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오백년 시리즈 | |||
{{{#!wiki style="color:#fff;margin: 0 -10px -6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 추동궁마마 우왕 ~ 태종 AD 1388~1418 | 뿌리깊은 나무 세종 AD 1418~1450 | 설중매 문종 ~ 연산군 AD 1450~1504 |
풍란 중종 ~ 명종 AD 1504~1565 | 임진왜란 선조 AD 1590~1598 | 회천문 선조 ~ 광해군 AD 1602~1624 | |
남한산성 인조 AD 1627~1642 | 인현왕후 숙종 AD 1679~1702 | 한중록 영조 AD 1725~1779 | |
파문 정조 AD 1782~1801 | 대원군 철종 ~ 고종 AD 1849~1897 | }}}}}}}}} |
<colbgcolor=#94153E><colcolor=gold> |
시리즈 총정리 영상 |
[clearfix]
1. 개요
"역사(歷史)는 죽어있는 과거(過去)만의 기록(記錄)이 아니라 살아서 흐르는 맥락이다"
- 〈조선왕조 500년〉의 마지막화 〈대원군〉 편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문구
- 〈조선왕조 500년〉의 마지막화 〈대원군〉 편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문구
1983년 3월 31일부터 1990년 12월 23일까지 (햇수로) 8년간 방영되었던 MBC의 사극.
조선 시대가 배경인 총 11개의 작품이 "조선왕조 500년"이라는 큰 시리즈 아래 묶여 있다. MBC의 연작 사극으로는 전작인 〈여인열전〉과 〈거부실록〉이 있었고, 현대 사극으로는 "공화국 시리즈"가 있었다.
극본은 신봉승, 연출에 유길촌, 이병훈[1], 김종학 PD. 당시 대부분의 역사 소설이 고증오류가 빈번했던 현실 속에서 최대한 제대로 된 작품을 만들겠다며 나름 고증에 노력을 기울였다. 이를 위해 그 당시에는 제대로 된 번역본이 없었던[2] 《조선왕조실록》을 일일이 번역해가며 했을 정도. 하지만 지금보다 사료 접근에 어려움이 많았던 시대적 한계로 인해, 실제로는 여전히 상당부분을 야사집으로 유명한 《연려실기술》에 의존했으며,[3] 때문에 고증오류가 빈번하다.
다루는 시간대는 1387년(고려 우왕 13년)부터 1897년(대한제국 고종 광무 1년)까지, 정확히 510년 간이다.
조선이라는 하나의 왕조 전체를 모두 담았고 명목상의 방영 기간이 길어서 대한민국의 사극 촬영 역사를 총집대성한 작품으로 꼽힌다. 그런만큼 질적 수준을 떠나서 문화재에 준한 대우를 해줘도 무방한[4] 작품이다.[5]
그러나 2000년대 이후 이상할 정도로 잊혀진 드라마가 되었는데, <인현왕후> 등 일부를 빼곤 재편성이 전무한 데다 2016년에야 MBC Archive에서 유료로 서비스할 정도로 온라인 공개가 늦었고, <뿌리깊은 나무>의 경우 유실된 회차가 있기에 그런 것으로 보인다. Wavve에는 한중록편이 올라와 있다. 컬러TV 시대가 열리면서 본격적으로 조선시대 전체를 영상화하여 현대 사극의 모든 요소를 집대성한 작품이란 중요성과 함께, MBC의 전성기를 상징하는 대작이자 걸작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한다면, 제작 주체인 MBC에서 마땅히 적극적으로 리마스터링하여 재방영 및 OTT 공급할 법도 할텐데, 소홀히 취급하고 있는 것이 아쉬울 따름.
내레이션은 총 3명이 맡았다. 〈추동궁 마마〉부터 〈남한산성〉까지는 양지운, 〈인현왕후〉부터 〈파문〉까지는 유강진, 〈대원군〉은 송두석이 담당했다. 또한 타이틀 글씨는 초기에 윤길중이 맡았다가 중반에는 남촌 강희천(1920~1993)으로 바꿨다.
2. 연대기
2.1. 1부 〈추동궁마마〉
방영 시기 : 1983년 3월 31일 ~ 1983년 7월 1일본격적인 드라마의 시작기이자 조선왕조 500년 역사의 시작기
- 주인공: 태조, 태종
- 중점인물: 원경왕후 민씨, 정도전, 이숙번, 칠점선
태조 이성계부터 태종 이방원까지의 이야기. 다루는 시간대는 1387년(고려 우왕 13년)부터 1418년(태종 18년)까지 총 31년이다. 고려 우왕 말기부터 조선 세종의 등극까지 그렸다.
'추동궁 마마'는 태종의 부인인 원경왕후를 일컫는 말로 김영란이 열연하였다.[6] 추동궁은 개성 추동(楸洞)에서 유래하였으며 태조가 즉위 전 살았던 '잠저(潛邸)' 로 조선 건국 후 증축하여 경덕궁(敬德宮)으로 명명하였다[7]. 경희궁의 옛 이름 경덕궁(慶德宮)과는 한자가 다르다. 조선 초기 국왕의 개성 순행시 숙소로 이용하기도 하였는데 임진왜란 당시 왜군의 분탕질로 소실되었다. 김무생이 이성계(용의 눈물에서도 이성계였다.), 이정길이 이방원[8], 정도전은 이호재, 이숙번은 김희라가 열연했다. 방영 당시 한동안 "이 나라의 모든 악업은 내가 짊어지고 갈 테니, 주상은 성군의 이름을 반생에 남기기로 하시오"란 대사가 나와 유행하기도 했는데, 이는 작가의 전작 〈연지〉와 훗날에 나올 〈용의 눈물〉도 비슷하다[9]. 그리고 민무구-민무질 형제는 진짜 역적질 비슷한 발언 하다가 민제에게 혼나고 유배되는 걸로 처리했다.
이 시기에 대응하는 다른 드라마로는 MBC의 〈연지〉, KBS 〈개국〉, 〈용의 눈물〉, 〈정도전〉, 〈태종 이방원〉, SBS에서는 〈대풍수〉, 〈육룡이 나르샤〉[10]등이 있다.
방영시간대는 목, 금요일 밤 10시 10분이었으며 2020년 1월 8일부터 MBC ON에서 디지털 리마스터링을 거쳐 방영됐고, 일본에선 2010년 어크로스와 브로드웨이를 통해 <태종대왕 ~조선왕조의 주춧돌~(太宗大王 -朝鮮王朝の礎-)>이란 제목의 DVD로 나왔다. 다만 오프닝 음악은 KBS 〈장희빈〉의 BGM을 썼다.
2.2. 2부 〈뿌리깊은 나무〉
방영 시기 : 1983년 7월 8일 ~ 1983년 12월 12일- 주인공: 세종
- 중점인물: 소헌왕후, 황희, 김종서, 장영실
세종대왕의 치세. 다루는 시간대는 1418년(세종 즉위년)부터 1450년(세종 32년)까지 총 32년이다.
한인수가 세종, 김영애가 소헌왕후, 이묵원[11]이 황희로, 전운이 김종서로 출연하였다. 또한 길용우가 장영실로, 이미영[12]이 사방지 역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한글 창제를 비롯한 세종대왕의 업적들과 그의 인간적 고뇌를 자세하게 보여주었다. 하지만 시청률은 낮았다. 그래서 방송시간대를 변경하기도 했다.
이 시기에 대응하는 다른 드라마로는 동명의 제목인 SBS 〈뿌리깊은 나무〉와 KBS의 〈대왕세종〉 , 〈장영실〉 등이 있다.
