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2-01 22:58:40

징크스/대한민국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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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통령 관련
1.1. 대통령 선거1.2. 정권교체, 정권 재창출 관련1.3. 미국 정치와의 관계1.4. 탄핵 관련1.5. 퇴임 이후
2. 국회
2.1. 국회의원 선거 공통2.2. 지역구 관련
3. 지방자치단체
3.1. 광역자치단체장3.2. 기초자치단체장3.3. 교육감3.4. 지방선거 공통
4. 기타
4.1. 일본에서 대지진이 일어난 해에 보수정당 패배4.2. "통합" 징크스4.3. 30년 주기로 국가장을 치르고 그 후 대규모 유혈사태가 발생한다4.4. 이 외 다른 징크스

1. 대통령 관련

1.1. 대통령 선거

1.2. 정권교체, 정권 재창출 관련

민주화 이후 거대 양당은 10년 넘게 정권을 유지한 적이 없다. 소위 정권교체 10년 주기설로 알려진 징크스로, 이는 고사성어 화무십일홍 권불십년(花無十日紅 權不十年)에 비유된다. 한술 더 떠서 20대 대선에서는 민주화 이후 처음으로 5년만에 정권이 교체되기도 하였다.

1.3. 미국 정치와의 관계

1993년 이후로 대체로 대한민국 대통령보수정권일땐 미국 대통령민주당 소속이고 대통령이 민주당계 정권일땐 미국 대통령이 공화당 소속인 징크스가 있다.
아래의 표는 1990년대 이후 현재까지의 한미 집권 여당을 나태낸 표이다.

작성 시 대통령이 바뀌는 해는 그 해에 재임 기간이 더 많은 대통령[15]으로 할 것.
공화당/보수정당 민주당/민주당계 정당
미국대한민국
1993년 빌 클린턴 김영삼
1994년 빌 클린턴 김영삼
1995년 빌 클린턴 김영삼
1996년 빌 클린턴 김영삼
1997년 빌 클린턴 김영삼
1998년 빌 클린턴 김대중
1999년 빌 클린턴 김대중
2000년 빌 클린턴 김대중
2001년 조지 W. 부시 김대중
2002년 조지 W. 부시 김대중
2003년 조지 W. 부시 노무현
2004년 조지 W. 부시 노무현
2005년 조지 W. 부시 노무현
2006년 조지 W. 부시 노무현
2007년 조지 W. 부시 노무현
2008년 조지 W. 부시 이명박
2009년 버락 오바마 이명박
2010년 버락 오바마 이명박
2011년 버락 오바마 이명박
2012년 버락 오바마 이명박
2013년 버락 오바마 박근혜
2014년 버락 오바마 박근혜
2015년 버락 오바마 박근혜
2016년 버락 오바마 박근혜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문재인
2018년 도널드 트럼프 문재인
2019년 도널드 트럼프 문재인
2020년 도널드 트럼프 문재인
2021년 조 바이든 문재인
2022년 조 바이든 윤석열
2023년 조 바이든 윤석열
2024년 조 바이든 윤석열
2025년 도널드 트럼프 윤석열
위 표에 나온 바와 같이, 같은 계열의 정권이 집권하고 있었던 적은 1998년 2월 25일부터 2001년 1월 20일과, 2008년 2월 25일부터 2009년 1월 20일까지 당시 딱 모두 합쳐 4년 정도 뿐이었으나 2021년 1월 20일 조 바이든의 취임으로 1998년 2월 25일부터 2001년 1월 20일까지의 김대중 - 클린턴 이후 20년 만에 우리나라와 미국에서 나란히 민주당계 정권이 수립되었다. 그리고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하여 민주당으로 정권이 교체된 뒤 딱 1년뒤 대한민국 에서 치러진 제20대 대통령 선거 또한 국민의힘의 윤석열이 당선되어 승리함으로 역시 또 바로 전 미국 대선과는 반대의 결과가 다시 나옴에 따라 미국이 민주당 정권일때 대한민국은 반대로 보수 여당이 되었던 징크스가 반복되어 계속해서 이어지게 되었다. 그 와중에 도널드 트럼프가 재선에 실패하고, 한국의 민주당도 5년 만에 정권을 내줌으로써 한 쪽에서 정권이 바뀌어 성향이 겹치면 다른 쪽에서 반대 성향으로 정권이 바뀌는 사례도 반복되었다.

다만 같은 계열이라도 외교적 결례가 줄거나 성향이 같은 건 아니다. 빌 클린턴-김대중 시절이 대표적 예시.

1.4. 탄핵 관련

1.5. 퇴임 이후

  • 21세기에 사망한 전직 대통령은 2자리 연도가 3의 배수인 해에 사망했으며, 2010년 이후로는 2자리 연도가 6의 배수인 해에는 사망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 해에 사망한 대통령은 1명과 2명이 번갈아 나왔다. 또한 2009년 이후로는 6년마다 전직 대통령이 사망했다. 그리고 21세기에 당선된 대통령의 임기마다 적어도 한번은 전직 대통령이 사망했다.

