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22 14:08:02

캐딜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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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수상 차량
1949년 1950년 1951년 1952년 1953년 1954년
파일:1949 캐딜락.jpg 선정 X 파일:1951 크라이슬러.jpg 파일:1952 캐딜락.jpg 선정 X
캐딜락 크라이슬러 그룹 캐딜락
1955년 1956년 1957년 1958년 1959년 196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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쉐보레 포드 모터 컴퍼니 크라이슬러 그룹 포드 썬더버드 폰티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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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DILLAC
캐딜락
파일:캐딜락 로고.svg파일:캐딜락 로고 화이트.svg 파일:Cadillac_Wordmark_Logo.svg
<colbgcolor=#000><colcolor=#fff> 정식 명칭 Cadillac Motor Car Division
한국어 명칭 캐딜락 자동차 사업부
설립 1902년 8월 22일 ([age(1902-08-22)]주년)
설립자 윌리엄 머피
레뮤얼 보웬
헨리 릴랜드
본사 소재지
[[미국|]][[틀:국기|]][[틀:국기|]] 미시간 디트로이트
핵심 인물 스티브 칼라일[1] (대표)
업종 자동차 제조
모기업 제너럴 모터스
자회사 캐딜락 유럽
캐딜락 V-시리즈
링크
[[미국|]][[틀:국기|]][[틀:국기|]]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1. 개요2. 역사
2.1. 설립과 태동기 (1902 ~ 1945)2.2. The standard of the world (1945 ~ 1973)2.3. 오일 쇼크 이후 계속되는 침체기 (1973 ~ 1998)2.4. Art & Science와 고성능 프리미엄 브랜드로의 부활 (1999 ~ 2024)2.5. 다시 'Standard of the world'로 돌아오다 (2024~)
3. 네이밍4. 엠블럼5. 미국 대통령의 의전차량6. 디자인7. 평가8. V-시리즈9. 생산차량
9.1. 승용 세단/쿠페9.2. SUV/RV9.3. 레이스 카9.4. 콘셉트 카
10. 단종된 차종11. 대한민국 시장
11.1. 정식 진출 이전11.2. 정식 진출 이후
11.2.1. 판매 행태11.2.2. 평가11.2.3. 미디어에서
12. 여담13.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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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DARE GREATLY[2]
대담하게, 위대하게
The standard of the world[3]
전세계의 표준
Best of all...It's a Cadillac[4]
무엇보다도...그건 캐딜락이죠.
역대 캐딜락의 슬로건
아이콘이 되다 (BE ICONIC).
최신 슬로건
제너럴 모터스 산하의 프리미엄 브랜드이자 링컨과 함께 미국을 대표하는 프리미엄 자동차 브랜드의 양대 산맥이다.

2. 역사

파일:50822F74-5E75-48A5-9069-2ED31EF35E0E.jpg
역대 캐딜락 로고 변천사
1901년에 헨리 포드의 '헨리 포드 컴퍼니'로 시작했으며[5] 포드가 포드 모터 컴퍼니로 옮기자, 헨리 릴랜드(Henry Leland)는 파산 위기에 있던 '디트로이트 자동차 회사(Detroit Automobile Company)'를 인수해 '캐딜락 자동차 회사(Cadillac Automobile Company)'를 설립했다. 이후 1909년 GM에 인수되어 GM의 럭셔리 디비전이 되었다. 게다가 캐딜락을 GM에 판 이후 릴런드가 설립한 회사가 바로 현재 포드의 프리미엄 브랜드인 링컨이다. 포드GM의 라이벌적 위치를 고려하면 엄청난 아이러니이다.

캐딜락이란 브랜드 이름은 1701년 미국 디트로이트(Detroit)시를 개척한 프랑스 귀족이자 탐험가인 '르쉬외르 앙투안 드라 모스 카디약(Le Sieur Antoine de la Mothe Cadillac)' 경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캐딜락의 엠블럼 또한 캐딜락 가문의 문장을 따왔다.

약칭은 "캐디(Caddy)".

2.1. 설립과 태동기 (1902 ~ 1945)

파일:external/s1.cdn.autoevolution.com/CADILLACRunabout-1811_1.jpg
1902년에 '가변식 밸브 타이밍 1기통 엔진(Variable Valve Timing Single Cylinder Engine)'을 장착한 캐딜락 최초의 프로토타입 모델 Runabout and Tonneau를 750달러로 출시했다. 이 차량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25MPG(Miles Per Gallon)의 연비와 시속 30마일의 성능을 보유하고 있었다. 1갤런은 약 3.78 리터, 1마일은 약 1.6 km 정도이므로 이를 우리에게 익숙한 단위로 풀어 말하면 연비는 약 10.6 km/L, 속도는 약 48km/h 정도 된다.

이후 1903년 뉴욕오토쇼에서 양산형 모델 A를 선보였다. 모델 A는 1903년을 통틀어 2,497대가 제작되었고 상류층의 큰 인기를 끌었다.[6]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Cadillac_30-40_photo_19060414.jpg
1905년 캐딜락은 4.9L 4기통 엔진을 장착해 성능을 향상시킨 모델 D를 출시했다. 유성 기어식 3단 변속기가 장착되었고 제어식 스로틀, 그리고 기초적인 수준이지만 크루즈 컨트롤이 장착되었다.

파일:external/images2.fanpop.com/CADILLAC-MODEL-S-1908-cadillac-11120440-500-317.jpg
1907년에는 세계 최초로 250개 부품을 표준화부품 호환이 가능한 모델 S를 선보였고, 이 차는 1908년 영국왕립자동차클럽(RAC)으로부터 자동차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드와 트로피(The Dewar Trophy, 매년 뛰어난 성능과 기술력을 선보인 자동차 업체에게 상을 수여함)를 수상했다.

1909년 헨리 릴런드는 캐딜락을 제너럴 모터스의 대표 브랜드로 성장시킨다는 조건으로 캐딜락 오토모빌 컴퍼니를 제너럴 모터스에 매각했다. 1910년에는 지붕과 창문 일체형 바디의 자동차를 선보였고, 1912년에는 세계 최초로 전자식 시동 장치(셀프 스타터)를 장착[7]한 모델 30으로 두번째 드와 트로피를 수상했다. 1914년에 최초로 V타입 수랭식의 실린더 8개를 사용해 2,400RPM과 70마력의 성능을 낼 수 있는 'V8 엔진(V8 Engine)'을 발표했고 1915년에 세계 최초로 V8엔진의 실용화에 성공하며 대량생산 체제로 생산체제를 전환했다.

1925년, 캐딜락은 락카 페인트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1926년부터 자동차에 500가지 이상의 색상 조합을 제공했다. 그리고 현재까지도 GM의 전설적인 자동차 디자이너로 알려진 할리 얼(Harley Earl)을 영입하였고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미국 최초의 차종인 라살(Lasalle)이 탄생되었다.

1927년부터는 당시 경쟁사들이 개발에 몰두하던 V12 엔진 대신 V16 엔진의 개발을 시작, 1930년에 기존 캐딜락 V8 엔진보다 60% 이상 높은 토크를 1,200~1,500rpm이라는 낮은 회전수에서 내며 177마력의 힘을 내는 세계 최초의 V16 엔진 양산에 성공, 이 엔진을 집어넣은 V-16을 출시한다.

1929년엔 세계 최초로 자동차에 라디오를 장착해 엄청난 호응을 얻으며 오늘날 자동차 실내에서 누릴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 기능의 기초를 마련했다.

이 무렵 캐딜락은 단순히 프리미엄 브랜드 가운데 최고봉의 지위를 지니는 것이 아닌, 자동차 태동기 세계의 기준이 되었고, 업계에서 그 탁월함과 정교함을 인정받았다.

2.2. The standard of the world (1945 ~ 1973)

파일:1959년형 엘도라도 분홍색.jpg
이 시대의 캐딜락을 대표하는 차종은 엘도라도이다.

당시 인간을 다른 천체로 보낼 정도의 넘사벽의 호황을 누리던 미국의 경제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엘도라도의 모델 변경 주기이다. 엘도라도는 1953년에 1세대가 나왔는데, (당시 다른 미국차들의 유행처럼) 1954년 바로 2세대가 출시되고 모델 주기가 길어봐야 4년 정도의 주기의 모델 변경 주기를 가졌다.[8] 특히 이때 GM을 이끌던 총괄 수석 디자이너인 할리 얼이 캐딜락의 디자인 전성기에 기여했고, 당대 야구계의 유명인사 랄프 카이너나 엘비스 프레슬리도 캐딜락을 높게 평가하곤 했다. 특히 1959년형 캐딜락 라인업은 임페리얼의 1957년형 라인업에서 시작된 '포워드 룩'의 특징인 길고 낮으며, 넓은 차체와 대형 테일 핀을 주축으로 하는 디자인을 자신들만의 고유한 색으로 승화시켜 당대 최대 크기의 테일 핀, 당시 혁신적이었던 곡선형 앞 유리, 길면서도 낮고 넓은 차체, 분홍색 외장색상 선택사양이 잘 알려져 당대 미국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가장 잘 알려진 캐딜락 차종 중 하나가 되었다.

파일:33K43Iaj5NWSP7476VJlpp0zyMY.jpg
1950년에는 캐딜락이 르망 24시에 참가하는 결정을 내렸다. 당시 담당자였던 브릭스 커닝햄(Briggs Cunningham)은 시리즈 61 쿠페를 바탕으로 제작된 차체에 캐딜락의 새로운 160마력 OHV 331ci V8 엔진을 탑재하여 참가했었는데 당시 섀시는 Frick-Tappett Motors가 포드 차량을 바탕으로 제작하여 Fordillac(포딜락)이라고 불렸다. 이 차를 보고 당시 프랑스인들이 Le Monstre라는 별칭을 붙여 유명해졌다.[9] 캐딜락의 Le Mans 1950은 당시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지만 캐딜락이 실제 스포츠카 레이스에 어울릴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시험 주행이었다. 결과적으로 르망 24시에서 순정 캐딜락이 10위, Le Monstre가 주행 실수로 모래밭에 빠져 순위를 잃어 11위로 레이스를 마쳤다.