추동궁 마마와는 다르게 주1회 방영했으며 방영시간대는 처음에는 금요일 밤 10시 10분이었으나 개편으로 월요일 밤 10시 10분으로 바뀌었다. 결방/방송연기 횟수는 총 5회.
2.3. 3부 〈설중매〉
방영 시기 : 1984년 1월 9일 ~ 1985년 2월 25일[13]- 주인공: 인수대비
- 중점인물: 세조, 한명회, 유자광, 연산군
방영기간이 1년을 넘은, 시리즈의 부활 격인 작품. 작 중 다루는 시간대는 1450년(문종 즉위년)부터 1504년(연산군 10년)까지 총 54년이다.
세조나 다른 왕들(특히 성종이나 연산군)이 중심인 것 같지만, 인수대비가 주인공으로[14] 인수대비의 결혼이 1화, 연산군 때문에 인수대비가 충격으로 사망하는 것이 마지막회이다. 즉, 인수대비의 일생을 다룬 작품.[15] 인수대비 역의 고두심은 소름돋을 정도로 엄청난 연기력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와 대비되는 역할인 장녹수역은 이미숙이 맡아 열연했다.[16]당시 세조 역은 남성우가 맡았는데 상당한 포스를 자랑한다. 남성우의 전성기는 1970년대라서 자료 유실로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졌지만, 태조 이성계는 물론, 태종 이방원을 2회 맡을 정도로 절대적 인기를 자랑했다. 그러한 남성우의 뛰어난 왕연기가 영상으로 남은 유일한 작품이다..[17]
성종은 길용우, 연산군은 임영규가 맡았는데, 특히 연산군 역은 초반에는 5세 가량의 아역 배우가 연기하다 10월에는 10살 가량의 아역으로 바뀌었으나, 11월부터 성인 역할로 바뀌었다. <TV가이드> 1984년 제167호(10월 13일)에서 성인 연산군 역에는 임영규 외에 유인촌, 현석, 이덕화, 이정길, 김동현 등 10여명이 물망에 오를 정도로 경쟁이 치열했다.[18]
그중 특히 한명회 역을 맡은 정진[19]과 유자광역을 맡은 변희봉 두 사람의 연기는 정말 타의 추종을 불허하며 사극 매니아들에게도 강력한 포스로 기억되고 있다. 유자광과 한명회의 "이 손 안에 있소이다"는 때마다 반복학습되며 명대사로 남았다. 전두환이 쿠데타를 일으켰던 때인지라 세조 역시 상당히 미화된 것이 흠으로, 배우 남성우의 우수에 젖은 눈빛을 보면 저절로 감정이 이입될 정도다.
그러나 방영 시기가 하필이면 84년 LA 올림픽 축구 예선, MBC 10대 가수 가요제, 민방위 야간 등화관제 훈련, 제12대 국회의원 선거 등 주요 행사들이 겹친 터라 결방 / 방송연기 횟수가 무려 9회였는데, 이는 시리즈 사상 최다였다. 1988년에는 권영순 감독이 <칠삭동이의 한명회>로 영화화했는데, 이때 세조 역은 신성일이 맡았다.이 시기에 대응하는 다른 드라마로는 KBS 〈파천무〉, 〈한명회〉, 〈장녹수〉, 〈왕과 비〉, 〈공주의 남자〉, SBS 〈임꺽정〉, 〈홍길동〉, 〈왕과 나〉, JTBC 〈인수대비〉, MBC 〈역적 : 백성을 훔친 도적〉 등이 있다.
2.4. 4부 〈풍란〉
방영 시기: 1985년 3월 11일 ~ 1985년 10월 8일- 주인공: 문정왕후, 정난정
- 중점인물: 중종, 조광조, 갖바치
연출은 김종학과 유길촌, 장수봉 PD 3명이 맡았으며, 중종 치세기, 조광조와 여인천하의 시대. 다루는 시간대는 1504년(연산군 10년)부터 1565년(명종 20년)까지 총 61년이다.
'풍란(風蘭)'은 정난정(鄭蘭貞)을 가리킨다. 사망전대 최상훈이 중종, 유인촌이 조광조, 김혜자가 문정왕후, 김영란이 정난정으로 나온다. #[20] 연산군과 장녹수는 〈설중매〉에 이어 임영규[21]와 이미숙이 계속 맡았다. 이정길[22]이 갖바치,[23] 한인수가 윤원형, 임정하가 윤임, 조경환이 박원종, 김호영이 보우, 송기윤이 임백령으로 나왔다. 박원숙이 경빈 박씨로 나오고[24], 며느리 하던 자순대비 최명길은 여기서는 시어머니화로 나왔다. 임백령과의 러브 스토리로 유명한 옥매향은 이미영이 맡았다.
시작한 지 한 달 만인 4월에 출연자인 박광남[25]과 임영규가 조연출인 이승렬을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 결국 "관계당국"에서 물의를 빚은 풍란의 방송을 즉시 중단하라는 권고를 내리면서, 〈조선왕조 500년〉까지도 중도하차할 뻔했다. 결국 5월 중 조기종영하기로 확정되었으나(〈조선왕조 500년〉 자체는 계속 방영), 결국은 당초 예정되었던 60여 회에 조금 못 미친 58회로 종영했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방송연기 / 결방 횟수는 총 9회다.
이 시기에 대응하는 다른 드라마로는 KBS의 〈천명〉, 〈장녹수〉, 〈조광조〉와 SBS의 〈임꺽정〉, 〈여인천하〉, 〈사임당, 빛의 일기〉, MBC의 〈대장금〉, 〈옥중화〉등이 있다.
2.5. 5부 〈임진왜란〉
<colbgcolor=#94153E> MBC 〈해피타임!〉에서 이순신 파트만 간추린 하이라이트 장면 |
방영 시기 : 1985년 10월 14일 ~ 1986년 4월 15일
아이러니하게도 일본과의 전쟁을 다룬 드라마에 일본 특촬물 스태프진들을 대거 고용해서 공동제작한 결과물이다. 당시에는 일본의 방송 제작기술이 한국보다 훨씬 앞서있었는데, 아무리 방송장비는 일본 등지에서 들여온 거라 해도 TV방송은 흑백 기준으로 양국이 비슷했지만 컬러 방송은 일본이 이미 1960년부터 시작한데 반해서 한국은
다루는 시간대는 1590년(선조 23년)부터 1598년(선조 31년)까지 총 8년으로,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 발발 배경부터 자세히 그렸다. 황윤길과 김성일이 통신사로 일본에 체류하던 시점부터 시작을 하기에 선조 치세 초반이 생략되었다. 이는 원작소설도 마찬가지라 이런저런 사정으로 휴방으로 인한 생략이 아니라 작가 자신이 관심없어 삭제된 것으로 시리즈 최초로 발생한 공백기간이다. 이때문에 이이가 유명세에도 불구하고 등장을 못했고 이후에도 줄곧 사극에서 등장 기회를 얻지 못하는 불운을 겪는다.
