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0-02-13 01:53:22

화성 해안초소 K-2 소총 사취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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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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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소령 몽타주

1. 개요2. 상세
2.1. 당직병과 소초장의 실수
3. 용의자
3.1. 북한 간첩3.2. 해당 부대 전역자
4. 의문점5. 재판

1. 개요

1997년 1월, 미상의 한 남성이 한밤 중 해안 초소에 침입하여 소초장 및 당직병을 속이고 총기를 사취(詐取)[1]한 사건으로 2020년 현재까지 미해결 사건으로 남아 있다. '군단 백소령 사건'이라고도 한다.

2. 상세

1997년 1월 3일 밤 10시 50분 경, 경기도 화성군 서신면 궁평리[2] 육군 제51보병사단 해안소초 위병소 후문에 육군 전투복 차림의 소령 계급장을 단 정체불명의 중년 남성이 나타났다. 얼마 전 수도군단에 새로 전입 온 백소령이라고 신분을 밝힌 남자는 해안소초의 지형 숙지 및 순찰을 위해 왔다고 말했다. 그는 암구호를 잊어버렸다며 초병들에게 암구호까지 알아낸 뒤 유유히 해안소초 내로 들어왔다.

해안소초에 들어간 백소령은 당직 근무 중이던 남정훈 소위에게도 자신이 최근에 수도군단으로 전입왔으며, 해당 지역이 평소 간첩이 자주 출몰하는 의심 지역이기에[3] 지형 숙지를 위해 왔다고 말했다. 이에 소초장인 남 소위는 20여 분 동안 백소령에게 인삼차를 대접하고 소초 현황 및 경계 지역에 대한 브리핑을 실시했다. 이는 대한민국 해병대의 해안초소나 육군의 GOP 등에서의 소초장의 임무였다. 사단/군단이나 연대에서 순찰자가 방문하면 작전 현황을 소초장이 브리핑하는 것.

백소령은 브리핑 중간중간 중대 행정보급관 도상사의 안부를 묻거나 초소와 포구의 위치까지 묻는 등 너스레를 떨었다. 그리고 총기보관함에 있던 K2 소총에 관심을 보이며 만지작대더니 순찰을 위해 총과 실탄을 빌려달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남소위는 부소초장인 이영모 중사K2 소총 한 자루와 15발 들이 탄창 2개(총 30발)를 백소령에게 건넸고 자신이 순찰 수행을 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백소령은 이곳에 빠삭하기 때문에 괜찮다며 남소위의 수행을 거부했고 그렇게 아무런 의심도 받지 않고 밤 11시 50분 쯤 소초에서 나와 쥐색 프라이드 베타를 몰고 유유히 사라졌다.

그렇게 2시간이 지난 1월 4일 새벽 1시 30분, 중대장이 순찰을 위해 소초에 들렀고 남소위는 군단에서 온 백소령에 대해 보고하면서 "백소령이 총과 실탄을 갖고 순찰을 나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어딘가 미심쩍었던 중대장은 즉시 인근 초소마다 연락해 백소령이 왔는지 물었으나 누구도 그를 보지 못 했으며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중대장은 군단에 상황을 보고했다.

그리고 군단 상황계통에서부터 확인을 통해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는데 군단에서는 '백소령'이라는 사람을 내려보낸 적이 없는 것, '백소령'은 수도군단은 아니지만 수도방위사령부에 실제로 근무하는 장교라는 것이다. 하지만 수도방위사령부의 진짜 백소령은 수도군단 소속의 군인이며 사건 발생 시간에 취침 중이었고 해안소초에 방문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확인돼 군 당국에 비상이 걸렸다.[4]

그 후 새벽 2시 10분 경에 5분대기조가 출동해 초소 인근을 수색하기 시작했고, 새벽 3시를 기해 진돗개 하나가 발령되었다. 총기 사취 사건으로 육군본부에까지 보고되면서 사건이 전 군은 물론 경찰 차원까지 확대, 육군 수도군단과 제2해병사단, 서울/경기지방경찰청에서 화성시수원, 오산시, 용인시을 비롯한 경기남부는 물론 서울특별시 관내와 인천광역시 등 서울경기 지역 전역과 충청지역까지 검문검색 및 수사가 이루어졌으나 늑장 대응으로 인해 백소령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뒤였다.

