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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공용 공간
2.1. 본관2.2. 중앙도서관(대학원)2.3. 사색의 동산2.4. 다람쥐길2.5. 동원글로벌리더십홀2.6. 중앙도서관2.7. 아세아문제연구원2.8. 한국어교육관2.9. 교우회관2.10. 라이시움2.11. 중앙광장
3. 법학전문대학원(자유전공학부), 심리학부4. 경영대학5. 문과대학6. 정경대학7. 사범대학8. 국제대학2.11.1. 대운동장(~2002년)
2.12. 호상2.13. 백주년기념삼성관2.13.1. 고려대학교 박물관
2.14. 4·18기념탑2.15. 대강당2.16. SK미래관2.17. 민주광장2.18. 학생회관2.19. 4·18기념관2.20. 우당교양관2.21. 타이거플라자2.22. 수당·삼양 Faculty House2.23. 인촌기념관2.23.1. 왔다분수
2.24. KU 개척마을(π-Ville)2.25. 인촌로1빌딩8.1. 국제관
9. 미디어학부, 디자인조형학부9.1. 미디어관
10. 철거된 시설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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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관 ||<-4><bgcolor=#dddddd,#212121> ||
교육관 ||<-4><bgcolor=#dddddd,#212121> ||
<colbgcolor=#999999,#666666> | 인촌 기념관 | 법학관 신관 | |||||||||||||||||||
CJ법학관 | |||||||||||||||||||||
동원글로벌 리더십홀 | 해송법학 도서관 | 운초우선 교육관 | |||||||||||||||||||
국제관 | 문과대학 (서관) | 본관 | 법학관 구관 | 아세아 문제 연구원 | 체육생활관 | ||||||||||||||||
대학원 도서관 | 중앙도서관 | 사범대학 신관 | 교우회관 | ||||||||||||||||||
타이거 플라자 | 사범대학 본관 | ||||||||||||||||||||
정경관 | <colbgcolor=#999999,#666666> | 인문사회관(예정) | 대강당 | 중앙광장 | 백주년 삼성기념관 | 경영본관 | 현대자동차 경영관 | ||||||||||||||
파이빌 | 우당교양관 | 민주광장 | |||||||||||||||||||
청산MK 문화관 | 미디어관 | SK미래관 | LG-POSCO 경영관 | 라이시움 | |||||||||||||||||
고려대로1빌딩 | 학생회관 | 4.18 기념관 | |||||||||||||||||||
서울 인문·사회계캠퍼스 전경[1] |
법학전문대학원, 경영대학, 문과대학, 정경대학, 사범대학, 디자인조형학부, 국제학부, 미디어학부, 자유전공학부, 심리학부가 위치한 캠퍼스. 성북구 종암동과 안암동에 걸쳐 있다. 고려대역 1번 출구는 아예 고려대학교 라이시움 건물의 일부이다. 하지만 고려대역은 북동쪽에 위치한 인문캠에서도 동쪽 끝에 있어서 법대, 경영대, 사범대 학생들을 제외한 대다수 학생들(특히 이공대생들)은 주로 안암역을 애용한다. 게다가 고려대학교의 주요 상권은 대부분 안암역 부근에 몰려 있기 때문에 사실상 고려대학교 학생 대부분은 안암역을 이용한다.
인문사회계캠퍼스의 경우 본관, 중앙도서관(대학원), 서관(문과대학), 백주년 기념관, SK미래관, 중앙도서관, LG-POSCO 경영관 등이 석조건축으로 되어 있다 보니 성(Castle) 같다는 인상을 많이 준다. 재미있는 점은, 석조 건물 가운데 백주년 기념관과 SK미래관, 중앙도서관의 중앙 로비 입구는 건물의 정중앙이 아닌 한 쪽으로 치우쳐 있다. 단순히 중구난방으로 지어진 석조 건물이 아니라, 교문을 중심으로 캠퍼스가 좌우로 넓게 대칭을 형성하며 퍼져 있고, 중앙광장이 탁 트여 있기 때문에 시각적 효과가 매우 크다.
2. 공용 공간
열람실과 도서관 등 특정 단과대학에 소속되어 있지 않거나, 학생 자치공간이거나, 본관 등 학교법인 고려중앙학원이나 대학본부에 직속된 건물.2.1. 본관
본관 |
본관의 봄 | 본관의 여름 |
본관의 가을 | 본관의 겨울 |
준공 | 1934년 |
규모 | 지상6층 |
보성전문학교 시절부터 사용하던 건물로 고려대학교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물이기도 하다. 1933년 9월에 착공해 이듬해인 1934년 9월 완공됐다. 참고로 이러한 중세 고딕풍의 건물 양식은 종로구에 위치한 중앙고등학교도 거의 동일하다. 고려대학교 본관 사진과 중앙고 건물 사진을 비교해 보면 거의 구별이 안 될 정도로 비슷한 것을 알 수 있다. 인촌 김성수가 중앙고를 먼저 인수해 건물을 짓고 나중에 고려대학교 본관을 지었다고 잘못 알려져 있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실제로는 고려대학교 본관이 먼저 지어졌으며 중앙고등학교 본관은 고려대학교 본관 완공 1년 뒤 개교 30주년 기념 도서관(現 대학원도서관)을 지을 때 같이 지은 것이다.[2]디자인이 비슷한 것은 이 세 건물을 설계한 사람이 박동진(1899~1981)으로 동일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시공은 후지타 고시로가 맡았다.
현대의 고층 건물에 비해 낮은 층수를 가지고 있으나 막상 실제로 접하면 사진으로 보는 것과 달리 "건물에 압도당한다는 느낌을 받는다"는 학생들이 많다. 화강암 건물이 주는 중후한 분위기에, 중앙광장이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는데 이 각도가 인간에게 위압감을 주는 시각적 효과를 주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법학과 등이 이용했으나 현재는 강의실로 사용하지 않고 총장실 등의 대학본부로만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일반 학생은 4년 동안 다니면서 들어가 볼 기회가 별로 없다.[3] 단, 재무부, 교무지원부 등이 있기 때문에 교내 근로장학생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는 경우는 하루에 한번씩 가는 경우도 있다.
충격적인 사실은 엘리베이터가 있다! 골방이라고 할 수 있는 4층도 정문에서 보았을 때 왼쪽 부분은 프레지던트 챔버라는 이름의 일종의 만찬장으로 활용한다. 오른쪽 부분은 사무실로 활용 중. 엘리베이터에서 4층은 5층으로 표기되어 있다.
2013년 12월 외벽 수리 작업을 위해 공사에 들어가 2014년 4월 14일에 공사가 마무리 되었다. 2016년 4월 5일 본관 앞 잔디밭에 있던 나무를 전부 없애고 완전한 잔디밭으로 만들었다. 여담으로, 본관 건물은 문화재로 등록되어 있다.(사적 제285호)
본관 앞의 김성수 동상은 잊을만 하면 학생회 등에서 철거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김성수가 친일 반민족 행위자 명단에 공식적으로 오르고 건국 훈장을 박탈당한 뒤에는 더욱 이 움직임이 거세졌다.[4] 본관 뒷편에 舊인쇄실, 舊교환실,[5] 본관부속사무실, 본관 보일러실이 있다. 이 중 舊교환실과 본관부속사무실을 허물고 행정동을 신축할 계획이 있다. 행정동이 신축되면 기존 본관 뒤편에 있던 다람쥐길은 행정동의 옥상에 위치하게 되어 문대와 대학원도서관을 연결하는 길 겸 옥상정원이 된다고 한다.
본관 앞 잔디 경사면에 향관목이 식재돼 있었다. 향관목은 본관 완공직후부터 식재되어 있었으나, 2016년 봄 모두 제거되었다.
2.2. 중앙도서관(대학원)
중앙도서관(대학원) |
준공 | 1937년 |
레노베이션 | 2021년 |
규모 | 지상5층 |
본관을 중심으로 중앙광장 오른편에 위치하고 있으며, 보성전문학교 창립 3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1935년에 착공, 1937년에 개관했다.[6][7] 본관과 함께 고려대의 상징과도 같은 건물이며, 정문에서 바라볼 때 본관을 중심으로 좌측의 서관과 대칭을 이루고 있다.
흔히 대학원도서관(약칭 대도)이라고 부르지만 정식 명칭은 '중앙도서관(대학원)'[8]이고 앞의 돌로 된 현판에는 대학원이라고만 적혀 있었다가 2020년에 중앙도서관(대학원)으로 고쳐 적었다.[9] 이 건물을 지을 때는 미국 듀크 대학교의 중앙도서관을 참조해서 지었다고 한다.
(듀크대학교 중앙도서관)
정주영 회장이 가출했던 시절 노가다 판에서 이 건물을 짓는 인부였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정주영 회장은 '내가 고대를 지었다'고 대단한 자부심에 차 있었다고 한다.[10]
원래 중앙도서관이었으나, 개교 70주년을 기념해 현재의 중앙도서관 신관이 지어지면서 중앙도서관 '구관'[11]이 되었고 대학원 전용 건물로 사용하게 됐다. 대학원 행정 공간 및 연구 공간이 주를 이루며, 학교가 소장한 귀중서 등을 보관하는 서고인 한적실(漢籍室)과 대학원열람실[12][13]이 있다. 붓글씨로 써서 실로 묶은 다 부스러질 것 같은 책들이 빽빽하게 보관되어 있다. 장서 보유 분야에서는 대학 도서관 중 최상위권이다.
대학원을 진학하지 않는 학생은 4년 동안 다니면서 한 번도 들어가 볼 기회가 없다. 하지만 학부생이라 하더라도 대학원 연구공간을 제외한 나머지 공간은 들어갈 수는 있으며, 문과 계통 수업에서 TA를 하는 경우 TA 담당 대학원생 조교가 세미나실로 부르는 경우는 있다. 세미나실은 꽤 좋다. 다만 대학원생이 아니면 대여가 안 될 뿐이다.
역시 문화재다.(사적 제286호). 문화재 보호를 위해 2016년 여름방학부터 2017년까지 보수 공사를 진행했다. 꽤 오랫동안 대학원도서관의 입구는 성인 남성이 열기 조금 불편할 정도로 낮은 위치에 문고리가 있었다. 180cm가 넘는 사람이라면 팔을 뻗어서 문고리가 겨우 닿는다. 이 건물을 지을 당시인 1930년대의 평균 신장을 반영했기 때문. 대학원 도서관의 문고리는 2017년 보수와 함께 고쳐졌다. 반면 본관 문고리의 경우 높으신 분들이 드나들기 때문인지 옛날에 고쳐놨다.
입구에 개교 100주년을 기념하여 중국 산둥대학이 기부한 공자상이 있었으나 언젠가부터 사라졌다. 또한 대학원도서관 앞에는 보성전문학교의 창립자 충숙공 이용익 선생 흉상과 고려대학교 초대 총장 기당 현상윤 선생의 흉상이 있다.
2.3. 사색의 동산
중앙도서관과 대학원도서관 사이에 있는 야트막한... 동산도 아니고 정원도 아니고 하여간 참 애매한 공간. 키 큰 나무들, (마치 동산처럼 꾸며진) 여러 바위들, 수풀, 그리고 그 주변을 아우루는 틀과 벤치들로 이루어져 있다. 남쪽에 "사색의 동산"이라고 새겨진 석판이 있는 만큼 학교 공식명칭이다.과거 도서관에서 공부하다 잠시 이곳에서 쉬면 사색이 된다고 하여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주로 복학생이나 대학원생들이 의자에 앉아 줄담배를 피우는 장소로 애용된다. 주로 시험 기간이 되면 사색의 동산에 있는 벤치와 중앙도서관 바로 앞에 위치한 벤치들이 시험 공부 때문에 과부하된 머리를 식히려고 온 대학생들로 북적인다. 이곳의 고양이가 다람쥐길의 다람쥐를 전부 잡아먹었다는 소문이 돌고 있어 고양이 동산이라고도 불린다. 근처의 자유전공학부, 사범대학 등이 일일주점/호프 등을 열 경우 자주 이용된다. 아무래도 법대와 가깝기 때문에 사법시험 합격자 발표일쯤 되면 담배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오는데 과장 좀 하면 공업지대 같다. 그런데 요새는 법대생들이 대부분 신법관을 이용하기 때문인지 신법관과 해송법학도서관 앞 잔디밭에서 담배를 피우곤 한다. 사법시험 합격자 발표날에도 역시 이곳을 애용하였다.
2.4. 다람쥐길
다람쥐길 |
고려대학교가 세워졌을 때부터 이용되었다는 지름길(?)이다. 예전에는 본관을 중심으로 앞에 대운동장이 있었고, 좌우측에 서관(문과대학)과 중앙도서관(현 대학원)이 있었는데, 두 건물 사이를 이동할 때에 본관 앞을 통해서 오르막,내리막길을 이용하기에는 바빴던 대학생들이 최단 루트로 본관 뒤의 산길을 이용하면서 이 길이 생겼다고 한다. 이후 학교 측에서 이곳에 아스팔트를 깔아 진짜 길로 만들게 되었고,[14] 가로등과 벤치도 설치하였으며 다람쥐길이라는 공식 명칭도 학교 홈페이지에 올려 놓았다.
서관에서 중도(중앙도서관)로 갈 때 최단거리 루트[15]로 자주 애용된다. 산과 접해 있어 가끔 다람쥐가 오간다 하여 붙여진 말이다.[16] "연인끼리 다람쥐를 보면 백년해로 한다"라는 로맨틱한 전설이 있지만,
그런데 최근에는 다람쥐가 보이지 않아서 중도 앞 사색의 동산에서 서식하는 고양이들이 전부 잡아먹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혹은 가을만 되면 떨어진 도토리를 줍는다고 몰려드는 인근 주민들 때문에 먹이인 도토리가 남질 않아 없어졌다는 설, 본디 흙길이었으나 깔끔하게 포장해버려 사라졌다는 설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다람쥐는 어디로 가고 배달 오토바이만 신나게 다닌다. 금지하고 있는데 지키는 사람이 없으니 그 모양 그 꼴이다. 사실 아주 사라진 건 아니고, 있기는 있다. 2010년대부터 묘하게 학교 고양이들의 서식처가 되었다. 나름 황금 나와바리로 취급되는 모양. 다람쥐길을 차지한 고양이는 주로 서관 쪽에 있는 벤치에 있어서 하루에도 수천명씩 지나가는 사람들을 관찰하고 있다. 이곳에는 조형미술로 다람쥐 상이 있는 벤치가 있는데, 다람쥐 상 옆에서 뒹굴고 있는 고양이를 보면 여기가 다람쥐길인가 고양이길인가 혼란스럽게 만든다.
- 1대 고양이: 다람쥐길에 고양이가 자리잡게 된 배경과 첫번째 고양이가 어떤 고양이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2011년 하반기부터 출현한 고양이 두 마리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지나가던 여학우들이 귀엽다고 이것저것 주는 걸 주는대로 쳐묵쳐묵하다보니 2011년 12월 즈음해서는 돼냥이 상태였다고. 그 중에서 삼색고양이(암컷)가 다람쥐길 고양이들을 비롯해 인문사회계캠퍼스 고양이들의 할머니격 되는 존재라고 알려져 있다. 삼색고양이는 2010년부터 2015년 겨울까지 목격되었다. 길고양이치고는 매우 장수한 셈이다.
