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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dddddd,#000000><colcolor=#000000,#e0e0e0> 엘리자베스 하먼 Elizabeth Harman | |
국적 |
|
가족 | 배우자 알렉스 게레로 |
학력 | 하버드 대학교 (철학 / 학사)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 (철학 / 박사) |
직업 | 철학자 |
분야 | 윤리학, 분석철학 |
링크 | 웹사이트 |
1. 개요
엘리자베스 하먼(Elizabeth Harman)은 미국의 윤리학자이자 분석철학자로, 프린스턴 대학교 철학과 및 인간가치센터(Laurance S. Rockefeller Professor of Philosophy and Human Values) 교수이다. 도덕적 지위, 낙태 윤리, 도덕적 무지, 실천 추론, 도덕적 오류 등 폭넓은 주제에 걸쳐 활발히 연구하고 있으며, 현대 생명윤리와 도덕철학 논의에 핵심적인 이론적 기여를 해왔다.2. 학력
- 하버드 대학교 철학과 학사(A.B.)
-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MIT) 철학 박사(Ph.D.)[1]
3. 경력
- 프린스턴 대학교 철학과 및 인간가치센터 교수 (현직)
- 프린스턴 University Center for Human Values 소속 연구자
- Athena in Action 공동 창립자 및 운영자
- 2024년 옥스퍼드 대학교 Uehiro Practical Ethics 강연자
4. 주요 연구 분야
- 생명윤리 (특히 낙태 윤리 및 출산 윤리)
- 도덕적 지위 이론 (moral status)
- 도덕적 무지와 실수
- 실천 추론과 미래예측 판단
- 도덕 인식론 및 윤리적 방법론
5. 주요 저서 및 논문
- “Creation Ethics: The Moral Status of Early Fetuses and the Ethics of Abortion”
- “I’ll Be Glad I Did It”: Future Desires and the Moral Status of Fetuses
- “Does Moral Ignorance Exculpate?”
- When To Be a Hero (집필 중)
- Love and Abortion (Uehiro Lecture 기반 저서 예정)
- Norton Introduction to Philosophy (공동 편저)
- Norton Introduction to Ethics (편집 중)
6. 철학적 입장
- 초기 태아의 도덕적 지위에 대해 ‘실제적 미래의식 가능성’에 근거하여 윤리적으로 차등 평가하는 이론을 제시한다.
- 낙태의 도덕성에 대해, 태아의 미래 인격 여부는 그 존재가 실제로 태어날지 여부에 따라 결정된다는 조건부 도덕 지위론을 주장한다.
- 도덕적 무지 또는 문화적 무지는 도덕적 면책 사유가 될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 도덕적 영웅주의와 '도덕적으로 해야 할 것과 해도 좋은 것'의 구분을 강조하며, 과도한 도덕적 요구에 대해 회의적 입장을 취한다.
- 실천 추론에 있어 후회 가능성, 미래 감정, 변화경험(transformative experiences) 등을 이론적으로 통합하려는 시도를 지속하고 있다.
6.1. 데이비드 베나타 관련
엘리자베스 하먼(Elizabeth Harman)은 데이비드 베너타(David Benatar)의 반출생주의 이론, 특히 그 핵심 기반인 '비대칭 논증(asymmetry argument)'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한다. 그녀는 도덕적 지위(moral status)와 출생의 해악을 판단하는 메커니즘에서 베너타가 전제하는 개념들에 철학적으로 근본적인 결함이 있다고 지적한다. 그녀의 비판은 크게 세 가지 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첫째, 하먼은 베너타의 비대칭 논증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존재자(nonexistent persons)에 대한 도덕적 평가를 가능하다고 전제하는 데서 출발하는데, 이러한 전제 자체가 논리적 오류를 함의한다고 본다. 베너타는 존재하지 않는 존재에 대해서도 "고통의 부재는 좋은 것이며, 쾌락의 부재는 나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고통의 부재에는 긍정적 가치가 있지만 쾌락의 부재에는 아무런 손실이 없다는 식으로 정당화한다. 그러나 하먼은 이러한 사고 방식이 존재하지 않는 대상에게 도덕적 속성을 귀속시키는 형이상학적 모순을 범하고 있다고 본다. 존재하지 않는 주체는 이해관계(interests)를 가질 수 없고, 도덕적으로 고려될 수 있는 가치의 주체도 아니다. 따라서 그 존재 여부를 전제로 한 도덕 판단은 공허하거나 비일관적인 판단일 수밖에 없다.
