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이 같은 제92대 천황에 대한 내용은 후시미 덴노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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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d0029><colcolor=#dca600> 일본국 제124대 천황 쇼와 천황 昭和天皇 | |
{{{#!wiki style="margin: -6px -10px;" |
출생 | 1901년 4월 29일 | ||
도쿄부 도쿄시 아카사카구 아오야마 어소 (現 도쿄도 미나토구 아카사카 어용지) | |||
즉위식 | 1928년 11월 10일 | ||
교토부 교토시 교토 어소 (現 교토부 교토시 가미교구 교토교엔) | |||
사망 | 1989년 1월 7일 (향년 87세) | ||
도쿄도 치요다구 고쿄 후키아게 어소 (吹上仙洞御所) | |||
능묘 | 무사시노 능([ruby(武蔵野陵, ruby=무장야릉)])[1] | ||
재위기간 | 제124대 천황 | ||
1926년 12월 25일 ~ 1989년 1월 7일 | |||
서명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colbgcolor=#bd0029><colcolor=#dca600> 휘 | 히로히토([ruby(裕仁, ruby=유인)])[2] | |
부모 | 부황 다이쇼 천황 모후 데이메이 황후 | ||
형제자매 | 4남 중 장남 | ||
배우자 | 고준 황후 | ||
자녀 | |||
학력 | 가쿠슈인 초등과 (졸업) 동궁어학문소(東宮御學問所) (수료) | ||
종교 | 신토 | ||
신체 | 165cm[3], AB형 | ||
어칭호 | 미치노미야([ruby(迪宮, ruby=적궁)]) | ||
시호 | 쇼와 천황([ruby(昭和天皇, ruby=소화천황)]) | ||
연호 | 쇼와([ruby(昭和, ruby=소화)], 1926년 ~ 1989년) | ||
최종 계급 | 대일본제국 육군 대원수 대일본제국 해군 대원수[4] | }}}}}}}}} |
즉위식 당시 천황의 전통 관복 '고로젠노고호(黄櫨染御袍)'를 입은 쇼와 천황 |
[clearfix]
1. 개요
일본의 제124대 천황.다이쇼 천황과 데이메이 황후의 장남이며 대일본제국 헌법상 최고 군통수권자. 유년 시절 사용한 어칭호는 미치노미야(迪宮)이며, 휘(이름)는 미치노미야[5] 히로히토(迪宮裕仁)[6]이다. 재위 기간 동안 사용한 연호는 '쇼와(昭和; 소화)'이다.
일본 이외의 외국에서는 주로 연호로 불리는 메이지 천황과 다이쇼 천황과는 달리 '쇼와'보다는 이름인 '히로히토'로 불리는 경우가 많다. 천황이 살아있을 땐 이름으로 불리고, 사망하고 나서야 연호로 불리며, 그래서 이 문서명도 '쇼와 천황'이 되었는데, 1989년 사망할 때까지 외국 언론들에서 '히로히토'라고 부르던 게 굳어져서 그런 것으로 보인다.
4월 29일생으로 이날이 전전에는 '천자의 생일'이라는 의미에서 천장절(天長節)[7]이라는 공휴일이었다. 그러던 것이 전후 식목일, 정확히는 '녹색의 날'로 바뀌었다가 2007년 자민당, 공명당, 민주당의 합의로 기존 녹색의 날을 헌법기념일인 5월 3일과 어린이날인 5월 5일 사이 국민의 휴일로 불리던 5월 4일로 옮기고 4월 29일은 '쇼와의 날'로 개칭되었는데, 이때 일본 제국 시기 식민지였던 국가들에서 반발이 나오기도 했다.
2. 생애
자세한 내용은 쇼와 덴노/생애 문서 참고하십시오.3. 전쟁 책임
자세한 내용은 쇼와 덴노/전쟁 책임 문서 참고하십시오.4. 대외 관계
자세한 내용은 쇼와 덴노/다른 나라와의 관계 문서 참고하십시오.5. 가족 관계
5.1. 황실 가계도
(구황족 가계도 참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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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이케다 다카마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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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야 케이 | ||||||||||||||||||||||||||
5.2. 자녀
다이쇼 천황과 데이메이 황후의 4남 중 장남으로 출생, 아내 고준 황후와의 사이에서 2남 5녀를 낳았다. 쇼와 천황은 남편이자 아버지로서는 매우 모범적이고 좋은 사람이었다고 한다.쇼와 천황과 나가코 황후의 자녀들은 장남 아키히토와 막내딸 시마즈 타카코를 제외하고는 모두 일찍 죽거나, 건강이 나쁘거나, 아이를 낳지 못하거나, 부부관계가 원만치 못하거나, 일찍 과부가 되는 등 하나같이 불행한 삶을 살았다.
- 장녀 데루노미야 시게코(照宮成子) 내친왕(1925.12.6-1961.7.23): 방계 황족 모리히로 왕과 결혼, 3남 2녀를 낳았다. 다이쇼 천황이 생전에 본 유일한 손주이기도 하다. 패전 후 구황족의 황적이탈로 평민 신분으로 떨어졌고, 만 35세의 젊은 나이에 암으로 죽어 쇼와 천황과 나가코 황후 내외는 큰 충격을 받았다.
- 차녀 히사노미야 사치코(久宮祐子) 내친왕(1927.9.10-1928.3.8): 병으로 요절. 나가코 황후는 직접 밤을 새워가며 사치코 공주를 간병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아기였던 사치코 공주의 장례는 간소하게 치러졌고, 슬픔에 잠긴 나가코 황후는 한동안 아기와 같은 크기의 베개를 끌어안고 지냈다고 한다.
- 3녀 다카노미야 카즈코(孝宮和子) 내친왕(1929.9.30-1989.5.26): 옛 화족 다카츠카사 도시미치(鷹司平通)와 결혼. 자녀는 없다. 남편 도시미치의 간통과 사망으로 과부가 되었고, 강도까지 당했다. 그 후 친정인 황실에 돌아와 이세 신궁의 제관을 맡아보며 살다가, 아버지 쇼와 천황이 사망한 지 얼마 안 되어 뒤따르듯 죽었다.
- 4녀 요리노미야 아츠코(順宮厚子) 내친왕(1931.3.7-): 옛 화족 이케다 다카마사(池田隆政)와 결혼. 자녀는 없다. 오랫동안 병으로 고생했고, 거의 말이 없고 과묵한 성품이라고 한다.
- 장남 쓰구노미야 아키히토(繼宮明仁) 친왕(1933.12.23-): 최초로 평민 출신인 쇼다 미치코와 연애결혼(테니스 로맨스의 사랑)을 하여 화제를 모았다. 나루히토 황태자를 포함한 2남 1녀를 낳았다.
