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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스탄의 전 대통령에 대한 내용은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문서 참고하십시오.아스타나 관련 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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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밀도 | 958명/km²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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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사이트 | 홈페이지 |
1. 개요
카자흐스탄 수도로 제2의 도시.
카자흐스탄의 독재자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의 퇴임 후 '누르술탄'이라고 개명되었다가 2022년 카자흐스탄 시위의 여파로 누르술탄이 공직에서 완전히 물러나 권력을 완전히 잃어버리면서 다시 '아스타나'로 환원되었다.
원래 카자흐스탄 수도는 남동부에 위치한 최대 도시 알마티였으나 안보 문제와 알마티의 치우쳐진 위치 등의 이유로 1998년 국토 중북부의 아스타나로 천도했다.[2] 다만 아직은 유령도시라는 비판도 받는다.
2. 역사
1824년 이전에는 그저 들판에 불과했을 뿐이었지만 러시아 제국이 카자흐스탄 일대를 러시아 제국령으로 편입하면서 카자흐 지배의 중심지인 '아크몰린스크'가 되었고 소련 시절에는 "첼리노그라드"로 다시 개칭되었으며[3] 알마티만큼은 아니더라도 꽤나 발전된 도시에 속했다. 니키타 흐루쇼프 시절 카자흐스탄 일대를 대규모로 개간하는 작업에 들어서면서[4] 농업 연구소들이 속속 들어섰다. 당연히 이 시기의 아스타나는 러시아인들이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풍경도 전형적인 소련 도시의 모습을 띄고 있었다. 소련 붕괴 후 카자흐스탄이라는 별개의 나라로 독립하면서 '아크몰라'라는 이름으로 변경했다.1998년 카자흐스탄이 수도를 이곳으로 천도하면서 이곳이 카자흐스탄의 수도가 되었다. 인구도 급속히 늘어나면서 시가지도 대대적으로 확장했고 소련 시절 아파트 때려박기로 칙칙했던 스카이라인도 2000년대 카자흐스탄의 호황과 함께 급속히 화려해졌다.
수도로 지정된 후 인구는 빠른 속도로 늘어 천도 당시 30만 명이 채 되지 않던 인구가 20년만에 100만 명을 넘었다. 하지만 독재자인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가 마음대로 천도하고 건설하도록 지시했고[5] 경제적으로 취약한 카자흐스탄이 자원을 바탕으로 천도하고 건설한 도시라 속 빈 강정이란 평이 자자하다. 거리 곳곳에 거대한 상징물과 화려한 건물들을 전세계 유명 건축가들을 공모해 건설했지만 서둘러 겉보기에 좋도록 하는 데에만 힘을 쓴 탓에 내실은 외견에 미치지 못한다.
아직 소련의 일부였던 1989년에는 도시 인구의 54.1%가 러시아인으로, 카자흐인은 17.7%밖에 안 되고 러시아인 및 우크라이나인, 독일인 등이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했다. 1990년대 소련 붕괴 후 러시아인 등 유럽인들이 빠져나간 대신 카자흐인이 급속도로 유입되어 2018년 기준으로 인구의 78.2%가 카자흐인으로 러시아계 카자흐스탄인은 인구의 13.4%에 불과하다.
3. 명칭
시대별 명칭 변경은 다음과 같다.- 아크몰린스크(Акмолинск): ~1961
- 첼리노그라드(Целиноград): 1961~1992
- 아크몰라(Ақмола): 1992~1998
아크몰린스크를 현지화한 것. 현재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행정구역의 이름(아크몰라 주)이기도 하다. - 아스타나(Астана): 1998~2019
- 누르술탄(Нұр-Сұлтан): 2019~2022
- 아스타나(Астана): 2022~
'아스타나'는 카자흐어로 '수도'라는 뜻이다. 한국으로 치면 '서울' 정도 이름인 셈.