김무생이 열연한 이순신 장군과, 배우 정진이 연기한 도요토미 히데요시, 그리고 배우 조춘이 연기한 명나라의 유정 장군이 압권. 선조(현석 분)는 근래의 사극에 묘사되는 것에 비해서는 인간성이 좀 낫게 나오지만 그래도 광해군을 무조건 갈궈대는 태도도 그렇고 일이 잘못될 때마다 말씀들 좀 해보라고 하는 식으로 무조건 관료들만 질책해 대는 대책없이 답답한 인물로 나온다. 광해군 역은 비운의 아역배우 출신 황치훈이, 형인 임해군 역은 정성모가 맡았으며, 김개시 역은 원미경이 맡았다. 신충식이 연기한 원균은 이 작품이 원균 명장론을 수용한 까닭에 극 중에서의 해설이나 인물들의 대사를 통해 용맹한 장수라는 수식어를 달고 사는데 정작 극 중에 표현된 걸 보면 그저 매번 이순신에게 시비나 걸면서 찌질거리는 모습밖에 안 나온다. 도대체 극중 인물들은 이 인간의 뭘 봐서 용장이라 치켜세우는지... 〈불멸의 이순신〉도 그렇고 괜히 원균 명장론을 건드려 원균을 더욱 오락가락하는 인물로 만들어버린 셈이다. 하지만 옥포 해전 이전에 원균이 왜선 10척을 격파해 임진왜란 중 첫 승리를 거두었다는 낭설을 그대로 반영해 원균옹호론의 영향을 확실히 받고 또 확산에 영향을 주었다. 제2차 진주성 전투를 다룬 유일한 사극이며 행주대첩도 2015년 〈징비록〉이 방영되기 이전까진 이 작품에서 유일하게 다뤘다.
MBC가 일본 특수 촬영 연구소와 계약을 맺어 〈울트라맨 레오〉, 〈슈퍼전대 시리즈〉, 〈우주형사 시리즈〉 등에서 특수 촬영 감독을 맡았던 야지마 노부오를 비롯한 일본 스태프들을 초빙해서 미니어처 거북선을 활용한 해전 장면이 일품.[27] 일본군 고증도 일본 쪽 전문가의 의견이 반영되어, 일본 쪽 인물들이 고증에 맞는 문장을 달고 갑주를 입고 나오는데 이것은 무려 20년 후에 나온 〈불멸의 이순신〉, 〈징비록〉보다도 월등히 뛰어나다.[28] 또 경복궁이 불타는 장면도 정교한 미니어처로 재현했다. 일본 쪽 인물들의 이름을 '풍신수길', '가등청정', '소서행장' 이렇게 모두 한국식 한자음을 사용한 것이 특징. 다만 오다 노부나가와 도요토미 히데요리 및 요도기미는 일본식 발음 그대로 사용하는 등 기준이 들쑥날쑥하다. 거기에 실제 역사상으로 광해군은 선조에 의해 세자로 책봉되는 대신 한양에 남아 분조를 꾸리고 의병군 총사령관에 임명되어 선조가 도망칠 시간을 벌기 위해 항전하지만 이 드라마에서는 광해군이 선조를 따라 같이 몽진가는 것으로 묘사되어 고증에 맞지 않다. 또한 순화군이 마냥 착한 어린이로만 묘사되고 악행이 죄다 임해군에게 몰빵되어 있는데 실제로 순화군의 성격은 마귀 사탄 그 자체인지라 이 역시 고증에 맞지 않다. 게다가 이달정종과 안국사혜경이 등장하지 않는 것도 고증에 맞지 않는데 이달정종은 풍신수길에게 전투를 태만히 한다고 질책을 당한 뒤 제2차 진주성 전투에 투입되는 게 맞으며, 안국사혜경은 조선에서 어린이 납치를 일삼고 어린이들의 댕기를 자르고 촌마개를 틀고 있어야 고증에 맞다. 특히 이달정종은 혼자만 애꾸눈이기 때문에 구분이 엄청 쉽다. 장군들 외에도 허균, 김개시, 강항 등의 실존 인물들이 나와 문관들과 민초들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 조선에서의 전란 이외에도 풍신수길과 덕천가강이 치열하게 권력의 암투를 벌이는 모습이라든지 풍신수뢰가 태어나는 바람에 풍신수길이 풍신수차를 숙청하는 모습도 자세하게 묘사되었다. 임진왜란은 일본이 먼저 침략했다가 패배한 전쟁이라서 자신들의 입장에서는 들추고 싶지 않은 소재지만, 흥미롭게도 당시 일본 제작 스태프들은 적극적으로 촬영에 도움을 줬다.[29] 그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인터넷이 개발되어 보급된 이후인 21세기 이후부터는 방송에서의 묘사, 대접이 더욱 부정적으로 흐르고 있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에서는 임진왜란을 소재로 하는 사극을 주야장천 찍어대고 있는데 그걸 일본 사람들이 인터넷(특히 유튜브)를 통해서 많이들 시청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군사 칸베에〉는 아예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일본에서 자기들이 알아서 임진왜란을 촬영했다. 그리고 〈임진왜란〉 편은 일본에서 일본어 자막과 함께 번역되어 정식 방영까지 되었다. 이 때 일본 내에서의 광고 문구가 '한국 최초로 히데요시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드라마!' 인물들이 폼잡고 클로즈업 되는 전형적인 한국 드라마 오프닝이 아닌 거북선이 홀로 망망대해를 나아가는 오프닝 또한 인상적이다. 심지어 방송한 곳은 NHK. 다만 한국어 자막(사람 이름 등)이 나오는 부분은 회색 박스로 가리고 그 위에 일본어를 입혀놓았다.
참고로 왜군들은 덕천가강 등 풍신수길을 알현하는 경우가 아닌 이상 막사 안이든 밖이든, 침실이든 어디든 계속 갑옷을 입고 있는데 이는 센고쿠 시대 당시부터 언제 기습당할지 몰라서 잘 때도 갑옷을 입은 채 잠을 자는 것이 습관화 되어 있다는 고증을 충실히 따른 것이다.
몇몇 유명한 성우들이 출연하기도 했는데, 김현직이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연기했다.[30] 극 중 논쟁을 벌이다가 흥분하여 발작을 일으킨 히데요시를 그야말로 무표정하게 앉아서 외면하던 이에야스 연기도 상당했다.
또한 이인성이 정기룡 역으로 출연했다. 전쟁사극 분위기에 맞춰 매우 진지하게 연기하는데도, 더군다나 배역의 인물이 맹장(猛將)으로 유명한 장수인데도 불구하고 원체 이 분의 연기가 그런 쪽으로 유명하다보니 듣기만 해도 웃음이 나온다는 반응도 많다.
방송연기 / 결방 횟수는 총 6회이며, 연속방영 횟수는 총 2회이다. 이 시기에 대응하는 다른 드라마로는 KBS 〈불멸의 이순신〉, 〈징비록〉, 〈임진왜란 1592〉 등이 있고 이 시기에 대응하는 다른 영화로는 〈이순신 3부작〉 이 있다.
2.6. 6부 〈회천문〉
방영 시기 : 1986년 4월 28일 ~ 1986년 10월 28일- 주인공: 광해군
- 중점인물: 선조, 인목왕후, 이이첨, 김개시, 강홍립, 독보, 누르하치
연출은 김종학 PD. 선조 말엽부터 광해군의 폐위(인조반정)를 거쳐 이괄의 난까지를 그렸다. 다루는 시간대는 1602년(선조 35년)부터 1624년(인조 2년)까지 총 22년이다. 결방 / 방송연기 횟수는 총 5회였다.
원래 설정으로는 6부 〈회천문〉에서 효종의 사망까지 다루려고 했으나 전두환과 노태우의 권력 다툼을 비꼬았다는 의혹으로 조기종영했다.[31] 전편과 달리 완벽하게 찌질이화 한 선조(현석), 중요 인물인 허균(김주영), 김개시(원미경)는 맡은 배우가 5부 〈임진왜란〉 때와 같다. 그러나 비운의 임금 광해군은 황치훈에서 이희도로, 그리고 광해군의 형인 임해군은 정성모에서 임정하로 바뀌었다. 인목대비 역은 권재희가 맡았다. 이이첨(이정길) 등 몇몇 인물들이 새로 생겨났다.
