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KBS 대하드라마 용의 눈물의 등장인물과 출연진들. 이 문서에선 극중의 행적을 위주로 서술한다.2. 주요 인물[1]
3. 왕실 인물
3.1. 태조 시기
- 신의왕후 한씨 (한영숙[2]): 태조 이성계의 정실부인이자 이방원의 생모. 이전부터 지병으로 병석에 누워있었다. 아버지와 사사건건 마찰을 빚던 맏아들 이방우를 걱정하다가 조선 건국 1년 전인 1391년(고려 34대 공양왕 3)에 사망. 방우뿐만이 아니고, 다른 자식들도 신경을 썼고, 특히 방원이도 따로 불러서 말을 할 정도로 방원의 능력과 생각을 인식한 듯한 말을 남기기도 하였다. 대사도 거의 없고 병치레하는 모습으로 짧게 나오지만[3] 사망 후 신덕왕후 꿈에 귀신으로 뜬금없이 등장한다.[4] 정작 이성계가 임종 직전 꾼 꿈에서는 안 나오는데, 이때는 스케줄 문제로 나올 수 없던 걸로 보인다.
- 완풍대군 이원계 (박해상): 이성계의 이복 형. 위화도 회군 당시 조전 원수로 참가하여, 동생인 이성계의 회군 결정을 반대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이지란에게 "가형이라고는 하나 군령에 어찌 반대하느냐"고 타박을 들으면서도 이성계를 설득하며 "이보게 성계! 항간에 도는 목자득국의 소문을 정녕 현실로 만들려 하시는가!"라는 말을 남기나 결국 대세를 막진 못했다. 바로 그 해에 죽은 사람이라 회군 이후로는 등장이 없다.
- 의안대군 이화 (원석연[5]): 이성계의 이복 동생. 조선 건국 전까지는 큰 비중이 없다가 조선 건국 이후부터 부각되기 시작하는 인물로, 정도전에 대한 불만을 품고 있다가 이방원이 일으킨 왕자의 난에 적극 동참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이후 완전히 이방원의 조력자가 되어 2차 왕자의 난에도 적극 참전하였고, 후일 이방원이 태종에 오른 뒤 민무구, 민무질 형제를 탄핵하는데 앞장서달라는 부탁을 받고 영의정에 제수되어 적극적으로 민씨 형제들을 탄핵한다. 민제의 사망이 임박했을 때 민씨 형제를 불러들일 것인가의 문제를 두고 반대론을 적극적으로 펼치다가 심장마비로 급사한다.[6]
- 진안대군 이방우 (임정하): 이성계의 맏아들. 아버지가 위화도 회군 이후 본격적으로 찬탈을 도모하자 "효보다 충"이라며 끝까지 고려에 대한 지조를 지키려 한다. 위화도 회군 직후 개경에 인질 비슷하게 잡혀있는 상태였던 이성계의 가족을 이방원이 나서서 동북면으로 피신시키는 와중에 이성계의 회군 소식을 전하러 온 이방원에게 "아버님이 회군하셨다면 왕명이 그렇게 나왔으니 하시는 것일 텐데 도망을 왜 가야 되느냐"며 자신은 고려의 신하임을 분명히 하고, 대체 누구를 위해 그딴 잘난 대의 지킨답시고 답답하게 버티느냐고 따지는 동생 이방원을 "천지를 뒤엎어놓고 나라를 구하겠다는 게 무슨 개소리냐. 당장 나가라"고 고함치며 내쫓아버린다. 정몽주가 암살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내가 술을 안 마시면 살 수가 없다. 하늘 보기 부끄럽다"며 괴로워하거나, 조선이 건국되자 모든 걸 버리고 아내와 함께 함경도의 어느 산으로 은거한다. 평소에 가장 뛰어난 아들로 아버지가 높이 평가했었고, 그래서 당연히 세자로 발탁하려고 했었으나[7] 산으로 떠나 분란의 빌미가 되었다. 실제로 고려에 충성했기 때문에 은거했는지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진안대군 항목 참고.
- 정종 이방과 (태민영[8]): 조선의 제2대 국왕, 이성계의 둘째 아들. 신덕왕후의 푸쉬로 방석이 세자로 책봉되자 동복 동생들의 불만을 낮추려 노력한다. 1차 왕자의 난 이후 세자에 이어 바로 즉위하며 줄곧 이방원에게 의지하다가 2차 왕자의 난으로 이방간이 유배길을 떠나자 미련없이 이방원에게 왕위를 넘기며 유유자적한 삶을 이어간다. 왕자 때나 상왕으로 물러났을 때나 언제나 아버지인 이성계에게 효도를 다한다. 실록에서는 강인한 무인이자 정사에 간섭하지 않으면서도 가끔 태종에게 직언하던[9] 소탈한 인물이지만, 여기서는 유약하고 우유부단한 인물로 등장.[10] 이방원의 외척 숙청이 메인이 되는 2부에서도 간간이 등장하지만 그저 뒷방에서 정세 돌아가는 것에 이런저런 반응을 보이는 정도 이상의 의미는 없었고, 아내인 정안왕후가 승하한 뒤 귀양지의 회안대군도 상복을 입게 해달라고 부탁한 뒤로는 계속 등장이 없다가 대마도 정벌이 본격화될 때 병석에 누운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전에도 몇 번 병석에 누웠다고 하며, 태종과 세종이 보는 가운데 끝내 숨을 거둔다.
- 정안왕후 (박윤선[11]): 정종 이방과의 왕비. 유순한 성격으로 아랫동서인 원경왕후와 친밀히 지내나, 이방과가 왕위에서 물러나려 할 때 결정적인 조언을 하고 이후로는 남편과 역시 유유자적한 생활을 한다. 그러나 2부 중간 몸에 이상을 보이다가 1412년(태종 12) 끝내 남편인 정종이 보는 앞에서 숨을 거둔다. 그 피비린내가 나던 숙청 및 골육상쟁 속에서 나름대로 편히 살다가 갔다고 볼 수 있다. 원경왕후는 생전에 중전 자리에 집착해 그녀를 몰아붙였던 것을 후회하며 안타까워 한다.
- 성빈 지씨 (정유진): 정종 이방과의 후궁. 정종이 왕위에 오르기 이전부터 함께 살았던 후처이며 정종과의 사이에서 두 아들을 보았다. 정안왕후 소생의 자식이 없었기 때문에 정종이 왕이 되자 자기 자식이 세자가 될 줄 알고 좋아하며 멋대로 궁으로 달려왔다. 정종은 부르지도 않았는데 왔다고 어쩔 줄을 몰라했지만 이미 온 걸 내칠수도 없는데다, 어쨌든 아내이긴 하니 성빈 직위를 주며 후궁 대접은 했지만 심정은 그야말로 가시방석이었다. 당연히 실권을 잡고 있는 이방원에게 좋게 보일 리가 없었고[12], 때문에 자기 자식들이 화를 입을 것을 두려워한 정종이 자식들을 전부 절로 보내버리면서 자식들과 생이별을 하게 된다. 이후로는 등장이 없다.[13]
애초에 정치적 상황은 파악하지 못하고 남편이 왕이 되니 자기 인생이 펼 줄 알고 달려온 사람이다. 이 때문에 이방원의 처 민씨를 보고 초면에 시동생이 아니냐며 말을 놓으려다 민씨에게 무례한 발언을 듣기도 했다. 이 때 정종이 동생은 물론 그 처에게까지 쩔쩔매며 어쩔 줄 모르는걸 보고서는 상황파악이 됐어야 할지도 모르지만, 여전히 주제를 모르고 자기 아들을 세자라 칭하고 다니며 촐싹대기만 했다. 심지어 조박에게 접촉하여 조언을 구하며 자기 아들을 세자로 올릴 궁리를 했을 정도. 그러나 조박은 이 일로 방원 일파에게 찍혀 귀양을 가게 되고 분노한 성빈은 정종을 찾아가 호소하지만 당연히 정종에게 면박이나 듣게 된다.[14]
- 익안대군 이방의 (최동준[15]): 이성계의 셋째 아들. 투덜투덜거리는 이방간과 자주 나온다. 형제들 중에서는 욕심을 드러내지 않고 그저 안빈낙도할 생각을 한다. 조선건국 이후 정도전이 벌이는 국정에 대해 은근한 불만을 나타내긴 하지만, 무인정사 이후로는 완전히 욕심 없는 성격으로 변한 듯. 이방간이 사람을 모으기 시작할 때쯤, 이방의는 "안심입명"이라는 글씨를 쓰며 조용히 사는 즐거움을 느끼는 것으로 나온다. 이방원이 난을 일으키자 소극적으로 참여하였으나 2차 왕자의 난을 전후로 이방원에게 자신의 사병과 모든 군사권을 넘기고 적극적으로 지지한다. 이후 이방원이 왕위에 오르고 나서 병에 걸리고 정종과 태종이 문병을 와서 쾌유를 빌지만 실제 역사대로 사망한다.[16]
- 회안대군 이방간 (김주영[17]): 이성계의 넷째 아들. 불편함을 숨기지 못하는 성격으로, 세자 책봉 문제와 사병 혁파 문제로 이방원과 함께 이성계의 아들들 가운데 가장 큰 불만을 나타낸다. 성격이 급하고 불같은 성격은 이방원과 비슷한데, 그만큼 작중에서는 의외로 의기가 있고 분기할 때 할 줄 아는 인물로 퉁두란이 칭찬도 할 정도.[18] 신덕왕후 국상 기간에 이방원과 이방간이 침소를 옮기던 세자 방석과 마주쳤을 때, 이방원도 어쨌거나 세자에게 존대는 하는데, 이방간은 말을 굳이 세자와 동행하던 박위에게 걸면서 세자를 존대하지 않는다.
근데 이방원은 세자에게 반말 쓴 적도 있다결국 1차 왕자의 난 때 적극적으로 가담하여 이복동생인 방번을 참살한다.
하지만 원래 이방원을 계속 경계했고 또 권력욕이 커서 1차 왕자의 난 직후 자신이 방원보다 형임을 내세워 숙부인 의안대군 이화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이화는 "방원은 사람들 사이에 명성이 높고, 충성스러운 부하들을 두고 있으며, 지략도 출중하지만, 너는 그렇지 못하다"고 말하며 거부했다. 동시에 셋째인 익안군처럼 너 가진만큼 누리며 조용히 살라고 하는건 덤. 귀양길에 처해 불만이 컸던 박포와 손을 잡아 2차 왕자의 난을 일으키나 이방원에게 패하고 결국은 유배길에 처해진다. 이복동생들과는 달리 이방원의 배려로 끝까지 천수를 누릴 수 있었다. 정안왕후가 승하한 뒤 정종이 회안대군도 상복을 입게 해달라고 부탁하면서 지나치듯 귀양지에서의 모습이 나타났으며, 최종화에서 임종을 맞이한 소식이 세종과 태종에게 전해진다.
- 이맹종 (김경응): 이방간의 아들. 무인정사가 막 끝나고 처음 등장하며 아버지에게 바람을 불어넣는데 실제 역사에서 이맹종은 1385년생으로, 1382년생 이방석보다도 어리며 조선 시대 기준으로도 성인은 아직 아닌 시점인데도 20대 정도 외모로 나오는게 옥의 티(...).[19] 상왕 태조와 연합할 목적으로 할아버지에게 수행을 자청했다가, 한참 기분 안 좋은 태조의 명령으로 얼마 안 있어 돌아간다. 2차 왕자의 난이 끝나고 아버지 이방간과 함께 유배길에 오른다. 본래 박종화 작 세종대왕에서는 제2차 왕자의 난 와중에 이방원이 쏜 화살에 맞아 죽는 것으로 나오고 이 드라마의 초기 시나리오에도 이걸로 나갔는데 실제 역사와 다르다는 점이 감안되어 생존하는 걸로 변경되었다.