당연히 육군 및 해군은 물론[5] 경찰청까지 합세해 중대본부에 군경 합동수사본부를 설치하고 관할 경찰서인 화성경찰서 정보보안과에서 몽타주를 만들어 배포하였으며 경찰청은 수사망을 전국으로 확대, 보안과 형사들을 급파하고 해당 부대 전역자까지 이 잡듯 조사하였지만 용의자와 그가 사취한 총기 및 실탄의 행방은 2020년 현재까지 밝혀지지 않은 상태이다. 당시 신문기사

신원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사람에게 덜컥 총기를 넘겨준 남정훈 소위는 결국 구속되었고 지휘선상에 있는 상관들도 연대장급까지 목이 날아갔다. 안습

2.1. 당직병과 소초장의 실수

제일 우선적으로, 당연한 말이지만 초병은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사람에게 절대로 암구호를 알려주거나 영내로 들여보내선 안 되었다. 원칙은 이러하지만 몇몇 부대에서는 간부가 초병의 암구호에 불응하는 일이 종종 있다. 게다가 중국집 배달원이 암구호 없이 들어가는 일도(...)

소초장 남정훈 소위는 경험 미숙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굉장히 아둔했다. 영관급 장교가 군용 지프차를 타고 운전병과 함께 온 것도 아니고, 그냥 민간 승용차를 타고 대동한 사람도 없이, (경계지역 야간 순찰이 목적이라며)개인화기 무장도 없이, 혼자서 야간에 불쑥 찾아왔을 때부터 의심을 하고 상급부대에 순찰이 예정되어 있는지 확인 절차를 거쳤어야 한다. 영관급 장교가 공식적으로 다른 부대, 그것도 평범한 내륙부대가 아닌 GOP, GP, 해안 경계, 강안 경계 근무 부대 같은 실탄 소지 경계 근무 투입 부대를 주간도 아니고 야간에 방문하는 경우는 없다. 게다가 군대는 공식적인 외부 임무 수행시 최소 2인 이상 단위로 움직인다. 최소한 통신병, 운전병이나 행정병 등을 대동하여 2인 이상으로 방문하며, 경계 지역 초소로 야간 순찰을 나간다면, 당연히 총기, 방탄모, 탄띠 등 개인무장을 착용하고 움직인다. 애초에 총기를 안 가져왔다면, 방탄모도 착용하지 않은 상태라는 추론이 가능한데, 야간에 방탄모도 착용하지 않고, 천으로 만들어진 일반 전투모를 쓰고 경계 근무 초소로 정찰을 나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개인용품인 방탄모를 빌려쓴다는 건 있을 수도 없는 일이며, 그렇다면 당연히 애초에 야간 지형 정찰도 나갈 수 없는 복장 상태인 것이다. 그리고 상급부대에 상황병이 유선 전화로 확인도 하며, 상황병이 각 경계진지에 나가 있는 사병들에게도 어느 정도 시간대에 순찰자가 간다는 것을 대충은 알려준다. 그렇지 않으면 오인 사격이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커지기 때문이다.

순찰을 나갈 때 수행을 거절하는데 아둔하게 그냥 손놓고 보내준 데에서도 남소위의 미숙함이 드러나는데 소초장은 순찰자가 순찰을 할 경우 수행을 위해 동행해야 하며, 사단본부 등에서 순찰을 나온 순찰자는 대한민국 해병대제2해병사단 기준으로도 당연히 개인화기를 지급받고 순찰에 나선다. 애초 정상적 순찰장교는 총기를 굳이 꺼내갈 이유가 없고 뭔가 딴 생각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수도군단에 최근에 전입와서 지형 숙지를 위해 나온 사람이 지형에 빠삭하다고 순찰수행을 거부했을때 의심했어야 했다.. 그리고 순찰을 나온 경우 제 아무리 사단장이나 군단장, 심지어 대통령이 오더라도 소초장은 꼭 붙어서 수행하며 안내하는 게 정상이다.

