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8-08 19:33:04

바타비아 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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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만티아 전쟁 파일:external/b66a81d7e3c5440cfef450e3309a2b4b425f1dcd788e510bd84b747e2e2573be.png 아레바키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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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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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방전
145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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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타비아 반란
영어: Batavian Revolt
시기 69년 ~ 70년
장소 게르마니아 인페리오르 속주 바타비아 지역
교전국 파일:attachment/mon_256.png 로마 제국바타비족 반란군
지휘관 파일:attachment/mon_256.png 마르쿠스 호르도오니우스 플라쿠스†
파일:attachment/mon_256.png 클라우디우스 라베오
파일:attachment/mon_256.png 무니우스 루페르쿠스†
파일:attachment/mon_256.png 가이우스 딜리우스 보쿨라†
파일:attachment/mon_256.png 퀸투스 페틸리우스 케리알리스 카이시우스 루푸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키빌리스
브리노
율리우스 투토르
율리우스 클라시쿠스
율리우스 사비누스
벨레다
병력 초기: 4개 군단의 잔여 주둔군 10,000~15,000명
후기:로마 8개 군단 40,000명
1개 바타비아 속주 부대와 8개의 코호트. 귀순한 로마 군단 2개, 다른 부족들의 지원병 수천 명
피해 10,000~20 000명상대적으로 적은 손실. 남은 바타비족 부대는 로마군에 그대로 종사함.
결과 로마 제국의 승리.

1. 개요2. 배경3. 경과
3.1. 반란의 확대3.2. 베테라(크산텐) 공방전3.3. 로마군의 항복3.4. 로마 제국의 반격
4. 미디어에서

[clearfix]

1. 개요

서기 69 ~ 70년, 로마 제국이 내란(네 황제의 해)에 휩싸인 틈을 타 게르만계 바타비족이 반란을 일으켰다가 토벌된 사건이다.

2. 배경

서기 68년, 갈리아 루그두넨시스 속주의 총독이었던 가이우스 율리우스 빈덱스네로 황제의 폭정에 대항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반란을 일으켰다. 게르마니아 수페리오르 속주의 군단장이었던 루키우스 베르기니우스 루푸스가 즉시 진압에 나서 토벌했으나, 그가 이끄는 라인(레누스) 강 전선의 군단병들은 더 이상 네로를 위해 싸우길 거부했다. 빈데스가 황제로 추대했던 가까운 히스파니아 총독 갈바는 이 틈을 타 각지의 총독들에게 사절을 보내 충성서약을 받아내고, 루시타니아 총독 마르쿠스 살비우스 오토의 지원에 힘입어 수도 로마로 진격했다. 원로원은 갈바를 황제로 승인하고 네로를 '국가의 적'으로 규정했으며, 프라이토리아니(근위대) 마저 가이우스 님피디우스 사비누스의 주동하에 갈바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결국 네로는 원로원이 보낸 병사들에게 체포되기 전에 자결했다. 이로써 로마 제정의 첫 번째 왕조였던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가 단절되었다.

갈바는 왕년에 탄탄한 경력을 쌓았고 총독으로서 선정을 베풀어왔기 때문에, 다들 그가 좋은 황제가 되리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그는 제위에 오른 뒤 여러 실책을 저질러 인망을 빨리 잃었다. 급기야 루키우스 베르기니우스 루푸스를 정적으로 간주하여 해임하고 마르쿠스 호르도오니우스 플라쿠스를 새 군단장에 앉혔다. 루푸스는 라인 강 전선 군단병들의 신망을 한몸에 받고 있었기에 이 조치는 군단병들의 강한 반발을 초래했다. 또한 갈바는 황제를 경비하는 임무를 수행하던 바타비족 기병대를 해산시켜 고향에 돌려보내, 바타비족에게도 좋지 않은 인상을 심어줬다.

