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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구의 법정동 이태원동 梨泰院洞 | Itaewon-dong | |
<colbgcolor=#004ea2><colcolor=#ffffff> 광역자치단체 | 서울특별시 |
기초자치단체 | 용산구 |
행정표준코드 | 1117013000 |
관할 행정동 | 이태원1동, 이태원2동 |
하위 행정구역 | 32통 233반 |
면적 | 1.43㎢ |
인구 | 14,862명[A] |
인구밀도 | 10,393.01명/㎢ |
[clearfix]
1. 개요
서울특별시 용산구의 법정동. 행정동으로는 이태원1동과 이태원2동이 있다. 용산구의 대표적인 번화가이자 외국 문화의 집결지로 유명하다. 이태원 클라쓰로 전세계적 유명세를 타면서도, 팬데믹과 용산 미군기지 이전 등으로 쇠락을 겪었다.서쪽은 용산동2가와 용산동4가, 남쪽은 동빙고동과 보광동, 동쪽은 한남동과 접하며 북쪽으로는 남산을 넘어 장충동2가와 접한다.
2.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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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1 | 한성부 남부 둔지방 이태원계 이태원리 (漢城府 南部 屯芝坊 梨泰院契 梨泰院里) | }}}}}}}}} | ||
{{{#!wiki style="margin: -0px -11px -5px" {{{#!folding 개화기 ~ 현대 {{{#!wiki style="margin-top: -5px; margin-bottom: -11px" | 법정동은 파란색, 행정동은 분홍색 | |||
1894 | 한성부 남서 둔지방 이태원계 이태원리 (漢城府 南署 屯芝坊 梨泰院契 梨泰院里) | |||
1910. 10. 1. | 경기도 경성부 남서 둔지방 이태원계 이태원리 (京畿道 京城府 南署 屯芝坊 梨泰院契 梨泰院里) | |||
1911. 4. 1. | 경기도 경성부 한지면 이태원리 (京畿道 京城府 漢芝面 梨泰院里) | |||
1914. 4. 1. | 경기도 고양군 한지면 이태원리 (京畿道 高陽郡 漢芝面 梨泰院里) | |||
1936. 4. 1. | 경기도 경성부 이태원정 (京畿道 京城府 梨泰院町) | |||
1943. 6. 10. | 경기도 경성부 용산구 이태원정 (京畿道 京城府 龍山區 梨泰院町) | |||
1946. 10. 9. | 서울특별자유시 용산구 이태원동 (서울特別自由市 龍山區 梨泰院洞) | |||
1947. 6. | 이태원남부동 (梨泰院南部洞) | 이태원중부동 (梨泰院中部洞) | 이태원북부동 (梨泰院北部洞) | |
1949. 8. 15. |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태원동 (서울特別市 龍山區 梨泰院洞) | |||
이태원남부동 | 이태원중부동 | 이태원북부동 | ||
1955. 4. 18. | 이태원1동 (梨泰院一洞) | 이태원2동 (梨泰院二洞) | }}}}}}}}} |
고려시대 초부터 구한말에 이르기까지 한남동 일대는 용산구 서부와는 다른 행정구역이었고, 성동구와 역사를 함께 했다. 983년(성종 2년) 전국에 12목을 설치할 때 양주(楊州)에 소속되어 있다가, 1067년부터는 양주목이 남경으로 승격되었을 때 이에 속했다. 얼마 가지 않아 남경이 다시 양주목으로 격하되었으나, 1104년(숙종 9년)에 다시 남경이 설치되며 그에 속해 쭉 유지되었다.
1395년(조선 4년), 개경에서 한양으로 천도할 때 한양도성 내부만 한성부가 되고 그 외 지역은 모두 양주군에 속하게 되었는데 지금의 한남동 지역도 양주군에 속하게 되었다. 1424년(세종 6년), 한양에서 떨어져 나온 지 29년이 지나서 다시 한성부 성저오리(城底五里)에 편입되어 남부에 예속되었다.
1721년(영조 27년)에 행정구역의 변동이 있을 때에 남부에 둔지방(屯芝坊)이 신설되었고 이태원리는 한성부 남부 둔지방 이태원계(梨泰院契)에 속하게 되었다. 이때의 이태원계는 지금의 후암동과 한강로1가, 한강로2가를 아우르는 방대한 지역이었다.
조선 시대에 이곳에 있었던 이태원(梨泰院)이라는 옛 역원(驛院)[2]의 명칭에서 동명이 유래되었다. 대개 역원은 교통의 요지에 설치되는데 자연스럽게 유동 인구가 많이 오가다 보니 역원 주위에 마을이 형성되고 마을 이름도 '원'의 이름을 따라 부르는 일이 거의 관례처럼 되어 왔다.
그래서 한국의 끝 글자가 '원(院)'으로 끝나는 세 글자 지명(○○원)은 대부분 옛 역원이 있던 마을인데, 장호원(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읍 일대), 조치원(세종특별자치시 조치원읍 일대), 인덕원(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인덕원동 일대), 사리원(황해북도 사리원시 일대), 퇴계원(경기도 남양주시 퇴계원읍 일대) 등이 이태원과 비슷한 작명 원리로 지어진 지명들이다. 용산구청에서 이태원을 소개할 때도 이 설을 따르고 있다. 옛 기록에는 이태원(梨泰院) 외에도 한자가 다른 이태원(李泰院), 이태원(異胎院) 등의 다른 이름도 있었다.
