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2014년 서울특별시 강서구 내발산동에서 3천억 자산가가 피살당한 사건.2. 상세
2014년 3월 3일 새벽 3시 서울 내발산동에 있는 한 건물 3층 관리사무실 앞에서 건물주인 회장 송승호(67)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피해자가 늦게까지 연락이 되지 않자 걱정하여 찾아온 피해자의 아내와 건물 경비원이 피해자의 시신을 최초로 발견하였으며 시신은 둔기에 의해서 맞은 흔적이 있었으나 부검 결과 둔기가 무엇인지는 밝히지 못했다.[1] 피해자인 송씨는 사건이 발생한 건물을 포함한 인근 다세대주택 및 웨딩홀 등을 소유한 수천억원의 자산가였다. 다만 피해자는 아래에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돈과 관련하여 평소에 악평이 자자한 인물이었으며 한때 사기 혐의로 구속까지 되었다. # 따라서 경찰은 용의자가 너무 많아 확보하는 데 시간이 걸렸으며 피해자 지인들도 범인을 잡기 쉽지 않을 거라는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경찰은 사건 당일, 사건 발생 추정 시각에 모자를 눌러쓴 한 남성이 사건이 발생한 건물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장면이 찍힌 CCTV 영상을 확보하였다. 이를 토대로 신원조회한 결과 범인은 팽용찬(44)으로 드러났다.[2]
하지만 용의자 팽용찬은 범행 사흘 만에 인천공항에서 중국으로 출국했고 광저우, 심양 등으로 옮기며 도피하기 시작했다. 경찰은 인터폴에 적색수배령을 요청하였고 중국 공안과도 공조 수사하기에 이른다. 결국 용의자는 당해 5월 22일 중국에서 검거되었고 중국 정부는 6월 24일 살인범인 팽씨를 한국으로 인도하였다.
본국으로 송환된 피의자 팽용찬이 자신의 살인 혐의에 대해 순순히 인정하면서 오리무중으로 끝날 수도 있었던 사건이 깔끔하게 일단락되는 듯했지만 경찰은 피해자와 일면식도 없는 팽용찬이 살인을 저지른 걸 이상하게 생각해 계속 추궁했고 결국 팽용찬이 자신의 살인은 누군가의 요구라고 진술하면서 사건은 일대 변화가 일어났다.
그리고 그 교사범이 새정치민주연합 소속의 현직[3][4] 서울특별시의회 의원이었던 김형식[5]이라는 점에서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3. 수사 과정
3.1. 피의자들간의 엇갈린 주장
살인 혐의로 수사를 받은 피의자 팽용찬은 현 서울시의원이자 자신의 10년지기 친구인 김형식으로부터 사주를 받고 살인을 했다고 진술하였으며 6월 24일 오후 김형식 의원도 친구와 함께 체포되어 수사를 받게 되었다. 김 의원은 묵비권을 행사하면서 사실상 살인교사 혐의를 부인했다. 김 의원의 변호인은 "살인교사를 한 지 2년이 지나서야 살인이 저질러졌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 팽씨가 돈을 이유로 범행을 해놓고 책임을 덜기 위해 김 의원을 끌어들였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서울남부지법에 내기도 했다.반대로 팽씨 측의 변호인은 김 의원의 살인교사를 주장했다. 김 의원이 최초로 범행을 사주한 것은 2년 전이지만 팽씨는 도저히 송씨를 죽일 수 없어 핑계를 대면서 미뤄 왔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의원은 여러 차례 팽씨에게 범행을 채근하자 팽씨는 "송씨가 오늘 출근을 안 한 것 같다", "발목을 다쳐 깁스해서 못하겠다" 등의 이유를 대면서 회피하였다고 하며 김 의원이 팽씨에게 살해 도구를 주면서 범행을 본격적으로 압박한 것은 2014년 1월이라는 게 팽씨 측 변호인의 주장이다. 김 의원이 팽씨를 불러 송씨의 건물로 가서 송씨와 송씨 아내가 사무실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네가 못하면 내가 죽이겠다"고 뛰어나가려고 하자 팽씨가 "나중에 내가 하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범행(2014년 3월 3일) 전날 김 의원이 '오늘은 무조건 끝내라'고 했다는 팽씨의 진술도 덧붙였다.
