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21 00:06:37

쿠투조프 작전


제2차 세계 대전의 전투 목록 | 유럽/아프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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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투조프 작전
러시아어: Орловская стратегическая наступательная операция «Кутузов»[1]
독일어: Orjoler Operation[2]/Operation Kutusow[3]
영어: Operation Kutuzov
제2차 세계 대전동부전선의 일부
쿠르스크 전투의 일부
파일:쿠투조프 작전1.png
▲ 오룔 돌출부 근방의 양군 전선[4]
시기
1943년 7월 12일 ~ 8월 18일
장소
소련 러시아 SFSR 오룔브랸스크 일대
교전국 [[틀:깃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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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지휘관 [[틀:깃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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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실리 소콜롭스키|
바실리 소콜롭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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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 전선군 사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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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키안 포포프|]]
(브랸스크 전선군 사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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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깃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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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스탄틴 로코솝스키|
콘스탄틴 로코솝스키
]]
(중부 전선군 사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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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벨 리발코|]]
(제3근위전차군 사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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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깃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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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르 고르바토프|
알렉산드르 고르바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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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군 사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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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깃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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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페듀닌스키|]]
(제11군 사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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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깃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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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바그라먄|]]
(제11근위군 사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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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깃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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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귄터 폰 클루게|
귄터 폰 클루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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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 집단군 사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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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깃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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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트 리터 폰 그라임|
로베르트 리터 폰 그라임
]]
(제6항공함대 사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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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깃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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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터 모델|]]
(제2기갑군, 제9군 사령관)
[[틀:깃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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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깃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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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타르 렌둘릭|]]
(제35군단 사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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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깃발|
깃발 명칭
]][[요하네스 프리스너|
요하네스 프리스너
]]
(제23군단 사령관)
결과
독일 국방군의 오룔 돌출부 포기
영향
중부 전선에서 쿠르스크 전투 종료
중부 전선에서 독일 국방군의 마지막 전략적 공세 실패[5]
병력 군인 1,287,600명[6]
야포 26,400문
전차/자주포 2,400대
항공기 3,000기
군인 307,000명
야포 5,500문
전차/자주포 625대
항공기 610기
피해 규모 전사/실종 112,529명
부상 317,361명
전차/자주포 2,586대
야포 892문
항공기 1,104기[7] ~ 1,705[8]
전사 14,215명
실종/포로 11,300명
부상 60,549명
항공기 218기

1. 개요2. 전투 서열
2.1. 독일군2.2. 소련군
3. 전개
3.1. 공세 준비3.2. 오룔 북쪽과 동쪽에서의 공세3.3. 오룔 남쪽에서의 공세와 하겐 라인으로의 퇴각
4. 양측의 피해5. 결과

[clearfix]

1. 개요

쿠투조프 작전은 쿠르스크 전투를 구성하는 3개의 작전[9] 중 하나이며 목표를 달성하여 오룔 돌출부를 제거했다. 44년 6월까지 스몰렌스크와 브랸스크를 탈환하고 소련군은 독일군이 전략적으로 공세를 펼칠 역량을 상실하게 해 피해는 크지만 성공한 작전으로 평가된다.

2. 전투 서열

2.1. 독일군[10]

  • 중부 집단군 ( 사령관 : 귄터 폰 클루게 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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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9군 ( 사령관 : 발터 모델 상급대장[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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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소련군[14]

  • 스타브카 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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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전개

3.1. 공세 준비

소련군은 쿠르스크에서 방어를 준비할 때부터 남북으로 반격 작전을 미리 준비해 뒀으며 이 중 북쪽의 쿠투조프 작전은 오룔의 탈환과 독일군의 돌출부 제거가 목적이었다. 돌파를 담당하게 될 것은 서부 전선군 좌익의 11근위군과 브랸스크 전선군의 3군, 61군이었으며 후방에 3근위전차군과 4전차군이 돌파구로 파고들기 위해 대기중이었다. 소련군은 1,287,000명의 병력과 26,000문의 포, 2,400대의 전차/자주포,[22] 3,000기의 항공기를 보유중이었다.