1960년대에도 캐딜락은 여전히 전성시대를 구현하고 있었으며, 특히 1965년 출시된 5세대 엘도라도는 현재의 Art & Science 디자인 랭귀지에까지 내려오는 캐딜락 디자인 헤리티지의 시작이 되는 기념비적 차종이며, 얼의 후임인 빌 미첼이 1960년대의 GM 및 캐딜락의 디자인을 이끌었다. 이번에는 크롬 도금의 비중을 대폭 줄여 그릴과 범퍼처럼 중요한 곳에 크롬 도금 사용을 집중시키는 등, 유럽 스타일을 일부 응용하면서도 미국적인 대범함을 결합한 디자인을 만들어냈다. 이에 힘입어 캐딜락은 1966년에 판매량 60%가 늘어난 약 19만 2천대를 팔 수 있었고, 1968년에는 20만대 이상을 판매할 수 있었다. 특히 이 시기의 엘도라도는 세로배치 전륜구동 설계를 올즈모빌 토로나도에 이어 사용해 코드 L29 이례 최초의 전륜구동 미국차로 기록되었고, 나중엔 엔진 배기량도 8.2L까지 확대되었다.

또한 전성기 동안에는 완전 자동변속기와 고성능 엔진, 차량용 트랜지스터 라디오(1957)와 세계 최초의 셀프 레벨링 에어 서스펜션(1957), 세계 최초의 메모리 시트(1957), 밝기 자동 조절식 전조등(1953) 등의 수많은 전동 편의장비처럼 기술적으로도 큰 발전이 이루어졌다. 특히 이중저류 브레이크 마스터 실린더(Dual-Reservoir Brake Master Cylinder)는 미국 법규에서 규정하기 6년 전인 1962년에 캐딜락에서 내놓았고, 자사의 "터보 하이드라매틱" 3단 자동변속기와 세계 최초의 완전 자동 히터 및 에어컨 역시 캐딜락에서 1964년에 선보였다. 당시 미국차의 특징이었던 테일 핀 역시 1948년에 프랭크 허쉬가 P-38 라이트닝 전투기에서 영감을 얻어 고안한 디자인을 할리 얼이 도입했고, 총알탄[10] 형상의 범퍼 가드도 캐딜락이 먼저 사용했다. 오늘날 대부분의 차량이 채택하고 있는 곡면 유리도 캐딜락이 세계 최초로 적용한 것이다.[11] 1965년식 플리트우드부터는 세계 최초의 자동차 열선 시트도 개발해 사용하기 시작했다. 70년대에 들어서면서는 최상급 모델에 한해서 벤츠, 뷰익, 올즈모빌과 함께 자동차 에어백을 발 빠르게 도입하는 등 자동차의 안전이란 측면에 있어서도 앞서나갔다.

그러나, 이런 호황기를 누리고 있던 캐딜락에게는 1973년 오일 쇼크와 GM 내부의 회사문화 변화라는 마수가 다가오고 있었다.

2.3. 오일 쇼크 이후 계속되는 침체기 (1973 ~ 1998)

파일:플리트우드.jpg
1996년까지 캐딜락의 플래그십을 맡아 온 플리트우드 브로엄

오일 쇼크 이후 캐딜락 역시 스빌이나 1977년식 드 빌을 비롯해 다운사이징을 모토로 한 차종을 제작하기는 했으나, 쉐보레 카발리에를 배지 엔지니어링한 시마론은 역대급 망작으로 판정받고 쓸쓸히 퇴장했다. 시마론은 GM J 플랫폼을 기반으로 제작되었는데, 그 플랫폼은 쉐보레뷰익, 올즈모빌, 폰티악, 오펠, 복스홀, 이스즈 등 정말 당시의 GM 브랜드라면 다 돌려썼다. 그나마도 성능 같은 부분도 다른 형제차들과 차별화되어 있지 않았고, 결국은 코미디 프로그램의 소재로까지 쓰이고 말았다.

디자인에 있어서도 더 발전한 제품으로 승부하지 않고 비용절감으로 이윤을 내겠다는 GM의 재무부 출신 신규 경영진의 뜻을 충실히 따른 총괄 수석디자이너 어빈 리비츠키의 지휘 아래, 배지 엔지니어링을 남용하거나 모든 차에 FF 레이아웃을 도입하겠다는 당시 GM의 무리수적인 정책[12]에 의해, 웅장한 후륜구동 레이아웃이나 이에 준하는 세로배치 전륜구동 레이아웃[13]을 버리고 가로배치 전륜구동 레이아웃[14]을 쓰는 등, 가면 갈수록 캐딜락의 고유한 디자인 특징이 사라져가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그나마 피닌파리나와 공동 제작한 알랑테 컨버터블이 예외이기는 했으나 상업적으로 별 성공을 거두지 못했고, 나머지 라인업은 폰티악이나 올즈모빌, 뷰익 차량들의 붕어빵에 불과해져갔다.

1991년에 등장한 10세대 엘도라도는 명가가 얼마나 처절하게 몰락했는지의 척도였다. 지난 1세대부터 4세대까지의 화려함의 극치도 5세대부터 이어온 고유의 디자인 헤리티지도 사라진, 과도한 프론트 오버행과 구식의 차체 비례는, 캐딜락이라는 브랜드와 그 대표작의 당시의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줬다. 1980년대 중후반 GM의 전형적인 배지 엔지니어링 차종이었던 9세대 엘도라도와 비교했을 때 동 시기 GM 계열사 내의 비슷한 퍼스널 럭셔리 카들과 구분되는 실내외 스타일링을 구축하여 상황이 낫긴 했으나,[15] 결국은 1990년대 RV 열풍에 밀려 판매부진에 시달리다 10세대를 마지막으로 사라졌다.

1993년에는 전륜구동이었던 플래그십 대형 세단이었던 캐딜락 식스티 스페셜의 후속으로 후륜구동 캐딜락 플리트우드 브로엄을 출시했으나, 미국차 특유의 크게 떨어지는 연비+당시 캐딜락 브랜드의 이미지 악화가 겹쳐서 판매량은 저조했고 결국 출시 3년만인 1996년에 단종된다.

그 이외에도 GM에서는 캐딜락의 매출액을 크게 늘리겠다고 렌터카로 물량을 왕창 몰아주면서 중고차 가격과 브랜드 가치를 크게 떨어뜨리는 뻘짓을 경쟁사 링컨과 같이 밀어붙이고,[16] 1980년대 기술로는 구현하기 어려웠던 4-6-8기통 변환 엔진[17]을 장착하는 무리수를 두는 등, 위에서 상술한 온갖 삽질로 인해 캐딜락은 고급차로서의 옛 지위를 상실해가고 있었다. 물론 그 와중에도 세계 최초의 가변 실린더 엔진 개발/양산이란 타이틀은 챙겼다.

게다가 모기업 GM의 재정 상황이 갈수록 악화일로를 걷는 모습에 사람들은 캐딜락 또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리라 생각했었다.

2.4. Art & Science와 고성능 프리미엄 브랜드로의 부활 (1999 ~ 2024)

파일:external/i.wheelsage.org/autowp.ru_cadillac_cts_130.jpg
캐딜락 부활의 신호탄, 1세대 CTS.

캐딜락은 할아버지들의 바퀴 달린 쇼파라는 굴욕적인 평가, 낮은 판매 실적, 실추된 브랜드 가치를 회복할 계획을 세웠다. 1999년 북미국제오토쇼에 Evoq 컨셉카를 통해 캐딜락의 새로운 디자인 언어인 Art & Science를 선포했다. 캐딜락이 아트 앤 사이언스를 통해 선보인 초창기 디자인이 가장 과감했으며, 최근의 디자인은 트렌드와 공기역학을 따라가서, 초기의 각지고 날카로운 조형보다는 부드러운 인상의 조형으로 만들어졌지만, 그 독창성은 유지하면서 세련미를 더하고 있다. 양산차에서는 1세대 CTSXLR부터 Art & Science가 적용된 디자인을 선보였다. 컨셉카 Evoq는 양산차 하드탑 컨버터블인 XLR에 거의 그대로 적용되었다. 또한 영화 아일랜드에서는 캐딜락이 자사의 100주년 기념을 위해 제작하여 2002년에 발표한 미드십 스포츠 컨셉트카 시엔[18]이 주인공[스포일러] 차량으로 등장하여 이미지 쇄신을 꽤 하였다.
파일:le-mans-24-hours-of-le-mans-20-2.jpg 파일:northstar-lmp-le-mans-24-hours-race-history-01_orig.jpg
노스스타 LMP00 노스스타 LMP02

2000년도, 캐딜락은 아메리칸 르망 시리즈, 궁극적으로는 르망 24시에 다시 참가하기 위해 노스스타 LMP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당시 아우디, 크라이슬러, 포르쉐 등도 참가 중이었던 LMP900 클래스에 참가하는데, 이는 GM이 쉐보레 콜벳 프로토타입 프로그램에 집중하기 위해 관련 인력과 자금을 돌리기로 결정한 2002년까지 이뤄졌다. ALMS의 팩토리 팀으로 Riley & Scott 팀이 운영하도록 했고, 유럽 스포츠 레이싱 월드 컵(European Sports Racing World Cup)에서는 DAMS 팀이 LMP 운영을 맡았다.

물론 결과는 애매했다. 첫 해 르망 24시에서 4대가 참가하여 DNF나 20위 근처의 성적들을 거둔데다 두번째 해에는 DAMS 팀이 레이스를 운영해서 15위를, 세번째 해에 다시 캐딜락이 운영을 맡았음에도 9위, 12위의 저조한 순위를 받게 되어 르망 24시에 참가를 결국 중단한다.

그렇지만 캐딜락은 CTS-V와 XLR-V를 시작으로 BMW M, 메르세데스-AMG, 아우디 RS, 렉서스 F, 재규어 R과 같은 고성능 디비전 캐딜락 V-시리즈를 출범하여 고성능 스포티 프리미엄 브랜드로서의 역사를 쓰기 시작했다. 단순히 스포티한 이미지가 아닌 CTS-V 쿠페와 ATS.V.R 등을 개수하여 GT3급 레이스에 출전하여 수상하고 2세대 CTS-V로 뉘르부르크링에서 순정 4도어 세단[20] 최초로 랩타임 8분대의 벽을 깨고 3세대 CTS-V로 고성능 고급 중형 세단 세계에서 600마력대의 시작을 알리는 등 단순히 방향성이 바뀌었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닌 실제 '증명'을 해나가며 생산 차량과 모터스포츠에서도 뜻깊은 성과를 거두었다.

