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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0년, 소련이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던 지역 |
언어별 명칭 | |
영어 | Soviet Empire, Soviet Imperialism, New Russian Empire |
러시아어 | Советская империя |
중국어 | 苏维埃帝国, 社会帝国主义 |
일본어 | ソビエト[ruby(帝, ruby=てい)][ruby(国, ruby=こく)]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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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제국이라는 용어 자체가 보편적이고 엄격한 기준[1]은 없지만 대개 긍정적, 부정적 의미로 이분화된 평가로 쓰이는데, 이 경우는 소련의 헤게모니, 패권주의, 간섭주의적 행보 등을 비난할 때 사용되는 용어이다.냉전 시대에 미국을 비롯한 제1세계 국가들이 소련을 비판할 때 자주 사용하였다. 대한민국에서도 적색제국주의, 공산제국주의라는 표현이 냉전 시대에 널리 통용되었다. 소련 붕괴 후에도 러시아 제국주의를 비난할 때 간간히 쓰이는 표현이다.[2]
하버드 대학교 역사학과의 폴란드계 미국인 리차드 파이프스 교수[3]에 의해 처음 정의되었다. 소련 제국주의는 문화제국주의적인 성향도 띄고 있다.
2. 소련과 제국주의
소련(소비에트 러시아 포함)은 건국 초창기에 공산주의 이론에 따라 반제국주의를 표방했다. 당시 소련은 국제주의적인 이념에 따라 제국주의 열강들에게 지배받던 전세계 식민지의 내셔널리즘, 사회주의 운동을 지원했다. 하지만 이 시기에도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 조지아 등 캅카스 일대 민족의 독립은 막았고 현지 민족주의자들은 탄압의 대상이었기에 정말 당시의 소비에트 러시아가 제국주의적이지 않았는가에 대한 의심의 여지는 있다.이오시프 스탈린이 집권하면서 소련은 일국사회주의 노선에서 점차 전체주의적인 독재국가로 변모했다. 특히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승리한 후 소련은 전쟁을 통해 얻은 국제적 위상을 바탕으로 동유럽과 아시아 등지에서 영향력을 넓히면서 신생 사회주의권 국가들에서 자국의 헤게모니를 적극적으로 행사했고 때로는 독자노선을 추구하는 개별 국가를 무력으로 침공하여 개혁 요구를 짓밟기도 했다.
이러한 모습은 많은 지식인들로 하여금 소련이 더 이상 초창기 모습과 같은 국제주의적 사회주의 연합이 아니라 러시아 제국과 다를 바 없는 제국주의 국가로 비치게 하였다. 소련을 제국주의 국가로 바라보았을 때 단순히 소련의 위성국뿐만 아니라 소련의 구성국도 사실상 러시아의 식민지로 바라보는 시선이 존재하였으며 제1세계 국가였던 핀란드조차 소련의 간섭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는 시각이 존재할 정도였다.
실제로 냉전 시대에 소련의 위성국들은 바르샤바 조약 기구, 경제상호원조회의 같은 기구를 중심으로 사회주의 협력이란 명목으로 사실상 소련에 정치적, 경제적으로 종속되어 있었으며 브레즈네프 독트린에 따라 소련의 이익에 반하는 어떠한 정책도 펼칠 수 없었고 단지 외교뿐만 아니라 국내 정책에 있어서조차 소련 공산당의 노선과 반대되는 어떠한 이념적 차이도 용납될 수 없었는데 이는 소련과 동유럽 전체에 걸쳐 사회 전반에 걸쳐 관료주의, 경직성을 심화시켰다. 결국 페레스트로이카, 동유럽 혁명으로 이어지는 대변혁을 겪으면서 현실사회주의 진영의 붕괴를 불러왔다.
이러한 소련의 패권적 모습으로 인하여 냉전 시기 사회주의 국가 중에는 소련과 대립하는 국가들이 생각보다 많았는데 대표적으로 중소결렬이 발생한 중국이 있다. 중국은 문화대혁명 당시 체코슬로바키아의 프라하의 봄을 유혈진압한 것을 이유로 소련을 '소수사회제국주의'라고 부르면서 비난했고 이를 줄여 '소수(苏修, 소련 수정주의의 줄임말)'라고 불렀다.[4][5] 중국을 필두로 알바니아, 루마니아, 캄보디아, 소말리아 같은 일부 국가들은 소련과 결렬하면서 소련에 반대하거나 비판을 가했고 심지어 무력 충돌이 일어나기도 했다. 유고슬라비아는 스탈린과 티토가 대립한 후 오히려 서방과 친하게 지냈다가 스탈린이 죽고 나서야 소련과의 관계가 개선되었지만 여전히 제3세계에 더 가까웠다. 북한은 중국과 소련의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비동맹으로 남았다.
