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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FIFA 월드컵/2002~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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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2002~2010 2014~2022

1.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1]

대한민국은 이 대회 개최국이었기에 지역 예선을 면제받아 자연스럽게 5회 연속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차범근이 경질된 후 허정무가 대표팀 감독으로 취임했는데, 허정무호 역시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였다. 2000 AFC 아시안컵 레바논 12강 본선 조별리그에서 쿠웨이트에게 패배해 탈락 직전까지 갔다가 3차전에서 인도네시아를 꺾고 간신히 8강에 올랐다. 8강에서는 지난 대회 때 2:6 대참패를 기록한 이란을 맞아 연장 혈투 끝에 2:1로 꺾고 4강에 올랐다. 그러나 이란과 씨름하느라 진을 다 뺀 탓인지, 4강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를 상대로 무기력한 경기력을 보인 끝에 1:2로 패배해 또 다시 우승에 실패했다. 3위 결정전에서 중국을 1:0으로 꺾고 간신히 3위를 했지만 라이벌이자 공동 개최국 일본은 우승을 차지했기에 상처만 남고 말았다.

결국 허정무 역시 경질되었고, 개최국으로서 자존심을 살리기 위해 이왕이면 거물급 외국인 감독을 섭외하자는 여론이 대두되었다. 그리하여 대한축구협회는 1순위로 지난 대회에서 프랑스에게 첫 월드컵 우승을 안겨준 에메 자케와 접촉했다. 그러나 자케는 어떤 팀 감독도 맡고 싶지 않고 쉬고 싶다며 거절했고, 2순위로 접촉한 인물이 바로 지난 대회에서 한국을 울렸던 거스 히딩크였다. 히딩크 역시 한국 측의 제안에 썩 매력을 느끼지 않았으나, 프랑스 월드컵 이후 그도 커리어에 하락세가 와서 터닝 포인트가 필요했던 데다가 한국이 도저히 들어줄 수 없을 것 같은 요구사항까지도 다 들어주겠다고 하니 결국 한국의 제안을 수락했다.

하지만 이렇게 출범한 히딩크호도 처음엔 좌충우돌의 연속이었다. 월드컵의 예행 연습 같은 대회인 2001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한국·일본 개막전에서 한국은 프랑스에게 0:5 참패를 당했다. 이후 멕시코를 2:1로 이기고 호주를 1:0으로 이겼지만, 프랑스가 호주에게 0:1로 패하며 덜미를 잡히는 바람에 멕시코는 3전 전패로 탈락이 확정되었고 한국, 프랑스, 호주 3팀이 모두 2승 1패로 동률을 이루었으나 한국은 골득실이 -3에 불과해 결국 조 3위 대회 5위로 4강 진출에 실패했다. 반면 공동 개최국 일본은 준우승을 차지했고, 그 때문에 히딩크는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컨페드컵 이후로는 유럽 원정 평가전을 떠났는데, 이때 당시 황금세대가 즐비했던 체코를 상대로 또 0:5 참패를 당했다. 이때 히딩크에게 붙은 불명예스러운 별명이 바로 '오대영'이었다. 계속되는 졸전으로 인해 히딩크를 경질하라는 여론이 솔솔 일어나기 시작했고, 여기에 외국인 지도자들에게 배타적이었던 한국의 원로 축구인들이 불을 지폈다. 조광래 감독은 칼럼을 통해 베스트 11을 빨리 정하여 전술 조직력을 다지지 않고 매일 체력 훈련만 하는 히딩크를 강하게 비판했고, 박종환 감독은 아예 히딩크를 사기꾼이라고 거칠게 비난하며 자신이 대표팀 감독을 맡으면 8강까지 진출시킬 수 있다고 큰소리를 뻥뻥 쳤다. 이렇게 점점 여론이 악화되었지만 히딩크는 자신의 시계는 2002년 6월에 맞춰져 있다고 받아치며 기다려줄 것을 호소했다. 대한축구협회장 정몽준도 히딩크의 후원자를 자처하며 흔들리지 않게 다잡아 주었다.

거기다가 2001년 12월에 있었던 조 추첨은 한국을 더욱 절망에 빠뜨렸다. 한국은 폴란드, 포르투갈, 미국과 함께 D조에 속했는데, 폴란드는 그 빡센 유럽 지역예선을 가장 먼저 통과해 본선 진출에 성공한 팀이었고 포르투갈은 당시 루이스 피구, 파울레타, 세르지우 콘세이상 등 황금세대 슈퍼스타들이 즐비했던 우승후보였으며 미국 역시 북중미의 강호로 마냥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속담에 남의 떡이 더 커보인다고 했던가? 공동 개최국인 일본은 유럽에서도 중위권 정도 실력에 불과한 벨기에, 러시아, 그리고 약체인 튀니지와 함께 H조에 속해 한국보다 훨씬 더 수월해서 부럽게만 느껴졌다.

이렇게 흔들리던 히딩크호가 다시 희망을 찾게 된 건 2002년 3월이었다. 유럽 원정 평가전에서 튀니지, 핀란드, 튀르키예와 맞붙어 1승 2무의 성적을 거두며 서서히 여론이 반전되기 시작했고, 4월에는 2002 CONCACAF 골드컵 4강에서 1:3 패배를 안겨주었던 코스타리카와 다시 맞붙어 2:0 승리를 거두었다.[2] 그리고 5월에는 스코틀랜드를 4:1로 대파했고, 뒤이어 마이클 오언, 데이비드 베컴 등이 버티던 잉글랜드를 상대로 1:1 무승부를 거두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1년 전 0:5 참패를 안겨준 프랑스를 상대로 대등한 경기력으로 맞서다 2:3 석패를 당했다. 1년 사이에 이렇게 팀이 강해지면서 한국 축구팬들은 다시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희망 그리고 용기를 얻었고, 이번에야말로 첫 승과 16강이 가능하리라 보았다.

1.1. 32강 조별리그 폴란드전 - 2 : 0 승

파일: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로고_좌우.svg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D조 1경기
2002년 6월 4일 화요일 20:30 (UTC+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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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중: 48,76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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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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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6월 4일, 부산광역시 연제구 거제동에 위치한 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한국의 조별리그 1차전 폴란드와의 경기가 열렸다. 이 경기를 앞두고 먼저 열린 다른 아시아 팀들의 성적은 심히 형편없었다. 아시아 대표 4팀 중 가장 먼저 경기를 치른 사우디아라비아는 전차군단 독일에게 힘 한 번 못 써보고 0:8 대패를 당했고, 중국은 이날 오후 3시 반에 광주에서 코스타리카와 맞붙었으나 역시 무기력한 경기력을 보인 끝에 0:2 패배를 당했다. 6시에 열린 일본과 벨기에의 경기도 2:2 무승부로 끝나며 아시아 팀 모두 1승도 거두지 못한 상태였다.

한국도 이날 경기에서 초반에는 이상하게 몸이 무거운 듯한 모습을 보이며 기세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이렇게 초반 밀리던 기세는 전반 15분, 주장 홍명보의 중거리 슛 한 방으로 반전되었다. 비록 홍명보의 슛은 상대 선수를 맞고 골문을 벗어났지만 선수들에게 용기와 활력을 불어넣었다. 그때부터 한국은 기세를 잡고 경기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전반 25분, 미드필더 이을용이 폴란드 좌측 진영에서 낮고 빠른 크로스를 올렸고 이걸 황선홍이 왼발 발리킥으로 연결해 선제골을 뽑아냈다. 한국이 1:0으로 앞서가기 시작한 것이다. 실점한 폴란드는 다시 공세에 나섰지만 한국의 수비진은 찰거머리같이 폴란드를 압박했다. 경기 전 경계령이 내려졌던 폴란드의 공격수 엠마누엘 올리사데베는 한국의 압박 수비에 꽁꽁 묶여 볼 터치 한 번 제대로 못했다.

전반전을 1:0으로 마친 한국은 후반전에 더욱 공세를 높였다. 그리고 후반 8분, 폴란드의 페널티 에어리어 외곽에서 유상철이 강력한 중거리 슛을 날렸고 폴란드 골키퍼 예지 두덱이 펀칭했으나 워낙 슈팅이 강력해서 그대로 손을 맞고 골문 안으로 들어가 2:0으로 점수가 더 벌어졌다. 이제 그토록 기대하던 첫 승이 눈 앞에 다가오기 시작했다. 폴란드가 맥을 못 추자 히딩크는 추가골을 넣어 아예 철저하게 박살내 버리겠다는 의지로 안정환, 이천수, 차두리 등 공격수를 잇달아 투입했다. 그러나 새로 투입된 공격수들은 마음이 너무 급했는지 부정확한 슈팅을 남발했고 좋은 슈팅도 두덱의 선방에 막혀버렸다.

결국 경기는 한국의 2:0 완승으로 끝났다. 월드컵에 도전한 지 무려 48년 만에 기록한 첫 승이자 6번째 대회 15번째 경기 만에 거둔 첫 승이었다. 특히 골을 넣은 선수가 황선홍과 유상철이라는 두 백전노장들이어서 더욱 의미가 깊었다.[3] 노장들의 마지막 불꽃을 찬란하게 피운 경기였기 때문이다. 첫 승을 거둔 대표팀의 기세는 하늘을 찔렀고,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16강에 갈 것이라는 장밋빛 희망이 이어졌다. 이제 다음 경기인 미국전에서 승리하면 즉시 16강 진출이 확정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운명은 꼭 우리의 예상대로 흘러가지만은 않았다.

다음 날,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미국과 포르투갈의 경기가 열렸다. 당초 예상대로라면 포르투갈이 이겨야 마땅한 경기였다. 그런데 포르투갈 선수들은 준비가 덜 된 것인지 지나치게 몸이 무거웠고, 예상을 깨고 전반 5분 만에 미국 수비수 존 오브라이언이 선제골을 넣더니 전반 29분엔 조르주 코스타가 자책골을 넣어버렸고 전반 36분엔 브라이언 맥브라이드가 쐐기골을 넣으며 모든 이들의 예상을 깨고 미국이 3:0으로 앞서가기 시작했다. 3골 차까지 벌어지고 나서야 정신을 차린 포르투갈은 다시 반격에 나섰고, 전반 39분에 베투가 1골을 만회했고 후반 26분에 미국 수비수 제프 아구스자책골을 넣으며 점수를 또 1점 따라붙었으나 거기까지였다. 그렇게 경기는 예상을 깨고 미국의 3:2 승리로 돌아갔다. 이로 인해 다음 경기인 한미전은 건곤일척의 승부를 겨룰 운명의 경기가 되고 말았다.

1.2. 32강 조별리그 미국전 - 1 : 1 무

파일: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로고_좌우.svg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D조 3경기
2002년 6월 10일 월요일 15:30 (UTC+9)
[[대구스타디움|{{{#ffffff 대구월드컵경기장}}}]] ([[대한민국|{{{#ffffff 대한민국}}}]], [[대구광역시|{{{#ffffff 대구광역시}}}]] [[수성구|{{{#ffffff 수성구}}}]])
주심: 파일:UEFA SUI.png [[위르스 마이어|{{{#ffffff 위르스 마이어}}}]]
관중: 60,778명
파일:대한축구협회 엠블럼(2002~2019).svg
1 : 1
파일:USA USSF 2002.png
파일:UEFA KOR.png 대한민국 파일:UEFA USA.png 미국
78′ [[안정환|{{{#000000,#dddddd 안정환}}}]] (A. [[이을용|{{{#000000,#dddddd 이을용}}}]]) 파일:득점 아이콘.svg 24′ [[클린트 매시스|{{{#000000,#dddddd 클린트 매시스}}}]] (A. [[존 오브라이언|{{{#000000,#dddddd 존 오브라이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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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6월 10일, 대구광역시 수성구 대흥동에 위치한 대구월드컵경기장에서 한국의 32강 조별리그 2차전 피파랭킹 13위의 미국과의 경기가 열렸다. 한국과 미국 모두 1차전에서 나란히 승리를 거두었는데, 골득실에서 한국이 +2로 +1인 미국보다 1골이 더 앞서서 조 1위에 있었다. 한국으로선 16강 상대로 막강한 이탈리아를 피하기 위해선 반드시 조 1위를 차지할 필요가 있었고, 그러기 위해선 반드시 운명의 한미전에서 승리를 거두어야 했다. 그렇게 오후 3시 반에 폭염으로 뜨겁게 달궈진 대구 분지가 더욱 달아오르게 만드는 한미전이 열렸다.

한국은 초반부터 미국을 강력하게 공격했지만, 미국은 폴란드보다 더 짜임새 있는 조직력으로 한국의 맹공을 분쇄하며 경기를 어렵게 꼬았다. 그러던 중 전반 22분, 황선홍이 미국 수비수 프랭키 헤이덕과 충돌하여 이마가 찢어지는 부상을 당했다. 황선홍이 부상을 치료하기 위해 그라운드 밖으로 나가면서 일시적으로 한국이 수적 열세 상태가 되었는데, 미국은 이 틈을 놓치지 않았다. 미국의 공격수 클린트 매시스가 번개 같은 역습으로 전반 24분에 선제골을 터뜨리며 1:0으로 미국이 앞서가기 시작했다. 한국은 동점골을 넣으려 사력을 다했지만 이상하게 폴란드전에 비해 무거운 몸놀림을 보이며 뭔가 잘 풀리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던 중 전반 38분, 미국 수비수 제프 아구스가 페널티 에어리어에서 황선홍을 잡아 넘어뜨리는 파울을 범했고 주심은 곧바로 페널티킥을 선언했다. 동점골을 넣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킥커로 이천수가 볼을 만지작거리며 욕심을 냈으나, 본래 페널티킥 찬스가 생기면 1순위 킥커로 이을용을 배정했기 때문에 박항서 코치는 이을용이 차도록 지시했고 결국 이을용이 나섰다. 이을용은 왼발로 살짝 감아찼는데, 발동작이 미국 수문장 브래드 프리델에게 읽혀버렸고 결국 득점 기회는 무산되었다.[4] 그렇게 햔국은 전반전을 0:1로 뒤진 채로 마무리했다.

후반전이 되자 한국은 부상당한 황선홍을 빼고 안정환을 교체 투입해 공격의 칼을 더욱 날카롭게 갈았다. 그러나 아무리 두들기고 두들겨도 미국의 골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특히 설기현은 여러 차례 좋은 골 찬스를 날려버려 1994년 대회 볼리비아전의 황선홍보다 더 심한 욕을 퍼먹었다. 이렇게 패색이 짙어지던 후반 33분, 한국이 좋은 위치에서 프리킥 찬스를 얻었다. 킥커는 40여 분 전에 페널티킥을 실축했던 이을용이었다. 이을용은 전방으로 높이 볼을 띄웠고, 안정환이 그걸 헤더로 연결해 천금같은 동점골을 넣었다. 다시 승부를 원점으로 돌린 한국은 계속해서 남은 시간 동안 공격을 퍼부었지만 더 이상의 골이 나오지 않았다. 특히 종료 직전에 미국의 좌측 진영을 쇄도해 들어간 이을용이 페널티 박스 좌측에서 최용수에게 패스했고, 이때 프리델은 이을용의 크로스를 잡으려다 실패해서 골문이 비어있었건만 최용수는 '독수리 슛'으로 공을 공중으로 띄워버리며 천금같은 찬스를 날려먹고 말았다. 그렇게 경기는 1:1 무승부로 승점 1점을 획득하였고, 한국과 미국은 1승 1무로 동률을 이루었으나 골득실에서 앞선 한국이 여전히 조 1위를 유지했으며, 대한민국 월드컵 사상 최초로 북중미팀에 승점을 획득했다.

한편 같은 날 밤 8시 30분에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포르투갈과 폴란드의 경기는 이 조의 향방을 삼차방정식 수준으로 꼬아버렸다. 미국과의 경기에서 졸전 끝에 2:3으로 패배하며 체면을 구겼던 포르투갈은 폴란드를 상대로는 마치 '종로구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긴다'는 속담처럼 1차전의 패배를 화풀이하듯 골을 퍼부었다. 원톱 파울레타해트트릭을 달성하는 괴력을 발휘한 끝에 4:0 대승을 거둔 것이다. 폴란드는 2패로 탈락이 확정되었고, 나머지 3팀은 모두 16강 진출이 가능했다. 한국에게 놓인 경우의 수는 다음과 같다. 이기거나 비기면 16강에 진출하지만 패배할 경우 폴란드가 미국을 반드시 이겨주어야만 했다. 16강에 가는 길은 여전히 쉽지 않았다.

1.3. 32강 조별리그 포르투갈전 - 1 : 0 승

파일: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로고_좌우.svg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D조 5-1경기
2002년 6월 14일 금요일 20:30 (UTC+9)
[[인천문학경기장|{{{#ffffff 인천문학경기장}}}]] ([[대한민국|{{{#ffffff 대한민국}}}]], [[인천광역시|{{{#ffffff 인천광역시}}}]] [[미추홀구|{{{#ffffff 남구}}}]])
주심: 파일:UEFA ARG.png {{{#ffffff 앙헬 산체스}}}
관중: 50,239명
파일:Portugal FPF 2002.png 0 : 1
파일:대한축구협회 엠블럼(2002~2019).svg
파일:UEFA POR.png 포르투갈 파일:UEFA KOR.png 대한민국
- 파일:득점 아이콘.svg 70′ [[박지성|{{{#000000,#dddddd 박지성}}}]] (A. [[이영표|{{{#000000,#dddddd 이영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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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최우수 선수: 파일:UEFA KOR.png [[박지성|{{{#ffffff 박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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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6월 14일,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에 위치한 인천문학경기장에서 한국의 조별리그 3차전 포르투갈과의 경기가 열렸다. 현재 D조의 중간 순위는 한국과 미국이 나란히 1승 1무를 기록했지만 골득실에서 앞선 한국이 1위, 미국이 2위였으며 그 뒤를 이어 1승 1패를 기록한 포르투갈이 3위, 4위는 2패를 기록한 폴란드였다. 최하위인 폴란드는 이미 탈락이 확정되었고 나머지 3팀은 모두 16강 진출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승점 1점이 앞선 한국은 포르투갈과 비기기만 해도 16강에 진출할 수 있었지만, 포르투갈은 한국을 반드시 이겨야만 16강에 진출할 수 있었다. 이제 양 팀의 운명이 걸린 경기가 시작되었다.

경기가 시작되자 포르투갈은 초반부터 거친 플레이로 파울을 하나하나씩 적립하고 있었다. 한국도 이전과는 달리 상대의 거친 파울에 밀리지 않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맞서 싸웠다. 좌우 풀백인 이영표송종국은 철저한 압박 수비로 포르투갈의 플레이메이커 루이스 피구를 아예 그라운드에서 삭제해 버렸다. 한국의 압박 수비에 우승후보라는 포르투갈 선수들은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고, 한국이 끈적한 압박 수비로 포르투갈의 공격을 분쇄하자 점차 탈락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싹튼 포르투갈 선수들의 플레이는 점점 더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전반 26분, 드리블을 시도하던 박지성을 향해 주앙 핀투프로레슬링드랍 토 홀드 기술과 흡사한 백태클을 걸어 쓰러뜨렸다.[5][6] 지난 대회에 이어 이번 대회 역시 백태클 제재를 강화하라는 피파의 지침이 있었기에 주심 앙헬 산체스는 곧바로 주앙 핀투에게 퇴장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포르투갈 선수들은 떼로 몰려와서 주심에게 항의를 했고, 거기다가 주앙 핀투 본인은 분노를 못 참고 주심의 복부를 주먹으로 가격하는 미친 짓거리를 저질렀다. 이에 주심 앙헬 산체스도 폭발하여 주앙 핀투와 맞짱이라도 뜰 기세로 달려들려고 했지만, 다행히도 선수들이 말린 덕분에 집단 난투극으로까지 번지지는 않았다.[7]

그리고 4분 후, 한국의 코너킥 찬스에서 공격에 가담한 센터백 최진철과 포르투갈 골키퍼 비토르 바이아가 공중볼 경합을 했는데, 이때 최진철과 바이아가 충돌하며 볼이 흘렀고 그 흐른 볼을 설기현이 잽싸게 왼발로 밀어넣어 선제골을 넣었지만 주심은 골키퍼 차징을 선언하며 득점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한국은 우승후보라는 포르투갈을 상대로도 전혀 밀리지 않는 경기력을 선보였고, 전반전은 그렇게 0:0으로 마무리되었다. 한편 같은 시각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폴란드와 미국의 경기에선 2패로 탈락이 확정된 폴란드가 뒤늦게 저력을 발휘하며 전반 3분 만에 엠마누엘 올리사데베가 선제골을 넣었고, 불과 2분 후에 파베우 크리샤워비치가 추가골을 터뜨리며 폴란드가 2:0으로 앞서가기 시작했다. 물론 히딩크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일부러 선수들에게 알리지 않았고, 고참급 선수인 주장 홍명보와 부주장 유상철에게만 넌지시 이 사실을 알리며 함구하도록 지시했다.

