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8-28 22:48:41

토리야마 아키라


<colbgcolor=#fff,#1c1d1f> 일본의 1억 부 클럽 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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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000,#e5e5e5> 순위 만화 작가 연재 기간 권수 수치
1위 원피스 오다 에이치로 1997년 ~ 연재 중 112권 5억 1,660만부
2위 도라에몽 후지코 F. 후지오 1969년 ~ 1996년 45권 3억부
고르고13 사이토 타카오 1968년 ~ 연재 중 217권 3억부
4위 명탐정 코난 아오야마 고쇼 1994년 ~ 연재 중 107권 2억 7,000만부
5위 드래곤볼 토리야마 아키라 1984년 ~ 1995년 42권 2억 6,000만부
6위 나루토 키시모토 마사시 1999년 ~ 2014년 72권 2억 5,000만부
7위 귀멸의 칼날 고토게 코요하루 2016년 ~ 2020년 23권 2억 2,000만부
8위 슬램덩크 이노우에 다케히코 1990년 ~ 1996년 31권 1억 8,500만부
9위 여기는 잘나가는 파출소 아키모토 오사무 1976년 ~ 2016년 201권 1억 5,720만부
10위 크레용 신짱 우스이 요시토 1990년 ~ 연재 중 64권 1억 4,800만부
11위 진격의 거인 이사야마 하지메 2009년 ~ 2021년 34권 1억 4,000만부
12위 맛의 달인 카리야 테츠(원작)
하나사키 아키라(그림)
1983년 ~ 2014년(휴재) 111권 1억 3,500만부
13위 블리치 쿠보 타이토 2001년 ~ 2016년 74권 1억 3,000만부
14위 죠죠의 기묘한 모험 아라키 히로히코 1987년 ~ 연재 중 140권 1억 2,000만부
15위 킹덤 하라 야스히사 2006년 ~ 연재 중 76권 1억 1,000만부
16위 철완 아톰 데즈카 오사무 1952년 ~ 1968년 23권 1억 부
터치 아다치 미츠루 1981년 ~ 1986년 26권
소년탐정 김전일 아마기 세이마루 (원작)
카나리 요자부로 (원작)
사토 후미야 (작화)
1992년 ~ 연재 중 83권
북두의 권 부론손(스토리)
하라 테츠오(작화)
1983년 ~ 1988년 27권
더 화이팅 모리카와 죠지 1989년 ~ 연재 중 143권
바키 시리즈 이타가키 케이스케 1991년 ~ 연재 중 155권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호리코시 코헤이 2014년 ~ 2024년 42권
주술회전 아쿠타미 게게 2018년 ~ 2024년 30권
출처(2025년 9월 17일 기준) }}}}}}}}}

<colbgcolor=#fff,#191919> 전 세계의 만화 판매 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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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000,#e5e5e5> 순위 만화 국가 연재 기간 권수 수치
1위 슈퍼맨 미국 1938년 ~ 연재 중 18732화 6억부
2위 원피스 일본 1997년 ~ 연재 중 110권 5억 2,000만부
3위 배트맨 미국 1939년 ~ 연재 중 23193화 4억 8,400만 부
4위 아스테릭스 프랑스 1959년 ~ 연재 중 40권 3억 9,300만부
5위 스파이더맨 미국 1963년 ~ 연재 중 13500화 3억 8,700만부
6위 피너츠 미국 1950년 ~ 2000년 26권 3억부
드래곤볼 일본 1984년 ~ 1995년 42권 3억부
고르고13 일본 1968년 ~ 연재 중 206권 3억부
9위 용호문 홍콩 1969년 ~ 연재 중 2,427권 2억 8,000만부
10위 명탐정 코난 일본 1994년 ~ 연재 중 105권 2억 7,000만부
11위 엑스맨 미국 1963년 ~ 연재 중 12000화 2억 6,000만부
12위 나루토 일본 1999년 ~ 2014년 72권 2억 5,000만부
땡땡의 모험 벨기에 1926년 ~ 1976년 24권 2억 5,000만부
14위 스파이크와 수지 벨기에 1945년 ~ 연재 중 365권 2억 3,000만부
15위 귀멸의 칼날 일본 2016년 ~ 2020년 23권 2억 2,000만부
16위 캡틴 아메리카 미국 1941년 ~ 연재 중 9000화 2억 1,000만부
17위 슬램덩크 일본 1990년 ~ 1996년 31권 1억 8,500만부
18위 여기는 잘나가는 파출소 일본 1976년 ~ 2016년 201권 1억 5,650만부
19위 디아볼릭 이탈리아 1962년 ~ 연재 중 862화 1억 5,000만부
스폰 미국 1992년 ~ 연재 중 600화 1억 5,000만부
더 팬텀 미국 1936년 ~ 연재 중 3500화 1억 5,000만부
22위 진격의 거인 일본 2009년 ~ 2021년 34권 1억 4,000만부
23위 가필드 미국 1978년 ~ 연재 중 - * 1억 3,500만부
맛의 달인 일본 1983년 ~ 2014년(휴재) 111권 1억 3,500만부
25위 블리치 2001년 ~ 2016년 74권 1억 3,000만부
26위 죠죠의 기묘한 모험 1987년 ~ 연재 중 131권 1억 2,000만부
27위 킹덤 2006년 ~ 연재 중 70권 1억 1,000만부
28위 철완 아톰 1952년 ~ 1968년 23권 1억부
도라에몽 1969년 ~ 1996년 45권 1억부
터치 1981년 ~ 1986년 26권 1억부
북두의 권 1983년 ~ 1988년 27권 1억부
더 화이팅 1989년 ~ 연재 중 136권 1억부
바키 시리즈 1991년 ~ 연재 중 150권 1억부
소년탐정 김전일 1992년 ~ 연재 중 83권 1억부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2014년 ~ 2024년 42권 1억부
주술회전 2018년 ~ 2024년 28권 1억부
출처 1 / 출처 2
* 특이하게 한 권인 단권과 책 세 권을 한 권으로 묶은 Fat cat 3-pack 2종류로 출판된다. 이 둘을 합친 판매 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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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a500,#000><colcolor=#000,#ffa500> 토리야마 아키라
[ruby(鳥, ruby=とり)][ruby(山, ruby=やま)] [ruby(明, ruby=あきら)][1]
'조산명 선생'으로 부르기도 한다. 일본 한자음대로는 'ちょうさんめい'가 된다. 버드 스튜디오는 여기에서 따온 것이다.]|Akira Toriyama
파일:Akira-Toriyama-1.jpg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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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55년 4월 5일
아이치현 니시카스가이군 기요스정[2]
사망 2024년 3월 1일[3] (향년 68세)
신체 174cm|60kg[4]A형
직업 만화가, 게임 원화가, 디자이너
서명
파일:토리야마 아키라 서명.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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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a500,#000><colcolor=#000,#ffa500> 학력 아이치현립 오코시 공업고등학교 (디자인과 / 졸업)
활동 기간 1978년 ~ 2024년
데뷔 단편 '원더 아일랜드' (1978년)
프로덕션 버드 스튜디오 (BIRD STUDIO)
가족 배우자 미카미 나치[5](1982년 결혼)
장남 토리야마 사스케(1984년생)
장녀 토리야마 킷카(1990년생), 차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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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3. 특징
3.1. 화풍3.2. 취미3.3. 성향3.4. 오너캐
4. 만화가로서의 입지5. 작품 목록6. 수상 경력7. 기타

1. 개요


일본만화가게임원화가일러스트레이터.

대표작은 드래곤볼닥터 슬럼프이며,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의 캐릭터와 몬스터 디자이너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이기도 하다.[7] 상업적으로도 매우 성공한 작가로 소년만화계에선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한국에서는 닥터 슬럼프해적판으로 들어왔을 때부터 만화가 알려지기 시작했고, 1980년대 후반에 드래곤볼이 정식 수입되면서 199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이름을 날렸다.

2. 생애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토리야마 아키라/생애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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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토리야마 아키라/생애#|]]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3. 특징

솔직히, 나는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잘 모르겠다. 만화가 연재되는 동안, 계속 그리면서 내가 원하는 것은 일본 소년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 뿐이었다. 내 만화의 역할은 오락 작품이 되는 것이다. 나는 감히 내 작품이 독자들에게 즐거움을 준 이상,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더라도 상관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 토리야마 아키라, 2013년#

3.1. 화풍

파일:cc77839ddb0ba9357ee12ea503ff6e64.jpg파일:7a1b166852ad9075eb4e130f15f619cd.jpg파일:the-video-game-art-of-akira-toriyama-den-of-geek-article-neogaf-akira-toriyama-art.jpg
보기만 해도 드래곤볼이 바로 떠오르는 특유의 화풍이 유명하다. 특히 눈매가 가장 특징적인 부분으로 꼽히는데, 드래곤볼과 전혀 상관없는 게임이나 만화에서 저런 형태의 그림체가 나온다면 자동으로 드래곤볼이 연상될 정도이다.[8] 또한, 스크린톤 등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먹칠과 펜화만으로 그림을 그리는데도 불구하고 입체감을 제대로 살려내는 보기 드문 인물이다.