이 시기에 대응하는 다른 드라마로는 KBS 〈왕의 얼굴〉, 〈천둥소리〉, 〈서궁〉, MBC 〈화정〉, 〈허준〉, SBS 〈왕의 여자〉 등이 있다. 일본에선 2012년 어크로스와 브로드웨이를 통해 <폭군 광해군(暴君 光海君)>이란 제목의 DVD로 나왔다.
2.7. 7부 〈남한산성〉
방영 시기 : 1986년 11월 3일 ~ 1987년 1월 27일- 주인공: 임경업
- 중점인물: 인조, 최명길, 독보, 홍타이지
정묘호란부터 시작하여 병자호란을 거쳐 삼전도의 굴욕, 임경업의 탈출로 마무리 된다. 다루는 시간대는 1627년(인조 5년)부터 1642년(인조 20년)까지 총 15년이다. 결방/방송연기 횟수는 총 6회였다.
6화에서의 문제 때문에 예산을 많이 깎아서 병자호란이 전체적으로 저렴하게 다루어졌다. 강홍립이 명나라로 파견갔다가 인조반정 때문에 고립되는 것으로 시작해서 포로가 된 임경업(최상훈 분)이 지나가던 스님 독보대사(강인덕)의 무술로 탈출해서 명나라 복위 운동에 가담하려고 벌판을 지나가는 것으로 마무리. 방영 분량도 석 달이 채 안되어 〈추동궁 마마〉 다음으로 가장 짧다. 인조(유인촌)가 양식있는 비운의 군주로 묘사된 것은 시청자들에게 그다지 공감을 얻기 어려운 부분. 광해군의 명대로 명과 청을 오가며 중립 포지션이었던 강홍립 역은 이후 〈순풍 산부인과〉로 일약 스타가 된 오지명(본명 오진홍)이 맡았다.
이 시기에 대응하는 다른 드라마로는 KBS 〈대명〉, 〈추노〉, MBC 〈화정〉, JTBC 〈궁중잔혹사 꽃들의 전쟁〉 등이 있다. 일본에선 2012년 어크로스와 브로드웨이를 통해 <괴뢰왕 인조(傀儡王 仁祖)>란 제목의 DVD로 나왔다.
2.8. 첫번째 휴방기
1987년 2월 ~ 1987년 12월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및 6월 항쟁과 겹친 외압으로 휴방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으나 사실 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공백기 동안 월화드라마 시간대는 <불새> 등 다른 작품들이 메꿨다.
일단 임진왜란 이후 광해군 시대를 다룬 회천문부터 시청률이 급 떨어졌고, 인조 시기를 다룬 남한산성에서는 시청률이 더욱 좋지 않았다. 그나마 이야깃거리가 있는 광해군과 인조 시대가 시청률이 이럴진데, 그보다 존재감이 훨씬 떨어지는 효종과 현종 대의 이야기는 시청률이 불보듯 뻔했다. 결국 이 휴방기는 효종과 현종 대를 다룰 것이냐 아니면 그보다 훨씬 화제성이 있는 숙종대로 건너뛸 것이냐에 대해 MBC에서 내부적 고민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효종과 현종은 결국 방송을 타지 못하고 그 다음 숙종대로 건너 뛰게 되었다. 지금까지도 효종[32]과 현종을 다룬 드라마는 매우 드물다.[33]
원래 계획대로였다면 효종, 현종 대의 대표적인 일화 중 하나인 나선 정벌과 하멜 표류기, 그리고 예송논쟁과 경신대기근 에피소드가 들어갈 예정이었다고 한다. 여러모로 임진왜란 이후로 최대의 예산이 투입될 예정이었으나 취소되어 안타깝게 하였다. 하지만 병자호란을 다룬 남한산성의 저조한 시청률로 볼 때 하멜 표류기, 예송논쟁, 경신대기근 이야기가 이어졌다면 거의 회생불가급 시청률 나와 조선왕조 오백년 자체가 종영되었을 수도 있다.
2.9. 8부 〈인현왕후〉
<colbgcolor=#94153E> 〈해피타임!〉에서 간추린 하이라이트 영상 |
- 주인공: 인현왕후, 희빈 장씨
- 중점인물: 숙종, 장희재, 송시열, 숙빈 최씨
시리즈의 부활작. 〈도시의 얼굴〉 후속으로 편성되었다. 시리즈 사상 최초로 수 ~ 목요일 밤 9시 50분마다 방영했다. 흥행의 보증수표라는 장희빈 이야기답게 무려 9달이나 방송했다. 다루는 시간대는 1679년(숙종 5년)부터 1702년(숙종 28년)까지 총 23년이다. 결방 / 방송연기 횟수는 총 1회.
강석우가 숙종, 전인화가 희빈 장씨, 박순애가 인현왕후, 김해숙이 명성왕후, 견미리가 숙빈 최씨, 이덕화가 장희재[34], 최상훈이 김춘택, 조춘이 장희재의 심복, 홍진희가 장희재의 본처 작은애기 역으로 출연. 남인들이 쓰레기로 나온다.[35] 특히 장희빈을 연기한 전인화는 이 드라마로 동년도 MBC 연기대상 최우수상을 받았다.
1994년 5월 22일자 〈일요일 일요일 밤에〉 282회에서 이홍렬이 장희빈이 사약마시고 죽는 장면을 패러디 한 적이 있다.[36]
이 시기에 대응하는 다른 드라마로는 KBS 〈장희빈〉, MBC 〈동이〉, 〈다모〉, SBS 〈장희빈〉, 〈장옥정, 사랑에 살다〉 등이 있다.
2.10. 9부 〈한중록〉
방영 시기 : 1988년 10월 19일 ~ 1989년 6월 1일- 주인공: 혜경궁 홍씨
- 중점인물: 영조, 박문수, 사도세자, 정조, 홍국영
사도세자의 이야기. 다루는 시간대는 숙종 치세 후반과 경종 치세를 생략했기에 1725년(영조 1년)[37]부터 1779년(정조 3년)까지 총 54년이다. 사도세자의 죽음까지 다룬 전반부와 세손과 홍국영의 활약을 다룬 후반부로 나뉘며 홍국영이 죽음으로써 드라마가 끝난다.
최수종이 사도세자, 최명길이 혜경궁 홍씨, 뮤지컬 쪽으로 더 유명한 원로배우 김성원이 영조, 강부자가 인원왕후, 그리고 전호진[38](아역: 장덕수)이 정조를, 김동현[39]이 홍국영을 맡았다. 그리고 최진실의 데뷔작이다. 이 때 최진실은 사도세자가 평양에서 데려온 기생 장미를 연기했다.
공교롭게도 같은 시기에 KBS2에서 방영한 〈하늘아 하늘아〉와 소재가 겹쳤다. 그리고 〈한중록〉이 남성 사극에 가까워서 참패했다.[40] 재밌는 건 〈하늘아 하늘아〉에서 사도세자의 정실부인인 혜경궁 홍씨를 연기한 사람이 바로 하희라[41]. 두 사람이 결혼함으로써 사도세자-혜경궁 홍씨 커플이 된다.
이 시기에 대응하는 다른 드라마로는 KBS 〈하늘아 하늘아〉, 〈왕도〉, MBC 〈대왕의 길〉, 〈이산〉, 〈홍국영〉, 〈옷소매 붉은 끝동〉, SBS 〈비밀의 문〉 , 〈무사 백동수〉등이 있다.
2.11. 10부 〈파문〉
# 이미지방영 시기: 1989년 6월 7일 ~ 1989년 9월 13일
천주교의 유입을 다루고 있다. 다루는 시간대는 1782년(정조 6년)부터 1801년(순조 1년)까지 19년이다.
