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 임꺽정은 살아있다 | |||
회차 | 등장인물 | 개변된 역사 | 패러디 |
민주당 · 조선 · 압카이 아파시 구룬 |
1. 아시아
1.1. 조선
2. 유럽1.1.1. 의민당 → 민주당1.1.2. 적대자1.1.3. 왕실1.1.4. 조정/탕평당(소론)1.1.5. 조정/보수반동파(노론)1.1.6. 사림1.1.7. 대동당(大同黨)1.1.8. 꺽정의 친가
1.2. 여진1.2.1. 압카이 아파시 구룬(ᠠᠪᡴᠠᡳ ᠠᡶᠠᠰᡳ ᡤᡠᡵᡠᠨ, 아개국(兒凱國), 천병국(天兵國)→ 대금민국(大金民國))
1.3. 일본1.4. 명1.5. 류큐 왕국1.6. 조호르 술탄국1.7. 오스만 제국(오씨태안국(吳氏泰安國))1.8. 몽골1.9. 무굴 제국2.1. 신성 로마 제국2.2. 포르투갈(포로도갈(浦魯渡葛))2.3. 에스파냐(외수반야(嵬壽盤耶))2.4. 이탈리아 연맹2.5. 예수회2.6. 프랑스2.7. 잉글랜드→잉글랜드-네덜란드 연합 왕국2.8. 루스 차르국2.9. 폴란드-리투아니아2.10. 몰타 구호기사단
3. 아프리카4. 아메리카5. 저승6. 에필로그 1(1812년)7. 에필로그 2(19세기 중반 ~ 20세기 중반)1. 아시아
1.1. 조선
1.1.1. 의민당 → 민주당
- 임꺽정(= 배도치)
본작의 주인공. 본명은 배도치이며, 공적인 자리에서 이름을 쓰거나 읽을 때는 임거정(林巨正)이라고도 불리며 서양권에서는 "코우지오니스" 라고 불린다.
관군과의 추격전 끝에 결국 원 역사대로 1562년에 사망하여 명부로 떨어졌다. 내심 천하디 천한 고리백정의 자식으로 태어나 마침내 조선 팔도를 진동케 하였던 자신의 삶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기에 '내가 직접 처결할 이유가 없는 일개 도적 무리의 우두머리'라는 염라대왕의 조롱을 듣고 욱하여 그 자리에서 한 번 더 이승에 가서 날뛰게끔 해준다면 그 어떤 도적보다도 더 이름을 남길 수 있다면서 내기를 하자고 말하였다. 그리고 염라대왕이 내기에 응하여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업을 쌓기 시작했던 1545년으로 돌아왔다.
회귀 후에는 아예 당당히 도적 되기를 병해에게 밝힌 끝에 서경덕의 제자가 되었으며, 이로 인해 전생에는 없었던 더 넓은 안목과 지식, 그리고 인맥 등을 얻고 황해도에 의민당을 조직하며 혁명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의민당을 조직한 지 3여년만인 1550년 드디어 혁명을 일으켜 황해도 대부분을 장악하고 관군과 대치하더니 정예부대인 흑의군을 이끌고 성동격서로 한양을 기습 공격하여 점령하고 임금의 신병을 확보, 정권을 장악한다. 이로 인해 여진족 무리로부터는 조선의 타이시(太師), 일본 무가로부터는 조선의 쇼군이라는 인식이 생겼다.
임시직으로나마 정3품인 우림위 별장도 받아 당상관도 해 보고, 의민당을 해산하고 민주당을 새로 만들고 사업도 펼치며 기반을 넓히고, 신사임당의 삼녀 이명희와 혼인도 하며 조선 내에서 확고한 자리를 잡았지만 이에 만족하지 않고 세상에서 제일 큰 도적이 되어 전 세계에 이름을 떨치고자 하는 목적으로 중국부터 시작하여 더 나아가 일본, 중동과 유럽 등 더더욱 넓은 세계를 누비며 잔뜩 사고를 치고, 두리손, 장거정, 오다 등의 대적들과 맞선 끝에 사회질서 자체를 뜯어고쳐 시대를 훔친다 라는 사상을 완성하게 된다.
결국 천하대전, 후대에는 1차 세계대전이라고도 불리는 대전쟁 끝에 장거정을 꺾고 만국화약과 천하대전을 열어 개명된 법도를 전 세계에 퍼트리고 근대를 열어젖히는 데 성공하였고, 이후에도 하고 싶은 거 즐기며 살다가 1592년 1월 3일 환하게 웃으며 세상을 떴다.
작중 인물 중 전투력 최강자로 전생에 익혀놓았던 무술 실력을 그대로 가지고 와서 혼자서 산적들과 관군들을 털고 다니는 건 기본에, 역시 무예의 고수인 이지함도 힘으로 제압하고, 윤원형의 칼로 자라온 두리손도 채 몇합도 버티지 못한다. 니탕카이나 모리타니같은 칼밥을 조선인보다 훨씬 많이 먹는 여진족이나 일본인들도 아무렇지 않게 때려눕히고 해전에서도 배와 배를 넘어다니며 마츠라 왜구들을 거의 도륙하다시피 했다. 그나마 당대 최강군인 스페인군 수준은 되어야 수적 우위가 확보되면 간신히 제압 가능한 수준. 무기는 홍명희판 그대로 장광도(長光刀)라는 일본도.[1]
전세계적으로 사고를 친 만큼 이명도 많이 얻었는데 그 무력과 위엄에 감탄한 일본인들로부터 '흑염(黑炎)의 용(龍)'[2]이라는 이명으로 불린 걸 시작으로,[3] 동남아 말라카, 조호르를 거쳐 인도, 이집트를 지나 유럽까지 무역루트를 개척하기 위해 직접 유럽으로 떠나고자, 명분을 만들기 위해 류큐 왕자의 협조를 얻어 명나라에서 황제의 특사라는 칙서까지 얻어내는데 칙서 번역본을 빙자해 핀투 선장이 지어낸 라틴어 문서에 쓴 칭호로 하늘의 제국(天朝)의 으뜸가는 번국인 조선국의 호민관(민주당) 중 일인자(프린켑스)이자 나라를 빛내는 영예로운 신하(光國功臣)이자 흑갑기사단(흑의군)의 단장이며 깃털 숲 근위대(우림위)의 장군이자 하늘 받드는 용사들(압카이 아파시 구룬)의 영수이자 결백한 사내(白丁)들과 진실된 여인(女眞)들의 보호자 라는 거창한 자칭도 있으며.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에서 따와 "동방의 우환" 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본작에서는 작가가 임꺽정의 나이에 관련된 기록이 딱히 없던 것을 바탕으로 추정해서 1504년 생년설을 채용하지 않았다. 회귀 직후[4]나 혁명 및 정권 장악, 그리고 그 이후에도 아직 젊은이라는 언급이 계속해서 나오는 걸 보면 대략 1520년대 후반~1530년대 초반 생으로 설정된 모양.[5]
- 이지함
서경덕의 제자로 임꺽정의 사형이 된다. 조선 사회의 모순과 개혁의 필요성에 대해 고민하다가 정미사화에 연루되고 임꺽정에게 구출되면서 임꺽정과 함께 세상을 바꿔나가기로 하고 의민당의 모주가 된다. 서림이 의민당의 사업을 운영하며 재정을 관리한다면, 이지함은 의민당이 가야 할 방향에 정치적 책략을 더한다. 소윤 정권을 실각시킨 후에는 민주당이 원하는 정책을 추진할 때 사림파가 원하는 정책도 세트로 묶어 조정에 제시함으로써 사림파가 민주당의 정책을 막지 못하도록 하는 고도의 정치술을 보인다. 선박과 항해술에 깊은 관심과 흥미를 보이고 있다. 핀투 선장과 항해를 통해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확인하고 천하의 중심이 꼭 중국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돌아온다. 민주당과 사업당이 조선을 개혁한 성과가 하나둘씩 쌓여가면서 사람들에게 '백의재상'이라고 불린다.
- 서림(徐林)
평양 관아에서 병방 밑의 아전 일을 하면서 잠상들과 결탁하고 있다. 임꺽정은 서림이 전생에서 배신한 것을 꺼름칙해 하면서도 그만한 모사꾼이 없다고 생각하여 포섭하여 의민당의 수익사업 분야를 담당한 별감이 된다.
임꺽정의 회상에 따르면 회귀 전에는 한양에 붙잡힌 임꺽정의 가족들을 구하려다가 붙잡혔었다. 그대로 임꺽정을 배신해 붙잡히는데 일조했으며 포박된 꺽정을 찾아와서 굳이 대화를 나누었다고 한다. 그 때 한 말로는 임꺽정과 같이 가면 출세할 거라고 생각하고 따랐지만 임꺽정은 그럴만한 그릇이 안된다는 걸 깨달았고, 이준경의 토벌대를 이겨내지도 못하게 되었기에 배신했다고.
임꺽정이 이지함을 구하기 위해 옥에 잠입할 때 서림의 이름을 댄 것 때문에 평소에 적대적이던 아전들의 모함을 받아 위태로운 상황에 임꺽정이 찾아와 합류를 제안하자 고민끝에 합류한다.
그 후 의민당의 서책 밀수 등의 사업을 총괄해 막대한 돈을 벌어들인다. 의민당 봉기 이후에는 의민당에서 한손에 드는 서열로 전국에서 제일 출세한 아전으로 유명하다고. 민주당 사업당에 수많은 아전들이 모이면서 육방체제(이호예병형공)로 사업당을 정비하고, 금융, 군산, 조선 등 사업의 기본이 되는 부분에 보다 집중하는 것으로 사업을 정비 중에 있다. 이 과정에서 화식의 근본이 되는 것이라 하여 화본(貨本)이라는 말을 생각해 냈는데, 이게 잘못 쓰여서[6] 자본(資本)이 되었다. 이후 자본주의가 민주당 사업의 근본임을 천명한다.
작중 서림이 지닌 최고의 무기는 언변. 여기에 시대를 앞서 탄생한 통계학과 인포그래픽까지 더해져 그 언변이 더더욱 무시무시해졌다. 사람들에게 '백의호판(호조판서)'이라고 불린다.
- 도키치로(키노시타 토키치로) → 린쇼 히데요시(林徐秀吉)
원 역사의 천하인이자 임진왜란을 일으킨 장본인. 일본 자민당 휘하에서 일꾼 노릇하던 중, 민주당으로 파견되었다가 임꺽정의 눈에 들어 만재루에서 타짜로 뛰게 된다. 그 와중에 신발을 품어 따뜻하게 만들었다는 일화가 반영되어 임꺽정의 신발을 품었는데, 임꺽정은 정작 그의 아부 능력이 아닌 소리없이 자신의 신발을 가져가 품은 도적질 능력에 더 주목하여, 유럽 방문길에도 데려가기로 한다. 머리가 좋아 조선말도 금방 유창하게 잘 한다.
유럽에 와서는 다르다넬스 해협에서 저기 상륙하기 딱 좋겠다고 하거나, 이탈리아에서 원 역사의 하룻 밤 만에 성을 쌓았다는 일화를 구현하는 등 소소하지만 은근히 존재감을 드러낸다. 프랑스에서 앙리 2세 사고사 사건 이후 사후 정리 과정에서 기즈 가문과 부르봉 가문 간의 남아있는 갈등 요소를 해결하기 위해 여력을 아메리카 식민지 개척으로 빼낸다는 해결책을 제시했다.[7]
의외지만 임꺽정의 유럽행 일행의 막내라서 그런지, 아시아로 돌아오는 길에 파손된 유리 공예품들을 가지고 놀다 우연찮게 망원경을 발명해 내기도 한다.
고향에 돌아와 보니 자신의 어머니와 아우들이 류큐로 팔릴 위기에 놓이자, 이에 키요스 성으로 가서 오다 노부나가와 1대1 담판을 짓는다.[8] 지금까지 온갖 대역물에서 다양한 푸대접을 받아온 히데요시인데 여기서는 재간꾼이자 아군으로 등장하는 것이 신선하다는 평도 있을 정도. 심지어 이순신과 호형호제한다.[9]
원 역사대로 네네와 플래그가 꽂혔는데, 문제는 당시 네네의 나이가 12~13세 밖에 안됐던지라 졸지에 페도소리를 듣게 되었다. 이후 임꺽정과 서림의 성을 따와서 린쇼 히데요시로 개명하고,[10] 명나라 장거정의 침공을 막기 위해 고민하던 민주당 핵심들에게 일본과의 동맹을 주장한다. 영주들의 착취에 신음하던 일본 백성들도 민주당의 개혁이라는 선물을 받게 해준다면 민주당을 따를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리하여 규슈 지역에서 기존의 세율 90%를 완전히 뒤집은 세율 10% 개혁이 이뤄진다.
임꺽정의 교토 행에서도 사이카슈를 동원해 임꺽정과 요시테루를 구해냈다.
그리고 덴쇼의 역에서는 이순신과 더불어 서군 진영의 전술 참모 포지션을 수행, 원 역사의 주고쿠 대회군 때의 쾌진격을 기나이 대진군이라는 이름으로 더 큰 스케일로 진행시킨다. 세간에는 정공법의 이순신과 함께 기책의 린쇼로 임꺽정의 2대 참모로 알려져있는 모양.
1592년 임꺽정 사망 시점에는 사업당 별감자리까지 올랐다.
- 이지(이탁오)
명나라의 양명학자. 이지함이 이끄는 적도 탐험대가 강남을 방문했을 때 은근슬쩍 합류했다. 필담으로도 감정이 여과없이 전해질 정도로 탐험대와 친해진 차에 조선 학자들이 나름의 자기 합리화를 끝낸 걸 보고, 냉큼 자신도 동참했다. 그 후 민주당의 대 유럽 무역 사업에 동참해 명나라 쪽에서 투자자들을 모은다. [11] 그 뒤 임꺽정에 대한 감시역을 핑계로 임꺽정의 유럽 원정에 합류하게 된다. 그 뒤 고아에서 핀투가 이단심문관들에게 잡히자, 대뜸 지동설로 광역 어그로를 끌곤[12] 그틈에 종교재판소를 폭파하여 핀투를 구출한다. 그후 아덴에선 자신을 고아 교회를 폭파한 이슬람 지하드 전사이자 알라딘[13]의 자손으로 소개[14]하여 아랍인들의 환대를 받는다. 이슬람권에서는 '지아웃딘 박사', 유럽에서는 호인 탁오를 따서 '타고스 박사'라고 불린다. 장거정에게 정체가 탄로나자 아예 조선으로 건너온다. 직접 첩보활동에 나설 때는 고향에서 잠깐 마주쳤던 건달 이름인 심유경을 가명으로 사용한다.
작중 서술에 의하면 "꺽정이와 이이를 반반씩 섞어놓은 뒤 조금 더 묵힌 듯한 작자"(121화)인데, 임꺽정의 도둑심보 및 뻔뻔함과 이이의 박학다식 및 급진성을 모두 갖춘 그야말로 완전체가 따로 없다.
일행 안에서는 엘리자베스와 가장 가까우며, 엘리자베스를 리즈라고 애칭으로 부를 정도로 썸을 타는 사이가 된다. 만국화약 참석을 위해 엘리자베스가 조선에 오자 아예 대놓고 붙어다닐 정도.
상당히 장수했는데, 히데요시와 이순신 보다도 오래 살았다. 이후 칼리푸르니야로 떠난 뒤 거금을 들여 현무산(玄武山)에 임꺽정과, 서림, 이지함과 이이, 엘리자베스 튜더와 이명희, 린쇼 히데요시와 이탁오 자신의 얼굴을 새기게 했다.[15] - 각미사
- 사업당
- 남사고
공보 편집부에서 일한다. - 홍순언
역관. 그러나 임꺽정의 통역을 전담했다간 제명에 못 죽는다고 공보 쪽으로 부서를 옮겼다.
- 흑의군(黑衣軍)
의민당->민주당의 당군. 도적이나 한량 등을 모아 만든 직속 무력 조직으로 이후 신사임당의 아이디어로 검은 옷을 입힘에 따라 이런 명칭이 붙게 된다. 이들이 무리를 지어 한양 도성까지 진군한 것을 보면 아무리 봐도 검은셔츠단의 패러디다. 임꺽정을 따라다니며 훈련도 실전도 빡세게 굴렀던 덕에 금군도 능가하고 일본 무사나 스페인군과도 정면승부가 가능한 당대 최강의 정예군 중 하나. - 임밤
꺽정이 인생 1회차 도적 시절 때에도 부하였던 인원으로써 원래는 서경덕의 종이었다. 꺽정이가 서경덕의 제자가 되면서 그때보다 더 일찍 연을 맺게 되었으며 서경덕 사후 의민당으로 흘러들어와 흑의군이 되었는데, 거의 전부가 도적 출신인 의민당 초창기 멤버 중에서 몇 안 되는 폭력과 별 연 없던 노비 출신이라 꺽정이의 지시로 처음 인명을 해하고는 충격을 먹기도 했었다. 그래도 잘 이겨내고 계속 버텨서 혁명 직후에는 오막손이, 양벽과 함께 임꺽정 바로 아래의 세 간부로[17] 올랐으며, 계속해서 자리를 지켜 양벽이 퇴역한 천하대전 시점에서는 병사들한테 나리 소리 듣는 흑의군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원래는 노비라 성이 없었지만 혁명을 전후해서 히데요시처럼 임꺽정을 존경하는 의미에서 그의 임씨를 따왔다. - 오막손
임꺽정한테 병해 대사를 소개시켜 주었던 이천 도적 출신 당원으로, 말을 하는 재주가 뛰어나며 머리가 좋다. 흑의군 내의 몇 안되는 비문맹으로 혁명 이후에는 흑의군의 간부로서 군정 담당. 작 종반 시점에서는 송도의 서경덕 살던 초막을 지키며 찾아오는 이들에게 꺽정이가 세상 바꾼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야기꾼이 되었다. - 최만복
황해도 강음현 태생인 도적 출신 당원. 혁명 당시 성황산성의 수비를 담당했지만 이윤경이 화포를 끌고 와 쏘아대자 양민들을 지키기 위해 항복했다. 혁명 성공 이후에는 오래 지나지 않아 흑의군을 그만두고 고향 근처의 평산군에서 나장 자리를 얻었다. 조선인민군과의 내전 때에는 예성강 살여울 다리에서 이명희의 지휘 하에 황해도 포수를 이끌고 금군 선전관을 엄호하는 것으로 다시 짤막하게 등장. - 양벽
한양에서 이기의 의뢰로 윤원형 자택들을 털 적에 동원되었다가 그대로 황해도 의민당 본거지까지 따라와 입당한 무뢰배 출신의 당원. 비록 입당도 위 셋에 비하면 살짝 늦지만 일단은 무예가 흑의군 내에서 그나마 임꺽정 다음 가는지라 흑의군의 간부로써 사실상의 부관이자 조련 담당관으로 활동하였고, 내전기와 천하대전 때에는 사실상 흑의군의 우두머리로서 관군과 같이 활약했으나, 톈진 습격전에서 큰 부상을 입게 되어 은퇴한다. 늙으신 어머니가 있는데 이 노모는 아들 사람 만들어 준 꺽정이에게 은혜를 갚겠다며 혁명 이후 꺽정이 자택의 찬모가 되었다. - 이순신
류성룡의 표현을 빌리자면 '남이 타당한 이유를 대며 뭔가를 시키면 어떻게든 그 일을 완수하고, 반대로 도통 납득 못할 일을 시키면 어떻게든 그 일을 망칠 궁리하는 성품'. 아직은 개구쟁이 꼬마이지만 임꺽정과 이명희의 무예를 궁금해하여 직접 구경하러 오거나, 핀투 선장의 카락 선을 보고 꼭 저런 배를 타고 싶다라고 하는 등 될성부른 모습을 보인다. 이제는 아예 주세붕에게 1대1 병법 과외를 받는 중. 주세붕이 죽자, 그의 이름을 카락에 붙이기 위해 은을 모은다.[18] 이후 명과의 전쟁을 대비한 워 게임에도 대항군 총사령관으로 참여하는 등 이후 민주당의 중진이 될 싹수가 보이고 있다. 이후의 전쟁은 병(兵)이 정(政)의 짝이 되어 서로 나뉠수도 홀로 설수도 없을 것이라 예견했다. 또한 히데요시하고도 어지간히 안면을 터서 서로 호형호제하는 사이이며, 권율과도 절친이다.