서기 69년 1월, 게르마니아 인페리오르 속주의 주둔군 병사들이 갈바를 황제로 인정하길 거부하고 지휘관인 비텔리우스를 새 황제로 옹립했다. 비텔리우스는 황제가 되기 위해 병사들을 이탈리아 반도로 대거 끌고 갔고, 기지에 남은 인원은 전체 병력의 1/4인 10,000명에서 15,000명 뿐이었다. 한편 비텔리우스는 바타비족 보병 8개 부대도 차출해 로마 원정에 데려갔다. 이들은 포 강 평원에서, 갈바를 죽이고 제위에 오른 오토의 군대에 맞서 용감하게 싸웠다.(제1차 베드리아쿰 전투) 이후 오토가 자살하고 비텔리우스가 제위에 오른 뒤, 그들은 고향에 돌아가라는 명령을 받들어 북상해 모곤티아쿰(오늘날 마인츠)에 이르렀다.

그런데 얼마 후 동방의 유다이아 속주에서 제1차 유대-로마 전쟁을 치르고 있었던 베스파시아누스가 황제를 자칭했다. 일찍이 오토 황제를 위해 싸우다가 비텔리우스에게 수모를 받았던 도나우(다누비우스) 강 전선의 로마군이 이에 적극 호응해 이탈리아로 쳐들어갔다. 비텔리우스는 급히 바타비족 8개 부대에게 이탈리아로 돌아오라는 전갈을 보냈다. 하지만 도나우 강 전선군과 유대 반란 진압에 투입된 로마군까지 상대하려면 훨씬 많은 병력이 필요했기에, 자신 대신 라인 강 전선을 지키고 있었던 마르쿠스 호르데오니우스 플라쿠스에게 추가 병력을 보내라고 명령했다.

플라쿠스는 바타비족이 불온한 움직임을 보이는 걸 감지하고, 로마군을 이탈리아로 보내는 걸 거부했다. 하지만 비텔리우스가 계속 새 병력을 보내라고 독촉하자, 바타비아 속주민들로 구성된 병력을 징발하여 이탈리아로 보내기로 했다. 그러나 이 일은 바타비족의 반발을 샀다. 타키투스에 따르면, 군대에 적합한 연령대의 장정 뿐만 아니라 늙은이와 젊은이까지 끌려갔는데, 늙은이는 뇌물을 헌납하도록 유도하고자 끌고 갔고, 젊고 잘생긴 젊은이들은 성적인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 끌려갔다고 한다. 이로 인해 민심이 악화되자, 야심가들이 이 틈을 타 반란을 도모했다. 그 중 가장 주도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 바로 가이우스 율리우스 키빌리스였다.

키빌리스는 한때 바타비족을 통치했던 가문의 일원으로, 선대에 로마 시민권을 받아 '가이우스 율리우스'라는 새 이름을 물려받았다. 그는 클라우디우스 1세가 브리타니아를 침공하던 때에 바타비족 보조군 부대에 가담했으며, 네 황제의 해 시기에도 여전히 부대를 지휘하고 있었다. 타키투스는 그를
'야만인 치고는 비정상적으로 총명하다.'
라고 기술했는데, 이는 로마인 역사가들이 그들을 놀라게 한 비로마인들을 묘사할 때 흔히 쓰던 표현이었다.

키빌리스와 동생인 클라우디우스 파울루스는 68년에 반역죄로 체포되었다. 타키투스에 따르면, 그 혐의는 조작되었다고 한다. 파울루스는 처형되었고, 키빌리스는 갈바가 황제가 되었을 때 사면되었다. 그런데 68년 마지막 주에 게르마니아 인페리오르 속주로 돌아왔다가 다시 체포되어 새 총독인 비텔리우스에게 끌려갔다. 이번에는 그가 음모를 꾸몄다는 사실이 명백했지만, 비텔리우스는 바타비족에게 호의를 베풀고자 키빌리스를 용서했다고 한다. 하지만 두 번이나 반역 혐의로 체포되었으니 앞날이 불안했던 그는 반란을 꾀하기로 마음먹었다. 타키투스에 따르면, 키빌리스는 귀족들과 가장 진취적인 평민들을 성스로운 숲으로 초대해 연회를 베푼 뒤, 그들을 꼬드겨 대 로마 반란을 일으킬 마음이 들게 만들었다. 특히 로마군의 부패한 징병 관행을 강조했고, 연회 참석자들은 이 말에 적극 호응했다고 한다.