그래서 잘 알려져있지는 않지만, 이태원은 조선시대부터 한반도를 대표하는 교통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실제로 인덕원, 이태원, 사리원, 퇴계원, 조치원처럼 지명에 '원'이 들어가는 지역은 대부분 조선시대 시절부터 교통의 중심이 되는 지역이라서 붙은 이름인데, 2020년대인 현재로 비교하면 고속도로 휴게소와 거의 비슷한 역할을 했다.# 공교롭게도, 과거부터 역원이 존재하던 교통의 요지였던 지역은 지금도 여전히 교통의 요지 역할을 하고 있다. 조치원읍과 사리원시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있었다는 이태원의 터는 지금 이태원동에 있지 않고 용산동2가에 위치한 용산고등학교 터에 있었으며, 지금의 이태원동과는 해방촌을 사이에 두고 조금 떨어져 있는 곳이다. 한양도성에서 숭례문으로 나와 남단고개(지금의 해방촌)를 넘기 전에 이곳에서 묵거나 말을 갈아타고 남단고개와 녹사평을 지나 동작나루나 한강진으로 통했다.
또 다른 설에 따르면 당시 이타인(異他人)이라고 불리던 일본인 전용 거주지가 조성되었던 곳으로, 그 이름에서 마을의 이름이 유래된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오늘날 역원이었던 이태원의 터는 용산고등학교 정문 앞에 있으며 배나무가 많아서 이태원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1914년에 경성부를 축소하면서 경기도 고양군 한지면(漢芝面)에 편입되었다가 1936년 경성대확장 때에 다시 경성부에 편입되어 이태원정(梨泰院町)이 되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태원 일대는 공동묘지가 들어선 곳이었는데 현재의 한남동, 서빙고동 등과 함께 새로운 택지지구로 계획되어 개발되면서 공동묘지가 모두 헐리고 1938년에는 삼각지에서 장충동으로 가는 남산주회도로(현재의 이태원로)가 뚫리면서 도시화가 진행되었다.
1943년 구제 실시 당시 용산구에 소속되었다가 해방 이후인 1947년 6월에 서울특별시령 제2호에 의해 동회 제도가 실시되며 이태원북부동(梨泰院北部洞)과 이태원중부동(梨泰院中部洞), 이태원남부동(梨泰院南部洞)으로 나뉘었고, 1955년 4월 18일 서울특별시조례 제66호에 의해 이태원북부동과 이태원중부동이 이태원2동으로, 이태원남부동이 이태원1동이 되어 오늘날에 이른다. 옛 일본군 병영이었던 자리에 미8군이 주둔하면서 용산기지 인근의 이태원동과 한남동은 미8군의 배후지가 되었고 6.25 전쟁 직후부터 이 일대는 외국인들이 몰려사는 지역으로 발전한다. 6.25 전쟁 직후에 인근의 해방촌부터 이태원까지 피란민들과 상경민들이 몰리면서 주택가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세운 이태원시장은 미군 PX에서 나온 물자로 상업을 이어가며 번영하게 되었고(일명 미제 아줌마) 용산기지 바로 옆이라는 특수한 지리적 위치가 맞물리면서 외국 문화가 어우러진 독특한 풍경을 자아내었다. 다수의 대사관과 대사관저가 이태원과 한남동에 자리를 잡으면서 1970년대부터는 이태원로 이북으로 조금씩 부촌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한다.
조선 시대 중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서울 용산구 일대에 거대한 공동묘지가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1 #2 #3 #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도 자택을 다시 짓던[3] 중 쏟아진 유골 때문에 애를 먹고 있다고 전해졌다.
3. 상세
용산구 가운데를 떡하니 차지한 용산기지로 인해 용산구 서부의 구용산, 신용산 일대와는 거리감이 있다. 용산구 동부의 이태원동, 한남동, 서빙고동 일대는 독자적인 생활권을 가지고 있지만, 아예 강남구와 생활권을 공유하는 한남동과는 다르게 이태원동은 남산 바로 아래를 끼고 도는 소월로를 통해 해방촌 - 후암동 라인으로 이어지므로 중구 쪽 사대문안 생활권과도 연계가 된다.지도를 보면 용산기지 동쪽으로 공터가 몇 개 있는데, 이곳들도 모두 미군기지로 쓰던 부지들이다. 지금은 평택기지로 모두 이전하면서 그 자리들은 비어있는데, 그만한 공터를 서울 시내에서는 찾기 힘들기 때문에 서울시에서 특별보존구역으로 두고 차근차근 마스터플랜을 세우고 있다.
4. 소속 행정동
4.1. 이태원1동
용산구의 행정동 이태원제1동 梨泰院第一洞 | Itaewon 1(il)-dong | |||
<colbgcolor=#004ea2><colcolor=#ffffff> 광역자치단체 | 서울특별시 | ||
기초자치단체 | 용산구 | ||
행정표준코드 | 3020053 | ||
관할 법정동 | 이태원동 | ||
하위 행정구역 | 15통 102반 | ||
면적 | 0.57㎢ | ||
인구 | 6,140명[A] | ||
인구밀도 | 10,771.93명/㎢ | ||
정치 | {{{#!wiki style="margin: -0px -11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top: -5px; margin-bottom: -11px" | 국회의원 | 용산구 | |
| 권영세 (5선) | ||
서울특별시의원 | 제2선거구 | |||
| 최유희 (초선) | ||
용산구의원 | 마 선거구 | |||
| 권두성 (초선) | ||
| 김형원 (초선) | ||
| 이미재 (3선) | }}}}}}}}} | |
행정복지센터 | 보광로 104-6[5] | ||
이태원1동 주민센터 |
이태원동 중 남부를 관할하는 행정동으로, 이태원역을 중심으로 한 주택가와 상업지구로 이루어져 있다. 용산구청, 해밀톤호텔, 몬드리안 이태원 서울이 이곳에 자리 잡고 있다.