- 무안대군 이방번 (정태우[20]): 이성계의 일곱째 아들. 실제 역사와는 달리 동복동생인 방석이 세자로 책봉되었음에도 별다른 불만을 드러내지 않는 것으로 묘사되며, 이후로도 아우에게 꼬박꼬박 존대하며 딱히 불만을 드러내지 않는다.
대신 존재감도 드러내지 않는다.1차 왕자의 난 때 이방석을 죽인 이방원이 이방번만은 해치지 않고 그냥 보내주었으나 넷째 형 이방간이 곧장 달려가 참살한다. 그런데 이방원도 책임을 모면하기는 어려운 게, 이방간이 이방번과 이제를 쫓아가는 것을 보고도 한 번 부르기만 할 뿐 제지하려는 움직임은 전혀 보이지 않았기 때문.
- 세자 이방석 (양희석): 이성계의 막내 아들. 어머니의 뒷배로 세자에 책봉되어 처음에는 제왕학을 배우는데 열심이었으나, 아내였던 유씨가 내시와 통정하다 들통나 자살한 일로 충격을 받고 심적으로 방황을 거듭한다. 극중에서는 유씨가 내시와 통정하게 된 계기가 밤낮없이 학문에만 열중하던 의안대군에게 사랑을 받지 못했기 때문으로 묘사된다. 의안대군 입장에서는 학문에 열중한 결과가 아내의 죽음이었으니, 학업에 흥미를 잃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결국 술을 입에 대는 것을 시작으로 몰래 민가에 나가 닭, 오리를 사냥하거나[22] 기방에 나가는가 하면 신덕왕후의 병중에 궁녀들과 투호놀이를 하며 철없는 모습을 보여준다.[23] 신덕왕후가 중병에 걸려 누운 것을 계기로 정신을 차리나 왕자의 난 때 이방원의 묵인 하에 죽임을 당한다.
- 폐세자빈 유씨 (이재은): 세자 이방석의 첫번째 부인. 이방석의 세자 책봉과 함께 가례를 올리지만 어린 이방석이 별로 성욕이 없어 자신을 찾지 않아 한탄하다가 내시 이만과 눈이 맞아 여러번 통정한다. 그 후 조영무에게 현장이 잡히고 목을 매 자진한다. 실록에서는 뭔가 차마 자세하게 밝히기 꺼렸는지 그저 내시 이만과 눈이 맞은 것이 들통나 쫓겨났다는 이야기만 간략하게 적혀있고, 진상을 밝히라는 대신들은 입막음을 당했다.
- 현빈 심씨 (박채영): 세자 이방석의 두번째 부인. 심효생의 딸. 세자가 아이를 낳길 바라던 신덕왕후의 뜻을 듣고, 세자를 설득해 아이를 순산하는 데 성공한다. 실제 역사상 경순공주와 같이 출가하는데, 드라마에서는 그 장면이 나오지는 않는다. 세자가 끌어내지고 나서 출연 끝.
- 경순공주 (김나우[24][25]): 태조의 3녀로 신덕왕후 소생. 남동생들인 이방번과 이방석이 몰래 사냥을 나가서 돌아올때나 이방석이 신덕왕후의 병중에 투호놀이를 하자 크게 질책했다. 1차 왕자의 난으로 남편인 부마 이제와 동생들이 모두 살해당하자 속세에 뜻을 잃고 아버지 태조가 손수 머리를 잘라 출가한다. 작중에서는 태조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는지 태조가 임종 직전 마지막으로 꾼 꿈에서 죽은 사람 중 한 명으로 나오는데 실제로 경순공주는 비구니로 불문에 입문한 후 1407년 (태종 7년) 자신의 아버지인 태조 보다 1년 앞서 세상을 떠난다. 경순공주마저 세상을 뜨면서 신덕왕후의 2남 1녀 총 3명의 자식은 태조 보다도 먼저 모두 이승과 하직하였다. 그 다음해 1408년 태조도 그 뒤를 따랐다.
- 흥안군 이제 (이경영[26]): 경순공주의 남편으로 이성계의 부마. 경순공주와 함께 주로 왕실의 갈등에 걱정하는 역할로 나오다가 1차 왕자의 난 때 처남인 이방번과 함께 이방원의 배려로 도망쳤으나 추격해온 이방간에 의해 살해당한다.
3.2. 태종 시기
- 양녕대군 이제[27] (김민우(아역) → 이민우): 태종 이방원의 장남. 어릴 때 원자와 세자로 책봉되기 전부터 무인정사와 조사의의 난을 비롯해 할아버지인 이성계와 아버지 이방원이 벌인 권력 다툼에 환멸을 느꼈고, 그에 대한 반항으로 세자 책봉을 거부한 적이 있었다. 이를 선빈에게 들은 태종이 밤중에 세자를 불러 꾸짖었고[28], 원경왕후는 선빈을 문초하려다가 이로 인해 수족들이 나가기도 했다.
장성한 후에는 태조의 총애를 받으면서 할아버지의 활인 '백우전'을 선물로 받은 적도 있었다. 그러나 궁살이를 답답하게 여긴 나머지 악공 구종수, 이오방 등과 어울려 다니면서 기생 봉지련, 어리 등과 함께 대놓고 동궁에서 주색을 즐겼고 아버지 태종에게 불려가 회초리까지 맞았으나 한번도 잘못했다고 빌지 않았다. 태종이 매우 감탄해할 만큼 붓글씨를 매우 잘 썼고[29] 어려운 유교 경전의 구절을 줄줄이 외울 만큼 총명하였으나 권력에 대한 환멸을 이미 어린 나이에 느꼈기 때문에 결국 아우 충녕에게 세자 자리를 양보하고 경기도 광주로 내려가 산다.
- 양녕대군부인 김씨 (안연홍): 세자 양녕대군의 정실부인으로 김한로의 딸. 세자빈이 되기 위해 간택되어 궁에서 교육을 받던 중 명나라의 사신 황엄(서동수[30])이 양녕과 명나라 공주와의 국혼을 추진하는 바람에 쫓겨날 위기에 처하기도 했으나, 국혼 자체가 영락제의 뜻이 아니라 황엄의 거짓말이었기에 무사히 빈이 된다. 그러나 양녕이 엇나가기 시작하면서 크게 걱정하는 등 마음 고생을 계속하게 되고, 그러는 와중에도 기생들과 거러지패들이 세자궁에 들어오는 것을 묵인하기도 하는 등 남편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양녕이 폐위될 무렵에는 하루빨리 궁에서 나가기를 진심으로 바라게 되고, 이후 수성부부인에 봉해져 경기도 광주에서 지내게 된다. 이 때 양녕이 빼앗은 곽선의 첩 어리도 함께 들어오지만 별다른 투기를 부리지 않는다. 망나니 양녕대군에겐 아까울 정도로 착한 아내인 셈.
- 효령대군 이보 (서상원(아역) → 장성원): 태종 이방원의 둘째 아들. 형인 세자 양녕의 비행을 크게 우려하면서도 동생인 충녕과 함께 글공부에 열심이다. 하지만 양녕대군이 미화된 드라마다 보니 그의 총명함을 돋보이게하기 위해 살짝 밀리게 묘사되기도 했다.[31] 양녕의 비행이 점점 더해가자 조만간 폐세자될 거라고 예측하고, 다음 세자는 총명한 충녕이 되어야 하는데 자신이 있으면 분란의 씨가 된다며 집을 떠나 절에 거처하며 불법을 공부한다. 덕분에 태종이 양녕대군을 폐한 이후, 가끔 궁에 온 양녕과 효령을 세트로 까는 장면도 있다. "큰 놈은 거러지패들과 어울려다니고, 작은 놈은 절간에서 염불이나 외우고 있고..잘들 하는 짓이다"라고..[32]
- 충녕대군 이도 (이준수(아역) → 안재모): 조선의 제4대 국왕, 태종 이방원의 셋째 아들. 이 드라마에서의 비중은 양녕대군이 더 크다. 태몽이 언급되는 것부터 시작하여 대군 시절 총명하고 학문에 열중하던 일화만큼은 대부분 반영되었다. 아예 공부방에서 숙식을 해결하자 어머니인 원경왕후가 달려와 크게 꾸중한 적이 있다. 효령, 충녕, 성녕 삼형제가 함께 공부하는 장면에서 청산유수로 학문을 읊어 총명함을 드러내는 장면이 많다. 세자에게 백성들도 쉽게 배울 문자에 대한 생각도 내비치고, 이를 듣고 내심 충녕대군이 자신을 대신해 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던 세자도 그 생각을 굳힌다.[33] 이후 형 대신 세자로 책봉되고 뒤이어 왕위에 오르나 처가의 피바람을 막아주질 못하고 아무 힘도 없이 그저 지켜만 본다.이후 태종이 기우제를 지내자 신료들과 함께 뙤약볕에서 태종의 기우제를 멈추라 간언하다가 마침내 비가 내리자 문을 열고 죽어가는 아버지의 유언을 듣는다. 아무래도 용의 눈물의 주인공이 태종인지라 전성기 시절의 세종의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숙청 이후에는 마음이 강해지고 나름 독해진 모습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심온 숙청 이후 중전을 폐하라는 상소가 올라오자 유약한 모습이 아니라
킬방원의무서운 살기를 보여주며 격노하면서 그것만한 어리석은 일이 없다고 일갈하고, 태종 또한 이 일만은 결단코 아니 된다고 매듭짓는다.[34]
- 소헌왕후 심씨 (임서연[35]): 세종의 정비. 주로 세자빈 김씨, 효령대군 부인 정씨 등과 나오는 병풍이었으나 충녕이 세자에 오르고 다시 임금으로 즉위하자 덩달아 중전에 책봉되었다. 그러나 시아버지 태종의 심각한 외척 편집증으로 자신의 아버지 심온이 명나라에 사은사로 갔다 돌아오는 중에 의주에서 사약을 받아 죽고 어머니 또한 관비로 신분이 수직하강하는 비운을 겪는다. 하지만 태종도 마지막 양심은 있어서 다른 관비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소헌왕후의 어머니에게 사람을 보내 보호한다.
- 효빈 김씨 (김혜리[36]): 극중 이름은 덕실. 원경왕후의 몸종 출신이었으나 태종의 눈에 들어 둘째 부인이 된 뒤 왕위에 오르면서 맞은 후궁. 괄괄한 성격의 원경왕후와는 달리 순하고 겸손한 성격이나[37], 잠저 시절 원경왕후가 낙태를 강요하자 뿌리치는 등 단호한 면도 없지 않다.
사실 이게 난생 처음으로 원경왕후에게 반항해 본 것이었다고 한다.잠저 시절부터 지속된 원경왕후의 갖은 괴롭힘에도 묵묵히 참아내고 투기도 일절 하지 않아 태종이 매우 총애한다. 처소를 찾아 사랑을 나누는 장면은 다른 후궁들은 물론이고 원경왕후보다도 많이 나온다. 주로 숙취에 시달리는 태종에게 꿀물을 가져다 주며 옥체를 걱정하는 장면. 그녀는 기록에 따르면 단종 2년인 1454년에 사망했는데 원경왕후 때문에 마음고생을 겪기는 했지만 입궁 후에는 별다른 탈 없이 잘 살았고, 단종이 본격적인 고생길을 걷기 전 사망했으니 복된 삶을 살았다면 살았다 볼 수 있다. 극 중반부쯤 되면 원경왕후가 나름대로 인정해주거나 위해 주는 장면도 나오지만, 이방원이 태종으로 즉위한 이후 여러 후궁들이 등장하면서 비중이 조금씩 줄더니 태종 슬하의 왕자들이 아역에서 성인으로 교체되는 시기에 극에서 퇴장한다.