둘째, 하먼은 태어나는 것이 항상 해롭다는 주장이 지나치게 단선적이고 실체적 해악의 개념을 오용한다고 비판한다. 그녀는 '해악'이란 어떤 존재의 상태가 그 존재의 다른 가능한 상태보다 나쁠 때 성립하는 비교적 개념이며, 이는 실제로 존재하는 자에게만 적용된다고 본다. 태어나지 않은 존재는 비교 가능한 상태를 갖지 않으며, 따라서 그들에게 발생할 수 있는 '해악'이라는 개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특히 그녀는 "낙태된 태아는 아무 해를 입지 않는다"는 논지를 통해, 존재하지 않는 자는 해를 당하지도 이익을 얻지도 않기 때문에, 단순히 고통의 발생 가능성만으로 출생을 해악으로 간주하는 것은 철학적으로 성립 불가능하다고 본다.
셋째, 하먼은 베너타의 논리가 경험주의적 자각의 가능성을 무시하거나 철저히 배제한다는 점에서 인간의 삶에 대한 비현실적인 이해를 전제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녀는 도덕적 지위는 단지 감각적 고통과 쾌락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자율성과 정체성, 자기인식, 관계성 등 복합적인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고 본다. 특히 하먼은 “미래 의식 결정론(Future Consciousness Account)”이라고 불리는 독자적 이론을 통해, 존재자의 도덕적 지위는 그가 실제로 미래에 자각적 존재로 발전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판단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베너타가 단지 가능성만으로 출산 자체를 해악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경험 가능성에 대한 고려를 전면적으로 배제한 추상적 이상주의에 가깝다고 비판할 수 있다.
또한 하먼은 도덕적 판단의 방식과 기준이 베너타와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본다. 베너타는 고통을 회피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항상 우선한다는 전제하에, 쾌락을 추구하거나 삶의 의미를 찾는 모든 시도를 열등하거나 비합리적인 것으로 취급한다. 이에 반해 하먼은 고통이 반드시 해악이 되지 않을 수 있으며, 삶의 의미와 자율성, 성찰적 관계의 가능성은 고통의 존재를 무력화하거나 정당화할 수 있는 철학적 근거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인간의 삶은 단순한 고통과 쾌락의 산술적 총합이 아니라, 의미 구성과 자기 규정, 관계적 존재로서의 자아 형성을 통해 윤리적 정당성을 획득한다는 것이다.
결국 하먼의 비판은 베너타의 비대칭 논증이 1) 존재론적으로 불가능한 도덕적 비교를 수행하고 있으며, 2) 해악 개념을 비경험적 존재에게 무리하게 확장하고 있고, 3) 인간 삶의 다면적 가치를 고통 회피라는 단일 기준으로 환원하고 있다는 점에서 철학적으로 취약하다는 것이다. 그녀는 이러한 환원주의적 접근이 도덕철학의 복잡성과 정합성을 훼손하며, 오히려 삶의 윤리적 정당성을 조망하는 데 있어 부적절한 철학적 프레임워크라고 본다. 하먼의 입장은 반출생주의에 대한 단순한 윤리적 반대라기보다는, 그 철학적 기반이 갖는 개념적 불일치와 존재론적 불가능성을 해부함으로써 그 논의 전체의 전제구조에 철저한 회의를 제기하는 비판적 분석이라 할 수 있다.