물론 고성능 디비전을 향한 그들의 열정과는 별개로 이익을 신경쓰지 않을 순 없었기에 2010년대까진 새로 확립한 스포티 프리미엄 브랜드라는 방향성과는 다소 거리감이 있는 DTS와 그 후속작 XTS, 실패작 BLS와 같은 전륜구동 차종들을 포기하지 못했다. 특히 BLS는 '캐딜락의 새로운 방향성에 맞지도 않고 재미있는 차도 아니고 그렇다고 동급의 차 중에서 최고도 아니다'는 혹평과 함께 단명했다. 그래도 DTSXTS는 보수적인 장년, 노년층 고객들의 취향을 어느 정도 충족, 본래의 목적은 달성해 그럭저럭 팔려나갔고 사측의 이윤에 도움을 보탰다.

2014년엔 뉴욕으로의 본사 이전을 발표하며 벤츠, BMW 등의 프리미엄 브랜드와 경쟁할 수 있는, 즉 해외 시장에 대한 적극 공략 의지를 내비치는 행보를 계속했다.

2016년 7월 그룹 내 최상위 브랜드 겸 프리미엄 브랜드로서, GM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캐딜락이, 향후 계획을 발표하였다. 보도에 따르면 캐딜락의 세단 라인업 계획은 스포츠 세단에 대한 선택과 집중이다. 이전에 최고 마케팅 책임자 우베 엘링하우스나 요한 드 나이슨 사장이 ATS 아랫급을 후륜 기반으로 제작한다고 밝혔다가, 전륜 기반으로 제작하겠다고 발표가 나는 등 이야기가 많았던 ATS 아랫급 차량은 출시하지 않는다고 한다. 나날이 성장해가는 크로스오버/SUV 개발에 집중하기 위해서가 캐딜락에서 최종적으로 밝힌 공식적인 이유이지만, 사실상 계륵에 가까운 체급의 모델이어서 출시를 하지 않는 쪽으로 결정했을 가능성이 크다.[21]

같은 달, 캐딜락 브랜드 최초의 복합 문화 공간인 캐딜락 하우스를 뉴욕에 오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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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딜락 DPi-V.R 프로그램
2016년 11월, 캐딜락은 DPi 규격에 맞추어 개발된 캐딜락 DPi-V.R을 공개하였고, 로라 클라우저의 프로그램 주도 하에서, IMSA 웨더텍 스포츠카 챔피언십의 프로토타입 클래스에 참가하기 시작했다. 차량은 2017년에 LMP2 클래스에 새로 투입되는 달라라 P217 바탕으로 개발되었으며 이전의 노스스타 LMP와 콜벳 데이토나 프로토타입을 잇는 후계 레이스 카로 나섰다. DPi-V.R은 많은 팀들을 거쳐 데이토나 24시와, 세브링 12시 등 롱비치, 미드 오하이오, 로드 애틀랜타에서 다수의 우승을 거두는 등, 여러 성과를 올렸고, 이는 캐딜락 LMDh 프로그램의 발판이 되었다.

2018년 중반 캐딜락의 새로운 Alpha-Numeric 명명 체계를 따라, CTS2019년 상반기에 CT5로 거듭나며, ATS는 같은 시기에 CT4로 풀체인지 되었다. XTS2019년을 끝으로 후속 차종 없이 완전히 단종되었으며, XTS와 CT6 이후 개발 중인 캐딜락의 플래그십 모델은 전통적인 4도어 세단이 아닌 다른 형태의 차종[22]이 될 수 있다는 요한 드 나이슨 사장의 인터뷰가 있었다.

SUV 및 크로스오버 라인업에 대한 투자도 늘려나갔다. 2018년에는 컴팩트 크로스오버 XT4를, 2019년에는 XT5의 길이를 늘여 3열 공간을 확보한 XT6를 출시해 준중형급부터 풀사이즈까지 풀-라인업을 완성, SUV의 선호도가 높아지는 시장의 트렌드를 따르려는 계획이다.

2018년 4월, 요한 드 나이슨 캐딜락 사장이 퇴임했다. 캐딜락의 사업차 판매를 줄이고 공격적인 태세로 마케팅을 해도 기대만큼 브랜드가 살아나지 않았다는 게 이유라는 분석이 있다.(#) 본사도 뉴욕에서 다시 디트로이트로 옮긴다. 전통적인 캐딜락 팬들의 경우 독3사만 쫒으려던 요한 드 나이슨 사장 시절 패착을 성토하며 환영하는 분위기이도 하다. 이어서 뉴욕에 오픈했던 캐딜락 하우스 역시 폐쇄. 이후 스티브 칼라인 사장을 임명했으며 차근차근 캐딜락 브랜드의 대전환을 준비한다.

2.5. 다시 'Standard of the world'로 돌아오다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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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딜락 리브랜딩의 중심에 서 있는 셀레스틱.

근 20년 동안 독일차를 따라잡으려 노력하던 캐딜락이 사실은 오랫동안 칼을 갈고 있었다. 요한 드 나이슨 사장 시절에도 기획 중이었던 캐딜락의 리브랜딩 프로젝트가 바로 그 칼이다. 2022년, 급격한 전동화의 흐름 속에 캐딜락도 전동화를 외쳤고 준비해놓은 두 자루의 칼을 빼들었다. 리릭셀레스틱이 바로 그것이다. 두 차량 모두 컨셉트카를 먼저 공개한지 얼마 안 되어 양산형 공개를 진행했는데, 역대 어느 캐딜락 차량보다도 컨셉트카와 양산형 간의 괴리가 없었다는 것이 대중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캐딜락은 오늘날 더 이상 BMW 등 독일 브랜드와의 경쟁을 외치고 있지 않다. 그들은 120년에 달하는 자신들의 역사를 드디어 제대로 활용해 볼 생각인 것이다. 가격만 300,000달러[23]를 넘긴 캐딜락 역사상 최고가 차량, 셀레스틱이 앞장선다. 온갖 호화스러운 소재로 '수제'로 만들어지는 셀레스틱은 캐딜락과 이전에 경쟁하던 롤스로이스나 벤틀리 등과 다시금 동등한 선상에서 비교되는 것을 노리고 있다. 차량의 부품 곳곳에 캐딜락의 옛 슬로건 'The standard of the world'를 다시 새겨넣었다는 점도 중요한 부분. 2024년 이후로 에스컬레이드 등의 모델도 전동화할 계획이며, 전기 프리미엄 브랜드로서의 가치를 제공해나갈 예정이다.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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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딜락 V-시리즈.R 프로그램
캐딜락의 모터스포츠 프로그램은 DPi-V.R 프로그램에서 그치지 않았다. 바로 DPi 클래스를 대체하여 2023년부터 도입되는 LMH와 LMDh 규격의 레이스카가 출전하는 탑클래스인 GTP 클래스에도 계속해서 출전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캐딜락의 이러한 선택에는 기존부터 참가하던 데이토나 24시, 세브링 12시뿐만 아니라 르망 24시에 탑클래스로 재참가가 가능하다는 점도 있었기에 기존 DPi 프로그램의 확장이라고 할 수 있었다.

캐딜락은 자사의 전기화 전략과의 연계를 위해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규정에 따라 탑재되는 LMDh 규격에 입각하여 캐딜락 V-시리즈.R 개발에 투자했고, 2021년부터 DPi 클래스에서 캐딜락의 팩토리 팀으로 활약중이던 칩 가나시 레이싱과 캐딜락 DPi-V.R로 두 번의 시즌 챔피언을 달성한 액션 익스프레스 레이싱을 팩토리팀 파트너로 두어 2023년부터 월드 인듀어런스 챔피언십[24]웨더텍 스포츠카 챔피언십[25]의 탑클래스에 동시에 참가하기 시작했고, 특히 르망 24시에는 2023년, 2024년에 IMSA GTP 클래스에 출전하는 두 캐딜락도 내보내어 WEC의 1대 체제의 약점을 보태고 있다. 그리하여 2023년에는 세브링 12시와 모튤 코스 드 몬테레이에서 종합 우승을 차지했고, 르망 24시에서는 첫 복귀만에 포디움을 차지하는 등의 성과를 쌓아가고 있다.

뿐만 아니라 2023년부터 모기업 제너럴 모터스포뮬러 1에 참가하기 위해 안드레티 글로벌과 파트너십을 이뤄 2026년까지 F1 참가를 위해 캐딜락을 대표로 하여 협력한다고 한다.#[26] FIA가 참가 진행을 승인하면 안드레티 캐딜락(Andretti Cadillac)으로 팀명을 사용할 것으로 보이며 미국 브랜드 팀 답게 미국에 기반 시설을 두고 영국에 지원 팩토리 시설을 추가로 설립하여 참가할 계획이라고 한다.[27] 미국에서 F1의 인기가 나날이 급상승되고 있고 당장 이번 포뮬러 1/2023시즌에 미국 GP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3번이나 개최될 예정이다. 때문에 현재 캐딜락 외에도 다른 미국 브랜드인 포드레드불 레이싱과 파트너십 맺기를 원한다는 루머가 계속 들리고 있다.

유럽 시장 재진출도 본격화한다. 한동안 유럽 시장에 XT4 차량만 판매해왔으나, 유럽 연합(EU)의 강력한 환경 규제로 전기차 전환 속도가 빠르다는 점에 주목하여 리릭을 시작으로 전동화된 캐딜락 모델들을 유럽에 내놓을 예정이다. 2023년 2월엔 리릭의 우핸들 사양이 처음으로 포착되었다.# 2023년 10월 5일, 캐딜락 유럽 지사가 위치한 스위스에서 리릭의 주문을 받고 있다고 발표했다. 향후 2년에 걸쳐 스웨덴, 프랑스, 독일 및 기타 유럽 3개국에서도 전기 모델을 출시할 예정이다.