일본 서군을 지원하기 위한 파병군의 지휘관이 되어 첫 전투를 치르는데 젊은 나이에 첫 실전이라 그런지 약간 고전하기는 한다. 문제는 그 '고전'이라는 것이 플랜 A가 어그러져서 플랜 B로 대처해야 했다는 것을 이르는 말이지만. 이후 히데요시와 함께 서군의 참모로 명성을 알리고 있으며, 기책의 린쇼와 함께 정공법의 이순신으로 유명해진 듯.
일본에서의 맹활약으로 그 명성이 명나라에도 퍼져 있으며, 현재는 민주당의 군산 총책으로서 동래부에서 대전쟁 준비를 이끌고 있다.
임꺽정 사망 시점에서는 삼도원양수군통제사(三道遠洋水軍統制使) 로서 조선 수군을 이끌고 있다. 임꺽정 사망 소식을 듣고 히데요시와 한산도 수루에 앉아 일성호가를 들으면서 함께 애도한다. - 권율
시기가 시기인 만큼 한량으로 나오지만, 그 영리함은 어디 안가서 자신을 따르는 다른 한량들을 규합해 이정을 찾아와 그를 돕겠다고 했다. 두리손의 반란 때 한양 도성 수비에서 활약했다. 이후 요시테루를 돕고자 이순신과 더불어 일본으로 파견된다.
- 이항복
삼락서원 출신으로 재기발랄한 성격, 조정에 출사하지 않고 민주당으로 들어와 1584년 제2대 민주당 당수가 된다. 임꺽정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슬퍼하면서도 이제 임 당수께서 명부판관들을 골려주시겠다고 농담을 하여 민주당 사람들이 슬픔에만 빠지지 않도록 돕는다.
1.1.1.1. 꺽정의 가족과 처가
- 이원수
원역사보다 부인 신사임당에 대한 열등감이 커 부인의 만류를 무시하고 이기에게 청탁하여 봉산 군수가 된다. 발령받아 온 후에야 봉산현에서는 의민당의 허가가 없으면 군수가 뭘 하기도 어렵다는 걸 깨닫는다. 반억지로 도적 소탕에 끼어들었다가 역으로 포로가 되는 망신을 당하거나, 아내 사임당이 담판을 지어 의민당에 가담하게 되는 등의 온갖 일 끝에 그냥 명목상의 의민당 간부 대우를 받게 되었다. 정치적 논의 같은 것은 전부 재원 출자자인 주주 사임당이 하고, 본인은 그냥 지극히 간단한 업무만 처리하고 놀러다니다가 양민들이랑 주막에서 한 술상에 앉아서 대작을 하거나, 추수철 노름판까지 끼어서 푼돈 따고 좋아하는 개그 캐릭터가 되었다. 덕분에 민심은 호의적이고, 이원수도 황해도의 민심과 상황 정도는 꽤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 그러나 사임당 신씨가 보기에는 '나이를 먹을수록 푼수끼가 다분해지는(...) 한심한 영감탱이'에 불과하다는 게 유머 포인트.
- 사임당 신씨
작중에서 상당한 카리스마를 보여준다. 남편인 이원수는 물론 임꺽정과 이지함, 서림도 사임당 앞에서는 맥을 못춘다. 집안의 재산을 의민당에 투자하고, 친구가 된 황진이에게 검무를 배우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게 되어 원 역사보다 건강해졌다. 그후 임꺽정과 자신의 딸 사이에 혼사를 추진하는데, 장가가기 싫었던 임꺽정의 백정 커밍아웃을 쿨하게 넘기는 패기를 보여주었다. 이후 산모의 건강과 관련된 조사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그림 실력을 살려 조선 최초의 인포그래픽을 발명해 설명을 쉽게 만들었다.
- 이이
이지함의 제자가 되어 현실 정치를 논하게 되었다. 원 역사에서 과거 시험에 9번이나 장원을 했던 만큼 지적 능력이 어마어마하다.[19] 다만 눈새기질이 조금 있다는 것, 그리고 말이 좀 많다는 게 흠이라면 흠.[20] 이지함이 항해에 참여하고 있는 사이 민주당의 임시 모주 노릇하고 있다. 다수의 지지에 기반한 권점에서 착안 하여 양반을 제외한 계층을 위한 사상서를 저술하기로 하고 하비에르에게 정치철학을 비롯한 서양의 학문 서적들을 부탁한다. 책의 이름은 원 역사대로 격몽요결.
원 역사와 달리 과거에 한번 낙방했는데, 답안으로 내놓은 천도책이 대놓고 '자세한 내용은 격몽요결을 참고하라'같은 식이었던 데다, 그 내용도 유학과 마키아벨리 정치철학이 혼합된 급진적인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후로도 검손이의 움직임을 보며 좌표평면을 생각해 내는 등 소소하게 활약한다.
천하대전 종전 이후 전후 처리 과정에서 각 국가 간의 평등하고 공통된 법도인 만국공법(萬國公法)의 개념을 만들어 낸다.
- 이명희(李明姬) (검손당 이씨)
이원수 부부의 3녀. 실존 인물이나 이름은 작가의 창작이다. 임꺽정과 혼담이 오가는 중이다. 임꺽정이 백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지만 백정으로 태어나 여기까지 올라온 것이 더 대단한 것 아니겠냐며 관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꺽정뿐만 아니라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굉장한 미녀라고 감탄할 정도로 미색이 출중하다. 심지어 머리도 좋은지 왜관에 온 뒤 얼마 안 되어 이이와 더불어 일본어를 마스터하여 꺽정의 통역으로 활약한다. 전생의 불행한 혼인생활[21] 때문에 혼인하기 싫었던 임꺽정이 '백정은 본디 여진족의 자손이라 신부도 말타기와 활쏘기에 능해야 시집을 갈 수 있다'고 허풍을 부리자 이정까지 초청해 말타기와 활쏘기를 배울 정도로 적극적이다. 꺽정을 연모하는 이유가 단순한 연모가 아니라 꺽정이 바라는 차별 없는 세상이 오면 남녀 차별도 없앨 수 있으리라는 믿음임을 고백하여 꺽정은 그녀와 결혼한다. 결혼 후에도 단순한 아내가 아니라 조총 사격을 익혀 흑의군에게 가르쳐 주는 등 가장 믿음직한 동지로 활동한다. 당호는 검손당(黔遜堂).[22]
이명희는 아이를 가지고 싶어해서 남편 임꺽정이 자기 어머니가 난산으로 돌아가신 일 및 두리손의 해코지를 걱정해서 아이를 갖지 말자고 하자 크게 반발해 처음으로 부부싸움을 했다. 그 결과, 신사임당이 덤터기를 쓰게 된다.[23] 초산이라 그런지 진통을 오래 겪어 꺽정과 지인들을 크게 걱정하게 했지만 무사히 아들을 낳고, 산후조리를 겸하여 직접 흑의군을 훈련시킨다. 이때 모양새가 영락 없이 군대 조교. 이후 임꺽정이 유럽에 나가 있는 사이 민주당의 사업 전반을 책임지고 있으며, 지상여장군이라는 별칭까지 생겼다. - 임바우 → 임철수(林鐵洙)
꺽정과 명희의 장남. 아명이 그대로 본명이 되는 백정집안의 풍습과 아명은 일부러 천하게 짓는 양반집안의 풍습이 충돌하여 가족들이 고심 중 출산 때 하비에르가 진심으로 기도해준 것을 떠올린 병해대사가 사도 베드로처럼 바우라고 지으라고 하여 아명이 정해졌다. 아버지를 닮아서 체격이 매우 크다. 성장해 가며 아직 10대 초의 어린 나이임에도 힘이 웬만한 장정 못지 않다는 작중 언급을 보면 아버지의 피지컬을 무사히 이어받은 듯. 이후 자기가 친 사고를 몰래 수습하고 다니느라 자연스레 손재주가 좋아졌다는 언급이 나온다. 물론 공부 머리는 없다는 조식의 평처럼, 진로는 실업계 확정(...)이다. 하필이면 하성군의 누나 명순과 눈이 맞아 공개연애를 하게 되어 신사임당과 이지함의 뒷목을 잡게 한다.
청년이 된 후 아버지만한 업적을 쌓기 위해 고민하다 아버지가 청년 시절 박연폭포의 바위를 쪼갠 것에 영감을 받아 증기기관의 개념을 제시하게 되고, 대기압의 힘을 보여주기 위해 천하대회에서 마그데부르크 진공실험을 한다. - 임아기→ 임연숙(林姸淑)
꺽정과 명희의 장녀. 꺽정이 유럽에서 돌아오자마자 명희와 회포를 풀면서 가진 아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1.1.1.2. 조력자
- 화담학파
- 서경덕
제자 병해가 보내준 임꺽정을 정식 제자로 받아들인다. 임꺽정에게 있어서는 선비들 중 누구보다 지혜롭고, 점잖으면서도 자신을 신분에 상관없이 제자로 받아준 은인. 그래서 임꺽정은 전생과 달리 대국적인 큰 그림을 볼 수 있는 눈을 트이게 되고, 선비들을 무조건 증오하지 않게 되고, 양반들도 임꺽정을 무조건 하대하지 못하고 '임 처사'라고 반공대를 하게 된다. 임꺽정이 던진 '선비가 가장 큰 도적이다'라는 말이 화두가 되어 '아(我)가 스스로 천하의 사리를 궁구하니 비로소 천하 가운데 아가 있음이라'라는 진리를 깨닫고 이를 화담자의라는 책으로 남긴 후 사망한다. - 병해(昞海) 대사(세속명: 전우치)
서경덕의 제자. 젊었을 때는 현실에 좌절하여 도술로 세상을 조롱하다가 체포된 후 죽음을 가장하고 탈출하여 스님이 되어 속세를 떠난다. 임꺽정이 회귀한 후에는 임꺽정을 서경덕에게 보내 역사의 수레바퀴가 다르게 굴러가는 단초를 마련한다.
임꺽정이 의민당을 결성한 후에는 임꺽정, 이지함과 의기투합해 문정왕후의 마음을 얻고,괴력난신의 허망함을 설파하여 유생들과도 친해져 각미사를 결성하게 하며, 의민당 흑의군의 한양 입성 때 도망치는 왕실과 윤원형 일가를 유인하여 임꺽정에게 잡히게 하는 등 결정적인 공을 세운다. 그의 도술은 사실은 특수도구와 눈속임을 이용한 마술이다.
민주당의 유세에 동원되어 임꺽정과 같이 삼남을 순회하다가, 전우치의 이름으로 점쟁이들을 비롯한 시정잡배들을 규합해 기학(氣學)이라는 조선식 자연철학의 기틀을 닦는다. - 황진이
신사임당과 친구가 되어 신사임당에게 검무를 가르쳐준다. 원 역사에서의 예술적 소양은 어디 안 갔는지 의민당 봉기를 선전하는 주수가(舟水歌)라는 노래[24]를 퍼트린다. 고양이 기르는 데 재미를 붙여 사임당에게도 한 마리 선물해 줬다. 그 뒤 개성에 화담여숙을 차려 여성들을 교육하고 있다.
- 한온
원 역사에서도 임꺽정의 와주였는데 두 번째 생에서는 인천 최대의 도박장인 만재루를 아비와 함께 운영하고 있다.
1.1.2. 적대자
- 두리손 → 윤형민(尹亨敏) → 두리손[25]
윤원형의 얼자. 자신을 자식이 아니라 장기말로 생각하는 윤원형에 대한 원망이 가득하나, 신분상승을 위해 윤원형에게 충성한다. 임꺽정을 당황하게 하고 이지함을 부상입힐 정도로 뛰어난 무술 실력을 가졌고, 직접 정보를 수집하러 봉산 고을에 잠입하거나 의민당의 본거지 청석골을 급습하여 증거물을 가져가는 등 두뇌회전도 빠르고 손속이 악독하다. 임꺽정이 백정이라는 정보를 듣고도 이런 큰 일을 저지르는 자가 백정일 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등 사고방식 자체는 고루한 편. 윤원형이 임꺽정에게 잡히자 윤원형을 버리고 도주한다. 그 후 두만강을 건너가 여진족들 상대로 뭔가 음모를 꾸미는 모습이 나오더니, 다시 조선으로 건너와 윤원형의 은닉재산과 문객들을 모아 조직을 만들고 이량, 덕흥군 등이 얼굴마담을 하는 무본사(務本社)의 모사 역할을 하면서 전국을 돌며 민주당의 개혁으로 인해 손해를 본 지방 사족들, 민주당 이권을 놓고 다투는 향리들을 부추겨 민주당에 내분을 일으키는 공작을 벌이고 있다. 신분상승의 의지 하나만으로 윤원형의 사냥개 노릇을 했으나 임꺽정 덕분에 신분제 자체가 무너지려 하는 현실을 ‘불의 위에 불의를 더하는 짓’이라 생각하며[26]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민주당이 사람들의 권리와 욕망을 수면 위로 끌어낸 것을 역이용해 각종 권리를 지켜내려는 사족들과 쟁취하려는 평민들을 이간질시켜 결국 큰 내란을 일으키고 이 와중에 반정군을 이끌고 임꺽정, 민주당, 사림파를 전부 역적으로 몰아 파멸시키고 윤원형 체제를 복구하여[27] ‘천한 얼자가 종묘사직을 구했다’는 찬사를 훈구대신들에게 들으며 유일한 권력자로 군림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하지만 민주당과 사림파를 역모로 엮어서 몰아내려던 육신전 발간 사건이 오히려 명종과 임꺽정의 독대로 명종이 단종과 사육신 신원을 공회에 안건으로 붙이면서 흐지부지된데다 본거지인 수락산을 임꺽정에게 털린다. 임꺽정에게 '장터 좀도둑보다 못한 놈팽이'라는 폭언을 듣고 임꺽정이 2,3년 유럽을 다녀오는 동안 어디 마음대로 해보라는 도발까지 듣게 된다. 그 후 군사력 획득을 위해 군부 실력자 남치근을 비롯한 관군 장수들을 여럿 포섭하고, 꺽정에게 있고 자신에게 없었던 것이 바로 사상과 이념임을 깨닫고 선비로 신분을 위장해 민주당 개혁에 비판적인 이언적 문하로 들어가더니 원역사에서 양란 이후 조선 사회를 지배한 '성리학 원리주의'와 유사한 '재조론(再造論)'이라는 이념체계를 세운다.
꺽정과 민주당, 탕평당이 헌법 권점(국민투표)을 통해 재조론자들의 뜻을 제도권으로 끌어들이고, 손을 잡았던 명나라 장거정이 조선뿐 아니라 유럽까지 온 천하를 명나라가 집어삼키겠다는 야욕을 드러내자 꺽정에게 타협을 청하고, 꺽정 측에서도 이를 받아들여 헌법 투표에서 민주당, 탕평당이 내세운 오복헌법이 승리했지만 공회에서 추후 헌법 수정이 가능하다는 조항을 추가하여 재조론자들을 배려해주자 심정의 변화를 일으켜 꺽정과 정정당당한 싸움 한 판으로 해결하여 장거정의 도발에 대비하자고 하고 꺽정에게 남치근이 만든 살생부도 그대로 건네준다.
드디어 반란을 일으키는데 꺽정과 민주당, 탕평당이 반란 수뇌부를 먼저 칠 것을 예상하고 어차피 덕흥군, 남치근, 원준량 등 능력없는 탐관오리들이 대부분이던 수뇌부를 미끼로 내어주고, 군관급 실무자들을 포섭해 한양 도성을 바로 들이쳐 꺽정파의 허를 크게 찌른다. 심지어 무리한 공성 대신 수군에서 가져온 화포로 도성을 포격하며 공격하고, 군관급 실무자들에게 임무형 지휘체계를 허용하여 수뇌부가 없이도 작전에 지장이 없게 하고, 스스로 인민의 대표자라고 조선인민군을 칭하며 성저십리 백성들에게 "오복헌법을 임꺽정과 민주당이 스스로 저버리려고 하니 오복헌법을 지키려면 나를 따르라"라고 거짓 선전을 하여 포섭하는가 하면, 민주당 전력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인천항의 서양식 대형선들도 봉기와 동시에 선원들을 구금하고, 심지어 포르투갈과 동맹하여 함선과 무기 지원을 받는다. 봉기에 성공하더라도 명나라 장거정과는 맞설 생각으로 임꺽정과 민주당 수뇌부만 죽이고 민주당의 인력, 정책 대부분은 그대로 계승할 생각이다.
