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1-02 21:12:16

제19대 대통령 선거/대권주자

파일:나무위키+유도.png   이 문서는 제19대 대통령 선거의 출마 예상 후보군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습니다. 실제 대선에 등록한 후보에 대한 내용은 제19대 대통령 선거/후보 문서를, 각 정당별 후보자 경선에 대한 내용은 제19대 대통령 선거/후보 경선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제19대 대통령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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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조사TV 토론회타임라인재보궐선거
대권주자후보 경선후보주요 이슈
상황 (지역별 · 정당별 · 세대별)결과 (지역별 · 정당별 · 세대별 · 출구조사 · 결론)



1. 개요2. 최종후보3. 경선탈락자4. 예비후보자
4.1. 무소속
4.1.1. 보수 성향
4.1.1.1. 권정수4.1.1.2. 김환생
4.1.2. 자유 성향 및 진보 성향
4.1.2.1. 김기천4.1.2.2. 노남수4.1.2.3. 안광희
4.1.3. 중도 성향 4.1.4. 기타
4.1.4.1. 강인권4.1.4.2. 김마리아
5. 불출마자

1. 개요

제19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거나 출마할 것으로 예측되던 대권주자들의 목록이다. 지난 대선마다 유력한 후보에 들었으나 떨어져 권토중래를 하는 사람들(문재인,안철수 등), 새로이 떠오른 사람들(심상정) 등 후보군이 다양하고 많은 편이다. 아래의 목록은 가나다순으로 작성했다. 요약 차원이며, 자세한 내용은 각 개인 문서를 참고할 것.

인물들의 출생지는 출생 당시의 행정구역을 따랐다.

실제 출마 후보는 제19대 대통령 선거/후보를 참고할 것.

2. 최종후보

제19대 대통령 선거/후보를 참고할 것.

2.1. 더불어민주당 - 문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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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53년 1월 24일, 경상남도 거제군[1]
현직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
18대 본선 2위 (48.02%, 민주통합당)
상황 대한민국 대통령 당선

더불어민주당의 전 대표이자 제18대 대통령 선거 당시 민주통합당 후보로서 48.0%의 득표율을 기록해 2위를 기록한 바 있다.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 역사를 통틀어 박근혜 다음으로 많은 수의 표를 받았던 인물이다.

한때 반기문을 제외하면 박원순과 함께 차기 대선 주자 1, 2위를 다퉜으나, 4.29 재보궐 선거의 참패와 이어진 친노 패권 공방으로 지지율이 떨어져 2015년 하반기 동안 2, 3위를 기록하였다. 그러다가 2016년 들어 당내 갈등이 진정되면서 오차범위 내에서 1위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2016년 8월 21일, 지지자들과 함께 울산을 방문했을 때 지지자들에게 "나는 재수에 강하다"[2], "준비된 대통령이 되겠다(웃음)"며 대권 출마를 강력하게 시사했다고 한다. 사실 김영삼 전 대통령도 2번 도전, 김대중 전 대통령도 4번 도전 끝에 당선됐다.

20대 총선이 끝난 후를 기준으로 현재 야권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당선 가능성이 높은 대선 주자로서 '문재인 대세론'을 몰고 다니는 중이다. 우선 대통령 선거 본선을 치러본 경험이 없는 다른 대선 주자들과는 달리, 이미 박근혜라는 (그 당시만 해도) 보수 진영 최고의 정치 스타를 상대로 본선을 치러본 경험이 있고, 그때 이미 충분한 인지도를 쌓아놨으며, 18대 대선 기간 동안 박근혜 캠프와의 공방전을 거치면서 개인 처신에 관해서는 더 이상 털릴 게 거의 없는 후보로 평가 받는다.

더불어민주당 대표 시절에는 오랜 시간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였으나 막판에 성공적인 외부 인재 영입과 대규모 온라인 입당 열풍을 이끌어내 절망적이었던 민주당 분위기를 잘 환기시켰고 김종인비대위 대표와 더불어 분열된 상태였는데도 불구하고 새누리당의 과반 의석 확보를 막고 더불어민주당20대 총선 승리를 직접 견인해내 더불어민주당 대세론의 진 주인공이 되는 반전을 만들어낸 인물이다.

특히 정보 분야 쪽 인력 풀이 많이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 받았었는데 이번 20대 총선에서 검사 출신이고, 박근혜정부에서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으로 일하다 팽당했던 조응천, 경찰의 표창원, 국정원 인사처장을 지낸 김병기 등을 데려와 20대 국회의원 당선을 도우면서 이 분야의 약점을 대부분 보완했다는 평가다.

2016년 11월 20일에 열린, 야권 대권주자들의 "비상시국 정치회의"에서 8명 중 1명으로 참여하였다.

국내 정치계에서 10년간 떠나 있던 반기문 전 사무총장과는 달리 이미 2012년에 한 번 털려본 문재인 전 대표 본인에게는 대권을 가로막을 만한 큰 의혹이 없었으나[3] 캠프 몸집이 커지면서 캠프 내의 인사들로부터 각종 구설수가 생겨나기 시작했으며, 2012년 대선 때 박근혜 캠프 측에서 꺼내들었던 아들 문준용 씨의 공기업 채용 특혜 의혹을 반(反)문재인 진영에서 재점화시켜 이 문제가 다시 언론을 타기도 했다. 2017년 2월 13일 더불어민주당 경선 예비 후보로 등록했다.

19대 대선 정국이 마치 지난 2007년 17대 대선의 리버스 버전이라고 불릴 정도로 기울어져서 (그때의 이명박 전 대통령처럼) 사실상 대한민국의 19대 대통령으로 손꼽힐 만큼 대권에 근접해 있는 인물이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한때는 '그대안(그러나 대통령은 안희정)'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왔던 만큼 안희정 지지율도 무섭게 올라갔던 판이었던 데다, 최종 후보 선출 후 문재인을 지지하지 않던 사람들의 표가 문재인한테 가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당은 실제로 이러한 점을 이용하여 안희정이재명을 지지하던 표 중 중도층과 중도보수층의 표 대부분이 안철수 후보에게 갈 것이라고 보고 있고, 안철수 의원 측도 이번 대선은 문재인안철수 구도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실제로 그렇게 되기 시작했다.[4] 안철수 의원이 보수 진영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 유승민 의원 또는 홍준표 경남지사로 표가 분산될 가능성도 있는데 지금으로서는 홍준표에게 2위 자리를 위협받는 상황이다.

대통령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 중 하나가 지명도인데, 참여정부 청와대 비서실장, 18대 대선 민주통합당 후보, 야당 대표 등 여러 정치적 경험으로 지명도로만 따지면 가장 강력한 후보로 봐도 무방하다. 보수 진영과 진보 진영이 크게 대립하는 정책들 중 하나가 대북 정책인데, 보수 진영까지 납득이 가능한 안보관을 보여준다면 확장성 있게 표를 끌어모을 가능성이 있다. 이 부분은 문재인 전 대표 뿐만 아니라 현 야권에 속하는 모든 대선 주자들에게도 해당되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또 후보가 어느 정당에 속해있는지도 당락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인데, 더불어민주당이 원내 제1당이고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으로 볼 때, 민주당의 대선 후보로 공식 선출된다면 대통령으로 당선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가장 대척점에 있으면서도 거대한 정치세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당원들의 지지도가 매우 높다. 또한, 반드시 투표하겠다는 적극적 투표층에서도 절반 이상이 문재인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7년 3월에 이르러서는 더불어민주당호남권 대선 후보 경선에서 전체 투표수 23만6358표 중 14만 2343표[5], 60.2%의 득표율을 얻어 다른 경쟁자들을 큰 격차로 제치고 압승을 거머쥐었으며, 안희정 충남지사의 근거지인 충청권에서도 47.8%의 득표율을 얻어 36.7%의 득표율을 기록한 안희정 지사를 10%가 넘는 득표율 차이로 누르고 승리했다.

다음 승부처인 영남권수도권 & 강원도 & 제주도[6]는 문재인 전 대표의 강세가 도드라졌던 지역들이라 사실상 문재인 전 대표의 낙승이 점쳐지고 있어서 더불어민주당의 제19대 대선 후보는 이미 문재인 전 대표로 결정됐다고 보는 분위기가 압도적이다. 실제로, 문재인 전 대표는 영남권역 순회경선에서도 무려 128429표를 얻으면서 득표율 64.7%로 1위를 기록해 승세를 완전히 굳혔고 마지막 수도권-강원-제주 경선에서도 1위를 차지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사실, 이번 경선이 문재인 대표에게 집중되는 이유는 정권교체에 대한 열망과 국민적 여론이 그 어느 때보다 높기 때문이다. 촛불시민들이 촛불을 들어 박근혜탄핵했는데도 불구하고 기존의 새누리당 세력이 또 다시 집권하게 된다면 큰 허탈감을 느낄 수 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다. 자유한국당바른정당의 개입 없이는 양자구도 또한 불가능한 실정이다.

그러나, 절대 투표하지 않을 인물들 중에서도 홍준표에 이어 2위에 올라서 포용력이 관건이긴 하다. 그러나 이는 문재인이 현재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어 타 후보 지지자들의 집중견제를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결과다.

2017년 4월, 5자 대결과 3자 대결에서 모두 지지율이 40%를 돌파했다.

그리고 2017년 4월 3일, 더불어민주당 완전국민경선제에서 득표율 과반 이상을 승리하면서 대선 후보로 확정되었다.

이후, 안철수와 양강구도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우선 경선 과정에서 문재인 지지자와 안희정, 이재명 지지자와의 공방이 크게 작용하였기 때문이다. 문재인 지지자들은 특히 다른 경선후보 지지 의원들에게 18원 후원금이나 문자 폭탄을 보냄으로써 그들에게 상처를 안겨주었고, 이는 선대위 구성에서 박영선, 변재일 의원이 선대위 합류를 거부하고 김종인 의원이 탈당을 하며 이언주 의원이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하고 국민의당으로의 입당을 결정하게 되는 배경으로 작용하였다. 결국 이로 인해 문재인 후보는 안희정 후보의 지지율과 이재명 후보의 지지율을 온전히 흡수하지 못하게 되었다.

두 번째로, 중도층을 제대로 흡수하지 못한 것이 작용하였다. 사실 문재인의 지지율이 상승한 것은 박근혜라는 존재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그러나 박근혜가 구속되고 나자 이제는 적폐청산 외에도 다른 것을 제시할 필요성이 있었다. 그러나 문재인 본인과 문재인 캠프에서는 그러한 방안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했다. 결국 이러한 것이 작용하여 안철수와 양강구도를 형성하고 말았다. 세 번째로, 아들 문준용 씨에 대한 특혜 채용 의혹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단지 네거티브 전략으로 치부한 점이 작용하였다.(하지만 국민의당 제보조작사건이..) 박근혜 탄핵을 계기로 후보 검증을 더욱 면밀히 하게되는 유권자들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문재인의 모습에 실망한 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7]

이후 문재인과 문재인 캠프에서는 전략을 바꾸어 안철수보다 더 나은 정권교체라는 캐치프라이즈를 내걸고 있으며 국민의당보다 더 많은 의석 수, 참여정부에서의 참모 경험, 4년 전에 제18대 대통령 선거에 나선 만큼 충분히 검증된 후보라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또한, 문재인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에 법적 대응도 하고 해명도 적극적으로 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리고 중도층을 포용하기 위해 안희정, 이재명과 호프 타임도 가지면서 화합을 다지는가 하면 그 캠프에서 일했던 사람들을 선대위에 인선하였다. 또한, 여러 정책과 공약을 계속 내놓고 있는 상황이다. 비문중진에서 이종걸은 물론이고 백의종군까지 선언했던 박영선, 변재일까지 선대위에 끌여들여서 친문패권 논란도 종식시키는 상태.

한동안 무섭게 안철수의 지지율이 문재인을 추격했지만, 토론 후에 실시된 여러 여론조사들을 보면 다시 차이가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안철수의 압도적인 경선 승리로 인해 컨벤션 효과가 생겨 지지율이 급상승했다가 다시 원위치 하고 있다는 해석도 있다.

2.2. 자유한국당 - 홍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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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54년 12월 5일, 경상남도 창녕군
현직 없음[8]
17대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4위
상황 대선 최종후보 등록

한나라당 대표이자 경상남도 도지사. 한때 차기 대선 후보에 오르기도 했으나 무상급식 중단 정책성완종 스캔들에 연루된 뒤로는 심한 이미지 손상을 당한 후 하락세. 심지어 지방자치단체장에게는 사실상 탄핵에 해당하는 주민소환이 고려되기도 했을 정도. 다만 실제로 주민소환이 이뤄지지는 않을 전망이 높다. 기사 여러가지 이슈가 계속해서 부딪히는 만큼 대선 행보를 지속하기에는 어려울 가능성이 높았다.

만약에 주민소환이 실현됐으면 그냥 정치 생명 자체가 끝났을 지도 모른다다. 애초에 성완종 게이트 때문에 재판에 불려다니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으며, 대법원까지 간다는 가정 하에서 대선까지는 재판도 다 끝나지 않게 되었다. 2016년 9월 8일에야 1심 판결이 나올 예정이었다. 원인은 홍준표 지사가 업무 관계로 출석을 계속 연기했기 때문. 같이 게이트에 걸린 이완구 전 총리가 한 발 먼저 판결이 나온 1심에서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의 유죄 실형이 나와버린 것도 부담이었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이후 여당 지도부를 맹공격하여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경남 일대에서의 여당 대패에 책임이 있는 홍준표 지사의 책임 돌리기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총선 결과 등으로 주민소환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주민소환투표 실시 여부를 결정할 마지막 절차인 보정서명지 열람·이의 신청이 시작되어 2016년 9월 26일 주민소환투표 시행 여부가 결정될 전망이었다.

성완종 리스트의 수사로 인해 징역 2년을 구형 받았으며 처남 및 다른 주변인물들도 연달아 수사대상으로 올라간데다가 경상남도 지역주민들은 야권의 주도하에 홍준표 퇴진시위를 연달아 벌이고 있다. 9월 8일,서울중앙지법으로 부터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 측으로부터 불법정치자금 1억원을 받은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이로써 홍준표는 사실상 대권 도전이 불가능해진 상태였으나, 2017년 2월 16일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아 일단 출마는 가능해졌다. 하지만 대선까지 얼마 남지 않았으며, 그 동안 성완종 리스트와 무상급식 중단 논란으로 인해 손상되었던 이미지를 짧은 시간에 어떻게 수습할 것인지가 과제. 게다가 연일 문재인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끊임없는 네거티브와 막말 논란을 일으키면서 지지율이 답보 상태를 보이고 있는 것도 문제였다.

하지만, 대선 출마 선언과 함께 지지율이 조금씩 오르기 시작하더니 황교안 총리의 대선 불출마 선언 직후 단숨에 보수진영 1위로 발돋움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래봐야 7%라는 게 함정.

이러한 급등에는 처음엔 반기문을 지지했다가 그가 대선 불출마 선언을 하자 황교안으로 옮겨가고, 또 황 총리가 대선 불출마 선언을 하자 갈 곳을 아예 잃어버린 보수 성향 지지율을 홍준표가 물려 받았기 때문인데 반기문, 황교안이 아직 대선 주자로 존재할 당시엔 홍준표의 존재감은 상당히 희박했다. 결국 보수 측 1위의 대권 주자들이 줄줄이 대권 포기를 선언하면서 이를 대체할 존재가 된 것이다.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홍준표 후보의 숨겨진 강점은 그를 싫어하는 진보 성향의 사람들이 그가 대선에 출마하면 경남지사직을 내놓고 본선에서 뛰어야 하므로 새 경남지사를 뽑을 수 있게 저 사람을 밀자는 말을 듣고 있다는 점이란 우스갯소리가 있다(...)# 이건 김진태 의원도 마찬가지라 카더라

다만, 홍준표 본인은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로 확정되더라도 경남도지사 재보궐선거가 없도록 최대한 늦게 사퇴할 생각이라고 한다.# 현재 자유한국당의 후보 중 친박계의 조직력에도 불구하고 경선에서 압도적으로 1위를 달리고 있고 범보수 후보 1위의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홍준표 후보가 한때는 친박계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유지했으면서도 당 내 강성 친박을 제외한 나머지 친박계에게 비교적 유화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고 그나마 친박 성향이 옅은 정치인이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서도 날선 비판을 자제하고 있다는 점, 또한 이재명이 사이다 발언과 행보로 진보 지지층에게 어필했던 것처럼 보수층에게 먹히는 사이다 발언을 하고 있다는 점[9]이 선효과를 내기 때문으로 보인다.

홍준표는 박근혜에 대해 비판적인 발언을 여럿 했으며 강성 친박에 대해서도 '양아치 친박, 박근혜 치마폭 붙잡고 의원직 하나 얻어보고자 하는 사람'이라고 말을 하였다. 또한, 홍준표 자신이 친박계에 의해 당 대표 자리에서 쫓겨난 전력이 있기 때문에 친박계에 대한 감정이 좋으려야 좋을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친박계가 다수파를 차지하게 된 당 특성상 강성 친박을 제외한 나머지 범친박계에 대해서는 유화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으며 실제로 그것이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그리고 더불어민주당으로 대선판이 기울어진 상황에서 보수 단일화가 그나마의 타개책인데 이를 위해서라도 당 지도부 입장에서는 홍준표가 최종 대선 후보가 되어야하는 상황이다.

실제로 친박 집회에 적극 참여하고 강성 친박계에 속하는 이인제, 김진태 후보의 경우 바른정당과의 단일화에 상당히 부정적이며 보수 단일화에 동의하는 김관용 후보도 친박계의 이미지가 상당히 강해 세 후보 중 하나가 최종 후보가 되면 보수 단일화는커녕 외연 확장도 못한 채 보수 궤멸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실제로 보수 단일화를 이전부터 주장해왔던 유승민조차 친박의 지지를 받고 있는 후보와는 단일화 할 수 없다고 못을 박은 상황이다. 자유한국당 지도부도 이러한 상황을 알고 있기 때문에 친박계에 대해 비판적 태도를 가지고 있으며 바른정당과의 단일화에 용이한 홍준표를 밀어주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고 또한 최종적으로 당 대선 후보가 되기를 바라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홍준표 본인 역시 무당파 중도층, 그리고 진보 지지층에 대한 확장력이 무척 약하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보수 단일화를 통해서 보수 쪽 표를 결집시킬 수 있을진 몰라도 무당파 중도층과 진보 지지층의 눈쌀을 찌푸리게 할 만큼 홍준표 본인 스스로도 그동안 어그로를 많이 끌어왔기 때문에 그간의 발언이나 행적들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면 이런 지지층에게까지 어필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생긴다.

게다가 홍준표가 다른 지자체들은 멀쩡하게 돌리고 있는 무상 급식 정책을 홀로 중단시켰을 때 경상남도에서는 '이제 경상남도에서 새누리당 생명은 끝난 줄 알라'는 극언까지 나왔을 정도로 반발이 심했고 그 여파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전한다. 홍준표의 무상 급식 중단 때문에 엉겁결에 급식비 부담까지 짊어지게된 30대~40대 경남도민들이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로 나온 홍준표를 '미워도 다시 한 번'이라는 마음으로 찍어줄 것인지, '이날만을 기다려왔다'는 마음으로 '보복 투표'를 할 것인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자유한국당 19대 대선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당원 1위(61.6%), 여론조사 1위(46.7%)를 득표해 합산 1위(54.15%)로 대통령 후보로 확정되었다.#

홍준표가 이번 대선에서 큰 활약을 할 수 있을거라 보는 시선도 존재한다. 우선 '모래시계'로 알려진 유능한 검사 이미지, 박근혜와 거리를 둬서 친박의 이미지가 없다는 점, 국회의원, 도지사 등 공직 선출 경험이 많다는 점, 보수지지층이 보다 확실한 보수색을 가진 후보를 원한다는 점, 한국을 둘러싼 강대국들의 지도자들처럼 '스트롱맨' 이미지를 갖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하지만 잦은 막말 논란, 표의 확장성, 또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새누리당이 배출한 박근혜 전 대통령이 파면 후 구속이 된 상황까지 왔다는 점, 성완종 리스트와 관련해서 대법원 판결이 남아있다는 점[10], 바른정당과의 보수 단일화를 위해서는 친박 청산이 필수적인데 홍준표가 이것을 거부하고 있다는 점 등으로 인해 오히려 가시밭길이 될 것이리는 전망이 많다.[11] 심지어 중도로 분류되는 국민의당과는 연대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라, 범보수 단일화를 꾀하고 있는 자유한국당 내부에서도 반발이 일어날 지경. 심지어 국민의당 유력 후보인 안철수에게는 '얼치기 좌파'라며 여러 차례 비난하기도 했다[12]

선대위는 중앙선대위 대신 지역선대위를 기반으로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애초에 인명진 비대위원장을 선대위원장으로 모시려 했으나 본인이 고사하고 비대위원장에서도 사퇴하여 없던 일이 되었다. 대신 당대표 권한대행 및 원내대표 정우택을 공동선대위원장으로 발탁하고, 여러 인물을 영입할 예정이라고 한다.

홍준표 본인은 현재 1987년 대통령 선거 모델을 생각하면 승산이 있다고 보고 있다. 즉, 유승민과의 단일화를 이루어 보수 1명 대표주자로 자신이 나서며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민주당 문재인 후보, 정의당 심상정 후보 이렇게 4자 구도로 나서면 자신이 승산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것도 함정이 존재한다. 당시 전두환 정권은 독재정 치로 인해 민심을 잃었지만 그래도 경제 하나만큼은 좋았으며 외교 면에서도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유치할 정도로 괜찮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박근혜자유한국당은 경제, 외교면에서 완벽한 낙제점을 받았다.[13] 따라서 1987년 민주정의당 상황은 그냥 양반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자유한국당에 대한 평가는 한마디로 최악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뭔가 획기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지지율이 오르는 등의 반등의 기회는 점점 멀어질 것으로 보인다.

특이한 공약으로 대한민국 해병대를 해군 예하에서 완전히 독립시켜 제4군으로 만들고 해병대사령관을 각군 참모총장과 동급으로 하며 육군특수전사령부, 해군 특수전전단대한민국 해병대 산하에 통합시켜 미국의 미합중국 해병대USSOCOM의 기능을 합친 것처럼 각종 특수작전, 전략기동작전을 전담하는 해병특전사령부로 개편하겠다는 공약이 있다.기사 그대로만 이뤄진다면 대한민국 해병대 예비역들의 숙원사항이 한꺼번에 이루어지는 일이라 해병대 예비역들의 지지도가 어느 정도 나올지 주목된다.

사실 홍준표가 머리가 나쁜 정치인이 아니라는 걸 볼 때, 문재인, 안철수 등 진보 진영의 집권을 막거나 막지 못하더라도 자유한국당바른정당의 합당을 통해 위기에 처한 보수정당 재건을 위해 출마한 것이라 보는 시각도 있다. 즉 본인이 유승민과의 단일화를 통해 완주하면, 문재인, 홍준표, 안철수 3자 구도로 흐름이 흘러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홍준표로 보수, 중도층 유권자가 옮겨 갈 가능성이 있다. 무엇보다 홍준표는 박근혜를 예전부터 비판한 인물이다. 당선까지는 어렵더라도, 그가 의미있는 득표를 기록한다면 대선 후 두 보수정당이 하나로 합쳐질 수 있는 발판이 만들어진다. 또 더불어민주당에게 뺏긴 원내1당의 자리를 되찾을 수 있다. 결정적으로 박근혜 게이트가 어느정도 마무리 되면서 두 당이 더는 떨어져 있을 이유 또한 사라졌다.

