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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4db1> 원 추존 황제 태조 | 太祖 | ||||
예케 몽골 올로스 초대 카간 칭기즈 카간 | [ruby(ᠴᠢᠩᠭᠢᠰ, ruby=Činggis)] [ruby(ᠬᠠᠭᠠᠨ, ruby=Qaɣan)] [1] | ||||
칭기즈 칸의 공식 초상화, 1278년[2] | ||||
출생 | 1162년[3] | |||
카마그 몽골 오논강 (現 몽골 오논강) | ||||
사망 | 1227년 8월 25일 (향년 64세) | |||
서하 흥경 (現 중화인민공화국 닝샤 후이족 자치구 인촨시) | ||||
재위기간 | 몽골 제국 대칸 | |||
1206년 봄 ~ 1227년 8월 25일 (21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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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 | 키야드(Хиад) ᠬᠢᠶᠠᠳ | |||
휘 | 테무진(Тэмүжин) 鐵木眞(철목진), 特穆津(특목진) ᠲᠡᠮᠦᠵᠢᠨ | |||
부모 | 부황 열조 예수게이 모후 선의황후 호엘룬 | |||
종교 | 텡그리교 | |||
묘호 | 태조(太祖) | |||
시호 | 법천계운성무황제(法天啓運聖武皇帝) | |||
칸호 | 예케 에젠 복다 칭기스 카간 成吉思汗(성길사한), 青吉思汗(청길사한) ([ruby(ᠶᠡᠬᠡ, ruby=yeke)] [ruby(ᠡᠵᠡᠨ, ruby=eJ̌en)] [ruby(ᠪᠣᠭᠳᠠ, ruby=boɣda)] [ruby(ᠴᠢᠩᠭᠢᠰ, ruby=čhinggis)] [ruby(ᠬᠠᠭᠠᠨ, ruby=qaɣan)])[4]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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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내 생각에는 우리 선우국[5]이 그간의 1,000년, 아니 3,000년 동안 이와 같은 땅을 가진 적이 없다고 보이는구려. 원문[6]
칭기즈 칸, 1219년 5월 1일, 호라즘 원정 중 구처기를 초청하며 보낸 조서 中[7]
칭기즈 칸([ruby(ᠴᠢᠩᠭᠢᠰ, ruby=Činggis)] [ruby(ᠬᠠᠭᠠᠨ, ruby=Qaɣan)])은 몽골 제국의 초대 카간이다.칭기즈 칸, 1219년 5월 1일, 호라즘 원정 중 구처기를 초청하며 보낸 조서 中[7]
몽골 초원의 허허벌판 위에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단일 제국을 건국했으며, 13세기 구대륙을 제패하여 이후 세계사의 흐름을 여러 의미로 크게 바꾸었다. 이후 손자인 세조 쿠빌라이 칸은 중국 대륙에서 원나라를 건국한 이후, 칭기즈 칸에게 태조라는 묘호를 올렸다.
2. 칭호
보르지긴 오복(어웍)[8] 키야트 씨족의 테무진보다 세력이 더 컸던 의형제(안다)인 자다란 자무카는 내심 칸이 되기를 기대했으나, 보르지긴 오복 주르킨(또는 유르킨) 씨족 등의 강력한 지지로 테무진이 카마그 몽골의 제4대 칸이 되었다.(1189년) 이후 자무카는 자신의 지지 세력을 결집해 멋대로 온 세상의 왕이라는 칭호를 붙이고, 구르 칸에 올라 테무진 칸을 상대로 벌인 전쟁에서 상당히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결국 진압되었다. 그후 동나이만과 카마그 몽골 사이의 결전이었던 차키르마우트 전투에서 패주하는 도중 자무카는 부하의 배반으로 칭기즈 칸에게 붙잡혀 처형되었다.오늘날 잘 알려진 칭호인 칭기즈 칸은 몽골 고원을 통일한 1206년부터 칭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당시의 몽골어로는 칭기스 칸이라고 부르는 것이 실제 발음에 가장 가깝다고 한다.[9] 오고타이 칸 이후로는 '칭기스 카간', 13세기 후반 이후로는 '칭기스 카안'으로 불렸다고 한다. 현대 몽골어로는 발음이 '칭기스 하앙'[ˈt͡ɕʰiŋɡɪs χaːɴ]에 가깝게 발음한다. 몽골 문자로 표기할 때는 시대를 막론하고 '칭기스 카간'으로 표기하는 것이 표준이다.
