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9 07:59:05

실용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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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특징3. 의의4. 실용주의에 대한 철학적 비판
4.1. 반론
5. 대표적 인물
5.1. 실용주의자5.2. 신실용주의자
6. 여담7.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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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실용주의(實用主義) 또는 프래그머티즘(Pragmatism)은 19세기 후반 미국 동북부에서 시작된 미국 고유의 사상이다.[1] "생각은 실천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기 때문에, 어떤 철학적 생각이든지 간에, 그 가치는 그 생각을 행동으로 실천했을 때 나타나는 결과의 유용성으로 판단해야 된다"는 것이 핵심 요지이다. 실용주의 철학은 "인간의 경험 안에서 실행적 시험을 거쳐야" 아이디어의 특정되는 적용이 가능하다고 강조한다.[2]

프래그머티즘이란 용어는 “행동”, “실천”을 의미하는 “Practice”와 “Practical”의 어원인 그리스어 프라그마Πράγμα에서 나온 것이며, 이는 찰스 샌더스 퍼스에 의해 철학에 처음 도입되었다.

2. 특징

실용주의는 다른 철학들처럼 형식적인 틀이나 원칙으로 이루어진 복잡한 철학 이론이 아니다. 실용주의는 사람마다 자신이 살아온 삶에 근거하여 서로 다른 논리를 펼치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에, 어떤 논쟁이든 끊임없는 평행선을 달리게 되므로, 무의미한 논쟁을 피하기 위하여 실제로 그 논리들이 현실세계의 삶에서 '실제로 어떤 차이를 보이고 있는지'를 살펴보자는 철학적 태도이다. 실용주의는 인간의 지적 활동이, 문제에 대한 의심에서 시작하여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설을 생각해내는데 그치지 않고, 그 가설을 실제로 검증해 봄으로써 문제 해결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실천적인 과정을 거쳐서 문제가 해결되면 우리는 예전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실용주의의 주장이다.

실용주의의 관점에서 이 세계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우연적인 세계이다. 그리고 인간은 다른 자연의 생물 종과 마찬가지로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는 유기체일 뿐이다. 우리의 지식은 그 세계에 적응해서 살아남는데 필요한 일종의 생존 수단이며, 옛 철학자들이 주장하듯 '영원하며 변하지 않는 진리'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마치 상대주의처럼 보인다. 상대주의는 절대적으로 옳은 것은 없다는 입장으로 '너도 맞고 나도 맞다'는 식이기 때문에, 어떤 문제에 대해 옳다거나 그르다거나를 논할 수 없다. 하지만 실용주의는 문제에 대한 결과와 그 결과가 가져오는 실용성에 대해서는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때문에 상대주의와는 다르다. 즉 생각은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좋다는 상대주의적 입장을 띄지만, 결국 그 생각이 가져오는 효과(결과)에 대해서는 '그 효과가 우리의 삶에 어떤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오는지'를 판단하여 그 생각을 받아들일 것인지 아닌지를 정하기 때문에, 실용주의를 단순히 상대주의라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즉, 실용주의자들은 유의미한 논쟁의 뒤켠에는 “실제적 결과”의 차이가 존재해야 한다고 본다. 예를 들어서, ‘우주는 하나인가? 여러 개인가?’에 대한 논쟁은 실용주의적 관점에서 무의미하다고 볼 수 있다. 논쟁에서 대변되는 의견의 차이가 그 어떤 결과적인 차이로서 환원되지 않기 때문이다. 실용주의자들은 많은 형이상학적 논쟁들은 무의미하다고 보았다. 대개의 형이상학적 논쟁들은 실제적 결과의 차이를 불러오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A와 B의 이론이 달라도 그 이론들이 실제로 시현되었을 때 결과가 동일하다면 여기서 어느 한쪽의 의견이 맞다고 논쟁하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인 것이다. 따라서 실용주의는 무의미하고 소모적인 논쟁을 피하기 위해서 취하는 철학적 태도가 된다.

그렇다고 실용주의자들이 다양한 생각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다양한 생각을 인정하기 때문에 단지 그 다양한 생각들이 결론 없는 논쟁으로 이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그 생각의 '실질적인 결과에 차이'가 있는지를 확인할 뿐이다.