그러나 아직도 자유한국당의 절대 다수는 친박 계열이라서 비박 계열로 구성된 바른정당이 자유한국당과의 재결합을 원할 가능성은 낮다. 애초에 유승민을 포함한 바른정당 후보들의 주장은 보수 성향 후보끼리의 단일화이지 합당이 아니며, 그나마도 홍준표바른정당을 두고 '스스로 떨어져 나간 사람들'이라면서 부정적으로 보는 상황에선 후보 단일화조차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다. 더군다나 당 내에서도 강성 친박 세력들은 바른정당과의 합당은 배신자를 끌어들이는 꼴이라며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고 실제로 이에 반발해 조원진 의원이 탈당하였다. 국민들의 맹렬한 비난을 받는 홍준표를 바른정당이 포용할 가능성도 낮다. 홍준표가 출마를 선언한 이유가 뭐든지 간에, 보수정당을 재건해봤자 별로 지지도 못받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박근혜 정권의 총 4년 동안 보수주의 정당이 집권하면서 대한민국의 문화, 경제, 정치 부문에서 전반적으로 크게 후퇴해서 이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가 극에 달한 상황에서 대놓고 보수주의를 자처하는 정당은 한동안 고전을 면치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꿈 깨

또한, 홍준표와 자유한국당은 강성 친박 중 하나인 조원진 의원이 자유한국당을 탈당하고 새누리당에 입당하여 대선 후보로 출마한 상황으로 인해 골머리를 앓게 되었다. 홍준표는 강성 친박 세력을 지지대열에서 이탈시키지 않기 위해 박근혜가 파면되고 구속되자 친박은 더 이상 없다며 바른정당이 보수 단일화의 필수 요건이라고 요구한 친박 인적청산도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선대위나 당직 중요기구에 친박들을 대거 기용했다. 그러면서도 바른정당과의 합당을 추진하여 보수단일화를 성사시키고자 했다. 그러나 이러한 두 가지 카드 모두 바른정당의 완강한 거부[14], 조원진의 탈당과 대선 출마로 인해 보수 단일화도, 집토끼인 강성 친박 세력을 지키기도 어렵게 되어 홍준표자유한국당의 계획이 타격을 입게 되었다. 물론 강성 친박 의원들은 현재까지 추가 탈당은 없을 것이라고 했지만 상황에 따라 추가 이탈이 있을 수 있어 홍준표자유한국당은 더 어려운 상황에 처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역설적으로, 이탈이 더 빨라질 경우 바른정당이 줄기차게 요구해오던 친박 청산이 자동적으로 이뤄질 수도 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는 이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대선에서 이길 방법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인식하고 있는지 보수성향 유권자들에게 찍고 안 되면 같이 죽자며 동반자살을 권하고 있다(...). 출마 전부터 뇌물죄로 유죄를 받으면 자살검토하겠다고 하는 등 죽음을 가볍게 여기는 발언으로도 상당한 반감을 사고 있는 중.[15]

2.3. 국민의당 - 안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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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62년 2월 26일, 경상남도 밀양군[16]
현직 국회의원 (서울 노원구 병)[17]
18대 최종 미등록 예비후보 (무소속)
상황 대선 최종후보 등록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무소속 후보로 활동했었고, 새정치민주연합의 전 대표이자 국민의당 전 상임 공동대표.

2012년 대선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민주통합당의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며 스스로 후보직을 사퇴했으며, 이후 새정치연합을 만들어 활동하다가 민주당과 합당, 김한길과 함께 새정치민주연합의 공동 대표가 된다. 공동대표가 되고 3개월 후 제6회 지방선거를 이끈다. 바로 한 달 후 치뤄진 2014년 7월 재보궐 선거 참패의 책임을 지고 대표직을 사퇴했다. 심지어 당시 텃밭이었던 순천시곡성군에서 현재 새누리당 대표이자 친박계인 이정현에게 개발살났다. 2015년 12월 13일, 새정치민주연합 탈당을 결행했다. 그리고 국민의당을 창당했다. 2016년 8월 28일, 정치를 바꾸고 국민의 삶을 바꾸고 시대를 바꾸라는 명령을, 국민의당을 중심으로 정권을 교체하라는 명령을 반드시 이룰것을 선포하며 공식적으로 19대 대선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번 박근혜 탄핵 정국에서 대권주자들 중에서 탄핵을 주장한 시점이 빠른 편이지만, 그리 주목 받지 못하였다. 또한 그 과정에서 당 장악력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특히 새로운 원내대표로 호남계 인사가 당선되면서 그의 입지가 좁아진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제기되었다. 그 이후 당대표 마저 박지원이 당선되면서 당 내 입지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보여 출마 전선에도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였다. 국민의당이 사실상 호남 지역당으로 바뀌면서 안철수의 행보도 불투명해졌다.

반기문이 설 이후 사퇴할 것이라고 했는데 적중했다. 반기문과 지지층이 어느 정도 겹치는 관계로 이득을 볼 가능성이 있다. 단점으로는 사드에 대한 말바꾸기 논란, 당의 주도권을 뺏긴 것처럼 보이는 무능한 이미지, 정체성의 모호함 등을 꼽을 수 있겠다. 2016년 11월 20일에 열린, 야권 대권주자들의 "비상시국 정치회의"에서 8명 중 1명으로 참여하였다. 2017년 초부터 이번 대선이 문재인과 자신의 양강구도가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반기문의 불출마 이전까지만 해도 희망사항이라고 여겨졌지만 황교안이 불출마한 현재 문재인과의 양강구도가 될 가능성이 높아진 편이다. 양자대결 지지율 차이는 2.4%까지 좁혀졌다.

다만,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양강구도가 되려면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이 후보를 선출하지 않거나 안철수와 후보 단일화를 해야 하는데 정당이 대선 후보를 선출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상 정치를 포기하겠다는 선언에 가깝기 때문에 가능성이 매우 희박했으며, 이미 두 보수정당은 후보를 선출해서 완주를 결심한 이들이다. 또한, 후보 단일화를 하기에도 안철수와 자유한국당, 바른정당은 정치노선이 다른 점이 많다. 그리고, 국민의당 지지층에서도 적폐세력과 야합을 한다는 배신자 이미지가 생길 수도 있어서 역효과가 날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안철수 본인은 자강론을 앞세워서 후보 단일화는 절대로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3월 25일 첫 경선인 광주/전남/제주 지역 경선에서 60.69%로 압승했다.

3월 26일 전북 지역 경선에서 72.63%의 득표율로 초압승했다. 이로 인해, 이변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안철수가 국민의당의 대선 후보가 될 것으로 보였으며 최종 후보가 되었다. 여론조사에서도 안희정을 제치고 2위를 되찾았다. 비교적 중도로 꼽히는 안희정의 후보 가능성이 희박해지자 안철수 쪽으로 옮겨왔다는 시각도 있고, 국민의당 경선이 호남에서 의외의 흥행 대박을 터뜨리며 존재감을 과시하여 반문 정서가 강한 지역에서 문재인 대항마로 의외의 지지를 얻고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철수의 경선 상대인 손학규와 박주선은 지지율이 사실상 0%에 가까운 후보들이라 큰 의미가 없다는 시각도 존재했다.

안철수는 사면심사위원회를 활성화하여 대통령의 사면권한 남용을 막아야 한다고 인터뷰 하였고, 그 과정에서 기자가 박근혜의 사면에 대해 물었을 때 '국민이 원한다면 위원회에서 다룰 내용'이라 발언하였다. 일각에서는 '박근혜를 사면하려는 것' 아니냐며 반발하였고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안철수의 발언을 강도 높게 비난하였다. 국민의당과 안철수측은 이에 반발하며, 대통령의 사면권한 남용방지를 위한 원론적인 입장표명에 대한 악의적인 왜곡, 비방을 중지하라고 대응했다. 이에 대해 다시 안철수를 비판하는 측은 '국민이 원한다면 위원회에서 다룰 내용' 이라는 발언에서 "국민이 원한다면 이라는 전제가 모호하며 후에 다시 말 바꾸기를 하려는것 아니냐"며 안철수를 비판했고 이에 다시 안철수의 발언을 옹호하는 측은 국민여론을 수렴하여 사면위원회가 결정할 일이며 이미 국민여론 절대 다수가 사면을 결사 반대하고 있기 때문에 박근혜를 사면 할 이유도 없는데 단지 심사위원회에서 결정할 내용이라는 말을 과장하여 마치 대통령의 사면권을 박근혜를 사면시키는데 사용하는 것처럼 왜곡, 비약, 과장하는 것은 문제가 크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오히려 이재명을 제외한 민주당 어느 후보도 박근혜 사면 불가 방침을 명확히 밝히지 않는 상황에서 내로남불식 네거티브 전략은 본인들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행위라며 반발했다.

민주당의 경선 결과가 발표되기 전날의 여론조사 결과에서 탈락이 유력하던 안희정, 이재명을 제치고 10개월만에 지지율 2위 자리를 탈환했으며 국민의당 경선결과 대선후보로 결정된 당일 저녁 여론조사 결과에서 단숨에 30%를 넘는 지지율을 얻으며 문재인과 함께 양강구도를 형성했다. 안희정과 이재명의 지지층을 다수 흡수하고 당선이 요원해 보이는 홍준표, 유승민의 대안으로 안철수를 주목한 보수층 유권자의 지지를 얻어서 이룩한 지지율이라는 분석이 많다. 하지만 확고한 지지층을 보유하고 있는 문재인에 비해서 현재의 지지율을 유지하는 것을 넘어 더 올릴 수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한때는 부인인 김미경 교수의 1+1 채용 의혹, 국민의당 경선과정에서 불법 동원 의혹, 조폭 연루 의혹 등의 악재가 겹치면서 전망이 약간 어두운 편이기도 했다. 그래도 2017년 4월 7일 기준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선 문재인의 지지율 38%, 안철수의 지지율은 35%로 겨우 3%p 밖에 차이가 안 난다.[18] 심지어 4월 9일 한겨레 여론조사에서는 37.7%로 동률이다. 게다가 조선일보와 KBS 여론조사에서는 다자구도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KBS 여론조사는 표본이 심각하게 편향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혹이 아이오와 주립대 통계학 교수[19] 에 의해 제기되었으며, 한겨레의 경우 이전에도 여론조사 공표금지 조치를 2번이나 받은 전력이 있다.

다만 이후 이루어진 리얼미터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단설 유치원 관련 논란으로 인해 지지율이 하락하는 추세. 대머리가지고 아재개그친 영향은 별로 없었나? 그리고 수 많은 논란이 터지고 있음에도 본인은 물론이고 당까지도 효율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2.4. 바른정당 - 유승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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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58년 1월 7일, 경상북도 대구시[20]
현직 국회의원 (대구 동 을)
상황 대선 최종후보 등록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 원래 2007년 당 대표 경선에서 박근혜 캠프에서 활동해 원조친박으로 불렸다. 노선과 견해차이로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과 2012년 대선 직전 갈라서 언론 등에서는 소위 탈박이라고 부른다. 김무성 대표와 주거니 받거니 하며 적당히 청와대와 대립각을 세우는 그냥저냥 일 잘하는[21] 원내대표였으나 야당과 합의하여 국회법 개정안[22]을 통과시킨 이후 여당과 청와대 간의 갈등이 일어났고, 2015년 6월 25일 박근혜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통과를 주도한 그에게 배신의 정치를 운운하며 폭탄발언을 날림으로써 순식간에 친박비박간의 갈등의 중심 쟁점으로 거론되고 있다. 결국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했지만 사퇴 연설에서 박근혜 대통령저격하는 듯한 발언을 하여 상당히 요란하게 사퇴했다. 그러던 중 3월 23일, 공천 문제와 관련하여 탈당을 선언했다. 이후 김무성의 옥새런 사건을 통해 그가 출마한 대구 동구 을이 새누리당 무공천 지역이 되었고, 20대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무난히 당선되었다. 친박과의 갈등으로 복당이 요원해보였으나 6월 16일 비대위의 결정으로 전격적으로 복당이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서도 친박 비박간 갈등이 있었다.

진보 계열에서도 소위 '말이 통하는 보수' 라고 불리며 반감이 적다는 것 또한 강점이었다. 그러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정치적인 이미지에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 최순실의 국정 농단이 알려지면서 최소한 2007년부터 박근혜의 연설문이 당 외부의 어딘가를 거쳐서 수정되었다는 의혹이 다시 제기되었다. 이때 2005년 박근혜 당대표 비서실장으로 10개월 일하고 2007년 박근혜 대선캠프 정책메세지단장을 역임하는 등 원조친박이었던 유승민이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낄 수 밖에 없지 않냐는 것이 쟁점이었다.[23] 거기에 박근혜의 정치적 기반인 TK 지역에서는 이미 배신자로 낙인찍혀 큰 지지를 얻기 어렵다는 단점도 있었다.

다만 지지율이 고만고만한 여당내 대선주자 중에서는 가장 주목받고 있기에 당권을 장악하고 개혁을 주도한다면 TK의 적자로 부상할 수도 있는 상황이기도 했다. 1월 26일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2월 1일 반기문 전 UN 사무총장이 대선 불출마를 공식 선언함에 따라 강력하게 부상하는 대선 후보로 점쳐졌다. 기존 반기문이 소유하고 있던 보수 지지세를 등에 업을 수 있고, 본인이 추구하는 이미지 또한 반기문 보다 좀 더 젊고 진보적인 보수 이미지를 추구하기 때문에 대선 후보로서 유리해진 상황이었다. 그러나 계속해서 자유한국당을 포함한 보수 후보 단일화론을 주장하면서, 탄핵 정국 이후 자유한국당에 대한 반발이 극에 달한 기존 야당 지지층은 물론 중도~중도보수층의 지지도 얻지 못했으며, 지지율도 3~4%에서 머무르는 상황이었다. 극우에 가까운 보수는 투표를 안하면 안했지, 바른정당을 지지할 생각을 안하고 중도층에게는 안철수가 인지도가 높기에 자유한국당과 국민의당에게 샌드위치를 당하는 신세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2017년 3월 28일, 바른정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었지만 과연 완주를 할 것인지에 대해 많은 국민들이 의구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유승민에게 이번 대선이 자신의 이름값을 올릴 기회라는 점, 보수진영에서 후보가 나오지 않는다면 재기가 어렵다는 점, 국민의당과는 사드 문제 등 생각의 차이가 크다는 점 때문에 결국 완주. 자유한국당 후보와의 단일화를 통해 문재인 vs 유승민 vs 안철수 vs 심상정 4파전으로 갈 가능성도 있었으나 이미 시한을 넘겼으며, 유승민 본인은 단일화를 철저히 반대했다. 즉 빠른 시일 내에 지지율을 올리는게 관건이기도 했다. 일단 대선 후보가 된 이후에는 '원칙없이 대선만 바라보는 단일화는 옳지 않다' 며 기존의 연대론에서 신중론으로 물러섰고, 홍준표와도 신경전을 벌이는 등 좀 더 강한 어조의 발언을 하기 시작했다.

이번 대선이 문재인 vs 안철수 구도로 가게 되면서 보수 지지층 입장에서는 자신들을 대변할 후보가 없는 충격적인 상황이 벌어졌다. 보수 지지층이 안철수로 갈 수 있다는 말도 나왔으나, 안철수는 박원순을 지지하며 정계에 입문했고, 지난 대선에선 문재인과 단일화를 이룬 엄연한 중도 진영 후보다. 또 안철수와 국민의당의 지지기반은 호남이다.[24]

즉, 유승민 입장에선 자신이 책임있게 완주를 하는 것만으로도 보수 지지층에게 새로운 희망을 줄 수 있는 상황에 놓였다.

5월 초 바른정당 의원 13명이 탈당했다. 이후 의원 2명이 탈당을 번복하여 원내교섭단체는 유지하였으나 당내 분란을 수습하지 못한 유승민의 리더십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탈당 사태는 유승민에 대한 동정론을 이끌어내어 가입 당원 수가 급증하고 후원액이 늘었으며 더민주와 정의당 같은 진보계열로부터도 응원을 받게 되었다.[25] 이어 딸인 유담이 성추행을 당하면서 유승민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대중발언도 늘어났지만 해당 여론은 여론조사 공표 금지 기간에 형성된 것이어서 실제 지지율에 얼마나 영향을 줄 것인지는 알 수 없다.

2.5. 정의당 - 심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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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59년 2월 20일, 경기도 파주군[26]
현직 국회의원 (경기 고양 갑)
17대 민주노동당 대선후보 경선 2위
18대 최종 미등록 예비후보 (진보정의당)
상황 대선 최종후보 등록

제20대 국회의원 선거고양시에서 야권의 분열에도 불구하고 대승을 거두어 진보정당 최초의 3선 의원이 되었다.

20대 총선에서 더민주와의 야권연대가 불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54%의 높은 득표율로 당선되며 본인의 높은 확장성을 입증했다. 그러나 정의당 전체의 성적표는 현상유지 정도에 머물렀기에 대선 경쟁력을 입증하기엔 한발 모자랐다는 것이 아쉬운 점이다. 그러나 선거구 확정 과정에서 비례의석이 깎여버린 점을 감안하면 동정의 여지는 있는 편이다.

박근혜 탄핵 소추 과정에서 야당 3당 공조를 이끌어낸 커맨더 역할을 휼륭하게 수행하며 지지율과 인지도가 올랐고 팬클럽도 생겼다. 2016년 11월 20일에 열린, 야권 대권주자들의 "비상시국 정치회의"에서 8명 중 1명으로 참여하였다.

1월 19일 공식 출마선언을 하였고, 노회찬이 대선 불출마를 선언함에 따라 정의당의 대선 후보가 됨이 확실해졌다. 출마선언문 여론조사 시행때 마다 점차 점차 지지율이 올라가기 시작하며 대권주자로써 자리매김을 했다. 이후 2월 16일 경선 결과, 강상구 후보를 꺾고 정의당의 대선 후보로 확정되었다. 이로써 심상정 대표는 두 번 연속으로 진보정의당-정의당의 대선 후보로 선출되었다.

본인이 이번 대선 완주를 하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에 토론회에도 출연했다. 애초에 이번 대선에서 정권교체는 거의 확실하다고 보기 때문에 본인의 완주가 정권교체에 방해가 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면서, 본인이 앞서 두 차례의 양보(대선, 경기도지사 선거)를 통해 얻은 교훈이 '양보는 포장된 패배'라는 교훈을 얻었다며 완주 의지를 지속적으로 피력했기 때문에 실제로 완주했다. 정의당의 세력을 더 키우기 위해서도 완주가 필요하다는 입장. 심상정 본인은 당연히 대통령이 되기 위해 출마했다고 얘기하며, JTBC 뉴스룸에 출연했을 때 손석희가 당선 가능성이 낮은데 왜 나왔냐고 묻자 시작도 안했는데 왜 단정짓느냐며 불쾌하다는 식의 답변을 해서 손석희가 바로 사과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지속적으로 대선 공약을 발표하면서도 자유한국당에 대한 비판은 멈추지 않았다. 정의당 지지율이 바른정당에게 앞서거나 혹은 호각세를 이루는 기분 좋은 상황에서 만약 본인이 홍준표 후보에게까지 승리해야 진정한 정권교체라고 얘기할 정도. 또한 박근혜 사면론에 대해 안철수에 대해 비판하면서 정치적 선명성을 가져갔다. 정치적 스탠스는 이재명 민주당 예비 후보와 비슷하게 가져가면서, 이재명 후보가 경선 낙선시에 약간의 지지율 상승을 노려볼 만도 했다.

최근 지지율이 상승하고 있다. 유승민은 일찌감치 넘어섰고, 10%를 향해 나아가는 중이라 무시할 수 없는 세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의 역대 선거 중에서 진보계열 정당은 항상 찬밥신세를 면치 못했고, 그나마 가능성이 있었던 권영길도 10%를 넘지 못했던 역대 대통령 선거를 보면 상당히 고무적인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보수정권에 대해 극도로 싫어하는 국민들의 감정과, 차츰 청년, 젊은 세대들이 진보-보수라는 프레임을 깨고 오로지 자신의 주관에 따라 투표하는 경향이 늘어났다는 것을 증명한다. 과거 진보정당들은 항상 종북, 빨갱이라는 오명 아래 활동조차 제한받았던 시대도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문재인은 종북, 심상정은 극좌, 유승민은 배신자라는 비난을 아직도 받고 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과거 반공주의라는 이데올로기에 물들었던 60대 이상 극단적 보수층들만 하고 있고, 지금 대한민국을 이끄는 대부분은 이데올로기에 구속받지 않는다.

여기까지 꼼꼼히 읽었다면 밑 문단부터는 읽을 필요가 없다.

2.6. 새누리당 - 조원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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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59년 1월 7일, 경상북도 대구시[27]
현직 힐러 국회의원 (대구 달서구 병)
상황 대선 최종후보 등록

소위 삼성동계로 칭해지는 강성 친박계의 일원이며 새누리당 창당대회에 참석해 축사를 했다.

현재의 새누리당은 친박단체 탄기국/박사모 측에서 독자적으로 결성한 정당으로, 자유한국당으로 개칭한 구 새누리당과는 전혀 계보가 다른 정당이다. 다만, 완전히 다른 정당이라고는 보기 힘든 것이 새누리당에 자유한국당 극성 친박이 가담할 수도 있다. 더불어, 사실상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 지지자들중 강경파들이 모여서 만든 원외 프리덤 코커스 같은 존재라서 완전히 다르다고 보기는 힘들다.

4월 8일 개최된 탄핵 반대 집회에 참석해 자유한국당을 얼치기 우파 정당이라고 비난, 탈당을 선언하였다. 새누리당 합류 이후 출마가 유력해졌으며, 정광용 탄기국 대변인 역시 "국회의원이 있는 정당과 없는 정당은 하늘땅 차이로 다르다"며 "여러분이 말씀하시는 분을 영입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최선을 다했고 그 분이 오늘 여기 나오셨다"고 밝혔다.
그리고, 조원진은 자유한국당을 탈당하고 새누리당에 입당할 것이라고 밝혔다.#

새누리당 대선후보로 최종 추대되었다. 이로 인해 홍준표자유한국당은 어느 정도 타격을 입게되었다. 가뜩이나 홍준표는 2위로 최종 경선에서 탈락한 김진태의 지지율을 온전히 흡수하지 못한 상황에서 탄핵 반대세력을 달래고자 박근혜를 옹호하는 발언을 했으며 친박계를 선대위나 당직에 대거 등용하기도 하였다.[28][29]

하지만 조원진의 대선 출마에 대한 여론은 싸늘하다. 심지어 극우 신문인 뉴스타운마저 조원진의 대선 출마를 대차게 까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탈당과 대선 출마로 인해 강성 친박 지지자들의 일부가 이탈할 것이 예상되면서 자유한국당의 후보 홍준표의 상황은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되었다. 결국 자유한국당은 다급해진 나머지 새누리당바른정당은 함께 가야할 존재라며 보수대연합을 하자고 제안했지만 지지자들의 성향도 다르고 오히려 역효과만 날 것이 뻔한 단일화를 양쪽이 응할 가능성은 현저히 낮아졌고 조원진 본인도 완주를 선언했다.[30]

2.7. 경제애국당 - 오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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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57년 8월 21일 (59세), 제주도 남제주군[31]
현직 하하그룹 회장
상황 대선 최종후보 등록

의료기 제조회사인 하하그룹 회장. 가정용 대장 세척기를 개발하여 국내외에서 특허를 받고, 대한민국 유망 중소기업 대상을 비롯한 다수의 수상경력을 보유한 기업인이다.