2008년 여당 누르 오탄이 전 의석을 장악했던 카자흐스탄 의회는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의 이름을 따 도시 이름을 '누르술탄'으로 개칭할 것을 제안했으나 나자르바예프가 이를 거부했다. 11년 뒤인 2019년 3월 20일에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가 대통령직을 사임한 뒤 대통령 권한대행에 취임한 토카예프가 다시 한 번 이를 제안했고 이것이 의회에서 가결되면서 2019년 3월 23일 도시명이 아스타나에서 '누르술탄'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2022년 카자흐스탄 시위를 계기로 나자르바예프의 국정 영향력이 크게 줄어들면서 생존한 전 대통령 이름을 붙이는 건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2022년 9월 2일 카자흐스탄 하원은 누르술탄의 이름을 다시 아스타나로 환원하는 데 동의했고# 2022년 9월 17일 토카예프 대통령이 관련 법안에 서명하면서 '누르술탄'은 다시 '아스타나'로 환원되었다.
의원들은 성명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직 생존해있는 인물의 이름을 따서 도시 이름을 지은 것은 잘못이었다고 생각하고, 게다가 인민들은 이 이름을 납득하지조차 않았습니다. 따라서 아스타나라는 옛 이름으로 바꾸는 것이 역사적으로도 맞을 것입니다.
아스타나는 다름 아닌 초대 대통령이 제안한 것입니다. 이 결정은 우리의 초대 대통령이 국가의 주요 도시에 형성 및 발전에 이바지한 점을 고려하고 시민들의 요구와 기대에도 부응할 것입니다.
아스타나는 다름 아닌 초대 대통령이 제안한 것입니다. 이 결정은 우리의 초대 대통령이 국가의 주요 도시에 형성 및 발전에 이바지한 점을 고려하고 시민들의 요구와 기대에도 부응할 것입니다.
4. 기후
아스타나는 쾨펜의 기후 구분 기준, 냉대 습윤 기후 (Dfb)에 해당한다.전 세계 국가들의 수도 중에서 몽골의 울란바토르와 캐나다의 오타와 등과 더불어 매우 춥고 연교차가 큰 수도이다. 평균기온으로는 울란바토르에게 밀리지만 그래도 세계에서 추운 수도하면 콩라인은 타는 수준이다. 일교차나 연교차가 심하게 큰 지역이라 역대 최저 기온은 -51.6℃로 -44℃인 울란바토르보다도 낮다. 1월 평균 기온은 -15℃ 내외이며 최난월의 평균기온은 21도 언저리다.[6] 그래서 노르웨이 오슬로처럼 수도에 동계 스포츠 대회를 유치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이다. 사실 이 지역은 카자흐스탄에서도 매우 추운 지역이다. 반대로 여름에 가장 더울 때는 한낮에 41.6℃를 찍기도 했다.[7] 하지만 저건 극단적인 기록이고 쾨펜의 기후 구분상으로는 'Dfb'이며 밤에는 20℃ 이하로 떨어지는 일이 잦아 열대야는 거의 없다고 봐도 좋다.(아스타나의 기후 데이터)
실제로 이미 2011년에 동계 아시안 게임인 2011 아스타나·알마티 동계 아시안 게임을 개최한 적이 있는데 이는 카자흐스탄에서 처음 개최한 동계 스포츠 대회라고 한다.
5. 교통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국제공항이 있고에어 아스타나의 직항을 통해 이 도시로 올 수 있다.2025년 아스타나 경전철이 개통될 예정이다.
6. 관광
- 베이테렉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920px-Central_Downtown_Astana_2.jpg
Báıterek[8]
이 도시의 랜드마크로 입장료를 내고 타워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다. 최상층 전망대에는 초대 대통령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의 손도장(?)이 있다.
- 아코르다
Aqorda
대통령궁. 당연하지만 일반 관광객들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사실 가까이 가도 크게 볼 건 없다.
- 한 샤트르
Han Shatyr
2010년 7월 6일에 오픈된 아스타나 최고 규모의 백화점이다. 여러가지 쇼핑몰과 푸드코트가 있으며 최상층에는 수영장도 있고 영화관, 각종 실내 놀이기구도 마련되어 있다. - 누르 아스타나 사원
Nur Astana
이슬람 사원으로 전체적으로 하얀 건물에 돔만 금도금이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한 샤트르와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다.
- 하즈렛 술탄 사원
아스타나뿐만이 아니라 카자흐스탄에서 가장 큰 사원이다. 중앙아시아에서 2번째로 큰 사원이기도 하다. 주요 관광지에서 상대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다. 평일에는 5천명, 주말에는 최대 1만 명까지 동시 수용할 수 있다. 면적은 11헥타르다.