역시 조기종영 당한 비운의 작품. 주연들이 모두 가상인물인 퓨전 사극으로 시대를 앞서갔다. 사실 이 작품을 연출한 사람이 바로 이병훈 PD. 길용우와 채시라가 주연이다. 길용우가 연기한 주연 이름은 박승도. 정조는 김용건, 효의왕후는 이휘향, 박승도의 은인인 이벽은 임정하, 박승도의 여동생 역은 최진실이 연기했다. 그리고 전작인 〈한중록〉에서 혜경궁 홍씨 역으로 출연했던 최명길과 정순왕후 김씨로 출연했던 김용선은 전작에 이어 같은 배역으로 나왔다.
이 시기에 대응하는 다른 드라마로는 KBS 〈소설 목민심서〉, 〈거상 김만덕〉, 〈성균관 스캔들〉, MBC 〈이산〉, SBS 〈바람의 화원〉 등이 있다. 일본에선 2010년 브로드웨이를 통해 <정조대왕 ~위대한 왕의 초상~(正祖大王 -偉大なる王の肖像-)>이란 제목의 DVD로 나왔다.
2.12. 두번째 휴방기
1989년 10월 ~ 1990년 4월효종, 현종 시기와 마찬가지로 헌종도 이렇게 방송을 타지 못했다. 중단 이유는 간단하다. 이제 더 이상 시청률이 나오지 않으니까. 〈한중록〉, 〈파문〉을 연타석으로 말아먹은 것이 꽤 크게 작용했다. 대신 수목드라마 시간대는 〈당신의 축배〉 등이 메꿨다.
2.13. 11부 〈대원군〉
방영 시기 : 1990년 5월 6일 ~1990년 12월 23일드라마의 마지막 스토리이자 대한제국 선포까지 다룬 최종장
- 주인공: 흥선대원군
- 중점인물: 고종, 명성황후, 김좌근, 이동인
본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이자 유일한 일요일 밤 편성작으로, 다루는 시간대는 1849년(철종 즉위년)부터 1897년(광무 원년)까지 총 48년이다. 철종의 즉위부터 대한제국 선포까지 그린다.[45][46] 흥선대원군의 파락호 시절부터 고종의 즉위 후 시행했던 여러 개혁 정책, 그리고 그의 실각 후 일어났던 파란만장한 근대사 사건들을 그렸다.
임동진이 흥선대원군, 최수종이 철종, 채유미가 철인왕후, 김홍석이 고종, 김희애가 명성황후, 신충식이 미우라 고로, 이민우가 태자 시절의 순종을 연기했다. 〈제2공화국〉을 방영했던 일요일 밤에 후속으로 주 1회 방송했다.
신미양요에서는 약간의 옥의 티가 있다. 어재연 장군이 미 해군과 교전을 벌이는 씬에서 미군은 1870년에 사용한 성조기가 아닌 현대에 사용하는 성조기를 썼다.#[47]
명성황후의 최후는 《매천야록》을 비교적 충실히 재현했다. 잠옷 차림으로 포위 당해 병풍 뒤에 숨었다 들켜 살려 달라 애원하다가 피살당했다.[48]
이 시기에 대응하는 다른 드라마로는 KBS 〈풍운〉, 〈토지〉, 〈찬란한 여명〉, 〈명성황후〉, 〈태양인 이제마〉, 〈조선 총잡이〉, 〈장사의 신 - 객주 2015〉, 〈김구〉, 〈암행어사: 조선비밀수사단〉, MBC 〈너희가 나라를 아느냐〉, 〈닥터 진〉, SBS 〈토지〉, 〈제중원〉, 〈녹두꽃〉, tvN 〈미스터 션샤인〉[49] 등이 있다.
3. 영상물
어느덧 제작된지 30 ~ 40년이나 된 작품으로서 시리즈들 중 추동궁 마마와 인현왕후 등 일부를 빼곤 재편성이 전무하며, 굳이 구하려면 MBC C&I에서 비싼 값을 내고 구매하거나 MBC Archive에서 열람해야 하는데, MBC Archive에선 국립중앙도서관이나 wavve와 달리 검색결과상 누락된 회차들이 있다.
그나마 국립중앙도서관에서 본작 방영분 전편[50]을 소장하고 있으므로 보고 싶으면 그 도서관의 디지털도서관으로 가면된다. 하지만 비디오테이프를 재생할 수 있는 자리가 고작 5석이라서 미리 예약하고 가지 않으면 자리가 꽉차서 보기가 힘들다. VCR 기기 사용자를 위해 DVD 볼 사람은 다른 자리를 예약하자.
시리즈들 중 〈인현왕후〉는 2000년대 초반 케이블 채널 OSB를 비롯해 2014년 MBC 드라마넷, 2018년 CNTV 등지에서 확대편성됐고, 〈추동궁 마마〉는 2020년 MBC ON에서도 리마스터링 후 방영됐으며 〈임진왜란〉도 같은 해 CNTV에서 방영된 바 있다. 〈한중록〉 같은 경우에는 2018년 3월 기준 CJ헬로비전의 디지털케이블 상품인 헬로TV에서 서비스한 바 있다가 2020년 CNTV에서 재편성했고, MBC Archive와 Wavve에서도 유료서비스 중이다. 또한 2010년과 2012년에는 일본 DVD 배급사 어크로스를 통해 <추동궁 마마>와 <회천문>, <남한산성>, <파문> 4편이 DVD로 나왔는데, 라쿠텐이나 아마존닷컴 등지에서 직구하려면 비싼 배송료까지 각오해야 한다.
4. 기타
- 2차례의 휴방기와 몇 차례의 조기종영으로 은근히 외압 의혹을 사는 작품. 이는 조선시대의 높으신 분들에 빗대어 현대 한국의 높으신 분들의 비위를 거슬렸다는 말이 있다. 특히 〈회천문〉은 노골적으로 전낙지와 물태우의 후계자 분쟁을 비꼬았다는 의혹이 있다. 사실 콩트짤때마다 대머리나 주걱턱이 소재로 나오는지 방송사 간부들이 코미디언들을 닦달거렸다는 최양락의 증언이나 밤 9시 뉴스 첫 머리기사에 전두환 소식을 못담았다고 연봉삭감 징계를 먹었다는 후일담이 이 시대에는 실화였던것을 감안하면 전두환과 노태우 본인은 몰라도 MBC 사장과 임원, 간부들이 해당소문에 대해 민감해했을 가능성은 있다.
- 금성출판사에서 출간된 원작 소설은 저 사이 빠진 시대도 다룬 대하 소설인데 의외로 야하고 잔인한 장면이 나오니 주의할 것.[51]
- 드라마판에서 가장 큰 인기를 누린 것은 3부 〈설중매〉와 5부 〈임진왜란〉, 8부 〈인현왕후〉다. 〈설중매〉가 방영될 당시에는 거리에 사람들이 지나다니지 않았다고 할 정도로 대단한 인기를 누렸으며, 5부 〈임진왜란〉의 경우 해전에서 대규모 미니어쳐를 투입해 CG를 못 쓰던 시절로서는 나름대로 선전한 전투신을 보였다. 8부 〈인현왕후〉에선 시청률 저조로 시리즈 존폐의 위기에 빠진 〈조선왕조 500년〉이 장희빈의 등장으로 인기를 회복했을 정도였다.