키빌리스는 이 시기에 활동한 브룩테리아의 여성 예언자인 벨레다와 연계하여, 그녀가 바타비족의 승리를 예언하도록 해 민심을 선동했다. 그후 바타비족 인근에 살던 카나네파테스족의 브리노를 부추켜 반란을 일으키도록 했다. 브리노의 아버지는 로마 선단을 상대로 약탈을 일삼아 막대한 부를 챙겼던 인물로, 반란군은 이 이력을 근거로 삼아 브리노를 지도자로 내세웠다. 이리하여 바타비아 반란이 발발했다.

3. 경과

3.1. 반란의 확대

브리노는 키빌리스의 부추김과 동포들의 호응으로 반란을 일으킨 뒤 라인 강 너머의 부족인 프리시족(프리슬란트인)과 연합해 근처의 숙영지에 주둔한 2개의 로마 보조군 부대를 급습하여 모조리 격파하고 진영을 불태우며 약탈했다. 또한 시골에 흩어져 있었던 로마의 상인들을 습격해 모조리 살해하고 짐을 약탈했다. 반란군들은 뒤이어 국경 요새도 파괴하려고 했지만, 그곳의 지휘관들이 방어할 수 없다는 걸 깨닫고 불을 지른 후 달아나는 바람에 별다른 걸 얻지 못했다. 타키투스에 따르면, 아퀼리우스라는 선임 백인대장이 그들과 맞서기 위해 병력을 집결시켰으나, 서류상에 적힌 것과는 달리 실제 병력이 매우 부족했다. 이는 비텔리우스가 대부분의 부대를 이끌고 이탈리아에 가버렸기 때문이었다.

반란이 일어났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플라쿠스는 몹시 당황해 부하들을 모아놓고 어찌할 지 논의했다. 이때 회의에 참석한 키빌리스는 지휘관들이 요새를 포기한 것을 비판하면서, 자신이 휘하 병력을 이끌고 카나네파테스족을 진압하러 가겠다고 제안했다. 플라쿠스는 이를 받아들이기로 하고, 로마군 지휘관들을 각자의 위치로 돌아가게 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키빌리스가 반란을 주동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키빌리스는 카나네파테스족, 프리시족, 바타비족을 각각 다른 공격 부대로 편입시켰고, 플라쿠스는 이들을 진압하기 위해 함대를 파견했다. 양군은 오늘날의 아른험 근방에서 맞붙었는데, 로마군에 함께 하고 있었던 퉁그리족 부대가 키빌리스에게 넘어갔고, 예상치 못한 배신에 혼란에 빠진 로마군은 키빌리스의 맹공격으로 섬멸되었다. 이리하여 키빌리스는 로마군의 우수한 무기와 배를 얻었고, 바타비아 전역에서 '해방자'로 칭송받게 되었다.

로마인들은 이제 마스 강, 발 강, 라인 강이 둘러싸고 있는 저지대에서 추방당했다. 플라쿠스는 이에 대응하기 위해 제5 알라우다에 군단과 제15 프리미게니아 군단, 3개의 보조병 부대, 그리고 바타비아 함대를 파견했다. 육군은 무니우스 루페르쿠스가 지휘했고, 바타비아 함대는 키빌리스의 정적이었던 클라우디우스 라베오가 지휘했다. 69년 8월 말, 군단은 바타비아 섬을 침공해 울피아 노비오마구스 바타보룸(네이메헌)의 북쪽에서 키빌리스의 바타비군과 맞붙었다. 그러나 이미 전의가 꺾인 로마군은 패퇴했고, 클라우디우스 라베오는 체포되었다. 키빌리스는 라베오를 프리시인들 사이에 있는 망명지로 압송했다. 키빌리스는 자신이 베스파시아누스의 부탁을 받고 비텔리우스의 휘하 부대를 섬멸했으며, 베스파시아누스의 편지를 받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베스파시아누스가 바티비족의 독립을 인정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3.2. 베테라(크산텐) 공방전

69년 9월 말, 키빌리스는 제5 알라우다에 군단과 제15 프리미게니아 군단의 잔여병들이 주둔한 베테라(크산텐)를 포위했다. 하지만 로마군의 숙영지를 쳐부수기엔 방어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 무리라고 보고, 포위망을 굳혀서 굶겨죽이기로 했다. 플라쿠스는 베테라가 포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긴급 회의를 소집해 트리부누스 밀리툼 및 백인대장들과 논의했다. 진영 밖으로 출격하여 반란군을 물리치자는 주장이 제기되었지만, 진영 안의 보조병들이 바깥의 반란군에 호응할 걸 참모들이 우려해 출진하지 않기로 했다.

