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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성 | 김수한 | 김영구 | 김용갑 | |
김종하 | 나오연 | 류준상 | 목요상 | |
문희 | 박관용 | 박헌기 | 신경식 | |
신영균 | 안상수 | 유흥수 | 이상배 | |
이연숙 | 이윤성 | 이재오 | 이해구 | |
정갑윤 | 정의화 | 최병국 | 하순봉 | |
황우여 | }}}}}}}}}}}}}}}}}} |
역임한 직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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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국회 재정경제위원장 | ||||||||||||||||||||||||||||||||||||||||||||||||||||||||||||||||||||||||||||||||||||||||||
제16대 후반기 안택수 | → | 제17대 전반기 김무성 | → | 제17대 전반기 박종근 | |||||||||||||||||||||||||||||||||||||||||||||||||||||||||||||||||||||||||||||||||||||||
대한민국 국회 국회운영위원장 | |||||||||||||||||||||||||||||||||||||||||||||||||||||||||||||||||||||||||||||||||||||||||||
제18대 전반기 안상수 | → | 제18대 전·후반기 김무성 | → | 제18대 후반기 황우여 |
대한민국 국회의원 (부산 남구 을) | ||||
제14대 유흥수 | → | 제15대 김무성 | → | 선거구 통합 김무성[B] |
대한민국 국회의원 (부산 남구) | ||||
선거구 통합 이상희[2] 김무성[B] | → | 제16대 김무성 | → | 선거구 분리 김정훈[4] 김무성[C] |
대한민국 국회의원 (부산 남구 을) | ||||
선거구 분리 김무성[C] | → | 제17-18대 김무성 | → | 제19대 서용교 |
대한민국 국회의원 (부산 영도구) | ||||
이재균 | → | 제19대 김무성 | → | 선거구 개편 김무성[A] |
대한민국 국회의원 (부산 중구·영도구) | ||||
선거구 조정 김무성[A] 정의화[10] | → | 제20대 김무성 | → | 제21대 황보승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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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pad> 이승만 정부 | |||||||||
초대 황희찬 | 제2대 김효석 | 제3대 장경근 | 제4대 김갑수 | 제5대 홍헌표 | |||||
<nopad> 이승만 정부 | |||||||||
제6대 홍범희 | 제7대 장석윤 | 제8대 이병호 | 제9대 홍범희 | 제10대 황호현 | |||||
<nopad> 이승만 정부 | |||||||||
제11대 한희석 | 제12대 김형근 | 제13대 정운갑 | 제14대 김원태 | 제15대 이상룡 | |||||
<nopad> 이승만 정부 | <nopad> 허정 내각 | ||||||||
제16대 우만형 | 제17대 김장섭 | 제18대 이성우 | 제19대 이동환 | ||||||
<nopad> 장면 내각 | <nopad> 군정 내각 | ||||||||
제20대(정무) 윤명운 | 제20대(사무) 이상규 | 제21대(정무) 김영구 | 제21대(사무) 김원만 | 제22대 이계순 | |||||
<nopad> 박정희 정부 | |||||||||
제23대 양찬우 | 제24대 김득황 | 제25대 이양호 | 제26대 김상복 | 제27대 박영수 | |||||
<nopad> 박정희 정부 | <nopad> 최규하 정부 | ||||||||
제28대 정성관 | 제29대 정상천 | 제30대 정석모 | 제31대 서정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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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대 손수익 | 제33대 김종희 | 제34대 손재식 | 제35대 이춘구 | 제36대 김창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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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대 이규효 | 제38대 이상희 | 제39·40대 송언종 | 제41대 김영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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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대 이상배 | 제43대 노건일 | 제44·45대 최인기 | 제46대 이효계 | ||||||
<nopad> 문민정부 | 1998년 총무처와 정무장관(제1실)과 통합 | ||||||||
제47대 김무성 | 제48대 정태수 | 제49대 이근식 | |||||||
행정자치부차관 (1998~2005) | |||||||||
<nopad> 국민의 정부 | |||||||||
초대 석영철 | 제2대 김흥래 | 제3대 김재영 | 제4대 정영식 | 제5대 조영택 | |||||
<nopad> 참여정부 | 2005년 복수차관제 도입 | ||||||||
제6대 김주현 | 제7대 권오룡 | ||||||||
행정자치부 제1차관 (2005~2008) | 행정자치부 제2차관 (2005~200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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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pad> 박근혜 정부 | <nopad> 박근혜 정부 | ||||||||
초대 박찬우 | 제2대 박경국 | 초대 이경옥 | 제2대 이성호 | ||||||
2014년 행정자치부·국민안전처 분리 | |||||||||
행정자치부차관 (2014~2017) | |||||||||
<nopad> 박근혜 정부 | |||||||||
초대 정재근 | 제2대 김성렬 | ||||||||
행정안전부차관 (2017~현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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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대 한창섭 | 제6대 고기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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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47대 내무부차관 | |||
<colbgcolor=#E61E2B><colcolor=#fff> 대한민국 제15-20대 국회의원 김무성 金武星 | Kim Moo-sung | |||
출생 | 1951년 9월 20일 ([age(1951-09-20)]세) | ||
경상남도 부산시 용당동[11] | |||
거주지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대우트럼프월드1차아파트[12] | ||
본관 | 김해 김씨[13] | ||
현직 | 국민의힘 상임고문 사단법인 민주화추진협의회 공동회장 사단법인 가락중앙종친회 제25대 회장 사단법인 김영삼민주센터 이사 사단법인 세계한인무역협회 고문 | ||
재임기간 | 제47대 내무부차관 | ||
1994년 12월 26일 ~ 1995년 9월 21일 | |||
서명 | |||
링크 | | | | | | ||
{{{#373a3c,#ddd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colbgcolor=#E61E2B><colcolor=#fff> 부모 | 아버지 김용주, 어머니 강신팔 | |
형제자매 | 누나 김문희 형 김창성[14] 형 김남성[15][16] 남동생 김남곤 | ||
배우자 | 최양옥[17] | ||
자녀 | 장녀 차녀 장남 고윤 | ||
친인척 | 외조카 현정은[18] | ||
학력 | 화랑국민학교 (2회 / 졸업) 경남중학교 (24회 / 졸업) 중동고등학교 (64회 / 졸업) 한양대학교 상경대학 (경영학 / 학사) | ||
병역 | 대한민국 육군 이병 소집해제 | ||
종교 | 불교 (법명: 인득)[19] | ||
신체 | 181cm, 90kg, AB형[20] | ||
소속 정당 | |||
의원 선수 | 6 | ||
의원 대수 | 15, 16, 17, 18, 19, 20 | ||
약력 | 동해제강 상무 동해제강 전무 삼동산업 대표이사 민족문제연구소 이사[21] 통일민주당 총무국장 통일민주당 기획조정실 차장 민주자유당 의사국장 민주자유당 의원국장 김영삼 대통령직인수위 행정실장 대통령비서실 민정제2비서관 (문민정부) 대통령비서실 사정제1비서관 (문민정부) 내무부차관 (제47대 / 문민정부) 제15대 국회의원 (부산 남구 을 / 신한국당) 제16대 국회의원 (부산 남구 / 한나라당) 한나라당 총재 비서실장 제17대 국회의원 (부산 남구 을 / 한나라당) 제17대 국회 전반기 재정경제위원회 위원장 한나라당 사무총장 제18대 국회의원 (부산 남구 을 / 무소속) 한나라당 최고위원 한나라당 원내대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 제18대 국회 전·후반기 국회운영위원회 위원장 박근혜 대통령 중국 특사 제19대 국회의원 (부산 영도구 / 새누리당) 새누리당 대표최고위원 여의도연구원 이사장 제20대 국회의원 (부산 중구·영도구 / 새누리당) 새누리당 상임고문 바른정당 상임고문 자유한국당 북핵외교안보특별위원회 고문 자유한국당 상임고문 미래통합당 상임고문 국민의힘 상임고문 김영삼민주센터 이사 | ||
약칭 | 武, MS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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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기업인 가문, 정치인 가문 출신 정치인.대한민국의 제15대~20대 국회의원으로, 15대~18대까지는 부산 남구 - 남구 을 지역의 국회의원이었으며, 19대~20대는 영도구 - 중구·영도구의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다. 현재 소속 정당은 국민의힘이다.