호주와 뉴질랜드 시장에도 수십년만에 재진입을 준비 중이다. 1969년에 현지에서 철수한지 대략 54년만인데, 2023년 8월에 호주 지사 총괄로 호주 출신인 Jess Bala를 새로 임명하고 캐딜락 전동화 모델들의 현지 상표권을 등록하는 등 크고 작은 움직임들이 이어졌으며, 2023년 11월에 유럽 시장과 마찬가지로 리릭의 현지 출시를 공식화했다. 우핸들 사양의 생산도 수 년만에 재개한다.

3. 네이밍

원래는 캐딜락 플리트우드, 캐딜락 카테라, 캐딜락 드 빌, 캐딜락 스빌로 이어지는 라인업을 내놓으며 드 빌과 스빌을 제외하면 일관된 네이밍을 사용하진 않았다. 그러나 2003년 캐딜락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차세대 카테라인 캐딜락 CTS[28]가 등장하며 캐딜락의 네이밍 체계가 갖추어진다.
  • 네이밍 체계 구축 초기 (2003~2016)
    카테라 투어링 세단의 약자인 CTS를 따라 드 빌은 DTS[29]로 스빌은 STS[30]로 명명된다. 이후 출시된 ATS나 XTS도 해당 네이밍을 따른다. 물론 선대 차종이 없어 해당 차종의 성격을 나타내는 단어에 투어링 세단을 붙여서 만든다.[31][32] 예외적으로 로드스터인 XLR과 크로스오버인 SRX는 네이밍 체계에서 벗어난다.[33][34]
  • 알파뉴메릭 체계 구축 (2016~현재)
    현재는 해당 네이밍을 버리고 새로운 알파뉴메릭 체계를 구축했다. SUV는 XT X(Cross)over Touring, 세단은 Cadillac Touring 이고, 이 뒤에 차급을 나타내는 숫자를 붙이는 방식이다. 예시로 중형급의 SUV 차량은 X(Cross)over Touring에 중형급을 의미하는 5를 붙여 XT5가 되고 중형급의 세단 차량은 Cadillac Touring에 중형급을 의미하는 5를 붙여 CT5가 된다.
  • 전동화 모델 네이밍 체계 구축 (2022~현재)
    BMW, 아우디와 달리 내연기관 시절 차량명을 전동화 모델에 그대로 활용하지 않는다. 캐딜락의 전동화 모델은 공통적으로 뒤에 IQ를 붙이는 방식으로 작명이 이루어지며, 차급을 나타내는 숫자는 붙지 않는다. 예시로 준대형급 전동화 SUV는 리릭(LYLIQ), 대형급 전동화 세단은 셀레스틱(CELESTIQ)으로 작명을 했다. 예외적으로 캐딜락 브랜드에게 있어 상징적인 모델인 에스컬레이드의 전동화 모델은 리릭, 셀레스틱과 달리 완전히 새로운 네이밍을 사용하지 않고 뒤에 IQ만 붙인다. 롱바디 사양의 경우 IQL이 붙는다. 참고로 SUV 라인업의 경우 각 모델들의 맨 앞 글자를 이어보면 LOVE라는 글자가 완성된다.

4. 엠블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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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딜락 엠블렘, 일명 약장로고를 오랫동안 적용하여 전통을 자랑하지만, 엠블럼이 워낙 자주 변경되는 편이다. 공식적으로 거의 30여 차례 크고 작은 수정을 거쳤다. 엠블럼의 유래는 위의 역사 항목에서 서술했듯이 캐딜락 가문의 문장을 차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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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4년만에 다시 엠블럼를 바꾸었다. 월계관과 문장 안의 새[35]가 빠지고 방패 모양의 로고만을 남겨두었다. 변경된 엠블럼이 젊고 신선하며 Art & Science 이후 캐딜락의 방향성에 어울린다는 긍정적인 반응도 있지만, 월계관이 없어지면서 옛 엠블럼에 비해 품격이 떨어져 보인다는 평가도 있고 옛날에 디자인된 차들에는 신형 엠블럼이 영 어울리지 않는다는 평가 또한 많이 있다. 이 로고가 내연기관 차량 엠블럼으로 아직은 사용되고있다는 점에서 캐딜락이 기존의 이 로고를 완전히 버린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캐딜락 로고의 색상 별 의미로는 캐딜락에 따르면 검은색에 반대되는 금색은 부와 지혜를 상징하고, 빨간색은 대담함과 강인함을 의미하며, 은색은 순수함, 미덕, 풍요로움, 자선을 상징함과 동시에 파란색이 기사의 용맹함을 상징한다고 설명했다.

파일:캐딜락 로고.svg파일:캐딜락 로고 화이트.svg
캐딜락 리릭의 출시, 그리고 전동화와 함께 더 단순화된 2D/단색 로고가 탄생했다. 실차에는 3D 모노크롬 형태로 적용되며, 리릭과 같은 전동화 모델이 아닌 XT6 등의 일반 내연기관 차량에서도 선택 사양으로 적용할 수 있다.

5. 미국 대통령의 의전차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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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디자인

파일:캐딜락 이보크 콘셉트_(1).jpg 파일:캐딜락 에스칼라 콘셉트_(1).jpg 파일:2024 캐딜락 셀레스틱_1.jpg
1999년 이보크(Evoq) 컨셉카[36] 2016년 에스칼라(Escala) 컨셉카[37] 2022년 캐딜락 셀레스틱(Celestiq)

Art & Science를 기반으로 디자인에 있어서 개인적 호불호는 있을지언정 개성의 측면과 완성도에 있어 호평을 받는 캐딜락.

Art & Science의 대담함으로 인해 "어디서 갑자기 이런 디자인이 나왔지?"하는 반응이 많으나 Art & Science는 현대적인 세련미와 함께 캐딜락이라는 브랜드가 수십 년간 쌓은 정체성이 응축되어 나온 결과이다.

7. 평가

20세기 후반까지 캐딜락의 이미지는 상어 지느러미(shark fin)형의 날카로운 형상의 디자인으로 대표되는 화려한 모습과 5세대 엘도라도부터 시작된 정제되었으면서 웅장한 모습의 매우 고급스럽지만 세련된 브랜드였다. 고급스럽지만, 중후한 권위만 있는 것이 아닌 멋까지 부리는 그런 느낌인 셈이다.

전후인 1950~70년대까지 엘비스 프레슬리, 마릴린 먼로 등 당대의 탑스타들과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 정치인들이 애용하던[38] 캐딜락은 롤스로이스와 어깨를 나란히 했을 정도로 성공과 부유의 상징이었던 최고급 자동차였다. 캐딜락에 대한 로망을 다룬 곡으로 Southwest Cadillac과 맥클모어 & 라이언 루이스의 White Walls[39]가 있다. 이 외에도 게임 캐딜락&디노사우르스에서도 주인공의 주요 차량으로 나오기도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캐딜락 62 시리즈의 1952년 판이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분홍색 캐딜락 엘도라도도 유명하다. 1960년대에 흑인들이 자신들을 무시하던 백인들에게 자신의 성공을 과시하기 위해 캐딜락을 타고 다니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오일 쇼크 등으로 인해 효율적인 차에 대한 요구가 늘어나는 당대의 트렌드를 무시하고, 플랫폼과 파워 트레인의 공유는 현재에도 이루어지지만, 당시 GM의 차는 브랜드의 엠블럼 외에는 다른 점 하나 찾기 힘들 정도로 브랜드마다 같은 차를 재탕하고 있었고, 그룹 내에서 서로 겹치는 모델도 너무 많았다. 그 결과 캐딜락도 한물 갔다는 인식이 늘어났다. 대표적인 예로 캐딜락 시마론이 있다.

거기에다 1965년 5세대 캐딜락 엘도라도부터 시작된 볼록한 후드와 깎아지른 버티컬(Vertical, 수직) 타입 헤드램프, 위에서 봤을 때 V자 모양의 뾰족한 후드, 웅장한 멋 등의 고유한 디자인 헤리티지까지 버린 10세대 엘도라도와 스빌 STS, 카테라의 등장은 명가의 몰락은 시간 문제라는 세간의 평의 명확한 근거가 되었다.

한때 젊은층을 공략한다고 사브 9-3을 기반으로 한 전륜구동 세단인 캐딜락 BLS라는 차종을 출시했으나, 처참하게 망해버리면서 캐딜락 시마론 이후로 손꼽히는 GM의 역대급 실책이 되어버렸다.

1999년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북미 국제 오토쇼에서 다양한 컨셉을 공개하며 과거의 디자인 헤리티지를 세련되게 계승한 아트 앤 사이언스라는 디자인 랭귀지를 선포하여 과감한 직선과 후륜구동 특유의 역동성과 우아함을 2016년 현재까지 세단 라인업에 불어넣고 있으며 또한 차기 최신 기술들을 적용한 컨셉카와 실차를 선보이고 있는 중이다.

2021년 본고장 미국에서의 캐딜락의 이미지는 예전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위에 서술했듯이 힙합 등으로 벼락 부자가 된 흑인들이 캐딜락을 몰고 자신의 부를 과시하기 위해 타고 다니는 형태가 많아 졸부들이 타고 다니는 차라는 이미지가 일부 형성됐다. 자신의 부를 지나치게 과시한다는 이미지로 인해 백인 중산층의 경우 캐딜락보다는 GMC 차량을 더 선호한다.[40] 동부 지역에서는 벤츠, 아우디, BMW, 렉서스가 흔하게 보이는 만큼 링컨과 캐딜락도 굉장히 흔하다.