- KBS에서는 〈태조 왕건〉의 흥행을 계기로 향후 10년 간 고려 왕조를 조명하는 대기획을 마련했다. 그래서 후속작으로 바로 다음 시대인 〈제국의 아침〉을 방영했다. 그러나 〈천추태후〉와 〈무인시대〉만 만들고, 시청률 부진과 제작비 등의 이유로 흐지부지되었다. 이후 무인집권기 후반과 대몽항쟁기, 삼별초의 항쟁 등을 담은 고려 중기 시대극은 MBC 〈무신〉으로 나왔다. 또한 고려 후기 공민왕 치세부터 멸망까지 다룬 작품으로 그나마 꼽을만한 드라마는 KBS에서 만든 〈정도전〉이다. 그리고 그 이후 〈천추태후〉와 똑같은 시대적 배경을 다룬 〈고려 거란 전쟁〉이 방송되고 있다.
복식에서 상당히 독특한 부분이 존재한다. 흔히 알고 있는 황색 구군복 외에도 청색 구군복이 나오는데 현재로 따지면 황색 구군복은 소위 ~ 대령에 해당되는 무관들이 입었고 청색 구군복은 장성급 장교에 해당되는 무관들이 입었다. 그래서 임진왜란 편을 보면 이순신이나 원균 정도 급의 장수들은 청색 구군복을 입고 있으며 그보다 품계가 낮은 정기룡 정도가 황색 구군복을 입고 있다.
4.1. 배우 캐스팅
배우 돌려막기가 어느 정도 있는 작품인데 1980년대까지만 해도 탤런트는 전속 개념이 강한 편이어서 자사 드라마에만 출연하는 경우가 적잖이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다루는 시기가 500년 정도 되는데 이걸 다 다른 인물로 캐스팅하려면 조연급만 몇천 명이 필요하다. 일례로 임진왜란만 하더라도 조선 관군 장수, 조선 문관 및 내시들, 의병장, 왜장, 다이묘, 명나라 장수 등등 하나의 신분에도 조연이 여러명씩 나온다. 다만 임진왜란에서 한 가지 옥의 티라면 애꾸눈의 멋쟁이 왜장이 안 나오는 정도이다. 더욱이 MBC 신인 공채 탤런트들의 수련장 성격도 띠는 터라 21세기 시점서 거물이 된 배우들의 단역 시절을 볼 수 있는 소소한 재미도 있다.김무생은 태조 이성계와 충무공 이순신 역할로 출연해 간지 폭풍을 선보였으나, 이와 반대로 최수종은 사도세자가 되어 뒤주에 갇혀 참혹한 죽음을 맞더니 강화 도령(철종)으로 출연해 두 번 씩이나 눈물나는 인생을 살았다. 유인촌은 조광조로 개혁 신하가 되더니 인조로 굴욕을 겪는다. 원로 연기자 정진은 특유의 꾀 많은 노인 이미지를 살려서 한명회로 출연하더니 도요토미 히데요시까지 맡았다. 최상훈도 〈풍란〉의 중종을 시작으로 〈남한산성〉에서 임경업, 〈인현왕후〉에서 김춘택을 맡았다.
이 돌려막기 중 단연 백미는 신충식이다. 무려 7번이나 출연했다. 1부인 〈추동궁 마마〉에서 하륜, 3부 〈설중매〉, 4부 〈풍란〉에서 임사홍(유자광을 일컬어 첩의 자식이라고 비꼬기도 함), 5부 〈임진왜란〉에서 원균, 7부 〈남한산성〉에서 장유(봉림대군 효종의 장인 어른 - 최명길과 친한 사이로 묘사됨), 9부 〈한중록〉에서 이천보(사도세자 평양 외유 사건과 관련하여 스스로 자결함), 11부 〈대원군〉최후반부에서 을미사변을 주도한 일본 공사 미우라 고로를 맡았다. 참고로 신충식은 조선왕조 500년에서 악역, 그것도 탐욕스러운 역할을 하는 악역으로만 전문적으로 나왔다. 특히 이순신에게 없는 죄를 뒤집어 씌워서 참수 일보직전까지 몰고가게 만든 뒤 삼도수군통제사 자리를 빼앗는 부분은 신충식이 보여준 탐욕 연기의 백미.
임정하도 1부〈추동궁마마〉에서 박석명, 2부 〈뿌리깊은 나무〉와 3부 〈설중매〉에서 문종, 4부 〈풍란〉에서 윤임, 6부 〈회천문〉에서 임해군, 8부 〈인현왕후〉에서 동평군, 10부 〈파문〉에서 이벽, 11부 〈대원군〉에서 민승호로 출연했다. 출연 인물 수로는 이 사람이 더 많은 듯. 동급으로 변희봉도 있는데 1부 〈추동궁마마〉에서는 남은, 3부 〈설중매〉와 4부 〈풍란〉에서는 유자광, 6부 〈회천문〉과 7부 〈남한산성〉에서 최명길, 9부 〈한중록〉에서 박문수, 11화 〈대원군〉에서는 홍순목을 연기했고, 최명길의 경우만 제외하고는 모두 극 중에서 죽었다. 남한산성 드라마는 임경업이 독보 스님과 함께 대륙으로 망명하는 것으로 끝난다. 임경업 죽음, 최명길과 김류 등의 세상 떠남(병사)은 나오지 않았다.
여배우들도 남배우들에 비해 존재감이 미미할 뿐이지 상당히 돌려막기를 당했다. 고두심의 경우 3부 〈설중매〉의 인수대비를 시작으로, 〈인현왕후〉에서 숭선군부인 신씨(인조의 며느리, 동평군의 어머니), 11화 〈대원군〉에서 신정왕후 조씨를 맡았으며 김해숙은 1부 〈추동궁 마마〉의 정안왕후부터, 3부 〈설중매〉의 귀인 정씨, 8부 〈인현왕후〉의 명성왕후, 11부 〈대원군〉의 나합을 맡았다. 엄유신은 3부 〈설중매〉에서 승평부대부인 박씨[52], 5부 〈임진왜란〉의 인빈 김씨, 8부 〈인현왕후〉에서 희빈 장씨의 생모 윤씨, 11화 〈대원군〉에서 여흥부대부인 민씨를 맡았다.[53]
그리고 같은 시리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인지, 각 화마다 겹치는 인물들의 경우 전작의 배우들이 같은 역으로 다시 출연하기도 했다.[54] 예를 들어 1부 〈추동궁 마마〉에서 태종 이방원으로 출연했던 이정길과 원경왕후로 출연한 김영란은 2부 〈뿌리깊은 나무〉에서도 같은 역으로 나왔고, 양녕대군 역의 송기윤은 무려 총 3편[55]에 걸쳐 동일 배역을 연기했다. 최명길은 3부 〈설중매〉와 4부 〈풍란〉에서 정현왕후로, 9부 〈한중록〉과 10부 〈파문〉에서 혜경궁 홍씨로 등장했으며[56], 임영규는 3부 〈설중매〉와 4부 〈풍란〉에서 연산군을 맡았고, 원미경은 5부 〈임진왜란〉과 6부 〈회천문〉에서 김개시로 나왔다. 이 밖에도 굉장히 많으며 당장 위의 돌려막기 예시로 든 배우들 중에도 이런 경우가 있다.[57]
그리고 재출연이 아니더라도 회상 씬에 전작 장면들이 나온 경우가 꽤 있었다. 대표적으로 9부 〈한중록〉에서 영조가 어머니 숙빈 최씨와 형 경종을 회상할 때 8부 〈인현왕후〉 장면이 나왔다.