소비에트 제국이라는 단어는 오늘날 사회주의 진영에 있어 사상을 나타내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흔히 공산주의라고 불리는 마르크스-레닌주의 계열 사회주의자들과 소뽕들에게 있어 소비에트 제국은 역린과 같은 단어다. 레닌주의에서는 제국주의를 자본주의의 극에 다다른 형태라고 보기 때문에 공산주의 국가인 소련이 제국주의 국가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카를 카우츠키 같은 초기 마르크스주의자들이나 사민주의자들, 유럽공산주의자들 입장에서 소련은 혁명의 배반자, 심하면 붉은 파시스트로도 비난받는다. 이들 입장에서 소련은 러시아 혁명 과정에서 한때 혁명 동지였던 나로드니키, 온건파 사회주의자들을 숙청하고 제거했고 1956년 헝가리 혁명, 프라하의 봄과 같이 같은 사회주의 진영이라도 자국의 이익에 반한다는 이유만으로 군대를 보내 침공하는 횡포를 일삼은 패권주의 독재국가였으며 이러한 사람들은 마르크스-레닌주의 계열 사회주의자를 탱키(Tankie)로 부르기도 한다.[6]
오늘날에도 폴란드, 체코, 헝가리 등을 비롯한 동유럽의 대부분의 구 공산권 국가들은 공산정권 붕괴 후 공산주의와 낫과 망치 등의 상징물을 강력하게 금지하는 등 소련에 대해 거의 노이로제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고 있으며 심지어 과거 소련의 구성국이었던 발트 3국 등도 마찬가지다.[7]
3. 식민제국으로서 소련
소비에트 제국이라는 용어와 같은 비판적 맥락에서 소련을 식민제국이라 칭하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소련-러시아의 정치적 영향력[8]에서 탈피하려는 움직임을 탈식민화라고 표현하기도 한다.[9][10]4. 같이 보기
[1] 보통 1. 황제가 다스리는 국가, 2. 여러 민족이 사는 국가, 3. 식민주의~패권주의적 국가의 의미로 사용되고 당연히 소비에트 제국이라는 단어는 2, 3의 의미를 가진다.[2] # ##[3] 러시아사에 대한 전통주의적 견해의 창시자격인 인물이며, CIA에서 소련 분석관으로 일하기도 했다.[4] 문혁 당시의 선전물 중 대다수에 '타도 미제'나 '타도 제국주의'와 더불어 '타도 소수'가 항상 따라다녔다. 당시 중국과 소련은 같은 사회주의였지만 엘리트주의에 가까운 소련에 비해 반엘리트주의를 표방하는 마오주의를 내세운 당시 중국과는 상극일 수밖에 없었다.[5] 사실 중국은 소련에게 개길 여지가 많았다. 국토도 소련보다는 좁아도 세계 5손가락 안에 들어갈 만큼 넓었고 인구도 소련+나머지 공산국가를 합친 것보다 많은 데다 핵개발에도 성공해 소련이 무력으로 굴복시키기 힘들었다. 게다가 대체로 소련에 의해 세워진 동구권 공산정권에 비해 중국 공산정권의 수립에 기여한 것은 대체로 중국공산당이었기 때문에 나름대로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6] 1956년 헝가리 혁명을 전차로 진압했다는 의미다.[7] 한편으로 이러한 일 때문에 유럽의 반러 감정은 서유럽보다 동유럽에서 더 강하다.[8] 때때로 문화적 측면에도 사용되기 한다.[9] (출처) Promoting the Peaceful Decolonization of the Soviet Union (영어) (소비에트 연방의 평화로운 탈식민화를 장려하면서), 1990년 7월 12일, Douglas Seay, The Herritage Foundation.[10] (출처) Russia's Crimes of Colonialism (영어) (러시아의 식민주의 범죄들), 2022년 8월 9일, Casey Michel, Wall Street Journ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