- 차남 요시노미야 마사히토(義宮正仁) 친왕(1935.11.28-): 어머니 나가코 황후가 고른 옛 화족 가문의 딸 츠가루 하나코(津輕華子)와 결혼하였고, 결혼 후로 히타치노미야(常陸宮)라는 미야고(궁호)를 받았다. 히타치노미야 마사히토 친왕은 형제들 가운데 유일하게 4년제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기도 하다. 자녀가 없어 훗날 마사히토나 하나코가 사망하게 된다면 궁가가 단절될 예정이다.
- 5녀 스가노미야 타카코(淸宮貴子) 내친왕(1939.3.2-): 어머니 나가코 황후의 외사촌 남동생[8]인, 옛 화족 시마즈 히사나가(島津久永)와 결혼하여 1남을 낳았다. 쇼와 천황과 나가코 황후의 딸 5명 중에서 유일하게 행복한 삶을 살아간 인물로, 바로 위의 언니 이케다 아츠코와는 정반대로 활달하고 화려하며 떠들썩한 성품의 소유자라고 한다.
5.3. 형제
- 첫째 남동생 지치부노미야 야스히토 친왕: 1902. 6. 25 ~ 1953. 1. 4
- 둘째 남동생 타카마츠노미야 노부히토 친왕: 1905. 1. 3 ~ 1987. 2. 3
- 막내 남동생 미카사노미야 다카히토 친왕: 1915. 12. 2 ~ 2016. 10. 27
5.4. 가혹했던 고부 관계
아내 고준 황후는 일본 막장 드라마를 현실로 찍었다. 큰아들인 아키히토 황태자가 평민 쇼다 미치코와 결혼하려 할 때, 우익단체까지 동원해가면서 엄청 반대했다. 미치코가 말이 평민이지, 재벌가이자 아시아 최대 제분회사 닛신(日淸) 제분의 장녀에, 외가는 옛 화족(백작) 소에지마(副島) 가문이었으며, 친정 가문뿐만 아니라 미치코 본인 역시 미모와 지성까지 뛰어나며, 당시 공부도 잘해서 명문 세이신여자대학 영문과를 수석으로 졸업한 엘리트 학생이기까지 하는, 그야말로 완벽한 규수였다.그런 미치코가 황태자비가 된 후로, 나가코 황후는 악독한 시어머니의 교과서가 무엇인지 아주 제대로 보여주었다. 심지어 미치코 황태자비가 황후가 된 후로도, 나가코 태후와 그녀의 똘마니들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미치코 황후는 시어머니 나가코 황태후에게 어찌나 시달렸는지, 1993년 10월 20일 만 59세 되던 해에 실어증으로 쓰러지기까지 했다. 나가코 태후는 그녀 자신이 사망하는 순간인 2000년까지, 40여년간 단 한순간도 빠짐없이 미치코 황후를 들들 볶았다.
그러나 그런 나가코 황후도 젊은 시절엔 똑같았다. 사실 그녀 역시 시어머니 사다코 태후(데이메이 황후)에게 30여년간 호된 시집살이를 당했다고 한다. 군기잡기, 꼰대질을 당했던 사람이 당한 것을 되풀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놀랄 일도 아니다. 사다코 태후의 시녀 다케야 츠네코(竹屋津根子)와 나가코 황후의 시녀 다케야 시게코(竹屋志計子)는 친자매였지만, 웃전들의 기싸움으로 인해 서로 눈치를 보며 대화조차 나누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평소에도 나가코 황후를 고깝게 보던 사다코 황태후는 자신이 꾸짖고 싶으면, 시녀에게 말을 대신 전해서 두 배로 긴장하게 했는데 한번은 다이쇼 천황이 사망하기 얼마 전 시절, 황태자 부부가 문병을 왔을 때였다. 나가코 황태자비는 그동안 어지간히 시달린 터라 시어머니 사다코 황후의 앞에서 너무 긴장하여, 장갑을 낀 채로 젖은 수건을 짜는 실수를 저질렀다. 이 때 사다코 황후는 "너는 무엇을 해도 서투르구나!!"라고 시종들도 있는 앞에서 나가코 황태자비를 꾸짖었다고 한다.[9] 나가코 황태자비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고, 시어머니의 꾸중을 듣고만 있었다고 한다.
사실 사다코 태후와 나가코 황후의 고부갈등에는 여러 이유들이 있었다. 며느리의 친정인 구니노미야 가문이 황태자비인 딸만 믿고 방약무인하게 굴며 황실에게까지 하극상을 보이던 것을 괘씸하게 여겼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그렇게 나름의 타당한 이유도 있었고, 반면 나가코 황후는 방계 황족 가문의 적녀이지만 사다코 태후는 화족, 그것도 서녀이다 보니 며느리보다 정통성에 문제가 있었고, 이 탓에 심각한 열등감에 휩싸여 자신의 열등감을 나가코 황후를 괴롭히고 들볶으면서 해소시키려 했다는 설이 있다. 게다가 씩씩한 사다코 태후와 나가코 황후의 차분한 성격 차이도 있었고, 아들만 4명을 낳은 시어머니 사다코 태후와 달리 나가코 황후는 첫째부터 넷째까지 줄줄이 딸만 낳았는데, 이 역시 좋은 시집살이 구실이 되었을 것이다.
한편 고준 황후의 아버지 구니노미야 구니요시 왕은 일본 육군 대장으로, 1928년 대만 시찰 도중에 독립운동가 조명하 의사의 의거로 상해를 입어 다음 해에 사망했다.[10]
==# 천황 계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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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어록
國際信義上ドウカト思フガマア宜イ[11]
국제 신의상 어떨까 싶지만, 뭐 괜찮겠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진격을 묵인하는 쇼와 천황의 반응, 1941년 6월 25일.
스기야마 메모 (杉山メモ) 상권 231쪽. 후지와라 아키라(藤原彰) 외, <천황의 쇼와사(天皇の昭和史)> 82쪽.[12]
국제 신의상 어떨까 싶지만, 뭐 괜찮겠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진격을 묵인하는 쇼와 천황의 반응, 1941년 6월 25일.
스기야마 메모 (杉山メモ) 상권 231쪽. 후지와라 아키라(藤原彰) 외, <천황의 쇼와사(天皇の昭和史)> 82쪽.[12]
皇國カ其ノ總力ヲ擧ケテ勝ヲ決スルノ機方ニ今日ニ在リ卿等宜シク衆ニ先ンシテ憤激ヲ新ニシ團結ヲ鞏クシ奮テ敵國ノ非望ヲ破碎シ以テ皇運ヲ無窮ニ扶翼スヘシ[14]
황국이 총력을 기울여 승리를 결정지을 계기는 바로 오늘에 있다. 경들은 기꺼이 백성보다 앞장서서 분격(분노)을 새로이 하며, 단결을 굳건히 하고, 떨쳐 일어나 적국의 비망을 분쇄함으로써 황운을 무궁히 도울지어다.