3. 용의자

자신을 자칭 백 소령이라고 밝힌 문제의 사취범의 정체가 무엇인지[6], 무슨 목적으로 K2 소총을 빼돌렸는지, 어떻게 관계자가 아니면 알기 힘든 해당 부대 내부 정보를 알고 있었는지, 현재까지 제대로 밝혀진 것이 없다. 북한 간첩이나 해당부대 전역자 일 수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따라서 아래에 후술할 내용들은 모두 추측이다.

3.1. 북한 간첩

현재로서는 가능성이 가장 높다. 북한은 과거에도 특작부대를 국군으로 위장시키기 위해 M16 소총을 북한에 반입하여 복제품을 만든 적이 있었고 실제로 그렇게 만들어진 복제품이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때 발견된 바가 있는데 이 때 발견된 총은 총기번호, 로트번호가 없었다.

즉 이 설에 따르면 국군의 제식소총이 K2로 바뀌자 K2 역시 빼돌려서 복제품을 만들기 위해 간첩이 침투했다는 설이다. 또한 군경의 대대적인 수사에도 전혀 흔적을 남기지 않은 것 역시 출신이 불분명한 간첩이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설이다. 실제로 2015년 서부전선 포격 사건 당시 북한 특수부대가 한국군 화강암 디지털 전투복과 피아식별띠, K2 소총의 복제품으로 무장한 채 북한 측 통문(GP가 위치한 비무장지대(DMZ) 안으로 들어가는 출입문)을 통해 모습을 드러내고는 아군을 향해 도발을 일삼다가 다시 돌아가는 것을 봤다는 국군 측 병사의 목격담이 후일 떠돌기도 했다.

다만 과거 북한군 38항공육전여단 출신 최승찬의 증언(아카이브)에 따르면, 한국군의 주력 소총이 1980년대부터 K2 소총으로 바뀌면서 북한 역시 사취 사건 이전인 최소 1990년대부터 K2 소총의 존재를 인지했고 또한 특수부대용으로 보유하고 있었다고 한다.[7]

게다가 1996년에 강릉 무장공비 사건이 터지기 몇 달 전 최전방 아군 모 OP에서 공비를 사살했을 때, 공비가 가짜 한국군 군복과 국군에 보급되는 K2의 총번 형식과 다른 총번이 새겨진 복제로 추정되는 K2 소총으로 무장하고 있었다는 국군 측 병사의 목격담도 있는데, 만약 이 가짜 백소령이 정말 북한 간첩이라고 한다면 K2 소총을 사취한 이유는 부족한 적성무기 확보의 목적도 있겠지만 국군이 운용 중인 K-2 소총의 샘플을 확보하여 더 완벽하게 K2 소총을 복제하는 것이 목적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다만 대체로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존재한다. 먼저 가짜 백 소령은 간첩이라고 보기에는 현역 군인들이 보더라도 속을 정도로 너무 완벽했다. 군부대 내부 지형 지물의 위치 내지 지명을 상당한 수준으로 알고 있었고 부대 내 행정보급관인 도 상사의 신상까지 알고 있었다. 게다가 계급장 색깔까지 바뀐 전투복을 착용하고 왔다. 사건 당시인 1997년 1월에는 계급장 색깔이 바뀐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1996년 9월에 일어난 강릉 무장공비 침투 사건을 계기로 그 해 11월 1일부로 전군의 계급장이 저시안성으로 바뀌었으므로, 사건이 발생한 지 두 달 정도 전에 계급장이 바뀐 것이다. 실제로 잡힌 북한에서 남한으로 직파된 간첩들을 보면 의외로 허술한 부분이 있다. 대한민국 화폐 단위를 헷갈려한다거나, 버스 요금 내는 법을 모른다거나 메밀 소바 먹는 법 등을 몰라 각종 실수를 연발하는 이들이 대표적. 더구나 '백 소령'은 유창한 동남 방언을 구사하였는데 북한 간첩이라면 이러한 방언을 왜, 그리고 어떻게 구사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그러나 잡힌 간첩들은 당연하게도 저렇게 허술한 점이 많았기 때문에 잡힌 것이고, 이런 소수의 케이스를 근거로 모든 남파 간첩들이 이들처럼 허술한 모습을 보인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그리고 이 사건처럼 군부대 한곳에서 몇시간만 머물고 가는 단기작전에서는 한국 문화를 잘 몰라도 크게 티나지 않을수 있다. 또한 북한에서 남파 공작원들에게 남한 각 지역 사투리를 훈련시킨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고 이 훈련에 월북하거나 납북된 남한 사람이 원어민 교사 역으로 투입되었다는 남파 공작원 출신자의 증언도 있다. 즉 위의 의문점들의 상당수의 경우 심정웅처럼 고도의 훈련을 받은 뒤 짧게는 수년에서 길게는 수십년 간 남한 사회에 잠복해 있던 고정간첩이 부대 근처에 있던 다른 고정간첩의 도움을 받으면 모두 해결 가능한 것들이다.