하즈렛 술탄을 제외하고 모든 관광지들이 田자 안에 들어간다. 관광지마다 거리도 자동차로 5~10분 정도 걸린다. 바이쩨렉이 田의 중간에 있다고 치면 양 옆에 아코르다와 누르 아스타나가 있고 하단 중간에 한 샤트르가 있다. 길게 잡아도 3~4시간이면 주요 시내 관광지를 다 돌기 때문에 한 샤트르를 마지막으로 가는 것이 좋다.
7. 행정 구역
아스타나의 행정구역은 4개 구(аудан)로 이루어져 있다. 1998년 서쪽의 사르아르카 구와 동쪽의 알마티 구가 먼저 분구되었고 2008년 예실 구가, 2018년 바이코누르 구가 신설되었다. 2021년 기준으로 각 구별 인구는 다음과 같다.#
구 | 면적(km²) | 인구(명) | 명/km² | |
바이코누르 구 | Байқоңыр ауданы | 181.3 | 240,121 | 1,325 |
알마티 구 | Алматы ауданы | 154.7 | 303,872 | 1,964 |
사르아르카 구 | Сарыарқа ауданы | 67.75 | 342,152 | 5,050 |
예실 구 | Есіл ауданы | 393.6 | 298,324 | 758 |
아스타나 시 | 797.3 | 1,184,469 | 1,486 |
2020년 기준으로 각 구의 민족 구성은 다음과 같았다.# 소련 붕괴 직전인 1989년만 해도 도시 인구 중 카자흐인의 비율은 18%에 불과했으나 수도로 지정된 후 도시의 급속한 성장과 함께 카자흐인 인구가 매우 크게 증가했는데 구 전체가 신시가지에 위치한 예실 구는 카자흐인의 비율이 90% 이상에 달했다.
구 | 카자흐인 | 러시아인 | 우크라이나인 | 타타르인 | 고려인 |
바이코누르 구 | 76.5% | 14.2% | 1.5% | 1.2% | 0.7% |
사르아르카 구 | 73.3% | 17.0% | 1.7% | 1.4% | 0.6% |
알마티 구 | 80.7% | 11.5% | 1.2% | 1.1% | 0.7% |
예실 구 | 90.1% | 5.3% | 0.5% | 0.7% | 0.6% |
아스타나 시 | 79.8% | 12.3% | 1.3% | 1.1% | 0.6% |
8. 여담
내셔널 지오그래픽 2012년 2월호에서 바로 아스타나를 다뤘는데 겉으론 화려한 건물들이 금이 가고 비가 오면 물이 새고 꽤 막 나가는 상태라고 한다. 당연히 빈부격차의 이면까지 가지고 있으며 문제점이 많아보였다. 그래도 과거 러시아인이 대부분이던 지역이 카자흐인이 대부분인 지역으로 바뀌었고 북부의 러시아인들을 통제하기 보다 편해졌다는 점, 이전의 수도였던 알마티가 키르기스스탄과의 국경에 붙어있는 도시라서 국방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볼 때 정치적으로는 성공한 수도 이전이라고 볼 수 있다.2017년 세계박람회 개최지[9]로 선정되었다.
카자흐스탄이 국가 단위로 후원하는(내셔널 프로젝트)[10] 프로 사이클링 팀의 이름이 이 도시의 이름을 딴 아스타나다. 현재 사이클링 팀 중 가장 높은 등급인 프로투어 등급에 속해 있으며 투르 드 프랑스 우승자인 알베르토 콘타도르(2009)와 빈첸조 니발리(2014)가 아스타나의 져지를 입고 우승했다. 재밌게도 콘타도르와 니발리 모두 3대 그랑 투르라 불리는 투르 드 프랑스와 지로 디탈리아, 부엘타 아 에스파냐를 모두 우승한 경력이 있는 단 두 명의 현역 선수이기도 하다. 카자흐스탄 사이클링의 레전설이고 현역 정치인인 알렉산더 비노쿠로프가 현재 단장 겸 감독(directeur sportif) 겸... 아무튼 사실상의 오너 역할을 하고 있지만 2014년 경부터 현재진행형으로 도핑 파문이 일면서 팀과 팬층이 점차 분열해나가기 시작했고 UCI 측에서 강력한 제재를 가할 예정이라고 전해졌다. 사실 과거에도 도핑으로 해체 후 재창단이라는 극약처방도 받았던 전력도 있고... 카자흐스탄 사이클링을 보는 업계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2023 세계체스연맹 월드 챔피언십의 개최지로 선정되었다.