- 2대 고양이: 2013년 경에는 고등어 태비 암컷 고양이 한 마리가 자리를 잡았다. 위에서 말한 삼색고양이의 맏딸쯤 되는 고양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 고양이도 2015년 겨울까지 목격되었다.
- 3대 고양이: 이름은 시루. 2대 고양이의 아들로 고등어 태비 수컷 고양이. 새끼 시절인 2015년부터 엄마 고양이가 영역을 물려주고 아예 밥그릇까지 보유하고 서식 중이어서 때깔이 아주 곱다. 아직 어리던 새끼 시절에는 본관으로 내려가는 계단 밑에 주로 지내서 다람쥐길이 나름 춘추전국시대였는데, 다 크고 난 다음부터는 다람쥐길 고양이 패권의 상징인 벤치에 올라와 볕을 쬐고 있다. 온순해서 사람 손길을 거부하지 않고 오히려 즐긴다. 종종 벤치에서 쉬는 학우들의 무릎 위에서 뭉개는 모습까지 볼 수 있다. 2016년에 TNR 사업으로 현재는 중성화된 상태. 중성화 전에는 매우 살이 쪄 있는 돼냥이였는데, 중성화된 이후에는 살이 많이 빠져서 다른 고양이인줄 아는 사람들이 많다. 여동생인 고양이가 근처에 있어서 가끔 밥 먹으러 오는 걸 볼 수 있다. 하루라는 이름의 아들도 있는데, 시루가 중성화되기 전에 2016년에 낳은 고등어 태비 수컷 고양이다. 아버지 시루보다는 고등어 털 무늬가 좀 옅은 것이 특징이다. 벤치에서 부지런히 영업을 하는 아버지와 달리 경계심이 많고 사람 손을 타지 않는다. TNR 사업을 할 때마다 번번이 포획에 실패해서 2017년 8월 현재까지도 중성화가 되지 않은 상태. 당연히 아버지보다 등장 빈도는 낮지만, 가끔 부자가 나란히 식빵을 굽고 있는 장면을 볼 수 있다. 그야말로 붕어빵이다.
- 4대 고양이: 이름은 꾸루. 시루가 있을 때부터 보이던 또 다른 아들로 고등어 태비 수컷 고양이. 하얀 양말(한쪽 발에는 스타킹)을 신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시루가 건강상의 문제로 입양된 이후 2017년 6월부터 자리를 잡았다. 원래 다람쥐길에 살던 고양이가 아니고 정대후문쪽에 살던 고양이였지만 이사왔다. 형제인 하루와 같이 살고 있으며, 역시 중성화가 되지 않은 상태다. 하루와는 달리 기분이 좋으면 손을 타지만, 그래도 시루보다는 경계심이 많다. 팬텀의 등장 이후 꾸루와 하루, 하루의 자식 모카와 라떼는 이후 영역을 타이거 플라자 쪽으로 옮겼고, 꾸루는 2020년 1월 고양이별로 떠났다.
- 5대 고양이: 이름은 팬텀. 삼색 고양이로 하루의 남편이자 모카, 라떼의 엄마, 그리고 아빠를 추정할 수 없는 치즈 고양이 4둥이(도리, 요리, 죠리, 둘리로 일명 둘리단이라 불린다)의 엄마. 인간에 대한 경계도 심하고 아주 똑똑해서 TNR에 절대 걸리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인간을 싫어하기 때문에 선대 고양이들처럼 대놓고 볕을 쬐거나 접근을 허락하지는 않는다.
2.5. 동원글로벌리더십홀
동원글로벌리더십홀 |
준공 | 2007년 |
규모 | 지하1층, 지상3층 |
이름 때문에 재학생들 사이에서는 동글리, 혹은 참치관으로 불린다. 여성을 위한 시설로, 내부에는 여성복지시설, 인권·성평등센터 등이 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여성만을 위한 전용 시설은 아니다. 건물 명칭 그대로 '글로벌 리더십'을 위하여, 국제하계대학 등 국제교류를 관장하는 국제처와 기부금 등을 모금하는 대외협력처가 있다.[18] 여학생 관련 시설이 설치된 이유는 과거 그 자리에 '여학생회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낡은 회관을 허물고 새로 건물을 지으려 하는 학교 측에 학생들이 요구해 여성을 위한 시설들이 들어섰다.
여학생 휴게실이 마련되어 있는데, 여학생 학생증으로만 출입이 가능하며, 휴게실로는 가히 학교 전체를 통틀어 최고, 최대의 규모를 자랑한다. 라운지에는 테이블과 의자가 마련되어 가벼운 담소를 나누거나 과제를 하는 것이 가능하다. 화장실과 샤워실, 파우더룸이 있어 아침 수업에 늦지 않기 위해 급하게 나온 학생들이 이용하기도 한다. 휴게실이 있는데, 2층 침대가 설치되어 간단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전날 밤샘 후 공강시간에 자는 용도로 사용된다. 여학생들 사이에서도 실제로 몸이 불편해 쉬어야만 하는 학생이 전날 유흥의 향연으로 뻗어 있는 학생들에게 그 기회를 뺏긴다는 이유로 종종 사용 자격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이외에도 요가 수업을 위한 탈의실 등이 있다.
2.6. 중앙도서관
중앙도서관 | |
준공 | 1977년 |
리모델링 | 2004년, 2019년 |
규모 | 지하1층, 지상4층 |
보통 중앙도서관으로 말하지만 정확히는 중앙도서관 신관으로, 대학원 도서관이 구관이다. 건학 7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성금과 기금을 모아 건립했다.[19] 국보 제291호인 용감수경을 소장하고 있다. 서울 지역 타 대학의 중앙도서관 대비 규모가 다소 작고 건물 외관이 밋밋한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20][21]
2005년 리모델링으로 외관 빼고 내부가 완전히 바뀌었다. 1층에는 스마트 대출반납기가 있는 로비와 복사실, 열람실[22][23][24]이 있고, 2층에는 외국 학술지 지원센터, 제1자료실, 여학생 휴게실이 있다. 3층과 4층에는 각각 제2, 제3자료실과 조지훈 열람실[25]이 있으며 지하 1층에는 이마트24 편의점이 있다. 입구에서 학생증을 찍어야 들어갈 수 있으며 의예과, 이공계 학생들도 당연히 제한없이 입장과 대출이 가능하다.[26]
2019년 내부 리모델링으로 중앙도서관 1층의 디자인이 완전히 바뀌었다. 정경대학 출신 교수인 당시 염재호 총장의 감성에 맞춰 리모델링되어 염재호 총장의 임기 중에 완공한 π-Ville 99의 디자인과 매우 유사하다.[27] 건물 뒤편에는 서고가 자리잡고 있다. 서고는 1~7층까지 있으며 몇십년치 과월호 정기간행물이나 서양서 단행본[28], 동양서 연속간행물[29]을 구하는 데 최적화되어 있다.[30] 연속간행물을 위시한 일부 자료는 대출이 제한된다. 2층은 기증자료와 대형자료가 보관되어 있으며, 1층은 보존서고(폐가실)로 관계자가 아니면 출입할 수 없다.
로비의 소파와 테이블, 그리고 각 층에 위치한 테이블은 공부 및 팀플의 용도로 애용된다. 그 옆에 책 자판기 같은 거대한 기계가 있는데 '간편대출 서비스' 기계이다. 보존서고에 있는 도서나 다른 도서관에 있어서 찾기 힘든 책, 그냥 책을 직접 찾기 귀찮은 경우에 이용하면 좋다. 1층 입구로 들어와 직진하면 안내데스크 비슷한 시설이 있는데, 이 곳에서 모든 책의 반납과 재대출이 가능하다. 굳이 3, 4층에 올라가거나 빌린 책을 반납하기 위해 의학도서관 등지에 갈 필요가 없다.[31][32] 입구에는 학생증을 소지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는 시설이 되어 있다. 그러나 주민등록증 등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신분증이 있으면 장부를 작성한 뒤 출입이 가능하다. 참고로 연세대학교 학생도 학생증을 제출하면 출입이 가능하다고 한다.[33]
참고로 고려대학교 도서관은 본 항목에서 서술한 중앙도서관 신관, 중앙도서관 구관(통칭 대학원도서관), 과학도서관, 해연의학도서관, 학술정보관(백주년기념관에 있는 국제기구자료실, C/D/L-Lounge, 멀티미디어 열람실, 대열람실과 중앙광장의 CCL), 해송법학도서관, 세종학술정보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외에도 아세아문제연구원의 동아시아도서관, 민족문화연구원의 한국학도서관, 박물관의 문화정보자료실/기록자료실, 국제대학원 자료실 등이 존재한다.
자동대출반납기 이용시, 동일한 도서는 비치된 분관이 다르다면[34] 중복으로 대출이 가능하지만, 같은 분관이면 불가능하다. 판이 다를 경우는 아예 다른 책으로 취급하므로 같은 분관이라도 대출이 가능하다. 세종에만 있는 도서는 분관 대출을 신청하면 받을 수 있다.
2.7. 아세아문제연구원
아세아문제연구원 |
준공 | 1966년 |
규모 | 지상4층 |
중앙도서관 뒷편에 자리잡고 있는 한국 최초의 대학 부설 연구소로, 연구소 자체는 1957년에 설립되었다. 일명 '아연'으로 통칭된다. 김준엽 前 고려대 총장이 이곳에서 2대 소장을 지낸 바 있다. 김준엽 前 총장이 부임하면서 미국 정보기관의 지원을 받아 냉전 시기 동북아시아 지식 센터로 기능했던 한국 현대사에서 상당히 의미가 있는 시설이다. 국내 최초로 독자적 공산권 연구를 수행하여, 세계 5대 공산권 연구소 중 하나로 세계적 권위를 인정받은 곳이기도 하다.
위치가 중앙도서관 뒷편이라 뒷쪽 중앙도서관 서고와도 통로가 연결되어 있다. 내부에 자체 도서관도 갖고 있는데 사실 학부생들은 웬만해선 이곳의 자료를 이용할 일이 없다. 하지만 잘 찾아보면 한국 근현대와 관련된 진귀한 자료들이 숨어 있는 보물창고다. 기존에는 이름이 아세아문제연구소였으나 2020년 12월 연구원이 되었다.
2.8. 한국어교육관
한국어교육관 |
준공 | 2018년 |
규모 | 지하1층, 지상3층 |
법대 후문으로 나가면 바로 보이는 곳에 위치한 건물로, 최근 크게 늘어난 유학생들의 한국어교육을 담당하는 어학당 역할을 하고 있다. 덕분에 라이시움에서 셋방살이하던 고려대학교 한국어센터가 전용 공간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법대 후문 바깥에 위치해 있고,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국어 교육을 하는 공간이라 대부분의 학부생들이라면 딱히 방문할 이유는 없는 곳이다.
2.9. 교우회관
교우회관 |
준공 | 1996년 |
규모 | 지하1층, 지상5층 |
정세영 前 현대차 사장이 고려대 교우회장으로 있을 당시 기금을 모아 지은 건물. 상당수 학과/학번 교우회 사무실이 이 건물에 있다.
결혼식장이 있어 주말이면 교우들의 결혼식으로 주변 주차장이 상당히 혼잡하다.
1층에 하나은행 ATM이 있어 사범대생들이 가끔 이용한다.
지하에 6,000원짜리 한식 뷔페가 있는데, 식사 시간에는 늘 사람으로 가득하다. 단, 출입구는 교우회관 건물 입구에서 좌측으로 약 50m 떨어진 곳에 있으니 참고.
사족으로 1층 화장실이 엘포관 못지 않게 깔끔하다. 그런데 정작 입구로 올라가는 바닥은 타일과 시멘트가 깨져서 흉물스러운데 10년 넘게 방치하고 있다.
2023년 리모델링을 해서 훨씬 깔끔해졌다.
2.10. 라이시움
라이시움 |
준공 | 2001년 |
규모 | 지하1층, 지상6층 |
고려대의 모든 건물 중 전철역과 가장 가까운 건물이다. 외부에서의 접근성만 따지면 교내 최고. 서울 지하철 6호선 고려대역과 함께 시공되었으며, 고려대학교의 요구로 고려대역 1번 출구가 라이시움과 통합 시공되어 1번 출구로 나와서 왼쪽으로 돌면 바로 눈앞에 라이시움 1층 로비가 보인다. 라이시움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철학을 가르쳤던 학원 리케이온에서 유래한 명칭.[35]
1층에는 커피 전문점과 편의점을 비롯 여행사·사진부·복사부·안경부·컴퓨터부 등등 각종 학생 편의시설이 입점해 있다. 학생 복지를 위해 시중보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서비스를 하고 있다. 또한 인재발굴처와 고려사이버대학교 제2행정실도 존재한다. 2층에는 미래교육원(舊 평생교육원)이 위치해 있으며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여러 교육 활동을 펼치고 있다. 라이시움 건물의 본래 존재 이유이나 재학생들이 이용할 일은 전혀 없는 시설이기에 이런 게 있는지 모르는 학생들이 태반이다.
3층에는 경영대로 이어지는 통로가 존재한다. 고려대역 1번 출구에서 나와서 3층으로 올라오면 언덕길을 오를 필요 없이 경영대로 바로 이어지기에 많은 학생들이 이용한다. 출입문 개방 시간이 정해져 있으니 확인하고 사용하자.
5층은 사범대 전용 공간이다. 원래 라이시움은 4층짜리 건물이었으나 사대 분관 철거로 인하여 갈 곳 없어진 사범대의 시설을 옮기기 위해 한 층을 증축한 것. 사범대 학생회실과 동아리방, 과방과 각 학과의 부속 연구시설 등이 위치해 있기 때문에 사실상 라이시움은 사범대 제3관이나 다름 없는 수준이다. 사대 분관에 있을 때보다 접근성이 심각하게 많이 떨어졌기 때문에 옛날을 기억하는 고학번들은 불편을 호소한다. 사범대 학생자치시설이 있는 이유로 주차장과 연결된 라이시움 3층 출입구는 사범대생 학생증을 갖다대면 보안이 해제돼 사실상 24시간 이용할 수 있다. 사범대에서 분관철거반대위원회 활동을 하며 제시했던 사물함 및 자판기 설치, 여학생휴게실 설치, 24시간 출입 가능 등의 조건이 대부분 관철되어 현재와 같은 형태가 되었다. 그러나 과거 분관에 비하면 심히 미흡하여, 분관을 기억하는 학우들에 의해 닭장 등으로 불린다. 과방을 분배할 때 과 재적 인원에 따라 분류했다고 한다. 그래서 교육학과 및 일부 다수 학과의 방은 넓은 편이나 가정교육과는 좁다. 물론 분배 당시 존재하지 않았던 사범대 학생회실이 가장방마다 냉방기가 존재하지만 중앙 통제 시스템이며, 모든 덕트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여름에 냉방시설을 가동하면 지난 1년간 쌓인 모든 흡연의 잔재가 공기를 타고 흘러나온다. 2017년 2학기에 다시 증축 공사를 진행하였고 기존에 1, 2층의 뻥 뚫려 있던 부분도 메꾸어 기존에 미디어관에 있던 인재발굴처(구 입학처)가 이사왔다.