팽씨의 진술만을 보자면 김 의원의 치밀한 범행 계획이 눈에 띈다. 이미 사전에 범행 도구의 유기 장소를 미리 정했고,사건 이후의 동선까지도 계획하여 팽씨에게 주문했다고 하며 범행 발생 전의 팽씨의 동선까지 사전에 계획한 후 그에 따라 팽씨는 수십 차례 이상 사전 예행연습을 거쳤다고 한다. 김 의원은 범행 현장 주변의 CCTV의 위치를 확인한 후 팽씨로 하여금 이를 피하도록 한 후 인적이 드문 곳을 이용해서 이동하게끔 지시했다. 팽씨는 범행 현장 건물 뒤편에 있는 건물의 2층 주차장에서 피해자 송씨의 사무실을 주시하며 송씨의 출퇴근 여부나 건물 각 층의 인기척 등을 확인하면서 범행 타이밍을 재기도 했다. 이 점에서 청부 살인을 소재로 한 영화 황해가 떠오르기도 한다.
그것이 알고싶다(2014년 7월 19일 방영) 등에서 방영한 내용에 따르면 팽씨를 사주했다는 정황이 상당 부분 드러났다. 특히 유치 상태에서 김 의원이 팽씨에게 쪽지를 보낸 사실이 드러나면서 심히 상황이 묘해졌다. 방송에서 따르면 김 의원은 쪽지를 총 3차례 보냈는데 그 내용의 요지는 팽씨가 일체의 진술을 거부해 줄 것을 부탁한 것이다. 누구의 진술이 진실인지를 떠나서 김 의원이 만약 무고하다면 '거짓말 하지 마라'는 식으로 쪽지를 보내는 것이 상식선의 행동이지만 진술을 거부할 것을 종용했다는 점에서 팽씨가 김 의원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하지 말 것, 더 나아가 팽씨가 자신에게 불리한 사실을 알고 있다는 논리적으로 귀결된다. 이에 대해 팽씨가 답장을 보냈음이 밝혀졌는데 답장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니(김 의원)가 고인(송씨)에게 얼마나 협박을 받아서 고통을 겪었는지 자세히 말하고 선처를 구하는 방법이 최선인 것 같다', '내가 중국 공안에 잡혀서 구류소에 있을 때 (너의) 첫마디가 탈출과 자살이었어. 통화하면서도 한 번도 내 걱정해준 적 없다. 진짜 네가 나를 친구로 생각한다면 다 내려놓고 선처를 바라자'는 내용이었다.
3.2. 수사 결과
검찰은 김 의원이 '송씨가 소유한 순봉빌딩[6][7][8]이 포함된 서울 강서구 발산역 일대 부동산을 일반 주거지역에서 상업지역으로 용도변경해 주겠다'는 명목[9]으로 2010년 10월부터 2011년 12월까지 5억 2,000만 원의 금품과 수천만 원어치의 술 접대를 받았음이 확인되었다. 해당 지역은 애초부터 상업지역으로 용도변경이 불가능했지만 김 의원은 이 사실을 알고도 송씨에게 용도변경을 약속해 주었다고 발표하였다.용도변경이 지체되자 송씨는 김 의원의 금품수수 사실을 폭로하겠다며 협박하기 시작했다. 이에 정치 생명이 끝날 것을 두려워한 김 의원은 팽씨를 이용해 송씨 살해 계획을 세웠다고 발표했다. 검찰은 김 의원이 팽씨에게 생활비를 대 주며 '송씨가 악독하게 돈을 번 나쁜 사람'이라고 주지시켰다고 밝혔다. 여기에 팽씨가 자신에게 빌린 돈 7000여만원도 탕감해 주겠다고 제안했으며 팽씨는 결국 전기충격기와 손도끼 등을 이용해 송씨를 살해했다는 것이 수사당국의 주장이다.
2014년 7월 23일, 검찰은 살인교사 혐의로 피의자 김 의원을, 살인 혐의로 피의자 팽씨를 각각 구속 기소하였다. 검찰은 공범인 팽씨가 일관되게 진술했으며 피의자 간에 오고간 휴대전화 문 자내용, 인터넷 검색기록 등을 추가로 확보하여 혐의 입증에 자신감을 보였다.