출연 배우들 중 다른 사극에서 같은 배역으로 나온 경우도 꽤 있다. 일례로 김무생(태조 이성계)과 김주영(회안대군 이방간)은 〈용의 눈물〉, 홍성민(이현로[58])은 〈왕과 비〉, 최상훈(중종)은 〈임꺽정〉, 그리고 한인수(남구만)는 〈장희빈(SBS)〉, 김석옥(풍창부부인 조씨[59])은 〈장희빈(KBS)〉, 김성원(영조)은 〈왕도〉에서 다시 같은 역을 맡았다.[60]
그래도 공화국 시리즈처럼 블록버스터급으로 제작된 만큼 캐스팅도 나름 방대한데, 공채 탤런트 외에 강계식, 고설봉, 박인환, 오영수, 최명수, 김기주, 정진, 박웅, 조춘, 오세장, 한태일, 서학, 김학철 같은 영화/연극배우라든지 김현직, 남성우, 오승룡, 김기현, 이성, 김사천, 김수일, 조명남, 황일청, 최병학, 나성균, 한규희, 이영달, 이인성, 박소현, 박태호 같은 성우들도 얼굴을 내밀었다.
조선왕조 오백년에 출연한 배우들은 2020년대에 들어서 전부 원로배우가 되었다. 아역을 했던 이민우를 제외하고 본다면 무려 최진실이 막내였으며 최수종이 남자 배우들 중에서는 막내였다.
[1] 〈회천문〉의 경우 기획을 맡았고 남한산성은 연출을 맡지 않았다.[2] 엄밀히 얘기하자면 북한에서 1980년에 조선왕조실록이 완역되었지만, 1988년 3월 북한 평양방송을 통해 북한 측이 전쟁 때 실록을 가져왔다고 밝힌 게 언론에 알려지기 전만 해도 존재조차 몰랐으며, 당시 역사학계에선 북한이 가져간 춘추관본은 6.25 전쟁 중에 유실된 것으로 처리했다. 해당 번역본이 남한에 불법복제된 채로 나온 것은 중국과 교류가 어느정도 이루어지게 된 1990년대 초반의 일이었다.[3] 현대의 국가 관련 기록물은 상당수 전문용어로 쓰여진 것들이 많고 당시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면 해석이 곤란하다. 하물며 《조선왕조실록》은 한자로 쓰여진 것은 둘째치고 오늘날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왕정 시대를 배경으로 기록되었다는 점으로 인해 관련 지식을 갖고 있지 못하면 절대로 올바른 해석을 내릴 수가 없다. 또한 지금에 와서야 《조선왕조실록》을 검색하면 그 내용을 쉽게 대본으로 만들 수 있지만 이 당시에는 CD-ROM도 제대로 나오지 않던 터라 내용을 찾는데 애로사항이 있기도 했다. 야사를 부득이하게 같이 참고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4] 특히 80년대와 그 이전의 드라마 작품들의 원본 비디오 자료가 테이프 재활용 내지 관리 소홀로 무수히 사라진 사례가 흔하기에 더욱 그렇다.[5] 조선시대와 관련된 사극의 정석을 제시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제작된 조선왕조 관련 작품들은 모두 이 〈조선왕조 500년〉을 기준으로 제작된 것들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 저 유명한 궁중여인들의 트레이드마크 '뭬야?!' 역시 이 드라마가 아니었다면 존재하기 힘들었다.[6] 〈용의 눈물〉에서 이방원의 맞수인 이성계의 부인 강씨로 나온 사람. 참고로 〈용의 눈물〉의 민씨는 최명길분.[7] 이후 한명회가 이곳의 문지기로 일하다가 수양대군에게 가는 장면이 〈설중매〉에 그대로 나온다[8] 김무생과 이정길은 실제로는 4살 밖에 차이나지 않는다.[9] 〈용의 눈물〉의 경우는 태종에게 장인 심온을 살려달라고 간청하던 세종이 눈물을 보이자 태종이 이를 보고 임금은 눈물을 보여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인 후 하는 말이다.[10] 다만 SBS의 두 작품은 퓨전사극이라 실제 역사와 큰 차이가 있다.[11] 강부자의 남편.[12] 전영록의 전 부인이며 전보람의 어머니.[13] 29일이라 되어있으나 오기인 듯. 1985년에는 2월 29일이 없다.[14] 시리즈의 제목인 설중매(눈 속의 매화)는 이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다.[15] 왕과 비와 달리 중종반정이 마지막이 아니다.[16] 이미숙은 1981년 방영된 〈여인열전〉에서 장희빈역을 맡아서 열연한 바 있다.[17] 세종 역할을 한 파천무 영상도 남아있지만 조기 퇴장하여 그의 명성을 확인하기는 아쉬움이 많다.[18] 해당 잡지 p40~41 참고. 후보들 중 이정길은 <암행어사>의 주인공을 맡았던 데다 멜로, 하드보일드 연기에 능했고, 유인촌은 3년 전 <여인열전> '장희빈' 편에서 숙종 연기를 무난하게 맡은 덕에 연산군 후보로 유력했으나 깔끔한 귀공자풍 외모가 캐릭터성에 맞지 않았다. 이덕화의 경우 <여인열전> '서궁마마' 편에서 광해군 역을 맡아 폭군 연기 경험이 있으나 주말연속극 <사랑과 진실>과 겹치기 출연을 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고, 현석은 <물보라> 등의 예처럼 연기의 폭이 좁으며 김동현은 당시 멜로물에 일가견이 있으나 사극 경험이 부족했다는 결점이 있었다. 당시 제작진 일부에서 한명회 역의 정진, 폐비 윤씨 역의 이기선처럼 신인/무명 배우에게 배역을 맡기자는 견해가 있으나 신봉승 작가 측은 동 잡지에서 "가능한 한 젊은 연기자를 쓴다는 데 찬성하나, 사극은 현대물과 달리 연기력이 우선적이며 특히 연산군 역은 내면 연기가 중요하기에 가능하면 경험이 풍부한 탤런트라야 한다"고 주장했다.[19] 극 중 여인들에게 "내 보니 얼굴이 행주를 꼭 짜놓은 것 같더구나." 라는 평을 받았는데, 훌륭한 연기와 딱 맞아떨어져 그대로 남았다.[20] 김영란은 1981년 〈교동마님〉에서도 정난정 역을 맡아 당시 신인에서 일약 인기스타로 발돋움했으며, 또한 2001년 SBS 대하드라마 〈여인천하〉에서는 정난정의 어머니 역을 맡았다.[21] 방영 이전에 연산군 역 후보로는 유인촌과 이덕화가 물망에 오른 바 있다.[22] 재미있게도 이정길은 같은 시대를 다루었던 SBS의 〈임꺽정〉에서도 '양주팔'이라는 이름의 갖바치(아마도 같은 인물을 묘사한 듯)를 한 바 있다. 유사한 포지션이다.[23] 갖바치는 가죽 신발을 만드는 장인을 뜻한다. 중종, 인종 시절 천민인 백정들 속에 숨어사는 현인으로 많은 야사에 나온다. 인종 항목에 실린 야사를 보면 인종이 영의정으로 내정했다가 승하했다는 야사도 있다.[24] 처음부터 나온 것은 아니고 극중 사망한 회 1달 전에 나종미에서 바뀌었다고 한다. 뚜렷한 이유가 없어 당시 말이 많았다고 한다.[25] 유순정 역을 맡았다.[26] 현 문화체육관광부장관 유인촌의 형이다.