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8 23:35:57

아르겐토라툼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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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만티아 전쟁 파일:external/b66a81d7e3c5440cfef450e3309a2b4b425f1dcd788e510bd84b747e2e2573be.png 아레바키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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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아르겐토라툼 전투.jpg

1. 개요2. 배경3. 양측의 전력4. 전투 경과5. 결과

1. 개요




서기 357년 8월 24일, 콘스탄티누스 왕조의 서방 카이사르(부제)였던 율리아누스가 이끄는 로마군과 크노도마르가 이끄는 서게르만계 알레만니 부족 연합군이 아르겐토라툼(오늘날의 스트라스부르)에서 맞붙은 전투이다. 율리아누스는 이 전투에서 기적적인 승리를 거두면서 갈리아를 구원하고, 장차 로마 제국의 황제로 부상할 기반을 닦았다.

2. 배경

서기 351년 9월 28일, 동방의 로마 황제였던 콘스탄티우스 2세는 서방의 로마 황제이자 동생인 콘스탄스를 시해한 찬탈자 마그넨티우스를 상대로 무르사 전투에서 혈투를 벌인 끝에 승리를 거두었다. 그 후 353년 7월 갈리아의 몬스 셀레우코스에서 최후의 일전을 벌인 끝에 마그넨티우스를 잡아 죽였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라인 전선이 거진반 붕괴되었고, 프랑크족, 색슨족(작센족), 알레만니족 등 여러 게르만족이 이 틈을 타 갈리아를 대대적으로 침략했다. 라인 강 연안의 많은 로마 요새들이 공략되었고, 무려 20,000명이 넘는 민간인들이 납치되어 알레만니족의 영역으로 끌려가 강제 노역에 처해졌다. 또한 소규모의 게르만 기병들이 갈리아 각지를 돌면서 도로를 지나가던 상인들을 습격하거나 마을을 약탈했다.

콘스탄티우스 2세는 갈리아에 군대를 보내려고 했지만, 마침 사산 왕조가 휴전 조약을 깨고 쳐들어오는 바람에 주력군을 그쪽으로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는 13,000명 가량의 병력을 클라우디우스 실바누스에게 맡겨 갈리아의 혼란을 수습하도록 했다. 실바누스는 알레만니족을 라에티아에서 몰아내고 혼란을 어느정도 수습했지만, 355년 반역을 꾸몄다는 모함을 받고 죽을 위기에 몰리자 콜로니아에서 정말로 반란을 일으켰다가 피살되었다. 그 후 황제는 고민 끝에 율리아누스를 카이사르(부황제)로 세워서 갈리아로 보내기로 했다. 율리아누스는 군대에 복무한 경험이 없는 23세의 젊은이로, 아테네에서 철학을 공부한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337년 9월 콘스탄티우스 2세 본인이 황족들을 대거 살해했고, 354년 동방의 부제로 세웠던 갈루스를 처형했기 때문에, 그에게 남은 카드는 율리아누스밖에 없었다. 일단 자신의 여동생이었던 헬레나와 율리아누스를 결혼시키고 갈리아의 군사 지휘권을 위임했지만, 율리아누스가 자신의 아버지와 이복 형을 죽여버린 것에 원한을 품고 반기를 들 것을 우려해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철저히 감시하고, 너무 많은 힘을 가지지 못하도록 견제했다. 이런 상황이니 갈리아의 장수들이 율리아누스에게 전적으로 협력할 리가 없었다. 게다가 그에게 주어진 병력은 게르만족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고, 갈리아 전역에서 게르만 약탈자들이 돌아다니며 민간인들을 살해했다. 많은 이들은 콘스탄티우스 2세가 잠재적인 경쟁자인 율리아누스를 제거하려고 불가능한 임무를 부여했다고 여겼다.