새누리당의 2대 대표최고위원을 역임했으며, 이 시절에는 유력한 차기 대선 주자로 예상되었던 거물 정치인이었다. 당시 선호도 하지만 당시 비박계의 좌장(座長)으로서 항상 새누리당 내의 고질적인 친박계와 비박계 간 계파 갈등의 중심에 서있었으며, 이로 인한 옥새 파동, 그 뒤 새누리당의 20대 총선 참패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대선주자 유력 후보군에서 사실상 제외된다.[22]
원래는 '친박계 좌장'이었으나, 2007년 대선 경선 과정에서 자금 문제, 이명박 정부가 출범 초기 김무성에게 제의한 특임장관, 원내대표 추대를 박근혜가 반대하면서 둘은 큰 금이 가고 만다. # ## 같은 해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에서 친박 무소속 연대로 출마하여 당선되어 둘 사이가 봉합된 듯 했으나, 김무성이 사석에서 기자들에게 박근혜 뒷담화하는 일이 벌어지고, 2009년 세종시 파동으로 둘은 사실상 결별한다. # 그리고 2010년 김무성이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되면서 김무성은 사실상 친이 그룹에 합류했으며, 그 자신도 배신자라는 소리를 듣자 공공연히 원래 이명박 대통령과 친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
실제로 김무성은 친박이던 시절에도 "박근혜 주위에서 '김무성이 자기 정치를 하려고 한다'고 씹어대는데, 정말 미치겠다. 내가 (정권 재창출이나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가 아닌) 개인 정치를 하려면 왜 박근혜 옆에 있겠느냐? 이명박하고 친한데, 진작 이명박하고 손잡았지."라고 언급한 바 있다. 실제로 본문 하단에서도 언급되는 바와 같이, 개인사로 따졌을 때도 김무성은 이명박과 같은 기업인 집안이고, 특히 누나가 이명박이 재직했던 현대그룹의 회장 현정은의 어머니인 김문희 용문학원 이사장이다. 본적 또한 이명박과 같은 경북 포항이다. #
2016년 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고 난 뒤에는 박근혜 탄핵을 주도했으며, 19대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비박계의 구심점으로 활동하며 새누리당 탈당과 바른정당 창당에 주도적으로 나서면서 보수 개혁에 앞장서는 듯했다. 그러나 2017년 11월 9일. 새누리당을 탈당한 지 채 1년도 안 지나서 새누리당의 후신인 자유한국당으로 복당했다.
2018년 7회 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이 참패함에 따라 "보수당의 재건을 위해 헌신하겠다"며 21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 하지만 2020년 2월 기존의 불출마 선언을 뒤집고 (통합신당이 출범한다면) 호남이든 어디든 당이 원하는 험지에 출마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으며 이에 광주광역시 출마도 거론됐지만, 최종 불발되면서 21대 총선은 출마하지 않게 되었으며 이후로는 국민의힘 상임고문을 맡으며 사실상 정치 일선에서 물러난 상태다.
2022년 8월 윤석열 정부에서 다선 원로 의원들이 주로 맡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으로 내정되었다. # 그러나 내정 철회 가능성이 언급되고 결국 김 전 의원 본인이 고사하였다. # 이후 김무성 본인의 기자회견에서 정계 복귀를 할 생각이 있냐고 물어보자 70살 먹고 표 달라는 것은 옳치 못한다며 정계 복귀를 절대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결국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에는 김관용 前 경북지사가 내정되었다.
대신 2022년 12월 23일 3대 관변단체 중 한 곳인 한국자유총연맹 총재로 강석호 前 의원이 선출되었는데, 강석호 전 의원은 김무성 전 대표의 최측근이자 '포럼 더 좋은 세상으로'(소위 '마포포럼')의 공동대표을 역임했다. 윤석열 정부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여권 원로들이 가는 자리인 평통 부의장을 포기하고 정치적 동지이자 측근이 자유총연맹 총재로 갈 수 있도록 배려한 것으로 추측된다. '무대'라는 별명에 어울리는 행보다.
2. 생애
'전남방직주식회사'의 창업주인 아버지 김용주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부산에서 태어나 자랐으며, 경남중학교를 졸업하고[23] 상경하여 중동고등학교(64회)와 한양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했으며, 병역은 방위병 출신이다.
26세에 (주)동해제강이라는 회사의 상무이사가 되었고, 그리고 32세에 (주)삼동산업이라는 회사의 사장으로 일했다. 1985년 민주화추진협의회로 본격적인 정계 입문을 하기 전까지는 상술한 동해제강과 삼동산업의 경영인으로서 재계에서 활동했다.
부인 최양옥 씨는 피아니스트이자 명지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교수로, 이승만 대통령의 비서관과 자유당 정권 공보처장, 이후 박정희 대통령 시절 3선 국회의원을 했던 최치환의 딸이다.
슬하에 1남 2녀를 두고 있는데, 아들은 배우 고윤[30]이다. 드라마 아이리스 2로 데뷔했고 영화 국제시장에서 단역으로 출연한 바 있으며 영화 오늘의 연애에서 주인공 이승기의 절친인 재중 역을 맡기도 했다. KBS 드라마 오늘부터 사랑해에서 천재 바리스타인 정윤호 역을 맡기도 했고 꾸준히 여러 드라마에 조연으로서 활동해오고 있다. 영화 인천상륙작전에서 오대수 역할을 맡았으며, 최근에는 KBS 주말드라마 미녀와 순정남에서 공진단 대표 역을 맡고 있다.
차녀인 김현경은 로드아일랜드디자인학교(Rhode Island School of Design, RISD)를 졸업하고, 세계 최고의 미술대학으로 손꼽히는 프랫 인스티튜트 대학원에서 커뮤니케이션 디자인(Communication Design)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수원대학교에서 교수로 일하고 있었으나, 너무 젊은 나이에 교편을 잡았다는 것 때문에 논란이 있었다. 이후 남편이 여러 마약 전과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집행유예로 풀려난 사실이 드러나면서 교직을 떠났다.