현대 몽골어로 '칭기스'(Чингис)는 위대하다를 뜻한다. 어원에 대해 다양한 설이 존재하는데, 라시드 앗 딘은 '칭'의 의미는 단단하고 강하다라는 뜻이며 '칭기즈'는 '칭'의 복수형이라고 서술했다. 반면 중국학 학자 폴 펠리오에 의하면 몽골어에서 '칭'의 복수형이 칭기스가 될 수 없고, 호수나 바다를 의미하는 튀르크어인 tangiz에서 온 것으로 추정했다. 이 견해를 받아들이면 칭기즈 칸은 사해의 군주, 세계의 군주라는 의미가 된다. 이 외에도 중국어 천자(天子)나 새가 우는 소리를 나타내는 의성어에서 비롯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3. 생애
자세한 내용은 칭기즈 칸/생애 문서 참고하십시오.4. 평가
자세한 내용은 칭기즈 칸/평가 문서 참고하십시오.5. 가족 관계
제1오르도 관리- 제1황후(皇后): 광헌익성황후 홍길랄씨(光獻翼聖皇后 弘吉剌氏)
- 장남: 주치(朮赤)
- 차남: 차가타이(察合台)
- 장남: 무투겐
- 4남: 카라 훌레구: 차가타이 칸국의 초대 칸
- 3남: 태종 오고타이(太宗 窩闊台), 몽골 제국의 제2대 대칸
- 장남: 귀위크 칸: 몽골 제국의 제3대 대칸
- 4남: 예종 툴루이(睿宗 拖雷), 몽골 제국의 임시 대칸
- 장남: 몽케 칸: 몽골 제국의 제4대 대칸
- 4남: 쿠빌라이 칸: 몽골 제국의 제5대 대칸
- 6남: 훌라구 칸: 일 칸국의 초대 칸
- 7남: 아리크부카
- 장녀: 창국대장공주 코첸 베키(昌國大長公主 火臣 別吉), 창충무왕 패독(昌忠武王 孛禿)에게 하가(下嫁)
- 차녀: 연안공주 체체 이켄(延安公主 撦撦亦堅), 토랍이길(土拉而吉)에게 하가(下嫁)
- 3녀: 조국대장공주 알카이 베키(趙國大長公主 阿剌海 別吉), 불안석반(不顔昔班), 북평왕 진국(北平王 鎭國), 조무의왕 패요합(趙武毅王 孛要合)에게 하가(下嫁)
- 4녀: 운국공주 투멜룬(鄆國公主 禿滿倫), 적굴(赤窟)에게 하가(下嫁)
- 5녀: 아아답로흑 공주(阿兒答魯黑 公主), 태출(泰出)에게 하가(下嫁)
- 황후(皇后): 홀로륜 황후(忽魯倫 皇后)
- 황후(皇后): 활리걸담 황후(闊里桀擔 皇后)
- 황후(皇后): 탈홀사 황후(脫忽思 皇后)
- 황후(皇后): 첩목륜 황후(帖木倫 皇后)
- 황후(皇后): 역련진팔랄 황후(亦憐眞八剌 皇后)
- 황후(皇后): 불안홀독 황후(不顔忽禿 皇后)
- 황비(皇妃): 홀승해 비자(忽勝海 妃子)
- 황비(皇妃): 야간 비자(耶干 妃子)
- 황비(皇妃): 야축 비자(耶逐 妃子)
제2오르도 관리
- 제2황후(皇后): 홀란 황후 올와사씨(忽蘭 皇后 兀洼思氏)
- 6남: 활렬견 태자(闊列堅 太子)
- 황후(皇后): 고야별속 황후(古兒別速 皇后)
- 황후(皇后): 역걸렬진 황후(亦乞列眞 皇后)
- 황후(皇后): 탈홀사 황후(脫忽思 皇后)
- 황비(皇妃): 야진 비자(也眞 妃子)
- 황비(皇妃): 야리홀독 비자(也里忽禿 妃子)
- 황비(皇妃): 찰진 비자(察眞 妃子)
- 황비(皇妃): 합랄진 비자(哈剌眞 妃子)
- 황비(皇妃): 내만녀 비자(乃蠻女 妃子)
- 8남: 출아철 황자(朮兒徹 皇子), 요절(夭折)
제3오르도 관리
- 제3황후(皇后): 야수 황후 탑탑아씨(也遂 皇后 塔塔兒氏)
- 제5황후(皇后): 야속간 황후 탑탑아씨(也速干 皇后 塔塔兒氏)
- 황후(皇后): 홀로합랄 황후(忽魯哈剌 皇后)
- 황후(皇后): 아실륜 황후(阿失侖 皇后)
- 황후(皇后): 독아합랄 황후(禿兒哈剌 皇后)
- 황후(皇后): 찰합 황후 이씨(察合 皇后 李氏)
- 황후(皇后): 아석미실 황후(阿昔迷失 皇后)
- 황후(皇后): 완자홀도 황후(完者忽都 皇后)
- 황비(皇妃): 혼도로알 비자(渾都魯? 妃子)