독일군은 쿠투조프 작전 시작 시점에서 9군과 2기갑군 합쳐 약 307,000명의 병력을 보유중이었으며 5,000문의 포와 600대의 전차/자주포를 보유중이었다. 중부 전선을 담당하고 있던 6항공함대는 7월 10일 기준으로 610기의 항공기를 보유중이었다. 이중 138기가 전투기였고 335기가 공격기/폭격기였다. 그러나 작전 시작 시점에서 대부분의 항공기는 성채 작전을 위해 9군을 지원하고 있었으며 이후 2기갑군 지역이 중부 전선의 격전지가 된 이후로도 스몰렌스크를 방어하던 4군과 비텝스크를 방어하던 3기갑군도 지원해야 했기에 오룔에 온전히 집중할 수가 없었다.

3.2. 오룔 북쪽과 동쪽에서의 공세

7월 10일에 독일 9군의 공세가 사실상 끝나면서 스타브카는 쿠르스크 북쪽부터 반격을 개시하기로 했다. 공세를 담당한 서부 전선군과 브랸스크 전선군은 성채 작전 방어에 전혀 투입되지 않았기 때문에 온전한 전력을 보존하고 있었으며 1.5개 전선군이 5개 야전군과 5개 전차군단을 포함하여 645,000명을 보유중이었다. 추가로 스타브카 예비인 2개 전차군, 11군, 7개의 독립 기동군단[23]을 포함하여 720,000명의 병력을 보유중이이었고 브랸스크 전선군은 10,000문의 포, 서부 전선군 좌익의 2개 야전군이 6,000문의 포를 보유하여 16,000문의 포를 보유중이었다. 기갑전력을 보면 브랸스크 전선군이 794대, 3근위전차군이 731대, 4전차군[24]을 포함한 서부 전선군 좌익이 1,737대를 보유하여 3,262대의 전차/자주포를 보유중이었으며 항공전력은 서부 전선군의 1항공군이 1,322기, 브랸스크 전선군의 15항공군이 995기를 보유하여 2,317기를 보유중이었다.

반면 약 107,000명의 병력과 2,000문의 포를 보유한 독일 2기갑군은 휘하에 기갑사단이 하나도 없고 25기갑척탄병사단이 유일한 기갑전력이었으며 집단군 예비인 5,8기갑사단을 합쳐도 전차/자주포가 234대[25]에 불과했다. 게다가 오룔 돌출부를 담당한 1항공사단의 항공기는 전부 9군에 할당되어 2기갑군을 지원하는 공군 전력은 전무했다. 2기갑군은 북쪽부터 55군단, 53군단, 35군단을 배치했으며 53군단은 오룔 북쪽에서 서부 전선군의 공세를, 35군단은 오룔 동쪽에서 브랸스크 전선군의 공세를 막아야하는 상황이었다.
파일:쿠투조프 작전2.jpg

공세의 시작은 오룔 돌출부 북쪽의 서부 전선군 좌익과 브랸스크 전선군이었다. 오룔 북서쪽의 서부 전선군은 11근위군에게 2개 돌파포병군단의 지원을 받는 2개 전차군단[26]을 배속시켜 돌파를 담당하도록 했다. 서부 전선군의 최전방 전력은 20만 명의 병력과 750대 이상의 전차/자주포였으며 12일 공세 시작 당일, 11근위군의 돌파 집단은 16km 구역에 60,000명의 병력과 615대의 전차/자주포를 집결시켰다. 1km당 200문 이상의 포가 동원됐으며 8근위소총군단의 돌파구에서는 1km당 260문의 포가 있었다. 독일 53군단은 1km당 1.7문의 포가 전부였으며 돌파구를 담당하던 것은 2개의 보병연대와 40대의 전차로 구성된 제5기갑사단의 전투단뿐이었다. 소련군은 곧바로 독일군의 전방 방어선을 곳곳에서 돌파하기 시작했다. 5기갑사단이 53군단을 지원하기 위해 반격에 나섰으나 곧바로 밀려났고 독일군은 이 공세가 단순히 쿠르스크의 중부 전선군을 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9군과 2기갑군 전체를 섬멸하려는 전략적 공세라는 것을 파악했다.