[clearfix]
4.2. 이태원2동
용산구의 행정동 이태원제2동 梨泰院第二洞 | Itaewon 2(i)-dong | |||
<colbgcolor=#004ea2><colcolor=#ffffff> 광역자치단체 | 서울특별시 | ||
기초자치단체 | 용산구 | ||
행정표준코드 | 3020052 | ||
관할 법정동 | 이태원동 | ||
하위 행정구역 | 17통 131반 | ||
면적 | 0.86㎢ | ||
인구 | 8,722명[A] | ||
인구밀도 | 10,141.86명/㎢ | ||
정치 | {{{#!wiki style="margin: -0px -11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top: -5px; margin-bottom: -11px" | 국회의원 | 용산구 | |
| 권영세 (5선) | ||
서울특별시의원 | 제2선거구 | |||
| 최유희 (초선) | ||
용산구의원 | 라 선거구 | |||
| 김선영 (초선) | ||
| 장정호 (5선) | }}}}}}}}} | |
행정복지센터 | 회나무로13길 58[7] | ||
이태원2동 주민센터 |
이태원동 중 북부를 관할하는 행정동으로, 남산 바로 아래의 회나무로를 중심으로 경리단길이 있는 곳이다.
[clearfix]
5. 지리
북쪽으로 남산이 있고, 서쪽에는 남산에서 뻗어내린 지맥인 둔지산, 동남쪽으로는 한남동과의 경계를 이루는 고지대가 있다. 서남쪽 방향으로 난 골짜기 지형으로, 지금은 남쪽 산등성이에 주택가가 들어섰기 때문에 알기 힘들지만 본래는 산으로 둘러싸인 곳이었다. 남산에서 발원한 만초천의 지류가 회나무로를 따라 흐르다가 용산기지 내부를 지나 원효대교 인근에서 한강에 합류한다.6. 교통
6.1. 도로
이태원로와 녹사평대로가 교차하는 곳이다. 녹사평역에서 이태원역을 지나 장충동 방향으로 난 도로가 이태원로이고, 이 길을 따라서 번화가가 들어서 있다. 용산구 내에서는 용산기지를 가로질러 용산구 서부와 동부를 잇는 도로가 이태원로, 서빙고로 이 둘 뿐인데, 이태원로를 따라서 번화가가 들어서 있는 데다가 겨우 4차선이라 정체가 여간 심한 것이 아니다. 강변북로가 용산 부근에서 늘 막히는 것은 용산구 내부에서 서로 이어지는 도로가 부실한 까닭이다. 또한 이태원로나 서빙고로가 한남대교 방면으로는 사실상 연결되지 않기 때문에 한남대교를 이용하려면 웬만해서는 강변북로를 이용하지 않고서는 힘들다.[8]남산2호터널과 남산3호터널이 이태원동 서북쪽에서 교차한다. 이 터널들은 녹사평대로로 빠져나와 반포대교 방향으로 이어진다. 강남구나 분당신도시, 수지구 쪽에서는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올라와서 한남동을 지나 남산1호터널을 통해 사대문 안으로 들어가는 반면, 서초구 방면에서는 반포대교를 건너와서 이태원동을 지나 시내로 들어가는 편이다. 거기에다 안양시, 과천시, 의왕시, 군포시, 수원시 등지에서 올라오는 동작대교 쪽 차량들은 동작대교 북단이 용산기지로 인해 뚝 끊겨 있어서 좌로 가던 우로 가던 아무튼 우회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따라서 녹사평대로도 한남대로 만큼은 아니지만 차량이 꽤 붐비는 구간이기도 하다. 관내 지선 도로로는 소월로와 회나무로, 보광로가 있다.
6.2. 철도
서울 지하철 6호선이 이태원로를 따라 지나가며, 녹사평역과 이태원역이 있다. 이태원역 1, 2번 출구 쪽으로 식음료 상권인 이태원 세계음식거리가 형성되어 있고 3번 출구 아랫길로 우사단로, 4번 출구 아래로 퀴논길이 있다. 3, 4번 출구 사이길로 쭉 내려오다보면 앤틱가구거리도 있다. 또한 녹사평역과의 거리가 가까워 녹사평역으로도 위의 거리를 도보권으로 이동할 수 있다. 녹사평역 2번 출구에서 구 미군기지 쪽을 따라 남산 방향으로 쭉 올라가면 해방촌, 건너편으로 경리단길이 있다. 한강진역도 녹사평역 만큼은 아니지만 도보로 갈 수 있을 만큼 가까이에 있다. 한강진역 근처에는 서울용산국제학교와 블루스퀘어, 수입차 전시·판매장들이 위치해 있다. 1, 3번 출구로 나와 직진하면 이태원 메인 사거리가 나온다.추후에 신분당선이 들어오면 이태원1동 쪽에서는 신설되는 동빙고역이 꽤 가깝다.