3. 정치
3.1. 정치 경력
자세한 내용은 김무성/정치 경력 문서 참고하십시오.3.2. 정치 성향
계보상으로 새누리당 내 비박 및 민주계(김영삼-이명박의 노선을 따르던 보수정당 내 민주화 운동 세력)의 대표적인 인물이다.논란 항목에 써있듯 '난 노무현이를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노무현 대통령의 정신상태를 의심해봐야 한다.', '5.16은 혁명이다'라고 발언하는 등 보수 진영의 대표적인 저격수이자 강경파로 명성을 떨쳤으며, 제18대 대통령 선거 국면에서 NLL 대화록 논란을 쟁점화하는 등 종북몰이에 앞장서기도 했다.
하지만 차기 대권주자로 부상하면서 중도층 공략의 필요성이 생기자, 노무현이 묻힌 봉하마을도 들르고 '임을 위한 행진곡' 열창과 함께 5.18 민주화 운동도 치켜세우고 있다. 과거 발언들에 대해서도 '내가 돌 맞아도 할 말 없다'는 식으로 사과하는 등 급전향적인 태도를 보였다. 다만 5.18을 치켜세운 것은 민주화운동을 주도한 상도동계의 막내로서 당연한 행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나자 "난 그분의 정치적 아들"이라고 하며 고인의 차남인 김현철 교수와 함께 상주를 섰을 정도다.
경제와 사회문화에 있어서는 경제적 자유주의와 사회보수주의에 기반한 입장을 주로 표명해왔다. 기업인 출신답게, 이명박 정부의 감세정책에 대한 옹호적인 입장과 노동조합의 노동쟁의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여러차례 표명했다.
실제로 새누리당 당대표 재직 당시, 여당대표로서 임금피크제를 포함한 정부의 노동개혁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또 유승민의 법인세 인상 추진에 대해 기업인의 성취 욕구는 어떻게 되냐고 반문하며 법인세 인상은 최후의 수단이 되어야 한다고 일축했다. 문재인의 소득주도성장에 대해서도 사회주의라고 비판했다. #동성애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인식을 견지하며, 동성애는 인륜을 파괴하는 것이라고 발언하며 차별금지법 제정에도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했다. 다만 사형에 반대하는 의외의 진보적인 면도 있다.[31] 또 2016년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참패한 직후에는 '난 경제는 중도, 안보는 보수'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국회 내 가장 대표적인 개헌론자 중 하나이다. 여기서 개헌이란 분권형 대통령제로의 개헌을 뜻하며, 본인 스스로는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를 선호한다고 한다. 대개 DJP연합 당시의 김종필과 같이 본인의 대통령 당선 가능성이 희박해진 인물들이 권력을 잡기 위해 이원집정부제나 의원내각제 개헌을 추진하는 경우가 많은데, 김무성의 경우 한창 대권주자 1위를 하던 당대표 시절부터 개헌을 주장했다.
3.3. 친무
자세한 내용은 친무 문서 참고하십시오.4. 논란 및 사건사고
자세한 내용은 김무성/논란 문서 참고하십시오.5. 성품
김 의원은 정치의 맥락이나 생리를 아는 사람 중 한명이다. 정치를 풀어가는 능력이 있으면서도 사심이 없고 잔재주를 부리지 않는 등 선이 굵다.
- 조해진
- 조해진
김무성 대표는 갈등을 부드럽게 만드는 통합의 리더십을 갖췄다.
- 심상정
- 심상정
김무성은 누구보다 폐활량이 큰 정치인이다.
- 이윤석
계파와 인맥을 중시하는 전형적인 한국형 정치 리더라고 볼 수 있다.[32] 좌성태 우학용으로 대표되는 좌장들을 중심으로, 그의 주위에는 그를 따르는 비박계 의원들이 즐비해 있다. 본인은 100억대 재산을 보유한 금수저이지만, 측근들은 이진복[33], 서용교[34], 김성태[35] 같이 본인의 능력으로 자수성가한 비주류들이 많으며, 김무성 또한 그들의 인생 성공담에 진심으로 감동해 하며 잘 챙겨준다고 한다. 비단 계보원들 뿐 아니라 문재인, 박지원, 심상정 같이 성향상 정 반대의 진영과도 인간적으로는 가까이 지내는 걸 보면 상당한 친화력과 붙임성의 소유자로 보인다. 즉, 사적으로는 확실한 호인(好人) 유형이라는 게 중론. 이로 인해 여야 구분 없이 김무성에 대한 평가는 모두 좋은 편이다.- 이윤석
그의 측근이었던 장성철 시사평론가는 김무성 전 대표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던 만큼 김무성의 인격을 긍정적으로 평했다. 다른 의원들과 달리 확실히 주말 휴무를 보장했고, 야근을 할 일이 있다면 보좌관들은 전부 집으로 보내고 혼자 사무실에서 일을 하던 스타일이었다. 이 때문에 보좌관들의 근속 연수도 상당히 긴 편에 속했고, 관례를 깨고 인턴들에게도 퇴직금 정산까지 확실히 해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중요한 사안이 있으면 의원실 전 직원을 불러서 지위고하 막론하고 의견을 구하고, 그 의견에 대해서 가부로 부쳐 결정한다고 한다. 이렇게 비일비재하게 사안을 결정하다보니, 말단 직원들도 눈치 안보고 이야기한다고 한다. 또한 김무성도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한다. 이런 사안 결정방식에는 김무성이 속해있었던 상도동계 방식을 착안한 것으로 보여진다. 실제로 김영삼 대통령도 이러한 방식으로 사안을 결정했다고 한다.
초면인 기자에게 격의 없이 반말을 하는 모습이나, 깊은 고민 없이 직설적인 말을 툭툭 내뱉는 모습만 보면 권위주의에 찌든 정치인으로 비춰지는 면도 있으나, 실제로는 국회 내에서 그 누구보다 타협을 중시하는 면도 있다고 하며, 김무성-유승민 투톱 체제 당시, 국정 운영이 원활해 야당에서도 평가가 꽤나 좋았다고 한다. 직접 만나 겪어 본 사람들은 인간적인 면모가 두드러진다고 평하기도 하며, 따뜻함을 느낀다고 한다.[36]
정치 행보나 스타일은, 이상과 신념에 집착하지 않고 힘에 부치면 뜻을 접는 현실주의형이다. 좋게 말하면 현실주의지만, 상황에 따라 언제든 주장을 뒤집는 모습에서 비굴함이 엿보이는 건 사실이다. 특히 박근혜 전 대통령을 상대로 고개를 숙이는 경우가 많았다.[37][38] 정치를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여러 모로 연구 대상인 입체적인 캐릭터다.
더불어, 가정에 대한 애착에 상당한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도 아내도 모두 반대했던 정치 일에 뛰어든 탓에, 밤 늦게까지 집에 돌아오지 않은 경우가 잦아 아내와 자식들에게 심리적 부채감을 가지고 있다고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SNS에서 게재되는 사진들 역시 정치 행보보다는 가족, 특히 손주들과 함께 찍은 사진들이 많다. 무엇보다 일명 '마약 사위' 논란에 대해서는 "딸의 결혼을 후회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딸이 이것마저 허락 못 해주느냐'고 하는데 차마 반대할 수 없었다"라며 자신의 정치인생에 족쇄가 될 줄 알면서도 허락했다고 회고했다.
