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라코 전투 영어: Battle of Tarraco | ||
시기 | 서기 422년 | |
장소 | 서로마 제국 타라코넨시스 속주 | |
원인 | 히스파니아에서 남하하는 반달족과 서로마 군대와의 충돌 | |
교전 세력 | 서로마 제국 | 반달족 |
지휘관 | 플라비우스 카스티누스 | 군데리크 |
병력 | 불명 | 불명 |
피해 | 불명 | 불명 |
결과 | 반달족의 대승. 서로마 제국 히스파니아 속주에 대한 영향력 일시적으로 상실 반달족의 북아프리카로의 이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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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422년, 군데리크가 이끄는 반달족군대가 이주를 위해 이동하던 중, 서로마 제국의 장군인 플라비우스 카스티누스와 맞붙은 전투이다. 타라코 전투의 패배로 반달족의 이주를 저지하지 못했고, 다른 이민족들 또한 서로마 제국의 패배로 인해 히스파니아에서 세력을 크게 늘렸다.2. 상세
게르만 대이동에 따른 갈리아 약탈 상황. 반달족과 다른 야만족들은 피레네 산맥을 너머 남하했다 |
409년, 반달족은 게르만족의 대이동 당시 로마 영내로 진입한 여러 게르만 부족들 중 하나로 수에비족과 알란족과 함께 스페인으로 이동했다. 당시 히스파니아 속주는 게론티우스 장군의 반란으로 인해 서로마 제국과 내전 중인 상황이었고 게론티우스 장군은 히스파니아 영내로 진입한 야만족과 동맹을 체결하면서 군사력을 제공하는 대가로 히스파니아 속주의 영토를 할양받았다.
히스파니아 갈라이키아속주와 히스파니아 바이티카속주가 반달족의 몫이 되었다. 당시 반달족은 2개의 분파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군데리크의 하스딩기족은 갈라이키아에, 실링기족은 바이티카 속주에 정착한다.
게론티우스 장군이 패배한 411년 이후, 서로마 제국은 히스파니아 속주를 탈환하고자 했고 서고트또한 로마인과 충돌 보다 공존을 원했기에 서로마 제국과 협력하며 스페인 지역에서 야만족들을 공격했다.
알란족과 반달족은 당시 각각 2개의 분파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호노리우스황제는 그들 중 반달족의 하스딩기 부족에게만 포에데타리의 직위를 내려줌으로서 야만족들간의 분열을 유도했다. 호노리우스의 요청에 하스딩기족의 왕 군데리크는 알란족을 기습해 알란족을 몰아냈고, 416년 중반 서고트족의 군대가 반달족의 또 다른 분파인 실링기족을 격파함과 동시에 알란족의 잔존 세력을 무찔렀다.
하스딩기족은 이번 전쟁을 통해 반달족의 주도권을 확실하게 잡았으며, 알란족의 생존자들을 규합하여 더욱 거대한 단일 세력을 구축하는데 성공했다. 서로마 제국은 반달족의 왕 군데리크와 동맹을 통해 히스파니아속주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자 했다.
그러나 군데리크가 갈라이키아 속주에 공존하고 있는 수에비 왕국과 일련의 갈등 끝에 양측이 충돌하면서 전쟁이 발발했고 서로마 제국이 419년 벌어진 네르바수스 산맥 전투에서 수에비 왕국을 지원하면서 서로마 제국과 맺었던 동맹도 파기되었다.
패배한 군데리크는 세력을 이끌고 남하했고, 옛 실링기 족이 정착했던 히스파니아 바이티카로 이동했고, 서로마 제국은 그들을 격파하기 위해 플라비우스 카스티누스 장군 휘하의 군대를 보내 반달족을 섬멸하고자 했다.
3. 전투
421년 플라비우스 카스티누스 장군은 수에비 왕국과 공동전선을 펼쳐 반달족을 압박하고자 했다. 그러나 군데리크가 수에비 왕국의 증원군을 사전에 격파하면서 타라코 근교에서 로마군은 단독으로 반달족과 맞섰다.전투가 진행되던 중 서고트족 보조군이 로마군을 배신해 철수하면서 로마군은 반달족의 공격에 속절없이 패배한다. 카스티누스는 타라코로 철수했고 반달족은 북아프리카로 이동하기 위한 준비를 이어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