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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완다 관련 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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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완다 공화국 Repubulika y'u Rwanda | République du Rwanda Republic of Rwanda | |||||
국기 | 국장 | ||||
Ubumwe, Umurimo, Gukunda Igihugu[1] 단결, 노동, 애국 | |||||
상징 | |||||
국가 | 아름다운 르완다 (Rwanda nziza) | ||||
역사 | |||||
1962년 7월 1일 벨기에로부터 독립 2003년 5월 26일 현행 헌법 제정 | |||||
수도 | 최대도시 | ||||
키갈리 | |||||
면적 | |||||
26,338km² | |||||
인문 환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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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구성 | 후투족 84%, 투치족 15%, 트와족 1% | ||||
인구밀도 | 535명/km² (2023)[2] | ||||
출산율 | 3.6명 | ||||
공용어 | 르완다어, 프랑스어, 영어, 스와힐리어 | ||||
종교 | 개신교 49.5%, 가톨릭 43.7%, 이슬람 2%, 무교 2.5% | ||||
군대 | 르완다군 | }}}}}}}}} | |||
하위 행정구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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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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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지수 | 3.30점, 권위주의 (2023년) (167개국 중 117위) | ||||
국가 요인 | <colbgcolor=#20603D><colcolor=#fff> 대통령 (국가원수) | 폴 카가메 (Paul Kagame) | |||
총리 (정부수반) | 에두아르 응기렌테 (Édouard Ngirente) | ||||
여당 | | }}}}}}}}} | |||
경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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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당 GDP | $985 (2024년 10월) | ||||
GDP (PPP) | 전체 GDP | $519억 1,800만 (2024년 10월) | |||
1인당 GDP | $3,946 (2024년 10월) | ||||
국부 | $220억 / 세계 118위(2019년) | ||||
수출입액 | 수출 | $1억 5,280만 (2010) | |||
수입 | $3억 6,570만 (2010) | ||||
외환보유액 | |||||
신용 등급 | |||||
화폐 | 공식 화폐 | 르완다 프랑 | |||
ISO 4217 | |||||
국가 예산 | 1년 세입 | ||||
1년 세출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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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코드 | |||||
RW | |||||
국제 전화 코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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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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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자 입국 | 양국 모두 불가능. 한국인은 르완다 입국시 전자/도착비자 신청가능.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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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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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프리카 동부 내륙에 있는 작은 내륙국. 수도는 키갈리.국명은 산이 많은 것을 반영해 "산"이란 뜻이다.
2. 상징물
2.1. 국기
이전 국기[5] |
현재 국기 |
그 중 빨간색이 "르완다 내전 당시의 유혈참사를 부르고 분노를 조장한다."는 지적 때문에 2001년에 이 국기를 폐지하고 파란색과 노란색, 초록색으로 이뤄진 삼색기에 태양이 새겨진 새 국기를 채택하여 새로 디자인해서 쓰기 시작, 새로 변경된 국기를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다. 이 도안은 르완다의 화가인 알퐁스 키리모베네초(Alphonse Kirimobenecyo)가 직접 고안하였다고 한다.
2.2. 국장
1962-2001 | 2001-현재 |
2.3. 국가
자세한 내용은 아름다운 르완다 문서 참고하십시오.3. 자연
3.1. 지리와 생태
우간다, 부룬디, 콩고민주공화국 및 탄자니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천 개의 언덕을 가진 땅(Land of a Thousand Hills)'이라 불리는 험한 산악 지형이지만 땅이 비옥하여 농사가 잘 된다. 그래서 인구 밀도도 인구가 1,000만 이상인 국가 중에서 3위며[6] 그 위로는 순서대로 방글라데시, 대만이 있다.작은 나라지만 아프리카 정글과 사바나 한복판에 있는 나라라서 야생동물이 매우 다양하다. 산악고릴라와 침팬지, 올리브개코원숭이, 영양,[7] 사바나얼룩말, 기린, 표범, 사자, 아프리카물소, 아프리카코끼리, 검은코뿔소, 하마, 하이에나, 호저, 혹멧돼지, 가로줄무늬자칼, 표범무늬거북, 블랙맘바, 루펠독수리, 흰등독수리, 회색관두루미, 아프리카흑따오기, 아프리카저어새 등이 서식한다.