6. 여담
* 2015년 말쯤 인터넷상에서 원피스에 나오는 천룡인 중 차를로스 성[39]하고 닮았다는 얘기가 나오더니 결국 저런 짤방이 탄생했다. 반대로 더불어민주당의 전 대표이자 대권 경쟁자인 문재인 대통령도 몇 년 전부터 명왕과 외모가 비슷하다며 합성짤 등이 나돌았다. 사실 두 사람은 경남중학교 1년 선후배 사이로[40], 사적으로는 서로 반말로 말을 주고 받을 정도로 매우 친분이 두터운 사이이다. 새누리당 대표 시절 김무성 대표 딸의 결혼식에 문재인 전 의원이 불쑥 찾아왔는데, 자당 의원들조차도 구설수에 오른다며 오지 말라고 했던 김무성 대표가 문재인만큼은 환영해줘 딸과 인사도 시키고 반갑게 맞이해줬다고 한다.
- 박지원과도 사이가 좋다. 같이 예능에서 호흡을 맞췄을 정도다. 희한하게도 박지원 파와 문재인 파는 사이가 나쁘다. 둘 다 상도동계, 동교동계 인물로 각각 김영삼, 김대중이 각별히 여기던 사람이란 걸 생각하면 계파가 사이좋을 리는 없긴 하지만, 사실 상도동계와 동교동계는 독재에 맞설 때는 협력했던 관계였고 김무성도 YS를 도와 운동한 경력이 있다. 사실 그는 정치권의 대표적인 마당발로 통하는 인사 중 하나로, 심지어 정치적으로 거의 상극이나 다름없는 심상정 의원과도 다정한 스킨십을 나누는 것이 포착될 정도다.[41] 다만 이후에는 박지원과는 사이가 틀어진 듯 박지원이 마리텔 방송에 나와서 '내 전화 안 받을 텐데?'하고 전화를 시도하나 받지 않았다.
- 김무성이 제20대 총선 직전까지 대선 후보 지지율 1위로 꼽히는 등 승승장구할 때는 '킹찍탈'이라는 유행어도 존재했다. '(선거에서) 킹무성 찍고 (해외로) 탈조선'이란 뜻으로, 새누리당 및 김무성에 대한 반감과 '헬조선'이 상징하는 자국 혐오가 결합된 용어다. 20대 총선 이후에는 당연히 사용 빈도가 많이 줄었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 불출마 선언을 하면서, 아니 애초에 옥새런으로 박근혜의 정치인생에 대한 사형선고의 첫 타를 때리고 친박과 척을 지면서 사용되지 않는다. 피상적으로 박근혜의 후신처럼 알려진 사람 치고는 2년이 지난 지금은 꽤나 반전과도 같은 결말이다. 실제로 21대 총선에는 출마하지 않았고, 이후로는 정치권에서 존재감이 거의 없어지다시피했다.
- 윈도우 불법인증도구인 KMS를 김무성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정확히 말해 KMS는 불법인증도구가 아니라 마이크로소프트 소프트웨어의 정품인증 방식이며, 이를 해킹한 툴에 'KMS 인증' 따위의 이름이 붙은 것이다. 항목 참조
-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자, "14년 전에 트럼프의 당선을 예상하고 제 집을 트럼프 월드로 이사한 적이 있다"라고 개그를 쳤다. #[42] 아직도 여의도 트럼프 월드에 거주한다고 한다.
새누리당 대표 시절 발언이 명언으로 밈화 되었다. |
- 프로필에 적힌 키가 181cm으로 나이에 비해 상당히 키가 큰 편이다. 김무성이 1951년생이고 당시 한국 남성 평균 신장을 생각해 보면 상당한 장신에 속하며, 지금으로 치면 거의 190cm 이상에 해당되는 키다. 참고로 181cm이면 현재 20대 성인 남성을 기준으로 해도 큰 키에 속한다.
- 지금은 나잇살이 많이 붙었지만, (특히 나이 든 사람들 중에는) 김무성이 잘 생겼다는 이유로 지지하는 사람도 꽤 있다. 실제로 젊었을 적 사진들을 보면 위에서 언급된 덩치와 함께 풍채가 당당하고 호방한 외모의 소유자다. 관상학적으로도 귀골이라 한다. 아들이 연예인을 하고 있을 정도이다.[43] 현재의 체중은 85~90kg 정도라고한다.
- 사실 여부는 알 수 없지만, 넷상으로 도화살이라는 카더라 썰이 퍼져 있다.
- 정치권에서 알아주는 주당이라고 한다. 한 때 유인태, 박희태, 이명박과 함께 정치권 4대 주당으로 꼽혔다고. 다만 2022년 기준 앞선 세 사람은 모두 정치계에서 떠났고, 김무성도 사실상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으니, 네 사람 모두 정계를 떠난 셈이다.
- 주당이라는 이미지에 맞게, 김무성이 현역 의원시절에는 새누리당 내에서 소주 회담이라는 문화가 있었다. 안주는 감자탕이나 삼겹살같은 소주에 어울리는 음식을 곁들이고, 자신이 부른 의원들끼리 소주를 한 잔 들이키는 것을 기자들에게 공개하여 '다같이 한 잔 마시고 털어냈다.' 라는 이미지를 보인 것이다. 또한 유승민 의원에게는 부친상 때 조문하여 상주인 유승민에게 소맥을 타서 폭탄주를 즉석에서 두 잔 만들어 한 잔 하라고 건네줬다.[44] 그리고 옥새런 파동 때도 부산으로 찾아온 원유철을 불러 횟집에서 나란히 앉아 그 소주회동으로 분위기를 이끌어나갔다. 에피소드를 보면 알겠지만, 새누리당 내에서 분열이 생길 때 김무성이 당사자와 만나 소주를 같이 마시고, 그걸 기자들 앞에 공개하는 것을 보면, 그의 평가인 주당이면서 당 내의 조직 융화를 중시한다.라는 평가가 딱 맞아 떨어진다.
- 주당이지만, 상당한 혐연가이기도 한데, 담배를 태우는 국회의원들을 공공연하게 비난하고, 몸에 좋지도 않은 그런 걸 왜 그리 태워대는지 모르겠다.라는 말과, 담배 피는 남자를 안 말리는 부인에게도 책임이 있다.라는 발언으로 철저한 혐연 스탠스를 취했다. 공교롭게도 그가 현역시절 상대 야당인 민주당계의 김한길과 이해찬 모두 술은 못 해도 알아주는 골초라고 한다.
- 출생지가 부산광역시라서 많은 사람들에게 부산을 대표하는 정치인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김무성 본인은 포항시를 또다른 고향으로 여기며 포항에 많은 애착을 가지고 있다.[45] 유년 시절을 포항에서 지냈으며, 청년기 동안 포항에서 동해철강 전무로 7여년을 살았다. 위에서 언급했듯 사실상 정치 활동을 처음 시작하려고 했던 곳 역시 포항이다.[46] 지금도 종종 포항을 방문하며 포항 향우회 행사에 참여하는 중이다. 참조 기사
- 연세대학교 농구부 16학번에 동명이인의 선수가 있다. 마침 17학번에 박지원도 있다 보니 기사에 언급되면 덧글이 노룩패스로 도배되기 십상. 이후 김무성은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에 입단했으며 박지원은 부산 kt 소닉붐에 입단하여 프로에서 재회했다.
