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등재 기준
- 일제강점기의 매국노는 대한민국 정부 발표 친일반민족행위자 中 '매국, 수관' 등을 차용할 것
- 일제강점기 이후의 매국노는 주권, 이권의 해석을 최대한 좁게 보아 외환죄(외환유치죄, 여적죄, 간첩죄, 간첩방조죄, 군사상기밀누설죄 등)에 연루된 사건을 사안에 따라 개별적으로 토론할 것을 권함
- 정상참작이 가능한 경우, 애매한 경우나 관점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는 경우에는 ☆표시||
2. 목록
2.1. 고조선
- 노인(路人)·노최(路最)·삼(參)·왕협(王唊)·장항(長降)·한음(韓陰): 위만조선을 멸망시킨 인물들. 당시 고조선은 중계 무역 등으로 매우 번성한 나라였으며 한나라의 공격을 1년이 넘게 막아내고 오히려 역습을 가해 한무제가 협상을 요청하기도 했다. 한나라의 원정군을 이끌던 두 장군 순제와 양복이 불화가 심했기 때문에 이 매국노들이 없었다면 어찌 될 지 몰랐다.[1] 농성이라는 것이 사실 물자만 풍족하면 공격 측이 가면 갈수록 불리해지고 수비 측이 가면 갈수록 유리해지는 전투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우거왕을 암살[2]하고 나서도 왕검성은 몇 달 간 대신 성기를 중심으로 저항을 계속했다. 이들이 순제에게 매수되어 한나라에 투항하고 우거왕과 성기를 살해한 후 성문을 열어 위만조선이 3대 86년의 역사를 종지부 찍게 만들었다. 자세한 내용은 왕검성 전투 항목 참조.
2.2. 고구려
- 고발기: 형인 고국천왕이 아들 없이 죽어 자신에게 와야 할 왕위가 왕후 우씨의 욕심으로 동생인 연우(산상왕)에게 돌아가자 공손탁에게 붙어 고구려로 쳐들어왔지만 또 다른 동생인 계수에게 제대로 지고 계수가 자신을 꾸짖자 부끄러움을 느껴 자살했다.
- 사부구: 당나라가 요동으로 쳐들어오자 신성 성주를 결박하고 신성 성문을 열어 설인귀에게 항복했다. 이 일로 요동 방어선이 완전히 무너졌을 뿐만 아니라 금산 전투에서 고구려 정예군 5만 명까지 전사하여 고구려 패망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 손대음(손벌음): 백암성 성주로 당나라의 태종 군대가 침입했을 때 압력이 두려워 몰래 항복했다.
- 신성, 고요묘, 오사: 연남생·이세적과 내통하고 평양성 성문을 열어 당나라에 항복한 인물.
- 연남생: 연개소문의 첫째 아들로 의외로 잘 안 알려졌는데 형제들 간의 싸움에 결정적으로 고구려의 현도성과 고구려 3경(평양성·국내성·한성) 중 하나였던 국내성을 적에게 넘기고 고구려 멸망 시에도 커다란 공을 세워서 당나라에서 벼슬까지 받으면서 잘 살았다. 연개소문 세 아들 중 끝까지 당과 대적했던 인물은 둘째인 연남건.
- 연정토: 연개소문의 동생. 당의 침략으로 고구려가 멸망의 위기에 처하자 12성 700호의 주민을 이끌고 신라에 항복하였다.
2.3. 최씨낙랑국
- 낙랑공주☆: 고구려의 미소년 왕자에게 홀려서, 조국 낙랑군을 배반하고 급기야 자신의 목숨마저 잃은 인물. 엄연한 매국노지만 아주 유명한 일화인 데다 내용 자체도 비극적이어서 여러 2차 창작물에서 소재로 다루었다.