이후 플라쿠스는 보나(본)에 주둔한 제1 군단을 지휘하는 헤렌니우스 갈루스에게 편지를 보내 바타비족 반란군을 협공하자고 제안하려 했지만, 그러다가 자신과 갈루스 모두 패배하면 일이 돌이킬 수 없을 거라 여기고 중단했다. 그는 비텔리우스와 베스파시아누스간의 내전이 끝날 때까지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이로 인해 무니우스 루페르쿠스가 지휘하는 베테라(크산텐) 수비대 5,000명은 당분간 지원군을 받지 못한 채 반란군을 상대로 농성해야 했다.

키빌리스는 공성전을 벌이는 동안 게르마니아 인페리오르 속주와 갈리아 벨키카 속주의 마을을 약탈하기 위해 부대를 파견했다. 여기에 라인 강 동쪽 기슭에서 온 게르만군이 합세하면서, 로마 제국의 피해는 가중되었다. 이에 플라쿠스는 갈리아, 히스파니아, 브리타니아로 전령을 보내 지원군을 요청했고, 제22 프리미게니아 군단이 이에 호응해 가이우스 딜리우스 보쿨라의 지휘하에 노바에시움(노이스)으로 전속력으로 질주하여 제16 갈리카 군단과 합세한 뒤 겔두바(크레펠트)로 이동하여 장차 베테라(크산텐)에 포위된 아군을 구하려고 했다. 그러나 11월 중순, 이탈리아에서 비텔리우스 휘하의 라인 강 전선군이 도나우 강 전선군에게 참패했다는(제2차 베드리아쿰 전투) 비보가 전해지면서 모든 군사 활동이 중단되었다. 플라쿠스는 장교들과 논의한 끝에 비텔리우스는 가망이 없으니 베스파시아누스에게 충성을 맹세하기로 했다. 병사들은 장교들의 압력으로 이를 받아들였지만, 내심 전우들을 해친 베스파시아누스에게 충성을 바치기 싫어했다.

베스파시아누스를 따르기로 한 이상, 그를 위해 비텔리우스파 로마군을 괴롭혔다고 주장하는 키빌리스와 더 이상 싸울 수 없었다. 플라쿠스와 보쿨라는 베스파시아누스로부터 별도의 명령이 내려질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하지만 키빌리스는 일이 그렇게 마무리되길 원하지 않았다. 사실 베스파시아누스에게 받았다는 편지는 거짓말이었고, 로마군 기지를 포위해 몇 달간 공성을 퍼부었으니 조만간 로마군의 보복이 있을 것은 불보듯 뻔했다. 키빌리스는 그 전에 겔두바(크레펠트)에 주둔한 로마군을 쳐부수기로 하고, 69년 12월 1일 밤에 달이 짙은 구름에 가려져 시야가 불량한 틈을 타 바타비아 기병 8개 코호트를 급파해 보쿨라의 로마군을 기습 공격했다. 그러나 로마군은 악전고투 끝에 바타비아 기병대를 대파했다. 결국 키빌리스는 베테라(크산텐) 공성전을 포기하고 철수했으며, 보쿨라는 즉시 베테라에 이동하여 아군과 합세했다.

3.3. 로마군의 항복

2개 로마군이 합세한 뒤, 보쿨라와 루페르쿠스는 숙영지의 장벽을 강화하고 도랑을 더 깊게 팠으며 부상자들을 이송시켰다. 두 사람은 키빌리스를 추격하려고 했으나, 라인 강 동쪽 기슭에서 온 게르만 부족인 유시페테족과 샤트족이 모군티아쿰(마인츠)를 포위 공격하려 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계획을 취소하고, 베테라에 일부 병력을 남긴 뒤 모군티아쿰을 구하러 떠났다. 키빌리스는 즉시 베테라를 다시 포위하고, 노바에시움(노이스) 근방에서 이동중인 로마군을 기병대로 급습하게 했으나 또다시 패배했다.