2.11. 중앙광장
중앙광장 전경 |
중앙광장 | |
준공 | <colbgcolor=#ffffff,#191919> 2002년 |
규모 | 지하3층 |
층별 시설안내 | |
-1층 | 열람실, 편의시설 |
-2층 | 주차장 |
-3층 | 주차장 |
인문사회계캠퍼스의 하나스퀘어 즉 지하스퀘어이다.
중앙광장은 성큰형 지하 건축물로 개교 100주년을 맞이하여 기존 대운동장에 지하 광장을 건설했다. 과학도서관 앞에 위치한 자연계캠퍼스의 하나스퀘어와 비슷한 구조이다. 2000~2002년[36] 공사비로 200억 정도 들어갔다고 한다. 21세기 들어 유행하게 된 각 대학의 지하 캠퍼스의 효시.[37]
중앙광장의 옥상인 지상 1층은 5780평의 녹지공간과 잔디광장이 조성되어 있다. 이 잔디밭은 넓고 햇빛 좋고 출입 자유도 자유로워 각종 모임 장소나 쉼터로 각광받고 있다. 아예 짜장면을 배달시켜 먹기도 한다. 봄에 수업을 빼먹기를 유혹하는 학점의 적 No.1이다. 간혹 낮부터 깡소주 까고 각종 벌칙을 다하며 뻘짓하는 당찬 새내기들도 볼 수 있다. 중앙광장 위의 잔디가 소주를 먹고 자란다는 이야기도 있을 정도다. 다만 불시에 스프링클러가 작동하기 때문에 물벼락 맞지 않도록 주의하자. 매년 4월 1일이 되면 고대생들이 타 학교 과잠바나 고등학생 시절 교복을 입고 단체로 중앙광장에 모여 노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38] 5월 5일은 고려대 법대 출신인 방정환을 기념하기 위해 잔디밭에서 어린이날 행사를 개최한다.
중앙광장 위의 잔디밭은 운동장처럼 공터로 보이지만, 중앙광장이라는 건물의 옥상에 해당하여 지진 발생시 절대로 잔디밭으로 대피하면 안된다. 지진 대피시 안전한 장소는 애기능 학생회관 앞 광장과 민주광장, 본관 바로 앞 잔디밭이다.
잔디밭 아래 중앙광장에는 유니스토어 중앙광장점을 비롯해 여러 가게[39]나 사회봉사단, 원스탑서비스센터, 건강센터 등의 학교 시설과 고전음악감상실[40], 열람실[41][42]이 있고 그 옆에 CJ Creator Library(CCL)과 KU Pride Club 라운지[43]와 인문사회계 산학협력팀이 있다. 심지어 강의실과 연구실도 있다. 강의실 옆에 PC방 시설(i-Magic Station)이 있는 기묘한 공간이었으나 아쉽게도 PC방은 2014학년도 겨울방학 동안 폐점되고 2015년 12월에 고려사이버대학교 미디어센터가 들어섰다. 지나가다 보면 강의를 촬영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남쪽 계단(정문에서 볼 때 왼쪽)에는 패스트푸드점도 있는데 최초에는 파파이스였다가 이후 "It's Fillet"라는 점포가 들어선 후 2015년 3월 30일 버거킹이 입점하였다. 2023년에는 버거킹이 폐점하고 더 베이크라는 빵집이 입점하였다. 유니스토어에는 학기 초 무렵 다양한 전공 서적(인문계는 인문계열 전공, 자연계는 자연계열 전공 각각 따로 취급)이 들어오나, 일반 서적은 그다지 큰 변화가 없는 듯 하다. 서고를 뒤져보니 2000년에 출판된 책에, 심지어 카세트테이프까지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광장 아래층에는 하나스퀘어와 마찬가지로 주차장이 있어서 캠퍼스 내에 차량이 잘 다니지 않는다. 처음 생겼을 때 코엑스 같아서 고엑스라고 불렀다는 전설이 있다. 대개는 줄여서 중광이라고 부르지만, 저학년 고대생들은 중지라고 부르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방학 때는 잔디밭에 근처 고딩 양아치들이 몰려와 담배를 피거나 술을 마시는 장면이 종종 목격된다고 한다. 평소에도 밤 늦게 가보면 애정 행각을 벌이는 커플들이 제법 있다.
중광에 수영장이 존재한다는 루머가 있다. 신입생이 들어오면 속이려는 선배들이 있지만 잘 속지 않는다. 에브리타임에서는 여전히 속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듯 하다.
2.11.1. 대운동장(~2002년)
중앙광장이 건설되기 전까지 해당 부지는 대운동장이었다. 보성전문학교 대운동장이 개교 당시 동양 최대의 학교 운동장이라고 불릴 정도로 컸기 때문에 그 위에 지어진 중앙광장 역시 규모가 상당하다.(1955년 완공된 서관의 일부가 있고, 1956년에 완공된 도서관 옆의 농대(현 사범대 본관) 건물이 없는 것으로 보아 1955년의 사진으로 추정.
(1960년 캠퍼스 전경)
(1963년 캠퍼스 전경)
(1972년 완공된 경영 본관이 보이고, 중앙도서관 신관이 착공 전인 것으로 보아 1972~1975년 정도로 추정)
(1991년 완공된 인촌기념관이 보이고, 1999년 완공된 국제관이 아직 착공하지 않은 것으로 볼 때 1990년대 중후반쯤으로 추측된다.)
(주변 배경으로 볼 때 1990년대 초반, 한창 안암병원 공사 중인 때로 추측된다.)
이 운동장이 살아있던 과거에는 신입생 OT를 여기서 했고 교가, 응원가와 율동도 여기서 처음 가르쳤다. 합격자 수험 번호가 붙은 게시판을 세우던 곳이기도 하다. 오후에 럭비부 연습을 구경하며 한가롭게 운동도 하던 곳..이기는 하지만 그런 사람은 별로 없었다. 1993년 한총련 출범식도 야간 행사까지 여기서 치렀다.
현재는 중앙광장 측면에 대운동장 기념석이 놓여져 있다.
2.12. 호상
호상 |
대학원도서관과 백주년 기념관 사이에 있는 호랑이 상. 원래는 현 백주년 기념관 자리 쪽에 있었으나 대운동장이 중앙광장으로 개편되면서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지구본 위에 올라탄 호랑이와 남녀 형상이 모여 있으며, 그 옆에는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직을 맡았던 시인 조지훈 선생의 호상비문(虎像碑文)이 적혀 있다. 참고로 호상비문은 고려대학교 대표 응원곡 '민족의 아리아' 가사에도 인용됐다.
민족(民族)의 힘으로 민족(民族)의 꿈을 가꾸어 온
민족(民族)의 보람찬 대학(大學)이 있어
너 항상(恒常) 여기에 자유(自由)의 불을 밝히고
정의(正義)의 길을 달리고 진리(眞理)의 샘을 지키느니
지축(地軸)을 박차고 포효(咆哮)하거라
너 불타는 야망(野望) 젊은 의욕(意慾)의 상징(象徵)아
우주(宇宙)를 향한 너의 부르짖음이
민족(民族)의 소리 되어 메아리치는 곳에
너의 기개(氣槪) 너의 지조(志操) 너의 예지(叡智)는
조국(祖國)의 영원(永遠)한 고동(鼓動)이 되리라
민족(民族)의 보람찬 대학(大學)이 있어
너 항상(恒常) 여기에 자유(自由)의 불을 밝히고
정의(正義)의 길을 달리고 진리(眞理)의 샘을 지키느니
지축(地軸)을 박차고 포효(咆哮)하거라
너 불타는 야망(野望) 젊은 의욕(意慾)의 상징(象徵)아
우주(宇宙)를 향한 너의 부르짖음이
민족(民族)의 소리 되어 메아리치는 곳에
너의 기개(氣槪) 너의 지조(志操) 너의 예지(叡智)는
조국(祖國)의 영원(永遠)한 고동(鼓動)이 되리라
매년 졸업식이 되면 몇몇 학생들이 호상(또는 인촌 동상)에 올라가 기념사진을 찍기도 한다. 위에 올라가면 가끔 동전이 있기도 하다. 졸업하는 선배들에게 호상비문의 탁본을 떠서 드리는 전통이 있기도 하다.
2.13. 백주년기념삼성관
백주년기념삼성관 |
준공 | 2005년 |
규모 | 지하2층, 지상4층 |
LG-POSCO 경영관과 중앙광장 사이에 위치해 있는 아트리움 구조의 크고 아름다운 건물이다. 말 그대로 개교 100주년(2005년)을 기념하여 지은 건물이고, 삼성의 기부금[44]으로 건물을 지었기 때문에 '삼성관'이라는 명칭이 붙었지만 아무도 삼성관이라고 부르지 않는다.[45] 학생들은 주로 '백기'라고 부른다.
일단 건물 안에는 고려대학교 박물관과 학술정보관이 있다. 내부에 카페가 하나 있는데 분위기가 좋고 꽃차가 맛있다. 그리고 박물관 쪽에 엘리베이터가 있는데 이걸 타면 옥상정원으로 갈 수 있다. 물론 가봤자 볼 건 없다.
강의실은 단 하나도 없으며, 대신 멀티미디어실이나 스터디룸, 열람실과 같은 편의시설이 위치해 있다.
특히 4층 전체를 열람실로 만들어 놓은 대열람실이 있다. 2005년 건립 당시 학교는 원래 4층 전체를 리셉션홀로 쓸 계획이었는데, 총학생회와 학생들의 반발로 열람실로 용도를 변경하게 되었다. 그리고 '원래 그럴 예정이었다'라는 교내 언플을 하였다. 그리고 이는 중앙광장 열람실 확보와 함께 사실상 고대 운동권 최후의 영광이 되었다. 원래는 1,300여석 규모로 굉장히 넓은데다 그 1,300여석 규모가 분할되지 않아 가운데 홀을 중심으로 한 바퀴를 돌 수도 있던 나름 명물이었다. 공부 안될 때는 일어나서 한 방향으로 걸으면 자기 자리로 돌아올 수 있는 산책을 할 수도 있는 곳이다. 어찌나 넓은지 1/4이 쪼개진 지금도 열람실 안에 정수기 2대와 휴게소 2곳과 화장실이 있다. 원래는 입구도 두 곳이었다. 2016년에 박물관 개편을 통하여 박물관 쪽 4층이 인촌기념전시실로 탈바꿈되면서 박물관 쪽에 있던 키오스크는 철거되었다.
지금은 휴전선처럼 유리벽으로 막힌 미수복 지구가 있어 그럴 수 없는데, 이곳은 과거 C, D 구역 일부로 현재 운초·우선 교육관이 있던 자리에 위치한 인문강의동의 사법고시실이 교육관 신축으로 잠시 왔던 흔적이다. 당시 학생들의 반발이 심했지만 학교는 공간이 없다는 이유로, 교육관 신축 이후에 열람실로 환원한다는 조건으로 공사를 강행했다. 그리고 교육관이 완공되어 사법고시실이 이전한 후에 학교는 이곳을 원상복귀하기는 커녕, 박물관에서 사용하려고 했다. 당연히 총학생회에서 들고 일어났고, 결국 박물관에서 사용하는 안은 철회되었지만 빈 공간으로 3년째 방치되고 있었다.
이 때문에 원래 1,300여석이었던 대열람실이 900여석 정도로 줄어들었으며[46] C, D열에 있던 책상들은 중앙도서관 2층으로 옮겨진 상태로 미루어 볼 때 학교는 사실상 이곳을 열람실로 환원할 의사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중앙도서관에 가보면 중앙도서관의 다른 책상과는 다른 어두컴컴한 책상에 C-XXX 라고 플라스틱 팻말이 붙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게 원래 백주년 기념관에 있던 책상이었으며 2015년에는 이 공간 중 약 1/3[47] 만큼을 총학생회에서 환원받아 휴게실로 만들려고 하였으나 휴게실 입구 문제[48] 때문에 무산되었고 대신 열람실 H구역으로 만들어 2015년 9월 대열람실 좌석 수가 100여석이 늘어나 900여석에서 1,000여석이 되었다. 특히 의자가 새 거라 보송보송하다. 이 구역이 백기관 대열람실에서는 노른자 자리라고 할 수 있는데, 우선 백기관 대열람실에서 유일하게 코너에 위치하고 있어서 90도로 배치된 창문을 열면 상쾌한 바람이 열람실을 통과한다. 요즘 같은 때 한낮에 창문을 열어 놓으면 북악산에서 내려오는 상쾌한 바람을 마음껏 마실 수 있다. 그리고 이 열람실에선 중앙광장과 저 멀리 아차산, 날씨 좋은 때는 롯데월드 타워까지도 볼 수 있는 수려한 조망을 자랑한다. 어쨌건 시험기간만 되면 그 넓은 자리가 다 차서 키오스크 앞에 죽어라 서서 학생증만 찍고 있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문제는 그 중 실제로 공부를 하는 사람의 비율이 높지 않다는 것이다.
2층 멀티미디어 열람실에서 DVD를 볼 수 있다. 학교에서 DVD롬도 대여해 주며, 웬만한 영화는 다 있고 미국 드라마들도 다는 아니지만 쏠쏠하게 있다. 없는 자료는 도서관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할 수 있다. 나름의 심사를 통해 선정하지만 웬만하면 다 사다 준다.
1층과 2층에 걸쳐서 각각 정보검색실과 멀티미디어 열람실, 쉽게 말하면 컴퓨터실이 있었다. 물론 외부인은 사용할 수 없고, 키오스크에서 자리 배정받아서 사용해야 한다. 인강 듣는 사람, 과제하는 사람, 간단한 게임을 하는 사람 등등 여러 부류의 컴퓨터 이용자들을 확인할 수 있다. 다만 헤드폰은 2층에만 설치돼 있기 때문에, 인강 듣는 사람에게 인기가 좋아서 2층은 자리 맡기가 힘들다. 그러나 1층의 정보검색실은 2017년 초의 중앙광장 개편과 맞물려 C-Lounge(Creative Lounge)라는 이름의 열람실로 전환되었다. 1층이 열람실로 전환되면서 백기 1층에는 기존의 그룹스터디룸을 개조한 남학생휴게실과 여학생휴게실이 신설되었으며 사물함도 백기가 신축된 이래 최초로 1층과 4층에 설치되었다. 이후 2018년 2월에는 C 라운지 건너편에 있던 멀티미디어 프로덕션 랩(MPL)을 없애고 D-Lounge로 개편, 도서전시실은 L-Lounge로 개편해 백기 1층은 전부 열람실이 되었다. 또한, 2023년 2층의 멀티미디어 열람실도 절반으로 자른 뒤 그룹스터디룸 수를 더 늘린 G-Lounge로 개편했다.
또한 2015년 2학기부터 1층에 크림슨 센터라는 학교 홍보 공간을 만들었다. 센터 내에 크림슨 스토어라고 학교 기념품을 파는 곳이 있는데 기념품에 박혀있는 문장이 살짝 특이하다.
이 외에도 여러 시설이 있으며, 강의실은 없지만 매우 유용하게 쓰이는 건물이다. 지하 1층을 통해 중앙광장, LG-POSCO 경영관과 연결되어 있고 2층 출구로 나가면 경영대 쪽으로, 3층 출구로 나가면 중앙도서관, 대학원도서관 쪽으로 쉽게 갈 수 있다.