하지만 결국 꺽정에게 패배가 확실해지자 부하들의 희생을 줄이기 위해 자신 혼자 만인지적(萬人之敵)의 오명을 뒤집어 쓸 것을 결심하고 백기를 들고 투항한다.숭례문에 오른 명종과의 담판에서 심지어 인민의, 인민을 위한, 인민에 의한 정부를 세우는 것이 이 봉기의 목표라고 선언하고, 패배를 인정하고 부하들을 살리려 노력하는 등 첫 등장 때의 이기적이고 열등감에 불타던 모습에서 한 시대의 리더로 큰 성장을 이루었다. 꺽정에게 패배하고 죽더라도 후세 사람들에게 시대를 앞서간 위대한 민중사상가, 사회주의의 시조로 추앙받게 될 가능성이 높으며, 그의 사상은 정여립이 계승 발전시키고 있다.
그리고 임꺽정이 호관(변호사) 노릇을 하면서 사상의 정당함을 설파했으나, 반역죄는 피할 수 없었기에 능지형에 처해졌다. 대역죄인이라 시신은 거열당하고 저잣거리에 효수될 예정이었나, 누군가(아마도 꺽정이) 처형 당일날 저녁에 몰래 거두어 봉분을 만들어줬다.
1.1.3. 왕실
- 제13대 국왕 선조(宣祖) 이환(李峘)
원 역사 대로 주변 사람에게 휘둘리는 줏대 없는 임금으로 묘사된다. 윤원형의 전횡 당시에는 이준경은 주상께서 장성한다면 희망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가 상상 이상으로 윤원형에 휘둘리는 것을 보고 희망을 잃었을 정도.
중전의 출산이 가까워지자 새롭게 측근이 된 심통원이 이를 핑계삼아 흑의군을 몰아내라고 넌지시 암시를 주었지만, 못 알아들은 건지, 알면서도 그런 건지 딱 3개월만 흑의군과 거리를 두고 오히려 그만큼 금군역은 연장하게 되면서 이지함마저도 기막혀했다. 그러나 임꺽정과 서로 미운 정이 쌓이고 (문정왕후를 휘두르던)윤원형에게 휘둘리던 줏대 없는 성격이 민주당-사림의 개혁과 환상의 시너지를 일으켜, 조선의 전성기와 함께하는 명군이 되어가고 있다. 게다가 임꺽정을 겪은 덕에 어지간한 무뢰한은[28] 받아넘길 수 있게 되어 묘하게 이상적인 입헌군주화가 되는 중. 독자들이 붙여준 별명은 명붕이. 다만 조상 욕은 못 참는지 임꺽정이 면전에서 세조를 욕하자 단단히 화나서 양위 선언을 하기도 했다.[29] 하지만 임꺽정과 다시 독대하여 임꺽정의 진심을 듣고 오해를 풀며 임꺽정과 더 친밀한 관계가 된다. 권력을 놓고 권위만을 가지는 순간 오히려 만백성의 존숭을 받는 진짜 임금이 된다는 꺽정의 말을 따라 입헌군주제로 가는 발걸음을 내딛는다. 두리손의 난이 일어나자 꺽정에게 평안함경양도도원수 직을 내려 변함없는 신뢰와 우정을 보여주며, 꺽정도 어느새 임금을 자기 벗으로 생각하고 있다. 조선에서 국인선서를 제정할 때 앞장서서 서명하는 등 이상적인 입헌군주로 거듭나게 된다. 급기야 현재는 한양에 쳐들어온 에스파냐 군을 제압하기 위해 종묘를 덫으로 삼아 폭파시킨다는 꺽정이의 작전을 그대로 수용할 정도로 임꺽정에 완전히 물들어버린 모습을 보여준다. 원역사와 달리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 1592년 시점까지 장수하여 왕좌에 있다가 임꺽정의 부고를 듣고 애통해한다. 묘호는 원역사와 달리 선조를 받았다.
- 제14대 국왕 효종(孝宗) 이부
원 역사의 순회세자. 고열로 죽을 뻔했지만 꺽정이가 직접 부채질을 해서 열을 내린 덕분에 간신히 살아남는다. 원역사와 달리 건강하게 잘 성장하고 있으며, 지구와 달 사이의 거리에 대해 품은 궁금증이 이산해가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12세 때 또 중병을 앓고 어의 양예수가 치료를 못하는 위기가 있었지만, 꺽정이가 인맥을 총동원해 초야의 명의들과 스페인 의사까지 데려와 무사히 회복한다.
외전에서 밝혀진 바에 의하면 이후 무사히 왕이 된 듯. 그러나 하성군의 자식들이 다투는 꼴을 보다 못한 나머지 가만히 있던 능양군을 제외한 덕흥군 계를 모조리 폐서인 시켜버렸다.
- 문정왕후
윤원형과 함께 국정을 좌지우지 하던 대비. 좋지 않던 여론과 자신을 공격하던 도참설을 불가와 (맞)도참설로 타개하려는 것까지는 원 역사와 크게 다르지 않았으나, 자신을 공격하는 데 쓰이던 도참설을 배격하고 정릉 이장 문제에 해결책을 내준 병해대사와 가까워지면서 (좋지 않은 여론을 자신에게 몰리게 한)윤원형과는 조금씩 멀어지게 된다.
의민당이 봉기하자 철렴을 통해 분위기 쇄신을 노렸으나 이를 노린 윤원형의 수작으로 진짜로 권력에서 멀어졌고, 의민당이 한양을 급습하였을 때 윤원형에 대한 반감 때문에 병해대사의 의견을 따랐다가 의민당에게 잡히게 되자 아들 이환에게 의민당의 뜻에 따를 것을 권하였다.
그 뒤로는 직접적인 등장은 없고, 두리손의 난 즈음에 종묘사직이 위험해질 수 있음을 느끼고 (대비는 사화를 막고, 이언적은 두리손이 임금을 지키도록 하는)밀약을 맺은 것 외엔 정치적으로는 큰 움직임은 없이 불공을 드리며 마음을 달래왔던 것으로 행보가 간접적으로 묘사된다.
1.1.4. 조정/탕평당(소론)
- 이준경
그나마 조선 조정을 유지하고 있는 양심적인 대신. 임꺽정과 만나 의민당의 대의를 듣고 속으로는 타협을 바란다. 흑의군 혁명이 성공하자 조정 측 대표자가 된다.
임꺽정이 방납의 폐지를 거론하자 한 술 더 떠서 공납 폐지와 내수사 혁파, 균역법 도입을 계획한다. 왕실이 발작할 엄청난 강수였지만 이 정보를 알아낸 꺽정이 명종에게 조언하여 명종이 먼저 내수사를 혁파하는 대신 해외 무역을 담당하는 경제사를 설립하기로 한다.
임꺽정과의 관계는 복잡한데, 임꺽정과 민주당은 이준경을 두고 조선의 국체를 유지하는 중신으로 그 능력은 인정하지만 사상적, 성격적 면에서는 결코 융화될 수 없는 라이벌로 보고 있다. 실제로 민주당을 설립한 임꺽정을 찾아와 선비들이 윤원형을 막지 못하고 수십년간 추한 모습을 보였지만 조선은 선비가 세운 선비의 나라라면서 양천의 질서를 흔드는 임꺽정과 적대할 모습을 보이고, 이후 사림을 모아 민주당을 견제할 태세를 준비했다.
하비에르의 지구설에 대해서도 조정에서는 가장 먼저 반박했지만, 사석에서는 이황에게 "중국 너머에 무슨 나라가 있든간에 알 필요가 뭐가 있고, 무슨 쓸모가 있느냐. 그냥 모른 척 하고 우리 경장이나 잘하면 된다." 는 투로 탐탁잖아했다가 오히려 그게 선비로서 맞는 거냐는 반박을 듣는다.
민주당을 견제하기 위해 사림세력이 만든 탕평당의 사실상 영수가 되어 이러니 저러니 해도 민주당이 만든 자본주의 국제무역 체제에 비판적 동반자 노선을 밟는다. 두리손의 반란, 명나라와의 전쟁 등 조선이 겪은 큰 시련을 잘 극복할 수 있게 한 시대의 명재상.
여담으로 실존인물 이준경은 까칠한 독설가로 알려져 있지만, 본작에서는 까칠하다 못해 미쳐 날뛰는 임꺽정과 조식 등 더한 인간들이 널리고 널려서 그런가 상대적으로 시종일관 차분하고 신사적인 성격으로 묘사된다.
- 이윤경
이준경의 형으로 의민당 토벌군 도원수. 실제 역사처럼 군재가 뛰어나고, 임꺽정을 호적수로 나름 존중한다. 두리손의 난이 일어날 것을 대비하여 북병을 조련하다가 난이 일어나자 임금에게 도체찰사 직을 받고 임꺽정과 함께 진압에 나선다.
- 이황
풍기 군수로 있으면서 선정을 펼치나, 단성소를 들고 가는 조식과 만났다가 같이 잡혀갔다가 흑의군 혁명이 성공하여 풀려난다. 조식의 과격한 성미를 부담스러워하면서도 조식에게 끌려다닌다. 의민당의 업적에 대해 인정하면서도 이준경처럼 정학의 도가 흐트러질까봐 경계하는 입장이지만 대놓고 맞설 생각까지는 없다. 공보 문제에 대해서도 반대하는 입장이다가 조식과 같이 성리학적 질서의 우수함을 설파하고 민심을 교화하기위해 정론보를 발간하게 된다.[30]
북경 사신단에 민주당과 같이 왕직을 넘기러 따라가면서 명나라의 문인들과 많은 교류를 했는데, 그 과정에서 '사회계약론'에 대해 흘려버린다. 나라를 통치하지 못하는 군주는 그 자격이 없고 존재할 필요도 없다는 이론은 물론 북경에서는 신경썼지만 북경 밖에서는 다 흘렸던 모양.
민주당 개혁에 맞춰 전답을 전부 소작인들에게 처분해주고, 종이 수요 급증에 맞춰 닥나무밭 사업에 투자하며 서림의 주식회사 창설에 아이디어를 얻어 은행을 설립하여 경제인의 길로 나선다. 이황의 인망이 워낙 높아서 이황이 설립한 은행인 은정고의 예금증서가 지폐로 통용될 정도다.
- 보우
처음에는 대비의 총애를 병해가 앗아간다고 생각해 대립했으나, 병해가 이뤄낸 일들을 보면서 어느새 병해를 따르게 된다. 결국 임꺽정이 승과의 부활을 추진하면서 불교계의 대표로 추대된다.
- 주세붕
의민당 활동 당시 황해도 관찰사로 수상할 정도로 교육에 진심인 선비. 서원 사업에 끼어들려는 의민당 패거리를 처음에는 아니꼽게 여겼지만 의민당의 수법에 당하고 이이 및 이지함과의 면담을 거치며 교육학에 대한 자신의 인식을 재고하게 되었다. 윤원형과도 교우를 가지고 있었기에 의민당 봉기 이후 벼슬길이 막히게 되었지만 교육에 대한 열정만큼은 변함없었던 덕에 윤원형의 재산을 학당 건립에 쓰는 임꺽정에게 득달같이 달려가 협력을 요청하게 되었다.
비록 자신이 원하는 교육과 민주당 수뇌부가 원하는 교육의 모습이 다소 달랐기에 처음엔 당황해 했지만 어찌되었든 교육정책의 진보라는 것은 변함없었고 황해도 시절 일로 생각도 약간은 넓어진 덕에 민주당 당사에 머물다시피 하면서 적극 협조하고 있다. 중인과 양민층이 다수를 이루는 당원들에게도 예의를 지키고 잘 대해줘서 평가가 좋다고.
1560년 세상을 떴다. 이후 이순신의 요청으로 조선제 카락 1호에 그의 아호인 손옹(巽翁, 바람 늙은이)라는 이름이 붙게 된다.
- 정걸
원 역사대로 판옥선의 발명자이나, 해외무역을 노리는 민주당의 지원 아래 판옥선을 조금 더 빨리 개발하게 된다. 큰 배에 대한 로망을 열심히 떠드는 덕후 같은 모습으로 나오지만 원양항해에 대한 야망까지는 없다. 이후 민주당과 같이 배를 타고 일본까지 가게 된다.
- 곽순수
원 역사에서는 남치근 수하로 임꺽정을 직접 잡은 무관, 여기서는 봉산 군수로 갔다가 막 결성된 의민당을 본의아니게 지원하게 되고 그 후임으로 이원수가 자원하게 되어 신사임당 일가와 임꺽정이 엮이게 되는 발단을 제공한다. 그 후로도 민주당과 친하게 지내면서 정 3품 동래도호부사 직까지 올랐으나, 군부 내에서 친 민주당 세력을 미리 숙청하려는 두리손에게 암살당하고 호환으로 위장당한다.
1.1.5. 조정/보수반동파(노론)
- 소윤
- 윤원형
10채의 대저택을 자유롭게 오가면서 살고 있다. 연이은 자연재해와 자신의 폭정으로 민심이 적대적일 때 봉산을 번영시키는 의민당을 기꺼워했지만 점차 의민당의 본심을 의심하게 되어 의민당을 역적으로 몰아 토벌군을 보내나, 흑의군의 한양 참수작전으로 결국 임꺽정에게 붙잡혔으며 처벌만을 기다리는 신세로 전락했다. 그런 와중에도 자신의 파벌을 모아 새로 도입된 변호인 제도를 통한 구명을 노리고 있다. 재판에서 위록공신 자리를 명분삼아 처벌수위를 크게 낮추려 하지만, 어린 주상을 잘 보필했다는 것이 정말로 순전히 충심으로 한 것이라면 충주[31]나 황해도 고을[32] 아무곳에나 던져놔도 잘 살 것이라는 말에 얼굴이 창백해지고 만다.[33] 결국 본인을 증오하는 양민들 사이에 던져질 위험에 처한 것. 결국 자기 목숨이 임꺽정의 손아귀란 걸 깨닫고 재산의 대부분을 바치고 목숨을 연명한다. 결국 청홍도[34] 유신현(충주)으로 유배형에 처해지지만, 임꺽정의 압박에 의해 음독자살하고 만다.[35] 죽어가면서야 임꺽정이 자신과 전혀 다른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다. 재산 상당부분을 바쳤다곤 해도 남은 것도 적지는 않겠지만 자손들은 자기 대에서는 벼슬은 꿈도 꾸지 못하고 웅크려 살아야 한다고 할 정도다. - 정난정
윤원형의 애첩이지만 가장 총애받고 책략을 조언까지 하는 사실상의 정실. 정난정과의 사이에서 난 서자는 두리손과는 달리 장자로 인정받았다. 윤원형이 이기를 살해할 때 일부러 따라와 조롱하는 등 잔혹한 성격으로 묘사된다. 윤원형과 함께 잡힌다. 임꺽정에게 우리가 뭘 잘못했냐, 너라고 얼마나 잘하겠냐고 따지지만 너희 부부만 제거해도 한참은 잘한 거라는 대답에 공포에 질린다. 임꺽정은 정난정은 살려줘도 괜찮다는 입장이었지만 본인이 직접 주안상을 차려 남편의 독주에 어울리면서 결국 윤원형과 같이 자결한다. - 이기
덕수 이씨 가문의 거족. 윤원형의 정치적 파트너였다. 이용 가치가 다하여 윤원형에게 토사구팽 당하자, 임꺽정을 이용해 윤원형을 역으로 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진복창의 배신으로 실패. 자신은 일가나마 살리기 위해서 윤원형과 정난정 앞에서 스스로 독주를 마신다. - 진복창
이기가 팽 당할 것이 확실해지자 이기를 배신하고 윤원형에게 붙는다. 이후 황해도 의민당 토벌에 부원수로 참전했지만, 도원수 이윤경을 질투하고, 본인도 능력이 없어 휘둘리다가 이미 도성이 점령당한 걸 깨닫고 기절. 이후 몰락해서 토벌관군 해산 후에는 재판에서 사형 판결을 받고 사사당한다. - 심통원
윤원형 몰락 후 조정 내 보수반동파의 좌장. 이량을 통해 두리손의 계책을 받아 민주당의 정책을 사사건건 반대한다. 두리손의 반란에 가담했다가 역적으로 잡히지만, 친족을 더이상 죽이고 싶지 않았던 명종이 울릉도에 군현을 재설치하면서 평생 울릉군수로 사는 사실상 종신 귀양형으로 관대하게 처발받았다.
- 남치근
원역사에서 임꺽정을 잡아죽인 장수. 원래대로라면 임꺽정을 사로잡는 공을 세울 운명이었으나, 의민당의 봉기가 성공하며 끈 떨어진 연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로 인해 군부가 흑의군에 품은 열등감과 이준경의 군사력 강화 정책으로 체질개선된 군부의 힘을 노린 두리손이 심통원을 이용해 포섭한다. 주사도감[36]의 도제조 자리에까지 오른 상태. 하지만 두리손의 반란이 일어나자 두리손에게 버림패로 취급받고 임꺽정에게 내동댕이쳐진 다음 혼전 중에 죽임을 당한다.
- 무본사(務本社)
- 이량
명종비 인순왕후의 외삼촌으로 원역사처럼 윤원형과 도긴개긴한 인물. 스승 정사룡의 문제 사전유출로 과거에 장원급제 했다가 들통나 비난을 받고 승정원 주서라는 말직을 받는다. 두리손에게 조종당해 민주당에 대항하기 위해 결성한 무본사(務本社)의 명목상 좌수 역할을 맡으나 두리손의 손아귀 안에서 놀고 있다. 두리손의 반란이 실패한 다음 역적으로 처형당한다. - 덕흥군
이량과 함께 무본사의 중심 인물이다. 원역사처럼 인간성이 비루한 인물. 명종이 육신전 문제로 삐져서 양위 소동을 벌였을 때 왕위 계승자로 지목해버린 덕분에 앞으로 왕위는 꿈도 못 꾸게 된데다 흑의군에게 납치되어 협박을 받고는 데꿀멍한다. 두리손의 반란이 일어나자 왕이 되려는 야심을 보였으나 결국 버림패 취급을 당하고 남치근과 함께 죽임을 당한다. - 하성군
원 역사의런조선조. 원 역사에서 보인 것과 같이 도주본능이 워낙 탁월해서(...) 오다-에스파냐 연합군이 한양으로 쳐들어오자 누구보다 빨리 도망간다. 그래도 능력이 없는 인물은 아니기에 훗날 나름 그럴 듯한 회사를 차리고, 왕실에도 잘 보여서 군호를 4대 넘겨 계속 받을 수 있는 특권도 얻었다고 한다. - 이흠례
무본사 패거리로 활동하다가 꺽정에게 꼬리를 밟히고 도키치로에게 사기도박을 당해 엄청난 빚을 지고 아는 것을 모두 토설한다.