3.2. 기후
고산 지대인 만큼 연중 20℃ 정도의 온화한 기후와 풍부한 강수량을 갖고 있으며, 대륙 아프리카 안에서 가장 조밀한 인구분포를 나타낸다. 인구가 무려 1,441만 명에 달하며, 이는 이웃의 큰 나라 우간다의 3분의 1, 면적으로는 80배가 넘게 큰 대국인 콩고민주공화국의 6분의 1에 달하는 엄청난 숫자다. 결과적으로 인구의 90%가 농업에 종사하지만 토지가 극단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다.4. 문화
4.1. 인구 및 언어
국토 대부분이 고산 지대임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에서 인구 밀도가 가장 높은 나라이다. 사실 적도 지역에서는 고산 지대가 상대적으로 시원하기 때문에 고원에 더 많은 사람이 사는 경우가 많다.투치족과 후투족, 그리고 트와족이 있는데 이 중 투치족과 후투족은 벨기에의 식민통치로 차별과 갈등이 일어나면서 르완다 내전이 일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공용어는 르완다어, 프랑스어, 영어로 프랑코포니와 영연방에도 가입되어있다. 프랑스어의 경우는, 폴 카가메의 프랑스어 배제정책의 영향으로 프랑스어의 사용이 줄어들고 있고 반대로 영어와 르완다어의 사용이 늘어나고 있지만, 주요 외국어로도 쓰이고 있다.[8] 2015년에는 스와힐리어도 필수외국어로 지정되었다. 그러다보니 르완다인 대부분이 르완다어, 프랑스어, 영어, 스와힐리어를 할 줄 알며 4개 언어중 일부 언어를 구사할 줄 아는 경우도 많이 있다.
부룬디와는 종족구성이 비슷한 것은 물론이고 언어도 사투리 수준으로 가까운데다가 문화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형제의 국가라고 될 만큼 매우 가까운 관계이다. 르완다 학살의 시작도 르완다와 부룬디 대통령이 같이 암살당하면서 벌어진 일이었을 정도.
그러나 전근대부터 르완다 왕국과 부룬디 왕국이라는 엄연히 별개의 나라로 나눠졌기에 이 둘이 하나의 국가로 통일된 적은 없다. 식민지 시기 독일과 벨기에에 의해 르완다 우룬디라는 같은 행정구역으로 묶인적도 있지만 이때도 왕은 별개로 있었기 때문에 하나의 국가로 통일되었다고 하였다고는 볼 수 없었다.
4.2. 식문화
자세한 내용은 르완다 · 부룬디 요리 문서 참고하십시오.5. 역사
5.1. 고대
거의 1만 년 전 피그미 트와(Twa)족이 어디선가 르완다로 이주해 왔으며, 약 1000여년 전 반투족이 이주해 왔다. 이들은 20여 개의 우브워코(ubwoko)라는 부족을 이루었다. 18세기엔 이 부족들이 8개의 왕국을 세웠는데, 지금의 투치에 속하는 니기냐(Nyiginya) 부족의 르완다 왕국도 이 중 하나였다.5.2. 근대
이후 19세기 말부터 부룬디, 탄자니아와 함께 독일령 동아프리카로 독일 제2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이들은 르완다 왕국을 없애거나 하진 않았지만 부족간 구분이 없던 지역에 후투족, 투치족을 구분하여 지원하며 계속 꾸준히 영향력을 늘려갔다. 그러다가 제1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의 패전에 의한 베르사유 조약으로 1919년에 벨기에 위임 통치령이 되었다. 벨기에는 식민통치를 위해 소수인 투치족을 '관리지배층'으로 선택해 특혜를 주고 다수인 후투족에게는 가혹한 통치를 시행했으며, 박탈감을 느끼게 된 후투족과 투치족의 대립과 갈등이 점점 증폭되기 시작했다.이후 1946년에 부룬디와 합병되어 벨기에의 신탁통치령인 루안다-우룬디 신탁통치령이 되었다가(다만 부룬디 왕국은 존속해 있었다.) 1959년에 별개의 왕이 상주해있던 부룬디와 분리되어 신탁통치하의 르완다 왕국이 세워졌다. 그러나 그 해 투치족의 지배에 분노한 후투족의 반 투치족 봉기가 일어나 르완다 왕국은 무너졌으며, 1962년 공화국으로 독립했다. 초대 대통령인 그레구아르 카이반다(Grégoire Kayibanda, 1924–1976)는 투치족을 외래종족으로 간주하면서 투치족 탄압정책을 펼쳤고, 1965년에 후투족 일당 독재 국가가 성립되었다. 이러한 인종 분규과정에서 1만명의 투치족들이 학살되고, 약 30만에 달하는 투치족들이 해외로 추방되었다.
5.3. 현대, 르완다 내전
쥐베날 하뱌리마나 대통령.
그러나 1973년 쿠데타로 쥐베날 하뱌리마나(Juvénal Habyarimana) 대통령이 집권했다. 그는 국민들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투치족을 학살했다. 그러자 1979년 해외 망명 르완다인들이 르완다 후투족 정권을 전복시키기 위해 투치족의 폴 카가메를 중심으로 르완다민족통일동맹(Rwandese Alliance for National Unity, RANU, RPF의 전신)이 결성되었다.