2.13.1. 고려대학교 박물관
고려대학교 박물관 홈페이지1934년에 설립된 박물관으로 대학 박물관 중에서는 가장 긴 역사를 지니고 있다. 개관에 가장 공헌한 사람은 안함평 여사(1879~1973)다. 전북 고창군에서 주막을 운영하며 모은 전 재산(논 16,000평 및 밭 9,600평)을 1936년에 보성전문학교에 기증했다. 보전은 이 재산을 토대로 박물관에 전시할 민속품 수집에 나섰다.
본래 박물관은 법학관 구관과 신관 사이에 있었으나 백주년기념관 개관과 함께 옮겨왔고, 기존의 박물관 건물은 철거되어 해송법학도서관이 들어섰다. 자질구레한 학교의 옛날 물건부터 시작해서 대한민국의 국보 3점(제177호 분청사기 인화국화문 태항아리, 제230호 혼천의 및 혼천시계, 제249호 동궐도), 대한민국의 보물 6점이 소장되어 있다.[49] 이처럼 다양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지만, 대부분의 고대 학생들은 대체적으로 찾는 사람도 별로 없고 매우 조용한 곳으로 인식한다.
백주년기념관 한쪽 절반 지하1층~5층을 통째로 차지하고 있다. 전시실은 다음과 같다.
- 백년사전시실
- 역사·민속전시실
- 고미술전시실
- 고고전시실
- 현대미술전시실
- 인촌기념전시실
- 기획전시실 1, 2
- 야외전시
2.14. 4·18기념탑
서울특별시의 시도등록문화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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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대학교 구 강당 | 고려대학교 4.18기념탑 | 독립신문 유인물(평양) |
서울특별시 시도등록문화재 제7호 | |
고려대학교 4.18기념탑 | |
소재지 | <colbgcolor=#fff,#191919> 서울특별시 성북구 안암로 145 |
분류 | 등록문화재 / 기타 / 기타 시설물 |
수량 / 면적 | 기념탑 1기 |
지정연도 | 2020년 12월 17일 |
시대 | 1961년 |
4.18 기념비 |
4.18 의거를 기념하기 위해 1주년인 1961년에 세운 조형물이다.
2.15. 대강당
대강당 |
준공 | 1957년 |
리모델링 | 2014년, 2019년[50] |
규모 | 지상1층 |
철제 구조물로 된 시설은 SK 미래관에서 연장된 것으로 일종의 차양 역할을 한다. 사진에서 보는 것과 달리 상당히 큰 규모다. 대형 교양 강의 등이 열리는 공간으로,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신관[51]이라 불리다가 어느 순간부터 6강당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었다.[52] 현재는 강당과 대강당, 서관 대강당 등 여러 명칭들이 혼용되는 곳이다.[53] 처음 지어졌을 때부터 오랫동안 대형 강의들이 진행되는 공간으로 활용되다가, 어느 순간부터 고려대학교 응원단, 풍물패[54]의 연습 장소로 활용되었다. 그러다가 2019년 리모델링 이후 다시 대형 강의들이 일부 열리는 강의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1957년 완공된 건물로 고풍스런 외관을 자랑하며 대부분의 신입생은 어디인지 모른다. 건물 앞은 리모델링 이전까지 단체 견학 차량을 위한 주차장으로도 활용되었다. 문과대 캠퍼스에서 중앙 요지를 차지함에도 불구하고 통신이 잘 되지 않는 곳. 들어가보면 매우 큰 강의실 하나(700석 규모)와 적당히 큰 강의실 두 개(300석 규모)로 구성되어 있으며, 리모델링 이전에는 상태가 의심스러운 풍금(!)과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좌석일체형 책상[55]이 늘어서 있었다. 또한 지하에는 응원단에서 쓰는 방들[56]이 있었다. 매우 낡고 값나가는 물건이 없었던 건물 특성상 대관이 자유로웠으며, 오랜 시간이 필요한 총학생회 선거 개표나 노동조합의 집회 등등의 용도로 사용되어왔다.[57]
대강당 근처는 캐치볼의 명소였다. 여기를 지나다 보면 간간이 학우들이 캐치볼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 때문인지 대강당의 유리창은 깨진 것이 많았으며 결국 대강당을 유지하는 방식의 새로운 조감도가 발표되었다.
2014년 9월, 뜬금없이 대강당이 공사판으로 변하여 SK교육관 건설을 위한 공사인가 했지만 훼이크였고, 내부 리모델링을 위한 공사였다. 그런데 문제는 사실상 학생 자치공간이었던 대강당을 교육공간으로 리모델링하면서 이를 대체할 자치공간에 대한 구상조차 없었던 것, 학생들에게 통지 조차 없이 일방적으로 강행한 공사였다는 점이다. 문과대 학생회, 동아리연합회, 총학생회 등이 이에 반발하자 그제서야 내부 리모델링 후 학생 자치공간으로 사용할 것을 학교 측에서 약속하였다.
SK미래관 착공을 앞두고 대강당을 철거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SK미래관이 대강당을 감싸안는 구조로 지어질 예정이었으며 2017년 SK미래관의 공사가 시작되면서 약 50년의 세월 동안 대강당을 지켜오던 응원단이 화정체육관으로 이사를 갔다.
SK미래관 완공 이후 대강당 앞의 공터는 하나플라자라는 이름의 광장이 되었다.
2.16. SK미래관
SK미래관 |
준공 | 2019년 11월 12일 |
규모 | 지하 2층, 지상 5층 |
2019년에 완공된 이 건물은 사실 2001년 이전부터 논의되어 왔다. 문과대학의 공간 부족 문제 해결을 위해 교육관 건립기금이란 이름으로 2001년부터 모금을 시작했는데 2005년에 최태원 SK 회장[58]이 약 200억원을 후원하면서 건립 논의가 본격화됐다. 다만 논의 과정에서 문과대학이 아닌 교양교육원 관리 건물이 돼 문과대 입장에서는 씁쓸한 결과가 됐다.
다만 중앙광장을 기본 축으로 우측에 백주년기념삼성관, 좌측에 SK 교육관[59]을 세워 좌우 균형을 맞춘다는 계획안에 따라 건물 규모가 커지면서 SK 기부금(203억)만으로는 지을 수 없게 된 상황으로 보인다.[60]
원래는 대강당을 허물고 지을 예정...이었는데 현재는 대강당의 역사성 때문에 유지하고[61] 리모델링 이후에 교수실과 강의실로 사용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에 따라 SK미래관은 대강당을 함께 안은 모습으로 결정됐다. 그리고 SK 미래관과 대강당 사이의 공간은 커뮤니티 플라자로 활용한다고 한다.
이후 수년간 착공이 또 미뤄지다가, 염재호 총장 취임 이후 적극적으로 나오고 있다. 하지만 강의실은 1실도 설치하지 않을 계획으로 바뀌면서 강의실 부족 문제 해결을 기대하던 각 단과대학들이 멘붕에 빠졌다.[62] 건물 전체를 세미나실로 하되 맨 꼭대기 층은 1인용 자습실(캐럴)을 약 100여기 만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하지만 역시 2015년도 넘기고 2016년 1월 11일에 있었던 개교 111주년 기념 행사에서 다시 올해 안에 착공하겠다고 언급했다. 2016년 가을에 착공해 2018년에 완공하는 것으로 최종 결론이 났다는 발표가 있었고 11월 17일 드디어 기공식이 열렸다. 2018년 12월 완공 예정이었으나 내부 설계 문제로 연기돼 실제 완공은 1년 가까이 늦어진 2019년 11월에서야 이뤄졌다.
염재호 총장의 뒤를 이은 20대 정진택 총장이 설계를 일부 변경했고, KUPID에 공개된 설계도에 따르면 50명 규모의 강의실 11개가 들어갈 예정이다. 그리고 2023년 기존 홍보관 자리에 들어설 인문사회관(문과대+정경대 공동 사용) 계획이 인문관(문과대 단독 사용)으로 축소 변경되면서 2023학년도 2학기부터 SK미래관 3~5층에 정경대를 위한 강의실이 들어서게 됐다. 때문에 기존에는 교양교육원에서 단독으로 관리하던 건물이었으나 정경대도 같이 쓰는 건물이 됐다.[63]
SK미래관의 지하 1층이 중앙광장 지하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상술한 중앙광장 지하 ⇔ 중앙도서관, 중앙광장 지하 ⇔ 라이시움 내 고려대역 엘리베이터의 경로가 서쪽에서 연장됐다. 그러므로 지금은 SK미래관 지하에서부터 중앙광장을 거쳐 중앙도서관 및 고려대역까지 비를 맞지 않거나 조금만 맞고 이동할 수 있게 되었다! 고려대의 지하 캠퍼스 마스터플랜이 조금씩이나마 이행되고 있는 셈이다.
2023년 2학기부터 3~5층의 라운지
2.17. 민주광장
민주광장 |
국제관과 학생회관 사이, 우당교양관 앞에 있는 광장. 사용 용도는 실로 무궁무진한데, 새터 때는 버스가 출발하는 장소로, 고연대 합동 응원OT때는 각 과반끼리 따로 여기서 모여 응원을 하고, 동아리박람회 시기에는 동아리 부스가 있는 곳으로도 사용되기도 하며, 대동제 기간엔 다수 학과들의 주점이 민주광장에서 운영된다. 중앙광장은 음주를 위해 존재하고 민주광장은 술 이외의 행사를 위해 존재한다고 보면 된다.[64]
원래는 교양관 잔디밭이었으나 1983년 김두황 고려대 경제학과 초대 학생회장이 녹화사업으로 인해 강제징집 당하고 석 달만에 의문사하자 학우들이 이곳에서 장례를 치르면서 민주광장이라 불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1985년에 김두황 학형을 비롯 타 대학의 6명의 대학생을 기리며 진혼비가 세워졌으나 파헤쳐지고 사라지는 수모를 겪은 뒤 1988년 민주광장 한복판에 세워졌다가 이후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다.
민주광장은 지금과 같은 형태가 아닌 탁 트인 공간이었으며, 앞에서 말한 민주열사들을 추모하기 위한 비석이 중간에 위치하고 있는 형태였다. 그러나 지금은 둘레를 따라 나무를 심고, 중앙에는 등나무 벤치까지 설치하여 사실상 '광장'으로 이용하기에는 다소 힘든 상태가 되었다. 참고로 비석은 구 깡통[65]이 위치하던 장소 바로 앞쪽 구석으로 옮겨져 있다..현재는 등나무 벤치에서 교양관 입구 쪽으로, 본래 본관 앞에 있던 시간강사 농성 텐트가 옮겨와 있다가 2019년 철거하였고 그 자리에는 기념패가 세워져 있다.
중앙광장처럼 지하를 개발하여 중앙광장-민주광장-안암역을 연결하겠다는 계획이 있으나 언제 실현될지 아무도 모른다. 2019년 11월 중앙광장과 민주광장을 연결하기 위한 필수 요건인 SK미래관이 완공되었고, 그 역시 지하 1층을 통해 중앙광장과 연결되었지만, 진행 속도로 보아 민주광장까지 연장하는 것만 해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2016년 2학기에서 겨울방학까지의 공사를 통해 민주광장 북편에 '자유마루'라는 이름의 나무데크가 생겼다.(한편, 자연캠에는 기존에 존재하던 산학관 앞 나무데크에 '진리마루'라는 이름을 붙인다.)
민주광장 가운데에 있는 등나무 벤치에서 담배를 피는 사람들로 인해 많은 피해가 호소되었고, 결국 흡연구역이 폐지되었다.
2.18. 학생회관
학생회관 |
준공 | 1971년 |
증축 | 2004년 |
규모 | 지하1층, 지상6층 |
프린스턴 대학교의 Robertson Hall을 본뜬 건물이나, 여느 국내 대학의 학생회관이 그렇듯 모든 건물 중 가장 별로다. 인문캠 건물 대부분이 석조양식인데 반해서 학생회관이 콘크리트 건물인 이유는 캠퍼스 마스터플랜 계획 당시 본관을 중심으로 가까운 건물만 석조양식으로, 이외 건물은 현대적 양식으로 건설한다는 원칙이 있었기 때문이다.
비슷한 시기 지은 건물들이 흔히 그러듯이 1층은 실제로는 반지하에 있고 2층은 지면보다 약간 위에 있다.[66] 지하를 만들면 소방법 때문에 안전장치를 많이 갖추어야 해서 그랬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런데 정작 진짜 지하1층이 따로 존재한다. 현재도 과거의 흔적으로 계단에서 각 층으로 이어지는 입구의 바닥을 보면 5층에는 동그라미 4개, 4층에는 동그라미 3개, 3층에는 동그라미 2개가 그려져 있다. 1층에는 'IBK Cafeteria'라고 이름 붙여진 학생식당과 학생휴게실인 '하늬쉼터'[67]가, 2층에는 'OrGo'로 이름 붙여진 학생식당 겸 매점 겸 카페가 있다. 나머지는 전부 학생 자치공간으로서 총학생회실, 동아리연합회실, 총학생회 특별기구실, 동아리방 등 다양하게 쓰이고 있다. 현재 중앙광장에 있는 병무행정실과 보건소 등은 모두 원래는 학생회관에 있었지만 현재는 모두 이전하고 동아리방 등지로 쓰이고 있다. 원래 4층까지 있던 건물이었는데(지하1층 지상 4층) 옥상에다 한 층을 더 쌓아서 6층으로 만들었다. 잘 보면 6층은 건축 양식이 약간 다르다. 6층에는 비만 왔다 하면 천장에서 물이 떨어지는 방들도 있다. 허나 이는 몇 번 건의해도 고쳐주지 않는다.
현재의 엘리베이터는 2004년 옥상에 한 층을 증축[68]하면서 설치한 것이다. 고등교육법 개정으로 5층 이상의 모든 대학 건물에는 엘리베이터 설치가 의무화되었는데, 이왕 설치하는 김에 리모델링하면서 한층을 더 얹었다. 그런데 느리고 안이 더워서 누군가가 안에 찜통 굼벵이라는 낙서를 해 놓았다. 실제로 버튼 오작동도 종종 있다. 1층에서 출발하자마자 눌러 놓은 층들이 다 없어졌다. 또한 건물의 보수가 잘 되지 않아 사고 위험이 있다며 8~9인승 엘리베이터 탑승 인원을 3명으로 줄여 놓는 등 문제가 많다.
2015년부터 리모델링에 대해서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실제로 학생회관은 2004년에 6층을 증축한 것 외에는 약 50년간 제대로 된 보수 공사를 한 적이 없다. 학생처와 학생들 사이 협의가 잘 되지 않기도 했고, 학생처에서도 합의 이후 노력한다고 했지 리모델링 한다고는 안 했다고 말하는 등 리모델링은 요원하기만 하다. 대신 2019년 계속 미뤄져 왔던 엘리베이터 보수 공사가 시작되었는데, 2020년 봄에 공사가 끝난 결과, 엘리베이터를 보수한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완전히 신형으로 뜯어 고쳐졌다. 엘리베이터의 크기도 커지고 한쪽 면이 유리가 되었다.
여담이지만 정문을 기준으로 학생회관은 왼쪽에 있고 도서관은 오른쪽에 있는데, 이를 두고 좌파는 학생회관으로, 우파는 도서관으로라는 농담이 1980년대에 있었다.