- 원준량
원균의 아버지로 유명하다. 남치근 패거리에 들어가 쿠데타를 준비 중이다. 두리손의 말에 따르면 원균은 이 역사에서도 주색잡기로 소일 중인 듯. 결국 두리손의 반란에 미끼로 이용되어 죽임을 당한다. - 원균
민주당의 개혁으로 연좌제가 폐지되어 처벌 없이 그냥 한량으로 살다가, 오다 노부나가 군을 장거정에게 수송하는 스페인 함대를 저지하기 위해 출전하는 자유민주당 해적함대에 입대했다가 조선 수군으로 넘어오지만 원 역사처럼 적을 보면 도망갈 궁리부터 하는 졸장부이다. 노부나가 함대가 한양을 습격했을 때 정걸의 인간방패 노릇을 하거나, 철수하는 노부나가 함대를 정걸이 유인할때 본인은 진심으로 도망치는 것인데 결과적으로 적을 유인하는 미끼가 되는 등 그나마 나라에는 도움이 되고 있다. 그런데 하성군은 또 원균을 명장이라며 신뢰하는 중이다(...).
1.1.6. 사림
- 조식
원 역사보다 5년 일찍 단성소를 올리려 상경 하던 중 이황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가 같이 추포된다. 흑의군 한양 입성 덕분에 풀려나자 궁궐로 달려가서 명종을 비판하는데 이 장면은 대체적으로 기존 선비들을 비판하는 대체역사물에서도 상당한 임팩트를 지녔다고 인정받는다.[37] 임꺽정과 흑의군을 적극 지지한다. 그러나 이이와의 대화 도중 원시적인 사회계악론이 나오자 그 급진성에 경악하는 모습을 보인다. 성격이 정반대인 이황과 티키타카를 주고받는 짝패가 되어 함께 정론보를 발간한다.
칼과 방울을 차고 다니던 대쪽같은 선비의 성정도 있거니와, 꺽정이에게서 성격이 옮았는지, 꺽정이 명나라 황제의 조서를 훔쳐서 내용을 베끼고 도로 돌려주는 작전을 언급했을 때 황망해하던 사림 중에서도 유일하게 찬동했다. 그러고는 조서의 내용을 베껴서 지혜로운 노인인 실옹(實翁)과 헛소리만 내뱉는 허자(虛子)의 의산문답[38]으로 풍자하고, 글 말미에 허자의 자가 희력(喜力)이고, 아호가 입청(立靑)이라 덧붙인다. 이는 명 황제의 연호인 가정(嘉靖)의 파자로, 쉽게 말해 "약쟁이 황제놈아, 너 언제까지 이따위로 헛소리나 지껄일래?"라고 한 것이나 다름없다.상국 천자에 대놓고 빅엿을 먹이는 조선 선비 클라스!
- 이언적
조선 사림파의 좌장 격 인물. 좋은 의미로도 나쁜 의미로도 너무 올곧은 선비라 윤원형의 전횡에 반대하지만 임꺽정과 민주당의 혁명에도 가장 반대하는 사람 중 하나로써, 정론보에서 이이의 의권론에 대해 반박하는 글을 실음으로써 본격적인 반민주당 인사로 두각을 드러내게 된다.[39] 보수반동적 사상을 공유하는 두리손을 제자로 받아주었지만 두리손의 반란이 실패로 끝나자 졸지에 역적의 스승이 되어 민중들에게 썩은 선비로 몰리게 되었고, 두리손과 독대한 뒤 자신이 두리손을 잘못 가르쳤다고 자책하며 남은 인민군 패거리가 귀양 보내질 캘리포니아로 함께 떠나기로 한다. 바예지트에게 칼리푸르니야 술탄국의 재상으로 위촉되어 원주민들에게 성리학을 전파하려고 하나 잘 되지 않고, 마침 두창이 퍼질 기미를 보이자 두창으로 원주민들을 통제하자는 바예지트의 계책에 동의할 뻔 했으나 여제자 토이푸리나의 항변에 깨달음을 얻어 조건 없이 두창 예방 인두법과 농사법을 원주민들에게 전파한다. 후일담에 따르면 세상을 떠난지 한참 후 토이푸리나가 할머니가 되었을 때까지도 대평원 원주민들에게까지 위대한 주술사로 이름이 알려지고 추앙을 받게 된다고 한다.
- 기대승
처음에는 하비에르의 말이 맞는지 검증하기 위해 적도 항해에 동참했으나 제주도 사람들이 카락선을 보고 저런 큰 배가 있었으면 우리 가족들이 바다에서 죽지 않았을 거라고 통곡하는 모습에 각성하여 잡학의 발전도 백성들을 위하는 중요한 일임을 깨닫는다. 주세붕 사후 김인후의 추천으로 삼락서원의 원장으로 부임하게 된다.
- 이산해
숙부가 무려 이지함인지라 기대를 한 몸에 받지만, 정작 본인은 숙부나 율곡만큼의 학문적 업적을 이루지 못할까봐 전전긍긍하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그러다가 우연히 관상관원들의 투덜거림을 듣고 천체의 움직임과 포의 사격제원을 대조하다가 끝내 하늘과 땅의 공통된 운동법칙이라는 개념까지 생각해낸다. 이후 토리첼리의 기압실험까지 먼저 하며 이 시간선에서는 위대한 과학자로서 역사에 남을듯. 다만 이 세계선에서도 이순신과는 인간적인 상성이 안 맞았다.
- 심의겸
사간원 정언으로 첫 등장. 심통원의 인척이지만 올곧은 인물로 묘사된다. 두리손 반란 진압 후 사간원을 사직하고 탕평당에서 일한다.
- 김효원
역사와 달리 여기서는 심의겸과 꽤 절친한 사이다.
- 곽월
곽재우의 부친. 소론(탕평당)을 지지하며 각종 사업으로 부를 쌓았지만 올바른 사상을 가진 훌륭한 선비이다. 임꺽정의 생각을 듣고 비록 도의에는 맞지 않는 가르침이나 오히려 세상에게는 더 이로운 가르침이라고 감탄한다. 병해대사도 이 나라에 저런 선비가 있으니 선비가 끊어지지 않는 것이라고 높이 평가한다.
- 정철
이 세계에서도 글은 아주 잘 쓰기로 명성이 났지만, 주세붕을 조문왔다가 삥뜯는 이순신에게 봉변을 당하고, 정여립의 대동당에 한자리 차지하려고 찾아갔다가 내쫒기는 등 인품은 비루하게 묘사된다. 하지만 글재주 하나는 인정받아 서림에게 고용되어 임꺽정을 따라와 가짜 칙서 위조에 동원된다.
- 신립
향후 있을 대전쟁의 대비를 위해 전국에서 차출되어 올라온 선비 중 한 명. 그러나 민주당 밑에서대학원생 구르듯뼈빠지게 구르다가 결국 도망쳐서 원 역사의 호적수였던 니탕카이의 휘하로 들어갔다. 그러나 이후 훈민정음에 기반한 새로운 여진 문자의 창제에 참여할 걸 생각하면....
- 황윤길, 김성일
원 역사에서 일본의 조선 침략 가능성을 두고 옥신각신했던 두 인물이다. 입신양명 꿈꾸고 흑의영에 같이, 자기 발로 들어왔다가 연구원으로선밀레쥐어짜이고 있다(...). 특히 김성일은 차마 임꺽정을 대놓고 욕할 깡은 없어서 자명종 보고 '지 명을 재촉하니 자명종(自命終) 아니냐'라며, 저걸 확 망치로 때려부술까 벼르는 중이다. 물론 황윤길은 그랬다간 민주당 기물을 파손했다고 더 쥐어짜일 것이라며 타이르지만, 분화차(커피) 맛이나 세상 맛이나 쓰기는 매한가지.
- 유성룡
삼략 서원의 학생 중 하나로 원 역사처럼 천재 이이가 유일하게 자기와 수준이 맞는 천재로 인정할 정도의 인재. 노부나가의 제안에 따라 만국화약에서 명나라가 국제연합 포지션으로 바뀐 후 그 천조 조정에 출사, 임꺽정 사망 시점인 1592년 천조 병부상서를 지낸다.
1.1.7. 대동당(大同黨)
- 정여립
삼락서원 원생으로 그 재능은 뚜렷하나 묘한 반골 기질이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두리손의 사상에 감명받아 지도자를 잃어버린 노론의 잔당들을 결집해 '대동론(大同論)'이라는 사상 체계를 설계하게 된다. 주요 산업의 국유화를 골자로 둔것을 보면 공산주의스럽다. 이후 대동론을 주창하던 중 이이에게 논리적으로 박살이 나고 대동론의 일부는 정론보에 살짝 흘려 동창과 장거정을 낚는 미끼로 쓰이게 된다.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고 당여를 다시 모아 대동당을 세운다.[40] 아호는 그의 반골기질이 반영된 청와(靑蛙, 청개구리)다.
1.1.8. 꺽정의 친가
- 말대가리
임꺽정의 아버지. 고리백정이다. 임꺽정이 천하를 떠들썩하게한 그 민주당의 임 당수라는 걸 알게되자 혼절하고 만다. 비록 학식이 짧아 세상 좋아진 걸 잘 체감은 못하지만, 그래도 출세한 자식들 덕분에 편한 노후를 보낼 수 있게 되었다.
- 꽃분
임꺽정의 어머니, 임꺽정을 낳은지 이틀만에 역병으로 사망했다. 병약한 미녀였다고 한다.
- 가도치(加都致)
임꺽정의 형. 원 역사인 1회차에서는 같이 도적질을 하다가 추포당해 사망했다. 동생과는 달리 사람은 선량하지만 임꺽정이 보낸 쌀과 옷감을 굶주리던 이웃들에게 나눠줬던 것이 문제가 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도적질에 참여한 것으로 묘사된다.
여기서는 아내가 임신한데다 임꺽정과의 연관성도 혁명 당시에는 알려지지 않아 그러한 험한 일에 가담하지 않을 수 있었으며, 그저 동생 배도치가 '의민당에 가담해 한 자리 꿰찼다' 정도로 알았지 설마 당수인줄은 몰라서 '따라가면 좋았겠다' 정도로만 생각하는 수준으로 그쳤다. 공보를 본답시고 유기값도 안 치러주는 양반네와 손주를 볼 나잇대에도 한마디도 못하는 아버지를 보고 결국 유기장이와 백정짓을 그만두고, 공보 배달부로 직종을 바꾼다.
이후 동생을 다시 만나 진실을 알게 되고 경악하지만, 동생의 앞길을 막을 수 없단 이유로 아버지가 말한 자신들과 절연하자는 제안에 동의했다. 하지만 꺽정이 정면돌파를 선택하여 절연은커녕 양주 고을에서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인물이 되었고, 꺽정이 덕분에 양주 고을에서 실시된 향임 선거에서 1위로 당선되어 향안에 오르게 된다. 이 향임이란 직위가 훗날 전정공회 등의 사건을 통해 격이 높아진 끝에 현실의 국회의원과도 같은 위상이 되니, 동생만큼은 아니어도 역시 크게 출세한 셈.
1.2. 여진
- 지탕카이(直堂介)
종성부 성저야인 부족의 족장. 우디거 부와의 지속적인 마찰로 열세에 처한 상황이라 고민하던 와중에 조선에서 권신을 갈아치워버린 떠오르는 무장인 임거정이 여진 출신이라는 헛소문을 전해듣게 된다. 이에 고민하다가 산하에 받아들인 떠돌이 니탕개가 이대로 야금야금 갉아먹히며 투닥거리느니, 한번 도와달라고 걸어보자고 의견을 내자 이를 받아들이고 기습적으로 우디거를 약탈해 축의금을 마련해서 한양까지 찾아온다. 이후 꺽정이와 민주당의 후원으로 니탕카이가 스타로 떠오르게 되자 아들과 같이 기꺼워하면서도 내심 경계하는 복잡한 심경을 드러냈지만, 결국은 아개국에 역으로 세력이 흡수되었음에도 쿨하게 불평하지 않고 니탕카이를 자랑스러워하는 해피 엔딩을 맞이했다.
- 왕타이
왕주 와일란의 조카로 해서부의 수장 자리를 이어받는다. 압카이 아파시 구룬에 마지못해 합류했지만 딴 맘을 먹고 니탕카이의 장례식에도 참여하지 않으려 하다가 교창아에게 사정을 들은 임꺽정이 직접 찾아와 죽이겠다고 협박하여 어쩔수 없이 수그린다. 하지만 니탕카이의 죽음 앞에서 하나된 주션 백성들의 마음을 보고 그 후로는 협력하게 된다.
1.2.1. 압카이 아파시 구룬(ᠠᠪᡴᠠᡳ ᠠᡶᠠᠰᡳ ᡤᡠᡵᡠᠨ, 아개국(兒凱國), 천병국(天兵國)→ 대금민국(大金民國))
- 니탕카이(尼湯介)
성저야인 부족에 사는 여진족 젊은이. 니탕개의 난을 일으켰다가 신립에게 진압당한 그 니탕카이다. 작중에서는 10대 후반의 젊은 나이로 묘사된다. 우디거 부 여진족과의 싸움에서 부락이 무너져서 오도리 부에 지탕카이에게 의탁하는 중이었다고 한다. 지탕카이에게 임꺽정에 대해 전해듣자 지금이야말로 우디거 놈들을 칠 기회라고 생각해 지탕카이를 설득한다. 임거정과 만나서 대련을 했는데 무력도 출중한지 임꺽정과의 승부에서 유효타를 먹이기도 했다. 여기서 조력을 청하자 임꺽정이 응해준 덕에 도박은 크게 성공해서 임꺽정의 혼례에 다녀온 후에는 임꺽정과의 친분을 토대로 한 민주당이라는 든든한 뒷배, 지리산 백정 수백명의 가담으로 함경도 관아와 토관들의 지원까지 받게 되면서 성저야인들 사이에서 세력을 통합, 확장하며 '버일러'(추장)이라고 불리고 있다. 최소 수백이 넘는 병력을 조선 장시에서 당당히 사온 철제 무기들로 무장시키고 자신들과 원수였던 북쪽 우디거 부를 마구잡이로 약탈해서 비싼 물자를 동래로 보내서 '암바 버일러'(대추장) 임꺽정이 설계한 조선과 일본, 어쩌면 그 너머의 교역에 참가해 더욱 높은 곳까지 올라가기를 바란다. 임꺽정의 휘하에서 용병으로 활약하던 중, 하비에르의 함경도 포교에 동행한 것을 계기로 하비에르와 절친한 사이가 된다. 부족의 원수를 우연히 마주쳐 원수를 갚았으나 그 원수도 니탕카이의 조상이 저지른 일에 복수했던 것이라는 말을 듣고 복수의 허망함을 깨닫고, 그 원수가 소중히 여기던 허름한 관음보살 목상[41]을 가지고 돌아와 천주교에 귀의한다. 그와중에 임꺽정으로 부터 (명의 무역제재 회피를 위한) 나라 건국을 제의받는다. 세례명은 요한. 그 뒤 임꺽정과 더불어 흑의군과 백정여진을 이끌고 출병, 숙수후 부의 아이신기오로 기오창가를 포섭하는 데 성공한다. 광개토대왕릉비가 있는 지금의 지린성 일대를 기반으로 하여 새로운 나라를 새우기로 했는데, 그 국호는 압카이 아파시 구룬(ᠠᠪᡴᠠᡳ ᠠᡶᠠᠰᡳ ᡤᡠᡵᡠᠨ, 하늘 전사의 나라). 이 국호를 듣고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는 이스라엘, 곧 "El[42]이 싸우시기를"로 번역했다. 그뒤 투표를 거쳐 압카이 아파시 구룬의 첫 수러 버일러(統領)으로 선출된다. 알탄 칸과 상호 무역 관계를 트는 등 업적을 쌓아 수러 버일러에 재선된다. 이후 3선 끝에 해서 여진의 여론을 고려해 통령 자리에서 스스로 사퇴, 이후 의병대 대장으로 일본 전역에 참가한다. 이때 돌격 구호인 '압카이 어럼비'를 일본 무사들이 '아카이(赤い)'로 잘못 듣고 '붉은 마병'으로 해석해서, 졸지에 요한묵시록에 나오는 적기사로서 동군 진영에 공포의 대상으로 군림하게 된다(...).
이후 구룬의 정사로서 명에 파견 후 텐진 습격전에서도 맹활약 하나 니와 나가히데의 군대가 쏜 화살에 5발이나 맞고 사경을 해매게 된다. 이후 임꺽정이 온 만주 땅에서 기린울라로 불러 모은 온 주르첸 사람들의 웃음과 눈물 가운데서 평화로이 세상을 떠나고, 천주교의 천국에 가서 사도 베드로와 사도 요한, 그리고 예수님(?)[43]이 마중나와 천국에 들게 된다. 후일 기린울라에 주션 백성들의 힘을 모아 석상이 세워지고 압카이 아파시 구룬의 국부이자 동양 공화정의 아버지로서 추앙받게 된다.
- 유르보리
니탕카이가 죽은 후 그를 기리기 위해 전쟁이 끝나자마자 모든 자료를 모아 사당을 세우고 역사서를 집필했다고 한다.
- 교창아
원 역사의 청나라 경종. 천명제의 조부이다. 건주여진 쪽의 부족장으로 임꺽정과 니탕개에게 가장 먼저 붙어서 나름 입지를 차지했다. 차기 수러 버일러 자리를 노리고 니탕개의 건국을 지지했지만 니탕개의 성실함을 보고 점차 진심으로 협력하게 된다. 이후 호론이 야문[44]의 알리하 암반(장관) 등 요직을 역임하다 니탕카이의 사임 이후 압카이 아파시 구룬의 2대 수러 버일러로 선출된다.
- 누르하치
아직 어린 소년이지만 이순신에게 보드게임으로 전략을 배우고 있다. 여기서도 산해관을 뚫으려다 운빨 때문에 저지당하는 모습을 보인다. 어지간히 분한지 눈물까지 보이지만, 사실 이는 이순신에게서 보드게임판을 뜯어내려는 수작이었다. 1592년 임꺽정 사망 시점에서는 대금민국 통령.