- 선빈 안씨 (이보희): 이숙번의 아버지의 친구의 딸로서 집안이 기울어 이숙번에게 의탁하러 왔다가 태종의 눈에 들어 후궁이 된다. 효빈 김씨가 권력에는 일절 욕심을 내지 않고 잠저 시절부터 지속된 원경왕후의 투기와 견제를 묵묵히 참아내고 태종의 사랑만을 원한 반면 이쪽은 원경왕후와 각을 세우면서까지 권력에 대한 욕심을 강하게 드러내며 자신의 소생이 세자가 되기를 바라는데 임신과 출산을 전후하여 태종에게 세자 책봉을 언급했다가 총애를 잃는다. 이숙번과 왕후 민씨 가문이 대립하기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고도 볼 수 있는 인물.[38][39]
- 신빈 신씨(조승희): 상궁 출신의 후궁으로 극 중반부에 태종의 눈에 들어 승은상궁이 되었다. 처음에는 이를 감격해하나 앞날이 밝지만은 않을 것이라며 원경왕후를 조심하라는 제조상궁의 말에 겁을 먹고, 이후 태종의 발길이 끊기자 태종의 비호도 못받고 원경왕후의 눈밖에 나기까지 한 자신의 신세 한탄만 하는 처지가 된다. 다행히 원경왕후가 손을 댈 겨를도 없이 나인 노씨가 원경왕후에게 걸려 문초를 당하면서 별일은 없게 되었다. 이후에는 등장이 없다.
- 나인 노씨(하지원[41]): 신빈 신씨 이후 승은을 입은 궁녀. 신빈과는 달리 나인이었는데, 태종의 여성 편력에 분노하던 원경왕후가 이젠 나인까지 손을 댔다는 사실에 격분해 노씨를 직접 잡아다 문초하기에 이른다. 다만 중도에 양녕대군이 달려와 말려 목숨은 건졌으나, 이후로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4. 대신들
4.1. 이방원 일파
- 하륜 (임혁)
- 이숙번 (선동혁)
- 조영무 (장항선)
- 민제 (송재호)
- 민무구 (신동훈)
- 민무질 (나한일)
- 민무휼 (김광영)
- 민무회 (조인표)
- 이천우 (김옥만)
- 이거이 (강재일)[42]
- 이저[43] (송호섭): 이거이의 장남으로 경신공주의 남편. 이성계의 맏사위이자 태종의 자형. 적극적으로 불만을 표출하는 아버지 이거이와 달리, 사병 혁파를 거부하는 그룹 중에서는 다소 겁이 많은 타입. 2차 왕자의 난 때 아버지가 기회를 보며 사병을 내지 않자 자기 사병만 끌고 먼저 참전한다.
- 조영규 (송종원), 고여 (유병한), 이부 (김종구): 이상 셋이 비슷한 역할. 고려 말에 이방원의 심복으로 활동하다가 조선 건국 후 적당한 자리들을 얻는다. 이후 정도전파에 의하여 외직으로 쫓겨나기도 한다. 조영규의 경우 1395년에 일찍 죽었으니 더 출연이 없는 것이 이해가 되나, 고여는 태종 즉위 이후인 1402년까지 살았고 이부는 아예 태종과 같은 해인 1422년에 세상을 떠났는데도 1차 왕자의 난 이전에 퇴장한 것은 곤란한 일.
- 정만쇠 (정일모[44]): 실제 역사에는 없었던 오리지널 캐릭터. 이방원의 수석 시종으로 조선 왕조의 개국으로 이방원이 대군에 책봉되자 '정 집사'가 된다. 무예 실력이 출중하여 2차례의 왕자의 난 과정에서 방원의 휘하 사병들을 훈련시키고 열심히 싸웠다. 이방원의 명을 받고 정도전을 벤 것도 이 사람. 이방원이 국왕으로 즉위하자 내금위장[45][46] 같은 작가가 쓴 태조 왕건에서도 능환과 최승우가 후백제 건국 시점부터 멸망 시점까지 무려 수십 년 동안 '이찬'과 '파진찬' 관직을 유지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이 되어 태종의 호위 및 은밀한 심부름들을 수행한다.
이방원의 다른 측근들이 제각기 흥망성쇠를 겪는 와중에도 마지막 회까지 이방원의 곁을 지킨 유일한 인물. 논공행상을 위해 방원이 개인적으로 원하는 것을 물을 때에도 벼슬 따위에 욕심이 없는 소박한 성격으로 도리어 이를 기특하게 여긴 이방원이 힘써 자신의 곁에 두려고 하여 그렇게 된 것으로, 그야말로 심복 중의 심복. 후반에 가서는 태종이 한 일이 일이다 보니 사형당하게 된 죄인들을 끌고 가 사약이나 비단끈으로 최후를 맞는 장면을 바라보는 역으로 자주 나온다. 작품 내에서 눈물을 흘리는 연기가 거의 없는데, 처음으로 민무질 형제에게 직접 사약을 내리러 제주도에 갔을 때 함께 했던 과거를 떠올리며 눈물을 흘렸다. 같이 무인정사에 참여한 동지 의식도 있었지만, 민무구, 민무질 형제가 군부에서 일할 시절 이숙번이 이제부터는 군부회의에 내금위장인 정만쇠도 참여하라고 할 때, 내금위장이 회의에 참여하는 게 당연하다고 거들어 주기도 한다. 사대부로 과거에 합격하여 관료 코스를 밟은 다른 이들과 달리 하인 출신임에도 스스럼없이 회의를 참여하게 해 준 것인데 이 때 본인도 깜짝 놀라서 사양하다가 민무질의 말에 받아들이게 된다. 후에 민무휼 / 민무회의 죽음에도 함께하며 선택권을 주어 사약과 목메달아 죽는것 중에 하나를 택하게 도와주는데 그 둘은 목메다는 것을 택하고 여기서도 그들의 형들의 죽음 때와 같이 눈물을 흘린다.
훗날 태종이 상왕이 된 후에 외척 제거를 위해 심온을 족쳤는데 심온은 대쪽같이 자신이 죄없음을 주장하였고 날이 길어져 다음날 감옥에 투옥되었다. 하지만 이 내금위장이 직접가서 심온과 대화를 하여 심온에게 넌지시 태종의 뜻이 무엇인지 설명해주자 심온도 자신을 본보기로 삼아 외척을 제거하려는 태종의 뜻을 그제서야 알아채며[47] 억지 자백을 한다. 어찌보면 내금위장의 설득이 심온의 마음을 누그러뜨리며 더 질질 끌어질 수 있던 국문을 막은 것. 최종회에서는 상왕 태종의 기우제를 준비하고 종묘에 잡인의 차단을 막으라는 영을 받는데, 거기에 금상인 세종대왕(...)도 포함된다. 세종이 중전을 비롯 중신들을 우르르 데리고 와서 어명이니 당장 문을 열라 명해도 태종의 명을 받들기 위해 하늘에서 비가 내릴 때까지 문을 열지 못하게 막는 패기를 보인다.
담당 배우가 라이트급 신인왕을 지낸 복싱 선수 출신이라 최 내관 역의 김성찬은 그에게 맞는 장면을 연기할 때 곤욕을 치렀다고 한다.어쩐지 따귀를 맞을 때 정말 고통스러워 하는 것 같더라니...[48]. 가공인물이지만 모델이 되는 실존인물이 있는데, 바로 대군 시절 태종의 시종이자 1차 왕자의 난 때 정도전을 잡았다는 '소근(小斤)'과 이방원의 가신 출신으로 내금위장이 된 강상인이 모델이다.[49] 소근은 한글로 이름을 풀어 쓰면 '작은이' 정도. 여담으로 용의 눈물에서 1화만 제외[50]하고 한 회도 빠지지 않고 나온 유일한 역할이라고 하며, <용의 눈물> 방영 후에 한 특집 방송에서 개근상을 수상했다.
- 서원부부인 정씨 (송윤아[51]): 이숙번의 정실 부인. 한양에서 개성으로 다시 천도하는 대목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며, 초반에는 이숙번이 태종의 최측근이듯이 그녀 역시 원경왕후와 의자매처럼 그려진다. 이러한 관계는 2차 왕자의 난 당시에 전투의 결과를 함께 기다리는 대목에서 가장 절절하게 그려지며[52], 정안왕후가 주최하는 왕실 여성들의 행사가 열렸을 때 원경왕후가 그녀까지 초대했을 정도. 하지만 선빈 안씨를 이숙번이 소개한 이후로는 원경왕후에게 원망을 듣고 따귀까지 맞으며, 이후 극에서의 비중이 급격히 줄어든다. 그 뒤로는 양녕대군의 왕세자빈을 간택할 때 이숙번의 딸이 물망에 오르면서 잠시 등장했고, 이숙번이 유배당할 때 집사에게 '안사람은 먼저 피신시켰느냐'[53] 라고 물으며 언급한 것이 마지막.
- 우현보(허기호)
- 조온(권오현)
4.2. 정도전 일파
- 남은 (이영후)
- 심효생 (서학)
- 박위 (박건식): 이성계의 사주팔자로 점을 쳐보았다고 곤욕을 치렀다가 복권한 후 정도전 일파가 된다. 신의왕후 소생 대군들을 죽이려 모의할 때 일의 성패를 점쳐보자는 의견에 "내가 그거 때문에 큰일날 뻔 했다."라며 반대하지만, 결국 점집에 같이 가긴 갔다가 흉괘를 듣고, 비밀유지를 위해 점쟁이를 살해한다. 무인정사 당시 이방원군과 대치하다가 궁궐문이 뚫리고 병사들이 흩어지자 혼자서 도망치다 체포되어 현장에서 베여 죽는다.
- 유만수 (김윤형): 무인정사 당시 삼군부를 지키고 있다가, 정도전파 네임드 중에 제일 먼저 죽는다.
- 함부림 (김봉근): 대사헌으로서 도방에서 이방원파 대신들을 전원 탄핵할 때 존재감을 드러낸다.
- 이무 (한정국): 초기에는 정도전 파였으나 1차 왕자의 난 직전 이방원 측으로 돌아선다. 사실 정도전파 중에서 그렇게 적극적인 역할은 아니었는데, 거사 이전에 점을 치자고 했다가 점괘가 대흉으로 나오자 초조해한다. 그러다 거사날 박포의 "입장을 명확히 해야 좋을 것"이라는 말을 기억해내고는, 막 거사가 시작하려는 참에 이방원이 궐을 빠져나가 일이 틀어지자 결국 이방원에게 고변하는 것을 택한다. 훗날 민무구의 옥에 연루되어 결국! 이방원에게 죽임을 당한다.
4.3. 기타 대신들
- 이지란(퉁두란) (강인덕)[54]
- 조준 (문창길)
- 윤소종 (박웅)
- 배극렴 (김시원)[55]
- 권근 (이정웅)[56]
- 심덕부 (윤석오)
- 조박 (안대용): 민씨 형제의 큰 매형이면서 태종 이방원과는 동서지간이 되며, 성빈 지씨와 연이 있던 사이. 무인정사 당시 1등공신을 받았지만 정치적 안배에 따른 조치였을뿐 세운 공이 없어 입지가 좋지 않은 상황이었는데, 조급했는지 이거이 부자의 소문을 듣자마자 상소했다가 이를 빌미로 잠시 귀양가게 된다. 이후 2차 왕자의 난 때 어느 편을 들지 몰라 우왕좌왕하는 도당에서 이방원 지지를 강력 선언한다. 세자(양녕대군)와 명나라 황녀의 결혼 이야기가 나올 때 먼저 바람 잡다가 이것이 명나라 사신에게 놀아난 해프닝으로 끝나자 이방원의 분노를 사고 유배된다. 나중에 복귀하지만 그 때가 민무구 민무질 형제가 실각할 때라, 그래도 처남들을 조금이라도 보호하고 싶어하지만 이미 민씨 형제가 힘을 잃고 조박 본인도 단단히 찍힌 터라 다른 대신들의 면박만 받는다.