2024년에는 리모델링한다는 소식이 나왔다.
2.19. 4·18기념관
4·18 기념관 |
준공 | 1998년 |
증축 | 2022년 |
규모 | 지하2층, 지상3층 |
지하 2층에는 대강당과 휘트니스 센터, 소극장, 탁구실이, 지하 1층에는 세미나실이, 1층에는 장애학생지원센터와 경력개발센터, 2층에는 학생처 학생지원부가 위치한 건물이다. 전체학생대표자회의가 주로 이 건물 지하 2층 대강당에서 열리며 고려대 학생이라면 누구나 참관과 발언이 가능하다.
원래 4·18 기념관은 친일파인 김성수를 인정할 수 없다고 학생들이 인촌기념관을 바꾸어 부르던 이름이었는데, 역시 그것이 탐탁치 않았던 학교에서 진짜로 4·18 기념관을 지어버렸다. 그래서 학생들이 4·18 기념관을 대신 부르던 이름이 제2학생회관이긴 한데 이 건물은 사실 학생회와는 유래나 용도 등이 전혀 무관하다. 실제 완공 직후 보성전문 시대와 4·18 등 고대의 역사를 전시하는 전시실이 위치해 있었고, 4·18기념관은 참으로 적정한 명칭이었다. 사실 그때에도 학생운동 세력에서만 위와 같이 명칭을 바꾸어 불렀을 뿐이고, 몇 년 새 자연스럽게 공식 명칭이 정착했다.
백주년기념관 완공 이후 신법학관 앞에 있던 박물관과 4·18기념관 내 고대 역사 전시실이 함께 백주년기념관 내 박물관으로 이전하면서, 4·18기념관은 현재의 용도가 되었다.
참고로 옆에 원형극장이 있어서 가끔 가보면 풍물패가 연습을 한다. 다만 시간을 가리지 않고 성실하게 연습하는 나머지 시험기간에 소음문제로 타 학우들과 많은 갈등을 빚기도 한다. 시험기간마다 학교 커뮤니티에 풍물패 연습에 대해 불평을 토로하는 글이 항상 올라온다. 2022년 기존 지상 2층이었던 건물을 한 층 증축하여 지상 3층이 되었다. 위 사진은 증축 이전의 사진이다. 증축으로 유리상자가 추가된 모습까지 학생회관을 닮게 되었다.
2.20. 우당교양관
우당교양관 |
준공 | 1960년 |
재건축 | 2003년 |
규모 | 지하1층, 지상6층 |
미디어관과 민주광장 사이에 있는 건물. 건물 이름대로 교양수업[69]이 주로 이루어진다. 교수님들의 연구실도 굉장히 많다. 1층에 열람용 컴퓨터가 있었으나 사용 빈도가 적어 2016년에 철거하고 기부자를 기리는 우당 박종구 라운지로 바꿨다. 특이한 점은 남녀화장실이 좌우로 나누어진 구조로 되어 있다.
(과거의 교양관)
원래 있던 건물은 구 이학관으로, 자연계 생명 서관과 유사한 T자형 건물이었다. 이를 재건축한 게 현재의 건물인데, 이 때 우당 박종구 교우가 120억 가량의 비용을 전액 기부하여 우당교양관으로 명명하게 되었다.[70] 교양관의 변천사는 여기에서 볼 수 있다.
교양관 1.5층에서 미디어관 층으로 통하는 통로가 생긴 후로는 빈번히 지옥의 병목 현상이 발생한다. 미디어관으로 출입하는 사람, 2층으로 올라가는 사람, 1층으로 내려가는 사람이 죄다 뒤섞이기 때문. 건물의 좌우 끝에 계단이 존재하지만 아무도 그 존재를 모른다. 특히 1교시와 2교시 사이 시간이 가장 심하다.
2023년 9월에 화재가 발생하였다. 지하에서 발생한 화재라고 하며 명확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71] 화재는 금방 진압되었으며, 화재 발생 후 당일 교양관, 연결된 미디어관에서 진행되는 수업은 모두 취소되었다. 다음 날 수업부터는 정상적으로 진행하였다.
2.21. 타이거플라자
타이거플라자 |
준공 | 2004년 |
규모 | 지하1층, 지상4층 |
정경대 후문을 지나 폭풍의 언덕을 올라오다 보면 왼편에 위치한 건물. 삼각형 모양을 하고 있으며 모두가 그 존재를 알지만 그 이름을 모르는 건물이기도 하다. 원래 4층까지 모두 프랜차이즈를 비롯한 식당들이 들어설 계획[72]이었으나 학생들의 공간 요구[73]로 인해 4층에 '고대마루'라 불리는 라운지가 들어섰다. 이 라운지에는 여러 테이블과 실외 흡연공간, 여러 대의 컴퓨터가 구비되어 있어 인문계캠퍼스 이용자들의 팀플 플레이스 3위 안에 든다. 아쉬운 점은 9시에서 6시까지만 운영한다는 점. 저녁 시간대에는 이용할 수 없다. 여담이지만 4층의 실외 흡연공간 끝, 그러니까 삼각형 구조의 꼭지점에 노란 사과 조형물이 있는데, 이를 가지고 입학 시즌에만 황금색으로 칠한다는 둥 신입생들을 위한 낚시 소재로 이용된다.
2024년 현재 지하 1층에는 고대북카페[74], 1층에는 이마트24, 맘스터치, 2층에는 이디야커피가 입점해 있고, 3층에는 연구실과 세미나실, 4층에는 고대마루가 들어서 있다.
2.22. 수당·삼양 Faculty House
수당·삼양 Faculty House |
준공 | 2018년 |
규모 | 지하1층, 지상4층 |
기존 국제관 뒤편에 있던 교수테니스장 부지에 새롭게 지은 교수회관이다. 2017년 2월에 착공되어 2018년 10월 19일에 준공되었다. 이름의 유래는 인촌 김성수의 동생이자 삼양사의 설립자인 수당 김연수이다. 지하 1층, 지상 4층 연면적 4,198㎡의 규모이며 세미나실, 테니스장, 콘퍼런스홀, 아너스클럽 등이 들어서고 3층에는 야외 행사를 위한 대형 정원이 갖춰져 있다.
2.23. 인촌기념관
인촌기념관 |
준공 | 1991년 |
규모 | 지하1층, 지상3층, 옥탑2층 |
'고려대학교'를 검색하면 나오는 이미지들 중 자주 등장하는 건축물 중 하나이며, 실제로 전형적인 고려대학교 건물의 특성을 반영한 외관을 자랑한다. 다만 역사가 오래된 본관이나 대학원 도서관, 서관과 달리 상당히 나중에 지어진 건물임에도 불구하고 외벽을 두르고 있는 석재들 틈에 지저분한 흔적들이 많이 남아있다. 법인본부에서 주로 사용하고, 일부 교우회에서 사용하고 있다.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단과대별 수강 신청 오리엔테이션이 이루어진다. 공연을 위한 대강당도 있다. 앞뜰에 분수가 있는데 졸업사진 촬영이나 대외적으로 잘 보일 필요가 있는 날에만 작동된다. 계단과 비탈길을 지나면 다람쥐길 및 국제관으로 가는 길과 연결된다. 오른편으로 이어지는 언덕길을 따라 나무들이 우거져 여름에는 녹음이, 가을에는 단풍이 장관이다. 2018년 중순에 이 언덕길 왼편의 빈 공간에 대나무숲, 잔디 마당 등으로 이루어진 정원이 조성될 예정이다.
길 끝에 이어지는 산길은 오른쪽으로 가면 법대 후문과 운초우선교육관, 왼쪽으로 가면 안암학사단지와 화정체육관/민족문화관으로 이어진다. 산길을 따라 성북20번 마을버스, 고려대학교 셔틀버스가 운행된다. 마을버스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들이 화정체육관에서 행사에 참가를 위해 등산하는 것을 즐거운 마음으로 지켜보는 재미가 있다.
원래 이곳에는 1955년부터 인촌 김성수의 묘소가 있었는데 학생들이 분뇨를 방기하고 애정 행각을 벌이는 탓[75]에 1987년 경기도 남양주로 이장하였고, 인촌 탄생 100주년을 맞아 1991년 지금의 인촌기념관이 지어지게 되었다.
2.23.1. 왔다분수
인촌기념관 앞에 있는 2개의 분수.학교에 주요 행사나 중요한 손님이 오는 날만 가동시켜서 왔다 분수라는 별칭이 붙었다고 하며 아쉽게도 정식명칭은 아니다.
본관, 문대 서관, 대학원 건물과 함께 고려대학교 건물 양식의 절정을 보여주는 건물이기 때문에 이 분수가 틀어지는 날 인촌기념관에서 사진을 찍으면 황홀한 자태를 맛볼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재학생들도 분수가 틀어져 있는 모습을 좀처럼 보기 힘들기 때문에 그냥 분수대가 있구나~ 하는 수준이다.
2.24. KU 개척마을(π-Ville)
청년 창업 공간으로 교수와 학생이 24시간 서로 피드백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공간이라고 하며 창업 동아리들이 들어올 계획이다. 서울시에서 추진하는 캠퍼스타운 사업의 일환으로서 추진되고 있다. 참고로 영어명인 ‘파이빌(π-Ville)'은 pioneering village의 앞 글자인 "pi"를 따와서 만들었다. 파이빌은 경기도 이천에서 재가공된 컨테이너 박스로 이뤄진 건물로 창업을 위한 사무 공간, 학생들 간 토론의 공간 등으로 구성된다. 매일경제에도 실렸다. 개척마을이여서 그런지 책임교수의 직책이 '촌장'이다. 또한 각 개척마을들의 이름은 도로명주소에서 따왔다. 파이빌 99만 만들어지고 나머지 2개의 파이빌[76]이 계속 감감 무소식이다. 참고로 국제관과 창의관에 있는 X-Garage와 KU Makerspace 역시 KU 개척마을에서 관리하고 있다.2.24.1. π-Ville 99
π-Ville 99 |
2016년 9월 8일 미디어관과 정경관 사이 공터(고려대로 99-16)에 준공된 컨테이너 박스 38개로 이루어진 건물.
정경대학 출신 교수인 염재호 19대 총장의 감성에 맞춰진 건물로, 퇴임 후 강연에서 파이빌이 세워진 계기에 대해서 학교의 건물(석조건축)이 정말 멋있고 화려하나, 굉장히 권위적이며 20세기 사고방식의 산물이기에 대학 캠퍼스를 놀이동산처럼 바꿔야 한다는 생각에 조성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파이빌은 창업 공간이라고 오해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렇지 않고 창조적인 아이디어가 샘솟을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이라고 밝혔다. 캠퍼스 전체를 학생회관으로 만드는 게 그의 목표였으며, 기존의 학생회관은 학생회관이 아닌 동아리회관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77]
2.24.2. π-Ville 148(공사 예정)
2017년 2월 준공 예정이었으나 많이 미뤄져서 2018년 7월 착공하여 2019년 1월 준공 예정이었데 착공을 하지 않았다. 심지어 2020년 초부터 π-Ville 148 예정지에는 고대앞 마을 도시재생 사업 본부가 자리를 잡았다. 일단 계획상으로는 정문 앞(안암로 148)에 컨테이너 박스 19개로 조성된다. 고려대학교 관련 시설 중 유일하게 동대문구 제기동에 위치하게 된다.2.25. 인촌로1빌딩
인촌로1빌딩[78] |
준공 | 2003년 |
규모 | 지하1층, 지상3층 |
보통 하나은행 건물로 불린다. 원래는 '인촌로빌딩'이었고, 자연계캠퍼스 쪽에 인촌로2빌딩이 생기면서 현재의 명칭이 되었다. 2018년에도 인촌로가 고려대로로 개명되었으나 건물명에는 여전히 인촌로를 사용하고 있다. 지상 1층과 2층에 하나은행 고대지점이, 3층에 필라테스 시설이, 지하 1층에 편의점 GS25가 위치해있다. 자연계캠퍼스의 인촌로2빌딩과 달리 고려대학교 양식의 건축이고 지하 1층이 학교 안쪽방향으로 노출된 반지하 형태여서 캠퍼스의 일부로 인식된다.
하나은행 고대지점은 작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이 필요한 기능을 수행하여 많이 이용한다.[79] 또한 ATM 네 대가 있는데 이 건물 부근으로 ATM이 하나도 없어[80] 학생들 및 심지어 지역 주민들마저 자주 이용한다.
GS25 이전에 있었던 CU 편의점은 2014년 11월에 개점했고, 그 전에는 Cine Cafe라는 카페와 음식점을 함께 하는 점포가 있었다. 이름에 걸맞게 벽을 온통 영화 포스터로 도배한 카페이며, 내부가 꽤 넓어 학생들이 다수 이용했다. 그러나 제공되는 음식 퀄리티에 비해 가격이 비싸다는 비판이 끊임없이 있었고, 햄버그 스테이크 등 온갖 신메뉴를 개발하며 회생을 노력했지만 결국 사라졌다. 편의점이 생기자 Cine Cafe를 자주 이용한 학생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반기는 반응. 학생회관 주변이 은근히 편의 시설 분포도가 낮아 컵라면 하나를 사기 위해 국제관이나 안암역 미니스톱 혹은 사거리의 빅마트까지 나가야했기 때문이다. 그 넓은 면적을 이용해 웬만한 컵라면, 과자 등의 스낵, 삼각김밥, 컵라면 등의 간단한 식사, 심지어 미니스톱에서나 구경할 수 있었던 조각치킨까지 구비해 놓았다. 앞으로의 매출이 기대되는 편의점. 내부에 여학우 전용 라운지가 있다. 3층의 필라테스 시설은 사실 원래 당구장이었다. 위치가 위치인데다 3층이라 장사를 하는둥 마는둥 하더니 어느새 바뀌었다. 또 바뀔지도 모른다.
3. 법학전문대학원(자유전공학부), 심리학부
3.1. 법학관 구관
법학관 구관 |
법학관 구관 | |
준공 | <colbgcolor=#ffffff,#191919> 1984년 |
규모 | 지하2층, 지상4층 |
층별 시설안내 | |
4층 | 심리학부 실험실 |
3층 | 교수 연구실 |
2층 | 강의실 |
1층 | 심리학부 행정실/자유전공학부 자치공간 |
-1층 | 강의실[81] |
심리학부가 주로 사용하고 교양수업도 열리는 건물. 통칭 법구 혹은 구법. 법구라고 부르면 문과대나 심리학부생일 확률이 높고,[82] 구법이라 부르면 로스쿨생이나 자유전공학부생일 확률이 높다. 원래 명칭은 "법학관"이었는데 법학관 '신관'(신법학관)이 생기면서 그에 대응하여 법학관 '구관'(구법학관)으로 불린다.