율리아누스는 200명의 스콜라리, 360명의 기마 궁수대를 이끌고 밀라노에서 갈리아로 향했다. 그는 355~356년 겨울을 호위부대와 함께 루그두눔(리옹)에서 그리 멀지 않은 율리아 비에넨시스에서 보냈다. 이때 고대 문헌을 뒤져가며 옛 시대의 위대한 장군들의 전략, 전술 및 행동을 연구했다. 특히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율리우스 카이사르의 활약상을 집중 분석했다고 전해진다. 율리아누스의 첫 번째 임무는 콘스탄티우스 2세 황제가 라이티아로 진격하여 알레만니족과 싸우는 동안 마기스테르 페트리움 직책을 맡은 마르켈리누스와 함께 라인 강 건너편으로 후퇴하는 게르만족의 후퇴로를 봉쇄하는 것이었다. 그는 율리아 비에넨시스에서 아우구스토두눔을 거쳐 두로코르투룸으로 진군하면서 게르만 약탈대를 회피하고, 마르켈리누스 휘하의 갈리아 주둔 로마군과 합류했다.

이후 라인 강 방향으로 행군했으나, 안개가 자욱하던 날 최후방의 2개 군단이 매복한 알레만니족에게 급습당하여 괴멸당할 위기에 몰렸다. 이에 정예부대를 즉각 투입해 이들을 구출했다. 전열을 재정비한 뒤, 율리아누스는 브로코마구스로 진군한 뒤 도시를 포위하고 있었던 알레만니군을 격파했다.(브로코마구스 전투) 당시 콘스탄티우스 2세의 군대와 교전 중이던 알레만니족은 율리아누스의 움직임에 위협을 느끼고 평화를 간청했다. 이렇게 알레만니족이 전투를 중단하자, 율리아누스는 쾰른으로 가서 게르만족에게 파괴된 그곳을 재건하고, 프랑크족을 압박하여 평화협약을 맺도록 했다. 이후 갈리아 내부로 들어가서 게르만 약탈자들로부터 민간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군대 대부분을 많은 요새에 분산시킨 뒤 아겐디쿰에서 겨울을 보냈다.

알레만니족은 율리아누스의 호위대가 줄어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즉시 아겐디쿰을 포위했다.(아겐디쿰 포위전) 전력상 압도적으로 열세해서 로마군 병사들이 동요하자, 율리아누스는 몇 명의 기병만을 이끌고 출격하여 알레만니군과 한바탕 일전을 벌인 뒤 돌아와서 병사들의 신망을 샀다. 그 후 1개월 동안 버티면서 마르켈리누스에게 구원을 요청했지만, 마르켈리누스는 별다른 응답을 하지 않았다. 알레만니족이 결국 공략을 포기하고 아겐디쿰에서 철수한 뒤, 율리아누스는 콘스탄티우스 2세에게 이 사실을 알리며 마르켈리누스를 해임하라고 요청했다. 결국 마르켈리누스는 직위에서 해임되었고, 율리아누스와 더 잘맞는 장교였던 세베루스가 그를 대신하여 마기스테르 페트리움에 선임되었다. 또한 율리아누스는 병력을 대거 징집해 총 13,000명의 병력을 확보했다.

357년, 콘스탄티우스 2세는 알레만니족을 협공하는 계획을 수립했다. 이에 따르면 율리아누스가 랭스에서 동쪽으로 진격하는 동안, 콘스탄티우스 2세 본인은 동방으로 돌아가고, 바르바티오가 이끄는 25,000명이 라에티아에 있는 아우구스타 라우라코룸으로 진군하게 되어 있었다. 그렇게 양군이 합류한 뒤, 퇴각로가 끊긴 알레만니군을 협공하여 최대한의 타격을 입힐 것이었다. 이에 따라 바르바티오는 밀라노에서 북쪽으로 진군했고, 율리아누스는 두로코르투룸으로 이동한 뒤 라인 강으로 향했다. 그런데 라에티 부족이 도중에 두 군대의 사이를 뚫고 들어가서 루군디눔을 공격하여 지역 전체를 약탈했다.(루군디눔 전투) 율리아누스는 3개의 경기병 분대를 분리시켜서 그쪽으로 파견했고, 라에티 부족은 큰 타격을 입은채 라인 강쪽으로 도주했다. 이때 그들은 바르바티오의 로마군 근처를 지나갔으나, 바르바티오는 이들이 도주하는 걸 저지하지 않고 강을 그대로 건너도록 내버려뒀다.