- 한 때는 차기 대권 후보로서 문재인보다 지지율이 더 높게 나온 적이 있다.[47]
- 평소에 측근을 통해서 박근혜 확 받아버린다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박근혜 탄핵에 찬성표를 던짐으로써 정말 받아버렸다.
- 공적으로 보이는 모습과 별개로, 사적으로는 상당히 좋은 사람이라고 한다. 이념과 진영을 가리지 않고 두루두루 친분을 과시하는 이유다. 보좌진들이나 지인들의 증언으로는 그야말로 사람 좋은 스타일이라고 한다. 직설적이기로 유명한 하태경 의원 역시 그가 굉장히 수평적인 사람이라며 권위적인 꼰대와는 거리가 멀다 평가했다. 실제로 사석에서 그를 본 사람들은 하태경 의원의 이러한 평가에 전적으로 공감하고 있다. 노룩패스의 주인공인 보좌관과는 정말 그만큼 편한 사이여서 그리 했을 가능성이 적지 않아 보인다. 물론 기자단을 의식하지 못한 점은 반박하기 힘든 실수다.[48]
- 보수논객 전원책이 싫어하는 정치인 중 한 명[49]인데, 방송에서 언급할 때마다 노골적으로 씹는 경우가 잦다. 썰전에서 유승민과 만났을 땐 "그 분 백수야?"라고 하면서 은근히 싫어하는 기색을 표하더니, 한 번은 하는 일 없이 뱃살을 타악타악 튕기고 다닌다며 비꼰 적이 있는데, 이 때 오히려 감정이 안 좋다면 더 안 좋을 수밖에 없는 유시민[50]이 전변호사님이 뱃살나온 사람의 고충을 아냐며 말렸을 정도다.
- 신고한 재산 내역을 보면, 2015년 기준 김무성의 재산 규모는 현금과 부동산 등을 모두 합쳐 137억 5,600만 원이라고 한다. 참고로 해당 재산 규모에서 부동산 재산의 가치는 공시지가로 신고되어 있어서 다소 낮게 측정되었을 경우가 높다. 이후 2017년 기준 고위공직자 재산목록을 보면 부인 명의 예금통장에 100억이 있다. 부부의 총 재산 합은 현재 130억으로 줄었다. 다만 2022년 기준 재산이 1,000억 원 규모로 알려지고 있다.
- 상당한 손주 바보다. 1남 2녀 슬하의 외손주들과 찍은 사진을 습관적으로 페이스북에 게재할 정도이다.
- 미드 하우스 오브 카드의 주인공, 프랜시스 언더우드와 닮은 꼴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남부 출신, 정치 베테랑에 다선 의원, 한 때 여당 실세급 의원, 대통령과 사이가 틀어진 이 후 의도적인 트롤링, 근데 그 대통령 뒤에서 비합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20년 지기 친구가 있음, 대통령 탄핵의 일등 공신이다. 이쯤되면 거의 평행이론 수준이다.
- 보수내에서 거물급 정치인임에도, 상당히 특이하게 친박/비박 성향의 보수 지지자들 모두에게 부정적으로 평가받고 있는 정치인이다. 친박성향의 지지자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은 불가피했다" 라는 것만으로도 김무성은 일방적인 증오의 대상일 뿐이며, 비박 성향에서도 20대 총선의 옥새런 파동, 조선족 이민 대거 허용, 노 룩 패스로 인하여 기성 꼰대 정치인이라는 반감이 상당하다. 과거 킹무성, 킹찍탈로 불리면서 대권주자 1위였던 인물임을 생각하면 불과 몇 년도 채 안 돼서 위상이 급속도로 무너진 케이스다. 심지어 2020에는 일부 언론조사에서는 차기 대권주자 후보군에서도 빠졌다.
- 대권주자에서도 밀려났고, 정치적 입지도 줄어든 탓인지 "국회의원은 안 하지만 정치를 은퇴한 것은 아니다" 며 "2년 뒤 대선에서 정권 창출을 위해 킹메이커로 나서겠다"고 밝혔다. #
- 왕좌의 게임을 몰아보느라 며칠간 칩거했다고 한다.
- 2021년 4월 tvN 업글인간 3~4회에 아들 고윤과 함께 출연했는데 대학생 시절 이후 처음으로 캠핑을 했고 아들과 처음 대작도 해보았다. 그리고 고윤과 캠핑을 하면서 "이제 70이 넘었고, 건강하게 보낼 시기가 10년 남짓이다. 이제라도 가족에게 헌신하고 싶다. 특히 아들과 불편한 관계를 해소하고 싶다." 라면서 사실상 정계은퇴를 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51]
- 2009년 국정감사 당시 '발열팩 사건' 때문에 지나치게 욕을 먹은 적도 있다. 당시 국방위원회에서 김무성은 전투식량의 문제점을 지적했는데, 내구력이 약하고 쓰레기가 너무 많이 발생하며, 발열 과정에서 지나친 수증기가 발생해서 은엄폐 유지가 되지 않는다는 부분이었다. 실제로 이는 야전부대에서도 많이 올라온 건의사항이었다. 게다가, 무턱대고 트집잡은 게 아니라 연구보고서를 작성하거나 관련 학회에서 토론도 했다. # 즉, 국정감사에서 전투식량 성능 자체만을 지적했다기 보다는, 해당 전투식량이 여러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개발하는 데 7년이 걸렸고, 3년 동안이나 기술시험, 부대운용시험을 거치며 총 개발비로 85억여 원이나 날려먹은 것을 좀 더 문제삼았던 것으로, 국방위원회 위원으로서 마땅히 할 일이었다. 하지만 자녀들 군대 빼주는 국회의원에 대한 불신 풍조와, 말을 조리 있게 잘 못 한 덕분에 결과적으론 "니가 말하는 완벽한 전투식량인 미숫가루, 건빵은 서민들 아들내미나 처먹어라" 같은 식으로[52] 비난을 당했다. 정작 김무성 자신의 아들은 현역병 만기전역자라는 걸 생각해도, "저 사람 뭐야?" 같은 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케이스다.