[27] 미니어처 자료는 여기로. #[28] 다만, 일본 측 무장들이 시대적 고증에 맞는 당세구족(当世具足)이 아닌 200 ~ 300년 전 즈음에나 어울릴 법한 오오요로이(大鎧)나 도오마루(胴丸)와 같은 갑옷을 입고 나오는 전국시대 배경 일본 사극의 당시 문제점을 그대로 답습했다는 점은 조금 아쉬운 부분이다. 게다가 아시가루의 갑옷이 전국시대의 어대구족(御貸具足)이 아니라 에도 시대의 첩구족(畳具足)으로 나오는 전국시대 배경 일본 사극의 또 다른 당시 문제점을 답습하기도 했다. 훗날 2013년에 같은 방송사에서 방영된 <구암 허준>과 <불의 여신 정이>에서는 아시가루 복장으로 조선왕조 오백년의 첩구족을 그대로 쓰지 않고 어대구족을 새로 만들어 썼다. 그리고 작중 일본인들이 하는 촌마게가 전국시대나 에도 시대 초기의 모양이 아닌 에도 시대 중기 이후의 모양(흔히 알려진 촌마게의 형태)으로 나온 점도 아쉬운데 오히려 〈불멸의 이순신〉, 〈징비록〉에 나온 촌마게가 고증에 맞는다. 하지만 전체적인 부분에서의 일본군 고증은 훌륭한 편이다.[29]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대한 일본 국내의 평가는 극과 극을 달린다. 전국시대부터 임진왜란 이전까지는 밑바닥부터 최정상까지 올라온 그야말로 입지전적인 인물로 평가되지만, 임진왜란 이후엔 일본 내에서도 노망난 원숭이의 일탈 정도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국내에서도 나온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다룬 만화나 소설, 죄다 일본 것을 봐도 임진왜란 전에는 무척 좋게 나오다가 임진왜란 이후로 전쟁 일으키고 미친 듯이 짧게 끝내는 게 허다하다.[30] 그는 1984년 〈설중매〉 때 영의정 강맹경 역을 맡았다.[31] 본래 〈조선왕조 500년〉 원작소설에서 〈회천문〉이 다름아닌 인조 말년과 효종 치세 초반을 다루는 부분이다.[32] 1981~82년에 KBS 대하드라마 〈대명〉에서 효종의 일대기를 다룬바 있다. 효종 역은 김흥기.[33] 그나마 마의가 가깝다.[34] 이덕화와 전인화는 여인천하에서도 남매로 나왔다.[35] 참고로 여기서 숙빈 최씨로 출연한 견미리가 〈이산〉에선 혜경궁 홍씨로 출연, 성송연이 다모라고 까고 정조는 이에 대응해 영조의 모친인 숙빈 최씨 이야기를 꺼내 응수해 본의 아니게 패드립을 친다.[36] 예를 들면 문짝으로 가슴을 누르는 장면을 아파트 문짝으로 눌렀으며 그리고 사약사발이 가마솥 크기로 나왔다.[37] 경종의 봉심길에 오르는 게 첫 장면이다. 그런데 당시 39세였던 인원왕후와 32세였던 영조 역에 젊은 배우를 쓰지 않고 중, 노년을 연기하는 배우를 그대로 써서 위화감이 든다. 어차피 사도세자의 탄생까지는 얼마 다루지 않고 대충 넘길 정도로 그냥 도입부에 불과했기에 딱히 젊은 배역을 선정하지 않은 듯 하다. 이 때문에 실상 영조는 대박이 방영하기 전까지 줄곧 아역 아니면 노년 역만 나올 뿐 젊은 시절의 모습을 사극에서 찾아 볼 수가 없었다.[38] 천호진이 아니다.[39] 가수 혜은이의 전 남편.[40] 일일드라마인 〈하늘아 하늘아〉가 3달 전인 1988년 7월 4일 먼저 방영을 시작하면서 선점한데다, 〈하늘아 하늘아〉는 초반부 혜경궁 홍씨의 아역이었던 이재은과 사도세자 아역 배우들의 연기가 인상적이었기 때문에 시작부터 많이 밀렸다. 다만 고증으로 볼때는 〈한중록〉이 훨씬 나았다. 어떻게 보면 지금의 양 방송사의 구도와는 반대로 진행되는듯하다.[41] 그녀의 상대역인 '사도세자'역은 정보석이 맡았다.[42] 가공인물.[43] 한국 124위 순교복자 중 하나[44] 박승도의 아내로 역시 가공인물이며 천주교 신자로 활동하다가 신유박해 때 참수형으로 순교한다.[45] 대한제국 수립으로 막을 내린다. 이 때를 기점으로 적어도 정식 국호로서 조선은 끝나기 때문. 마지막 장면이 대한제국 수립 이후 (황제 즉위식을 했던) 원구단 자리에서 내려다 본 현재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풍경에 "역사는 죽어있는 과거만의 기록이 아니라 살아서 흐르는 맥락이다" 라는 문구를 띄운 것이다.[46] 흔히 마지막 장면으로 알고 있는, 서양식 제복을 입은 고종과 태자(훗날 순종), 중신들이 함께 궁궐 뜰을 걷는 모습은 1896년 정초에 연호를 건양으로 정하고 양력을 사용한 것을 기념하여 다같이 새해를 맞이하는 장면이다. 사실 이는 고증오류로 문무백관들이 서구식 제복을 입은 것은 1897년(즉, 해당 장면을 기준으로 이듬해) 대한제국 수립 이후이다.[47] 두 성조기는 자세히 보면 별의 배치가 다르다.[48] 후에 내가 조선의 국모다!라는 유행어를 남기며 공전의 히트를 친 2002년작 〈명성황후〉하고는 묘사가 매우 다르다. 본래 명성황후는 역사적 평이 매우 좋지 않았던 인물이고, 사극에서도 대우가 그다지 별로였다. 이후 제작된 뮤지컬, 드라마 〈명성황후〉의 영향으로 대중적 이미지가 좋아진 것. 비록 좋아진 이미지 쪽이 역사왜곡의 소지가 많은 미화지만.[49] 극초반에만.[50] <뿌리깊은 나무>는 제외.[51] 주로 성적풍속이 비교적 자유로웠던 조선 초기때 이런 에피소드가 많다. 이를테면 연산의 검열삭제 장면이 그대로 나오고 무오사화 때 김일손의 시각으로 거열형 당하는 심정이 그대로 나온다. (자기 팔이 잘리는 걸 보는 장면 등). 최고 압권은 연산이 자신의 어머니를 모함했다는 두 후궁을 처단하는 장면인데, 매질쇼 장면을 아주 강조해서 보여주고 사지를 찢기 전에 옷을 완전히 발가벗겨 버린다.[52] 월산대군의 부인.[53] 이후 KBS 〈명성황후〉에서는 여흥부대부인의 동서인 흥인군 부인으로 나왔다.[54] 단, 몇몇 경우, 특히 아역에서 성인으로 넘어가는 경우는 제외. 일례로 광해군은 5부 〈임진왜란〉에서는 황치훈이 맡았지만 6부 〈회천문〉에서는 이희도로 바뀌었다.[55] 1부 〈추동궁 마마〉, 2부 〈뿌리깊은 나무〉, 3부 〈설중매〉.[56] 다만 〈설중매〉의 정현왕후와 〈한중록〉의 혜경궁은 당시 최명길의 나이대와 얼추 비슷했지만, 〈풍란〉과 〈파문〉은 전작에 비해 꽤 많은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노인 분장을 하고 등장했으며, 〈풍란〉에선 21살 많은 김혜자(문정왕후)의 시어머니, 〈파문〉에서는 16살 많은 김용건(정조)의 어머니로 나오는 어색한 상황이 되었다.[57] 문종 역의 임정하(〈뿌리깊은 나무〉, 〈설중매〉), 유자광 역의 변희봉(〈설중매〉, 〈풍란〉), 임사홍 역의 신충식(〈설중매〉, 〈풍란〉) 등.[58] 안평대군의 책사.[59] 인현왕후의 계모.[60] 참고로 〈왕도〉의 정조 역 배우는 강석우이다. 〈인현왕후〉에서 영조의 아버지 숙종을 연기한 것을 생각하면 배우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