- 황비(皇妃): 홀로회 비자(忽魯灰 妃子)
- 황비(皇妃): 날백 비자(剌伯 妃子)
제4오르도 관리
- 제4황후(皇后): 공주황후 완안씨(公主皇后 完顔氏)
- 7남: 찰올아 황자(察兀兒 皇子), 요절(夭折)
- 황후(皇后): 홀답한 황후(忽答罕 皇后)
- 황후(皇后): 합답안 황후 속륵손도씨(合答安 皇后 速勒遜都氏)
- 황후(皇后): 알자홀사 황후(斡者忽思 皇后)
- 황후(皇后): 연리 황후(燕里 皇后)
- 황후(皇后): 독해 황후(禿該 皇后)
- 황비(皇妃): 완자 비자(完者 妃子)
- 황비(皇妃): 금련 비자(金蓮 妃子)
- 황비(皇妃): 완자태 비자(完者台 妃子)
- 황비(皇妃): 노륜 비자(奴倫 妃子)
- 황비(皇妃): 묘진 비자(卯眞 妃子)
- 황비(皇妃): 쇄랑합 비자(鎖郞哈 妃子)
- 황후(皇后): 모개 황후(謨蓋 皇后)
- 황비(皇妃): 숙량합 비자(肅良合 妃子) : 고려인(高麗人)
- 황후(皇后): 아복합 황후(阿卜哈 皇后)
- 황비(皇妃): 팔불별걸 비자(八不別乞 妃子)
- 황비(皇妃): 탑탑아녀(塔塔兒女)
- 5남: 올로적 황자(兀魯赤 皇子)
- 황비(皇妃): 불명
- 9남: 올로찰 황자(兀魯察 皇子), 요절(夭折)
- 6녀: 고창공주 야립 가돈(高昌公主 也立 可敦), 파이술 아아특 적근(巴而術 阿兒忒 的斤)에게 하가(下嫁)
- 7녀: 포역색극 공주(布亦塞克 公主), 공주(公主)의 외모가 추해 부마(駙馬)가 그녀를 좋아하지 않자 칭기즈 칸이 크게 노해 부마를 죽였다.
48명의 황후 및 황비들에게서 총 9남 7녀를 두었다.
해당 명칭들은 원나라를 세운 세조 쿠빌라이 칸이 올린 것이다. 황후는 몽골어로 칸의 여성형인 카툰이라고 불렀으며, 내명부인 오르도를 관리했다.
알려진 딸들은 이키레스족의 보투 쿠레겐('부마')과 결혼한 코친 베키, 오이라트족의 투랄치 쿠레겐과 결혼한 체체겐(치체겐), 칭기즈 칸의 딸들 중 가장 지략적인 공주로 부친을 대신해 내정을 관리하고, 전장을 나간 적도 있다고 전해지며 웅구트족의 셴구이와 결혼한 알라가이 베키, 옹기라트 부족(황후족)의 싱쿠 쿠레겐과 결혼한 투말룬, 역시 옹기라트 부족의 차우르 세겐과 결혼한 알탈룬이 있다.
현재 칭기즈 칸의 자손으로 밝혀진 사람은 직·방계를 통틀어 1,600만 명이 넘는다.[10]
6. 여담
- 칭기즈 칸의 최후에 대해서는 전염병이나, 화살에 맞은 상처가 악화되어 죽었다거나, 벼락에 맞아 죽었다거나, 말에서 떨어져 죽었다거나, 심지어 복상사했다고 전해질 정도로 여러 설들이 많은 편이다. 칭기즈 칸에게 원한을 품은 여인이 자신의 중요 부위에 날카로운 비수를 넣어두고, 성관계를 할 때 칭기즈 칸의 성기가 잘려 죽었다는 야사도 전해진다. 그러나 일단은 《원조비사》에서 기록된 대로 말에서 떨어진 후, 그 부상과 합병증으로 죽었다는 설이 정설로 취급된다.
- 여러 의미로 볼 때 사실상 몽골의 시조다. 칭기즈 칸의 통일(1206년) 이후 《대(大) 야삭》(ᠶᠡᠬᠡ ᠵᠠᠰᠠᠭ / Их Засаг)[11]이라는 사실상의 법률과 문자가 만들어졌다. 또 부족국가 수준이었던 몽골인들의 동질감이나 정체성도 이전보다 뚜렷해졌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 제1의 공항인 칭기즈 칸 국제공항 등에 그의 이름을 붙여 기리고 있다.
- 칭기즈 칸의 친위대인 케식(한자로는 겁설, 怯薛)은 몽골군 기병의 스테레오 타입으로 유명하며, 몽골을 주제로 한 게임이나 매체에서는 심심치 않게 들어간다. 이 친위대는 원래 1203년 테무진 칸이 다른 부족의 자객을 막으려고 창설한 부대였는데, 원래 100명에서 시작했던 것이 전성기에는 10,000명이 배출되었다고 한다.