'결과만 좋으면 좋은 것'이라는 말도 아니다. '결과만 좋으면 좋은 것'이라는 말은 (행동의) 과정이 어찌 되었든 상관없이 그 결과만 보고 판단하겠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실용주의가 문제 삼는 '과정'이란, 머릿속에서만 이루어지는 '사변적인' 과정의 차이를 말하는 것이지, 행동으로 드러나는 '실천적인' 과정의 차이를 문제 삼는 것은 아니다. '결과로 이어지는 과정'에 묵과할 수 없는 '행동'적 잘못이 있으면 그것은 독립된 또 다른 결과에 해당되며, 우리는 이를 다시 검증해야 할 것이다.

이 단어를 처음 제안한 찰스 샌더스 퍼스는 사유와 행위의 실질적인 결과를 중요하게 여겼다. 퍼스와 동료관계에 있으면서 실질적으로 프래그머티즘의 체계를 만들고 보급한 윌리엄 제임스는 '어떤 사람의 신념을 맞다고 보았을 때 그의 신념이 실제 생활에 유용성을 가지고 오느냐'를 강조하였다.[3] 존 듀이는 더 나아가 철학 및 도덕과 정치에서 있어서 과거의 전통적 관습과 절대 보편 타당한 진리를 부정하며, 그것은 단지 끊임없이 변화하는 개인과 사회의 상호작용 속에서 그 때마다 개인과 사회의 실질적인 성장을 창출해 낼 수 있느냐에 따라 선택해 나가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리처드 로티는 모든 개인이 자신만의 가치와 철학을 자유롭게 추구하며 살아가되 그것은 휴머니즘적 연대가 가능한 민주주의 체제 내에서만 우리 사회에 유용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자유주의 아이러니스트[4]을 주장하였다.

3. 의의

실용주의의 기치는 도그마적인, 혹은 ‘무의미한’ 논쟁을 철폐하기 위하여 제안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실용주의자들은 각각의 의견이 야기할 실제적 결과들을 밝힘으로써 논쟁의 핵심을 명확하게Clarify 할 수 있다고 보았다.

실용주의는 끝이 나지 않는 형이상학적 논쟁의 실제적인 귀결들을 추적함으로써 해석을 시도하며, 만일 논쟁의 대안들이 현실의 삶에서 아무런 실제적 차이도 보여주지 않는다면 그 대안들은 실제적으로 같은 것을 의미하고, 따라서 이에 대한 모든 논쟁은 의미 없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지식이 실제 행위에서 어떤 차이를 보여주지 않는다면 그건 단지 머릿속의 지식에 불과할 따름이고, 우리는 무의미한 논쟁에 마음을 소모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4. 실용주의에 대한 철학적 비판

버트런드 러셀 등은 동일한 사태에 대한 진술들 중 어떤 진술이 다른 진술보다 더 유용한지를 아는 것은 통상 어려운 일이라고 반박했다. 예를 들어 콜럼버스가 1491년에 대서양을 횡단했다고 말하는 것보다 1492년에 횡단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유용하다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아는가? 누구에게 혹은 무엇을 위해 이 진술이 저 진술보다 더 유용할 수 있는가? 또한 다음과 같은 반박도 제기된다. 어떤 것이 유용한지를 알려면 우리는 이 어떤 것이 유용하다는 것이 참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다시 '어떤 것이 유용하다는 것이 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왜 유용한가라는 질문에 봉착하게 되고, 이 질문은 결국 무한 퇴행 속으로 계속 이어지게 된다.[5]

블라디미르 레닌변증법적 유물론의 입장에서 순수한 경험은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하며, 주관론적 경험주의를 물질적 실재를 부정함으로서 감각 자신도 부정해버리는 궤변적 철학이라고 비판했다.

4.1. 반론

퍼스는 이런 문제점을 이미 알고 있었다. '우리에게 어떤 진술이 더 유용한가'를 정할 때, 그는 상대주의적 유용성의 문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우리는 진리를 찾는 방식(즉 입증 validation)을 토대로 그 진리 개념을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러한 진리의 입증은 "그 사안에 대해 전문성을 갖춘 모든 사람들이 시간적 제약 없이 자유롭게 연구를 수행한다면 도달하게 될 합의"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진리를 보장하는 것은 단순한 합의라는 경험적 사실이 아니라, 시간적 제약이 없는 연구자 공동체 내에서 전문성을 가진 연구자들이 이루어내는 합의이어야 한다는 것이다.[6]

실용주의에서 "진리"는 고정된 절대적 기준이 아니라, 실제로 사용되거나 경험될 때 작동하는 것이다. 어떤 진술이나 행동이 반복적인 경험에서 유용하다고 입증된다면, 그것은 실질적으로 진리로 찰스 퍼스는 이를 "입증 가능성"으로 해석하며, 단순한 주관적 판단이나 임의적 결론에 의존하지 않고, 공동체적 연구나 경험에 의해 진리를 탐구하는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한 것이다.

