리어 김동진, 이동국, 조재진에게 골을 내줘 1:3으로 패했다. 그나마 미하엘 발락이 프리킥으로 동점골을 기록해서 영패는 면했으며, 한편으로는 발락의 페널티 킥을 막아내 2년 전 서울에서 당한 패배의 아픔을 복수한 이운재의 선방과 독일 수비진을 당혹케 하는 차두리의 피지컬[55], 그리고 올리버 칸을 일순간 허수아비로 만든 이동국의 터닝 슛 득점이 백미. 더구나 이 슛은 이동국이 180도로 몸을 돌리면서 때린 터닝 발리 슛이었다. 2002 월드컵에서 이천수가 차는 순간 들어갔다고 생각했던 슛마저 막아냈던 칸이었는데, 그런 그가 그저 바라봤어야 했을 정도로 대단한 슛이었다.

대한민국은 차두리의 독일 선수들 3명을 떨궈버린 돌파력[56], 후반 터진 이동국의 터닝 슛, 그리고 발락의 페널티킥을 막아 낸 이운재의 선방이 활약을 했다. 기타 자세한 내용은 본프레레호/2004년 문서에도 나와 있다.

3.1.1.4.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nopad> 2018-06-27 파일:독일 국기.svg 독일
<nopad> 2:0
<keepall>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folding [ 2018 월드컵 본선 경기 상세내용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파일: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로고.svg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32강 조별리그 F조 3차전
일시: 2018년 6월 27일 17:00[UTC+3] 👁️‍🗨️ [58] 장소: [[러시아|{{{#fff 파일:러시아 국기.svg 러시아}}}]], 카잔
주심: 파일:미국 국기.svg 마크 가이거 경기장: 아크 바르스 아레나
<colbgcolor=#fff><colcolor=#997000> 정우영 파일:경고 카드 아이콘.svg 9’[누적]
이재성 파일:경고 카드 아이콘.svg 23’
2:0
(0:0)
<colbgcolor=#fff><colcolor=#997000> -
문선민 파일:경고 카드 아이콘.svg 48’
구자철 파일:부상 아이콘.svg 56’
손흥민 파일:경고 카드 아이콘.svg 65’
김영권 파일:득점 아이콘.svg 90+3’
손흥민 파일:득점 아이콘.svg 90+6’[주세종]
-
감독: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신태용 감독: 파일:독일 국기.svg 요아힘 뢰프
파일:유튜브 아이콘.svg[H][SBS]

F조 타팀 결과 파일:FIFA WORLD CUP 2018 MEX.png MEX 0:3 SWE 파일:FIFA WORLD CUP 2018 SWE.png
조별리그 3차전 종료 후 F조 최종순위
<rowcolor=#fff> 국가 R <colcolor=#14f> P M <colcolor=#0f0> W <colcolor=#ff0> D <colcolor=#f00> L + - ±
<rowcolor=#fff> 파일:FIFA WORLD CUP 2018 SWE.png SWE 파일:상승 아이콘.svg 1 6 3 2 0 1 5 2 +3
<rowcolor=#fff> 파일:FIFA WORLD CUP 2018 MEX.png MEX 파일:하강 아이콘.svg 2 6 3 2 0 1 3 4 -1
<rowcolor=#fff> 파일:FIFA WORLD CUP 2018 KOR.png KOR 파일:상승 아이콘.svg 3 3 3 1 0 2 3 3 0
<rowcolor=#fff> 파일:FIFA WORLD CUP 2018 GER.png GER 파일:하강 아이콘.svg 4 3 3 1 0 2 2 4 -2

<rowcolor=#fff> 대회마감 R <colcolor=#14f> P M <colcolor=#0f0> W <colcolor=#ff0> D <colcolor=#f00> L + - ±
<rowcolor=#fff> 조별리그 19 3 3 1 0 2 3 3 0
}}}}}}}}} ||
[ 경기 상세설명 ]
독일 축구 역사상 최초의 월드컵 1라운드 조별리그 탈락[63]이 된 경기[64]이자 20년 전 크로아티아전보다도 못한 최악의 졸전이었다.[65] 장소는 카잔 아크 바르스 아레나. 월드컵 무대로 보자면 2002 한일 월드컵 준결승전 이후 16년 만의 재회며, 조별리그에서 만난 것까지 따지면 1994 미국 월드컵[66] 이후 24년 만에 그것도 또 3차전 매치다. 덤으로 1990 이탈리아 월드컵 우승 후 다음 대회인 1994 미국 월드컵에서 대한민국과 만난 것처럼, 통일 독일의 2014 브라질 월드컵 우승 후 한국을 만났다. 독일은 마지막으로 맞붙은지 14년이 지났다는 세월 때문인지,[67] 한국 축구가 예선부터 갈팡질팡했다는 소식을 접한 탓인지 모르지만 그동안 한국이 자신들과 엎치락뒤치락하며 만만치 않은 저력을 과시했음을 완전히 망각하고 2002년의 포르투갈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들은 지난 2017컨페드컵 우승하고 피파랭킹 1위 & 디펜딩 챔피언이라서 한국에 대한 분석조차 등한시하면서 깔보는 태도로 경기에 임하는 치명적인 우를 범했다. 그 결과 독일의 눈에 가려져 있던 골키퍼 조현우의 경이로운 선방 능력, 김영권윤영선의 철벽과 같은 호수비, 그리고 대표적인 지독파 선수인 손흥민을 필두로 한 공격진의 빠른 역습과 레온 고레츠카의 치달을 막는 홍철의 스피드 등 갖가지 장애물들이 튀어나와 독일의 승리를 가로막았고, 끝내 기적적으로 2:0으로 대한민국이 이겼다. 말 그대로 경적필패(輕敵必敗)라는 단어가 이 경기를 위해 있는 말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독일에게 있어서 굉장히 비참한 결과를 받은 것이다.

이 엄청난 사건 이전에 독일이 월드컵에서 무득점 2점 차 이상의 패배를 당한 것은 3번 있었는데 1998년 프랑스 월드컵 8강전에서 크로아티아한테 0:3으로 대패하여 탈락한 것, 2002년 한일 월드컵 결승전에서 브라질에 0:2로 패배하여 준우승에 그친 것, 2006년 독일 월드컵 준결승전에서 이탈리아에 0:2로 패배하여 3위 결정전으로 떨어진 것 등이다. 더군다나 앞의 세 팀들은 FIFA 랭킹 상위권에 속하는 팀들이다. 심지어 1998년의 크로아티아는 당 대회 돌풍의 팀이었으며(첫 출전에 3위) 2002년의 브라질과 2006년의 이탈리아는 각각 그 대회의 우승팀이었다. 상위 20위권내에도 들지 못하는 아시아 축구 대표팀들의 현실을 고려할 경우, 이는 정말 엄청나고도 남을 큰 충격인 것이다.

현대 축구의 흐름을 놓고 본다면 카잔의 기적과 같은 일은 거의 생기기 힘들다고 봐도 무방하다. 경기력뿐만이 아니라, 인종차별 등 독일 사회의 문제까지 이 여파가 번졌는데, 독일 대표팀의 주축 중 한 명인 터키계 선수 메수트 외질이 "내가 잘할 때 그들에게 나는 독일인이었지만, 내가 못할 때 나는 그들에겐 터키인이었다!"라며 자신에 대한 공정치 않은 비난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고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을 정도로 내외적으로 제대로 진통을 겪었었다.