7. 소속 정당
소속 | 기간 | 비고 |
[[신민당(1967년)|]] | 1978 - 1980 | 정계 입문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1980 - 1985 | 정당 해산 |
| 1985 - 1987 | 창당 정계 복귀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1987 | 탈당[53] |
[[통일민주당|]] | 1987 - 1990 | 창당 |
[[민주자유당|]] | 1990 - 1995 | 합당[54] |
[[신한국당|]] | 1995 - 1997 | 당명 변경 |
| 1997 - 2008 | 합당[55]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2008 | 탈당[56] |
| 2008 - 2012 | 복당 |
[[새누리당|]] | 2012 - 2016 | 당명 변경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2016 - 2017 | 탈당[57] |
[[바른정당|]] | 2017 | 창당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2017 | 탈당[58] |
[[자유한국당|]] | 2017 - 2020 | 복당 |
[[미래통합당|]] | 2020 | 합당[59] 정계 은퇴 |
| 2020 - 현재 | 당명 변경 |
8. 선거 이력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E61E2B><tablebgcolor=#fff,#1c1d1f><tablewidth=100%><rowcolor=#fff><rowbgcolor=#E61E2B> 연도 || 선거 종류 || 선거구 || 소속 정당 || 득표수 (득표율) || 당선 여부 || 비고 ||
1988 |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 전국구 | [[통일민주당|]] | 4,680,175 (23.80%) | 낙선 (15번) | |
1992 |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 [[민주자유당|]] | 7,923,718 (38.50%) | 낙선 (50번) | [60] | |
1996 |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 부산 남 을 | [[신한국당|]] | 38,970 (62.58%) | 당선 (1위) | 초선 |
2000 |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 부산 남 | | 75,215 (66.93%) | 재선 | |
2004 |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 부산 남 을 | | 38,826 (54.88%) | 3선[61] | |
2008 |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26,265 (49.69%) | 4선[62] | ||
2013 | 상반기 재보궐선거 (국회의원) | 부산 영도 | [[새누리당|]] | 27,981 (65.72%) | 5선[63] | |
2016 |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 부산 중·영도 | 43,447 (55.80%) | 6선[64] |
역대 선거 벽보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
15대 총선 (부산 남구 을) | 16대 총선 (부산 남구) | |
17대 총선 (부산 남구 을) | 18대 총선 (부산 남구 을) | |
2013년 상반기 재보궐 (부산 영도구) | 20대 총선 (부산 중구·영도구) | }}}}}}}}} |
역대 후보 이력 | ||||||||||||||||||||||||||||||||||||||||||||||||||||||||||||||||||||||||||||||||||||||||||||||||
|
- 잘 부각되지 않은 점이 있는데 지역구 선거에서 진 적이 없다. 전국구에서 두 번 출마했으나 거의 당선권 밖에 있는 번호라서 2전 2패지만, 지역구 선거는 6전 6승이며 이 중 5번은 과반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무소속으로 나온 선거에서도 절반에 가까운 득표율을 기록했다. 이 정도의 경력이라면 국회의장급이다. 현재 여야를 통틀어 그를 뛰어넘을 만한 관록의 인물은 서청원[65], 이해찬[66], 이시종[67], 문희상[68], 정세균[69], 정몽준[70], 홍준표[71]밖에 없는 수준이다.[72] 다만 3당 합당 이후의 부산이 보수 강세 지역임을 감안하면 안방 챔피언으로도 볼 수 있다.
9. 참여 음반
새시대 통일의 노래 - One Dream One Korea 2015.09.21 | ||||
트랙 | 곡명 | 작사 | 작곡 | 편곡 |
01 | One Dream One Korea (Original Ver.) MV | 김이나 | 김형석 | 김형석, Zigzagnote |
10.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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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 아들 고윤 | ||
논란 | 논란 | ||
새누리당 대표 직인 날인 거부 사태 · 포항 가짜 수산업자 사기 사건 | |||
기타 | 친무 · 별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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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 홍인길 의원직 상실 (1997.12.26.) * 해운대·기장 을 김기재 사퇴 (1998.4.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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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운대·기장 갑 손태인 작고 (2002.1.1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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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경호 | 하태경 | 한선교 | 함진규 | 홍문표 | |
홍일표 | 홍철호 | }}}}}}}}} |
2010년대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 잠재력 있는 정치인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 ※ 2010년대의 각 해마다 시사저널이 각 분야의 전문가 1000명에 칸타퍼블릭과 함께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한국을 움직이는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을 선정했으며, 1명만 응답이 가능하였다. 해당 틀에는 1위만 기재함. | ||||
<rowcolor=white> 2010 | 2011 | 2012 | 2013 | 2014 | |
박근혜 | 안철수 | 김무성 박원순 | |||
<rowcolor=white> 2015 | 2016 | 2017 | 2018 | 2019 | |
김무성 | 문재인 | 미조사 | |||
같이 보기: 한국에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종합) / 여권 정치인 / 야권 정치인 / 법조인 / 경제인 / 언론인 / 문화예술인 / 연예인 / 스포츠 스타 / 종교인 / 국제 인물 / NGO 지도자 / 잠재력 있는 정치인 / 대통령에 영향력 있는 인물 / 언론매체 |