그 후 노바에시움에 도착한 로마군은 플라쿠스가 베스파시아누스의 황제 즉위를 축하하기 위해 지급한 돈을 수령하고 잔치를 벌였다. 그러나 그들은 곧 자신들이 최전방에서 키빌리스에게 시달리고 있을 때 지원군을 보내주지 않고 가만히 있기만 했던 플라쿠스에게 반감을 품었다. 급기야 플라쿠스가 베스파시아누스에게 아첨하기 위해 비텔리우스를 지지하는 자신들을 죽게 내버려뒀다는 소문이 퍼졌으며, 병사들은 이를 믿고 야밤에 플라쿠스를 침대에서 끌어내 살해했다. 이때 보쿨라는 노예처럼 차려입고 숙영지에서 탈출해 화를 모면했다.

플라쿠스가 군단병들에게 살해되었다는 소식은 바타비아 전역에 확산되었고, 수많은 이가 여기에 고무되어 베테라를 포위 공격하고 있었던 키빌리스에게 가담했다. 모군티아쿰에 도착한 보쿨라가 제4군단과 제22군단을 이끌고 베테라를 구하고자 출발했다. 그러나 그를 따르고 있었던 트레베리족 기병 연대장 율리우스 클라시쿠스와 율리우스 투토르, 그리고 링고네스족 보조군 부대 지휘관 율리우스 사비누스 등은 키빌리스와 내통하여 보쿨라를 배신했다. 그들은 백인대장들을 설득해 자신들의 뜻을 따르게 했고, 백인대장들은 다시 병사들을 설득하여 거사에 동참하게 했다. 결국 보쿨라는 노바에시움(노이스)에서 살해당했고, 로마 장군의 군복을 입은 율리우스 클라시쿠스 등은 자신의 할아버지가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링고네스족 여인 사이에서 태어난 카이사르의 사생아이므로 자신은 카이사르 가문이라고 자칭한 율리우스 사비누스를 '갈리아 제국'의 황제로 추대했다. 이후 율리우스 투토르는 콜로니아 아그리피넨시스(쾰른)와 모군티아쿰(마인츠)의 로마군 요새를 공격했고, 클라시쿠스는 일부 병력을 베테라(크산텐)로 보내
"이제 당신들을 도울 자는 어디에도 없으니 항복하라"
고 권했다.

루페르쿠스는 그래도 항복하길 거부했지만, 포위가 지속되면서 식량이 바닥났기 때문에 말과 노새는 물론이고 돌 사이에서 자라는 관목, 뿌리 풀잎을 뜯어먹으며 버티던 병사들은 더 이상 버틸 수 없다고 여기며 그에게 항복을 받아들이라고 강요했다. 결국 루페르쿠스는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70년 3월 진영 문을 열고 나와서 키빌리스에게 항복했다. 키빌리스는 갈리아 제국의 황제인 율리우스 사비누스에게 충성을 맹세하라고 강요했으며, 그들은 이를 따랐다.[1] 그후 감독관을 임명해 진영에 돈, 술병, 짐이 남아있는 지 확인하고 궁핍한 상태로 행군하는 수비대를 지휘하도록 했다.

그런데 베테라에서 약 8km 떨어진 곳에서 게르만인들이 습격했다. 많은 이가 죽거나 달아났고, 나머지는 숙영지로 도로 후퇴했다. 키빌리스는 곧바로 숙영지로 쳐들어가 모조리 불태웠고, 진영으로 달아났던 이들 다수가 불타 죽었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장병들은 군단 사령관인 무니우스 루페르쿠스와 함께 여성 예언자인 벨레다의 노예로 전락했다. 다만 루페르쿠스는 벨레다에게 끌려가던 도중에 사망했다고 전해지며, 몇몇 사료에 따르면 벨레다가 루페르쿠스를 티와즈 신에게 인신공양 했다고 한다.[2] 키빌리스는 여세를 몰아 율리우스 클라시쿠스와 함께 텅 비어 있는 콜로니아 아그리피넨시스(쾰른)에 입성한 뒤 자신의 본부로 삼고, 제5 알라우데 군단과 제15 프리미게니아 군단 섬멸을 기념하는 동전을 주조했다.