이 경기 이전부터 에르도안과 관련해서 말이 많았던 메수트 외질은 마지막 최종전 이후에도 극심한 비판과 비난에 시달리자, 월드컵이 끝나고 몇 주 후 은퇴 선언을 하였다. 외질의 은퇴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과 관련된 문제점이 더 크지만, 한국과의 경기 결과가 독일 최고의 No.10 선수가 은퇴를 결정하는 상황에 불쏘시개가 되었다. 특히, 외질은 로타어 마테우스블라디미르 푸틴과 악수를 하는 장면을 언급하면서, "왜 내가 자국 대통령과 악수를 한 것은 문제가 되고 왜 마테우스가 푸틴과 악수를 하는 것은 문제가 안 되느냐?"라는 비판을 하였다. 푸틴 역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못지않은 독재자인 것과 마테우스는 러시아와 하등 관련도 없는 것을 고려하면,[68] 외질의 이 비판은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과 몇몇 순혈 독일인들이 가지고 있는 인식에 대한 큰 영향을 미칠 듯하다. "터키 출신인 내가 에르도안과 악수를 하는 것은 문제가 되는데, 마테우스가 푸틴과 악수를 하는 것은 왜 문제가 안 되느냐?"라는 외질의 외침은 현재 독일 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통렬하게 꿰뚫고 있다. 그러나 마테우스는 FIFA 풋볼 어워즈 심사위원의 자격으로 러시아에 갔고, 푸틴과 만난 자리에서도 잔니 인판티노 FIFA 회장과 함께 FIFA 위원으로서 월드컵 주최국의 국가 원수와 만난 것이다. 외질이 에르도안과 그냥 개인적으로 만난 것과는 전혀 다르다는 의견도 있다.

허나, 위의 에르도안 건을 깡끄리 무시하고 축구내적으로 보더라도 독일 언론과 축구인사들의 발언은 지극히 도를 넘었고, 외질의 입장에서는 그렇다고 느낄 만 하다. 실제로, 외질도 잘하지는 못했지만 다른 선수들 역시 몇몇 빼고 대체적으로 잘하지는 못하였고[69] 이는 현재 그들이 그토록 까대던 외질이 은퇴한 뒤에도 독일 국대가 노답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게다가, 외질의 발언을 두고 토니 크로스토마스 뮐러 등이 한 발언과 제롬 보아텡이 한 발언은 독일 국대 내애서도 이를 달리 보는 선수들이 있다는 것임은 분명하다. 특히나, 현재 외질이 은퇴를 한 이후에도 그보다 더 못하고 있는 베르너와 뮐러에 대한 독일 언론의 모습은 코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다만 확실한 것은 국가대표를 위해서 헌신한 선수가 이러한 부당한 차별과 비난을 견디지 못하고 이런식으로 은퇴한 것은 비판을 받을 만한 상황임은 분명하다는 거다. 특히나, 보아텡이 한 발언 중 "외질은 우리와 함께한 매우 훌륭한 선수다. 그는 이주자의 배경을 가졌지만 10번을 달고 세계 챔피언으로 독일 축구를 변화시켰다. 그런데, 외질에게 고마워해야 할 선수들은 어디 있는가?” 라며 같은 팀 동료들과 몇몇 축구인사들을 저격한 듯한 발언은 독일 축구계와 사회가 반드시 바라봐야 하는 점이다. 애초에, 이 외질이라는 축구선수가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에르도안을 만날 정도의 정치관점을 평소에 드러낸 적이 없다는 것을 고려하더라도 독일의 이번 관련 사태는 독일의 이주자에 대한 민망한 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고 봐도 무방하다.

사실 독일이 겉으로는 인종주의를 철저히 배격하는 것 처럼 보이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조금이라도 깔만한 이유라도 생기면 선택적 분노를 들어내는 경향이 있다. 즉 같은 잘못을 하더라도 그 대상의 배경이 유럽계 배경이 아닌 중동, 북아프리카, 튀르키예, 사하라이남 아프리카 등 비유럽계 출신일 경우[70] 비난의 세기가 더 커지는 성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그래도 독일사회 자체가 실력주의에 큰 가치를 두기 때문에 실력만 된다면 이슬람문화권에 속한 선수라도 괜찮다는 반응은 보여도 꼭 사회적인 문제나 논란이 터지면 독일 국민들의 선택적인 분노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는 수 세기를 걸쳐 타 문화권 배경을 가지거나 백인외 타인종인 사람들과 같이 한 영토내에서 지냈던 프랑스, 영국, 스페인, 네덜란드, 포르투갈 등과 달리 독일은 이들보다 상대적인 역사가 짧았기 때문에 과거사 청산에 정부와 전 국민적으로 열을 올려서 어떻게든 자신들의 과오나 인종주의를 타파하려고 부단이 노력했지만 너무 빠른 시간에 일을 처리하다보니 이런 문제가 지속적으로 발생한다는 것이다. 독일의 이주자출신의 축구선수들에 대한 논란은 이러한 문제들중 단면일 뿐이라는 것이다.

소속만 아시아인 호주는 1승 1무 4패로 열세인데[71] 유럽/남미에서 웬만큼 잘 나간다는 팀들을 2~3골 차로 이기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은 독일에게 그것도 축구에서 비주류로 분류되는 아시아의 팀이 2승 2패로 대등하게 맞선다는 것은 말 그대로 이변 그 자체가 아닐 수 없다. 유럽 축구계에서 아시아를 약체를 넘어 호구로 여기는 마당에, 유럽을 뛰어넘어 세계구급 강팀인 독일을 상대로 저런 전적을 보이는 것 자체가 가히 미스터리급이었다. 독일이 2018년 15승 10무 10패로 우위를 점하고 있는 네덜란드1998 FIFA 월드컵 프랑스에서 한국을 5:0으로 압살한 걸 감안하면 더더욱 이해가 안 가는 대목이다.