그래도 쥐베날은 초기에 정계에 진출하지 않는다는 원칙하에 투치족을 포용하려는 듯했다. 그래서 당시에 일부 투치족들이 중산층에 진입하기도 했다고 한다. 물론 사회적인 시선은 영 곱지 않았긴 했지만. 쥐베날은 경제성장에도 제법 힘을 써서 그의 집권기 르완다는 주변국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잘사는 나라가 되었다.
하지만 20년에 이르는 집권기간에서 보듯이 하뱌리마나는 야당을 허용하지 않고 부정선거를 저지르는 독재자였으며 1960년대-70년대 초반의 후투족 지도자보다 온건하지만 고위각료 30명 중에 1명만 투치족을 배정하는 등 여전히 투치족을 차별하는 정책을 펴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당시에 경제상황이 괜찮았기에 그럭저럭 넘어갔다.
그러다 80년대 후반에 커피값이 폭락하면서 경제가 파탄나고 IMF로부터 손을 벌려야되는 처지에 내몰렸다., 이를 틈타 그 동안의 투치족 차별에 분노한 투치족들과 1960년대부터 70년대 초반까지 르완다에서 추방된 투치족들[9]이 중심이 되어 결성한 RPF(르완다 애국전선)가 1990년 내전을 일으켜 르완다 내전이 일어났다. RPF는 처음엔 잘 나가다 이내 장비 부실과 내분으로 정부군에게 밀리다 못해 RPF의 사령관이던 프레드 르위게마가 정부군에게 사살당하면서 큰 타격을 입었다. 그러나 르위게마가 사망한 이후 폴 카가메가 RPF의 차기 지도자가 되면서 궤멸 직전의 지도부들을 정리하고 북부 지방에서 게릴라전을 전개해 세를 늘려 다시금 정부군에게 반격을 가하면서 내전이 격화되었고, 내전이 장기화되자 기존 후투족 기득권층은 불만을 돌리려는 겸해서 투치족들을 몰살해야한다는 프로파간다 신문과 라디오 방송을 만들어 후투족들을 선동하였다.
결국 하뱌리마나가 현실을 깨닫고 1991년 헌법에서 다당제를 허용하고, 1993년 탄자니아 아루샤에서 맺은 휴전 조약으로 내전은 휴전의 형태로 종결됐다. 그러나 내전과정에서 반 투치족 선전이 펼쳐지기 시작하고, 이러한 선전물이 후투족들에게 인기를 끌었고, 내전이 끝난 후에도 과도 정부가 조약대로 성립하지 않았고 르완다 정부 내에서 바퀴벌레 같은 투치족의 지배를 용납할 수 없다는 강경파와 현실을 받아들이고 투치족과 권력을 공유해야한다는 온건파가 나누어져 대립하는 등의 혼란이 펼쳐졌으며, 정부내의 후투 강경파의 후원으로 살인 무기들이 대거 일반인들에게 배급되었다.
그리고 1994년 하뱌리마나 대통령과 시프리앵 은타랴미라 당시 부룬디 대통령이 함께 평화협상을 논의하러 가는 길에 비행기가 지대공 미사일에 격추당해 함께 암살당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그리고 하루 뒤에 후투 온건파인 총리[10]도 암살당하는 사태까지 연이어 일어나면서 미디어전에서 강세를 보인 후투 강경파가 세를 불러나가면서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그리고 1990년대 초반까지의 부룬디처럼 투치족들에게 지배당할까봐 공포에 떤 상당수의 후투족들도 이러한 공포 분위기에 동참, 학살에 대거 나서며 석 달여간 르완다 학살'''이 벌어졌다. 이 기간 동안 최소 50만 명에서 최대 107만 1천 명(RPF 주장)이 학살당하였고[11] 살아남은 투치족 여인들은 대거 강간을 당하는 수모를 당해야했으며, 부모를 잃은 고아들, 남편과 가족을 잃은 과부들도 대거 속출되었다. 이들 대부분은 투치족과 후투족 온건파들이었고 대학살로 르완다 내 투치족의 약 70%가 학살당한다고 추정한다. 이를 다룬 영화가 2004년 개봉된 호텔 르완다.
그러나 이런 르완다 대학살의 참상이 국제적으로 보도되기 시작하면서 후투 강경파가 고립되어나갔고, 이 틈을 타 RPF가 대대적인 공세를 개시해 수도 키갈리를 점령하고 학살을 주도한 후투 강경파들이 힘없이 밀려나가자, 인구의 반 가까이에 달하는 300만 명이 넘는 후투족들도 보복을 당할까봐 공포에 떨며 피난을 떠났다. 이후 RPF는 르완다를 장악하고 내전 종식을 선언하고, 후투 온건파와 거국정부를 수립하였으며, 후투족을 상대로 한 보복을 금지시키고, 자이르에서 내전이 터지면서 후투족 난민들은 다시 르완다로 되돌아왔다.