후반전이 되자 홈 관중들의 열렬한 응원 + 수적 우세까지 등에 업은 한국은 포르투갈을 사정없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포르투갈의 플레이메이커 루이스 피구는 수시로 동료들에게 자신에게 패스하라는 신호를 보냈지만 송종국의 찰거머리같은 압박에 볼 터치 한 번 제대로 못 해보고 꽁꽁 묶였다. 이렇게 0:0의 스코어가 이어지던 중 후반 21분, 베투가 이영표를 향해 파울을 범하자 경고를 받았는데 문제는 베투는 이미 전반 22분에 경고를 받았다는 것이었다. 결국 베투가 경고 누적으로 퇴장당하며 이제 포르투갈은 9명만 뛰게 되는 불리함을 안게 되었다. 그런데 그때 같은 시각, 대전광역시에서는 폴란드의 마르친 제프와코프가 또 1골을 넣어서 폴란드가 3:0으로 앞서갔다. 이제 9명만 그라운드에 남은 이상 포르투갈이 취할 수 있는 길은 오로지 무승부라도 거두는 것밖에 없었다. 한국과 비기기만 해도 미국과 승점은 1승 1무 1패로 동률이지만, 골득실에서 포르투갈이 +3, 미국이 -2가 되기 때문에 16강에 올라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일까? 포르투갈의 안토니우 올리베이라 감독은 후반 24분, 과감하게 원톱 스트라이커 파울레타를 빼고 수비수 조르즈 안드라드를 기용하는 승부수를 띄웠다. 올리베이라 감독이 보낸 메시지는 "여기서 우리끼리 피 터지게 싸울 필요 없이 사이좋게 같이 16강 가십시다."라는 의미였다.[8] 하지만 히딩크는 올리베이라의 이런 간절한 메시지를 묵살했다.

1분 후인 후반 25분, 포르투갈 좌측 진영에서 드리블을 하던 이영표가 반대쪽으로 길게 크로스를 올렸다. 그리고 그 크로스를 박지성이 가슴으로 받았고, 박지성은 그 볼을 오른발로 가볍게 트래핑하여 수비하던 세르지우 콘세이상을 벗겨내고 왼발로 땅볼 강슛을 날렸다. 이 볼은 바이아의 가랑이 사이를 지나갔고 그대로 골문 안으로 빨려들어갔다. 드디어 그토록 기다리던 결승골이 터진 것이다. 이제 급해진 것은 포르투갈이었다. 포르투갈은 이대로 경기가 끝나면 무조건 탈락이었기에 어떻게 해서든 남은 20분 동안 동점골을 넣어야 했다. 포르투갈은 남은 필드 플레이어 8명 전원이 공격에 나설 정도로 계속해서 파상공세를 퍼부었으나 이운재 골키퍼가 지키는 한국의 골문은 쉽사리 함락되지 않았다. 누누 고메스가 결정적인 득점 찬스를 잡았으나 골대를 맞추는 불운까지 겪었다.

그리고 후반 45분이 모두 지나고 추가시간이 적용될 때, 포르투갈이 코너킥 찬스를 얻었다. 포르투갈 코치는 바이아에게 공격에 가담하라는 지시를 했고, 지난 대회의 벨기에와 마찬가지로 이번 대회의 포르투갈도 골키퍼가 골문을 비우고 공격에 가담하는 극단적인 전술을 쓰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러한 보람도 없이 포르투갈은 골을 넣지 못했고 순식간에 한국의 역습으로 이어졌다. 골문은 텅 비어있었기에 바이아는 죽을 힘을 다해 다시 골문으로 허겁지겁 복귀했고, 한국이 쇄도해 들어갈 때 경기 종료 휘슬이 울렸다. 그렇게 경기는 모든 이들의 예상을 깨고 한국의 1:0 승리로 끝났다. 2승 1무의 전적을 기록한 한국은 D조 1위로 6번째 도전 끝에 드디어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1.4. 16강전 이탈리아전 - 2 : 1 승

파일: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로고_좌우.svg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16강 8경기
2002년 6월 18일 화요일 20:30 (UTC+9)
[[대전월드컵경기장|{{{#ffffff 대전월드컵경기장}}}]] ([[대한민국|{{{#ffffff 대한민국}}}]], [[대전광역시|{{{#ffffff 대전광역시}}}]] [[유성구|{{{#ffffff 유성구}}}]])
주심: 파일:UEFA ECU.png [[비론 모레노|{{{#ffffff 비론 모레노}}}]]
관중: 38,588명
파일:대한축구협회 엠블럼(2002~2019).svg
2 : 1
(서든데스 연장전)
파일:Italy FIGC 2000 2002.png
파일:UEFA KOR.png 대한민국 파일:UEFA ITA.png 이탈리아
88' [[설기현|{{{#000000,#dddddd 설기현}}}]]
117' [[골든골|{{{#f90,#dddddd (골든골)}}}]] [[안정환|{{{#000000,#dddddd 안정환}}}]] (A. [[이영표|{{{#000000,#dddddd 이영표}}}]])
파일:득점 아이콘.svg 18' [[크리스티안 비에리|{{{#000000,#dddddd 크리스티안 비에리}}}]] (A. [[프란체스코 토티|{{{#000000,#dddddd 프란체스코 토티}}}]])
- 파일:퇴장 카드 아이콘.svg 103′ [[프란체스코 토티|{{{#000000,#dddddd 프란체스코 토티}}}]] 파일:경고 퇴장 아이콘.svg
[[https://m.youtube.com/watch?v=WwEJllE28Iw|{{{#a38054 경기 다시 보기}}}]] | [[https://youtu.be/1Z4Pnby9EjY|{{{#003b9e 경기 하이라이트}}}]] | [[https://www.fifa.com/tournaments/mens/worldcup/2002korea-japan/match-center/43950056|{{{#f1011e 매치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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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강 진출에 성공하자 거스 히딩크는 국민 영웅으로 급부상했고, 국민들의 분위기도 한껏 들떠있었다. 그러나 거스 히딩크는 그 유명한 I'm still hungry.(난 아직도 배가 고프다.)라는 말로 분위기를 다잡았다. 즉 16강으로 만족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한편 한국의 16강 상대는 불행하게도 G조 2위를 차지한 전통의 강호 아주리 군단 이탈리아였다. 이탈리아를 피하기 위해서 죽을 힘을 다해 조 1위를 했건만 그런 보람도 없었던 것이다. 이는 역으로 말하자면 그만큼 이탈리아가 조별리그에서 보여준 모습이 기대 이하였다는 뜻이었으며 실제로도 그러했다. 1차전 상대인 에콰도르에게는 크리스티안 비에리의 원맨 쇼로 가뿐하게 2:0 승리를 거두었지만, 2차전에서는 발칸 반도의 복병 크로아티아에게 제대로 당하며 1:2 역전패를 당했고 3차전 멕시코와의 경기에서도 졸전 끝에 1:1 무승부를 거두며 간신히 16강 진출에 성공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32강 조별리그에서 고전했다고 하더라도 이탈리아는 여전히 강팀이었다. 본래 이탈리아란 팀 자체가 그동안 조별리그에서는 고전하지만 토너먼트에 진출하기만 하면 펄펄 나는 팀이었다. 언제나 늘 금방이라도 탈락할 듯하면서도 좀비처럼 꾸역꾸역 올라가는 팀이 바로 이탈리아였다. 그렇기에 그들이 조별리그에서 고전했다고 해서 쉽게 볼 만한 팀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 경기가 열리기 5시간 전에 일본과 터키의 16강전이 열렸는데, 그 경기에서 터키가 전반 12분에 넣은 위미트 다발라의 결승골을 끝까지 잘 지켜 1:0으로 승리했고 일본은 탈락했다. 공동 개최국이었기에 그 어느 때보다도 한일 간 성적 비교가 극에 달한 때였는데 일본이 일찌감치 떨어졌기에 태극전사들은 심적 부담을 덜게 되었다.

그리고 2002년 6월 18일, 대전광역시 유성구 노은동에 위치한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한국과 이탈리아의 경기가 열렸다. 경기를 앞두고 붉은 악마들은 이탈리아를 향해 놀라운 심리전을 개시했는데, 그 심리전은 바로 카드 섹션이었다. 이날 카드 섹션은 'AGAIN 1966'이었다. 즉 36년 전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박두익의 결승골로 이탈리아를 1:0으로 격침시킨 북한의 이변을 그대로 재현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것은 이탈리아 축구계에선 금지어이자 오랫동안 잊고 싶은 흑역사였고, 이렇게 자신들의 아픈 상처를 후벼파낸 붉은 악마들의 카드 섹션에 이탈리아 측은 노발대발했고 주최 측에게 카드 섹션을 중지하라고 격렬하게 항의했다고 한다. 이탈리아 선수들과 코칭 스태프들은 이미 이때부터 평정심을 잃은 채로 경기에 나섰다. 그렇게 한국과 이탈리아의 8강 티켓을 놓고 벌인 단판 승부가 시작되었다.

이탈리아 선수들은 초반부터 한국을 향해 거친 파울을 남발하며 기를 죽이려 했다. 그 때문에 전반 4분 만에 프란체스코 코코가 경고를 받았고 이탈리아 우측 진영에서 프리킥을 얻었다. 그리고 송종국이 프리킥을 찼는데, 그때 페널티 에어리어에서 이탈리아의 라이트백 크리스티안 파누치설기현의 유니폼을 잡고 씨름하듯이 넘어뜨리는 파울을 범했고 주심 비론 모레노는 곧바로 페널티킥을 선언했다. 한국은 이른 시간에 선제골을 넣을 절호의 기회를 잡았고 키커는 안정환이 나섰다. 그런데 안정환의 얼굴은 뭔가 잔뜩 긴장한 듯한 모습이 역력했고[9], 아니나 다를까 안정환의 킥은 어정쩡한 높이로 날아갔고 이탈리아의 수문장 잔루이지 부폰의 선방에 막히고 말았다. 결정적인 득점 찬스를 놓쳐버린 것이다. 기회 뒤에 바로 위기가 찾아왔다. 이탈리아는 계속해서 거친 플레이로 한국 선수들의 기를 죽이며 반격에 나섰고, 때문에 센터백 김태영이 비에리의 팔꿈치에 맞아 코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당하기까지 했다.[10]

그렇게 조금씩 밀리는 경기를 하던 중 전반 18분, 이탈리아가 코너킥 찬스를 얻었다. 킥커로 플레이메이커 프란체스코 토티가 나섰고, 센터백 최진철이 비에리를 철저하게 마크했으나 비에리의 피지컬은 정말로 천하장사였다. 비에리는 괴물 같은 피지컬로 최진철을 기어이 날려버리고 헤더로 골을 우겨넣었고[11], 그렇게 이탈리아가 1:0으로 앞서갔다. 이렇게 1점 앞서가자 이탈리아는 서서히 세계적으로 악명이 높은 카테나치오를 발동하며 잠그기에 돌입했다. 한국 선수들은 주눅들지 않고 맞서 싸웠으나 악명 높은 이탈리아의 수비에 가로막히며 좀처럼 골문을 열지 못했다. 그렇게 전반전은 0:1로 한국이 뒤진 채로 끝났다.

후반전이 되자 한국은 계속해서 볼을 소유하며 공격을 펼쳤고, 이탈리아는 수비로 버틴 후 간헐적으로 역습에 나섰다. 시간은 점점 흘러가는데 이탈리아의 굳게 닫힌 빗장은 부서질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그러자 히딩크는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할 승부수를 띄웠다. 우선 후반 18분에 부상을 당한 수비수 김태영을 빼고 공격수 황선홍을 투입해 공격수 숫자를 늘렸다. 그리고 후반 23분, 역시 부상을 당한 수비형 미드필더 김남일 역시 불러들이고 공격수 이천수를 투입했다. 마지막으로 후반 36분에는 수비의 핵이자 대표팀 주장인 홍명보마저 빼고 공격수 차두리를 투입했다. 이렇게 공격수만 5명을 투입하는 총공격 폭격 작전을 시행한 것이다.[12] 하지만 이 작전을 단순히 닥공으로만 치부해서는 안 되는 것이, 위 참고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기존에 공격형 미드필더 포지션을 맡고 있던 유상철, 송종국을 후미로 내려보내며 수비 밸런스를 유지하면서 공격을 강화하는 교체 카드였다. 즉 거스 히딩크 전 감독의 철학인 멀티 플레이어 육성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패색이 짙어지던 중 후반 43분, 이탈리아 진영의 아크 정면 외곽에서 박지성이 우측의 황선홍에게 짧은 패스를 건넸고 황선홍은 중앙으로 짧은 패스를 했다. 그런데 그때 이탈리아의 라이트백 크리스티안 파누치가 치명적인 볼 처리 미스를 범했고, 이렇게 흘러나온 볼을 페널티 에어리어에 있던 설기현이 놓치지 않고 왼발 슛을 날렸고 그게 이탈리아 골문 우측 구석으로 빨려들어가며 극적으로 동점골을 성공시켰다. 다시 승부는 1:1 원점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불과 1분 후에 선제골의 주인공 비에리가 다시 끝내기 펀치를 시도했다. 반대쪽에서 함께 쇄도하던 다미아노 톰마시가 대지를 가르는 크로스로 반대편의 비에리에게 볼을 건넸고, 그걸 비에리가 받았으나 다행히도 공은 비에리의 오른발에 맞으며 하늘 위로 높이 떠버렸다. 비에리는 왼발의 달인이었지만 오른발은 약했기에 참으로 다행인 일이었다.[13] 뒤이어 후반 종료 직전에 차두리가 정석에 가까운 바이시클 킥을 선보였으나 아쉽게도 부폰의 선방에 막히며 득점이 무산되었다. 그렇게 후반전은 1:1로 마쳤고, 이제 승부는 연장전으로 이어졌다.

연장전으로 이어지자 승부는 다시 팽팽하게 이어졌다. 당시는 골든골 제도가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1골을 넣어야만 경기가 끝났다. 특히 이탈리아는 지난 월드컵에서 3번 승부차기를 해서 3번 모두 패배한 바 있었기 때문에 악몽 같은 승부차기를 피하기 위해선 반드시 골든골을 넣어야 했다. 그렇게 1:1의 스코어가 이어지던 중 연장 전반 13분, 코코가 자기 진영에서 한 번에 길게 전방으로 볼을 띄웠고 비에리가 헤더로 받아 페널티 박스 부근에 있는 토티에게 공을 떨어뜨려 주었다. 토티는 곧바로 문전으로 쇄도했고, 송종국이 달라붙어 토티를 밀착 마크했다. 이때 토티는 페널티킥을 유도하려고 다이빙 동작을 했는데, 이게 그만 주심에게 적발되고 말았고 결국 주심은 시뮬레이션 액션 제재를 강화하라는 당시 피파의 지침에 따라 토티에게 즉시 경고를 주었다. 그런데 토티는 이미 전반 22분에 김남일을 팔꿈치로 치는 반칙을 범해 경고를 받았으므로 결국 경고 누적으로 퇴장당했다. 토티에게 레드카드가 내려지자 파올로 말디니와 비에리, 안젤로 디 리비오 그리고 토티 본인까지 모두 격렬하게 항의했지만 주심은 단호하게 판정을 번복하지 않고 그대로 토티에게 퇴장을 명령했다.[14] 그리하여 이제 이탈리아는 10명이 뛰게 되었다. 연장 전반엔 득점이 나지 않았고, 이제 승부는 연장 후반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연장 후반에도 양 팀은 팽팽한 접전을 벌였으나 양 팀 모두 기회를 아쉽게 놓쳤다. 그렇게 하염없이 시간은 흘러갔고, 스코어는 여전히 1:1로 이어지고 있었다. 이제 연장전도 서서히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어 조심스럽게 승부차기를 예측하기 시작할 때였다. 그러던 연장 후반 12분, 한국 진영 우측에서 송종국이 다시 전방으로 길게 패스를 했는데[15] 이 패스는 이탈리아 페널티 에어리어 좌측 외곽에 있던 이천수가 받았고 이천수는 뒤의 이영표에게 백패스를 했다. 볼을 받은 이영표는 곧바로 전방으로 볼을 띄웠고, 안정환이 높이 솟구쳐 헤더 슛을 날렸다. 안정환의 헤더 슛은 그대로 이탈리아 골문 우측 구석으로 빨려 들어가며 골든골이 터졌다. 117분의 피 말리는 접전 끝에 결국 경기는 대한민국의 극적인 2:1 역전승으로 끝났고, 한국은 1966 잉글랜드 월드컵 때 북한에 이어 아시아에서 2번째로 8강 진출에 성공했다.

이렇게 우리에게는 영광스러운 승리로 기억된 경기였지만, 이탈리아에게는 치욕적인 패배로 남게 되었다. 그 때문이었는지 이탈리아는 1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구질구질하게 심판 판정 탓을 하며 패배를 승복하지 않는 추태를 보이고 있다. 당시 경기를 뛰었던 토티와 당시 이탈리아의 주장 말디니는 여전히 비론 모레노 주심이 한국에게 유리하게 편파판정을 했다고 주장하면서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패배를 승복하지 않고 있다. 물론 그들 입장에선 몇 가지 판정 문제가 불공정해 보일 수 있겠지만, 이탈리아 역시 저지른 파울에 비하면 페널티를 덜 받은 편이었다. 우선 한국 수비수 김태영을 팔꿈치로 쳐서 코뼈를 부러뜨린 비에리는 레드 카드는 커녕 옐로카드를 1장도 안 받았다.[16] 또 후반 13분에 크리스티아노 자네티가 경고를 받았는데, 사실 그 경고는 그때 파울을 범한 선수가 코코였으므로 본래 그에게 가야 할 것이었다. 모레노가 착각하고 엉뚱한 선수에게 경고를 준 것이었다. 그런데 코코는 이미 전반 4분에 경고를 받은 상태였고, 모레노가 제대로 판정했다면 이탈리아는 이미 후반 13분부터 10명이 뛰어야 했다. 모레노가 실수를 한 덕분에 이탈리아는 그래도 100분 넘게 11명이 온전하게 뛸 수 있었던 것이다. 즉 이탈리아가 이 경기에서 마냥 불리한 판정을 받은 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까지 승부에 승복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과연 이 팀이 월드컵 챔피언으로서의 자격과 품위가 있는 팀인지 심히 의문스러울 지경이다. 현재까지도 이 경기로 인한 한국과 이탈리아 양 측 축구 팬들 사이 감정의 골은 아직도 깊은 편이다.[17][18]

1.5. 8강전 스페인전 - 0 : 0 무(PSO 5 : 3 승)

파일: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로고_좌우.svg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8강 3경기
2002년 6월 22일 토요일 15:30 (UTC+9)
[[광주월드컵경기장|{{{#ffffff 광주월드컵경기장}}}]] ([[대한민국|{{{#ffffff 대한민국}}}]], [[광주광역시|{{{#ffffff 광주광역시}}}]] [[서구(광주광역시)|{{{#ffffff 서구}}}]])
주심: 파일:UEFA EGY.png [[가말 간두르|{{{#ffffff 가말 간두르}}}]]
관중: 42,114명
파일:스페인 국장.svg 0 : 0
A.E.T.
(PSO 3 : 5)
파일:대한축구협회 엠블럼(2002~2019).svg
파일:UEFA ESP.png 스페인 파일:UEFA KOR.png 대한민국
- 파일:득점 아이콘.svg -
[[https://www.fifa.com/fifaplus/ko/watch/jyx3DXmgIlOs0dkYWki6e|{{{#a38054 경기 다시 보기}}}]] | [[https://youtu.be/x_HVvF-A5OY|{{{#003b9e 경기 하이라이트}}}]] | [[https://www.fifa.com/tournaments/mens/worldcup/2002korea-japan/match-center/43950059|{{{#f1011e 매치 리포트}}}]]
경기 최우수 선수: 파일:UEFA KOR.png [[이운재|{{{#ffffff 이운재}}}]]
승부차기
파일:UEFA ESP.png 스페인
GK: [[이케르 카시야스|{{{#fbd96c 이케르 카시야스}}}]]
3 : 5 파일:UEFA KOR.png 대한민국[19]
GK: [[이운재|{{{#fe2d4c 이운재}}}]]
후축 선축
페르난도 이에로 파일:승부차기 성공 아이콘.svg 1 파일:승부차기 성공 아이콘.svg[20] 황선홍
루벤 바라하 파일:승부차기 성공 아이콘.svg 2 파일:승부차기 성공 아이콘.svg 박지성
사비 에르난데스 파일:승부차기 성공 아이콘.svg 3 파일:승부차기 성공 아이콘.svg 설기현
호아킨 산체스 파일:승부차기 실패 아이콘.svg
(골키퍼 선방)
4 파일:승부차기 성공 아이콘.svg 안정환
- 5 파일:승부차기 성공 아이콘.svg 홍명보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히딩크호/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스페인전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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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8강 상대는 무적함대 스페인이었다. 정말 지지리 복도 없는 대진운이 아닐 수 없었다. 대한민국이 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서 연장전까지 치르느라 진을 다 빼버린 반면 스페인은 대한민국보다 이틀을 더 쉬어서 체력적으로 더 유리한 상태였다. 더군다나 스페인은 이탈리아와 다르게 조별리그부터 계속 쭉 대한민국에서 경기했기에 이동으로 인한 페널티도 전혀 없었다. 홈 그라운드라는 것 하나만 빼면 전혀 유리한 점이 없었던 것이다. 대한민국과 스페인이 월드컵에서 만난 건 이번이 벌써 3번째였다. 첫 번째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대결에서 스페인이 3:1로 이겼고[21], 두 번째 1994년 미국 월드컵 대결에서 당시 FIFA 랭킹 40위 대한민국이 5위 스페인을 상대로 2:2 무승부 승점 1점을 기록했다.[22] 그 후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축구 16강 본선 조별리그에서 스페인한테 0:3으로 패하였다. 과연 이번엔 한국이 승리할 수 있을지, 아니면 스페인이 또 다시 대한민국을 꺾고 1950년 브라질 월드컵 이후 52년 만에 4강 진출에 성공할 것인지 운명이 걸린 경기가 열렸다.