독일 대표팀은 체력과 조직력으로 상대를 압살하는 팀이다.[72] 한국도 독일처럼 체력과 조직력으로 밀어붙이는 팀이다. 이렇듯 같은 성향의 팀끼리 붙었을 때 승패를 가르는 결정적인 대목은 '얼마나 굳은 심지를 갖고 상대 팀을 끝까지 압박하느냐'인 것이다.[73] 대한민국이 독일을 이긴 경기를 분석해보면, 전부 독일에게 선취 실점을 내주지 않고 오히려 선취득점을 올린 경우다. 독일 역시도 마찬가지다. 즉 역전을 하는 경우는 없었다.[74] 또한 대한민국 대표팀은 축구계의 비주류 아시아에 속한지라 약체 취급을 받기는 하지만[75]실제로는 그렇게 만만하지 않아[76]독일과 만날 때마다 박빙의 승부를 펼치며 의외로 자주 독일을 이길 수 있는 것이다.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대한민국과의 4강전이야 독일이 후반에 득점에 성공하여 1:0으로 이겼으니 딱히 고전했다고 여기지는 않는 것 같지만,[77] 1994 FIFA 월드컵 미국 24강 본선 조별리그 때 3:0으로 앞서다가 3:2로 따라잡힌 것도 모자라 후반전 내내 수비 전술만으로 겨우겨우 막아낸 게 트라우마 수준으로 새겨진 듯하다.[78] 그것도 그 당시(1994년) 독일은 디펜딩 챔피언에 피파랭킹 1위의 초강팀이었다. 10년 후인 2004년 친선 경기에서 1:3으로 패하면서 한국을 마냥 얕보기가 곤란할 정도로 인식되더니 그게 잊혀질 무렵인 2018년 월드컵에서 아예 0:2로 패하는 굴욕을 겪는 바람에 이제는 한국과 맞붙게 될 경우 아무리 한국이 홍명보호, 슈틸리케호 시절처럼 삽질에 삽질을 거듭하는 한이 있다 한들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된 상황이다. 유로 2004에서 우승을 차지한 그리스도 무려 홍명보가 이끄는 한국에 친선 경기에서 그것도 한창 슬럼프를 겪던 박주영에게 실점해서 0:2로 패했기 때문이다. 한국에 0:2의 완패를 당하고 이 나라 저 나라에 두들겨 맞아 2018년 12월 기준 피파랭킹이 16위로 곤두박질쳤다. 물론 한국전을 패한 후유증 때문이라고 딱 잘라 말할 순 없으나 이 한국전 패배 이후 독일의 위세가 약화된 것만은 사실이다. 심지어 2020-21 네이션스 리그에서의 상황을 보면 현재 6경기 무승을 기록 중일 정도로 분위기가 좋지 못하다.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2021년 3월 30일 벌어진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 지역예선에서 65위의 북마케도니아에 1:2로 지는 대참사를 당했고 더 나아가 유로 2020에서는 겨우 토너먼트에 진출하나 16강에서 잉글랜드와 만나 0:2로 져서 16강 15위로 탈락하기에 이른다.[79] 이에 앞서 UEFA 네이션스 리그/2020-21 시즌에서는 스페인을 상대로 아예 0:6 대패까지 당하는 최악의 수모도 겪었다.[80] 감독이 한지 플릭으로 임명되고 맞이한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 본선에서도 일본에게 1:2로 역전패를 당하고 결국 그 역전패가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마지막에 코스타리카를 4:2로 꺾었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승점을 가진 스페인에 골 득실 차로 밀려 월드컵 조별리그(32강) 2회 연속 탈락[81]이라는 치욕까지 쓰고 말았다.[82]

그리고 2023년 9월 10일에 자신들의 안방에서 일본을 불러 친선경기를 했는데 1:4로 더욱 비참하게 대패를 당했고 이로써 일본은 유럽팀을 상대로 최초로 3점차 승리를 가지게 되었다.[83] 반면 독일은 유럽팀 최초로 아시아팀에게 최초로 3점차 패배를 가져다 주었다.[84] 그리고 이 경기 결과로 인해 독일 대 일본과의 전적도 불과 10개월 사이에 일본의 우세로 뒤집혀버리고 말았다. 이로써 독일의 암흑기는 지금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걸 알 수 있다.

결국 그 친선경기를 치른 다음 날 한지 플릭을 경질시키고 역시 뮌헨에서 경질당한 율리안 나겔스만을 2023년 9월 22일에 신임 감독으로 선임했다. 그러나 현재 독일은 2023년 11월 22일 현재 1승 1무 2패를 기록하고 있어 상황이 여전히 나쁘다.

결국 이 경기가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무려 5년이나 지속되고 있는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역사상 최악의 암흑기를 알리는 신호탄이 되고 만 것이다.


#!if version2 == null
{{{#!wiki style="border:1px solid gray;border-top:5px solid gray;padding:7px;margin-bottom:0px"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파일:CC-white.svg|width=22.5px]]]]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독일 축구 국가대표팀|독일 축구 국가대표팀]]}}}{{{#!if external != "o"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문서의 {{{#!if uuid == null
'''uuid not found'''}}}{{{#!if uuid != null
[[https://namu.wiki/w/독일 축구 국가대표팀?uuid=0b709c23-5e78-4ede-a1b3-16be7fe44d7e|r4159]]}}} 판{{{#!if paragraph != null
, [[https://namu.wiki/w/독일 축구 국가대표팀?uuid=0b709c23-5e78-4ede-a1b3-16be7fe44d7e#s-20|20번 문단]]}}}에서 가져왔습니다. [[https://namu.wiki/history/독일 축구 국가대표팀?from=4159|이전 역사 보러 가기]]}}}
#!if version2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border:1px solid gray;border-top:5px solid gray;padding:7px;margin-bottom:0px"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파일:CC-white.svg|width=22.5px]]]]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다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wiki style="text-align: center"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text-align: left; padding: 0px 10px"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독일 축구 국가대표팀|독일 축구 국가대표팀]]}}}{{{#!if external != "o"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문서의 {{{#!if uuid == null
'''uuid not found'''}}}{{{#!if uuid != null
[[https://namu.wiki/w/독일 축구 국가대표팀?uuid=0b709c23-5e78-4ede-a1b3-16be7fe44d7e|r4159]]}}} 판{{{#!if paragraph != null
, [[https://namu.wiki/w/독일 축구 국가대표팀?uuid=0b709c23-5e78-4ede-a1b3-16be7fe44d7e#s-20|20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독일 축구 국가대표팀?from=4159|이전 역사]])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2 == null
'''uuid2 not found'''}}}{{{#!if uuid2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2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3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3 == null
'''uuid3 not found'''}}}{{{#!if uuid3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3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4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4 == null
'''uuid4 not found'''}}}{{{#!if uuid4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4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5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5 == null
'''uuid5 not found'''}}}{{{#!if uuid5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5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6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6 == null
'''uuid6 not found'''}}}{{{#!if uuid6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6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7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7 == null
'''uuid7 not found'''}}}{{{#!if uuid7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7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8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8 == null
'''uuid8 not found'''}}}{{{#!if uuid8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8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9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9 == null
'''uuid9 not found'''}}}{{{#!if uuid9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9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10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10 == null
'''uuid10 not found'''}}}{{{#!if uuid10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10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11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11 == null
'''uuid11 not found'''}}}{{{#!if uuid11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11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12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12 == null
'''uuid12 not found'''}}}{{{#!if uuid12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12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13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13 == null
'''uuid13 not found'''}}}{{{#!if uuid13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13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14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14 == null
'''uuid14 not found'''}}}{{{#!if uuid14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14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15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15 == null
'''uuid15 not found'''}}}{{{#!if uuid15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15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16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16 == null
'''uuid16 not found'''}}}{{{#!if uuid16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16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17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17 == null
'''uuid17 not found'''}}}{{{#!if uuid17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17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18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18 == null
'''uuid18 not found'''}}}{{{#!if uuid18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18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19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19 == null
'''uuid19 not found'''}}}{{{#!if uuid19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19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20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20 == null
'''uuid20 not found'''}}}{{{#!if uuid20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20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21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21 == null
'''uuid21 not found'''}}}{{{#!if uuid21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21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22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22 == null
'''uuid22 not found'''}}}{{{#!if uuid22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22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23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23 == null
'''uuid23 not found'''}}}{{{#!if uuid23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23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24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24 == null
'''uuid24 not found'''}}}{{{#!if uuid24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24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25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25 == null
'''uuid25 not found'''}}}{{{#!if uuid25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25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26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26 == null
'''uuid26 not found'''}}}{{{#!if uuid26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26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27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27 == null
'''uuid27 not found'''}}}{{{#!if uuid27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27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28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28 == null
'''uuid28 not found'''}}}{{{#!if uuid28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28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29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29 == null
'''uuid29 not found'''}}}{{{#!if uuid29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29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30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30 == null
'''uuid30 not found'''}}}{{{#!if uuid30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30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31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31 == null
'''uuid31 not found'''}}}{{{#!if uuid31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31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32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32 == null
'''uuid32 not found'''}}}{{{#!if uuid32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32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33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33 == null
'''uuid33 not found'''}}}{{{#!if uuid33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33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34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34 == null
'''uuid34 not found'''}}}{{{#!if uuid34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34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35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35 == null
'''uuid35 not found'''}}}{{{#!if uuid35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35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36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36 == null
'''uuid36 not found'''}}}{{{#!if uuid36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36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37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37 == null
'''uuid37 not found'''}}}{{{#!if uuid37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37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38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38 == null
'''uuid38 not found'''}}}{{{#!if uuid38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38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39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39 == null
'''uuid39 not found'''}}}{{{#!if uuid39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39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40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40 == null
'''uuid40 not found'''}}}{{{#!if uuid40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40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41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41 == null
'''uuid41 not found'''}}}{{{#!if uuid41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41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42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42 == null
'''uuid42 not found'''}}}{{{#!if uuid42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42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43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43 == null
'''uuid43 not found'''}}}{{{#!if uuid43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43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44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44 == null
'''uuid44 not found'''}}}{{{#!if uuid44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44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45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45 == null
'''uuid45 not found'''}}}{{{#!if uuid45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45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46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46 == null
'''uuid46 not found'''}}}{{{#!if uuid46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46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47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47 == null
'''uuid47 not found'''}}}{{{#!if uuid47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47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48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48 == null
'''uuid48 not found'''}}}{{{#!if uuid48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48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49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49 == null
'''uuid49 not found'''}}}{{{#!if uuid49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49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50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50 == null
'''uuid50 not found'''}}}{{{#!if uuid50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50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