- 성석린 (안형식): 고려 조부터 쭉 도방 멤버로 등장한다. 함흥차사 때는 다른 대신들은 이성계에게 밉보여 차사로 가면 바로 죽는다 할 때 유일하게 미움받지 않은 중신이라고 자의반 타의반으로 차사로 가지만,[57] 두려움에 이성계 앞에서 자기가 차사라고 밝히지 못하고 조사의의 난 발발과 함께 돌아온다. 이후 이성계 사후까지 등장하다가 하차했는데, 실제 인물은 태종 사후까지 생존한다.
- 설장수 (이신재): 경주 설씨의 시초인 설손의 아들. 그와 아버지 설손은 위구르 출신 귀순 고려인이다. 쭉 원로 멤버로 등장한다. 표전문 시비 때 권근과 함께 살아 돌아온 바 있다. 개경 재천도 후 얼마 안 있어 도당에서 회의 중 쓰러진 후 정안군 방원과 여러 대신들이 본 앞에서 숨을 거두었다. 이를 이방간이 이방원과 술 한 잔 하는 계기로 한 번 써먹는다.
- 박포 (서영진): 본래 이방원 일파였지만, 1차 왕자의 난 후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고 방간을 부추겨 2차 왕자의 난을 일으키다 실패하고 처형당한다.[58]
- 마천목 (김기복): 2차 왕자의 난부터 활약한다.
- 목인해 (정의갑[59]): 2차 왕자의 난부터 활약한다. 말이 허약해 보인다고 이방원이 자기 말을 줬는데, 이맹종의 화살을 맞고 쓰러진다. 이 말은 그대로 이방원의 집으로 가고, 원경왕후가 이를 보고 뛰쳐나오려 한다. 목인해의 등장은 여기서 끝이라 화살 맞은 뒤의 애꾸눈 분장이 나오지 않았고 목인해가 사건의 중심인물이 되는 조대림 사건도 연출되지 않았다.
- 박순 (반문섭): 외직에 나가 있었다가 2차 왕자의 난부터 활약한다. 이성계와는 친분이 있는 관계라 이후 함흥에 차사로 갔다가 이성계의 배려를 받아 죽지 않고 나오는데 성공하지만 곽란으로 인근의 민가에 머물렀다 쫓아온 조사의 일당에게 죽는다. 이 소식을 들은 이성계는 애통해 한다.
- 조사의 (차철순)
- 손효종 (조춘): 조사의의 부장. 박순을 죽였던 장수이다. 이천우는 그를 보며 용맹하기가 이를 때 없다고 감탄했으며, 먼치킨인 이숙번에 비견될만한 무력을 갖춘 작중 최강급의 실력자이다.
- 남재 (손호균)
- 이직 (이우석) : 인물 문서에 나오지만, 원래 죽었다가 다시 등장한 사람으로 이 때문에 배우도 바뀌었다.
- 황희 (박진성)
- 맹사성 (임혁주)
- 변계량 (김종결)[60]
- 조말생 (손종범) : 태종이 양위하기 직전 그를 보좌한 마지막 도승지. 94회에서 과거에 급제할 당시 낭중지추 같은 말로 태종과 당시 자리했던 대신들(좌정승 하륜, 도승지 박석명, 권근, 이직 등)을 긴장했다. 이렇듯 갓 급제한 신입일 때부터 그를 봐왔던 태종이 상당히 아껴서 왕위에서 물러날 때 형조판서로 승진시키며 신경써준다.
- 심온 (정하완)
- 유정현 (신귀식)[61]
- 박은 (임병기)[62]
- 김여지 (김기섭) : 박석명과 황희의 뒤를 이은 세번째 도승지. 본작에서 태종을 보좌한 4명의 도승지(박석명-황희-김여지-조말생)중에서 태종의 뜻에 가장 충실하다. 아니다 싶으면 어떻게든 말려보려 했던 황희와 달리 민무휼, 민무회 숙청 때나 태조실록 편찬 때 왕권 강화를 위한 태종의 의중을 눈치 빠르게 파악하고 충실히 지지했다.
- 이종무 (민욱)[63]): 심온의 옥사 때부터 등장하여 유정현, 박은 등이 폐비론을 주장할 때 그럴 것까지 있냐며 반대하지만 무장이 뭘 아냐고 면박을 듣는다. 왜구들의 침입에 이방원에게 대마도 정벌을 건의하고 실행하여 대마도주의 항복을 받아낸다.
- 하연 (김효원[64]) : 도승지인 박석명과 황희 옆에서 보좌하던 승지로 함흥차사로 갔다가 죽은 유 내관의 부고를 과거장의 태종과 대신들에게 알렸다.
- 박석명 (김성수[65]): 태종과는 절친한 친구 사이로 사병 혁파가 마무리 정국에 처음 등장한다. 이방원이 즉위한 후 맞이한 첫번째 도승지로 충실히 보필하였고 함흥으로 이성계를 모시러 처음 보내진 차사이기도 했다. 조사의의 난이 진압되고 이성계가 돌아온 후 익안대군이 죽을 무렵을 전후해서 기침을 하다가 피를 토하는 등 중병에 걸려 몇 달 살지 못한다는 진단[66]을 받자 자신의 후임으로 황희를 추천하고 사직을 요청한다. 그를 아까워한 이방원이 도승지보다 업무량이 적으면서 품계는 더 높은 의정부 지사로 임명하고 이내 요양이나 하라고 지방관으로 부임해 전라도로 내려가던 중 37세의 젊은 나이로 끝내 사망했다.[67]
- 박만
- 강상인 (박칠용): 양녕의 폐세자 직전부터 등장해 세종 즉위 무렵에 심온의 당여로 끼어 왕의 장인이 된 것을 축하해준다. 하지만 병조참판으로 있다가 수강궁의 군사를 재배치한 일로 꼬투리 잡혀 심온을 제거하려는 태종의 계획에 말려들어 처형당한다. 실제로는 이방원의 가신 출신으로 내금위장을 거쳐 병조참판에 이르렀다. 즉, 용의 눈물로 치면 정만쇠나 조영무 정도의 포지션이지만 그냥 외척 숙청에 재수 없이 말려든 신료 중 하나로만 그려지는데, 애초에 조사의의 난까지만 묘사할 계획이었기에 빠졌다가 부랴부랴 투입된 것으로 보인다[68]. 대왕 세종에서는 태종과의 관계가 조금 더 상세히 소개되나, 상당히 뜬금없게도 왜관의 일본인들을 보호하려다 화를 당하는 것으로 왜곡되었다.
- 유창 (이한승) : 세자(양녕)의 스승.
- 이래 (이대로): 세자(양녕)의 스승. 유창과 함께 부왕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드러내거나 총명하면서도 공부에 관심 없는 세자 때문에 골치를 썩는다.
- 이수(박상만) : 효령대군과 충녕대군의 스승. 세자의 스승들이 골머리 앓는 동안 이쪽은 총명하고 이해 빠른 대군들에게 만족하고 흐뭇해 한다. 대과에 급제 못한 생원 신분으로 대군들의 스승이 되었음에도 과거에 번번이 낙방해 태종은 정국을 안정시킬 시책을 묻는 시험장에서 원론적인 학문 이야기만 하니 떨어지는 거라고 충고해준다. 태종과 세자가 입회한 과거에서도 한번 떨어지는데, 이 때의 장원 급제자가 바로 정인지로 거듭된 낙방에 표정이 구겨졌다. 그래도 당시 나레이션에 나온 것처럼 후에 민무휼, 민무회 숙청이 시작될 즈음 마침내 급제하면서 조정 대신의 반열에 들었고, 제자인 세종이 즉위한 이후 도승지가 되어 최종회에서 회안대군 이방간의 사망 소식을 세종과 소현왕후에게 알린다.
- 이지성(이계영) : 조정 대신. 하륜의 천거로 조정에 들어온 인재이다. 그러나 민씨 숙청을 보고 분노하여 세자가 명나라를 오고 갈 때 민씨 두 형제가 참으로 억울하게 귀양을 간 거라고 발언하는 튀는 모습을 보인다. 이와 관련해 하륜과도 척을 지게 된다. 이후 죄인의 집안이라 하여 아무도 오지 않는 민제 대감의 상갓집에 간 일로 태종을 만나고 민무구와 민무질의 억울함을 다시금 주장하다가 원주로 유배된다. 후일 민무회와 민무휼까지 모두 숙청될 때 후환을 대비하는 차원에서 사약을 받아 세트로 죽는다[69].
- 박두언(백찬기) : 세자(이방석)의 복수라며 소팔과 함께 이방원을 습격해 일시적으로 혼수상태로 만든다.
- 강유신, 장사미, 이군실, 정승길 : 박포가 이방간에게 소개한 4인방.
5. 고려 인물
- 창왕 (윤동원)
- 정비 안씨[71] (한은진): 공민왕의 비. 공양왕의 폐위 때 막을 수 없는 대세에 수 없이 울부짖으며 저항하고, 의화궁주로 강등되어 퇴궐하는 와중에 왕후로써 입궐한 신덕왕후 강씨와 만나 "남의 눈에 피눈물을 내게 하면 내 눈에는 가시가 박히는 법이니라! 저주가 있을 것이오! 저주가!"라며 미친 사람처럼 노래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 최영 (김성옥[72]): 2회만에 퇴장하지만 엄청난 카리스마와 존재감을 보여주었다. 이성계가 회군 도중에 회상하는 씬에서는 이성계에게 요동정벌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대화장면이 나오는데, 그야말로 고려만을 위하는 노신의 절절한 감정이 드러난다. 그러나 무리하게 요동정벌을 주장하는 면도 있으며, 이 과정에서 이성계를 포함한 대신들과 마찰도 빚는 입체적인 모습도 보여준다. 최후의 반격을 시도하지만 결국 체포되며 역사에서처럼 참형을 당한다.
- 조민수 (박종관): 위화도 회군까지만 해도 이성계 일파와 뜻을 같이 하지만, 첫 도당회의 전부터 창왕 옹립을 밀어붙이면서 이성계를 왕위에 올리려는 이성계 일파에게 미운 털이 박힌다. 결국 첫 도당회의에서 이성계 일파에게 집중 견제를 당하더니, 순식간에 숙청되면서 2화만에 퇴장.
- 이색 (남일우[73]): 유종의 대부로서 권근, 이숭인, 정몽주, 하륜 등을 당여로 거느리며 그들과 함께 정사를 우려하는 모습이 그려지지만, 역성혁명에 반대하는 입장이기에 결국 이성계 일파에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처지가 된다. 시대의 흐름에 역행해 적극적으로 이성계를 막아서려던 정몽주는 처참하게 죽고, 하륜과 권근은 차례차례 이색에게 작별을 고하며 이성계 일파에게로 넘어가지만 이를 적극적으로 막지는 않고 그들의 뜻에 따르게 한다. 최후는 독살되었다는 야사에서 착안, 정도전에 의해 독살된다.
