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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노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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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 로버트 노직
Robert Nozick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Robert_nozick.jpg
출생 1938년 11월 16일
미국 뉴욕주 뉴욕시 브루클린
사망 2002년 1월 23일 (향년 63세)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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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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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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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령
]]
학력 컬럼비아 대학교 (철학 / A.B.) (1959년)
프린스턴 대학교 (철학 / Ph.D.) (1963년)
옥스퍼드 대학교 (Fulbright Scholar)
지도교수 칼 구스타프 헴펠
분야 정치철학자
종교 무종교 (무신론)

1. 개요2. 생애3. 사상
3.1. 최소국가
3.1.1. 자연상태의 기준3.1.2. 측면제약3.1.3. 보상의 원리
3.2. 소유권리론
3.2.1. 로크 비판3.2.2. 롤스 비판
3.3. 데모크테시스3.4. 유토피아
4. 노직에 대한 비판5. 어록6. 저작물7. 여담

[clearfix]

1. 개요

미국자유지상주의 정치철학자. 개인은 결코 침범받을 수 없는 자유의 권리를 가졌기 때문에, 국가는 공공선이라는 명목으로 개인의 정당한 소유권을 침해해선 안 되며, 국가는 단지 강압ㆍ절도ㆍ사기로부터의 보호, 계약 집행 등등이라는 좁은 기능들에 제한된 최소 국가의 역할만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보통은 경제적 자유주의를 옹호하는 우파 사상가로서만 알려져 있으나, 노직은 '자유지상주의자'답게 개인의 자유를 최우선으로 하기 때문에 동성애자의 권리도 옹호하는 등 좌파적 행위도 지지하므로, 엄밀히 말해 특정 정파에 속하는 인물이라고는 볼 순 없다. 노직 스스로도 자신은 우파도 아니고 좌파도 아니라고 밝힌 바 있다. 단, 여기서 말하는 개인의 자유는 무제한적인 자유가 아니라 '경쟁 체제 내에서의 선택의 자유'를 말하는 것으로, 능력이 없어서 경쟁에서 밀려난 사람이 제일 안 좋은 것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그 경쟁에 반칙이 없었다면 충분히 그런 상황을 용인한다는 입장이다.[1] 능력이 없다고 그 사람을 도와주는 일 자체가, 경쟁의 다른 당사자들에게는 피해가 되므로, 경쟁의 결과를 수정하려는 그 어떠한 공적 시도도 정의롭지 못하다는 것이 노직의 주장이다. 따라서 보호와 사법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가로써 국가가 세금을 걷는 것은 옳은 일이나, 경쟁에서 뒤쳐진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기 위해서 국가가 세금을 걷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이라고 노직은 주장한다.[2]

노직은 여기서 더 나아가, 국적이나 체제 마저도 마치 서비스 업체를 바꾸는 것처럼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에 맡기자고 주장한다. 그러면 개인의 선택을 받지 못하는 체제는 자연스럽게 없어지게 되므로, 공산주의, 민주주의, 무정부주의 등의 국가 체제도 체제의 존립을 위해 서로 경쟁하게 될 것이고, 그 중 가장 좋은 체제들이 살아남을 것이라는게 노직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몇몇 학자들은, 노직의 최소국가는 개인의 '경제적 자유'를 최대한 보장할 때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체제인데, 결국 현실에서는 그런 최소국가는 살아남지 못했으므로, 노직은 '경제적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체제는 결코 이뤄질 수 없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서 역설적으로 자신의 논리를 극단적으로 끌고 간 것이 아니냐는 지적을 하곤 한다.[3]

2. 생애

1938년, 러시아 출신 유태계 이민자의 아들로 미국 뉴욕시 브루클린에서 태어났다. 학창 시절에는 사회주의 계열의 청년단체에 가입해 활동하였고,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있을 때는 산업민주주의 학생연맹 지부를 창설하는 등의 활동을 하기도 하였다. 25세 때인 1963년에는 프린스턴 대학교 대학원에서 칼 헴펠의 지도를 받아 “The Normative Theory of Individual Choice”라는 논문으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특히 대학원 재학 시절에는 논리적이고 날카로운 안목으로 기존의 철학적 관점들을 꿰뚫어 학계의 주목을 받았고, 1969년, 30세 때는 하버드대학교 철학과의 정교수가 되었다. 1971년 존 롤스의 『정의론』이 발표되자 이에 대항하여 1974년 《무정부, 국가, 그리고 유토피아》를 써서 '경제적 자유주의'를 외쳤으며, '평등적 자유주의-경제적 자유주의 논쟁'에서 경제적 자유주의 이론을 대표하는 철학자로 이름을 떨쳤다. 이는 자유지상주의 이론에 토대를 형성하였다.

이후 노직의 '최소정부론'은 수많은 철학자들에게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노직은 비판에 대해 구체적인 반박 논문이나 책을 내지 않았다.[4] 그는 5년 동안만 정치 철학을 했으며, 이후 정치 철학을 떠나 새로운 주제를 연구했다. 《철학적 설명(1981)》, 《합리성의 본질(1993)》, 마지막 저서인 《불변성: 객관적 세계의 구조(2001)》 등에서 그는 인식론, 합리적 선택 이론, 마음 철학, 윤리학 분야에서 중요한 공헌을 했다.

노직은 말년에 극단적 자유지상주의를 단념하고 무제한 상속을 견제하기 위한 몇 가지 계획을 제안하기도 했다.[5] 그는 자신의 정치 이론을 강화하고 자신의 권리 개념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인간 본성과 윤리에 대한 이론을 개발하고 싶었지만 실패했다고 말했다. 인간의 본성을 다루면서 개인적 '일상의 신성함'과 그 의미에 대한 책인, 《성찰된 삶 (1989)》에서의 그는 실망스럽게도 깊이가 부족하고 다소 감상적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그 책에 언급된 많은 원칙들을 실천에 옮겼다. 죽기 7년 전, 자신에게 위암으로 6개월의 삶이 남았다고 들었을 때 그는 씩씩한 저항으로 대응했고, 자신이 소유한 육체를 엄청난 노력으로 밀어붙여 예상보다 훨씬 더 오래 장수하였다.[6] 2002년 1월 23일, 위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3. 사상

3.1. 최소국가

자신이 제시하는 최소국가의 발생에 대해 노직은 《무정부, 국가, 그리고 유토피아》에서 하이에크(F. A. Hayek) 등의 이론을 바탕으로 하여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설명방식(invisible-hand explanation)을 따른다.[7]

《무정부, 국가, 그리고 유토피아》의 1부는 '자연상태론 또는 의도적 노력없이 어떻게 국가가 성립될 수 있는가에 관한 이론' 이라는 제목으로 되어있다.[8]

노직이 애덤 스미스를 쫒아 명명한 보이지 않는 손의 설명 방법이란 누군가의 의도된 계획으로 보이는 것이 실은 누구의 의도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설명하는 방법이다.[9]

노직의 최소국가론은 이 '보이지 않는 손' 에 의한 설명이라는 설명 방법을 통해 구체적으로 전개된다. 이러한 설명방법에 근거해서 노직은 최소국가가 자연법 전통의 의도된 계약에 의해서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아닌 일련의 사건 전개과정에서 파생되는 것으로 서술한다.(장동진, 2000) [10]