3.2. 주요 아시아팀 상대전적

아시아 강호
<rowcolor=#fff> 국가 경기 <colcolor=#0f0> <colcolor=#ff0> <colcolor=#f00> 득점 실점 득실차 비고
<rowcolor=#fff> 파일:호주 국기.svg 호주 6 4 1 1 17 9 +8

<rowcolor=#fff> 국가 경기 <colcolor=#0f0> <colcolor=#ff0> <colcolor=#f00> 득점 실점 득실차 비고
<rowcolor=#fff> 파일:이란 국기.svg 이란 2 2 0 0 4 0 +4

<rowcolor=#fff> 국가 경기 <colcolor=#0f0> <colcolor=#ff0> <colcolor=#f00> 득점 실점 득실차 비고
<rowcolor=#fff> 파일:일본 국기.svg 일본 4 1 1 2 7 8 -1

<rowcolor=#fff> 국가 경기 <colcolor=#0f0> <colcolor=#ff0> <colcolor=#f00> 득점 실점 득실차 비고
<rowcolor=#fff> 파일:사우디아라비아 국기.svg 사우디아라비아 3 3 0 0 13 1 +12

3.3. 그 외 아시아팀 상대전적

파일:아시아 축구 연맹 로고.svg 아시아 축구 연맹
<keepall>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rowcolor=#fff> 국가 경기 <colcolor=#0f0> <colcolor=#ff0> <colcolor=#f00> 득점 실점 득실차 비고
<rowcolor=#fff> 파일:중국 국기.svg 중국 2 1 1 0 2 1 +2
<rowcolor=#fff> 파일:쿠웨이트 국기.svg 쿠웨이트 1 1 0 0 7 0 +7
<rowcolor=#fff> 파일:오만 국기.svg 오만 2 2 0 0 3 0 +3
<rowcolor=#fff> 파일:태국 국기.svg 태국 1 1 0 0 5 1 +4
<rowcolor=#fff> 파일:아랍에미리트 국기.svg 아랍에미리트 3 3 0 0 14 3 +11
: 우세 | : 백중세 | : 열세
}}}}}}}}} ||

4. 아프리카(CAF 소속)

4.1. 주요 아프리카팀 상대전적

아프리카 강호
<rowcolor=#fff> 국가 경기 <colcolor=#0f0> <colcolor=#ff0> <colcolor=#f00> 득점 실점 득실차 비고
<rowcolor=#fff> 파일:카메룬 국기.svg 카메룬 4 3 1 0 10 3 +7

<rowcolor=#fff> 국가 경기 <colcolor=#0f0> <colcolor=#ff0> <colcolor=#f00> 득점 실점 득실차 비고
<rowcolor=#fff> 파일:가나 국기.svg 가나 3 2 1 0 9 3 +6

<rowcolor=#fff> 국가 경기 <colcolor=#0f0> <colcolor=#ff0> <colcolor=#f00> 득점 실점 득실차 비고
<rowcolor=#fff> 파일:모로코 국기.svg 모로코 4 4 0 0 12 3 +9

<rowcolor=#fff> 국가 경기 <colcolor=#0f0> <colcolor=#ff0> <colcolor=#f00> 득점 실점 득실차 비고
<rowcolor=#fff> 파일:나이지리아 국기.svg 나이지리아 1 1 0 0 1 0 +1

4.2. 그 외 아프리카팀 상대전적

파일:아프리카 축구 연맹 로고.svg 아프리카 축구 연맹
<keepall>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rowcolor=#fff> 국가 경기 <colcolor=#0f0> <colcolor=#ff0> <colcolor=#f00> 득점 실점 득실차 비고
<rowcolor=#fff> 파일:알제리 국기.svg 알제리 3 1 0 2 3 5 -2
<rowcolor=#fff> 파일:이집트 국기.svg 이집트 1 0 0 1 1 2 -1
<rowcolor=#fff> 파일:코트디부아르 국기.svg 코트디부아르 1 0 1 0 2 2 0
<rowcolor=#fff> 파일:남아프리카 공화국 국기.svg 남아프리카 공화국 4 3 1 0 9 2 +7
<rowcolor=#fff> 파일:튀니지 국기.svg 튀니지 3 1 2 0 4 1 +3
: 우세 | : 백중세 | : 열세
}}}}}}}}} ||

5. 북중미카리브(CONCACAF 소속)

5.1. 주요 북중미카리브팀 상대전적

북중미카리브 강호
<rowcolor=#fff> 국가 경기 <colcolor=#0f0> <colcolor=#ff0> <colcolor=#f00> 득점 실점 득실차 비고
<rowcolor=#fff> 파일:멕시코 국기.svg 멕시코 13 5 6 2 26 13 +13
<rowcolor=#fff> 국가 경기 <colcolor=#0f0> <colcolor=#ff0> <colcolor=#f00> 득점 실점 득실차 비고
<rowcolor=#ffffff>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12 8 0 4 26 18 +8

5.2. 그 외 북중미카리브팀 상대전적

파일:북중미카리브 축구 연맹 로고.svg 북중미카리브 축구 연맹
<keepall>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rowcolor=#fff> 국가 경기 <colcolor=#0f0> <colcolor=#ff0> <colcolor=#f00> 득점 실점 득실차 비고
<rowcolor=#fff> 파일:캐나다 국기.svg 캐나다 2 2 0 0 6 1 +5
<rowcolor=#fff> 파일:코스타리카 국기.svg 코스타리카 2 2 0 0 8 4 +4
: 우세 | : 백중세 | : 열세
}}}}}}}}} ||