율리아누스는 라에티족을 급히 추격했고, 아르겐토라툼 근교에 도착했다. 당시 라에티족은 라인 강에 흩어져 있는 일련의 작은 섬들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율리아누스는 바르바티오에게 다리를 건설할 수 있도록 7척의 보트를 보내달라고 요청했으나, 바르바티오는 오히려 보트들을 불태워버렸다. 이에 율리아누스는 정예 보병대인 코누티 세니오리 부대에게 방패를 부유물로 사용해 수위가 낮은 강을 건너도록 명령했다. 그들은 가장 가까운 섬에 도착한 뒤 거기에 숨어있던 라에티 부족민들을 모조리 학살했고, 이걸 목격한 다른 부족민들은 황급히 강을 건너 달아났다. 코누티 세니오리 부대는 라에티족이 가지고 가던 노예 및 전리품을 모두 챙긴 뒤 귀환했다.

율리아누스는 이제 알레만니족에 의해 파괴된 트레스 타베나에 요새를 재건하는 데 관심을 돌렸다. 그는 물자를 최대한 끌어모아서 장차 있을 지도 모를 수성전에 대비하고자 했으나, 바르바티오가 농작물을 불태워버리는 조치를 취하는 바람에 곤경을 겪었다. 바르바티오가 계속 훼방을 놓는 이유에 대해, 암미아누스 마르켈리누스
"그가 멍청이이거나 율리아누스가 실패하길 바라는 콘스탄티우스 2세의 밀명에 따라 훼방을 놓았을 것이다."
라고 추측했다. 얼마 후, 바르바티오 휘하의 병력 25,000명은 아르겐토라툼(오늘날의 스트라스부르) 부근으로 진군했다가, 선봉대가 알레만니족의 급습으로 패퇴했다. 그러자 바르바티오는 나머지 병력을 이끌고 이탈리아로 도주했고, 이 과정에서 수많은 보급품을 내던져버렸다.

이로 인해 갈리아에는 오직 율리아누스의 병력 13,000명만 남았다. 바르바티오의 군대에 복무했다가 투항한 게르만족 병사로부터 이 사실을 전해들은 알레만니 부족 연합군의 지휘관 크노도마르는 지금이야말로 갈리아를 정복할 호기라고 보고, 모든 알레만니 부족을 소집해 장차 율리아누스를 치려고 했다. 이제 율리아누스에게 남은 선택은 단 2가지, 트레스 타베나에 요새에서 농성하며 기약없는 원군을 기다리거나 아르겐토라툼으로 진군해 알레만니군과 일전을 벌이는 것이었다. 율리아누스는 이번에 결정적인 승리를 거둬 게르만족의 갈리아 침략을 근절하기로 결심하고, 357년 8월 24일 아르겐토라툼으로 진격했다.

3. 양측의 전력

  • 율리아누스의 로마군: 13,000~15,000명. 그 중 3,000명은 기병대.
  • 크노도마르의 알레만니 부족 연합군: 25,000~35,000명.

4. 전투 경과

율리아누스는 아르겐토라툼에 도착한 뒤 병사들에게 숙영지를 세우고 휴식을 취하며 다음날 전투를 준비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병사들은 창과 방패를 함께 치면서 모두가 하나로 단결한 지금이 전투를 벌일 때니, 지체하지 말고 싸우자고 요구했다. 율리아누스는 그들의 요구에 따라 도착하자마자 회전을 벌이기로 했다. 한편 크노도마르는 로마군이 예상외로 회전을 벌이러 나오자 즉시 전투 대열을 갖추도록 했다. 알레마니군의 보병 대부분은 중앙 대열에 배치되었는데, 여기에 속한 각 부대는 개별 부족장의 지휘를 받았다. 알레만니군의 우익 부대는 크노드마르의 조카 세라피오가 지휘했는데, 숲에 숨어 있다가 로마군이 가까이 오면 급습할 예정이었다. 한편, 크노도마르 본인은 4,000명의 좌익 기병대를 통솔했으며, 경기병대를 기병 대열 사이에 숨겨뒀다.

