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자동차의 역사를 설명한 문서이다.2. 최초의 자동차 : 20세기 이전
1769년 프랑스의 니콜라 퀴뇨가 발명한 세계 최초의 증기자동차 파르디에 아 바푀르 |
카를 벤츠가 1885년 최초로 특허를 받은 삼륜자동차 페이턴트 모터바겐 |
퀴뇨의 삼륜 증기차 복원품 주행 영상 |
벤츠 삼륜차 주행 영상 |
이 페이턴트 모터바겐은 최초로 장거리 운행을 한 자동차이기도 하다. 카를 벤츠의 아내인 베르타 벤츠(Bertha Benz)는 1885년 8월 5일 자녀들과 함께 이 자동차를 타고 만하임(Mannheim)에서 포츠하임(Pforzheim)까지 약 105km를 운행했다. 당시만 해도 연료 탱크가 없어서 베르타는 중간에 비즐로흐(Wiesloch)의 한 약국에서 연료를 구입했는데, 이 약국은 세계 최초의 주유소가 되었다. 또한 엔진 노즐이 막히면 머리핀으로 뚫고, 전선이 늘어지면 자신의 가터로 묶어서 고정시켰다. 이 운행은 이후 자동차 개발의 한 이정표가 되었다.
뒤이어 고틀리프 다임러와 빌헬름 마이바흐가 가솔린 사륜차를 만들었고 비슷한 시기에 아르망 푸조 역시 자동차를 만들었으며, 미국은 조금 늦게 듀리에 형제가 듀리에 모터 왜건을 개발하며 유럽 각국과 미국에서 자동차 산업의 첫걸음을 떼었다.
그리고 1889년에 최초의 자동차 제작 회사인 파나르 르바소가 설립되었다. 이 파나르 르바소는 슬리브 판을 최초로 도입한 회사로도 유명하다.
이때의 자동차들은 마차나 자전거에 엔진이 달린 수준으로 그저 괴짜들의 관심사였다.
3. 20세기의 발전사
3.1. 20세기 초반
자동차의 역사는 기술의 발전 양상에 따라 브래스기(1900-1918), 빈티지기(1919-1929), 전쟁 이전기(1930-1946), 전쟁 이후기(1946-1974), 현대기(1975-현재)로 나뉜다.롤스로이스 실버 고스트 | 포드 모델 T |
3.2. 1920년대
오스틴 세븐 | 마이바흐 체펠린 DS7 |
반대로 여전히 영향력이 있었던 귀족들과 부유한 자본가들에 의한 고급차 수요도 많았는데, 이스파노-수이자, 란치아, 이소타 프라스키니, 호르히, 벤츠, 마이바흐, 벤틀리 등의 메이커가 이런 고급차를 생산했으며 롤스로이스, 부가티, 탈보-라고는 그 정점에 있었다.
3.3. 1930년대
1930년대, 영국 모리스 모터스 사의 자동차 제작 공정을 보여주는 홍보용 다큐멘터리, 《선물(The Gift)》. 딸에게 자동차를 선물해 주고 뿌듯해하는 남편이 아내에게 생산 과정을 설명해주는 식으로 구성되었다. |
시트로엥 트락숑 아방 | 폭스바겐 올드 비틀 |
3.4. 1940년대
포드 GPW | GMC CCKW |
1940년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한동안 위축되었던 자동차 산업이 다시 활성화되는 추세를 보였다. 미국에서는 제너럴 모터스, 올즈모빌 88 등 고압축 V8 엔진을 장착한 모델들을 발표했으며, 영국에서는 포드 칸설, 모리스 마이너, 로버 P4 등을 발표했다.