법학관이 생기기 전에 법대생들은 본관에서 강의를 들었으며, 1980년대에 이 건물이 지어짐으로써 법대가 본관에서 독립할 수 있었다. 법대는 상경계열에 비해 교우 기부금이 적어 이 건물 하나를 올리는 데에도 많은 고생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때까지만 해도 현역에서 일하는 법대 교우들 대부분은 사법시험 합격 후 판·검사직에 있는 공무원 신분이어서 거액의 기부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었기 때문. 잘 살펴보면 법학관 구관의 한쪽 벽만 석재 타일이 붙어 있는데, 구관을 지을 때 공사비가 모자라 건물 전체에 석재 마감을 할 수 없다 보니 부득이하게 정문에서 보이는 면에만 돌판을 붙인 것이다.[83]
2001년 법학관 신관이 완공되면서 법과대학 소속 교수연구실이나 연구소 등은 전부 신관으로 이사가고 구관의 빈 공간들은 문과대가 가져가게 되었다. 여전히 명칭은 법학관 구관이지만, 안에 들어가 보면 법과대/자유전공학부 자치공간 일부를 제외하고는 문과대에서 독립한 심리학부가 실험실, 교수연구실, 강의실, 행정실 등 거의 대부분의 공간을 사용하고 있다. 농담이 아니라 그냥 심리학관이라 불러도 상관 없는 수준이다.[84] 과거 심리학부가 문과대학 심리학과이던 시절에는 문과대 학생회에서도 중요한 공고를 이 건물에 붙였을 만큼, 문과대의 멀티 역할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실험실이나 연구실의 비중이 높다 보니 포화 상태인 서관의 강의를 많이 분담하긴 어렵고, 이젠 심리학부가 독립하는 바람에 옛날 얘기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리학부가 완전히 가져오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법대 교우회 돈으로 지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래된 법대 교우들은 법대 교우들이 후배들을 위하여 그렇게 힘들게 모금해 지은 건물을 왜 타 단과대에서 쓰고 있느냐며 불만을 표하기도 한다. 2000년대에는 법학관 구관 내 비강의실 시설이라도 법대에서 최대한 확보하자는 운동을 법대 학생회 차원에서 하기도 하였지만, 로스쿨 체제의 등장으로 법대가 공중분해된 이후에는 그마저도 요원하다. 게다가 법전원 때문에 다른 단과대로 넘겨주는 것도 어렵게 되었다. 법전원 유치 조건 중 하나가 법전원 전용 건물이 3동 이상 되어야 한다는 것이 암묵적인 조건이었는데,[85] CJ법학관을 짓기 전의 고려대 법대는 로스쿨을 노리고 지은 해송법학도서관과 신법학관, 구법학관을 다 써야 3개동을 다 채울 수 있었기 때문이었으며 결국 CJ법학관을 따로 짓기는 했지만, 심리학부에서 독자적으로 기금을 모아 건물을 지어 나가지 않는 이상은 헐리는 그날까지 이상한 동거는 지속될 전망이다.
2023년이 되어서야 엘리베이터가 생겼다.
3.2. 법학관 신관
법학관 신관 |
준공 | 2001년 |
규모 | 지하1층, 지상5층 |
통칭 신법. 정식 명칭은 신법학관인데, 로스쿨 및 자유전공학부생들은 해당 건물을 법대 시절부터 신법학관이라 불러서 줄임말도 신법으로 정착되었다. 법구와 달리 법신이라는 표현은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자유전공학부, 일반대학원 법학과,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법무대학원이 함께 쓰고 있다. 2001년 2월에 완공된 지하 1층, 지상 5층 건물이며 외부는 화강암으로 마무리된 전형적인 고려대 양식이다. 고등법원 건물을 모델로 지었다고 한다. 카더라 통신에 의하면 처음 설계도상으로는 지하 2층, 지상 7층이었다고 한다. 규모가 축소된 이유는 법학관 구관을 지을 때처럼 재정이 딸려서라고 한다.
완공 직후 현재의 해송법학도서관 자리에는 성냥갑 모양의 박물관이 아주 좁은 간격을 두고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서 신법학관 2층 정도까지는 햇볕조차 들지 않았다. 박물관이 철거될 것을 예정하고 신법학관을 지은 것인데 재원 문제로 박물관 이전이 늦어지면서 발생했던 문제. 이후 신축된 백주년기념관 내로 박물관이 이전하면서 문제는 해결되었다.
내부에는 강의실과 교수연구실, 학생회실, 휴게실, 정보검색실, 모의법정, 국제회의실, 학사지원부 등이 있으며 지하에는 사물함, 교수 주차장이 있다. 강의실은 1, 2층이 대부분이고 인원이 많으면 501호[86]도 강의실로 쓴다. 입구 로비에는 컴퓨터 3대와 프린터가 있다. 서쪽 옥상에는 정원이 꾸며져 있는데 정식 명칭은 회천동산이지만 아무도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 보통 옥상정원이라고 부른다. 경치는 좋지만 여기로 올라가는 계단이 높고 가파르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고 경고문도 붙어 있다. 최근 동쪽 옥상에도 정원을 만드는 공사가 마무리되었는데 기부자의 호를 따서 동천동산으로 명명되었다.
참고로 다람쥐길 쪽으로 나 있는 계단으로 올라오면 해송법학도서관 뒷편인데 거기서부터 종암동이 시작된다.[87]
3.3. CJ법학관
CJ법학관 |
준공 | 2012년 |
규모 | 지하2층, 지상5층 |
통칭 C법, 로스쿨생들이 주로 이용하는 건물이다. 고려대 법대 출신인 CJ그룹 이재현 회장이 120억원을 기부하여 지어진 건물이다. 고등법원 건물을 모델로 삼아 멋들어진 석조 양식으로 지은 신법학관과는 달리 구법학관 및 여타 대학 법학관과 비슷한 밋밋한 성냥갑형 외관을 하고 있다. 그래도 새 건물인지라 내부 인테리어는 정말 좋다. 로스쿨생을 위한 세미나실, 그룹학습룸, 휴게실 그리고 고대법대 발전위원회실 등의 시설이 위치한다.
3.4. 해송법학도서관
해송법학도서관 |
준공 | 2007년 |
규모 | 지하2층, 지상3층 |
법학관 신관 앞에 위치해 있다. 이 건물이 지어지면서 법학 관련 도서는 전부 중앙도서관에서 이쪽으로 옮겼다. 다만 중앙도서관 홈페이지에서 법학 도서를 검색할 때는 책의 위치가 중앙도서관/법학도서관으로 뜨므로 그걸 보고 중앙도서관으로 가면 안된다. 법과대학·법학전문대학원 전용 도서관으로 오해를 많이 받지만 단과대에 관계없이 열람실 이용이 가능하다. 물론 학생증은 필요하다. 참고로 "해송"은 35억의 건축금을 기부한 대양상선 정유근 회장의 호라고 한다.[88][89]
원래는 열람실이 2, 3층에 있고, 지하2층, 지상1층에 법학도서실과 법학정보실이 있었으나 2015년 초에 이루어진 개편으로 2, 3층의 열람실이 없어지고 법학도서실, 법학정보실이 각각 2층, 3층으로 이전했다. 이에 따라 원래는 법대생과 로스쿨생만 이용할 수 있었던 지하1층에 있는 100여석 규모의 제1열람실을 모든 고대생에게 개방하고 정보검색실과 법학전자정보검색실이 신설되었다.
그러다가 또다시 1년 반이 지난 2016년 여름에 구조가 변경되었다. 지하2층의 보존서고는 동일하고, 2층과 3층에 있던 법학도서실과 법학정보실이 각각 지하1층의 기존 제1열람실 자리와 1층의 기존 법학전자정보검색실로 옮기고, 2층과 3층을 각각 제1, 제2열람실로 만들었다. 또한 지하1층의 정보검색실도 기존의 컴퓨터 노후화로 인하여 컴퓨터를 전부 치우고 노트북열람실로 변경하였다. 그리고 2층과 3층에 있던 그룹스터디룸들도 없어졌다. 그룹스터디룸이 사라진 걸 빼면 사실상 2015년 개편 이전으로 돌아간 셈이었다.
4. 경영대학
4.1. 경영본관
경영본관 |
준공 | 1972년 |
리모델링 | 2000년 |
규모 | 지하 1층, 지상 5층 |
연면적 | 6,097㎡ |
줄여서 경본이라고 부른다. 1972년 현대그룹의 기금 지원[90]으로 건립되었으며, 2000년에 현대산업개발의 후원으로 리모델링을 진행했다.[91]
원래는 경영관 구관이라고 불렀고, 지금은 철거된 경영별관을 신관으로 불렀다.[92] 그러나 '구관'이라는 명칭이 낡은 느낌을 주기도 하고, 2000년 리노베이션 이후 구관이 신관보다 훨씬 새 건물처럼 보이는 상황이 되자 명칭이 혼란을 야기한다는 지적에 따라 학교 측에서 경영대 구관과 신관에 '본관', '별관'이라는 명패를 박아 넣었다.
건물 바로 앞에 넓은 잔디밭[93]이 있어서 날씨 좋은 날 학생들을 술판으로 유혹하곤 한다.
건물을 통틀어 여자화장실이 2층 하나밖에 없다. 남자화장실이 1, 3, 4, 5층에 하나씩 있는 것과는 대조적.[94] 건물 중앙을 관통하는 엘리베이터가 있으나 워낙 작고 느려서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원래는 2~3층에 중형강의실, 4~5층에 교수연구실, 박사연구실, 대형강의실이 있는 구조였으나, 현차관 준공 이후 강의실 부족 문제가 해결되면서 현재는 강의실이 없다.
- 1층 : 경영대학장실/부학장실/부원장실, 경영대학 행정실, 경영지원팀
- 2층 : 스타트업 연구원, 승명호 앙트프러너십 에듀케이션 센터, 일진창업지원센터
- 3층 : MBA 행정실/일반대학원 행정실, CDTB/EEC, 경력개발센터, 국제실, 기업경영연구원, 정진초(CPA 준비반)·탁마정(행정고시 준비반), 회계실
- 4층 : 기업지배구조연구원, 여학생 휴게실, MBA 학생회실, 경영관련학회 통합사무실, 기업경영연구원 센터실/연구위원실, 명예교수실, 학부 학생회실
- 5층 : 교수연구실, 석박사연구실
예전에는 지하1층에 경영대 전용 PC실이 있었으나 지금은 폐쇄됐다.
이곳저곳 연결된 경영대 건물답게 3층 구름다리로는 바로 중앙도서관 및 사범대학 쪽으로, 4층은 LG-POSCO 경영관 5층과 이어져 있어 학생들의 이용이 잦다. 가운데 통로로는 경영본관 3층이 현차관 2층, 경영본관 4층이 현차관 3층, 경영본관 5층이 현차관 4층으로 이어져 있다.[95][96]
4.2. LG-POSCO경영관
LG-POSCO경영관 |
준공 | 2003년 |
규모 | 지상6층 |
연면적 | 14,121㎡ |
약칭 엘포관. 박현주 라운지[97], 이명박 라운지[98], 기타 후원자의 이름을 딴 첨단 강의실이 포진해 있는 럭셔리 건물.
고려대 경영대학의 위상을 엄청나게 끌어올린 건물이다. 공사비로만 280억원이 투입됐는데, 당시 단과대 건물 하나 짓는 데 투입된 예산으로는 국내 최고 수준이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1999~2001년 고대 경영대학장을 지낸 이필상 교수[99]가 각 기업을 찾아다니며 문전박대를 이겨내고 무려 600억의 발전기금을 모금한 덕분이다.[100][101] 이필상 교수를 비롯한 경영대 교수들의 노력에 힘입어 LG가 100억, POSCO가 100억을 기부했고, 삼성(80억),[102] HDC(62억),[103] 삼양그룹 30억[104] 등 수많은 기업과 동문, 자산가들이 발전기금을 냈다.[105] 경영대 교우회에서도 80억을 후원했다고 한다.
LG-POSCO경영관은 건립 당시부터 국내 기준이 아닌 세계 Top Business School의 기준에 맞춰서 설계와 인테리어[106]가 이루어졌다. 건축위원회 위원이었던 이 모 교수님의 증언에 따르면 설계사 쪽에서 내놓은 디자인 시안들이 다 마음에 안 들어 설계하는 사람들을 모조리 해외로 보내 외국 대학의 디자인을 배우게 했다고 한다. 덕분에 본관, 서관, 대학원 도서관, 하나스퀘어 등과 더불어 고려대학교 건축물을 대표하고 있다.
SUPEX홀(대강당), 교수 연구실과 강의실, 경영도서관이라 할 수 있는 수당학술정보관이 포진돼 있으며, 고려대 내에서 강의실로 쓰고 있는 가장 고급스러운 건물이다.
야간에 엘포관 첨탑은 주가가 오르면 빨간 조명, 주가가 내려가면 파란 조명이 점등된다. 스펀지에서도 방영된 바 있다.
다만 완공 직후 건학 100주년 기념 행사(2005년), International Summer/Winter Campus 운영, 국제 세미나 등 워낙 많은 학내 행사가 LG-POSCO경영관에서 열린데다, 경영학과 복수전공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각종 교양과목 수업 또한 이 건물에서 많이 이뤄지고 있어 건물의 감가상각(노후화)이 상당히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이 때문에 일반적으로는 신축 후 약 30년 정도 후에나 검토할 리모델링을 벌써부터 고민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리고 있다. 현차관이 들어서면서 학생 이용이 다소 분산된 것은 다행.
언덕을 깎아 지은 건물이라 외부로 통하는 출입구가 '거의' 층마다 있다. 표시 기준 1층에는 중앙광장 연결통로가 있고, 메인이 되는 로비는 엘리베이터 및 건물 안내도 표시 기준으로 3층이다. 그 외에도 2층 측면에 출입구가 있고,[107] 2층 후면에도 라이시움과 현차관 지하 1층 및 지상 1층 입구로 이동이 가능한 출입구가 있다.(다만 흡연구역을 지나야 한다.) 5층에는 출입구는 아니지만 경영본관 4층과의 연결통로가 있다. 6층은 현차관 4층과 연결되어 있다. 사실상 4층을 제외하고 모든 층에 출구가 있는 셈이다.
1층 중앙광장으로 연결되는 통로에는 작동되지 않던 에스컬레이터가 있었다.[108] 전기 절약과 사용자 부족을 이유로 에스컬레이터가 가동되고 있지 않았는데, 2023년 2학기부터 가동되기 시작했다. 주말과 휴일에는 가동되지 않으니 참고.
4.3. 현대자동차경영관
현대자동차경영관 |
준공 | 2013년 |
규모 | 지하 4층, 지상 5층 |
연면적 | 15,470㎡ |
약칭 현차관. 2013년 9월에 준공한 경영대 3번째 건물이다. 기존에 있던 경영별관[109]을 허물고[110] 그 자리에 다시 지었다.[111] 길쭉한 형태의 LG-포스코 경영관에 비해 작아 보이지만 실제 연면적은 약 1.2배 정도로 더 크다. 이 건물이 완공되면서 경영본관의 강의실은 모두 없어졌다.
유리궁전이며 내부 인테리어와 시설은 호화롭기 그지없다. 다만 중앙이 뻥 뚫린 구조로 되어 있어 공간 낭비가 심하다.