토리야마의 만화는 단순히 그림 실력 뿐만 아니라 훌륭한 컷 분배를 통한 가독성으로도 매우 큰 호평을 받는다. 박력과 세밀함이 그대로 살아있으면서도 컷을 통한 장면 전환은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고, 읽는 이의 시선을 적극 고려하도록 배치하여 아무리 복잡하게 묘사한 그림들이라도 금세 이해하기 쉽도록 제대로 전달해준다. 그의 화풍을 거의 비슷하게 모방하는 작가들조차 컷 분배 단계로 가면 부족한 부분이 한 눈에 보일 정도로, 토리야마만의 만화적인 연출력은 아무리 분석해도 따라하기 쉽지 않다고 평가받는다.

과감한 생략과 데포르메를 사용하면서도, 양감 있는 품질을 가꾸어내는 독특한 감각이 있다. 인물과 사물 모두 어떠한 각도에서 그리더라도 비율이 거의 망가지지 않으며, 특히 자동차를 비롯한 탈것들의 세밀함이 정평이 나있다. 실제로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기계들은 일류 메카 디자이너 못지 않은 탁월한 퀄리티를 자랑한다.[9] 야스히코 요시카즈처럼 메카닉 디자이너로서의 능력이 숨겨져서 나오는 인물.

어릴 적부터 서유기 등의 고전과 전성기 시절 홍콩무협영화 등을 즐겨 보았던 탓에 액션묘사가 매우 실감나고 박력있을 뿐 아니라, '검술', '권각술', '기'나 '경공' 등의 동양적 요소들을 현대적인 느낌으로 녹여넣는데도 아주 탁월하다. 단적으로 드래곤볼을 보면 각종 최첨단 장비들이 즐비한 세계관에서 무기도 없이 장풍과 권각술 등의 아날로그식으로 전투를 벌인다는 아주 독특한 분위기를 이루어냈다.[10] 이게 더욱 놀라운 것은 분명 첨단무기 따윈 동원하지 않는 고전적인 전투를 벌이고 있음에도 전투복과 스카우터를 비롯한 보조 오브제 등등이 어우러져 오히려 더욱 세련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이는 과거 토리시마 카즈히코로부터 500쪽이 넘는 원고를 폐기당하면서 수행해낸 결과로 나온 능력 아닌 능력이다. 많은 이들이 천재라고 극찬하고 있고, 실제로도 엄청난 재능을 보여주면서 만화계에 데뷔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엄청난 연습과 노력을 통해서 그 재능을 극대화시킨 인물이다.

다만, 만화가로 연재해오면서 고된 노동을 밥먹듯이 해온 영향인지, 드래곤볼 연재 후반에는 자잘한 작화 미스가 자주 튀어나오기도 했다. 캐릭터들의 인체 비례가 짝짝이가 된다거나, 액션씬의 박력이 다소 퇴화되었다거나 하는 게 그 예시. 마인 부우 편 연재 당시에는 작가 본인조차 힘 빼고 그렸다고 공인했을 정도이니 말 다한 셈이다.[11]

드래곤볼이 완결된 후에는 Mac을 사용하기 시작하여 본격적으로 디지털로 전향하게 되었다.[12] 그래서 삽화들은 펜터치가 둥글어졌고,[13] 채색 방식은 에어브러시 느낌이 많이 나는데, 어찌 보면 닥터 슬럼프나 초기 드래곤볼과도 유사하다. 그리고 과거보다 시간이 널널해진 영향 덕분인지 스크린톤의 비중이 상당히 늘었다. 디지털로 내놓은 최초의 작품으로는 네코마인과 카지카,[14] 게임은 드래곤 퀘스트8부터.
파일:toriyama akira drawing.png
그러나, 아날로그 시절에 보여줬던 특유의 박력과 세밀한 묘사가 디지털 전향 이후로는 많이 죽어버린 지라 팬들에게는 오히려 과거보다 실력이 퇴보되었다는 소리를 듣곤 한다. 서로 비교해보면 스타일이 변했다는 체감이 확 느껴질 정도. 특히 디지털 전향 초기에는 아직 신문물에 익숙하지 않았던 건지, 퀄리티가 별로인 그림들이 자주 나와서 영 좋지 않은 평가를 받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유의해야 할 점은 어디까지나 도구의 차이로 인해서 스타일이 변화했을 뿐, 그림 실력 자체가 줄어든 것은 절대로 아니라는 것이다. 당장 디지털에 확실히 적응한 듯한 2010년대 이후의 그림들은 아날로그 못지 않은 양질의 퀄리티를 자랑하는 작품들이 많다.

긴 만화인생을 통해 화풍이 세 차례 변신을 하였으나, 변화가 아주 서서히 일어났기 때문에 꾸준히 읽는 독자는 그의 화풍이 변하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허나 데뷔 당시 화풍(소위 1기 화풍)과 지금의 화풍을 비교해보면 같은 만화가의 그림이라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의 차이가 있다. 올드팬들은 닥터 슬럼프 연재 후기~드래곤볼 프리저 편 때까지의 부드러운 화풍인 2기 화풍을 최고로 치며, 드래곤볼 Z를 통해 유입된 팬들은 Z 후반부와 비슷한 인조인간 편과 마인 부우 편 때의 3기 화풍을 가장 선호한다. 현재의 4기 화풍은 컴퓨터로 작업하기 편하도록 선이 간결한 것이 특징인데, 2기의 아기자기한 느낌이나 3기의 역동적인 느낌에 비해 다소 뒤떨어진다는 불평을 하는 팬들도 많다. 그러나 그림체를 떠나 기본기와 구도, 전투씬의 타격감은 여전하다.
파일:IMG_stan hansen 5483.jpg
프로레슬러 스탠 핸슨의 캐리커처.

캐리커처의 달인이기도 한데, 드래곤볼부터 토리야마 작품을 읽은 독자라면 그 사실을 알기 어렵다. 허나 닥터 슬럼프에는 유명인의 얼굴을 본뜬 캐릭터들이 잔뜩 등장했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얼굴을 가진 이발사 크리킨톤, 조지 리브스(2대 슈퍼맨)의 얼굴을 가진 습파맨(슈퍼맨의 패러디 캐릭터), 레너드 니모이(스팍 배우) 얼굴을 갖고 있으며 엔터프라이즈호를 뒤집은 모양의 집에 사는 전학생 등이 그 예다.

사실 드래곤볼에도 실제 인물을 패러디한 캐릭터가 몇 명 나온다. 그러나 전부 토리야마의 담당 편집자들의 얼굴이라 독자들은 그게 캐리커처라는 걸 알지 못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토리시마 카즈히코를 패러디한 닥터 마시리토피콜로 대마왕.

3.2. 취미

취미는 모델건 수집과 프라모델 조립. 피규어 제작 실력은 수준급이며, 바쁜 일정 와중에도 타미야의 1/35인형 개조 콘테스트에 거의 개근하다시피 참가해서 수 차례 수상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당연히 자기 작품 캐릭터의 피규어는 본인이 직접 감수했다고 한다. 그가 손이 빠르고 작업효율이 대단하며 각종 만화 기법을 개발한 이유도 취미를 즐길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는 신빙성 높은 이야기가 있다.

상당한 메카 페치에다 중증 밀덕후라 자동차 디자인에 참여하거나 밀리터리 잡지에 기고한 사례도 있다. 파인 몰드에서 발매한 본인 디자인의 1/12 월드 피규어 컬렉션을 보면 고강한 밀덕력이 여실히 드러난다. 프라모델 만드는 시간을 내기 위해 마감을 꼭 지켰다는 이야기도 했다. 닥터 슬럼프 연재 끝 무렵에는 "나이를 헛먹었는지 갑자기 오토바이에 빠졌다"고 오너캐를 통해 털어놓기도. 당연히 만화 속에서도 그의 취향이 적극 반영되어서, 작중 그가 만든 세계관을 보면 다양한 탈것이나 여러 로봇들이 높은 빈도로 출현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닥터 슬럼프 연재 당시에는 자동차를 엄청 많이 그려대서 토리시마에게 "이 만화는 자동차가 주인공이냐."는 핀잔을 듣기도 했었다. 스타워즈 같은 SF 영화의 팬이기도 하지만, 차량에 대해서는 한 때 오토바이 레이서였던 아버지의 영향도 있다는 듯 하다.