6.1.1. 베나타의 해명
데이비드 베너타(David Benatar)는 엘리자베스 하먼(Elizabeth Harman)의 비판에 대해 정식 논문 형식으로 장문의 직접 반론을 전개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저서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다(Better Never to Have Been, 2006)』와 이후의 재답변 논문들에서 하먼의 입장—특히 "존재하지 않는 자에게는 해악도 이익도 귀속될 수 없다"는 주장—에 대해 철학적으로 일관된 입장을 바탕으로 재반박하는 논지를 간접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 반박은 크게 네 가지 축으로 재구성될 수 있다.첫째, 베너타는 하먼이 전제하는 "도덕적 고려는 존재자에게만 해당된다"는 입장을 철학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는 존재하지 않는 자에 대한 도덕적 고려 가능성이 현실의 도덕 판단에서 빈번하게 활용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에게 어떤 질병 유전자를 물려줄 가능성이 있는 경우, 임신을 피해야 할 윤리적 이유가 있다고 느낀다. 이 경우 우리는 명백히 아직 존재하지 않는 존재의 이익과 손해를 고려하고 있다. 이러한 직관은 단지 감정적이거나 상황적인 것이 아니라, 도덕 판단의 실질적인 기준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존재하지 않는 자는 이해관계를 갖지 않는다는 하먼의 주장은 윤리적으로 통상적인 판단과 괴리되어 있으며, 직관적으로 수용되기 어려운 입장이라고 본다.
둘째, 베너타는 비대칭 논증의 핵심은 "존재하지 않는 고통은 좋지만, 존재하지 않는 쾌락은 나쁘지 않다"는 평가적 비대칭에 있으며, 이는 존재 여부와 무관하게 성립하는 도덕적 진술이라고 주장한다. 이때 그는 존재하지 않는 자에게 도덕적 속성을 귀속시키는 것이 아니라, 어떤 선택이 초래하는 상태들을 비교함으로써 도덕적 결정을 도출한다고 본다. 즉, 특정 존재가 있었을 경우 발생했을 고통이 실제로 발생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도덕적으로 좋은 결과이며, 이와 같은 비교는 존재자의 유무와 상관없이 성립 가능한 비실현적 비교(non-person-affecting comparison)이라고 보는 것이다. 하먼이 이 비교 자체를 의미 없는 것으로 보는 것은, 오히려 도덕 판단이 갖는 예측적·반사적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결과라고 본다.
셋째, 베너타는 하먼의 "해악은 비교 가능한 대안적 상태가 있어야만 성립한다"는 주장에도 비판적이다. 그는 그 주장 자체에는 동의하면서도, 이 원칙이 하먼의 의도와 반대로 출산이 초래하는 해악을 증명하는 데 더 유리한 논거가 된다고 본다. 즉,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경험하지 않았을 고통이 실제로 발생했다면, 그 고통은 비교 가능한 '비존재 상태'보다 나쁘기 때문에 해악이 성립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태어나지 않았을 경우의 쾌락은 손실로 간주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누구도 그 쾌락의 부재를 느끼지 못하며, 그러한 부재는 가치적 손실로 체감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로써 그는 해악의 존재와 이익의 부재 사이에 존재하는 ‘실제적 비대칭’을 철학적으로 옹호한다.
넷째, 베너타는 하먼이 강조하는 '삶의 자율성', '의미', '자각의 가능성' 등 복합적 가치들은 삶이 일단 시작된 후에야 의미를 갖는 것들이며, 출산이라는 행위 이전에는 그러한 가치들이 해악을 정당화하지 못한다고 본다. 그는 삶의 의미와 성장은 고통의 발생 가능성을 제거해주지 않으며, 특히 인간의 삶이 구조적으로 포함하는 고통의 양과 성격을 고려할 때, 그런 고통의 발생을 회피할 수 있는 상황에서 회피하지 않는 것은 윤리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때 그는 하먼이 제시하는 삶의 의미론이 정당화의 원천이 아니라 정당화 이후의 효과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즉, 자율성이나 의미의 가능성은 그것을 가능하게 한 선택이 정당했음을 보장하지 않는다.