2.4. 백제
- 예식진: 백제 멸망에 절대적 공헌을 한 인물. 백제의 중신이면서 의자왕을 당나라에 팔아넘긴 매국노로 2007년 그의 묘지명이 발굴되면서 그 진상이 드러났다. 백제가 이후 저항을 결정한 소수의 세력만으로도 부흥군을 데리고 수 년 간 저항할 만큼 저항 여력이 남아 있었음을 생각하면 당의 입장에서 그의 업적은 아무리 높여도 부족할 정도고 백제인들 입장에서는 백 번 죽여도 시원치 않은 진정한 매국노. 사실 예식진의 매국은 이미 구당서에 기록이 남아 있었지만 將의 해석 문제로 과연 매국노가 맞는가 해석이 엇갈렸는데 2007년 그의 행적에 대한 평가가 김일제에 비교되며 사실상 매국이 맞다는 쪽으로 기울다가 2010년 손자 예인수 묘지명의 발굴로 그가 의자왕을 잡아서 소정방에 바친 것이 확실해지면서 매국노로 확정되었다.
- 예군: 백제의 매국노다. 자는 온(溫). 예식진과 더불어 매국노 형제이기도 하다.
- 흑치상지☆, 사타상여☆: 백제 부흥군을 이끌었으나 당군에 항복하였고 그것도 모자라 당의 앞잡이가 되어 동료였던 지수신이 지키는 임존성을 공격하기까지 하였다. 물론 이들은 이 항목의 다른 인물들과는 다르게 정상참작의 여지는 있다. 이들은 백제 부흥군을 이끌면서 몇 년간 임존성을 지키던 장본인이었고 당의 앞잡이가 된 것도 아니고 단지 당과 싸운다 해도 무참히 살해당할 백성들을 위하여 당에 항복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실제로 당의 군대를 이끌며 무분별한 살생을 금하고 성을 함락하는 것 뿐이라는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2.5. 신라
2.6. 발해
2.7. 후백제
- 견훤☆: 창업군주였으나 쿠데타로 폐위당하고 적국이었던 고려에 귀순한 뒤 직접 일리천 전투에서 후백제를 치는 선봉에 섰지만 그는 참작할 여지가 있다고 보는 편이다. 사실상 견신검의 쿠데타가 후백제의 멸망에 결정타를 날린 것이다.
- 박영규☆: 견훤의 사위로써 신검을 배반할 지언정 견훤을 배반하지 않았다. 역시 일리천 전투에서 후백제를 배신하고 견훤의 편이 되었다.
2.8. 고려
- 조위총: 비록 반 무신을 표방해 군사를 일으켰다고 하지만 고려의 신하로써 국토를 외세에게 팔아넘겨 외세를 끌어들이려고 한 점에서 문제의 여지가 있다. 금나라가 조위총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아 미수에 그치긴 했지만 만약 그렇게 되었다면 조위총을 진압하는 무신 측에서 정당성만 부여해 주는 것이다.
- 고려 초의 부요배
- 고려 말의 부원배
- 이현: 사신으로 가서 몽골에 억류되었다가 금패를 받고 몽골군의 앞잡이 노릇을 해 여러 성을 회유하고 항복시켰고 몽골군이 돌아갈 때 따라가지 못하다가 반역죄로 주살되었다.
- 조숙창 : 전간의 설득에 따라 항복하긴 했지만 아버지 조충이 몽골의 원수와 형제의 맹약을 맺어 형제가 되었다면서 여러 성에 항복을 권했다.
- 조휘·탁청: 1258년 원나라가 침공해 오자 철령 이북의 땅을 바치면서 원나라에 붙어 버렸다.[3] 원나라는 이 지역에 쌍성총관부(雙城摠管府)를 설치했는데 조휘는 총관(摠管)에, 탁청은 천호장(千戶長)에 임명되었다. 쌍성총관부는 조휘 이후 그의 증손자 조소생까지 4대가 총관직을 지내다 1356년 공민왕에 의해 탈환되었는데 이 때 활약을 한 게 이자춘·이성계 부자와 조휘의 손자이자 조소생의 숙부인 조돈이다. 조돈 덕에 한양 조씨는 조선의 공신 가문이 되었고, 조선에 안착할 수 있었다.
- 최탄: 1269년 임연이 왕을 새로 세우고 옹립한 것을 이유로 서경에서 반란을 일으켜 여러 지역의 수령들을 죽이고 오늘날의 평안남도와 황해도 서북부를 원나라에 바친 반역자다. 원나라는 1270년 자비령 이북의 영토를 직할령으로 편입시키고 동녕부(東寧府)를 설치한 후 최탄을 동녕부 총관(摠管)에 임명하였다. 1275년 동녕 총관부(東寧摠管府)로 격상했으나 1290년 고려의 끈질긴 반환 요구를 받아들여 이 지역을 고려에 돌려주고 동녕부를 요동(遼東)으로 옮겼다.