제85회 제국의회 개원식 칙어(第85回帝国議会開院式の勅語), 1944년 9월 7일[15]
황국이 총력을 기울여 승리를 결정지을 계기는 바로 오늘에 있다. 경들은 기꺼이 백성보다 앞장서서 분격(분노)을 새로이 하며, 단결을 굳건히 하고, 떨쳐 일어나 적국의 비망을 분쇄함으로써 황운을 무궁히 도울지어다.
제85회 제국의회 개원식 칙어(第85回帝国議会開院式の勅語), 1944년 9월 7일[15]
Kill me. But not those who acted in my name.
저를 죽여도 되지만, 제 이름 아래에서 싸운 사람들은 구명해줬으면 합니다.
1945년 9월 27일, 쇼와 천황이 맥아더와 첫 대면했을 당시의 발언으로 통역관 포비온 바워스의 증언 #
저를 죽여도 되지만, 제 이름 아래에서 싸운 사람들은 구명해줬으면 합니다.
1945년 9월 27일, 쇼와 천황이 맥아더와 첫 대면했을 당시의 발언으로 통역관 포비온 바워스의 증언 #
6.1. 한국 관련 발언
일본 고대사 연구가인 오다 노부오 씨가 2010년 JP NEWS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쇼와 천황이 에가미 나미오와의 담화에서 자신들의 뿌리가 조선(한반도)에 있다는 것을 밝혔다고 한다. 에가미 나미오는 도쿄대 교수로서 1948년 기마민족정복왕조설을 발표하여 일본의 최고학술상인 천황상을 받고 그 이후로 나온 '한반도 도래인설'을 탄생시킨 역사학자다.
- 고대 일본의 지배층과 지금 천황(天皇)과의 관계는 어떤가.
"하나 예를 들겠다. 1989년 지금의 아키히토 천황 즉위식 때, 제단 위로 올라가서 30분 정도 자신이 천황이 되었다고 신에게 보고하는 시간이 있었다. 그런데 유독 그곳에만 카메라가 들어갈 수 없었다. 왜냐, 조선어로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은', '~는' 등의 말이 들어간 문구를 읊었을 것이다."
- 보다 구체적인 사례가 있다면?
"있다. 전후 기마민족이동설로 일본역사계에 화두를 던진 에가미 나미오(江上波夫) 선생이 쇼와 천황(히로히토)을 만나러 간 적이 있다. 그때 그는 '죄송합니다. 폐하에 대해 반도에서 왔다는 등 이상한 이야기를 했습니다'라고 말하자 쇼와 천황은 '아니야, 우리들도 조선 출신이야' 라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에가미 선생은 그것이 일생에 가장 충격이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 그 이야기를 에가미 나미오 씨로부터 직접 들은 것인가?
"에가미 나미오 선생이 한국의 김용운 교수에게 직접 이야기했고, 김 교수로부터는 내가 직접 들었기 때문에 틀림 없다. 일본 황실이 한반도에서 왔다는 근거가 또 있다.
첫번째 '어머니'를 일본어로 오카-상(おかあさん)이라고 하는데, 황실에서는 '오모'라고 말한다. '오모'는 어머니가 아닌가. 2번째, 일본 황실에서 젓가락을 잘 쓰지 않고 숟가락을 쓴다. 마지막으로 일본인들의 기본적으로 앉는 자세인 정좌[正座]를 하지 않는다. 즉 무릎을 꿇지 않고 양반다리를 한다는 점이다."
출처: 일본 로열 패밀리는 백제 왕족! - 일본인을 통해 본 일본사회(3) -한일고대사 연구자 오다 노부오(宇田伸夫) 씨 (JP NEWS)
"하나 예를 들겠다. 1989년 지금의 아키히토 천황 즉위식 때, 제단 위로 올라가서 30분 정도 자신이 천황이 되었다고 신에게 보고하는 시간이 있었다. 그런데 유독 그곳에만 카메라가 들어갈 수 없었다. 왜냐, 조선어로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은', '~는' 등의 말이 들어간 문구를 읊었을 것이다."
- 보다 구체적인 사례가 있다면?
"있다. 전후 기마민족이동설로 일본역사계에 화두를 던진 에가미 나미오(江上波夫) 선생이 쇼와 천황(히로히토)을 만나러 간 적이 있다. 그때 그는 '죄송합니다. 폐하에 대해 반도에서 왔다는 등 이상한 이야기를 했습니다'라고 말하자 쇼와 천황은 '아니야, 우리들도 조선 출신이야' 라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에가미 선생은 그것이 일생에 가장 충격이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 그 이야기를 에가미 나미오 씨로부터 직접 들은 것인가?
"에가미 나미오 선생이 한국의 김용운 교수에게 직접 이야기했고, 김 교수로부터는 내가 직접 들었기 때문에 틀림 없다. 일본 황실이 한반도에서 왔다는 근거가 또 있다.
첫번째 '어머니'를 일본어로 오카-상(おかあさん)이라고 하는데, 황실에서는 '오모'라고 말한다. '오모'는 어머니가 아닌가. 2번째, 일본 황실에서 젓가락을 잘 쓰지 않고 숟가락을 쓴다. 마지막으로 일본인들의 기본적으로 앉는 자세인 정좌[正座]를 하지 않는다. 즉 무릎을 꿇지 않고 양반다리를 한다는 점이다."
출처: 일본 로열 패밀리는 백제 왕족! - 일본인을 통해 본 일본사회(3) -한일고대사 연구자 오다 노부오(宇田伸夫) 씨 (JP NEWS)
오다 노부오 씨가 언급하는 김용운 교수는 1927년 도쿄 태생이자 도쿄대 객원교수를 역임했던 수학자로, 2019년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위의 쇼와 천황과 에가미 나미오 간의 담화에 대해 증언하기도 했다.
쇼와 천황과 에가미 나미오의 천황가 근원 담화 |
영상에서의 담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저는 천황님의 신성불가침이라고 하는 학설을 부정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대단히 미안하지만 저는 학자의 양심으로 제 업적과 연구결과를 발표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미안합니다." 하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것을 들은 쇼와 천황은 빙긋이 웃으며 한 말이 "나도 학자입니다"[17]...중략... "나도 학자로서의 양심이 있습니다. 그것 뿐만 아니라 당신이 얘기하는 기마민족정복왕조설을 믿고 있습니다."
"내가 당신의 학설을 믿는 이유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한 가지는 일본의 일반 국민들은 떡을 먹을 때 떡을 쳐서 먹죠. 그런데 궁에서만은, 황실에서는 시루떡을 먹어요.[18] 그래서 우리는 시루토쿠를 먹습니다.' 라고 얘기를 했습니다. "그 다음에 일본 사람들은 밥을 먹은 뒤에는 차를 마시는데 궁에서는 숭늉을 먹습니다."[19] 그것도 한국의 풍습이죠. "그 다음에는 일본 사람들은 마늘을 안 먹습니다. 뭐 약용으로나 먹지 보통 식사로는, 식용으로는 안 먹는데 우리는 마늘도 먹습니다.[20] 나는 이 세 가지 만으로도 내가 기마민족정복왕조설을 믿습니다. 하나도 나한테 미안할 것 없습니다."