폴 카가메 르완다 대통령.
그리고 RPF를 이끈 투치족 폴 카가메는 후투계 파스퇴르 비지뭉구(Pasteur Bizimungu)를 정부수반으로 하는 신정부를 출범시켰고, 2003년 대선에 출마해 95%의 압도적인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2000년대 들어 르완다는 치명적인 내전으로 황폐화된 국가를 통합하고자 노력했고, 르완다 국제 전범 재판소(International Criminal Tribunal for Rwanda, ICTR)이 설치되어 전범들에 대한 심판이 내려졌다. 또한 르완다 전통 마을 규모 재판인 '가차차(Gacaca)'를 국가적으로 장려하여 죄질이 크지 않거나 반성하는 기미를 보이는 가담자들에 대한 처벌을 지역 공동체들이 직접 정할 수 있게 하였다.
대통령 폴 카가메는 싱가포르, 대한민국 등 해외 사례들을 참고하여 경제를 살리는데 총력을 다했다. 이는 놀랄 만큼의 성과를 거두어 빈곤 지수가 2006년부터 2011년까지 57%에서 45%로 감소하였다. 또한 치안 강화와 부패 척결에도 힘을 써 2019년 기준 살인율은 10만 명 당 2.5라는, 미국(5.4)과 인도(3.2)보다 더 나은 기록을 냈고, 2006년부터 2015년까지 평균수명은 46.6세에서 59.7세로 상승했으며 부패인식지수는 전 세계 49위로 아프리카 국가들 중에선 가장 나은 수준에 속하는 기록을 차지했다. 수도인 키갈리는 그 치안이 좋으며 길거리 또한 굉장히 깨끗한 상황이다. 이는 르완다 국민들이 노력하여 이루어진 결과이며, 매달 마지막 토요일은 '우무간다(Umuganda)'라는 이름의 휴일로 18세에서 65세의 모든 르완다인들이 밖으로 나와 아침 8시부터 11시까지 청소하는 날이다.[12]
또한 기존의 전통적인 성 역할이 역전되어[13] 2016년 기준 르완다의 의회에는 여성 국회의원의 숫자가 64%로 세계 1위를 달성했으며, 르완다 학살 이후 성폭력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내고 전후 수습 과정에서 리더십을 보이며 많은 여성들이 인권 신장에도 힘쓰고 있다. # 다만 르완다는 아직 절차적 민주주의가 자리잡지 않은 국가로서 선거의 민주성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여성 국회의원 비율 등의 수치 또한 정상적인 민주적 절차를 통해 달성된 것이 아니어서 선진국과 같은 의미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그러나 벤치마킹한 싱가포르의 케이스와 유사하게, 폴 카가메도 2017년에 무려 98%의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할 정도로 정치적 자유가 협소하다. 카가메는 한국의 새마을 운동을 따라하기도 하며 경제적, 사회적으로 놀라운 성과를 달성하긴 했지만 철권 통치와 공포 정치를 통해 군림한다는 비판이 있으며, 정치적 자유, 표현의 자유, 민주화에 있어서 많은 제한이 아직 존재한다.
6.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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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완다의 정치 정보 | ||
부패인식지수 | 53점 | 2023년, 세계 49위 |
언론자유지수 | 40.54점 | 2024년, 세계 144위 |
민주주의지수 | 3.30점 | 2023년, 세계 117위 |
폴 카가메는 인종, 민족, 종교에 대한 차별을 강력하게 금지하여 투치족과 후투족 간의 분열과 대립으로 초토화된 르완다를 굳건한 국민국가로 발전시키고, 치안을 엄청나게 개선시켜 콩고민주공화국 접경 지역을 제외하면 르완다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치안이 양호한 국가 중 하나로 꼽히게 되었다. 또한 놀랍게도 세계에서 의회에 여성이 가장 많이 진출한 나라인데 내전으로 인해 젊은 남성 다수가 사망하여 인구상 여성이 70%정도가 된 상황이라, 기존 가부장제 사회 구조에서 여성이 경제생활을 이끌어야 하는 상황으로 뒤바뀌었기 때문이다. 기사 링크 또한 성별에 따른 임금차이가 덴마크 보다도 낮다. 내전과 학살에 찢겨진 르완다의 정치를 안정시키고 여러 경제개발을 추진 중인데 꽤 성공한 편이라 평가가 좋다. 폴 카가메의 경제적 성과는 아래의 경제 문서를 참고할 것.