또한 그는 하먼의 논지를 도덕적 낙관주의(moral optimism)의 연장선으로 해석하며, 이는 인간 삶에 내재된 고통과 불평등, 무의미에 대한 과소평가를 수반한다고 지적한다. 그는 도덕 철학은 인간 존재의 조건을 이상화하는 방식이 아니라, 고통을 포함한 현실의 조건을 냉정하게 평가해야 한다고 보며, 하먼이 제시하는 경험주의적 의식 중심주의 또는 ‘도덕적 경과주의’는 철학적 판단의 기준으로는 부족하다고 본다. 그에게 있어 해악 회피의 우선성은 자율성, 의미, 정체성 등 어떤 경험적 가치보다도 도덕적으로 더 강한 이유를 제공하며, 그것이야말로 비대칭 논증이 갖는 가장 중요한 직관적 기반이다.
요컨대 베너타는 하먼의 비판이 규범적으로는 세련되어 보일 수 있지만, 도덕적 판단의 결과론적 직관이나 예방 원칙과 괴리되며, 존재자 중심주의라는 전제 자체가 논쟁적이라는 점에서 결정적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고 본다. 그는 반출생주의의 주된 기초가 되는 비대칭 논증이 단지 논리적 구조가 아니라, 현실적 도덕 판단과 일관된 실천적 판단 기준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하먼의 입장을 지나치게 이론적이고 현실을 도외시한 윤리관으로 본다. 이로써 그는 자신의 주장이 단지 개념적 정합성의 산물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조건과 도덕 실천의 책임성에 근거한 더 정직한 철학적 결론임을 주장한다.
6.1.1.1. 분석철학적 논평
베너타가 엘리자베스 하먼의 비판에 대해 간접적으로 제시한 재반박—존재하지 않는 자도 도덕적으로 고려될 수 있으며, 쾌락과 고통의 부재는 평가적으로 비대칭이라는 주장은—표면적으로는 정연해 보이지만, 분석철학적 관점에서 보면 여러 철학적 전제를 혼동하거나 논리적 일관성을 결여한 채 주장만을 강화하는 방식에 머무른다. 이 재반박은 특히 규범 윤리와 메타윤리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들고, 도덕적 언어의 정당화 구조에 대한 철학적 반성을 회피함으로써, 근본적으로는 논의 자체를 한 언어게임 안에 가두는 폐쇄적 담론 구조를 형성한다.첫째, 베너타가 내세운 ‘비실현적 비교(non-person-affecting comparison)’ 논증은 분석철학에서 요구되는 개념적 엄밀성에 미치지 못한다. 그는 존재하지 않는 자를 비교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비교의 논리적 성립 조건—비교 대상은 동일한 존재론적 지위를 갖고 있어야 한다는 전제—를 위반한다. 엘리자베스 하먼은 ‘미래 의식 결정론(future consciousness account)’을 통해 존재자의 도덕적 지위가 형성되기 위한 경험 가능성과 자기동일성의 전제를 요구한다. 다시 말해, 도덕적 해악은 그 해악을 경험하거나 감지할 수 있는 존재를 전제로 해야 한다. 반면, 베너타는 그 존재 자체가 없었던 상태와 있었던 상태를 비교하면서 해악이 발생했다고 주장하는데, 이 비교는 하나의 존재(실존적 개인)와 '존재하지 않았던 가능성'이라는 비존재 개념 사이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분석철학이 요구하는 의미론적 명료성의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 개념이 유의미하게 사용되려면 그 개념이 지시하는 대상이 존재론적으로 추적 가능해야 하는데, 베너타의 비교는 그러한 추적 가능성을 제거한 상태에서 의도된 결과만을 강요하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이로 인해 그의 재반박은 개념적으로 명확하기보다는 전략적으로 구성된 정당화 시도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2]