8. V-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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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생산차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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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스터 - 알랑테 · XLR
준중형 SUV XT4 · GT4 -
중형 SUV XT5 · 옵틱 SRX
준대형 SUV XT6 · 리릭 -
대형 SUV 에스컬레이드 · 비스틱(출시예정) -
초대형 SUV 에스컬레이드 ESV · 에스컬레이드 IQ(출시예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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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곡사포 - M8 스콧 · M37 자주곡사포 · M41 고릴라
자주대공포 - M19 더스터
캐딜락 V-시리즈의 차량
캐딜락의 전기차 라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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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승용 세단/쿠페

9.2. SUV/RV

9.3. 레이스 카

9.4. 콘셉트 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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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단종된 차종[참고]

11. 대한민국 시장

11.1. 정식 진출 이전

가장 먼저 한국 땅을 밟은 수입차 중 하나이다.[45]

대한민국 시장에 캐딜락이 처음으로 들어온 것은 비공식적으론 구한말1903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무려 고종의 어차로 캐딜락 모델 A[46]가 수입된 것인데, 얼마 되지도 않아 러일 전쟁이 일어나 차량이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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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황제 어차[47]
이후 대한제국 황실은 순종의 어차로도 캐딜락 차량을 연이어 도입한다. 1915년식 타입 57인데, 목재체에 칠(漆)로 도장을 한 것이 특징.[48] 국가 차원에서 등록문화재 319호로 지정, 복원을 진행하여 현재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 중이다.[49][50]

천도교의 지도자이자 독립운동가였던 민족주의자 손병희도 캐딜락을 탔다고 전해진다.[51][52] 일제강점기 조선의 민간인이 최초로 구입한 자동차이기도 하다.

국내 최초의 재벌 기업인 태창그룹의 총수이자 아방가르드 예술가 백남준의 아버지였던 백낙승 역시 캐딜락을 탔으며, 그 시절 부의 상징과도 같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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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대통령 의전에 활용된 캐딜락
해방 이후 한동안 국내에 정식으로 진출하진 않았으나, 각 분야 높으신 분들의 의전차량으로 각광받았다. 대통령 의전차량으로 활용된 것이 대표적인데, 초대 이승만 대통령과 4대 윤보선 대통령이 플리트우드 62[53]를 탔다. 특히 5~9대 박정희 대통령이 캐딜락을 상당히 좋아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실제 재임 기간 중 플리트우드 68 브로엄, 플리트우드 75 세단, 리무진, 브로엄을 비롯해 드 빌에 이르기까지 당시의 최신 캐딜락 모델을 의전용으로 다양하게 도입했다. 11~12대 전두환, 13대 노태우, 14대 김영삼 대통령 때도 플리트우드 브로엄을 비롯한 캐딜락 세단들을 새로 도입해 의전차로 사용했다.[54]

이외에 당시 유명 연예인이나 일부 일반인들도 이삿짐/그레이 임포트를 통해 북미에서 캐딜락을 들여와 국내에서 타고 다녔다고 한다.

여담으로 벤츠 애호가로 유명한 김일성, 김정일도 캐딜락을 보유하고 있었다고 한다.# 주체코 북한 대사관에도 대놓고 캐딜락이 세워져 있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11.2. 정식 진출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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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럴 모터스 코리아 국내 직판 개시 공고[55]
대한민국 시장에서의 정식 판매는 1989년 대우그룹에서 병행수입 및 제네럴 모터스 코리아가 정식으로 설립되면서 시작됐으며, 1996년에 국내 직판 체제를 구축한 후 캐딜락을 단독으로 판매해 왔다. 그후 2000년 1월 사브 오토모빌의 판매점인 '사브오토모빌코리아'(현 법인)를 인수하고, 같은 해 4월에 통합이 완료되었으며, 2000년 5월부터 GM오토월드코리아로 사명을 확정지어 캐딜락과 사브의 판매망을 통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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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딜락-사브 통합 판매 당시 국내 전시장[56]
2002년 8월부턴 대우산업개발(대우자판)에서 사브와 함께 차량 판매 총판계약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2010년도쯤 대우자판의 워크아웃 이후 이들과 결별했으며, 설상가상으로 GM이 사브를 다른 기업에 매각 후 파산하여 더 이상 수입이 불가능해지자, 이후로는 다시금 캐딜락만 단독으로 수입/판매하고 있다. 이에 따라 2014년 GM오토월드코리아가 GM코리아(구)를 역합병하며 사명을 GM코리아로 교체했다.

가끔씩 한국GM과의 통합설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당사자들은 "각 법인 특성에 따른 제반 법·제도 요건이 달라 실효성이 없다"라고 매번 부인하지만, 2017년 8월까지 한국GM 대표이사를 맡았던 제임스 김이 GM코리아의 기타비상무이사로 올라가 있었고, 2016년 2월 ATS-V 발표회에서 장재준 GM코리아 대표와 함께 참석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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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아시아퍼시픽지역본부 개소식
2018년 8월엔 '캐딜락 코리아'로 사명을 변경했다. 이는 2017년 7월 30일에 제너럴 모터스 스위스 법인(General Motors Suisse)을 캐딜락 유럽 유한회사(Cadillac Europe GmbH)로 변경한 이후로 GM 자회사 가운데 전세계에서 2번째로 사명에 캐딜락이 쓰인 것이다. 그러나 임시로 정해 맞춘 간판에 가까웠으며, 2019년에 다시 GM아시아퍼시픽지역본부로 사명을 변경했다.[57]

2022년, GMC 브랜드의 국내 런칭과 함께 멀티 브랜드 전략이 도입됨에 따라 GM 한국사업장 내 CMO(최고 마케팅 임원) 직급이 부활하고 이 세 브랜드를 유기적으로 연계시킨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향후 국내에서의 법인 운영 방식에 변화가 생긴 것으로 전망되는데, 한국GM, 현 GM 한국사업장과의 완전한 통합까지는 아니더라도 긴밀하게 움직임을 함께 함으로서 국내 시장에서의 입지를 더 적극적으로 다지겠다는 것. 이에 따라 쉐보레와의 전시장 공유도 계획 중인 것으로 보인다.[58]

2024년 현재 국내 판매는 GM아시아퍼시픽지역본부를 중심으로 전국 각지에 위치한 10개의 딜러사에서 이루어지며, 16개의 공식 서비스센터를 운영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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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대통령 경호 차량
높으신 분들을 모시는 차량으로도 여전히 국내에서 많이 활용된다. 17대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식에서 플리트우드가 쓰인 것을 마지막으로 독일제 방탄 차량과 국산 방탄 차량이 대한민국 대통령 공식 의전 차량으로 채택됨에 따라 현재로썬 캐딜락이 의전 차량에선 배제된 것으로 보이나, 대통령경호처경호 차량으로 에스컬레이드가 여러 세대를 거쳐 꾸준히 활용되고 있다. 또한 국산 프리미엄 브랜드 제네시스가 런칭하며 사라지는 추세긴 하나, 대한민국 정부 고위 관료들의 해외 출장 때 의전용으로 캐딜락 차량이 지급되기도 한다.#

정식 진출 초기엔 국내에서 한 해에 200여대 안팎으로 팔려나갔으며, 200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는 300여대 정도가 팔려나가기 시작했다. 이후 400대, 500대 선을 순조롭게 돌파했고 2010년에 신형 CTSSRX를 선보이며 800대에 가까운 판매량을 기록했다. 이후 꾸준한 성장과 감소를 반복해 2014년엔 연 600대 정도로 판매량이 굳혀졌다.

그러나 2015년부터 판매량이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했다. 2015년 11월, 월 판매량 100대 돌파를 시작으로 2016년, 연 판매량 1천대 돌파에 성공했으며, 2017년, 연 판매량 2천대 돌파에도 성공한다. 기존 캐딜락 모델 대비 큰 폭의 상품성 개선을 거쳐 새로 투입된 CT6XT5가 국내 시장에서 상당한 호평을 받으며 은근한 가성비 선택지로 주목받은 덕인데, 다음 해인 2018년에도 연 판매량 2천대를 무난히 넘기며 국내 진출 이후 최대 실적인 연 2,101대 판매를 기록했다.

다만 2019년부터는 CT6의 파워트레인 축소로 판매량이 한풀 꺾여 다시 2천대 밑으로 떨어진 연 1,744대의 판매량을 기록했으며, CT6의 단종이 확정된 2020년엔 1,499대를 기록해 하락세를 이어나가는 중이다.

2021년엔 CT6의 수입이 완전히 중단되며 1천대 선이 무너졌고, 이후로는 지속적으로 1천대에서 조금 모자라는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다.

11.2.1. 판매 행태

독3사나 JLR, 일본 브랜드와 달리 국내 판매를 맡는 딜러사 가운데 '메가 딜러사'가 없는 상태라 전시장과 서비스 네트워크 확장에 꾸준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내 소비자들이 캐딜락이란 브랜드에 접근하기 힘든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59] 영세한 중소 딜러사들이 영업을 하다보니 규모 부분에서 아무래도 밀릴 수 밖에 없는 구조인 것.

물론 이를 의식한 것인지 국내에서의 차량 가격은 경쟁사보다 저렴한 상황이다. 2021년 7월에 전국 어디서나 차량을 동일한 조건에 판매하는 '원프라이스' 정책을 국내에 도입한 이후로는 프로모션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의 차량 가격 자체를 상당히 낮게 가져가고 있는데, 일례로 준대형 세단 CT5의 경우 현대 그랜저 상위트림과 같거나 오히려 저렴한 수준의 가격을 자랑할 정도이다. 그렇다고 프로모션이 완전히 없는 것도 아니라, 실구매가는 더 저렴하다. 막상 전시장에 가보면 매달 상당한 프로모션이 진행된다는 것이 핵심. 그때그때 다르지만 매달 프로모션은 대부분 '36개월 할부', '보증기간 2년 연장', '현금 할인' 등의 선택지로 돌려막기한다. 특히 현금 할인이 강력한데, XT5의 경우 2022년 11월 기준 현금 할인으로만 무려 800만원을 깎아준다. 에스컬레이드는 2023년 10월 기준 아예 1,500만원을 깎아주기도 한다. 기본 가격도 경쟁차 대비 저렴한데 할인까지 이런 조건이니 도대체 차 팔아서 남기는게 있나 싶은 수준 [60]

사실 원 프라이스 정책 도입 이전엔 이보다 더 화끈한 프로모션을 진행하기로 유명했다. 국내 수입차 업계에서 아우디와 함께 이쪽으로 말이 많던 브랜드인데, 2013년엔 2세대 CTS-V 재고차를 무려 4,000만원 정도 할인해 6천만원대에 판매한 전설적인 사례가 있었으며, 2016년 4월 CTS 4륜 최고급 트림 기준으로 출고가에서 1,700만원 가까이 싸게 판 적이 있을 정도. 물론 이런 식의 프로모션은 당연히 불만이 나올 수 밖에 없는 방식이기에[61] 결국 할인폭을 줄이고 차량 가격 자체를 애초에 저렴하게 가져가는 쪽으로 방향을 틀어 현재의 비교적 정상적인 판매 행태를 갖추게 되었다.