11근위군의 공세와 달리 오룔 동쪽에서 시작된 브랸스크 전선군의 공세는 거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브랸스크 전선군은 북쪽부터 61군, 3군, 63군을 배치했고 최전방 전력은 17만명의 병력과 350대의 전차/자주포였다. 서부 전선군과 마찬가지로 12일에 공세를 시작했으나 35군단은 53군단 우익의 지원을 받아 이를 간신히 막아냈다. 상황이 점점 심각해지자 히틀러는 13일에 모델에게 2기갑군의 지휘권을 넘기고 오룔 돌출부의 모든 작전에 관한 전권을 부여했다. 11근위군의 돌파구는 점점 커져갔고 2기갑군은 후방을 차단당할 위기에 처했다.

14일이 되자 11근위군 우익의 50군이 공세를 시작했고 53군단은 여전히 볼호프[27]를 가까스로 사수하고 있었다. 모델은 성채 작전에 투입되어야 할 예비대를 전부 2기갑군에 지원했으며 중부 집단군은 보유한 유일한 예비 전력인 8기갑사단을 마저 투입했다. 18일이 되자 9군은 공세 개시선으로 돌아온 상태였다. 포포프[28]는 동쪽에서의 돌파가 지지부진하자 19일에 800대 가량의 전차/자주포를 보유한 3근위전차군을 투입했다. 소콜롭스키[29]도 돌파구를 확장시키기 위해 20일에 11군을 볼호프 근방에 투입했고 이어서 26일에는 650대의 전차/자주포를 보유한 4전차군도 추가로 투입했다.

3.3. 오룔 남쪽에서의 공세와 하겐 라인으로의 퇴각

9군의 예비 전력이 전부 북쪽으로 이동하고 9군 자체도 공세 개시선까지 퇴각하자 로코솝스키[30]도 2전차군을 앞세워 반격을 시작했다. 그러나 3개 전차군을 투입했음에도 소련군은 결정적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했다. 독일군 전방 방어선은 대부분 무너졌지만 그 어떤 곳도 전략적 돌파구로 발전하지 못했다. 독일 공군은 비텝스크[31], 스몰렌스크[32], 쿠르스크의 6항공함대는 물론 하리코프에서 성채 작전을 진행중인 8항공군단[33]과 미우스(Mius) 강과 도네츠 강에서 제1차 돈바스 공세를 막고 있던 4항공군단[34]의 항공기를 닥치는 대로 1항공사단에 지원하여 오룔에 투입했다. 지상군 역시 9군과 중부 집단군 예비 전력에 4군의 가용 전력[35]까지 전부 2기갑군 전선에 투입했다. 4전차군은 투입 며칠만에 80%가 넘는 T-34 전차를 손실했고 3근위전차군 역시 2주만에 50%가 넘는 전차를 손실했다. 2전차군은 9군을 막으면서 손실한 전차를 보충받고[36] 공세에 나섰으나 7월 30일이 되자 다시 60%를 손실한 상태였다.

독일군의 심각한 문제는 다른 곳에서 발생했다. 7월 25일에 무솔리니가 체포되고 히틀러는 오룔 돌출부를 포기하여 이탈리아로 병력을 이동시킬 것이라고 선언했다. 클루게는 공들여 만든 방어선을 지연전도 없이 그냥 포기하는 것에 반대했으나 히틀러는 요지부동이었고 2SS기갑군단에게 즉각 이탈리아로 이동하라고 명령했다.[37] 26일부터 모델은 철수준비를 시작했고 3일만에 준비를 완료했으나 비 때문에 8월 1일부터 철수가 시작됐다. 그 사이 7월 29일에 소련군은 볼호프를 탈환했고 8월 4일이 되자 오룔에 접근했다. 치열한 전투 끝에 8월 5일에 오룔을 탈환했고 12일이 되자 북쪽과 동쪽에서 카라체프[38]에 도달했고 15일에 탈환하는데 성공했다. 이 기간 동안 소련군은 정면이 아닌 후방에서도 10만 명이 넘는 파르티잔들이 어마어마한 파괴 공작을 벌였으며 철도 파괴를 비롯한 공작은 10만 건을 가볍게 넘길 정도였다. 독일군은 18일까지 하겐 방어선으로의 철수를 완료했고 동시에 소련군의 공세도 일단 마무리됐다.