그러나 폴 카가메는 철권통치로 많은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하다. 폴 카가메는 원래 뛰어난 군인으로 여러번 놀라운 군사적 승리를 거둔 매우 성공적인 장군이었다. 그래서 르완다의 정치지도자가 된 후에도 그런 군사 작전 같은 통치를 하고 있다는 평을 듣고 있다. 정치적 경쟁자인 빅투아르 잉가비레를 콩고민주공화국 후투 게릴라를 지원했다는 이유로 가택연금시키거나 여러 신문들을 폐간시키고 있고, 심지어 몇몇 정치인들이 실종되기도 했다. Liliane Mugabekazi라는 자국 여성의 노출 복장을 가지고 트집을 잡아 2년 징역형에 처하게 하기도 했다. 르완다의 언론자유지수는 2013년 179개국 중 161위를 기록하고 있다. 2010년에는 169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2022년 기준 180개국 중 136위를 기록했다.
최근 헌법을 개정하여 폴 카가메는 장기 집권을 도모하고 있다. 조선일보 기사
2017년 10월에 국제형사재판소를 탈퇴한 이후, 2018년에는 르완다의 인권사무소폐쇄를 요구했다. #
르완다는 2017년 한해에 광부 27명이 광산사고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되고 있어서 2018년 10월에는 광산붕괴로 10명이 숨지고 4명이 다친것에 이어 2019년 1월 22일에는 광산 사고로 14명이 목숨을 잃었다. #
휴먼라이츠워치는 2020년 4월 24일에 홈페이지에서 르완다 정부가 코로나19 차단을 위한 봉쇄령을 어겼다며 수십명을 마구잡이로 체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7. 경제
중앙아프리카의 경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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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들어 경제성장률이 꽤 높다. 2004년부터 2019년까지 16년 동안 연평균 7.8% 정도를 기록하고 있다. 부패가 심한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과는 달리 정부의 부패 척결 의지로 보았을때[14] 아프리카에선 가장 깨끗한 편이고, 후술하듯 부패인식지수도 아프리카 최상위권인 데다가 교육 수준 또한 개선이 이루어지고 있다. 2023년 10월 IMF 통계 기준으로 1인당 GDP가 1,031$를 기록하여 드디어 1000달러를 넘기는 데에 성공하...는 듯 싶었으나 2024년 통계에서 989$[15]를 기록하며 1000달러대 유지에 실패했다.
2006년부터 2013년까지 25점(163개국 중 121위)[16]에서 53점(176개국 중 50위)로 올랐고, 2022년에도 54점(180개국 중 54위)를 유지하고 있어 '상당히 부패'로 분류되기는 해도 1인당 GDP가 르완다의 수십 배는 뛰어넘는 키프로스, 그리스, 그레나다와 고작 1점밖에 나지 않고, 몰타, 사우디아라비아와 동점에 말레이시아, 중국, 헝가리, 아르헨티나, 브라질처럼 1인당 GDP가 르완다보다 몇십 배나 높은 국가들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아프리카에서 르완다보다 부패인식지수가 높은 국가는 세이셸, 보츠와나, 카보베르데밖에 없으며,[17] 경제 수준과 비교하면 놀라울 수준으로 청렴하고 부패에서 자유로운 편이라고 할 수 있다.[18] 당장 르완다랑 국경을 접하고 있는 부룬디의 부패인식지수가 17점(171위)로 적도 기니, 아이티, 북한, 리비아 같은 나라들과 동점이라는 것에서 답이 나온다.
심지어 2015년 기준 르완다의 부패인식지수는 대한민국과 동점이었으며, 2016~2017년에는 한국보다도 부패인식지수가 높았었다![19] 그리고 2012년에도 르완다의 부패인식지수는 한국보다 고작 3점 낮았고, 2013년에도 2점, 2018년에도 1점 차이밖에 나지 않았으며, 심지어 2012~2020년까지는 2019년 한 해를 제외하면 이탈리아보다도 높았다.[20] 물론 2022년 기준으로는 한국은 63점, 르완다는 51점으로 차이가 많이 벌어진 상태. 다만 2023년 세계의 자유 지수 중 부정부패의 심각성을 묻는 C2 조항에서 르완다는 4점 만점에 2점을 기록하긴 했는데,[21] 이는 부패 문제를 조사하거나 보도할 수 있는 독립적인 기관이나 언론 매체가 거의 없는 것과 부패 혐의로 인한 기소에 정치적 동기가 있는지 의심된다는 판단 때문이다.
폴 카가메 집권 후 경제개혁을 추진 중이라 아직도 최빈국 신세인 독재국가이긴 해도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 중에서는 안정된 치안과 행정, 부패 감소, 경제 발전, 보건, 국민 생활 안정 등 국가 운영은 원활한지라 여러모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옛날의 르완다는 내전과 인종 학살에 초토화된 전형적인 아프리카의 실패한 국가였지만 비교적 단기간에 놀랍게 나라를 안정시키고 국가를 재건하였다.[22] 덕분에 르완다는 상술한 바와 같이 아직도 1인당 GDP가 최빈국 문턱 수준일 정도로 매우 낮음에도[23] 아프리카의 대표적인 경제적 성공 사례로 간주되고 있다.