체력적으로 지친 대한민국은 전반전 내내 스페인에 일방적으로 밀리는 모습을 보였고, 전반전부터 스페인 선수들이 매우 거칠게 나왔으나 주심이 대부분 그냥 넘어가면서 한국은 더더욱 고생할 수 밖에 없었다. 전반 5분에 모리엔테스가 김태영에게 냅다 백태클을 날렸지만 주심은 그냥 넘어갔고, 전반 12분에 김남일이 엔리케 로메로에게 발목을 밟히는 부상을 당하여 교체되었으며, 전반 39분에 엘게라가 안정환을 스페인 페널티지역에서 머리를 가격하여 눕혔으나 주심은 대한민국에게 페널티킥도 안주었고 전반 19분에는 안정환설기현에게 패스할 때 명백한 온사이드였으나 주심이 오프사이드를 선언하는 오심을 일으켰다. 골키퍼 이운재의 맹활약이 아니었다면 벌써 대량 실점했을 정도로 스페인의 공격력은 무서웠다. 반대로 스페인 입장에서는 경기를 지배했지만 골 운이 지지리도 없었다. 유효슈팅이 이운재의 선방에 틀어막히거나, 몇 cm 차이로 빗나가거나 살짝 위로 뜨며 골망 위에 살포시 얹어지거나 하는 장면이 나오면서 좀처럼 한국의 골문을 열지 못했다. 정말 속된 말로 골대에 귀신이라도 붙은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요상하게 골이 들어가지 않았다. 대한민국 입장에서는 매우 다행인 순간들이었고, 스페인 입장으로서는 애간장이 타들어가다 못해 열불 터지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전반전은 0:0으로 마쳤다.

후반전이 시작되고 후반 3분에 이을용이 호아킨 산체스를 막는 과정에서 반칙을 범하여 프리킥을 내주었고, 호아킨이 올린 크로스를 루벤 바라하가 헤딩으로 골을 성공시켰지만 주심은 공중볼 경합 상황에서 이반 엘게라가 점프할때 김태영의 목을 눌러 수비를 방해했다는 이유로 파울을 선언하며 득점은 무효가 되었다.[23][24] 이후 대한민국은 유상철을 빼고 발이 빠른 이천수를 투입하며 공격의 강도를 높여 서서히 페이스를 되찾아갔고 다시 어느 정도 대등하게 겨루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한민국과 스페인 모두 결정적인 득점 기회를 놓치며 계속해서 0:0의 스코어를 깨뜨리지 못했다. 그렇게 후반전 45분도 헛심 공방으로 끝나며 승부는 연장전으로 흘러갔다. 이후 연장 전반 1분에 한국 진영을 쇄도하던 호아킨 산체스가 페널티 에어리어 우측 외곽에서 크로스를 올렸고 이걸 페르난도 모리엔테스가 헤더로 연결해 공이 골대 안으로 들어갔으나, 부심은 볼이 공중에 뜬 상태에서 골 라인을 나갔다가 다시 들어왔다고 판단했고 주심 가말 간두르 역시 부심의 의견을 받아들여 골로 인정하지 않았으나 이 판정은 오심이었다.[25] 연장전 30분 동안 양 팀 모두 치열하게 맞붙었지만 결국 헛심 공방으로 끝났고, 0:0으로 비기며 이제 승부는 승부차기로 가리게 되었다.

승부차기 추첨 결과 대한민국의 선축으로 결정되었다. 대한민국의 1번 킥커는 백전노장 스트라이커 황선홍이었다. 황선홍은 골문 오른쪽(=골키퍼의 왼쪽)으로 낮고 빠른 슈팅을 날렸고, 스페인의 수문장 이케르 카시야스도 방향을 읽었으나 슛이 워낙 강했기에 카시야스의 겨드랑이를 파고들며 골인이 되었다. 스페인의 1번 킥커 역시 백전노장인 주장 페르난도 이에로였다. 이에로는 이운재의 눈을 속이며 가볍게 골을 성공시켰다. 뒤이어 대한민국의 2번 킥커 박지성과 스페인의 2번 킥커 루벤 바라하도 나란히 골을 성공시켰다. 대한민국의 3번 킥커 설기현과 스페인의 3번 킥커 차비 에르난데스도 골을 성공시키며 3:3으로 승부차기에서도 여전히 팽팽한 승부를 이어갔다. 그리고 4번 킥커의 차례가 되었다. 대한민국의 4번 킥커 안정환은 과감하게 가운데로 슛을 날리며 성공시켰다. 그리고 스페인의 4번 킥커는 호아킨 산체스였다. 하지만 산체스의 얼굴은 긴장한 것이 분명해 보였고, 산체스는 킥을 하기 전에 이운재의 움직임을 뺏기 위해 한 번 주춤했는데 그게 오히려 악수가 되었다. 이운재는 미리 방향을 읽고 움직이지 않았고 킥이 날아오자 정확하게 왼쪽으로 몸을 날려 펀칭했다. 드디어 팽팽하던 승부의 균형이 깨졌다. 그리고 마지막 5번 킥커는 대표팀의 주장 홍명보였다. 홍명보가 골을 성공시키면 그대로 승부는 끝나고 실축하면 다시 승부가 이어진다. 평소에도 표정 변화가 거의 없는 홍명보는 승부차기에서도 포커 페이스를 유지했다. 주심의 휘슬이 울렸고, 홍명보가 찬 킥은 정확하게 골문 오른쪽 상단을 출렁이며 골이 되었다.

승부차기까지 이어지는 접전 끝에 대한민국은 승부차기 5:3으로 스페인을 제압하고 아시아 최초로 4강 진출에 성공했다. 유럽과 남미 이외의 대륙 팀이 준결승 진출에 성공한 것은 인터넷과 TV도 없고 세계 축구 인프라 보급이 안 된 시절의 1930년 우루과이 월드컵 때 미국이 4강(3위)에 오른 이후 무려 72년 만이었다. 지난 대회까지 단 1승도 거두지 못한 팀이 이번 대회에서 준결승까지 오르는 기적을 발휘한 것이다. 마치 8년 전 1994년 미국 월드컵 당시 불가리아가 일으킨 이변의 스토리를 그대로 대한민국이 재현하는 듯했다. 이렇게 대한민국의 돌풍은 4강까지 이어졌고, 이제 서서히 우승에 대한 욕심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포르투갈 - 이탈리아 - 스페인으로 이어지는 막강한 상대들과 악전 고투를 벌이고 연장전 및 승부차기까지 가는 씨름을 한 대한민국 선수들의 체력은 이미 고갈될 대로 고갈되어 있었다.

1.6. 4강전 독일전 - 0 : 1 패

파일: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로고_좌우.svg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4강 1경기
2002년 6월 25일 화요일 20:30 (UTC+9)
[[서울월드컵경기장|{{{#ffffff 서울월드컵경기장}}}]] ([[대한민국|{{{#ffffff 대한민국}}}]], [[서울특별시|{{{#ffffff 서울특별시}}}]] [[마포구|{{{#ffffff 마포구}}}]])
주심: 파일:UEFA SUI.png [[위르스 마이어|{{{#ffffff 위르스 마이어}}}]]
관중: 65,256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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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대한축구협회 엠블럼(2002~2019).svg
파일:UEFA GER.png 독일 파일:UEFA KOR.png 대한민국
75' [[미하엘 발락|{{{#000000,#dddddd 미하엘 발락}}}]] 파일:득점 아이콘.sv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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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4강 상대는 전차군단 독일이었다. 정말 산 넘어 산이라 할 정도로 불운하기 짝이 없는 대진표였다. 하지만 이번 대회의 독일은 그래도 이전과는 달리 충분히 해볼 만한 상대였다. 지역예선부터 심각하게 나사가 빠져서 잉글랜드에게 홈에서 1:5로 대패하는 굴욕을 당하며 플레이오프까지 밀려났다가 간신히 본선에 올라온 상태였다. 그리고 본선에서도 사우디아라비아를 상대로만 8:0 대승을 거두었을 뿐 나머지 경기에서는 1골 차 진땀승을 거두며 겨우겨우 4강까지 올라온 팀이었다. 그래서 대회 전만 하더라도 독일을 우승후보로 지목하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이미 한국 선수들은 우승후보로 지목되었던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을 모조리 물리치고 4강까지 올라왔기에 자신감이 충만될 대로 충만되어 있었다. 이제 독일만 넘어서면 꿈의 무대인 결승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한편 이 경기는 누가 야신상을 수상하느냐를 가리는 중요한 경기이기도 했다. 8강전까지 한국 골키퍼 이운재는 5경기 2실점을 했고, 독일 골키퍼 올리버 칸은 5경기 1실점을 했다. 브라질 골키퍼 마르쿠스는 5경기 4실점, 튀르키예 골키퍼 뤼쉬튀 레츠베르는 5경기 3실점을 기록한 상황이었다. 즉 4강 진출국 골키퍼 가운데 칸이 가장 적은 실점을 기록했고 그 다음이 이운재, 그 다음이 레츠베르, 브라질 골키퍼 마르쿠스가 가장 많은 실점을 기록한 것이다. 4명의 골키퍼 모두 야신상 후보였지만 그 중에서도 칸과 이운재가 가장 적은 실점을 기록했기에 사실상 이 경기야말로 야신상 수상자를 가리는 중요한 경기인 셈이 되었다. 그렇게 결승 진출권과 더불어 야신상 수상을 놓고 한국과 독일의 운명을 건 한판 승부가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펼쳐졌다.

한국 선수들은 8년 전과 마찬가지로 독일을 맞아서 전혀 주눅들지 않고 당당하게 맞서 싸웠다. 그러나 지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폴란드 - 미국 - 포르투갈 - 이탈리아 - 스페인으로 이어지는 막강한 상대들과 연달아 씨름한데다 경기도 상대 팀보다 하루 내지는 이틀씩 늦게 치르는 바람에 체력 회복을 위한 텀도 짧았다. 반면 독일은 사우디아라비아 - 아일랜드 - 카메룬 - 파라과이 - 미국 등 비교적 수월한 상대들과 경기를 치렀고, 한국과는 반대로 상대 팀보다 경기를 먼저 치러서 체력 회복을 위한 텀이 길었다. 이 경기에서도 한국 선수들보다 하루를 더 쉬고 경기에 나선 상태였다. 그 때문인지 한국 선수들은 점점 힘에 부치는 모습을 보였다.

설상가상으로 칸이 지키는 독일의 골문은 좀처럼 함락되지 않았다. 특히 전반전에 차두리의 기가 막힌 스루 패스를 받은 이천수가 논스톱 발리 슛을 날렸지만 칸은 괴물 같은 반사 신경으로 그걸 막아냈다. 이 부분에서 축구 좀 봤다는 사람들은 이기기 힘들겠다는 걸 직감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철저하게 수비 후 역습으로 나서며 독일의 공격을 잘 방어해냈다. 지칠 대로 지친 한국과 대결하는데도 좀처럼 한국의 골문이 열리지 않자 독일 선수들도 당황하기 시작했다. 전반전 내내 방패와 방패 간 대결이 이어지며 지루한 공방전을 벌인 끝에 0 : 0으로 마무리했다. 이제 남은 45분의 결과에 따라 한국의 결승 진출 여부가 결정될 것이었다.

후반전이 되자 히딩크는 백전노장 스트라이커 황선홍을 빼고 안정환을 투입했고 이탈리아, 스페인 선수들과 연달아 씨름하면서 탈진해 버린 센터백 최진철도 불러들이고 이민성을 교체 투입했다. 이후로도 독일이 계속해서 공격하고 한국은 압박 수비로 버틴 후 역습하며 득점 기회를 만들어 갔다. 이렇게 한국은 오랜 시간 동안 독일의 공세를 잘 방어했지만, 순간 집중력 미스 한 번에 모든 것을 어그러뜨리고 말았다. 후반 30분에 수비수 김태영이 치명적인 패스 미스를 범했고 이 패스미스를 올리버 뇌빌이 가로챘다. 뇌빌은 중앙으로 쇄도하던 미하엘 발락에게 패스했고, 발락이 오른발 슛을 날렸으나 이운재가 쓰러지면서 주먹으로 볼을 쳐냈다. 위기를 넘겼다 싶었으나 불행하게도 볼은 다시 발락의 발 앞으로 갔고, 발락은 다시 왼발로 슛을 날려 기어이 결승골을 뽑아냈다. 히딩크는 동점골 획득을 위해 주장 홍명보를 불러들이고 공격수 설기현을 교체 투입해 공격의 강도를 높였다. 경기 막판에 박지성이 좋은 득점 기회를 잡았으나 제대로 슛을 쏘지 못해 하늘 위로 떠버렸다.

결국 경기는 이렇게 독일의 1:0 승리로 돌아갔고, 한국의 행진도 여기서 멈추게 되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4강까지 올라올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던 데다 아무리 지역예선에서 나사 빠진 모습을 보였어도 여전히 세계 강호 중 하나인 독일을 상대로 대등하게 맞서 싸운 한국의 선전에 모두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 체력이 조금만 더 버텨주었다면 결승 진출의 대업을 이룰 수도 있었지만, 너무나도 불운한 대진운 때문에 막강한 상대들과 연달아 겨루게 되었고 그 때문에 힘이 부친 것이 패배의 원인이었다.

한편 독일은 이 경기에서 어느 정도 심판 판정의 이익을 보기도 했다. 위에 기록된 주심의 이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이 경기의 주심 위르스 마이어는 '독일계 스위스인\'이었다.[26] 한국과 독일이 시합을 하는데 독일계 스위스인을 심판으로 배정하다니 참으로 어이가 없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이전까지 독일은 각 경기 20개 이상 파울을 했지만, 이 경기에선 독일이 8개, 한국이 16개였다. 이런 불공평한 심판 배정을 두고 당시 정몽준 전 대한축구협회장이 제프 블래터 전 FIFA 회장에게 항의하기도 했다. #

그 밖에 이날 붉은 악마들은 카드 섹션으로 '꿈★은 이루어진다'를 내걸었다. ★은 우승을 의미하는 것인데, 실제로 월드컵 우승을 차지한 팀의 엠블럼에는 ★이 우승한 횟수만큼 박힌다.. 그래서 브라질의 유니폼엔 ★이 5개, 독일과 이탈리아의 유니폼엔 ★이 4개다.[27] 즉 우승을 노리는 야심이 담긴 카드 섹션이었다. 사실 이 당시에는 기대했던 것보다 조금 약발이 약하다는 의견이 많았지만, 최대 규모가 동원된 카드 섹션이었고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4강전에서 벌인 카드 섹션이라 그런지 지금까지도 널리 회자되고 있다.

1.7. 3위 결정전 터키전 - 2 : 3 패

파일: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로고_좌우.svg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3위 결정전
2002년 6월 29일 토요일 20:30 (UTC+9)
[[대구스타디움|{{{#ffffff 대구월드컵경기장}}}]] ([[대한민국|{{{#ffffff 대한민국}}}]], [[대구광역시|{{{#ffffff 대구광역시}}}]] [[수성구|{{{#ffffff 수성구}}}]])
주심: 파일:쿠웨이트 국기.svg [[사드 마네|{{{#ffffff 사드 마네}}}]]
관중: 63,483명
파일:대한축구협회 엠블럼(2002~2019).svg
2 : 3
파일:튀르키예 국기.svg
파일:UEFA KOR.png 대한민국 파일:UEFA TUR.png 터키
9' [[프리킥|{{{#000000,#dddddd (FK)}}}]] [[이을용|{{{#000000,#dddddd 이을용}}}]]
90+3′ [[송종국|{{{#000000,#dddddd 송종국}}}]]
파일:득점 아이콘.svg 1′[28]11초로 월드컵 역대 최단 시간 득점이다.] [[하칸 쉬퀴르|{{{#000000,#dddddd 하칸 쉬퀴르}}}]]
13′, 32' [[일한 만시즈|{{{#000000,#dddddd 일한 만시즈}}}]]
[[https://m.youtube.com/watch?v=n4SnCfuSQZE&pp=ygUVMjAwMiDslaDqta3qsIAg7YSw7YKk|{{{#a38054 경기 다시 보기(전반전)}}}]] | [[https://m.youtube.com/watch?v=LKEJ1FDr9yw|{{{#a38054 경기 다시 보기(후반전)}}}]] | [[https://m.youtube.com/watch?v=HS3ayW5j7tM&embeds_euri=https%3A%2F%2Fnamu.wiki%2F&feature=emb_logo|{{{#003b9e 경기 하이라이트}}}]] | [[https://www.fifa.com/tournaments/mens/worldcup/2002korea-japan/match-center/43950063|{{{#f1011e 매치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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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강전에서 독일에게 패배하면서 한국의 요코하마행은 무산되었고 대신 다시 대구광역시로 내려가서 경기를 하게 되었다. 대한민국의 3위·4위전 상대는 바로 터키였다. 터키와 월드컵에서 만난 것은 1954 스위스 월드컵 이후 무려 48년 만의 일이었다. 월드컵 당시 6.25 전쟁에 참전했던 터키인 참전 용사들은 월드컵을 보러 한국에 왔는데, 모두 "형제의 나라인 한국과 터키가 결승전에서 만났으면 좋겠다."라고 했었다. 비록 결승전은 아니지만 3·4위전에서라도 만나면서 결국 형제국 간 대결이 성사되었다. 한국으로서는 48년 전 0:7 대패에 대한 빚을 갚을 절호의 기회였고, 히딩크 개인으로서도 이전에 자신이 거둔 성적인 4위를 넘어서는 성적을 거둘 마지막 기회였다.

하지만 마지막 경기라 긴장이 풀린 것인지, 한국 선수들은 초반부터 우왕좌왕했다. 경기 시작 휘슬이 울리고 한국의 선축으로 킥오프를 할 때 유상철홍명보에게 백패스를 했다. 그런데 홍명보는 이상하게도 볼을 끌며 우물쭈물했고, 그 틈을 놓치지 않은 터키 공격수 하칸 쉬퀴르가 재빨리 볼을 가로채 선제골을 터뜨렸다. 골이 터진 시간은 경기 시작 후 불과 11초였다. 종전까지는 1962 칠레 월드컵에서 체코슬로바키아의 바츨라프 마세크가 멕시코를 상대로 15초 만에 득점한 것이 최단시간 득점 기록이었는데 쉬퀴르가 40년 만에 그 기록을 갱신한 것이다. 이런 어이없는 초반 실점에 한국 축구팬들은 매우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은 다시 심기일전하며 반격에 나섰고, 마침내 전반 9분, 터키 진영 페널티 에어리어 우측 외곽 지역에서 프리킥 찬스를 얻었다. 킥커는 이을용이 나섰고, 이을용은 멋진 왼발 감아차기로 동점골을 성공시켰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골은 한국의 월드컵 최단시간 득점 기록이기도 했다. 즉 한 경기에 최단시간 실점과 최단시간 득점을 모두 기록한 것이다. 그렇게 다시 1:1로 승부를 원점으로 되돌렸으나 이미 지칠 대로 지쳐버린 한국 선수들은 이전과 달리 계속해서 수비에 허점을 노출했고, 터키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전반 13분에 터키의 미남 스타 일한 만시즈가 다시 앞서가는 골을 넣으며 스코어는 1:2로 벌어졌다. 그리고 전반 32분에 또 다시 일한 만시즈에게 쐐기골을 허용하며 스코어는 1:3으로까지 벌어졌다. 이렇게 전반전이 마무리되었다.