드래곤볼의 탄생 배경에서도 알 수 있듯, 홍콩 무술영화을 굉장히 좋아했다. 성룡[15]이소룡 영화를 수 십 번씩이나 돌려보았을 정도였고, 오공의 표정이나 동작에서 이소룡이나 성룡을 생각하면서 그렸다고 한다.[16] 실제로 드래곤볼을 보다보면 그들이 나온 영화에서 모티브를 따온 듯한 부분이 몇몇 있다.[17] 그 외에 스타워즈 같은 SF물의 열성적인 팬이었던 것으로도 알려졌다.
파일:토리야마고양이.jpg
쿠로와 함께 있는 토리야마
동물 애호가이기도 했다. 서브 캐릭터 중에서 수인의 비중이 은근 높은 것은 외모 구분의 목적도 있지만, 아무래도 동물을 매우 사랑했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고 한다. 어린 시절에는 침팬지를 기르고 싶다고 떼를 썼다고 하며, 성인이 된 이후로는 고양이를 시작으로 토끼, , 물고기 등을 직접 사육했다. 단행본의 작가의 말 코너를 보면 당시 길렀던 동물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찾아볼 수 있다. 는 그닥 좋아하진 않았지만, 자녀들이 졸라서 길러본 햄스터 영향으로 괜찮아졌다는 듯.
그가 기르는 애완동물 중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동물은 데뷔 전부터 길렀던 검은 고양이 쿠로였다.[18] 단행본에 쿠로의 자는 얼굴을 보고 카린님의 얼굴을 그렸다고 소개했고, 많고 만든 동물들 중 유일하게 화실 안에서도 놀 수 있도록 허락했다고 한다. 고양이 자체가 자유분방한 동물이지만, 데뷔 전부터 길렀던 고양이 쿠로에게 각별한 정이 있었던 듯. 쿠로 이후로는 코니시 렉스종의 또 다른 고양이도 길렀는데, 이 고양이는 비루스의 디자인 모티브로도 활용되었다.

독자에게 선물받은 팬티를 누렇게 만들었을 정도로 엄청난 양의 담배를 피웠던 헤비스모커였다. 당장 위에 게시된 인터뷰 영상의 썸네일만 봐도 담배가 대놓고 입에 물려있는 걸 확인할 수 있다. 흡연량은 대략 하루에 많으면 세 갑, 마감 전에는 100 개비 정도. 만화가로 활동하면서 일정이 매우 빡빡해졌다보니 딱히 스트레스를 해소할 방법이 담배 말고는 없어서 자연스레 골초가 된 듯하다. 반면 은 거의 못해서 기껏해야 맥주 한 잔이 한계였다고 한다.

만화가인 카츠라 마사카즈, 개그 트리오 니분노고(ニブンノゴ)의 보케인 오오카와 토모히데와 절친한 친구 사이였다. 나이는 토리야마가 이 둘보다 훨씬 선배. 카츠라와는 둘이서 공통 단편집인 카츠라 아키라를 출간한 적이 있었으며, 본인들의 만화 속에서도 서로를 출현시키는 등, 우애가 돈독한 모습을 자주 보여주었다. 카츠라가 ZETMAN을 연재했을 때는 본인이 직접 극찬하는 코멘트를 남기기도. 오오카와와는 드래곤볼의 할리우드 영화화에 대한 상담을 했다고 했을 정도로 10년 이상 사적으로 교류한 시간이 많았다.

3.3. 성향

근면성실했던 만화가 시절의 행적과는 별개로, 세상 만사를 귀찮아하는 성격이었다. 상술했듯 만화가 데뷔 전에도 직장을 다니다가 싫증이 나서 망설임없이 때려친 전적이 있었고, 데뷔 이후 일화를 보면 은근히 기행끼가 다분한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의외로 그런 성격이 작품 속 세계에서 큰 영향을 끼치기도 했는데, 대표적으로 닥터 슬럼프를 연재했을 때는 그리는 게 귀찮다는 이유로 결혼해서 아내가 그려주기 전까지는 펭귄 마을에 절대로 비가 내리지 않았고, 드래곤볼을 연재했을 때는 배경 그리기 귀찮다는 이유로 마을이고 별이고 죄다 한 방에 박살내버렸다.[19] 스크린톤 없이 펜선으로만 그리는 것도 상기한 성격에서 비롯된 것이었고,[20] 나중에는 아예 궁전만 그리고 끝인 정신과 시간의 방을 만들어서 그 내부를 여러 번 우려먹기도 했다. 가장 바빴던 시절에는 연필 밑선조차 스킵하고 바로 선화 단계부터 시작했다고 하며, 연재 작품의 컬러 페이지는 매번 잉크를 사는 것이 귀찮아서 수성 사인펜을 접시에 바른 후에 그걸 으로 적당히 물을 풀어서 칠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점들이 어느새 그만의 매력으로 정착되었다.

귀차니즘과 더불어 자신의 작품에 별다른 애정이 없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작품 제작에 참여했을 때는 사소한 부분을 까먹어서 실수가 생기기도 했고, 들어오는 질문들은 대부분 즉흥적으로 꾸며서 답변했던 편이라 같은 질문이라도 달라지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21] 이런 탓에 원작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작품에 대한 발언을 독자들이 별로 신뢰하지 않았다.[22] 오다 에이치로와 서로 면담을 할 때는 자기가 잊어버린 설정들을 오다가 전부 찾아서 이야기했을 정도. 하지만, 할리우드 영화판이 심하게 말아먹은 뒤로 신극장판 제작에 크게 관여했던 일화[23]를 보면 어디까지나 방임주의 부모에 가까웠을 뿐, 애정이 없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아마도 본인의 의사와 관계 없이 15년이라는 시간 동안 억지로 장기 연재를 이어나갔던 게 가장 큰 이유인 듯 하다.[24]

만화를 그리면 보통 히로인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여기서 말하는 히로인은 영어권에서 성별이 여성인 주인공을 의미하는 단어가 아니라, 일본 만화에서 주로 표현하는 남주인공과 연애 대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 여성 캐릭터들을 말하는 히로인이다.[25] 다시 말해 토리야마의 작품들은 연애 요소가 거의 없는 것이다. 작가 자신도 "연애 이야기는 관심도 소질도 없다"고 단언했을 정도이며, 드물게 연애나 결혼 이야기가 등장하더라도 대충 때우고 넘어가거나 매우 어색하게 진행되었다. 드래곤볼에서 18호크리링의 연애, 베지터부르마의 결혼하기까지의 과정, 부르마야무치의 교제, 손오공치치의 결혼생활, 손오반비델의 교제 등이 그 예시.
  • 18호와 크리링은 적이던 시절 18호가 장난삼아 크리링의 볼에 뽀뽀, 18호/17호가 생각만큼 악인은 아니라고 생각한 크리링이 18호를 파괴하는 걸 주저/용신에게 그들 몸의 폭탄 제거를 부탁→이걸 들은 18호가 츤츤거리면서도 "또 보자."라는 말을 남김→결혼
  • 베지터는 나메크 성편 이후 집도 절도 없어진 베지터에게 부르마가 "당신도 갈 곳 없으면 같이 가자!"라고 하고 여기에 베지터는 여자답지 못하게 목소리 크다고 질색→결혼
  • 부르마와 야무치는 서로 (이성교제를 잘하기 위해) 드래곤볼 찾던 도중 같이 포로로 잡힘→커플
  • 손오공은 어렸을 때 (이성개념이 없어) 아무에게나 사타구니를 팡팡 쳐서 남녀를 구분하던 시절 치치의 사타구니를 팡팡 침, 순진한 치치는 이 소년과 결혼할 수밖에 없다고 여겨 "날 신부로 맞으러 올거지?"라고 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오공은 그러겠다고 함, 16세가 된 둘이 천하제일무도회에서 만나 치치가 이 약속을 얘기하고 오공은은 그제야 약속을 떠올리고 결혼
  • 손오반은 비델에게 무술을 가르치던 도중 머리를 자르라고 조언하자 비델이 "오반은 머리 짧은 여자를 좋아하니?"라고 홍조를 띈 묘사가 한 번 나옴, 그리고 마인부우 전 끝나고 10년 뒤로 간 시점에 둘이 결혼해 있음. 굳이 하나 더하면 비델이 맞을 때 분노하고 부상당한 그녀를 걱정하는 장면이 나오지만 딱히 연인이 아닌 일반적인 친구라도 충분히 할 만한 일이다.

참고로 위의 서술은 중간 과정을 생략해서 서술한 게 아니라 작품에 묘사된 연애스러운 장면이 대체로 저 정도이다. 긁어모으면 좀 더 있긴 하지만. 그나마 저 중에 커플 묘사가 가장 충실히 된게 18호 / 크리링이다. 서로 마음이 있다는 건 확실히 묘사됐다. 그리고 오반과 비델은 오반이 둔하긴 하지만 그나마 둘이 서로 정드는 과정이 묘사된 편.

반면 부르마와 야무치는 둘 다 남자/여자를 좋아하는 성격이란 것만 묘사됐으나 커플될만한 사람이 따로 없으니 자동으로 된 거고, 손오공/치치 부부는 그런 과정도 전혀 없고 베지터/부르마는 그냥 갖다붙인 수준이다. 실제로 인조인간 편 당시에 베지터는 "트랭크스의 아버지"란 면이 강조되지 "부르마의 남편"이란 부분은 마인부우 전과 그 이후에서나 부각된다. 의외로 "아버지로서 손오공," "남편이자 아버지로서 베지터" 등 가족애 묘사는 좀 있는 편이지만 연애 부분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스토리에 대해선 본인 외에 초대 담당 편집자였던 토리시마 카즈히코가 많은 조언을 해줬으며, 오공이 계왕을 웃기기 위해 썼던 개그나 퓨전의 아이디어 등은 카츠라 마사카즈가 생각해 냈다고 하는 것 역시 유명한 이야기다. 스토리 진행은 즉흥적으로 진행했다고 하는데, 원활한 전개를 위해서 일부러 느슨하게 설정을 짜왔다고 한다. 그러는 편이 설정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이야기를 변화시킬 수 있으며, 스스로도 어떻게 되어갈 지 몰라서 두근거리면서 그릴 수 있었다고 밝혔다. 기껏 구상을 해도 막상 작업 단계에 돌입하면 어느센가 달라지는 것도 있었고.