6.3. 버스
서울특별시 시내버스 중 평시에는 110번, 400번, 405번, 421번, 서울특별시 시티투어 버스가 다니며 심야에는 N31번, N72번이 다닌다.7. 주거
이른바 서울의 3대 클럽 지역 중 하나로 꼽히는 이태원 번화가 주변은 주말 저녁이면 굉장히 시끄럽고 번잡해진다. 유흥가 특유의 흥겨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 재밌지만, 클럽 문화가 발달해서인지 취객이나 난봉꾼들도 많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실제로도 오래되기는 했지만 여러 의문점 등으로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이태원 살인 사건이 발생한 곳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주한미군도 제법 보였고, 때문에 미군 헌병대도 돌아다녔지만 주한미군 기지가 평택시로 완전히 이전함에 따라 현재는 이태원에서 미군들을 보기 힘들어졌다. 대신 서울에 거주하는 원어민 강사들이나 관광객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그 덕에 서울 번화가 중에서는 미군이 빠진 후에도 명동 등과 함께 외국인이 가장 많은 곳임에는 틀림없다. 명동이 쇼핑 관광객 위주라면 이태원은 실거주 외국인의 음주 목적이 비교적 강한 편이다.덧붙여 가상의 세계에서나 회자되는, 길을 걸을 때 이성(주로 남성)이 휘파람을 불면서 캣 콜링하는 것을 볼 수 있는 매우 드문 장소이기도 하다. 이 문제로 같이 길을 걷던 남친 혹은 일행과 캣콜을 한 외국인의 다툼이 발생하기도 한다. 드물지만 커플들에게도 캣 콜링을 시도하는 사람들도 있다.[9]
이태원역과 해밀턴 호텔을 기준으로 동네의 빈부격차가 있는 편이다. 서쪽과 남쪽으로는 서민 주택과 재래시장이 주로 있는 반면, 동쪽과 북쪽에는 대형 최고급 저택이 즐비한 국내 최고 부촌 지역 중 하나이다.
이태원로 이북에 산등성이를 타고 형성된 부촌은 재벌총수 일가들이 사는 서울의 베벌리힐스로 유명하다. 대표적으로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이 생전에 사용하던 승지원(承志園)은 아직까지도 삼성그룹에서 귀빈을 맞이할 때나,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사용하는 건물로 알려져 있다. 이병철 회장의 막내 딸인 신세계그룹 이명희 회장과 그 자녀인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정유경 신세계그룹 총괄 사장도 살고 있다. 그 외에도 정치인, 연예인들이 많이 거주한다.[10] 이태원로 이남은 상업 지역인 동시에 서민 주택가인데, 외국인 비율이 높은 곳이다. 북쪽에 비해 주거 환경이 좋지 않은 편이지만 그래도 비싼 편이고, 한남뉴타운로 지정되어 재개발 투자 1순위로 꼽히며 가격이 더욱 상승한 곳이다. 보광로 동쪽의 한남2구역 및 한남3구역은 각각 한남 써밋, 디에이치 한남으로의 재개발이 확정되었다.
이태원역에서 조금만 내려가면 나오는 보광동은 주택 위주의 지역인데 재개발이 전혀 안되어서 옛날 골목의 느낌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특히 언덕이 엄청 많아서 일부 언덕길의 경우 거의 직각에 가까울 정도로 매우 가파르며, 길 옆을 계단식으로 해서 올라가야 하는 곳도 있다. 그래서 이쪽 구간을 운행하는 마을버스의 경우 대형 차량이 다니기 어려울 정도라 소형 차량만이 다니고 있다. 대신 배차 간격이 짧은 편이다. 이태원동 259-16번지에는 남산외인아파트가 있었다. 1994년에 남산제모습가꾸기 사업으로 소월로 이북에 있는 모든 건물은 철거한다는 방침에 따라 사라졌지만, 당시 여느 외인아파트들이 그렇듯 고급 주택으로 명성이 높았다. 발파 해체 공법으로 사라졌는데, 폭파되는 모습까지 사람들이 구경하러 올 정도였다. 1994년까지 제작된 정부 정책 홍보매체 대한뉴스에서 그 장면을 녹화했는데 아직까지도 이 아파트의 폭파 장면이 유튜브에 남아있다.
7.1. 공동주택
단지 명 | 세대수 |
청화아파트 | 578 |
남산 대림아파트 | 400 |
이태원 주공아파트 | 130 |
8. 문화
8.1. 관광 / 상권
서울시 관광특구 1호이다. 1997년 서울 최초로 관광특구로 지정된 이후 명동, 동대문 등이 뒤를 이었다. 외국어에 능통한 관광 경찰이 배치된 곳이다. # 프랑스인의 서래마을이나 차이나타운처럼 국적에 따라서 특화된 외국인 공간은 없지만, 세계 각지의 다양한 외국 문화가 집합된 곳은 서울에서 이태원만 한 곳이 없다. 주말이면 다른 국적, 다양한 피부색의 사람들을 볼 수 있다.다만, 2000년대까지는 관광지라기보다는 단순히 외국인이 많은 마을이라는 인식이 강했고, 클럽 등 놀거리는 제법 있었으나[11] 성소수자가 놀러가는 곳 정도로만 알려졌을 뿐 다른 지역 내국인들이 선뜻 놀러간다고 말하는 곳은 아니었다. 물론 한남동 유엔빌리지와 이촌동 용산 사우스포스트처럼 한국인 출입이 제한되었던 진짜 외국인 마을도 존재했으나, 이태원만큼의 인지도를 얻지는 못했다.