4. 양측의 피해

쿠투조프 작전을 통해 소련군은 오룔 돌출부를 제거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후의 공세 역량을 상실할 엄청난 손실을 입었다. 소련군의 자체 추산에 따르면 11만 명의 전사/실종을 포함해 43만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했는데[39] 독일군의 피해는 25,000명의 전사/실종을 포함해 76,000명이었다. 그나마도 이게 절반 정도 진행된 8월 1일부터 독일군이 방어전이 아닌 철수전을 펼치면서 생긴 걸 감안하면 독일군이 작정하고 지연전을 펼쳤을 경우 어느 정도의 피해가 더 발생했을지 가늠이 안 될 정도다.

기갑과 항공 전력의 경우는 더 심각한데 역시 소련군의 자체 추산에 따르면 소련군은 작전 기간동안 2,586대의 기갑 차량을 손실했으며 독일군의 경우 이 기간동안의 손실에 관한 기록이 없으나 성채 작전과 쿠투조프 작전 기간을 합쳐 중부 집단군의 전체 기갑 차량 손실이 343대이므로 대충 절반이라 생각하면 무려 15:1의 교환비가 발생했다. 항공전을 보면 소련군의 추산으로는 1,104기의 항공기를 손실했고 독일 공군은 218기의 항공기를 손실했다. 그러나 독일 공군의 기록으로는 쿠투조프 작전 중 격추한 항공기만 1,705기로 1항공사단이 7월 12일부터 8월 18일까지 격추했다고 주장한 소련 항공기만 1,733기[40]이고 12대공포사단도 383기의 항공기[41]를 격추했다고 보고했다. 따라서 독일 공군의 엄격한 산정 시스템을 감안하면 비전투 손실까지 합쳐 적어도 2,000기 이상의 손실이 발생했다고 볼 수 있으며 역시 10:1에 가까운 교환비가 발생했다.

5. 결과

쿠투조프 작전의 목표는 소련군이 독일군의 주요 공세에 대응하기 위한 공세였다. 독일군의 공세를 저지하고 소련군의 반격을 위한 기초를 마련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소련은 오룔을 탈환하고 돌출부를 제거하는데 성공했다. 독일군은 성공적인 지연전을 펼쳐 중부 집단군은 들소 작전과 마찬가지로 성공적인 지연전을 펼쳐 병력을 온전히 보존하고 소련군에게 큰 피해를 입히고 전선을 단축시키고 안정화시켰다. 독일군은 19개 사단[42]을 예비대로 확보했으며 큰 피해를 입은 사단들과 2기갑군 사령부는 발칸 반도로 이동했고 9군은 2기갑군의 전선을 인수하게 된다. 독일군의 성공에는 공군력이 큰 영향을 미쳤는데 소련의 3개 항공군은 61,000회를 출격을 통해 15,000톤의 폭탄을 투하한 반면 독일 공군의 1항공사단은 압도적인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37,000회를 출격해 20,000톤의 폭탄을 투하했다.

쿠투조프 작전의 결과는 소련군의 방어 성공으로 평가된다. 예상보다 더 큰 손실을 입었지만, 소련군은 방어에 성공하면서 전선의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러한 성과는 후속 전투에서 소련군이 더욱 강력한 반격을 감행할 수 있는 기초가 되었다. 전투의 결과로 소련군은 독일군의 진격을 저지하고, 그들의 전투력을 상당히 소모시킬 수 있었다. 이는 소련 하계 공세 남쪽에서 루미안체프 작전을 통해 중부 집단군과 남부 집단군의 경계에 큰 돌파구가 발생하면서 동부 전선 전체에 위기가 닥치게 된다. 8월 7일부터 서부 전선군과 칼리닌 전선군이 4군을 상대로 수보로프 작전, 17일부터 브랸스크 전선군이 9군을 상대로 브랸스크 공세, 26일부터 중부, 보로네시, 스텝 전선군이 2군, 4기갑군, 8군을 상대로 체르니코프-폴타바 공세를 시작하면서 독일군 방어선은 완전히 무너졌고 소련군은 그토록 바라던 전략적 돌파구를 뚫는데 성공했다.