2. 국회

2.1. 국회의원 선거 공통

  • 국회의원 선거 1년 전에 있는 재보궐선거에서 승리한 정당은 다음해 총선에서 과반수 의석을 절대로 못먹고 패배한다. 사실 이건 재보궐선거에서 이긴 쪽은 방심 하고 오만해지면서 비주류 계파에게 공천 학살을 벌여서 무당층의 반감을 사고, 진 쪽은 비주류 계파가 이대로는 다음 총선에서 진다며 주류 계파를 청산 하고 개혁 공천이라는 이름 하에 새 인물로 물갈이 하는데 무당층에게 긍정적인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2019년 보궐선거는 사실상 무승부(자유한국당 1석, 정의당 1석)에 가까웠으나 21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압승으로 이번 징크스를 피해가지 못했다. 다만 이건 좀 애매한데 2007년 재보궐선거에서는 한나라당이 승리[17], 여세를 몰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과반을 훌쩍 넘는 압승을 거뒀다. 제15대 국회의원 선거가 있었던 1996년의 1년 전인 1995년에는 재보궐선거가 실시되지 않았으며, 제16대 국회의원 선거가 열리기 1년 전인 1999년 재보선에서는 한나라당이 이겼는데, 이듬해 열린 총선에서도 한나라당이 과반을 얻지 못했지만 열세 전망을 딛고 승리했다.
    2023년 상반기 재보궐선거도 이 징크스에 해당하나, 양당이 서로의 텃밭에 무공천을 하였고 국회의원 재보궐이 전주시 을 한곳이라 양당의 승패를 가리기 힘들었다. 다만 하반기에서는 이 징크스가 깨졌으며 당시 압승을 거두었던 더불어민주당이 이듬해 22대 총선에서도 압승을 거두었다.
    • 2021년에는 정반대로,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압승한 더불어민주당이 1년 뒤인 2021년 재보궐선거에서 대참패를 겪었다. 이 역시 상술한 이유 그대로 민주당이 압승 이후 180석을 믿고 오만과 자만을 보여주는 바람에 정권 심판론이 거세게 일었기 때문이었다. 이후 20대 대선에서 재결집한 민주당과 이재명이 정권재창출에 도전 했으나, 결국 국민의힘과 윤석열이 초접전승으로 정권교체에 성공했다.
  • 비례대표 1번의 저주: 제17대 국회의원 선거부터 적용되는 징크스로, 비례대표 1번으로 당선된 의원은 차기 총선에서 재선에 실패한다. 차기 총선에 불출마하거나 공천 배제(컷오프) 등으로 출마하지 못하고, 출마하더라도 낙선한다. 심지어 차차기 이후라도 국회에 재입성한 경우는 제17대에서 민주노동당 1번으로 당선된 심상정이 유일하다.

2.2. 지역구 관련

  • 광주 북구 을의 저주
  • 국회의원 선거가 소선거구제로 전환된 이후의 서울특별시 강남구의 역대 지역구 국회의원들
    • 강남 을의 경우 당선율 100%가 깨지거나, 임기 중 당선무효형이 확정되어 의원직을 잃는다는 징크스가 있다. 제13대 국회의원 이태섭(민주정의당)과 제14, 15대 국회의원 홍사덕(14대: 민주당, 15대: 무소속)은 낙선한 적이 몇 번 있었으며, 제16대 국회의원 오세훈(한나라당)은 20대 총선에서 서울특별시 종로구에서 패배하면서 당선율 100%가 깨졌다. 제17, 18대 국회의원 공성진(한나라당)은 낙선한 적은 없었지만 임기 중 대법원에서 징역형에 대한 집행유예형이 확정[18]되어 의원직을 잃었다.[19] 제19대 국회의원 김종훈(새누리당)은 20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전현희 후보에게 패배했으며[20], 제20대 국회의원 전현희(더불어민주당)마저 21대 총선에서 미래통합당 박진 후보에게 패배했다[21]. 제21대 국회의원 박진(미래통합당)마저 22대 총선에서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을에 공천되면서 더불어민주당 김영호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제22대 국회의원 박수민(국민의힘)이 이 징크스를 깰 수 있을지는 불명이다.
    • 강남구 병도 마찬가지이다. 해당 선거구는 2016년 20대 총선에서 강남구 갑 선거구의 인구 초과로 신설되었는데 이 지역구의 초대 당선자인 이은재 前 의원은 21대 총선에 출마했지만 공천 컷오프를 당하자 미래통합당을 탈당하여 한국경제당으로 입당하여 비례대표로 출마했지만 낙선했으며, 유기준 前 의원의 동생 유경준이은재 의원을 대신해 미래통합당 후보로 공천받아 당선되었는데, 22대 총선에서 신설 지역구인 경기 화성시 정으로 옮겨 출마했지만 결국 낙선하였다. 그의 후임으로 당선된 사람은 삼성전자 임원 출신 고동진 의원이지만 강남 병의 저주를 깰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 국회의원 소선거구제가 실시된 이후 역대 서울특별시 서초구 갑의 지역구 국회의원들은 광역자치단체장 도전에 실패한다는 징크스가 있다. 제15대 국회의원 최병렬(신한국당)은 2회 지선에서 서울특별시장 선거 한나라당 후보로 공천되어 의원직을 사퇴 후 2회 지선 서울특별시장 선거에 출마했지만 새정치국민회의 고건 후보에 밀려 낙선하면서 의원직만 날렸다. 제17, 18, 20대 국회의원 이혜훈(17, 18대: 한나라당, 20대: 새누리당)과 제21, 22대 국회의원 조은희(국민의힘)는 2021년 재보궐선거에서 서울특별시장 보궐선거 국민의힘 예비후보로 등록했지만 오세훈나경원이라는 거물급 정치인에 밀려 공천 탈락했다.[22] 한술 더 떠서 이혜훈은 8회 지선에서 충청북도지사 선거 국민의힘 예비후보로 등록했지만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갑의 제17-19대 국회의원과 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의 제20대 국회의원이었던 오제세 예비후보와 함께 경기도 안산시 갑의 제15, 16대 국회의원과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을의 제18, 19대 국회의원이었던 김영환 예비후보에 밀려 공천 탈락했다. 제21대 국회의원 윤희숙은 2021년 9월 13일에 의원직을 사퇴한 이후 8회 지선에서 세종특별자치시장 선거와 경기도지사 선거에 국민의힘 예비후보로 등록했지만 후보군에서 배제되어 공천 탈락했다.