하지만, 이것은 스토리 진행에 한해서이고, 하나의 큰 스토리 라인을 시작할 때는 이런저런 캐릭터의 모습이나 설정, 배경 스토리 같은 것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설정을 짜놓고 작업을 했다. 꽤 많은 뒷 설정이 머릿속에 있었지만, 재미없는 설명을 나열하는 것 같아서 대부분 그리지 않았다고 발언했으며, 작품의 뒷 설정을 만드는 것도 비교적 재밌는 일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만화에는 묘사되지 않는 역사나 세계관에 관한 설정, 스토리의 공백 기간 동안의 캐릭터의 생활 등의 메모와 자료가 있었다고 한다. 이상의 내용은 드래곤볼 대전집에서의 인터뷰나 점프 특집 인터뷰 등에서 작가 본인이 직접 밝혔던 바 있다. 사실 이런 배경을 미리 짜지 않았다면 작화 뿐만 아니라 떡밥 회수와 반전, 연출로도 그야말로 최고의 경지라 할 수 있는 드래곤볼/프리저 편 같은 스토리를 쓸 수는 없었을 것이니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토리야마는 자신이 구현할 수 있을 정도의 설정을 구상하고 이를 반영했던 것이며, 쓸 데 없는 부분에 대한 설명보다는 얼마나 작품을 재미있게 전개하고 연출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는 작가인 것이다. 의상 한 벌, 탈 것 하나 하나에 치밀한 설정을 짜는 데 골몰하는 나가노 마모루와 정반대의 스타일.

닥터 슬럼프를 연재했을 때는 어차피 대단한 내용의 만화도 아니라 스케치북만 지그시 보고 있어도 스토리가 알아서 떠오른다고 한 적이 있다.

낯가림이 심해서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가장 최근에 얼굴이 공개된 것도 2017년이 마지막이며,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그의 얼굴 사진들은 대부분 만화가로 활동했던 80 ~ 90년대의 과거 시절이다. 방송 출연마저도 2013년 후지TV <메자마시 테레비>에선 인터뷰 당시 몸통만 나왔고, 2016년 토리야마 아키라전 DVD 특전 인터뷰에선 목소리만 나왔다. 고로 2000년대 이후에 촬영된 사진들은 거의 손에 꼽는 수준으로 전무하다. 하지만, 이미 과거에 찍었던 자료들과 본인의 거대한 몸값 때문에 그의 신상정보는 대부분 세상에 알려져 있는 상태. 넉살좋은 아저씨처럼 생긴 것과 다르게 가족, 친구, 지인 말고는 사람을 대하는 게 다소 서툴었다고 한다. 어쩌면 어시스턴트를 거의 고용하지 않았던 것도 자택의 지리적 특성도 있겠지만, 낯가림이 가장 큰 이유였을 지도 모른다. 그래도 생전에는 장난기 많은 순수한 성격이여서 닥터 슬럼프의 보너스 페이지에 묘사된 모습을 보면 어린애 같은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아내와 만나게 된 계기가 자신이 건 장난전화 때문이라고 하며, "그 센스와 지식에는 당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드래곤볼 연재 당시엔 유달리 2인 1조로 나오는 캐릭터들이 많은데,[26] 이는 내레이션을 쓰지 않고도 상황 설명 등이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원작에서는 작위적인 내레이션이 거의 나오지 않는 편이다.

2015년 골든 위크에 공개되는 드래곤볼 Z 극장판 관련 토리야마 코멘트에서 사실은 화려한 액션물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드래곤볼 이후에 제작된 단편들을 보면 사회적으로 민감한 문제들을 꽤나 심각하게 여겼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자연과 생명에 대한 존중은 작가로 데뷔한 시절부터 꾸준히 등장하는 테마이다. 토리야마가 그리는 이상향은 원시에 가까운 자연환경 속에서 인간과 테크놀로지가 동식물과 조화롭게 공존하는 것이며, 닥터 슬럼프의 배경인 “펭귄 마을”이 바로 그가 원하는 꿈을 직접 표현한 것이다. 드래곤볼 세계관만 봐도 수인들이 인간과 동등하게 취급받으며 함께 공존하고 있고, 대통령은 무려 테리어종의 개다. 토리야마는 닥터 슬럼프 연재 말기에 등장한 “우주의 신”의 입을 빌어 자신의 사상을 토로한 적이 있는데, “인간이 지금처럼 자연을 파괴하며 문명을 쌓아올리다가는 반드시 멸망한다”는 경고였다. 비교적 진지한 분위기로 그린 샌드랜드나 카자카같은 작품들을 보면, 대부분 "인간들은 잔인하고 어리석은 존재들이다."라는 메세지가 많이 전해져오는데, 이는 은하패트롤 쟈코에서도 어김없이 나온다. 왕도 중의 왕도라고 할 정도로 인간과는 다른 종족이 나오는 만화의 클리셰이긴 하지만, 유독 토리야마는 이런 주제를 많이 써왔다.

3.4. 오너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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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리야마 본인과 토리봇[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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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 '토리봇'. 방독면을 쓴 로봇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다른 작품에서도 카메오로 종종 출현한다. 복장 바리에이션은 다양하지만, 2010년대 이후로는 초록색 츄리닝을 입은 버전이 디폴트로 정착되었다.

드래곤볼에서는 화폐나 현상수배지 등에 그려져 있는 것으로 나오며, 닥터 슬럼프 초기에는 새 모습으로 나오다가 나중에 가면 방독면 쓴 로봇으로 나와 갓짱에게 먹혔다. 갓짱한테 먹힌 뒤 센베가 개조해준 이후엔 저 주둥이에서 포탄도 나온다. 드래곤볼 점프 40주년 기념판 애니에서도 오반의 컴퓨터 바탕 화면 아이콘으로 나왔다.

게임 토발 No.1에서는 히든 캐릭터(영문명은 TRIX)로 등장.

4. 만화가로서의 입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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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투 소년물의 공식을 새로 쓰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완성시켰으며, 배틀물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로 여겨진다.

일본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만화가로 서구권에서도 엄청난 인기를 얻었으며, 그의 사망에 전 세계가 애도의 물결을 보냈다. 이러한 인기 덕분에 일본 만화가 중, 가장 돈을 많이 번 사람으로도 유명하며[28] 일본 내에서 납세 1위(기타 문화인 부문)[29] 를 2년 연속 기록한 적이 있었다. 오죽하면 세금 때문에 거주 지자체인 아이치현에서 이사도 못 가게 한다는 말도 있을 정도. 물론 실제로는 정말로 못 가게 하는 건 말도 안되는 소리고, 집 앞에 공항 직통 도로를 깔아줬다는 도시전설도 사실이 아니지만, 이러한 도시전설이 생길 만큼 토리야마가 내는 납세액이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건 틀림이 없다. 일본뿐만이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만화가로서 이 정도로 성공한 케이스는 매우 드물다. 그 예로 1992년 미국 경제잡지 포브스에선 미국 만화가의 최고 갑부인 찰스 M. 슐츠(<피너츠>의 원작자)보다 더 부자인 만화가라며 토리야마를 취재한 적도 있다.

아울러 나가이 고 이후로 천재 만화가라는 수식어가 딱 어울리는 인물로, 과감하고 다양한 실험을 통해 소년만화계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1982년도에 데즈카 오사무가 직접 "자신의 후계자가 나왔다"고 발언해서 화제가 되었던 일화도 있다. 이 일화 때문에 한국에선 토리야마를 2대 만화의 신이라 부르기도 하지만, 공식적으로 사용되는 별명은 아니다. 다만 데즈카 오사무의 후계자라는 호칭 자체는 데즈카 오사무 본인이 발언했기 때문에, 반드시 틀렸다고 할 수는 없으며 실제로 토리야마는 데즈카 오사무 문화상의 심사위원이기도 하다.

15년간 작품을 주간 연재하면서 펑크를 낸 적이 단 한 차례도 없다. 더구나 블로그에서도 밝힌 것이지만 귀차니즘도 가지고 있고 모든 작업을 단독으로 진행한 것임에도 펑크를 낸 적이 없다.[30] 초인기 작가라 온갖 게임, 컬러, 일러스트등의 일감을 동시에 소화하고 심지어 기한도 몰아치기 식이었는데도 말이다.