둘째, 이러한 주장의 비유효성은 메타윤리적 관점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베너타는 공리주의적 직관주의(metaethical utilitarian intuitionism)를 기반으로, 고통의 부재는 도덕적으로 선한 상태이며 쾌락의 부재는 나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때 사용되는 '선하다', '나쁘지 않다'는 평가어는 도덕적 언어의 정당화 메커니즘을 설명하지 않은 채, 단지 특정 직관을 전제한 명제들의 반복으로 귀결된다. 메타윤리학은 도덕 명제가 어떻게 의미를 갖고 정당화되는지를 묻는 철학의 한 분과로, 단순히 직관의 반복이나 가치의 진술이 아니라, 그러한 직관이 왜 정당화 가능한지를 설명해야 한다. 베너타는 자신의 직관을 방어하면서도 그 직관이 왜 도덕적으로 설득력 있는 방식으로 언어화되는지를 설명하지 못하며, 오히려 존재자 기반의 윤리학이 전제하는 정당화 구조를 회피하는 형태를 보인다. 그가 '존재하지 않는 자에게도 고통이 없다는 점에서 좋다'고 말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순간, 그 주장은 존재론적으로 근거 없는 도덕적 판단을 유발하며, 메타윤리학적으로 정당화 불가능한 명제를 반복하는 오류에 빠진다.[3][4]
셋째, 이러한 분석은 궁극적으로 베나타와 하먼 간의 논쟁이 철학적 평행선 구조(parallelism)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을 드러낸다. 양측은 단순히 윤리적 결론이 다를 뿐 아니라, 도덕 언어가 의미를 갖는 방식 자체에 대한 전제가 전혀 다르다. 하먼은 존재론적 실재주의(ontological realism)를 전제로, 도덕 판단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감각 가능성, 자각, 행위자-수용자 간의 관계성, 그리고 자율적 인식 구조를 필요로 한다고 본다. 반면 베너타는 공리주의적 계산 구조를 통해 잠재적 고통의 발생 여부만으로 도덕 판단을 구성할 수 있다고 본다. 이들은 서로 다른 도덕 메타이론에 입각해 있으며, 도덕 개념(‘해악’, ‘이익’, ‘도덕적 이유’)의 의미론적 지위 자체를 다르게 보고 있다. 그러므로 논쟁은 단일한 도덕 언어 안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규칙을 가진 언어게임들이 충돌하는 구조를 띠게 된다.
이러한 언어게임의 충돌은 리처드 슈웨더(Richard Shweder)의 문화심리학적 도덕 모형에서 보다 명료하게 드러난다. 슈웨더는 도덕 판단의 기저에는 '해악/보호', '자율성/권리', '신성/순수' 등 상이한 문화적 모듈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베너타는 전형적으로 '해악/보호' 모듈을 중심으로 도덕 판단을 구성한다. 그는 존재 여부에 관계없이 고통의 발생 가능성만으로 도덕적 평가를 한다는 점에서, 도덕 판단의 출발점을 "피해 가능성의 제거"에 두고 있다. 반면 하먼은 자율성, 의미, 경험적 정체성, 관계성 등 보다 복합적이고 맥락적 도덕 요소를 중심으로 판단한다. 그녀는 삶의 의미는 삶의 전 과정 속에서 구성되며, 그 구성의 가능성 자체가 도덕적 정당화의 토대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이는 해악 회피만을 중심에 둔 도덕 체계가 인간 삶의 복잡성을 설명하지 못한다고 보는 입장이다. 이러한 관점 차이는 단순한 철학적 차이가 아니라, 문화적·심리적 도덕 구조의 차이로 인해 발생한 것이며, 바로 이 지점에서 메타윤리적으로 논의는 교차 불가능한 병렬선을 형성한다.