  • 서울 송파구 국회의원 관련: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이후로는 3개 선거구 모두 단일 성별로 당선된 적이 없다.[23] 그리고 1988년 송파구가 신설되고 소선거구제로 시행된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이후 제19대 국회를 제외하고는 어느 한 정당이 3개 선거구[24]를 독식한 적이 없다.[25]
  • 국회의원 소선거구제가 실시된 이후 역대 서울특별시 관악구 갑의 지역구 국회의원들은 14대 총선에서 연임에 성공한 한광옥을 제외하면 모두 해당 지역구에서 연임에 실패했다. 한광옥조차 15대 총선에서 신한국당 이상현 후보에 밀려 낙선했다. 제15대 국회의원 이상현은 16대 총선에서 새천년민주당 이훈평 후보에 밀려 낙선했다. 제16대 국회의원 이훈평은 17대 총선 불출마를 했다. 17대 총선부터 21대 총선까지는 유기홍김성식의 맞대결이 펼쳐졌고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유기홍 후보가 당선된 이후 두 후보가 번갈아가며 당선되었다. 22대총선에서는 당시 현역 더불어민주당 유기홍 후보가 공천 탈락하고 대신 공천된 박민규 후보가 당선되었다.
  • 경기도 시흥시 갑 국회의원의 3선 도전 실패: 2004년 총선에서 이 선거구가 신설된 이후 국회의원을 역임한 후보는 재선까지는 성공했으나 3선 도전에 실패한 징크스. 17~18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통합민주당 소속으로 당선된 백원우 전 의원은 19대 총선에서 함진규 후보에게 밀려 낙선했고 19~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 소속으로 백원우 후보를 두 번이나 누르고 당선된 함진규 전 의원도 21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문정복 후보에게 밀려 낙선했다.
  • 경기도 성남시 국회의원 관련: 성남시가 4개 선거구로 분할된 이후(수정, 중원, 분당갑, 분당을) 어느 한 정당이 4개 선거구를 모두 독식한 적이 없다.[26]
  • 경기도 하남시 국회의원의 3선 도전 실패: 시흥시 갑보다 더한 지역이 있다면 하남시 선거구를 예로 들 수 있는데 하남시·광주군 선거구 시절 14~15대 총선에서 연속으로 당선됐던 정영훈 전 의원을 시작으로 17~18대 총선에서 연속으로 당선됐던 문세표문학진 전 의원, 19~20대 총선에서 연속으로 당선됐던 이현재 전 의원까지 모두 재선까지는 성공했으나 3선 도전에 실패하였다.[27] 다만 22대 총선부터는 하남시 갑/을 선거구로 나뉘기에 이 징크스가 유지되거나 깨질지는 알 수 없다.[28]
  •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을에서 당선된 모든 지역구 국회의원들[29]이 하나도 빠짐없이 차기 총선에서 연임에 실패했다.
  • 경기도 안성시 국회의원 관련: 안성군이 시로 승격된 이후 0으로 끝나는 해에 치러졌던 총선에서 당선됐던 민주당계 정당 소속 국회의원들은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도중에 낙마했으며,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보수정당 소속 국회의원들은 그 다음 총선에서 낙선했다. 16대 총선에서 당선됐던 심규섭 전 의원은 2002년 1월 27일 작고했고 그의 보좌관 출신으로 21대 총선에서 당선됐던 이규민 전 의원은 2021년 9월 30일 대법원에서 당선무효형이 확정되어 의원직을 잃었다. 그리고 심 전 의원이 작고한 뒤 치러진 재보선에서 2년 전 총선에서 패했던 한나라당 이해구 전 의원이 당선되어 4선에 성공했는데 2022년 3월 재보선에서 이해구의 보좌관 출신인 국민의힘 김학용 후보가 당선되면서 20년 전과 똑같이 2년 전 총선에서 패했던 보수정당 소속 후보가 지역구를 탈환하고 4선에 성공하는 일이 재현되었다. 그러나 이해구와 김학용 모두 2년 뒤 치러진 총선에서 민주당계 정당 후보들에게 밀려 낙선하며 5선에 실패했다.
  • 구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갑 지역에서 당선된 역대 지역구 국회의원들은 17대 총선부터 20대 총선까지 4연임에 성공한 오제세를 제외하면 연임을 한 사례가 없다.[30]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를 연고로 하며 국회의원 이력이 있는 정치인은 불미스러운 일로 인해 정치 생명에 큰 타격을 입는 경우가 많았다.[31] 특히,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이례로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를 관할하는 지역구에서 당선된 국회의원들이 모조리 구속 수감되었다.[32] 심지어 국회의원이 아닌 단순 지역위원장도 구속 수감되었다.