6. 남미(CONMEBOL 소속)

6.1. 아르헨티나와 상대전적(라이벌)

파일: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colcolor=#fff> 역대 전적
파일: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 엠블럼.svg
파일:독일 국기.svg GER A매치 파일:아르헨티나 국기.svg ARG
<nopad> 23
<colbgcolor=#600><colcolor=#fff> 7 <nopad> 6 <colbgcolor=#600><colcolor=#fff> 10
33 득점 (-1) <nopad>
파일:아르헨티나 국기.svg 우세
34 득점 (+1)
미로슬라프 클로제(3) 최다득점자 호세 다니엘 폰세 등(2)
<nopad> 최근경기: 무승부 (2019)
<keepall>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folding [ 독일(통일 이후) 단독 상대전적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파일:독일 국기.svg GER A매치 파일:아르헨티나 국기.svg ARG
<nopad> 11
<colbgcolor=#000><colcolor=#fff> 2 <nopad> 4 <colbgcolor=#000><colcolor=#fff> 5
16 득점 (-2) 1990~ 18 득점 (+2)
}}}}}}}}} ||
<keepall>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folding [ 서독 시절 상대전적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파일:독일 국기.svg FRG A매치 파일:아르헨티나 국기.svg ARG
<nopad> 12
<colbgcolor=#000><colcolor=#fff> 5 <nopad> 2 <colbgcolor=#000><colcolor=#fff> 5
17 득점 (+1) <nopad> 1949~1990 16 득점 (-1)
}}}}}}}}} ||
아르헨티나와 독일은 총 3번의 FIFA 월드컵 결승전을 치른 월드컵 파이널의 라이벌이다. 양 팀의 만남은 독일 분단 이전에는 단 한차례도 없었고, 서독 시절 1958 스웨덴 월드컵 16강 조별리그 개막전에서 처음 맞상대한다. 당시 디펜딩 챔피언이었던 서독이 3-1로 아르헨티나를 완파했었다. 이후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서는 0-0으로 비긴다.
<nopad> 1986-06-29
<nopad> 3:2
<nopad> 파일:1986 FIFA 월드컵 멕시코 로고.svg 1986 FIFA 월드컵 결승전
앞선 2번 포함 월드컵에서만 총 7번 만났는데 상술했듯 그 중 3번이 결승전인 것이다. 그 서막은 디에고 마라도나가 휩쓸었던 1986 멕시코 월드컵으로 78년도 우승팀 아르헨티나와 82년도 준우승팀 서독의 대결은 그야말로 용호 상박이었다. 호세 루이스 브라운이 선제골을 넣으며 아르헨티나가 1-0으로 앞선 가운데 후반전에는 양 팀이 치고 받는 양상이 펼쳐졌고 호르헤 발다노의 득점 이후 카를하인츠 루메니게, 루디 푈러의 골로 2-2 무승부가 만들어진다. 하지만 경기는 호르헤 부루차가의 결승골로 아르헨티나가 월드컵 챔피언의 자리에 오른다.

파일:아르헨티나 국기.svg 아르헨티나 <nopad> 1990-07-08
<nopad> 0:1
<nopad> 파일: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 로고.svg 1990 FIFA 월드컵 결승전
4년 뒤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공교롭게도 양 팀이 리밴지 매치를 치르는데, 또 다시 결승전에서 맞붙게 된 것이다. 서독은 이미 82-86 대회 연속으로 준우승을 한 상황이었기에 더욱 절실했다. 경기결과 마침내 독일이 후반 막판 터진 안드레아스 브레메의 페널티골로 1-0 승리를 거두면서 독일 통일 직전 이를 자축하는 우승을 이룬다.
21세기에도 이들의 라이벌전은 지속되었는데, 2006 독일 월드컵, 2010 남아공 월드컵, 2014 브라질 월드컵까지 총 3개 대회 연속으로 만났는데 공교롭게도 아르헨티나는 모두 독일에게 탈락하는 결과를 맞이한다. 2006년에는 8강전에서 당시 개최국 독알에 1-1 무승부를 거두었으나 승부차기에서 패 탈락(6등)했고, 마라도나가 감독으로 이끌었던 2010년에는 역시 8강전에서 0-4로 와르르 무너지며 탈락(5등)했다.
<nopad> 2014-07-13
<nopad> 1:0
[A.E.T]
<nopad> 파일: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로고.svg 2014 FIFA 월드컵 결승전
이들의 대결에서 가장 큰 백미는 바로 2014년 결승전에서 만난 것인데, 메시가 과연 우승할 것인가라는 논쟁은 결국 연장전에서 마리오 괴체가 극적인 결승골을 성공시키며 0-1로 끝나고 만다.

6.2. 브라질과 상대전적(라이벌)

파일: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colcolor=#fff> 역대 전적
파일: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2019).svg
파일:독일 국기.svg GER A매치 파일:브라질 국기.svg BRA
<nopad> 23
<colbgcolor=#600><colcolor=#fff> 5 <nopad> 5 <colbgcolor=#600><colcolor=#fff> 13
31 득점 (-10) <nopad>
파일:브라질 국기.svg 우세
41 득점 (+10)
안드레 쉬얼레(3) 최다득점자 호나우두, 레오 주니오르, 호나우지뉴(3)
<nopad> 최근경기: 브라질 승 (2018)
<keepall>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folding [ 독일(통일 이후) 단독 상대전적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파일:독일 국기.svg GER A매치 파일:브라질 국기.svg BRA
<nopad> 11
<colbgcolor=#000><colcolor=#fff> 3 <nopad> 2 <colbgcolor=#000><colcolor=#fff> 6
20 득점 (-3) 1990~ 23 득점 (+3)
}}}}}}}}} ||
<keepall>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folding [ 서독 시절 상대전적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파일:독일 국기.svg FRG A매치 파일:브라질 국기.svg BRA
<nopad> 12
<colbgcolor=#000><colcolor=#fff> 2 <nopad> 3 <colbgcolor=#000><colcolor=#fff> 7
11 득점 (-7) <nopad> 1949~1990 18 득점 (+7)
}}}}}}}}} ||
  • 두 나라의 관계
월드컵 최다 우승 1, 2위를 다투는 두 나라의 라이벌 관계는 어찌보면 당연할 듯 싶으나, 의외로 월드컵에서 단 2번 밖에 만나지 않았고, 두 팀의 구도는 21세기에 만들어진 라이벌이다. 별칭은 미네이랑 더비.