그것을 들은 쇼와 천황은 빙긋이 웃으며 한 말이 "나도 학자입니다"[17]...중략... "나도 학자로서의 양심이 있습니다. 그것 뿐만 아니라 당신이 얘기하는 기마민족정복왕조설을 믿고 있습니다."
"내가 당신의 학설을 믿는 이유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한 가지는 일본의 일반 국민들은 떡을 먹을 때 떡을 쳐서 먹죠. 그런데 궁에서만은, 황실에서는 시루떡을 먹어요.[18] 그래서 우리는 시루토쿠를 먹습니다.' 라고 얘기를 했습니다. "그 다음에 일본 사람들은 밥을 먹은 뒤에는 차를 마시는데 궁에서는 숭늉을 먹습니다."[19] 그것도 한국의 풍습이죠. "그 다음에는 일본 사람들은 마늘을 안 먹습니다. 뭐 약용으로나 먹지 보통 식사로는, 식용으로는 안 먹는데 우리는 마늘도 먹습니다.[20] 나는 이 세 가지 만으로도 내가 기마민족정복왕조설을 믿습니다. 하나도 나한테 미안할 것 없습니다."
1984년 9월 6일 일본을 방문한 전두환 대통령과의 만찬사에서 쇼와 천황은 다음과 같은 발언을 했다.
금세기의 한 시기에 양국 간에 불행한 과거가 있었던 것은 진심으로 유감이며, 다시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귀국과의 교류를 통하여 많은 것을 배웠다. 예를 들면 기원 후 6, 7세기에 우리나라가 국가를 형성하게 되었을 때 귀국의 사람들이 많이 와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학문, 문화, 기술 등을 가르쳤다는 중요한 사실이 있다 국가기록원
7. 기타
- 근대 이후 대영제국의 빅토리아 여왕(1819~1901),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황제인 프란츠 요제프 1세(1830~1916)와 함께 80세 이상을 살고 60년 이상을 즉위한 세 군주 가운데 한 명이다. 재위기간은 프란츠 요제프 1세 68년(86세), 빅토리아 여왕 64년(81세), 쇼와 천황 63년(87세). 하지만 앞의 두 인물보다 쇼와 천황이 더 주목받는 건 앞의 두 인물은 1848년 혁명 이후로는 불안정하지만 그럭저럭 평화로운 치세를 보냈지만, 쇼와 천황은 어린 시절에 조국의 근대화를 보고 자라고 본인의 재위 초기에는 조국이 미국을 상대로 큰 전쟁을 벌이다 패전하였으며, 이때 위기를 겪었지만 1950년 자신이 착취했던 옆나라에서 벌어진 내전으로 위기를 모면하고, 조국의 경제 고도 성장은 물론, 눈에 띄게 변화된 사회상까지 보고 죽었던 것이다.
일본의 각 연대 별로 산전수전을 다 겪었던 천황이라고 할 수 있다. 일단 쇼와 시대 문서에도 쇼와 시대 초기와 후기의 사회상 변화가 다 나와있다. 이보다 좀 더 앞선 시대에도 1명 더 있는데 청나라의 고종 건륭제(1711~1799)로, 무려 87세까지 60년을 재위했다. 게다가 이것도 본인은 감히 조부이자 성군인 성조 강희제보다 오래 재위할 수 없다는 논리로 자진 퇴위하여 나온 값이기 때문에 태상황제로서의 재위기간을 더하면 64년이다.
이 조건을 충족하는 현대 인물 가운데는 태국의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이 있었다. 88세에 70년간 재위했다. 조만간 근대 이후 최장수 군주(빌헬름 1세, 90세)를 경신할지도 모를 뻔 했으나 2016년 10월 13일, 88세로 사망하면서 무산됐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역시 60년 기록을 넘겼으며, 2014년 부로 쇼와 천황보다 장수한 군주가 되었다.
- 왜인지는 몰라도 극단적으로 사람과 접촉하는 것을 싫어하여, 의회가 열릴 때나 군대를 사열하는 꼭 참가해야만 하는 행사 이외에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일을 꺼렸다고 한다. 게다가 의전 절차에 따라서 어느 누구라도 어떤 이유가 있더라도 자신의 신체에 손을 대지 못하게 했고, 이러한 습관은 그가 죽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이것이 할아버지 메이지 천황처럼 쇼와 천황 본인의 대인기피증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엄격한 (폐쇄적인) 황실 교육의 영향 탓이었는지는 원인불명이다.
- 아들이나 손자와 달리 연설을 굉장히 못했다. 옥음방송 역시 녹음 중 NG를 냈고, 1964 도쿄 올림픽 때도 개회 선언문을 더듬거리면서 읽었다.
- 워낙에 온실의 화초처럼 정말 귀하게 자란지라, 황태자 시절 영국을 방문했을 때 런던 지하철을 처음으로 타보게 되었다. 이때 차표를 역무원에게 건네주고 개찰구를 나가야 한다는 것을 몰라서 그냥 차표를 소지한 채로 개찰구를 지나가려다 그가 황태자인지 모르는 역무원이 그를 제지하면서 실랑이가 있었다고 한다.[21]
그리고 실랑이를 벌이던 차표는, 일본으로 가져와서 현재 궁정기념관에 보관 중이라고 한다. 또 한번은 아돌프 히틀러가 당시 최고의 차였던 메르세데스-벤츠 770K를 쇼와 천황에게 선물했지만, 정작 쇼와 천황은 승차감이 나빠서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차는 현재 독일의 벤츠 박물관에 빌헬름 2세가 타던 동일 모델의 차량과 함께 전시되어있다.
- 선천적으로 건강이 좀 좋지 않아서 할아버지인 메이지 천황과 마찬가지로 걸어다닐 때 발을 질질 끄는 습관이 있었다고 하며, 태어날 때부터 척추가 굽어 있었다고 한다. 또한 근시가 심해서 고생을 많이 했고, 안경을 써야만 앞이 보였을 정도로 안경은 필수품으로 가지고 다니면서 생활해야 했다. 그의 '대인기피증'은 여기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 뜨거운 것을 잘 먹지 못했다고 한다. CIA의 보고서에 의하면 일본 음식보다 서양 음식을 더 좋아했는데, 아침으로 베이컨과 계란을 좋아했다고 한다. 점심때는 닭고기나 소고기를 먹고, 저녁에만 일본 음식을 먹었다. 거기다 술과 담배를 하지 않았으며, 다른 사람들이 술을 마실때 자신은 미지근한 물로 건배를 했다고 한다. 차는 마시지 않았고, 감을 굉장히 좋아했다.