3. 지방자치단체

3.1. 광역자치단체장

  • 여성 후보 낙선 징크스: 1995년 전국동시지방선거 시행 이후 재보궐선거를 포함한 모든 광역자치단체장 선거에서 여성 후보는 전부 낙선했다.[33] 이 징크스는 2022년 지방선거에서 경기도지사 후보로 나왔던 김은혜가 선거전 여론조사에서도 박빙, 출구조사와 개표 시점에서도 오차범위 내에서 앞서가면서 이 징크스가 깨지나 했는데 선거 다음날인 2일 오전 5시 32분, 개표 96.6% 시점에서 김동연 후보가 대역전극을 벌이고 이후 김은혜 후보가 재역전을 하지 못하면서 이 징크스는 유지되었다. 주요 정당 기준으로는 강금실, 한명숙, 나경원, 박영선이 대표적인 예.[34][35]
  • 1995년 전국동시지방선거 시행 이후 민선 광역자치단체장을 지내고 대통령에 당선된 사례는 민선 3기 서울특별시장이었던 이명박 전 대통령이 유일하다.
  • 서울특별시장
    • 낙선자 위상 추락 징크스: 서울특별시장 선거에 출마했다가 2, 3위(박찬종, 최병렬, 강금실, 한명숙, 정몽준, 김문수, 안철수, 송영길 등)로 낙선한 사람들은 정치 인생이 끝장나는 경우가 많으며,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낙선 전에 비해 입지가 대거 축소되는 징크스가 존재한다. 사실 징크스라기보다도 서울시장의 정치적 위상을 고려하면 낙선한 사람의 입지는 당연히 좁아질 수 밖에 없고, 많은 경우 은퇴까지 이어지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그렇다고 해도 낙선 후 차기 지방선거에 다시 출마하여 당선된 광역단체장[36]이 타 지자체에는 있다는 것을 생각했을 때 징크스라 볼 수 있다.
  • 인천광역시장: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부터 현직 인천시장들은 전부 본선에서 낙선하였다.[37]
  • 광주광역시장: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이후로 당선된 시장 가운데 민선 3~4기 박광태 시장을 제외하고는 모두 초선에서 끝났다.
  • 대전광역시장: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이후로 당선된 시장 가운데 민선 1~2기 홍선기 시장을 제외하고는 모두 연임에 실패했다. 3/5기 염홍철 시장도 재선이긴 한데 연임은 하지 못했다.[38]
  • 경기도지사의 저주
    • 대권 잠룡의 무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전에 도지사로 재임했던 김문수는 총선에서 김부겸에게 더블스코어 차이로 패배하여 사실상 유력 주자로는 끝나버렸고 현재는 고용노동부장관으로 정치 생명을 연명하고 있다. 손학규는 아예 잊혀졌고, 이인제는 본선 진출에는 성공했지만 거대양당의 후보가 된 적은 한번도 없었으며(석패율 약 47.67%), 이후 철새 행보 등으로 조롱거리가 되었다. 가장 대권에 가까웠던 이재명더불어민주당 경선에서 승리했으나, 20대 대선 본선에서 윤석열에 밀려 낙선하면서 징크스가 유지되었다.(석패율 약 98.49%) 다만 이재명 본인은 패한 뒤에도 차기 대권 주자로서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고, 2024년 기준 현 경기도지사인 김동연도 당내 위상이 낮지 않아 깨질 가능성이 꽤 있는 징크스이기도 하다.
    • 1회 지선 이래로 역대 경기도지사들은 5회 지선에서 연임에 성공한 김문수를 제외하면 모두 초선에서 끝났다.
  • 충청남도지사: 민선 이후 역대 충남지사들은 양승조 전 지사를 제외하고 임기 종료 직전에 사퇴하였다.[39]
  • 경상남도지사의 저주: 김태호 이후 역대 경남도지사(김태호, 김두관, 홍준표, 김경수)는 대권 잠룡이 되면서도 결국 대권에 실패하는 징크스가 있다. 김경수는 아예 정치 생명이 끊겼고, 김두관은 20대 대선 경선에서 극히 저조한 득표율을 얻으며 사퇴했다. 국민의힘 경선에서는 홍준표가 무야홍 돌풍을 일으켜 윤석열과 접전을 벌이며 야권 유력 주자로 주목받았으나, 경남지사 징크스를 깨지 못하고 결국 대권 도전에 실패했다. 이후 대구광역시장에 당선된 홍준표가 21대 대선에 재도전하여 당선된다면 이 징크스를 처음 깰 수 있다. 또한 이쪽은 김태호를 제외하고는 임기를 제대로 마치지 못했다.[40]
  • 제주특별자치도지사: 민선 이후로 나온 역대 제주지사 5명[41] 모두 법정에 선 적이 있다.

3.2. 기초자치단체장

  • 경상북도 영천시장: 1995년 전국동시지방선거 실시 이후 민선 1, 2기 정재균 시장이 민선 2기 임기 중 선거법 위반으로 직을 상실한 후 재보궐 선거로 당선된 박진규(민선 2, 3기), 손이목(민선 3, 4기) 전 시장 역시 재선 후 선거법 위반으로 직을 상실하였다. 2007년 재보궐선거로 당선된 김영석 전 시장은 3선에 성공하여 임기는 무사히 마쳤으나 퇴임 후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되며 징크스를 피하지 못했다. 그리고 최기문 현 시장은 한화그룹 고문으로 있던 2007년에 김승연 회장의 보복폭행 사건에 대한 수사를 무마하려다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이력이 있다.
  • 경상북도 경주시장의 3선 도전 실패: 1995년 전국동시지방선거 실시 이후 당선된 경주시장은 모두 재선까지는 성공했으나 3선 도전에서 소속 정당의 공천결과에 불복 후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나[42] 낙선했다.[43] 현직 경주시장인 주낙영 시장 역시 재선으로 시장직을 역임중인 만큼 이 징크스를 깰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44]
  • 경기도 성남시장: 비리 관련 사건사고가 많았다. 2대 김병량, 3/4대 이대엽 시장은 실형을 선고받았으며 민선 초대 오성수 시장도 부동산 비리 논란이 있다. 또한 5/6대 이재명 시장은 현재 대장동 게이트로 수사를 받고 있으며, 7대 은수미 전 시장 역시 국제마피아파와의 관계 및 비리로 인해 퇴임 후 구속되었다. 대부분의 민선 시장이 부동산 비리에 연루되어 이재명, 신상진 외에는 다 구속되었고 이재명도 구속 위기라는 평이 나왔는데, 정가에서는 성남 지역의 특수성, 즉, 분당, 판교 등 대규모 신도시가 개발되는 과정에서 인·허가권을 가진 현직 시장들이 복마전에 얽혀 들어갔다는 평이 많다. 또한 전반적으로 민선 시장들에 대한 시민들의 평이 좋지 않았는데, 이재명 전 시장을 제외한 김병량, 이대엽, 은수미 전 시장은 자당 지지자들에게도 무능하다는 소리를 들었다(...).[45] 일례로 2010년 지선에서 한나라당을 탈당해 무소속 출마를 감행한 이대엽 전 시장은 현역 시장이라는 메리트에도 불구하고 5.6%(...)를 득표하면서 낙선했다.
  • 경기도 용인시장: 3대 예강환 시장부터 8대 백군기 시장까지 6명의 시장이 모두 재선에 실패하였으며, 초대 및 2대 윤병희 시장부터 7대 정찬민 시장까지 모두 시장 시절의 비리혐의로 구속된 이력이 있다.
  • 경기도 양주시장: 1995년 전국동시지방선거 시행 이후 당선된 시장들은 모두 재선에서 끝났다. 양주시 승격 전의 윤명노 양주군수는 1995년과 1998년의 1, 2회 지방선거에서 당선되어 재선에는 성공했지만 한나라당에서 새천년민주당으로 당적을 바꾼 뒤 2002년 3회 지방선거에서 3선에 도전했으나 한나라당 임충빈 후보에게 낙선했으며, 양주시 승격 이후 임충빈 시장 역시 2006년 4회 지방선거에서 재선에는 성공했지만 2010년 5회 지방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나 한나라당 현삼식 후보에게 낙선했으며, 현삼식 시장 역시 2014년 6회 지방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했지만 1년 후 선거법 위반으로 시장직을 상실하였으며, 2016년 4월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이성호 시장 역시 2018년 7회 지방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했지만 건강상의 이유로 임기만료 3개월을 앞두고 사퇴하였다.
  • 충청북도 괴산군수, 전라북도 임실군수, 전라남도 해남군수, 경상북도 청송군수, 경상남도 함양군수: 이 지역들의 군수들은 민선 이후 역대 거의 모든 군수들이 구속된 이력이 있어 군수의 무덤이라는 부정적 별명이 있다.
  • 부산광역시 동래구청장: 민선 3기 이진복 구청장부터 민선 7기 김우룡 구청장까지 불출마하거나 낙선하면서 모두 초선에서 끝났다. 현직 장준용 구청장은 이 징크스를 깰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3.3. 교육감

직선제 이후 선출된 서울특별시교육감은 문용린을 제외하고 임기 도중 교육감직을 상실했다.