결론적으로, 베너타의 재반박은 하먼이 제기한 존재론적·개념적 문제에 철학적으로 정밀하게 응답하지 못하며, 오히려 메타윤리적 정당화의 필요를 우회하는 방향으로 흐른다. 그의 주장은 정당화라기보다 반복에 가깝고, 분석철학이 요구하는 의미론적 엄밀성과 정합성의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채 자기 직관을 공리주의적으로 강화하는 방식을 취한다. 하먼과 베너타의 논쟁은 철학적 진전이 가능한 동일한 틀 내의 이견이 아니라, 규범 윤리의 기초와 도덕 언어의 성격, 도덕 판단의 방식에 대한 근본적으로 상이한 철학적·심리적 세계관이 충돌하는 장면이다. 이 논쟁은 단일한 논증을 통해 종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그 자체로 우리가 사용하는 도덕 언어와 그 전제 조건에 대한 성찰을 유도하는 철학적 풍경을 드러낸다. 비트겐슈타인이 말했듯이, 철학의 목적은 이처럼 길을 잃은 언어의 지형에서 우리가 어떤 잘못된 지도에 따라 판단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데 있다. 베너타와 하먼의 충돌은 바로 그 지점에서 오늘날 윤리학이 직면한 메타철학적 한계와 가능성을 동시에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6.2. 낙태 관련
엘리자베스 하먼은 초기 태아의 도덕적 지위에 대해 독특한 조건부 이론을 전개한다. 그는 태아가 실제로 태어나 인간으로 성장하게 된다면, 그 태아는 인격적 존재로서의 도덕적 지위를 소급적으로 획득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낙태되어 더 이상 삶을 갖지 않게 되는 태아는 도덕적으로 보호받을 인격성을 갖지 않는다고 본다. 이 관점은 미래-의식 결정론으로 알려져 있으며, 잠재성 논증의 전통적 형태와는 차별된다. 그녀는 이러한 이론을 통해 낙태에 대한 양가적 윤리 감정을 논리적으로 해명하려 한다.[5]하먼은 또한 낙태와 관련된 후회나 죄책감, 사회적 압박에 대해 도덕적 명확성과 자율성 중심의 프레임워크를 제공하며, 여성의 결정 권한과 도덕 판단 간의 균형을 탐색한다. 이러한 접근은 낙태 윤리 담론에서 단순한 허용/금지 이분법을 넘는 철학적 복합성을 드러낸다.[6]
7. 수상 및 활동
- 프린스턴 대학원·박사후 연구자 멘토십 프로그램 운영
- Athena in Action: 여성 철학자 네트워크 공동 운영
- Oxford Uehiro Institute 초청강연자 (2024)
- 여러 생명윤리·윤리학 저널의 심사위원
- 프린스턴 인간가치센터 경력개발 디렉터(전임)
8. 관련 문서
9. 바깥 고리
[1] 박사학위논문: 〈Moral Status〉 (2003), 지도교수: 조슈아 코헨[2] 스트로슨은 개념적 범주(category)의 오용이 철학적 오류의 근본 원인 중 하나이며, 특히 존재론적 지위가 확정되지 않은 대상에게 속성을 부여하는 행위는 잘못된 의미론적 귀속이라 지적한다. 이는 베나타가 비존재자에게 '해를 입는다'는 속성을 귀속하는 것의 오류를 설명하는 데 핵심 이론이 된다. P.F. Strawson, Individuals: An Essay in Descriptive Metaphysics (London: Methuen, 1959), 102–118.[3] 크립키는 가능세계에서의 존재자 동일성 및 지시(reference) 문제를 다루며, 존재하지 않는 대상(non-actual entities)에 대한 의미론적 지시가 가능하려면 실제 세계에서의 고정 지시자(fixed designator)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베나타의 비존재자 윤리가 의미론적으로 무효함을 시사한다.[4] 루이스는 가능세계에서 개체 중심적 태도와 존재론적 지위를 구분하며, 존재하지 않는 주체에 대해 평가적 태도를 부여하는 것은 철학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는 범주 오류임을 기술한다. 이는 베나타가 ‘존재하지 않는 자에게 해를 말하는 것’이 형이상학적으로 불가능한 판단 행위임을 분석적으로 뒷받침한다. David Lewis, “Attitudes De Dicto and De Se,” The Philosophical Review 88, no. 4 (1979): 513–543.[5] “Creation Ethics” 논문[6] 2024 Uehiro Lec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