1.3. 일본
- 자유민주당(自由民主黨)
- 소 모리타네(宗盛種)
대마 소씨의 가신. 일본 측 인사로 찾아왔지만 쇼니씨와 오우치 몰래 임꺽정을 찾아와 현재 대마도와 왜국의 정세를 상세히 털어놓는다. 그리고 임꺽정에게 육지의 도적에서 끝나지 않고 바다의 해적들마저 섭렵한 대적이 되겠다는 포부를 듣는다. 이후 임꺽정이 히라도 왜구들을 격파해 왕직의 세력을 꿀꺽해버린 후에 다시 등장. 민주당과의 친분을 만들고 제대로 한 건 물어온 덕에 가문에서 평판이 좋아졌지만, 역으로 이 탓에 소 씨의 후계자 분쟁에 엮여버렸다고 한다. 모리타네는 욕심이야 있지만, 그게 자기 목에 칼 들어올 걱정하면서 도전할 가치는 없다고 여기는지라 민주당의 히라도 해상 제패를 전해듣자 바로 히라도로 날아와 마츠라와 서해까지 3명이 히라도를 분할한다. - 마츠라 타카노부
규슈 히젠국의 다이묘. 그러나 등장한 지 얼마 안되어 임꺽정에게 납치당한다. 이후 임꺽정 편에 붙어서 왕직의 왜구 병력 일부를 묶어두고 서해를 포섭해서 아군으로 끌어들이는 활약까지 해서 손쉽게 왕직의 세력을 손에 넣게 조력하는 공을 세운다. 모리타네를 은근슬쩍 밀어내고 자신이 히라도를 차지해 해외 무역에선 민주당과의 연줄까지 차지할 생각이었지만, 이를 눈치챈 임꺽정의 저지로 실패한다. 임꺽정과 민주당이 규슈에서 1공9민의 법도를 시행하는 개혁을 하려고 하자 이에 시마즈와 손을 잡고 저항을 시도하다가 린쇼 히데요시에게 "마츠라 상은 해고입니다"라는 통고를 받고 몰락한다. - 다케다 서방
일본에서보다 돈 벌 기회가 더 많은 조선으로 건너가기로 하여 조선에 와서 원역사에서는 적이었던 곽재우의 부친 곽월네 집 하인으로 일하고 있다. 곽재우도 진정한 선비인 아버지의 가르침을 잘 받아 바람직하게 자라고 있어 곽재우랑 사이가 좋다.
- 오다 노부나가
혼슈 오와리국의 다이묘. 조선의 흑염룡 하야시 쇼군[45]이 화포를 사용해 히젠을 발칵 뒤집었다는 소문을 듣고 천하인이라면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감탄하면서 화포 확보에 나섰다. 그 뒤 차야 시로타로(茶屋四郎太郎)[46]라는 가명으로 오와리의 상인 행세를 하며 조선으로 건너와 명희와 직접 거래를 시도, 부산제 조총을 확보한다. 이후로도 스페인인 용병들을 영입하는 등 적극적으로 군사력 강화에 힘쓰고 있다. 그 결과 실제 역사보다 2년 여 앞당겨진 오케하자마 전투에서 스페인 용병대를 활용한 테르시오로 이마가와 요시모토를 원 역사 이상으로 무너뜨리는 데 성공한다.
이후 일향종과 가족 문제로 찾아온 도키치로와 이야기를 나누고는 "(도키치로는 일본 땅이 바깥 세상에선 자그마할 것이라고 비웃었지만)일본에서는 잘난 나조차도 임꺽정을 이해하지 못하는데, 임꺽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다른 위정자는 더더욱 많을 것이며,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가 이해 못하는 상대를 미워하고 본다" 라며 앞으로 임꺽정이 맞서야 할 상대들이 무엇인지를 암시한다.
이후 미카타가하라 전투에서도 포르투갈제 컬버린 포의 힘으로 승리[47]하고, 동척사를 장기말로 이용하기로 한 장거정의 자금 지원을 통해 서신으로 서로 교류까지 하게 되며 그의 야망에 한발짝 더 다가서면서, 한편으로는 넓은 세계와 격변하는 정세를 인식했으며, 임꺽정과 오다 자신의 차이, 그리고 임꺽정에게 느낀 양가감정에 대해서도 이해하기 시작했다. 이후 쇼군 요시테루가 임꺽정, 자민당과 손을 잡자 그에 대항해 동군 연합군을 구성하고 우대신을 칭하나 결국 패배하자 수하 군사들을 이끌고 명나라 장거정에게로 망명한다. 조일압 3국 한양동맹 연합수군이 텐진을 습격했을 때 재빠른 대응을 하여 니탕카이에게 치명상을 입히고 스페인 갈레온 일부를 수습하는 데 성공한다.
이후 척계광과 더불어 대일통 진영의 주요 장수로 활약하나, 장거정이 일본 동군과 에스파냐 용병들을 남경 정부에 대한 총알받이로 삼으려 하자 이에 적은 자금성에 있다는 말과 함께 정변을 단행, 자금성을 불사르고 장거정을 척살하여 명의 최고 권력자 자리에 오른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장거정 스스로 계획한 일이었다는 것이 반전이다.
그 후에는 철인 1인의 천하 통치라는 장거정의 구상은 틀렸음을 깨닫고, 몸소 임꺽정을 찾아와 명나라 조정이 모든 권력을 내려놓고 일본 천황처럼 명목상의 천조가 되어 국가 간의 분쟁을 판단하는 국제연합으로 변신하고, 모든 국가는 서로 평등한 체제를 만들자는 구상을 먼저 제안하고, 만국화약에서 이 체제가 승인을 받는 업적을 남긴다. 또한 꺽정의 아들 철수가 창안한 증기기관의 무한한 잠재력을 가장 먼저 알아보기도 한다.
- 모리 모토나리
혼슈 아키국의 다이묘. 민주당의 제안[48]으로 이와미 은광 개발에 협력하기로 한다. 그뒤 부산포에서 만든 조총을 대량 수입, 원 역사대로 서국무쌍 스에 하루카타를 꺾는데 성공한다. 이후 규슈 격물에까지 적극 협조하며 현재는 서국의 주요한 다이묘 중 하나가 되었다.
- 시마즈 요시히로
임꺽정이 규슈 지역에 1공9민의 개혁을 강요하자 마츠라 타카노부와 손을 잡고 저항하려고 하나 실패한다.
- 시마즈 토시히사
세계 정세로 볼 때 민주당의 개혁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는 현실적인 생각을 갖고있다. 요시히로를 설득해 서군에 가담한다.
- 도쿠가와 이에야스
미카와국 영주. 오케하자마 전투 즈음에 스쳐가듯 언급 되었다가 자유민주당을 본떠서 회사를 설립했다는 언급으로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그런데 그 회사의 이름이 하필 동척사(東拓社)[49]다(...). 일단은 오다 노부나가와 동맹 관계지만, 노부나가가 패배하자 서군에 강화를 청해 동척사를 보존한다. 사실 이것도 노부나가가 안배한 것.
- 아케치 미쓰히데
민병대와의 전투에서 전사하면서 여기서는 배신자의 운명을 피하게 되었다.
- 호죠 우지야스
오와리-동척사 연합군에 대패하자마자 바로 노부나가에게 붙었다.
- 아시카가 요시테루
무로마치 막부 제 13대 정이대장군. 비록 실권은 없는 허수아비에 불과하지만, 검호 쇼군의 명성만큼은 허언이 아닌지라 검술 자체는 임꺽정 보다도 우위에 있는 것으로 연출되었다. 실제 역사대로 에이로쿠의 변을 맞아 장렬한 최후를 준비하던 찰나, 임꺽정이 교토 대화재를 일으키는 바람에 그 신병이 임꺽정에게로 떨어지게 되었다. 그뒤 임꺽정과 같이 사카이로 피신, 모리, 코바야카와, 시마즈 등 서국의 주요 다이묘들에게 토막을 요구받았다.[50] 이후 동서합전에서 서군이 승리하며 생긴 신정부의 태정대신 자리를 맡개 된다.
- 구로다 간베에
서군의 첫 승을 계기로 완전히 서군에 합류한다.
- 고니시 유키나가
1692년 시점에서는 히데요시가 사업당 별감이 되며 자유민주당 영수가 되었다.
- 가토 기요마사
1592년 시점에서 히데요시의 비서로 등장.
1.4. 명
- 제11대 황제 가정제 주후총
명 4대 암군 중 하나. 정사를 모조리 엄숭에게 맡기고 본인은 자금성을 떠나 별궁에서 도교 수련에 열중하고 있다. 그런데 그 수련이란게 수은 섭취라서 말더듬이 증세에 몸도 비틀비틀 하는 등 수은 중독 증세를 보인다. 이후 드러나기로는 주재후를 바지사장으로 이용하기로 하고 지금의 황제를 정리해버리기로 한 장거정이 주후총에게 도사들을 붙여서 수은 중독에 빠지도록 유도한 것. 결국 더 이상 볼 일이 없어진 장거정에 의해서 비참하게 운명을 달리하고 만다.
- 유왕(裕王)→제12대 황제 융경제 주재후
주후총의 아들들 중 그나마 가장 나은 아들. 장거정에게 바지사장으로 낙점되었으며, 장거정은 자신의 천하대일통 정책을 유왕의 이름을 빌어 세상에 발표한다. 본인도 장거정이 자신을 바지사장으로 이용해 먹고 있다는 것은 진작에 눈치 채고 있지만 자신의 힘으로는 어찌 할 도리가 없는 장거정이 무서워서 그저 따르고 있을 뿐이다.
- 황태자 주익균
아직은 어린 소년이라 암군의 자질을 보이지는 않고 있다. 북경에 최후통첩을 날리러 온 임꺽정에게 퇴로 확보를 위한 인질로 납치당한다. 하지만 본인은 공부를 안해도 된다는 말에 오히려 기뻐하며, 조선에서는 이이에게 맡겨진다. 노부나가의 한양 습격 때 조선 국왕과 국인들이 서로를 전적으로 신뢰하는 모습에 감동을 받아 조선 국왕같은 군주가 되겠다고 스스로 청하여 이이에게 눈높이 교육을 받게 되면서, 실제 역사의 암군 신세에서는 벗어나게 되었다. 노부나가가 제안한 명나라의 국제기구화 구상이 천하 만국에게 받아들여지게 되어 오늘날의 UN 사무총장 같은 명목상의 천자가 된다.
- 엄숭
간신. 내각수보. 왕직의 후원자. 임꺽정이 왕직의 집에서 엄숭과 왕직 간의 커넥션을 밝힐 증거를 확보하여 앞날이 어두워졌다. 북경에 온 임꺽정과 이이가 서계, 장거정과 작당모의 하는데 찾아가서 권모술수로 압박했지만 임꺽정이 손을 쓸 수 없다면 발을 쓰면 된다며 발차기를 냅다 박아버리는 바람에 섬돌에 머리를 처박아 기절하고 만다. 깨어났을때는 이미 왕직의 고변으로 인해 가정제의 신뢰를 완전히 잃은 상황이었고, 결국 아들 엄세번과 같이 처형된다.
- 서계
내각차보 겸 이부상서. 장거정의 스승. 특유의 처세술로 자리를 지키면서 엄숭이 실각하는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다.[51] 꺽정으로 만든 천금 같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엄숭을 몰락시키고 내각수보 자리를 뺐는다. 하지만 제자 장거정의 야심을 미처 모르고 있다가 장거정에게 뒤통수를 맞고 낙향한다. 막내아들이 토지를 탈점한 일을 꼬투리잡혀 장거정이 부추긴 홍병위들에게 인민재판을 당하기 직전 이탁오와 임꺽정에게 구출되어 조선으로 향한다.
- 조문화
공부상서. 엄숭의 수족. 왕직이 체포되어 발등에 불이 떨어진 엄숭이 조선에 사절로 파견했다. 엄숭이 처형될때 같이 숙청된다.
- 장거정
본작의 최종 보스. 조문화가 이끄는 사절단의 부사로 조선에 오며 첫 등장, 스승 서계와 같이 엄숭을 실각시킬 나날만을 노리는 젊은 정치인이었다. 조문화와 같이 조선에 사절단의 일부로 와서 뒤에서는 조선이 숨기는 것이 있다는 걸 눈치채고 엄숭을 찌를 칼을 자신이 받아내기 위해 기회를 노리고 있다. 모화관에 신병이 인도된 왕직이 탈주하자 그 배후에 민주당이 있음을 눈치채고 미복 차림으로 민주당 사업당으로 향했으나, 민주당에 발각되어 역으로 '우리와 손잡고 엄숭을 쳐내자'라는 임꺽정과 이이의 제안을 받아들이게 된다.
왕직을 쳐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민주당이 기존 도학 질서, 중화 질서에 위협임을 깨닫고 민주당을 방해하겠다고 선언한다. 그런데도 임꺽정은 장거정을 '장 형'이라면서 사적인 친분을 과시하여 절찬리에 써먹고 있다.
그 뒤 스승 서계를 밀어내고 내각수보에 앉아 정권을 장악하고 변화하는 세계에 대응코자 대일통론[52]을 내세워 동지들을 규합하고 포르투갈, 스페인과 손을 잡고 두리손의 반란을 지원하고 가정제를 움직여 조선을 꾸짖는 칙서를 내리는 등 임꺽정이 이끄는 조선에 대한 적대정책을 편다. 그러나 조식의 의산문답에 카운터를 호되게 얻어맞는다. 게다가 민주당이 흘린 정여립의 대동론에 낚여 공사를 설립하여 강남 사대부, 상인들의 재물을 몰수하고 농민들에게 환심을 사려던 계획도 항주에서 임꺽정과 이탁오가 오승은 등 강남 사대부들을 선동하여 무산시키자, 항주 난리의 책임을 묻기 위해 황제의 명으로 소환된 자리에서 이제 이용가치가 다한 황제를이제 영원히 다시 볼 일 없겠다 싶어서 계급장 떼고정중한 독설로 신랄하게 조롱하면서 죽어주십시오.라고 대놓고 말하며 시해하는 등 제대로 폭주한다.
이후 대전쟁에서 사실상 대일통 진영의 최고지도자로서 전쟁을 이끌었으나 각 전선에서 계속 밀리다가 결국 노부나가에게 배신당해 최후를 맞는다. 그런데 사실 노부나가의 반란은 장거정이 계획한 것으로 이미 패색이 짙어지자 자신을 희생하는 대신 대일통론의 씨앗을 중원에 남겨두기 위한 것이었다.
- 왕직
가정왜구의 수장. 아시아의 바다를 제패한 대해적으로 스스로 정해왕(淨海王)이라 자칭하는가 하면, 일본 해안가의 다이묘들조차 좌지우지하는 막강한 세력을 거느리고 있다. 임꺽정이 왕직을 잡겠다며 고토 열도를 공격할 때만 해도 조선을 시작으로 명나라 해안까지 정복하고 약탈하며 언젠가는 책봉까지 받아내겠다는 웅대한 야망을 가졌으나 조선 선비들의 열의를 우습게 여겼다가[53] 단 일전에 세력을 모두 잃고 포로로 잡혔다. 이에 혼자 죽기 억울하다며 꺽정에게 엄숭의 부정부패를 증명할 증거를 넘겼다. 압송되어 북경에 있던 중, 엄숭이 기절한 틈을타 서계가 자금성의 병력을 만수궁으로 옮겨놨고, 여기에 장거정이 수를 써 탈출, 임꺽정과 더불어 자금성 승천문(천안문)위에 올라서 농성을 시작한다. 마지막 변론을 마친 뒤, 명 황실과 조정을 전면으로 비판하는 일장연설을 남긴 뒤[54] 왕직의 진정한 소망은 자신이 한낱 가난한 소금장수로 죽기 싫어서 해적이 되었고, 거기서도 만족할 수 없었는데 원수같은 임꺽정 덕에 역사에 이름이 남겠다고 묘한 기쁨을 느끼고 임꺽정에게 이제는 나같은 단순한 도적놈 말고 저 큰 도적들(간신과 황제)부터 잡으라고 손짓발짓으로 말한 후 승천문에서 뛰어내려 숨을 거둔다. 이때 금군이 왕직을 노리며 쏜 수많은 화살이 승천문의 현판을 맞추는데 결국 현판이 떨어지며 산산조각나는 연출이 압권. 왕직의 일장연설은 많은 사람이 보지 못했음에도 점차 북경 전체에 퍼져나가기 시작했고, 죽고난 뒤에도 사방에 사당이 세워지며 가난한 백성들에게 '휘왕'으로 떠받들어진다.
- 서해
왕직의 동업자. 꺽정 덕분에 왕직의 빈 자리를 꿀꺽 삼키고 민주당의 동업자가 된다.
- 이성량
장거정의 명을 받아 압카이 아파시 구룬과의 협상이나, 두리손과의 연락책 등 비밀 외교 업무를 맡는다.
- 해서
장거정의 대계를 위해 포섭된 인물 중 한명. 원 역사의 성격 그대로 굉장히 꼿꼿한 인물이다. 장거정의 명을 받들어 응천순무가 되어 항주 지역 신사, 상인들의 재산을 몰수하나 임꺽정과 이탁오에게 크게 당한다. 스승 서계까지 숙청하려는 장거정의 폭주에 환멸을 느껴 임꺽정, 이탁오가 서계를 조선으로 탈출시키는 것을 묵인해주고 사직, 낙향한다. 그 후 오승은과 손잡고 남경 조정을 수립한다.
- 척계광
조선과 서양의 병법을 집대성해 정리한 기효병법(紀效兵法)을 저술하여 장거정의 신임을 얻는데 성공한다. 오다 노부나가에게 연락장교로 파견되었다가 가짜 칙사 심유경에게 농락을 당하나 물을 끼얹어 변장을 씻어내는 수법으로 심유경의 정체가 이탁오임을 밝혀내지만 임꺽정과 야스케에게 또 당한다. 패배한 노부나가를 데리고 명나라로 돌아와 조선과의 전쟁 준비를 하고 있다.
- 조전(趙全)
알탄 칸에게 망명한 백련교의 두목. 민주당의 사상을 자신들의 교리와 통한다고 오해하여 임꺽정에게 동맹을 요청하고 요동을 빼앗아 백련교의 왕국을 세우려고 요양성에 침입한다. 하지만 임꺽정에게 잡혀 참교육을 당한 후 아직은 때가 아니니 당장 무력으로 명나라와 싸우지 말고 일단 요동에 정착해 착실한 양민인 척 살다가 명나라가 조선을 침공하면 그때 조선의 도움을 얻어 자신들의 나라를 세우라는 민주당의 계책에 협조하기로 한다. 명나라 전역에 깔린 백련교의 비밀 네트워크는 민주당에게 요긴한 첩보망이 된다.
- 오승은
서유기의 저자. 해서 때문에 재산을 몰수당하게 된 강남 사대부들의 대표 격이 되고, 임꺽정과 이탁오에게 충동질을 당해 항주에서 벌어진 난리에 앞장서게 된다. 그 후 민주당과 협력하는 저항조직 국민당을 이끌게 된다.