3.4. 지방선거 공통

4. 기타

4.1. 일본에서 대지진이 일어난 해에 보수정당 패배

일본에서 대지진[49]이 일어난 해에는 보수정당이 역사적인 패배를 당한다.
그냥 패배도 아니고, 역사적인 패배를 6번이나 맞은 보수정당인데, 우연의 일치로 역사적인 패배를 당한 그 해에 일본은 대지진을 맞았다. 물론 한국 경제에 일본 시장이 차지하는 부분은 상당한 편이라서 일본이 흔들리면 우리 경제도 유동성이 강해지면서 경제적으로 큰 영향을 주는 것도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집권당과 상관 없이 보수정당만 패배할 확률은 매우 낮다.
한편 선거 이후로도 보수계파 내 지형이 급변했는데, 95년 패배 이후 3김정치가 다시 부활했고, 04년 패배로 이회창 및 기존 계파들이 완전히 붕괴되고 체질 변화를 해야했으며, 11년 패배는 MB계를 몰락시키고 박근혜가 라이징 했다. 그 박근혜도 16년 패배 이후 탄핵 및 파면을 당했고, 남은 잔당 및 주변 당직자들도 18년 패배로 쓸려 내려갔다. 그리고 국민의힘으로 리브렌딩하여 정권교체를 했지만 명태균 게이트와 24년 총선 패배로 그 리브렌딩의 실체를 모두 드러내버렸다.
추가로 일본에서 짝수번째 진도 7의 대지진이 일어난 당시 대통령은 탄핵소추 및 직무정지를 당한다는 징크스도 있다. 앞서 2건의 사례에서는 대지진 전 탄핵소추가 된 경우 기각, 대지진 이후 탄핵소추가 된 경우 파면으로 갈렸다.
* 2번째 대지진 니가타 지진 7개월 전 노무현 대통령 탄핵
* 4번째 대지진 구마모토 대지진 이후 최순실 게이트로 인한 탄핵 소추파면
* 6번째 대지진 이시카와 대지진 이후 12.3 내란사태이로 인한 탄핵

4.2. "통합" 징크스

이름에 통합이 들어가는 정당은 패배한다.
이는 개연성이 존재하는데, 당명에 굳이 '통합'이라는 키워드를 왜 붙이는지를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이름에 통합이 들어가는 정당은 대부분 이전까지 여러 갈래로 나눠서 다툼을 벌였던 당 내의 여러 계파를 억지로 하나로 합친 형태이다. 따라서 선거 과정에서 흔히 내부총질이라 칭하기도 하는 당 내의 크고 작은 계파 갈등이 벌어지기 쉬우며, 이 과정에서 지지자들은 피로감이 심화되어 결국 지지율 하락이란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가 많다. 침몰하는 배를 버리고 각자도생을 시도하다 선거 날짜는 코 앞에 닥치니 다른 대안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뭉친 선거 캠프가 제대로 돌아가면 오히려 그게 이상한 일이다.

4.3. 30년 주기로 국가장을 치르고 그 후 대규모 유혈사태가 발생한다

이른바 30년 주기 국가장설, 다만 일본식 장례식, 국장, 국민장 다 다르게 장례식을 치렀기 때문에 정확히 말하자면 30년 주기로 나라의 지도자나 그에 준하는 인물을 잃고 대규모 유혈사태가 발생한다가 정확할 것이다.
정치외교 측면에서 보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지도자라 불릴 만큼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군주, 대통령, 정치인이 사망할 경우 그가 가졌던 힘의 균형이 깨졌기 때문에 추종세력과 반대세력이 충돌하게 되면서 대규모 유혈사태를 겪게 된다는 분석이 있다. 이는 무아마르 카다피사담 후세인이 사망한 후 평화로워질 것 같던 리비아이라크내전의 구렁텅이에 빠져들어 날이면 날마다 사상자가 쏟아져 나오는 상황에 더해 마거릿 대처가 사망한 후 장례기간 중 드러난 영국 국민들의 분열된 모습으로도 설명이 가능하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경우 이런 상황이 하필 30년이라는 특정한 간격을 두고 나타났기 때문에... 만약 2039년에도 이러한 일이 생긴다면 괴담으로 굳혀져 갈 우려가 있다. 비슷한 예시로는 미국의 테쿰세의 저주가 있다. 이쪽은 "20년마다 0년해에 당선되는 미국 대통령은 모두 저주를 받아 임기 중 목숨을 잃을 것이다."라는 내용의 저주이다. 그런데 이쪽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저주가 약해져 가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4.4. 이 외 다른 징크스

  • 1987년 민주화 이후 치른 3대 선거[55]들 중 6번째 선거[56]와 8번째 선거[57]는 대부분 보수정당이 승리하거나 선전하였다.[58] 이 점을 고려했을 때 8이 들어간 횟수의 선거[59]는 모두 보수정당이 승리하였다.[60]
  • 기존에 선출직을 역임하다가 다른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후보 확정 후 기존에 역임하던 선출직을 사퇴[73] 후 해당 선거에 출마하다가 2위로 낙선하면 사실상 정치 생명이 끝난다는 징크스가 있다.