후반전이 되자 히딩크는 전반전에 선제 실점의 빌미를 제공한 주장 홍명보를 빼버리고 김태영을 교체 투입해 수비의 강도를 높였다. 그리고 동점골의 주인공 이을용도 후반 20분에 빼고 공격수 차두리를 투입해 공격의 강도를 높였고, 후반 34분에 설기현을 빼고 최태욱을 투입했다. 이렇게 공격의 강도를 높이며 만회골을 노렸지만 2골 차로 앞선 터키는 잠그기에 돌입하며 지능적으로 시간을 질질 끌었다. 그렇게 어느새 90분이 모두 지나고 추가시간 4분이 적용될 때였다. 후반 추가시간 3분에 터키 진영으로 쇄도해 들어가던 송종국이 강력한 중거리 슛을 날렸는데, 이 슛은 차두리의 엉덩이에 맞고 굴절되었다. 볼이 왼쪽으로 날아올 줄 알고 그쪽으로 자세를 잡고 있던 터키 수문장 뤼슈튀 레츠베르는 차두리의 엉덩이에 맞고 볼의 방향이 오른쪽으로 바뀌자 그대로 속절없이 실점하고 말았다. 드디어 만회골이 터졌지만 너무 늦었고, 결국 경기는 터키의 3:2 승리로 끝이 나며 한국은 대회 4위가 확정되었다.

경기가 끝나자 터키 선수들은 패배로 망연자실해 있던 한국 선수들에게 다가가 선수들을 하나하나 일으켜 세우며 어깨동무를 하며 나란히 관중석으로 다가가 관중들에게 인사했다. 경기 시작 전 한국 관중들도 터키 국가가 연주될 때 터키에도 없는 초대형 터키 국기를 꺼내며 함께 응원해주는 훈훈한 모습을 보였다. 터키 수비수 투가이 케리몰루는 경기를 관전하러 온 자신의 아들을 그라운드로 데려와 감동의 분위기를 느끼게 해주었고, 레츠베르와 알파이 외잘란은 나란히 태극기와 터키 국기를 들고 그라운드를 돌며 관중들에게 화답했다. 이렇게 경기 후에 서로서로 어깨동무를 하며 나란히 관중들에게 인사를 하는 모습은 피파에게도 역시 인상적으로 보였는지, 피파는 이 경기를 '가장 페어플레이하고 모범적인 경기\'로 선정해 월드컵 때마다 이 경기처럼 하라고 교과서처럼 반복해서 이 경기의 영상을 틀어주고 있다.

2. 2006 FIFA 월드컵 독일[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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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강 신화를 쓴 거스 히딩크가 계약 만료로 대표팀을 떠난 후, 한동안 공석이었던 대표팀 감독 자리에는 포르투갈 출신의 움베르투 코엘류가 부임했다. 그러나 새로이 출범한 코엘류호 역시 좌충우돌의 연속이었다. 사실 출범 초기에 맞붙었던 상대들과 결과를 보면 아주 나쁜 성적은 아니었다. 우루과이를 상대로 0:2로 패했지만 슈팅 수는 한국이 10개나 더 많았고 볼 점유율도 더 높았다. 며칠 후 아르헨티나를 상대로도 매우 선전해 0:1로 석패했다. 그런데 문제는 4강 신화의 기억이 너무나도 진하게 남아서 한국 축구팬들의 눈이 높아질 대로 높아졌다는 것으로, 이로 인해 코엘류는 급속도로 인기를 잃었다.[30]

그런데다 2004 AFC 아시안컵 중국 예선에서 베트남에게 0:1로 패배하고 뒤이어 오만에 1:3으로 패배하는, 이른바 오만 쇼크로 코엘류에 대한 여론은 마치 화산 폭발 직전과 같았다. 간신히 재신임을 얻은 코엘류호는 우여곡절 끝에 독일 월드컵 예선에 돌입했다. 이 대회에서 아시아는 4.5장의 출전권을 부여받았다. 우선 예선 참가국 중 피파랭킹이 가장 낮은 14개 팀끼리 홈 & 어웨이 방식으로 경기를 치른 뒤 살아남은 7개 팀과 부전승으로 2차 예선에 올라온 25개 팀과 함께 32개 팀이 8개 조를 이루어 각 조 1위 팀만이 최종예선에 오른다. 그리고 최종예선에 오른 8개 팀은 2개 조로 나누어 각 조 1, 2위 팀은 본선에 직행하고 3위 팀은 3위 팀끼리 플레이오프를 치른다. 그리고 그 경기 승자는 북중미 지역 최종예선 4위 팀과 대륙간 플레이오프를 거쳐 승리하면 출전권을 확보한다.

2차예선에서 한국은 레바논, 베트남, 몰디브와 함께 7조에 속했다. 1차전 레바논과의 홈 경기는 2:0으로 가볍게 승리했다. 그러나 2차전 몰디브 원정 경기에서 0:0 무승부를 기록하는 굴욕을 당하고 말았다. 이른바 몰디브 쇼크. 결국 이 사태로 인해 코엘류는 전격 경질되었고, 후임으로 네덜란드 출신의 조 본프레레 감독이 부임했다. 이렇게 출범한 본프레레호는 베트남과의 홈 경기에서 2:0 승리를 거두며 일단 한숨을 돌렸다. 2승 1무로 조 1위 자리를 지키긴 했지만 2위 레바논과의 승점 차가 겨우 1점이었다. 4차전 베트남 원정 경기에서도 박진섭자책골을 넣으며 불리한 경기를 했지만 2:1 역전승을 거두었다. 하지만 레바논 역시 몰디브를 5:2로 이겼기에 여전히 1점 차로 불안한 1위를 했다. 이제 5차전 레바논 원정 경기가 열렸다. 이 경기에서 반드시 이겨야 레바논과의 승점 차를 4점으로 벌려서 최종예선 진출을 확정지을 수 있었다. 그러나 한국은 이 중요한 경기에서 1 : 1 무승부에 그치며 결국 최종전까지 결과를 지켜봐야 했다. 6차전 몰디브와의 홈 경기에서도 상당히 고전했다가 후반 중반에야 김두현의 선제골과 이동국의 쐐기골로 2:0 승리를 거두며 4승 2무로 조 1위를 지켜 최종예선 진출에 성공했다.

최종예선에 오른 한국은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우즈베키스탄과 함께 A조에 속했다. 1차전 상대는 쿠웨이트였다. 2005년 설날에 치른 이 경기에서 한국은 이동국이영표의 골로 가볍게 2:0 승리를 거두며 순조로운 출발을 했다. 2차전 상대는 사우디아라비아였다. 그런데 한국은 1989년 이후로 사우디아라비아를 이기지 못하는 징크스를 갖고 있었고, 아니나 다를까 사우디아라비아의 담맘에서 열린 이 경기에서 한국은 졸전 끝에 그만 0:2로 패배하고 말았다. 거기다가 본프레레는 경기 후 선수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듯한 인터뷰를 하여 더욱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며칠 후 홈에서 열린 3차전 우즈베키스탄과의 경기에서도 상당히 고전한 끝에 2:1로 간신히 승리를 거두었다. 반환점을 돌았을 때 A조의 중간 순위는 한국이 2승 1패로 조 1위, 사우디아라비아가 1승 2무로 조 2위, 쿠웨이트가 1승 1무 1패로 조 3위, 우즈베키스탄이 1무 2패로 조 4위에 있었다. 4차전은 우즈베키스탄 원정 경기였다. 이 경기에서 한국은 우즈베키스탄에게 선제골을 내주며 또 불리한 경기를 했으나, 경기 막판에 당시 떠오르는 신예였던 박주영의 천금 같은 동점골로 간신히 1:1 무승부를 거두게 되었다. 4차전 직후 A조 순위는 사우디아라비아가 8점으로 1위, 한국이 7점으로 2위, 쿠웨이트가 4점으로 3위, 우즈베키스탄이 2점으로 4위였다. 그러므로 5차전 쿠웨이트와의 경기에서 승리하면 본선 진출이 확정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경기에서 한국은 쿠웨이트를 무려 4 : 0으로 대파하여 6회 연속 본선 진출을 확정지었다. 마지막 경기는 사우디아라비아와의 홈 경기였다. 이미 본선 진출은 확정되었지만 한국으로선 이 경기가 5개월 전 담맘에서 겪은 치욕을 설욕할 기회였다. 그러나 이 경기에서 한국은 또 사우디아라비아에 0:1로 패배하고 말았다. 2005년 동아시안컵에서 2무 1패라는 졸전으로 꼴찌를 한데 이어 또 사우디아라비아에게 패배하자 여론은 급속도로 악화되었고, 결국 본프레레는 본선 진출에 성공하고도 경질되고 말았다.

그 뒤로 대표팀 감독에 부임한 인물은 역시 네덜란드 출신이었던 딕 아드보카트였다. 아드보카트는 4년 전 4강 신화를 함께 했던 히딩크 사단의 일원인 핌 베어벡 코치와 압신 고트비 비디오 분석관과 함께 한국 땅을 밟았다. 이렇게 출범한 아드보카트호는 본선 직전까지 열린 평가전에서 조금 기복이 있는 모습을 보였지만 그래도 코엘류호, 본프레레호 때 모습보다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기에 본선에 대한 기대감을 다시 일으켰다. 그리고 조 추첨 결과 한국은 프랑스, 스위스, 토고와 함께 G조에 속해 나름 최상의 조 편성을 받아들였다. 이렇게 4강 신화 재현의 꿈을 안고 태극전사들은 결전의 땅 독일로 떠났다.

2.1. 32강 조별리그 토고전 - 2 : 1 승

[[2006 FIFA 월드컵 독일|
파일:2006 FIFA 월드컵 독일 로고_좌우.svg
]]
2006 FIFA 월드컵 독일 G조 1경기
2006년 6월 13일 화요일 15:00 (UTC+1)
[[도이체 방크 파르크|{{{#ffffff 도이체 방크 파르크}}}]] ([[독일|{{{#ffffff 독일}}}]], [[헤센|{{{#ffffff 헤센 주}}}]] [[프랑크푸르트|{{{#ffffff 프랑크푸르트}}}]])
주심: 그레이엄 폴 (잉글랜드)
관중: 48,000명
파일:Korea Republic KFA 2006.png
2 : 1 파일:토고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대한민국
54′ [[프리킥|{{{#000000,#dddddd (FK)}}}]] [[이천수|{{{#000000,#dddddd 이천수}}}]]
72′ [[안정환|{{{#000000,#dddddd
안정환}}}]] (A. [[송종국|{{{#000000,#dddddd 송종국}}}]])
파일:득점 아이콘.svg 31′ [[모하메드 카데르 쿠바자|{{{#000000,#dddddd 모하메드 카데르 쿠바자}}}]]
- 파일:퇴장 카드 아이콘.svg 53′ [[장 폴 아발로|{{{#000000,#dddddd 장 폴 아발로}}}]] 파일:경고 퇴장 아이콘.svg
[[https://m.youtube.com/watch?v=LmtRsdkfNUg&feature=youtu.be|{{{#ffffff 경기 하이라이트}}}]] | [[https://www.fifa.com/tournaments/mens/worldcup/2006germany/match-center/97410014|{{{#ffffff 매치 리포트}}}]]
Man of the Match: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안정환|{{{#ffffff 안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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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조별리그 1차전 상대는 아프리카의 처녀 출전국 토고였다. 대한민국이 월드컵에서 아프리카 팀과 맞붙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 경기를 앞두고 먼저 열린 다른 아시아 팀들의 성적은 심히 좋지 못했다. 아시아 팀들 중 가장 먼저 경기를 치렀던 이란은 멕시코와 맞붙어 1:3으로 패배했고, 뒤이어 경기를 치른 일본 역시 거스 히딩크가 이끄는 호주를 상대로 전반 26분 나카무라 슌스케의 선제골로 앞서갔지만 후반 39분부터 8분 동안 내리 3골을 헌납하며 1:3 역전패를 당했다. 아시아 팀들의 성적이 전체적으로 부진한 가운데 대한민국과 토고의 경기가 열렸다. 한편 이때 토고 대표팀에서도 내분이 일어나 오토 피스터 전 감독이 감독직을 사퇴한다고 했다가 다시 번복하는 등 혼란을 일으켰다. 그래서 사상 첫 원정 월드컵에서의 승리가 눈앞에 왔다는 설레발 보도가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엠마누엘 아데바요르를 앞세운 토고는 생각보다 그리 약한 팀이 아니었다. 흑인 특유의 탄력적인 기술을 앞세운 토고의 빠른 공격에 한국 수비진들은 우왕좌왕하며 갈피를 잡지 못했다. 더군다나 아드보카트가 그동안 연습해 왔던 포백을 버리고 갑자기 스리백을 세우는 바람에 더욱 포지션에 혼란이 생긴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렇게 한국이 우왕좌왕하며 뭔가 혼란에 빠진 모습을 보인 틈을 토고는 놓치지 않았다. 아데바요르의 패스가 어정쩡하게 왔으나 쿠바자는 자신의 넓적다리로 받아서 볼을 떨구며 그대로 오른발 땅볼 강슛을 날렸고, 이 슛은 그대로 이운재 골키퍼의 오른쪽을 지나가며 골문 안으로 빨려들어가 토고가 1:0으로 앞서갔다. 쿠바자의 선제골이 터지자 토고 선수들은 여럿이 모여 흥겨운 민속춤 셀레브레이션을 하며 첫 골의 기쁨을 만끽했다. 그렇게 전반전은 한국이 0:1로 뒤진 채 마무리되었다.

후반전이 되자 딕 아드보카트는 스리백을 버리고 다시 포백으로 전환해 분위기 반전을 꾀했다. 그리고 후반 9분, 토고 진영 페널티 박스를 향해 쇄도하던 한국의 미드필더 박지성을 토고의 주장 장 폴 아발로가 발을 걸어 쓰러뜨렸다. 주심 그레이엄 폴은 곧바로 아발로에게 경고를 주었는데, 아발로는 이미 전반 23분에 경고를 받았기에 경고 누적으로 퇴장당했고 결국 토고는 10명이 뛰게 되었다. 페널티 박스 외곽 지역에서 반칙이 일어났기에 주심은 프리킥을 주었고, 킥커로 이천수가 나섰다. 이천수가 절묘한 오른발 감아차기로 동점골을 터뜨리며 스코어는 1:1 원점이 되었다. 이때 골을 넣은 이천수는 대회 2달 전 부상을 당해 이번 대회에 출전하지 못하게 된 이동국의 골 셀레브레이션을 따라하는 재치를 보였다.

수적 열세를 짊어진 토고는 점차 체력적으로 지친 듯한 모습을 보였고 대한민국은 더욱 더 공세를 강화했다. 1:1의 스코어가 계속되던 후반 27분, 토고 우측 진영에서 이천수송종국이 패스를 주고받다가 송종국이 전방의 박지성을 향해 패스했는데 박지성은 옆에 안정환이 오는 것을 보고 볼을 잡지 않고 재치있게 흘려주었다. 안정환은 뒤로 돌아 볼을 잡으면서 노마크 상태에서 오른발 중거리 슛을 날렸고, 이 슛이 그대로 빨랫줄처럼 날아가 토고 골문 좌측 구석에 정확히 꽂히며 역전골이 터졌다. 이 골로 인해 안정환은 아시아 선수 최초로 월드컵에서 3득점을 기록한 선수가 되었다. 스코어는 2:1로 다시 한국이 앞서가게 되었다. 이후 후반 막판에 들어서 한국은 지키기 모드에 돌입했고 시간을 지연시켰다. 결국 경기는 그대로 대한민국의 2:1 승리로 끝났다. 월드컵 도전 52년 만에 처음으로 원정 월드컵에서 승리를 거둔 것이고 이 대회에서 아시아 팀 최초로 승리를 거둔 것이다.

하지만 상대 선수 1명이 퇴장당한 상황에서 1점 차 신승을 거두었던 것이 나중에 독이 될 것이라는 걸 이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아마도 프랑스가 조 1위로 치고 나갈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점수 차에 관계없이 이기는 것에만 염두에 두었던 듯한데, 이 대회에서도 프랑스가 조별리그에서 부진하리라는 걸 누가 알았으랴? 이 경기가 끝나고 몇 시간 뒤에 열린 프랑스와 스위스의 경기에서, 지난 대회에서 충격적인 조별리그 무득점 탈락의 수모를 겪었던 프랑스는 스위스전에서도 무득점으로 침묵해 4경기 연속 무득점이라는 굴욕적인 기록을 이어가고 말았다. 이렇게 프랑스와 스위스의 경기가 예상과 달리 0:0 무승부로 끝나버리면서 대한민국의 계산은 점점 꼬여가기 시작했다.

2.2. 32강 조별리그 프랑스전 - 1 : 1 무

[[2006 FIFA 월드컵 독일|
파일:2006 FIFA 월드컵 독일 로고_좌우.svg
]]
2006 FIFA 월드컵 독일 G조 3경기
2006년 6월 18일 일요일 21:00 (UTC+1)
[[레드불 아레나|{{{#ffffff 레드불 아레나}}}]] ([[독일|{{{#ffffff 독일}}}]], [[작센|{{{#ffffff 작센 주}}}]] [[라이프치히|{{{#ffffff 라이프치히}}}]])
주심: 베니토 아르춘디아 (멕시코)
관중: 43,000명
파일:France FFF 2006.png
1 : 1
파일:Korea Republic KFA 2006.png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대한민국
9′ [[티에리 앙리|{{{#000000,#dddddd 티에리 앙리}}}]] (A. [[실뱅 윌토르|{{{#000000,#dddddd 실뱅 윌토르}}}]]) 파일:득점 아이콘.svg 81′ [[박지성|{{{#000000,#dddddd 박지성}}}]] (A. [[조재진|{{{#000000,#dddddd 조재진}}}]])
[[https://m.youtube.com/watch?v=1DK0oSpAsLY|{{{#ffffff 경기 하이라이트}}}]] | [[https://www.fifa.com/tournaments/mens/worldcup/2006germany/match-center/97410029|{{{#ffffff 매치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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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전에서 기분 좋은 승리를 거둔 한국의 조별리그 2차전 상대는 이 조의 톱시드 팀인 프랑스였다. 프랑스는 지난 대회에서 심히 부진한 모습을 보인 데다가 선수들의 평균 연령도 무려 만 29.5세에 달해 '늙은 수탉\'이라고 조롱받고 있었다. 한국은 이 경기에서 프랑스를 잡으면 남은 스위스와의 경기 결과에 관계없이 16강 진출을 확정지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늙고 쇠잔했다고 하더라도 프랑스는 여전히 강팀이었다. 그렇기에 이 경기가 마냥 쉽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였다. 한편 프랑스로서도 16강 진출을 위해서는 반드시 이 경기에서 한국을 잡아야 했다. 만일 이 경기에서 비기거나 질 경우에는 3차전까지 경기 결과를 지켜봐야 했고, 수월하게 16강에 가려면 이 경기에서 한국을 이겨야 했다. 그렇게 양 팀의 경기가 시작되었다.

아무리 프랑스가 강팀이라고 해도 이 경기에서 보인 아드보카트의 용병술은 굉장히 아쉬웠다. 지난 대회에서 한국은 프랑스 못지 않은 강팀인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 독일 등을 상대로도 전혀 밀리지 않고 대등하게 맞서 싸웠으며 불과 1년 6개월 전에는 친선 경기에서 독일을 3:1로 이긴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경기에서 보인 아드보카트의 전술은 마치 무승부를 염두에 둔 듯 굉장히 소극적인 전술이었다. 그 때문에 한국은 계속해서 내려앉는 플레이를 했고 프랑스의 일방적인 공세가 이어졌다. 그렇게 시종일관 난타당하는 플레이는 결국 화를 불렀고, 전반 9분에 티에리 앙리에게 선제골을 실점하고 말았다. 프랑스로서는 5경기 만에 맛보는 첫 골이었다. 1골이 뒤지게 되자 한국은 그제야 어느 정도 반격을 시도하는 듯했지만 프랑스의 압박에 막히며 중앙선을 넘는 것조차 버거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반대로 프랑스의 공세는 계속해서 치열해졌고, 전반 32분에는 파트리크 비에이라가 기가 막힌 헤더 슛을 날렸는데 카메라 각도가 희한하여 골이 들어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골 라인을 넘기 직전에 이운재 골키퍼가 극적으로 쳐내며 추가 실점을 막았다. 그렇게 전반전은 프랑스가 1:0으로 앞선 채로 끝났다.