4. 재판 결과
김 의원은 국민참여재판을 받은 1심에서 살인청부 혐의가 인정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았고 팽용찬은 징역 25년을 선고받았다. # 김형식은 사회적 지위나 사건 발각 후 꼬리를 자르려 팽씨에게 연락한 점이 가중처벌되었다는 것이 판결문의 요지. 팽씨도 청부살해라는 점을 감안해 보통살인보다 가중처벌했다고 밝혔다.이후 둘 다 항소했다. 2심에서 팽씨는 사건에 협력하고 반성하는 기미가 있다며 5년이 줄어든 징역 20년을 선고받았고 김형식은 그대로 무기징역이 선고되었다. # 팽씨는 상고를 포기하여 그대로 징역 20년이 확정되었고, 김형식은 이에 불복하고 상고했으나 대법원에서 2015년 8월 19일 상고를 기각해 무기징역이 확정되었다. #
5. 그 외
이후의 조사 내용 등에 따르면 살해당한 송씨도 깨끗한 인물은 아닌데 여러 차례 정치가나 공무원 등에게 뇌물을 준 흔적이 발견되었다고 하며 맨 처음 송씨의 재산 형성 과정에서 1,000억 원대의 재산을 상속해 준 이순봉의 딸은 사건 이후에도 그 재산이 본인의 것인데도 불구하고 억울하게 빼앗겼다고 주장했다.[10] 본래 송씨는 화물 트럭을 운전하던 사람이었는데 어떠한 계기로 인해 일본에 살던 먼 인척 관계인[11] 재일교포 사채업자 이씨의 재산관리인 노릇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씨가 송씨에게 한국에 남겨둔 재산을 맡겨 놓은 와중에 이씨가 일본에서 탈세 혐의로 갑자기 수사에 들어가게 되고 한국에 있는 재산에 신경쓸 틈이 없어진 사이 송씨는 이씨의 인감도장과 여러 서류를 위조하여 이씨의 1,000억 원대 재산을 자기 것으로 횡령했다는 것이다.(#1, #2) 이 과정에서 송씨는 사기 혐의로 기소되어 법정구속되었으며 살인 사건 당시 송씨 소유였던 웨딩홀의 전 대표와도 웨딩홀의 소유권을 두고 법정공방을 하게 됐다. # 송씨는 1심에서 사기 및 위조 혐의를 인정받아 징역 8년을 선고받았으나 2심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고 웨딩홀 관련 소송 역시 승소하면서 부를 축적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상고심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되어 일단은 유죄 판결이 나긴 하였으나 1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재판이 진행되면서 이미 송씨는 이씨로부터 상속받은 재산을 재투자해 훨씬 더 많은 돈을 번 후였다.이를 종자돈으로 삼아 부동산 투기, 재개발, 임대 등의 방법을 통해 3,000억 원으로 불려서 서울 강서구 일대의 신흥 재벌로 행세해 왔으며 이 과정에서 정치가와 공무원들에게 상당한 로비를 하여 많은 이득을 보았고[12] 그들에게 준 뇌물을 포함하여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한 문제의 "매일기록부"의 존재를 때때로 주변인에게 언급하였다고 한다. 이 매일기록부에는 노래방 팁 1만 원과 같이 소소한 것도 있었다. 또 자신을 검찰에 고발한 인근 웨딩홀 사장을 내쫓고 그 웨딩홀과 뷔페식당을 자신의 아들에게 물려줬다. 송씨가 운영한 상가·호텔·웨딩홀·골프연습장 등에서는 저임금으로 직원이 수시로 바뀌었고 자신의 건물 세입자에게 친척과 거래할 것을 종용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 때문에 적이 많았다고 하며 다양한 의혹들이 제기되었다.
하지만 피해자 송씨가 돈에 대하여 굉장히 까다롭고 악착같은 사람이었음에도 1000억대 재산의 상속 과정에 대하여는 법적으로 잘못된 것이 없다는 판결을 받았고[13] 이에 대하여 유족들은 언론과의 접촉을 피했다. 그래서언론에 공개된 상속 과정, 송씨의 사업과 행동에 대하여 밝힌 사람은 고인의 가족과 임차인 등 주변인들이었다. 그들의 진술 내용은 비슷하며 송씨의 재산은 재일교포 이씨의 재산을 사실상 편법적인 방법으로 빼앗아서 형성된 것이라고 봤다. 송씨는 유능한 변호사를 사서 승소를 만들어낸 모양이지만... 시사저널 보도에 따르면 2002년부터 투병 생활을 해 온 고령의 이씨가 한국 재산 관리에 소홀해진 틈을 타 이씨가 소유한 'ㅇ산업'이라는 회사의 법인 인감이 찍힌 매매계약서를 만들었고 'ㅇ산업'은 서류상 폐업 처리된 후 송씨가 이름만 'ㅅ산업'으로 바꾸어 관리했다고 한다.#
여담으로 공교육살리기시민연합은 송씨가 사실은 법조계에 어마어마한 권력을 가지고 있던 법조마피아의 고위 인물이고 그가 지금까지 재판에서 승소한 것은 모두 그가 법피아의 권력을 이용해 불리한 증거를 무시시키고 불공정한 판결을 받았기 때문이며 김 전 의원은 그러한 송씨로부터 폭행을 당한 적도 있다고 주장했다.