'무엇이 유용하고 옳은가에 대해 모르지 않느냐' 순환 논리와 비슷하게 실용주의를 비판하는데 원래 인간의 기준을 벗어나 우주적인 관점, 철학적인 관점에선 생각하면 무엇이 옳은지는 아무도 모르는 법이다. 예를 들어, 밥을 먹고 누울 지 산책을 할 지 어느 쪽이 더 옳은지는 우주적인 기준과 철학적인 시선에선 알 수 없다. 하지만 실용주의가 전달한 것은 "산책을 하는 것이 건강에 유익하다"이고 이는 개인사회의 경험적 사실을 통한 추천이다. 개인으로나 사회적으로 보나 실증적 검증으로 그렇기 때문에 강조한 것이다. 이는 단순히 철학적인 "참" 유무를 몰라도, 반복된 경험과 실험을 통해 유용함이 입증된 결론이기 때문에 실용주의에선 받아들이는 것이다.

실용주의는 경험을 핵심적인 근거로 삼는데, 이는 레닌이 비판하는 "주관적 경험"과는 다른 의미다. 실용주의에서 경험은 개인의 주관적 감각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다. 반복적인 실험과 실증적인 데이터를 통해 검증된 경험까지 말한다. 개인의 경험, 사회적 경험, 실증적 경험 검증을 통해 유용성을 판단하는 것이 기준이다. 그리고 경험주의가 물질적 실재를 부정한다고 주장하는데 실용주의는 물질적 실재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물질적 세계의 실재성을 인정하면서도 그 실재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경험을 통해서만 형성된다는 점을 말한 것이다. 반복해서 나온 말인데, 실용주의적 입장에서 물질적 실재는 고정된 진리가 아니다. 우리가 그 실재를 어떻게 경험하고 그 경험이 우리 삶에 어떻게 유용하게 작용하는지를 판단한다. 물질적 실재는 우리가 경험하고 그것을 분석하면서 더욱 명확해지니 그 경험을 바탕으로 유용한 결론을 내는 것이다.

5. 대표적 인물

미국철학 사조이다 보니 아래의 인물은 거의 다 미국인들이다.

5.1. 실용주의자

5.2. 신실용주의자

6. 여담

  • 철학이나 정치철학에서의 실용주의와 한국 정치에서 말하는 실용주의는 전혀 다른 맥락에서 사용된다. 예를 들어, 대표적인 실용주의 철학자인 듀이로티같은 경우, 사회민주주의를 정치적 입장으로 내세우고 있다.[8] 반면, 실제 한국정치에서 실용주의를 외치는 사람들은 보통 중도실용주의를 말한다.
  • 한국에서 실용주의를 연구한 학자로는 이유선 서울대 기초교육원 교수, 김동식 전 육군사관학교 철학과 교수, 정해창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가 있다.
  • 상술된 철학자 윌리엄 제임스가 아예 제목부터 "실용주의"라고 붙여 출간한 서적이 있다. 당대 실용주의를 정립하고 체계화한 실용주의 사상의 걸작으로 꼽힌다.

7. 관련 문서


[1] 그래서 실용주의 철학자들은 대체로 근면, 검소, 이웃 사랑 등의 개신교적 가치를 보전하고자 하며, 서부 개척 정신과 과학적 실험정신 등을 강조하는 편이다.[2] Gutek, Gerald (2014). Philosophical, Ideological, and Theoretical Perspectives On Education. New Jersey: Pearson. pp. 76,100. ISBN 978-0-13-285238-8.[3] 따라서 신을 믿는 것도 우리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데에 유용성이 있기 때문에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4] 자세한 내용은 리처드 로티 참조.[5] 군나르 시르베크, 닐스 길리에 『서양철학사 2』 이학사. 2016. p.794[6] 군나르 시르베크, 닐스 길리에 『서양철학사 2』 이학사. 2016. p.794~795[7] 후스는 중국의 계몽운동가 및 철학자로, 자(字)는 스즈(適之)이다.[8] 『듀이&로티』 이유선 지음 p.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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