지상 1층에서 지하 3층을 일직선으로 관통하는 계단이 있을 정도인데, 이 계단의 손잡이에 기부자[112]들의 이름을 새겨놓았고 1층에는 경영대학 역사관이 있다. 지상 5층 지하 4층의 규모이며, 강의실은 16개밖에 되지 않지만 무려 50개의 스터디룸[113][114]이 있다. 스터디룸의 바깥쪽으로 통하는 벽면은 모두 유리로 되어 있어 안과 밖이 잘 보이고, 내부쪽 벽도 유리를 덧댄 구조라 벽 자체를 보드마커로 자유롭게 화이트보드처럼 사용할 수 있다. 자유롭게 의논하고 이야기 하기에 좋은 구조이다. 학부생은 지하의 스터디룸 이용이 가능하며 지상은 대학원생이 사용할 수 있다. 2023년 2학기 현재 기준으로는 학부생도 지상의 스터디룸 사용이 가능하다.
마찬가지로 사물함도 지하는 학부생, 지상은 대학원생이 이용 가능하며 사물함 신청 기간과는 관계없이 해당 사물함에 가서 180일에 10,000원이라는 금액[115]으로 직접 신청해야 한다. 카드 결제도 가능하며, 2인이 1개의 사물함을 사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2023년 2학기 현재 기준으로는 학부생이 지상에 있는 사물함을 사용한다. 매 학기 초 경영대학 전용 사이트에서 신청해서 사용하며, 가격은 무료이다.
스터디룸 이외에도 라운지의 규모가 크고 숫자도 매우 많아서 휴식과 모임에 적당하다.[116]
엘포관보다 건설비가 많이 들었지만,[117][118] 강의실이 분포한 층 수는 많은데 비해 엘리베이터는 3개밖에 없어서[119] 수업 직전 시간에는 박터진다.
하지만 강의실 시스템은 꽤 우수하다. 소형 강의실을 제외한 곳은 좌우 양측에 프로젝터와 스크린이 달려 있어 자리에 관계없이 강의 슬라이드 자료를 보기에 편리하다.[120] 칠판도 위 아래로 올렸다 내릴 수 있는 구조라 많은 내용을 담을 수 있으며, 화이트보드도 같이 달려 있다. 유지 보수가 쉽지 않아 한번 고장나면 수업 내용조차 듣기 힘들었던 엘포관의 천장 마이크 시스템에 비해, 현차관 강의실은 핸드마이크와 핀 마이크, 교탁 마이크 3개를 사용할 수 있는 음향시설을 가지고 있어 엘포관 음향시스템과 같은 문제에서는 자유롭다.[121] 전반적으로 엘포관 강의실에서 아쉬웠던 사항을 개선하여 반영한 디자인인듯 하다. 다만 좌석은 여학생의 체구에 맞게 설계해 남학생 입장에서는 다리 공간이 좁아 엘포관에 비해 불편하다는 평도 있다. 경영대 건물 중에서는 처음으로 전자출결 시스템이 설치되어 있었지만, 무엇 때문인지 현재는 거의 쓰이지 않고 있다.
경영대 건물답게 출구와 연결통로가 많은데, 지하1층은 라이시움 3층 쪽과 엘포관 2층 쪽으로 나갈 수 있는 지상 출구가 있고, 1층은 메인 출구가 있는 로비이며, 2층은 경영본관 3층과, 3층은 경영본관 4층과, 4층은 경영본관 5층 및 엘포관 6층과 연결되어 있다. 중앙이 뚫려있는 구조라 지하 2, 3층에 있어도 별로 지하에 있는 느낌이 안 들기도 한다. 2015년 4월, 지하 1층에 카페(띠아모)와
5. 문과대학
5.1. 서관
서관[122] |
준공 | 1955년 |
완공 | 1961년 |
증축 | 1993년 |
리모델링 | 2002년 |
규모 | 지하1층, 지상6층 |
문과대학 건물. 원래는 보전에서 고려대학교로 승격될 때 지으려고 계획했던 건물인데 부지 공사만 완료한 채 한국 전쟁이 터지는 바람에 중단됐다. 다시 짓기 시작한 건물도 공사비가 모자라서 일부만 짓고(현재 202호 일대) 몇년 후에나 공사를 이어간 건물인데다 학교가 커지면서 무한 확장을 하는 바람에 구조가 참 아스트랄하다. 문과대학 행정실과 문과대학 각 학과 행정실(과거 심리학과 제외, 심리학과 행정실만 법학관 구관에 있었다), 문과대학 교수 연구실과 문과대학 소속 연구소[123]와 함께 강의실이 위치하고 있다.
3.5층을 5층으로 명명한 이상한 구조라 서관에서 처음 수업을 듣는 사람은 낚이기 참 쉬운 구조. 강의동과 연구동의 층고가 다르고 서관을 지을 당시가 4란 숫자를 부정적으로 여기던 시절이라 원래 4층 없이 5층을 3층의 다음 층으로 만들어 놓았는데 1993년 강의실 부족으로 인한 증축 때 덜컥 4층을 새로 만들어 버리면서 생긴 현상이다. 서관 로비에서 올라가면 별 문제 없는데 반대쪽인 서관 컴실에서 올라가면 이런 현상을 볼 수 있다. 다만 로비 쪽에서 올라가면 실(室)번호가 4와 5가 공존하는 것을 볼 수 있다.[124] 이에 혼란을 겪은 학생들이 '호그와트처럼 계단이 움직인다'고 하며 별명을 호그와트[125]라고 붙여놓았다. 생긴 것도 나름 비슷하다.
그 외에도 1993년의 증축은 소문에 따르면 불법건축이라고도 하지만 별 문제는 없는 것 같다. 대신 서관의 지붕이 창문을 딱 가로막고 있어서 채광도 잘 안되고 시야도 가려서 4층 강의실은 꽤 답답한 편이다. 냉난방은 말할 것도 없이 열악하고. 누군가는 4층 강의실의 창문을 통해 지붕으로 나가서 담배를 피우기도 한다. 대신 증축 후 20년이 지난 최근 들어 이 증축 때문에 건물에 상당한 하중이 가해지고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서관이 문화재라 이렇게 되었다는 설이 있지만, 서관은 사적이 아니며 심지어 등록문화재로 등록되지도 않았다.
이외에도 서관의 미스터리로는
- 번호상으로는 3층에 있는 것이 확실한 연구실인데 3층에서 들어갈 수 없고 2층에서 들어가야 한다.
교수연구동이 두 개가 있는데 가운데 연구동, 그러니까 132호 위의 연구실들은 3층으로 분류되면서[126] 2층 복도 중간에서 계단으로 올라가야 한다. 일단 현재는 이 문제가 연구실들을 2층으로 재분류하면서 해결된 것으로 보인다. - 숨어있는 2층의 연구실
대형강의실인 서관 202호 뒤에는 교수연구실이 있다. 다람쥐길 쪽 계단으로만 올라갈 수 있는 문과대 고시실 양호재 위에 위치해 있다. 그리고 사실 양호재 옆에도 교수연구실이 하나가 더 있다. 원래는 202호 뒤편에 문이 있어서 계단을 타고 내려오면 바로 다람쥐길로 나올 수 있는 구조였는데, 리모델링을 하면서 202호 뒷문을 폐쇄해버렸기 때문에 사실상 거의 쓰이지 않는 계단이 되어버렸다. - 건물 밖의 강의실
B101호는 학과 행정실들의 바로 밑의 강의실(현재는 세미나실)이지만, 건물 안이 아니라 건물 밖으로 나 있는 문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이 강의실은 예전에는 비가 오던 날이면 수업을 마치고 문을 열면 바로 비를 맞는 구조였다. 세미나실로 변경된 이후에는 문 위에 덧지붕을 따로 설치. 80년대에는 문과대 일부 과실,2000년대에는 강의실로 사용되었다가 지금은 교수 전용 세미나실이 되어서 못 들어간다. 대학원 수업 용도로 가끔 사용되지만 평소에는 잠궈놓기 때문에 학부생은 들어갈 일 없다고 보면 된다.2024년 현재에는 대학원과 학부 강의실로 종종 쓰인다. 예를 들어 언어학과 전공. 여담이지만 2000년대 강의실로 사용될 때는 좌석 배치가 좌우로 넓은 구조여서 가운데 앉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사각이 생기는 강의실이었다. 이 위치에 있는 다른 강의실들은 전부 세로로 긴 강의실.
이외에도 132호 역시 뒷문이 바로 바깥으로 통하는 강의실이다. 132호 뒤쪽에 가보면 뒷문이 있고, 2002년 리모델링 이후 폐쇄했다가 2017년 SK관 공사로 서관 앞 도로의 반이 막히게 되어 유동인구 분산을 위해 개방했다. 20년대인 지금은 다시 막혀 있곤 한다.
서관에는 건물의 1층 일부가 뚫려 있는 곳도 있다. 먼저 지은 202호 일대와 나머지 서관 부분을 이으면서 구름다리 비슷한 공간이 생겼다. 그래서 똑같은 1층이라 하더라도 2층으로 올라가서 내려가거나 문 밖으로 나와서 돌아서 들어가야 한다. - 미친 목련
미스터리까지는 아니고 서관 컴퓨터1실(현재는 2016년의 리모델링으로 학과 행정실 밀집 지역이 되었다.) 창문 바로 앞에 있는 자목련나무는 다른 목련과는 굉장히 일찍 피는 것으로 유명했다. 아직 쌀쌀할 시점인 3월 초에 벌써 꽃을 피우고 있어서 문과대 학생들은 이 나무를 미친 목련이라 불렀다. 이렇게 일찍 꽃을 피우게 되는 이유는 이 나무가 서관 컴퓨터실 앞에 설치되어 있는 냉난방 실외기의 직격을 받고 있기 때문. 지금은 구 서관 컴퓨터1실 앞의 냉난방 실외기를 옮기고, 자목련나무를 백목련나무로 통째로 바꿔버리는 바람에 추억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햇볕이 잘 드는 곳이라 그런지 그냥 냅둬도 꽃이 일찍 피기 때문에 미목의 전설은 여전하다.
건물 꼭대기에는 문과대학을 상징하는 시계탑[127]이 있어서 주말, 공휴일을 막론하고 매일 9시에는 교가, 12시에는 '새야 새야 파랑새야'가 시보로 울려 퍼진다.[128] 시계탑을 알바를 이용하여 인력으로 돌린다는 얘기가 있지만 낚이지 말자. 신입생을 골려먹는 농담 중 하나다.[129] 여담으로 이 시계탑에서 나오는 '새야 새야 파랑새야' 시보 때문에 문과대학 FM은 '녹두문대'이다. 참고로 서관의 탑이 있는 곳의 꼭대기는 7층이다.[130]
한 가지 더 재밌는 사실은 정경대학의 FM인 '호안정대' 역시 이 시계탑에서 비롯되었다는 점. 정경대학은 정경관이 지어지기 전에는 문과대와 서관을 같이 사용했는데[131] 정경대 학생회실이 바로 7층 시계탑에 위치해 있었고, 좋은 입지 조건 때문에 학교로 진입하는 전경을 감시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고려대의 눈'이라는 점에 착안해서 붙인 이름이 호안(虎眼)정대. 이후 정경대 학생회실과 각 과 자치공간은 정경관 1층으로 들어갔으며, 문과대 학생회실과 각 과 자치공간은 교양관으로 갔다가 홍보관으로 다시 옮겨가 서관에는 학생 자치공간이 남지 않게 되었다.
'서관'의 '서'는 서쪽의 西, 글 書 둘 다 맞다. 본교 홈페이지에서도 '서관'이라는 한글 표기만 있고, 둘 다 쓰인다고 한다. 단, 옛날 자료에는 西館이라고 쓰인 경우가 많다.
왠지 문과대학이라고 하면 알아듣는데 서관이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어떤 강의가 정정기간 때 강의실을 서관으로 변경했는데 한 4학년이 늦게 들어와 이유를 물어보니 서관이 어딘지 몰라서 늦었다고 한 일화도 있다. 애기능 캠퍼스에 있는 생명과학대 서관[132]과도 혼동하기 쉬우니 주의하자. 2009년 2학기에 학교에서 새로 세운 명패에는 서관이 아닌 '문과대학'이라고만 되어 있다[133].
1층에는 남자화장실 2곳(로비, 201호 도서실 밑), 여자화장실 1곳(컴퓨터실), 2층에 여자화장실 1곳, 3층에 남자화장실 1곳이 있다. 4층 이상에는 화장실이 없으니 주의. 혹시 갔다가 화장실을 못찾겠으면 그냥 1층으로 뛰어내려 오는 것이 팁이다. 2014년에 화장실 리모델링을 하면서 3층, 정확히는 2층에서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여자화장실 1곳을 추가로 확충했다. 참고로 본래 서관에는 여자화장실이 없었는데, 과거 여대가 아닌 대학은 통념상 남자만을 위한 교육기관이었기 때문이다. 고대 문과대에 최초로 여학생이 입학하자 학교에서 고심 끝에 서관 내 화장실 하나를 여자화장실로 지정하고, 수위 아저씨가 손수 손으로 “여자 변소”라는 팻말을 써 붙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건물 내부에 엘리베이터가 존재하지 않았는데 장애인권위원회와 문과대 학생회의 끊임없는 문제 제기로 2016년 말 엘리베이터 신축이 결정되었다. 외부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고 2017년 8월 드디어 엘리베이터 설치를 시작하여서 2018년 1월에 완공되었다.
국제관에 접한 건물 왼쪽의 외벽 중앙 상단부를 보면 마감재인 화강암 석재가 규칙적인 크기로 배열되어 있다. 신촌의 몇몇 학교와 유사하게 다양한 크기의 돌이 불규칙하게 배열된 점이 화강암 건물의 특징인데, 서관의 저 부분만 왠지 크기가 동일한 이유로 다소 어색하게 보인다.
문과대학 교수님들 중 일부는 이곳의 강의실을 3-XXX호로 칭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과거에 학교 건물 번호를 지어진 순서대로 붙여서 부르던 시절의 이야기인데, 서관이 세 번째로 지은 건물이기 때문에 3이라고 했다. 1990년대까지 사용되었기 때문에 교수님들은 간혹 자신의 연구실을 3-XXX호로 표시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이 분류법은 아직도 공식적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궁금하면 외국인 수강신청을 보면 된다. 영문 강좌 목록에는 강의실 표기를 건물 이름 대신 번호로 표기한다. 참고로 본관이 1, 도서관(現 대학원도서관)이 2, 舊 여학생회관(현 동글리 자리에 있던 건물, 현재는 철거)이 4, 농과대학(現 사범대학본관)이 5, 대강당이 6이다.
참고로 서관 앞에는 의암 손병희 선생 흉상이 있고, 서관 뒤에는 조지훈 전 국문학과 교수의 시비[134]가 있다. 또한, 본관 방향으로 오래된 나무데크 존재했는데 2021년 2학기 보수공사를 통해 '진리마루'가 되었다.
문과대학은 고려대학교의 모든 단과대학을 통틀어 공과대학과 함께 가장 머릿수 많은 단과대학[135]인데 막상 전용 건물은 서관뿐이라서 정말로 박터진다. 그나마 자유전공학부와 나눠 쓰던 법학관 구관도 이제 심리학부가 독립하면서 털렸다. 그래도 2000년대까지는 서관 위주로 강의가 개설되었는데 대형강의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었고, 2010년대 들어서 강의가 확충되면서 교육관과 교양관으로 마구 뻗어나가고 있다. 대학원 강의는 이미 국제관에서 진행한 지 오래다. 현차관이 지어진 이후에는 몇몇 강의는 현차관도 사용한다. 그래서 문과대를 위한 독자적인 공간에 대한 요구가 많았는데, 자세한 것은 SK미래관과 인문사회관 항목 참조.