노직의 이론은 '사회계약이 존재하지 않는 자연상태 이론'(Willam, 1981, 29)이라고도 이야기된다. 노직의 이론에서는 특정 국가를 의도하려고 다 같이 모여서 사회계약을 하거나 하지 않는다.(무지의 베일에서 의도적으로 국가를 만드는 롤즈와 비교해보자.) 그의 이론 속에서도 개인과 보호협회 사이에는 계약이 체결되고 있다. 노직의 자연상태에서 개인들은 보호협회를 구성하고 이러한 계약은 최소국가의 발생으로 이어지게된다.(장동진, 2000)[11]
노직은 국가가 누군가에 의해 의도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일련의 과정을 거쳐 아주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과정의 산물이라고 보고 있다. 자연스런 과정을 산물로서 최소국가는 인간이 공동체를 형성하고 자연상태에서 삶을 영위하는 가운데 저절로 이르게 되는 단계이다. 인간의 삶을 영위하는 동안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최소국가에서 삶을 영위하게 된다.
노직의 최소국가론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설명(invisibale-hand explanation)이라는 독특한 설명방법을 통해 구체적으로 전개된다. 노직은 보이지 않은 손에 의한 설명방법을 통하여 자연상태에서 최소국가가 성립되기까지의 발전과정을 그리고 있다.
-장동진, 김만권.(2000).노직의 자유지상주의.정치사상연구,199.-
이러한 노직의 설명 방법에서 나타나는 주요 특징은 미시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미시적 차원의 개인적 합리적 선택의 결과가 의도하지 않은 거시적 결과 즉 최소국가를 형성하게 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노직의 최소국가론은 개인들이 미시적 행위를 할 때 거시적 구조를 의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즉 노직의 최소국가론이 계약론적 전통의 연장선상에 있지만 국가 그 자체를 계약의 목표와 대상으로 설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즉 그의 설명구조는 미시적 행위의 결과가 의도하지 않은 거시적 결과 또는 구조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장동진. (1995). 노직의 정치이론: 최소국가론. 사회과학논집, 25,-

이러한 노직의 자연상태에서 최소국가에 이르는 설명 방법은 하나의 가설적 역사로서 잠재적 설명방법(potential explanation)이라고 부르며 전적으로 가설적인 과정이다. 이것은 다른 역사적 방법이 의존하는 귀납적 방식과 같은 것과는 다르다. 노직에 의하면 상상적 과정으로서 하나의 가능한 설명형태의 제시는, 설사 이것이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관련 사안에 대하여 중요한 설명적 기능을 제공해 줄 수 있다.[12]

노직의 최소국가의 발생 과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개인들이 자연상태에 살고 있다.
2, 개인들이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보호협회들을 구성한다.
3. 보호협회들은 지역적으로 나누어지게 되고 각지역에서 지배적인 보호협회를 형성하게 되며, 극소국가(ultraminimal state)를 형성한다.(극소국가는 자신들에 가담하고 비용을 부담하는 자만이 보호를 받으며 그렇지 않는 자는 보호를 받지 못한다.)[13]
4. 극소국가는 독립적 영역에 남아있는 독립인들에게 보상을 제공하고 흡수하여 최소국가를 형성한다.

노직은 최소국가의 발생과 관련하여 노동의 분화, 시장의 압력, 규모의 경제 등의 요인으로 설명하고 있다.[14] 타인으로부터의 보호의 가치가 상대적이라는 점을 들어 보호협회 사이에는 최상의 보호협회가 되기 위한 경쟁과 파산의 소용돌이에 빠져들며 이를 토대로 지배적인 보호협회가 형성되는 과정을 설명한다. [15]

여기서 자연상태는 홉스의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상태보다는 로크의 자연상태와 유사하다. 이는 자연상태에서 최선의 상황에 있다 해도 국가가 발생한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다.[16]

자연상태에서 권리를 가진 개인들은 처음에는 상호보호를 위해 협동하여 상호보호협회를 설립한다.[17]

그러나 좀 더 효율적인 보호 기능을 위해 노동의 분배와 교환을 토대로 보호협회는 보호 업무를 대행하는 상업적 보호협회로 변화한다. 이제 사람들은 보호 서비스를 판매하는 사업처에 상품을 구입하는 방식으로 보호를 받는다.[18]

상업적 보호협회가 일정지역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형성하면서 지배적 보호협회로 성장한다. 지배적 보호협회는 해당 지역 내의 독점적인 지위를 가지게 되고 극소국가가 되어 간다.[19]

그러나 극소국가는 베버(M. Weber)적인 국가 자격에서 영토내의 강제력 독점과 영토내에 있는 모든 구성원에게 보호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중 후자를 달성하지 못하였기에 아직 국가에 등치 될 수 없다. 이제 극소국가는 '보상의 원리'(the principcle of compensation)라는 도덕적 원리에 의해 지역 내의 독립인들에게도 보호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 요구된다. 노직은 보상의 원리를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타인을 해할 단지 개연적 가능성만을 지닌 행위를 금지 당함으로써 불리한 처지에 처한 그런 사람들은, 타인들에게 안전을 마련해주기 위해 자신들이 떠맡겨진 그 불리한 사항들에 대한 보상을 받아야만 한다.
-로버트 노직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중에서-[20]
노직에 의하면 "간질병 환자의 운전금지와 같은 행위의 금지로 인한 불이익은 보상원리에 의해 보상받아야 한다."[21]

마찬가지로 극소국가의 영역 내의 개인들 중 국가와 관계를 맺지 않은 독립인들은 사실상 사적인 정의 절차를 통해 자신들의 권리를 방어하거나 할 수 없다. 이 금지 행위는 결과적으로 독립인들에게 불리한 점을 초래하고, 따라서 극소국가는 이 불리한 점에 대해 독립인에게 보상해 줄 것이 도덕적으로 요구된다. 그 방법은 지역 내의 모든 독립인들에게도 보호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22]

극소국가는 영역 내에 남아 있는 독립인들에게 보상을 제공하고 흡수하여 자신의 관할 내에 있는 독립인들에게 보호를 제공하게 되면서 지역내 모든 사람들에 대한 보호 제공이라는 요건을 충족하여 최소국가가 된다.[23]

이렇게 보이지 않는 손의 결과로 '최소국가' 가 발생된다. 노직에 의하면 최소국가는 자연적으로 형성되는 최선의 정의로운 질서이다. 그의 이론은 시간에 구애 받지 않고 원초적 상태에서 계약을 맺는 롤스와 다르게 역사적인 방식으로 비교된다.

3.1.1. 자연상태의 기준

노직에 의하면 정치철학의 근본문제는 대체 국가가 있어야 하느냐는 것이다.[24] 그에 의하면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선 무정부적 상황(자연상태)에 대해 조사해 보아야한다.[25]

우선, 무국가적 상황이 (마치 홉스의 자연상태 처럼) 극히 공포스럽다면, 그것은 무정부상태를 주저할 이유가 될지도 모른다.[26] 그러나 그런 공포스러운 기술들은 대개 설득력이 없다. 여기서 게임이론의 용어를 빌려와 설명을 하는데, "최소극대"의 기준("minimax" criterion)은 게임이론에서 최악의 결과를 기대하고, 그 최악의 결과들 중에서 그대로 최선의 결과를 가져오는 전략을 선택하는 원리이다.[27]

홉스적 상황에서 최소극대 기준에 무국가적 상황을 맞출 경우 미래의 것들을 포함한 가장 최악의 국가와 가장 최악의 자연상태를 비교해야 하는데, 최악의 국가상태보다 최악의 자연상태가 더 나은 것으로 생각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무정부주의자들은 분명 최악의 국가상태보다 최악의 자연상태가 낫다고 주장할 것이다.[28]

"최대극대"의 기준("maximax" criterion)은 최선의 결과를 기대하고 그 중에서 최선을 택하는 원리이다. 그에 의하면, 이 경솔한 낙관주의도 설득력이 없을 것이다. 낮은 확률로 예상되는 유용성 극대화에 기초하기 때문이다..[29]