쿠투조프 작전은 전반적인 쿠르스크 전투의 끝으로 평가되며 소련군이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 소련군의 조직적 방어와 전략적 판단이 전쟁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중요한 요소임을 보여준다. 이후 전반적인 전쟁의 방향을 결정짓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으며 소련의 군사 전략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1] 오룔 전략공세작전 "쿠투조프"[2] 오룔 작전[3] 쿠투조프 작전[4] 브랸스크 바로 동쪽에 있는 점선이 하겐 방어선이다.[5] 성채 작전이 성공했더라도 전쟁의 주도권이 이미 소련군에게 넘어간 상태였기 때문에 전략적 공세인지에 관해서는 논란이 있으나 규모 자체는 전략적 공세라고 봐도 무방하다.[6] 서부 전선군 233,300명, 브랸스크 전선군 409,000명, 중부 전선군 645,300명[7] 소련 측 기록[8] 독일 측 기록, 이 기록이 훨씬 신빙성이 높다.[9] 성채 작전, 루미안체프 작전[10] 7월 7일 기준[11] 7월 13일부터 발터 모델 상급대장이 겸임[12] 8월 5일까지[13] 제2기갑군 사령관 겸임[14] 7월 1일 기준[15] 7월 30일에 브랸스크 전선군에 이관[16]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62군 사령관이었던 장군이며 7월 14일부터 이반 페듀닌스키 중장이 지휘[17] 7월 15일에 새로 편성되었기 때문에 아래 편성은 8월 1일 기준, 7월 30일에 브랸스크 전선군에 이관[18] 작전에 참여한 우익 일부만 작성[19] 서부 전선군의 주력은 수보로프 작전에 참여중이었고 쿠투조프 작전에는 휘하 야전군 9개 중 2개만 참여했다.[20] 2군 방면에 배치되어 작전에는 거의 참여하지 않음[21] 2군과 9군 경계에 배치되어 작전에는 거의 참여하지 않음[22] 소련군은 공세시 1파만 투입 전력으로 기록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후방 병력은 전부 제외된 수치이며 기갑전력이 돌파를 직접 담당하는 독일군과 달리 돌파 후 투입되는 소련 기갑전력의 특성상 실제 기갑전력은 이보다 훨씬 많다.[23] 전차군단 5개, 기계화군단 1개, 기병군단 1개[24] 7월 20일에 서부전선군에 증원[25] 전차 144대, 돌격포 23문, 자주포 67문[26] 1,5 전차군단[27] 레닌그라드 근처의 볼호프 말고 오룔 북쪽의 볼호프로 문서 상단 지도에 bolkhov로 표기된 곳이다.[28] 브랸스크 전선군[29] 서부 전선군 사령관[30] 중부 전선군 사령관[31] 3군 지원[32] 4군 지원[33] 4기갑군과 켐프 분견군 지원[34] 1기갑군과 6군 지원[35] 4군은 7개 사단을 타 전역으로 보내면서 14개 사단만으로 담당구역을 방어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36] 약 50% 정도를 손실했다.[37] 그렇지만 미우스 강의 전황이 위급해지면서 잠시 남쪽으로 이동해 제1차 돈바스 공세에 투입된다.[38] 문서 상단 지도에서 브랸스크 동쪽의 Karachev로 표기된 지역.[39] 다시 말해 이게 최소 수치라는 이야기다.[40] 성채 작전이 아직 진행중이었으므로 두 작전의 전과가 합쳐진 것이며 전투기가 격추한 것은 1,671기이다.[41] 이 수치 역시 성채 작전에서의 전과도 합친 것이다.[42] 보병사단 11개, 기갑사단 5개, 기갑척탄병사단 5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