- 진린
동창에서 조선의 동정을 감시하기 위해 파견한 세작. 하지만 심유경 행세를 하는 이탁오에게 낚여 얼결에 서계 구출작전에 얼굴마담으로 동원되어버려 어쩔수 없이 이탁오를 따라간다.
1.5. 류큐 왕국
- 쇼 칸(尙桓)
유구국 쇼세이 왕의 5남. 일본 시마즈 가를 등에 업은 형 쇼겐에 대항해서 민주당의 지원을 청하여, 임꺽정의 대항해에 명나라 조정의 칙서를 얻을 명분을 제공하는 대신 민주당과 동업이 성사된다. 임꺽정 덕분에 스페인군을 무찌른 후 서림에게서 류큐를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으로 만들고 대만까지 진출하자는 제의를 받아, 허울뿐인 왕위는 형 쇼 겐에게 양보하고 진량사를 세워 대만 북부로 진출하고 구아노도 발견한다.
- 쇼 잇시(尙一枝) (계월당(桂月堂) 상씨)
류큐의 공주이자 쇼 칸의 누이. 류큐의 왕위 싸움에 휘말려 이이와 혼인하는 조건으로 조선으로 추방당했다. 그러나 이이를 비롯한 민주당 사람들이 바빠서 꿔다 놓은 보릿자루 비슷한 신세가 되자, 자신이 살 길을 찾기 위해 임천당(任天堂)[55] 이라는 이름의 사타안다기 가게를 차렸다. 그 뒤로도 계속 관심을 끌어보려 해도 철저히 목석같은 이이의 모습은 자신이 살면서 단 한번도 받아본적이 없는 태도였던지라 자신이 푹 빠져버렸고 임꺽정에게 제발 다른쪽에 눈돌리지 말고 자길 보게 해달라고 사정사정할 정도다. 그래도 어렵게 합방을 해서 첫 아이를 낳고, 임천당의 사업을 보드게임 영역으로 확장한다.
- 야스케
대만에서 농장을 관리하던 중, 대만 섬 북부에 정박한 에스파냐 배를 나포하는 군공을 세워 류큐 민병대의 수장이 되어 민주당에 파견되었다. 이탁오가 가짜 칙사 심유경이 되어 노부나가 진영을 농락하는 작전에 임꺽정과 함께 참여하는데, 머리도 좋은데다 작중에서 유일하게 임꺽정과 힘이 대등한 장사인지라 큰 활약을 한다.
1.6. 조호르 술탄국
- 알라우딘 리아얏 샤
조호르 술탄국의 초대 술탄. 임꺽정 덕분에 포르투갈에게 뺐겼던 말라카를 시장 직에 추대된다는 명목으로 되찾는다. 세계대전이 터지자 조선에서 보내준 무기로 말라카도 완전 탈환하고, 인도에서 조선으로 보내는 초석 수송로 유지를 돕는다.
1.7. 오스만 제국(오씨태안국(吳氏泰安國))
- 쉴레이만 1세
오스만 제국의 파디샤. 작중 시점에서는 60이 다 된 노인이지만 두 아들을 시험하는 대목에서 위엄과 총기를 드러내는 등 원 역사의 성군다운 면모를 보여준다. 임꺽정과 대화를 나눈 후 그를 인정하며 동방에서 행한 바를 이곳에 행했듯 서방에도 행하라라는 말을 남겼다. 비중은 적지만 등장할때 마다 상당한 통찰력과 카리스마를 보여준다.
- 셀림 2세
원 역사 대로 상당한 술고래로 나온다. 임꺽정 일당의 수에즈 운하 계획과 엮여서 그들과 같이 유럽을 순행하게 되었다. 술은 끊지 못했지만 유럽을 직접 눈으로 보면서 원 역사보다 더 안목이 커지게 되었다. 애첩인 누르바누에 대한 사랑이 깊다. 부황이 승하한 후 제위에 올라 꺽정이가 기획한 세계대전에 참여한다.
- 뤼스템 파샤
소콜루 파샤와 함께 오스만의 재상. 소콜루가 셀림을 지지하는 것과 반대로 바예지트를 지지한다.
- 미마르 시난
오스만을 대표하는 건축가인 만큼 미켈란젤로와 더불어 수에즈 운하 건설 총책을 맡고 있다.
1.8. 몽골
- 알탄 칸
튀메드 부의 칸이자 몽골의 최고 권력자. 니탕카이에게 어마어마한 양의 포토시산 은을 받고 아개국과 민주당에 군마를 팔기로 한다. 특히 임꺽정에게는 아할 테케 한 마리를 선물로 보내는데 이 말이 에이로쿠의 변에서 꺽정과 아시카가 요시테루가 탈출할 때 요긴하게 쓰인다.
1.9. 무굴 제국
- 악바르
엘리자베스 튜더에게서 임꺽정 때문에 촉발된 세계대전의 징조에 대해서 듣고 동업을 제의받아 포르투갈령 고아를 침공한다.
- 바이람 칸
2. 유럽
2.1. 신성 로마 제국
2.2. 포르투갈(포로도갈(浦魯渡葛))
- 페르낭 멘데스 핀투
포르투갈 상인. 일본에 가장 먼저 조총을 판매한 상인으로 알려져 있다.[56] 왕직에게 반강제로 협력하고 있었지만 손익을 계산한 끝에 자신의 카락인 상 투메 호를 끌고 임꺽정 일행과 조선으로 향한다. 그 후에는 민주당의 배 셔틀 역할을 담당한다. 말라카에서의 일로 인해 고아에서 이단심문관들에게 잡히는 수모를 겪었으나, 이탁오가 지동설을 운운하며 이단심문관의 주의를 끄는 사이 임꺽정이 종교 재판소를 폭발시켜 구출했으며 이후로도 멘데스라는 중간 이름 때문에 유대인으로 몰렸다가 이탁오의 농간으로 인해 졸지에 중국의 맹(孟)씨로 족보갈이를 당해 위기를 모면했다. 천하대란 무렵에는 상당히 짬을 먹어 적을 상대로 능수능란하게 행동하는 대선단의 단장으로까지 성장했다. 이후 종반부 만국화약 때는 자신이 동방에서 경험한 모험담을 출판해 부와 명성을 더 모을 계획을 하는 등 잊을 만 하면 꾸준히 나와주는 캐릭터.
- 주앙 3세
포르투갈 왕. 임꺽정 일행이 포르투갈까지 오면서 벌여놓은 온갖 참상(?)들을 마주하자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자리보전을 시작했다. 결국 오래지 않아 사망하고, 임꺽정을 막으라는 유언을 남긴다.
- 프란치스쿠 바레투
고아 부왕령 소속 장교. 꺽정 일행이 고아 감옥을 터트린 일로 꺽정에게 원한이 가득하다가, 두리손의 반란을 지원할 군사고문관으로 조선에 건너와 두리손 군에게 컬버린 야포를 지원한다.
2.3. 에스파냐(외수반야(嵬壽盤耶))
- 카를로스 1세(=신성로마황제 카를 5세)
아우크스부르크 화의로 입지가 좁아진 상황에서 조선에 대한 첩보가 들어오자 함대를 동양에 파견하였다. 이후 바티칸에서 신앙의 자유를 선포하자 군대를 이끌고 다시 이탈리아를 침공하지만 평생을 바친 유럽 통일의 꿈이 무너지는 것에 많이 지쳐있는데다 꺽정의 말빨에 휘둘리게 된다. 베니스의 상인 이야기로 꺽정의 기를 꺾으려다 꺽정이 ‘피 한방울 안 흘리고 사람 살 한 근 떠내기가 뭐가 어렵다고’ 하며 자기 경험담으로 받아치자 기가 질린다. 이후 이탈리아 연맹과 빚 상환을 약속한뒤 퇴위하여 스페인을 순회하며 학자, 수도사들과 교류하고 있다. 돈 카를로스 훈육 건이 어느 정도 마무리 되자, 이탁오와 군주의 권한에 대해서 토론하고, 임꺽정 일당의 사상을 부정하는 '로마 공화정의 쇠락에 대한 논고'라는 책을 동방에 보내기로 한다. 절대 왕정-시민 혁명으로 이어지는 원 역사의 구도를 거의 정확하게 예견해 냈지만, 시민 혁명의 시대가 오려면 먼저 절대 왕정의 시기를 거쳐야 하기에 바로 시민 혁명을 성사시키려는 꺽정이와 민주당의 사상은 시대를 너무 앞서서 성공할 수 없다는 논리.
- 미겔 로페스 데 레가스피
류큐의 왕위 계승전에 개입 했다가 역으로 임꺽정에게 갤리온 두 척을 뜯기고 부하들은 니탕카이 밑에서 용병 노릇 하고 자신은 임꺽정의 인질이 되게 생겼다. 이후 카를 5세가 몸값을 지불하여 석방된다. 그 뒤 니탕카이 밑에서 용병 노릇 하는 옛 부하들을 데려오기 위해 콩키스타도르[58]들을 이끌고 임꺽정의 귀환길에 다시 합류한다.
- 페르난도 알바레즈 데 톨레도
통칭 알바 공. 카를 5세와 같이 이탈리아를 침공한다. 코우지오니스(임꺽정)과 타고스 박사(이탁오), 도키치로를 경계하는 중이다.
- 펠리페 2세
돈 카를로스의 광증으로 인해 골머리를 썩는 것으로 첫 등장. 아들의 광증으로 인해 괴로워하다, 부왕인 카를 5세의 제안으로 임꺽정 일행을 초청하기로 한다.[59] 임꺽정이 귀국한 후에는 역시 스페인의 국익을 위해서는 임꺽정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 명나라 장거정과 손을 잡고 메리에게 이혼 소송을 제기한다.
- 돈 카를로스(카를로스 2세)
여기서는 돈 카를로스의 광증에 후천적인 요인도 어느 정도 작용한 것으로 해석했다. 어쨌거나 그 광증이 어찌나 무시무시한지 임꺽정조차도 혀를 내두르고 이지는 아예 주왕 이야기가 허언이 아니었다고 한탄할 정도. 그러나 임꺽정이 정원의 조각상들을 부수면서 돈 카를로스 자신이 왕재임을 증명할 1달의 기한을 주고 못할 경우 바다에 빠뜨려 버리겠다고 협박하자 이내 경악하고 만다. 이후 임꺽정의 거울치료에 공황에 빠졌으나, 엘리자베스의 조언으로 유선 테크를 타기로 한다. 대전쟁이 끝나고 만국화약이 맺어진 후로는 무난한 입헌군주가 되었는지 1812년 시점을 다룬 외전에서 세계대전의 후유증을 극복하고 국가를 안정시킨 명군 카를로스 2세라고 불린다.
- 바르톨로메 데 라스 카사스
원역사처럼 양심적인 종교인으로 신대륙에서 원주민의 인권을 지키려다 흑인 노예제를 도입하게 되어 버린 일을 후회하다가, 수에즈 운하 건설을 방해하려는 맘루크들이 ‘림 파샤 패거리가 에티오피아 네구스와 짜고 오로모인 노예들을 끌어다 운하 공사를 시킨다’라고 고자질하자 직접 이집트에 와서 노예들에게 세례를 주고 이제 이들은 자유인이라고 주장하며 꺽정과 맞선다. 꺽정이 노예제 대신 머슴제를 제안하자 신대륙의 흑인 노예들을 구할 현실적인 방도라고 보고 찬동하며 이러한 움직임이 모여 문명의 길로 향할 것이라고 바라본다.
- 마르틴 데 고이티
본디 레가스피의 부하였으나, 류큐에서의 일로 니탕카이 밑에서 용병으로 활약한다. 3년 간의 활약으로 그의 용병대는 상치아고 바투르(산티아고 전사들)로 통하며 명성을 떨쳤고, 마르틴 본인도 장검으로 호랑이 사냥에 성공하며 카피탄 바투르라 불리는 등 여진족들 사이에서 나름 성공적인 입지를 구축한 상황. 이후에도 일본과 조선에서 민주당 소속 용병대장으로 얼굴을 비춘다.
- 미겔 데 세르반테스
돈 카를로스의 제안을 받아 조선 방문기를 쓰게 되었다. 후일 오승은의 서유기 영향을 받아 '돈 키호테의 동방 편력기'라는 소설로 유명해진다.
2.4. 이탈리아 연맹
2.4.1. 베네치아 공화국(대존국(大尊國))
- 지롤라모 자네
이집트에 운하 파는 일 때문에 파견되었다가, 베네치아 공국의 태도가 뭔가 수상하다 여긴 꺽정이네의 손에 걸려서 심문당한다. 사실 말이 심문이지 협박(...)이다. - 피에트로 로레단
원역사에서는 1567년~ 1570년 베네치아 도제를 역임한 실존인물. 베네치아에서 조선과 명나라에 대표로 보낸 특사. 서림과 같은 종류의 인간이라 처음 만났어도 죽이 잘 맞는다.
2.4.2. 교황령
- 바오로 4세
도덕적이지만 완고한 교황으로 등장한다. 처음에는 신앙의 자유라는 말만 들어도 화를 냈지만 결국 임꺽정 일행, 그리고 미켈란젤로와 이냐시오의 설득으로 신앙의 자유를 선포하여 이탈리아의 금융가를 결속, 카를 5세를 견제하려 하고 있다.
- 조반니 피에를루이지 다 팔레스트리나
르네상스 음악의 거목. 임꺽정 일행과 조선으로 건너와 환영식 연회의 곡을 지휘했다. 명종이 이 음악을 매우 마음에 들어했다.
2.4.3. 피렌체 공화국
-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원 역사의 괴팍한 성격이 그대로 묘사되었다. 임꺽정 일행의 권유로 성 베드로 대성당 건축 인부들의 파업을 주도하게 됐다. 이후 꺽정이 일행을 모델로 삼은 예수의 성전 정화 조각상을 성 베드로 대성당에 세우게 된다. 임꺽정이 예수 역할을, 도키치로를 비롯한 그의 부하들이 쫒겨나는 상인 역할을 맡았다. 이때 부하들이 짓던 표정이 평소 훈련받을 때와 같아서 더욱 실감나는 효과를 불러온다(...).[60] 이후 성 베드로 성당은 제자들에게 맡긴채 수에즈 운하 설계에도 참여한다.
이후 나이가 들어 시력을 잃자 시난에게 운하를 맡기고 이탈리아로 귀환, 메리 1세와 엘리자베스, 빌럼 반 오라녜가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로이 세상을 떴다.
2.5. 예수회
-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예수회의 공동 설립자. 일본 선교를 위해 왔다가 조선의 개혁에 대해 듣게 되어 조선 선교를 추진하다가 왕직 무리에게 잡혀있는 상태. 임꺽정이 인질로 잡은 마츠우라 타카노부와 포로 교환이 성사되어 조선으로 향한다. 어전에서 이런저런 말을 하다가 지구설에 대한 말이 나오자 이준경이 주례를 들어 논박 했는데, 임꺽정에게 낚인[61] 하비에르가 '그렇다면 주자와 주례가 잘못된 것입니다.'라고 폭탄 발언을 하여 어전 회의장을 발칵 뒤집고 말았다.[62] 그 뒤 선비들과의 논쟁, 그리고 함경도 포교 경험에 근거하여 천주실의[63]를 저술한다. 명희가 출산할때 꺽정을 위해 기도해주다가 신앙의 자유 개념에 대해 호의적인 마음을 품게 되고, 이에 신앙의 자유에 대한 서한을 임꺽정 편으로 교황청에 보냈다.
- 이냐시오 데 로욜라
예수회의 설립자. 하비에르의 친구이자 인생 멘토이기도 하다. 로마와 파리에서 임꺽정 일행을 안내했다. 하비에르가 말한 신앙의 자유에 원론적으로 찬성하지만 조금 더 신중한 모습을 보인다. 원 역사에서는 1556년에 로마를 덮친 말라리아로 사망하지만, 꺽정이 때문에 프랑스로 가면서 이를 피해가게 되었다. 임꺽정에 의한 숨은 수혜자인 셈.
- 루이스 프로이스
일본 서군 민병의 종군신부로 재직중이다.
2.6. 프랑스
- 미셸 드 노트르담
노스트라다무스로 잘 알려진 전설적인 예언가. 이탈리아에서의 소식을 듣고 "동쪽에서 우환이 오리라. 둘은 하나가 되고, 하나는 반절이 되니, 옥좌에는 탄식이 깃들고 왕관에는 녹이 스는구나."라는 새로운 예언을 적었다. 이 예언은 임꺽정에 의한 앙리 2세의 척추 폴더(...)로 적중한다. 그 후, 유럽에서 주역 유통에 협력하기로 한다.
- 앙리 2세
기사왕이라는 이명에 걸맞은 호탕한 스포츠맨. 임꺽정 일행을 후하게 대접해 주었으며, 임꺽정에게 토너먼트를 제안했다. 그런데 임꺽정과의 토너먼트 와중에 임꺽정이 내지른 랜스에 맞고 낙마했는데, 하필이면 척추가 접혀 원 역사보다 3년 일찍 즉사하고 말았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원 역사에서 눈에 랜스 장대 조각이 파고들어가 생긴 감염증 때문에 열흘간 앓아누웠다가 간 것에 비하면 비교적 쉽고 곱게(?) 떠났다는 것이다.
- 카트린 드 메디시스
임꺽정이 사고를 쳐 원 역사보다 일찍 과부가 되었다. 임꺽정의 물귀신 작전으로 기즈와 부르봉의 약점을 쥐게 되고, 장기적으로 국가 내부의 분열을 막기위한 계책으로 아메리카 진출까지 제안 받는다. 그리고 무려 국왕을 죽인 임꺽정 일행의 죄를 사면하는 대가로 잉글랜드의 왕위 계승에 개입할 것을 의뢰한다.
2.7. 잉글랜드→잉글랜드-네덜란드 연합 왕국
- 메리 1세
상상임신 파동으로 인해 인망을 상당히 잃은 모습으로 나온다. 임꺽정이 전달해준 카트린 드 메디시스의 밀서를 보고 충격을 받은 나머지 몸져 누웠다. 그 뒤 임꺽정 일행을 다시 만나고는, 뭔가 깨달음이 있었는지 빈민법을 시행하고 고아를 입양하여 찰스라는 이름을 붙인 뒤 대외적으로는 자신이 낳은 친자인데 몸이 너무 약해 그동안 숨기며 상상임신이라고 했다가, 이탁오의 치료로 아이가 건강해졌으니 공식적인 후계자로 삼겠다고 공표한다. 엘리자베스 튜더와는 의외로 동병상련 같은 입장이라 사이가 나쁘지 않다.