그래서 노직은 이렇게 주장한다. 현실적으로 바랄 수 있는 최선의 무정부 상태에서도 도덕적으로 허용될 수 없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국가가 나타날 수 있다면, 현실을 개선하고 그 최선의 상태보다도 낫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면, 그것은 국가 존재를 위한 이론적 근거를 제공할 것이다.[30]
만약 국가 상태가 심지어 이 무정부 상태로서는 최선의 상황, 현실적으로 희망할 수 있는 최고의 상태, 또는 도덕적으로 허용될 수 없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생겨날 바, 또는 생겨난다면 현실의 개선일 바 그 최고의 상태보다도 낫다는 점을 보일 수 있다면, 이는 국가의 존재를 위한 이론적 근거를 제공할 것이다. 즉 이는 국가를 정당화 하리라.
-로버트 노직,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중에서-.[31]
이에 노직은 로크와 자신의 자연상태에 차이가 있지만, 로크의 자연상태와 비슷한 상황에서 출발하여 자연상태에서 국가의 출현과정을 설명하고자 한다. (노직의 자연상태에는 로크의 신에 근거한 자연법이 없다.)[32]

3.1.2. 측면제약

노직에 따르면 권리를 보호하는 문제를 결과적 목표로 설정하였을 경우에 일어날 수 있는 문제가 있는데, 바로 '권리 공리주의'(utilitarianism of rights)와 같은 것이라고 한다.만약에 사회내에서의 권리침해를 최소화 하는 결과를 목표로 한다면, 총체적 권리침해의 축소를 위해 누군가의 권리에(대부분 소수의 권리에) 위배를 요구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33]

이것은 권리의 불가침성을 위반하게 되는 것으로 여기서 노직은 도덕적 목표지항으로서 권리보다 도덕적 제약의 방식으로 권리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있다.[34]

'제약 C를 위반하지 말라' 라로 대표되는 노직의 측면제약이론(Side-constraint theory)이란. 타인의 권리가 한 행위자의 행위에 제약이 된다는 것이며, 목적을 위해 권리를 침해하지 말라는 이 도덕적 제약을 위반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다. 이에 비해 권리 위배를 최소화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입장은 사회의 권리침해를 줄이기 위하여 오히려 권리위반를 허용하는 결과를 가져 올 수 있다.[35]

측면제약사항은 권리가 실현되어야 할 결과적 상태 또는 행위의 목표 원리로서 도입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 앞의 '측면제약(side constraint)'으로서 개인이 정당하게 할 수 있는 범위를 제약 하는 방식으로 이해되는 것이다.

노직에 의하면 이러한 측면제약의 사항은 인간은 목적이지 수단이 아니라는 칸트의 원리를 반영하는 것이다.[36]

작중에서 노직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설명 방법에 근거하여 자연상태에서 최소국가가 자연스럽게 발생되는 과정을 기술하면서 이 측면제약사항이 위배되지 않는 것을 주 목표로 삼으며 논증을 시도한다.[37]

3.1.3. 보상의 원리

노직에 의하면 타인에게 위험을 줄 수 있는 한 위험한 행위가 아직 아무에게도 피해를 입히지 않았지만, 타인에게 전가 할 너무 큰 비용의 부담이 있거나 너무 위험 높다는 이유에서 금지하는 것은 개인들의 행동할 자유를 제한 하는 것이다. 가령 간질병 환자가 자동차를 운전하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것은 간질병 환자의 자유를 제한한다.[38]

노직에 의하면 이때 자신들에 대한 위험의 감소로 해서 이익을 본 사람들은 제약 받은 사람들의 불이익에 대해 보상해야 한다.[39]
'타인을 해할 단지 개연적 가능성만을 지닌 행위를 금지 당함으로써 불리한 처지에 처한 그런 사람들은, 타인들에게 안전을 마련해주기 위해 자신들이 떠맡겨진 그 불리한 사항들에 대한 보상을 받아야만 한다.
-로버트 노직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중에서- [40]

3.2. 소유권리론

"그들이 선택함에 따라 각자로부터, 그들이 선택됨에 따라 각자에게."

한 줄로 요약하자면 '정당하다면 가진 것을 뺏어갈 수 없다.'라고 할 수 있다. 내껀 내꺼 비슷한 시기의 다른 철학자들이 공리주의 등으로 이어진 흐름을 따라 새로운 분배 방식을 연구할 때[41] 노직은 이 분배 시도 자체를 반박했다.

첫 번째 반박 근거는 분배를 지향하는 철학들이 역사적인 흐름을 전혀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리주의를 예로 들면, 공리주의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42]을 기초로 '현재의' 소유를 분배한다. 하지만 노직은 이렇게 현재만 바라보는 시선은 현재의 소득이 정당하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이것이 어떻게 취득되고 이전되었는가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따라서 노직은 비역사적 원리가 아닌 역사적 원리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주의해야 할 점은 이것이 매킨타이어 등 공동체주의자들의 그것과는 다른 주장이라는 것이다. 둘 모두 '역사적 원리'를 내세우지만, 노직은 어디까지든 '소유의 역사'적 원리를 적용하자는 것이고 가치관, 도덕, 정체성 등 '공동체의 복합적 역사성'을 주창하는 매킨타이어와는 다르다.

두 번째 반박 근거는 정형화에 대한 반론이다. 원문에는 패턴이라고 써있다. 정형화는 특정 기준으로 일괄적으로 분배하는, 즉 특정 기준으로 정형화되어 있는 형태를 말한다. 능력에 따라 분배하는 능력주의나 최대 행복에 따라 분배하는 공리주의가 그 예시이다. 노직은 이에 대해 첫째로 실제 생활에서 우리가 행하는 이전들은(친구에게 기분으로 밥을 사준다거나, 구세군에 기부하는 등) 특정 기준으로 정의될 수 없다고 지적한다. 둘째로 노직은 하이에크의 주장을 인용해 우리의 행동은 도덕같은 기준이 아니라 각자 생각하는 가치에 따라 정당화된다고 주장한다. 셋째로 노직은 센의 논증을 이용해 [43] 어떤 정형화도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음을 지적한다. 마지막으로 아무리 정형화를 한들 자유시장에서는 그 돈을 각자 마음대로 쓰기 때문에 정형화는 무의미해진다고 지적한다.

이렇게 두 축으로 분배에 기초한 철학들의 문제를 지적한 노직은 이들을 대체한 자신의 철학으로 취득, 이전, 교정의 3원리(원칙)을 제시한다. 취득의 원리는 소득이 정당하다면 그 소유는 정당하다, 이전의 원리는 이전의 과정이 정당하다면 그 소유는 정당하다, 교정의 원리는 앞의 두 원리에 부합하지 않는 경우에는 국가가 나서서 부정의를 해결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이 3원리를 통해 노직은 역사적 원리에 부합하는 자신의 철학을 제시하고자 한다. 따라서 노직은 소유권리에 대해 다음과 같은 세가지 귀납적 정의를 제시한다.
세계가 전적으로 정의롭다면, 다음의 귀납적 정의가 소유물에서의 정의의 주제를 모두 커버하리라.

1. 취득에서의 정의의 원리에 따라 소유물을 취득한 자는 그 소유물에 대한 소유권리가 있다.
2. 이전에서의 정의의 원리에 따라 한 소유물을, 이 소유물에 대한 소유권리가 있는 자로부터 취득한 자는 그 소유물에 대한 소유 권리가 있다.
3. 어느 누구도 1.과 2.의 (반복적) 적용에 의하지 않고서는 그 소유물에 대한 소유 권리가 없다.
--로버트 노직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중에서- [44]

하지만 여기서 이전의 원리와 교정의 원리에 대해 체계적인 설명은 존재하지 않는다.[45] 대신 취득의 원리에 대해서는 존 로크의 주장을 사용한다. 로크는 '다른 사람의 취득을 방해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이 노동으로 얻은 것은 그 사람의 것'이라는 내용의 주장을 했다. 이는 당시 왕의 탈취에 대한 비판으로 제시된 것인데, 노직은 이것이 오늘날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지적하며 로크의 주장을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이 노동을 통해 무언가를 개선시킨 그것은 그 사람의 소유이다.'로 수정하고 이를 취득의 원리의 근거로 제시한다.

이상이 그의 저서 《Anarchy, State, and Utopia (무정부, 국가, 그리고 유토피아)》[46]의 내용이며, 내용의 함의는 세금을 최소한으로 걷는 무정부 상태의 국가야말로 유토피아라고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즉, 개인의 경제적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 국가는 최소한의 역할(사회 질서 유지)만 해야 된다는 것이 핵심 주장이다.