인품도 훌륭하다. 천성에서 기인한 바가 크나 타인을 헐뜯거나 질투하지도 않고 화실에서 어시에게 매우 잘해준 것으로도 유명하고 [31] 그 많은 재산, 그 엄청난 유명세와 영향력에도 평생 범죄, 유흥, 과소비, 언행 등 구설수 하나 오르지 않고 직업과 가정에 충실했다. [32]

전에 없던 그만의 독특한 화풍도 인정받고 있다. 보통 작가들의 화풍은 전세대 만화가들에게 영향을 받기 마련인데 토리야마는 너무나 특이해서 등단부터 자신만의 오리지널 화풍으로 인정받았다.[33] 어느 정도냐면 토리야마가 등단하기 전까지 점프잡지의 순위권의 거의 모든 만화들은 극화체, 실사체거나, 데즈카에게 영향받은 과장된 데르포메 화풍이 주류였는데 이 일본의 화풍이 세계 시장을 주름잡던 때에 한 무명 작가가 등단과 동시에 인기까지 쓸어 담으며 흐름을 바꿔버린 것이다. [34]

닥터 슬럼프가 한참 인기를 구가하던 당시엔 그의 화풍이 최신, 미래로 보였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만화가 지망생들에게 끼친 영향이야 말할 것도 없고 점프에 이미 등단해 있던 인기 작가들도 공격적으로 자신의 화풍을 정립하기 위해 절치부심하게 만든 초대형 신인이었다. 1980년 1윌 이전 점프의 다른 작품들과 토리야마의 작품이 얼마나 이질적이고 앞서 간 건지는 그림 몇장만 나열해도 설명할 필요가 없다. 닥터 슬럼프 연재 이전 점프 합본 표지#

이 때문에 토리야마의 화풍을 따라하는 정식 작가가 동인지 아마추어 시장 외에는 그의 영향력을 고려했을 때 별로 없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작가인데 화풍이 너무 독창적이라 조금만 따라해도 열화표절이라고 욕을 먹기 때문에 일본 만화를 많이 표절하던 중국, 한국에서도 거의 따라하지 않았다. 그나마 따라 한다면 그가 즐겨 쓰던 배경, 메카, 간략화, 컷배분 등의 기술적 부분 정도이고 인물 쪽은 차라리 참고하지 않는 게 나을 정도.[35] [36] 재미있는 점은 토리야마는 만화가로 등단하고 나서도 남의 만화를 거의 보지 않고 거의 그림만 그리고 자신에게만 열중한 것으로 유명한데 이런 그의 성격이 반영되어 그의 그림체가 다듬어지기만 했지 타 작품에 영향받은 기색을 찾아 볼 수 없다. 한 시대를 풍미하다가도 편집부나 타 작품의 영향을 잘못 받아서 한순간에 나락간 수많은 작가들 [37] 을 생각하면 다행. 애초에 독보적인 노선을 걷고 있는데 굳이 타 작가나 시시각각 변하는 유행 등에 영향 받을 이유도 없었다. 드물게 편집부에서 이노우에 신인 작품을 보라고 명령해서 어쩔 수 없이 본 적이 있다고 하는데 자료로써 보지 않고 그림 센스있는 작가가 나왔구나 하고 감상만 하고 말았다고.[38]

토리야마 아키라만의 컷 배분 공식을 만들고 완성시켰다. 기존 만화들은 그때 그때 작가가 적당하다고 떠올리는 방식으로 컷을 임기응변으로 나누었는데 토리야마는 컷 배분을 공식화시켜서 그리는 자신도 편하고 읽는 독자도 편하게 구체화시켰다.[39] 또한 완성도가 완벽해서 드래곤볼은 만화 학원에서 컷 배분 교육의 단골 소재로 전세계에서 활용되고 있을 정도이다. 일단 한국 만화 학원이나 서적에선 1번 교육 소재다.

5. 작품 목록

6. 수상 경력

7. 기타

  • 원피스 작가 오다 에이치로가 가장 존경하는 선배다. 오다 본인이 드래곤볼 광팬이라는 말은 이미 유명한 이야기이고[48], 만화 속에서도 루피가 대식가 설정을 가지고 나온다거나, 카이도의 용 폼이 신룡과 똑같은 구도로 연출되는 등, 드래곤볼을 오마쥬한 요소가 간간히 나온다. 원피스 10주년 기념 행사 때는 둘이 직접 면담해서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했는데, 굉장히 들떠있는 모습을 보였다. # 토리야마가 잊고 있던 설정도 죄다 기억해서 역으로 설명할 정도. 소년 점프에 만화가로 지원한 것도 토리야마와 드래곤볼 영향이 컸다고 한다. #[49] 원피스와 드래곤볼 둘 다 소년만화의 귀감으로서 둘이 콜라보되는 일이 많고, 애니메이션 또한 같은 회사에서 제작되어 같은 방송사에 같은 시간대로 송출되었으니[50] 오다는 성공한 팬인 셈. 토리야마의 사망이 발표된 날에도 가장 먼저 추도문을 작성한 사람 중 한 명이 바로 오다였다.
  • 키는 174cm이며 나이대에 비해 상당한 장신이며 웬만한 일본 젊은 남성들보다 더 큰 편이다.[51]
파일:미카미나치.webp 파일:토리야마결혼식.png
<rowcolor=#000,#ffa500> 성룡과 토리야마 부부 토리야마와 미카미의 결혼식
* 부인인 미카미 나치는 토리야마처럼 만화가로 활동했던 작가였으며, 하쿠센샤에서 "위로 아래로 로큰롤(上を下へのロックンロール)"이라는 순정만화를 연재한 경력이 있다. 결혼 이후에는 또 다른 순정만화인 "세인트 메피스트 혼란(聖メフィスト混乱伝)"을 끝으로 만화가 활동을 그만두었지만, 위에서 소개한 것처럼 닥터 슬럼프 원고 작업에서 비가 내리는 걸 그려줬다거나, 에네르기파의 작명을 제시해주기도 하는 등, 혼자서만 작업하던 남편의 실질적인 어시스턴트가 되어줬다고 한다. 참고로 미카미 나치는 작가로서 활동했던 필명이며, 본명은 카토 요시미.
파일:Akira Toriyama and son Sasuke.jpg
1980년대 후반, 장남 사스케와 드래곤 퀘스트를 하고 있는 토리야마
* 슬하에 1남 2녀를 두었으며, 이 중 장남과 장녀는 아기였을 적 사진이 단행본에 실린 적이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거장 만화가의 자녀들이지만, 정작 아버지의 작품에 크게 관심이 없다고 한다.[52]
  • 평생토록 고향을 떠나는 걸 무척이나 싫어했다.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고향에서 살아온 토박이였는데[53], 얼마나 고향을 떠나기 싫어했었냐면 편집부가 마감 안 지키면 도쿄로 올려보내겠다.고 엄포를 내놓자, 마감 기한을 칼같이 지켰다고 이야기했을 정도였다. 사람 대하기 힘들어 하는 그의 성격을 생각하면 있을 법한 일화.[54] 훗날 인터뷰를 하면서 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일 중의 하나가 이렇게 유명해질 줄 모르고 아무 생각 없이 본명으로 데뷔한 것이라고 하는데, 자신이 사는 지역이 동명이인이 거의 없어서 전화번호가 대놓고 공개되어 버린 게 무척 괴로웠다고 한다. 참고로 데뷔 초에 생각했던 필명은 미즈타니 키사쿠였다.
  • 어린 시절 상당한 말썽꾸러기였다. 닥터 슬럼프 원작에 보면 작가의 어린 시절을 짤막하게 쓴 내용이 있는데, 야구 연습하다가 여동생의 눈을 때려 야구공만하게 만든 적도 있고, 밤에 발 밑에 있던 돌을 그냥 아무데다 던졌는데, 옆집 사는 형이 맞아 이마에서 피가 나게 한 적도 있다고 한다. 둘 다 아버지한테 맞아 죽을 뻔 했을 정도로 크게 혼났다고 한다. 이외에도 각종 재미난 에피소드들을 그리기도 했다. 여동생과는 힘에서는 이겨도 말로는 졌다고 한다. 툭하면 바보, 굼벵이라고 불렀다고.
  • 인조인간 편을 끝으로 드래곤볼을 완결시키려고 했을 때는[55] 한국의 문교부 장관에 해당되는 일본 문부대신이[56] 직접 찾아와서 제발 연재를 이어달라고 부탁했다는 전설이 나돌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이야기는 꽤나 유명한 편.