이 양자 때문에 펠리페 2세와의 이혼소송에 휘말리지만, 심신의 안정을 되찾아서 펠리페에 집착할 필요가 없어졌기에 "내가 바람을 피웠다니 무슨 개소리냐. 내 상판에 잘도 남자가 꼬이겠다!"라는 자학성 유머까지 곁들이며 소송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낸다. 국내 경제가 활성화되고 민심의 지지도가 높아지니 가능한 처사다.[64]
- 동인도 회사
- 엘리자베스 튜더
자신을 동인도 회사의 사장으로 소개하며 첫 등장. 처음 등장하자마자 임꺽정 일행과 거의 동일한 계획을 제안했는데, 이에 임꺽정이 계획을 솔직히 털어놓으며 (물리적인)동행을 제안하자 당황한다. 그러나 자신이 사라져 줘야 잉글랜드의 내분을 막을 수 있다는 대국적 판단과, 무역을 통해 국력을 강화하겠다는 실리적 판단으로 류큐의 쇼칸 왕자처럼 왕위를 포기하는 대신 사업의 길을 택해 수에즈 운하 건설 현장 감독 권한과 오스만 제국과의 교역 추천서, 명 황제와의 독점적 교역권을 대가로 임꺽정과의 동행을 결정한다. 그 과정에서 겸사겸사 민주당의 '동인도 회사' 인수도 결정되었다. 꺽정 일행과 함께 행동하면서 이지와 썸을 타는 사이가 된다.
이후 무굴 제국을 찾아와 악바르에게 고아를 치는 대가로 이후의 세계대전의 구도를 귀띔해주고, 네덜란드와의 동맹을 주선한다.
- 찰스 오브 합스버그(카를로스 데 압스부르고)
메리 1세의 외아들이자 잉글랜드의 차기 국왕. 동시에 네덜란드의 국왕이다. 대외적으론 펠리페 2세와 메리 1세의 친자로 알려져있으나, 사실은 메리가 입양한 양자이다. 펠리페도 이를 알고 메리에게 이혼 소송을 냈으나 교황이 기각한다. 에스파냐에게서 독립을 선언한 네덜란드에서 국왕으로 추대되었다. 이름이 이름인데다가 엘리자베스가 '왕의 자식이 왕이 되어야지 농민의 자식이 왕이 될 순 없다' 며 귀환하여 왕위를 탈환할 야망을 가지고 있어 영국의 왕위를 차지할 수 있을지는 의문.
- 빌럼 판 오라녜
조선의 국인선서를 참고한 독립 선언문을 발표하며 에스파냐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하고 국왕 찰스의 섭정공 자격으로 네덜란드를 이끈다. 조선에게 감명을 많이 받아 말이 많아져 이 세계에서는 침묵공이 아니라 달변공이라고 불린다.
2.8. 루스 차르국
- 오시프 네페야
- 이반 4세
유럽의 동향을 확인 후 동방으로 카사크 탐사대를 파견했는데, 이들이 전리품이라고 포토시 제 은괴를 발견해오자 크게 당황한다. 그 후 꺽정이 때문에 세계대전을 피할 수 없게 되자 덴마크와 동맹을 맺고 친 꺽정 연합군으로 참전한다. 신성로마제국과 폴란드-리투아니아를 통해 조선의 국인선서에 의해 촉발된 의권론 논쟁이 노브고로드 시로 번지자, 이를 빌미로 도시를 "정화"하러 왔다가 피멘 대주교와 시민들에게 역으로 협박을 당해 젬스키 소보르 상설화와 오프리치니크 해산을 하기로 타협한다. 일 자체는 좋게 풀렸지만 이 일로 원래 더러웠던 성격이 이후 만국화약 시점에서는 더 더러워졌다고.
- 황태자 이반
아버지 이반 4세를 말리는 한편, 피멘 대주교에게 노브고로드에서 도망칠 것을 권하는 모습으로 짧게 등장. 마지막 화의 배경인 1592년 시점에 루스 황자가 만재루에 왔다가 속옷바람으로 달아났다는 언급이 있는 것으로 봐서는 노브고로드의 일로 전제왕권이 박살나면서 원역사처럼 1581년에 죽임당하지 않고 류리크 왕조가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 말류타 스쿠라토프
오프리치니크의 수장. 이반 4세에게 개처럼 아부한다.
- 피멘 대주교
노브고로드의 대주교이자 사실상의 지도자. 시민을 학살하려는 이반 4세를 장작이 쌓여있는 대성당으로 끌어들여 동귀어진으로 협박하여 타협을 이끌어낸다.
2.9. 폴란드-리투아니아
2.10. 몰타 구호기사단
- 장 파리소 드 라 발레트
바예지트의 의뢰를 받고 지중해를 건너는 임꺽정과 셀림 일행을 겁도 없이 습격했다가 흑의군에게 된통 깨진다.
3. 아프리카
3.1. 바르바리 해적
- 울루츠 알리
원 역사에서는 레판토 해전에서 전공을 세운 해적 출신 해군 제독. 여기서는 아직 해적 선장 시절. 바예지트의 사주를 받고 임꺽정 일행이 탄 배를 지중해에서 습격하나 임꺽정에게 털리고, 엘리자베스에게 스카웃당해 동인도회사에 입사하여 다른 해적 선장들을 회유하는 데 앞장선다. 임꺽정을 림 술탄, 엘리자베스를 엘리자베트 술탄이라고 부른다.
3.2. 에티오피아
- 갈라우데워스
에티오피아의 느구서 너거스트(황제)
4. 아메리카
4.1. 잉카
- 돈 디에고 데 카스트로(티투 쿠시)
신 잉카국의 사파 잉카. 에스파냐가 유럽 전선에 눈이 돌아간 틈을 타 잉카인들의 봉기를 주도하였다.
4.2. 칼리푸르니아
- 바예지트
셀림 2세의 동복 동생. 바르바리 해적들을 배후 조종하여 셀림을 습격했으나 임꺽정과 흑의군의 엄청난 무력에 밀려 수포로 돌아가고 만다. 결국 이로 인해 쉴레이만에게까지 버림 받자 임꺽정에게 구명을 청했고, 이에 임꺽정의 권유로 졸지에 신대륙을 개척해야 하는 신세가 됐다. 그래도 뭐에 홀린 듯 아메리카로 나아갈 계획을 짜는 걸 보면 아주 사약을 마주한 건 아닌 듯하다. 수에즈 운하 공사에 대해 이집트 맘루크들이 파업을 시도하자 꺽정과 일단 손을 잡고 알렉산드리아로 가서 맘루크들을 꾸짖고, 꺽정을 따라 조선을 들러 캘리포니아로 가서 원역사 로스엔젤레스에 라술 성을 세우고 칼리푸르니야 술탄이 된다. - 토이푸리나
칼리푸르니아로 건너온 이언적의 원주민 여제자이자 그의 마지막 제자. 본래 여자 의료주술사 출신이라 특히 의술에 관심이 많으며, 두창을 원주민 통제 수단으로 악용하려는 바예지트의 계책에 동조할 뻔 하던 이언적에게 깨달음을 주어 두창 예방법과 농사법을 원주민들에게 조건 없이 전파하게 한다. 후일담에 따르면 이언적 사후 본인이 할머니가 될 때까지도 이언적의 옛 집을 지키며 찾아오는 대평원 원주민들에게 두창 예방법과 농사법을 전파하며 조선인, 튀르크인들에게도 '큰 선비 퇴씨 할멈'이라고 두루 존경을 받고 있다.
5. 저승
- 염라대왕
명부 시왕의 일원. 스스로 대적이라고 칭하는 임꺽정을 비웃으면서 진짜 대적이라고 할 수 있는 석숭, 항우, 칭기스 칸, 주원장에 한참 못 미치는 자신이 스스로 처결할 필요가 없는 한낱 화적떼 우두머리에 불과하다고 꾸짖었다. 이에 임꺽정이 끝까지 대들면서 내기를 하자고 나오자 본래 명운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할 거라고 여겨 흥미 본위로 그를 과거로 돌려보냈다. 1592년 임꺽정이 다시 죽어 저승에 갔을 때는 시왕들 중에 유일하게 보이지 않았는데, 옥황상제에게 문책을 당하여 모든 지위와 공덕을 박탈당해 다시 육도윤회를 당하여 구르고 있다고 다른 시왕들이 전한다. 후일담에 의하면 송도여숙 다니는 미소녀 영애 염라희가 되었다고 한다.
- 베드로 & 사도 요한
이름은 나오지 않았지만 '머리 위에 독수리 한 마리가 맴돌고 있는 노인', '열쇠를 들고 있는 노인'으로 간접적으로 묘사되었다.[65] 천국의 문에서 마지막으로 니탕카이 요한의 품성을 시험하고 흡족해 했다.
6. 에필로그 1(1812년)
6.1. 아시아
6.1.1. 천조→만국연합
6.1.1.1. 조선
- 김조순
만국연합 예부상서. 프랑스의 폭압정치를 비판한다. - 박제가
1812년 시점의 영의정. 민주당의 후신인 국인의권당의 당수. - 홍경래
삼도원해수군통제영 산하 항공좌영 참령. 비행정 테러로 조난당할 뻔한 헤겔 일행의 구조신호[66]를 수신하여 구출에 성공한다[67]. - 정약용
그의 형제들과 함께 무려 비행기를 발명해 냈다. - 홍국영
원 역사 대로 상당히 미남이었던지 매리 크리스틴 영국 공주를 홀렸다. - 화산군
덕흥군과 하성군, 능양군의 적손이자 연잉군의 아들. 뒤주부터 베틀까지 빈민들에게 나누어주는 자선사업을 벌였다. 여담으로 '화산'은 실제 역사상 사도세자의 능역이 있는 곳이다. - 진안군(晉安君)
현재 덕흥군 가계의 당주로서 아버지인 화산군 못지않은 인망을 쌓았다.
그러나 그 실상은 사업당의 '그림자 별감'으로서 대대로 조선과 사업당의 여러 뒷일들을 처리하는 사업당의 첩보 총책. 단독으로 잠수함을 굴릴 정도로 권한이 상당히 강한 듯. 대대로 성미가 괄괄해서 그런지 세간에서는 하성군이 아니라 하성군의 누이인 명순의 자손이 아니냐는 풍문이 있다. - 화영당 이씨
진안군의 장녀. 본편의 명희같은 미모의 여장부, 술레이마니야에서 사업당의 대외 관리를 맡고 있다. 과거 커전 리-처칠 후작과 썸이 있엇으나, 그 불장난은 그 옛날 종묘를 태웠다는 지옥불에 가깝게 변했을 것이라는 헤겔의 추론으로 볼 때 상당히 좋지 않은 형태로 관계가 정리된 듯. 하지만 타고스 박사의 보물을 찾는 소동 이후로 다시 관계가 회복되어 리-처칠과 결국 결혼하고 백년해로 한다고 한다.
6.1.1.2. 대금민국
- 아이신교로 도르곤
삼총사의 일원.
6.1.1.3. 중원(남경 정부+북경 정부)
- 장헌충, 이자성
아이신교로 도르곤과 함께 이른바 '삼총사'로 묶인다. 중국이 양경 정부에서 더 갈라지는 것을 어떻게든 막아냈고, 그 활약을 바탕으로 볼테르가 낸 소설인 삼총사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실제로는 거창한 의리때문에 뭉쳤다기 보다는 각자의 이익을 위해 뭉친 것에 더 가깝다고. - 고염무
은허와 진시황릉을 발굴하여 명성을 날린 고고학자.
6.2. 유럽
6.2.1. 독일
-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백내장을 치료받고 원 역사보다 더 오래 작품활동을 한다. - 괴테
에필로그 시점에 『임꺽정』 제2부를 집필한 독일의 대문호. - 게오르크 빌헬름 코지온 헤겔
에필로그의 주인공. 베를린대학교 교수. 미들 네임의 ‘코지온’은 바로 코우지오니스(꺽정)에서 따온 것. 주전공은 본편의 배경인 16세기 후반 동아시아사. 바흐의 레코드를 듣는 것이 취미다. -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조선 삼락대학 교수. 원 역사대로 헤겔과는 라이벌 관계다. - 프리드리히 대왕
여기서는 상당히 조선 문화에 심취하여 포츠담의 정부청사에 무구루(無咎樓)라는 이름을 붙였다.
6.2.2. 이탈리아 연방
- 나폴레오네 디 부오나파르테
이탈리아 연방의 일 두체(Il Duce, 영도자)이자 종신 독재관. 본 역사의 히틀러 + 무솔리니 포지션으로서 로마제국 부활을 주장하며, 자신이라면 6주 안에 빈을, 1년 안에 베를린, 프라하, 파리를 점령할 수 있다고 주변국을 위협 중이다. 프레토리아니라는 근위대 겸 첩보 조직을 휘하에 두고 있으며, 유럽 정복을 위해 ‘타고스 박사의 보물’을 노리고 있다. 후일담을 보면 결국 제3차 세계대전을 일으켜 영연방과 슬라비아를 제외한 모든 유럽 나라를 정복했으나 영연방과 동방3국 연합군에게 결국 패망했다고 한다. 하지만 유대인을 비롯한 불량한 성분의 국민들을 희생양으로 삼자는 내부의 제안과 파비우스를 예로 들어 청야전술과 게릴라전으로 항전을 주장하는 여론을 거부하고 깨끗이 패배를 받아들인다. 밀라노 전범재판을 받고 일본 타네가시마로 종신 유배당한다. - 사보이아 대공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일 두체 부오나파르테의 오른팔. 현실의 헤르만 괴링 + 갈레아초 치아노 포지션이다.
6.2.3. 프랑스 대동주의 인민공화국
- 막시밀리앙 드 로베스피에르
프랑스 대동주의 인민공화국의 서기장. 3만명이 넘는 정치범을 아메리카 대륙에 있는 강제수용소에 처넣는다. 나폴레오네가 제3차 세계대전을 일으켰을 때 간을 보다가 나폴레오네를 지지하는 군부 쿠데타로 숙청당했다고 한다. - 루이 앙투안 드 생쥐스트
프랑스 대동주의 인민공화국의 선전부 장관. - 볼테르
아이신교로 도르곤, 이자성, 장헌충의 우정을 그린 『삼총사』를 저술했다. 쫄딱 망하여 절박한 상황에서 쓴 글이 대박이 났다고 한다. - 몽골피에 형제
원역사에서는 최초의 열기구를 발명한 형제로 여기서는 정약용 형제들에 이어 세계 두번째로 비행기를 발명한다. - 앙투안 라부아지에
노동교화소 신세를 지긴 했지만 그래도 질소 고정까지 발명해 내는 등 원 역사 이상의 업적을 이뤘다.
6.2.4. 영연방
- 블랜드포드 후작 커전 리-처칠[68]
이탁오의 양자의 먼 후손이자, 방계로는 친족인 모험가 고고학자. 처칠이란 성이 알려주는 대로 말보로 공작가의 장남. 인더스 문명의 흔적을 발견하여 그 계기로 인도인(Indian)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름 커전은 역시 꺽정에서 따온 이름. 타고스 박사의 보물을 찾아 헤겔과 함께 모험을 떠난다. 거정도에 숨겨진 타고스 박사의 보물의 정체는 리-처칠 가문의 시조가 이탁오의 양자가 아니라, 이탁오와 엘리자베스 튜더의 친자식임을 증명하고 후손들도 각자 자기의 의권과 자유를 마음껏 누리라고 격려하는 엘리자베스의 편지(증인으로 임꺽정, 서림, 이지함, 조선왕 이환이 서명 날인을 했다.)였다. 화영당 이씨와는 결국 화해하고 결혼했다. 그 후 제3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전시 총리가 되어 동방3국의 지원군이 올 때까지 영국 본토를 지키고 나폴레오네의 야욕을 격퇴하는 업적을 쌓았다. - 메리 테레사 왕비[69]
영연방의 대왕대비. 제임스 1세(=스코틀랜드의 제임스 7세)와 혼인 후 왕비가 되어 실질적인 여왕으로 활동했고, 에필로그(1812년) 시점에서도 딸이자 현 국왕인 메리 안토니아 뒤에서 존재감을 과시 중이다. - 메리 안토니아 여왕[70]
영연방의 국왕. 오빠 요제프 3세가 오스트리아 황제로 추대되는 바람에 왕위를 물려받았다. 입헌군주로서 나쁘지 않은 성품을 가졌다. 남편은 원 역사대로 루이스 오브 버번(루이 드 부르봉). 프랑스의 로베스피에르 서기장이 "얼간이 루이와 방탕한 마리 앙투아네트"라는 선동을 하고 있지만, 프랑스인들이 부들대기에 도리어 잉글랜드인들에게 사랑 받는 중이다. - 루이스 오브 버번
여왕 메리 안토니아의 남편. 마음대로 주무르기 쉬운 성품이 메리 테레사의 눈에 띄어 메리 안토니아와 결혼하게 되었다. - 올리버 크롬웰
17세기 중반 소빙하기로 전세계적인 위기가 왔을 때 영연방을 결성하고 튜더 왕조가 끊어지자 스튜어트 왕조가 세워지게 노력하는 등 여기서는 실제 역사와는 반대로 근왕주의자였던 듯 싶다. - 메리 크리스틴[71]
무려 홍국영과 눈이 맞아 조선으로 시집가 버리는 바람에 졸지에 합스부르크의 피가 조선까지 닿게 되었다. - 호레이쇼 넬슨
영연방 항공모함 ‘퀸 테레사’ 항모전단의 제독. - 토머스 제퍼슨
영연방 구성국인 뉴잉글랜드의 총리.
6.2.5. 슬라비아 합중국(러시아, 동유럽)
- 예카테리나 로마노바
통령으로 4선을 역임하던 중 노환으로 사망했다는 언급이 나온다.
6.3. 아메리카
6.3.1. 칼리푸르니야 술탄국
- 무함마드 빈 압둘와하브
로스엔젤레스 회재대 출신의 신학자. 공자를 무함마드 이전의 에언자로 여기는, 유교와 이슬람이 혼합된 종교 개혁 운동인 와하브 서원을 일으켰다. 이 운동은 동인도 회사와 자유석공회, 사업당의 지원으로 온 중동에 확산되고 있다.