- 한신: 최탄과 함께 한 반역자로 원나라로 들어가서는 거짓을 꾸며 충선왕을 헐뜯었다.
- 홍대순·홍복원: 나라에 민폐를 끼친 매국노 집안의 완성판으로 그의 아들 홍다구대부터는 조국이 원나라가 되어 고려를 지속적으로 괴롭힌다. 김방경 문서와 링크 참조.
- 기황후·기철 및 그 일족: 원나라 군대로 고려를 침공하거나 입성책동을 획책하는 등 갖가지 악행을 저질렀다.
- 왕고를 비롯한 입성책동 주동자들: 고려 자체를 없애 원나라에 포함시키려고 충동질한 자들. 쉽게말해 고려판 을사오적이자 고려판 경술국적이 될 수 있었던 자들.
- 조이: 고려의 문신이었으나 몽골로 가서 고려를 일본과 친하게 지내는 나라라고 비방했다. 고려를 원나라의 일본원정에 동원당하게 한 인물이다.
2.9. 조선 ~ 대한제국
- 강홍립☆: 조선시대에는 역적으로 엄청난 비난을 받았지만 바로 아래의 정명수보다는 나은 편이었고 사르후 전투에서 후금에 항복한 것도 광해군의 2중 명령에 따른 것이고 병자호란 당시 길을 알려준 것도 후금의 강요 때문이어서 참작할 여지는 있다.
- 정명수☆: 진정한 청의 앞잡이로 조선을 팔아 잘 먹고 잘 살았지만 이 사람도 한미한 집안 출신인 데다 그의 고향인 함경도의 주민들은 생활고와 온갖 차별에 시달린지라서[4] 차라리 밀무역 대상으로서 자신들을 인간적인 대접을 한 여진족 및 그 후계 민족인 만주족에게 동질감을 느끼다시피했다. 이렇게 나라로부터 버림받은 이들이 국가에 대해 소속감이 전무한 건 당연했고 정명수의 매국 행위도 이런 현실의 연장선에서 생각해야 한다. 말하자면 조선판 중항열인 셈이다.
- 국경인: 회령부 아전으로 임진왜란 때 무리를 모아 반란을 일으켜 피난 온 왕자 임해군·순화군을 포박해 일본의 가토 기요마사에게 넘겨주었다. 사실 임해군의 악행으로 이런 결과가 도출된 것이지만 이후 국경인 역시 함경도에서 신나게 민폐를 끼쳐대다가 유생 신세준·오윤적 등에게 참살당했다.
- 김자점: 병자호란 당시 일 도원수였으나 정묘호란 당시 삽질했다고 잘린 장만이 명장으로 보일 정도의 재빠른 판단력과 정보력을 보여주며 조선의 패전에 아주 큰 기여를 하였다. 물론 김자점은 청의 본대가 들어올 것을 경계하는 등 나름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그의 보고에 따르면 청나라 군대는 의주에 도착한 다음날 평양에 당도하였으며 이틀 뒤 황해도 한복판에 있었다. 만일 그가 이끄는 함경도군이 청군의 후방을 차단하는 등 나름 교란 작전에 투입되기 위해 노력했다면 청군도 그렇게 쉽게 조선을 제압하지는 못했을 것이고 최악의 경우 보급선이 끊기고 혼란에 빠진 청군이 조선군의 요격에 박살나는 형태로 귀주대첩 시즌 2가 벌어졌을 수도 있었다. 애당초 청태종의 전략 자체가 조선군의 후방 교란 및 반격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붕괴된 평안도 방위선을 돌파하여 단기간에 한양을 제압하고 조선을 굴복시킨다는 형태의 절반 가량은 모험이었으니까. 문제는 패전 후에도 인조를 세운 반정 공신이라는 이유로 여전히 고개를 뻣뻣이 들면서 오히려 애써 책임을 회피하던 인조와 죽이 맞아 인조 말기 정국을 지배했다는 점이다. 효종 즉위 이후 몰락이 가시화되자 아들의 반란 음모에 동조하고 청나라에 '저것들이 북벌하려고 한다는데 혼 좀 내주시죠'라는 내용의 서신을 보내는 등 발악을 하다가 결국 일족 전체가 몰살당했다. 방계 후손인 김구의 일가가 시골로 도망다니기도 했다.