- 슬하의 자식들은 서로 사이가 안 좋은 편이었는데 다른 것보다 주치가 문제였다.(메르키트 콤플렉스) 반대로 숙적인 호라즘 왕조의 제8대 술탄 잘랄 웃 딘 밍부르누의 경우, 할머니인 테르켄 하툰에게 암살당할 뻔한 것을 정작 그가 제거된 후 후계자로 옹립될 예정이었던 동생이 이를 거부하고, 형에게 달려가 알린 덕분에 목숨을 건졌을 정도로 형제들의 사이가 좋았다. 인더스 강 전투에서 용맹스럽게 활약한 잘랄 웃 딘을 칭기즈 칸이 보고 "저런 아들을 둔 아버지는 행복할 것이다" 라고 말했다는 전승이 있는데, 형제간의 우애를 알았다면 더더욱 부러워했을지도 모른다. 주치의 진짜 아버지가 누구냐는 문제로 인해 2남인 차가타이와 갈등이 있었고, 이런 와중에 오고타이가 제2대 대칸이 되었다.
- 아시아의 약 8%(전 세계의 0.5%)의 남성 인구는 같은 Y염색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는데, 이 염색체의 기원이 딱 칭기즈 칸이 활동하던 시절인 11~13세기 정도로 수렴되기 때문에 많은 학자들이 이 염색체의 공통조상을 칭기즈 칸으로 지목한다. 이에 대해 반박하는 학설도 있으나(#) 이 반박 자료도 문제가 있는데, 혈통 논란으로 인해 당대에도 말이 많았던 맏아들 주치의 후손들이 다른 후손들과 Y염색체가 다르다는 조사결과를 뭉개버렸다는 점이다. 하여튼 칭기즈칸의 Y 염색체가 널리 퍼진 것은 칭기즈 칸이 무용을 널리 떨친 이유도 있었지만, 칭기즈 칸의 가문인 황금씨족을 비롯한 몽골계 가문들이 19세기~20세기 초반까지 권세를 누린 경우가 많았기 때문인 것이 더 근본적인 이유이다. 몽골 제국이 쇠락한 이후에도 티무르 제국, 무굴 제국, 부하라 칸국, 히바 칸국, 크림 칸국을 비롯한 국가들에서 여전히 칭기즈 칸의 혈통을 지닌 사람들이 지배층으로 군림하고 있었으며, 청나라, 러시아 제국, 오스만 튀르크 제국에 편입된 몽골인들도 귀족 계층으로 편입된 경우가 많아 후손을 많이 남기며 번성했기 때문이었다. 단적인 예로 황금씨족은 청나라의 황후를 대대손손 배출해내는 가문이었다. 또한 중앙아시아의 위대한 정복군주였던 바를라스 티무르도 거슬러 올라가면 칭기즈 칸과 부계 조상이 같았고, 모계는 아예 황금씨족 혈통이었으며, 자기 자손들을 황금씨족 여인과 통혼시켰을 정도였다. 물론 이들의 외형은 중동인 및 유럽인들과의 혼혈이 지속되어, 외형상으로는 유럽인 및 중동인과 구분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으며, 정체성도 몽골족과 다른 경우가 많았다.《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초반부에 주인공의 집을 밀어버리는 철거업자가 칭기즈 칸의 후손이다. 그래서 항의하는 주인공을 무시한채 1분 1초라도 빨리 주인공의 집을 철거하고 싶어했다. 본인도 칭기즈 칸의 후손인걸 모르고 있는 평범한 영국인으로, 평소엔 선량한 사람이지만 현관에 도끼를 장식하고 싶어한다든지, 가끔씩 피와 연기와 말울음 소리의 환상에 시달린다든지, 털모자에 대한 깊은 애착을 보인다던지 하는 증상을 보였다.
- 하지만 한국과 일본 등지에는 후손이 없다는데, 있을 리가 없는 것이 칭기즈 칸 생전에는 고려에 침공한 적이 없었다. 1218년 거란의 잔당 소탕을 명분으로 고려에 진입한 것이 고려와 동맹을 맺기 위해서 의도한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고려사》 <조충전>에 칭기즈 칸의 명령으로 형제 맹약을 맺는다고 적혀있기 때문이다. (#1, #2) 수부타이만 고려 근처에 가서 종이를 받아왔을 뿐이며, 당연히 일본은 구경도 못했다. 고려와 몽골의 전쟁은 제2대 오고타이 칸 때 발발했으며, 이후 충렬왕, 충선왕, 충숙왕 대의 결혼도 왕비가 황금씨족이라 부계의 피를 물려줄 수 없었으니 칭기즈 칸이 물려줄 Y유전자도 없었다. 결정적으로는 조선 초기의 왕씨 몰살까지... 후손이 없다라고 단정짓는 건 불가능하지만 역사적으로도 없는 쪽이 더 부합한다.