프로파일러 배상훈이 당시 법정에 김형식의 증인으로 등판해 김형식을 옹호했는데, 이는 그의 커리어에 큰 오점으로 남았다. 당시 법정에서 검찰과의 대질에 따르면 그가 경찰에 실제 근무한 기간은 2년도 안 되며, 본인이 한 진술 분석 중 결재라인을 통해 정식으로 인정된 것은 하나도 없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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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보다 정확하게는 한 쪽은 날이 있고 한 쪽은 날이 없는 예기와 둔기가 섞인 형태의 도구로 추정되었는데 나중에 이것은 손도끼로 밝혀졌다.[2] 수사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범행현장 반경 1km의 CCTV의 녹화영상을 확인한 후 용의자의 동선에 따라 추가적으로 확인하였다고 한다. 확인한 CCTV만 합치면 1000대 이상이라고 하며 용의자가 탄 택시의 GPS 덕분에 피의자 팽씨의 범행 후 이동 루트를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고 한다. 팽용찬은 범행 후 택시를 한 번 갈아탔는데 그의 범행이 새벽에 이뤄졌기 때문에 우연히 같은 택시가 잡혀 버리는 바람에 택시기사가 명확히 기억하게 되어 수사가 더 쉬워졌다.[3] 체포 후에도 사퇴하지 않았으며 탈당만 하였다. 대법원 확정 판결로 인해 의원직을 상실했다.[4] 한편 이 사건의 여파로 새정치민주연합의 후신인 더불어민주당은 2016년 재보궐선거 당시 해당 지역구에 후보를 공천하지 않았다. 참고로 해당 지역구는 강서구의원 출신의 국민의당 김경자 후보가 당선되었다.[5] 2015년 8월 19일 범인으로 확정되었다.[6] 서울 강서구 공항대로 290 (내발산동 646-1)[7] 송씨가 자산관리인이었던 시절 그 자산의 소유자인 재일교포 사채업자 이순봉의 이름을 딴 빌딩이며 송씨의 회사도 순봉기업이었다. 언론에 공개된 사실이다.[8] 사건 이후 신우빌딩으로 이름을 바꿨다. 발산역 5번출구로 나오면 있다.[9] 용도변경 시 토지 가격이 폭등한다. 송씨가 예상한 수준은 1조 원대였다.[10] 다만 본인도 이씨로부터 어마어마한 양의 재산(현금만 60억 엔이라고 한다)을 상속받는 과정에서 탈세를 저질러 일본에서 '사상 최고액의 탈세', '탈세왕'의 칭호를 언론으로부터 받고 2년 6개월의 징역을 선고받은 사람이다. #[11] 이 재일교포 이씨는 송씨의 아내 이 모씨의 8촌지간 친척이다.[12] 그 뇌물을 받은 사람 중 한 명이 바로 김형식 전 의원이었다. 7억여 원을 김형식에게 대출해 준 후 그 대가로 자신 소유의 토지를 재개발이 가능하게 해 달라고 했는데 그게 안 되자 김형식을 압박했다.[13] 딸의 말에 따르면 당시 아버지(즉 재일교포 이순봉)가 상속 때 하필 일본에서 탈세 혐의로 큰 논란이 되던 상황이었고 당시 탈세가 일본에서 손에 꼽힐 정도로 큰 사건이었기 때문에 최대한 혐의를 줄이기 위해 한국의 부동산을 송씨가 상속(?)할 때 대응을 못 하고 손놓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순봉의 재산은 일본에도 상당히 있었는데 송씨의 상속을 막기 위해 소송을 걸었다가 한국의 부동산까지 같이 밝혀져 버리면 탈세 혐의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국의 부동산을 포기했다고 주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