- 황실 내부 문제에 대해서는 당시에 진보적이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오랫동안 아들이 태어나지 않아 "후궁을 들이라"는 말을 들었지만 모두 거절했고,[22] 1933년 첫아들 아키히토가 태어난 뒤에야 여론이 없어진다.
- 1959년, 평민 출신의 쇼다 미치코가 아키히토 황태자와 결혼하여 일본 최초 평민 출신의 황태자비가 되었다. 쇼와 천황이 찬성했기에 아키히토는 미치코와 혼인할 수 있었다. 당시 나가코 황후와 쇼와 천황의 동생들 부부, 전 황족들과 궁내청이 그리 강경하게 반대했음에도 이들이 혼인한 것은 아키히토의 아버지 쇼와 천황이 허락했기 때문이다. 당시 쇼와 천황은 "황실에도 새로운 피가 필요하다." 며 아내 고준 황후처럼 그렇게 심하게 반대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결혼 이후 장장 40년동안 지독하게 시집살이를 시키고 죽을 때까지 미치코를 극도로 싫어했던 아내와는 다르게 미치코와 사이가 좋았으며 아내와 며느리가 싸울때마다 가운데에서 중재자 역할을 많이했다.
열병식 등에서 자신의 애마인 '시라유키(白雪)'를 자주 탔었다. 시라유키는 1921년 헝가리 국립 목장에서 태어난 아랍종 백마이다. 쇼와 천황이 군복을 차려입고 백마에 올라탄 모습은 대전기 일본 제국의 프로파간다로 자주 사용되었다.
- 일설에는 1945년 9월 27일, 더글러스 맥아더가 도쿄에 진주한 지 1달 동안 쇼와 천황에 대해 어떠한 조치도 없자 쇼와 천황이 직접 출두해 찍은 사진이 2장이며, 그중 쇼와 천황이 90도로 허리를 꺾어 맥아더에게 굽신거리는 사진이 있으나 일본 측의 방해 공작으로 찾기 힘들어졌다는 루머가 있었다. 맥아더의 회고록이나 당시 함께 있었던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쇼와 천황이 맥아더의 환영 인사에 '감사하다'고 말하며 고개를 숙여 답했다는데,[23] 이 얘기가 전해지면서 와전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쇼와 천황이 90도로 허리를 숙여가며 굽신거리는 사진이 찍혔다는 증언은 없었으며, 애초에 흔히 사람들이 완전히 오해하는 것과는 달리 맥아더는 쇼와 천황을 엄연히 한 나라의 군주로 대접했으며 그에 걸맞은 예의도 갖췄다고 한다. 위에 나와있는 두 사람이 함께 찍은 사진도 사실은 맥아더 특유의 허리 편 자세 때문에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의 오해를 불러 일으켰지만, 맥아더의 회고록을 보나 당시 목격자들의 증언을 보나 맥아더는 분명히 쇼와 천황에게 충분한 예의를 갖췄다.
-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중 우크라이나 측이 러시아를 비판하기 위해 히틀러(독)-무솔리니(이)-쇼와 천황(일)의 사진을 올렸는데, 일본 측의 거센 항의를 받고 사과를 했다. 이후 파시즘 지도자임에 논란의 여지가 없는 히틀러와 무솔리니만 남기고 삭제했다. 물론 실질적인 주동자인 도조 히데키가 있기는 하지만 위 문서에도 나와있듯 쇼와 천황도 결코 그들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중론이다. 엄밀히 말해 이걸 따진다기보다는 외국에서는 추축국 대표 인물 중 일본 대표 인물로 쇼와 덴노를 꼽는 것이 이유이기 때문이긴 하다.
- 2020년대 들어 제2차 세계 대전 관련 밈에서 일본 대표로 써먹고 있다(...). 사실 전쟁을 주도한 것은 도조 히데키 등의 군부 내각이었으나 중심인물이 없었고 천황이 숭배의 대상으로 참여했기에 일본의 상징이 된 것. 밈으로 쓸 때는 주로 문서 상단에 나와 있는 1935년 당시 젊은 시절의 사진을 사용하는데, 80세 넘게 장수했지만 역사 계열 밈에서는 2차 대전 시절 인물로 기억되려는 듯하다. 이것만 보면 히틀러, 무솔리니, 도조 히데키처럼 2차 대전이 끝나면서 죽은 사람으로 착각할 수도 있는데, 엄연히 대표적인 지도자들 중 유일하게 1900년대 초에 출생했고 1980년대 말까지 생존한 인물이다.영상 참고[24]
8. 대중매체에서
2차대전 당시 추축국의 지도자이기 때문에 대중매체에도 자주 등장한다. 위에서 언급한 밈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전후 평화로운 냉전 시대보다는 2차대전 당시를 묘사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일본 내에서는 아무래도 직접적인 언급 및 비판이 사실상 금기시되는 사회인식이 깔려있다 보니 일본 내에서는 사극에서만 짧게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그마저도 언급상으로만 등장할 뿐이다. 미국에서는 부정적인 묘사가 조금 우세이지만 그렇지 않은 작품들도 제법 되며[25], 한국에서는 당연히 부정적인 캐릭터로 나오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다. 한국 대체역사물에선 십중팔구 죽거나 폐위 및 유폐당하는 등 취급이 안 좋다.[26]
8.1. 영화
* 1967년작 <일본의 가장 긴 하루>(日本のいちばん長い日)에서는 마츠모토 하쿠오가 연기했는데 얼굴은 나오지 않는다.
* <맥아더: 일본 침몰에 관한 불편한 해석>(원제는 엠퍼러 Emperor, 2012년 작)에서는 카타오카 타카타로가 연기했다. 직접 나오는 것은 회담 장면 뿐이지만 전반적으로 종전 이후 일본을 휘어잡은 외국인 쇼군에게 핍박받는 형세로 나온다. 문제는 더글러스 맥아더가 전범 혐의 유무죄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자신의 백악관 입성에 도움이 될만한 방향으로 수사판을 꾸렸다는 점. 결국 일본 본토 대공습으로 사망한 옛 일본인 여친을 잊지 못하는 주인공 보너 펠러스 준장[27]에 의해 전범 혐의를 입증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내려진 뒤 다 같이 평화와 일본의 재건을 도모하자는 결말이다.
* <일본 패망 하루전>에서는 모토키 마사히로가 연기했다. 위에 나온 <일본의 가장 긴 하루>를 2015년에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원제는 원작과 동일하고 "일본 패망 하루전"은 한국 개봉명이다.