아프리카 대륙의 지리적 중심에 자리잡고 있고 독재적이긴 하나 정치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있고 항공교통과 비즈니스 시설 등 경제 발전 인프라를 정비하고 비즈니스 환경이 좋아진 점 등이 성공요인으로 꼽힌다. 지도자인 폴 카가메는 싱가포르를 벤치마크해서 르완다를 아프리카의 비지니스 및 무역 중심지로 만들어 아프리카의 싱가포르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개발독재로 이뤘다는 경제 성장도 이웃나라 탄자니아에도 못 미치는 수준인 데다가 아직도 1인당 GDP가 1,000$ 남짓일 정도로 심하게 낮고, 카가메의 퇴장 이후의 정치적 안정 유지나 불균형한 발전과 엄청난 빈부격차 등 아직도 여러 해결해야할 많은 문제점이나 불안감이 있긴 하나 아프리카의 대부분 국가가 아직도 내전과 끔찍할 정도의 사회 불안정, 치안 문제에 시달리는걸 감안하면,[24] 그리고 르완다 대학살 + 소규모 내륙국이라는 최악의 악조건이 2개나 겹쳐 있는 상황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수치상의 결과와는 상관없이 짧은 기간에 매우 값진 성과를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관광업도 발전하고 있으며 VISIT RWANDA라는 관광청이 자세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고릴라 대국으로 유명한데, 현재 전 세계에 880마리 정도밖에 없는 마운틴 고릴라 중 300마리 정도가 르완다에 있다고 한다. 르완다에서도 이를 이용해 곳곳에 고릴라 동상을 세우거나 고릴라 관련 상품 판매는 물론 야생 고릴라 투어가이드가 여기저기 있고 르완다 관광 시 꼭 빼놓지 말아야 하는 코스로 꼽힌다. 또 고릴라 뿐만 아니라 기린, 얼룩말, 영양, 아프리카물소, 표범, 사자, 코끼리, 코뿔소, 하마, 관두루미 등 아프리카 사바나 초원지대 하면 유명한 아프리카 동물들이 서식하는 르완다 동부의 아카게라 국립공원(Akagera National Park) 역시 유명한 관광명소 중 하나이다.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처럼 커피도 유명하다. 르완다 커피는 아라비카 품종을 100% 재배하고 있으며, 세계 각국으로 수출되고 있다. 스타벅스에서 르완다 커피를 많이 구매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프리카에는 흔치 않은 스마트폰 브랜드인 Maraphone이 탄생한 나라이기도 하다.[25] Mara Group을 모회사로 두고 있다. Mara 공식 웹사이트.[26] 더욱 놀라운 것은 이 나라가 개발도상국임에도 불구하고 스마트폰 조립 및 생산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물론 주요 부품은 후술할 뻘짓연구소 영상에서 확인할수 있듯이 중국, 미국, 대한민국 등 해외 기업들에서 만든 수입산이긴 하나, 이 정도도 못하는 국가가 개도국 중에선 수두룩하기에 높이 평가받을만 하다.[27] Mara X와 Mara Z를 판매했으며, 태블릿인 Maratab도 출시했다. 마라에서 만든 200달러 짜리 스마트폰을 IT 리뷰 유튜브 채널 뻘짓연구소에서 직접 구입해 리뷰해 보기도 했다. 영상 2022년에 코로나로 인해 폐업했다.
8. 군사
자세한 내용은 르완다군 문서 참고하십시오.9. 스포츠
9.1. 축구
자세한 내용은 르완다 축구 국가대표팀 문서 참고하십시오.9.2. 기타 스포츠
포뮬러 1의 회장 스테파노 도메니칼리는 르완다에서 F1 그랑프리를 개최하길 원한다는 의견을 밝혔다.[28]10. 외교
자세한 내용은 르완다/외교 문서 참고하십시오.11. 기타
- 한국에서 유학생활을 하고 있고,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르완다 편의 호스트로 출연하기도 한 '모세' 씨가 '르완다'의 나무위키 문서를 읽고 호평을 남겼다. 다만 해당 영상에서 PD가 "르완다 학살을 일으킨 이웃 사람들을 용서하다니, 르완다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보다 관용적인 것 같다."라는 망언을 남기기도 했는데,[29] 르완다 학살에서 더 자세히 볼수 있다시피 르완다 학살에 가담한 민간인 가해자가 르완다 전체 인구의 1/3 가량으로 추산되기에 처벌이 사실상 불가능해서 그냥 잘못을 인정, 용서하는 식으로 온건한 처분을 내릴 수 밖에 없었던 것이 가장 큰 요인 중 하나였다. 물론 폴 카가메 대통령이 학살당한 투치족 출신임에도 후투족에 대한 보복적인 인종청소를 가하지 않은 것은 관대한 처사가 맞으나, 사실 하고 싶어도 할수 없었던 쪽에 더 가깝다.