후반전에서도 경기 양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프랑스가 계속해서 공격을 퍼붓고 한국은 수비로 버틴 뒤 역습을 시도하는 식으로 경기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프랑스는 계속해서 추가골을 노렸지만, 한국의 수비가 생각보다 촘촘했던 데다가 골키퍼가 한국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 중 한 명인 이운재였기에 추가골을 넣지 못하고 계속해서 불안한 리드를 유지하고 있었다. 프랑스 입장으로서는 골 운이 없어도 이렇게 없을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좀처럼 한국의 골문을 열지 못했다. 그리고 후반 중반을 넘어서자 평균 연령이 만 30세에 달했던 프랑스 선수들은 점점 체력적으로 지치기 시작했고, 그러자 한국의 플레이가 점점 살아났다. 후반 36분, 안정환이 중앙에서 우측의 설기현에게 패스했고 설기현은 스피드로 에릭 아비달을 제치며 전방의 조재진을 향해 길게 크로스를 올렸다. 그 볼을 조재진이 프랑스 골문 왼쪽에서 헤더로 받아 밑으로 떨구어 주었고, 프랑스 진영 페널티 박스로 진입한 박지성이 오른발로 가볍게 찍어찼고 공이 높이 뜨면서 파비앙 바르테즈 골키퍼의 키를 넘겼고 골문 옆에 붙어서 수비하던 윌리엄 갈라스가 끝까지 수비를 시도했으나 볼이 지면에 맞고 튀어오르며 골 라인을 살짝 넘어가 우측 골망을 흔들었다. 드디어 동점골이 터진 것이다.[31]

승부가 1:1 원점으로 돌아가자 한국 선수들은 더욱 힘이 나는 듯한 모습을 보였고 프랑스 선수들은 망연자실한 모습을 보였다. 이후 남은 10여 분 동안 계속해서 한국이 공격했고, 이때 바르테즈가 스로인 미스를 범해 역전골을 넣을 수도 있었으나 불행히도 그때 아무도 없어서 역전골을 넣진 못했다. 그렇게 경기는 1:1 무승부로 끝났고, 한국은 지난 대회에 이어 2차전까지 1승 1무의 성적을 기록하게 되었다. 아직 스위스와 토고의 경기가 열리지 않았기에 이때까지는 여전히 조 1위 자리를 유지했다. 한편 프랑스는 2무에 그쳐 마지막 토고와의 경기에서 반드시 승리해야만 16강에 진출하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다. 1승 1무로 조 선두를 달리고 있었기에 이제 2개 대회 연속 16강 진출이 거의 눈 앞에 온 듯했다. 그날 조간 신문 1면이 '16강 청신호'였으니 선수들은 물론이고 한국 축구팬들 모두 희망에 잔뜩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이 희망이 사그러들기 시작한 건 한국 시각으로 바로 그날 밤 10시에 있었던 스위스와 토고의 경기에서였다. 이 경기에서 한국 축구팬들은 모두 토고의 선전을 기원했으나, 토고는 이런 한국 축구팬들의 염원을 무참히 배반했다. 전반 16분에 알렉산더 프라이가 선제골을 터뜨리며 스위스가 일찌감치 앞서갔고, 그렇게 1:0의 스코어가 이어지던 중 후반 중반에 토고가 페널티 에어리어에서 반칙을 당했고 페널티킥이 주어져야 했던 상황이었으나 주심은 못 본 척 그대로 넘어갔다. 그리고 후반 43분에 트란퀼로 바르네타가 추가골을 터뜨리며 스위스가 2:0으로 승리했다. 그리하여 2차전까지의 경기 결과 한국과 스위스는 1승 1무로 동률을 이루었으나, 골득실에서 스위스가 1골 더 앞서 1위로 올라갔고 한국은 2위로 내려왔다. 그리고 3위가 2무를 기록한 프랑스였고 4위는 2패로 탈락이 확정된 토고였다. 토고와의 경기에서 그들을 철저하게 털지 못하고 한 골 차로 이긴 게 두고두고 독이 되고 만 것이다.

2.3. 32강 조별리그 스위스전 - 0 : 2 패

[[2006 FIFA 월드컵 독일|
파일:2006 FIFA 월드컵 독일 로고_좌우.svg
]]
2006 FIFA 월드컵 독일 G조 5-2경기
2006년 6월 23일 금요일 21:00 (UTC+1)
[[하인츠 폰 하이덴 아레나|{{{#ffffff 하인츠 폰 하이덴 아레나}}}]] ([[독일|{{{#ffffff 독일}}}]], [[니더작센|{{{#ffffff 니더작센 주}}}]] [[하노버|{{{#ffffff 하노버}}}]])
주심: [[오라시오 엘리손도|{{{#ffffff 오라시오 엘리손도}}}]] (아르헨티나)
관중: 43,000명
파일:스위스 축구 협회 과거 엠블럼.png 2 : 0
파일:Korea Republic KFA 2006.png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대한민국
23′ [[필리페 센데로스|{{{#000000,#dddddd 필리페 센데로스}}}]] (A. [[하칸 야킨|{{{#000000,#dddddd 하칸 야킨}}}]])
77′ [[알렉산더 프라이|{{{#000000,#dddddd
알렉산더 프라이}}}]]
파일:득점 아이콘.svg -
[[https://m.youtube.com/watch?v=7Ae_qjzLYmI|{{{#ffffff 경기 하이라이트}}}]] | [[https://www.fifa.com/tournaments/mens/worldcup/2006germany/match-center/97410046|{{{#ffffff 매치 리포트}}}]]
Man of the Match: 파일:스위스 국기.svg [[알렉산더 프라이|{{{#ffffff 알렉산더 프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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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16강 진출의 운명이 걸린 조별리그 3차전 스위스와의 경기가 열렸다. 한국에게 놓인 경우의 수는 이랬다. 스위스를 이기면 다른 경기 결과에 관계없이 무조건 16강에 진출한다. 반면 비기거나 질 경우 좀 계산이 복잡해진다. 비기거나 지게 되면 반드시 토고가 프랑스를 상대로 선전해야 했다. 토고가 프랑스와 무승부를 거두거나 혹은 지난 대회 세네갈처럼 아예 이겨주어야 16강에 진출할 수 있게 된다. 즉 지난 대회와 마찬가지로 2차전까지 성적이 1승 1무인 건 동일한데, 그때는 비기기만 해도 16강에 갈 수 있었다면 이번엔 비긴다고 해도 16강에 간다는 장담이 없다는 게 다르다. 그만큼 지난 대회에 비해 불리해진 경우의 수를 받아들게 된 것이다. 토고와의 경기에서 1골을 더 넣어서 3:1로 이겼다면 한국과 스위스는 골득실이 같아도 다득점에서 한국이 스위스보다 2골 더 앞서기 때문에 한국이 좀 더 유리한 입장에서 경기를 하게 되었을 것인데 참 아쉽게 되었다.

한편,이 대회에 출전한 다른 아시아 팀들은 모두 바닥을 기는 성적을 기록했다. 이란, 일본, 사우디아라비아는 모두 서로 약속이나 한 듯 1무 2패, 해당 조[32]에서 꼴찌로 탈락했다. 이란은 1차전에서 멕시코에 1:3으로 패배했고, 뒤이어 2차전에서도 포르투갈에게 0:2로 패배해 일찌감치 2패로 탈락이 확정되었다. 3차전 상대는 아프리카 처녀 출전국 앙골라였는데 이란은 그 앙골라도 못 이기며 1:1 무승부에 그쳤다.[33] 일본 역시 1차전에서 호주에게 막판 8분 만에 3골을 내리 실점하며 1:3 역전패를 당하더니, 2차전 크로아티아와의 경기에서는 이른바 신칸센 대탈선슛이라는 희대의 개그슛을 난사하며 0:0 무승부를 거두었다. 그리고 3차전 브라질과의 경기에서 웬일로 선제골을 넣으며 세계를 놀라게 하는가 싶더니 4골을 내리 먹히며 1:4 대패를 당했다. 마지막으로 사우디아라비아 역시 1차전에서 튀니지를 상대로 막판 1분을 못 버티고 동점골을 먹으며 2:2 무승부를 거두었고, 2차전 우크라이나와의 경기에서는 막장스런 경기력을 보이며 0:4로 대패했다. 3차전에서는 2진 선수들을 투입한 스페인을 상대로 아무것도 못하며 0:1로 패배했다. 이제 한국이 속한 G조가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를 치르는데, 유일하게 한국만이 1승 1무로 선전하고 있었기에 이 경기는 아시아 팀들의 자존심이 걸린 경기가 되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한국은 이날 심판을 잘못 만났다. 이 경기의 주심을 맡은 오라시오 엘리손도는 시종일관 노골적으로 스위스를 위한 편파판정을 했다. 대표적인 것이 스위스의 센터백 파트리크 뮐러가 이날 경기에서 핸드볼 파울을 무려 3번이나 범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페널티킥을 주지 않았던 상황인데, 물론 핸드볼 파울을 판단하는 것에는 고의성 여부가 중요한데 이걸 판단하는 기준은 팔이 몸쪽으로 붙었느냐 떨어져 있었느냐이다. 그런데 뮐러는 적어도 2번을 대놓고 팔을 뻗은 상태에서 핸드볼 파울을 저질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의 페널티킥 선언이 없었다. 게다가 한국의 패스 진로를 방해하는 것도 여러 번 카메라에 포착되었고, 그렇게 경기는 한국에게 조금씩 불리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전반 23분, 이번 대회에서 처음 선발 출장한 박주영이 대형사고를 쳤다. 가만히 있어도 될 상황에서 괜히 수비를 돕는답시고 스위스의 트란퀼로 바르네타에게 거친 태클을 범한 것이다. 주심은 곧바로 프리킥을 선언했고, 킥커로 하칸 야킨이 나섰다. 야킨이 전방으로 띄운 볼은 정확히 공격에 가담한 스위스의 센터백 필리페 센데로스에게 연결되었다. 대표팀의 맏형 최진철이 끝까지 공중볼 경합을 했고 그 과정에서 센데로스와 충돌해 두 사람 모두 출혈이 발생했으나 그런 보람도 없이 결국 선제골을 허용하고 말았다. 선제골을 실점한 한국은 계속해서 공격을 퍼부었지만 스위스의 단단한 수비 조직력에 막히며 결국 전반전을 0:1로 마쳤다.

하지만 아직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같은 시각 쾰른에서 열린 프랑스와 토고의 경기는 아직 0:0으로 비기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대로 점수가 유지된다면 스위스에게 지더라도 한국은 조 2위로 16강 진출이 가능했다. 그리고 후반전이 시작되었다. 한국은 계속해서 동점골을 넣기 위해 사력을 다했으나 장신 선수들로 이루어진 스위스의 수비 조직력은 정말 단단했다. 연초 칼스버그컵에서 한국은 스위스와 스타일이 유사한 덴마크를 상대로 고전하다가 1:3으로 패배했는데 그때 모습이 오버랩되는 듯했다. 그런데다 설상가상으로 타 구장에서 안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후반 10분에 프랑스의 파트리크 비에라가 선제골을 넣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실시간 순위에서 한국은 프랑스에 승점 1점이 뒤져 3위로 밀려나게 된다. 반드시 남은 시간 동안 2골을 넣어서 스위스를 이겨야만 16강에 갈 수 있다. 그리고 6분 후인 후반 16분에 쾰른에선 티에리 앙리가 쐐기골을 터뜨려 프랑스가 2:0으로 앞서가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 토고의 선전을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한국은 점점 더 불리한 상황으로 치닫게 되었다. 아드보카트는 후반 18분, 수비수 이영표를 빼고 공격수 안정환을 교체 투입했고 후반 21분에는 부진했던 박주영을 빼고 설기현을 투입해 공격의 강도를 높였다. 하지만 한국 공격수들의 골 결정력 부족은 계속해서 안 풀리는 경기를 더욱 안 풀리게 만들었다.

이렇게 하염없이 시간이 흐르던 중 후반 32분, 숱한 논란을 일으켰던 알렉산더 프라이오프사이드 골 사건이 터졌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사건이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프라이의 골 자체는 온사이드였지만 이미 그 전 상황이 오프사이드였다. 그 골 장면 이전 스위스의 역습 찬스 당시 이미 2명의 스위스 선수가 오프사이드 위치에 있었다. 오프사이드는 패스를 받는 시점이 아니라 패스가 가는 시점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이미 그 상황에서 선심이 오프사이드 선언을 해야 했다. 그런데 정작 선심 로돌포 오테로는 그때 깃발을 들지 않았고, 패스가 가자 오프사이드 트랩 안쪽에 있던 2명의 선수들이 트랩을 빠져나왔고 혼전 상황에서 볼이 오고 가다 프라이에게 패스가 갔는데 선심은 그때 오프사이드 깃발을 들었다. 하지만 정작 이때 프라이의 위치는 온사이드였다. 왜냐하면 골키퍼를 포함한 2번째 수비수였던 김진규의 뒷다리가 미처 빠져나오지 못했기 때문이었다.[34] 그러므로 부심이 오프사이드 선언을 해야 할 때 오프사이드 선언을 하지 않았고 온사이드일 때 오프사이드 선언을 했던 것이다. 물론 프라이의 골보다 이전 상황이 이미 오프사이드였기 때문에 이때 오프사이드 선언이 정확하게 내려졌으면 뒤의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므로 프라이의 골은 정당한 골이라 보기는 어렵다. 다만 아쉬운 건 선심의 깃발에 현혹되어 플레이를 멈춰버린 한국 선수들의 모습이었다. 주심의 휘슬이 울리기 전까지는 인플레이 상황이라는 기본적인 걸 망각한 것인데 이 점은 심히 아쉽다.

이렇게 어이없게 추가골을 먹으면서 이제 한국은 3골을 더 넣어야 하는 불리한 입장에 놓이고 말았고, 결국 경기는 이렇게 0:2 패배로 끝나고 말았다. 그리하여 2승 1무를 기록한 스위스가 조 1위, 마지막 경기에서 토고를 꺾고 1승 2무를 기록한 프랑스가 조 2위를 차지해 나란히 16강에 올랐다. 그리고 선전했던 한국은 1승 1무 1패에 그치며 조 3위, 월드컵 17위로 아쉽게 탈락하고 말았다. 조별리그 3차전까지 최종 성적이 승점 4점인 팀은 한국과 멕시코, 호주까지 총 3팀이었다. 그런데 멕시코와 호주는 모두 16강 진출에 성공했지만 한국만 불운하게 16강 진출에 실패하고 말았다. 그리하여 한국의 최종 성적은 32개국 중 월드컵 17위로 16강 실패한 나라들 중에선 가장 높은 순위를 기록하였고, 원정 월드컵 최고 순위 17위를 갱신했다.

한편 이 경기가 끝난 후 스위스는 두고두고 한국 축구팬들의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실제로 이 이후로도 스위스는 매 대회마다 꼭 1경기~2경기씩 심판 판정의 이익을 얻는 듯한 모습을 보였는데, 이 때문에 한국 축구팬들은 피파 회장이 스위스 사람이라서 그 덕을 본다고 질타하고 항상 스위스의 실력을 평가 절하하고 있다. 그리고 갖가지 석연찮은 판정으로 온갖 어그로를 끈 이 경기 주심 오라시오 엘리손도는 두고두고 까임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 가나전 이후로는 앤서니 테일러가 엘리손도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3.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35]

독일 월드컵을 17위로 마친 후 딕 아드보카트는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감독으로 떠나버렸고, 대한축구협회는 수석코치 핌 베어벡을 감독으로 승격시켰다. 이렇게 출범한 베어벡호는 '생각하는 축구'라는 슬로건을 표방했다. 거스 히딩크와 딕 아드보카트라는 두 명장을 훌륭하게 보좌했던 베어벡이었기에 한국 축구팬들이 거는 기대는 내심 컸으나, 정작 베어벡호의 모습은 매우 실망스러웠다. 그런데다 베어벡은 어떤 면에선 왕따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정말 불운했다. 2007 AFC 아시안컵 직전부터 주력 선수들인 박지성, 이영표, 설기현 EPL 3인방은 부상으로 이미 엔트리에서 대거 이탈했고, 다른 공격 옵션들인 박주영, 안정환 등은 리그에서 부진, 그나마 믿고 뽑았던 이동국미들즈브러에서 최악의 시즌을 보낸 후 잔부상에 시달려서 제대로 뛰지도 못하는 등 주전 공격진은 사실상 전멸당한 상태였다. 그럼 이제 K리그에서 새 얼굴들을 뽑아야 했는데 문제는 K리그 감독들이 줄줄이 선수차출을 거부했다는 것이다.[36] 그렇기에 베어벡은 선수 선발에 심각한 제약을 겪었다.

이렇게 쓸 수 있는 자원이 극단적으로 한정된 상황에서 베어벡이 취한 길은 '극단적인 수비축구'였다. 물론 조별리그 2차전에서 바레인에게 1:2로 덜미를 잡히는 이른바 바레인 쇼크를 겪기도 했지만, 3차전에서 조 최약체 인도네시아를 1:0으로 간신히 꺾고 8강 진출에 성공했다. 그리고 8강 상대 이란을 맞아 120분 동안 걸어 잠그는 질식 수비로 0 : 0으로 비긴 뒤 승부차기 끝에 4 : 2 승리를 거두어 4강에 올랐다. 그리고 4강에서도 당시 화끈한 공격 축구를 구사했던 이라크를 맞아 또 120분 동안 걸어 잠그는 질식 수비로 0 : 0으로 버티며 승부차기로 끌고 갔으나 이때는 3 : 4로 패배했다.[37] 그리고 3위 결정전에서 일본을 상대로도 또 120분 동안 걸어 잠그는 수비 축구로 일관하여 3연속 승부차기로 끌고 갔고 6 : 5로 승리하며 3위를 차지했다. 순위 자체는 나쁘지 않았지만 성적이 1승 4무 1패(승점 7점), 3득점 3실점이어서 국민적 비난이 폭발했다. 결국 베어벡은 '포백 수비의 완성'이란 업적을 남겼으나 여론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자진 사퇴했다. 베어벡이 떠난 후 몇 달 동안 공석으로 유지되었던 대표팀 감독은 허정무가 차지하게 되었다.[38]

이번 대회에도 아시아는 4.5장의 출전권을 부여받았다. 당시 지역예선은 이렇게 치러졌다. AFC 소속 46개 팀 중 43팀이 지역예선에 출전했는데 지난 대회 본선에 진출했던 한국, 호주, 일본,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이 5개국은 무조건 3차 예선으로 직행한다. 그리고 나머지 38개 팀은 1차예선을 치러야 하는데 19개 팀씩 A, B 두 그룹으로 나누어 A그룹 팀과 B그룹 팀을 무작위로 추첨해 홈 & 어웨이 방식으로 겨루어 합산 점수를 따져 점수가 높은 쪽이 이긴다. 그리고 1차예선 생존자 19개 팀을 피파랭킹 순으로 정리했을 때 상위 11개 팀은 3차 예선에 직행하고 하위 8개 팀은 2차 예선을 치른다. 예선 방식은 1차예선과 같다. 그리하여 3차예선에 직행한 5팀 + 1차예선에서 생존한 11팀 + 2차예선에서 생존한 4팀까지 총 20개 팀은 5개 조로 나누어 홈 & 어웨이 방식의 리그제로 경기하고 각 조 1, 2위가 최종예선에 진출한다. 최종예선에 오른 10개 팀은 다시 2개 조로 나누어 홈 & 어웨이 방식 리그제로 경기하고 각 조 1, 2위는 본선에 직행한다. 그리고 3위 팀은 3위 팀끼리 플레이오프를 치르고 그 승자가 오세아니아 지역예선 1위와 대륙간 플레이오프를 치러 이겨야 본선에 진출할 수 있다.

한국은 3차예선부터 시작했는데 북한, 요르단, 투르크메니스탄과 함께 3조에 속했다.[39] 1차전에서 한국은 투르크메니스탄을 4 : 0으로 대파하며 순조로운 출발을 했다. 그러나 2차전 북한과의 경기에선 북한의 밀집수비에 고전하며 0 : 0으로 비겼다. 3차전 요르단과의 홈 경기에서도 2 : 0으로 앞서가다가 수비 실책으로 2 : 2 무승부에 그쳤다. 그러나 4차전 요르단 원정 경기에서 고전했으나 1 : 0으로 이겼고 5차전 투르크메니스탄 원정 경기도 3 : 1로 승리하며 한 경기 남은 시점에서 최종예선 진출을 확정했다. 한편, 북한도 한국과 같은 승점을 기록해 역시 최종예선 진출을 확정했다. 6차전 북한과의 경기에선 또 0 : 0 무승부에 그쳐 3승 3무로 3차 예선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최종예선에서 한국은 죽음의 조에 걸리고 말았다. 한국은 북한, 아랍에미리트, 사우디아라비아, 이란과 함께 B조에 속했다. 심히 껄끄러운 상대들만 잔뜩 있었던 셈이다. 설상가상으로 1차전 북한과의 경기에서 또 1 : 1 무승부에 그쳐 2008년 동아시안컵부터 4연속 북한전 무승부의 늪에 빠져버렸다. 출발부터 삐끗한 것이다. 그러나 2차전 아랍에미리트와의 홈 경기에서 4 : 1 대승을 거두며 다시 본 궤도를 찾아갔다. 그리고 3차전 사우디아라비아 원정 경기에서 기어이 19년 간 이어온 사우디 무승 징크스를 깨고 2 : 0 승리를 거두며 선두로 치고 나갔다. 4차전은 아자디 징크스로 악명 높은 이란 원정 경기였다. 이 경기에서 한국은 선제골을 먹으며 불안한 출발을 했지만, 후반 막판 주장 박지성의 극적인 동점골로 1 : 1 무승부를 거두었다. 반환점을 돌았을 때 중간 순위는 2승 2무(승점 8점)을 기록한 한국이 1위였고 예상 외로 북한이 2승 1무 1패(승점 7점)를 기록하며 2위를 차지했다. 3위는 1승 3무(승점 6점)를 기록한 이란이 4위는 1승 1무 2패(승점 4점)에 그친 사우디아라비아가 5위는 1무 3패(승점 1점)에 그친 아랍에미리트가 차지했다.