이보다 앞서, 키빌리스에 대항했다가 포로가 된 뒤 프리시족의 땅으로 보내졌던 클라우디우스 라베오는 서기 70년 초 유형지에서 탈출한 뒤 가이우스 딜리우스 보쿨라로부터 소규모 병력을 받아낸 후 퉁그리족과 연합하여 바타비족과 카나네파테스족의 영토를 습격했다. 키빌리스는 이 소식을 접하자 군대를 이끌고 라베오를 토벌하러 출진했다. 양군은 마아스 강의 다리를 사이에 두고 대치했다. 한동안 다리를 놓고 접전이 벌어졌으나 승부가 갈리지 않았다. 그러던 중 일부 바타비족이 강을 헤엄쳐 건너가 라베오의 부대 후방을 위협했다. 이에 라베오의 군대 사기가 꺾이자, 키빌리스는 퉁그리족을 향해 외쳤다.
"우리는 바타비족과 트레베리족이 동료 부족을 지배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키지 않았다. 우리는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 동맹을 맺자. 당신들이 나를 지도자로 원하든 추종자로 원하든 간에, 나는 당신들의 편에 서겠다."
퉁그리족은 그 말에 감명을 받았고, 그들의 지도자들이었던 캄파누스와 유베날리스는 키빌리스에게 가담했다. 라베오는 일이 이 지경에 놓이자 몇몇 부하만 이끌고 탈출했다. 그후 키빌리스는 베타시족과 네르비족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인 뒤, 아투아투카로 진격해 그곳 주민들의 저항을 물리치고 도시를 파괴했다. 그러나 키빌리스의 승리는 여기까지였다.

3.4. 로마 제국의 반격

비텔리우스를 무너뜨리고 플라비우스 왕조의 초대 황제로 등극한 베스파시아누스는 북쪽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태를 전해듣고, 부관인 퀸투스 페틸리우스 케리알리스 카이시우스 루푸스를 보내 반란을 진압하도록 했다. 루푸스는 제8 아우구스타 군단, 제11 클라우디아 군단, 제13 게미나 군단, 제12 라팍스 군단, 그리고 최근 모집된 군단인 제2 아디우트릭스 군단 등 5개 군단을 이끌고 출발했다. 하지만 제8군단은 이탈리아에서 아르겐토라툼(스트라스부르)까지만 이동하여 라인 강의 전략적인 교차점을 지켰고, 제11군단은 게르마니아 수페리오르 전선을 지키는 임무를 맡았으며, 브리타니아에서 소환된 제14 게미나 군단은 히스파니아에서 소환된 제6 빅트릭스 군단 및 제1 아디우트릭스 군단과 함께 갈리아를 방비했다. 따라서 키빌리스를 토벌하는 역할을 맡은 부대는 제2 아디우트릭스 군단, 제13 게미나 군단, 제21 라팍스 군단의 3개 군단이었다.

루푸스의 군대가 몰려오자, 키빌리스의 동맹자 중 한 명이었던 율리우스 투토르가 항복했고, 휘하 부대는 새로운 총독에게 귀순했다. 이후 3개 군단이 트레베리족의 수도인 아우구스타 트레베로룸(트리어)을 위협하자, 트레베리족은 리고두룸 마을 근처에서 맞섰으나 결정적으로 패배했고, 로마군은 트레베로룸에 입성했다. 루푸스는 여기서 보쿨라를 살해하는 데 관여했던 제1 게르마니카 군단과 제16 갈리카 군단의 병사들을 만났다. 그는 이들에게 관용을 베풀어 로마 시민으로 받아줬다. 그러나 두 군단은 더 이상 신임받지 못했다. 제1 게르마니카 군단은 해산되었고, 제7 게르마니카 군단이 판노니아에 추가되었다. 제16 갈리카 군단은 제16 플라비아 피르마 군단으로 재구성되었다. 또한 루푸스는 트레베리족과 링고네스족에게도 관용을 베풀어 반역을 저지른 자들만 처벌하고 나머지는 용서했다. 카이사르의 증손자로 행세하며 갈리아 황제를 자칭했던 링고네스족 지도자 율리우스 사비누스는 로마군이 잡으러 오자 집에 불을 지르고 자신이 죽었다는 소문을 퍼트리며 잠적했다.