[B] 남구 을 선거구 제15대 국회의원 → 남구 선거구 제16대 국회의원[2] 남구 갑 선거구의 제15대 국회의원이다.[B] [4] 남구 갑 선거구의 제17대 국회의원 이다.[C] 남구 선거구 제16대 국회의원 → 남구 을 선거구 제17대 국회의원[C] [7] 선거법 위반으로 인한 의원직 상실.[A] [A] 영도구 선거구 제19대 국회의원 → 중구·영도구 선거구 제20대 국회의원[10] 중구·동구 선거구의 제19대 국회의원 이다.[11] 現 부산광역시 남구 용당동[12] 국회공보 제2020-98호[13] 삼현파 22세손, 수로 70세손 곤(坤) 항렬이지만 남동생 김남곤과는 다르게 항렬자를 쓰지 않는다. 다만 족보명은 김무곤(金武坤)이다. 아버지인 김용주는 수로 69세손 용(容) 항렬이고 아들인 고윤(본명 김종민)은 수로 71세손 종(鍾) 항렬이다.[14] 前 전남방직 회장.[15] 포항 가짜 수산업자 사기 사건의 피해자다.[16] 누나와 형들은 아버지의 전처 소생이며, 김무성 본인과 동생은 아버지의 후처 소생이다.[17] 崔陽玉. 1957년 12월 4일생. 전주 최씨로 최치환 전 공보실장과 송효숙의 딸이다. 직업은 피아니스트이며 명지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피아노페다고지학과 부교수이자 한국음악협회 부이사장이다.[18] 이복누나 김문희의 딸이다. 이복누나와 김무성의 나이차는 무려 23살 차이.[19] 2020년에 잠깐 사랑제일교회에 출석하였으나, 개종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20] 북한에서는 김무성의 혈액형을 소개하면서 '일명 돼지피형'이라고 하였다. 이를 본 네티즌들의 반응은 '김일성도 AB형인데 손자가 할애비 욕하네'였다.[21] 아이러니하게도 부친 김용주는 친일반민족행위자 의혹을 받고 있다.[22] 친박의 고질적인 방해 공작만 아니었어도 사실 대선주자급으로 문재인과의 1대 1 대결이 가능했던 인물이었다. 보수정당의 대표 이미지가 강했으며, 계파갈등에서 벗어나 보수의 통합과 재건을 강조했기 때문이다.[23] 문재인 전 대통령(25회)의 1년 선배(24회)이다.[24] 이걸 이용해서 김무성이 드립친 적이 있는데, 2016년 총선에서 당대표로 선거유세를 다니다가 전라남도 유세에서 "전라도에서 저보고 경상도놈이다 하면서 머라카시는데, 저 사실 전라도 사람입니다. 제가 전남방직 아들입니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물론 전남방직을 세운 김용주가 경남 함양 출신이지만 전북 장수에서 도주하여 함양에서 태어났으므로 맞는 말이다.[25]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일본이나 우리나라 초기재벌은 방직 방적업으로 성장한 경우가 많다. SK그룹(선경직물), 대우그룹, 삼성그룹(제일모직) 역시 모태가 방직 방적업이거나 초창기부터 그룹 핵심 사업이었다. 동아일보 역시 경성방직(현재의 경방그룹)에서 시작했음을 보면 당대로서는 엄청난 재벌집 아드님인 셈이다.[26] 사실 현정은이 조카라고는 하지만, 둘의 나이는 4살밖에 차이나지 않는다. 오히려 누나인 김문희와의 나이차가 23살로 더 크다.[27] 1928년생으로 김무성보다 23살 위의 누나다. 용문학원은 서울 용문중학교와 용문고등학교를 보유하고 있다.[28] 1932년생으로 경기고등학교와 와세다대학을 졸업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고문을 지냈으며 2020년 10월에 별세했다. 김무성이 늦둥이라서 형 김창성이나 누나 김문희와 엄청난 나이 차이가 난다.[29] 다만 21세기 들어서 김무성 일가는 전방에서 손을 떼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김무성 보다 나이가 더 많지만 5촌 조카인 현 오너 일가가 삼영엔지니어링이라는 회사에 지분을 매각하여 가진 지분이 미미하기 때문이다.[30] 본명 김종민[31] 사실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지점은 각 나라의 정치지형마다 차이가 있는 편이다. 이를테면 기독교 국가인 미국에서는 낙태에 대한 견해가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중요한 지점이지만, 기독교 국가가 아닌 한국에서는 그냥 각 개인의 신념에 따라 다른 편이라 보수적인 사람이 의외로 낙태를 찬성하는 경우도 많다. 정치인의 '의외의 면'은 이런 부분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32] 그가 모셨던 김영삼 전 대통령의 스타일을 닮은 점이 많다. 2016년까지 비박계인데도 당권을 휘두를 수 있었던 것은 비박계가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기 때문이 아니라 김무성-유승민으로 이어지는 나름 강력한 계파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친박(진박)을 이길 수 없었으니 망정이지 2016년까지의 새누리당 당세를 생각하면 김무성의 계파는 굉장한 수준이었다.[33] 집안 사정 탓에 공고를 진학했고, 방송통신대학교 학력을 갖고 있다.[34] 가난 탓에 담임교사의 집에 얹혀 살았던 과거가 있다.[35] 노동 운동가 출신이다.[36] 정계은퇴 이후 김무성이 박근혜를 비판하면서 박근혜의 전임자인 이명박을 상당히 높히 평가한 적이 있다. 원내대표 시절 세종시 수정안으로 한참 싸울 때, MB가 자신을 청와대로 불러서 관련된 상의를 하다가 "김 대표 우리 막걸리 한 잔 하자"며 대뜸 막걸리를 가져와서 말 놓고 형님 동생하며 회포를 푼 일화를 소개했다. MB는 기업가 출신이고 소통을 중시하는 사람이라 직언을 해도 곧잘 받아들이고 참모진과 당의 의견을 정책에 많이 반영하는 스타일이였는데, 박근혜는 어려서부터 공주님처럼 자란 데다 오직 최순실하고만 소통해서 독불장군에 상명하복식 충성을 요구해서 잘 안 맞았다고 한다. 그만큼 김무성이 소통을 중시하고 인간적인 대화를 즐기는 스타일인 셈이다.[37] 근데 이건 김무성 입장에서 보면 할 말이 좀 있다. 정계 은퇴 후에 각종 방송에 출연해서 밝힌 바로는, 박근혜 정부 시절 대통령과 담판을 짓기 위해 청와대에 전화를 걸었는데, 연락을 받은 현기환 당시 정무수석이 "형님 왜 이러십니까, 다 아시면서..."라며 난처해했다고 한다. 할 수 없이 대통령을 제끼고 최고위원회의를 열면, 친박 진영의 서청원, 이인제, 그리고 비박계 대권 주자로 도약하겠다고 분탕질을 하던 김태호가 번번히 딴지를 걸었다고 한다. 그나마도 유승민이 같은 편이 되주었지만, 유승민이 쫓겨나다시피 한 다음에 후임으로 온 원유철은 친박으로 전향한 것을 넘어 서청원보다 더 심하게 김 대표를 몰아세우는 바람에 홀로 외로운 싸움을 했었다. 이런 게 쌓이고 쌓이다 20대 총선 공천파동 때 이건 아니다 싶어서 옥새 들고 날아갈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38] 참고로 위에 언급된 현기환 전 수석이나, 친박계 최고위원들은 그나마 말이 통하던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친박 중에서도 가장 말이 안 통하고 꼬장꼬장한 사람은 바로 이한구 전 공천관리위원장이었는데, 이 때문에 친박 진영에서도 핵심이라 분류되던 최경환이나 윤상현조차도 독불장군에 고집 센 이한구를 탐탁지 않아 했다고 한다. 이한구의 나이나 정치 짬밥이 이들보다 높고, 사실상 정계 은퇴를 앞둔 상황인지라 함부로 건드리기에도 어려웠던 상황.[39] 원피스 세계관의 절대 권력인 '세계정부'라는 조직을 세운 20명의 후손이며, 다른 이름은 세계귀족이다. 이들은 그야말로 최고의 특권을 누리며 비리와 부패의 온상으로 자신들만이 존귀한 줄 안다. 그리고 차를로스 성은 여기서도 탑 클래스 수준으로 저질이다.[40] 김무성이 24회, 문재인은 25회 졸업생이다. 학교 동문이 여-야 대표 직을 맡은 사례로는 역시 경남중-고 출신인 과거 여당의 김택수(1회), 김영삼(3회) 동문이 여-야당 원내총무를 맡은 적 외에 없다.