심지어 1990년대까지 이태원은 일부 주한미군과 외국인들의 문란한 행동의 여파로 영등포, 청량리 등과 함께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가지 말라고 하는 장소이자 젊은 여자가 쉽게 가겠다고 말할 수 없는 장소였다.[12]
그러나 2010년대 들어 용산 미군부대 이전과 연예인이 운영하는 맛집 및 경리단길 등이 언론을 타면서 수요가 폭발, 번화가나 관광지로도 부쩍 인기를 끌게 되었다. 물론 면적의 한계가 있는 만큼 다른 번화가 대비 메인 상권의 규모가 큰 곳은 아니다. 해밀톤 호텔의 뒷길이 메인 스트리트로, 직선으로 쭉쭉 뻗은 강남권 번화가와는 달리 언덕을 따라 오르내리는 골목길 중심의 상권으로 되어 있다. 과거 직업 여성들을 고용해서 운영하던 업소들이 필지 1개 지분을 수십 명으로 쪼개서 분할 소유 상태로 만든 경우가 많아 재개발이 쉽지 않다고 한다. 단국대학교의 캠퍼스가 한남동에 있던 시절에는 단국대 학생들이 주로 놀러 오는 지역이었다. 캠퍼스 서문을 나와서 순천향대병원이 있는 대사관로로 쭉 올라오면 이태원에 쉽게 올 수 있기에 먼 거리는 아니었다. 다만 2007년을 끝으로 단국대가 수지구 죽전동으로 이사를 가면서 대학가 상권의 이미지는 사라졌다.
2007년 송도영 한양대 문화인류학 교수는 “예전의 이태원이 해외로 나가는 문이었다면, 요즘의 이태원은 해외 경험을 재확인하는 공간”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이태원은 여권 없이 세계를 만나는 공간이자, 인종·성·계층의 경계가 뒤섞인 해방구 -한겨레21 해외여행에서 맛본 타국의 음식을 고향에서 맛보는 즐거움을 느끼는 공간이라고 한다.
미군 기지가 평택으로 떠난 이후 이태원 상권이 침체되는 것 아니냐는 말은 꾸준히 돌았지만 관광객이 늘어난 덕인지 오히려 몇 년간은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일 정도로 주변 시세가 더 올라간 적도 있었다. 그러나 젠트리피케이션 여파가 장기화되며 골목 업소들이 폐업해 공실률이 높아진 와중에 2020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여파에 해당 지역 게이 클럽에서 집단 감염까지 겹쳐 잠정 휴업하는 업소들이 즐비해지면서 정말로 상권이 위기를 맞았다.[13] 2020년 이 지역 매출이 전년인 2019년 대비 64.7%나 줄어들었다고 한다. 코로나가 바꿨다. 슬세권 '뜨고' 전통상권 '지고'[14]
8.2. 음식
다양한 국가의 요리 전문점이 있다. 대개 할랄 푸드를 파는 식당만 많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비건 채식 등등 서구인들을 겨냥한 식당들도 많다. 이러한 식당들 중 주머니 사정이 얇은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식당들도 있지만 일반 서구권 레스토랑처럼 1인당 2~3만 원 정도 나가는 식당들도 많다.이슬람 모스크 근처에는 할랄 푸드를 파는 음식점들이 제법 있다. 특히 무슬림들이 운영하는 조그만 빵집이나 튀르키예 요리 혹은 파키스탄 요리 등등을 파는 식품점이 많다. 빵집의 경우에는 차와 커피 문화가 발달한 이슬람 답게 간단한 바게트[15]도 일반 빵집에 비해 맛이 좋은 편이다. 근방에 사는 사람들은 이런 곳에서 빵을 사서 식사를 해결하기도 한다는 듯하다. 코로나19 이전에는 동남아 단체 관광객들을 주 영업 대상으로 하는 식당들이 가격은 비싼데 맛은 별로인 걸로[16] 평이 좋지 않았다. 불행 중 다행히도 코로나19 사태로 이러한 식당들 상당수가 폐업하였다.
이태원은 다양한 문화권의 음식을 접할 수 있어서 식도락가들을 유혹한다. 이미 한국에서 제법 대중화된 인도 커리는 물론이고, [17]을 비롯해 남미의 브라질 요리, 발칸 반도의 구 유고슬라비아 요리, 아프리카 현지인들이 직접 하는 전통 요리[18]나 시칠리아식 이탈리아 요리, 본토식 터키 케밥에 [19] 후식으로 유명한 터키 아이스크림 돈두르마와 터키쉬 딜라이트를 먹을 수도 있다. 한국에 영국식 펍 문화[20]가 제대로 자리잡은 곳도 이태원이다.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2~3만 원은 주고 먹어야 할 음식들을 이곳에서는 1만 원 안팎에 즐길 수 있다. 또 한국에 노바다야끼가 최초로 자리 잡은 곳도 이태원이다. 지금은 위엄이 많이 죽기는 했지만 소방서를 지나 제일기획으로 가는 쪽에 노바다야끼 가게가 즐비했다. 그 밖에도 이집트, 요르단, 우즈베키스탄, 베트남, 태국, 필리핀, 중남미 등 세계 각지에서 온 이들이 운영하는 식당이나 노점상이 즐비하기에 본고장 맛을 국내에서 유일하게 한꺼번에 죄다 즐길 수 있는 곳[21]이기도 하다. 국내에서는 다소 생소한 아프리카 음식도 볼 수 있다. 국내 유일 에티오피아 식당도 존재하는데, 원래 음식점인 곳은 아니고 평소에는 클럽으로 사용되는 곳이며, 일정 시간에만 음식을 판다.