3.5. 1950년대
벤츠 300SL | 캐딜락 엘도라도 |
3.6. 1960년대
재규어 E 타입 | 페라리 250 GTO |
3.7. 1970년대
'78 쉐보레 몬테 카를로 | 트라이엄프 돌로마이트 |
포드 핀토 | 토요타 코롤라 |
이렇게 전세계가 힘든 와중에도 기술적 발전은 지속됐는데, 가격과 실용성이 주류가 되면서 기업들이 낮은 가격에 우수한 기술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여 산업적으로 큰 발전을 이룩했으며, 또 유럽, 아시아, 아메리카의 기업 모두가 전세계를 무대로 격돌하는 한편 TV가 널리 보급되면서 TV 광고를 비롯한 마케팅에도 열을 올려 상업적으로도 대단히 발전하였다.
로터스 타입 79 | 페라리 312 T2 |
1974년에 전 세계 자동차가 3억 대를 돌파하면서 자동차의 역사는 그 이후인 1975년부터 현대기를 맞이하게 된다. 현대기가 시작되며 기술의 중요성이 실소비층에게 와닿았고,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도 강조되면서 미래 기술을 선도하는 비전을 내 보이는 것이 중요해져 첨단 기술들이 대거 등장하기 시작하여, 현대기 자동차의 가장 큰 특징은 사륜구동과 연료 분사 방식의 표준화, 컴퓨터 지원 설계(CAD)와 같은 한층 더 고차원적인 기술들이라 할 수 있다.
현대 포니 | 오펠 레코드/대우 로얄 |
3.8. 1980년대
폭스바겐 폴로 | 페라리 테스타로사 |
란치아 037 랠리 | 맥라렌 MP4/4 |
토요타 AE86 | '82 닷지 챌린저 |
한편 고급차 시장이 다시 발달하자 그동안 좋게 말하면 가성비 좋은 차들을 만드는 회사고, 나쁘게 말하면 싼마이 회사라는 이미지가 있던 일본의 제조사가 내수 시장에서 다진 기술력을 바탕으로 럭셔리 카 시장에 발을 들여 놓게 되었고, 고급과는 거리가 먼 이미지를 벗기 위해 완전히 새로운 별도의 브랜드로 런칭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렉서스이다. 이전에도 럭셔리 전용 디비전은 미국 등지에서 존재해 왔으나 렉서스는 유별난 성공을 거뒀고, 대중차 회사의 럭셔리 브랜드로서 큰 귀감이 되어 이는 인피니티, 아큐라, 제네시스 등의 탄생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3.9. 1990년대
현대 티뷰론 | 마쓰다 미아타 |
'94 포드 머스탱 | 포르쉐 993 |
맥라렌 F1 로드카 | 맥라렌 F1 GTR |
1990년대까지 남아 있던 많은 요소들이 21세기가 개막하며 사라져 버려 20세기의 유산으로 남게 된 한편, 정교한 설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신식 자동차들의 명맥이 대거 시작되었기도 하다. 1980년대를 거치며 한창 무르익었던 20세기 특유의 감성적인 풍조를 마감하는 황혼기이자 새로운 시대인 21세기를 준비하며 초석을 닦아 놓은 시대.