8.2. 드라마
-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인 더 크라운 시즌 3 8화에서 부인 나가코 황후와 함께 잠깐 나온다. 배우는 이가와 토고. 후두암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은 에드워드 8세와 그 부인 월리스 심프슨의 초청을 받고는 그 둘이 살고 있는 프랑스 파리 저택에 방문하나, 실상은 에드워드가 자신의 명예 회복을 위해 떼를 써서 부른 것이었고[28], 히로히토 본인도 그걸 알기에 상당히 불편한 기색으로 에드워드와 마주한다. 이후 고향에서 쫒겨날 바에는 죽는 게 낫다며 에드워드를 돌려서 까고는 퇴장.[29]
- 추축국이 2차 대전에서 승리한 세계관을 다루는 높은 성의 사나이에선 일제가 식민지 유지 능력을 상실해가자, 본토를 지키기 위해선 점령지 일부를 포기해야 한다는 걸 받아들이고 북미 점령지에서 철수하겠다는 연설을 한다. 물론 음흉한 것은 어디 안 가서, 철수 직전까지 자신을 거슬리게 한 미국 저항군들을[30] 엿 먹이기 위해 국가 운영에 필요한 모든 행정 자료들을 소각하거나 본토로 가져오게 한다. 덕분에 저항군은 나라를 되찾은 건 좋은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골머리를 앓게 된다.[31]
8.3. 만화 및 애니메이션
미국 애니메이션 사우스 파크의 친포코몬 에피소드에서 악역으로 등장하는데 친포코몬 완구회사의 사장으로 등장한다. 물론 본업인 천황도 겸하는 것으로 나왔다. 작중에서 미국 어린이들을 친포코몬으로 세뇌시켜 일본군 소년병으로 만들어 미국을 공격하려고 하나 학부모들의 작전에 의해 실패로 돌아갔다. 이 에피소드는 당연하게도 일본에서 방영되지 않았다. 이후 자신의 장남도 악역으로 출연한다. 정작 장남 본인은 개념인이지만, 이 애니는 세간의 평가와 관련없이 이것저것 다 비하하는 정신나간 작품이니 상관 없다...마블 코믹스에서도 2차 세계대전중 발간된 에피소드에 등장하는데 추축국측 악역으로 짤막하게 등장한다.
뽀빠이에서는 뽀빠이에게 외친 기합이 주먹이 되어서 얼굴을 때린다. 처맞고 나서는 "히틀러도 맞아야 하는데"라고 궁시렁대고 나중에 히틀러도 주먹에 맞는 것을 끝으로 더 이상 안온다.
1942년 개봉한 총통 각하의 낯짝에서 수자폰을 연주하는 사람으로 출연했다.(도조 히데키라는 얘기도 있다. 실제로 당시 미국 매체들은 히로히토와 도조를 동일 인물인 것처럼 다뤘기 때문. 헤어스타일을 보면 도조 히데키가 대머리이긴 하지만 모자를 쓰고 있어 확인이 어렵다.) 이후 초상화로도 한번 더 등장. 이 때는 도날드 덕이 '하일 히로히토!'라고 외쳐서 히로히토가 맞다고 명시했다.
8.4. 소설
- 내 독일에 나치는 필요없다에서는 독일군에 의해 731 부대 문서가 폭로되면서 원 역사의 히틀러급 악의 축으로 지목되었고, 연합국의 톨보이와 그랜드 슬램을 동원한 폭격에 그대로 폭사했으며, 전후 천황제가 폐지되어 일본 국민 그 누구에게도 추모받거나 좋게 평가받지 못하는 존재가 되었다.
- 히틀러가 되었다에서는 일본이 2차 대전에서 패전한 후 미국에 의해 폐위된다. 그나마 내독나없과 달리 천황제 자체는 유지되어 천황 자리는 동생 야스히토가 물려받았지만, 본인은 그대로 전범재판에 회부되었다. 이에 체포 대상에서 제외된 하급 장교들과 관료들이 천황 폐하를 보위하지 못했다며 스스로의 배를 가르고 맥아더에게 재판의 부당함과 천황에 대한 선처를 호소하는 투서 수만 장이 날아왔고, 그를 대신해 천황이 된 동생 야스히토까지 히로히토를 살려달라고 탄원했지만, 미국은 독일이 모스크바에서 치르는 전범재판보다 더욱 엄격한 전범재판을 치러서 정의로운 이미지를 챙길 필요가 있었고, 냉전에서 일본의 중요성이 낮아져 굳이 일본에게 자비를 베풀 이유가 사라졌기에 히로히토를 살려둘 생각이 없었고,[32] 한때 천황이었음에도 얄짤없이 사형 선고를 받고 교수형으로 처형당한다.[33]
- 해병문학에서는 일본제국 오도해병대의 일수(최고참) '미친노미야 히로뽕히토 천황근출폐하'이라는 괴랄한 이름으로 등장하며 그의 휘하에는 2인자 오도조 히데키와 무모구칠 렌야 등이 등장한다. 쇼와 천황의 옥음방송 역시 '옥음란방송'이라는 괴상한 이름으로 패러디 되었다.
8.5. 게임
- Paradox Interactive사의 제2차 세계 대전을 다룬 게임인 Hearts of Iron 시리즈에서는 고증에 맞게 일본 제국의 국가원수로 나온다. 최신작인 Hearts of Iron IV에서는 시작 시 전사의 규칙, 쇼와 천황, 천황의 재가라는 트레잇을 붙이고 나온다. 전사의 규칙은 AI 일본이 전쟁 중 동맹을 부르거나 동맹의 부름에 응답하려는 경향을 낮추며, 이는 독소전쟁에서 일본이 소련을 공격하지 않은 점을 구현한 것이다. 천황의 재가는 중국과 중국 공산당, 각 군벌 정부를 공격하는데에 제한을 걸어 놓은 것으로 유저들이 꼼수로 시작하자마자 중국에 전쟁을 걸어 중일전쟁을 더 빨리 시작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걸린 제한이다. 쇼와 천황은 안정도를 무려 60% 높여주는 개사기 트레잇으로 공산주의나 민주주의로 일본의 이념을 교체할 시 국가 지도자가 다른 사람으로 교체되기 때문에 성능이 크게 떨어지게 된다. 민주주의 루트는 입헌군주제를 도입하여 안정도 50%을 더해주는 국민정신으로 얻을 수 있고, 공산주의 루트는 아예 죽이거나 만주국으로 추방시킨다.
기본 초상화 | The Road to 56 초상화 |
- 위 게임의 대체역사 모드[36] 카이저라이히에선 현실과 똑같이 일본의 천황이지만 쇼와 유신이 일어날 경우 좌익 암살자에게 암살당할 수 도 있다. 암살당하면 야스히토가 섭정에 오른다. 또 일본이 사회주의 국가에게 패해 속국이 되면 반드시 퇴위하며 아라하타 칸손이 일본의 지도자가 된다. 사회주의가 아닌 국가의 경우 천황제를 유지할 수 도 있고 일본 공화국을 선택하면 퇴위한다.