[41] 심상정과의 관계는 꽤나 의외인데, 한 번은 선거유세를 하던 도중, 주변에 있던 한 사람이 심상정을 빨갱이라고 욕하자,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라며 김무성이 단호하게 얘기한 적도 있다. 심상정은 김무성과 둘이서만 몇 번 얘기를 해 보니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은 아니더라고 평한 적이 있다. 문재인도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는데, 문재인 대통령과는 달리 김무성과는 아무런 접점도 없는 심상정이 그런 말을 한 걸 보면 사람이 사적으론 붙임성이 꽤 괜찮은 듯 하다.[42] 실제로 대우건설이 트럼프 기업에게 노하우를 전수받는 등 제휴를 맺고 지은 건물이다.[43] 아들인 배우 고윤은 오히려 아버지의 인물이 자신보다 훨씬 낫다고 말했다.[44] 장례 문화상 건배는 하면 안 되고, 두 잔 만들어서 서로 마신 것이다.[45] 선친대에 김무성의 집안은 포항의 유력한 집안이었기 때문인데, 김무성 본인은 아버지가 부산으로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태어나 출생지가 부산이지만 누나인 김문희와 형인 김창성 등의 출생지는 포항이다.[46] 원래 2013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에서 부산 영도구에 출마하기 전에는 포항 남·울릉 선거구 출마를 유력하게 검토하기도 했다.[47] 물론 이 시기에는 민주당이 김한길과 안철수가 1차, 박영선이 2차로 당권을 잡고서 한창 말아먹던 시기였고, 문재인을 위시로 한 친노와 박지원을 위시로 한 비노간의 갈등이 격화되던 시기였다. 또한 朴정부의 인기가 그리 나쁘지만도 않았고. 또한 김무성이 당 대표가 되고서 열린 보궐선거에서 모두 승리했기에 주가가 정점을 찍었다.[48] 비슷한 예로 "얼굴 색깔이 연탄색깔과 똑같네" 발언도 진심으로 흑인비하를 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아무래도 나이가 나이다보니 의식차이와 더불어, 흑인과 친해지기 위해서 말을 붙이려다가 무리수를 둔 경우다.[49] 전원책이 김무성보다 더 싫어하는 정치인으로는 윤상현 정도가 있다. 썰전에서 박근혜 정부시절 대통령을 누나라고 부르는 행위에 대해서도 윤상현 이름만 안 언급하면서 한 차례가 아니라 여러 회차에서 비난하면서 '간신'이라는 뉘앙스의 드립을 쳤고, 그 이후에도 탄핵 사태 때에도 아무도 안 만난다는 박근혜에 대해 '대통령을 누나라고 부르는 분이 몰래 청와대에 들어가서 만났다는 소문이 있다'며 소문을 얘기했다. 다만, 21대 총선에서 윤상현 후보의 지원 유세를 나선 것으로 보아 관계가 많이 회복된 것 같다.[50] 김무성은 한 때 유시민을 종북이라면서 맹비난한 적이 있는데, 이후에 사과를 하긴 해서인지 유시민은 딱히 김무성을 얘기할 때 그렇게 감정을 드러내진 않는다 오히려 전원책이 그 얘기를 운운하며 김무성의 인격을 비판할 때 사과했으니 되었다며 말리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51] 하지만, 정작 고윤과는 꽤 격의없이 잘 지내왔던 모양이다. 70이 넘는 아버지에게 아들이 반말을 할정도다. 사실 김무성은 과거 친박계 좌장으로 활동하던 시절부터 초선의원들을 잘 챙기기로 유명한만큼 그닥 이상한 모양새는 아니다. SNS에도 손주들이나 자식들의 사진을 자주 올리고 부인과도 자주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많이 올라왔던 것을 봤을 때, 사적으로는 그냥 푸근한 동네 할아버지 스타일인 듯 보인다.[52] 그냥 미숫가루가 아니라 대체식품이면 영양적으론 전투식량을 대체할 수는 있다.[53] 당내 노선 차이로 인한 탈당[54] 민주정의당, 신민주공화당과 신설 합당, 이른바 3당 합당[55] 통합민주당과 신설 합당[56] 총선 공천 탈락 불복으로 인한 탈당[57]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한 탈당[58] 당내 노선 차이로 인한 탈당[59] 새로운보수당, 미래를향한전진4.0과 신설 합당[60] 승계 전 청와대 입각[61] 2008.03.14 탈당 (공천 불복)[62] 친박 무소속 연대 후보
2008.6 한나라당 복당[63] 전임자 이재균 선거법 위반으로 당선 무효[64] 2016.12 새누리당 탈당, 2017.1 바른정당 창당, 2017.11 바른정당 탈당 및 자유한국당 복당[65] 이 사람은 국회의원 선수만 무려 8선이고, 정무제1장관, 최고위원, 원내대표, 당 사무총장, 당 대표를 했다.[66] 역시 서청원 못지않게 국회의원 선수 7선을 자랑하고, 뿐만 아니라, 교육부장관, 국무총리, 최고위원, 정책위의장, 당 대표를 역임한 굵직한 경력이 있다.[67] 국회의원 선수는 재선밖에 안되지만, 관선 영월군수, 충주시장 3선(관선 포함 4선), 충청북도지사 3선을 지냈는데, 이 정도 체급이면, 국회의원 6선 정도 되는 체급이다.[68] 국회의원 선수 6선이고, 정무수석비서관, 대통령비서실장, 당 대표, 국회부의장, 국회의장까지 역임하였다.[69] 문희상과 같은 국회의원 선수 6선이고 최고위원, 정책위의장, 원내대표, 당 대표, 산업자원부 장관, 국회의장, 국무총리를 했으며, 허정, 김종필, 이회창, 고건, 이해찬등과 대통령만 빼고 다 해본 정치인이다.[70] 역시 국회의원 선수 7선을 자랑하며, 역시 당 최고위원과 당 대표를 역임한 경력이 있다.[71] 김무성과 15대 총선 신한국당 당선 동기이고, 김무성이 한나라당 원내대표와 새누리당 대표를 하기 더 이전에 한나라당 대표와 원내대표를 먼저 지냈었으며 현재까지 유력 대권주자로 있다. 의원 선수는 김무성보다 1선 낮지만 김무성이 못 해본 광역자치단체장 경력, 특히 헌정 사상 최초로 복수의 민선 광역자치단체장을 지내 광역자치단체장 선수도 3선이나 된다.[72] 이후에 15대 국회의원과 민선 4기 충청북도지사를 지낸 정우택이 국회로 복귀하면서 김무성에 비교할 만한 경력을 가진 중진이 한 명 더 늘어나긴 했다. 다만 정우택은 충북지사 당선 이전까진 자유민주연합 당적으로 활동했으며 김종필을 보좌하던 청구동계 출신이라는 차이가 있다.
2008.6 한나라당 복당[63] 전임자 이재균 선거법 위반으로 당선 무효[64] 2016.12 새누리당 탈당, 2017.1 바른정당 창당, 2017.11 바른정당 탈당 및 자유한국당 복당[65] 이 사람은 국회의원 선수만 무려 8선이고, 정무제1장관, 최고위원, 원내대표, 당 사무총장, 당 대표를 했다.[66] 역시 서청원 못지않게 국회의원 선수 7선을 자랑하고, 뿐만 아니라, 교육부장관, 국무총리, 최고위원, 정책위의장, 당 대표를 역임한 굵직한 경력이 있다.[67] 국회의원 선수는 재선밖에 안되지만, 관선 영월군수, 충주시장 3선(관선 포함 4선), 충청북도지사 3선을 지냈는데, 이 정도 체급이면, 국회의원 6선 정도 되는 체급이다.[68] 국회의원 선수 6선이고, 정무수석비서관, 대통령비서실장, 당 대표, 국회부의장, 국회의장까지 역임하였다.[69] 문희상과 같은 국회의원 선수 6선이고 최고위원, 정책위의장, 원내대표, 당 대표, 산업자원부 장관, 국회의장, 국무총리를 했으며, 허정, 김종필, 이회창, 고건, 이해찬등과 대통령만 빼고 다 해본 정치인이다.[70] 역시 국회의원 선수 7선을 자랑하며, 역시 당 최고위원과 당 대표를 역임한 경력이 있다.[71] 김무성과 15대 총선 신한국당 당선 동기이고, 김무성이 한나라당 원내대표와 새누리당 대표를 하기 더 이전에 한나라당 대표와 원내대표를 먼저 지냈었으며 현재까지 유력 대권주자로 있다. 의원 선수는 김무성보다 1선 낮지만 김무성이 못 해본 광역자치단체장 경력, 특히 헌정 사상 최초로 복수의 민선 광역자치단체장을 지내 광역자치단체장 선수도 3선이나 된다.[72] 이후에 15대 국회의원과 민선 4기 충청북도지사를 지낸 정우택이 국회로 복귀하면서 김무성에 비교할 만한 경력을 가진 중진이 한 명 더 늘어나긴 했다. 다만 정우택은 충북지사 당선 이전까진 자유민주연합 당적으로 활동했으며 김종필을 보좌하던 청구동계 출신이라는 차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