4. 21세기의 발전사
4.1. 2000년대
파가니 존다 | 미니 클럽맨 |
인도의 저소득자들을 타깃으로 한 경차, 타타 나노 | 다이아몬드 코팅 도료를 칠한 하이퍼카, 코닉세그 트레비타 |
4.2. 2010년대
2010년대가 되자 대한민국 자동차 회사들은 N이나 제네시스 같은 전에 진출해 본 적 없던 시장의 개척으로 세계 시장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 폭스바겐의 디젤게이트는 디젤 엔진의 전반적인 쇠락이라는 결과를 불러왔다. 한편 이 시기에는 SUV가 엄청나게 유행하기 시작했으며, 비포장도로용 차에서 출발한 SUV는 도심형이나 고급, 고성능 등 여러 분야로 가지치기를 해 나갔으며 BMW X6은 장르 파괴[10]로 대중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몇몇 브랜드는 세단을 단종시키고 SUV만 생산하기까지 했다.페라리 SF90 스트라달레 | 폭스바겐 ID.4 |
4.3. 2020년대
기아 EV6 GT | 현대 투싼 |
4.4. 미래의 자동차
페라리 F250 테스트 뮬 | 제네시스 X 컨버터블 |
[1] 그러나 브레이크가 갖춰지지 않아 가속은 됐지만 그후론 멈출수가 없어 벽에 충돌하기 일쑤였다고 한다. 이를 본 마을사람들이 괴물이라고 생각했다는 루머도 있었다.[2] 다만 비슷한 시기에 내연기관 자동차를 발명한 고틀리프 다임러와 지그프리트 마르쿠스가 있어 최초가 누구인가에 대한 논란은 아직도 있다.[3] 현재 생산직 두 달 치 월급으로 비유해 보면 쉽게 비유가 될 것이다.[4] 민수용 비틀은 전후에 생산되기 시작해서 2003년까지 생산되었다.[5] 자동차의 초기 역사에서는 '부와 사치의 상징'인 고급 자동차의 비중이 컸으며 (포드 모델 T로부터 시작된) '실용품으로써의 자동차'는 상대적으로 비주류의 입장에 있었다. 하지만 처음에는 비주류였던 자동차의 실용적인 측면이 점점 중요해지다가 결국에 자동차 시장, 즉 자동차라는 분야의 주류를 완전히 차지하게 되었으니 이러한 '전환 과정'이 완성된 시점이 바로 1970년대라는 의미이다.[6] 엄밀히 말하면 카마로와 파이어버드 등이 남아 있긴 했으나 머슬카와는 거리가 있는 편이었고, 머스탱 역시 4세대에서 유선형으로 변했다가 2005년에 와서야 다시 직선형 디자인으로 돌아왔다.[7] 일본의 자동차가 유럽과 북미로 수출되기 전까지 자동차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툭하면 고장이 나지만 어쩔 수 없지'였다. 수천 개의 부품이 정밀하게 짜맞춰져 있는 기계덩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는 만큼 고장이 잦아도 관대하게(?) 넘어가거나 그때그때 고쳤던 것이다. 하지만 고장이 잘 나지 않는 일본 차의 등장으로 이런 인식이 송두리째 바뀌게 된다.[8] 양산차 기반의 모터스포츠의 경우 출전하려면 당연하게도 레이스 사양의 자동차를 일정 대수 이상 생산된 차량을 기반으로 개조해서 만들어야 한다는 불문율과도 같은 규정이 있는데, 돈이 있는 기업들은 이를 역이용해서 레이스 사양으로 개조할 것을 의식한 차량들을 그만큼 생산해 버리는 식으로 대응했다. 양산 규정 인증용 차량이라는 의미에서 이러한 차량들을 보통 호몰로게이션 차량이라고 부른다. 이것이 팬들에게서도 인기를 얻자 주최자들 또한 이런 기조에 편승해 버려서 생산해야 하는 차량의 대수를 줄여 주는 식으로 대응하였다. 그럼에도 양산 규정 자체가 없어지진 않았는데, 왜냐하면 양산차와 접점이 없는 레이스카들은 프로토타입이라고 따로 부르기 때문이다.[9] 공인 기록은 아니지만 후속 모델은 시속 500킬로미터에 근접했다.[10] 원조는 폰티악 아즈텍이고 실제로 아즈텍은 상당히 좋은 차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엄청난 혹평을 부른 디자인으로 더 유명하다.[11] 이쪽은 배기가스 절감이 아닌 모터를 이용한 빠른 탈출가속이 목적이다.[12] 세단의 승차감, 해치백의 편의성, SUV의 공간 활용성, 왜건의 확장성, 때로는 스포츠 쿠페의 고성능 등. 선루프 옵션으로 컨버터블의 개방감을 느낄 수도 있다.[13] 전기 자동차뿐 아니라 내연기관 분야에서도 조금이라도 더 연비가 좋은 엔진을 만들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14] 이쪽의 경우 호불호가 갈린다. 현대 제네시스 쿠페의 경우 준대형 세단인 현대 제네시스의 섀시를 그대로 사용하는 바람에 둔한 움직임과 넓은 선회반경이라는 치명적인 단점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