대선후보 등록 마감을 겨우 열흘 앞둔 2017년 4월 6일, 경제애국당 소속 후보로 대선 출마를 선언하여, 최종후보로까지 등록했다. 본인이 말하는 출마 동기를 보면, 경제애국당원들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의 설득과 권유를 받고 "대한민국을 경제대국, 잘사는 나라, 행복한 나라로 만들고, 대한민국을 시작으로 전 세계, 전 인류가 잘 살고 행복한 지구촌, 전쟁 없고 분쟁 없는 지구촌"으로 만들기 위해 출마를 결심했다고.

2.8. 국민대통합당 - 장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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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63년 9월 5일, 전라남도 고흥군
현직 국민대통합당 대표, 세계와 동북아 평화포럼 대표
상황 대선 최종후보 등록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재택 비서를 거쳐, 16대 총선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17대 대선 과정에서 국민선택이라는 정당을 창당하여 대선에 출마하고자 했으나 실패했다. 가장 최근에는 TV조선에서 장성민의 시사탱크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였으나 진행 능력에 논란이 제기되면서 하차한 상태. 2016년 12월 21일, 광주광역시에 위치한 5.18 국립묘지를 참배하고 2017년 1월 17일, 출판기념회를 통해 자세한 구상을 발표하겠다고 선언했다.

국민의당에 입당해 안철수와 경선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5.18 민주화 운동 폄훼 발언 논란으로 인해, 당내 국회의원 39명 중 23명이 호남을 지역구로하는 국민의당은 호남 여론을 의식하여 입당을 유보하였고, 결국 국민의당 입당이 불허되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집사로, 기독자유당을 만들었던 전광훈 목사가 지지를 선언한 후보이기도 하다.기독일보 합동헤럴드 뉴스앤조이

3월 27일, 그를 중심으로 창당된 국민대통합당 창당대회에서 대통령 후보로 확정되었다. 4월 3일, 정당 등록에 성공하여 무난히 기호 6~7번을 달고 본선에 진출할 것으로 보...였는데, 결과는 기호 8번.

5월 2일, 지지세력의 한 축이었던 전광훈기독자유당이 돌연 홍준표 지지를 선언하였다. 그것도 장성민에 대해서는 일언반구의 언급도 없이(...). 안습

2.9. 늘푸른한국당 - 이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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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45년 1월 11일, 강원도 강릉군[32]
현직 늘푸른한국당 공동대표
상황 대선 최종후보 등록

이명박 정부 시절 실세로 불린 친이계 좌장. 20대 총선친박계가 주도한 새누리당 공천에서 탈락하자, 탈당 후 무소속으로 자신의 지역구인 서울 은평 을에 출마했으나 낙선하였다.

그 후 복당하지 않고 최병국 등과 함께 중도 성향의 신당 창당 작업에 착수, 2016년 8월 10일 '중도신당' 현판식, 8월 16일 늘푸른한국당(약칭 : 늘푸른당) 당명 결정, 9월 6일 중앙관 창당준비위원회 발기인 대회를 거쳐 마침내 2017년 1월 11일, 정식으로 늘푸른한국당을 창당하였다.

2016년 말, 정계를 통째로 뒤흔들 핵폭탄급 정계개편 소요가 발생하자 정계 개편의 한 축으로 떠오를 것이 예상되었으나, 원외정당인데다 또다른 중도 성향 정당들인 국민의당바른정당과도 다른 애매한 포지션으로 인해 정치권 및 언론의 관심에서 다소 멀어진 상태.[33]

창당과 함께 손학규, 정운찬 등을 대선후보로 영입하고자 했으나 여의치 않자, 당 대선기획단은 2월 16일에 전체회의를 열어 이재오대선후보로 추대하기로 결의하였다. 마침내 2월 28일, 전체 당직자 연석회의에서 72명 중 67명(92%)의 압도적 지지를 받고 대선후보로 추대되었다. 3월 12일, 대선후보 추대를 수락하였고, 3월 20일에는 공식적으로 출마를 선언하였다.

15명 중 유일하게 반공법 위반 전과가 있다. 의외로 통일공약만큼은 정의당 수준으로 진보적인 공약을 내세워서 군소후보 토론회 최대의 승자였다는 평.

2.10. 민중연합당 - 김선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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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67년 9월 9일, 전라남도 고흥군
현직 배관공[34]
상황 대선 최종후보 등록

19대 국회의원 순천지역구 출신이었다. 국회에서 최루탄을 터트려, 마약류 및 총기류 소지 법률위반으로 국회의원직을 상실하였고, 그 공석은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에게 넘어갔다. 2017년 2월 27일 민중연합당 대선 후보로 출마를 선언했다. 당내 경선 예비후보로 단독출마, 사실상 확정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2017년 3월 25일, 투표 결과 대선후보로 확정되었다. 민중연합당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공식 발표에 의하면, 투표 방식은 온라인 투표와 ARS 투표를 통한 찬/반 투표였으며, 유효 선거권자 14,072명 중 10,148명(72.1%)이 투표했고, 김선동 후보는 온라인 투표에서 6,921표의 찬성표와 210표의 반대표, ARS 투표에서 2,756표의 찬성표와 261표의 반대표를 얻었다고 한다. 총 결과 찬성 9,677표(95.4%)를 득표해 민중연합당 제19대 대통령선거 후보자로 결정되었다. 생각보다 선거권자가 많다 4월 15일 이재오 후보와 함께 후보 등록을 했다.

2.11. 통일한국당 - 남재준[사퇴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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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44년 10월 20일, 경성부[36]
현직 없음
상황 대선 최종후보 등록 / 2017년 4월 29일부로 후보직에서 사퇴함

육군참모총장 출신 전직 국가정보원장으로 친박 인사였다. 비록 성향은 보수지만 비하나회 출신에다가 전두환 정권을 반대하여 진급이 누락되거나, 박근혜 정부 당시 청와대에 정윤회의 비선실세 보고서를 올렸다가 이틀만에 경질된 이로 상당히 다사다난하다. 경질된 이후 완전히 돌아선것인지, "내가 최순실을 알았다면 총이라도 들고 청와대로 들어 갔을것"이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종북좌파를 척결하고 자유민주주의를 만들겠다며 대선 출마 선언을 한 뒤 예비 후보로 등록했다. # 그렇지만 최대 흑역사인 국정원 간첩 조작 사건과 다소 논란이 있는 통합진보당 내란음모 수사 사건이 그의 국정원장 경력중에 존재하였으며,[37] 극우 성향인데도 친박도 아니라 대선에서 보수 진영의 지지는 요원해보였다.

최근에 친박 집회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며 김진태가 자유한국당 경선에서 낙선한 상황에서 구 친박 세력으로부터 약간의 지지를 얻고 있는 듯. 또한, 훌륭한 군인으로 존경받던 현역 시절의 행적[38]과 뚜렷한 안보관에, '바른말 하다 박근혜에게 내쳐진 사람'이라는 프레임이 박근혜에게 실망한 일부 보수층에게 오히려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하고 있는 모양이다.

게다가 새누리당과 그와 연관된 박사모, 탄기국 등이 그를 대선주자로 추대하자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박사모까진 아니더라도 골수 우파적 성향이 있는 이들이나 비박이지만 극우인 이들이 그를 지지하기 시작하여 보수 진영의 지지가 강해지고 있다. 유승민, 홍준표를 위협할지도 모른다는 분석이 나오는 수준. 하지만 최근에는 조원진이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되면서 열기가 식은 모습이다. 이에 대해 남재준 측은 입당을 제의받은 적은 있으나 대선후보 제의를 받은 적은 없으며, 이와 관계없이 무소속으로 대선을 완주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4월 14일, 통일한국당 대선후보로 추대되었다.

2017년 4월 29일부로 대통령 후보자에서 사퇴하며 홍준표 후보에 대한 지지의사를 밝혔다.#

2.12. 한국국민당 - 이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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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74년 1월 20일, 충청북도 단양군[39]
현직 한국국민당 대표
상황 대선 최종후보 등록

2015년에 윤영오와 함께 중도 성향의 정당인 한국국민당을 창당한 당 대표이다, 3·1 만세운동 정신을 계승한 민본정치, 중도정치 실현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한다.

민족주의에 중도 성향이지만 비례대표 발언 영상등을 보면 민족주의와 중도 성향은 온데간데 없고 재벌 개혁, 여성 청소년 인권, 노인 복지와 2030세대에 대한 지원을 강조하며 2030세대의 희생을 강요하고 복지를 멀리하며 찬성식 투표를 하는 현 세태가 문제가 있다고 비판하는 둥 중도라고는 해도 비교적 진보적인 입장이 우선인듯하다.

그렇지만 비례대표와 후보 본인이 의견이 같은지는 미지수이다. 당 홈페이지에 후보 모집이나 경선내용도 안 올라왔는데 등록된 것을 보면 사실상 확정인듯.

특이하게도 전과 5범이라는 화려한 기록이 있는데 이는 아래 김정선, 김환생의 3건보다 많으며 후보자중 최다 전과이다.(...)

2.13. 한반도미래연합 - 김정선[사퇴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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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58년 10월 28일, 서울특별시
현직 한반도미래연합 대표
상황 대선 최종후보 등록 / 2017년 4월 21일부로 후보직에서 사퇴함

2016년 보수친박민족주의 성향의 한반도미래연합을 창당, 당 대표로 활동했으며 현재도 당 대표이다, 2017년 3월 24일, 선관위에 대선 예비후보로 등록하였다.

한반도미래연합 대표 외에도 (재)제대군인지원정책연구원 원장/국방위원장/부이사장, 국방경제전략연구소 소장, UN산하(?) 세계재활기구(WRO)상임의장[41], (주)씨가드그룹 회장 등 직함이 상당히 많다.# 그런데, 이 단체들에 관한 정보를 알아보려고 구글링해 보면, 거의 비슷비슷한 링크에 다다르게 된다. 그나마 다른 페이지에서도 확인되는 단체는 제대군인지원정책연구원 정도. 나머지는 김정선이 만든 단체인 듯한데, 확인 바람

전과로 사기 2건에 근로기준법 위반이 있다.

2017년 4월 21일부로 대통령 후보자에서 사퇴하였다.#

2.14. 홍익당 - 윤홍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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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74년 2월 2일, 전라남도 광주시[42]
현직 홍익학당 대표
상황 대선 최종후보 등록

동서양 철학과 고전을 통한 윤리교육, 양심교육으로 알려진 인문학 단체 홍익학당의 대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자 2016년 11월 25일, "양심이 답이다"를 기치로 내걸고 당리당략이 아닌 양심으로 하는 양심정치, 분열과 대립이 아닌 정의로운 양심국가의 건설을 외치며 홍익당 창당준비위원회를 결성하였다. 창당발기 취지문 2017년 3월 26일에 창당대회를 열었으며 4월 10일에 정당등록되었다.

2017년 4월 7일, 대통령선거 예비후보로 등록하였다. 주요정책 및 공약이 홍익당 홈페이지후보 공식사이트에 올라와 있으니 참고 바람.

2.15. 무소속 - 김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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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58년 2월 4일, 서울특별시
현직 월드마스터위원회 위원장
상황 대선 최종후보 등록

매년 주한외국대사관의 날 행사를 광화문 광장에서 개최하며 주한외국대사관들과 국제 문화 활동을 하고 있는 비영리단체 월드마스터위원회의 위원장으로 비영리단체다. # 2017년 3월 17일 대선 예비후보로 등록하였다. 그리고 최종후보로 등록해, 유일한 무소속 후보가 되었다.

3. 경선탈락자

아래 인물들은 한 정당의 경선에 참여한 인물들이다.[43]

3.1. 더불어민주당

3.1.1. 안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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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65년 5월 1일, 충청남도 논산군[44]
현직 충청남도지사
상황 경선 탈락 - 2위

현 충청남도 도지사로, 통일민주당 김덕룡 의원의 비서로 정계에 입문했다가 16대 대선에서 당시 노무현 후보 캠프에서 일하며 민주당에 입당했다. 중앙 정치에서 활동하지 않아 다른 후보들에 비해서는 대중적인 인지도에서 밀리는 편이지만, 충남 도지사를 두 번 연임하며 행정력을 보이고 있다. 시도지사 직무 평가에서 꾸준히 상위권을 기록하고 있다.

2014년부터 이미 대권에 뜻이 있음을 미리 밝히기도 했다. 게다가, 다른 대권 후보들과 마찬가지로 차기 대권 뿐만 아니라 차차기 대권까지도 생각하는 듯 하다. 시기가 언제가 되었든 반드시 청와대로 가겠다는 꿈은 분명히 갖고 있는 듯하다. 젊은 축에 속하는 정치인이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다만, 그의 기본적인 성향이나 정치 역정 등을 따진다면 이번 대선에서는 후보 경선에 나섬으로써 자신을 대권 주자로 확실히 데뷔하는 신고식 자리로 활용할 것이고, 19대 대선의 경선부터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할 것으로 예상된다. 본인은 이런 '차차기 후보'란 시선에 대해 불쾌감을 표하기는 했다. 페이스북 설령 경선에서 낙선하더라도 20대 대선을 노려볼 수 있는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손해를 볼 수 있는 부분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김문수의 사례처럼 지자체장 사퇴를 하지 않은 채로 경선에 직접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 대선이 가까워지면서 점점 자신의 페이스북에 의견을 내놓고, 팽목항을 방문하고 촛불집회에 참석하는 등 대권행보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모습이다.

2016년 11월 20일에 열린, 야권 대권주자들의 "비상시국 정치회의"에서 8명 중 1명으로 참여하였다. 2017년 1월 22일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반기문 전 UN사무총장의 사퇴 이후 충청권 및 중도층 지지율을 상당수 흡수하여 전체 2, 3위 당내 3위에서 맴돌고 있다. 그러나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도 선의로 그랬을 것이라는 이른바 선의 발언과, 자유한국당과도 연대할 수 있다는 대연정 발언, THAAD 배치와 위안부 협약등을 인정하는 듯한 태세와 이승만, 박정희도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역사라고 말하는 등 2월 후반부터 논란이 끊이질 않아 지지율이 하락세로 가고 있다.

게다가 3월부터 여러가지 문제로 문재인에게 날린 네거티브의 비난은 오히려 역풍으로 작용하면서 자신의 비호감도만 높이고 말았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완전국민경선제와 결선투표제로 치러지는 더불어민주당 경선에서는 여전히 변수가 많아 승패를 쉽게 예측할 수는 없는 상황이지만, 지역적 지지기반이었던 충청권에서도 문재인에게 10% 이상 패배했고 타 지역에서도 압도적인 과반을 허용하고 말았다. 영남권에서는 이재명 후보에게 2위 자리마저 내주고 3위로 내려앉았다. 누적은 여전히 2위지만 남은 수도권에서 이재명의 선전이 예상되어 2위 자리도 위태로운 상황. 후보가 되기 위해선 수도권에서 과반을 저지하고 결선투표에서 막판 뒤집기를 노려야 하는 상황이 되었지만, 여전히 녹록치 않은 상황이다.

결국 문재인 후보에게 패배해 경선에서 탈락했다.

3.1.2. 이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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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64년 12월 22일, 경상북도 안동군[45]
현직 경기도 성남시장
상황 경선 탈락 - 3위

현 경기도 성남시장으로, 안상수 창원시장과 더불어 기초자치단체장으로서는 유일하게 거론되는 대권주자이다. SNS에서의 활발한 소통으로 젊은 층을 중심으로 인기를 얻고 있으며 노무현 대통령을 연상하게 하는 솔직하면서 강경한 발언으로 사이다라는 별명과 전투형 노무현이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강한 발언과 신흥 주자라는 점 때문에 한국의 트럼프, 한국의 샌더스라고 불리기도 한다. 사실 포지션은 트럼프보단 샌더스에 가깝다. 그도 그럴 것이 성향도 비슷하며 민주당 내 2위인 데다 젊은 층, 중도 ~ 좌파 / 진보 세력 층의 지지를 근간으로 하고 신흥 주자라는 점이 가깝기 때문.

정권 교체에 도움이 된다면 "내년 대선 경선에 출마할 수도 있다"라고 인터뷰를 하면서, 대권에 도전하겠다는 의사를 보였고, 9월 6일 본인의 페이스북에 대한민국의 혁명적 변화를 위해 역학을 다 하겠다는 글을 올려 출마를 시사했다. 그러나 진보 강경파로 꼽히는 만큼 본선 출마 시 보수 성향 지지자들이 역결집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이 단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부상한 뒤 대권 주자로서는 처음으로 공식적으로 박근혜 대통령 하야 혹은 탄핵을 주장했다. 성남시장을 거치며 어느 정도 검증된 능력과 활발한 SNS 소통을 통해 젊은 층을 기반으로 점점 지지율을 높여가다, 하야 발언이 시너지 효과를 내며 안철수를 넘어 반기문까지 위협하는 지지율을 기록하며, 차기 대권주자로서 영향력을 점점 발휘하고 있다. 성남시 모라토리엄과 빚 해소, 그리고 청년 배당과 의료원등의 복지 정책으로 성남 주민의 강한 지지와 중도 ~ 좌파 / 진보 세력, 젊은 층의 지지도 베이스로 하고 있으며 본인이 흙수저 출신 지체장애인이라는 점,[46]페미니즘성소수자에 대한 이해가 크다는 점[47]으로 서민층, 신좌파층에게도 지지를 얻고 있다.

다만, 그의 강경한 발언이 지지자들을 끌어모으는 만큼 반대파에게는 반감을 가지게 만들고[48], 과거 논문 표절과 음주운전 경력 등과 같은 논란 그리고 정치적 기반이 약하다는 점이 발목을 잡고 있다.[49] 특히 음주운전은 자칫 잘못하면 후보 검증 과정에서 낙마할 수도 있는 중대한 요소로까지 평가되고 있다. 또한 경력 면에서도 기초자치단체장만 역임했다는 것도 걸림돌이 될 수 있다.

2016년 11월 20일에 열린, 야권 대권주자들의 "비상시국 정치회의"에서 8명 중 1명으로 참여하였다.

경선 시작 때까지 열세를 뒤집지 못하고 경선에 돌입했다. 애초에 당내 지지기반이 문재인, 안희정에 비해 크게 뒤떨어지고 기초자치단체장이라는 다소 초라한 경력이 어찌보면 발목을 잡은 셈. 하지만 문재인이 압승하고 있는 구도 속에서 그러한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영남권에서는 오히려 안희정을 이기고 2위를 기록하는 선전을 펼치고 있다. 안희정의 하락세에 이재명 본인의 정치적 선명성이 더해져 후반에 갈 수록 빛을 발하는 중. 본인의 주된 활동 지역[50]인 서울, 수도권에서 승리하여 문재인의 과반 저지를 목표로 하고 있다.

수도권에서 문재인에게 밀렸으나 2등을 하였으며, 이후 패배한다.

3.1.3. 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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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63년 8월 10일, 전라남도 광주시[51]
현직 경기도 고양시
상황 경선 탈락 - 4위

現 고양시장. 2017년 1월 5일,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참가하겠다고 선언했다.#

고양시의 부채를 재임 기간 내에 청산하기도 했고, 티스푼 공사였다는 비판도 있지만, 능곡 지역의 골칫거리였던 삼성 건널목 문제를 처리했다. 또 고양시와 고양이가 음이 비슷하다는 것에 착안하여 고양이를 고양시 홍보에 이용해 좋은 반응을 얻기도 하는 것도 하였었다. 고양시/SNS 항목 참조. 시정관련 호평도 존재한다. 그리고 이재명 성남시장, 박주민 국회의원과 함께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나선 몇 안되는 더불어민주당 당원이기도 하다.

반면, 선거 당시 약속했던 서정초등학교 옆 방사선 공장 문제 해결을 못하면서 학부모들은 한 달이 넘는 기간 시청 앞에서 천막 시위를 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고, 유치원 옆 자동차 정비 공장, 산황동 정수장 옆 스프링힐스 골프장 증설 문제, 백마중학교 앞 지하차도 출입구 건설 문제, 고양동 동물 화장터 설치 문제 등 각종 민원 처리가 부실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행보를 보면 이재명 시장보다 미달할진 몰라도 비슷한데, 아이러니하게도 젊고 떠오르는 재선 시장이며 빚을 탕감하고 차기 경기도지사 유력 후보 중 한 명이라는 점이 같다. 제2의 이재명 시장을 노리는 걸 수도... 어쨌든 지지율은 매우 낮지만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참가하고 토론에 참여하여 괜찮은 모습을 보이며 인지도가 올라가고 있다. 안희정-이재명 후보 지지자들이 보이지 않는 연대(?)를 하는 것에 대항 성격으로 문재인 지지자들의 응원을 받는 상황. 토론에서도 안희정의 대연정 공약을 지속적으로 비판했고, 이재명의 과거 범죄 경력을 계속 문제 삼았다. 이에 이재명은 최성을 두고 '문재인 호위무사'냐고 비판을 할 지경. 물론 최성 본인은 그럴 이유가 전혀 없다며 반박했다. 반면 문재인에게는 호의적인 질문을 하며 시청자들마저 비슷한 시각을 보내고 있다.

인지도가 낮아서 안희정, 이재명만큼 득표할 수 없었고, 결국 무난히 경선 탈락.

3.2. 자유한국당

3.2.1. 김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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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42년 11월 29일, 경상북도 선산군[52]
현직 경상북도지사
상황 경선 탈락 - 4위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구미시장으로 당선되어 3선 구미시장을 거쳐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경상북도지사로 당선되면서 3선 경상북도지사를 지내고 있다. 중앙 정치권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으나 최순실 게이트로 인한 새누리당의 내홍 과정에서 이인제, 정갑윤과 함께 혁신과통합 보수연합의 공동대표로 선출되었고, 꾸준히 대선 출마를 시사하고 있다. 2017년 2월에는 새누리당 소속으로 대선 출마를 준비하고 있으며, 공식적인 출마 선언은 당이 어느 정도 추스러질 때 하겠다면서 사실상 출마 선언을 했다.

자유한국당 19대 대선후보 경선에 참가했으나, 당원 3위(12.2%), 여론조사 4위(11.2%)로 합산 11.70% 4위로 대선후보가 되지 못했다.#

3.2.2. 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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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59년 2월 1일, 강원도 원성군[53]
현직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회 고문
상황 경선 탈락 - 1차 컷오프

전 중앙일보의 논설위원으로 친박 성향 논객으로 유명하다. TV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2월 중으로 깜짝 대선 후보가 나올 것이다라는 말을 하였는데, 이는 자신이었다.놀랄 만하긴 하다. 2월 15일 자유한국당에 입당하고 대선 출마를 선언한다. # 자유한국당은 영입대상 1호였다고 말했다. '황교안 룰'이라 불리는 예비 경선 통과 특례에 반발하여 경선 불참을 선언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으나 3월 15일 황교안이 불출마를 선언하고 당 지도부가 황교안 룰을 없애기로 함에 따라 경선 참여를 선언했다. 하지만 하지만 1차 컷오프에서 조경태, 신용한과 같이 탈락하였다.