흑맥주를 맛있게 뽑아내는 곳이 많은 곳도 이태원이다. 대부분 한국의 펍에서는 기네스를 잘못 뽑아내거나 전기 분해로 생맥주 흉내를 내는 캔맥주를 내오는 곳도 많은데, 이태원은 맛과 질 모두 만족할만한 기네스를 파는 곳이 많다. 게다가 앨리캣이나 킬케니 같이 구하기 힘든 흑맥주를 파는 곳도 많다.
매우 맛이 없다[22]는 평을 받을 정도로 맛이 없고 획일화 되어 있던 한국 맥주 시장에서의 수제맥주 열풍 시작도 이태원이다. 크래프트비어라고도 불리는 수제 맥주는 기존의 맥주와 다르게 물, 맥아, 홉, 효모 등 재료와 혼합 비율, 발효법에 따라 각기 다른 맛과 향을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매년 10월 열리는 이태원 지구촌 축제에는 맛집 사장들이 이태원대로에 총출동하니, 번거롭게 찾으러 다니기 싫다면 이날을 노리는 것도 좋다.
8.3. 한국 최초의 다문화 사회 발상지
이태원은 프랑스인들이 상대적으로 많이 모여 사는 서초구 서래마을과 더불어 서울의 대표적인 다문화 거리로 꼽힌다. 과거 미군 기지와 인접해 있어서 주한미군들의 유흥가로 발전하게 되었고 많은 외국인들이 찾는 관광지가 된 덕분에 여러 문화권에서 온 사람들이 자신들의 문화를 이태원에 전파했기 때문이다. 외국 대사관이 많은 것도 이유 중 하나다. 이태원1동의 인구 대비 외국인 비율은 2010년대 기준 25%를 넘는다.용산소방서 이태원119안전센터에서 언덕을 올라가면 이슬람 건축물 모스크인 서울중앙성원[23]이 있어서 무슬림들이 예배를 드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한국의 무슬림들은 아랍권이나 터키,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 중앙아시아 등 이슬람 국가에서 온 이들이 많다.
재미있게도, 이 모스크는 북한과 외교 경쟁 중이던 1970년대에 중동 국가와 외교를 강화하기 위해 박정희 정부가 먼저 제시한 것이었고, 모든 이슬람 국가들의 성금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현재는 지은 지 50년 가까이 되어가서 재건축이 필요한데[24], 때마침 튀르키예 정부에서 모든 비용을 자기들이 다 내겠다고 나서기도 했다.
2008년에는 유대교 시나고그가 설립되었으며, 완공 이후 매주 토요일 10시에 안식일 예배를 드린다. 단, 사전 신청은 필수다.
나이지리아, 가나, 코트디부아르 등등 아프리카에서 온 흑인들도 종종 보이는데, 보통 각종 보따리상을 하는 경우가 많다.
8.4. 한국 성소수자 문화의 중심
이태원은 한국 성소수자 문화의 중심지로도 유명하다. 성소수자, 특히 게이 문화는 원래 종로구 종로3가역 인근 낙원동이 중심지였지만, 그 지역은 너무 낙후되어서 슬럼가가 되어버렸기에 지금은 이태원이 중심지로 통하고 있다. 방송인 홍석천도 이 일대에 레스토랑을 서너 곳 운영해 이태원 재벌이란 우스갯소리도 들었지만, 코로나19의 여파로 2020년에 전부 폐업하고 말았다. 한편, 이태원의 게이바와 게이 클럽들이 동성애에 부정적이라는 인식이 있는 이슬람 모스크 앞에 많이 모여 있어서 굉장히 모순된 광경을 연출한다.과거 트랜스젠더 문화가 음지에 머물러 있던 시절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기도 하다. 시디바나 트랜스젠더바도 많이 있다. 트랜스젠더에 대한 인식이 많이 양지화된 현재는 기존의 화류계뿐만 아니라 각종 퀴어 행사가 소규모로 열리기도 하며, 3월 31일이나 11월 20일 등의 트랜스젠더 기념일에는 몇몇 건물에 프라이드 플래그가 걸리기도 한다.
이태원이 이러한 성적 다양성을 수용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상술하였듯 다양한 국적과 인종을 가진 사람들이 유입되어 다양성 자체에 우호적인 분위기가 형성되었고, 90년대 이후 관련 업소들이 소방서 인근 골목에 밀집하면서 상업 시설의 분포가 변화하며 성소수자의 색깔을 띠는 공간으로 변모했다. 이러한 역사를 통해 이태원은 성적으로 보수적인 한국에서 몇 안 되는 다양성의 중심지가 될 수 있었다. 따라서 이태원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양지화된 성소수자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곳 중 하나가 되었다.[25]
8.5. 클럽
자세한 내용은 이태원동/클럽 문서 참고하십시오.이태원 하면 클럽으로도 유명한데, 홍대와 강남, 부산 서면에 이은 4대 클럽 밀집 지역이기도 하다.
9. 주요 기관/시설
대한민국에서 다문화 사회가 가장 잘 이루어진 곳 답게 많은 국가의 대사관/영사관들을 비롯한 외교공관들이 이곳에 위치해 있다. 경리단길 주변으로는 알제리, 필리핀, 에티오피아, 케냐 등 주로 중동과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대사관, 대사관저가 있다. 근처에 외국인 학교도 있다.이태원의 랜드마크로도 유명한 해밀톤 호텔이 있다. 1970년대에 문을 연 해밀톤 호텔은 특2급 호텔로 다른 유명한 특급 호텔들에 비하면 다소 급이 낮지만 주위에 유명한 식당이 많고 호텔 야외 수영장이 물놀이 장소로 유명하다.[26]
용산구청, 용산구보건소가 이태원동에 있다. 원래는 원효로1가 효창공원역에 부근에 구청이 있었지만 2010년 이태원동에 새 청사를 지어서 이사를 왔다. 이태원 거리에서는 다소 떨어져 있고 녹사평역 사거리 인근에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1동에 서울보광초등학교, 2동에 서울이태원초등학교와 서울디지텍고등학교가 있다.