[1] 프랑스어: Unité, Travail, Patriotisme
영어: Unity, Work, Patriotism[2] 모리셔스와 코모로 등 도서부 국가들을 제외하고 아프리카 대륙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국가이다. 이웃나라와 비교해 보면 부룬디의 1.4배, 우간다의 3배, 탄자니아의 9.0배, 콩고민주공화국의 14.4배에 달한다. 2023년에는 인구가 1,400만 명을 돌파하면서 대한민국보다 인구밀도가 높아졌다.[3] 단교는 아니었다.[외교부] 외교부 해외안전여행[5] 2001년까지 쓰였다.[6] 2023년 이전에는 대한민국에 이어서 4위였으나, 현재는 인구가 1,400만 명을 넘으면서 한국을 추월하였다.[7] 임팔라, 워터벅, 일런드, 시타퉁가, 토피.[8] 르완다는 2012년 이전에는 교육과정이 프랑스어였지만, 2012년부터 영어 교육과정으로 바뀌었다.[9] 1990년 당시에 인구의 폭풍증가로 60만 명대로 늘어났다.[10] 평화유지군 보호 하에 국영 방송국에서 사태를 진정시키려는 방송을 하려했으나 대통령 경호대에 의해 관저에서 살해당했다.[11] 80만 명이 정설이다.[12] 폴 카가메 대통령, 의원도 참여한다. 연령이 맞지 않는 르완다인의 참여는 자율이며 관광객의 참여 역시 원하면 가능하다.[13] 남성이 르완다 내전으로 쓸러 나갔기 때문이다.[14] 부패가 심각한 아프리카의 대다수 국가와는 다르게 정부 차원에서 부패 척결을 내세우는 국가는 르완다 외 극소수의 아프리카 개발도상국 뿐이다.[15] 감비아와 동급이다.[16] '매우 부패'. 2023년 기준으로는 방글라데시, 기니, 이란이 이 점수다.[17] 모리셔스, 나미비아, 남아프리카 공화국처럼 아프리카에서는 부국으로 꼽히는 나라들도 르완다보다 부패인식지수가 낮다.[18] 최빈국 중 르완다 다음으로 부패인식지수가 높은 베냉과 세네갈도 부패인식지수가 43점(72위)으로 르완다랑 10점 이상 차이가 나며, 그 다음인 부르키나파소&동티모르도 42점(77위)이다. 참고로 이들은 부르키나파소를 제외하면 모두 르완다보다 1인당 GDP가 높은 나라들이다.[19] 사실 청탁금지법 실시 이전 한국은 이탈리아, 그리스를 제외하면 선진국 중에서는 부패인식지수가 낮은 편에 속했다.[20] 2019년에도 이탈리아랑 동점이었다.[21] 이것도 최빈국 중에서는 높은 편에 속하긴 하나, C2가 2점을 기록한 최빈국은 르완다 말고도 은근 흔한 편이다.[22] 르완다와 비슷하게 내륙국+내전 2연타를 입은 네팔, 타지키스탄과 비교해도 유독 주목할 수밖에 없는 수준이다.[23] 사실 르완다 내전의 참상을 고려하면 오히려 고작 20여 년 만에 르완다의 경제력을 이 정도로나마 늘린 것도 기적에 가깝다.[24] 바로 이웃국가인 부룬디만 봐도 알 수 있다. 부룬디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를 넘어서 전세계에서 경제 상황이 제일 열악한 나라이다.[25]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최초이다. 사하라 이북에는 이미 알제리가 르완다보다 먼저 스마트폰을 만들었다.[26] 홈페이지 언어가 영어로 되어 있지만 내수용 웹사이트다. 폴 카가메 대통령 때 국가적인 차원에서 과거 지배국이었던 벨기에의 공용어이기도 한 프랑스어 대신 영어 사용을 장려하였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르완다 내전에서 후투족에게 대량의 중국산 마체테를 공급했고, 그 대금을 카가메 정권에게 청구하는 등 반불감정을 유발한 전적이 있다.[27] 르완다 외에는 북한이 스마트폰을 만들 수 있는 최빈국에 속하는데, 물론 이쪽도 중국 부품을 조립하는 라이센스 생산 수준이다.[28] 사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F1에서 아프리카 대륙의 비중은 높았다. 초창기 선수들중 모로코, 로디지아, 남아프리카 연방 출신들도 여럿 있었고 모로코 그랑프리, 남아프리카 그랑프리도 과거 개최된적이 있다.[29] 여담으로 해당 영상의 PD는 나무위키를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위키피디아"라고 소개하였는데, 나무위키와 위키피디아 즉 위키백과는 엄연히 다른 위키위키 사이트다. 제대로 고치자면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위키 사이트"가 맞다.