3.2.3. 김진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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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64년 10월 13일, 강원도 춘천시
현직 국회의원 (강원 춘천)
상황 경선 탈락 - 2위


공안검사 출신의 재선 국회의원이다. 19대 총선을 통해 국회에 입성한 이래 김영란법 반대, 세월호 인양 거부, 백남기 농민 관련 발언, 그리고 촛불 관련 발언 등으로 논란을 일으키며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자유한국당 내에서도 강성 친박으로 분류되는 인물로, 특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자 촛불집회를 비하하는 발언으로 논란의 중심에 서는 한편, 거의 매주 박근혜 탄핵 반대 집회에 참석하며 탄핵 기각 또는 각하를 강력하게 주장하여 극우 성향의 사람들로부터 홍준표만큼의 지지를 얻게 되었다.

2017년 3월 14일, "애국시민들이 내미는 손을 뿌리치기 어려웠다", "대통령 탄핵으로 인한 상처를 어루만져 드리겠다"며 대선 출마를 선언하였다. 하지만 탄핵에 대한 여론이나 심판 결과를 감안하면 표의 확장성은 매우 낮는 수준. 강경 박사모 세력이 창당을 준비하고 있는 (가칭) 새누리당이 정식 창당할 경우 그곳으로 당적을 옮겨 출마할 가능성도 높았지만, 박사모 대표 정광용에 따르면, 김진태는 자유한국당에서 출마하기로 합의를 봤다고 한다.

3월 16일, 황교안 국무총리 겸 대통령 권한대행의 불출마가 확실해지자, 탄기국 대변인 정광용은 박사모 카페를 통해 김진태 지지를 선언하였다.# 3월 17일 자유한국당 대선 경선 비전발표대회에서, 김진태의 지지자들이 500명 이상이 몰려 문전성시를 이루고 김진태를 연호했다. 최근에는 지지율이 5프로대로 오르는 등 상승세를 타고 있어 홍준표 후보와 양강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이것은 사실상 박근혜를 지지하는 아스팔트 보수의 지지율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박근혜의 최종 국정지지율은 4-5프로대였다. 하지만 친박단체를 제외하고는 비토층이 너무 많은 관계로 본선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러한 지적은 같은 당 대선주자였던 안상수 국회의원이 제기한바 있다. 김진태는 토론회에서 노골적으로 강성 친박임을 드러내었는데 이러한 점은 경선에서는 박근혜 지지층에게 어필할 수 있는 요소를 가지고 있지만 본선인 대선에서는 확실히 악재다. 대선은 결국 중도층을 누가 잡느냐에 따라 승패가 판가름나는데 김진태는 이러한 점에서 확실히 낙제점을 가지고 있다.[54]

정치인이 자신을 솔직하게 표현할 때 큰 지지를 받는 경우도 있다. 또 자신의 목소리를 많은 국민이 듣게 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허나 박근혜는 국민들의 큰 비판을 받으며 탄핵당한 대통령이란 점에서 볼 때 박근혜를 옹호한 김진태가 당선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자유한국당 19대 대선 대통령후보 경선에서 당원 2위(21.1%), 여론조사 3위(17.5%), 합산 2위(19.3%)로 대통령 후보가 되지 못했다.#

경선에 탈락하고 난 후 김진태는 친박집회에서 자신이 이번에 처음으로 고시, 선거를 통틀어 처음으로 실패했다며 자신의 수난사에 기록하겠다는 말을 했다. 향후 김진태의 존재는 차기 정부에 있어서 큰 악재가 될 게 뻔하다. 현 상황상 자유한국당 후보가 아닌 다른 정당의 후보가 대통령이 될 확률이 높은 상황에서 법제사법위원회 간사지위를 이용하여 개혁입법을 철저히 방해할 것이 뻔히 보이기 때문이다.[55] 그래서인지 김진태가 선거법 위반으로 재판받고 있는 상황이라 제발 100만원 이상의 벌금형에 처해 의원직을 상실하기를 바라는 의원들이 많다는 풍문도 들리는 실정이다.결국 200만원 벌금형 선고되어 의원직을 상실하게 되었다.

3.2.4. 신용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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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69년 5월 12일, 충청북도 청주시
현직 서원대학교 석좌교수
상황 경선 탈락 - 1차 컷오프

동명의 강사가 아니라 전 대통령 직속 청년위원회 위원장이다. 3월 7일에 분열된 대한민국의 갈등을 봉합하고 미래비전을 제시할 적임자는 오직 젊은 새 주자는 자신 뿐이라고 말하였으며 보수의 세대교차를 이루겠다고 밝히며 출마 선언하였다. 하지만 1차 컷오프에서 조경태, 김진과 같이 탈락하였다.

3.2.5. 안상수(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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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46년 5월 28일, 충청남도 서산군[56]
현직 국회의원 (인천 중·동·강화·옹진)
상황 경선 탈락 - 2차 컷오프

위에 있는 동명이인인 현직 경상남도 창원시장이 아닌, 인천광역시장을 역임한 현직 인천광역시 의원. “헬조선을 외치는 젊은이들이 결혼과 집, 꿈, 사람답게 사는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부족한 일자리가 문제” 라며 대권 출마의 뜻이 있음을 밝혔다. 농지를 활용한 국토 개조를 통해 일자리 도시를 만든다면 300만개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다라 밝히며 2017년 2월 6일 출판기념회에서 출마선언을 하리라고 밝혔다. # 리얼미터 조사에서 경선 의향층 3등에 들며, 나름 다른 군소 후보들과 달리 가능성과 지지층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 그러하여 1차 컷오프까지는 통과했으나 결국 2차 컷오프의 벽을 넘지 못했다.

3.2.6. 원유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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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62년 9월 26일, 경기도 송탄시[57]
현직 국회의원 (경기 평택 갑)
상황 경선 탈락 - 2차 컷오프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로 현재 대권주자 기근 상태인 새누리당의 위기상태에 본인이 출마하겠다고 밝혔다. # 주요 공약으로는 분권형 대통령제로의 개헌, 북한 핵에 대응하는 조건부 핵무장 계획, 규제 개혁, 유라시아 철도 연결 등을 발표하였다. 친박계로 분류되는 인물이었는데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 중에서 나경원, 안상수(인천)와 함께 박근혜 탄핵 반대 집회에 참가하지 않았던 자유한국당 소속 정치인이며, 유일하게 친박 집회 찬성을 자제해달라고 말한 대권 후보였다.[58] # 그러나 박근혜 전 대통령의 청와대 퇴거 당시 입장문을 읽고 사저에서 만나는 등 친박 행보도 보였다. 성향을 종잡을 수가 없다

이러한 애매한 행보 때문인지 나름 원내대표까지 했던 중진이었으나, 2차 컷오프로 탈락하고 말았다.

3.2.7. 이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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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48년 12월 11일, 충청남도 논산군[59]
현직 자유한국당 상임고문
15대 본선 3위 (19.2%, 국민신당)
16대 새천년민주당 대선 경선후보 사퇴
17대 본선 6위 (0.7%, 민주당)
상황 경선 탈락 - 3위

날아오르라 피닉제여!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 이후 출마를 선언하였다. 2012년까지 다른 당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친박이면서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일어나게 된 원인에 대해서는 책임이 적다는 것이 강점이었다.

12월 11일 새누리당 친박계 50여명이 참여한 혁신과통합연합의 공동대표로 선출되었고, 12월 12일 대선출마를 선언했다. 새누리당 분당 시에는 대선후보를 내기는 내야 했으니 후보로 선출될 가능성은 높았다. 게다가, 최고위원 시절 대표 최고위원 경선에서 서청원보다 높은 국민여론으로 2위의 지지를 받은 적도 있기에 확장성이 높다는 점도 강점이었다. 그러나, 박근혜를 강하게 옹호하는 행적으로 인해 실제 선거에서 지지를 받는데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출마 선언 이후 여론조사에서는 범여권 후보중에 3~4위권 정도의 지지율을 보여주기도 했다. 다만 전체 지지율이 1~2%이고, 당적이 자주 바뀌었다는 점 때문에 당원들의 지지를 받기 어렵다는 점도 있었다. 실제로 대표 최고위원 경선에서 여론조사는 2위였지만, 당원투표에서 6위를 하면서 턱걸이로 간신히 지도부에 입성하기도 하였다.

자유한국당 19대 대선 후보 선충 경선에서 당원 4위(5.1%) 여론조사 2위(24.6%)의 득표로 합산 3위(14.85%)로 대통령 후보가 되지 못했다. #

3.2.8. 조경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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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68년 1월 10일, 경상남도 고성군
현직 국회의원 (부산 사하구 을)
18대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경선 예비선거 탈락
상황 경선 탈락 - 1차 컷오프

20대 총선 직전 더불어민주당에서 새누리당으로 당직을 옮겼으며 강점으론 지하철을 기막히게 잘 뚫어서 부산의 지지세가 강하는 것이다. 2016년 이전까지 민주당계 소속으로 3선 연임을 했다는 점이 이를 보증했다. 특이한 점은 출마시 50세로 심상정(58세), 이재명(54세), 안희정(53세), 남경필(53세)을 제칠 정도로 젊은 주자였다.[60] 3월 13일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자유한국당 대선 출마 선언을 하였다.# 하지만 1차 컷오프에서 김진, 신용한과 같이 탈락하였다. 2연속 예비경선 컷오프 크리

3.3. 국민의당

3.3.1. 김원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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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65년 8월 21일, 미상
현직 세무사
상황 경선 탈락 - 컷오프

2017년 3월 14일, 예상치 못하게 국민의당 대선 예비후보로 등록갑툭튀한 인물로, 현직 세무사이다. 자세히 알려진 바는 없으나, 양주시에서 지방세 심의위원, 무료 세무상담위원으로 활동한 바 있으며, 비교적 쉽게 구해 읽을 수 있는 2권의 저서(경세가를 기다리며-통치자에게도 자격이 필요하다(2015)[61], 차원이 다른 주식 실전 차트 분석(2016))가 있다.

3.3.2. 박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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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49년 7월 23일, 전라남도 보성군
현직 국회부의장 (광주 동남 을)
상황 경선 탈락 - 3위

제20대 국회 상반기 부의장이자 국민의당 중진 의원이다. 그동안 언론에도 오르지 않았고 본인도 출마 의사를 나타내지 않았으나 2017년 3월 14일 "대한민국의 위기를 극복하고 상생과 화합의 정치를 구현하겠다. 국민통합과 협치민주주의를 실현하겠다"며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국민의당 예비후보로 등록했다.#

경선 시작 후에는 당연하게도(..) 3위를 계속 기록 중. 일각에서는 박지원이 안철수의 페이스 메이커로 데려왔다는 시각이 있는데, 박주선 본인에게는 국회부의장임에도 불구하고 지역에 머물러 있는 인지도를 전국구로 확장시키는 좋은 기회일 것으로 보인다. 차기 광주시장을 노리고 있다는 설도 돌고 있다. 그리고 무난히 경선 탈락.

3.3.3. 손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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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47년 11월 22일, 경기도 시흥군[62]
현직 국민주권개혁회의 의장[63]
17대 대통합민주신당 대선후보 경선 2위
18대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경선 2위
상황 경선 탈락 - 2위

상당히 파란만장한 정치 인생을 걸어온 인물로, 한 때 한나라당 소속이었다가 당내 대선 경쟁에서 밀려 탈당한 이후 2007년부터는 야권 소속으로 꾸준히 활동해왔다. 18대 대선에서 대선 출마를 선언해 문재인과 당 내 경선을 벌이기도 했으며, 새정치민주연합의 상임고문으로 활동하다가 2014년 7월, 수원 지역 재보궐 선거에서 패배 후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이후 강진군 백련사 근처의 흙집에서 칩거 생활을 하며 한동안 정치권에서는 잠잠했으나, 약 1년 뒤 문재인 체제에서 재보궐 선거가 참패하고 친노 vs 비노간의 갈등이 심해지자 일각에서는 그의 경기도지사 때의 무난한 행정 능력, 두 번의 당대표 경력, 보수 정당 출신이었던 경력으로 인한 중도보수세력 표심 흡수가 가능하다는 점으로 비노 세력의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다만, 본인은 대권 출마 및 정치계 복귀 의지가 없다고 밝혔으며, 이전에도 정계 은퇴 선언 및 복귀가 몇 차례 있었기 때문에 섣부른 복귀는 부담스러울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수도권 지원 요청을 받았으나 에둘러 거절하였다. 만약 총선에서 당이 패배를 하였더라면 구원 투수로 올라올 가능성이 높았을 것이다. 불리한 야권 구도를 보고 총선에 한 발짝 빠져 있으면서 책임론을 근거로 구원투수로 나서겠다는 명분을 세워 복귀할 계획이었을 듯.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은 안 좋은 구도에서도 뜻밖의 성과를 올렸고, 특히 손학규가 비교우위를 보이는 수원을 중심으로 한 경기 남부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 완벽하게 압승했기 때문에 아무래도 자연스레 후순위로 밀리게 되었다. 수도권지역 민주당의원들 다수가 손학규 계열인건 그나마 위안거리. 하지만 이찬열 의원을 제외한 아무도 따라가지 않았고 본인들이 손학규계라는 것도 부정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2017년에서 보듯 손학규와 국민의당이 합당할 때 따라갈 가능성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탈당 후 무소속으로 남는 것과 다른 곳으로 입당하는 것의 차이는 크다. 손학규가 탈당할 때 어느 당으로 간다는 메시지가 없어서 따라나가지 않았던 듯. 그러나 손학규가 '국민주권개혁회의'라는 단체를 만들어 국민의당과 합당하는 형식으로 입당했는데도 민주당의 손학규계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 중 몇몇은 문재인 캠프에 들어가기도.

2016년 10월 20일, 정계 복귀를 선언하며 더불어민주당 탈당을 선언했다. 자세한 내용은 손학규 참고. 손학규의 정계복귀 징크스는 이번에도 유효했는데, 때마침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며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박지원 대표는 손학규가 국민의당으로 온다고 밝혔고, 손학규의 경우 호남에 칩거하고 있었던 등, 손학규 본인도 국민의당과의 연계로 가닥을 잡은 만큼, 국민의당과 연계해서 경선에 참여한다고 볼 수 있다.

2월 7일, 손학규 측은 손학규가 국민의당과 통합한다고 선언했다. 곧 경선 출마 선언을 할 듯하다. 손학규의 뒤를 이어 더불어민주당에서 몇 명이나 손학규를 따라 가느냐가 대권주자로서 손학규의 위상을 결정할 것이다. 2월 10일, 측근 이찬열 의원도 입당 선언을 했고, 2월 8일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측근 박우섭 인천 남구청장도 입당을 선언했다. 따라서 당내 입지도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2월 17일, 측근 이찬열 의원과 함께 입당한다고 한다. 또한, 이찬열 의원과 박우섭 인천 남구청장은 지명직 최고위원에 임명될 예정이다. 이것으로 당내 장악력도 향상될 것으로 보인다.

경선룰을 두고 안철수 후보와 잡음이 거세다. 특히 손학규는 모바일 투표에 대해 큰 반감을 가지고 있는데, 2012년 민주통합당 경선에서 모바일 투표에서 참패하여 문재인에게 후보 자리를 내줬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마찰 끝에 국민의당은 완전국민경선[64]을 도입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본인의 텃밭으로 생각한 호남에서 안철수에게 완패하며 불안하게 경선을 시작하더니, 제주, 영남, 강원에서 모두 패하면서 사실상 후보 지명에 실패했다. 일각에서는 박지원이 안철수의 페이스 메이커로 데려왔다는 시각이 존재한다.[65]

결국 모든 곳에서 안철수에게 지고 경선 탈락했다. 심지어 광주에서는 박주선에게도 밀렸다.
17대 대선에 이어 무려 세번이나 경선에서 2위가 된 것이다.

3.3.4. 양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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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57년 8월 25일, 전라남도 광주시[66]
현직 로컴, CKT 그룹 회장
상황 경선 탈락 - 컷오프

로컴의 CEO로 22인의 친구라는 위안부 자선기금 단체 설립으로 몇번 언론에 공개되었다. 2016년 12월 말 국민의당에 입당하고, 2017년 3월 제19대 대통령 선거출마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혔다. 다만, 본인의 말따마나 정계, 법조계에 참가한 적 없는 아웃사이더이기에 안철수, 손학규, 천정배 등 거물들이 있는 국민의당의 경선 승리부터가 깜깜하다. 아니나 다를까 중앙일보에 광고를 내고 예비경선에서 이 경선은 불법이라고 난동을 부렸다가 끌려나갔으며, 결국 무난히 컷오프당했다. (...)

3.3.5. 이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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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47년 6월 20일, 미상
현직 농업경영, 서울특별시 양천구 신정동 통장
상황 경선 탈락 - 컷오프

2017년 3월 14일, 국민의당 대선후보로 갑자기 등록 갑툭튀한 인물이다. 주요정당 대권주자 중 가장 베일에 싸인 후보. 지인들 외엔 인터넷상에서 관련 정보를 찾는 것부터 쉽지 않을 정도니(...) 정말 일반 국민이 대권주자로 나선 듯한 인상이다.

경선 유세장에서 모자를 쓰고 유세를 하다 모자를 벗으라는 지적을 받았다. 그런데 알고보니 대머리였던 것이었다.영상

3.4. 바른정당

3.4.1. 남경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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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65년 1월 20일, 경기도 용인군[67]
현직 경기도지사
상황 경선 탈락 - 2위

현직 경기도 도지사. 원희룡 제주지사와 더불어 정치경력 내내 쇄신파, 소장파의 길을 걸어와 개혁이미지로 잠재적 대선후보군으로 항상 포함된다. 하지만 남경필 경기지사 아들이 군대에서 군 복무 중 폭행강제추행사건을 일으켜서 구속된 바, 이회창 전 총재나 정몽준 전 의원처럼 아들내미 문제를 안게 되어버렸다. 게다가 이 일이 터진 시점이 하필이면 임 병장 사건하고 윤 일병 사건으로 군내 가혹행위에 대한 비판여론이 한창 들끊던 때라 더더욱 발목을 잡히게 되었다.

경기도 행정을 연정 개념으로 잘 이끈 덕에 경기도 내에서 지지율이 높은 편이다. 하지만, 그 연정조차도 성남시에서 자체 잉여 재정으로 시행하려던 3대 무상복지를 저지하면서 금이 가고 있는 상태. 게다가 20대 총선에서 경기도의 핵심인 서울 위성도시권을 더민주에서 거의 다 싹쓸이하는 바람에 도정 운영에 심각한 차질이 생길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지만, 이재명 시장에 대한 저지는 대체적으로 당의 압박 때문이며, 본인은 20대 총선 이후의 정국에서도 연정을 위해 부지사 자리 하나를 더민주 소속 전 국회의원에게 양보하고 권한 또한 더민주에 더 많이 양보하는 등 이른바 연정 2.0을 일궈내려 노력하는 등 전향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15년 TV조선과의 인터뷰에서 대선 불출마 선언을 했었으나 2016년 들어서 대권 도전 가능성을 언론에서 지속적으로 언급하고 있고 윤여준 전 장관을 자신이 기획하고 있는 프로젝트 단장으로 임명하는 등 대선 불출마 선언과는 거리가 먼 행보를 보이고 있다.

9월 2일 CBS와의 인터뷰에서는 대권 도전에 대한 결정은 내년에 밝힐 것이고 만약에 대권 도전을 한다면 모병제를 공약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9월 7일 당내 잠룡중에 한명으로 꼽히는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이 한림대학교 강연에서 자신의 모병제 주장을 비판하자 공개토론을 제안하였다. 이에 대해서 당내 잠룡들간의 대권 경쟁이 본격화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이 있다.

2017년 1월 25일에 바른정당 소속으로는 처음으로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그러나 유승민에 밀려 경선에서 탈락하였다.

3.5. 정의당

3.5.1. 강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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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71년 11월 5일, 전라북도 김제군[68]
현직 정의당 교육연수원 부원장
상황 경선 탈락 - 2위

민주노동당을 시작으로 진보신당, 정의당 대변인을 지냈었다. 여야를 막론하고 첫 40대 출마선언 후보라는 것이 특이하다. 정치혁명의 출발은 진보정치로부터 시작될 것이라는 믿음을 국민들에게 주기 위해서 출마선언을 하였다고 한다, 정의당 내에선 심상정 대표가 확실히 이길듯한 분위기이며 인지도 또한 심상정, 노회찬, 유시민, 천호선, 조승수, 진중권등 당내 유명 인사들에게 확실히 밀려 대선 주자로 나서긴 어렵다는 여론이 많으나, 이번 기회로 인지도가 상승될 수도 있다. 2월 16일 경선 결과 심상정 대표에게 압도적인 표차로 밀려 탈락했다. 인지도와 경력 모두 심상정 대표에게 크게 밀렸기 때문에 짧은 시간 안에 이변을 만들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3.6. 새누리당

3.6.1. 변희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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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74년 4월 22일, 경기도 강화군[69]
현직 미디어워치 대표고문
상황 경선 후보 사퇴

미디어워치의 대표 고문이자, 일베저장소 인증과 진중권 등의 진보 논객들과의 토론으로 유명한 보수 논객이다. 2015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에서 관악구 을 지역구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한 전적이 있다. 과거 친노 진보였으나 중반에 반노 우익으로 변한 후 이내 친박 극우로 바뀐 변천사가 다양한 인물이다.

자유한국당에서 본인들이 밀던 김진태가 경선 탈락하자 대선 후보를 낼 필요가 있다는 말에 출마 선언을 하였다. 그렇지만 박사모나 탄기국 측에선 그렇게까지 긍정적이진 않은 편이며 차라리 김진태, 남재준을 데려 오라는 의견이 많다.

새누리당 경선주자로 나섰지만#, 조원진이 새누리당에 입당함에 따라 타 경선주자들과 함께 조원진 추대에 합의하기로 했다고 밝혀, 사실상 경선을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3.6.2. 정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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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58년
현직 키스콤 사장, 박사모 회장, 탄기국 대변인
상황 경선 후보 사퇴

박사모 회장이자 탄기국 대변인으로 대표적인 극우 인사이다.

문재인을 고소하고 손석희, 이정미, 강일원, 김이수, 김수남등에게 욕설과 비방을 자주 하며, 유재석, 김제동, 박명수, 정우성[70] 등 방송인에 대한 비난도 서슴지 않는다. 결국 4월 3일 폭력시위 혐의로 3차 출석 요구까지 받았다.

새누리당 경선주자로 나섰다.# 박사모에서 설득하여 대선 후보로 선출한 데다, 새누리당 차기 대표로 추대하고 싶다고 밝힌 만큼 변희재, 정미홍 보다 당내 경선에선 승리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하지만, 조원진자유한국당을 탈당하고 새누리당에 입당하자 4월 8일 친박집회에서 조원진을 대통령 후보로 추대하는 듯한 발언을 했고, 이어 정미홍이 타 경선주자들과 함께 조원진 추대에 합의하기로 했다고 밝혀, 사실상 경선을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3.6.3. 정미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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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58년 7월 27일, 서울특별시
현직 진정방송 대표
상황 경선 후보 사퇴

전직 KBS 아나운서로 박사모의 친박 집회에서 극우적 발언을 쏟아내며 다시금 화제를 끌고 있는 인물이다.