- 정몽주 (정승현): 당대의 전통적인 정몽주의 이미지를 따르듯 고려의 충신으로 그려지며, 우왕과 창왕을 신돈의 자식으로 규정한 흥국사 9공신에 참가한 이력 역시 당연히 이색 일파와 함께 숙청되어야할 것을 이성계, 정도전이 특별히 안배하여 그를 회유하기 위해 살려준 것으로 나온다. 하지만 역시나 공양왕 치하에서 이성계와 대립해, 사냥 중에 이성계가 부상을 입은 것을 기회 삼아 정도전, 조준 등을 탄핵하고 나아가 이성계의 암살을 시도했으나 애초에 이성계는 큰 부상을 입은 상태가 아니었기에 당연히 실패로 돌아간다. 이후 이성계의 회유도 거부하고, 이방원과 마지막으로 만난 자리에서 서로 하여가와 단심가를 깔끔하게 나눈 뒤 집으로 돌아가던 선죽교에서 담담히 죽음을 맞이한다. 그의 죽음에 대한 여러 야사가 그대로 반영되어 정몽주 본인은 나귀를 거꾸로 타고 가고, 집사(배우는 이상인)도 죽으러 가는 길이라는 것을 굳이 알면서 따라가는 것으로 그려진다.
- 이숭인 (이용진): 이색의 당여. 최근에야 고려육은의 한 사람이자 길재 대신 여말삼은에 들어가기도 하는 도은으로 꽤 인지도가 생긴 인물이지만, 당시에는 궤멸적인 대중적 인지도 때문인지 비중은 한없이 공기에 가깝다. 조선 개국 직후 여러 인물이 숙청되는 과정에서 이숭인의 최후 역시 그려지는데, 장 100대를 맞고도 살아 말에 메달려 끌려다니다 죽는 것으로 연출되어 끔찍함이 강조되었다.
- 곽충보 (최헌철): 정득후와 함께 우왕으로부터 과도를 받은 한 사람. 우왕은 그저 순수한 마음으로 선물을 내린 것이지만 하필이면 선물이 칼이라는 사실에 곤혹스러워하고, 이미 이 사실을 보고받은 이방원이 환도 한 자루를 들고 찾아와 당신은 과도가 아닌 환도를 받은 것이며 우왕의 복위 시도를 고변하라는 말에 선수를 치고 이성계에게 거짓 고변을 하여 정득후를 배신자로 몰아 죽인다. 만약 이방원이 곽충보가 아닌 정득후에게 갔다면 죽는 쪽은 곽충보였을 것이니, 어찌 보면 은혜를 입은 셈.
- 정득후 (주호성): 유배 간 우왕으로부터 과도를 받은 1인 중 하나. 똑같이 과도를 받은 곽충보가 이방원에 의해 포섭되어 먼저 우왕의 선물을 복위 시도라며 거짓 고변을 했고, 이에 우물쭈물하고 있었던 정득후는 졸지에 역적 신세가 된다. 게다가 이성계가 자신을 시험하기 위해 환도를 들고 나오라고 했는데, 사냥을 떠나려나보다 싶어 정말로 집안에 있던 환도를 들고 나섰고 그 환도는 졸지에 우왕에게 받은 역모 증거물로 지목된다. 곽충보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곽충보가 도리어 면전에서 자신을 모함하자 분노해 칼을 빼들지만 이지란에게 먼저 베여 이성계에게 억울하다는 말을 남기고 죽는다.
- 김저 (이기영)[74]: 정득후에게 과도를 전한 인물로, 정득후에게 과도를 전하기 전 곽충보에게 은근히 거사를 충동질하는 듯한 언사를 하다가 곽충보가 이를 거절하는 모습을 보여주자 "참으로 실망스럽소이다!"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이 쪽은 정득후와는 달리 어느정도 흑심이 있었던 모양. 어쨌거나 정득후와 함께 도매금으로 엮여서 끌려들여온 다음 무자비한 고문을 받으며, 사실을 털어놓으라는 배극렴 등의 회유를 거절하다가 아무래도 안 되겠다고 판단한 그의 지시를 받은 옥졸에 의해 교살당한다.
- 길재 (강태기)
- 우성범 (강신조)[75] : 공양왕의 사위. 이성계가 왕위를 찬탈할 때 공양왕 앞에서 폐위를 알리며 조서를 읊는 남은 앞에서 대비를 겁박하고 왕실을 능멸한다며 꾸짖는다. 이에 당황한 남은이 군사들을 시켜 현장에서 즉결처분(...)당한다. 실제 역사에서는 백주대낮에 참살당하지 않고 정식으로 처형당했으며 이성계가 이를 말리려 했으나 처형당하자 분노했다고 한다.
- 강회계: 공양왕의 사위. 우성범과 함께 남은을 꾸짖다 함께 죽는다.
- 원천석 (장인한): 고려 구신. 이방원을 가르친 적 있다. 이 때문에 이방원이 출사를 설득하러 찾아오지만, 소식을 듣자 산노인 차림으로 몸을 숨긴다. 대사가 한 줄도 없다... 해당 역할을 맡은 장인한 배우는 나중에 유랑 승려(?) 장원심 역으로도 등장하는데 거기서는 대사가 많다...
- 조견 (맹호림) : 조준의 동생으로 조선왕조실록에서는 형과 같이 조선의 건국에 참여하는 것으로 기록되었으나, 조선 중기 일부 사서 및 야사에서는 형과 달리 고려의 충절을 지키는 신하로 알려졌다. 드라마에서는 고려의 충신으로 묘사되었으며, 자신을 설득하기 위해 찾아온 이성계와 형에게 매몰차게 대하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6. 기타
- 무학대사 (박병호[77]): 태조 이성계의 멘토로 잘 알려진 고승. 작중에서도 태조와 같이 다니며 친구이자 멘토로 활약하지만 수발을 드는 동자승이 악동끼가 있어서 무학대사에게 자주 태클을 걸고 무학대사 역시 엄하게 꾸짖는 대신 장난스레 타박을 주는 등 가끔 개그스러운 모습도 연출한다.[78] 태조가 숭유억불을 내세우면서 불교를 탄압한 것에 대해 서운한 감정도 내비치기도 하지만 지나치게 마음에 두지는 않는 편.
- 장원심 (장인한): 성은 장씨지만 원심은 이름이 아닌 일종의 별호라고 보면 된다.[79] 조선왕조실록에도 언급된 바 있는 인물을 모티브로 삼은 듯 하다. 누추한 몰골에 곡차를 밝히는 기이한 승려로 무학대사와도 구면인 사이. 함흥차사 임무를 맡다 불귀의 객이 된 이 내관의 주검을 거둬들인다. 역할을 맡은 장인한 배우는 앞서 원천석 역으로도 등장하였는데 그땐 대사 한마디 없다가 여기서는 걸쭉한 입담을 선보인다.
- 이 내관 (고희준): 친이방원파. 세자빈 유씨 사건 때 조영무와 의논한 적 있다. 1차 왕자의 난 당시 안간힘을 써서 왕자들에게 나가라고 손짓 발짓 몸짓을 한다.
귀엽다태조와 태종 부자가 대립하자 목숨을 걸고 차사를 자처하여 함흥으로 갔으나 희생당한다. 그의 주검을 애써 거둬들인 이가 장원심이다.
- 지나가던 스님 (박용식): 폐세자 이후 거러지패들과 함께 방황하며 떠돌아다니던 양녕대군을 크게 깨우쳐 준 인물. 양녕과 담소를 나눈 후 갑자기 사라졌고, 근처에서 부도탑을 발견했다는 것으로 보아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으로 묘사되었다.
- 먼터무/거러지 임금 (이원종): 조사의 난에서 여진족 추장 먼터무로 나온 후 세자 양녕이 일탈을 할 때 같이 어울리던 시정 잡배로 다시 나와 1인 2역.
여진족 추장 그만두고 조선으로 들어와 거러지들의 왕이 되었다.즉, 먼터무 = 거러지 임금이 아니고, 두 배역은 별개인데, 배우가 같은 인물이라는 것.
- 정진 (차두옥): 정도전의 큰아들. 아버지의 명으로 국경 지방을 돌아보고 오느라 아들들 중 유일하게 화를 면했다. 삼군부로 잡혀왔다가 이방원 앞에서 당당하게 자기 의견을 밝히고 풀려난다.
- 홍 내관 (이종만): 태조 이성계를 모시던 내관. 태조를 향한 충성심으로 무장한 내관으로 이성계가 왕이던 시절부터 태상왕으로 함흥에 있던 시절까지 쭉 함께했다. 함흥차사 사건 때 이방원을 용서하고 돌아가길 간곡히 권하나 번번히 묵살당하였고, 조사의의 난이 진압되자 이숙번 앞에서 분노하는 태조에게 무릎을 꿇고 울며 모든 것은 끝났다고 통곡한다. 이성계가 이방원과 갈등하던 시절에 그 누구보다도 가장 마음고생을 했던 인물.
- 허 상궁 (허진) : 고려 때부터 궐에 있었던 궁녀로 궁궐 예절에 밝다는 이유로 갓 입궁한 선빈 안씨를 모시게 되었으나, 선빈의 비중이 줄어들면서 양녕의 세자빈을 가르치라는 이유로 보직이 변경, 이후 세자빈 김씨를 보좌한다. 모시는 주인들이 하나같이 그렇고 그렇다 보니 마음 고생을 꽤 하는 것으로 묘사되며, 세자빈이 출궁당할 때 함께 쫓겨났다.
- 염 상궁 (서영애): 역시 고려 때부터 궐에 있었던 궁녀로, 신덕왕후가 입궐했을 당시에는 제조상궁이었다. 무안군과 세자 방석의 처소를 중궁전에서 멀리 마련해 놓았다는 이유로 신덕왕후에게 혼나기도 하고 정도전과 세력 다툼을 벌이고 있던 정안군부인에게 협박을 당하는가 하면 정안군부인이 세자빈이 된 이후 그녀의 심복인 복섭이(조 상궁)가 부제조상궁이 되어 사실상 실권을 빼앗기기도 하는 등 허 상궁 이상으로 고생을 심하게 하나, 조 상궁이 출궁당할 때는 물론 그 이후까지 가늘고 길게 나오는 캐릭터.
- 상선 노희봉 (장칠군): 태종 이방원을 모시던 내관. 극중에서는 자막으로 이름이 나오지 않지만, '노내관'으로 불리는 것으로 보아 노희봉임을 알 수 있다.
- 도승지 (이두섭): 개국하는 순간부터 쭈욱 도승지를 맡고 있는 철밥통 인물(...) 실제 역사에서는 몇 번 바뀌지만, 극중에서는 사람이 바뀌지 않는다. 심지어 무인정사 때 쭉 태조 옆에만 있었는데 안 바뀐다! 명시적인 피해라고는 하륜에게 '쓸데 없는 일은 (전하께) 고하지 말라' 라고 가볍게 협박받은 게 전부. 오랫동안 승지는 이 한 사람밖에 안 나오다가[80] 이숙번이 나중에 승지가 되는데, 품계가 같은데다가 엄연히 도승지가 서열이 더 높은데도 이숙번에게 깨갱한다. 태종이 등극하고서야 박석명으로 교체.
- 송 별감 (김진군): 이성계와 강씨를 왕조 개창 이전부터 모시던 하인. 이 때까지는 송 서방이라고 불리다가 태조 즉위 후 별감이 되어 궁궐 업무를 보게 된다. 고위직은 아닌 만큼 비중이 높지는 않지만 약방의 감초처럼 간간이 나온다. 그래도 별감 정도면 상당한 권력을 누릴 수 있던 자리였다. 상당한 위세와 사치를 누릴 수 있어 조선의 오렌지족이라는 시각도 있을 정도. 실제로 그를 본 홍 내관이 부하 내관에게 "일개 하인이 궁내 별감이라니, 출세했네 그려."라고 말한다. 태조 이성계의 일생 내내 곁에서 지키고 충실한 인물.