7. 에필로그 2(19세기 중반 ~ 20세기 중반)
7.1. 조선
- 이하응 부령
조선의 우주비행사, 덕흥군 가문의 사손. 뒤마의 '보물성'을 읽고 우주비행사가 되었다. 동방3국 공동 달 탐사 우주선 '황자(荒字) 성한(星漢)'호[72]의 선장. 달로 가던 중 우주선에 문제가 발생하여 사투 끝에 귀환한다. 그 후 다시 '일자(日字) 성한' 호의 선장으로 다시 달에 가서 이번에는 달착륙에 성공하고 달 표면에 커다란 난초 그림을 그린다. - 김정호 종사관
조선의 우주관제관. 제주 정의군에 소재한 우주국에서 성한 8호와 교신을 담당한다. - 신재효
조선의 작곡가로 영화음악의 거장으로 유명하다. 뒤마의 보물성 시리즈의 음악을 담당했다고 하는 걸 보면 모티브는 이 사람. - 이순신의 후손 이 모 장군
동방 3국이 공동으로 지구 저궤도에 군사위성을 올려 핵무기 없이도 핵무기의 위력을 내는 군략통어방안이라는 계획을 세운다.
7.2. 일본
- 하야시 라잔
1600년대 일본의 기학자. 토기(土氣)를 최초로 발견했다. - 사이고 다카모리 소좌
일본의 우주비행사. '황자 성한'호의 사령선 조종사. - 오쿠보 도시미치
사이고 소좌의 죽마고우로 자유민주당 소속 정치인으로 일하고 있다. - 후쿠자와 유키치 소좌
일본의 우주비행사. '일자 성한'호의 사령선 조종사. 정치적인 야망이 큰 사람이라 한다.
7.3. 대금민국
- 아이신기오로 히오완예이
17세기에 아이신기오로 가문 사람으로 사업당 별감까지 올라 아이신기오로 가문의 중시조로 추앙받는다. - 이홍장 소령
대금의 한족계 우주비행사. '황자 성한'호의 달착륙선 조종사. - 예허나라 가문
대금 최대의 공업기업 '예허나라 철강'의 오너. - 아이신기오로 이힌
히오완예이의 6대손, '일자 성한'호의 달착륙선 조종사. 예(신화)의 업적을 능가하고 싶어서 달 표면에서 활을 쏘아 화살로 달을 맞추는 퍼포먼스를 한다.
7.4. 중화연방
- 홍수전
자수성가의 전설로 태평기창이라는 대기업의 창업자. - 임칙서
중화연방 내각수보. '화평굴기'를 국시로 삼는다. - 원세개
구원받지 못했던 전작과는 달리 무려 처음으로 화성을 밟은 지구인이 되었다. - 장개석
20세기 중화연방의 총통. 중화연방이 소행성 채굴기지로 키운 화성 식민지에서 준동하는 롬멜 반군 토벌을 위해 다국적군 파병을 요청한다.
7.5. 슬라비아 합중국
- 니콜라이 고골
슬라비아 연방의 우주비행사로 인류 최초 유인 우주비행에 성공한다. - 표트르 차이콥스키
악단 '갈매기(차이카)'의 리더. 최근 젊은 세대에게 각광 받는 대중 음악가라고. 대표곡은 그대 손을 잡고 싶어라.
7.6. 도이치
- 프란츠 리스트
차이콥스키 앞 세대에서 대중음악의 거장. 거문고 연주가 특기였다고. - 로자 룩셈부르크
20세기 초 화성 채굴기지의 광부들에게 대동주의 혁명을 선동한다. - 에르빈 롬멜
'붉은 사막의 여우'라는 별명의 화성 반군 지도자.
7.7. 영연방
- 율리시스 S. 그랜트
영연방의 우주비행사로 인류 최초로 달을 밟는다. - 토마스 에디슨
스마트폰을 발명한다. 검은 적삼에 청색 바지를 입고 시연회를 한다는 것이 이 사람의 패러디. - 니콜라 테슬라
에디슨의 동료였다가 원수가 된다. 전기자동차 사업을 하다가 전 재산을 투자해 핵융합로 개발에 성공한다.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테슬라의 젊은 보배라고 일컬어지는 과학자. 핵융합로 개발에 큰 역할을 했다. - 조지 S. 패튼
중화연방 장개석 총통의 요청으로 화성 반군 진압을 위해 파견된 다국적군 사령관. 원 역사처럼 전쟁광으로 별 실용성은 없지만 화려한 외양의 이족보행병기를 타고 다닌다고 한다.
7.8. 프랑스
- 알렉상드르 뒤마
프랑스의 유명 영화감독. 제3차 세계대전 때 대공포병으로 복무했었다고 한다. 대표작은 우주 활극 보물성 3부작으로 최고의 명대사는 시리즈 2부에 나오는 '내가 네 아비다.'라고 한다.
[1] 황진이가 지인에게서 선물 받은 걸 넘겨받았다. 인생 1회차 시절에도 다른 루트를 거쳐 만난 녀석이기에 기막힌 재회(?)에 꺽정이 반가워했다.[2] 판옥선의 엄청난 화력에서 흑염, 배 위를 날아다니듯 뛰는 모습에서 용이라 하였다.[3] 정작 본인은 그 별명을 굉장히 싫어한다.[4] 상투를 틀지 않은 더벅머리 상태로, 서경덕의 입장에서도 '덩치만 큰 소년'으로 언급되는 등 아직 미성년 상태라는 묘사가 등장한다.[5] 1592년에 막 환갑을 넘겼다는 언급으로 볼 때 1532년생일 가능성이 높다.[6] 마른 북어를 먹다가 사레 들려서 먹물이 몇 방울 튀었다.[7] 원 역사에서 일본 통일 후 갈등 요소 해결을 위해 그가 택한 방법을 생각하면 어째 묘하다.[8] 이때 자신의 행적을 오다 앞에서 읊는 대목과 오다를 우물안 개구리라고 생각하며 자신이 오다 밑에 들어간 미래를 상상하며 끔찍해하고 자신의 원 역사에서의 목표였던 조선-중국-천축 정복을 부정하는 대목은 그야말로 소름이 끼친다.[9] 이순신이 일본 동서군 대치전선에서 있을 적에 히데요시를 수길(秀吉) 형이라고 부르며 반색한다. 정작 딸려온 꺽정이는 무시한다.[10] 원래 역사에서는 시바타 카츠이에와 니와 나가히데의 성에서 한 글자씩 따와서 '하시바'라고 개명하였다.[11] 여기서 사용한 방법은 폰지 사기. 수익이 아직 없는데 미리 모인 자본금으로 배당을 하여 투자자를 모았다.[12] 사실 당시는 그레고리오력조차 계산할 정도로 극도로 발달한 천동설이 갈릴레이에게마저 관측 증거를 통해 과학적 논리로 승리하던 시대니, 작정하고 관측 결과로 승부보면 천동설이 당연히 이기는 싸움이었다 그러나 이지의 목적은 시간끌기였고, 결정적으로 고아에 천문학을 전공한 성직자가 없어서 모두 이지의 페이스에 말려들었다.[13] 천일야화 원작에 의하면 중국인이다.[14] 실제로 이지의 6대조 할머니가 페르시아인이었으므로 아예 거짓말은 아니다.[15] 그러고 난 뒤 자손들에게 남긴 조언이 골 때리는데, 암벽만 보려고 찾아오는 이들이 많을 테니 입장료를 뜯어내고 기념품 장사로 바가지를 씌워 번 돈으로 좋은 곳에 써라. 과연 비범하다.[16] 실제 이정의 성품에 대해선 명확한 기록이 없지만 13회의 작가의 말에 따르면 아버지 이백록이나 아들 이순신(어린 시절 한정)의 성품을 볼 때 이정 역시 얌전하고 차분한 성격은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다고.[17] 발이 빠르고, 서림 아래의 사업당 사람들과 가장 오래 알고 지냈기 때문에 맡은 역할은 사업당과의 연락과 조율.[18] 라고 하지만 사실상 기부를 빙자한 삥뜯기였다.[19] 훨씬 연장자인 주세붕, 이황, 조식과도 대등하게 토론을 나눌 정도로 유학에 밝은데다, 동래 왜관에 온 지 얼마 안 되어 일본어까지 습득했을 정도로 언어적 능력도 출중하다. 다른 생각을 하면서 통계 자료 계산까지 토씨 하나 안 틀리고 하는 것을 보면 수학적 능력도 굉장한 수준.[20] 댓글에서는 눈치가 있었으면 수천명이 인생을 걸고 보는 과거에서 9번 장원하고(구도장원공) 자랑하지는 않았을거라고 평한다. 실제로 당시에도 이이에게 그런 평판이 존재했다.[21] 전생에 기생 첩 셋을 두고 살았는데, 임꺽정과의 인연 때문에 결국 붙잡히는 일이 있었다. 전생 이상으로 큰 일을 벌이려는 꺽정은 결혼하면 아내와 자식들이 그녀들 못지않게 화를 입을거라 걱정해 혼사를 피한 것.[22] 기르고 있는 검은 고양이에게서 따온 이름이라고.[23] 처음에는 그저 딸이 아이를 가지기 싫다는 임꺽정과 싸우자 임꺽정을 설득하려고 했으나, 어쩌다보니 출산에 관련된 의학서를 써야 하고 이에 대해서 신사임당이 정리하게 하자. 라는 이이의 발언에 사위가 좀 더 초를 쳐서 반대하게 만들어야 했다고 속으로 후회한다.[24] 순자가 주창한 "군주는 배(舟), 백성은 물(水)이니,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배를 가라앉히기도 한다"는 사상을 담고 있다.[25] 윤원형이 의민당에게 패하는 순간 작별인사에서 자신을 다시 두리손으로 고쳐불렀다.[26] 그러나 묘사를 보면 자신은 엄두조차 못 낸 신분제 파괴의 도전을 임꺽정은 다른 일 처리하는 중에 겸사겸사 하는 것 같다는 열등감이다.[27] 심지어 임꺽정에게 호의적인 명종도 끌어내리고 멍청한 덕흥군을 새 임금으로 내세울 생각까지 하고 있다.[28] 명나라 간신 조문화가 면전에서 명종을 돌려까 일부러 도발했지만, 도적에게 친구 취급 당하는 명종에게 그런 고상한 돌려까기는 당연히 아무런 타격이 없었고, 오히려 조문화의 울화통만 터졌다.[29] 사실 당장 임꺽정의 삼족을 멸해도 할 말 없는 언사였는데 이 정도 선에서 끝낸 것도 자신을 유일하게 대등한 ‘사람’으로 대하는 꺽정에게 쌓인 정 때문이다.[30] 다만 후일담에 따르면 이황과 조식의 정론보는 성리학 토론에 열중하게 되면서 민주당의 공보와는 크게 성격이 달라졌다고 한다. 아마 학술지처럼 되었을 듯.[31] 소윤 일파로 인해서 가장 큰 고변을 당한 지역이다. 원래 충주목이었으나 이 시기에는 소윤 일파로 인한 정미사화가 터져 유신현으로 격하되었다.[32] 이쪽은 충주보다 한술 더 떠서 도 전체가 윤원형에게 이를 갈고 있다.[33] 사실 윤원형의 공신 직위는 결국 명분일뿐이지, 한순간도 나라에 도움 된 적 없다는 사실은 선비들은 물론이고 천하에 모르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통렬하게 꼬집은 말.[34] 상술한 정미사화로 인하여 충주목이 유신현으로 격하되면서 충주와 청주에서 따온 이름인 충청도는 한동안 청주목과 홍주목(현 홍성군)에서 따온 이름인 청홍도로 불리게 된다.[35] 사실 유신현 사람들 중 윤원형을 죽이자고 벼를 사람이 못해도 수백명일 걸 고려하면 어차피 미래는 뻔했다. 윤원형도 비슷한 말을 하기도 했고.[36] 조선 사업을 관리하는 신설 관청[37] 조선사에서 지금까지 오직 국가를 욕보이는 데에 이렇게 올인하는 민초들은 없었다는 이야기. 이미 명종은 윤원형과 문정왕후와 같이 도망간 후여서 더욱 설득력이 두배다.[38] 원 역사에서는 홍대용의 저술이다. 즉 홍대용은 2세기 전에 살던 선배에게 자기 저술을 빼앗긴 셈이다.[39] 작 중에서는 군신상생론(君臣相生論)이라고 불리는데,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언급된걸 보면 모티브는 아무래도 리바이어던.[40] 이때 잃을 것은 초가삼간이요, 얻을 것은 온 천하다라는 말이 압권.[41] 하비에르는 원나라 때 몽골 천주교도들이 섬기던 성모상이라고 생각한다.[42] '1. 신 2. 천사 3. 신적(神的)인 사람'을 가리키는 히브리어이다. Yisrael이라는 히브리어 이름의 유래를 창세기 32장은 Elohim(El의 복수형이지만, 단수로 쓰이면 El의 위대함을 강조하는 의미)과 야곱의 씨름 사건으로 해석하는데, 호세아서 12장은 이 Elohim을 천사(malal)라고 해석한다. 호세아서처럼 해석한다면, "하늘 전사의 나라"를 "이스라엘"로도 번역할 수 있는 것.[43] 작 중에선 꺽정의 모습을 한 예수가 나타나 마중나왔단 묘사였는데 에필로그 마지막 편에서 명부민국 통령이 된 꺽정 말로는 '니탕카이가 자기네쪽 천국 들어가면 다시 볼 수 없다길래 들어가기 전 좀 보러갔다'고 하는걸 보면 예수가 아니라 임꺽정 본인이었던 모양.[44] 조선의 6조를 본떠 만든 여섯 아문 중 병조에 해당. '위엄의 아문'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다.[45] 수풀 림(林)을 하야시라고 읽는다. 쇼군은 일본어로 정이대장군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말 그대로 장군. 즉 임 장군 = 임꺽정이지만 일본인이라면 반대로 하야시라는 성씨의 정이대장군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다.[46] 차야 시로지로의 조카라는 위장신분.[47] 무려 다케다 신겐이 포 한 방에 비명횡사 했다.[48] 말이 제안이지 임꺽정이 위협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고 서림이 차트와 말빨로 휘어잡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서명을 하게 만드는 요즘의 피라미드 강매 수법을 사용했다.[49] 아무리 봐도 이름의 모티브는 이거. 물론 여기의 동녘 동자는 관동을 의미하는 뜻이긴 하다.[50] 여담이지만 모리 가와 시마즈 가의 영역은 에도시대 기준으로 초슈와 사츠마다. 아무리 봐도 에도 막부 말기가 떠오르는 구도.[51] 원 역사에서는 노화로 인해 판단이 느려진 엄숭을 기어이 실각시키고 그 가문을 통째로 무너뜨렸다. 정작 본인도 제자인 장거정에게 밀려버렸지만.[52] 명이 주도 하여 중화를 전 세계에 실질적으로 휘두르려는 제국주의적인 사상이다. 그와중에 튀어나오는 하나의 법도, 하나의 상국, 하나의 천자 드립은 덤. 심지어 외국의 국호를 그대로 원어로 부르는 것도 '그들이 중화에 복속될 때까지는 신성한 중화의 언어로 불릴 자격도 없어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53] 조선이 아무리 중원에 비하면 작더라도 중앙집권제의 한 세력인만큼 일본의 다이묘들보다도 우월하다 한들 해적에 불과한 왕직이 정면승부는 안된다는 건 알았다. 그러나 왕직 세력의 경험치를 넘어서려면 지식인인 선비계층의 협조가 없으면 왕직의 본거지를 칠만한 함대는 겨우 수년 사이에 마련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 그러나 기대승 같은 선비들과 핀투같은 서양 상인이 협조하면서 왕직의 본거지에 쉽사리 들어와버렸다.[54] 중놈 도적이라면서 홍무제의 아명인 주중팔까지 직접 언급했다![55] 훗날의 모 게임사와 한자까지 똑같다.[56] 어디까지나 핀투 본인의 주장이다.[57] 믈라카조호르 교구의 첫번째 주교인 호르헤 데 산타루치아이다.[58] 동방의 엘도라도가 존재한다는 말에 혹한 이들이 대부분이다.[59] 아들의 치료 목적 이외에도, 만약 치료가 실패했을 경우 잉글랜드의 찰스 왕자의 정통성을 깨고 저지대를 압스부르고의 영역으로 유지할 수 있다는 노림수도 있었다.[60] 작중 묘사에 의하면 기독교 성화라기보다는 차라리 금강역사나 비사문천에 더 가까웠다고.[61] 1. '디오시온(조선)의 귀족들은 대부분 학자이기도 하므로, 흥미로운 사실이나 주장을 두고 논쟁 벌이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2. "그대가 말하는 것을 믿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테고, 다른 사람의 학설을 가져와 논박하려는 자들도 있을 것이오. 그럴 때는, 그 말도 일리가 있다고 받아들일 게 아니라 바로 반박을 해야 한다오. 그러면 더욱 기뻐하며 논쟁에 나설 것이니, 이것이 조선에서 벗을 얻는 법도요."[62] 하비에르의 발언이 단순한 폭탄발언이라고 하기도 뭐한게, 원래 유교에서는 한가지 조치가 오래되면 폐단을 불러오므로 경장을 통해서 바로 잡아야 한다라는 인식이 있다. 분명 주자의 가르침에 어긋나니 이단이 되어야 하지만, 동시에 유교의 경장이라는 입장에서 보면 완전히 틀린 말도 아닌 상황. 당연히 틀린게 있다면 그에 맞춰 경장을 행해야 한다라는게 유교의 입장이다. 그저 주자라는 이름값이 너무 강렬해서 당연히 맞겠지라며 그런 생각을 안 할 뿐.[63] 원 역사 에서는 마테오 리치의 저작이었다.[64] 심지어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아버지인 존 셰익스피어가 보낸 서한에 왈, "곧 있으면 아내가 출산하는데 아들이면 찰스, 딸이면 메리라고 짓겠습니다." 그만큼 메리 여왕에 대한 민심이 좋아졌다는 방증이다.[65] 독수리는 사도 요한의 상징이며, 열쇠는 베드로의 상징이다.[66] 구구구. 구할 구(救)자를 쓴 구조신호다.[67] 영연방과 합동 군사 훈련중이라는 언급으로 보아 한양동맹 삼국과 영연방은 상당한 우방국으로 남은 모양이다.[68] 모티브는 말버러 공작가에서 최초로 성에 처칠을 붙였으며, 고고학 수집가로 유명했던 5대 말보로 공작 조지 스펜서처칠(1766-1840)으로 추정.[69] 독일어: 마리아 테레지아[70] 프랑스어: 마리 앙투아네트[71] 독일어: 마리아 크리스티나[72] '황'자는 천지현황(天地玄黃)/우주홍황(宇宙洪荒)/일월영측(日月盈仄)으로 이어지는 천자문의 8번째 글자다. 우리 역사 식으로 말하자면 '성한 8호'인 셈. 후에 9호인 일자(日字)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