친박 극우적 발언의 도가 가히 변희재, 김진태, 정광용, 서석구, 김문수에 견주거나 능가할 정도인 데다가 기존 박사모 층도 큰 거부감이 없는 듯 하다.

새누리당 경선주자로 나섰지만,# 조원진자유한국당을 탈당하고 새누리당에 입당하자 4월 8일 친박집회에서 타 경선주자들과 함께 조원진 추대에 합의하기로 했다고 밝혀, 사실상 경선을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3.6.4. 허평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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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49년 8월 2일, 경상남도 고성군
현직 미상[71]
상황 경선 후보 사퇴

전 기무사령관. 전역 후 2012년 총선을 앞두고 국민행복당을 창당했으나 득표율 미달로 당시 선거법과 정당법에 의해 정당 등록이 취소되었다. 제18대 대통령 선거 때에는 문재인 캠프의 안보 정책 특보로 영입됐으나, 발표된 지 불과 3시간 30분만에 새누리당에 입당해 박근혜 지지 선언을 하여 논란을 빚었다.#

최근 친박집회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며 종종 박근혜 전 대통령을 옹호하는 발언을 하더니, 결국 새누리당 경선주자로까지 나섰다.# 하지만, 조원진자유한국당을 탈당하고 새누리당에 입당하자 4월 8일 친박집회에서 정미홍이 타 경선주자들과 함께 조원진 추대에 합의하기로 했다고 밝혀, 사실상 경선을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경선주자 등록부터 사퇴까지의 과정에서 정작 본인이 한 말은 하나도 없다. 변희재, 정광용, 정미홍은 한 마디씩 다 했는데...

4. 예비후보자

아래의 인물은 예비후보로 등록했으나, 최종후보로 등록하지 않은 인물들이다.

4.1. 무소속

4.1.1. 보수 성향

4.1.1.1. 권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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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40년 5월 16일, 미상[72]
현직 역술가, 도덕성 회복 추진회장
14대 최종 미등록 예비후보(친민당)
상황 대선 최종후보 미등록

유생, 한학자 출신 예비후보. 1983년(1984년?),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에 한학마을을 설립하고 전통 서당인 신명한문서숙(新明漢文書塾)을 운영했던 '시골 훈장님'이다. 한때는 전국 각지의 학생들이 한문교육과 예절교육을 받으러 오기도 했던 곳. # # 이런 그가 언제부터 옆동네에 정착했고, 왜 직업을 역술가로 기재했는지는 모를 일이다. 유교계 신흥종단인 신명유도(新明儒道)를 창립한 인물이기도 하다. 경력에 기재된 '도덕성 회복 추진회장'이란 직함은 '전국선비모임 회장' 등과 함께 오래 전부터 써먹었던 직함인 듯.

특이한 외모와 경력으로 눈길을 끌지만, 사실 이 문서에 등장하는 주자들 중 가장 오래 전부터 대권을 꿈꿨던 인물. 1992년, 제14대 대통령 선거'인의예지 효제충신'이라는 유교적 도덕정치를 외치며 출사표를 던진 것. 결국 최종후보로 등록하지는 못했지만, 그가 이 때 창당한 친민당은 무려 3년 5개월간 살아남았다. 그리고 1996년에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 친민당 후보로 논산시-금산군 선거구에 출마해 낙선.

그 후로 정계은퇴한 줄 알았는데... 2017년 3월 17일, 선관위에 예비 후보 등록을 하였다.

하지만 이번에도 최종후보로 등록하지 못했다. 아마도 돈이 없어 등록 못 한 것으로 보인다.[73]
4.1.1.2. 김환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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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57년 11월 18일, 경기도 인천시[74]
현직 삼우산업개발 대표이사
상황 대선 최종후보 미등록

2015년 난잡한 경영권 분쟁으로 잠깐 화제였던 보루네오 가구의 대표를 약 3개월간 맡은 적이 있는[75] 현 삼우산업개발의 대표이사다.

과거 박사모에 글을 스크랩 해오는 둥의 행적이 있었으나 적폐, 비리 청산등을 주장하는 것을 보면 박사모는 아닌 듯.

2017년 3월 13일, 선관위에 예비 후보 등록을 하였다. 그러나 최종후보로 등록하지 못했다.

4.1.2. 자유 성향 및 진보 성향

4.1.2.1. 김기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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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59년 5월 1일, 서울특별시
현직 닥터킴[76] 대표
상황 대선 최종후보 미등록

동명의 배우가 아닌 의료기기 제조회사인 닥터킴의 사장으로 의사 출신이나 무영램프를 만들어 크게 성공한 CEO다. #

# 유튜브에 출마 선언문을 올렸는데 여기서 그의 성향을 가늠할 수 있으며 인생사와 공약을 알 수 있다. 개성공단 재개와 재벌에 대한 특권 해체를 주장하며 특권 없이 공정하고 출신, 학벌, 연고와 관계 없이 누구나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꿈이라고 한다. 또, 재산의 분배를 주장하였다.

어두나 어미에 자주 "제가 못 되더라도.." 혹은 "우리가 못하더라도.." 등을 붙이는 것을 보면 본인의 한계를 명확히 알고 있는 듯 보였다. 아마 자신의 생각을 전하고 선거공학적인 이용을 하려는 듯.[77]

2017년 3월 13일, 선관위에 예비 후보 등록을 하였다. 그러나 최종후보로 등록하지 않았다.
4.1.2.2. 노남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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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69년 12월 15일, 전라남도 광주시[78]
현직 대학원생(전남대학교 대학원 재학중)
상황 대선 최종후보 미등록

삼성전자 경영혁신팀 등에 13년 근무했고, 시민운동가로도 활동한 바 있는 대학원생 겸 정치인. 현재 전남대학교 정책대학원에 재학중이며, 대학원 총학생회장으로 있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광주광역시 북구을 의원으로 무소속 출마 선언을 하였으나 낙선되었고, 과거 광주광역시의원 선거에도 나간 적이 있다. 새정치연합에 소속되었던 적이 있으며, 과거 민주당을 지지하였다가 실망하여 안철수를 지지하였던 것으로 보이나 현재는 둘 다 아닌 듯하다. 그러나 새정치라는 프레임은 여전히 지지하는 듯.

장애인 특별 지원법등 장애인 관련 법안을 자주 언급하고 노인 복지를 중시하는 모습을 보여, 지지자의 상당수도 장애인, 노인 등 사회적 약자이며, 진보적인 성향을 가진듯 하다.

2017년 3월 30일 대선 예비후보로 등록하였다.

2017년 4월 14일, '미래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위한 디지털경제 국가전략 초청 포럼' 행사장에 들어가려다 주최측에 제지당했고, 이후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되었다고 한다. 한 관계자의 말에 의하면 심장병이 있다고 하며, 그래서인지 최종후보로 등록하지 못했다.
4.1.2.3. 안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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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75년 12월 17일, 미상
현직 없음[79]
상황 대선 최종후보 미등록

43세로 대선주자중에 가장 젊은 주자다. 정치인이라고 하지만 경력도 현직도 없으며 후보 개인의 정보는 아예 없다(...)

2017년 3월 17일 대선 예비후보로 등록하였다. 자신의 공약을 직접 인벤에 올리고 누리꾼들과 댓글로 토론했는데, 게시물이 사라졌다. 대신 유튜브에 별도의 페이지를 만들고 몇 개의 동영상을 올려놓았다. 첫 번째 공약이 '스웨덴 수준의 정치개혁'인데, 그 내용이란 게 국회의원 특권 축소/사용금액 영수증처리/미출근시 수당 삭감 등. 그 외에도 매주 TV토론, 투표용지에 후보자명 외에 '반대'칸 신설, 저가형 청년주택(컨테이너(...)) 공급 등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현재까진 이게 다다.

이러한 공약에도 불구하고, 대선 최종후보로 등록하지는 못했다.

4.1.3. 중도 성향

4.1.3.1. 김순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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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45년 5월 1일, 경상남도 울산군[80]
현직 한동대학교 석좌교수, 국제옥수수재단 이사장
상황 대선 최종후보 미등록

노벨상 후보에도 오른 슈퍼 옥수수로 유명한 옥수수 박사이며 나이지리아의 빈민에게 병충해에 강한 옥수수를 만들어주어 명예추장이 되었던 전적이 있다.

남북통일을 시대적 소망이라고 밝히며 출마 선언을 하였다.[81] # 분권형 개헌과 일자리 창출을 공약으로 하였으며 임기 3년째에 대통령직에서 사임하리라고 한다. 현재 유력 후보중 문재인종북이라는 프레임 때문에 보수를 끌여들이기 어렵고[82] 안철수에게는 열망이 보이지 않으며, 보수 후보중엔 남북관계를 진전할 후보가 없다고 비판하였다.

하지만 결국 최종 후보로 등록하지 않았다.

4.1.4. 기타

4.1.4.1. 강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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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60년 12월 6일, 제주도 남제주군[83]
현직 내 이름은 구름이여 가요방 대표
상황 대선 최종후보 미등록

2017년 4월 7일, 대선 예비후보로 등록하였다.

전날 등록한 김마리아나 지난달 예비후보에서 사퇴한 최석규 못지않게 미스테리한 후보. 서귀포 강피아노 학원 원장이었고, 현재는 가요방을 운영한다고 한다.

인터뷰에 따르면 "처음에는 지난해부터 원희룡 제주지사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는데 배짱도 없고, 중앙에 힘도 없더라"며 본인이 직접 출마했다고 밝혔다. 추천장을 받기 위해 서울-경기-부산에서 서명을 받고 있다고 하며 본선에서 반드시 완주하겠다는 포부를 내비치기도 했다.#

2016년 12월 기사에는 현행제도상 의료비 지원을 받을 수 없는 이들을 위해 성금 98만원을 내놓은 서귀포 대성 퀸 가요방 대표 강인권이라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동일인인지 아닌지 분명치 않다.

결국에는 최종 후보로 등록하지 않았다.
4.1.4.2. 김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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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55년 1월 8일, 미상
현직 예루살렘교회 담임
상황 대선 최종후보 미등록

2017년 4월 6일, 대선 예비후보로 등록하였다.

후보자에 관한 정보를 찾기가 매우 어렵다. 종교인이고 예루살렘교회 담임이라는데, 목사인지 강도사인지 전도사인지도 불분명하다. 또한 직업상 신학대학교는 나왔어야 할 것 같은데, 공식적인 학력은 초등학교 졸업(...) 비인가 신학원 출신인가??

이래저래 미스테리일 수밖에 없는 후보. 최종 후보로는 등록되지 못했다.

5. 불출마자

아래의 인물은 불출마를 선언했거나, 예비후보와 최종후보 모두 등록하지 않은 인물들이다.

5.1. 더불어민주당

5.1.1. 김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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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59년 4월 10일, 경상남도 남해군
현직 국회의원 (경기 김포 갑)
18대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경선 3위
상황 불출마 선언

약력은 항목 참고. 前 경남지사 및 지난 18대 대선에 경선에 출마한 적이 있었다. 야권임에도 PK의 문을 두드리며 여러번 낙선의 고배를 마신 끝에 경남지사에 당선되어 지역주의 타파의 선구자로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경선출마를 위해 경남지사를 돌연 사퇴한 일과 2014년 상반기 재보궐선거 국회의원 선거에서 떨어진 타격으로 아성을 잃은 상태[84]였으나, 그래도 50대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20대 총선 김포갑에서 결국 당선되면서 재기에 성공해 다시 한번 잠룡으로서의 입지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 대권주자로서 무게감이 약하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결국 2016년 9월 2일에 대선 불출마 선언을 했다.

5.1.2. 김부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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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58년 12월 21일, 경상북도 상주군[85]
현직 국회의원 (대구 수성 갑)
상황 불출마 선언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김문수에 완승을 거두었다. 그의 당선은 31년 만에 이뤄진 대구에서 야당 출신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대기록이다. 새누리당의 심장인 대구광역시, 그것도 수성구에서 60% 이상의 득표율로 완승을 거두어 차기 대권 주자에 강력하게 이름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겨우 얻어낸 대구 인심을 뒤로 하고 성급하게 19대 대선으로 바로 나서기에는 힘들어보인다. 자칫 잘못하다간 그간 공들여서 쌓은 탑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직은 조금 더 대구 민심을 다져나갈 때라고 보는 시선이 많다. 그러나, "내년 정권 교체가 더 중요하며 거기에 내가 무슨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숙고하겠다."라는 말로 2017년 19대 대선에 출마할 의향이 있음을 내비쳤던 적이 있었다. 결국, 2016년 8월 30일 본인 페이스북에 19대 대선 후보 경선에 출마하겠다고 공식선언했다. 2016년 11월 20일에 열린, 야권 대권주자들의 "비상시국 정치회의"에서 8명 중 1명으로 참여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7년 2월 7일 불출마 선언을 하였다.

5.1.3. 박원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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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56년 3월 26일, 경상남도 창녕군
현직 서울특별시장
상황 불출마 선언

인권 변호사 출신의 現 서울특별시장. 시민단체 출신이라 친노-비노로 일컬어지는 계파에서 자유로운 편이다. 즉, 어느 한편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기는 힘들지만, 비토를 받을 확률도 낮다. 2016년 9월 기준으로 현시점에서 유력한 야권 대권주자 중 하나로 평가된다. 다만, 박원순은 이전부터 서울특별시장 3선에 대한 의지를 꾸준히 보여왔기때문에 19대 대선에는 곧바로 도전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긴 하다. 그런데 최근 광주에서 "뒤로 숨지 않고 역사의 대열에 앞장서겠다"라고 인터뷰를 하면서 대권 경선 레이스에 도전을 시사하는 듯한 발언을 하면서 혹시 모르게 됐다.# 그리고 서울특별시장을 유지한 채 대선 경선에 참여한다고 밝혔다.# 2016년 11월 20일에 열린, 야권 대권주자들의 "비상시국 정치회의"에서 8명 중 1명으로 참여하였다. 2017년 1월 2일 본인의 페이스북을 통해 경선 출마를 사실상 공식화했다. 그러나 2017년 1월 24일 민주당 경선이 완전국민경선 방식으로 정해지자 이에 대해 유감을 표시했고*, 이어서 1월 26일, 사실상 불출마를 결심한 것으로 결정되었다.* 경선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5.2. 자유한국당

5.2.1. 김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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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59년 2월 21일, 경상남도 울산군[86]
현직 울산광역시장
상황 불출마 - 미등록

전 울산광역시장이다. 2016년 12월 22일, "국가미래 위한 책임 회피 않겠다"며 출마 가능성을 시사했다. 비박의 집단 탈당 당시에 새누리당 탈당을 검토했으나 탈당하지 않았다.

5.2.2. 김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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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51년 8월 27일, 경상북도 영천군[87]
현직 자유한국당 대구 수성갑 지역위원장 [88]
18대 새누리당 대선후보 경선 2위
상황 불출마 선언

새누리당 보수혁신특별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었다. 세간에는 그 유명한 도지삽니다 사건의 주인공, 즉 전 경기도지사로 익숙할 것이다. 아직도 도지사인줄 아는 사람도 있을거야 도지사 임기를 마치고 김무성 대표의 추천으로 그 직함을 맡고 있다. 18대 대선 때도 대권 출마 의사가 있었고, 현재도 다른 여당계 차기 대권주자들에 비해서는 대권에 대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대구광역시 수성갑 지역구에 출마할 것이 확실시되었는데, 이로써 김부겸과의 빅매치가 열렸다. 김문수가 아무리 거물이고 대구가 새누리당의 아성이라 한들 당선을 예상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었으며, 결국 김부겸 후보에게 대패하였다. 38%의 득표율로 60%를 훌쩍 넘긴 김부겸에 비해 초라한 성적을 받고 낙선해 큰 타격을 받은 상황이다.

탄핵을 찬성하는 새누리당/비상시국위원회 소속으로써 당초 새누리당 탈당이 예상되었으나 탈당하지 않았고 2017년 들어서 박근혜 탄핵 반대 집회에 참가하면서 대통령을 옹호발언을 하는 등 완전히 돌아선 모습을 보이고 있다. 추후 강경 박사모 세력이 창당을 준비하고 있는 새누리당(2017년)이 정식 창당할 경우 새누리당(2017년)으로 당적을 옮겨 출마할 가능성도 있었으나 최종적으로는 불출마 선언 하였다. 2017년 3월 15일, 헌법재판소의 탄핵인용 결정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며 불출마를 선언했다. 대선 후보가 되면 탄핵에 찬성하십니까 혹은 헌법재판소 판결을 인정하십니까라는 질문이 들어올 것인데, 양심상 도저히 인정한다고 대답할 수 없다고.

그러나 실제로는 자유한국당의 경선에 필요한 돈이 없어서 불출마했다고 한다. 한편으로 친박표가 사실상 김진태에게 쏠리고 있기 때문에 억지로 출마해도 친박 이미지를 활용하기 어렵다는 판단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5.2.3. 김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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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62년 8월 21일, 경상남도 거창군
현직 없음[89]
18대 새누리당 대선후보 경선 3위
상황 불출마 선언

전 경상남도 도지사, 전 새누리당 최고위원. 18대 대통령 새누리당 후보 경선에 나왔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번 대선에서도 대권 도전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2010년, 이명박 정부 때 국무총리 후보로 지명 되었을때에는 경남도민들을 제외한 전국적 인지도는 매우 낮았지만 국무총리 임명 무산 후 정치적 재기에 성공하고 그 이후 새누리당 최고위원등 당내 중요 직책등을 역임하면서 당과 친박 내의 비중과 무게감이 지속적으로 높아져 인지도 역시 국무총리 후보 지명 당시와는 비교가 되지 않게 올라간 상황. 최연소 기초자치단체장, 광역자치단체장을 역임한 점에서 알 수 있듯 50대 초,중반의 젊은 나이도 어느정도 장점으로 손꼽히고 있을 뿐더러 또한 정치적으로는 김영삼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어 정치에 입문, 발탁되어 PK로 분류됨에도 새누리 내부에서 PK와 알력 다툼을 하고 있는 TK와도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어 TK에서도 통할 수 있는 정치인으로 여겨진다. 이는 김 최고위원의 정치적 기반이 TK와 가까운 북부 경남이기 때문[90].

20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대권 도전에 선을 긋는 듯한 발언을 했지만 바로 그 다음날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고 경남도지사 재임 시절부터 대권에 대한 포부를 밝혀왔던 만큼 차기, 혹은 못해도 차차기에 대권에 도전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여권 대권주자 풀이 거의 거덜나다시피 한 상황에서 어느 정도 수혜를 입었다고 할 수 있어야 하나 본인의 지역구였던 김해 을이 압도적인 표차로 더불어민주당에게 넘어간 것은 심각한 타격. 2017년 3월 14일 불출마 선언을 하였다. #

5.2.4. 나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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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63년 12월 6일, 서울특별시 영등포구[91]
현직 국회의원 (서울 동작 을)
상황 불출마 - 미등록

판사 출신의 4선 국회의원이다. 한나라당 비례대표로 정계에 진출하여 4선까지 달성하며 유력한 여성 중진 정치인으로, 자의와 상관없이 대권주자로 거론되고 있다. 당초, 당내에선 차차기 대권주자로 거론되었으나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박원순에게 패배하면서 이미지가 크게 손상되었다. 친이비박으로 분류된다. 서청원이 당대표에 출마하면 출마하겠다고 밝히며 친박과 대립해왔다. 서청원이 불출마를 선언하자 새누리당 4차 전당대회에 불출마를 선언하였다. 당내 대권 잠룡들이 줄줄이 몰락하면서 대권주자로 여러 차례 언급되었다. 2016년 7월, “당권과 대권을 놓고 본다면 당연히 대권에 대한 기회를 택할 것이다.”라고 발언하며 사실상 대권 출마에 대해 열린 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대권보다는 박원순과의 리턴매치를 노렸다고 한다. 그동안 다수의 논란을 불러 일으켜서 진영별로 호불호가 엇갈렸다. 게다가 나경원 본인이 금수저 출신에다, 상류층이나 귀족 이미지가 너무 짙어서 사실상 표 확장성이 매우 제한적이기도. 새누리당을 탈당하고 바른정당 쪽으로 합류하려던 계획을 보류하고 그냥 새누리당에 남았다. 단, 새누리당과 계속 같이 할 생각은 없다고 한다. 반기문 세력으로 합류하는 것이 아니냐는 예상이 많았으나 반기문이 불출마 선언을 하면서 사실상 붕 떠버렸다. 바른정당으로의 입당 움직임 역시 없는 상황이다. 3월 15일, 대선출마에 대해 "아직은 생각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리고 경선 예비후보에 이름이 없는 것으로 봐서 미등록으로 대선을 포기한 듯 했으며, 결국 불출마했다.

5.2.5. 박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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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55년 5월 1일, 전라남도 화순군
현직 미상[92]. 의병장
상황 불출마 - 미등록

1980년, 5.18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가 구속, 수감되어 옥고를 치른 5.18 유공자 출신. 14대16대 총선에 고향인 화순군[93]에서 무소속 후보로 출마했으나 낙선하였다. 1996년 일본 외무상의 독도 관련 망언 때 이를 규탄하기 위해 사비를 들여 일본을 방문, 일본 외무성 정문 옆에서 삭발식을 했고,[94] 귀국 후에는 광화문 파출소 앞 노상에서 13일간 단식을 이어가기도 했다.

전남야구협회장, 5.18 민주화운동 화순지역 상임고문 등 지역 정치판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 2010년 홍사덕의 권유로 한나라당에 입당[95]한 후, 이재오2010년 재보궐선거 출마를 도왔고, 제18대 대통령 선거 때는 박근혜 캠프에서 국민대통합 기획본부특보를 지냈다. 2013년에는 새누리당 부대변인으로 임명되었고, 이후 새누리당 자문위원을 역임하였다.

자유한국당 대권주자 중 인지도가 가장 낮은 주자. 2월 27일, 광화문 네거리에서 "독도는 우리 땅"을 외치며 대선출마 기자회견을 열었으나, 아무도 오지 않았다고 한다. 참고로 출마선언 관련 문서가 이 링크 뿐이다. 신용한은 그래도 출마선언 기사 정도는 있었는데... 그래도 요 근래들어 자유한국당의 전국시대를 방불케하는 후보 난립으로 주요 주자외 주자들도 부각되며 이름이 나오기 시작했다. 3월 17일 경선 컷오프를 위한 정견발표장에 등장하지 않은 것으로 볼때 경선 예비후보를 미등록한 것으로 보인다.