    다만, 이는 조금 와전되어 전해진 것으로, 실제로는 대신 바로 밑의 실세인 차관이 왔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만화가 박성우가 이게 진짜인지 확인하려고 일본 업계 편집 기자에게 물어봤었는데, '에이~ 설마 대신님이 왔겠어요?'라는 반응을 들었었고, 그래서 '그럼 그렇지~'라 생각하고 '그럼 높으신 분이 오셨다는 이야기는 왜 나온 거죠?'라고 하니깐 문부성에서 오시긴 오셨습니다. 대신님 대신 차관님이었죠.라는 대답을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대신이든 차관이든 결국 문부성의 높으신 분들이 찾아왔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기에 여전히 전설인 건 부정할 수 없다. 실제로 드래곤볼이 완결된 이후로 소년 점프의 발매 부수가 100만 이상이 증발하고, 관련 업종과 미디어 믹스 또한 막대한 소실을 입었으니, 문부성마저도 저렇게 애걸복걸하는 건 딱히 호들갑이 아닐지도 모른다.[57][58]
  • 현재의 주간 소년 점프 연재 만화가들은 대부분이 토리야마의 화풍에 영향을 받은 세대라 스크린톤을 잘 쓰지 않는다. 원피스, 나루토, 블리치 등을 잘 보면 토리야마처럼 펜선으로 명암을 표현한다는 걸 알 수 있다.
  • 순전히 생계 유지만을 목적으로 만화가를 도전한 것이었고, 데뷔 이후에는 몸을 혹사시키면서 고된 작업을 했다보니, 드래곤볼 이후로는 가끔씩 단편만 그려서 연재하는 정도로 만화를 그리는 일이 대폭 줄었다. 그가 그리는 단편들은 대부분 그가 원래 선호하는 스타일이었던 가벼운 개그물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이마저도 점프에서는 감지덕지하게 여기는지 <네코마인>은 단행본 발간 시 처음부터 완전판으로 발매되는 파격적인 대우를 받았다. 신작이 완전판의 판본으로 처음부터 출간된 것은 아직까지는 네코마인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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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리야마 아키라(왼쪽)와 토리시마 카즈히코(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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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 3대 편집장들을 본 따서 만든 캐릭터들
* 장난기가 많은 성격인지 드래곤볼 캐릭터 이름들이 대부분 패러디란 것은 유명한 이야기고, 악역 이미지도 담당 편집자들하고 많이 비슷하다. 초기 담당인 토리시마 카즈히코는 닥터 슬럼프의 메인 악역인 닥터 마시리토와 드래곤볼 초기 악역인 피콜로 대마왕의 모델이 되었고, 2대 담당인 콘도 유는 프리저의 모델, 3대 담당인 다케다 후유토는 마인 부우의 모델이다. 위의 이미지는 드래곤볼 대전집에서 가져온 것인데, 사진 옆에 캐릭터를 배치해 놨다. 본인 말로는 의도해서 이렇게 그린 건 아니지만 평소에 시달린 무의식이 만화에 반영됐을 수도 있다며 유사성을 인정했다.[59]
  •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 크로노 트리거 같은 여러 게임들의 디자이너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근데 사실 토리야마는 슈에이샤 이외의 출판사의 출판물에 일러스트를 투고할 수 없는 전속 계약[60]에 묶여 있으므로, 게임의 표지나 패키지 수록 매뉴얼 일러스트, V점프 부록 일러스트까지는 그릴 수 있지만 스퀘어 에닉스가 출간하는 드퀘 관련 공략본까지는 그림을 게재할 수 없어서, 그런 류의 서적엔 본인 일러스트가 한 장도 들어가지 않는 경우도 있다. 거기다 토리야마 본인의 스케쥴 문제도 있고 해서 보통 대부분 드퀘 일러스트는 토리야마의 그림체를 똑같이 그릴 줄 아는 사람들이 대신 그리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론 마에다 미노루, 나카츠루 카츠요시, 무라카미 유미코 등이 있다. 드퀘의 경우 위저드리 같은 서양 RPG의 영향을 많이 받은 호리이 유지의 성향 때문에 처음에는 리얼한 형태의 디자인을 계획하고 있었지만, 토리야마가 디자인을 맡으면서 슬라임으로 대표되는 드퀘 특유의 귀엽고 아기자기한 캐릭터가 탄생하게 되었다. 당시 호리이 유지의 러프 스케치를 보면 크리처 디자인이 그냥 대놓고 서양식 RPG였던 점을 감안해 보면,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슬라임 계열 모에화의 선구자. 다만 서양 RPG의 경향을 완전히 뿌리칠 수는 없어서 이런저런 소스들이 남아 있게 되었다.[61]
  • 2017년 11월에 조세회피처에 대한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의 보고서인 파라다이스 페이퍼스에 그의 이름이 등장했다. 2000년 다른 일본인 11명과 함께 미국의 부동산 임대 사업에 투자를 하면서 탈세를 했다는 내용이며, 2005년 일본의 조세 당국은 이들의 범죄 혐의를 포착해 조사 후 탈세로 결론을 내리고 추징과세했다.

    파라다이스 페이퍼스 의혹과 관련한 언론의 질문에 토리야마 아키라는 "매일 바쁘게 사는 탓에 세금 관련 일은 다른 사람에게 맡겨 놓고 있어서 정말 아무런 할 말도 없습니다."라고 서면 답변했다. 당시 기준 12년 전에 일어났던 사건이었고 꾸준히 초고액 납세를 해오던 사람이었던 지라 큰 논란은 되지 않았다.

    이 사건 때문에 주간 FLASH 등지에서 찾아가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오래간만에 언론에 사진이 공개되었다. 사망 문단에 있는 2017년의 사진이 바로 이 때 찍힌 것. 복장도 츄리닝 차림인데, 그저 쓰레기를 버리려고 밖으로 나왔다가 걸려서 찍힌 것이라고 한다. 떨떠름한 표정도 있는데 갑자기 기자가 나타나 사진을 찍자 표정을 찌푸렸으나 이후 마음을 다잡고 웃은 것으로 보인다.
  • 2017년 1월 초에 건강 상태가 나빠졌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 위의 탈세건으로 인해 기자가 방문했을 때의 모습을 보면 3년 전에 비해 상당히 살이 빠지고 얼굴이 수척해진 걸 알 수 있다. 드래곤 퀘스트 11 제작 당시에도 앞으로 디자이너 일을 더 할 수 있을지나 모르겠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고, 실제로도 공적 활동이 많이 줄어서 진짜로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는 팬들의 우려가 커져가고 있었는데, 결국 2024년에 부고 소식이 뜨면서 걱정이 현실이 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다. 토리야마와 동시기에 활동하던 작가들이 아직도 왕성히 활동하는 걸 보면 의아해할 수 있는데, 토리야마는 데뷔 당시 기준으로도 만화가 중에선 고령에 속하던 인물이었고, 한창 현역이었을 때는 철야를 밥먹듯이 했을 정도로 과로를 자주 해서 생활 패턴이 심각하게 망가진 상태였다. 여기에 더해 담배도 많이 피웠던 골초이기도 했으니 건강이 좋을래야 좋을 수가 없었던 것.
  • 2019년 5월 말과 함께 6월이 시작되면서 프랑스 문화부로부터 예술 문화 훈장[]Ordre des Arts et des Lettres / (英) Order of Arts and Letters]을 표창 받았다.#[63]
  • 일본 최초로 만화가로서 일본 개인 납세금액 최상위 10인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64]
  • 그의 작품은 현재까지도 파칭코화가 진행되지 않았다. 인터넷에 간혹 돌아다니는 파칭코 계열 상품들은 전부 불법 유통된 장난감이거나, 누군가 인위적으로 만든 비매품이다. 이에 대해서는 토리야마가 "자식 같은 내 캐릭터들을 도박 따위에 쓰는 건 허락할 수 없다."고 거절한 것 때문에 나오지 않는 거라는 소문이 있으나, 실제로는 진위여부가 밝혀지지 않은 루머에 불과해서 확실하지 않다. 5ch에서 제시된 출처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다고 하며, 오히려 생전에 토리야마는 파칭코를 좋아한다고 직접 인터뷰하기도 해서 확실한 이유는 알 수 없다. 물론 원작자의 의향이 아예 없지는 않았겠지만, 판권료가 너무 비싸서 안 나왔을 수도 있다. #
  • 저작권의 원칙에 따라 토리야마 사후 70년이 지난 2094년에 그가 만든 모든 작품들의 저작권이 풀릴 예정이다. (저작권은 처음에는 30년->50년(1987년 개정)->70년(2013년 개정)으로 관련 기관에서 로비 활동으로 인해 20년 씩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 2094년쯤 되면 또 다시 늘어날 가능성은 있다) 실제로 2013년 저작권 법 개정으로 관련 법 개정전의 1962년전에 사망한 헤밍웨이, 헤르만 헤세 등은 저작권이 풀렸으나 1963년 이후 사망한 염상섭, C S 루이스(나니아 연대기 작가) 등은 저작권이 20년 연장된 사례가 있다.
  • 몬스터를 디자인할 때 손가락을 4개만 그릴 때가 많다. 대표적으로 피콜로, 조마가 있다. 그러나 드래곤볼도 드래곤 퀘스트도 다른 매체로 나올 때는 손가락이 4개인 몬스터가 5개로 수정되고 있다.[65] 수정되는 이유는 불명.[66]