- 칭기즈 칸의 황릉이 어디에 있는지는 미스터리인데 보르항 산 등 여러 후보지가 있지만 전부 확실하지는 않다. 여기에 대해선 좀 으시시한 전설이 하나 있는데, 칭기즈 칸의 운구를 옮기는 과정에서 마주친 살아있는 모든 것을 몰살시켰다는 것이 그것이다. 칭기즈 칸의 황릉은 묻은 후 파헤쳐지는 것을 막기 위해 기병대가 수없이 짓밟음으로써, 평지로 만들어 아무도 찾을 수 없도록 했다고 한다. 또한 돌아온 기병들도 미리 준비해둔 자들에 의해 몰살되었다고 전해진다. 다만 전설일 뿐 사실인지는 밝혀지지 않아 학계에서도 실체성에 대한 논란이 있다. 부정하는 쪽은 학살자 칭기즈 칸을 미워한 자들이 만든 근거없는 낭설로 보는 편이다. 칭기즈 칸의 충복이 주군의 유해를 소박하고 평범한 몽골식 장례로 치렀다는 말도 있다. 이후 세월이 지나면서 소박했던 황릉이 자연스레 사라지거나 잊혀졌다는 주장이다. 칭기즈 칸이 생전에 사치를 싫어하고 유목민의 전통을 지킨 것을 상기하면 이쪽도 상당히 신빙성이 있다. 당시 몽골식 장례는 시신을 말에 실은 후 달려나가서, 말이 지쳐 멈춰선 곳을 파 돌로 시신 주변을 두르고 묻는 것이었다고 한다. 천하를 제패한 대칸의 장례로는 너무 소박한 것 같지만 몽골인이었던 칭기즈 칸의 장례로 어떤 의미로는 가장 적절하다고도 볼 수 있다. 아예 칭기즈 칸이 화장이나 풍장 등을 해서 황릉 자체가 없었을 가능성도 있다. 다만 이것도 역사서마다 명칭은 다르지만 분명 어떤 곳에 묻긴 묻었다는 기록이 제법 남아있어 참 이도저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12] 20세기 중반 중일전쟁때 일제가 황릉을 찾으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일본 제국이 칭기즈 칸의 황릉을 그렇게 찾으려고 했던 이유는, 칭기즈 칸이 일본인(미나모토노 요시츠네)이었다는 일본 내 사이비 역사 속설을 증명(?)하여, 당시 중국 및 몽골 침략을 억지로 정당화하기 위해서였다.[13] 하지만 결국 실패하고, 대신 몽골의 고고학 기술이 발전했다고 한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도 여러 고고학자들과 트레저헌터가 명예와 부를 얻기 위해 힘을 합쳐 칭기즈 칸 관련 고서 등을 보고 후보지들을 추려내, 후원금으로 산 최첨단 장비로 조사했으나 누군가 다치거나 발굴 작업 노동자가 죽는 등 을씨년스러운 일이 제법 벌어지는 바람에 결국 포기하고 철수한 바 있었다. 이에 대해 칭기즈 칸을 거의 신앙처럼 받드는 상당수의 몽골 사람들은 이런저런 외부 간섭이 불편하기도 해서인지 칭기즈 칸의 황릉을 찾는 것 자체를 불길하다고 여겨 꺼리는 분위기도 있다. 더 나아가 몽골인들이 발굴단을 조직적으로 방해했다는 설도 있다. 결국 한 몽골 대통령이 황릉 발굴 및 탐사 금지를 주장하면서 법제화한 이후, 칭기즈 칸 황릉을 찾으려는 고고학자나 트레져헌터들의 활동은 대거 불가 딱지를 먹게 되면서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냉전이 끝난 1990년대 이후, 많은 탐사대들이 몽골 일대를 탐사했다. 특히 유명했던 것이 모리 크라비츠라는 미국 학자였는데, 2000년대 초반엔 그럴듯한 장소가 발견되어 탐사 작업까지 들어갔지만, 결국 전염병 등 이런저런 이유로 탐사를 중지한 바 있었다.
- 카네기연구소와 막스 플랑크 협회에 따르면 칭기즈 칸은 본의 아니게 지구 환경을 급격히 개선시키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칭기즈 칸이 주도한 몽골 제국의 정복 전쟁 당시 아시아-유럽 구대륙 세계 인구의 1/20을 학살(...)했기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당시 급증하고 있었던 이산화 탄소 배출량이 급격히 줄어들었다고 한다. 그 양이 무려 7억 톤으로 2009년 세계에서 배출된 온실가스의 총량과 맞먹는다는 말도 있는데 이런 류의 주장이 흔히 그렇듯이 정확한 근거가 필요한 부분이다. 하여튼 인구수를 단기간에 극단적으로 많이 줄인 덕분에 지구 온난화는 200년이나 더 미뤄졌다는 주장이다. 이 시기에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이토록 어마어마했던 이유는 상당부분 중국 송나라에 기인하는데, 송나라의 경제가 번영하고 석탄 산업도 활발하게 전개되면서 인구도 1억 명에 가깝게 늘어나고, 이산화탄소 배출량 역시 크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특히 남송의 경우에는 석탄을 대량으로 채굴하여 작업용 및 난방용으로 때기도 했다. 물론 코크스나 증기기관을 쓴 건 아니라서 효율은 낮았고, 송나라가 여러 기술 발전을 이뤄냈지만 이후의 영국처럼 산업혁명의 기반을 닦던 수준까지는 도달하지 못해서, 부유한 중세 농경국가 수준이었다. 그래서 중국은 물론 한반도 등 근처 지역의 대기 오존에까지 악영향을 줄 수 있었던 것을, 칭기즈 칸이 등장하면서 의도치 않게 차단했다는 것이다. 덕분에 일부 사람들은 칭기즈 칸을 농담조로 환경운동가라고 부르기도 한다만, 물론 농담으로만 받아들이자.