5.2.6. 안상수(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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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46년 2월 9일, 경상남도 창원군[96]
현직 경상남도 창원시장
상황 불출마 선언

밑에 있는 동명이인인 현 인천광역시 국회의원이 아닌, 현직 경상남도 창원시장. 여권의 대선 후보들 중 유일한 기초지자치단체장. 연평도 포격 도발 사태 당시 보온병을 들고 포탄이라고 하면서 보온상수라고 불린다. 다만 야권의 이재명 성남 시장과는 다르게 창원시장 재임 전 4선 국회의원 경력에 한나라당 당 대표를 지낸 중진급 인사이기에 단순비교에는 무리가 있다. 그러나 행방불명으로 병역을 연기한 탓에 행불상수로 불리고 있어서 군복무 관련으로 큰 문제점이있다. 2015년 10월 21일, "대통령 다음 가는 당 대표까지 해봤는데 국가를 운영하고 싶다는 생각이 왜 없겠느냐?"는 말을 하며 대선 출마를 사실화 했다. 이후 뜬금없다는 평이 많았는데, 2016년 6월에는 아직도 대선 출마의 뜻이 있음을 밝혔다. 결국 탄핵 인용으로 대통령 선거가 조기에 치러져 경선 후보로 나가는 것은 시간적으로 무리라며 불출마 선언하였다. #

5.2.7. 정우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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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53년 2월 18일, 경상남도 부산시[97]
현직 국회의원 (충북 청주 상당)
상황 불출마 - 미등록

충북도지사 출신 4선 국회의원이다. 싱크 탱크 격인 사단법인 더좋은나라 전략연구소를 출범시키고, 인터뷰를 통해서도 “(대선 출마 시사에 대해) 부인하지 않겠다”며 사실상 출마 의지를 분명히 했다. 충청 대망론에 동참하는 모양새로, 반기문 대안으로 자신을 내세웠다. 탄핵 직후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사퇴로 치뤄진 원내대표 경선에서 승리하였다.

5.3. 국민의당

5.3.1. 박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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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42년 6월 5일, 전라남도 진도군
현직 국회의원 (전남 목포)
상황 불출마 - 당대표직

처음 언급 당시 국민의당 원내대표직을 맡고 있다.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지속적으로 여론조사에 포함되고 있다. 그러나, 2016년 5월 “대권도전, 나라고 왜 못하겠나”라고 밝히면서 열린 자세를 취했다. 또, "대권도전 당 대표 사퇴, 1년 전에서 6개월로 바꿔야"라고 말하면서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겼다.

동년 12월 29일 당대표 출마를 위해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하였고 2017년 1월 15일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로 당선되어서 출마가 불가능해졌다. 그리고, 2월 4일 올린 페이스북 글에서 공식적으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지 않는다고 직접 밝혔다.

5.3.2. 정동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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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53년 7월 27일, 전라북도 순창군
현직 국회의원 (전북 전주 병)
17대 본선 2위 (26.1%, 대통합민주신당)
상황 불출마 - 미등록

지난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 당시 대통령 후보였다.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하여 무소속 활동을 하다 국민의당에 합류하였다. 국민의당의 유력 대권주자 중 한 명으로 거론되었다. 2016년 2월 18일, 국민의당에 합류한다고 밝혔다. 정동영 국민의당 입당, "백의종군 하겠다." 그리고 20대 총선에서 전주병에서 당선되면서 정치적 재기에 성공했다. # 천정배 전 공동대표, 박지원 비대위원장을 제치고 꾸준히 안철수 의원에 이어서 국민의당 내 대권 지지율 2위를 기록했다. 2016년 12월 12일, 대선출마 가능성을 시사하했다. # 그러나 12월 27일 "자신의 때가 아니라"며 대선 불출마를 시사했다.# 당시, 대권을 포기하고 당권을 도전한다는 분석이 많았다. 그러나, 당권에도 불출마를 선언하였다. 따라서, 대선 불출마를 번복할 가능성이 있었고, 결국 불출마했다.

5.3.3. 천정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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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54년 12월 12일, 전라남도 무안군[98]
현직 국회의원 (광주 서 을)
17대 대통합민주신당 대선후보 경선 컷오프
상황 불출마 선언

새정치민주연합에서 탈당하고 '호남 정치 복원'이라는 기치 아래 야권을 재구성하기 위한 신당을 창당한 후 2016년 1월 25일에 국민의당과 통합을 하였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 위상이 급상승하면서 "대권주자" 중 한명으로 거론되었다. 본인이 주장해 온 호남정치론이 국민의당을 통해 실현되었으며, 본인이 담당한 수도권 선거에서 단 2석을 얻어 타격인 안철수 공동대표와 대조적으로 천정배 공동대표는 자신이 출마한 광주에서 지역구를 모두 석권했다. 그리고, 2016년 9월 13일. 19대 대선 출마를 시사했다.# 2016년 11월 20일에 열린, 야권 대권주자들의 "비상시국 정치회의"에서 8명 중 1명으로 참여하였다.[99] 2016년 12월 26일 대선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그러나 신년을 맞아 실시한 각종 여론조사에서 1% 미만의 지지율을 보이더니, 결국 3월 14일 불출마를 선언했다.

5.4. 바른정당

5.4.1. 김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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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51년 9월 20일, 경상남도 부산시[100]
현직 국회의원 (부산 중·영도)
상황 불출마 선언

새누리당의 대표적인 비박계 좌장으로 불리며, 박근혜 정부에서 치뤄진 각종 선거에서 잇달아 승리하며 의원시절 선거의 여왕으로 통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선거의 남왕, 또는 선거의 왕자라는 수식어가 붙기도 했다.[101] 또한 외사촌인 방상훈이 사장으로 있는 강력한 보수언론인 조선일보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을수 있는 강점이 있다.[102] 계파적 분류로는 원래 친박계로 분류되었으나 후에 비박으로 돌아섰다고 평가되며, 본인도 그 사실을 인정한 바 있다. 실제로 새누리당의 주도권이 김무성을 주축으로 하는 비박계가 장악하자 당-청간 묘한 힘겨루기 구도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자신의 지역구인 부산 영도구 유세에서 "당 대표를 그만두고 더 큰 정치를 하겠다"고 발언했다. 간접적으로 대선 출마를 시사한 셈. 그러나 4.13 총선에서 옥새런 파동으로 인한 역풍으로 새누리당이 대패하면서 그의 대선가도에도 빨간 불이 켜졌다. 더불어민주당이 가져간 부산의 5석은 부산을 기반으로 하는 김무성계에 뼈아픈 일격이며, 어쨌거나 당 대표로서 총선 패배에 대한 책임론에서 벗어날 수 없는데다, 총선 과정에서 옥새런을 주도하면서 친박계 전체의 어그로를 끌어모은 것으로 인해 심각한 타격을 받고 지지율이 격감했다. 1500명 지지자들과 모임을 가진다던지 민생투어를 떠난다던지 대권을 위한 행보를 이어가는 듯 했으나 새누리당 당대표 선거에서 자신이 공개지지한 비박계 단일 후보 주호영 의원을 큰 표 차이로 누르고 친박이정현이 당대표로 당선되면서 정치적으로 큰 타격을 받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2016년 11월 23일 불출마 선언을 했다. 그러나, 바른정당의 대권주자들의 지지율이 여의치 않자 대선 재등판론이 피어나왔으나 계속 백의종군을 고수하면서 대선 재등판론은 잠잠해진 상황이다. 유승민이 후보로 확정되면서 선대위원장으로 추대되었다.

5.4.2. 오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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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61년 1월 4일, 서울특별시 성동구
현직 바른정당 최고위원
상황 불출마 선언

변호사 출신의 정치인. 이명박 전 대통령에 이어 서울시장을 지냈다. 자세한 내용은 오세훈 참고. 2011 서울특별시 무상급식 주민투표로 인해 서울특별시장직을 사퇴하고 사실상 정치사망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상당히 오랫동안 정치권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가 서서히 이런저런 여당의 선거유세 지원 등에 나서고 있다. 자택을 종로구 혜화동으로 옮기며 총선에 종로로 출마했다. 그러나, 4.13 총선에서 30%대 지지를 받으면서 종로의 현역 정세균 의원에게 참패하였다.[103] 김문수 전 지사와 함께 20대 총선에서 가장 큰 치명타를 입은 2인으로 평가받는다. 게다가 전당대회에서 비박계 단일후보 주호영을 공개지지했으나 큰 표차로 이정현이 당선되며 또 한번 큰 타격을 입었다. 결국 2017년 1월 5일에 새누리당을 공식 탈당하고 바른정당으로 입당하여, 변수를 만들려고 하는 중. 별다른 유의미한 활동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여론조사에서는 상위권으로 나와서 꾸준히 대선 주자로 언급되었으나, 실질적으로는 어려울 것이라는 게 중론. 결국 이런저런 시도가 여의치 않게 끝나자 2017년 1월 13일 불출마 선언을 하였다.

5.4.3. 원희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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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64년 2월 14일, 제주도 남제주군[104]
현직 제주특별자치도지사
17대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3위
상황 불출마 선언

현 제주특별자치도지사. 제주특별자치도가 재미있게도 대한민국 직선제 대통령 선거 100% 적중지역이다 보니 한때 원희룡 제주지사의 제주도 득표력을 보고 대선출마설이 돌기도 했다. 그리고 원희룡 지사의 쇄신, 소장파 이미지를 통한 개혁이미지도 강점.

그러나 원희룡 제주지사는 제주지사 출마할 때부터, 제주지사 당선되고 나서도 2022년 제20대 대통령 선거에 나가겠다는 의지를 표력했다. 연고지인 제주도에서 제주도지사로 행정경력을 쌓고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회의원으로 컴백한 후 대선에 나간다 한다. 그래도 새누리당2017년 대선후보 선출과정에서 대선 경선 '구색맞추기용'으로 남경필 현 경기도지사와 함께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가 없다. 이미 원희룡 본인이 2007년에 이명박, 박근혜, 홍준표와 함께 대통령 경선에 출마하여 3위를 한 적도 있고, 김문수 전 경기지사가 박근혜 대통령이 압도적이었던 2012년 대선 경선 당시 '구색맞추기' 형식으로 경선 후보로 나왔던 사례와 비슷하다.

그런데 20대 총선 이후 새누리당의 인물난으로 인해 일부 언론에서 일찌감치 경기도지사 남경필과 함께 대권 '불펜'으로 꼽히고 있다. 하지만, 제주에서 성당 피살사건으로 반중감정에 기름을 제대로 부은 상황에서 박근혜와 마찬가지로 친중정책을 편 원희룡은 제대로 당했다.

결국 2017년 1월 31일,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5.5. 정의당

5.5.1. 노회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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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56년 8월 31일, 경상남도 부산시[105]
현직 국회의원 (경남 창원 성산)
17대 민주노동당 대선후보 경선 3위
상황 불출마 선언

심상정과 더불어,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창원시에서 야권분열에도 불구하고 51%로 여유롭게 성공을 거두어 진보정당 최초의 3선 의원이 되었다. 당 내에서 당 대표로서 강한 심상정에 비해서는 다소 밀리나 이른바 진보정당 핵심인원이라는 중 한명이다. 정의당 또한 대권을 노리는 정당이며, '19대 대선에서 후보를 낼 것이다' 라고 말하였다.

클로저스 티나 성우 교체 논란 관련 문화예술위원회 논평 논란에서 정의당 내에서는 노회찬 의원만이 강하게 반발하여 결국 철회하게 되었다고 하여, 심상정 대표의 비해 메갈리아 논란에서 자유롭다. # 정의당 내부에선 그를 대권주자로 보는 움직임도 있다. 심상정과 함께 14일 경선에 참가한다고 밝혔다. 19일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였다. #

5.6. 개혁국민신당

5.6.1. 유한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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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38년 1월 15일, 전라북도 금산군[106]
현직 충청향우회 회장
상황 대선 최종후보 미등록

민주당계 정당의 거물 정치인 유진산의 4남이자 전 국회의원(5선. 10~13대, 16대). 2016년 충청향우회장으로 취임한 후 충청권 정치인들과 접촉하는가 싶더니 2017년 3월 23일, '보수 단합'을 외치며 정계 복귀 및 대선 출마를 선언하였다. 관련 기사

출마 정당은 개혁국민신당. 항목 보면 알겠지만, 걸어온 길이 상당히 아스트랄한 정당. 성향을 종잡을 수가 없다. 같은 충청권 대권주자들인 이인제, 정운찬 등과의 연대 가능성도 제기되기도 했다.

그런데 개혁국민신당 홈페이지를 보면 대통령 선거 후보를 모집한다고 되어 있다. 심지어 작성일자가 본인이 출마를 선언한 후인 4월 2일이다. 그리고 유한열 본인에 대한 이야기는 한 마디도 없다. 트위터 쪽도 마찬가지. 결국 대통령 선거 후보로 등록하지 않았다.

이후 올라온 공지에 따르면 본래 유한열을 당에서 후보로 추대하였고 지도부의 배석하에 국회에서 출마 선언 기자회견까지 했으나 유한열 본인의 사의 표명으로 출마하지 못했다고 한다.#[107]

5.7. 국민행복당

5.7.1. 남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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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54년 1월 3일, 경기도 파주군[108]
현직 국민행복당 대표 최고위원[109][110]
상황 당내 대선 후보 교체

전 사회문화연구회 회장.[111] 경기도 파주시에서 제15대(1996년, 무소속) 및 제17대 국회의원 선거(2004년, 새천년민주당[112])에 출마하여 낙선되었다.

2015년에 본인의 정치사상을 정리한 저서 <정의주의>를 집필하며 일찌감치 대권 도전 의사를 밝힌 듯. 본인 트위터 복지공약을 전면에 내세웠는데, 이것만 놓고 보면 거의 이분에 버금가는 수준(...) 2017년 3월 2일, 국민행복당 대표최고위원으로 임명되었고, 3월 10~20일, 총 11일간의 대통령 후보 공모를 거쳐 21일 대통령 후보로 확정되었다. 당 홈페이지 게시물 외에 관련기사 검색이 안됐는데, 안습 이틀 지나서 한 군데 뜨긴 떴다. 현장취재 기사는 아니고, 그냥 적어준 내용 받아서 실은 듯...혼자 사진이 폰카다

그런데, 후보등록일을 며칠 앞두고 갑자기 후보가 이명수로 교체되었다. 당 홈페이지에서도 아무 말 없이... 안습[113]

5.7.2. 이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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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
상황 대선 최종후보 미등록

국민행복당 소속 후보로, 해당 정당에서는 남궁준(정치인)으로 후보가 결정되었다가 뒤늦게 회의를 통해 후보로 확정되었다.#버려진 남궁준

그러나 대통령 선거 최종 후보로 등록하지 않았다. 국민행복당 쪽에서도 별 말이 없다. 이후 당 총재가 홍준표 지지를 선언하였다.

5.8. 통합민주당

5.8.1. 안동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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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60년 1월 14일(음력), 전라북도 진안군
현직 통합민주당 총재
16대 최종 미등록 예비후보 (대한통일당)
17대 최종 미등록 예비후보 (경제통일당)
18대 최종 미등록 예비후보 (경제민주당)
상황 대선 최종후보 미등록 '''

한국의 맥 아카사카 급인 후보로 16대, 17대, 18대를 모두 출마 선언하였다가 최종 미등록 후보로 끝났었으나, 이번엔 확실하게 출마하겠다고 밝혔다. 근래 촛불집회에 참여하거나 공약등을 말하는 등 의외로 정상적인 정치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물론 여전히 특유의 특이한 말투[115]와 그림판으로 만든 듯한 포스터들은 여전하다.

여담으로 그와 마찬가지로 대선에 출마 선언을 한 허경영은 피선거권이 상실된 상태로 만약애 안동옥이 최동후보등록에 무난히 성공하면 허경영을 대체할 후보가 될 가능성이 있다.

참고로 통합민주당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진보 성향이지만, 민족주의가 강한 환단고기환빠 성향 주자라 더불어민주당 등의 민주당계 정당과는 거리가 멀다.

# 여담이지만 요 근래 당 카페에 나무위키를 인용한 글이 올라왔다. 총재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됩니다

이렇게 광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도 최종 후보자로 등록하지 않았다(...)

5.9. 무소속

5.9.1. 보수 성향

5.9.1.1. 김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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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48년 8월 9일, 전라남도 장성군
현직 없음
상황 대선 최종후보 미등록

이명박 정권 시절 국무총리를 한 전 총리로 황교안 총리의 불출마로 홍준표, 원유철등 꽤 지지율이 되는 후보는 있지만 사실상 올망졸망한 후보들의 스머프 경선이 확실시 되자 자유한국당에서 러브콜을 보내기 시작하였다.# 호남 인사인데다가 친이계라 사실상 TK친박당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자유한국당에서 중요한 주자가 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본인은 일단 입장은 드러내지 않았으나 비교적 긍정이라고. 2017년 3월 8일, 개헌의 필요성에 대해 언급하면서 김종인 전 민주당 대표를 비롯한 개헌론자들과 함께 제3지대에 합류할 가능성도 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3월 15일, 황교안 권한대행의 불출마가 확실해지자 자유한국당의 구원투수로 거론되기 시작했으며, 이에 이주영 등 한국당 의원들이 찾아가 설득했으나 "정치를 떠난 지 오래됐다. 현재 국민과 보수층이 기대하는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지 확신이 들지 않는다"라며 끝내 사양했다고. 결국 불출마 가능성이 높아 보였는데, 끝내 최종 미등록했다.
5.9.1.2. 반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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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44년 6월 13일, 충청북도 음성군
현직 없음[116]
상황 불출마 선언

제8대 UN 사무총장. 종종 보수 측의 대권 주자로 분류되었는데, 그렇다고 특정 정당에 소속된 적도 없어서 분류가 애매할 때도 있었다. 초기 설문조사에서는 반기문 사무총장의 차기주자 지지도가 그야말로 압살이었는데, 이때는 서로 반기문이 여권 인사니 야권 인사니 다툴 정도였다. 꽤 예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2006년경 열린우리당에서 반기문을 대권 주자로 옹립하자는 주장이 있었을 정도.

2016년 방한 일정 첫날인 5월 25일 제주도 기자간담회에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여러가지 역할에 대해서는 그때 생각해 보겠습니다." 라며 출마 의사를 사실상 밝혔다.# 대선 후보로 언급되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나이에 관해서도 별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야권을 비롯해 여권에서도 예상보다 높은 수위의 발언으로 평가하며 반기문의 대권 도전 시사로 받아들였다.

굿모닝 런던에 따르면 반 총장은 박근혜 대통령의 사퇴를 설득하고 박근혜 대통령은 사퇴하는 시나리오가 돌고 있었다고. # 진위 여부는 아직 불분명하지만, 이 시나리오가 사실이라면 친박 세력 측 후보로 나설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반기문 지지하는 산악회가 출범하였다.# 그리고 대통령 준비위원회가 출범되었다.# 전부 여권 출신이며, 친박 서청원 의원도 같이 있다고 알려졌지만 대부분의 당사자들이 명의도용이라면서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강력히 반발했다.#

2016년 12월 16일, 결국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이후, 박연차 게이트가 재점화되면서 위기에 몰렸다. 게다가 2016년 10월 25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제대로 터지면서 친박의 지원을 받는 반기문 지지율에 직격탄을 날리게 되어 1위 자리를 문재인에게 뺏기고, 여론까지 급격하게 나빠져 2위 자리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았다. 또한 반 총장의 대선 출마에 제동을 거는 UN 총회 결의안이 존재했다.

2016년 12월 31일, UN사무총장직에서 퇴임하였다.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개헌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박연차에게 돈을 받았다는 의혹은 사실이 아니다" 라고 밝히며 본격적인 대권 행보를 시작했다.

2017년 1월 12일 상당한 언론의 집중을 모으며 귀국한 뒤로 대권주자로서 전국을 돌아다니는 강행군을 소화했다. 그러나 지지층의 기대에 못 미치는 행보를 보여 리얼미터 설날 조사 기준으로 문재인 전대표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결과를 보여주었다. 정치인 반기문의 첫 인상을 어필해야 했지만 반대로 각종 논란들만 만들어졌다.[117]

2017년 2월 1일, 오후 3시 32분경 결국 대선 출마 포기를 선언하였다. SBS 주요 지상파 언론사와 각 언론사에 속보로 보도되었다. 연합 뉴스 기사 참모진들도 TV를 보고 이를 파악했을 정도로 발표 준비는 극비로 진행되었는데, 측근 한 명만이 대본을 봐주기 위하여 참석했고 그 외에는 아무도 몰랐다. 기자회견 역시 고작 15분 전에 기자들에게 알렸다. 이때 기자들이 반기문에게 발표를 생방송으로 할 지를 물어봤는데, 반기문 측에서 그렇게 하는 게 좋겠다고 하였다 한다. 이를 통하여 중대한 사항에 대한 기자 회견이라는 것 정도는 기자들도 알았겠지만 그것이 불출마 선언이라고는 전혀 예상할 수 없었다. 그 근거로 이 현장영상의 3분 18초경 부분에서 반기문이 정치를 그만두겠다는 문장을 읽을 때 기자들이 놀라는 음성을 들을 수 있다.(해당 부분에서 시작됨)

정치에 손을 댄 경험이 없다보니 구설수에 오르며 각종 논란들이 쏟아지는 것에 전혀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했고 이는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기에 사실상 예정된 수순이었다. 또한 아무런 소속이 없기에 정치 활동 비용도 다 개인사비로 지불해야 하기에 점점 부담이 되었다는 관측도 있다.

그리고, 공식으로 사퇴 선언을 하고 특정 후보를 지지하지도 않았으며 다시는 정치판에 엮이지 않겠다고 한 것으로 보면 진심으로 충격을 받고 정치판에 싫증이 난 모양이다. 게다가 그걸 견디고 남아봤자 당선될 가능성도 높지 않아 보이니, 더 논란이 생기기 전에 사퇴해서 UN 사무총장으로서의 마지막 명예라도 지키겠다는 현실적 선택을 했다고 볼 수도 있다. 실제로, 그동안 지속적인 비판을 하였던 세력들도 훌륭한 선택이라는 뉘앙스로 반기문 총장의 불출마 선언을 환영하였다.
5.9.1.3. 정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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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51년 10월 27일, 경상남도 부산시[118]
현직 아산재단 이사장
18대 새누리당 대선후보 경선 출마 선언 후 포기
상황 최종 미등록

월드컵의 성공적인 유치에 힘업어 제16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던 경력 이래로 대선마다 유력한 후보로 지목받은 바 있다. 하지만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서울특별시장 선거 낙선의 타격으로 전망은 밝지 않은 듯... 물론, 서울특별시가 최근 진보층이 강세인 지역인데다가 상대가 상대였던지라 3~5% 정도 차이의 석패였으면 타격은 적었을 것이다. 문제는 무려 13% 차이로 참패한데다가 강남 3구에서마저도 성적이 부진했다는 점이다. 덕분에 체면을 제대로 구겼다.

게다가 제프 블래터 피파 회장의 사임으로 피파 회장 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다만, 이 FIFA 회장 출마 선언은 정몽준의 정치 인생 마지막 도박으로 볼 수도 있다. 저번 월드컵으로 유력주자가 되었던 적도 있는 만큼 피파 회장 당선이라면 될 수도 있었지만, 피파 내에 친블라터 세력이 너무도 큰 데다 유럽을 비롯한 나머지 지역 쪽에서도 정몽준을 고깝게 여기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안 될 것을 알고 있는 정몽준이 아시아 축구협회 임원들에게 극딜을 시전하면서 결국 FIFA로부터 자격 정지를 당했고 회장 선거 출마조차도 좌절되었다.