키빌리스와 율리우스 클라시쿠스는 반격에 나섰다. 그들은 6월 7/8일 야간에 트레베로룸(트리어)에 주둔한 로마군을 기습 공격했다. 한때 진영 안까지 침투하는 데 성공했지만, 3개 로마 군단의 반격으로 패퇴했다. 이제 반란군의 세력은 게르마니아 인페리오르 속주에 국한되었다. 키빌리스는 어떻게든 활로를 뚫기 위해 휘하 함대를 이끌고 발 강과 라인 강에서 로마군을 괴롭혔다. 그러던 중 로마 함대의 기함을 탈취하는 성과를 거두었으나, 이것이 오히려 역효과를 야기했다. 로마군은 이를 굴욕으로 여기고 바타비아로 쳐들어가 약탈과 방화를 자행했다. 그러나 이 무렵 폭우가 내리면서 강이 범람해 로마 함대가 막심한 피해를 입고 진영이 홍수에 휩쓸리는 등 큰 타격을 입자, 로마군은 더 이상 작전을 수행하기 어려워졌다.

그러던 70년 9월 예루살렘이 함락되면서 제1차 유대-로마 전쟁이 종결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키빌리스는 로마 제국이 이제 모든 자원을 자신에게 쏟아부을 것임을 깨닫고 평화협상을 제안했다. 루푸스는 더 이상 작전을 수행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이를 받아들였고, 양자는 나발리아 강 위에 다리를 세운 후 협의했다. 협상 결과가 어찌 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바타비족이 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아들이고 8개의 보조군 기병 부대를 추가로 징집하며, 바타바아의 수도인 울피아 노비오마구스 바타보룸(네이메헌)은 파괴되고 주민들은 2km 하류에서 무방비 상태로 도시를 재건해야 했던 것만은 분명하다. 또한 제10 게미나 군단이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바타비아에 주둔하기로 했다. 이후 키빌리스가 어찌 되었는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그를 죽였다는 기록은 없기 때문에 대체로 키빌리스가 추방되어 다시는 바타비아에 돌아오지 않는 조건으로 협상이 이뤄졌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반란의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했던 여성 예언자 벨레다는 로마에 볼모로 잡혀갔으며, 로마에서 좋은 대우를 받고 주술사로 활동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참칭 황제 율리우스 사비누스는 죽은 척 하고 9년 동안 숨어있다가 결국 서기 78년 발각되어 아내 에포니나[3]와 함께 로마로 압송되어 부부가 함께 처형당했으나 그의 두 아들은 사면을 받았다.

4. 미디어에서

벨레다의 이름은 1872년에 발견된 소행성 '126 벨레다'에 명명되었다.

폴 앤더슨의 SF 소설 《타임 패트롤》 시리즈 중 '바다의 별'은 벨레다를 주인공으로 하여 바타비아 반란을 다루고 있다.


[1] 타키투스는 이를 두고 로마 역사상 씻을 수 없는 치욕이라며 개탄했다. 그도 그럴것이 제국에 충성을 맹세한 로마 시민들이 영웅적으로 끝까지 싸우다 전멸한 것이 아닌 신격 카이사르의 후손을 자칭하는 속주민과 시민병을 보조하는 속주병 부대 따위에게 항복하고 충성을 맹세한 것은 전례가 없었다.[2] 하지만 벨레다가 루페르쿠스를 인신공양 했다면 반란이 끝나 로마로 잡혀갔을 때 처형당했을 것이므로, 인신공양까지 하지는 않았다는 게 정설이다.[3] 비록 적장 부부였지만 많은 로마인들이 9년 동안 남편과 고락을 같이 한 그녀의 정절을 높이 평가했으며, 프랑스 여성 이름 에포닌은 그녀의 이름에서 기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