- 순왜☆: 임진왜란 당시 일본 침략군에 협력한 자들. 생존을 위해 강요당한 부역 사례가 많아 국경인 등 일부 악질들을 빼면 처벌이 가벼웠다고 한다.
- 한윤: 아버지(한명련)가 이괄(李适)과 함께 반란을 일으켰다가 살해되자 탈출 후 오랑캐인 후금을 부추겨 이들의 앞잡이로 조선을 침략한다. 그의 집안은 후금에서 크게 흥성했다.
- 황사영: 천주교 신자로 맹목적인 신앙심 때문에 조선을 자칫하면 청나라나 프랑스의 식민지로 만들 뻔했다.
- 친일반민족행위자 - 학계의 연구들을 통해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경우가 많으며 후속 연구로 새로운 사실이 밝혀짐에 따라 인물이 추가되거나 삭제되는 경우도 있다.
- 양칠성: 좀 미묘한 케이스인데, 스스로 한국인임을 철저히 부정하고 일본 제국에 충성을 바친 빼도박도 못할 친일반민족행위자이나, 아이러니하게도 인도네시아 독립전쟁에 가담하여 독립군 게릴라로 활동하다가 네덜란드군에 체포되어 처형당하면서, 인도네시아에서는 조국의 독립을 돕기위해 목숨을 바친 외국인 독립영웅으로 숭앙하고 있다.
- 을미사변에 가담한 조선인들(우범선·이두황·이진호·이주회·구연수): 을미사변 당시 일본 낭인들의 명성황후 제거를 도왔다. 우범선과 이두황은 조선의 군인이기 때문에 국가에 대한 명백한 반역행위였다.[5] 훗날 우범선은 고영근이라는 인물에게 암살당해서 매국행위에 대한 죗값을 치렀지만[6] 이두황은 살아남아서 정미특사 때 사면을 받고[7] 전라북도 관찰사 및 도장관에 임명되어 전북에서 활동하는 의병들을 탄압하는데 앞장섰으며[8] 구연수는 조선으로 돌아와 유일한 조선인 경무관&중추원 참의를 역임했다.[9]
- 을사오적, 정미칠적, 경술국적: 국가의 이권이나, 주권 자체를 일본에 넘기는데 협력하고 일본의 식민지배 유지를 조력한 자들.[10]
- 이완용 - 을사조약, 정미 7조약, 경술국치에 모두 찬성하고 이후에도 조선인 헌병제 창설 등 일제의 조선 탄압에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만행을 저질러 한국에서는 매국노의 대명사격 인물로 통하는 인물이다.
- 이근택☆ - 사실 이쪽은 괴물과 싸우다가 심연에 삼켜져 또 다른 괴물이 되었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하다. 일본의 군사 정보를 캐내기 위해 대한제국 정보대를 창설했다가 너무 비관적인 정보들을 얻게 되어 친일로 기울어졌다.#
- 이지용
- 권중현
- 박제순
☆- 을사조약 당시에는 어느 정도 정상참작 여지가 있지만 경술국치 당시에는 정상참작 여지가 전무하다. - 송병준
- 이병무 - 대한제국군 해산에도 관여하고 의병 진압 명령까지 내린 인물이다.
- 고영희 - 매국노들 중에서는 특이하게도 친일을 개화파로써 시작한 인물이었다.
- 조중응 - 러시아로부터 조선을 지키려면 일본에 기대야 한다고 믿었던 신념형 친일파였다. 여기까지는 별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문제는 그 마인드를 러일전쟁 이후에도 버리지 못한 것.
- 이재곤
- 임선준
- 윤덕영 - 일각에서는 '이완용보다 더 악랄한 매국노'라고 평가할 정도다.
