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15 17:57:58

나(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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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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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색: 2015년 기준으로 총 인구 100명 미만인 성씨
한자 표기가 다르더라도 한글 표기가 같으면 합산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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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1. 나주 나씨1.2. 금성 나씨1.3. 안정 나씨
2. 인물
2.1. 한국계 인물2.2. 외국계 인물
3. 가상 인물4. 나씨가 예명인 유명인

1. 개요



한국의 성씨 중 하나다. 원래 발음은 '라'였지만, 2007년까지 적용된 두음 법칙에 따라 '나'로 표기해야 했다. 두음 법칙을 적용하는 '류'씨와 적용 대상이 아닌 '유'씨로 나뉘는 유씨와는 달리, 나씨는 전부 두음법칙을 적용받은 라씨 성이다. 즉, 우리 주변의 '나'씨 성 사람들 모두는 원래 라씨인 것. 다만 그 이전부터 '류'씨처럼 '라'씨로 쓰는 사람들도 가끔 볼 수 있었다.

크게 나주 나씨와 금성 나씨가 있다. 금성(錦城)은 나주의 옛 지명[1]으로, 두 본관은 시조가 다른 씨족이다. 이들의 차이는 김해 김씨김녕 김씨, 일선 김씨선산 김씨, 칠원 윤씨함안 윤씨, 성주 이씨성산 이씨의 차이와 같다. 인구는 나주 나씨가 금성 나씨보다 두 배 이상 많다.

나씨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두 씨족이 모두 전남을 기반으로 큰 씨족이기 때문에, 나씨의 지역별 인구 분포를 보면 대체로 전라도, 그중에서도 특히 전라남도에 압도적으로 많다.

나주와 금성 외에는 수성과 안정, 비안, 군위, 의성 나씨가 있다. 안정 나씨 등 경상도 나씨는 토착 성씨이며, 족보를 뒤져봐도 나주 및 금성 나씨와는 계통을 공유하지 않는다.참조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로 각각 나주 나씨는 27명, 금성 나씨 3명, 안정 나씨 16명, 수성 나씨 3명을 배출하였다. 근현대 인물로는 나철, 나운규, 나석주, 나도향, 나혜석 등이 있는데, 특히 나석주동양척식주식회사 폭탄 투척 사건으로 인해 역사 교과서에서 반드시 등장하는 무장 독립운동가 중 한 명이다.

2015년 통계청 기준, 총 160,946명이며 본관별로 나주 96,018명, 금성 51,966명, 안정 7,312명, 수성 3,001명, 그 외 2,649명이다.

1.1. 나주 나씨

나주 나씨의 시조 나부(羅富)는 남송 예장(豫章: 현재 중국 장시성) 사람으로, 나라가 위급해지자 봉명사신(奉命使臣)으로 고려에 왔다가 남송이 멸망함에 따라 본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고려에 귀화하였다고 한다. 전라도의 여황(艅艎: 현 광주광역시 광산구 임곡동)에 정착하였는데, 어질고 덕을 많이 베풀었으므로 호남의 망족(望族)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나부는 고려조에서 감문위상장군(監門衛上將軍)이란 무관직을 지냈다. 감문위는 중앙군의 일부로서 궁성의 수비를 담당하는 부서이고 상장군은 그 부서의 책임자로서 품계는 정삼품으로 정의대부(正議大夫)이다. 시조의 중국 행적은 사료로는 밝혀지지 않는다(여기까지의 출처). 영조 때 반란에 나주 나씨가 참여하였다가 실패하여 멸족당할 위기가 있었고, 이때 일부 아이들이 금성 나씨에게 피난을 가서 살아남은 자들이 있다. 이때부터 금성 나씨와 나주 나씨 간 결혼이 많이 일어났기에 그때부터는 사실상 한 집안이나 마찬가지인 경우가 많아졌고, 해당 집안의 후손들은 나씨 간 결혼을 꺼리게 되었다.