- 아지 (강기화): 실제 역사에서 정안공주, 즉 태종 이방원의 3녀에 해당하는 인물. 극중에서는 태조 재위 중에 권근과 연합하기 위해 하륜의 조언으로 원경왕후가 들인 양딸으로 나온다. 친척집에서 천애고아로 자랐다고. 그런데 나이로 보면 오히려 1녀 정순공주에 가까워 보인다... 극중 양녕이 태어난 지 얼마 안 되고, 경녕이 갓 잉태된 시점이다. 실제 경안공주는 양녕보다 딱 한 살 많다. 권근의 아들에게 시집가는데, 태조가 사병을 혁파하는 시기에 결혼한 걸로 나온다. 실제로는 1403년에 결혼.
- 최 내관 (김성찬): 대전 내관으로 태종의 명으로 궁내의 각종 정보를 수집하고 다니는 내관으로 소위 프락치. 태종의 밀명으로 양녕대군의 비행을 태종에게 낱낱이 일러바쳤고 화가 난 태종이 양녕대군을 불러오랄 때마다 앞장서서 고소하다는 표정으로 명을 전했다. 그 때문에 양녕은 최 내관을 볼 때마다 따귀를 때리거나 조인트를 깠으며, 양녕의 수발을 들던 노 내관과도 사이가 안 좋았다. 미행 중에 들켜 억지로 술을 먹고 대취해서 자다가 노발대발한 태종에게 목이 날아갈 뻔한 적도 있다. 양녕이 왕이 되면 자신이 무사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짐작하였기에 더더욱 양녕의 비행을 샅샅이 일러바치는 악순환이 계속되었다. 심지어 숙청당한 민무구, 민무질 형제가 누나 원경왕후와 모여 억울함을 토로하자 이것까지 일러바치는 바람에 꼬투리를 잡혀 숙청당하자 분노한 양녕대군에게 언젠가는 죄를 치를 것이라고 일갈당하기도 했으나 험한 꼴을 보지는 않았고 끝까지 그냥 양녕대군에게 미움받는 캐릭터 정도로 남았다. 양녕대군이 폐세자가 되자 태종의 명으로 안부를 전하게 되기도 했으나 자신을 직접 보게 되면 경을 친다는 이유로 지방 수령에게 대신 안부를 물었던 정도.
어떻게 보면 한글창제의 일등공신...
- 내관 노분 (손영춘[81]): 세자 시절의 양녕대군을 모시며 수발을 들었다. 상당히 잘 노는 내관으로 양녕에겐 궐밖 이야기를 꺼내 양녕이 놀아나게 만든 원인제공자. 다만 양녕대군이 본격적으로 방황하기 시작한 이후론 양녕대군을 말렸으나 씨알도 먹히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들켜서 벌로 대신 곤장을 맞는 등 고생도 꽤 했으며, 폐세자가 된 이후에도 양녕대군을 따라 다녔다. 나중엔 양녕과 다른 시정잡배와 어울려 노는 게 내키지 않아 양녕이 놀러가도 노분은 집사 노릇이나 하면서 집에 머무른다,
- 봉지련 (나경미[82]): 양녕대군이 망나니짓을 하기 시작한 초기에 만나던 기생. 원래 천출은 아니었으나 집안이 기울어 기생 일을 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첫 번째로 들켰을 때에는 앞으로는 양녕대군을 만나지 않는 조건으로 비단 10필을 하사받고 도성 밖으로 내쳐지는 데에서 그쳤지만 비단을 내버리고 몰래 한양으로 돌아와 다시 양녕대군과 만나다 두 번째로 발각된다. 태종에게 어떻게든 양녕을 모실 수만 있게 해 달라고 부탁했으나 거절당하고 제주도로 유배에 처해진다. 태종 자신이 말하기를 법대로 하자면 사형에 처해 마땅하겠지만 선처한 것이라고. 원경왕후나 세자빈 등도 양녕대군이 '정신을 차리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한 말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목숨은 건졌으니 양녕이 즉위한 이후에 한양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두 번 다시 양녕을 만날 수 없게 되어 귀양길에 묵은 주막에서 약을 마시고 자결했다. 여담으로 작중에서는 '지련' 이라는 이름으로 자주 불리는데 성이 봉 씨인 것이 아니라 봉지련 자체가 오늘날로 치면 예명 같은 것이었으므로 오류라고 할 수 있으며, 동명이인인지는 알 수 없으나 실록에는 세종 5년에 다시 등장한다.
- 해수 (서동수): 양녕대군이 명나라에 갔을때 영락제에게 선을 넘어버리자(...) 당황스럽게 쳐다본다.
- 이시하 (이춘식): 조사의의 난에 참전한 퉁호이하오(여진추장)에게 두만강 이북으로 철군하라는 명을 전달한다. 여담으로 그는 나중에 영락제의 명을 받고 건주위를 감시하게 된다.
대왕 세종에 나온 왕진의 책사 해수가 그를 모티브로 한 인물이다.
- 소 사다모리 (박경득): 극중에선 도도웅와로 나온다.
종정성이 더 낫지 않나?이종무가 대마도 정벌을 할때 항복하며 이종무의 물음에만 답한다.
- 곽선(곽경환): 어리를 첩으로 둔 대감. 나이는 많지만 돈은 많은 듯 어리는 이 혼인을 만족스러워 한다. 그러나 양녕이 어리를 눈여겨보고 곽선의 집에까지 찾아와 어리를 내놓으라 하자 쩔쩔매면서 양녕의 장인인 김한로에게까지 찾아가 하소연하지만 김한로라고 뾰족한 수가 있을 리 없고, 결국 어리를 내놓을 테니 다른 건 요구하지 말라는 약조를 받고 어리를 양녕에게 내놓는다.
- 이오방(안병경): 악공으로 양녕대군의 세자시절 함께 어울려 다니며 각종 비행을 저지른다.[86] 태종에게 한 번 들켜서 곤장을 늘씬하게 맞으며 '이번이 두 번째옵니다'라고 거짓말을 하여 한 번은 용서받는다. 하지만 궁궐의 개구멍으로 드나들며 양녕과 어울리다가 원경왕후에게 제대로 걸려 역시나 궁둥이가 걸레짝이 됐다.[87] 원경왕후는 세자와 어울리는 패거리만 벌주고 세자는 적당히 훈계하는 정도로 자기 선에서 얼버무려 버렸다. 이후로는 조심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술김에 '궁궐에서 딱 한 잔만 더 하자' 라고 객기를 부리다가 발각되어 사형을 당한다.
- 구종수(민경진): 역사상으로는 종3품 선공감부정이었으나, 드라마에서는 한량처럼 묘사된다. 이오방과 행적이 거의 같다.
- 조 상궁(이효정[88]): 원경왕후가 잠저 시절에 데리고 있던 하녀로 이름은 '복섭'이다. 덕실이 아이를 잉태하면서 민씨가 덕실을 해하려 친정인 민씨 집안에서 안잠자기[89]로 데려온 인물이다. 원경왕후 못지않게 냉혹무비한 성격으로 독약으로 덕실의 아기를 낙태시키려 하였고, 무사히 아이가 태어나자 추운 겨울밤에 얼어죽도록 마당에 팽개쳐두고 덕실이 아이를 데려가지 못하도록 감시하기도 했다. 원경왕후가 덕실을 작은댁으로 인정하면서부터는 데면데면한대로 지내다가 태종이 왕이 되면서 궁녀가 되어 궁궐로 들어온다. 들어오자마자 원경왕후의 빽에 힘입어 무려 부제조상궁으로 들어오는 엄청난 특혜를 받았다.[90] 말이 부제조상궁이지, 뒤를 봐주는게 누군가를 생각하면 실권은 제조상궁 이상이다.[91] 이후 원경왕후가 선빈 안씨를 벌주려 하였을 때 태종이 원경왕후의 수족을 모두 꺾으면서 궁궐에서 쫓겨난다.
낙하산의 최후
- 신 나인(김미성[92]): 원경왕후가 잠저 시절에 데리고 있던 하녀로 이름은 '정실'이다. 태종이 왕이 되면서 궁녀가 되어 궁궐로 들어온다.[93] 덕실이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아무 생각없이 발설해버려 원경왕후와 갈등을 겪게 만드는 등 수다스럽고 푼수떼기 속성의 인물이지만 덕실을 "언니"라고 부르며 무척 따르고 이방원과 민씨를 정성스럽게 섬긴다. 이후 원경왕후가 선빈 안씨를 벌주려 하였을 때 태종이 원경왕후의 수족을 모두 꺾으면서 궁궐에서 쫓겨난다.
- 강 상궁 (배미자[94]): 원경왕후가 사저에서 데려온 정실이가 태종의 진노로 쫓겨난 이후 빈자리를 채운 상궁으로 109회에서 밝힌 바로는 본래 선빈 안씨 휘하의 상궁이었다. 다만 정실이는 나인이지만 이쪽은 상궁이다.
- 금녀(문수인(1973): 원경왕후가 궁궐을 염탐하기 위해 포섭하였던 궁녀로 본래 "김 상궁"이었다. 세자빈 유씨와 내관 이만의 일을 군부인 민씨에게 알려서 유씨가 폐위되도록 만든 장본인이다. 이후 염탐질을 들켜서 궁궐에서 쫓겨나 이방원의 집 앞에 쓰러져 있는 것을 덕실이 거두어 자신의 종으로 삼는다. 원경왕후는 스파이짓을 하다 들킨 것 때문에 자신들의 입지가 좁아졌다며 내쫓으려 하지만 덕실의 간청으로 거둔다.
하지만 호랑이 새끼를 들인 것이었다쫓겨나기 전에 고문받아서 몸상태가 아주 안좋았고 갈 곳도 없었던 상황이라 덕실이가 생명의 은인. 그래서 진심으로 충복이 된다. 덕실에게 왕가의 예절을 가르쳐주고 복섭이 민씨의 명령, 혹은 심술로 덕실을 괴롭힐 때마다 방패막이가 되어 준다. 신덕왕후의 아들이 본처의 자식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세자가 되었던 것처럼 덕실의 아들도 훗날의 세자가 될 수 있을지 모른다면서 꾸준히 민씨와의 사이를 이간질한다. 이후 이방원이 왕이 되면서 다시 궁궐로 돌아가 효빈 김씨(덕실)를 모시는 궁녀가 되었다.
- 어의 (박정웅): 용의 눈물 내내 등장하는 어의로 이름은 밝혀지지 않는다. 여기까지만 본다면 그냥 평범한 엑스트라 캐릭터겠지만, 굳이 문단까지 작성된 것은 한국 사극을 통틀어 전무후무한 수준의 킬 수를 자랑하는 어의이기 때문이다. 이 사람이 어느 인물을 진찰하거나 치료하려고 하면 그 사람에게는 확실하게 사망 플래그가 생기며, 높은 확률로 병사한다. 그 진료 라인업은 정말 비범하기 짝이 없어서 신덕왕후, 이성계, 성녕대군, 원경왕후, 정종, 이방원(태종)까지 거쳐가지 않은 사람이 없다. 이 사람이 진찰한 사람들이 다 왕실의 주요 인물이라는 점을 보면 설정상으로는 뛰어난 실력을 지닌 어의일 가능성이 높은데, 정작 진찰하고 치료하는 사람 마다 줄줄히 죽어나간다. 사극에서의 클리셰와 달리 어의가 의료사고로 처벌된 사례는 조선왕조실록 전체를 통틀어 몇 건 없는 사례이니 진찰한 왕실 사람들이 죽어나갔다고 어의가 파직되거나 처형되지 않은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보통 의례적으로 왕이 승하하거나 했을 때는 책임을 지고 사직으로 물러나는 경우가 많았음에도 이 인물은 작중 끝까지 어의 자리를 유지한다. 때문에 방영당시 및 종방 특집프로그램에서 저승사자 드립이 나왔으며, 이후에도 왕실의 비선실세라던가 숨겨진 최고 권력자 등의 개드립이 나돌기도 했다.