- 위 게임의 대체역사 모드[37] The New Order: Last Days of Europe에서는 현실처럼 상징적인 권력을 가지지만, 숭배받는 존재로 등장하며 게임 중 만주국의 푸이가 사망할 시, 장례식에 참석하는 이벤트가 있다. 또한 핵전쟁으로 세상이 멸망하는 엔딩에서는 히로히토가 지은 절명시를 볼 수 있다.천황의 절명시
화염이 천하를 뒤덮고
천지신명이 내 기대를 저버렸으니
제국이 우리를 끝내는구나
무슨 명목으로 성황들을 뵌 단 말인가...
- 위 게임의 대체역사 모드 THE LAST EMPIRE에서는 현실과 역사가 바뀐 탓[39]에 원역사와 달리 개념적인 개혁군주, 아니 일본 역사 최고의 성군으로 바뀌었다. 오히려 현실의 쇼와 천황과 비슷한 사람은 원역사의 일본 제국 포지션인 대한제국의 황제 이진이다.
- 콜 오브 듀티: 월드 앳 워에선 게임 시작 컷신에서 잠시 등장한다.
- 콜 오브 듀티 시리즈의 나치 좀비 모드에선 설정상으로만 언급. 나치 독일의 비밀 연구 조직인 그룹 935를 동맹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지원해주었으나[40], 자신의 군대가 좀비로 변하는 대참사가 터지자, 타케오 마사키를 파견한다. 그러나 모종의 이유로 그를 버리는 바람에, 타게오는 마루타 신세가 되어버렸다.
8.6. 관련 저서
- 궁내청 저, 『쇼와천황실록』, 도쿄서적, 2015.
1990년부터 2014년까지 24년이라는 장대한 세월에 걸쳐, 궁내청이 편찬한 정식 역사서이다. 우리가 아는 실록처럼 쇼와 천황의 전 생애(1901-1989)를 다루고 있으며, 총 61권에 1만 2천여 페이지라는 방대한 분량으로 이루어져 있다.2014년 9월 9일, 처음 공개된 쇼와천황실록 판본의 모습
실록임에도 통상본으로도 출판되어 일반인들도 구해서 읽어볼 수 있다.[41] 이는 아마존 재팬에서 구매하거나, 국내에서는 알라딘 서점의 해외 원서 구매를 통해 구매가 가능하다. 다만, 전부 일본어 원문인 데다가 어려운 용어가 매우 많으므로, 상당한 역사 지식과 높은 일어 실력이 요구된다. 국가기관에서 편찬한 자료이므로, 그간 밝혀지지 않은 사료들도 쓰여졌으나, 기존에 있던 『쇼와사』를 대체할 정도로 새로운 사실들이 밝혀진 정도는 아니라고 한다. 특히 쇼와 천황이 1978년 이후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왜 그만두게 되었는지, 미국의 오키나와 장기 점령을 희망했는지 등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많다.
- 한도 가즈토시 저, 박현미 역, 『쇼와사』, 루비박스, 2010.
일본의 근현대사 권위자이자 양심있는 논객이라 불리는 한도 가즈토시가 쓴 쇼와 시대의 역사서이다. 책 구성은 태평양 전쟁의 종전을 기준으로, 1권(전전편,1926-1945)과 2권(전후편,1945-1989)으로 이루어져있다. 역사적 사건에 대해 대체로 중립적인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다. 전후편은 1960-70년 대까지만 적혀있고 89년까지의 내용은 매우 간략화되어 있는 것이 다소 아쉽다.
- 에드워드 베르 저, 유경찬 역, 『히로히토 : 신화의 저편』, 을유문화사, 2002.
마지막 황제로 유명한 프랑스 소설가, 기자 겸 정치가인 에드워드 베르가 쓴 책이다. 에드워드 베르는 이 책에 풍부한 사진 자료를 실었고, 쇼와 천황이 군주로서 상당한 권한을 갖고 있었다고 지적하며 새로운 관점에서 그를 바라보았다. 다만 저자가 전문 역사가가 아닌지라 책에 상당한 오류가 보이는데, 대표적으로 일본 화족의 오등작 중 하나인 공작을 “Prince”로 번역했는지 공작이던 고노에 후미마로나 사이온지 긴모치를 황자라고 서술한 것이다. 그런 점을 감안하여 볼 것.
- 허버트 빅스 저, 오현숙 역, 『히로히토 평전- 근대 일본의 형성』, 삼인, 2010.
전 히토츠바시대학 교수이자 현재 빙햄튼 대학 교수인 허버트 빅스가 쓴 히로히토의 평전이다. 이 책은 2001년 퓰리처상 논픽션 부문 수상작이며, 쇼와 천황에게 강력하게 전쟁 책임을 물은 책으로 유명하다. 특히 프로이센과 유사한 외견적 입헌군주이자, 대단히 능동적인 정치적 행위자로서 히로히토를 묘사했고, 전후에도 그 역할을 계속하려 했음을 지적한 점이 특기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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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축국 주요 지도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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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제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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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향 혹은 전향 시도 | † : 종전 이전 사망 | C : 전후 재판을 받음 | S : 자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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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쿄도 하치오지시 소재[2] 본인의 증손자인 히사히토 친왕도 한국 한자음(유인)이 같다.[3] 출처 그 유명한 더글러스 맥아더와 같이 찍힌 사진으로 인해 단신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그러나 당시 일본인 신장로으로는 평균보다 조금 큰 편이다. 맥아더의 신장은 183cm였는데 그의 신장을 당시 일본인 평균 신장과 대조하면 작지 않은 편이었다. 다른 황족들도 대부분 키가 큰 편인데도 불구하고 쇼와 천황이 다른 황족들과 같이 찍힌 사진들을 보면 상대적으로 장신임을 알 수 있다. 지금으로 치면 일본 기준으로 175~177정도다. 맥아더 역시 당시 미국인 평균키보다 훨씬 더 컸으며, 현대 미국에서도 보통 장신의 기준이 6피트이기에(183cm) 당시에는 꽤 큰편이었다 할 수 있다.[4] 대일본제국 헌법에 따라 주어지는 계급이며, 명예계급에 가깝다.