그리고, 19대 대선에 나서기 어려울 것으로 보였던 이유는 그가 회장인 현대중공업 그룹의 위기 때문이었다. 현대중공업은 이미 몇 년째 상태가 좋지 않으며 2015년에는 바닥을 찍었다. 2016년 4월 이후 시점에도 저유가로 인한 플랜트사업에서의 손실이 계속 커지고 있으며, 저유가 기조는 끝날 징조를 보이지 않고 있다. 주력인 조선업마저도 세계적 경기침체로 상태가 좋지 않은 상태이며 건설장비, 로봇산업 등 부대적인 사업부분도 경기가 좋지 않다.

게다가, 정몽준이 엄청난 재력가이기는 하지만 이런 경기침체 속이라면 사재를 써서 선거에 뛰어드는 모양새 자체가 그룹의 총수로써 힘들 때 외도나 한다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설상가상으로 20대총선에서 최측근이었던 TK출신 안효대가 자기지역구에서 낙선했다. 결국, "정치 쪽은 전혀 관여를 안하고" 있어 사실상 불출마가 유력했다.

2016년 12월 29일 새누리당을 탈당했다. 개혁보수신당에 합류할지 여부는 아직 밝히지 않았으며, 이전부터 정계 은퇴를 생각하였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리고 끝내 최종 등록하지 않았다.
5.9.1.4. 정의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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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48년 12월 18일, 경상남도 부산부[119]
현직 새한국의 비전 이사장
상황 최종 미등록

19대 국회에서 후반기 국회의장을 지낸 바 있다. 2016년 5월 26일 싱크탱크인 "새한국의 비전"을 출범시켰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대선 준비용이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본인이 새누리당에 복당하지 않겠다고 밝혀 여권이 아닌 야권이나 독자 노선을 걸을 가능성이 높았다.

7월 16일 보도된 기사에 따르면, 본인 세력이 약하다는 점을 들어 대권 출마를 하지 않고, 반기문과 새누리당 비박계 영입을 통해서 정계 개편을 추진하겠다고 알려졌다. 반기문의 선대위원장이 되겠다고 발언을 했다고 알려졌으나, 본인은 부인하였다. 한때는 반기문, 이재오, 손학규 등의 제3지대론 당사자 중 하나로 언급되었으나, 본인이 늘푸른한국당에 힘을 실어 주면서 사실상 늘푸른한국당과 행적을 같이 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리고 최종 미등록했다.
5.9.1.5. 한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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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68년 2월 3일, 출생지 미상[120]
현직 세무사, 미국 워싱턴DC 변호사
상황 출마선언 철회

세무공무원 출신으로 국비유학을 통해 미국에서 공부한 세무사이자 조세법학자. 얼마 전까지 세무법인 가덕 국제부 대표로 알려져 있었으나, 최근 자료에는 이 직함 앞에 '전'이 붙은 것으로 보아 해당 법인을 떠난 것으로 보인다.

2017년 3월 17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장문의 출마선언문을 게재하며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관련기사 대통령 탄핵으로 인해 "대한민국은 정치/외교적으로 대단히 위험한 상황에 처했다"며 모든 국민은 힘을 합쳐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자신은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대한민국은 법치주의 국가이므로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이상의 주장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기본적인 입장은 탄핵 반대측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나, 탄기국이나 박사모처럼 대책없는 수준은 아닌 듯. 자신의 홈페이지에 정치 관련 칼럼 및 정책제안들을 다수 게재해 놓았으니 참고 바람. 탄핵 반대측 의견치고는 상당히 논리정연하게, 그리고 군소후보치고는 비교적 깊이 있게 글을 풀어가는 편이라 한번쯤 읽어볼만 하다. 물론 내용보다 글빨이 더 그럴듯하긴 하다.

그런데, 불과 1주일 후인 3월 24일, 출마를 철회했다. 가족들의 반대가 너무 심해서 가정이 풍비박산이 날 상황이라며, 나랏일도 서로 화합하지 못하면 이런 위험한 지경이 되는데, 가족을 설득하지 못한 자신이 과연 더 많은 다른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출마를 철회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와중에 출마 철회문도 글빨이 좋다 그런 상황이었다면 빨리 포기하길 잘한듯...
5.9.1.6. 홍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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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50년 6월 8일, 충청북도 충주군[121]
현직 시민단체 활빈단 대표
상황 대선 최종후보 미등록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하기도 했던 시민단체 활빈단의 대표로, 3월 15일, 출마 선언을 하였다.[122]

수구 세력과 기득권 세력들의 썩은 정치판 껍질을 벗긴 보수세력과 종북 성향의 이들을 배제한 진보세력 및 중도성향 지지자까지 통합한 새로운 진보와 보수 통합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출마하겠다고 밝혔다.출마 선언문

보통 보수단체/보수성향 시민운동가로 분류되나, 타 보수단체들, 특히 친박 단체들과는 확실히 다른 행보를 보여 왔다. 종북척결, 국정교과서 지지, 사드배치 찬성, 테러방지법 찬성 등 극우에 가까운 면모를 보여 왔지만, 갑질/빈부 양극화와 차별 철폐를 주장하는가 하면 소녀상 철거 반대, 독도 망언 규탄 등 일본에 대해서는 줄곧 날선 태도로 일관하기도 했다. 특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에는 박근혜 조기퇴진, 최순실 재산몰수, 김기춘/우병우/조윤선 구속수사 등을 강도 높게 촉구해 왔다. #

정리하자면, 안보 문제나 정부 정책과 관련해서는 보수정권의 입장을 지지하나, 윤리/도덕적인 문제, 부정부패에 관해서는 얄짤없는 듯.[123]

최종후보로 등록하지는 못했는데, 이 기사를 보면 “이번엔 비용 등의 문제로 현실적으로 실제 대선 출마를 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고백했다. 자신의 한계를 알고는 있었던 듯하다.
5.9.1.7. 황교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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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57년 4월 15일, 서울특별시
현직 국무총리대통령 권한대행
상황 불출마 선언

현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 반기문의 안일한 대권 행보에 실망한 보수층들에게 비교적 높게 평가되고 있어 차기 대권주자로 거론되는 인물 중 한 명이다. 다만 한 인터뷰에서 차기대선에 대한 질문에 대해 "일고의 가치도 없다."라고 답한 바 있다. 2016년 6월 대선에 대해 기자들이 묻자 "내년 12월 꼭 투표할 것"이라고 답하며 즉답을 피했다. 친박계에서는 반기문에 이은 플랜 B 정도로 생각하는 듯 했다.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내각 개편의 대상으로 지목되어 곧 퇴직하게 될 예정이었고 이에 따라 사실상 대선 후보군에서 완전히 제외되었다고 보아도 무방한 것처럼 보였으나,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가 통과되면서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게 되었고, 권한대행 5일차에 조사된 대권주자 지지율에서 3.6%로 3.4%의 박원순 서울시장을 앞질렀다.#

12월 20일 대정부질문에서 대선에 출마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법률상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이 된다면 헌재 판결 후 60일 내 대선을 치뤄야 하는 법률과 대통령 선거 출마자는 90일 이내에 공직을 사퇴해야 하는 법률이 정면으로 대치되지만, 궐위에 의한 선거로 치러질 조기대선은 30일전 사퇴면 법적으로는 가능하다.[124] 그러나 현직을 유지하면서 경선 참여가 가능한 자치단체장들과는 달리 대통령 권한대행을 하면서 대선후보 경선에 나갈 순 없으므로, 황교안이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서는 탄핵 인용 판결이 나자마자 국무총리 및 대통령 권한대행 자리에서 물러나고 정당에 입당해야 하는데, 이는 즉 다음 대통령 선거까지 현재 국정을 완전히 손 놓겠다고 선언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아예 정치인으로서의 커리어가 끝장날 수도 있다.

12월 30일 결국 국민의당 안철수 의원을 누르고 6.6%의 지지율로 대권후보 4위에 올랐다! TV조선MBNJTBC

2017년 들어 전통시장을 방문하는 등 다른 대권주자들과 다름없는 행보를 걷게 되면서 점점 대선에 출마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견에 힘이 실렸다. 1월 30일에는 인명진 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직접적으로 출마 권유를 하기도 했다.

2월 1일, 반기문 전 총장의 불출마 선언으로 황교안 총리의 출마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이날 실시된 JTBC 리얼미터 여론 조사에선 전체 2위를 하는 대단한 기세를 보였다. JTBC '반기문 불출마 여론조사' 황교안 지지율 2위 ...최대 수혜

2월 10일 국회의 대정부질문에 나와 야당의원들에게 대선 출마 여부와 특검 연장 여부를 추궁당하였다. 대선 출마 여부에 대해서는 '지금의 국정이 무엇보다 중요하기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고 하였고, 특검 연장에 대해서는 '20일 정도 남았기에 아직 고려할 때가 아니다'라는 모호한 답변을 하였다.

2월말 주요 대권주자의 호감도 조사에서 비호감:호감 = 70:21로 최악의 점수를 받았다. #

3월 15일 임시 국무회의에서 19대 대선일을 5월 9일로 확정하고 이 날을 임시 공휴일로 지정함을 발표함과 동시에 대통령 선거를 공정하게 관리하는 데에 집중하겠다고 밝히며 불출마 입장을 공식 표명했다. 이것이 알려지자마자 사람들은 언제 비난했냐는 듯이 잘한 결정이라며 칭찬하는 중이다. 반기문이 불출마 선언을 했을 때와 비슷한 양상. 때마침 BBQ치킨치킨값 상승 시도를 강력하게 억제한 것과 맞물려 참공직자(...)라는 칭송마저 듣기도 했다.

5.9.2. 자유 성향 및 진보 성향

5.9.2.1. 장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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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49년 5월 14일, 서울특별자유시[125]
현직 월간 장준하 사상계 대표
상황 불출마 선언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로, 군사독재 시대에는 정치인으로, 재야 민주화 운동가로 맹활약했던 장준하의 장남. 부친이 의문사한 후 27년간 해외 도피생활을 하다 2003년 귀국, 부친이 발간하던 월간 시사잡지 사상계의 복간에 매진하였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에는 '친일청산과 역사 바로세우기'를 주제로 전국을 돌며 강연을 하기도 하였다. 이대로 가면 독재를 떠나 나라가 다시 외세에 넘어갈 것이 걱정되어 부친 장준하 선생이 자신의 몸을 빌려 외치고 있는 것 같다고.#

4월 11일, 파주의 장준하공원에서 "5.9 대선은 8.15 광복 이후 청산하지 못한 친일잔재 등 온갖 적폐를 청산하기 위한 시작"이라며 "양심이 바로 선 국가를 만드는 데 앞장서겠다"는 말로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하였다.#

그러나 4월 16일,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5.9.2.2. 정세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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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50년 11월 5일, 전라북도 진안군
현직 국회의장 (서울 종로)
18대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경선 4위
상황 불출마 - 국회의장직

정세균 의원은 일단 참여정부 하에서 산업자원부 장관을 맡은 데다 17대 대선18대 총선으로 인해 몰락 직전까지 몰렸던 민주당을 당대표로서 당시 원내대표였던 원혜영 의원과 함께 수습하여 19대 총선에서 양당 구도로 복구하는 발판을 마련했기에 위기 관리 능력과 지도력은 충분히 입증됐다.

총선에서 당선될 시 차기 대권도 노리겠다고 발언했을 때까지는 세균맨 립서비스 하신다는 소리에 불과하다는 견해가 언급되는 등 저평가됐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새누리당 신흥 대권주자로 거론되던 오세훈을 꺾고 6선에 성공했다. 이로써 대권 유력 주자 가운데 하나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제20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으로 선출되었다. 따라서 사실상 대권 출마가 불가능했으나,여론조사에는 계속 포함되었다. 10차 개헌이 이뤄지면 가능성이 열릴 수도 있다.

그러나 본인은 현재 맡은 자리가 국회의장인 만큼 대권에 대한 주목할 만한 발언이나 행보를 보이지 않았다. 보통 국회의장을 맡으면 그 다음 선거에서 불출마하여 정계 은퇴 수순을 밟는 것이 선례이자 전통[126]이기에 본인도 국회의장을 정치경력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 했다. 하지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고, 박근혜 대통령이 지지율 5%를 기록하는 등 국정공백이 나타나자 여야의 거국 내각, 책임총리 임명 등 어느 때보다 국회의장에게 시선이 쏠렸다. 또한 대선을 전후로 추진되고 있는 개현 논의에서 국회 중심적(내각제 등) 개헌이 이루어질 경우 대통령 못지 않은 권력의 중심으로 부상할 수도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5.9.3. 제3지대론

최근 들어 김종인을 중심으로 뭉치고 있는 이들로 장기표, 홍석현등 재야에 있던 이들도 있는가 하면 김병준, 정운찬등 총리, 장관직까지 해본 이들도 있는 둥, 알력있는 옛날 정치인들이 모이고 있는 일종의 그룹이다. 이들은 일제히 출마선언을 한 후 단일화를 하겠다고 하며 전원책 변호사 등은 이들이 바람을 불러올수도 있다고 하였다.[127] 그리고 사실상 주축인 김종인 - 정운찬 - 홍석현 연합과 장기표 중에서 김종인 연합이 모두 불출마 선언하며 입지가 위태로워졌다. 결국 모두 출마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문재인의 단백질 공급원이죠(...). 이 말이 다른 의미로 사실이 된게 홍석현은 미국 특사가 되었고, 김병준장기표도 추천되는 분위기가 있다.
5.9.3.1. 김병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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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54년 3월 26일, 경상북도 고령군
현직 국민대학교 행정정책학부 교수
상황 대선 최종후보 미등록

노무현 대통령 곁에서 실질적인 '브레인' 역할을 해온 자문학자 그룹의 리더로 오랜 기간 노무현과 알고 지낸 사이라고 한다. 참여정부에서 정치적 지도력을 인정 받았으나 중앙 정치 경력은 없다. 최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 거국내각 국무총리 후보로 물망에 올랐으나 결국 지명철회 당했다. 사실상 친노지만 중도에 가까운데다 TK 출신에 관료 출신이라 성향이 애매모호하다. 실제로 출마를 시사한 자리도 자유한국당에서 였다. 그 이후에는 출마 선언이나 다른 행보가 없었던 상황. 그 와중에 제3지대를 구성한 김종인을 돕겠다고 하거나 패권을 막고 연정을 해야한다고 주장했고, 김종인의 출마선언 자리에 참석하거나 하며 제3지대와 함께 해왔다. 사실상 김종인-정운찬-홍석현 대열에 합류하는 게 목표였던 듯.#

하지만 김종인, 정운찬, 홍석현이 모두 불출마를 선언했고, 결국 자신도 최종 후보로 등록하지 않았다.
5.9.3.2. 김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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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40년 7월 11일, 경기도 시흥군[128]
현직 대한발전전략연구원 이사장 [129]
상황 불출마 선언

보수 진영에서 핵심을 쌓아왔으나 경제민주화의 대한 확고한 이념과 신념으로 진보 진영에서도 나쁘지 않는 평가를 받는 몇 안되는 인물이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 비대위원장 당시 행동은 호불호가 갈리는 편.

2월에 대선 출마 선언을 하겠다는 2월 출마론이 돌았으나, 본인은 부정했다. 그러나 반기문, 손학규, 정운찬, 정의화, 김부겸등과 함께 이른바 중도 빅텐트의 주역 중 한명으로 부각 받았으어, 만약 대권 주자가 된다면 문재인, 이재명 같은 강한 주자가 있는 더민주보다 이들 중도 진영이 창당한 신당이나 무소속으로 출마할 가능성이 컸다.[130] 반기문의 불출마 선언 후 빅텐트 성사 가능성이 희박해 지면서 당내에서 지지율 상승 중인 안희정의 킹메이커로 손잡을 가능성이 점쳐졌다.

3월 7일, 탈당하겠다고 선언하였으며 시기를 조율중이라고 밝혔다. 3월 8일, 탈당계를 제출하면서 의원직도 상실되었다.

3월 27일 대선 출마를 기정사실화했다. # 29일에는 정운찬, 홍석현과 회동을 갖고 세 사람이 각자 출마 선언을 한 뒤 일정 시점에 단일화하여 공동정부를 구성하기로 합의했으며,# 이어 4월 5일에 공식적으로 대선 출마를 선언하였다. 꽤 주목을 받아서 여론조사에도 포함되기까지 했으나...

4월 12일 대선 불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

본인이 말하기를, 통합정부로 국가 위기를 극복해보려 했지만 국민의 마음을 얻기에 힘이 부족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지율이 낮았고, 알고 보니 정운찬 전 총리와 홍석현 전 중앙일보 회장 등과의 연대 논의가 지지부진했다고 한다.
5.9.3.3. 장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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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45년 12월 27일, 경상남도 창원군[131]
현직 신문명정책연구원 대표겸 부패청산의병연합 상임대표
상황 대선 최종후보 미등록

김문수, 이재오 등의 동료였던 노동, 재야 운동가 출신이자 전 녹색사회민주당 대표이자 민중당 출신으로 정치 인생이 여기에 다 적기엔 칸이 부족할 정도지만 6번의 선거[132] 모두 낙선하였다. 다른 재야 운동가들과 달리 민주국민당 창당 당시를 제외하곤 중도 ~ 좌파의 스펙트럼 내에서 활동하였다. 물론 선거를 위해선 그 어떤 계열에 인사도 끌여들이는 전적이 있는 지라 비판이 많았다.

최근들어 한국사회민주당 대표나 녹색사회민주당, 녹색통일당등의 대표를 맡으며 사민주의, 신좌파, 자유주의적 좌파의 모습을 보였기에 대권 주자 중 이재명, 심상정, 강상구 외 유일한 자유주의적 좌파임과 동시에 사민주의적 인물이며 이재명을 제외하면 대권 주자 중 유일한 신좌파적 인물이었다.

국립 5.18 묘지를 방문한 이후 기자들에게 2월 9일 출마 선언을 한다고 밝혔으며#, 문재인은 실패한 새정치민주연합의 대표이기에 대선에 나가선 안된다며 비판을 가하였다.

다만 이재오의 출마가 확정되면서 자신은 불출마한다는 이야기가 있었으나, 나중에는 김종인 등과 회동을 하거나 김종인의 출마 선언 자리에 참석하거나, 문재인 등을 다시끔 거론, 비판하며 아무래도 출마 의지는 있는 듯 했다. 그러나 김종인-정운찬-홍석현 대열에 합류할 것인지는 미지수였다.#

결국 최종 후보로 등록하지 않았다.
5.9.3.4. 정운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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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47년 3월 21일, 충청남도 공주군[133]
현직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
상황 불출마 선언

노무현 정부시절에는 서울대학교 총장을 역임했고, 이명박 정부국무총리였다. 동반성장을 화두로 삼아 1월 중순 출마 선언을 하겠다고 12월 15일 밝혔다. 마침내 2017년 1월 19일 대선 출마를 서언했다. 친이계와 상당히 긴밀한 관계를 유지 중이고, 현재 이명박이재오늘푸른한국당에서도 상당수의 행보를 같이 하고 있다.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국민의당 선호하는 걸로" 알고 있다며 러브콜을 보냈다. 또한 친박과의 연대는 '국정농단의 주역과는 절대 함께할 수 없다' 면서 확고하게 거절했다.

이후 박지원 대표는 정운찬과 손학규가 국민의당으로 온다고 밝혔으나, 정운찬 본인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또한 정운찬의 경우 기존에는 이명박, 이재오 및 친이 계열과의 친분이 더 강했던 데다, 이들과의 연계에도 여전히 신경을 쓰고 있는 데다가,[134] 최근에 문재인을 비판하기도 한 만큼, 아직 어느 진영으로 갈지는 알 수 없다. 최근에는 국민의당과 박지원이 언론 플레이를 해 불쾌하다고 비난하였고, 늘푸른한국당, 국민의당뿐만 아니라 바른정당하고도 교류를 하고 있는 만큼 어디로 갈 지는 아직 알 수없다. 정운찬 본인은 세를 키우고 상황을 지켜 보다가 탄핵이 인용될 즈음해서 거취를 정하는 쪽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입장을 밝혔다.

늘푸른한국당도 생각했으나 늘푸른한국당이 아직 원외 정당인지라 난감함을 표시했다.[135] 더불어민주당과의 연대는 아직 생각해 본 바 없었고 문재인을 비판하기도 했으나, 더불어민주당과의 연계도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바른정당과는 유승민, 김종인과 경제 토론회를 여는 등 서로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이었으나... 3월 15일 바른정당에도 입당 안하기로 하면서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역대급 간잽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정운찬 前총리, 바른정당 입당 안한다(종합)

3월 29일, 김종인, 홍석현과 회동을 갖고 세 사람이 각자 대선 출마 선언을 한 뒤 일정 시점에 단일화하여 공동정부를 구성하기로 합의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4월 14일 돌연 불출마를 선언하였다. #
5.9.3.5. 홍석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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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49년 10월 20일, 서울특별시
현직 한국기원 총재
상황 불출마 선언

중앙미디어네트워크, 중앙일보, JTBC 의 전 회장이자 한국기원 총재이다. 2017년 3월 18일, 자신이 23년간 몸담았던 중앙일보 회장직을 사임했는데[136], 이 과정에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작은 힘이라도 보태겠다며 대선 출마 가능성을 시사했다.[137] 대체적인 평으로는 개국 시점부터 이어져 온 다른 종합편성채널과는 차별화된 JTBC만의 독특한 편성 전략, 손석희의 영입으로 대두된 언론 신뢰도 상승의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지만, 재벌업계, 특히 삼성그룹과의 밀접한 관계[138]가 불안요소라는 점이었다. 만약 출마를 하게 될 경우, 이미 원내 5당이 모두 경선 후보 접수를 마감하거나 경선 후보를 확정지은 상태이기에 실질적으로는 무소속으로 출마할 가능성이 높았다.

3월 29일, 김종인, 정운찬과 회동을 갖고 세 사람이 각자 출마 선언을 한 뒤 일정 시점에서 단일화하여 공동정부를 구성하기로 합의했다고 한다.#

그러나 4월 11일, "대선에 출마하지 않을 것이며, 특정 후보를 지지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밝혀, 대권에 도전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5.9.4. 기타

5.9.4.1. 최석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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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62년 3월 22일, 강원도 원주시
현직 전기기술자(?!)
상황 대선 예비후보 사퇴

현재 전기기술자로 일하고 있는 노동자이다. 야간반 고졸 출신에 전기기술자라는 직업때문인지무소속계의 이재명 알게 모르게 화제가 되고 있는 주자다.# 그러나 후보 개인의 정보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과거 제18대 대통령 선거 당시 청소노동자인 김순자씨나 사실상 일반인인[139] 박종선씨 등의 출마를 생각해보면 최석규씨의 출마도 그리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아니다.

2017년 3월 13일, 선관위에 예비 후보 등록을 했으나, 2주 후인 3월 28일, 예비 후보에서 사퇴하였다.
5.9.4.2. 허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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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47년 7월 13일[140], 경상남도 밀양군[141]
현직 본좌엔터테인먼트[142] 소속 가수
15대 본선 7위 (0.2%, 공화당)
17대 본선 7위 (0.4%, 경제공화당)
상황 피선거권 제한으로 불가능

대선 때마다 출마여부가 궁금해지는 인물. 2016년 초, 신동욱과 손잡고 공화당 후보로 대선에 출마한다는 이야기나오면서 출마설이 돌기 시작했다. 2016년 12월, 탄핵 정국이 시작되자 이를 정확히 예언한 듯한 그의 과거 발언이 재조명되며 다시금 화제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마침내 2017년 3월 1일, "탄핵심판이 끝나면 무소속으로 대선 출마를 선언하겠다"며 출마의사를 밝혔다. 언제나 그랬듯, 공약이 ㅎㄷㄷ하다. 2008년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10년간 피선거권을 박탈당했지만, "탄핵으로 박 대통령이 완전히 물러나면 황교안 권한대행이 사면 복권할 것으로 생각한다"며 출마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 거라고(...).