두 팀의 A매치 첫 만남은 친선경기로 독일 분단 이후인 서독시절, 1963년으로 브라질이 2-1로 승리했다. 이후 1999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멕시코 대회전까지 메이저급 대회에서 붙어본 적이 없다.
  • 월드컵 결승전에서 처음으로 마주하다.
파일:독일 국기.svg 독일 <nopad> 2002-06-30
<nopad> 0:2
<nopad> 파일: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로고.svg 2002 FIFA 월드컵 결승전
브라질과 독일은 월드컵에서 총 두 번 만났는데, 21세기가 되어서야 월드컵에서 첫 조우를 했다. 그것이 2002 월드컵 결승전이다. 당시 역대 가장 약한팀이라던 독일이 의외로 결승에 진출한 반면 브라질은 영원한 우승후보로 94‘우승, 98’준우승에 이어 호나우두, 호나우지뉴, 히바우두3R 등등 최강의 전력이었고 2-0 완승을 거두며 5번째 우승을 달성한다.
  • 미네이랑의 비극
<nopad> 2014-07-08
<nopad> 1:7
<nopad> 파일: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로고.svg 2014 FIFA 월드컵 4강 준결승전
하지만 이 두 팀이 라이벌이 된 것은 2014 브라질 월드컵 4강전 이른바 미네이랑의 비극이 불리는 충격적인 사건의 여파일 것이다. 아무리 이전에 비해 떨어진다해도 영원한 우승후보였고 홈 어드밴티지를 안고 있는 상황에서 1-7이라는 점수차는 당시 각 국의 해설진도 민망해할 정도로 파국적 상황이었고 월드컵사에 손꼽히는 장면으로 남았다. 이러한 대굴욕에 브라질은 거의 뒤집어졌고 대표팀은 공중 붕괴되었으며 국민들은 분노속에 한동안 국가 애도 기간과 같은 시기를 보낸다. 문제는 이후 독일을 비롯해 온 세상의 브라질 라이벌과 안티들이 조롱의 소재로 쓰고 있고 아예 2017년은 20파일:브라질 국기.svg파일:독일 국기.svg[106]이 될 정도. 브라질은 이 날의 복수를 위한 칼날을 다듬고 있다.

6.3. 주요 남미팀 상대전적

월드컵 우승팀
<rowcolor=#fff> 국가 경기 <colcolor=#0f0> <colcolor=#ff0> <colcolor=#f00> 득점 실점 득실차 비고
<rowcolor=#fff> 파일:우루과이 국기.svg 우루과이 11 8 2 1 29 12 +17

6.4. 그 외 남미팀 상대전적

파일:남미 축구 연맹 로고.svg 남미 축구 연맹
<keepall>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rowcolor=#fff> 국가 경기 <colcolor=#0f0> <colcolor=#ff0> <colcolor=#f00> 득점 실점 득실차 비고
<rowcolor=#fff> 파일:볼리비아 국기.svg 볼리비아 1 1 0 0 1 0 +1
<rowcolor=#fff> 파일:칠레 국기.svg 칠레 9 6 1 2 14 8 +6
<rowcolor=#fff> 파일:콜롬비아 국기.svg 콜롬비아 5 2 2 1 10 7 +3
<rowcolor=#fff> 파일:에콰도르 국기.svg 에콰도르 2 2 0 0 7 2 +5
<rowcolor=#fff> 파일:파라과이 국기.svg 파라과이 2 1 1 0 4 3 +1
<rowcolor=#fff> 파일:페루 국기.svg 페루 3 3 0 0 7 2 +5
: 우세 | : 백중세 | : 열세
}}}}}}}}} ||

7. 오세아니아(OFC 소속)

7.1. 주요 오세아니아팀 상대전적

오세아니아 강호
<rowcolor=#fff> 국가 경기 <colcolor=#0f0> <colcolor=#ff0> <colcolor=#f00> 득점 실점 득실차 비고
<rowcolor=#ffffff> 파일:뉴질랜드 국기.svg 뉴질랜드 1 1 0 0 2 0 +2