7. 이름 표기
표기 | 언어 | 발음 |
ᠴᠢᠩᠭᠢᠰ ᠬᠠᠭᠠᠨ | 몽골어(몽골 문자) | 칭기스 카간 |
Чингис хаан | 몽골어(키릴 문자) | 칭기스 하앙 |
ᠴᡳᠩᡤᡳᠰ ᡥᠠᠨ | 만주어 | 칭이스 한 |
جنكيز خان | 아랍어 | 진키즈 한 |
چنگیز خان | 페르시아어 | 창기즈 한 |
Genghis Khan | 영어 | 겡기스 칸 혹은 젱기스 칸 |
Чингисхан | 러시아어 | 친기스한 |
Dschinghis Khan | 독일어 | 징기스 칸 |
Cengiz Han | 튀르키예어 | 젱기즈 한 |
Çingiz xan | 아제르바이잔어 | 칭기즈 한 |
Чыңгызхан | 타타르어 | 층그즈한 |
Шыңғыс хан | 카자흐어 | 싱그스 한 |
成吉思汗(Chéngjísī Hán) | 중국어 | 청지쓰 한 |
チンギス・カン[14] | 일본어 | 친기스 칸 |
Thành Cát Tư Hãn | 베트남어 | 타인 깟 뜨 한 |
8. 어록
"내가 바로 천벌이다. 너희들이 큰 죄를 짓지 않았으면 신께서 나같은 벌을 내리지 않았을 것이다."
"한 곳에만 너무 오래 머무르는 자는 망할 것이고, 가끔 이리저리 옯겨다니는 자는 흥(興)할 것이다."
"가장 좋은 삶이란 너의 적들을 쳐부수고, 그들이 네 발 앞에 쓰러지는 걸 보며, 그들의 말과 재산을 빼앗고, 그들의 여자들의 울음 소리를 듣는 것이다."[15]
이란 일 칸국의 사서인 《집사》 중
이 말은 대중 사이에서 코난의 영화화 버전에도 쓰일 정도로 Bad Ass하다고 여겨졌다.[16] 전문은 이란 일 칸국의 사서인 《집사》 중
"사람의 쾌락은 배신자를 복종시키고, 적을 모두 멸망시켜 그 소유물을 약탈하고, 그들의 종복들에게 소리 높여 울게 하여 그 얼굴이 콧물과 눈물로 얼룩지게 하고, 우스꽝스럽고 우둔한 그들의 말에 걸터앉으며, 그들 처첩의 배와 배꼽을 침대나 이부자리로 삼고, 그 장밋빛 뺨을 즐기며 입 맞추고 그 붉은 입술을 빠는 데 있다."
로, 페르시아의 사료에서 나온 말이며 잭 웨더포드 같은 칭기즈 칸 옹호파와 일각에선 페르시아의 기준에서 나온 자료이니 사실이 아니라는 말이 나오고 있긴 하다. 허나, 이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정복당한 나라들이 칭기즈 칸을 얼마나 무자비한 사람으로 바라봤는지를 잘 알려주는 말이다. (“The greatest happiness is to vanquish your enemies, to chase them before you, to rob them of their wealth, to see those dear to them bathed in tears, to clasp to your bosom their wives and daughters.”)"모두가 내 발 밑에 쓰러지기 전까진 승리했다고 말하지 마라."(#)
"하늘의 도움으로 너희를 위해 커다란 나라를 정복했다. 하지만 세계를 정복하기에 내 삶은 너무 짧았다. 그 일은 너희에게 달린 일이다."
이 말을 죽기 전 아들에게 했다는 말도 있다. 하지만 다른 사서에서는 죽기 전에 금나라 정복을 완수할 작전을 얘기하고 죽었다고 한다."나는 수많은 잔혹한 행위를 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고, 내가 한 일이 옳은지도 모르고 행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신경쓰지 않는다."
"다시 태어난다면 평범한 사람으로, 평범한 게르(Ger, 몽골식 천막)에서 살다가, 평범하게 늙어 죽고 싶다."
남쪽에 중국이 있음을 아침마다 자손들에게 상기시켜 주어라.
"나의 자손들은 훌륭한 옷을 입을 테지, 맛있는 것을 먹고 준마를 몰고 아름다운 계집을 안을 테지, 그 모든 것이 누구의 덕분인지도 모르는 채."[17]
죽기 전에 말했다는 이 말 역시 위에서 나온 페르시아 사서[18]에서 나온 말로 전문은 "우리가 죽은 뒤 내 부족의 자손이 비단 바탕에 호화찬란하게 금실로 짠 옷을 몸에 걸치고, 맛있는 안주와 좋은 술을 제멋대로 마시며, 좋은 말을 타고, 미녀를 품에 안고도 그것을 가져다준 것이 그 아버지와 제 형임을 말하지 않거나 우리와 그 위대한 날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다.이들 외에 부하라 점령 이후, 지배 계층에게 설교를 했다는 기록도 있는데 이건 주와이니의 역사서에서만 나오는 것이다. 즉 신이 그들에게 자신과 같은 재앙을 내린 것은 그들의 왕이 너무나도 부도덕하고 음란했기 때문에 벌을 내리기 위한 것이었다라고 말했다는 것이 그 내용이다.