[1] 제12대 대통령 선거 역시 과반 이상의 득표로 다시 당선되었는데, 해당 임기는 7년 임기(당시 개헌안은 7년 단임제였으며, 1987년 6.29 선언 이후 현재의 5년 단임제로 개헌되었다.)를 모두 채우고 퇴임하였다.[2] 심지어 금산군은 충청남도지사 선거도 적중률 100%이다. 반면 옥천군은 충청북도지사 선거에서 처음부터 빗나갔다.[3] 제주특별자치도는 20대 대선에서 이재명이 승리했다.[4] 이중 13대, 14대, 18대는 둘다 보수정당이 승리하였다.[5] 국회의원 선거가 4년마다 열려 대통령 선거 기간인 5년보다 1년 빨라 대통령 임기가 빨리 끝나지 않는 하에 현재 같은 숫자면 국회의원 선거를 먼저 한다.[6] 엄밀히는 14대~17대,19대 대선 당시에는 공식적으로 집권여당은 존재하지 않았으나 편의상 전임 대통령이 소속되었던 정당을 여당으로 간주하고 기재함.[7] 당시 민주자유당[8] 당시 한나라당[9] 당시 새천년민주당[10] 당시 대통합민주신당[11] 당시 새누리당[12] 당시 자유한국당[13] 당시 더불어민주당[14] 사실 둘은 같은 하나회 출신이지만 하나회 내부에서도 전두환계와 노태우계로 어느정도 분리되어 있었다.[15] 6개월 이상 재임한 경우[16] 참고로 이는 미국도 똑같은데, 미국은 아직 탄핵당한 대통령이 단 한명도 없으나, 이들 또한 탄핵 위기에 몰린 대통령이 있으면 그 다음 선거에서는 야당 후보가 승리하였으며 설명하자면 이렇다. 17대 앤드루 존슨(민주당) - 1868년 탄핵 위기 - 1868년 대선 공화당 율리시스 S. 그랜트 당선, 42대 빌 클린턴(민주당) - 1998년 탄핵 위기 - 2000년 대선 공화당 조지 W. 부시 당선, 45대 도널드 트럼프(공화당) - 2019년 탄핵 위기 - 2020년 대선 민주당 조 바이든 당선. 참고로 트럼프는 대선 직후인 2021년 1기 종료 직전에도 탄핵 위기에 몰렸으며 1998년 클린턴 탄핵 위기 직후 치러진 2000년 대선에서는 당시 여당인 민주당 소속 앨 고어가 득표는 이겼어도 선거인단 때문에 정권이 교체되었다.(참고로 미국은 유권자는 선거인단을 뽑고, 선거인단 538명이 대통령을 뽑는 간접선거 제도이다.) 탄핵소추안은 통과되지 않았지만 1974년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탄핵표결 직전) 하야한 37대 리처드 닉슨(공화당) 역시 다음 대선인 1976년 대선에서 민주당 지미 카터가 당선되면서 정권이 교체되었다.[17] 상반기 재보선에서 대전 서구 을 패배의 임팩트가 커서 한나라당의 패배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거기 제외하고 전체적으로는 한나라가 싹쓸이했다.[18] 대통령을 제외한 모든 선출직은 임기 중 금고 이상의 실형이나 그에 대한 집행유예형이 확정되면 당선무효이다.[19] 공성진 전 의원이 의윈직을 잃은 시점(2011년 6월 9일)이 잔여 임기가 1년 미만이었던 관계로 재보궐선거는 치러지지 않았고 19대 총선까지 서울특별시 강남구 을의 지역구 국회의원은 공석으로 남았다.[20] 출구조사에서만 앞섰을 뿐, 개표 결과 더불어민주당 전현희 후보에 역전당했다.[21] JTBC의 출구조사와 개표 초반에만 앞섰을 뿐, 개표 진행 과정에서 미래통합당 박진 후보에 역전당했다.[22] 다만 조은희의 경우 2022년 3월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되어 국회에 입성했으며 2021년 재보궐선거 경선 3위로 자신의 인지도를 높였다.[23] 18대:갑 박영아(女)/을 유일호(男)/병 김성순(男), 19대:갑 박인숙(女)/을 유일호(男)/병 김을동(女), 20대:갑 박인숙(女)/을 최명길(男)→최재성(男)/병 남인순(女), 21대:갑 김웅(男)/을 배현진(女)/병 남인순(女), 22대:갑 박정훈(男)/을 배현진(女)/병 남인순(女). 만일 2018년 재보궐선거에서 최재성이 아닌 배현진이 당선됐다면 3개 선거구 모두 여성 의원으로 채워지면서 이 징크스가 깨졌을 것이다.[24] 예외로 13, 14, 16대 국회는 2개 선거구였다.[25] 19대 총선에서는 세곳 모두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됐으며, 세 사람 모두 19대 국회 임기 만료 때까지 당적 변경이 없었다.[26] 다만 2008년 18대 총선에서는 한나라당이 4개 선거구를 독식했으나 3년 후 재보궐선거에서 민주당에게 분당을을 빼앗긴다.[27] 정영훈 전 의원은 15대 임기 도중 한나라당을 탈당하여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한 후 16대 총선에서 새천년민주당 소속으로 3선에 도전했으나 한나라당 유성근 후보에게 밀려 낙선했고(유성근은 이후 2002년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한다.), 문학진 전 의원은 19대 총선에서 민주통합당 소속으로 3선에 도전했으나 새누리당 이현재 후보에게 밀려 낙선했으며, 19~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 소속으로 문학진 후보를 두 번이나 누르고 당선된 이현재 전 의원은 21대 총선 미래통합당 공천 과정에서 컷오프되어 무소속으로 3선에 도전했으나 더불어민주당 최종윤 후보에게 밀려 낙선했다.[28] 분구 이전의 하남시의 현역 국회의원인 최종윤 의원은 22대 총선에 불출마 선언을 하였으며 하남시 갑에 당선된 추미애 前 법무부장관은 당내 최다선(6선) 의원인지라 국회의장에 선출될 시 기존 관례에 따라 정계에서 은퇴하여 23대 총선에는 불출마할 가능성이 높다.[29] 제종길, 박순자, 부좌현, 김남국[30] 만약 18대 총선19대 총선에서 자유선진당 최현호 후보가 출마하지 않았거나 후보 사퇴했다면 통합민주당/민주통합당 오제세 후보가 낙선하고 한나라당/새누리당 윤경식 후보가 당선되었을 수도 있었다.