[5] 한국어 '미친놈이야'와 발음과 어감이 비슷해서 일제 강점기 당시 조선에서 이를 이용한 언어유희를 많이 했다고 한다. 실제로 창씨개명 당시 어떤 학생이 휘까지 붙힌 '미치노미야 히로히토'로 개명하려다 불경죄로 경찰서에 끌려갔다고 한다. 이에 착안한 것인지 이준익 감독의 영화 박열에서 주인공 박열이 이 어칭호를 빌미로 일본 간수에게 천황을 욕보이면서 낄낄대며 개기다가 두들겨 맞으며 고문 당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6] 한국에서는 '쇼와 천황'이라는 이름보다는 이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7] 꽤 유구한 명칭인데 당나라 현종(712~756)이 자신의 생일을 '천장절'이라고 했던 것에서 유래한 것이다. 일본에서는 코닌 천황(770~781) 시기에 이 명칭이 들어왔다.[8] 큰언니인 히가시쿠니 시게코와 똑같이 친족인 5촌 당숙과 결혼[9] 장갑(오페라 글러브)에 대한 악몽은 며느리 미치코 황후와 손자며느리 키코 비에게도 있다. 자세한 것은 항목 참조.[10] 일본 황족 중에서는 노환이나 병사같은 자연사가 아니라 최초로 암살기도에 의한 타살(후유증)로 죽은 인물이다.[11] 현대 일본어: 国際信義上どうかと思うが、まあよい。[12] [13] 현대 일본어: 戦争はやるまでは深重に、始めたら徹底してやらねばならぬ。[14] 현대 일본어: 皇国がその総力を挙けて勝を決するの機方に今日にあり。卿等、宜しく衆に先んして、憤激を新にし、団結を鞏くし、奮て敵国の非望を破砕し、もって皇運を無窮に扶翼すべし。[15] 이미지 출처는 여기.[正座] 여기서는 일본의 정좌, 즉 무릎을 꿇고 앉는 궤좌를 가리킨다.[17] 실제로 학자가 맞다. 히로히토는 즉위 전에 해양생물학자로서 연구 논문을 몇 개 내기도 했다. 아키히토 상황이 퇴위하고 나서 어류학 연구에 매진하고 있는 점을 보면 히로히토도 즉위를 늦게 했으면 학자로서 계속 연구를 하며 살았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쇼와 천황은 애가와 나미오와 다르게 해양생물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분야는 달랐다.[18] 시루는 한국 고유의 찜기이다.[19] 영친왕의 비였던 이방자 여사도 생전에 “일본 황실에서도 숭늉을 마신다”고 증언한 바 있다. #[20] 일본 요리 중 마늘을 사용한 것은 전통 요리에서는 아예 없고, 그나마 현대 요리에서는 가끔 쓰이긴 하지만 그마저도 마늘을 많이 사용하는 중화요리나 서양식 요리에서나 볼 수 있다. 다만 마늘이 없는 건 아니었는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생전에 몸보신용으로 마늘을 먹곤 했는데, 이것도 당대에는 굉장히 특이한 행동으로 찍혀서 적대세력들에게 '에도에 가면 매운 냄새가 나서 못 가겠네'라는 조롱거리로 전락했다고 한다.[21] 게다가 유럽 순방 당시인 1921년은 일본에 지하철이 생기기 이전이었다. 노면전차는 있었지만 일본 최초의 지하철인 긴자선은 쇼와 천황이 천황으로 즉위한 이후인 1927년에 개통되었다.[22] 아버지인 다이쇼 천황은 데이메이 황후와의 사이에서 아들이 넷이라 후궁이 필요가 없어서 들이지 않은 것이라, 그 시절까지는 "황후가 아들을 낳지 못하면 후궁을 들인다"는 옛날 정서가 남아 있었다.[23] 당연하지만 고개를 숙였다고 굽신거렸다고 할 수는 없다. 쇼와 천황은 자신의 신민들과 대화할 때도 예의를 갖췄다.[24] 본 영상에서도 쇼와 천황이 비교적 늦게 태어나 냉전을 다 경험하고 사망한 것을 감탄하는 댓글들이 많다. 한편 가장 나이가 많은 편인 윈스턴 처칠은 1960년대 중반까지 장수하였다.[25] 보통 이런 경우는 주연보다는 조연이거나 단역으로 짧게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26] 그나마 THE LAST EMPIRE에서는 아래에서 보여지듯이 개념적인 개혁군주 포지션인 선역으로 등장하지만 해당 대체역사물은 한국과 일본의 포지션이 바뀌었기 때문에 현실에 대입하기는 어렵다.[27] 이 사람은 정보장교로, 태평양 전쟁 이전 북아프리카 전역에서의 행적에 관해서도 논란이 많아서 역사가들에게 많이 씹히고 있다. 준장 계급은 전시 입시 계급이고, 종전 이후 대령으로 환원되어 예편한 뒤 CIA에서 근무했고, 훗날 준장 계급이 복권되었다. 본 영화에 나오는 사랑타령은 철저히 가공의 이야기로 영화가 혹평을 받은 가장 큰 원흉이 되었다.[28] 일본과 영국 관계를 회복시킨 공로를 내세우기 위함이었다.[29] 에드워드는 내심 히로히토를 무시하면서도, 그는 여전히 군주라며 부러워한다.[30] 작중에선 BCR(흑인 공산주의 반군)이라 칭해진다.[31] BCR 왈. "우리가 원한 건 자유주 하나 정도였다. 근데 대륙 절반이라니..." "때려 부술 땐 좋았는데, 그걸 우리가 쓰게 될 줄은 몰랐다."[32] 미군 전사자가 22만이라 그를 살려주자고 했다간 백악관이 불태워질 것이라고 한다.[33] 히로히토가 처형당한 후 일본 각지에서 수천 명이 히로히토를 따라서 자살했다고 한다.[34] 하필이면 일본의 국가코드도 일반적인 JPN이 아니라 JAP이다.[35] 반대로 일본의 씹사기 효과나, 일본 유저가 실력으로 연합국을 바르면 패러독스 일뽕 드립이 나온다. 실제로 패러독스 게임을 보면 심하진 않지만 종종 와패니즈 성향이 보이긴 한다.[36] 독일제국의 1차대전 승리[37] 추축국의 2차대전 승리[38] 1차대전이 흐지부지 끝나며 참전국 모두 사실상 패배[39] 이 모드는 쉽게 설명해서 대한제국과 일본 제국의 위치를 바꾼 이야기다. 원역사와 달리 한국은 근대화에 성공했고 일본은 반대로 외세의 개입으로 인한 보신전쟁의 장기화로 근대화가 실패하고 막부(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한국에게 왕의 작위를 받은 한국의 속국이다)가 1936년까지 유지되고 일본은 분열되었다[40] 일본군 점령지에서 연구소를 차리게 해주고, 경비병도 지원해주었다.[41] 통상본은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총 18권으로 나뉘어 출판되었다. 일본은 근대 이후인 메이지 시대부터 실록을 편찬했는데, 메이지 천황의 실록인 <메이지천황기>는 1968년부터 1977년까지 총 13권으로 한 차례 출판된 적이 있으나, 워낙 오래 전에 나온 책이라 현재 야후 옥션이나 아마존 재팬에서조차 구하는 것이 쉽지 않다. 다이쇼 천황의 실록인 <다이쇼천황실록>은 최근 출판되기 시작하여 2021년도 기준으로 총 6권까지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