한술 더 뜨는 점은 매번 하는 멘트인데, 대표적인 것으로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마음의 병을 어떻게 고치겠습니까?", "이 병을 앓으신지는 오래되었습니다" , "지금의 의술로는 무리이옵니다." 등등이 있다. 때문에 종방 특집에서 전유성은 '어의가 아니라 저승사자.'라고 디스했고, 해당 배우에게 몸에 좋은 약이 무엇이냐 물어보기도 하였다. - 한상경(남영진)
- 사미승(최호중)
- 강민석
- 김태형
- 황덕재
- 이서연
- 한성식
- 이승호
[1] 1회 오프닝에 얼굴과 함께 배우 이름이 나온 인물들로 한정했다.[2] 여인천하에서 엄상궁 역으로 화제가 되었던 배우다. MBC 4기 공채 성우 출신. 2006년에 심혈관 수술 후유증으로 별세.[3] 이성계를 뒤늦게 만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와줘서 고맙다라고 말하는 대인배적인 모습을 보여줬다.[4] 이는 신덕왕후가 자신의 자식을 왕위에 올리고 싶은 욕심을 부렸던 것에 대한 죄책감과 정실 부인으로서의 지위를 위해서 이성계가 신의왕후에게 갈 법한 묘사를 보이면 얼굴빛이 바뀌며 다른 일로 유도해서 막았던 등 여러 생각이 겹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신의왕후는 오히려 신덕왕후에게 자신의 남편과 자식들을 잘 부탁한다고 부탁하고 떠날 정도로 대인배다.[5] 태조 왕건에서 도우 스님으로 등장. 피자의 생명은 도우 드립 짤방의 그 스님 맞다...[6] 이복형 이성계가 늙고 쇠약해져 임종을 맞이할 때도 여전히 정정한 모습인 터라 같은 해에 사망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7] 능력을 제쳐두고서라도 왕위계승 서열 1위는 당연히 왕의 적장자가 되는 것이 상식이다. 다만 정도전은 이미 마음 속으로 그를 배제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왕실의 장자'라는 가장 우월한 조건에도 불구하고도 '고려의 유신'으로 봐도 될 정도인 그의 성향 때문이었다.[8] 영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 성인 한병태 역으로 출연했던 배우다. 태조 왕건 촬영 중이던 2000년 11월 7일 지병이었던 간암으로 향년 46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9] 대표적으로 태종이 후궁을 들이는 문제로 원경왕후와 심하게 충돌했을 때, 보다 못해서 "넌 자식도 많잖아. 뭐하러 후궁을 또 들이려고 그러냐? 나는 (정실인 정안왕후 김씨와의 사이에) 자식이 없어도 젊은 날의 정으로 서로 아끼며 잘 살고 있다."고 한마디 했었다.[10] 사실 우유부단한 수준을 넘어서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하나부터 열까지 아우인 이방원의 눈치를 보는 속된 말로 거진 마마보이 수준으로 묘사되는데, 아무리 각색을 좀 했다지만 작중의 이방과의 모습은 실록의 기록과 비교하면 작중 앙녕대군에 가한 미화만큼 괴리감이 심할 정도다.[11] 태조 왕건에서는 대주도금 역할을 했다. 유순한 성격의 정안왕후와는 정 반대로 여걸 역할[12] 그냥 '좋게 보일 리가 없다' 정도가 아니라 '원자 운운하고 세자 운운한다는데 어찌 된 일이냐' 라고 정종에게 따지기까지 했고, 정종은 정안왕후에게 이 일을 이야기하며 세자가 자신을 '겁박했다' 라는 표현을 썼다.[13] 태종이 정종을 배려하여 그 아들들을 절에서 다시 불러올 때 정안왕후가 달려나가는 장면이 있는데, 그녀 이상으로 기뻐했으련만 등장이 없다.[14] 실제로는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을 텐데 두 아들은 잘 살았으며, 장남 덕천군의 후손들은 사실상 중종의 후손 맥락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작중 전개를 위한 야사를 넣은 내용 때문에 동자승으로 잠시 가게 된 것이다.[15] 여인천하에서 파릉군, 야인시대에서 김좌진으로 유명하며 이방원 역 유동근과는 연개소문 배역을 맡은 적이 있었다. 유동근은 SBS에서 방영한 드라마 연개소문에서, 최동준은 대왕의 꿈에서 연개소문을 맡았다.[16] 태조 역시 그의 사망소식을 듣고 슬퍼하는데, 신의왕후 자식들 중에서는 가장 마음이 여렸던 이로 부르며, 무인정사 이래로 원망스러워 보지를 않았지만, 죽은 다음에는 그런 대우를 했던 것에 후회하는 것으로 보인다.[17] 후에 정도전에서도 조민수로 등장, 유동근(이성계)와는 또 정적으로 만나 당연히 여기서도 패배자였다. 삼국기, 조광조, 명성황후에서도 유동근과 함께 나온다.[18] 그래서 인지 신덕왕후 는 이방원과 마찬가지로 반드시 없애야 할 인물로 보고 있었고, 정도전 같은 인물들도 없애야 한다면 이방원과 방간은 반드시 죽여야 할 것으로 여길 정도.[19] 심지어 김경응은 51회에서 정도전 측의 병사, 노년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태조 왕건 역으로 1인 3역을 맡았다(...). 드라마 역사상 가장 나이 차가 큰 1인 다역[20] 이후 태종 이방원에서 이숙번 역으로 출연한다.[21] 한명회에서는 정순왕후 역을 맡았는데, 당시 단종 역은 무안대군 역을 맡은 정태우.[22] 들판에 돌아다니는 녀석들을 사냥한 것도 아니고 백성이 팔려고 장터로 가져온 닭을 활로 마구 쏘아 죽였다. 이 일로 대로한 태조에게 종아리를 맞는다.[23] 이 소식을 들은 원경왕후가 나중에 신덕왕후에게 투호 세트를 보내 화병을 확 돋운다(...)[24] 담당 PD가 해당 드라마를 처음 기획할 당시 송윤아가 이 배역이었으나, 영화 촬영 중이라 삭발이 불가능해 거절했고 송윤아는 이숙번 부인 역으로 나중에 합류했다.[25] 실제로도 불자이며, 삭발 역시 진짜로 했다. 비구니로 출가하기 위해 삭발하는 절로 나온 장소는 실존하는 순천시의 선암사고, 출연한 스님들도 실제 선암사 소속 스님들이다. 김나우의 부모님은 직접 촬영 장소를 찾아 그 모습을 지켜봤다.[95][26] 태종 이방원에서는 왕실의 사돈인 심효생으로 등장하는데, 본작에서는 정태우가 맡았던 이방번과 같이 죽지만 태종 이방원에선 정태우가 맡은 이숙번에 의해 죽는다.[27] 재현이 탄탄하기로 유명한 용의 눈물에서 왜곡이 제일 심하다는 게 이 드라마 최고의 아이러니로 보는데, 다만 양녕대군 세자양보설은 조선 후기에는 정설이 되어 실록에도 등장한다. 사실 이환경은 1995년에 나온 실록 CD롬을 적극 참고하여 용의 눈물을 썼기 때문에 왜곡임을 알고도 양녕을 더 매력적으로 그려내고 싶어 월탄이 종합한 '양녕대군 양위론'을 선택했을 가능성이 높다. 당시에도 정설이 아니라는 점은 알려져 있었는지 종영 후에 방영된 특집 방송에서 어느 방청객이 작가 이환경에게 이 부분을 문제삼으며 강하게 비판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환경이 "사료를 보면, 양녕이 신념이 굳고 자기 주관이 강한 인물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단순 양아치는 아니었을 것이다."라 반론하자 수그러들었다. 한편, 이덕일이 이희근과의 공저라 1999년에 출간한 <우리 역사의 수수께끼>에서도 '양녕대군의 양보설'을 정면 부정하고 실제 비행을 저지른 것이 맞다고 저술한 것을 보면 당시에도 양녕대군의 실체가 아주 안 알려진 것도 아니다. 이 책도 고대사 등에서 훗날 이덕일의 악명의 단초가 될 국수주의적 저술이 있어 추천할 책은 아니지만, 그래도 정상적인 내용도 일부 있었고, 양녕대군의 실체도 그 중 하나이다. 한편, 이 드라마의 원작인 박종화의 다른 소설인 <세종대왕>도 양녕대군 왕위 양보설에 입각해 집필하였는데 이걸 용의 눈물도 그대로 반영했다. 다만 원작은 이성계, 이방원, 정도전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데, 용의 눈물은 그들의 어두운 점도 부정하진 않지만 기본적으로 각자의 신념을 가진 인물들로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점에서, 양녕대군 묘사와 차이있다. 양녕대군의 실체에 대해 제대로 알려지기도 전이거니와 이 편이 극적 묘사를 하기에 더 좋아서 원작 묘사를 그대로 가져온 듯 하다. 결과적으로 유동근과 이민우의 소름끼치는 연기 대결로 극적 재미와 시청률이라는 측면에선 대성공을 거두었지만 후대의 비판도 받게 되었다.[28] 108회에서 꾸짖었을 때 태종의 목소리가 컸는지 밖에 있던 노 내관과 정만쇠 등이 놀라기도 했다.물론 선빈은 세자가 중전(원경왕후)에게 한 말을 전하면서 세자를 칭찬하려는 의도였다.[29] 본작과는 달리 변명의 여지가 없는 개망나니였던 실제 양녕대군도 붓글씨만큼은 잘 썼다고 한다. 양녕이 봉지련과의 스캔들로 인해서 근신 중일 때, 태종이 도승지로부터 세자가 붓글씨를 아주 잘 쓴다는 얘기를 듣고, 그 실력이 궁금해서 대전으로 불러 몇 글자를 쓰게 했는데, 그 실력이 가히 눈이 휘둥그레질 지경이었던지라, 태종은 세자에게 "그래그래, 남자가 젊었을 때 여자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지. 암! 그런데 그런 건 나중에 네가 보위에 오른 뒤에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 지금은 그저 공부에만 전념해주면 좋겠구나."라면서 엄청 기뻐하는 모습을 보였고, 이후 신하들을 불러 세자가 쓴 글씨들을 보여주며 자랑을 하는가 하면, 경회루의 현판도 신하들이 보는 앞에서 세자에게 직접 쓰게 하는 등, 철혈군주였던 태종이 제대로 된 아들바보 인증을 하기도 했다.[30] 야인시대에서 털보 역을 맡았다.[31] 아무리 양녕대군이 서브 주연급이라 해도 충녕대군은 한국사 최고의 성군으로 꼽히는 세종대왕이고 학문 깊기로도 유명하니 조금이라도 모자라게 보이는 묘사가 불가능하고, 성녕대군은 어리니 효령대군이 희생양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실제는 아니지만 야사에서도 자기가 다음 세자가 될 줄 알고 헛물 켜다 양녕에게 한소리 듣기도 하고. 