[31] 우제창, 이우현, 정찬민, 이화영, 최강욱, 남경필[32] 특히,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를 관할하는 지역구의 경우, 제20대 국회의원이었던 이우현과 제21대 국회의원이었던 정찬민이 연속으로 임기를 다 채우지도 못하고 의원직을 잃었다.[33] 다만 기초자치단체장의 경우에는 뽑힌 사례가 많다. 대표적으로 은수미조은희.[34] 이 4명 중 나경원을 제외한 3명은 민주당계 정당 후보였고, 이 3명 모두 오세훈에게 털렸다. 게다가 강금실박영선은 25개 모든 구에서 털렸다.[35] 김은혜를 제외하고 조배숙,임미애 후보도 2022년 지방선거에서 출마하였으나 이들은 각자 자기 당의 열세지역에 출마하였기에 애초에 당선 가능성이 매우 낮았다.[36] 인천광역시장 안상수, 대구광역시장 조해녕, 부산광역시장 오거돈[37] 다만 유정복의 경우는 7회 지방선거에서 낙마했다가 8회 지방선거에서 다시 탈환했다.[38] 3기 임기를 마치고 4회 지방선거에서 무난히 연임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막판에 이 말 한마디 때문에 판세가 뒤집히는 바람에 아깝게 연임에 실패했다.[39] 심대평 전 지사는 임기 종료 3개월 전 사퇴, 이완구 전 지사는 세종시 수정안 문제로 임기 종료 7개월전 사퇴, 안희정 전 지사는 성추행 문제로 임기 종료 3개월 전 사퇴하였다.[40] 다만 김경수를 빼면 모두 총선 및 대선 출마로 사퇴한 것이다.[41] 우근민, 신구범, 김태환, 원희룡, 오영훈[42] 국회의원 지역구도 마찬가지로, 공천 경쟁이 가장 치열하여 표가 분산되는 경향이 있다.[43] 민선 1, 2기 이원식 전 시장의 경우 3회 지방선거 때 공천결과에 불복하여 한나라당 탈당 후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나 한나라당 백상승 후보에게 낙선, 백상승 전 시장 역시 민선 3, 4기 재선 후 5회 지방선거 때 공천결과 불복 후 한나라당 탈당 후 무소속 출마했으나 한나라당 최양식 후보에게 낙선. 최양식 전 시장 역시 민선 5, 6기 재선 후 2017년 9월경 7회 지방선거 불출마 선언을 하였지만 다시 출마하겠다고 입장을 번복했는데 역시 자유한국당 공천결과에 불복하여 무소속으로 출마하였으나 자유한국당 주낙영 후보에게 낙선했다.[44] 징크스를 깨기 위해서는 아예 9회 지방선거에 불출마하거나 9회 지방선거에서 공천을 받든 무소속으로 당선되든 3선에 성공해야한다.[45] 특히 이대엽은수미는 성남시장 재임 중 정치 극단적인 발언과 막말을 일삼았고, 일을 매우 형편없이 해서 자당 지지자들로부터도 평이 매우 나쁜 것은 물론이고, 나는 나라 팔아먹어도 한나라당을 찍어주겠다고 하는 자들만 이대엽을 지지하고, 나는 나라 팔아먹어도 더불어민주당을 찍어주겠다고 하는 자들만 은수미를 지지할 정도이다.[46] 사실 5회 6회의 경우 모두 민주당계 정당의 근소한 승리처럼 보이지만, 5회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무소속 당선자 2명 모두 민주당계 정당 출신이라는 점, 기초자치단체장과 광역의회의원에서는 패했다는 점에서 민주당의 승리로 보는 경우가 많고, 6회 지방선거에서는 반대로 광역자치단체장 전국 득표율과 기초자치단체장과 광역의회의원 당선자 수에서 새누리당이 새정치민주연합을 앞섰다는 점에서 새누리당의 근소한 승리, 무승부로 보는 경우가 많다.[47] 1회 지방선거에선 민자당, 민주당, 자민련이 비슷하게 가져갔고, 2회 지방선거에선 국민의 정부 허니문 효과로 당시 연립여당이던 새정치국민회의+자민련이 승리했으며 3회 지방선거에선 민자당계 정당이자 야당이던 한나라당이 대승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이 징크스대로 가려면 1회, 3회에선 민주당계 정당, 2회에선 민자당계 정당이 승리했어야 했다.[48] 미국 대통령과는 정반대로, 이쪽은 41대 조지 H. W. 부시 이후로 홀수대가 보수계(공화당), 짝수대가 진보계(민주당)에서 나오고 있다.[49] 진도 7[50] 미래한국당 제외 시, 84석[51] 고종 황제의 장례식은 일제의 강요로 전통식이 아닌 일본식 장례식으로 치러졌다.[52] 장례 자체는 국민장으로 치러졌으나 당시 이승만 정부에서는 국장을 제안했었다.[53] 노무현 대통령은 국민장이었다. 이후 국장과 국민장이 통합되어 국가장이 되었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국민장을 치른 고인이 되었다.[54] 김대중 대통령은 국장이었다. 이후 국장과 국민장이 통합되어 국가장이 되었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국장을 치른 고인이 되었다.[55] 대통령 선거, 국회의원 선거, 전국동시지방선거. 이들 중 대선과 총선은 모두 13대부터 시작했으니 총선 횟수에서 12를 빼면 민주화 이후 몇번째 선거인지 알 수 있다. 지방선거만 보면 1991년에 시행하기 시작했지만 두번에 걸쳐 따로 치렀고 단체장도 선출을 안했기 때문에 1995년이 시작이다. 1991년 지방선거까지 넓힌다면 횟수에서 하나를 더해야 한다.