율리아누스는 수천 명의 보병대를 중앙에 집중 배치시켰다. 이들은 로마 정예병과 제국에 충성을 바치는 게르만족으로 구성된 여러 분대로 구성되었는데, 한 분대당 500명이었다고 전해진다. 세베루스 장군은 좌익 부대를 지휘했으며, 율리아누스 본인은 후방에 배치된 수백 명의 스콜라리 경기병대와 '프리마니'로 알려진 정예 레기온 부대를 통솔했다.그리고 우익에는 충격 기병과 궁기병으로 구성된 3,000명 가량의 강력한 기병대가 배치되었다. 율리아누스는 기병대가 알레만니군의 좌익을 돌파한 뒤 측면이나 후방을 급습하기를 기대했고, 보병대에겐 그때까지 알레만니군의 공세를 버티는 역할을 맡겼다.

전투가 임박할 무렵, 알레만니군에서 갑자기 아우성이 터져나왔다. 로마군은 저들이 자기들에게 야유를 보내는 거라고 여겼지만, 실제로는 부족장들이 크노도마르더러
"겁쟁이처럼 말에 타지 말고 우리처럼 걸어서 싸워라"
라고 요구한 것이었다. 크노도마르는 이들의 거센 요구를 뿌리치지 못하고 말에서 내려야 했다. 그러나 이 결정으로 인해, 그는 전황에 신속하게 대처할 수 없게 되었다. 반면, 율리아누스는 후방에서 상황을 살펴보면서 전황의 흐름에 맞춰 대응할 수 있었다.

이윽고 전투를 알리는 나팔 소리와 함께 양군이 서로를 향해 진군했다. 알레만니족이 투창을 던지자, 로마 보병대는 방패로 막아낸 뒤 계속 전진했다. 이후 그들은 방패벽을 세워 적의 돌진을 받아낸 뒤, 역공을 가했다. 한편, 세베루스의 좌익 부대는 세라피오의 알레만니군이 매복하고 있는 걸 모른 채 숲으로 접근했다. 그런데 세라피오의 전사들 중 일부가 로마군이 다가오자 너무 흥분한 나머지 뛰쳐나왔다. 세베루스는 매복이 있었다는 걸 조기에 확인하자마자 방어 대형을 결성했고, 세라피오의 알레만니 전사들은 일제히 돌격했다. 알레만니군은 세베루스의 좌익쪽에 더 많은 병력을 보내 강력한 압박을 가했다. 율리아누스는 세베루스가 곤경에 처한 걸 확인하자 스콜라리 경기병대와 함께 그쪽으로 말을 몰았다. 그러면서 중앙에서 격투를 벌이고 있는 보병대에게 좀더 힘을 내라고 격려하는 연설을 하여 장병들의 사기를 높였다.

스콜라리 경기병대는 현장에 도착한 직후 세라피오의 알레만니군 측면을 공격해 타격을 입혔고, 율라아누스는 대열 뒤로 돌아가서 병사들에게 대열을 좀더 늘려서 포위를 방지하게 한 뒤, 후위대를 통솔하여 너무 앞으로 튀어나온 알레만니군 부대를 격퇴했다. 이리하여 세베루스가 이끄는 로마군 좌익부대는 초반의 고전을 극복하고 알레만니군을 밀어붙일 수 있었다. 그런데 얼마 후, 우익쪽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3,000명의 로마 기병대가 일제히 돌격하여 알레만니 기병대와 격돌하고 있을 때, 몰래 숨어있었던 알레만니군의 경보병들이 로마 기병의 말들을 창으로 찔러 쓰러뜨린 뒤 낙마한 기수들을 쳐 죽인 것이다. 이 예상치 못한 함정으로 큰 타격을 입은데다가 부대 지휘관마저 낙마하자, 로마 기병대는 공포에 빠져 도주했다.