결국 3월 3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가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형을 살았다면 형집행이 종료된 후부터 10년간 피선거권이 제한된다. 그러나 아직 8년 밖에 안 됐기 때문에 2년이 더 지나야 피선거권이 회복된다”고 함으로써, 2009년 출소한 허경영의 2017년 대선 출마는 불가능하다고 못박았다. 확인사살 하지만 못 박은 후에도 자신은 계속 대선 출마할 수 있다고 자신만만해 했다... 결국 최종 등록에 실패했다.


[1]거제시[2] 실제로 문재인은 대입 재수생이다. 종로학원 진입 시험 1등으로 학원비를 면제받고 재수하였다.[3] 제17대 대통령 선거 경선에서 탈락하였으나 제18대 대통령 선거 때 당선되어 대통령이 된 박근혜는 검증을 잘 못해서 이런 정책을 펼쳤냐는 반론이 가능하다. 그러나 썰전에서 유시민전원책이 한 말처럼 박근혜 당시 후보에 대해 검증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점이 있다고 볼 수도 있다. 또한 2007년 UN 북한인권결의안 기권 논란이 있지만, 최순실이 언론에 직접적으로 노출된 시점에서 터졌기 때문에, 언론플레이로 보는 의견이 다수다. 증언도 사람마다 엇갈리고, 그때 문재인 전 대표는 참여정부 비서실장이라서, 논란에 대한 책임도 얼마만큼 짊어질지를 알 길이 없다. 또한 교차 검증이 가능한 다른 유의미한 증거가 아직 부족하다.[4] 안 그래도 최근까지는 꽤나 적지 않은 여론조사에서 문-안 양강구도를 띄는 상황이었다. 물론 이 역시 방심은 금물이다. 사실 안철수는 토끼와 거북이의 토끼에 해당되는 상황인데, 지금은 홍준표에게 위협받는 상황.[5] 이 득표수는 국민의당 호남 경선 전체 투표자 수보다 6만 표 가까이 더 많은 숫자였다![6] 수도권강원도, 제주도를 한 묶음으로 해서 경선을 치른다.[7] 15대 대선, 16대 대선에서 대세론을 형성하던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도 아들 병역 특혜 문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김대중노무현 후보에게 연속해서 패배하는 아픔을 겪었다. 그래서인지 국민의당 박지원 대표는 문재인의 모습에서 이회창의 모습이 겹친다고 말하고 있다.[8] 2017년 4월 9일 오후 11시 57분에 도지사직을 사퇴하였다.[9] 그는 더불어민주당 후보들에 대해 거침없는 독설을 날리고 있다. 이러한 점은 강경 보수층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요소로 꼽힌다.[10] 실제로 바른정당의 대선후보인 유승민출마자격도 없는 사람이 출마한다며 홍준표의 이러한 약점을 계속 거론하고 있다. 이것은 향후 대선행보에 있어서도 다른 진영의 후보들이 계속해서 홍준표를 공격하는 요소로 쓸 것이 뻔하다.[11] 사실 이번 대선에서 보수정당인 바른정당과 자유한국당이 승리할 확률은 매우 낮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보수정당이 대선후보를 내는 것은 차후 보수진영의 주도권을 누가 쥘 것인지에 대한 다툼으로 보인다. 추후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총선을 위해서는 대선에서 어느 정도의 득표율을 얻느냐에 따라서 누가 보수진영의 주도권을 쥐는지 결정될 것이기 때문이다.[12] 좌파를 대놓고 싫어하는 홍준표가 문재인, 심상정은 그냥 '좌파'로 표현했는데, 안철수에게만은 '이도 저도 아닌 좌파'라는 표현을 썼다. 어차피 자강론을 내세운 안철수는 단일화 대상에서 제외했을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당내에서는 반발이 거세다.[13] 경제 면에서는 가계부채 증가, 청년실업 증가, 최순실 게이트로 인한 몇백조 원에 달하는 사회·경제적 손실비용이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발생한 책임이 있으며, 외교 면에서 홍준표 후보조차도 졸속이라고 평가하는 위안부 협정, 미중간 어중간한 줄타기로 인한 대미,대중관계 악화등이 있다.[14] 바른정당은 홍준표가 성완종 리스트로 재판받고 있는 점, 친박 인적청산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문제삼아 단일화 제안을 거부하고 있다.[15] 사실 홍준표와 자유한국당이 박근혜 감싸기 발언, 구태의연한 안보팔이, 좌파*우파 나누기 구분 같은 외연 확장에 도움이 안되는 발언을 하는 이유는 선거비용 보전과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 있다. 현행 선거법상 15프로 이상 득표해야 전액 선거비용을 보전해주기 때문에 그 정도의 득표율이라도 얻기 위해서는 이런 강성 발언이라도 해야 전통 반공·극우 세력을 결집시켜 그 정도의 득표율을 얻을 것이라는 계산이 깔려있기 때문이다.[16]밀양시[17] 최종 후보 등록과 동시에 의원직을 사퇴할 예정이다.[18] 단 위의 악재가 있기 이전 여론조사이다.[19] 그런데 이 사람, 김어준의 다큐멘터리 영화에 나오는 문재인 편향 의혹이 제기되는 사람이다![20]대구광역시 중구[21] 이철희 소장이 썰전에서 지속적으로 KY 체제에 칭찬을 할 정도로 김무성 대표와의 궁합도 좋고, 일도 잘했다.[22] 대통령 시행령을 국회가 수정할 수 있게 요구->청하는 법안이다.[23] 일단 이 부분은, 정황상 유승민이 박근혜와 친한 사람 중에 최순실이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모를리가 없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였다. 본인도 딱히 부정하지 않는 편이었다. 다만 최순실이 구체적으로 어떤 짓을 했는지를, 그리고 연설문을 고치던 사람이 최순실이라는 것을 유승민이 알았는지의 여부가 핵심 떡밥이었다.[24] 다만 보수 지지층 일부는 문재인이 될 바엔 차선을 택한는다는 심정으로 안철수를 뽑을 수도 있기는 하다. 실제로 유승민과 안철수 간의 후보 단일화에 대한 논의가 오갈때 문재인 vs 안철수 구도라면 안철수를 뽑겠다는 의견도 소수나마 나오고 있었으니까.[25] 당연히, 유승민의 완주가 보수대결집이라는 최후 변수를 제지하는 효과가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26]파주시[27]대구광역시 달서구 성당동[28] 실제로 선대위의 명단이나 당직 인사를 자세히 보면 친박계가 중요 요직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29] 더불어민주당 조차 현재 문재인안희정이재명의 표를 제대로 못 긁어와서 안철수와 접전을 했다. 자유한국당바른정당에 비해 우위를 점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진박세력의 존재 때문인데 진박 표를 뜯기게 되면 자유한국당은 말 그대로 싸그리 다 아작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30] 새누리당 입장에서는 바른정당은 대통령 탄핵과 구속을 주도한 역적 세력이며 같이 갈 수 없다는 입장이며 이는 자유한국당의 주축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강성 친박 지지세력도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다. 당장 당내 최종경선 2,3위를 차지한 김진태와 이인제는 바른정당과의 단일화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경선 과정내내 홍준표 후보와 각을 세웠다. 당내 세력기반이 미약한 자유한국당의 홍준표 후보 입장에서는 이들을 무시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홍준표 후보가 바른정당과의 단일화를 시도한다면 자유한국당의 주축세력인 강성 친박지지 세력의 반발만 불러일으킬 수 있는 상황이다. 바른정당 입장에서도 이들과 단일화를 해버리면 창당명분도 잃어버릴 뿐만 아니라 지지층들도 대부분 안철수 후보 쪽으로 이탈해버릴 것이라는 여론조사도 나온 상황이라 실리도 없는 단일화를 단행할 이유가 없다.[31]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32] 이재오 출생지는 강릉군 묵호읍으로, 현재는 동해시에 속한다.[33] 국민의당은 호남을 중심으로 한 민주당계 정당이며, 바른정당은 김무성, 유승민 등 보수성향이 강한 인물들이 중심이 된 정당. 이에 반해 이재오는 친이계 인사이자, 민중민주주의 계열 운동권 출신이라 국민의당과도, 바른정당과도 함께하기 쉽지 않다. 이재오늘푸른한국당의 성향에 관한 자세한 설명은 해당 항목 참조[34] 참조 후보자 명부에는 플랜트건설 노동자로 쓰여있다.[사퇴자1] 2017년 4월 29일부로 제19대 대통령 후보에서 사퇴함.[36]서울특별시[37] 그는 바지원장에 불과했다는 시각도 있긴 하다. 하지만, 정말 바지원장이었다 해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38] 국정원장 취임 이후의 행적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많으나, 군인으로서의 행적에 대해서는 대체로 평가가 좋은 편이다.[39] 기사 하단 참조[사퇴자2] 2017년 4월 21일부로 제19대 대통령 후보에서 사퇴함.[41] UN 산하에 세계재활기구가 창설되었고, 그 본부를 우리나라에 유치하기 위해 노력중이라는데, 본인 인터뷰 외에는 관련된 문서를 찾기도 쉽지 않다.[42]광주광역시[43] 한 정당으로부터 추대받았으나 최종후보로 등록하지 않은 인물은 불출마자로 다룬다.[44]논산시[45] 현 경상북도 안동시[46] 초등학교 졸업 이후 돈을 모으기 위하여 공장으로 갔고 그곳에서 프레스기에 팔이 들어가 왼팔이 으스러졌으며 공장의 화학 물품과 폭력을 휘두르던 작업 반장 때문에 후각 장애와 부분 청각 장애도 얻었으며 고무가 손가락에 박혀 현재도 있다. 대학은 이후 검정고시를 통과하고 장학금으로 간 것.[47] 이재명의 굽은팔 같은 저서를 보면 페미니즘과 성소수자 문제를 이해하고 존중함이 드러난다. 실제로 워킹맘 정책이나 무지개 운동을 응원하는 등의 모습을 보였다.[48] 때문에 비꼬는 사람들은 이재명에 대해 진보계의 홍준표라고 부르기도 한다. 물론 보수에서도 홍준표의 막말 논란에 대해 질색하는 사람은 보수계의 이재명으로 부르기도 한다.[49] 과격한 발언으로 똑같이 논란이 되는 홍준표도 이점까지도 이재명과 닮았다.[50] 성남시장인지라 경기도가 본거지라고 할 수 있고, 서울 광화문에서 열리는 촛불 집회에 가장 자주 나타나며, SNS 상에서 인기가 높은 점은 수도권 청년들의 인기의 척도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51]광주광역시[52]구미시[53] 현 강원도 원주시[54] 이제는 막말로 유명한 홍준표 후보에게조차 극우, 골박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다. 심지어 같은 강성친박인 이인제에게 토론회에서 친박후보 단일화를 제안했다가 거절당했다.[55] 대표적으로 최순실 특검 연장법을 거부한 사례가 있다.[56] 현재는 태안군. 1989년 태안군 분리 이전에는 현 태안군 전체가 서산군 관할이었다.[57]평택시[58] 물론 촛불집회도 포함해서 한 말이지만 자유한국당 내에 이런 발언을 하는 이들은 소장파 비례대표들 뿐이었다.[59]논산시[60] 최연소 주자는 아니었다. 정의당에서 경선 탈락한 47세의 강상구 전 진보신당 부대표도 있고, 자유한국당에서도 군소후보이긴 하지만 49세의 신용한 후보도 있었다.[61] 목차를 보면, 사실상 정책자료집이라고 해도 무방할 듯...[62] 손학규가 출생한 곳은 현재 서울특별시 금천구이나, 손학규 본인이 줄곧 출생지를 경기도 시흥으로 표기하고 있다.[63] 자신을 중심으로 창립한 결사체이다. 내가 나를 대표한다가 슬로건. 김종인과 박지원도 창립식에 있는 것으로 보아 독자적 단체로 구분하고 서술한다.[64] 완전국민경선은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시행하는 현장 투표다. 사전 등록이 필요한 더불어민주당 투표 방식과 달리 사전 등록 없이 신분증만 지참해도 경선 투표가 가능하다.[65] 이는 박주선 국회부의장도 마찬가지. 아무튼 안철수가 만든 국민의당에서 안철수가 후보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손학규의 복귀 시점이 이미 늦어버려 어딜 가도 힘들었을 상황에 박지원이 손을 내밀어 일부러 안철수와 충돌하게끔 만들었다는 설이 많다. 경선 룰부터 시끄럽게 시작한 국민의당 경선은 안철수의 압도적인 지지율로 미지근할 것이라는 반응과 달리 호남에서부터 흥행 대박을 일으키며 선풍을 이끌고 있다. 덕분인지 안철수 지지도도 꾸준히 상승 중. 이래나 저래나 손학규로서는 악수를 둔 셈이다.[66]광주광역시[67]용인시[68]김제시[69]인천광역시 강화군.[70] 4명 모두 진보 성향을 드러낸 적이 있으며 유재석 외 3인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도 등재되어 있다.[71] 전 국군기무사령관, 국민행복당 대표[72] 직전 문서에는 충청남도 계룡시로 되어 있었으나, 이는 현 주소지임. 논산시 연산면에서 오랫동안 거주한 듯하나, 이곳에서 출생한 것 같지는 않음. 권정수의 출생지에 관해 아는 분은 추가 바람.[73] 링크의 글을 쓴 지지자의 말에 의하면 "솔선수범해야 한다는 정신으로 6천만원 기탁하면 국민들이 따라 움직여주리라" 믿었고, "77세 후보로서 수십명의 후보중 장유유서를 실천하는 후보자의 양보와 지원도 조금은 기대"했던 모양이다. 이게 사실이라면, 지나치게 순진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74]인천광역시[75] 그 잠깐 사이 적자였던 보루네오를 상당히 회생시켜 놓았던 것을 보면 능력은 있는 듯하다.# 사족이지만 지인의 부탁으로 등기이사를 맡다, 임시직으로 하게 된 것이라고.[76] 의료기기제조회사[77] 선거에서 당선이 안되도 특별 성향을 가진 이가 어느정도 득표를 받는다면 당선인이나 정치인들은 이를 무시할 수 없다.[78]광주광역시 북구[79] 직업은 정치인이라고 한다.[80]울산광역시 북구[81] 이전에는 늘푸른한국당에서 이재오가 대선주자로 확정되기 전에 후보로 잠시 검토된 적이 있다.[82] 문재인을 종북이라고 하는 것인지 종북이라는 틀이 걸려 보수을 끌여들이기 어렵다는 뜻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프레임'에 사로 잡혔다는 표현을 보면 후자일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15대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를 지지했기 때문에.[83]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84] 김두관의 경남도지사 포기는 어쩌고 보면 야권 측 대선 전략에 패착이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그가 경남도지사 자리를 포기하면서 야권으로 성향을 바꿀 가능성이 있던 자들이 변화를 철회했을 수 있기 때문. 만약 그가 경남 도지사 자리를 지켜줬다면 18대 대선에 변화가 있었을 지도 모른다. 당장 현재 주민소환된다는 소문이 돌고 있는 홍준표가 재보선에서 권영길을 상대로 60% 이상의 득표율로 당선됐을 정도니.[85]상주시[86]울산광역시[87]영천시[88] 3월 13일 비대위원직에서 사퇴했다.[89]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유학 중이라고 한다.[90] 거창군, 합천군, 창녕군은 행정구역상으로는 경상남도이지만 대구광역시와 지리적으로 가깝기 때문에 대구경북과의 물적, 인적 교류가 많았던 지역이고 때문에 북부 경남 출신지역 정치인들 중에서는 학연, 지연으로 얽힌 TK와 밀접한 경우가 많다. 아예 홍준표 경남도지사처럼 본인을 PK라 부르기를 거부하고 TK로 여기는 경우도 있고.[91] 노량진동으로, 현재는 동작구 관할.[92] 최근까지 새누리당 자문위원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당명 변경 및 당직 개편 이후에는 당내 역할이 분명치 않음. 현직에 관련된 자세한 내용은 추가 바람[93] 보성군-화순군 선거구[94] 원래는 할복을 할 계획이었다고 한다(...)[95] 새천년민주당 당원이었던 적도 있었고, 민주당계 정당에 여러 번 공천신청을 했으나 번번이 탈락했다고 한다. 눈물 좀 닦고[96]창원시 마산회원구. 안상수 출생지는 내서면(현 내서읍)으로 구 마산 지역에 속하나, 당시에는 마산부가 아닌 창원군 관할이었다.[97]부산광역시 연제구[98] 현 전라남도 신안군 지역[99] 애초에 나머지 7명은 대권 후보로 거론됐으나 혼자만 그 외 1인으로 분류되는 안습함을 보이기도 했다. 사실상 국민의당을 안철수와 같이 만들었다는 명분으로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100]부산광역시 남구[101] 다만 2012년 대선 이후에 전국단위 선거는 2014년의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하나뿐이고, 이외에는 모두 재보궐선거라 노년층에 투표율이 집중되는 특성은 감안할 필요가 있다.[102] 조선일보는 원래 비박 성향이었고, 우병우 문제로 청와대와 한번 충돌한 적도 있을 정도로 친박과 거의 원수지간이다.[103] 가장 큰 이유는 역시 무상급식 주민투표 부결로 인한 섣부른 사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사퇴로 인해 대신 서울시장 자리에 오른 사람은 대권잠룡으로 성장했고, 또한 이 사태가 안철수의 정계 입문으로 이어지기도 했다.[10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105]부산광역시 수영구[106] 현재는 충청남도 금산군[107] 자세한 내막이야 알 수 없지만, 이 링크에서 개혁국민신당이 문재인 지지를 선언한 것으로 미루어 후보측과 소속정당 간에 정치적 견해차가 있었는지도... 어쩌면 워낙 고령이라 본선에 뛰어드는 것 자체가 부담으로 작용했을 수도 있을 듯.[108]파주시[109] 당수가 아니다. 총재가 따로 있다.[110] 당 홈페이지를 보면, 하나같이 최고'위'원이 아니라 최고'의'원으로 표기돼 있다. 실제 직책명인지, 오타인지는 확인 바람 확인결과 낭궁준의 저서 '정의주의'의 저자 약력에 국민행복당 대표최고위원으로 표기됨[111] 남궁준의 경력 중 가장 먼저 언급되는 직함. 단, 어떤 단체인지에 대해서는 정보가 거의 없다.[112] 탄핵으로 인해 민주당이 전멸한 선거) 무려 제2야당 후보였던 남궁준의 총선 성적을 확인하고 싶으면 여기 참조.[113] 후에 당 총재가 홍준표 지지를 선언한 것으로 보아, 정치적 견해차가 어느 정도 작용한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민주당 출신에, 리버럴보다도 상당히 좌파적인 정치사상을 지닌 남궁준이 당 정체성에 맞을 리가(...) 다른 당에 가라[114] 우측의 인물이 이명수 후보다.[115] 자신을 제3자처럼 칭하면서도 스스로처럼 칭한다. 거의 2.5인칭급. 또, ~ 할 것. ~할 것이다.를 번갈아 사용한다.[116] 2016년 12월 31일부로 UN사무총장직에서 퇴임하였다.[117] 개중에는 오해라던가 사소한 논란들도 있다. 정치인이 되려면 이러한 것들도 유연하게 대처해야 하는데 그러지를 못하였다.[118]부산광역시 동구[119]부산광역시 동구[120] 검정고시 출신의 독학사이고, 본인 스스로도 '어려웠던 어린 시절'을 언급하는 것으로 보아, 출생 당시의 상황을 밝히고 싶지 않은 것으로 짐작되나, 확실하진 않다. 한성수의 출생지를 아는 분은 추가 바람[121]충주시[122] 굳이 이 날에 한 이유는 3.15 부정선거에 항의하기 위해 일어난 마산 의거 57주년에 맞추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한다.[123] 지금까지 그의 주장은 '활빈단 홍정식'으로 이미지 검색만 해봐도 알 수 있다. 위 사진과 같이 거리에서 혹은 논란대상인 기관/단체 앞에서 현수막 들고 시위하는 게 그의 방식이기에.[124] 이 때문에 남경필, 박원순, 이재명, 안희정 같은 자치단체장들도 대선출마가 가능하다.[125]서울특별시[126] 민주화 이후 출범한 13대 국회(1988)부터 현재까지 예외는 박준규(13대 2기~14대 1기(공직자 재산공개 여파로 중도사퇴), 15대 2기 / 1990.5.~1993.3.; 1998.8.~2000.5.)와 이만섭(14대 1기(전임자 박준규의 잔여임기), 16대 1기 / 1993.4.~1994.6.; 2000.6.~2002.5.) 2명뿐이었다. 두 분은 흥미롭게도 1993년, 2000년 두 번 다 전/후임자로 만났고, 마지막 임기종료 후 다음 선거에 불출마하면서 정계를 은퇴하였다.[127] 물론 유시민, 진중권, 정봉주, 정청래, 전여옥등은 이들이 그저 미풍으로 끝나거나 아예 끝날 것이라며 회의적이다.[128] 김종인 출생지역은 현재 서울특별시 관악구에 속함.[129]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하면서 의원직 상실[130] 김종인은 비례대표이기 때문에 당을 나가는 순간 의원직이 박탈된다.[131]창원시[132] 한번은 재보궐선거이다.[133]공주시[134] 정운찬의 경우, 참여정부 시절에는 서울대학교 총장이었으나 노무현을 비난하기도 했고, 실용정부 초창기에는 이명박과 친분이 별로 없었으나, 이명박이 정운찬을 국무총리로 임명한 후, 이명박 및 이명박의 오른팔인 이재오와 친해져서 이명박에 대해 상대적으로 평가를 후하게 내리는 인물이다. 동반성장과 같은 진보적인 성향도 가지고 있으나, 보수적인 성향 또한 상당히 가지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135] 다만, 늘푸른한국당과 바른정당이 이번 대선에서 연대를 한다면 정운찬이 늘푸른한국당으로 출마할 가능성은 더 높아진다.[136] 다만 실제로는 아들인 홍정도가 2015년 12월 중앙일보·JTBC 대표이사로 취임한 이후에는 홍정도 대표이사가 실질적인 업무를 대부분 수행해왔다. 때문에 아버지의 회장직 사임에 따라 홍정도가 차기 중앙일보·JTBC 회장직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137] 일각에서는 작은 힘을 대권도전이 아니라 킹메이커로 해석하고 있다.[138] 매형이 이건희이고, 이재용, 이부진의 입장에선 홍석현이 외삼촌이다. 애초에 중앙일보 자체가 삼성의 창업자 이병철이 세운 언론사이다.[139] 사실상이 붙은 이유는 과거 민중당 소속으로 출마한 경력이 있기 때문.[140] 본인은 1950년 1월 1일이 실제 생년월일이며, 1947년 7월 13일은 호적에 잘못 기입된 것이라고 주장[141]밀양시[142] 허경영 1인을 위한 연예기획사로, 보좌관 박병기가 대표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