게다가 북한 직파 간첩이 파견 초기 1~2년 동안에나 한국 물정에 어두운 모습을 보이지, 오랫동안 잠복해 있던 고정간첩일 경우 언행 상으로는 전혀 구분이 가지 않는 게 당연하다. 해당 임무가 마지막이었을 경우 잠수정을 타고 월북해버리면 잡을 수 없다.

참고로 1997년 수준의 첩보위성 기술력으로는 잠수정 침투 여부를 확인할 수 없었다. 실제로 2010년대 현재 지금의 첩보 위성으로는 광학능력 등이 좋아지면서 정확도 등이 향상되었지만 여전히 잠수정의 출항 여부만 확인할 수 있고, 출항한 잠수정이 어디에 있는지는 결국 예나 지금이나 해군의 대잠전을 통해 알아낼 수밖에 없다. 더구나 1990년대 한국 해군은 연안해군에 불과했기 때문에 해군력이 부족해 해안경계에 허점이 많았었다. 한국 해군이 현재의 강력한 전력을 갖추게 된 건 이지스함이나 광개토대왕급, 충무공 이순신급 구축함 등이 연달아 취역하고 연안 해안선 경비를 위해 윤영하급 고속함 등이 새로 취역하게 된 2000년대 이후의 요즘 일이다. 불과 10년 좀 넘은 셈.

그나마 탐지 수단인 음파의 특성 때문에 바다의 넓이 대비 대잠 경계망이 형성되는 넓이는 매우 협소하고 그나마 여러 원인[8]에 의해 왜곡되기 십상이라 완전 차단은 지금도 상당히 어렵다. 그런데 1990년대 당시 대한민국 해군기어링급S-2 트래커가 현역으로 존재하고 있었으며 그 결과 잠수정 침투여부를 확인하기는 더욱 힘들었을 것으로 볼 때 잠수정이나 반잠수정을 이용, 허술한 한국 해군의 감시를 뚫고 간첩이 침투할 가능성이 높았다.

3.2. 해당 부대 전역자

해당 부대 전역자라면 각종 지형지물과 행정보급관의 신상을 알고 있었던 것이 어느 정도 납득이 된다.[9] 더구나 자칭 백 소령은 40대의 중년 남성으로 보였는데 현역병으로 입대를 하는 대한민국 청년들이 늦어도 20대 후반 전에는 전역을 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해당 부대 전역자가 병일 가능성은 비교적 낮다. 국방부는 80년대에 복무한 간부까지 포함, 총 560여명의 전역 간부들을 조사하였고 그 중 몇몇 전역자를 남 소위와 대면시키는 등 확인 절차를 거쳤다. 그러나 결국 혐의가 있었던 사람은 나오지 않았다.