대혼란에 빠진 기병대는 도주하면서 전장 중앙에서 격전 중이던 아군 보병대의 우측면과 충돌할 뻔 했지만, 팔라티나 보조 연대인 코르누티와 브라키아티 부대가 앞을 가로막고 긴 창으로 겨누어 그들을 밀어냈다. 한편 율리아누스는 기병대가 도주하는 걸 보고 즉시 지휘관용 깃대를 손에 쥔채 말을 쏜살같이 몰아서 기병대 앞을 가로막았다. 기병들이 지휘관용 깃발을 보고 멈춰서자, 그는 다음과 같이 연설했다.
"어디로 도망가느냐, 나의 가장 용감한 부하들아? 도망은 결코 안전하지 않고 쓸데없는 노력의 어리석음을 보여준다는 걸 모르느냐? 동료들이 조국을 위해 싸우고 있거늘 그들을 버리고 싶으냐? 그들에게 돌아가 다가올 영광을 함께 나누어라!"
기병들은 이 말에 부끄러움을 느끼며 전열을 재정비했고, 알레만니 기병대의 돌격을 성공적으로 저지했다.[1] 한편, 좌익 기병대의 성공에 기세등등해진 알레만니 보병대는 함성을 지르며 로마군 대열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들은 로마군의 방어벽을 연신 뚫으려 들었지만, 로마군은 악착같이 버티면서 창을 내질러서 상당한 피해를 입혔다. 그러자 알레만니 추장들과 그들 휘하 최고의 전사들이 후방에 집결한 뒤, 다소 느슨해진 한 대열로 돌진해 기어이 구멍을 뚫었다. 이로 인해 로마군 전선이 두 동강났지만, 로마군 보병대는 여전히 버텼다.

율리아누스는 전선이 위태로워진 걸 확인하고 즉시 후방에 배치되어 있는 정예 레기온 부대를 투입했다. 그들은 구멍을 뚫고 돌진하는 알레만니군 앞에 새로운 방패벽을 세워서 가차없이 밀어냈고, 급기야 여러 족장들을 살해한 후 대열을 재정비하는 데 성공했다. 알레만니 보병대는 최후의 시도마저 실패하자 사기가 완전히 꺾여 점점 밀렸다. 설상가상으로, 세라피오의 우익 부대가 세베루스의 로마군에게 괴멸되어 버렸다. 이제 세베루스의 부대가 측면으로 이동하자, 알레만니군은 공포에 질려 정신없이 도주하기 시작했다. 율리아누스는 전군에 추격령을 내렸고, 로마 장병들은 승리의 함성을 외치며 알레만니군을 추격했다. 수많은 알레만니인들이 라인 강을 건너려다가 화살과 투창에 맞아 죽거나 익사했다.

한편, 크노도마르는 부하들과 함께 아르겐토라툼에서 40km 떨어진 콘코르디아 인근의 강둑에 정박한 배로 피신하려고 했다. 그러나 라인 강가에서 로마 기병대에게 따라잡히자 항복했고, 밀라노에 있는 콘스탄티우스 2세의 궁정으로 보내졌다. 크노도마르는 얼마 지나지 않아 로마의 야만인 포로 수용소에서 질병으로 비참하게 사망했다.

5. 결과

암미아누스 마르켈리누스에 따르면, 알레만니족은 이 전투에서 6,000명이 전사했으며,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자들이 라인 강을 건너다가 죽었다고 했다. 반면 로마군은 4명의 연대 지휘관을 포함해 243명이 전사했다고 했다. 이 믿을 수 없는 대승리에 환호한 장병들은 율리아누스를 아우구스투스(정황제)로 추대했지만, 그는 콘스탄티우스 2세만이 그 칭호를 합법적으로 누릴 수 있다며 단호히 거부했다. 그 후 율리아누스는 원정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갈리아에 잔류한 게르만족들을 모조리 쓸어버리고, 라인 강 방어선을 재구축했으며, 적극적인 감세 정책과 농경 활성화 정책을 추진해 갈리아를 부흥시켰다. 이러한 율리아누스의 군사적, 정치적 성공은 장차 로마의 단독 황제가 될 기반이 되었다.


[1] 조시무스에 따르면, 한 기병 연대가 전투에 복귀하기를 거부했다가 전투가 끝난 뒤 율리아누스로부터 여장을 하라고 강요받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