5차전 경기는 북한과의 홈 경기였다. 한국으로선 반드시 이 경기를 이겨야 조기에 본선 진출을 확정할 수 있었다. 그러나 북한의 밀집수비를 깨뜨리는데 또 애를 먹으며 고전했고 오히려 북한 에이스 정대세에게 실점할 뻔했으나 이운재 골키퍼가 라인을 넘기 직전에 쳐내며 간신히 위기를 넘겼다. 그렇게 또 0 : 0의 스코어가 이어지던 중 후반 41분에 좋은 위치에서 프리킥을 얻었다. 킥커 김치우가 왼발로 감아찬 것이 북한 주장 홍영조 손에 맞고 굴절되며 골문 안으로 들어갔다. 고전 끝에 북한을 1 : 0으로 이긴 한국은 북한보다 1경기 덜 치른 상태에서 1위 자리를 굳혔다. 그리고 6차전 아랍에미리트 원정 경기에선 양 팀이 서로 1명씩 퇴장당하는 거친 경기 끝에 2 : 0으로 승리해 4승 2무(승점 14점)의 전적을 기록하며 2경기 남은 시점에서 본선 진출을 확정지었다. 아시아 팀으로선 최초로 세계에서 6번째로 7회 연속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7차전 사우디아라비아와의 홈 경기에선 크게 무리하지 않고 페이스를 조절하면서 0 : 0 무승부를 거두었다. 이 경기 결과로 남은 경기에 관계 없이 한국은 조 1위가 확정되었다.

이제 최종예선도 각자 1경기를 남겨둔 시점에서 A조는 이미 호주와 일본의 본선 진출이 확정되었고 B조에서도 한국의 본선 진출이 확정되었다. 이제 남은 직행 티켓은 B조 2위 자리 단 하나뿐이었다. 7차전까지 B조의 순위는 한국이 4승 3무(승점 15점)로 1위, 북한과 사우디아라비아가 3승 2무 2패(승점 11점)로 동률이었으나 골 득실에서 북한이 +2, 사우디아라비아가 0이어서 북한이 2위, 사우디아라비아가 3위였다. 그리고 이란이 2승 4무 1패(승점 10점)로 4위였고 아랍에미리트는 1무 7패(승점 1점)로 5위였다. 이미 본선 진출이 확정된 한국과 탈락이 확정된 아랍에미리트를 뺀 나머지 3팀 모두 본선 진출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래서인지 남북한이 같이 본선에 가는 시나리오가 점점 현실화되기 시작했다.

북한이 본선에 진출하는 경우의 수는 이랬다. 사우디아라비아를 이기면 무조건 본선에 간다. 만약 비기게 되면 이란의 승점이 13점까지 올라갈 가능성이 있으므로 반드시 한국이 이란과 최소한 비기기라도 해야 한다. 만약 이란이 이길 경우 플레이오프 진출이 확정된다. 만약 지게 되면 한국이 이란을 반드시 이겨야만 플레이오프라도 갈 수 있다. 먼저 한국 대 이란의 경기가 열리고 뒤이어 사우디아라비아 대 북한의 경기가 열렸다. 이 경기에서도 한국은 후반 초반에 선제골을 내주며 불리한 경기를 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주장 박지성이 한 건했다. 침대축구로 시간을 끌던 이란을 향해 후반 36분에 또 다시 천금 같은 동점골을 뽑아냈다. 그리고 경기는 1 : 1 무승부로 끝이 났다. 이로서 한국은 최종 예선을 4승 4무(승점 16점)로 마치며 20년 만에 무패로 끝냈다. 이 경기 무승부로 이란의 승점이 11점에 묶이면서 북한이 크게 유리해졌다. 최종전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경기에서 골키퍼 리명국의 신들린 선방쇼와 질식 수비를 앞세워 0 : 0 무승부를 기록했다. 북한과 사우디아라비아는 3승 3무 2패(승점 12점)로 동률이었으나 골 득실에서 북한이 2골이 더 앞서며 B조 2위를 차지해 1966 잉글랜드 월드컵 이후 44년 만에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분단 국가가 월드컵 본선에 동반 진출한 건 서독과 동독이 함께 진출했던 1974 서독 월드컵 이후 36년 만이었다. 그러나 그때는 서독이 개최국이었고 나란히 지역예선을 치러 통과한 건 이번이 최초였다.

그리고 조 추첨 결과 한국은 아르헨티나, 나이지리아, 그리스와 함께 B조에 속해 비교적 무난한 조 편성을 받았다. 당시 아르헨티나는 희대의 졸장 디에고 마라도나의 엉성한 지휘로 인해 지역예선에서 무려 6번이나 패배하며 겨우겨우 본선에 올라왔고, 그리스와 나이지리아는 세대교체 실패로 하락세를 타고 있었으며 한국이 단 한 번도 진 적이 없는 팀이었다. 그래서 아르헨티나는 좀 어렵지만 그리스와 나이지리아 정도는 충분히 해볼 만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한편 같이 본선에 올라온 북한은 조 추첨에서 최악의 결과를 받아들여야 했다. 브라질, 포르투갈, 코트디부아르와 함께 죽음의 조인 G조에 속했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한국도 16강 진출을 장담할 수 없는 어려운 난이도인데 44년 만에 월드컵 무대에 복귀한 북한에는 너무도 가혹하기 그지없는 조 편성이었다.

3.1. 32강 조별리그 그리스전 - 2 : 0 승

파일: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로고.svg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B조 1경기
2010년 6월 12일 토요일 13:30 (UTC+2)
[[넬슨 만델라 베이 스타디움|{{{#ffffff 넬슨 만델라 베이 스타디움}}}]] ([[남아프리카 공화국|{{{#ffffff 남아프리카 공화국}}}]], [[포트엘리자베스|{{{#ffffff 포트엘리자베스}}}]])
주심: 마이클 헤스터 (뉴질랜드)
관중: 31,513명
파일:대한축구협회 엠블럼(2002~2019).svg
2 : 0
파일:그리스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6′ [[이정수(축구)|{{{#000000,#dddddd 이정수}}}]] (A. [[기성용|{{{#000000,#dddddd 기성용}}}]])
51′ [[박지성|{{{#000000,#dddddd 박지성}}}]]
파일:득점 아이콘.svg -
[[https://m.youtube.com/watch?v=HZEDHTQxMN8|{{{#ffffff 경기 하이라이트}}}]] | [[https://www.fifa.com/tournaments/mens/worldcup/2010south-africa/match-center/300061459|{{{#ffffff 매치 리포트}}}]]
Man of the Match: 파일:UEFA KOR.png [[박지성|{{{#1c1b21 박지성}}}]]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허정무호/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그리스전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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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처음으로 원정 대회에서 조별리그 통과를 노리는 허정무호의 조별리그 첫 상대는 바로 그리스였다. 그리스는 1994년 미국 월드컵 때 한 번 본선에 오른 적이 있었지만 나이지리아에게 0:2로 패배했고 불가리아와 아르헨티나에게 각각 0:4로 대패해 3전 전패를 기록하며 24개국 중 24위를 기록한 바 있었다. 그 이후 16년 만에 '오토 대제\'라는 별명을 지닌 독일 출신의 백전노장 오토 레하겔 감독의 지휘 아래 본선에 올랐다. 조 추첨 당시부터 한국 축구팬들과 언론들은 그리스를 강력한 1승 제물로 지목했다. 그도 그럴 것이 3팀 중에서 가장 전력이 처지는 팀이 바로 그리스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외 배팅 사이트에서는 그리스에 좀 더 낮은 배당률을 책정하여 그리스의 승리에 좀 더 무게를 실었다. 아무래도 당시 피파랭킹이 한국은 47위였고 그리스는 13위였기에 그 점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한국과 그리스의 운명을 건 한 판 승부가 시작되었다.

경기 초반에는 그리스가 잠시 경기를 주도하며 좋은 찬스를 얻었다. 전반 3분에 그리스가 코너킥 찬스를 얻었고, 요르기오스 카라구니스가 중앙으로 띄운 볼을 바실리스 토르시디스가 논스톱으로 왼발 슛을 날렸으나 허공으로 높이 떴다. 위기 뒤에 바로 기회가 왔던 전반 7분, 공격에 가담한 좌측 풀백 이영표가 그리스 진영 좌측 코너 플래그 가까이까지 치고 올라갔고 수비하던 그리스의 우측 풀백 유르카스 세이타리디스가 이영표를 손으로 밀어 쓰러뜨렸다. 주심은 곧바로 한국에게 프리킥을 주었고, 킥커로 기성용이 나섰다. 기성용이 중앙으로 볼을 띄우자 공격에 가담한 센터백 이정수가 그리스 수비수들 뒤에 숨어있다가 쏜살같이 튀어나와서 오른발로 공을 그대로 받아 차넣어 선제골을 터뜨렸다. 이것은 한국의 '월드컵 최단시간 득점\'이었다. 8년 전 이을용의 기록이 갱신된 것이다. 또한 대한민국 선수 중 역대 월드컵 데뷔 최단시간에 골을 넣은 선수로 기록되었다. 이른 시간에 선제골을 넣은 한국은 1:0으로 앞서가며 기선제압에 성공했다.

선제골 이후부터 경기는 완전히 한국의 페이스였다. 전반 중반에 박지성이 센터 서클에서 전방의 박주영에게 기가 막힌 스루 패스를 넣었고, 박주영은 발이 느린 그리스 수비수들을 따돌리며 골키퍼와 1:1 찬스를 만들었고 슛을 날렸으나 그리스 골키퍼 알렉산드로스 초르바스의 왼발에 맞고 볼이 굴절되며 나가버리는 바람에 추가골 득점에 실패했다. 그리스로서는 한바탕 가슴을 쓸어내린 순간이었다. 전반 막판에 그리스의 센터백 루카스 빈트라가 전방의 테오파니스 게카스를 향해 롱볼을 띄웠고, 게카스가 골문을 향해 쇄도했으나 한국 골키퍼 정성룡이 안전하게 잡아냈다. 이때 정성룡은 햇빛 때문에 시야가 가리는 악조건 속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선방하며 실점을 막았다. 그렇게 전반전은 한국이 1:0으로 리드한 채로 끝이 났다.

후반전에도 경기 양상은 한국이 지배하며 공격하고 그리스가 수비 후 역습으로 기회를 노리는 식으로 전개되었다. 그러나 그리스는 단순무식한 롱볼 축구로만 일관하며 유효타를 전혀 날리지 못했다. 그러던 중 후반 7분, 그리스의 레프트백 바실리스 토르시디스가 센터백 루카스 빈트라에게 패스했는데 빈트라가 볼을 잘못 터치하며 흘려버렸고 이를 한국의 주장 박지성이 놓치지 않았다. 박지성은 폭발적인 스피드로 빈트라를 따돌리며 그리스 진영 문전으로 쇄도해 들어갔고, 센터백 아브람 파파도풀로스의 태클마저도 이겨내며 페널티 에어리어에서 왼발 땅볼 슛을 날렸다. 초르바스 골키퍼가 각도를 줄여 선방하려고 나왔으나 자신이 예측한 방향이 아니라 반대 방향으로 슛이 가면서 그대로 골문 안으로 빨려들어갔다. 스코어는 2:0으로 벌어졌다. 한국이 월드컵에서 상대 팀을 2골 차로 리드하는 건 2002년 폴란드전 이후 8년 만의 일이었다. 박지성은 아시아 선수 최초로 3개 대회 연속 득점한 선수라는 기록과 함께 안정환에 이어 2번째로 월드컵에서 3득점을 기록한 아시아 선수가 되었다.

스코어가 2점 차로 벌어지자 승부는 한국 쪽으로 완전히 기울었고, 그리스 선수들은 전의를 상실한 듯 무기력한 플레이를 펼쳤다. 일찌감치 3장의 교체 카드를 모두 쓰며 공격의 강도를 높였으나 큰 효과는 없었다. 그리스는 세밀하게 경기를 풀어가기보다는 계속해서 단순무식한 롱볼만을 고집해 효율적인 대응을 전혀 하지 못했다. 한국은 계속해서 공격을 퍼부으며 추가골을 노렸으나, 박주영의 결정적인 헤더 슛은 골문 위로 떠버렸고 김정우의 슛은 골대를 맞았으며 이청용의 슛은 '소녀슛'이라는 별명답게 너무 약했다. 이번에도 2골의 벽은 너무도 높게만 느껴졌다. 그리스 입장에선 일방적으로 밀린 경기였고 자칫 잘못했으면 4~5점 차로 대패할 뻔하기까지 했으나 초르바스가 몇 개의 결정적인 슈팅을 선방해준 덕분에 더 큰 점수 차로 벌어지는 일을 막을 수 있었다. 경기 막판에 김정우가 날카로운 오른발 슛을 날렸으나 골문 왼쪽 옆 그물을 때리며 노골이 되었다.

결국 경기는 한국의 2:0 승리로 끝이 났다. 이 경기에서 승리하면서 허정무는 월드컵에서 첫 승을 기록한 한국인 감독이 되었다. 이 경기 이전까지 한국은 월드컵에서 총 4승을 거두었으나, 모두 네덜란드인인 거스 히딩크딕 아드보카트가 기록한 것이었고 한국인 감독이 월드컵에서 1승을 기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뒤이어 열린 같은 조 아르헨티나와 나이지리아의 경기는 전반 5분에 터진 가브리엘 에인세의 결승골을 끝까지 잘 지킨 아르헨티나가 1:0으로 승리했다.[40] 그로 인해 한국과 아르헨티나는 나란히 1승을 기록하며 동률을 이뤘지만 골득실에서 한국이 +2, 아르헨티나가 +1이었기에 한국은 단숨에 조 선두로 치고 나갔다. 하지만 이것은 불안한 1위였다.

3.2. 32강 조별리그 아르헨티나전 - 1 : 4 패

파일: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로고.svg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B조 3경기
2010년 6월 17일 목요일 13:30 (UTC+2)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경기장|{{{#ffffff 사커 시티 스타디움}}}]] ([[남아프리카 공화국|{{{#ffffff 남아프리카 공화국}}}]], [[요하네스버그|{{{#ffffff 요하네스버그}}}]])
주심: 프랑크 더 블레이케러 (벨기에)
관중: 82,174명
파일: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2성)엠블럼.svg
4 : 1
파일:대한축구협회 엠블럼(2002~2019).svg
16′ [[자책골|{{{#000000,#dddddd (OG)}}}]] [[박주영|{{{#000000,#dddddd 박주영}}}]]
32′, 75', 79' [[곤살로 이과인|{{{#000000,#dddddd 곤살로 이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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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 of the Match: 파일:UEFA ARG.png [[곤살로 이과인|{{{#1c1b21 곤살로 이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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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조별리그 2차전 상대는 아르헨티나였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선수로서 맞대결을 했던 허정무와 디에고 마라도나는 24년 만에 감독으로서 재회하게 되었다. 사실 이 기묘한 인연 때문에 대회 전부터 여러 말이 많았다. 조 추첨에서 한국과 한 조가 되자 마라도나는 "한국 감독 허정무를 기억하느냐?"라는 언론의 인터뷰에 "물론 아주 잘 기억하고 있다."라고 말한 뒤 "1986년 당시 대한민국은 우리를 상대로 축구를 했다기보다는 태권도를 했다."라며 독설을 날렸다. 24년 전 허정무가 자신을 향해 이른바 태권축구를 했다는 주장이었다. 이런 마라도나의 독설에 허정무는 "태권도 한 적 없다."라며 일축했다.[41] 24년 전 한국은 아르헨티나와 맞붙어 박창선이 한국의 월드컵 첫 득점을 쏘아 올렸으나 경기는 1:3으로 패배했다. 과연 그때의 패배를 후배들이 설욕할 수 있을지가 주목되었다.

당초 한국 축구팬들과 언론들은 이때 아르헨티나를 좀 얕잡아 보는 경향이 있었다. 물론 무조건 이긴다는 식의 반응은 아니었고 어느 정도 해볼 만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건 전혀 근거가 없었던 것이, 당시 아르헨티나는 지역예선에서 심히 맛이 간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아무리 고지대 원정이라는 페널티가 있었다지만 그 볼리비아에게 1:6으로 대패를 당했고, 브라질, 파라과이, 칠레, 에콰도르, 콜롬비아 등에게도 내리 패배를 기록하며 무려 6번이나 패배를 당하고 겨우 본선에 왔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맛탱이가 갈 대로 가버린 아르헨티나였기에 해볼 만하다고 평가하는 것도 큰 무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때는 미처 몰랐다. 예선 때 맛이 갔던 팀이라고 해서 꼭 본선에서도 그런 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경기가 시작되자 아르헨티나는 한국의 오른쪽 라인이 약점이라는 걸 간파한 듯 줄기차게 오른쪽 라인을 털었다. 왼쪽의 박지성 - 이영표 라인에 비해 오른쪽의 이청용 - 오범석 라인은 너무나도 허약했고 경기 내내 뚫렸다.[42] 거기다가 아르헨티나를 리오넬 메시 원맨 팀으로 착각한 듯 계속해서 메시만 집중적으로 마크했고 다른 선수들은 자유롭게 풀어놓는 실책을 범했다. 그때부터 경기 양상이 점점 꼬여가기 시작했다. 한국은 실점하지 않고 어렵게 버티고 있었으나 전반 17분, 아르헨티나의 프리킥 찬스에서 킥커로 메시가 나섰다. 메시는 중앙으로 볼을 띄웠는데, 운이 지지리도 없게도 수비에 가담한 박주영의 무릎에 볼이 맞고 굴절되며 골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한국은 이렇게 어이없는 자책골로 선제골을 실점하고 말았고, 이때부터 경기는 아르헨티나 쪽으로 급격하게 기울었다.

그리고 전반 33분, 막시 로드리게스김정우를 피해 좌측에서 띄운 얼리 크로스를 수비수 니콜라스 부르디소가 백헤더로 전방으로 패스했고 이걸 곤살로 이과인이 다시 헤더로 연결해 추가골을 터뜨렸다. 더 아쉬운 건 수비수 조용형이 이과인의 움직임을 완전히 놓쳐서 이과인이 노마크 상태로 프리 헤더를 했다는 것이다. 점수는 0:2로 벌어졌다. 경기는 이렇게 점점 더 꼬여갔다. 하염없이 시간이 흐르던 중, 전반 종료 직전 다시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 골키퍼 정성룡의 골킥이 길게 전방으로 날아갔고, 박주영이 아르헨티나 레프트백 가브리엘 에인세의 마크를 이겨내며 공중볼을 따냈다. 볼은 페널티 박스 쪽으로 흘렀고 이걸 센터백 마르틴 데미첼리스가 잡았는데, 시끄러운 부부젤라 소리에 동료와 사인이 제대로 맞지 않았고 그렇게 데미첼리스가 우물쭈물하던 사이 슬금슬금 아르헨티나 진영으로 침투한 이청용이 볼을 가로채 페널티 박스로 들어갔고, 세르히오 로메로 골키퍼가 각을 줄여 선방하려고 전진하자 한 발 먼저 찍어 차 만회골을 터뜨렸다. 이렇게 전반전은 1:2로 아르헨티나가 앞선 채 끝이 났다. 비록 2골을 아쉽게 내주긴 했지만 그래도 전반전이 끝나기 전에 1골을 만회했기에 어느 정도 희망이 생겼다.

1점 차로 따라붙으며 희망이 생긴 한국은 후반 초반부터 동점골을 넣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그리고 후반 12분에 이청용이 아르헨티나 수비진을 초토화시키며 염기훈에게 기가 막힌 스루 패스를 넣어주었고, 염기훈은 1:1 찬스를 얻었다. 그런데 오른발로 찼으면 분명히 골이 들어갔을 텐데 염기훈은 그 상황에서도 주로 쓰는 발인 왼발 슛을 고집했고 결국 골문 밖으로 슛이 벗어나며 동점골 기회를 놓쳤다. 그 때문에 경기 후 염기훈은 국민적 비난을 받아야 했다. 동점골 기회를 놓친 뒤 곧바로 위기가 찾아왔다. 사실상 한국의 최후의 펀치가 헛방으로 끝난 후 그때부터 경기는 다시 아르헨티나가 일방적으로 주도했다. 후반 31분, 메시와 앙헬 디마리아가 중원에서 패스를 주고받으며 한국의 우측 진영을 쇄도해 들어갔는데, 한국 수비수들의 시선은 오로지 메시에게만 쏠려 있었고 뒤에서 들어오는 이과인의 움직임을 또 놓치는 실책을 범했다. 메시가 슛을 했으나 정성룡이 발로 막아냈지만, 볼은 다시 메시의 발 앞으로 굴러갔고 메시가 다시 슛을 했는데 골대를 맞고 굴절되며 이과인의 발 앞에 갔다. 그리고 이과인은 노마크 찬스에서 왼발로 잽싸게 밀어넣으며 스코어를 다시 3:1로 벌렸다.[43] 그리고 4분 후인 후반 35분, 메시와 세르히오 아궤로, 이과인이 3자 패스를 주고받으며 한국 진영으로 밀고 올라갔는데 이때 또 한국 수비수들은 메시에게만 우르르 몰려가 뒤에 있던 이과인의 움직임을 놓치는 실수를 범했다. 이과인은 이번에도 노마크 찬스에서 아궤로의 짧은 크로스를 프리 헤더로 연결해 해트트릭을 성공시키며 스코어는 4:1로 벌어졌다. 결국 경기는 그렇게 아르헨티나의 4:1 대승으로 끝났다.