위에서 볼 수 있듯이 칭기즈 칸 이야기는 이런저런 설이 막 엇갈리며, 모든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에 대한 진위 여부의 논란이 있다.
수레바퀴보다 큰 놈은 모조리 죽여라.
참고로 "집안이 못났다고 실망하지 마라" 식으로 전개되는 칭기즈 칸이 했다는 말은 사실 김종래라는 기자가 파란만장한 그의 일생을 토대로, 칭기즈 칸이 글의 화자인 독자를 격려하는 내용의 가상의 글을 만들어서 《칭기스칸의 리더십 혁명》이라는 책에 쓴 것이었는데 어느샌가 그 얘기가 쏙 빠지고 칭기즈 칸의 어록이 되어버렸다.출처 작가는 자기가 쓴 글을 감동적인 역사 인물의 실제 어록이라면서 인쇄해 들고 온 지인을 보고 멘붕했다고 전해진다. 거기다 덤으로 나중에 <불멸의 이순신> 붐이 일어나면서 또 이걸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순신 어록' 이란 것이 유포되어 이순신이 역적 가문 출신이었다는 오해가 생기기도 했다. 아무튼 칭기즈 칸 버전과 이순신 버전이 하도 퍼진 나머지, 10년 전만 해도 어른들이 한마디씩 언급하거나 심지어 학교나 군대에서 관련 자료까지 준비해 가르치기도 했다.칭기즈 칸이 홧김에 자신의 매를 죽이고,
"분노로 한 일은 실패하기 마련이다."
라는 말을 남겼다는 일화가 국내 인터넷에 퍼져 있는데, 이 또한 사실이 아니다.9. 대중매체에서
자세한 내용은 칭기즈 칸/대중매체 문서 참고하십시오.10. 같이 보기
- 동방 3왕가
- 몽골
- 몽골 제국
- 미나모토노 요시츠네 - 일본에서는 미나모토노 요시츠네가 죽지 않고 몽골로 건너가 칭기즈 칸이 되었다는 설화가 있다. 물론 대부분의 설화가 그렇듯이 사실상 근거 없는 낭설에 불과하다.
- 보르항 산
- 세계정복
- 유목 제국
- 칭기즈 칸 광장
- 칭기즈 칸 국제공항
- 칭기즈 칸 찬가
- 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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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31권의 완자도(完者都)와 133권의 완자도발도(完者都拔都)는 동일인물이므로 133권에서는 생략한다.
(3) 150권의 석말야선(石抹也先)과 152권의 석말아신(石抹阿辛)은 동일인물이므로 152권에서는 생략한다.||<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004db1><tablebgcolor=#004db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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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몽골과 내몽골에서 공통적으로 통용되는 표기법이다. 1224년에 쓰여진 '칭기즈 칸의 비석(Stele of Genghis Khan)'에는 '칭기스 칸'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오고타이 칸 시대 이후에 '칸'과 '카간' 칭호의 급 차이가 뚜렷해지면서 현재까지도 '카간'으로 표기하는 것이 표준이다. 이는 키릴 문자 표기에서도 두드러지는데, хан과 хаан의 차이는 명확하다.[2] 1278년에 칭기즈 칸의 손자인 쿠빌라이 칸의 명으로 몽골인 화가 커리커선이 그린 초상화. 칭기즈 칸의 실제 모습을 아는 쿠빌라이 칸의 시대에 완성된 작품이기에 칭기즈 칸의 실제 모습과 근사할 확률이 상당히 높은 초상화이다. 현재는 총 2점이 남아 있는데, 하나는 대만의 국립고궁박물원에 있으며, 나머지 하나는 중국 역사 박물관에 소장 중이다. 실제 모습과 근사한 초상화이기 때문에 사실주의 화풍으로 그려진 초상화도 있다.[3] 《집사》를 저술한 라시드 웃딘은 칭기즈 칸이 1155년에 태어났다고 주장한 반면 《원사》, 《성무친정록》 등에서는 칭기즈 칸이 1162년에 태어났다는 기록을 전하고 있다. 1167년 출생설을 지지하는 견해도 있다. 이렇듯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현대 몽골에서 '칭기즈 칸 탄신일'로 기념하는 날은 1162년 11월 12일이다. 관련 기사[4] 칭기즈 칸의 실제 칸호로, 직역하면 "위대하고 현명한 통치자 칭기즈 칸"이라는 뜻이다. '법천계운성무황제(法天啓運聖武皇帝)'와 같은 중국식 칸호가 있긴 하지만, 이는 칭기즈 칸의 생전에 쓰인 적도 없을 뿐더러 실상 몽골에서는 알아듣는 사람이 없는 표현이다. 