3.2.1. 로크 비판

노직은 정의의 원리에서 '취득' 이 어떻게 성립될 수 있을지 상세히 논하지는 않는다. 노직은 이것은 간단하지 않은 꽤나 '복잡한 문제'라고 표현하는데, 노직이 로크의 이론을 아주 독특하고 위트있는 방식으로 비판하고 검토하는 과정들 속에서 그의 생각들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소유한 바를 내가 소유하지 않은 바와 섞음이, 왜 내가 소유하지 않은 바의 취득이라기 보다 내가 소유한 바의 상실이 아닌가? 내가 한 깡통의 토마토 쥬스를 소유하고 있어 이를 바다에 부어 그 입자들(내가 추적할 수 있도록 방사전이 쬐어진)이 바다 전체에 골고루 퍼지게 한다면, 나는 이 행위를 통해 바다를 소유하게 되는가? 아니면 바보 같이 나의 토마토 쥬스를 낭비한 것일까?
-로버트 노직,《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중에서-
이것에 관해 그대로 로크가 인간의 노동에 제사하는 견해에는 좀 더 특별한 무엇인가가 스스로 열심히 일을 해서 '가치'를 창출한다는 점도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할 수 있다. 로크도 실제로 이러한 점에 호소하여 이론을 전개하는 듯 하는데, 여기에 대하여 노직은
아마도 로크의 아이디어는, 그게 아니라, 무엇에 노동을 가함이 그 무엇을 개선시키며 이를 보다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든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자신이 그의 가치를 창출한 바의 것은 누구나 그것을 소유할 권리가 있다. (이점을 강화하는 것은 아마도 노동이 즐거운 것은 아니다라는 견해이다.누가 물건들을 힘들지 않게 만들었다면- 『노랑색 잠수함 The Yellow Subma-rine』의 주인공들이 잠수함의 항적을 따라 꽃을 흩뿌리듯이-, 그들은 그것들을 만드는 데 전혀 비용이 들지 않았음으로 그들의 생산물에 대해 보다 미약한 권리만을 소유하는가?) 어떤 것은 노동을 가할 경우 그것이 덜 가치 있는 것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은 눈감아 두자.(가령 그대가 발견한 유목에 핑크빛 애나벨 페인트를 칠한 경우처럼) 왜 소유권리는 한 사람의 노동이 생산해낸 부가가치 added value 에 뿐 아니라 대상 전체에 확장되어야 하는가?
-로버트 노직,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중에서-

노직은 타인을 위해 충분한 양의 동질한 것이 남아 있어야 한다는 로크적 단서를 소유로 인해 타인의 처지를 악화시키지 말아야 한다로 해석한다.[47]
충분한 양 그리고 동등한 질의 것이 남아 있지 않은 상태에서 제일 먼저 사유화하려는 사람 Z 를 생각해보자. 마지막으로 사유화한 사람 Y는 Z를 이전에 Z가 소유했던 바 사물에 행동을 가할 수 있는 자유가 이제는 없는 상태에 남겨 두었으며, 해서 Z의 상황을 악화시켰다. 그리하여 Y의 사유화는 로크의 단서에 따르면 허락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마지막에서 두번째로 사유화한 사람 X는 Y를 보다 악화된 상황에 있게 했다. 왜냐하면 X의 행위는 사유화의 허락을 종식 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Y의 사유화도 허락될 수 없었다.(...)이와 같이 해서 우리는 처음으로 항구적 재산권을 사유화한 사람 A에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로버트 노직,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중에서-[48]
그러면서 엄격한 로크적 단서와 약한 로크적 단서로 구분짓고 '약한 로크적 단서' 를 토대로 논의를 진행해 나간다.[49]
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사유화에 의해 두가지 방식으로 그 처지가 악화 될 수 있다. 첫 번째는 특정의 사유화에 의해 그는 자신의 상황을 개선시킬 기회를 상실함으로서요, 두번째는 그가 이전에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을 (사유화함이 없이) 자유로이 사용할 수 없게 됨으로서이다. 타인의 처지가 악화되어서는 안 된다는 엄격한 요구 조건은 두 번째뿐 아니라, 기회의 감소를 상쇄하는 바가 없으면 첫 번째도 배제할 것이다. 보다 약한 조건은 두번째만 배제할 것이다. 약한 조건이 요구될 경우, 우리는 위는 위의 논변에서 처럼 Z에서 A로 단숨에 거슬러 올라갈 수 없다.왜냐하면 Z는 더이상 사유화할 순 없으나, 이전처럼 그가 사용할 것이 다소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Y의 사유화는 약한 로크적 조건을 위반하지 않는다.
-로버트 노직,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중에서-[50]
노직은 취득에 있어서의 어떤 정당한 이론도 로크적 단서와 비슷한 것을 포함하고 있을 거라 주장한다.[51]

만약 사막에 모든 사람들이 한 우물에 의존해 있다면, 누구도 그것을 사유화 할 수 없다. 소유되지 않았을 때보다 타인들의 처지가 악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그 사람이 우물에 예방조치를 취하고 우물을 잘 관리해서 다른 우물이 말라 버렸을 때 그 우물만 마르지 않았다면, 상황이 다르다. 이것은 그의 소유가 타인의 처지를 (소유하지 않았을 때보다) 악화시키지 않기 때문이다.[52]

3.2.2. 롤스 비판

노직은 롤스의 공정으로서의 정의관과 우연성(행운에 근거한 차이) 배제 논리에 대립각을 세운다.

사회적 협동과 분배 비판
롤즈는 정의에 관한 논의를 "사회를 상호 이익이 되기 위한 협동체" 로 여기면서 시작한다. 롤즈에 의하면, 개인들은 서로 서로에 깊이 의존하고 있으며 사람들은 협력할 때, 새로운 의무들을 할당받는다. 사회 협동은 각자가 스스로의 노력만으로 살 때보다 더 나은 삶을 모두에게 가능하게 해주기 때문이다.[53]

노직은 이에 대해 협동하지 않고 자신들의 노력만으로 살아가는 n명의 개인들이 있다면, 그들은 급료, 보수, 수입 등으로 Si를 받고 협동함으로써 보다 큰 총화 T를 얻을 수 있다고 하자. 이때 롤즈가 관심을 갖는 것은 S가 아니고 T이다.[54]

노직은 롤즈가 주제로 하는 T를 두 가지 방식으로 이해하고 롤즈를 비판한다. 이 문제는 다음과 같이 두 가지 방식으로 이해 될 수 있다.[55]

1) 총합 T를 어떻게 할당해야 할 것인가?
2) 사회적 협동의 이익인 T-S를 어떻게 할당해야 할 것인가?[56]
롤즈에 따르면, 분배적 사회 정의의 문제는 이 협동의 사회이익이 어떻게 분배 또는 할당 되어야 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이문제는 다음의 두 가지 방식으로 이해될 수 있다: 총합 T를 어떻게 할당해야 할 것인가? 또는 사회적 협동에서 기인하는 증가분, 사회적 협동의 이익인 T-S가 어떻게 할당되어야 할 것인가?
-로버트 노직,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중에서-[57]
노직은 롤스가 1) 총합 T가 어떻게 분배돼야 하는 가만을 문제 삼고 있다고 주장한다. 비협동 분배분 Si는 협동적 분배 분 Ti에 비해 몹시 적으므로 무시할 수 있다고도 주장 할 수 있다는 것이다.[58]