커맨드 앤 컨커 제너럴에서 GLA의 수도가 아스타나에 있으며 오리지널 GLA 미션 3의 배경이 아스타나다.
[1] Жеңіс Қасымбек[2] 알마티의 위치가 키르기스스탄 끄트머리에 딱 달라붙어 있어 수도로 기능하기 좋은 위치는 아니다. 드넓은 카자흐스탄을 통치하기에는 외곽에 치우쳐 있다.[3] "처녀지의 도시" 정도의 뜻이다. 흐루쇼프의 처녀지 개간 운동과 매우 연관이 깊은 작명이다.[4] 하지만 정작 처녀지 개간 사업 자체는 흐루쇼프 최대의 실패작으로 손꼽히는 사업이다. 그래도 카자흐스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기는 해서 러시아인들의 비율이 크게 늘어나서 한때 러시아인의 비율이 카자흐스탄 인구의 40% 이상에 달했다.[5] 사실 아스타나로 이전했을 당시에는 아직 카자흐스탄 경제가 소련 붕괴의 후유증에서 충분히 회복되기 이전의 일로 수도 이전에 예산을 쓸 만큼 재정이 좋지는 않았다. 그래도 몇 년만에 카자흐스탄이 매년 10% 성장을 구가하면서 수도예산에 쓰였던 예산을 다 해결하고도 남을 정도로 투자자금이 아스타나에 들어왔으니 새옹지마라 하겠다.[6] 기온 분포만 본다면 한반도의 개마고원과 비슷하다.[7] 이 범위 내에 한반도에서 기록된 가장 추운 기온(-47.7℃, 백두산)과 가장 더운 기온(41.0℃, 홍천)이 모두 들어간다. 아스타나는 런던과 위도상으로 같다.[8] 러시아어로는 바이테레크(Байтерек) 타워. 표기법상으로는 바이테레크라고 쓰지만 발음은 바이쩨렉 쪽에 가깝다.[9] '에너지와 미래'를 주제로 한 인정박람회였다.[10] 사실 프로사이클링은 국가 대항이 아닌 팀 대항 경기인데 심심찮게 국가 주도의 팀이 등장하기도 한다. 물론 내셔널 프로젝트라고 해서 그 나라 국적 선수들만 뛰는 건 아니고 그 나라 국적의 간판 선수(과거 아스타나의 알렉산더 비노쿠로프, 팀 스카이의 전현직 에이스들인 브래들리 위긴스나 크리스 프룸 등) 위주로 팀을 구성하거나 타 국적의 에이스를 중심으로 팀을 구성하는 대신 그 도움선수로 자국 유망주들을 대거 발탁하여 자국 사이클링 수준 향상을 노리는 식이다. 사이클링 팬들 사이에서는 논란의 대상인데 지나친 국가주의의 개입, 대체로 영세한 사이클링 산업 형편에 타 팀 대비 거대한 예산규모를 내세운 우수선수 독식 등 문제점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2016년 기준으로는 누르술탄 외에도 러시아 내셔널프로젝트인 카츄샤, 사실상의 영국 내셔널프로젝트인 팀 스카이가 있다. 이 중 카츄샤는 저유가로 인한 러시아의 경기 침체와 약물 파동으로 휘청거리는 중이나 팀 스카이는 여전히 승승장구하는 중. 2016년 투르 드 프랑스 역시 크리스 프룸이 압도적인 차이로 커리어 세 번째 종합 우승을 가져갔다. 그리고 팀 스카이는 한강에서도 많이 만날 수 있지 좋은 의미에서나 나쁜 의미에서나 전설로 남은 랜스 암스트롱의 US 포스탈 팀도 미국의 내셔널 프로젝트였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