[1] 한국에서는 종종 한국 한자음을 따라[2]아이치현 기요스시. 나탈리에 연재된 2024년 3월 8일자 자료에 출생지가 기요스정으로 기록되어 있다.[3] 사망 발표 일자는 3월 8일.[4] 출처는 인터뷰에서 직접 밝힌 프로필.[5] 법적으로서의 본명은 토리야마 나치.[6] 이름, 출생년도 모두 불명이다.[7] 크로노 트리거, 블루 드래곤에서도 원화를 맡았다. 그림 활동을 할 때의 저작권 표기에서는 보통 BIRD STUDIO의 이름으로 표기하고 있다. 이는 세금 문제 때문으로, 비슷한 경우가 아즈마 키요히코의 요츠바 스튜디오. 저작권 문제로 정반대의 포지션을 취할 때도 있는데, 야츠데 사부로야다테 하지메 같은 케이스가 있다. BIRD STUDIO의 BIRD는 토리야마(鳥山)의 토리에서 따온 것.[8] 대표적으로 일곱 개의 대죄의 작가인 스즈키 나카바가 토리야마의 그림체에 영향을 받아서 스타일이 은근 비슷하다. 이 외에도 록맨 시리즈포켓몬스터 시리즈의 과거작들은 일러스트의 그림체가 토리야마의 영향을 받은 부분들이 많다.[9] 토리야마 아키라는 액션만큼이나 메카닉 묘사도 아주 실험적이고 독보적이었다. 스카우터어택볼 등 드래곤볼 시리즈에 나오는 수많은 특수장비들과 탈것, 로봇들의 디자인들은 매우 심플하면서도 메카적인 특성이 아주 잘 살아나는 뛰어난 완성도를 가지고 있다. 특히 중후반부에 속속 등장하는 악당 메카 디자인은 흡사 영화 에일리언을 방불케하는 차가우면서 기괴한 느낌을 잘 살려냈다.[10] 그 흔한 칼이나 창같은 냉병기도 거의 쓰지 않는다. 초반부에 타격병기인 여의봉을 조금 썼을 뿐이다.[11] 물론 힘빼고 그렸다고는 해도 전체적인 작화 퀄리티가 낮다는 소리는 절대로 아니다.[12] 이는 드래곤볼의 연재 후반부부터 팔에 통증이 심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PC가 없었다면 펜을 놓았을지도 모른다고.[13] 또한 프로그램의 손떨림 보정 기능을 사용하지 않는지, 태블릿의 인식 문제로 선이 살짝 떨리는 그림이 자주 보이고 있다.[14] 98년도에 연재했던 단편 만화. 전 12화 완결[15] 이후 실제로 성룡과 직접 만났다.[16] 무천도사는 천하제일무술대회 출전 당시 쓴 가명부터가 "재키 춘"이고(성룡의 미국이름이 "재키 챈"이다) 실제로 취권을 쓰며, 초기의 익살스런 권법은 성룡을 연상시킨다. 또한 손오공의 기합이 들어간 얼굴은 어느 정도 이소룡을 연상시키고, 여러 무술의 디테일한 동작(발차기를 할 때 손모양이라든지)는 이소룡과 많이 닮았다.[17] 머슬 타워 에피소드는 이소룡의 사망유희에 나오는 탑을, 악역인 타오파이파이는 디자인이나 행적 등등 취권황정리를 모티브로 했다. 그 외에도 천하제일무술대회 특유의 링 같은 것은 전혀 없는 단으로 된 경기장도 중국무술영화에서 자주 나오는 비무대회장과 매우 흡사한데, 떨어지면 장외패가 있는 것까지 동일하다.[18] 국내판 단행본에서는 깜장이라고 현지화되었다.[19] 폭발 장면은 적어도 흰 공백 안에 흩날리는 파편만 그리면 끝이지만, 배경은 원근감이나 구도에 맞춰 구조물들을 일일이 그려야 하는데다, 한 군 데라도 삐꾸나 나면 굉장히 어색해져서 난이도가 상당히 높다. 당연히 규모가 커질수록 소요되는 시간도 그에 맞게 늘어나는데, 월간이면 몰라도 주간일수록 굉장히 걸림돌이 되는 요소이다. 웹툰 업계에서 배경을 대부분 3D 모델링으로 처리하는 작가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20] 물론 아예 안 쓰는 건 아니었고, 배경과 마찬가지로 시간 절약이 가장 큰 이유였다. 드래곤볼 완결 후에 내놓은 단편들은 스크린톤의 비중이 꽤 높다.[21] 예를 들면 드래곤볼 연재 종료 후의 천진반런치의 관계. 처음 관련 인터뷰에서는 "결국 둘이 결혼에 골인했다"고 했지만, 2013년 인터뷰에서는 "런치가 농사하고 있는 천진반을 찾았지만, 런치는 농사에 흥미가 없고 천진반은 연애에 흥미가 없어 서로 이어지진 못했다"라고 이야기한 것.[22] 당연한 이야기지만, 원작자는 작품의 주인이자 신적인 존재로 각인되기 때문에 보통 작가의 말은 100% 정사로 취급된다. 오히려 토리야마가 별난 케이스인 셈이다.[23] 이전까지는 캐릭터 디자인 정도만 제외하면 미디어 믹스 제작에 크게 관여하지 않았다. 근데 레볼루션은 본인이 보기에도 너무 재미가 없다고 생각해서 나름대로 조언을 해주려고 했는데, 제작진 측에서는 종사하는 업계가 서로 다르다는 이유로 매몰차게 대하면서 그를 무시했다고 한다.[24] 애초에 닥터 슬럼프와 드래곤볼 모두 인기 때문에 억지로 연재를 이어나갔던 전적이 있었고, 특히 드래곤볼 때는 완결나는 순간 회사 일부가 쪽박칠 정도로 너무 크게 히트해버려서 완결을 내고 싶어도 도무지 그럴 수가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수익성을 위한 장기노선이 계속되면 아무리 애정이 있는 작가라도 금방 작품에 대한 사랑이 식어버리기 마련인데, 하물며 토리야마는 이런 일을 2연속이나 겪으며 개고생을 했으니 어찌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25] 즉, 남주인공과의 연애 서사가 전개에 중요한 영향을 주지 않는다. 이 작가의 작품에는 남녀간의 애정으로 인해 갈등이 발생하거나 해소되는 전개가 전무하며, 소위 색기와 관련된 부분이나 아기의 출산 정도를 제외하면 여성 캐릭터를 남성 캐릭터로 바꿔도 극의 전개가 전혀 영향을 받지 않을 정도.[26] 오공과 부르마, 야무챠와 푸알, 베지터와 내퍼 등등[27] 그림에 적혀 있는 대사들은 전부 바보, 멍청이 등을 뜻하는 단어를 각국의 언어로 적은 것이다.[28] 뉴타입에 공개된 토리야마 인터뷰에 따르면 드래곤볼 프리저 편 기준, 550만 엔 즉, 한 회당 2015년 기준 환율로 약 5,000만 원. 심지어 실수령 액수이다. 셀 편에서는 더 많은 보수를 받았다고 하는데 공개는 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마저도 단행본 판매 수익에 비하면 새발의 피. 당시와 지금의 물가 차이를 고려하면 이 차이는 더 벌어진다.[29] 정확히는 1981년에 만화가로는 최초로 5억엔의 소득을 신고해 일본에서 고액납세자공시 기준으로 전체 랭킹 35위에 올랐다. 닥터 슬럼프 하나만으로도 이 정도였는데 드래곤볼은…. 다만 1983년 이후 공식적인 소득은 공개되지 않고 있다.[30] 초인기작 드래곤볼 작품 중기 한참 바쁠땐 어시스트를 1명, 가장 많을 때 잠시 2명 두기도 하였으나 사람을 쓰는데 익숙한 사람도 아니고 나중엔 어시에게 지시하는 시간에 내가 그리는게 더 빠르다라는 이유로 다시 혼자 그리게 된다. 이래도 정 바쁠땐 부인이 도와주는 수준으로 2명을 넘지 않았다.[31] 프리저 전 당시 어시가 한 명 있었고 이 사람이 주로 먹칠과 선긋기 작업을 했는데 작업량이 많아지자 토리야마에게 먹칠 언제 다하느냐고 걱정하자 토리야마는 어시에게 사이어인 등장하면 머리는 먹칠 안 해도 된다고 걱정 말라고 했다고 한다.[32] 탈세 해프닝이 말년에 있었는데 자산을 운영해주는 미국회사의 미국에서 발생한 탈세 사건이었고 토리야마 아키라는 관련이 없어서 추징 받지 않았다. 토리야마의 이름이 언급된 것도 당시 이 회사의 수천명의 고객 리스트 중에 유명인들을 기자들이 추려내서 자극적으로 기사를 썼기 때문.. 수천명 중에 실제로 벌금을 낸 사람은 거의 없는데 이유는 마음대로 고객 몰래 자산을 운용하고 탈세로 발생한 낙전수익을 회사가 횡령하는 식이었으므로 당연히 회사가 처벌받았다.[33] 물론 연재하기 전 1년간 악마같은 편집자에게 걸려 원고를 찢기는 수모를 겪으며 수업을 쌓았지만 그림 실력이 부족해서 찢긴 것은 아니여서 그림 수업을 한 기간은 아니다. 그의 단편 데뷔작을 보면 이미 아라레의 그림자가 보일 정도.[34] 당시 소년 점프 연재 중이었던 작가들의 화풍. 링크는 각 작가의 그림을 간략화 한 것임을 감안해도 토리야마 등단 전의 점프 화풍과 토리야마의 화풍이 얼마나 이질적인지 한 눈에 알 수 있다.