노직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기한다. 왜 사회적 협동이 있는 곳에서만 분배적 정의가 문제되고, 사회적 협동이 전혀 없다면, 그 자신들을 자신의 노력에 의해서만 자신의 몫을 차지한다면, 정의의 문제를 필요로 하지 않을까?[59]
10명의 로빈슨 크루소가 있어 서로 다른 섬에서 2년 동안 홀로 일한 연후에 서로의 존재를 발견하고 20년 전에 남겨진 무전기를 통해 서로의 재산 상태에 관해 알게 되었다고 가정할 경우, 한 섬에서 다른 섬으로 물자의 이동이 가능하다면 이들은 서로에 대한 권리권 주장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최소의 재산을 가진 자는 곤핍을 근거로 해서, 또는 자신의 섬은 자연 자원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해서, 또는 자신은 생래적으로 자활력이 가장 약하다는 근거에서 권리 주장을 하지 않을까?
-로버트 노직,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중에서-[60]
비협동적 상황에서 정의의 이론이 존재하지 않는다기 보다는 이는 소유권리론이 적용될 명백한 경우이다. 사회적 협동을 교환, 분업으로 생각한다면 이는 협동적 상황이 한계생산 개념을 토대로 소유권리론과도 양립가능함을 알려준다. 여기서 롤즈는 협동생산의 기여들이 차등원칙을 위해 분리가능하다는 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분배적 정의에 대한 특수한 문제들만을 남기게 된다.[61]

원초적 입장과 종국결과 원리
롤스는 마치 사물들이 하늘에서 '신이 내린 음식'(manna)[62]처럼 떨어져서 저절로 생기는 것처럼 이야기한다.[63] 이는 소유의 과정을 생각하지 않고 종국상태 원리로서 결과에만 의지한 공리주의자들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비판한다.[64]

결국 원초적 입장은 종국결과 원리를 위한 장치라는 것이다.
그러나 롤즈의 원초적 입장에의 참여자들은 처음부터 역사적 원리에 합의할 것 같진 않다. 왜냐하면 누가 무엇을 가질지를 결정하기 위해 무지의 베일 뒤에서 만나며 사람들이 갖는 특별한 소유 권리들에 관해서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들은, 분배되어야 할 것을 마치 하늘에서 떨어진 만나(manna)로 생각할 것이다.
-로버트 노직,『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중에서- [65]

자연적 자산의 문제
롤즈는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은 이 구조하에서 가장 불우한 집단에게 이익이 될 경우에만 허용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차등의 원칙을 주장한다.[66]

롤즈는 기술과 재능을 이들이 속해 있는 사람 자신의 개인적 재산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어느 누구도 자신의 선척적 재능에 대하여 단순히 우연에 의하여 타고나는 것이기 때문에 자연적 자산에 대한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롤즈는 이러한 것들을 공통의 자산으로 여겨야 하며 이를 통해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이익을 누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67]

여기에 노직은 왜 개인의 재능이 소유의 기초가 되어서는 안되는지 질문한다.[68]

그는 사람들이 자신의 성품을 가질 자격이 없다고 할지라도, 어떤 것에 대한 권리를 갖기 위하여 반드시 이것에 대한 자격이 있어야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롤즈와 달리 노직에 의하면 불법적인 것이 아니라면, 사람들은 사용하고 있는 것의 일부를 소유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자격과 별개로 나에게 '있는 것'은 '나의 것'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응분(정당한 것)의 기초가 처음부터 응분의 것일 필요는 없다.[69]
가령 한 개인은 Y(가령, 자신이 그린 그림을 소유할 권리, 『정의의 한 이론』이란 책을 써서 얻는 찬사, 등등)를 버는 과정에서 자신이 이용한 것들(그 자신의 자연적 자산을 포함해서)마저도 그 자신이 노력해서 번 경우 또는 응당 받을 만한 경우에만, 그가 Y를 번 것이라는 주장은 맞지 않는 주장이다. 그가 이용하는 것의 일부를 그는 단지 소유할 수 있다-그 소유가 불법적으로 이루어지지만 않았다면, 응분 desert의 기초 그 자체가 처음부터 응분의 deserved 것일 필요는 없다.
-로버트 노직,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중에서-[70]
개인들이 자연적 자산들이 도덕적 관점에서 볼 때 자의적이건 아니건 여하간에, 그 개인들은 그들에 대한 소유 권리를 지니며, 이로부터 유출되는 것에 대해서도 그러하다.
-로버트 노직,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중에서-[71]

노직은 도덕적 관점에서 자의적이기 때문에 자연적 자산을 응분의 것(또는 정당한 것)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롤즈에 따르면, 이러한 주장은 인간 존재의 정당성 마져도 박탈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비판한다.[72]
도덕적 의의가 있는 어떤 것도 자의적인 것으로부터 유출 될 수 없다면, 어느 특정 개인의 존재도 도덕적 의의를 가질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수없이 많은 정자 중의 어느 것이 난자를 만나느냐는 것은 (우리가 아는 한) 도덕적 관점에서 자의적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계하여 또 다른 , 다소 모호한 논평을, 롤즈 입장의 기본정신에 (그가 표현한 것보다는) 관해 말해야겠다. 존재하는 각인은 한 과정의 산물인데, 이 과정에선 난자와 만나는 정자가 난자와 만나지 못한 수백만의 다른 정자에 비해 보다 응분의 자격을 갖진 않는다. 우리는 그 과정이 롤즈의 기준에 따라 <보다 공정하길>원할 수 있는가? 우리는 우리를 존재게 한 바로 그런 유의 과정을 도덕적으로 비난하는 여타의 원리에도 그러므로 우리 존재 자체의 합법성을 파괴시킬 그 어떤 원리에도 두려움을 느껴야 한다.
-로버트 노직,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중에서-[73]

롤즈의 공리주의 비판에 관한 모순
노직은 롤즈의 차등의 원칙이 사람들의 독자성을 위배하고 있다고 비판한다.[74] 롤즈는 공리주의가 최대다수의 최대이익을 위해 사람들을 서로의 복지를 위한 수단으로 취급하게 한다며 비판한다.[75] 롤즈의 차등의 원칙은 사람들이 최소 수혜자들의 입장을 향상시키지 않는 한 최대 수혜자들이 부가적인 이득을 가지지 못할 것을 요구한다.[76] 그런데 노직에게 이것은 최소수혜자를 위해 최대수혜자를 이용하는 것이다. 즉, 다른 사람을 위해 다른 사람의 복지를 희생하는 것과 같다. 이것은 하위계층들을 위해 상위계층들을 이용하는 방식이다.[77] 그래서 노직은 롤즈가 공리주의자와 마찬가지로 개인의 독립성을 진지하게 여기지 않는다고 비판한다.[78]

롤즈의 정의관과 시기
천부적 자질을 공유자산으로 간주하는 롤즈의 견해에 대해 노직은 롤즈의 정의관이 전적으로 '시기' 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 이닌지 의문을 표한다.[79]

3.3. 데모크테시스

데모크테시스(Demoktesis)는 노직이 제기한 가설적 역사 중 하나이다.

이는 사실상 자유지상주의와 민주주의간의 양립불가능함을 설명하는 사고실험이다. 노직에 의하면 자연상태에서 권리에 비대칭에 도달하는 합법적인 방법은 없다.[80]

만약 최소국가 이상의 국가가 합법적인 절차만을 밟아 도출될 수 있을까? 노직은 <무정부, 국가 유토피아> 9장에서 이러한 가설적 역사를 구성한다.