1.2. 금성 나씨

금성 나씨의 시조는 고려 초에 삼한공신(三韓功臣)이었던 대광(大匡) 나총례(羅聰禮)이다.[2][3] 나총례는 고려사 나유(羅裕) 열전과 나유의 아들인 나익희(羅益禧, ?~1344)의 묘지명에서도 시조로 언급된다. 전승에 따르면 그는 고려 초 등과해 한림이 됐으며 정종 때 공신의 호를 받고 삼중대광 보국숭록대부로 금성부원군(錦城府院君)에 봉해졌다. 그래서 그의 후손들은 나주의 옛 지명인 금성(錦城)을 본관으로 삼고 있다. 2세손인 나은고는 자의대부를 지내고 금산군에 봉해진 것을 시작으로 그 후 11세손까지 3명이 대광(大匡) 벼슬을 지내고, 4명의 부원군(府院君), 5명이 봉군(封君)을 받아 고려시대 때는 명실 상부한 명문 거족의 한 자리를 차지했다. 금성 나씨의 후예로는 고려 때 대장군을 지냈던 나유, 조선시대 때 문명(文名)을 떨쳤던 나세찬, 조선시대에 거북선을 직접 설계하고 제작한 것으로 유명한 나대용 등이 있다. 금성 나씨 가문의 집성촌은 나주시 문평면에 몰려있고, 나주 나씨와는 같은 지역에서 성장하며 결혼 등으로 얽혀있어, 서로를 한 집안이나 마찬가지인 친인척쯤으로 여기고 있다.

1.3. 안정 나씨

안정 나씨의 시조는 고려 말의 인물인 나천서이며 경북 의성 출신이다. 1370년 이성계요동 정벌 후 귀환 당시 병사들을 구휼한 공로로 안정현(安定縣; 현재의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 안정리)을 식읍으로 받아 안정백(安定伯)에 봉해졌으며, 이후 안천군(安川君)이 되었다. 안정을 관향으로 정하여 그 후손이 안정 나씨가 되었다. 나천서는 조선 건국 후에는 출사하지 않아, 훗날 두문동 72현의 한 사람에 포함되었다. 조선시대 사림의 형성기에 나식, 나숙, 나익 형제가 활동하였고, 나익의 후손으로 병자호란 당시의 기록인 병자록을 저술한 나만갑[4]과 그의 아들 나성두, 손자 나양좌, 나홍좌[5]로 이어졌다. 나만갑 대에는 전주 이씨, 안동 김씨, 은진 송씨, 연안 이씨, 경주 김씨 등 명문가와 혼맥으로 이어졌고, 나양좌, 나홍좌 대에 이르러 소론계로 가문의 방향이 정해진다.[6]

2. 인물


2.1. 한국계 인물

2.2. 외국계 인물

외국에서는 두음법칙이 없이 중국에서는 간체자로 罗로 쓰고 luo(뤄)로 발음하고, 홍콩에서는 '로'로 발음한다.

3. 가상 인물

'나는 누구누구 혹은 XX다 '처럼 보여서인지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작품 및 여러 애니메이션 캐릭터 이름으로 자주 등장한다. 자기중심적인 인물에게도 많이 쓰인다.

4. 나씨가 예명인 유명인


[1] 태조 왕건이 금성을 점령한 뒤 나주로 지명을 바꾸었다.[2] 전승에 따르면 삼한벽상 일등공신(三韓碧上 一等功臣)을 책봉받았다고 하나, 정사와는 교차검증되지 않으므로 이는 후대에 조상 미화 차원으로 일어난 윤색으로 보인다.[3] 원래는 김해 김가였다는 설도 있었다. 그렇다면 오히려 이 본관은 허황옥과도 관련이 있다. 태조 왕건에 나오는 종례태수가 바로 이 사람이다.[4] 서인에 속했다.[5] 이 둘은 사촌이다. 나홍좌는 나성두의 동생 나성원의 아들.[6] 보물로 지정된 나신걸 한글편지의 작성자인 나신걸이 안정 나씨이다. 나식의 부친인 나세걸과 나신걸이 사촌 형제이다. 곧 나신걸은 나식의 당숙인 셈.[7] 개명 전 이름은 나종덕.[8] 나성범의 형이다.[9] 한국 이름은 나두빈.[10] 다만 라건아의 경우는 귀화했기 때문에 용인 라씨이다. 그리고 해당 성씨의 시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