- 민병석- 경술국치의 3인자격이었다.[11]
- 조민희
- 을사삼흉[12]
- 이재극
- 이하영 - 일각에서는 을사조약 당시 소극적이던 박제순 대신 처음에는 반대했으나 후에는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을사조약에 협조한 이하영을 을사오적에 넣기도 한다.
- 민영기 - 황국협회를 결성해 독립협회를 탄압했으며 을사조약 당시에는 반대했으나 끝내 변절했다.
- 이용구 - 일진회 회장. 다만 이용구는 한일합방 전까지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같은 1:1 대등합방으로 알고 있었고 죽기 직전에 자신이 속았다며 울부짖었지만 이미 역사에 오명을 남긴 것은 씻을 수 없게 되었다.
- 조선귀족 대다수 - 물론 직위를 거부, 반납하거나 후에 독립운동에 가담하면 매국노로 분류되지 않는데 대표적으로 김사준, 김가진이나 민태곤 등이 있다.[13] 정상참작할 사유가 있어도 매국노로 불리지 않는데 김정록과 같이 해외유학을 갔거나 민태윤[14]처럼 군대로 징집된 상황에서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강제로 습작한 사람들도 당연히 제외다.
2.10. 대한민국
- 종북주의자와 주체사상파 : 이유도 없이 종북몰이를 당하는 사람들이 아닌 진짜 종북주의자를 지칭하는 것이다. 이들은 대한민국의 국익에 손해를 끼치면서까지 북한을 이롭게 하려는 자들로 정의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북한의 참상에서 억지로 눈을 돌리면서 남북관계에 잘못된 환상을 갖고 굴종을 자처하는 소극적인 종북주의자들과 아예 주체사상과 백두혈통을 추종하고 적화통일을 바라는 적극적인 종북주의자로 나뉜다. 헌법에서 북한을 '한반도 이북을 점거한 괴뢰 집단'으로 규정함과 별개로 개인의 삶의 질의 측면에서 보더라도 대한민국 주변에 북한만한 파탄국가가 없다는 점에서 명백한 매국 행위다.[15] 북한/대남 도발 문서에 서술된 자생적 간첩들이 대표적인 예시이다.
- 신(新)친일반민족행위자 : 크게 일제강점기를 긍정하고 일본의 전쟁범죄를 부정하며 일본의 역사왜곡에 동조하는 부류와 개인의 사리사욕을 위해 일본에 국가 기밀을 팔아넘기는 부류로 나뉜다.
- 후자의 케이스에는 다음과 같은 사례들이 있었다.
- 고영철: 시노하라 사건의 주범으로 군사기밀 등 모두 27건의 군 관련 정보를 빼내 당시 주한일본대사관 무관이었던 후쿠야마 타츠유키 등 일본 무관 2명에게 전달했으며 1997년 만기 출소한 후 타쿠쇼쿠대학 전임연구원으로 근무 중이다. 2019년에도 한국에서 쿠데타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이 붕괴 직전이라는 등의 주장을 하였다.#
-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일본대사관 무관에게 군사기밀을 유출한 국군 정보사령부 간부가 징역형을 선고받았고 일본 무관들은 일본으로 추방되었다.#
- 산업 스파이: 주요 기업의 특허 기술을 빼내 해외 기업에 유출시켜 돈을 받는 행태가 많다. #1, #2 특히 반도체와 같은 기술 분야에서는 중국 쪽의 산업 스파이들이 많다. 저런 유명 기업들의 특허기술은 곧 국가핵심기술이라고 봐도 무방하며 반도체, 스마트폰 등 제품 뿐만 아니라 방위산업도 무시할 수 없다. 삼성테크윈이었다가 한화에어로스페이스로 변경된 기업 같은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다. 미국의 보잉 같은 기업들이 가진 국방기술들이 미국의 군사력을 책임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국가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국부의 손해를 가져오므로 매국 행위다.[18]
- 김상태: 2003~2010년 록히드 마틴에 12건의 2·3급 군사 기밀을 유출하고 25억 원의 수수료를 챙겼다. 국가안보를 책임지는 참모총장 출신이던 인간이 방산스파이 노릇을 하여 국익을 저해했다. 한국과 미국의 국익에 있어서 기밀 유출로 한국이 손해를 보고 미국이 이익을 얻는다면 그것은 미국에 한국의 국익을 판 것이므로 매국이다. 한미동맹과 별개로 유출된 군사기밀이 어떻게 쓰일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 정보사령부 군무원 군사기밀 유출 사건의 용의자 군무원: 북한에서 활동하는 대한민국의 블랙요원들의 신상과 군사기밀을 북한에 대거 팔아넘겼다.