이 가설적 역사는 더 많은 돈을 원하는 사람들이 '자신을 주식회사화 하여 자신의 일부를 팔아 돈을 모으는 것' 으로 시작한다.[81] 이를 통해 그들은 자신이 어떤 직업을 가질 권리와 같은 것을 분할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을 완전히 노예가 될만큼 팔지는 않지만, 자유교환으로 일부인들 이 타인들을 광범위하게 지배하게 된다.[82]

시간이 지나며, 거의 모든 사람들은 자신들의 권리들을 팔아버리고 각 권리에 대한 한 지분만을 자신들의 것으로 보유하여 원하는 주주총회에 참여한다.[83] 이후, 거대한 통합화된 전체 회의가 일어나며, 결과적으로 각 사람들은 자신을 포함한 다른 모든 사람들에 대한 권리를 한 주식 소유하게 된다.[84] 이제는 오직 모든 사람에 대한 한번의 회의만이 있으며, 각인은 3년마다의 주주총회에 참여하여 한표식 투표하게 된다. 그러나 참가자 수가 너무 많고 토론과 협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기에 결국, 십만표 이상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만이 대주주 총회에 참가할 수 있다는 결정이 내려진다. [85]

이 기괴한 이야기는 역설적이게도 현대 민주주의 국가의 모습에 도달하게 된다. [86]
그들 편에서는 사회이론가들은 동의하기를, 그들의 국민소유주의Demoktesis의 체계, 즉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소유권,이 최고 형태의 사회적 삶이며, 이는 지상으로부터 사라지게 놔두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87]
-로버트 노직,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중에서-[88]
이후 노직은 <노예의 설화> 라는 또 다른 예시를 제시한다.[89]

설화에서 주인이 노예들에게 그대를 제외하고 투표할 권리를 부여한 순간부터 노직은 한 주인 대신 일만 명의 주인을 갖게 된 것이라 비유한다.[90] 이 설화에서 토론회의 상황 처럼, 민주주의 국가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을 설득하려고 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다수결에 따라야만 한다. 노직은 이것이 어디에서 부터 '노예의 설화'이지 않게 하는지 질문한다.[91]

3.4. 유토피아

노직에 의하면 유토피아에 이르는 다양한 이론적 길들이 존재한다. 또 사람은 서로 다른 존재이므로 하나의 유토피아를 기술하려는 시도는 무의미하다. 즉 오직 한 종류의 이상적 공동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유토피아는 유토피아들을 위한 틀이며 유토피아적 사회는 유토피아적 사상의 사회이다.

최선의 국가를 구성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문제는 그것이 과연 누구를 위한 세계인가? 하는 것이다. 결국 각 개인은 자신의 이상에 가장 가까운 공동체를 선택할 것이다. 각자 추구하는 가치는 서로에 대해 모두 다를 것이며 한 사람 이상의 사람을 충족시킬 방도는 없을지도 모른다.

노직은 유토피아를 위한 골격이라는 <무정부, 국가, 그리고 유토피아>의 마지막장에서 이에 대해 대답하고자 한다.

최소국가로 제시되는 노직의 유토피아는 거의 모든 유토피아 사상가들이 받아들일 수 있으며, 다양한 유토피아적 비전과 양립가능하다는 것을 장점으로 서술한다. 노직의 유토피아는 각인들에 의해 자발적인 유토피아 실험이 이루어지는, 유토피아들의 공존을 모색하는 체제이다.

노직은 오직 한 종류의 공동체가 있을 경우보다는 다양한 공동체들이 있을 경우에 개인들에게 일정 범위의 선택지를 제공할 것이며, 자신이 살고자하는 가치관에 가까운 삶에 더 가까이 살아가게 해줄 것이라고 서술한다.[92][93]

노직은 자발적인 유토피아의 실험은 강조하지만 세부적인 계획은 거부한다. 그러한 골격을 제도화하게 된다면 특수한 사람들의 가능한 선택들을 배제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모두는 나름대로 자신이 원하는 유토피아를 추구할 수 있다. 노직에 의하면 자발적인 유토피아적 실험들이 공존할 수 있는 최선의 체제는 최소국가이며 최소국가가 바로 현실에서 사람들의 유토피아적 열망을 가장 잘 실현시킬 수 있는 국가이다.

자발적인 골격에 대한 논의를 통해 노직은 '타인을 방해하지 않는 한, 사람들은 자신이 바라는 대로 행동할 수 있다.'라는 주장을 극단까지 몰고가서, 개인은 대가를 받고 스스로 자발적 노예가 될 수 있다고도 주장한다. 다만 노직이 말하는 '자발적 노예'란, "다시 계약을 맺어 자신을 이로부터 벗어나게 할 수도 있는"[94] 노예를 말하는 것이다.[95] 이에 대해 노직을 비판하는 학자들은 '스스로 다시 벗어날 수 있는 노예'는 진정한 의미에서 노예라고 부를 수 없다고 비판한다.

4. 노직에 대한 비판

찰스 테일러(철학자)는 노직의 자유지상주의를 비판했는데 노직의 학설은 "각 개인은 자기 삶의 방법을 자유롭게 선택하고 그 권리는 전면적으로 인정되어야 한다"라는 주장인데,이를 '사회적 원자론' 규정하고 비판한다. 테일러에 주장에 의하면 사회적 원자론은 옳지 못하다 그 근거는 인간은 '사회적인'동물이며,사회 이전에 개인을 두고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것이 현실을 외면한 잘못된 가정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논쟁의 출발점은 '인간은 사회적'인 것 부터 비롯되어야 한다고 비판한다.

5. 어록

근로 소득에 대한 과세는 강제 노동과 동등한 것이다.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96]
국가에 관한 주된 우리의 결론들은 : 첫째, 강압ㆍ절도ㆍ사기로부터의 보호, 계약 집행, 등등이라는 좁은 기능들에 제한된 최소 국가는 정당화되며 ; 둘째, 그 이상의 포괄적 국가는 특정의 것들을 하도록 강제되지 않을 개인의 권리를 침해할 것이고 ; 셋째, 최소 국가는 옳을 뿐 아니라 영감 고취적이다.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서문 [97]
그들이 선택하는 바에 따라 각자로부터, 그들이 선택된 바에 따라 각자에게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98]

6. 저작물

발행년도 저서명
1974 Anarchy, State, and Utopia
1981 Philosophical Explanations
1989 The Examined Life: Philosophical Meditations
1993 The Nature of Rationality
1997 Socratic Puzzles
2001 Invariances: The Structure of the Objective World

단행권은 총6권이다. 그런데 한국에는 1974년 출판된 《Anarchy, State, and Utopia (무정부, 국가, 그리고 유토피아)》와 1989년 출판된 《The Examined Life: Philosophical Meditations (성찰된 삶: 철학적 명상들)》 2권만이 번역되어 있다. 현재 유통되는 두 번역서 제목의 앞에 것은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이고, 뒤에 것은 《무엇이 가치 있는 삶인가》이다.

단행권으로 출간된 저서 6권 외에 추가로 1976년에 발표한 《아메리카의 자유기업》라는 1차문헌이 하나 더 있다[99].