국내에 판매하는 대부분의 라인업을 상위 트림 위주로 꾸려 들여온다는 점도 지적된다. 같은 가격대에서 경쟁사보다 풍성한 옵션을 제공해준다는 측면에선 좋은 평가를 받고 있으나, 더 저렴한 가격에 캐딜락을 만나고 싶어하는 고객들. 즉, 하위 트림 수요는 포기한 셈. 물론 국내에 판매되는 '캐딜락 풀옵션 차량 가격 = 경쟁사 하위 트림 차량 가격'이라 상위 트림만 팔고 있음에도 가성비가 나쁘단 지적은 찾아보기 힘들다.

코로나-19 사태 당시엔 국내 판매에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모습을 보여 고객들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 본사 측에서 색상, 트림 상관 없이 차량을 랜덤하게 배정하고, 이를 찾는 고객이 있을 경우에 출고 하는 방식으로 판매가 진행되었는데, 이에 따라 CT5, XT4 등의 차량은 원하는 조합으로 받으려면 수 개월을 기다려야 할 정도로 출고 대기가 길어졌었으며, 여기에 더해 국내에 배정되는 물량 자체도 꽤나 줄어들었었다. 이 문제가 한참 심각했던 2022년 2월의 경우, 국내에서 고작 20대의 차량을 출고하며 2019년 2월에 비해 7분의 1도 안 되는 수준으로 출고량이 급감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다만 사태가 진정되며 2022년 7월, 다시금 세 자리수의 판매량을 기록해 현재는 정상화 되었다. 큰 이변이 없다면 국내에서 매달 평균적으로 60대~130여대의 출고량을 기록 중이다.

11.2.2. 평가

대부분의 수입차 브랜드가 그렇듯, 국내 AS 센터에 대한 평은 상당히 많이 갈리는 편이다. 일례로 한 때 커뮤니티에서 제주 캐딜락 서비스 센터에 대한 토로글이 올라왔기도 했다. # AS 센터 수가 독3사에 비해 확연히 부족하며, 부품수급이 다른 타 브랜드와 다르게 많이 늦는편인데다, 차량 자체의 정비성도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라는 점이 가장 많이 지적받는다.[62] 또한 간혹 사설 업체를 이용하고자 해도 대한민국 시장에서는 여태껏 수입차라면 독일차, 일본차들 위주로 많이 팔렸기 때문에 불편을 겪을 수 밖에 없다는 아쉬움이 있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부품이 국내에 없어서 수급이 늦는다는 소리지 부품 자체를 못 구하는 경우는 드물다는 것. 캐딜락이 중국에서 판매도 상당하고 최대 시장인 미국의 기업이라 직구를 통한 부품 수급은 용이한 편이다. 특히 몇몇 부품은 미국 직구를 통해 구입 하는 것이 2배 저렴한 경우도 있다. 열심히 발품을 팔아보자.

또한 떨어지는 AS 퀄리티와는 다르게 AS 비용과 부품값 자체는 수입차 중에서도 저렴한 편에 속한다. 특히 파워트레인 일부 부품들이 의외로 독일차, 일본차들와 다르게 상당히 저렴한 편에 속하는 것이 특징인데, 9세대 쉐보레 말리부에 탑재한 2.0L LTG 엔진이 ATS, CTS, CT6와 공유되면서 전체적인 가격대를 낮게 가져갈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도 내장재, 소모품[63] 등 전체적인 부품 가격이 독일 3사보단 상당히 저렴한 가격이라서 수입차 중에선 가장 부담이 적은 편이다.[64] 내구성도 관리만 꾸준하게 잘해준다면 잔고장도 없이 탄탄하다. 물론 알류미늄으로 구성된 차체나, 앞서 언급한 부품수급 지연에서 기인한 문제로 판금 수리에 한해선 독3사와 비슷한 수리견적이 나온다.

국내에서의 브랜드 인지도는 독3사에 비해선 객관적으로 떨어지는 편이나, 다양한 모델들이 국내에서 경호/의전/장의 차량으로 쓰여온 유구한 역사가 있기 때문에 브랜드 벨류 자체는 상당한 편이다. 다만 에스컬레이드라는 단일 모델의 압도적인 존재감에 브랜드 전체가 잠식당하는 경향이 있는 것은 아쉬운 대목. 한 때 CT6ATS, XT5 등 일부 모델이 독일차와 견줄만한 상품성을 갖추고 나와 주목을 받기도 했으나, 현재는 두 세단 모델 모두 단종, XT5는 노후화된 탓에 다시 대부분의 스포트라이트를 에스컬레이드 혼자서 받고 있는 상황이다.

국내 소비자로부턴 좋은 성능과 개성 있는 외관 디자인에 한해선 호평을 받고 있으나, 국내에 진출한 다른 미국차 회사들병크로 인해 '미국차는 기름을 많이 퍼먹는 무식한 차'라는 오명을 같이 뒤집어쓰기도 했다. 사실 이런 이미지는 2010년대 이전의 캐딜락에겐 어느 정도 해당되는 부분이 있었으나, 현재의 캐딜락과는 상당한 괴리가 있다.

11.2.3. 미디어에서

국내 시장에서 마케팅은 다른 수입차 업체와 비슷한 수준으로, 판매량을 고려하면 남는 것이 있나 싶을 정도이다. 한 때 캐딜락 하우스 서울을 운영하며, 구매에 대한 부담 없이 자유롭게 차량을 둘러볼 수 있는 문화공간을 마련하는가하면, 캐딜락 하우스의 운영 종료 이후엔 신차 출시 때마다 팝업 스토어를 열어 소비자들을 마주하고 있다. 2023년부터는 더 하우스 오브 지엠에서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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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딜락 국내 광고 예시
TV나 인터넷 광고는 신차 출시 때만 기습적으로 하는 편이다. 류준열[65], 다니엘 헤니[66], 정려원[67], 현빈[68] 등 유명인을 많이 기용하긴 하나 그 빈도 자체가 워낙 낮은지라 일반에 확실한 존재감을 좀처럼 각인시키진 못하고 있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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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미디어에서의 캐딜락
다만 2000년대에 들어서며 한국 콘텐츠의 위상이 높아짐에 따라 협찬 효과가 커졌다 판단한 것인지, 영화와 드라마 협찬은 벤츠나 BMW를 제외한 다른 수입차 업체와 유사한 수준으로 꽤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영화 중에선 공공의 적 시리즈에 협찬을 한 것이 대표적 사례인데, 협찬 비중은 영화 보단 드라마 쪽이 높다. 쉐보레가 협찬을 진행하는 드라마에 같이 끼워넣기를 시전하는 경우가 많으며, 간혹가다 캐딜락 혼자서만 단독으로 협찬을 진행하는 경우가 있는데 닥터 프리즈너, 악마판사, 빈센조, 빅마우스, 7인의 탈출이 대표적 사례. 캐딜락 단독 협찬을 한 드라마는 대부분 정치와 권모술수 이야기를 다루는 작품이라는 공통점이 있으며, 새로운 이미지를 구축하기보단 위엄 있는 보스가 탄다는 기존 캐딜락의 아메리칸 럭셔리 이미지를 지켜나가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물론 꽃보다 남자처럼 다소 가벼운 분위기의 작품에 협찬을 한 사례도 있다.

12. 여담

미국 야구 메이저리그에서 1946년부터 1955년까지 통산 369홈런을 때려 낸 외야수 랄프 카이너홈런타자는 캐딜락을 타고, 단타타자포드를 탄다 (Home run hitters drive Cadillacs, and singles hitters drive Fords.)[69]라는 말로 홈런 타자의 가치에 대한 자부심을 표현한 바 있다. 다만 카이너 본인이 아닌, 같은 팀 투수 프리츠 오스터뮐러가 했던 말이라고 한다.

미국의 자동차 브랜드 중 뷰익 다음으로 오래 되었으며, 브랜드 가치로는 미국의 자동차 중 단연 원탑이다. 지금 미국의 프리미엄 자동차 브랜드는 캐딜락과 링컨밖에 없는 실정인 데다, 미국을 제외한 해외 시장에서의 캐딜락의 판매량은 낮지만 최근 중국 시장에서 판매량이 부쩍 늘고 있다. 최근에는 같은 GM 소속 브랜드인 뷰익과 함께 중국에서 폭발적인 매출 신장을 기록하고 있다. 2018년 전세계 프리미엄 자동차 브랜드 전체 중 7위에 랭크되었다. # 미국에서 판매량이 요 몇년간 다소 줄어든 것을 감안하면 선방한 셈이다.

미국인들이 독일3사의 운전감각을 선호하게 되었다는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캐딜락은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ATS를 필두로 그 뒤로 출시한 3세대 CTSCT6의 성능과 운전 감각을 독일차에 근접한 출중한 실력으로 선보였으며, 이후로는 다양한 모델들의 주행성능을 미국식의 승차감 위주 세팅에서 승차감과 성능 모두 두루 만족시키는 쪽으로 바꿔나가고 있다.

캐딜락이 정치 논란에 휩싸였다. Real People이라는 이름의 미국 내 온갖 계층의 사람들을 담는 광고에 출연할 사람을 모집하는데 그 역할이 대안 우파 인사[70]라, 사회적으로 영국의 통신사 <로이터>를 통해 처음 알려진 이번 사건에 대해 인터넷에서 비난이 크게 일었다. 극작가이자 연극배우인 지나 영(Gina Young), 변호사 체이스 스트레인지오(Chase Strangio)는 물론 대부분의 시민들이 이번 사건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표했다. 다만 이 모집을 캐딜락이 직접 기획한 것은 아니며, 이 모집을 기획한 회사는 이 공고를 낸 직원을 해고한 후, 캐딜락에 대해 사과의 뜻을 표한 글을 페이스북에 게재했다.