7.2. 그 외 오세아니아팀 상대전적

파일:오세아니아 축구 연맹 로고.svg 오세아니아 축구 연맹
<keepall>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rowcolor=#fff> 국가 경기 <colcolor=#0f0> <colcolor=#ff0> <colcolor=#f00> 득점 실점 득실차 비고
A매치 전적없음
: 우세 | : 백중세 | : 열세
}}}}}}}}} ||
[A.E.T] [A.E.T] [P.S.O] [4] 1982년도 월드컵 경기는 0-0이었으나 서독에 잉글랜드가 밀려 탈락했다.[P.S.O] [6] 램파드의 골 오심은 1966년의 업보라면서 독일을 비롯한 해외팬들이 깔깔거리며 놀리곤 했다.[7] 코로나 여파로 1년 뒤인 2021년 치러졌다.[P.S.O] [9] 특히 1939년 전쟁이 발발한 이후에도 2번이나 경기를 주고 받았다.[10]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또다시 급속도로 관계가 악화되었다.[11] 하지만 결승에서 페르난도 토레스에게 실점하며 0-1로 준우승에 머무른다.[12] 해당 올림픽 대회는 서독과 동독이 서로 맞대결을 펼친 후 승리팀이 단일 독일 대표팀으로 지역예선에 출전했다. 여담으로 이 대회에서 동독은 동메달을 따낸다.[13] 여담으로 이 대회에 금메달은 헝가리, 은메달은 폴란드 동메달은 소련과 동독으로 모두 동구권 국가들이 서독땅을 휩쓸어 버렸다. 아마추어라는 기준 때문으로 볼 수 있는데, 특히 당시 공산권 국가들에게는 프로와 아마추어의 기준성이 모호했기 때문에 훨씬 강력한 스쿼드를 구축할 수 있어고 주로 올림픽 대회는 공산주의 국가들의 무대가 자주 펼쳐지곤 했다.[14] 여담으로 서독은 네덜란드를 꺾고 이 대회에 챔피언에 올랐기에 다행히 불만 여론을 잠식시킬 수 있었다. 한편 동독은 8강 준결승리그에서 네덜란드와 브라질에 밀려 탈락했다.[15]
4골, 막스 모를로크
1골, 호르스트 샤데, 한스 셰퍼
[16]
1골, 허버트 마틴
[CZE] 현재의 체코 대표팀(1993~)은 보헤미아(1903~1919) 및 체코슬로바키아(1919~1993) 시절의 대표팀 기록을 승계하였다. 보헤미아-모라바 보호령(1939-1945)은 나치 독일 시절 기록이다.[단독] [NIR] 현재의 북아일랜드(1950~) 대표팀 및 아일랜드 공화국이 분리되어 독립하기 이전 아일랜드 대표팀(1882-1950)의 기록을 승계한다. 다만 독일과 북아일랜드 대표팀의 첫 만남은 1958년으로 1950년 이전 전적은 없다.[SRB] 현재의 세르비아 대표팀(2006~)은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구 유고, 1920~1992), 유고슬라비아 연방 공화국(신 유고, 1992~2003) 및 세르비아 몬테네그로(2003~2006) 시절의 대표팀 기록을 승계한다.[단독] [🏟️] 중립 경기: 2
GER 홈 경기: 0
KOR 홈 경기: 2
[현역] [24]
2골, 위르겐 클린스만, 미하엘 발락
1골, 카를하인츠 리들레
[25]
1골, 황선홍, 홍명보, 김동진, 이동국, 조재진, 김영권, 손흥민
[UTC-6] [27] 두 팀의 상대전적: 없음(사상 첫 경기)[T.헤슬러] 토마스 헤슬러 도움[T.헤슬러] 토마스 헤슬러 도움[T.헤슬러] 토마스 헤슬러 도움[박정배] 박정배 도움[H] [SBS] [34] 앞서 1954년 스위스 월드컵 16개국 본선에서 두 팀(독일은 당시 서독)이 같은 조에 편성되었으나, 당시 대회의 특이한 진행 방식 때문에 두 팀은 대결하지 않았다.[35]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월드컵 본선에서 1954년 첫 출전을 제외하고 전반전에서 3실점 이상 당한 경기는 이 경기와 2002년 터키와의 3·4위전, 2014년 알제리와의 H조 예선 2차전, 2022년 브라질과의 16강전 등 4경기뿐이다.[36] 당장에 이 대회에서 득점을 기록한 황선홍홍명보, 서정원만 봐도 당시 20대 중반이었고, 1986년 멕시코 월드컵 때부터 대표팀의 일원이었던 베테랑 김주성이 20대 후반에, 주전 골키퍼이자 주장인 최인영이 당시 32세로 최연장자였다.[37] 이 사건 때문에 이 경기를 자신의 국대 은퇴 경기가 되었다고 알려지기도 하였으나 사실무근인 이야기다. 물론 이 사건의 여파 때문에 이후의 메이저 대회는 나가지 못했으니 아예 틀린 말은 아니다.[38] 공교롭게도 24년 후 카잔의 기적에서 한국팀이 독일팀을 상대로 승리했을 때 추가 연장시간에 연이어 2골을 넣고 승리하였다.[39] 참고로 포크츠 감독은 1998년 프랑스 월드컵 8강전인 크로아티아와의 경기에서 0:3으로 참패를 당한 이후 경질되었다.[UTC+9] [41] 두 팀의 상대전적: 총 1전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KOR | 0승 | 0무 | 1승 | GER 파일:독일 국기.svg
최근 경기: 독일 승리(1994/미국, 댈러스)
KOR 2:3 GER(1994 FIFA 월드컵 조별리그)
[42] 두 팀의 대회 여정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D조 1위(2:0 파일:폴란드 국기.svg POL | 1:1 파일:미국 국기.svg USA | 1:0 파일:포르투갈 국기.svg POR)
16강(2:1ASDET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ITA), 8강(0:0P 5:3 파일:스페인 국기.svg ESP)
파일:독일 국기.svg 독일
E조 1위(8:0 파일:사우디아라비아 국기.svg KSA | 1:1 파일:아일랜드 국기.svg IRL | 2:0 파일:카메룬 국기.svg CMR)
16강(1:0 파일:파라과이 국기.svg PAR), 8강(1:0 파일:미국 국기.svg USA)
[H] [SBS] [45] 이 시기가 역대 독일 대표팀 감독 중 가장 욕을 먹던 루디 푈러 시기였다는 것을 감안하자. 심지어 한국이 독일의 천적인 이탈리아를 때려잡고 왔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었다.[46] 한국이 독일과 대결해 이룬 성적도 경이롭지만 한국의 이탈리아전 성적은 더 깔끔하다. 1986년 34년 만에 첫 진출을 이룬 멕시코 대회에서 편파 판정 탓도 있기는 했지만 2:3 석패를 했고 2002년 대회에서는 2:1로 승리하여 통합전적 1승 1패를 기록중이다. 월드컵 우승국을 상대로 독일과 유이하게 백중세를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UTC+9] [A.프리드리히F] 아르네 프리드리히 프리킥 유도[차두리] 차두리 도움[선방] [F] [SBS] [H] [SBS] [55] 치달을 시작하기 전, 독일 선수 한 명이 달려들었으나 벗겨냈고 두 번째 독일 수비진이 달려들었으나 이마저도 제쳐버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달려든게 필립 람이었고 람 역시 처음엔 따돌려졌으나 끈질기게 달라붙어 박스 좌측 측면에서 크로스 올리기 직전 차단시켰다.[56] 그중 한 명이 바로 필립 람이었다.[UTC+3] [58] 두 팀의 상대전적: 총 3전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KOR | 1승 | 0무 | 2승 | GER 파일:독일 국기.svg
최근 경기: 대한민국 승리(2004/대한민국, 부산)
KOR 3:1 GER(친선경기)
[누적] 경고 누적 다음경기 출전 불가[주세종] 주세종 도움[H] [SBS] [63] 대회 22위로 역대 월드컵 본선 최하위[64] 월드컵 1라운드 탈락은 이미 80년 전 1라운드 15강 토너먼트 탈락(10위)을 겪었던 거지만, 1라운드 조별리그에서는 역사상 최초이다. 내용으로 따져도 1938년보다 2018년이 더 심각했다. 그나마 1938년 대회엔 아돌프 히틀러 때문에 망쳤다는 변명거리라도 있었다. 왜냐하면, 월드컵이 열리기 두 달 전에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집어삼켰는데, 이때 히틀러는 강제로 오스트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들을 독일 대표팀에 편입시키는 뻘짓을 자행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오스트리아 출신 선수들은 "내가 왜 내 조국이 아닌 독일을 위해 굳이 뛰어야 하나?"라는 생각을 가지며 경기 중에 대놓고 반항하고 태업하며 개겼을 정도였다. 그래서 독일은 1라운드에서 스위스를 상대로 힘 한 번 제대로 못써보고 광탈당했다. 그나마도 첫 경기에서는 1:1 무승부였으나 재경기에서 결국 2:4로 패배하여 떨어진 것이다. 그리고 독일은 1978월드컵 당시 2라운드 8강 조별리그에서 탈락(조 3위, 대회 6위)한적도 있다.(1974년과 1978년 월드컵은 8강도 조별리그 방식이었으며 각 조 1위만 결승행, 각 조 2위는 탈락해서 3,4위전으로 갔다. 4강전이 없었다.)