경기가 끝난 후 허정무의 용병술은 두고두고 지탄을 받았다. 가장 비판을 받은 것은 1차전 그리스전에서 잘했던 차두리 대신 우측 풀백에 왜 오범석을 투입했느냐는 것으로, 오범석은 경가 내내 어리버리한 모습만 보이며 한국의 우측 라인 붕괴에 크게 일조했다. 선수들도 무지막지하게 까였는데, 오범석과 더불어 후반 초반에 결정적인 동점골 찬스를 어이없는 개발슛으로 날려먹은 염기훈도 비판의 대상이 되어 두 사람은 아예 '오염 라인\'이라는 멸칭을 받았고 염기훈 개인으로도 '염의족\', '염발\' 등 온갖 멸칭을 받았다. 물론 이런 과도한 비난은 자제해야 했지만 염기훈이 결정적인 동점골 찬스를 날린 것은 분명 비판받아 마땅했다. 그 골이 들어갔더라면 경기 양상이 어떻게 달라질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날 한국이 맞붙었던 아르헨티나는 역대 최약체 수준이었지만, 전술적 실패와 불운하게 들어간 자책골, 골 결정력 부족으로 인해 1:4 대패의 수모를 당했다. 한국이 월드컵에서 4실점을 한 건 1998 프랑스 월드컵 조별리그 2차전 네덜란드전 이후 12년 만의 일이었다.

뒤이어 열린 그리스와 나이지리아의 경기가 그리스의 2:1 승리로 끝나며 상황은 더욱 복잡하게 흘러갔다.[44] 이 때문에 2승을 기록한 아르헨티나도 16강 진출을 확정짓지 못했고, 2패를 기록한 나이지리아도 탈락이 확정되지 않았다. 결국 이번에도 또 복잡한 경우의 수를 계산해야 했다. 한국이 최종전에서 나이지리아를 잡으면 다른 경기에 관계없이 16강 진출이 확정된다. 만약 비길 경우 아르헨티나가 그리스를 이겨주어야 했다. 만약 아르헨티나도 그리스와 비길 경우 그리스와 다득점을 비교해야 하고, 만에 하나 패배한다면 한국은 그 즉시 탈락한다. 나이지리아에게 패배할 경우에도 역시 가차없이 탈락이었다. 깔끔하게 16강에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3차전에서 나이지리아를 잡아야 했다.

3.3. 32강 조별리그 나이지리아전 - 2 : 2 무

파일: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로고.svg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B조 5-2경기
2010년 6월 22일 화요일 20:30 (UTC+2)
[[모지스 마비다 스타디움|{{{#ffffff 모지스 마비다 스타디움}}}]] ([[남아프리카 공화국|{{{#ffffff 남아프리카 공화국}}}]], [[더반|{{{#ffffff 더반}}}]])
주심: 올레가리우 벤케렌사 (포르투갈)
관중: 61,874명
파일:나이지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2 : 2
파일:대한축구협회 엠블럼(2002~2019).svg
11′ [[칼루 우체|{{{#000000,#dddddd 칼루 우체}}}]] (A. [[치디 오디아|{{{#000000,#dddddd 치디 오디아}}}]])
68' [[페널티킥|{{{#000000,#dddddd (PK)}}}]] [[야쿠부 아이예그베니|{{{#000000,#dddddd 야쿠부 아이예그베니}}}]]
파일:득점 아이콘.svg 37′ [[이정수(축구)|{{{#000000,#dddddd 이정수}}}]] (A. [[기성용|{{{#000000,#dddddd 기성용}}}]])
48′ [[프리킥|{{{#000000,#dddddd (FK)}}}]] [[박주영|{{{#000000,#dddddd 박주영}}}]]
[[https://m.youtube.com/watch?v=GVoOWJdr_qA|{{{#ffffff 경기 하이라이트}}}]] | [[https://www.fifa.com/tournaments/mens/worldcup/2010south-africa/match-center/300111115|{{{#ffffff 매치 리포트}}}]]
Man of the Match: 파일:UEFA KOR.png [[박지성|{{{#1c1b21 박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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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16강 진출이 걸린 조별리그 3차전 나이지리아와의 경기가 열렸다. 한국이 아프리카 팀과 월드컵에서 만난 건 이번이 두 번째였다. 나이지리아는 카메룬과 함께 검은 돌풍의 1세대에 해당하는 팀이지만, 이 당시는 그 전성기에서 조금 내려와 있는 상태였다. 이번에도 1차전에서 아르헨티나에게 0:1로 석패했지만 2차전에서는 그리스를 상대로 10명이 뛰는 수적 열세를 짊어진 끝에 1:2 역전패를 당했다. 다행히도 아르헨티나가 한국을 4:1로 잡아준 덕에 아직 탈락이 확정되지는 않았다. 나이지리아가 16강에 가려면 다른 선택이 없었다. 반드시 한국을 1골 차 이상으로 이기고 동시에 아르헨티나가 그리스를 이겨야 했다. 그렇게 되면 한국, 그리스, 나이지리아 3팀 모두 1승 2패 동률이 되지만 나이지리아는 골득실이 -1 이상이 되고 한국과 그리스는 -2 이하로 떨어지기 때문에 나이지리아가 조 2위로 16강에 올라갈 수 있었다. 그렇게 양 팀의 운명이 걸린 경기가 열렸다.

허정무는 여론의 비난을 의식한 듯 아르헨티나전에서 치명적인 실수를 범했던 오범석을 빼고 다시 차두리를 출전시켰다. 그런데 전반 12분, 한국의 좌측 진영을 파고든 나이지리아의 라이트백 치디 오디아가 김정우의 마크를 이겨내고 땅볼로 깔리는 크로스를 올렸는데, 차두리가 뒤에서 들어오고 있던 칼루 우체의 움직임을 완전히 놓쳤고 우체는 잽싸게 공을 밀어넣으며 선제골을 터뜨렸다.[45] 4년 전 스위스전의 악몽이 슬금슬금 되살아나는 듯했다. 그러나 두 번의 실패는 없다는 것인지 한국 선수들은 다시금 이를 악물고 뛰었지만, 슈팅이 아쉽게 살짝살짝 빗나가면서 땅을 쳐야 했다. 그러던 중 전반 38분, 활발하게 오버래핑을 하던 한국의 좌측 풀백 이영표를 나이지리아의 미드필더 치네두 오바시가 발을 걸어 쓰러뜨렸다. 1차전 그리스전 선제골 당시 프리킥을 얻었던 그 위치에서 한국은 또 다시 프리킥을 얻었고, 프리킥과 함께 주심은 오바시에게 경고를 부여했다. 킥커는 이번에도 기성용이 나섰다. 기성용의 프리킥은 문전으로 향했고, 이번에도 공격에 가담한 센터백 이정수가 마무리하며 천금 같은 동점골을 터뜨렸다.[46] 만 28세 늦깎이로 국가대표에 발탁되었던 이정수는 이번 대회에서 2골을 터뜨리며 홍명보, 안정환에 이어 3번째로 한 대회에서 2골을 터뜨린 한국 선수가 되었다. 이후로 치열한 공방전이 오간 뒤 전반전은 1:1로 끝이 났다. 한편 폴로콰네에서 열리는 아르헨티나와 그리스의 경기는 여전히 0:0으로 비기고 있었다. 현재 실시간 순위는 아르헨티나가 2승 1무로 조 1위였고 한국과 그리스가 1승 1무 1패, 골득실 -1로 동률이지만 다득점에서 한국이 4득점으로 2득점에 그친 그리스보다 앞서서 조 2위, 그리스가 3위였고 나이지리아는 1무 2패로 조 4위였다. 이제 점점 16강이 보이기 시작했다.

후반전이 되자 한국은 다시 공세를 높였고 3분 만에 좋은 골 찬스를 잡았다. 공중볼 경합 도중 페널티 에어리어 좌측 외곽에서 나이지리아의 센터백 대니 시투가 한국 공격수 박주영을 손으로 밀어버리는 반칙을 범했기 때문이었다. 주심은 즉시 한국의 프리킥을 선언했다. 킥커로 박주영이 나섰고, 박주영은 수비진을 우회하는 절묘한 오른발 감아차기 슛을 했고 연이은 선방으로 2경기 연속 경기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었던 빈센트 엔예아마 골키퍼는 방향 예측에 실패하며 역동작에 걸려 그대로 골을 실점했다. 드디어 기다리던 역전골이 터진 것이다. 경기는 다시 한국이 2:1로 앞서갔다. 한국이 다시 앞서가자 나이지리아의 라르스 라예르베크 전 감독은 백전노장 공격수 은완코 카누를 빼고 오바페미 마르틴스를 교체 투입해 동점골을 노렸다. 한편 허정무는 공격수 염기훈을 빼고 수비형 미드필더 김남일을 투입해 수비를 강화하며 굳히기에 들어갔다.

한편 이대로 경기가 끝날 경우 조별리그에서 탈락할 뿐만 아니라 역사상 최초로 '3전 전패'라는 치욕을 뒤집어쓰게 되는 나이지리아도 더 이상 물러설 수 없었다. 나이지리아에게 남은 선택은 오직 공격뿐이었다. 어떻게든 남은 시간 동안 2골을 넣어서 승부를 뒤집어야 했다. 그렇게 나이지리아는 점점 더 공격적으로 나왔다. 그리고 후반 21분, 선제골의 주인공 우체가 페널티 에어리어 좌측 외곽에서 전방의 아일라 유수프에게 스루 패스를 넣었고 유수프는 차두리의 태클을 피해 중앙의 야쿠부 아이예그베니에게 패스했다. 이때 센터백 조용형과 이정수는 야쿠부의 움직임을 완전히 놓쳤고, 골키퍼 정성룡은 유수프의 낮게 깔리는 크로스를 잡으려고 몸을 던졌지만 실패했다. 골문은 완벽하게 열려있었고 볼은 정확히 야쿠부의 발 앞에 갔는데, 야쿠부의 슛은 어이없게도 골문 왼쪽 바깥으로 벗어나 버렸다. 정말 어이없는 슈팅으로 결정적인 동점골 기회를 날려버린 것이다. 야쿠부 한국사랑슛. 니가 가라 16강 슛이 아니고?[47][48] 한국으로선 행운의 순간이었다.

하지만 위기는 불과 3분 후에 다시 찾아왔다. 페널티 에어리어에서 김남일과 치네두 오바시가 볼 경합을 하고 있었는데, 그때 김남일이 오바시를 태클로 쓰러뜨리면서 주심이 페널티킥을 선언했다. 킥커로 3분 전 결정적인 골 찬스를 놓쳤던 야쿠부가 나섰고, 야쿠부는 정성룡의 눈을 속이며 반대쪽으로 차 넣으며 페널티킥을 성공시켰다. 다시 스코어는 2:2 원점으로 돌아갔다. 이제 다시 경기는 뜨거워졌다. 20분 남짓 남은 시간 동안 양 팀은 계속해서 치열하게 공방전을 펼쳤다. 하지만 한국도, 나이지리아도 숱한 골 찬스를 얻었지만 아쉬운 마무리 능력을 보이며 모조리 날려먹었다. 2골의 벽은 여전히 높게만 느껴졌고 그렇게 경기는 2:2 무승부로 끝났다. 같은 시각 폴로콰네에서 열린 아르헨티나와 그리스의 경기가 아르헨티나의 2:0 승리로 끝나면서, 1승 1무 1패 승점 4점을 기록한 한국은 3전 전승을 기록한 아르헨티나에 이어 조 2위를 차지해 사상 최초로 원정 대회에서 첫 2라운드 16강 진출에 성공하는 감격을 누렸다. 2002년에 이어 8년 만에 다시 한 번 16강 진출에 성공한 것이다.

3.4. 16강전 우루과이전 - 1 : 2 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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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16강 1경기
2010년 6월 26일 토요일 16:00 (UTC+2)
[[넬슨 만델라 베이 스타디움|{{{#ffffff 넬슨 만델라 베이 스타디움}}}]] ([[남아프리카 공화국|{{{#ffffff 남아프리카 공화국}}}]], [[포트엘리자베스|{{{#ffffff 포트엘리자베스}}}]])
주심: [[볼프강 슈타르크|{{{#ffffff 볼프강 슈타르크}}}]] (독일)
관중: 30,597명
파일:Uruguay AUF 2010.png
2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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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79′ [[루이스 수아레스|{{{#000000,#dddddd 루이스 수아레스}}}]] 파일:득점 아이콘.svg 67′ [[이청용|{{{#000000,#dddddd 이청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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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조 2위로 16강에 오른 대한민국은 A조 1위 우루과이와 맞붙게 되었다. 우루과이는 월드컵 초대 챔피언이었지만 1950 브라질 월드컵에서 2번째 우승을 차지한 이후로 점점 하락세를 걷기 시작했다. 1970 멕시코 월드컵까지는 4강에 2번 올랐고 8강에도 1번 오르며 아직은 건재함을 과시했지만, 1970년에 4강에 오른 이후로는 예선 탈락을 한 것만 5번이나 되었고 1970년 대회에서 소련을 이긴 것을 끝으로 2002년까지 32년 동안 단 1승을 거두는데 그쳤다. 그 경기가 1990 이탈리아 월드컵 조별리그 한국전이었다. 그러나 위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그 경기도 제 실력으로 이긴 것도 아니었고 주심 툴리오 라네세편파판정을 등에 업고 간신히 1 : 0으로 이긴 것이었다. 그래서 우루과이는 쇠락한 강호로 전락해 있었다. 그러나 이번 대회의 우루과이는 달랐다. 남미 지역예선에선 5위에 그쳐 북중미 4위 코스타리카와 플레이오프를 치러 간신히 본선에 올랐지만 본선에서의 모습은 영 딴판이었다. 첫 경기에서 전 대회 준우승국 프랑스와 0 : 0으로 비긴 뒤 개최국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3 : 0으로 대파했고, 뒤이어 북중미의 강호 멕시코마저 1 : 0으로 격파하며 2승 1무, 4득점 무실점이란 준수한 성적으로 조 1위를 차지했다. 우루과이 입장에서는 서서히 옛날의 영광을 되찾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월드컵에서 한국과 우루과이가 만난 것은 1990년 대회 이후 20년 만이었다. 과연 후배들이 그 당시 심판의 편파판정 때문에 억울하게 패배했던 선배들의 한을 씻어줄 수 있을지 기대되었다.

경기 시작 5분 만에 한국은 결정적인 득점 찬스를 얻었다. 우루과이 진영 페널티 에어리어 좌측 외곽에서 우루과이의 라이트백 막시 페레이라가 한국의 주장 박지성의 발을 걸어 쓰러뜨리는 반칙을 범했기 때문이다. 주심 볼프강 슈타르크는 즉시 한국의 프리킥을 선언했다. 킥커는 박주영이 나섰고, 박주영의 프리킥은 우루과이 수비벽을 절묘하게 넘겼으나 아쉽게도 골대를 맞고 튕겨나오고 말았다. 기회 뒤에 바로 위기가 찾아왔다. 전반 8분, 우루과이의 주포 디에고 포를란이 한국 우측 진영에서 개인기로 김정우를 따돌리며 중앙으로 낮은 크로스를 했는데 이걸 골키퍼 정성룡이 무리하게 몸을 던지며 잡으려 했다. 그러나 볼의 스피드가 빨라 잡지 못했고, 이때 한국 수비수들의 시선은 포를란 쪽으로 쏠려있었고 뒤로 돌아오던 루이스 수아레스의 움직임을 완벽하게 놓치고 말았다. 정성룡이 다이빙 캐치에 실패하자 수아레스는 노마크 상태에서 곧바로 쇄도해 들어가 공을 낼름 줏어먹으며 선제골을 터뜨렸다.

또 다시 선제 실점을 했지만 한국은 이번엔 아르헨티나전처럼 무기력하게 물러서지 않았다. 한국은 그때부터 쉴 새 없이 우루과이를 공격하며 동점골을 노렸고, 오히려 우루과이가 라인을 내리며 수비하기에 급급했다. 그러나 박주영의 대포알 슛, 차두리의 회심의 중거리 슛은 모두 골문을 외면하고 말았고, 우루과이 역시 간간이 좋은 득점 찬스를 얻었지만 한국의 육탄 방어에 막히며 추가골을 넣지 못했다.[49] 그렇게 양쪽 모두 결정적인 득점 찬스를 놓친 채 전반전은 우루과이가 1:0으로 리드하며 끝이 났다. 8년 전과 마찬가지로 또 상대에게 먼저 골을 내주고 시작하게 된 것이다. 과연 이번에도 극적으로 승부를 뒤집었던 이탈리아전의 감동을 재현할 수 있었을까?

후반전에도 경기 양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한국이 계속해서 우루과이 진영에서 볼을 점유하고 공격하며 득점 기회를 만들어갔고, 우루과이는 자기 진영에 잔뜩 웅크리며 버틴 후 역습을 노렸다. 그리하여 후반 초반에는 한때 볼 점유율이 70%:30%까지 벌어졌다. 놀랍게도 한국이 70%였다. 그렇게 쉬지 않고 우루과이의 골문을 두들겼기에 우루과이 선수들은 하프라인을 넘는 것조차 어려워했다. 하지만 아무리 두들기고 두들겨도 우루과이의 골문은 좀처럼 열릴 줄을 몰랐다. 후반 중반에 접어들자 우루과이의 오스카르 타바레스 감독은 한 골 차 리드를 지키려는 듯 잠그기로 전환했다. 우루과이가 골문을 더욱 굳게 걸어잠그자 한국의 득점 기회는 점점 더 멀어져 갔다. 결국 후반 16분, 허정무는 우측 윙어 김재성을 빼고 공격수 이동국을 투입해 4-2-3-1 포메이션을 4-4-2 포메이션으로 전환하여 공격의 강도를 높였다. 공격수 숫자를 늘려서 우루과이의 굳게 닫힌 골문을 부수겠다는 의도였다.

그러던 중 후반 23분, 우루과이의 센터백 디에고 루가노의 반칙으로 한국이 프리킥 찬스를 얻었다. 킥커 기성용이 전방으로 볼을 높이 띄웠고, 우루과이의 센터백 마우리시오 빅토리노가 이정수를 제치고 공중볼을 따냈으나 볼이 지면 아래로 떨어지며 다시 튀어올랐고 그걸 좌측에 있던 이청용이 디에고 루가노보다 먼저 점프하여 다시 헤더로 연결했다. 우루과이의 페르난도 무슬레라 골키퍼가 앞으로 달려나왔지만 볼은 그의 키를 넘겼고 다시 지면으로 떨어져 바운드가 된 뒤 골문 안으로 빨려들어갔다. 우루과이의 레프트백 호르헤 푸실레가 끝까지 걷어내기를 시도했지만 공은 이미 골 라인을 통과한 뒤였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동점골이 터지며 스코어는 다시 1:1이 되었고, 한국은 다시 희망을 되찾았다.[50] 이청용 역시 이 대회에서 2골을 기록하면서 홍명보, 안정환, 이정수에 이어 4번째로 한 대회에서 2골을 넣은 선수가 되었다. 이후 한국은 역전골을 넣기 위해 더욱 공세를 강화했고, 2분 후 동점골의 주인공 이청용이 박지성의 귀신 같은 스루 패스를 받아 다시 좋은 득점 기회를 잡았으나 또 그 특유의 소녀슛을 날리며 역전골 기회를 놓쳤다. 동점이 되자 더 이상 잠그기만 할 수 없게 된 우루과이도 다시 공세를 취했다. 그리하여 경기는 다시 치열하게 불타올랐다. 경기 내내 흐린 날씨가 지속되던 포트엘리자베스엔 어느새 장대비가 퍼붓기 시작했다.

이렇게 일진일퇴의 공방전이 이어지던 중 후반 35분, 우루과이가 코너킥 찬스를 얻었다. 우루과이의 코너킥을 수비에 가담한 박주영이 헤더로 잘 걷어냈으나 그 볼은 애석하게도 지면에 맞고 바운드되면서 페널티 박스 외곽에 있던 니콜라스 로데이로에게 갔다. 로데이로는 마크맨 김정우보다 한 발 먼저 헤더로 공을 잘라먹었고, 이 공은 페널티 박스 좌측 외곽에 있던 수아레스에게 흘러갔다. 김정우가 끝까지 수아레스의 슈팅 길목을 잘 막았지만 수아레스는 오른발로 파 포스트를 향해 감아찼고, 그 공은 기가 막히게 골대를 맞으며 안쪽으로 휘어들어가고 말았다. 스코어는 다시 2:1로 우루과이가 앞서갔으며 가히 절망적인 순간이었다.