워렌 버핏캐딜락 XTS를 타고 다녔으며, XTS 이전에는 캐딜락 DTS를 타고 다녔다.

브루노 마스의 노래 That's What I Like의 가사에도 캐딜락이 등장한다. 이외에도 무수히 많은 미국 음악 가사에서 캐딜락 타고 낭만을 쫓아 달린다던지, 캐딜락을 예찬하는 가사를 만나볼 수 있다. 그 정도로 미국에서의 캐딜락은 단순히 지동차 브랜드가 아니라 부의 상징과도 같은. 미국 문화와 함께하는 아이코닉한 존재로 자리잡았다. 한국에서 이쪽으론 엘비스 프레슬리의 핑크 캐딜락이 가장 잘 알려진 편이다. 시대를 가리지 않고 오늘날에도 미국 음악에서 캐딜락이 대변하는 이미지는 상당한데, 뮤직비디오의 소품으로도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일례로 더 위켄드의 앨범 Dawn FM에서 시작부터 캐딜락 엘도라도가 등장할 정도.

영미권, 특히 미국에선 가장 고급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거나 최상의 수준을 자랑하는 대상을 "○○계의 캐딜락(Cadillac of something)"이라 부르기도 한다. 옥스포드 영어 사전에 정식 등재까지 되어 있는 표현이며, 북미에서 캐딜락이 '최고급'의 상징임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1950년대 한국전쟁 시기에는 동해안에서 대한민국 국군 1군단을 지원하던 미국 7함대 소속 5순양함대의 수병들이 포탄 한 발을 장전할 때마다 “캐딜락 한 대 또 날아간다(One more cadillac on the way)!”고 구호를 외쳤다고 한다. 당시 포탄의 가격은 약 1만 달러로 고급 캐딜락 1대 가격과 맞먹었고 1950년대의 1달러는 2020년 기준 15~20달러의 가치를 지녔으니 대략 1억 5천만 원에서 2억 원에 달하는 금액인 셈이다.

영화 고스트버스터즈에서 주인공 일행이 사용하는 차량인 엑토-1(Ecto-1)은 1959년형 밀러-미티어 퓨처라 듀플렉스(Miller-Meteor Futura Duplex) 앰뷸런스 차량이다. 영화에서 사용된 원본은 현재 소니 픽처스 창고에 보관되어 있다.