단독으로 행동했다는 가정 하에 생각해보면 이 설은 가능성이 낮으나, 해당 부대 전역자가 전문적인 고정간첩과 커넥션을 가지고 공동 행동 했다면 설명이 가능하다. 하지만 두어달 전에 바뀐 계급장을 완벽히 위장해서 범행에 사용했던 점을 고려하면, 현직 간부가 전문적인 고정간첩과 커넥션을 가지고 있었다는 설명이 좀 더 타당하다.

4. 의문점

  • 총기의 행방
    남 소위가 가짜 백 소령에게 건네준 총은 부소대장의 총기였다. 군대의 모든 총에는 고유 총기번호 및 로트번호가 있고 기본적으로 모든 군인은 자신의 총기를 반납할 때까지 총기번호를 숙지하고 있다. 부소대장 역시 자신의 총기번호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 보통 미확인 총기가 발견되면 군에선 즉시 총기번호 내지 로트번호를 확인하여 그 총의 출처를 확인한다. 그러나 현재까지 사취된 총기번호의 총은 발견되지 않았다. 이 말은 가짜 백 소령의 행방은 물론, 총기의 행방마저 현재까지 모른다는 뜻이다. 이미 해외로 반출되었을지, 아니면 누군가의 장롱 속에 고이 잠들어 있거나 북한 공장에 반입되어 복제되고 있을지 현재로선 알 수가 없다.
  • 신상은 어떻게 알아내었는가?
    전술했듯 가짜 백 소령은 허구의 인물을 사칭한 것이 아니었다. 사칭된 백 소령이란 인물은 실제 수도군단 소속의 현역 군인이었다. 가짜 백 소령은 대체 어떻게 진짜 백 소령의 신상을 알아내었을까? 또한 부대 내 행정보급관인 도 상사의 신상까지 알고 있었다. 이렇게 부대 내부 정보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남 소위가 완벽하게 속은 것이었는데 서로 다른 부대에 있는 두 현역 군인의 신분을 어떻게 알아냈는지에 대한 이유도 현재까지 알 수가 없다. 군 내에 간첩이 있다면 그들이 알려주었을 수도 있겠지만 그들의 존재 여부도 불명확하다.
  • 전투복은 어떻게 구했는가?
    가짜 백 소령은 계급장 색깔까지 바뀐 소령 계급장의 전투복을 착용하고 있었다. 계급장 색깔이 바뀐 게 고작 2달밖에 되지 않았음을 본다면 치밀하게 준비한 셈인데 생각해보면 소령 계급장에 계급장 색깔까지 바뀐 전투복을 다른 사람에게 구하는 것은 비교적 어려운 일일 것이다. 물론 군장점을 이용하여 위장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병 계급장과는 달리 간부의 계급장은 수량도 많지 않으며, 공무원증 등 신분을 확인한 후에 내어주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구하기도 어렵고 국방부도 당연히 이를 알고 의심 되는 군장점을 위주로 집중적인 조사를 하였다. 그러나 여기서도 흔적을 발견해내지 못했다. 그렇다면 가짜 백 소령은 자체적으로 전투복을 위장했다는 말인가? 현재로서는 전투복 역시 출처가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북한에서 가짜 국군 복장과 계급장을 미리 만들어서 가져와 입었을수는 있다.

5. 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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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수론 일죄 (법조경합 / 포괄일죄) · 수죄 (상상적 경합 / 실체적 경합)
형벌론 종류와 경중 · 양정 (누범) · 선고유예 · 집행유예 · 집행 · 가석방 · 시효 · 실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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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판결의 판시사항 및 판결요지는 다음과 같다.
대법원 1999. 7. 9. 선고 98도1719 판결
[군용물분실][공1999.8.15.(88),1669]
【판시사항】
[1] 형벌법규의 해석 원칙

[2] 군형법 제74조 소정의 군용물분실죄의 법적 성질(=과실범) 및 '분실'의 의미

[3] 군용물을 편취당한 경우, 군형법 제74조 소정의 군용물분실죄의 성립 여부(소극)
【판결요지】
[1] 형벌법규의 해석은 엄격하여야 하고 명문규정의 의미를 피고인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지나치게 확장해석하거나 유추해석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의 원칙에 어긋나는 것으로서 허용되지 않는다.