허정무는 후반 40분, 두 번째 교체 카드로 기성용을 빼고 염기훈을 투입해 공격수 숫자를 늘려 다시 골을 노렸다. 그리고 후반 41분, 박지성이 중원에서 전방의 이동국을 향해 절묘한 스루 패스를 날렸고, 이동국이 그 볼을 받았으나 이동국은 그만 그 유명한 물회오리슛'카페베네 슛'을 날려버리고 말았다. 이동국의 슛은 무슬레라의 옆구리를 스쳤는데, 그때 공의 속도가 죽어버리면서 공은 데굴데굴 힘없이 굴러갔고 그게 골 라인을 넘기 직전에 우루과이의 센터백 루가노가 걷어내며 동점골로 연결되지 않았다.[51] 결국 경기는 그대로 우루과이의 2:1 승리로 끝이 났고, 대한민국의 8강 진출은 좌절되었지만 2010년 남아공 월드컵 16강 15위로 원정 월드컵 최고 순위를 기록 갱신했다.[52]

외신들은 이 경기에서 보였던 한국의 수준 높은 플레이를 극찬했으며, 특히 ZDF에서 해설을 했던 독일의 전설적인 골키퍼 올리버 칸은 "한국이 이겨야 마땅한 경기였다. 그러나 정성룡의 실책 때문에 승리를 내주고 말았다."라며 한국의 선전을 칭찬함과 동시에 정성룡을 강하게 질타했다. 이 경기의 승장 타바레스 또한 "상당히 힘든 경기였다. 경기 내내 중원을 한국에 지배당했다. 우리가 운이 좀 더 좋아서 이길 수 있었다."라며 한국을 칭찬했고, 패장 허정무는 "우리가 경기를 지배했고 좋은 플레이를 했지만 골을 넣어야 할 때 못 넣어서 지고 말았다."라며 아쉬움을 삼켰다. 우루과이의 주포 포를란 역시 훗날 이 대회를 회상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경기가 바로 16강전 대한민국과의 경기였다고 밝혔다. 이렇게 남미의 강호 우루과이를 맞아서 전혀 밀리지 않고 오히려 더 앞선 경기력을 보였으나, 허정무의 말대로 골을 넣어야 했을 때 골을 넣지 못한 것이 패인이고 아쉬운 점이었다. 어쨌든 대한민국이 우루과이에 접전 끝에 석패하며 우리의 행진도 여기서 막을 내렸다.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멤버가 선수 생활 마지막으로 뛴 월드컵이기도 하다.

4. 둘러보기

4.1. 나라별 국가대표팀 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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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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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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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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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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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FIFA 월드컵 카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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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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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 남자 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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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항저우 아시안 게임 남자 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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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s 태국 4:0 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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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s 키르기스스탄 5:1 승
파일:중국 국기.svg (2023)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중국 2:0 승
파일:우즈베키스탄 국기.svg (2023)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우즈베키스탄 2:1 승
파일:일본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2023)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일본 2:1 승
2017 FIFA U-20 월드컵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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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s 기니 3:0 승
파일:아르헨티나 국기.svg (2017)
vs 아르헨티나 2:1 승
파일:잉글랜드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2017)
vs 잉글랜드 0:1 패
파일:포르투갈 국기.svg (2017)
vs 포르투갈 1:3 패
2019 FIFA U-20 월드컵 폴란드
파일:포르투갈 국기.svg (2019)
vs 포르투갈 0:1 패
파일:남아프리카 공화국 국기.svg (2019)
vs 남아프리카 공화국 1:0 승
파일:아르헨티나 국기.svg (2019)
vs 아르헨티나 2:1 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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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s 일본 1:0 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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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s 세네갈 3:3 무
(PSO 3:2 승)
파일:에콰도르 국기.svg (2019)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에콰도르 1:0 승
파일:우크라이나 국기.svg (2019)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우크라이나 1:3 패
2023 FIFA U-20 월드컵 아르헨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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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s 프랑스 2:1 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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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s 에콰도르 3:2 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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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17 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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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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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FIFA 여자 월드컵 캐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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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코스타리카 국기.svg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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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FIFA 여자 월드컵 프랑스
파일:프랑스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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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FIFA 여자 월드컵 호주·뉴질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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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항저우 아시안 게임 여자 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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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17 대표팀
파일:일본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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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FA 월드컵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2)
vs 대한민국 0:2 패
파일:일본 국기.svg (2018)
vs 일본 1:0 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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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EFA 유러피언 챔피언십 결승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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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FA 월드컵 결승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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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EFA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 결승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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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d7dee9,#161d28> FIFA 월드컵 결승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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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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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FA 월드컵 결승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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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감독별 국가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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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2001~2002
전체 (20012002)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폴란드전 · 미국전 · 포르투갈전 · 이탈리아전 · 스페인전 · 독일전 · 터키전)
친선 경기 (브라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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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2005~2006
전체 | 20052006
2006 FIFA 월드컵 독일 (토고전, 프랑스전, 스위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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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5555,#aaaaaa
성인
2008~2010
전체 |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그리스전 · 아르헨티나전 · 나이지리아전 · 우루과이전)
}}}}}}}}}}}}}}}



[1] 4위(3승 2무 2패)(승부차기전 포함 시 4승).[2] 참고로 이 경기가 차두리가 데뷔골을 넣은 경기이다.[3] 공교롭게도 둘 다 건국대학교 동문이다.[4] 이을용이 페널티킥을 실축하자 히딩크는 박항서에게 "그냥 이천수가 차게 내버려두지 그랬냐?"라고 엄청나게 성을 냈다고 한다. 박항서로서는 매우 억울하기 짝이 없었지만 이 경기가 워낙 안 풀렸기에 히딩크도 예민해서 그랬나 보다 하고 이해했다고 한다.[5] 두 다리를 양발로 감아서 비틀어 버렸기에 자칫 잘못했으면 박지성의 선수 생명은 이때 끝장날 뻔했다.[6] 이때 SBS 해설위원으로 경기를 중계하던 신문선은 저 장면을 보고 "저거는 퇴장을 두 번 세 번 줘도 되는 겁니다. 어디 저렇게 해놓고선 항의를 합니까?"라고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7] 당시 주심이었던 앙헬 산체스는 아르헨티나 사람이었는데, 이틀 전인 6월 12일에 조국 아르헨티나가 조별리그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그 때문에 경기 전부터 심기가 불편하고 예민한 모습을 보였는데 포르투갈 선수들의 이런 행동 때문에 더욱 크게 분노한 것이다. 이때 산체스를 적극적으로 말린 인물이 지금 현 한국 대표팀 감독인 파울루 벤투였다.[8] 특히 당시 한국에선 반미 여론이 극에 달한 시점이었고 포르투갈 대표팀도 한국에 체류하는 동안 이 사실을 어렴풋하게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더욱 기대를 걸어본 것이다.[9] 이때 이탈리아의 율리아노가 페널티킥 라인을 넘었음에도 주심은 아무 조치도 안 했다.[10] 문제는 이런 파울을 범했음에도 불구하고 주심이 보지 못해서 비에리는 카드를 한 장도 안 받았다는 것이다.[11] 경기 영상을 다시 보면 알겠지만 포지션을 선점하고 있었던 사람은 비에리가 아니라 최진철이었고, 최진철은 비에리의 유니폼을 잡아당기면서까지 비에리의 힘을 역이용해 자기 쪽으로 끌어당겨 비에리가 공을 머리에 맞추지 못하게 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에리는 최진철의 방해를 뿌리치고 헤더 골을 성공시켰다. 그만큼 비에리가 얼마나 괴물 같은 피지컬과 힘을 지닌 선수인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래서인지 최진철은 경기 후에 "비에리 그 선수 힘이 아주 천하장사더군요."라고 회상했다.[12] 실제로 박항서 전 코치에게 전달한 교체 지시 사항에도 공격수만 투입하라라고 적혀있었다고 한다.[13] 비에리가 오른발을 잘 못 썼던 것도 있지만, 급한 마음에 낮고 빠른 크로스를 무작정 발부터 갖다대는 바람에 홈런이 되어버렸다. 이건 이탈리아에게는 정말 결정적인 득점 찬스였는데 급한 마음에 이렇게 날린 것이다. 이날 경기 주심을 맡았던 비론 모레노 또한 "톰마시의 패스를 하늘로 날려버린 건 내 잘못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자신의 판정 문제를 지적하기 전에 골 찬스가 왔을 때 골을 못 넣은 이탈리아 선수 자신들이나 되돌아보라는 일침인 것이다.[14] 당시 모레노의 표정은 상당히 압권이었는데, 이 장면이 패러디되어 배우 임채무는 모레노 심판 역으로 돼지바 CF를 찍기도 했다.[15] 이때 비에리는 안정환을 대놓고 미는 반칙을 범했으나 주심은 파울 콜을 불지 않았다.[16] 특히 이탈리아 선수들은 이 경기에서 습관적으로 팔꿈치를 휘둘렀는데도 주심의 제지가 너무 약했다. 이렇게 팔꿈치 공격을 하던 이탈리아는 결국 적군과 아군도 구분하지 못하고 톰마시가 한국의 세트피스 상황에서 같은 팀 동료 코코를 팔꿈치로 쳐서 부상을 입히는 촌극을 만들었다.[17] 그 밖에 당시 안정환의 소속팀 페루자 칼초의 구단주 루치아노 가우치는 "소속팀의 국가를 상대로 득점하는 배은망덕한 짓을 했다."라는 해괴한 이유로 일방적으로 안정환을 방출했으며, 이탈리아 훌리건들은 현지에 있던 안정환의 자택을 습격해 박살을 내는 만행을 저지른 데다가 살해 위협까지 했다고 한다. 그래서 안정환의 아내 이혜원이 대신 이탈리아로 가서 짐 정리를 하고 왔다는데, 그녀의 말에 따르면 자택은 물론이고 자가용 스포츠카까지 모조리 부숴놨다고 한다.[18] 당시 같은 페루자 소속 안정환의 동료 선수들은 안정환을 방출하는 게 말이 되냐며 하나같이 소속 구단을 깠다. 당시 안정환은 페루자의 핵심 선수 중 한 명이었으며, 축구계 거물급 인사인 프란츠 베켄바워마저 극찬한 선수를 비뚤어진 애국심으로 방출한다는 것 자체가 촌극이나 다름없었으니...[19] 대한민국의 키커 5명은 우연일수도 있지만 키커 5명 전원이 모두 월드컵 본선에서 골을 넣은 경험이 있는 선수들로 선정되었으며, 이 중 홍명보를 제외한 나머지 4명은 이 대회에서 이미 득점을 기록했던 선수들이다.[20] 이케르 카시야스의 옆구리를 스치고 골라인 통과.[21] 스페인이 월드컵에서 아시아팀에게 최초 실점 경기.[22] 스페인이 월드컵에서 아시아팀에게 최초로 승점 헌납한 경기[23] 주심은 "엘게라가 마스크맨(김태영)의 목을 누르는 것을 눈 앞에서 똑바로 봤고 나는 바로 휘슬을 불었다. 공이 골문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휘슬을 불었던 명백한 반칙"이라고 말하며 자신의 판정이 옳았음을 주장했다. #[24] 공의 낙하 지점상 엘게라가 목을 누르지 않았다면 김태영이 무난하게 공을 헤딩으로 클리어링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비단 이 장면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수비 상황에서 루벤 바라하가 김태영의 유니폼을 잡아당겼고, 공은 바라하의 머리에 맞지 않고 김태영의 오른쪽 어깨를 잡으며 그의 목을 누르고 있던 이반 엘게라의 왼팔에 맞고 굴절되어 골대로 들어갔다. 즉 명백한 공격자 반칙이었던 상황이며 골 취소는 오심이 아닌 정심이었다. 이케르 카시야스도 훗날 인터뷰에서 첫 번째 골 취소는 주심의 판정이 옳았음을 인정했다. #[25] 다만 이걸로 모리엔테스의 골든 골이 억지로 취소되었다고 보면 곤란하다. 골이 들어가기 전에 이미 주심의 휘슬이 울렸기 때문. 주심이 먼저 휘슬을 불었기 때문에 최진철이운재도 딱히 방어 자세를 취하지 않았으며, 하나하나 다 따지고 보면 그 전에 전반 5분 모리엔테스가 김태영에게 두번 폭행 가격한것도 퇴장 처리해야 했으며, 전반 39분에 대한민국이 페널티킥을 얻었으면 저 연장전까지 가서 골라인 아웃 오심 상황까지 일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그와 별개로 정말 부심이 잘못 보지 않고 그대로 플레이가 진행됐을 경우에 이운재가 슛을 막아냈을 가능성도 있었지만 반대로 모리엔테스가 골을 성공시켰을 가능성도 있었으므로, 득점 찬스가 오심으로 취소된 것은 스페인이 억울해할만한게 맞다.[26] 마이어라는 성씨는 독일어권에서 매우 흔해빠진 성씨 중 하나다. 뜻은 '골짜기'라는 뜻인데 독일어권 성씨들은 조상의 직업이나 거주지에서 유래한 것이 많다. 즉 산골짜기에 사는 사람들을 총칭해서 마이어라고 불렀고 그게 성씨가 된 것이다. 윗골짜기에 살면 '오버마이어', 아랫골짜기에 살면 '운테마이어', 뒷골짜기에 살면 '힌터마이어'가 된다. 성씨가 없던 시절에 한스라는 이름을 쓰는 독일인이 있고 그가 산골짜기에 살면 그를 '산골짜기 한스'라고 불렀고 그게 성씨로 굳어져서 '한스 마이어'가 되는 식이다.[27] 예외로 우루과이는 월드컵 2회 우승국이지만 ★은 4개다. 월드컵 우승 2회와 월드컵이 열리기 전 올림픽 축구 우승 2회를 근거로 하기 때문이다.[28] 정확하게는[29] 17위(승점 4점 1승 1무 1패).[30] 이 남미 2연전 당시 얼마나 분위기가 가라앉았던지 기초군사훈련 중이던 안정환까지 국방부에 협조를 구해 대표팀에 급하게 차출시켰을 정도였다.[31] 설기현의 크로스와 조재진의 헤딩은 당시 대한민국의 가장 공격적인 루트 중 하나였다. 설기현은 고정운과 더불어 역대 대한민국 선수 중 가장 정확한 크로스를 올릴 수 있는 선수였고 조재진은 헤딩 능력만큼은 매우 훌륭했던 선수였기 때문.[32] 이란-D조 4위, 일본-F조 4위, 사우디아라비아-H조 4위[33] 그나마도 이란이 선제골을 먹었다. 이때 앙골라가 기록한 골이 그들의 월드컵 첫 골이었는데, 앙골라 대통령은 득점자 플라비우에게 15만 달러 상당의 집을 선물로 주었다고 한다.[34] 많은 이들이 프라이에게 패스가 갈 때 이호의 발에 맞고 갔기 때문에 온사이드라고 알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패스가 갈 때 상대 수비의 몸에 맞았느냐 안 맞았느냐는 오프사이드를 판단하는 데에 고려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당시 상황은 이호가 의도적으로 백패스를 한 게 아니고 그냥 스위스 선수의 패스가 이호의 발에 맞고 프라이에게 갔기 때문에 프라이의 위치가 오프사이드였다면 이호의 발에 맞고 안 맞고는 아무 관계 없이 그냥 오프사이드다. 그러나 온사이드였던 건 앞서 말했듯이 김진규의 다리 하나가 못 빠져나와서 프라이가 김진규보다 뒤쪽에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럼 카잔의 기적김영권의 골은 뭐냐고 할 수도 있는데, 그 상황은 손흥민의 코너킥이 토니 크로스에게 갔고 크로스가 그걸 받아서 니클라스 쥘레에게 백패스를 하려다가 김영권에게 흘러간 것이기 때문에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상황이다. 즉 프라이의 골은 스위스 선수의 패스가 그냥 이호의 발에 맞고 지나간 것뿐이고 김영권의 골은 크로스가 의도적으로 백패스를 하다가 실수해서 나온 것이란 뜻이다. 상대 선수의 백패스는 역시 오프사이드 판단 대상이 아니므로 김영권의 위치는 어디에 있든 아무 관계가 없었다.[35] 15위(승점 4점 1승 1무 2패).[36] 자세히 확인된 사항은 아니지만 베어벡을 불구대천의 원수 취급했을 정도로 싫어했던 조광래가 이 같은 선수 차출 거부를 주도했다는 설이 있다.[37] 이것이 이운재의 A대표팀 커리어에서 유일하게 패배한 승부차기였다.[38] 당시 베어벡은 국대와 U-23 감독을 겸임하고 있었는데, 사퇴하는 바람에 순식간에 두 자리가 비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술위원회는 시간이 아직 많이 남았다고 늑장을 부렸다가 결국 외국인 후보들에게 모두 까였고 부랴부랴 당시 전남 드래곤즈 감독으로 있던 허정무와 부산 아이파크 감독으로 있던 박성화를 각각 국대, 올대 감독으로 빼앗아갔다. 특히 박성화는 부산 감독으로 선임된 지 불과 17일 만에 올대 감독으로 갔다.[39] 본래 북한 원정 경기는 평양에서 열려야 했으나, 당시는 남북관계가 극악이었던 이명박 정부 시절이라 북한 측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의 입국을 거부했고 결국 대한민국 VS 북한의 경기 중 북한의 홈 경기는 중국 상하이에서 열렸다. 다만 대한민국의 홈 경기는 그대로 서울에서 열렸고, 인공기도 게양되었고 북한 애국가도 정상적으로 연주되었다.[40] 그러나 이 골이 터질 당시에 아르헨티나 측에서 파울을 범했기 때문에 본래 이 골은 노골이어야 했는데 심판의 오심 때문에 득점으로 인정되었다. 이 대회에서 아르헨티나는 조별리그 1차전부터 16강까지 매 경기마다 알게 모르게 심판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41] 물론 태권축구 사진으로 유명한 그 사진 속 상황은 허정무가 고의로 마라도나를 걷어찬 것이 절대 아니었다. 볼 경합 도중 공을 걷어내려다가 재수없게 마라도나가 맞은 것인데, 마라도나의 엄살 가득한 표정과 오묘한 각도 때문에 허정무가 마치 마라도나에게 날아차기를 하는 것처럼 보인 것뿐이었다.[42] 오른쪽 라인이 허약했던 이유는 공수 양면에 크게 기여하는 박지성과 달리 이청용은 전혀 수비에 가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사실상 오범석 혼자서 수비를 전담해야 했다.[43] 하지만 이때 이과인의 위치는 명백히 오프사이드였다. 그러나 주심, 부심 모두 오프사이드 선언을 하지 않는 오심을 범했다.[44] 그래도 나이지리아가 선제골을 넣고도 이기지 못한 건 천만다행이었다. 만약 나이지리아가 그리스를 잡았다면 3차전에서 한국에게 놓인 경우의 수는 오직 승리뿐이었기 때문이다.[45] 이때 SBS에서 중계를 하던 차두리의 부친 차범근"아, 차두리. 사람을 놓쳤어요!"(....)라고 강하게 질타했다.[46] 이때 이정수는 헤더를 시도했으나 높이가 맞지 않았고 떨어지는 볼을 재빨리 오른발로 차 넣었는데, 이 때문에 네티즌들로부터 '헤딩 + 발차기'라는 뜻으로 '헤발슛\', 혹은 골을 넣기 전에 상대에게 먼저 인사를 하는 것 같다고 하여 '동방예의지국슛\'이라는 별명을 얻었다.[47] 하지만 야쿠부의 위치는 오프사이드였으며, 선심이 오심을 범해 깃발을 들지 않았다. 하지만 주심이 페널티 박스에서 정확히 보고 있었기에 만일 야쿠부의 슛이 골망을 흔들었어도 아마 오프사이드로 득점 무효를 선언했을 것이다.[48] 영국 BBC 해설위원은 이런 야쿠부의 슛을 보고 저건 할머니도 충분히 넣을 골인데 말이죠라며 깠다.[49] 이때 공격에 가담한 막시 페레이라가 문전에서 슛을 했고, 그걸 기성용이 육탄방어로 막아냈는데 그때 볼이 기성용의 팔에 맞았다. 보기에 따라서 고의성이 다분한 것으로 판단해 페널티킥을 줄 수도 있었지만 다행히도 이 경기 주심이 거의 직무유기 수준에 가까울 정도로 '나는 관대하다' 모드로 나갔기에 그냥 넘어가 버렸다.[50] 여담으로 이것이 우루과이의 이 대회 첫 실점이었다.[51] 이 때문에 이동국은 무진장 욕을 퍼먹었다. 그때 그 장면을 보면 알겠지만 이동국의 오른발이 공에 빗맞았다. 제대로 임팩트가 되지 않았기에 저런 힘없는 슈팅이 나온 것이다. 결국 12년 만에 출전한 월드컵이었으나 이동국은 제대로 된 활약을 보이지 못하고 본인의 마지막 월드컵을 쓸쓸히 마칠 수밖에 없었다.[52] 지난 2006년 독일 월드컵은 17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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