키릴 문자: Их эзэн богд Чингис хаан 참고[5] 칭기즈 칸이 구처기에게 보낸 한문으로 작성된 조서에는 카간(可汗)이라는 표현이 아닌 선우(單于)라는 표현이 사용되었는데, 이는 몽골 제국이 흉노에 역사적인 기원을 두고 있다고 생각했기에 칭기즈 칸이 그렇게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몽골 제국의 깃발에 담긴 태양과 달 문양, 황금씨족인 키야트 보르지긴의 송골매 문양은 흉노에서 계승된 것이었으며, 보르지긴 왕가의 도장 문양도 흉노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것과 같았다. 즉, 칭기즈 칸은 흉노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초원의 정통성을 중히 여겼다는 것이다. 물론 흉노 항목에도 있지만 몽골 제국과 흉노는 양국 사이의 기간이 길기도 하고 학술적으로 보면 좀 차이는 있다.[6] 天厭中原驕華太極之性,朕居北野嗜欲莫生之情,反樸還淳,去奢從儉 每一衣一食,與牛豎馬圉共弊同餐。視民如赤子,養士若兄弟,謀素和,恩素畜。練萬衆以身人之先,臨百陣無念我之後。七載之中成大業,六合之內爲一統。非朕之行有德,蓋金之政無恒,是以受天之佑,獲承至尊。南連蠻宋,北接回紇,東夏西夷,悉稱臣佐。念我[ruby(單, ruby=선)][ruby(于, ruby=우)][ruby(國, ruby=국)]千載百世以來未之有也。然而任大守重,治平猶懼有缺。且夫刳舟剡楫,將欲濟江河也;聘賢選佐,將以安天下也。朕踐祚以來,勤心庶政,而三九之位未見其人。訪聞丘師先生體真履規,博物洽聞, 探賾窮理,道沖德著,懷古子之肅風,抱真上人之雅操,久棲岩谷,藏聲隱形,闡祖師之遺化,坐致有道之士,雲集仙徑,莫可稱數。自幹戈而後,伏知先生猶隱山東舊境,朕心仰懷無已。先生豈不聞渭水同車、茅廬三顧之事,奈何山川防闊,有失躬迎之禮。朕但遲位側身,齋戒沐浴,選差近侍官劉仲祿,備輕騎素車,不遠千裏謹邀。先生仙步,不以沙漠悠遠爲念,或以憂民當世之務,或以恤朕保身之術。朕親侍仙座,欽惟先生將咳唾之餘,但授一言,斯可矣。今者,聊發朕之微意萬一,明於詔章。誠望先生旣著大道之端,要善無不應,亦豈違衆生小願哉!故玆詔示,惟宜之悉。[7] <성길사황제사구신선수조>(成吉思皇帝賜丘神仙手詔). 이 조서의 글은 제4대 헌종 몽케 칸 때인 1251년에 세워진 「대몽고국누조숭도은명지비」(大蒙古國累朝崇道恩命之碑)에도 새겨져 있으며, 해당 비석은 현재 산시성 시안시의 중양궁(重陽宮)에 남아 있다.[8] ᠣᠪᠤᠭ, Овог(Ovog). 대략 '부족명'이란 뜻이다.[9] Lister, R. P. (2000 c1969). Genghis Khan. Lanham, Maryland: Cooper Square Press. ISBN 0-8154-1052-2. 모토무라 료지, 《말이 바꾼 세계사》.[10] Wade, Nicholas. Before the dawn: Recovering the lost history of our ancestors. Penguin, 2006.[11] 현재 영어로는 'Yasa'나 'Yasaq' 등으로 칭해지지만, 현대 몽골어 발음은 이흐 자슥에 가깝다. 고전 몽골어 표기는 'Yehe Zasag'(예헤 자삭)이다.[12] 여담으로 칭기즈 칸 뿐만 아니라 이후 많은 칸들의 황릉도 칭기즈 칸과 비슷하게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13] 그 밖에도 당시 일제는 유명한 북경 원인의 유골까지도 손에 넣으려고 했는데, 북경 원인이 일본인의 조상이니 당연히 중국은 일본이 차지해야 한다는 또 다른 억지 주장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었다.[14] チンギス・ハーン(친기스 한)으로 표기하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15] '그들의 여자를 취하는 것이다' 라고 말했다는 버전이 많이 알려져 있다.[16] 칭기즈 칸을 Bad Ass로 보는 사람 중엔 그를 Bad Ass 중에도 최상급으로 치는 사람이 많다. Urban Dictionary에서 Genghis Khan 항목 참조.[17] 이 말은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2 칭기즈 칸 캠페인>에서 칭기즈 칸이 죽을 때 한 말로 나오기도 한다.[18] 일 칸국의 재상이었던 라시드 앗 딘의 저서인《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