7. 여담

  • 노직의 사상은 '정부 규제와 세금으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당시 우파들의 격렬한 지지를 받은 것은 사실이나, 노직은 이후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은 우파도 아니고 좌파도 아니며 단지 개인의 자유를 옹호할 뿐이라는 식으로 얘기한다. 개인의 자유를 옹호하는 관점에서 자유시장을 지지하는 것도 맞지만, 마찬가지 이유로 개인의 자유를 옹호하기 때문에 동성애자 권리(gay rights)도 지지하는 것이라는 얘기다.[100]
  • 현 대한민국 고등학교 교육과정중 생활과 윤리, 윤리와 사상 교과서에서 사회정의를 배울때 나오는데, 롤스와 더불어 사회정의를 다룬 강의 하나[101]를 통째로 집어먹는 위엄을 보여준다. 물론 니부어싱어, 로크, 왈처 등 다른 철학자들도 나오기는 하지만 사실상 노직과 롤스를 비교하는 내용이 주로 나온다.
  • 존 롤스보다 17살 연하임에도, 롤스보다 먼저 죽었다. 이투스 생활과 윤리 강사 최적 왈, 롤스와 노직 다 2002년에 죽었지만 노직은 월드컵을 못 보고 죽었고, 롤스는 월드컵을 보고 죽었다.
  • 노직은 대학생 시절에 무신론자였다는 사실#을 밝힌 바 있으며, 51살에 지은 자신의 책 《The Examined Life (성찰된 삶)》의 신과 믿음(God and faith) 챕터에서도,[102] "신자는 아니지만 (...not a believer...)"이라고 말하며 자신이 무신론자임을 밝혔다.
  • 노직은 '타인을 방해하지 않는 한, 사람들은 자신이 바라는 대로 행동할 수 있다.'라는 주장을 극단까지 몰고가서, 개인은 대가를 받고 스스로 자발적 노예가 될 수 있다고도 주장한다.[103]
  • 노직이 말하는 '자발적 교환'은, 자유 경쟁 속에서 서로간의 자발적인 선택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말한다. 어떤 사람이 자유 경쟁 체제는 그것이 좋아서가 아니라 다른 것들이 더 나빠서 그것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몰리기 때문에 그 선택은 진정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고 반대한다면, 그건 옳지 못하다고 노직은 주장한다. 예를 들어, 26명의 남자와 26명의 여자가 있어 이들 각각이 결혼하길 원한다고 가정해 보자. 제일 인기 있는 남자와 제일 인기 있는 여자는 가장 먼저 파트너를 찾을 것이다. 두번째로 인기 있는 남자와 여자는 제일 인기 있는 남자와 여자를 제외한 나머지에서 자신의 파트너를 찾게 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들의 선택이 비자발적인 것이라고 볼 수 없다. 이런 선택지의 축소 과정은 25명의 짝이 만들어지기까지 계속되며, 마지막에 남은 제일 인기 없는 남자와 여자는 서로 결혼하든가 아니면 독신으로 살든가를 선택하게 된다. 그 둘이 독신으로 사는 것을 선택했다고 해서 그들이 자발적인 선택을 하지 못했다고는 볼 수 없다. 즉, 노직에 따르면, 마음에 드는 짝이 없어서 결혼을 못하겠다는 것은 그 자신의 선택일 따름이기에 국가의 탓으로 돌리면 안 된다는 것이다. 국가가 나서서 '인기 없는 사람'의 배우자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자유 경쟁 체제를 부정하는 것이면서도 '인기 있는 사람'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므로 정의롭지 못하다. 마찬가지로 유사한 고려 사항들이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에 적용된다. 노동자와 자본가는 인기 있는 순서대로 서로를 차례대로 선택하고, 제일 능력 없는 노동자는 제일 인기 없는 직업을 선택하든가 아니면 굶어 죽어야 된다고 할 때, 그 노동자가 어떤 선택을 하던지 그 선택은 자발적인 것이라고 노직은 주장한다 노직은 자발적 노예도 인정하기 때문에, 제일 능력 없는 노동자는 제일 인기 없는 직업으로 노예를 선택해야 될런지도 모른다. 노직이 이렇게 주장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한 개인에게 보다 구미에 맞는 대안이 주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구미에 맞지 않는 대안들 가운데서 선택하게 된 그 개인의 선택이 비자발적인 것이라고 볼 순 없기 때문이다.