10. 사건 사고
10.1. 이태원 살인 사건
자세한 내용은 이태원 살인 사건 문서 참고하십시오.10.2. 이태원 클럽 코로나19 집단 감염 사건
자세한 내용은 이태원 클럽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집단 감염 사건 문서 참고하십시오.10.3. 이태원 압사 사고
자세한 내용은 이태원 압사 사고 문서 참고하십시오.11. 출신 인물
12. 기타
- 여기에 살고 있는 외국인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카사노바 기질에 불량한 사람도 비교적 자주 보이니 주의해서 나쁠 것은 없다. 심지어 수십 년 전의 신문에도 나온 적이 있는 것을 보면 나름 전통은 있는 모양이다. 1984년 이태원의 낮과 밤 이야기 - 경향신문
- 다문화 중심지 답게 동네의 중심가인 이태원로 거리에는 각 나라별 인사와 국기 및 지도가 적힌 동판이 있으며, 쓰레기 무단 투기에 대한 경고문이 아랍어로도 표기되어 있다.
-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수입 식품 마트가 몇 군데 있다. 물론 한국인도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다.
- 제법 상권이 큼에도 대형마트나 백화점[27], 멀티플렉스 상영관[28]이 없다. 서울역[29]이나 용산역[30]으로 가면 찾을 수 있지만 거리에 비해 둘 다 4호선 환승이 강제 되는 등 대중교통 접근성이 좋지 않다.
- 이곳의 의류 매장들은 대부분 빅 사이즈를 구비해 놓고 있다. 일부 전문 매장은 상의 XL, 하의 36인치가 제일 작은 사이즈인 경우도 있으며 60인치 정도 되는 어마어마한 바지도 흔하게 볼 수 있다. 다만, 정작 비만으로 고심하는 외국인들은 한국 상인들이 웨스턴 사이즈 (서양 사이즈) 옷이 있다고 호객할 때면 뚱보라고 부르는 것 같아서 우울해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31] 신발도 300 이상의 사이즈를 항시 구비해 놓고 있어서 빅 사이즈 의류를 구입하려는 한국인들이 찾는 경우도 많다.
- 조선 시대 중기부터 1937년 이전까지 이태원 언덕 일대는 서울에서 가장 큰 공동묘지가 위치해 있던 곳이기도 했다. 조선 시대에는 이태원 일대 역시 성저십리 지역이라 묏자리 못 잡는 사산 금표 권역이기도 했으나 서민들은 이를 무시하고 묘지로 써 왔다. 1914년 정식 공동묘지로 지정됐으나 경성의 인구 수 급증과 이에 따른 개발로 묏자리가 더 없어서 1931년 경성부는 신규 매장을 중단했고, 기존 분묘들도 점차 망우리로 이전하도록 하여 그 자리는 주택가로 변모했다.(참고1, 참고2)
- 2020년 JTBC를 통해 방영된 웹툰 원작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가 이 지역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며 국내외에서 흥행하면서 주변 상권이 다시금 흥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코로나 집단 감염 사태가 일어나면서 빛이 바랬다. 사실 이전에도 미군 기지의 평택 이전에 따른 미군 부재로 어느 정도 침체는 시작됐지만 그래도 관광객이 늘면서 커버를 치고 있었는데, 그 관광객이 다시 또 끊기고 말았다. 그래도 코로나가 엔데믹 국면에 들어선 2023년 중순을 기준으로 다시 이태원에 오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회복하고 있다.
- 외국인이 많이 사는 동네다 보니 종종 외국인들이 깽판을 치는 일도 있다. 아예 대놓고 이태원 살인 사건과 같이 외국인 범죄의 온상이 된 시절도 있으며 현재에도 자잘한 범죄가 발생하고 있다. 그나마 젠트리피케이션된 부분은 우범 지역에서 벗어났지만, 이러한 곳은 이전까지의 이태원 분위기와는 다소 동떨어져 있다.
- 인디게임 안녕서울 : 이태원편에서 제목 답게 주요 장소로 중 하나로 나온다.
