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란 사소 습격 영어: Gran Sasso raid 독일어: Unternehmen Eiche/Operation Oak | ||
날짜 | ||
1943년 9월 12일 | ||
장소 | ||
이탈리아 왕국 캄포 임펠라토르 호텔 | ||
교전국 | [[이탈리아 왕국| ]][[틀:국기| ]][[틀:국기| ]] | [[나치 독일| ]][[틀:국기| ]][[틀:국기| ]] |
지휘관 | [[이탈리아 왕국| ]][[틀:국기| ]][[틀:국기| ]]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 [[이탈리아 왕국| ]][[틀:국기| ]][[틀:국기| ]] 피에트로 바돌리오 | [[나치 독일| ]][[틀:국기| ]][[틀:국기| ]] 아돌프 히틀러 [[나치 독일| ]][[틀:국기| ]][[틀:국기| ]] 쿠르트 슈투덴트 [[나치 독일| ]][[틀:국기| ]][[틀:국기| ]] 하랄드 모르스 |
결과 | ||
베니토 무솔리니 구출성공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 건국 |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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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43년 연합군의 시칠리아 상륙이 성공한 뒤, 남이탈리아에서의 독일군의 철군 소식 등을 전달받은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와 위기감을 감지한 파시스트당 중견인사들은 무솔리니에 대한 탄핵 및 축출을 감행하였다. 때문에 실각당한 무솔리니는 체포되어 그란사소 산맥 근방의 호텔 캄포 임페라토르 호텔에 구금되었으나 독선적 외교와 점차 실패해가는 전쟁으로 인해 그나마 남아있던 동맹국들도 하나 둘씩 상실해가는 기미를 보이던 나치 독일은 무솔리니의 실각을 가만히 두고 보지 않았다.또한 무솔리니의 후임으로 들어선 피에트로 바돌리오 두체는 독일과의 우방 관계를 청산하지 않겠단 말을 하였으나 출범 이틀만에 국가 파시스트당을 해산시키고 연합국과의 휴전협상에 나서 결국 1943년 9월 3일 이탈리아와의 휴전을 체결하였다. 그러나 당시 연합국과의 전쟁을 치루고 있었던 이탈리아 군부는 이를 따르지 않으려고 하였고 이런 상황에서 독일군은 베니토 무솔리니를 구출하여 연합국과 항전하던 이탈리아군을 긁어모아 싸우게 하도록 하는 계획을 구상하였다.
무솔리니는 사임한 후 국왕의 명령에 따라 전범 혐의로 체포되어 애인 클라라와 함께 아펜니노 산맥 골짜기의 그란 삿소(Gran Sasso) 산에 있는 '캄포 임포라토레' 산장에 연금되었다. 그런데 9월 12일 오토 스코르체니 SS 보병대위가 지휘하는 SS와 루프트바페 공수부대의 합동 특공대가 무솔리니를 구출해 독일로 호송했다. 이 작전은 '떡갈나무 작전'이라는 작전명으로 스코르체니는 자신이 거느린 SS 소속의 프리덴탈 특수부대와 제 2 공수사단에서 차출한 병력으로 구성된 혼성 특수임무부대를 이끌고 무솔리니가 연금된 호텔에 DFS 230 글라이더를 타고 돌입, 무솔리니를 구출하는 데 성공했다. 이 때 부대의 실체를 숨기기 위해 스코르체니 휘하의 특수부대는 이탈리아에 올 때부터 전원 공군 공수부대원으로 위장했으며, 스코르체니를 지원하기 위해 아래쪽 골짜기와 케이블카 정거장을 장악한 지원부대는 진짜 공군 공수부대였다.
글라이더 12기에 나눠 탄 특공대는 그란 삿소 산장 근처 야산 분지의 좁은 평지에 강행 착륙했다. 이 산장을 경비하던 이탈리아 헌병군 1개 중대는 소총 정도의 빈약한 무장밖에 없었지만 독일군의 습격에 저항했으나 스코르체니가 데려온 친무솔리니파 이탈리아 육군 장성 페르난도 솔레티 장군이 "국왕의 어명으로 무솔리니가 다시 권좌에 복귀한다!"라고 거짓말을 했고, 독일 특공대가 산장의 통신실을 장악해 통신을 끊어버린 바람에 솔레티 장군의 거짓말을 확인하지 못해 결국 저항을 멈췄다. 스코르체니 부대는 무솔리니를 무사히 구출해 단거리 이착륙이 가능한 Fi 156 피젤러 슈토리히 연락기로 무솔리니와 지휘관 스코르체니 중령이 먼저 탈출했다. 그리고 남은 SS 대원들은 유유히 케이블카로 하산해 공수부대와 합류해 퇴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