[2] 군형법 제74조 소정의 군용물분실죄라 함은 같은 조 소정의 군용에 공하는 물건을 보관할 책임이 있는 자가 선량한 보관자로서의 주의의무를 게을리 하여 그의 '의사에 의하지 아니하고 물건의 소지를 상실'하는 소위 과실범을 말한다 할 것이므로, 군용물분실죄에서의 분실은 행위자의 의사에 의하지 아니하고 물건의 소지를 상실한 것을 의미한다고 할 것이며, 이 점에서 하자가 있기는 하지만 행위자의 의사에 기해 재산적 처분행위를 하여 재물의 점유를 상실함으로써 편취당한 것과는 구별된다고 할 것이고, 분실의 개념을 군용물의 소지 상실시 행위자의 의사가 개입되었는지의 여부에 관계없이 군용물의 보관책임이 있는 자가 결과적으로 군용물의 소지를 상실하는 모든 경우로 확장해석하거나 유추해석할 수는 없다.

[3] 피고인의 의사에 의한 재산적 처분행위에 의하여 상대방이 재물의 점유를 취득함으로써 피고인이 군용물의 소지를 상실한 이상 그 후 편취자가 군용물을 돌려주지 않고 가버린 결과가 피고인의 의사에 반한다고 하더라도 처분행위 자체는 피고인의 하자 있는 의사에 기한 것이므로 편취당한 것이 군용물분실죄에서의 의사에 의하지 않은 소지의 상실이라고 볼 수 없다.

이 판례는 형사법상 죄형법정주의를 강조한 판례 중 하나이다. 군형법상 군용물분실죄는 과실범이므로 피고인(초병)처럼 기망을 당하여 자의에 의해 총기류를 처분한 경우에는 과실범이라고 볼 수 없으며, 따라서 군형법상 군용물분실죄를 적용할 수 없다고 판시한 사례이다. 이러한 이유로 해당 초병은 피기망자인 바, 군내 규정에 의한 징계 등을 받을 수 있음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 것이 형사법의 원칙상 합당하다.

이 판례의 주문과 이유 부분에 대해서는 판결문 전문을 참조 바람. 판결문 전문


[1] 남의 것을 거짓으로 속여서 빼앗음.[2]화성시.[3] 실제로 이 지역은 과거 몇 차례 간첩이 출몰했던 루트이기도 하다.[4] 애시당초 같은 군단 소속이라는 것을 제외하면 백소령은 해당 부대와의 접점이 전혀 없고 따라서 순찰 등을 목적으로 해안소초를 방문할 이유 또한 없었다.[5] 제2해병사단이 해군 소속인 해병대 부대로서 서해안을 관할한다.[6] 위에도 썼지만 백 모 육군 소령은 실존 인물로, 사건이 일어난 부대에 근무한 적이 있었다.[7] "교육 시간에는 피교육생 대표가 교관에게 ‘필승’이라는 구호를 붙여 경례하고 인원 보고를 한다. 교육에 들어가기 전 교관은 ‘국방군이 쓰는 총은 M16이었는데 최근 K2 소총으로 바뀌었다’는 설명과 함께 두 종류의 총을 보여준다. 그러나 M16과 K2 소총이 부족해 피교육생들에게는 M16 목총이 지급된다. 이 목총을 들고 ‘받들어 총’과 한국군 총검술을 배운다. 이때 피교육생들이 제대로 따라하지 않으면 교관은 ‘원산폭격’과 ‘김밥말이’ ‘뒤로 취침’ 따위의 한국군 식 얼차려를 시킨다."[8] 부유물, 수심/해역에 따른 해수 염도/온도차, 해류/조수/파도 및 다른 선박들의 소음, 물고기 떼/고래 등 해양 생물 등이 있다. 특히 서해의 경우 수심은 얕으나 탁한 수질과 중국발 해양 쓰레기들 때문에 파악이 더 힘들다.[9] 하지만 소초에 투입되는 소대는 주기적으로 교체되며, 행정보급관도 주기적으로 바뀐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즉 용의자는 최신 정보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는 것이 의문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