13. 관련 문서



[1] 요한 드나이슨의 후임으로 2018년 4월 18일 취임했다.[2] 2015년 2월, CT6 티저 광고에서 최초로 공개된 슬로건.[3] 캐딜락이 북미 시장은 물론 세계 럭셔리 자동차의 지존이던 시절의 과거 슬로건.[4] 1980년대 중반 슬로건[5] 이 때문에 캐딜락이 뷰익보다 오래 되었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6] 이런 역사 덕에 캐딜락은 GM의 최고 럭셔리 디비전 자리를 지키고 있다.[7] 일각에선 오늘날 자동차 역사를 송두리째 바꿨다고도 평가하는 부분인데, 캐딜락이 최초로 도입한 이 시동 장치로 인해 당시 내연기관 차량들의 가장 큰 결점 중 하나였던 '불편한 시동 과정'이 해결되었다. 그 전까지는 운전자가 직접 핸드 크랭크로 시동을 걸어야 했는데 이 과정에서 부상을 입는 경우가 잦았다. 캐딜락의 셀프 스타터 도입으로 인해 초기 전기자동차들이 시장에서 도태됨과 동시에 내연기관 차량이 단숨에 확고한 주류로 자리잡았다.[8] 경영 분야에서 이러한 전략을 계획적 진부화라고 한다. 1955년에 나온 자동차 모델은 272개였지만, 1963년엔 429개로 늘었다. 이 중 GM은 1955년 85개 모델을 내놓았지만, 1963년엔 138개를 내놓았다. 역설적으로, 계획적 진부화는 미국 자동차 제조사들의 성능 경쟁력을 갉아먹어 이후 1970년대 석유 파동으로 큰 타격을 입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 이후 역사에서도 후술.[9] 하지만 당시 르망 24시 규정에 엔진 변경이 허용되지 않는다고 명시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 차를 레이스에서 불법으로 간주하여 참가가 불발될 뻔 했다. 그러나 브릭스는 멈추지 않고 쇼룸에서 전시되던 다른 시리즈 61 쿠페를 확보하여 다시 개발에 들어갔다. 규정에 따르면 엔진 교체는 허용되지 않지만 레이스 팀은 스톡 섀시의 차체를 수정할 수 있었기에 Briggs는 시리즈 61 쿠페 중 한대의 차체 라인을 조정하였다. 차체도 유선형으로 수정하며 Grumman Aircraft 항공사에 풍동 시험을 맡겨 알루미늄으로 만들어 가볍게 한 뒤 카뷰레터 매니폴드를 장착해 출력을 보탰고 당시 뮬산 직선 주로에서 130 mph를 기록했다.[10] '다그마 범퍼'로도 알려져 있다.[11] 다만 정면에 적용된 유리에만 해당된다. 측면에 적용된 곡면 유리의 경우 크라이슬러 코퍼레이션 산하의 럭셔리 브랜드였던 임페리얼이 1957년형 차량들에 적용한 것이 최초이다. 캐딜락이 측면 곡면 유리를 도입한 것은 1965년 부터였다.(캐딜락의 차량들은 1964년형까지 측면 유리가 평면이었다.)[12] 이는 두 차례의 석유파동으로 인한 연비규제 강화가 원인이었으나, GM 내 라인업에서 대형차가 주류라는 이유로 회사 내의 모든 대형차, 고급차까지 전륜구동+소형화하는 실책을 저질렀다.[13] 아우디가 주로 사용하는 레이아웃이기도 하다. 1970년대의 제너럴 모터스에서도 올즈모빌 토로나도와 캐딜락 엘도라도, GMC 모터홈에 세로배치 전륜구동 레이아웃을 사용하고 있었다.[14] 이 레이아웃은 주로 중저가 대중 브랜드들이 쓴다. 구동축의 구성 자체가 기존의 세로배치 레이아웃들과 완전히 달라 상당히 높은 개발 난이도를 자랑하는 당대의 첨단 기술 중 하나였으나, 캐딜락을 비롯한 미국 3사 이외의 해외 프리미엄 및 럭셔리 브랜드들은 아우디나 사브 정도를 제외하면 꾸준히 앞 엔진 후륜구동을 고수하였다.[15] 특히 10세대 엘도라도에서 쓰던 새 디자인 큐는 동시대의 신형 스빌에도 적용되어, 유럽식의 대범한 디자인 큐로 호평받았다.[16] 밥 루츠의 자서전 빈 카운터스에서는 렌터카 업체들이 조금만 주행거리가 되어도 싸게 차를 처분해버리고, 중고차 물량을 싸게 살 수 있게 되면서 캐딜락과 링컨도 흔해빠진 브랜드로 취급받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언급했다. 그 외에도 한 사람이 꾸준히 쓰는 게 아닌, 여러 사람들이 짧은 기간동안 돌려쓰는 특성상, 렌터카 고객들이 렌터카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차량 상태도 천자만별인 점도 생각해볼만한 점.[17] 4기통, 6기통, 8기통을 모두 지원하고 상황에 맞게 기통 수를 변환할 수 있는 기능으로, 지금도 액티브 퓨얼 매니지먼트라는 이름으로 들어가고 있는 기능이다. 지금이야 기함인 CT6, 에스컬레이드에도 적용되고 (##) XT5에서는 공인연비를 뛰어넘는 실연비로 호평받는 기능이지만 #, 1980년대 당시 전자기술의 한계로 기통 수를 바꾸는 동안 소음과 진동이 심했고, 엔진이 아예 멎어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결국 이 기능이 들어간 차를 구입한 차주들은 아예 기능 자체를 끄고 그냥 8기통 엔진으로만 사용했다. (#)[18] Cien, 스페인어로 100을 뜻하며 7.5L V12 엔진, 750hp의 슈퍼카이다. 양산할 계획까지 있었으나 개발 자금 부족 및 20만 달러(약 3억원)라는 높은 판매가로 인해 공식적으로 양산은 무산되었다.[스포일러] 주인공은 클론이고 원래 진짜 인간은 따로 있다.[20] 애프터 마켓 튜닝 차량이 아닌 공장에서 생산된 기성품 상태 그대로의 순정.[21] 처음에 최고 마케팅 책임자 우베 엘링하우스나 요한 드 나이슨 사장이 언급한 대로 후륜으로 출시할 경우, ATS보다 더 작은 체급인 Sub-ATS 세단이 공간 확보가 잘 될 수 있겠는가? 소형 차량 체급에서 후륜구동 방식은 BMW1시리즈2시리즈 쿠페 정도밖에 없다. 그만큼 소형 체급에서는 공간 확보의 어려움 때문에 대부분 전륜구동을 선택하고, 1시리즈마저도 다음 세대부터는 전륜구동으로 바뀐다. 그렇다고 전륜구동을 선택하기에는 과거의 실패작들이 떠오르고, 현재의 후륜 구동 기반 스포츠 세단 이미지에도 맞지 않다. ATS 아랫급 세단이 후륜으로 나올 경우 마니아들이 인기를 끌 수 있겠으나, 그와 비슷한 체급의 후륜구동인 BMW 2시리즈가 미국에서 13,000여대 팔린 것에 비교했을 때 전륜구동 방식인 메르세데스-벤츠 CLA아우디 A3는 미국에서 각각 35,984대, 29,643대 팔렸다는 사실에서 볼 수 있듯이, 판매량에 목마른 캐딜락에게는 마니아들의 지지보다는 대중들의 선택이 절실하겠지만 세단 라인업의 통일성을 위해 소형 세그먼트는 출시하지 않기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22] 후술할 캐딜락 셀레스틱이 바로 그것이다.[23] 원화가치 약 3억 9000만 원.[24] 범퍼가 파란색인 칩 가나시 레이싱의 2번 캐딜락 한 대가 출전하고 있다.[25] 범퍼가 노란색인 칩 가나시 레이싱의 01번 캐딜락과 범퍼가 빨간색인 액션 익스프레스 레이싱의 31번 캐딜락, 두 대가 출전하고 있다.[26] 2026년까지 F1의 파워트레인은 50% 내연기관 및 50% 전기 파워트레인이 사용 될 것으로 보이는데, GM은 포뮬러 1을 통한 마케팅 효과와 캐딜락의 전기모터 실전 투입을 통한 기술력 상승을 노리고 F1 참가를 원하는 것으로 추측된다.[27] 현재 F1의 Concorde 협정에 따르면 드라이버가 26명까지 참가를 허용하고 있고 이론 상으로 2026년까지 3개 팀이 추가로 F1에 참가가 가능하다.[28] Catera Touring Sedan[29] Deville Touring Sedan[30] Seville Touring Sedan[31] ATSAlpha Touring Sedan[32] XTSX(Cross)over Touring Sedan[33] 캐딜락 XLRXtreme Luxury Roadster[34] SRXSeries Reconfigurable X(Cross)over[35] 얼핏 보면 오리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메를레트(merlette)라 하여 제비에서 부리와 다리를 생략한 문장이다.[36] 이후 이 디자인은 1세대 CTS로 양산된다. 차량 포지션은 XLR로 시판되었다.[37] 이후 이 디자인은 XT6CT5로 양산된다.[38] 지금도 미국 대통령의 의전용 방탄차는 여기서 만든다. '캐딜락 프레지덴셜 스테이트 카' 문서 참고.[39] 맥클모어는 백인 랩퍼로 다른 랩퍼들이 자신의 비싼 차를 자랑하는 노래를 많이 내놓지만 오히려 "나는 할아버지와 같은 모델을 몰지!" 하며 캐딜락을 찬양하는 노래.[40] GMC도 Denali 트림 정도면 내장은 캐딜락과 맞먹는 정도라 타고 다니기에 크게 부담없게 느끼는 분위기이다. GM은 캐딜락을 럭셔리 브랜드로 밀고 있다. GMC의 지위는 그보다 한 급 정도 낮게 한다. 때문에 캐딜락이 차량 시스템이나 기능, 고급스러움과 같은 면에서 기본적으로 더 뛰어나다. 그러나 차량 자체의 질은 데날리 트림 정도면 큰 차이가 나지 않는 수준이 되고, 고급스러움의 측면에서도 큰 영향이 없는 자잘한 디테일을 제외하면 비슷하다. 캐딜락에 옵션을 넣으면 데날리 트림은 가볍게 뛰어넘겠지만 그 기능을 전부 쓰는 사람 자체가 별로 없다. 그리고 GM에서도 은근히 데날리 트림을 럭셔리로 밀고 있는 것에 더해 GMC 차량이 무난한 미국적 디자인이지만 고급스러움이 겸비된 디자인으로 출시되고 있어 럭셔리한 차를 원하는 사람들은 GMC 차량의 데날리 트림을 더 선호한다. 실제로 아놀드 슈워제네거를 비롯한 미국의 톱스타들도 GMC의 유콘 Denali를 타고 다니는 모습이 자주 포착된다. 형제차인 캐딜락 에스컬레이드는 오히려 표면적 과시가 중요하며, 대부분이 흑인 남성으로 구성된 힙합씬에서 더 자주 보이는 편.[41] CT6 보다 한 체급 위의 차량으로, 캐딜락의 새 플래그십이다.[참고] 워낙 오래된 브랜드다보니 나무위키에 문서가 개설되지 않은 차량들이 상당히 많다. 아래에 서술된 차량들은 일부 차량들.[43] 왜 플리트우드의 하위가 아닌 드 빌의 하위에 들어갔는지는 항목 참조.[44] 야구선수 박병호가 한때 2세대 SRX의 소유주였다. 현재는 폭스바겐 CC로 차를 바꿨다고 한다.[45] 미국의 뷰익포드, 이탈리아의 란치아도 비슷한 시기 기록이 있긴 하나 기록의 양으로 따지자면 비교할 수 없다.[46] 대한제국은 공식적으로 차종에 대한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이 때문에 포드나 다른 유럽 브랜드의 차량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으나, 포드가 고종 어차의 국내 도입인 1903년 4월보다 늦은 1903년 8월에서야 설립된 회사임을 감안한다면, 또한 차량의 외양을 본다면 캐딜락의 차량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47] 좌 : 복원 전 / 우 : 복원 후[48] 도어에는 대한제국 황실의 문장인 황금색 오얏꽃 장식을 붙였다고 한다.[49] 여담으로 캐딜락 코리아 측은 이 때 도입된 어차를 공식적으로 한국에서의 최초의 캐딜락이라고 인정하는 모양이다. 2020년 진행된 캐딜락 XT6 국내 출시 현장에서 카허 카젬 당시 한국지엠 사장이 "한국에서는 지난 세기 초반 순종 황제가 국내에서 최초의 캐딜락을 운전했다는 자랑스러운 역사도 있습니다"는 발언을 남겼다.[50] 당시 자동차가 으레 그랬듯 한반도에서도 캐딜락이 갖는 가치는 엄청났다. 쌀 한 가마니가 4원 안팎, 군수 월급이 50원이던 시절인데, 순종의 캐딜락은 값이 만 원이나 나갔다는 이야기가 있다. 당시 쌀 한 가마니가 80킬로그램 정도였고 현재 쌀 20킬로그램에 5만원 정도이니 캐딜락은 현재 가치로 5억 원 정도이다. 셀레스틱 신차값.[51] 1915년경 일본에 볼일이 있어 잠깐 건너갔을 때 마침 공진회라는 국제산업박람회가 동경에서 열려 여기에 출품된 미국제 캐딜락 자동차를 보고 한 대를 사와서 자가용으로 타기 시작한 것.[52] 캐딜락 모델 중에서도 상당히 고급 사양을 탔다고 한다. 운전석과 승객석이 분리된 리무진 차량.[53]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당시 미국 대통령이 선물한 것이라고 한다.[54]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지만 이후 15대 김대중, 16대 노무현 대통령 때도 각각 신형 드 빌 리무진을 도입해 사용했다. 의전용 차량은 아니지만 퍼레이드용 경호차, 사열차량으로 엘도라도 컨버터블, 드 빌 컨버터블이 여러 세대를 거쳐 사용되기도 했다.[55] 사진 속 차량은 스빌[56] 좌 : 당시 대구 전시장 / 우 : 당시 부산 전시장[57] GM아시아퍼시픽지역본부는 한국GM과는 별개의 법인이나, GM코리아 시절에 사무실을 부평의 한국GM 본사 홍보관 3층으로 이전하였던 적이 있다.[58] 현대자동차 전시장에서 제네시스 판매도 진행하는 것과 유사한 관계인데, 한국지엠이 서울서비스센터의 재건축 조감도를 공개하며 현실화되었다. 1층에 쉐보레와 캐딜락 전시장이 함께 위치한 모습. 기사[59] 실제로 2021년 기준 국내에서 캐딜락의 판매를 맡는 딜러사는 DSK모터스, A&G모터스, MK모터스, 티에스오토, EH모터스, 오토샹젤리제, 한영오토모빌 등 대부분 중소 딜러사로, 한성자동차, 효성(더클래스효성·효성토요타·효성프리미어모터스 등), KCC오토그룹, 코오롱오토모티브 등 경쟁사 차량을 판매하는 '메가 딜러사'와 규모 측면에서 차이가 큰 편이다.[60] 여담으로 미국인들중에 이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왜 한국에서 이렇게 저렴하게 파냐며 불만이 있다고 한다. 미국 본토에서는 이렇게까지 저렴하게 팔 이유가 없는 인지도도 충분한 고급브랜드이다 보니...[61] 초반엔 적극적인 할인을 통해 저렴한 가격에 구매를 할 수 있었기에 이러한 국내 판매 정책이 좋은 평가를 받았으나, 평소에 정가를 주고 구입한 소비자들은 더 싸게 살수 있었던 차를 비싸게 주고 샀다는 배신감에 사로잡힐 수 밖에 없었던데다, 이렇게 할인을 진행하면 그만큼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GM 코리아는 A/S와 같은 서비스에 대한 투자를 줄이거나 부품 가격을 비싸게 책정하는 등, 결국 캐딜락을 선택한 소비자들에게는 손해가 되는 정책을 취할 수 밖에 없었기에 불만이 차츰 쌓여갔다. 프리미엄 브랜드에서 신뢰를 잃는다는 것은 사실상 전부를 잃는 것이나 다름 없기 때문에 매우 주의해야 할 부분이다.[62] 다만 어디까지나 독일차, 일본차들의 비해 정비성이 떨어진다는 것이지, 차고에서 자가 수리를 즐겨하는 미국인들도 멀쩡히 타고 다니는 차가 캐딜락인만큼 프랑스차나 이탈리아 차량같은 괴랄한 설계를 보이진 않는다. 하지만 국내에선. 특히 사설쪽 업체에서는 정비 난이도와는 별개로 단순히 독일차, 일본차들과 다른 다소 생소한 구조라는 이유를 들며 정비를 꺼리는 경우가 간혹 있다.[63] 일례로, CTS의 에어컨 필터는 쉐보레 스파크와 같은 것을 쓰며, CT5는 오일류를 비롯한 각종 소모품을 쉐보레 트레일블레이저와 공유한다.[64] 링크한 영상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부품가격 비교표를 참고.[65] 광고영상[66] 광고영상[67] 광고영상[68] 광고영상[69] 이 어록이 국내에 소개되는 과정에서 포드가 뜬금없이 링컨이나 벤츠 등으로 뒤바뀌기도 하나, 원전은 포드가 맞다. 벤츠는 2차 대전 이전부터 고급차로 이름이 높았고(히틀러나 힘러 등 나치독일의 고위급 인사들에게 관용차로 제공되었다.) 캐딜락보다 싼 차도 아니다. 링컨 또한 캐딜락과 함께 당시 미국의 고급차시장을 이끌던 쌍두마차였다.[70] 대안 우파 인사는 극단주의자들이다. 그동안 대안 우파는 인터넷을 기반으로 활동해왔으나,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 이후 점차 사회에서 영향력이 커질 전망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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