다만 극중 효령은 왕위에 욕심은 없어서 해설로도 그런 야사는 후세에 만들어진 것 같다고 덧붙인다.[32] 같은 작가의 무풍지대와 그 드라마를 사실상 리메이크한 야인시대 자유당 편에 등장하는 양녕대군의 후손 이승만과 효령대군의 후손 이기붕의 행적을 볼때 먼 훗날의 일을 암시하는 것으로 보인다.[33] 세종이 왕자 시절부터 문자 창제를 생각했다는 증거는 없지만, 세종의 최대 업적인 만큼 이렇게라도 언급을 넣은 것으로 보인다.[34] 그것도 그럴게 애시당초 이방원이 민씨 일가들을 쓸어버리고 그 뒤에 사돈인 심온 일가까지 갈아버린 이유는 다름아닌 왕권이 외척에 휘둘리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중전을 폐해버린다면 분명 또 다시 새 중전을 세워야 하고 또 다시 외척들 견제를 위해 다시 또 숙청을 해야하는데 이렇게 되면 끝이 없다. 거기에 이방원 자신의 나이도 있으니 여기서 끝내야 하는 것이다.[35] 본명은 도지원. 경빈 박씨의 그 분과는 동명이인인지라 도지영으로 활동하였으나 다시 임서연으로 개명하였다.[36] 이 드라마를 시작으로 왕과 비의 혜빈 양씨, 태조 왕건의 강비로 KBS 대하드라마에 3연속 출연한다.[37] 가령 태종이 양녕대군을 세자로 책봉할 때, 태종이 효빈 김씨를 찾아가 세자 자리를 운운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경녕군에게 있어 분수에 맞지 않은 자리라며 정중하게 거절했고, 태종 역시 그 말 자체가 효빈 김씨에 대한 시험이었음을 드러냈다.[38] 태종이 선빈과 처음 만난 곳도 이숙번의 집이었다.[39] 이숙번도 태종의 장남을 원자로 책봉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함으로써 갈등이 무마되는 듯 했다가, 다시 민씨 가문을 견제해야 한다는 이숙번의 주청이 올라가면서 재개된지만 그러나 적자를 세운다는 명분으로 아버지에게 칼을 겨눴던 태종은 처음부터 후궁 소생은 고려조차 하지 않았으며, 장남 이제가 원자로 책봉된 후 이 점을 확실하게 못박아 놓는다. 이후 비중이 감소하다가 효빈 김씨와 같은 시기에 극에서 퇴장하며 퇴장이후 선빈안씨의 지밀 상궁은 세자빈의 지밀상궁으로 옮겨간다.[40] 당시에는 예명인 '허민'으로 출연했다.[41] 소빈 노씨는 다른 엑스트라 배우가 맡았으며 132회의 후궁 간택 장면에서 나온다.[42] 태조 왕건에서 추허조 역[43] 이저로 바꾼 것은 태종 대의 일이고, 그 이전에는 '이백경', 이후로는 '이애'라는 이름을 썼지만, 드라마에서는 시종일관 '이저'로 나온다. 시청자의 혼동을 방지하기 위해 개명을 잘 반영치 않는 경우가 많다. 이성계가 '이단'으로, 이방과가 '이경'으로 개명했지만 그게 반영된 사극은 없다.[44] 뒷날 야인시대에서 홍만길의 중년 시절을 연기하는 배우다.[45] 국왕의 호위대장. 현재의 청와대 경호실장에 해당. 양녕대군이 비행을 저지를 때 세자궁에 잡인들이 들어오거나 세자가 몰래 나가는 것을 못 막은 걸로 사헌부나 사간원의 탄핵을 받을 법도 했는데, 품계가 깎이거나 하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았다. 아무래도 가공인물이다 보니 그런 듯.[46] 그 외에도 이방원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공이 많은지라 태종의 신임이 깊기도 하였다. 그래서 태종 이방원이 세자의 비행을 못 막았을 때에는 불같이 호통을 치거나 잔소리만 했을 뿐이지 내금위장의 직책을 그대로 유지한다.[47] 물론 여기에는 자신의 딸의 신변이 걱정되었기도 했었을 것이다.[48] 해당 장면은 세자인 양녕을 찾으러 한양을 최 내관과 같이 한성을 수색하다 양녕과 마주치던 씬이다. 이때 같이 있던 최 내관이 옆에서 깐족 대는데 감히 세자 앞에서 깐족대는 모습이 마음에 안들었는지 조용히 하라면서 싸대기를 날려버린다.[49] 강상인도 극중에 나오지만 행적을 정만쇠가 가져가는 바람에 외척 숙청에 재수 없이 말려든 신료들 중 하나로 나온다.[50] 1화가 위화도 회군이라는 큼직한 사건을 다루느라 이방원의 집안을 묘사할 여유가 없었기 때문인 듯하다.[51] 원래 경순공주 역으로 내정되었지만 개인사정으로 이숙번 부인으로 출연하게 된다.[52] 당시 원경왕후는 훗날의 효빈을 비롯한 집안 식구들을 불러모아놓고 은장도를 주면서 이방원이 패하면 자결하라고 명한 상황이었는데, 남장을 한 정씨가 함께 결과를 기다리겠다고 찾아온다.[53] 당시 이숙번은 자신이 유배 정도로 끝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뒤이어 태종과 단 둘이 만났을 때 죽여 달라고 간청하기까지 했다.[54] 태조 왕건에서 유금필 역[55] 연개소문에서 강이식 역, 태조 왕건에서 '수달' 능창 역, 무인시대에서 경대승의 측근 김자격 역[56] 태조 왕건에서 공직 역[57] 가만 있던 걸 조영무가 성대감이라면 태상왕의 미움도 안 샀다고 떠미는데, 가기 싫었지만 자기가 생각해도 대신 중 갈만한 사람이 정말 자기 뿐이라 결국 간다.[58] 여담으로 처형당할 때 막걸리 때문에 NG가 난 적이 있었다.[59] 무인시대에서 이의민의 아들 이지영 역[60] 무인시대에서 문극겸 역[61] 태조 왕건에서 경순왕 역[62] 태조 왕건에서 신덕 역, 무인시대에서 전존걸 역[63] 태조 왕건에서 태조의 3비 신명순성왕태후의 아버지 유긍달 역[64] 태조 왕건에서 김효종 역[65] 태조 왕건에서 최치원 역[66] 태종에게 병세를 설명하며 '몸 안에 혹이 생겼다.'고 하는 걸 보면 암인듯 하다. 평소 술이 과하다는 태종의 언급이나 즉을 무렵에 술을 즐겨 마셨다는 나레이션의 설명을 감안하면 간암이었을 가능성이 높다.[67] 여담으로 108회에서 109회로 넘어가는 동안 익안대군, 조준, 박석명 순으로 드라마에서 하차하는데, 실제로는 익안대군이 1404년, 조준이 1405년, 박석명이 1406년에 사망했다. 여기에 더해 한양 재천도 과정에서 무학대사도 1405년에 입적했는데, 이는 110회의 나레이션으로 갈음했다.[68] 사실 심온의 옥사를 다루지 않는다면 굳이 등장할 이유가 없는 것이 맞기도 하며, 등장인물이 워낙 많은 탓에 일찍부터 나왔더라도 비중이 주어지기는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당장 태종의 잠저 때부터의 수하로 태종 재위기에 군사 문제에 깊이 관여했던 이부 같은 경우, 태종 즉위도 아니고 1차 왕자의 난 이전에 퇴장했다.[69] 당시 도승지였던 조말생이 이지성은 이미 죄를 받아 유배 조치되었는데 죽일필요까지는 없다고 건의했으나... 결국 태종의 서슬퍼런 명령에 결국 그 뜻대로 행해야 했다. 여담으로 실제 역사에서 이지성은 귀양 8년 만에 사약이 아니라 목이 베이는 참수형을 당했다.[70] 여인천하에서 간신 심정으로 나온 배우다.[71] 공민왕의 젊은 부인이었기에 극 중 나이는 많아봤자 3~40대였을 것으로 추정되나[96], 극에서는 고려의 마지막을 지킨 태후임을 강조하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그냥 출생년도를 잘못 알았는지 원로배우가 역을 맡았다. 즉 재현 오류...[72] 태조 왕건에서 강장자, 즉 강비의 친정아버지이자 궁예의 장인 역[73] 아들 남성진은 정도전에서 공양왕, 태종 이방원에서는 하륜으로 나왔다.[74] 이기영(배우)와는 동명이인[75] 이후 배우는 부활하여(...) 무인정사에서 이방원의 살생부를 읽는 역할로 재등장한다. 정도전에서는 우왕의 내관으로 등장하며, 태종 이방원에서는 태종의 내관으로 등장.[76] 이분은 일반 병졸, 이방간의 아들 이맹종 역으로 1인 3역을 했다. 정도전에서는 김저 역을 맡았다.[77] 정도전에서도 같은 배역으로 나온다.[78] 이 동자승은 작품 후반부에 장성한 모습으로 나오는데, 아무래도 무학대사도 퇴장할 때가 다 된데다 청년 모습으로는 이런 캐미가 영 맞지 않았는지 얼마 안 가 공기화되었다(...).[79] 이와 유사한 인물로 이퇴계나 이율곡 등을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80] 등장하기는 살생부에게 올랐다가 죽은 좌부승지 노석구가 반짝 나오긴 한다. 바로 죽지만...[81] 80년대 영구와 함께 바보 캐릭터의 양대산맥이었던 칠득이를 연기한 배우.[82] 같은 작가의 작품 야인시대에서 정진영의 공산당 동지이자 연인으로 나오는 김해숙 역을 맡은 배우. 봉지련과 김해숙, 둘 다 사랑하는 사람과 맺어지지 못하고 최후를 맞이하는 공통점이 있는데, 차이가 있다면 봉지련은 사인이 음독자살인 반면, 김해숙은 동지인 김천호에게 팀킬을 당했다는 점.[83] 당시 본명인 이혜련(李慧蓮)으로 출연했다.[84] 하륜이 명나라에 갔을때, 양녕대군이 명나라에 갔을때[85] 태조 왕건에서 은부 역으로 출연했다.[86] 다만 태종의 후궁 간택을 보고 생각없이 말하는 구종수에게 쓴소리를 날린다.[87] 이 때 촐싹대며 양녕과 어울리다 “중전마마 납시오”란 내관의 말에 정신줄 놓고 “납시오~”라며 따라하는 패기를 부렸다가 깜짝 놀라 입을 틀어막고 땅바닥에 처박혀 쩔쩔매는 모습이 압권.[88] 이효정(남배우), 이효정(여배우) 둘 다 아닌 동명이인.[89] 여자가 남의 집에서 먹고 자며 집안일을 도와주는 행동. 즉, 숙식제공 가정부를 의미한다.[90] 보통 정식으로 궁에 들어오면 상궁까지 가는데 최소 30년이 필요하다. 물론 제조상궁 급의 고위직까지 올라가는 사람은 그 중에서도 소수.[91] 이 때문인지 태종에 의해 원경왕후의 수족들이 쫓겨날 때 그간 바지사장으로 살며 설움을 겪었을 제조상궁에게 직접 끌어내라는 말을 듣고 질질 끌려간다(...).[92] 푼수에 못생김 캐릭으로 등장하지만 이래봬도 슈퍼 탤런트 출신 배우로 현재도 영화배우로 활동을 하고 있다.[93] 복섭이 무려 부제조상궁으로 들어오는 와중에 이쪽은 그냥 나인으로 들어오는 푸대접을 받았다.[94] 1994년 49세의 나이로 사망한, 같은 여말선초를 다룬 KBS 대하드라마 개국에서 이지란 역으로 출연했던 배우 강민호의 아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