[A] 2024년 5월 주민등록인구[2] 조선시대 사신이나 관리의 마필을 공급하고 일반 길손이 머물던 공영숙소다.[3] 원래는 오빠인 이재용이 임세령과 결혼 후 이혼하기 전까지 살던 신혼집이었다. 2020년에 여동생인 이서현 이사장에게 247억원에 팔았다고 한다.[A] [5] 이태원동 100-3[A] [7] 이태원동 255-54[8] 이태원로에서 한남대교 방향으로 진출하려면 중간에 난 대사관로라는 2차선 도로를 통해 한남오거리에서 우회전을 하거나, 아니면 장충동 쪽으로 쭉 올라갔다가 산 중턱에 있는 회전교차로에서 돌아서 내려오는 방법 밖에는 없다.[9] 인종은 천차만별이다. 심지어 한국인이 캣 콜링을 하는 것도 종종 볼 수 있다.[10] 방탄소년단 정국, 유아인, 박명수, 송중기 등 있다.[11] 유명 팝 음악을 쉽게 듣기 어려웠던 20세기의 젊은이들에게는 록 음악 감상실이 있어서 유명 팝송을 원판으로 들을 수 있는 자유의 공간이기도 했다.[12] 이태원의 상징과도 같은 해밀톤 호텔은 바로 미군들이 직업 여성이나 영어를 배우려는 학생들과 친구가 되어 애용하던 모텔 같은 호텔로 일주일 내내 불야성을 이뤘다. 그 호텔과 미군의 끈끈한 역사는 무려 1970년대 초반부터 시작했다. 다만 지금의 해밀톤 호텔은 용산기지가 이전하고 나서 대규모 리모델링을 통해 더 이상 모텔 같은 호텔로 운영하고 있지 않다. 리모델링 기간만 6개월이 넘어 갔는데, 신규 고객을 잡기 위해 얼마나 심혈을 기울여 리모델링 했는지 알 수 있다.[13] 이태원역이 개통 이래 처음으로 연평균 이용 승객 20,000명 선이 깨졌고, 이 지역 터줏대감이라고 할 수 있는 방송인 홍석천이 자신의 가게들을 전부 폐업할 정도였다.[14] 다만, 기사 표를 봐도 알 수 있듯이 절대치에서는 아직도 전통 상권이 꽤 유지되고 있다.[15] 사실 바게트가 터키식으로 현지화한 에크멕(ekmek)이라는 빵이다. 과거에 터키에서는 이 빵을 '프랑스빵'(Fransız ekmeği)이라고 불렀지만 현재는 이스탄불을 중심으로 보편화된 빵이다. 일본에서도 바게트를 프랑스빵이라고 부를 때가 많다.[16] 이런 곳들은 관광 가이드가 단체 관광객을 데리고 오면 가격을 후려쳐서 싸게 주지만 개인이 주문하면 맛도 별로인 음식을 비싸게 주문 받는다.[17] 젤렌이라는 레스토랑으로, 서빙하는 사장도 불가리아인이다. 마조 & 새디에도 나와 어설픈 한국어로 "다 마싯서요"라고 말한 사람이 이 사장이다. 지금은 폐업했지만 현지인들 사이에서 숨겨진 맛집으로 인기가 많았다. 또 2014년 11월부터 냉장고를 부탁해에 출연하고 있는 미할 스파소프 아슈미노프 셰프가 있는 곳이기도 했으며 현재는 수지구로 이전했다.[18] 아프리카에서 흔히 밥으로 많이 먹는 옥수수 가루떡도 먹어볼 수 있다. 고기 조림에 매콤한 소스와 같이 싸먹는데 한국인은 그리 즐겨 먹지 않아서인지 메뉴를 보면 영어로만 많이 나와있다. 물론 한국어로도 얼마든지 주문이 가능하다. 그 밖에 에티오피아 · 에리트레아 요리, 즉 인제라를 제대로 먹어볼 수 있는 곳도 이태원에 있다. 다만 나이지리아인이나 세네갈인들 사이에서 이러한 식당들이 요리를 성의 없이 해서 자국 요리의 평판을 깎아 먹는다는 악평이 심하다.[19] 새벽까지도 영업하는 길거리 케밥 노점상을 보면 양고기 케밥도 많이 판다. 무슬림도 제법 있다 보니 수요가 있기 때문에 양고기 본토 케밥을 맛보려면 이태원이 딱이다. 물론 닭고기, 소고기, 돼지고기 케밥도 얼마든지 팔기에 식성대로 골라 먹을 매력이 있다. 파는 사람도 터키인에서부터 아랍인, 아프리카인 등 다양하다.[20] 원래 영국식 펍은 밥과 술을 함께 먹을 수 있는 곳이다.[21] 그러다 보니 마조 앤 세디에서는 해외여행 가고 싶다고 하자 그냥 날 잡아 이태원에 있는 해밀톤 호텔에 머물면서 불가리아, 요르단 등 다양한 현지 음식을 먹어보면 해외여행을 갈 필요가 없다고 나왔을 정도다.[22] 그런데 이 글을 쓴 칼럼리스트가 이태원에 더부스라는 맥주 가게를 열었다.[23] 정식 명칭은 한국이슬람중앙회 서울중앙성원이다. 그런데 이태원동이 아닌 한남동에 위치해 있다.[24] 모스크 안을 자세히 보면 돔의 유리에 금이 가있다.[25] https://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Id=NODE02163129[26] 특히 호텔 야외 수영장에서 여는 비키니 파티의 사실상 원조격으로 잘 알려져 있다.[27] 롯데백화점과 신세계백화점 모두 가장 가까운 점포는 남산 너머 소공동에 있는 롯데백화점 본점, 신세계백화점 본점이다. 현대백화점과 갤러리아백화점은 둘 다 가장 가까운 점포가 한강 건너 압구정에 있는 현대백화점 압구정점, 갤러리아 명품관인데, 둘 다 한 번에 연결되는 지하철 노선이 없어 접근성은 매우 안 좋다.[28] 가장 가까운 CGV는 CGV 용산아이파크몰이며 메가박스는 한강 건너 버스터미널(센트럴시티)에 있는 메가박스 센트럴이다.[29] 이태원에서 가장 가까운 롯데마트 제타플렉스 서울역점과 롯데아울렛 서울역점이 있다.[30] 이태원에서 가장 가까운 이마트가 여기 있는데, 여기도 이태원과 그렇게 가깝지는 않다.[31] 당연한 이야기지만 단순이 살이 쪄서 큰 사이즈를 입는 경우도 있으나, 키가 크다던가 어깨가 한국인 체형보다 넓어 큰 옷을 입는 경우도 있음을 감안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