영어: Unity, Work, Patriotism[2] 모리셔스와 코모로 등 도서부 국가들을 제외하고 아프리카 대륙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국가이다. 이웃나라와 비교해 보면 부룬디의 1.4배, 우간다의 3배, 탄자니아의 9.0배, 콩고민주공화국의 14.4배에 달한다. 2023년에는 인구가 1,400만 명을 돌파하면서 대한민국보다 인구밀도가 높아졌다.[3] 단교는 아니었다.[외교부] 외교부 해외안전여행[5] 2001년까지 쓰였다.[6] 2023년 이전에는 대한민국에 이어서 4위였으나, 현재는 인구가 1,400만 명을 넘으면서 한국을 추월하였다.[7] 임팔라, 워터벅, 일런드, 시타퉁가, 토피.[8] 르완다는 2012년 이전에는 교육과정이 프랑스어였지만, 2012년부터 영어 교육과정으로 바뀌었다.[9] 1990년 당시에 인구의 폭풍증가로 60만 명대로 늘어났다.[10] 평화유지군 보호 하에 국영 방송국에서 사태를 진정시키려는 방송을 하려했으나 대통령 경호대에 의해 관저에서 살해당했다.[11] 80만 명이 정설이다.[12] 폴 카가메 대통령, 의원도 참여한다. 연령이 맞지 않는 르완다인의 참여는 자율이며 관광객의 참여 역시 원하면 가능하다.[13] 남성이 르완다 내전으로 쓸러 나갔기 때문이다.[14] 부패가 심각한 아프리카의 대다수 국가와는 다르게 정부 차원에서 부패 척결을 내세우는 국가는 르완다 외 극소수의 아프리카 개발도상국 뿐이다.[15] 감비아와 동급이다.[16] '매우 부패'. 2023년 기준으로는 방글라데시, 기니, 이란이 이 점수다.[17] 모리셔스, 나미비아, 남아프리카 공화국처럼 아프리카에서는 부국으로 꼽히는 나라들도 르완다보다 부패인식지수가 낮다.[18] 최빈국 중 르완다 다음으로 부패인식지수가 높은 베냉과 세네갈도 부패인식지수가 43점(72위)으로 르완다랑 10점 이상 차이가 나며, 그 다음인 부르키나파소&동티모르도 42점(77위)이다. 참고로 이들은 부르키나파소를 제외하면 모두 르완다보다 1인당 GDP가 높은 나라들이다.[19] 사실 청탁금지법 실시 이전 한국은 이탈리아, 그리스를 제외하면 선진국 중에서는 부패인식지수가 낮은 편에 속했다.[20] 2019년에도 이탈리아랑 동점이었다.[21] 이것도 최빈국 중에서는 높은 편에 속하긴 하나, C2가 2점을 기록한 최빈국은 르완다 말고도 은근 흔한 편이다.[22] 르완다와 비슷하게 내륙국+내전 2연타를 입은 네팔, 타지키스탄과 비교해도 유독 주목할 수밖에 없는 수준이다.[23] 사실 르완다 내전의 참상을 고려하면 오히려 고작 20여 년 만에 르완다의 경제력을 이 정도로나마 늘린 것도 기적에 가깝다.[24] 바로 이웃국가인 부룬디만 봐도 알 수 있다. 부룬디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를 넘어서 전세계에서 경제 상황이 제일 열악한 나라이다.[25]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최초이다. 사하라 이북에는 이미 알제리가 르완다보다 먼저 스마트폰을 만들었다.[26] 홈페이지 언어가 영어로 되어 있지만 내수용 웹사이트다. 폴 카가메 대통령 때 국가적인 차원에서 과거 지배국이었던 벨기에의 공용어이기도 한 프랑스어 대신 영어 사용을 장려하였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르완다 내전에서 후투족에게 대량의 중국산 마체테를 공급했고, 그 대금을 카가메 정권에게 청구하는 등 반불감정을 유발한 전적이 있다.[27] 르완다 외에는 북한이 스마트폰을 만들 수 있는 최빈국에 속하는데, 물론 이쪽도 중국 부품을 조립하는 라이센스 생산 수준이다.[28] 사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F1에서 아프리카 대륙의 비중은 높았다. 초창기 선수들중 모로코, 로디지아, 남아프리카 연방 출신들도 여럿 있었고 모로코 그랑프리, 남아프리카 그랑프리도 과거 개최된적이 있다.[29] 여담으로 해당 영상의 PD는 나무위키를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위키피디아"라고 소개하였는데, 나무위키와 위키피디아 즉 위키백과는 엄연히 다른 위키위키 사이트다. 제대로 고치자면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위키 사이트"가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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