[56] 18대 대선과 총선, 6회 지선[57] 20대 대선과 총선, 8회 지선[58] 대선에서는 모두 보수 후보들이 접전승을 거두었으며(게다가 당선자 두명 모두 탄핵의 길까지 섰다는 공통점도 있다.), 총선은 6번째(18대 총선), 지선은 8번째에서 허니문 효과로 압승을 거두었으며, 반대로 20대 총선과 6회 지방선거는 민주당계가 앞섰지만 둘다 새누리당과 고작 1석(각각 122석-123석, 8석-9석) 차이였다. 20대 총선의 경우에는 무소속 복당을 다 감안하면 새누리당이 1당이지만(결국 다 복당하면서 제1당이 되었지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비박계가 대다수 탈당하며 다시 1당을 뺏겼다.), 이때는 민주당 텃밭 호남을 기반으로 한 제3지대 정당이자 민주당계 정당에서 분당된 정당인 국민의당이 있었기에 이를 감안할 시 범민주당계 163석(더불어민주당 125석+국민의당 38석)+진보정당계 8석(정의당 6석+민중정당 2석)으로 범진보 총 171석으로 보수계가 과반이 안되는 129석을 얻으면서 범보수계의 참패, 범진보계의 압승으로 보는 경향이 많다. 6회 지방선거의 경우 광역만 민주당계가 1석 앞섰을 뿐, 기초자치단체장과 광역의회의원 등은 보수계가 앞섰다. 즉, 민주당계가 앞섰던 때는 모두 1석 차이로 앞섰다. 그것도 다 박근혜 정부일때.[59] 18대 대선과 총선, 8회 지선[60] 이와 반대로 8년 해의 지방선거는 민주당계 정당이 승리하였는데, 1998년 지방선거는 보수계가 앞섰긴 하나 새정치국민회의+자민련이 연립하였기 때문에 여야로 보면 민주당계 정당이 압승을 거두었고, 2018년 지방선거는 더불어민주당이 14석을 가져가는 압승을 거두었다. 2008년은 총선해였던 데다가 전술한 18대 총선이었기 때문에 논외.[61] 후보 확정 이전에 사퇴하는 경우와 기존에 역임하던 선출직을 의무적으로 사퇴해야 할 필요가 없는 경우는 제외[62] 후보 사퇴하거나 등록 무효되는 경우는 제외[63] 기존에 역임하던 선출직을 사퇴하는 일자 기준이다.[64] 나경원(서울특별시 동작구 을), 정용기(대전광역시 대덕구), 박맹우(울산광역시 남구 을), 배덕광(부산광역시 해운대구·기장군 갑), 정미경(경기도 수원시 을), 김용남(경기도 수원시 병), 임태희(경기도 수원시 정), 홍철호(경기도 김포시), 유의동(경기도 평택시 을), 이종배(충청북도 충주시), 김제식(충청남도 서산시·태안군), 양민숙(경기도 수원시의회 사선거구)[65] 이후 김병욱 의원은 21대 총선에서 인물론으로 당선되어 재선에 성공했고, 22대 총선에서는 종부세 영향으로 인해 국민의힘 김은혜 후보에 밀려 낙선하면서 8년만에 국민의힘이 지역구를 되찾았다.[66] 공천 탈락 이후 이용섭 전 의원은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해 6회 지선 광주광역시장 선거에서 무소속 출마를 강행했지만 당시 현역 광주광역시장이었던 무소속 강운태 후보와 단일화로 후보 사퇴를 했다. 그런데 정작 강운태 후보마저 본선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윤장현 후보에 밀려 낙선했다.[67] 이후 당선된 국민의당 권은희 후보가 바른미래당신 국민의당을 거쳐 신 국민의당이 국민의힘에 흡수합당되면서 권은희 전 의원이 국민의힘을 탈당하기 직전까지는 이용섭 전 광주광역시장과 권은희 전 의원이 상대 정당 소속이 되었다. 여담으로 권은희 전 의원은 국민의힘을 탈당한 이후 22대 총선에서 무소속 당적으로 새로운미래개혁신당과 연대했다.[68] 광역자치단체장을 역임하다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려면 기존에 역임하던 광역자치단체장직을 사퇴해야 하지만 국회의원은 의원직을 유지한 상태에서 대통령 선거 출마가 가능하다.[69] 그나마 득표율이 15% 이상이어서 선거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었다.[70] 8회 지선 결과 세종특별자치시장 선거는 국민의힘 최민호 후보가 당시 현역 세종특별자치시장이었던 이춘희를 꺾고 당선되었고, 경기도지사 선거는 당시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갑 국회의원이었던 김은혜가 국민의힘 후보로 확정되어 의원직을 사퇴 후 출마했지만 한나라당 출신 극우 성향 유튜버 강용석의 트롤링으로 인해 출구조사에서 이겼음에도 불구하고 더불어민주당 김동연 후보에 밀려 낙선하면서 의원직만 날리고 말았다.[71] 이 선거 기록으로 인해 이낙연은 7번의 선거 중 첫 낙선 기록을 남겼고, 선거비용도 반액만 보전받을 수 있었다.[72] 사실 이낙연문재인 정부의 첫 국무총리로 임명되면서 2017년 5월 12일에 전라남도지사직을 사퇴했지만 사퇴 직후 치른 차기 선거였던 21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출마해 미래통합당 황교안 후보를 상대로 대승하면서 이 징크스를 깨는 듯 했지만 이낙연도 이 징크스를 2번은 못 피했는지 22대 총선에서는 낙선했다.[73] 역임 중인 선출직을 의무적으로 사퇴해야 하는 경우만 해당[74] 박성효는 이후 그 다음 선거에서도 뛰어 들었으나 더불어민주당 허태정 후보에게 밀려 3연패를 기록했고(6회 지방선거 당시에는 2패), 또 그다음 선거에서는 동일 지역 3번 이상 낙선자 배제로 출마하지 못하였다. 대신 같은 당 소속의 이장우가 공천받고 이후 대전시장에 당선되었다.[75] 기존의 수원시 정 선거구는 2014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에서 박광온 의원이 당선되었기에 지역구를 옮겨야했다.[76] 후보 확정일은 2021년 10월 10일, 도지사직 사퇴일은 2021년 10월 25일, 광역자치단체장은 대선 출마를 하려면 대선 이전에 광역자치단체장직을 의무적으로 사퇴해야 한다.[77] 기존의 성남시 분당구 갑 선거구는 2022년 재보궐선거에서 안철수 의원이 당선되었기에 지역구를 옮겨야했다.[78] 그 외에도 김은혜는 낙선 이후 2개월 반만에 윤석열 정부의 홍보수석비서관으로 임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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