[35] 일례로 일곱 개의 대죄의 작가인 스즈키 나카바의 경우 토리야마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이미 자신만의 그림체로 숙성된 지금까지도 드래곤볼 아류 작가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다만 그가 존경하는 작가라서 그런지 이 평가를 크게 부정적으로 받아들이지는 않는 모양이며, 그림체도 심하게 바꾸진 않았다.[36] 반면에 그의 그림체를 거의 똑같이 그릴 수 있는 작가는 아마추어 포함해서 정식 작가 중에 엄청나게 많다. 일본의 경우 만화가들이 가장 많이 따라할 수 있는 그림체가 드래곤볼 일 정도로 그의 만화를 보면서 영향을 받고 자라 등단한 작가들이 많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그의 연재 기간에 유명 만화가들이 없었는가? 하면 되려 만화,애니 역사의 황금기일 때라 드볼 연재 전후해서 온갖 천재 작가들의 대표 작품들이 넘처났는데도 그랬다. 그래서 더 대단한 것이다. 어느 정도냐면 원나블 포함해 근 20년간 메가히트 했던 작품들도 드볼 당시로 돌아가면 10위권 유지조차 힘들 정도의 만화황금기였다. 토가시 조차 당시엔 연중의 위기를 수시로 겪었을 정도이니 그만큼 대작들 틈에 끼여서 서로 순위가 널뛰기를 하던 시절에 드래곤볼이 떡하고 버티며 독자들의 1픽 만화로 군림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담으로 한국에도 학교에서 드래곤볼을 따라 그리던 학생이 엄청나게 많았는데 고등학교쯤 되면 각반에 1명씩 정도는 완전히 똑같은 수준으로 그릴수 있는 수준에 이른 학생들이 있을 정도였고 남들 보라고 대놓고 그리고 있어도 드래곤볼만은 흉이 아니었다.[37] 공작왕의 오기노 마코토 등.[38] 보통 만화가라면 인기작도 인기가 없으면 바로 퇴출되는 점프의 살벌한 경쟁 시스템, 급변하는 만화 시장의 흐름과 경쟁작들의 작품, 독자들의 반응이 궁금해서라도 챙겨보고 영향받기 마련인데 그가 은퇴할 때까지 성격이 안 변했다.. 그가 워낙 바빠서 그랬다고 말히기도 하지만 사실 토리야마는 전성기의 그 살인적인 업무량을 모두 소화하고 주 2~3일 정도는 여유시간을 남겨 메카, 디오라마등의 취미를 즐길 정도로 여가시간을 중요하게 여겼다. 그가 그렇게 손이 빠르고 출장이나 외출하는 것을 사절하는 귀차니즘 성격이 된 것도 취미를 즐기기 위해서였으니 그 시간에 남의 작품을 보고 연구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던 것은 그의 천성이 그랬던 것. 또한 보더라도 이노우에처럼 작가 자체의 평가를 내리지 타 작품의 장점을 탐내거나 질투하는 성격은 아니었던 듯하다.[39] 토리야마 특유의 바쁜 일정과 그에 따라 생겨난 효율주의(귀차니즘) 때문에 그때 그때 생각하기 싫어서 최적화된 컷 배분 공식을 만들었다는 설이 있다.[40] 우주 대모험 편의 캐릭터 디자인, 작품속 세계관 배경을 구상했다. 다만 당시에는 이미 만화를 그만두기로 결정했고 애니 제작진들에게 맡기기게 되어 이후로 진행되는 시나리오에는 전혀 개입하지 않았다.[41] 실제로는 새로 합류한 토요타로와 함께 작품을 작업했다. 특히 드래곤볼 신극장판은 사실상 이름만 감수고, 직접 제작에도 참여했다.[42] 다이마 역시 직접 제작에 참여해 사실상 한국기준으로 영화감독에 가까웠다. 슈퍼보다 더 깊게 스토리에 참여했다고 이야기하였다. 토리야마 아키라의 유작중 하나.[43] 한국에는 해적판이 '도리야마 아키라 콜렉션'이라는 이름으로 발매 된 적이 있다. 리뷰글[44] 카츠라 마사카즈와 공동 집필[45] 시대적 배경으로는 속편인 드래곤볼 마이너스와 함께 드래곤볼의 프리퀄인 셈. 또한 직접 장기 연재한 마지막 만화작품이다.[46] 2015년 12월 서울문화사 정발.[47] 鳥山明+さくまあきら 鳥山明のヘタッピマンガ研究所[48] 다만 의외로 닥터 슬럼프는 연재 당시 챙겨보지 않았었다고 한다.[49] 여담으로 해당 인터뷰를 보면 위에서 말한 토리시마 편집자가 원피스를 연재시키지 않고 계속 떨어뜨렸던 일화가 나온다. 토리시마라고 직접 언급되지는 않지만 정황상 토리시마의 소행이 확실하다. 토리시마 카즈히코 문서 참조.[50] 원피스 애니 참고.[51] 일본 20대 남성 평균키는 대략 171cm 정도이다.[52] 소년점프의 다른 작품인 은혼에 보낸 축전에 따르면, 딸이 어느 날 쳐다보지도 않던 드래곤볼을 갑자기 읽고 있길래 웬일로 자기 만화를 읽고 있냐고 물어봤더니, 은혼에 나온 드래곤볼 패러디를 이해하려고 본 것이었다고 한다. 이처럼 딸이 은혼의 굿즈도 모을 정도로 엄청난 팬이어서 토리야마가 은혼 작가인 소라치 히데아키에게 씁쓸한 감사의 코멘트를 전했는데, 이 때 작가 소라치 히데아키는 '나와라 신룡! 난 구슬이 2개 밖에 없는데도 소원을 이뤘다고오오오오!! 토리야마 선생님, 그리고 무엇보다도 따님...이랄까 공주님, 정말로 감사드립니다.'라는 말을 전했다.[53] 일본어 위키백과에 의하면 집이 나고야 인근의 키요스시로 되어 있다. 아마도 집이 나고야시에 가까운 키요스시 외곽에 사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아이치현 사람들은 일일이 설명하는 게 귀찮아서, 아이치 현 ○○시 거주, 혹은 출신이여도 '나고야 출신(거주)입니다'라고 얼버무리는 경우가 많다.[54] 다만, 아이치 현도 중심이 되는 나고야 시의 규모를 보면 시골은 커녕 오히려 일본 내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대도시이다. 인구와 면적만 보면 한국의 대구광역시와 상당히 유사한 수준.[55] 본래는 피콜로 대마왕편에서 치치와 결혼하고 종료 → 프리저편에서 우주 최강자 → 인조인간편 → 마인부우편으로 연재가 계속 연장되었다.[56] 일본에서의 장관은 한국의 장관과 달리 OO대신 혹은 해당 부의 이름을 붙여 OO상이라고 한다. 일본에서 장관은 우리로 따지면 청장에 해당한다. 경찰청 장관, 과거 방위청 장관 등이 그 예.[57] 실제로 국가를 막론하고 일국의 장관은 국정 현안에 관계된 공식 일정 같은 경우가 아니고선 독단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따라서 차관을 만화가에게 보냈다는 것은 중앙행정기관인 문부성이 일개 민간인을 향해 갖출 수 있는 최대한의 예우를 갖추어 대우를 해준 셈이다.[58] 또한 이 정도로 산업 전반에 영향력을 끼칠만큼 중추적인 인물임을 직접적으로 보여준 사례라고 볼 수 있다. 괜히 드래곤볼의 연재가 일개 작가의 영역에서 벗어났다는 표현이 나온 게 아닌 셈.[59] 이렇게 지인이나 가족 등을 만화캐릭터로 집어넣는 사례는 <백록화>, <대륙전사>, <넥스트> 등으로 90년대 국내에서 꽤 인기있던 만화가 이진영이 대표적이다.[60] 연간 약 1억 엔 정도라 한다. 그림을 그리지 않고 놀고 있기만 해도 12억 원 정도를 받는 셈. 전속계약 자체는 인기 작가로서는 별로 특별한 건 아니지만 연재도 안 하는 작가가... 이미 토리야마의 그림이라는 것 자체가 슈에이샤의 브랜드가 돼버렸다는 의미도 되겠다.[61] 이런 전속 계약조건에 따른 갑질이 오히려 인생 말년인 2023년에 슈에이샤에서 드래곤볼팀이 캡슐 코퍼레이션이라는 회사로 분사된 계기가 아니었을까 추정된다.[] [63] 토리야마가 직접 오지는 않고 드래곤볼 담당 편집자인 이요쿠 아키오가 대리수상했다.[64] 1980년대 일본 거품경제 시기에 수많은 재벌 기업가를 제치고 만화가가 일본인 1억 1천만명 중 세금을 많이 낸 사람 상위 10명 중 하나가 된 것이다. 심지어 드래곤볼을 연재하기 전 닥터 슬럼프를 연재하고 있을 때이다.[65] 그래서 피콜로가 원작에서는 손가락이 4개라는 걸 잘 모르는 사람들도 있다.[66] 손가락 갯수가 다른 장애인이 괴물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보고 그릴 수 없어 그리기 힘들다, 야쿠자를 연상하게 한다 등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정확한 이유는 불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