[65] 20년 전크로아티아전 때는 크리스티안 뵈른스가 백태클로 즉각 퇴장을 당해 수적 열세를 지게 된 점이라도 있었지만, 이번의 경우에는 그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1998년 크로아티아에 졌을땐 독일전에서 독일에 골을 넣은 3명 선수 전원(수케르, 야르니, 블라오비치)이 스페인 라리가에서 주전으로 활약하던 선수들이었지만 한국은 손흥민을 제외하곤 대부분 k리그 소속 선수들이었다는게 더욱 충격적이었다. 심지어 독일전에서 선제골을 넣은 김영권은 중국 리그에서 활약하던 선수였으니 말이다.[66] 마지막 24개국 본선 진출 대회[67] 한국이 독일과 마지막으로 대결한 2004년 A매치 평가전에서부터 계산한 기간.[68] 마테우스(Matthäus)는 성에서 보듯 그냥 독일계로 그의 아버지 하인츠 마테우스는 폴란드 실레시아에 살다가 제2차 세계 대전 중인 1944년 독소전쟁 당시 소련이 독일령 폴란드를 침공해오자 서쪽으로 피신해 독일 프랑켄 지방에 정착했고 마테우스는 거기서 태어났다.[69] 몇몇 평가에서는 한국전 때 외질이 그나마 제일 잘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70] 유럽은 아니지만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유럽계 인종에 유럽문화와 상당히 유사하면 큰 문제를 두지 않는 편.[71] 호주가 2011년 3월 친선경기에서 2:1로 이기긴 했다.[72] 참고로 스웨덴 축구 국가대표팀도 똑같은 성향의 팀이다. 스웨덴은 2005년 대한민국과의 평가전에서 1:1과 2:2로 비기고 2010년, 2012년 독일과의 평가전에서 0-0과 4-4의 박빙 승부를 펼쳤으며, 2018년 본선 F조에서 독일(1:2 패)과 대한민국(1:0 승)을 상대할 때도 서로간에 힘겨운 싸움을 펼치기도 했다. 흥미로운 점은 2012년 독일과의 평가전에서 독일이 초반에 4:0으로 압도하다가 후반에 연달아 4골이나 실점하며 비겼다! 또한 최근 30년 동안 스웨덴이 독일과 대한민국을 상대하면서 역전하거나 역전당한 경우는 2018년 독일전이 유일할 정도로, 이들 팀끼리 역전하는 경우는 이례 중에 이례에 속한다. 마찬가지로 러시아 축구 국가대표팀,세르비아 축구 국가대표팀 또한 비슷하지만 스웨덴과 달리 수비보다는 공격쪽에 치중되어있는 느낌이다. 그래서 우격다짐으로 득점하는 일이 많지만 반대로 어이없이 실점하는 경우가 많다. 독일은 공격, 수비 밸런스가 전부 좋은 팀이었으나 요즘은 영 시원치 않은 상태.[73] 다른 성향을 가진 상대 팀 입장에서는 이런 팀들을 상대로 빠른 시간에 득점을 하지 못하면 경기 후반부로 갈수록 힘에 부쳐서 패배하는 등 힘든 경기를 펼치는 경우가 많다. 반면 이런 성향의 팀들은 빠른 시간에 선취 득점을 올리지 못하면 자멸하기도 한다. 거기에다 대표팀 선수들이나, 코칭 스태프 전원이 한국 대표팀의 득점 실력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실점을 최소화하는 것으로 경기를 운영한다. 잘 알겠지만 대한민국 대표팀이 월드컵에서 올렸던 최다골이 현재 기준으로 2골이다.[74] 애초에 경기를 뒤집는 게 이례적이다. 다만 이렇듯 체력과 조직력으로 승부하는 성향의 팀끼리 붙을 때 그런 경우가 더 두드러지는 것뿐이다. 이렇게 역전이 더 어려운 건 체력과 조직력으로 승부하는 팀끼리 붙었을 때는 다른 때보다도 강한 압박축구로 인해 체력 소모가 크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75] 아시아 대표팀들 가운데 상위 20위권내에 올라와 있는 팀이 없다. 아시아 최강자인 이란이 22위일 정도로 세계 축구계에서 비주류인 것이 아시아 축구다.[76] 1954년 스위스 대회에서 당시 최강의 팀이던 헝가리에 0:9로 졌으나 당시 두자리 점수차로 대패할 것이라던 외신 기자들의 예상을 뒤엎었고, 32년 만에 첫 본선 진출을 이뤘던 멕시코 대회에서 전 대회 우승팀이었던 이탈리아에 2:3으로 1점 차로 석패한 것과 1994년 대회에서 첫 대결을 했던 독일전을 2:3으로 석패한 것 등, 절대로 만만하게 볼 팀이 아니라는 것을 전 세계에 증명했다.[77] 실제로는 당시 독일 대표팀은 대한민국 대표팀을 상대로 빠른 시간에 득점을 올리지 못해서 고전했다.[78] 후반 40분 경에는 독일 선수들은 체력이 급격히 바닥나서 제대로 뛰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한국의 일방적인 공격을 간신히 겨우겨우 막아냈다. 그것도 대한민국은 전반전에 대삽질한 골키퍼 최인영을 당시 대학생이었던 이운재로 바꾼 상태였다. 독일은 수비수는 물론이고 위르겐 클린스만까지 온몸을 날려 막아내고 있었고, 골키퍼 보도 일그너의 혼을 실은 선방 덕분에 간신히 이길 수 있었다. 경기가 끝나고 독일 선수 절반 이상은 탈진해 쓰러졌으며, 일부 선수는 인터뷰에서 후반전에는 공포심마저 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 경기에서 슈테판 에펜베르크는 후반전에 한국을 상대로 쩔쩔 매는 자신들에게 야유를 퍼붓는 자국 관중 및 미국 관중들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날리는 정신나간 짓거리를 벌여 즉각 교체됨과 동시에 사실상 국가대표에서 쫓겨났고(물론 그 이후에도 몇 번 대표팀에 차출되기는 했지만, 메이저 대회는 나가지 못했기 때문에 딱히 틀린 표현은 아니다), 결과적으로 8강에서 불가리아한테 역전을 당해 떨어지는 등 독일 축구의 세대 교체에 큰 악영향을 주게 되었다.[79] 그나마 위안거리로는 같은 조에 속하고 같이 토너먼트에 진출한 프랑스와 포르투갈도 사이좋게 16강전에서 탈락했다.[80]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이 경기에서에서 독일의 유효슈팅이 아예 0이었다는 점이다.[81] 2018년 22등, 2022년 17등[82] 특히, 독일이 일본에게 역전패를 당한 직후 스페인이 코스타리카와의 첫 경기에서 7:0 압승을 거둔 것도 독일의 월드컵 조별리그(32강) 2회 연속 탈락에 한몫했다.(2018년 22등, 2022년 17등)[83] 그리고 일본은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 본선 이후 또다시 독일에게 승리를 쟁취하였다. 물론 국뽕으로 하는거 아닌 사실주의로 따지면 한국이 상대한 독일 스쿼드가 일본이 상대한 독일 스쿼드보다 훨씬 강했던건 사실이긴 하다.[84] 그 뿐만이 아니라 독일 축구 역사 123년 최초로 한지 플릭이 경질당하는 수모까지 겪었다. 알고보면 독일의 암흑기 연장의 원인들중 하나가 한지 플릭 때문이기도 하다.[85] 월드컵: 6회 진출(AFC소속 역대 3위), 최고성적 11위(16강)[86] AFC 아시안컵: 1회 우승[87] 월드컵: 6회 진출(AFC소속 역대 3위), 최고성적 14위(16강 조별리그(1978))[88] AFC 아시안컵: 3회 우승(2위)[89] 월드컵: 7회 진출(AFC소속 역대 2위), 최고성적 9위 3회(16강)[90] AFC 아시안컵: 4회 우승(1위)[91] 월드컵: 6회 진출(AFC소속 역대 3위), 최고성적 12위(16강(1994))[92] AFC 아시안컵: 3회 우승(2위)[93] 월드컵: 8회 진출(CAF소속 역대 1위), 최고성적 7위(8강, 1990)[94]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5회 우승(2위)[95] 월드컵: 4회 진출(CAF소속 역대 4위), 최고성적 7위(8강, 2010)[96]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4회 우승(3위)[97] 월드컵: 6회 진출(CAF소속 역대 2위), 최고성적 4위(2022)[98]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1회 우승[99] 월드컵: 6회 진출(CAF소속 역대 2위), 최고성적 9위(16강, 1994)[100]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3회 우승(4위)[101] 월드컵: 18회 진출(CONCACAF소속 역대 1위), 최고성적 6위(8강, 1970·1986)[102] CONCACAF 골드컵: 11회 우승(1위)[103] 월드컵: 12회 진출(CONCACAF소속 역대 2위), 최고성적 3위(1930)[104] CONCACAF 골드컵: 7회 우승(2위)[A.E.T] [106] 그런데 2018년에 한국이 독일을 2-0으로 이기자 브라질인들이 2020년을 20파일:대한민국 국기.svg파일:독일 국기.svg로 표현하며 복수한다.[107] 월드컵: 2회 진출(OFC소속 역대 1위),
최고성적 22위(32강 조별리그(2010)
23위(24강 조별리그(1982))
[108] OFC 네이션스컵: 6회 우승(1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