[1] 이 경쟁은 '내가 맘에 든다'고 다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마음에 든 것이 상대의 마음에도 들었을 때 상호 자발적인 교환으로써 선택이 되는 경쟁이다. 예를 들어, 내가 '좋은 회사'에 취직하고 싶다고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좋은 회사 측에서도 '나'를 마음에 들어해야 상호간에 계약이 성립한다는 것. 따라서 기만, 사기, 절취 등으로 어느 한쪽이 자발적인 교환이 안 될 때, 이 계약은 정의로운 계약이 아니라는 것이다.[2] 자유 경쟁 시장 체제를 옹호한다는 점에서 보통은 '우파'라고 생각되어 지지만, 재분배의 정당성을 주장한 존 롤스 역시 자유 경쟁 시장 체제를 옹호한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자유 경쟁 시장 체제를 옹호한다는 이유만으로 '우파'라고 콕 집어 말할 수는 없다. 노직은 '개인의 자유는 지켜져야 된다'는 논리를 극한으로 몰고 나간다면, 롤스의 자유주의 이론이 이런 식으로 반박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한 것이지, 우파의 입장에 서서 자유 경쟁 시장 체제를 옹호하려는 의도로 책을 저술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뉴욕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도 직접적으로 확인되는 바이다. 무엇보다도 자유 경쟁 시장 체제를 옹호한 점은 70년대 미국 자유주의자들 대다수의 공통된 주장이었으며, 그러한 맥락에서 볼 때 노직을 좌우파 중 한 곳으로 특정해서 말하는 것보다, 그냥 '자유주의자', 또는 '(개인의) 자유를 최우선으로 두려고 했던 자유지상주의자'라고 부르는 것이 옳다.[3] 노직의 '경제적 자유'와 '유토피아론'의 모순에 대해서는, 2017년 성균관대학교 김현욱의 논문 『노직의 소유권리론과 유토피아론의 모순』을 참조.[4] Anarchy, State, and Utopia has generated an enormous secondary literature, much of it critical. Unlike Rawls, however, Nozick did not attempt to defend or revise his political views in published work. #[5] 이 때 자유지상주의자들로부터 '노직이 평등주의로 전향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지만, 노직 자신은 자유지상주의 노선을 포기한 것은 아니라고 변명하기도 했다.[6] In later life, Nozick renounced extreme libertarianism, and even proposed some scheme for checks on unlimited inheritance. He said he had wanted to develop a theory of human nature and ethics to bolt on to his political theory and ground his notion of rights, but had failed. Where he did tackle human nature, the personal, "the holiness of everyday life" and its meaning, in The Examined Life (1989), he was disappointingly schmaltzy. Yet he carried many of the principles mentioned in that book into practice. Told seven years ago that he had six months to live, he responded with high-spirited defiance, and pushed the body he owned to tremendous exertions - and to far greater longevity than anticipated. #[7] 로버트 노직,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남경희 옮김. 문학과지성사. 1997. p.42~44[8] 로버트 노직,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남경희 옮김. 문학과지성사. 1997. p.21[9] 로버트 노직,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남경희 옮김. 문학과지성사. 1997. p.40~41[10] 장동진, 김만권.(2000).노직의 자유지상주의.정치사상연구,3(),.[11] 장동진, 김만권.(2000).노직의 자유지상주의.정치사상연구,.[12] 작중에서 노직은 이러한 잠재적 설명방식을 칼 헴펠(C.G.Hempel)의 논변과 유사성으로 설명한다. 로버트 노직,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남경희 옮김. 문학과지성사. 1997. p.28~29[13] 그렇기 때문에 노직은 아직 극소국가를 국가의 베버(Max Weber)적인 의미에서 국가의 요건(1. 강제력의 독점체, 2. 영토내 모든 구성원에 대한 보호 중 후자)을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고 보면서 지배적 보호협회와 최소국가의 중간단계로 설정한다.[14] 로버트 노직,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남경희 옮김. 문학과지성사. 1997. p.38[15] 로버트 노직,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남경희 옮김. 문학과지성사. 1997. p.38~39[16] 로버트 노직,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남경희 옮김. 문학과지성사. 1997. p.24~26, 29~30[17] 로버트 노직,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남경희 옮김. 문학과지성사. 1997. p.33[18] 로버트 노직,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남경희 옮김. 문학과지성사. 1997. p.34~35[19] 로버트 노직,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남경희 옮김. 문학과지성사. 1997. p.49~50[20] 로버트 노직,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남경희 옮김. 문학과지성사. 1997. p.112[21] 로버트 노직,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남경희 옮김. 문학과지성사. 1997. p.107~108[22]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남경희 옮김. 문학과지성사. 1997. p.143~147[23] 로버트 노직,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남경희 옮김. 문학과지성사. 1997. p.143~152[24]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남경희 옮김. 문학과지성사. 1997. p.23[25] 로버트 노직,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남경희 옮김. 문학과지성사. 1997. p.24[26] 로버트 노직,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남경희 옮김. 문학과지성사. 1997. p.24[27] 로버트 노직,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남경희 옮김. 문학과지성사. 1997. p.25[28] 로버트 노직,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남경희 옮김. 문학과지성사. 1997. p.25[29] 로버트 노직,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남경희 옮김. 문학과지성사. 1997. p.25[30] 로버트 노직,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남경희 옮김. 문학과지성사. 1997. p.25~26[31] 로버트 노직,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남경희 옮김. 문학과지성사. 1997. p.25[32] 로버트 노직,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남경희 옮김. 문학과지성사. 1997. p.29~30[33] 로버트 노직,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남경희 옮김. 문학과지성사. 1997. p.51[34] 로버트 노직,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남경희 옮김. 문학과지성사. 1997. p.52~53[35] 로버트 노직,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남경희 옮김. 문학과지성사. 1997. p.52~53[36] 로버트 노직,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남경희 옮김. 문학과지성사. 1997. p.54~56[37] 로버트 노직,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남경희 옮김. 문학과지성사. 1997. p.80[38] 로버트 노직,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남경희 옮김. 문학과지성사. 1997. p.107~108[39] 로버트 노직,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남경희 옮김. 문학과지성사. 1997. p.108[40] 로버트 노직,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남경희 옮김. 문학과지성사. 1997. p.112[41] 롤스 등이 대표적인 예[42] 또는 쾌락[43] A는 ㄱ,ㄴ의 우열을 정할 수 있고, B는 ㄷ,ㄹ의 우열을 정할 수 있다. 그래서 A는 ㄱ,ㄴ,ㄷ,ㄹ순으로, B는 ㄹㄷㄱㄴ순으로 정했을 때 A는 ㄴ을 ㄷ 위에, B는 ㄷ을 ㄴ위에 두게 된다. 즉 A와 B의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이것이 확장되면(애초에 둘만으로는 다른 예시가 너무 많아 반박되어 버린다) 대규모의 사회에 있어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결과에 이르게 된다는 논증이다.[44] 로버트 노직,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남경희 옮김. 문학과지성사. 1997. p.193[45] 이것을 제시하면 자신이 비판한 정형화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고 볼 수도 있다[46] 한국에서 번역된 책이름: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47] 로버트 노직,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남경희 옮김. 문학과지성사. 1997. p.222[48] 로버트 노직,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남경희 옮김. 문학과지성사. 1997. p.223[49] 로버트 노직,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남경희 옮김. 문학과지성사. 1997. p.224[50] 로버트 노직,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남경희 옮김. 문학과지성사. 1997. p.223[51] 로버트 노직,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남경희 옮김. 문학과지성사. 1997. p.225[52] 로버트 노직,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남경희 옮김. 문학과지성사. 1997. p.228[53] 로버트 노직,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남경희 옮김. 문학과지성사. 1997. p.231~232[54] 로버트 노직,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남경희 옮김. 문학과지성사. 1997. p.232[55] 로버트 노직,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남경희 옮김. 문학과지성사. 1997. p.232~233[56] 로버트 노직,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남경희 옮김. 문학과지성사. 1997. p.232~233[57] 로버트 노직,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남경희 옮김. 문학과지성사. 1997. p.232[58] 로버트 노직,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남경희 옮김. 문학과지성사. 1997. p.233[59] 로버트 노직,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남경희 옮김. 문학과지성사. 1997. p.233[60] 로버트 노직,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남경희 옮김. 문학과지성사. 1997. p.233[61] 로버트 노직,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남경희 옮김. 문학과지성사. 1997. p.234~238[62] 이스라엘 민족이 40년 동안 광야를 방랑하고 있을 때 여호와가 내려 주었다고 하는 양식[63] 로버트 노직,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남경희 옮김. 문학과지성사. 1997. p.250[64] 로버트 노직,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남경희 옮김. 문학과지성사. 1997. p.250[65] 로버트 노직,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남경희 옮김. 문학과지성사. 1997. p.250[66] 로버트 노직,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남경희 옮김. 문학과지성사. 1997. p.239[67] 로버트 노직,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남경희 옮김. 문학과지성사. 1997. p.266~267, 285[68] 로버트 노직,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남경희 옮김. 문학과지성사. 1997. p.270[69] 로버트 노직,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남경희 옮김. 문학과지성사. 1997. p.281~283[70] 로버트 노직,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남경희 옮김. 문학과지성사. 1997. p.282[71] 로버트 노직,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남경희 옮김. 문학과지성사. 1997. p.282[72] 로버트 노직,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남경희 옮김. 문학과지성사. 1997. p.283[73] 로버트 노직,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남경희 옮김. 문학과지성사. 1997. p.282[74] 로버트 노직,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남경희 옮김. 문학과지성사. 1997. p.285~287[75] 로버트 노직,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남경희 옮김. 문학과지성사. 1997. p.285~286[76] 로버트 노직,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남경희 옮김. 문학과지성사. 1997. p.285[77] 로버트 노직,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남경희 옮김. 문학과지성사. 1997. p.286~287[78] 로버트 노직,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남경희 옮김. 문학과지성사. 1997. p.286~287[79] 로버트 노직,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남경희 옮김. 문학과지성사. 1997. p.269~270, 287[80] 로버트 노직,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남경희 옮김. 문학과지성사. 2005(4판). p.342[81] 로버트 노직,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남경희 옮김. 문학과지성사. 2005(4판). p.349[82] 로버트 노직,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남경희 옮김. 문학과지성사. 2005(4판). p.350[83] 로버트 노직,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남경희 옮김. 문학과지성사. 2005(4판). p.350[84] 로버트 노직,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남경희 옮김. 문학과지성사. 2005(4판). p.352[85] 현실에 대비하자면 이들은 선거로 당선된 의원들이라 할 수 있다. 로버트 노직,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남경희 옮김. 문학과지성사. 2005(4판). p.352[86] 로버트 노직,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남경희 옮김. 문학과지성사. 2005(4판). p.359[87]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을 변용시키고 있다.[88] 로버트 노직,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남경희 옮김. 문학과지성사. 2005(4판). p.358~359[89] 로버트 노직,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남경희 옮김. 문학과지성사. 2005(4판). p.359[90] 로버트 노직,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남경희 옮김. 문학과지성사. 2005(4판). p.360[91] 로버트 노직,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남경희 옮김. 문학과지성사. 2005(4판). p.361[92] 로버트 노직,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남경희 옮김. 문학과지성사. 2005(4판). p.384~385,[93] 그는 반대자들을 오직 한가지 음식만 취급하는 레스토랑이 하나만 있는 마을에 사는 사람이나 마찬가지로 비유한다.[94] 즉, 타인에게 자신을 양도한 것을 일정 절차를 거쳐서 다시 자신을 자신으로 재양도 할 수 있는[95] 로버트 노직,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남경희 옮김. 문학과지성사. 2005(4판). p.406[96] 로버트 노직,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남경희 옮김. 문학과지성사. 2005(4판). p.214[97] 로버트 노직,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남경희 옮김. 문학과지성사. 2005(4판). p.11[98] 로버트 노직,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남경희 옮김. 문학과지성사. 2005(4판). p.204[99] 번역문과 원문 모두 “노직키안”이라는 블로그에서 읽어 볼 수 있다. #[100] Nozick thinks that “there are things in my book favoring individual liberty that should seem favorable to some on the left, or at least the decentralized left.” In other words, his position has something to please everybody, a trait that is sometimes considered more a concession to the gallery than to truth. But Nozick also thinks that he has “given something to offend everyone. The right‐wing people like the pro‐free‐market arguments, but don't like the arguments for individual liberty in cases like gay rights—although I view them as an interconnecting whole, and the liberty to engage in market transactions as continuous with other liberties. And then there are the people on the left who like some of the personal‐liberation things but who don't like the things which they see as supporting private property.” And he adds: “Maybe no position that offends everybody in that could be all wrong.” #[101] 그래도 이 분과 비교하는 문제에 대비해서 긴 분량을 차지하는 것이지, 대체로 쉽다는 평이 많다. 물론 문제가 아니라 개념이...[102] 한국어번역명 《무엇이 가치 있는 삶인가》의 4장 신의 본질, 믿음의 본질.[103] 로버트 노직,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남경희 옮김. 문학과지성사. 2005(4판). p.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