[1] 거기다 마침 우거왕의 계략으로 항복한다는 말에 속아 철군하려던 양복이 순제와 다투다가 감금당한 때였기 때문에 한나라군의 지휘체계는 두동강이 난 상태였다.[2] 참고로 이들 중 장항은 왕의 아들, 그러니까 고조선의 왕자였다.[3] 절대 싸우다가 항복하거나 도망간 것이 아니다.[4] 심지어 6.25 전쟁 시기까지 이 지역에 재가승이라고 불리는 천민 계층들이 갖은 차별에 시달리며 살았고 탈북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현대 북한에서도 함경도 출신자들을 차별하는 분위기가 만연하다고 한다.[5] 다만 명성황후도 우범선과 이두황이 이끄는 조선군훈련대를 강제로 해산시키려고 하는 등 강압적인 행동을 해서 어느정도 자업자득인 측면이 있다.[6] 반면 우범선의 아들은 한국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7] 정미특사는 표면적으로 순종이 사면령을 내렸지만 일본이 배후에서 압박을 가해서 이루어졌을 것이다.[8] 이후 이두황의 무덤은 6.25 전쟁 때 독립운동가 출신이던 차일혁에게 파묘당하며 죽은 뒤에라도 매국행위에 대한 죗값을 제대로 치렀다.[9] 반면 그 아들인 구용서(초대 한국은행 총재)는 친일 행위에 전혀 가담하지 않았다.[10] 이들 중 악질이 아닌 자들이 없지만(다만 후술하듯 이근택과 을사조약 당시의 박제순만큼은 참작 여지가 있다) 이들 중에서도 우별나게 악질적인 매국노들은 볼드체로 표기한다.[11] 게다가 그 아들 역시 해방된 조국에서 대법원장을 역임하며 사법살인에 가담했다.[12] 공식 용어는 아니다.[13] 전자의 둘은 독립운동에 가담한 사실이 들통나서 작위를 내던지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합류했고 후자는 독립운동가임이 밝혀지면서 체포된 후에 혹독한 고문을 당해 사망했다. 물론 조선귀족 출신 독립운동가들 입장에서는 작위를 가지고 있는 게 침투 및 대일 공작활동 등에 용이하기 때문에 국정원 블랙요원 마냥 내던지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14] 선술한 민태곤의 남동생으로, 형이 독립운동가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체포된 후 본인은 강제로 일본군에 징집되어 태평양 전쟁의 전선으로 보내지고 습작을 강요당했다. 때문에 이들 형제는 각종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서 제외되었을 뿐만 아니라 민태곤은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15] 하지만 막상 지금 당장 북한에 가서 살라고 하면 그건 싫다고 말하는 모순적인 태도를 보인다. 정말로 북한에 가겠다고 하는 열성 종북주의자도 있지만 대다수는 북한 가라고 하면 싫다고 한다. 이들에게 북한은 북한의 실상과는 무관하게 현대 한국에 없는 이웃의 따뜻함과 인간성이 살아있는 이상적인 유토피아이고 자신들도 북한이 실제로는 유토피아가 아님을 알면서도 한국이 너무 싫어서 애써 현실을 보지 않는 것이다. 이 글 참조.[16] 일제강점기 근대화 때문에 "지금"도 경제발전의 과실을 누린다는 주장이다. 정작 일제가 남한보다 더 공업화에 열중한 북한은 현재 세계 최하위권 최빈국이다.(...)[17] 위안부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거나 존재는 인정하지만 강제 동원을 부정하는 경우. 일본 정부는 공식적으로 후자의 입장이다.[18] 일본에서도 소설가 마야마 히토시가 2016년에 쓴 미스터리 소설 <매국>에서 '매국'으로 언급한 행위가 바로 일본의 우주 개발 기술을 미국에 팔아넘기는 행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