5.2. 청산·MK문화관
청산·MK문화관 |
준공 | 2007년 |
규모 | 지하2층, 지상6층 |
글로벌일본연구원 건물이다. 건물 이름은 곽유지 교토 전일공(ANA)호텔 회장의 호 '청산'과 유봉식 교토 MK택시 회장의 회사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연구시설 이외에도 6층에는 고대신문사[136]가 있다.
위치가 좀 독특하다. 인문계캠퍼스 내부에 건물이나, 다른 건물들과 도로를 사이에 두고 있는 건물로, 수업이 열리지 않다보니 학교 건물인지 잘 모른다. 교수 연구실 등이 일부 위치한 일어일문학과와만 관련이 있다.[137]
5.3. 인문관(공사 예정)
착공 | 2023년 이후 |
준공 | ??? |
규모 | 지하1층, 지상3층 |
기존의 홍보관 철거 부지에 정경대학, 문과대학의 강의 공간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하 2층, 지상 9층[138]의 인문사회관을 세울 계획이 있었다. 해당 건물이 지어지면 교양관, 법학관, 경영관 등 타 단과대 공간을 전전하면서 열리는 두 단과대의 전공강의들이 떠돌이 생활을 끝낼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2019년 홍보관 철거가 완료됐음에도 2022년까지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이후 2023년에도 익명의 독지가가 고려대에 630억을 기부할 때도 기부 목적이 자연계 캠퍼스 지하광장 등 자연계 캠퍼스 시설 확충만이 포함되었을 뿐 인문사회관은 제외됐다.
그러나 2023년 지하 1층, 지상 3층의 문과대 전용 인문관으로 계획이 변경됐고, 2023년 말-2024년 초 공사 시작이 확정됐다. 계획 발표 후 '자치공간 보장' 약속을 학교 측에서 지키지 않았다며 문과대학 구성 단위들이 릴레이로 대자보를 붙이고 연서명을 받는 일이 생겼다. 그도 그럴 것이, 홍보관이 철거되며 떠돌이 신세가 된 문과대학 단위는 국제관에 마련된 임시 자치공간을 활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임시 자치공간은 면적이 너무 좁고 시설도 열악했기에 구성 단위들은 인문사회관 완공시 보장될 새로운 자치공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학교 측에서 슬그머니 말을 안 하니 불만을 표출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6. 정경대학
6.1. 상남정경관
상남정경관 |
준공 | 1983년 |
리모델링 | 2003년, 2024년 |
규모 | 지하1층, 지상6층 |
지하 1층처럼 보이는 1층과 진짜 지하 1층을 합쳐 6층 + 지하 1층짜리 건물. LG그룹의 후원으로 건축되었다. 원래는 5층이었는데 증축하였고, 2003년경에 리모델링하였고[139], 건립 당시 후원받은 LG그룹의 도움을 받아 2024년 다시 리모델링하였다. 이 과정에서 후원자인 LG그룹의 구자경 명예회장의 호[140]를 따 상남정경관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입구는 정대 후문에서 올라가는 1층으로 통하는 입구, 폭풍의 언덕 중간에 위치한 쪽문(일요일에는 이곳만 열린다.), 민주광장과 국제관 방향으로 통하는 2층으로 통하는 입구 (사진 왼쪽에 보이는 곳) 세 곳이 있다.
리모델링 이전의 정경관 |
리모델링 이전에는 외벽이 벽돌로 되어 있었는데 학교 내 건물 중 유일하게 벽돌로 되어 있어서 별칭이 정경장[141]이었다. 정대 후문 쪽 입구 앞에는 호안뜰이라 불리는 작은 공간이 있는데 거긴 많은 정대생들의 흡연 장소로서 애용되거나, 가끔 공연이 열리기도 한다.
남학생이 많았던 탓인지[142] 원래 여자 화장실이 2층하고 5층에 밖에 없었는데 2000년경 화장실을 고치면서 1층에도 여자 화장실이 생겼고, 2013년에는 3, 4층에도 여자화장실이 신설되었다.[143] 특히 1층 남자 화장실은 고치기 이전에는 크고 아름다웠는데, 고치면서 다른 층 화장실에 비해 규모도 작고 화장실 입구 또한 달라졌다. 즉, 지금의 여자 화장실 입구가 원래는 남자 화장실 입구였다. 그래서 2000년대 초에 제대하고 복학한 남학생들은 본의 아니게 여자 화장실로 들어간 일이 많았다.
정경대학도 문과대 못지 않게 강의실이 부족한 편인데 정대생의 수가 문대생보다는 적고 건물도 6층+1층이니 넉넉하지 않냐고 할진 모르지만 지하 1층은 미화노동자실과 정경대 야구부 '퍼블릭스', 정경대 밴드 'Into The Song' 동아리실이 있고, 1층은 강의실 하나와 각 학과 행정실, 학생회 자치공간들, 정경대 신문 'The HOANS' 동아리실이 있으며 3~4층은 교수 연구실, 6층은 정경대 도서관(열람실)과 연구실이 있어 실제 강의실은 2층과 5층 밖에 없다. 그나마도 강의실의 의자보다 수강생이 많은 경우가 빈번하며 자리맡기 경쟁이 피터지게 벌어진다. 게다가 정경대 소속 학과들이 이중전공으로 인기가 많아[144] 이런 상황은 정말 헬게이트로 바뀌었고, 토론이 가능한 소수정원 수업보다 대형강의가 더 많아졌다. 정경대 전공을 교양관에서 수업하는 경우도 많으며, 정치 관련 교양 수업을 공학관에서 하는 일도 있다. 교수 연구실 공간도 부족해서 3, 4층을 통째로 연구실로 사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양관이나 인촌기념관, 심지어는 홍보관에도 정경대학 교수 연구실이 있다.[145][146]
때문에 정경대에서는 포화 상태에 이른 정경대를 위한 제2정경관(혁신관) 건립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 일환으로 2015년 정경대학 설립 60주년을 크게 홍보하며 다양한 모금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전체 모금 목표액 500억 중 15%가 모이면 제2정경관의 본격적인 기공에 들어가겠다고 한다. 제2정경관의 위치는 미디어관과 정경관 사잇길에 있는 공터다, 국제관 뒤 교수테니스장이다 말이 많았지만 여러 조감도 상 결국 민주광장 앞에 있는 곧 쓰러질 것만 같은 홍보관을 헐고 그 자리에 지을 것으로 예상되었고, 결국 정경대 학장님과의 면담을 통해 2017년에 홍보관 자리에 지어진다는 것이 알려졌으나 정경대만을 위한 제2정경관이 아닌 인문사회관이라고 한다.[147] 그러다 2023년 인문사회관은 문대 전용의 인문관이 되면서 정대는 SK미래관 3~5층을 리모델링하여 강의실로 사용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한편 교수테니스장에는 '수당·삼양 Faculty House'가, 정경관과 미디어관 사이의 공간에는 컨테이너 박스 30~40개로 이루어진 청년창업센터 '파이빌'이 들어섰다.
여담으로 정경관이 전체적으로 데이터가 잘 안 터지는 장소인데[148][149] 정경관 엘리베이터는 핸드폰 전파를 칼 같이 차단하는 것으로 악명 높다. 엘리베이터에 타면서 통화를 하고 있었다면 문이 닫힘과 동시에 통화가 끊어질 것이다.
여담으로 자교 출신 정외과 모 교수의 증언에 따르면 자신의 학부 시절 때 정경관에서 NLPDR 계열 학생[150]과 PD 계열 학생[151]간에 주먹다짐이 피터지게 매일 벌어졌었다고 하며 지금은 NLPDR 계열이 정대를 장악했다. 다만 대부분의 학생들이 운동권에 보내는 시선이 곱지 않아서 실제로는 별 지지를 못 받고 있다.
6.1.1. 폭풍의 언덕
타이거 플라자와 정경관 사이의 언덕길. 원체 산을 깎아내고 지은 학교에서도 꽤 고지대인데다가 사방이 상당히 트여 있는 탓에 바람이 강렬히 불어서 폭풍의 언덕이라 불린다. 워낙 가팔라 눈 오면 미끄러질 것 같은데, 열선이 깔려 있어서 바닥이 얼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열선에도 사각지대가 있는지 가끔 부분적으로 어는 곳은 있으니 한파가 몰아칠 때는 통행에 주의해야 한다. 학생들이 지은 별명에서 비롯되었지만 또한 공식 명칭이다! 고려대학교 캠퍼스 지도에 당당히 '폭풍의 언덕'이라고 적혀있다.7. 사범대학
7.1. 사범대학본관
사범대학본관 |
준공 | 1956년 |
규모 | 지상3층 |
외관상 옥상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본관에 비해서 20여 년 늦게 세워진 건물이지만, 역시 묵직함이 남다른 존재로 인식된다. 1층에는 사범대 각 학과 행정실[152]과 기자재실 등이 있다. 강의실도 하나 있으나 여기서 열리는 강의가 그리 많지 않기에 졸업할 때까지 사범대 본관 강의실의 존재를 모르는 사범대생들도 많다.
113호는 계단식으로 좌석이 설치되어 있으며 앞에 높은 무대가 있어 강연이나 각 과의 개강총회, 학술제 등의 행사 때 자주 이용된다.
2층과 3층에는 교수연구실과 각 학과의 연구시설 등이 자리잡고 있다. 사대신관과 통로로 연결되어 있다.
7.2. 사범대학신관
준공 | 1995년 |
규모 | 지하1층, 지상4층 |
건물 대부분이 강의실로 이루어져 있다. 교육관이 생기기 전까지는 사범대 전공 및 교직강의의 거의 대부분이 이곳에서 이루어졌으며 현재도 많은 강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교양강의 다 들은 사범대생은 사대신관과 교육관만 왔다갔다 하다 보면 어느새 졸업한다. 진짜 다른 건물 갈 일이 없다. 사범대 사물함도 이 건물에 있으며 지하에는 각 학과의 연구시설들이 있다.
말만 신관이지 전체적으로 본관보다 낡은 외양을 하고 있어[153] 학생들 및 여러 사람들이 잘 찾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 2012년에는 건물 입구에 새로 사범대학 신관이라는 명패를 세웠으나 개선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낡은 외양처럼 시설도 좋지 않아 냉난방 상황이 열악하며, 강의실에 마련된 컴퓨터는 가히 중고등학교의 그것과 맞먹는 성능을 자랑한다. 나름 정보화 수업을 위해 설치한 듯하지만 오히려 수업을 방해하는 경우가 많으며 씨름에 지친 교수가 그냥 과거 방식대로 판서와 강독으로 구성된 강의를 진행하는 경우가 매우 허다하다.
그러나 운초우선교육관의 퀄리티 덕에 재건축은 요원해 보인다. 학교는 2015년 2학기에 모 교수가 신청한 시설 지원 요청에 "해당 건물에 대한 학교의 투자 계획은 없다"라는 답변을 하였다.[154]
7.3. 운초·우선교육관
운초·우선교육관[155] |
준공 | 2010년 |
규모 | 지하1층, 지상6층 |
사대신관 안쪽에 컨테이너 박스와 슬레이트 가건물 형태로 지어져 있던 인문강의동[156]을 철거하고 새로 지은 건물. 뚝딱뚝딱 짓더니 2010년 3월에 개관했다. 운초·우선은 기금 기부자(부부)의 호에서 따 왔다. 고려대학교와의 연관성은 독립운동가 출신 서울대학교 식물학자 운초 정영호선생의 장손이 고려대학교 졸업생이다. 고려대 건물답게 내부 인테리어는 호화급. 또한 고려대학교 디자인조형학부 학생들의 작품이 다수 전시돼 있다.
1층에 카페와 이마트24[157] 편의점이 있다. 또 하나의 이점으로는 법대 후문으로 등교할 경우 극악의 비탈길을 거슬러 올라가야 했는데, 교우회관 쪽 입구에 위치한 교육관 1층 출입구를 통과해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 출입구로 나가면 캠퍼스에 도착할 수 있다. 마치 고려대역-라이시움-경영대-중도 같은 지름길이 되었다.
사범대학만의 건물이 아니라 문과대학도 쓰는 건물이다. 그래도 나름 사범대 강의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과거 사대신관에 쏠려 있던 사범대 강의가 상당수 분산되었다. 오히려 규모 면에서 사대신관보다 훨씬 크니 강의도 그만큼 많이 이루어진다. 사범대 고학번이 되면 사대신관과 교육관만 왔다갔다 하게 된다.
강의실의 질은 최상급. 세로형 강의실과 반원형 강의실 두 가지 타입이 있는데, 세로형 강의실의 경우 계단이 있기는 하나 그 모습이 여타 건물의 그것과 별다를 것이 없다. 그러나 반원형강의실은 바닥에 카펫이 깔려 있으며 전체적으로 어두운 인테리어를 하고 있어, 앞의 교수자와 그 칠판이 매우 주목되는 형태이다. 집중이 잘 될 것 같지만 오히려 타원형 책상 앞쪽에 턱이 있어 딴 짓 하기 좋은 구조인데다 세 자리당 하나 꼴로 콘센트까지 있어 카톡과 페북 그리고 소셜 게임의 향연이 열린다.
참고로 이공계의 경우 교양을 여기서 들으면 어마어마한 거리를 각오해야 한다. 사실 자연계 캠퍼스에서 온다고 하면 지각하더라도 교수님들이 하해와 같은 아량으로 이해해 주신다.
7.4. 체육생활관
체육생활관[158] |
준공 | 1985년 |
규모 | 지상3층 |
체육교육과 행정실과 농구 코트가 운영되는 실내체육관이 있다. 특이사항으로 유도부, 펜싱부, 검도부, 역도부, 미식축구부의 5개 체육계 동아리가 이 건물에 부실을 가지고 있으며 주요 활동이 진행되는 장소다.
위 동아리들은 동아리가 존재하는 해당 종목에서는 유일한 단체이고 대체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운동부와 동아리의 중간 정도 느낌이다.
80년대 중반에 지어진 건물이나, 캠퍼스 내 다른 시설들처럼 학교 차원의 대규모 개보수가 한 번도 이뤄진 적이 없었기 때문에 고대신문에서도 여러 차례 보도가 이뤄질 정도로 시설 노후화가 심각하다. 현재 개교 120주년 기념사업 중 체육생활관 개선이 포함되어 있어 사업 진행을 위한 기금 확보 중. 3-40억 수준의 기금을 확보하여 전면 리모델링이 진행될 예정이다.
8. 국제대학
8.1. 국제관
국제관 |
준공 | 1999년 |
규모 | 지하2층, 지상7층 |
1990년대 후반 정부가 국내 9개 대학에 국제대학원 설립을 인가해줄 때 자금 지원을 받아 지은 건물. 정부 자금 + 고려대의 매칭 펀드를 합쳐 지었다. 서관 쪽의 국제대학원동과 인촌기념관 쪽의 국제어학원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국제대학원동에는 국제학부·국제대학원, 노동대학원의 강의실과 교수연구실이 있으며, 국제학부·국제대학원 행정실, 노동대학원 행정실도 여기에 있다.
국제어학원동은 전교생 공통교양 과목인 Academic English 강의가 진행되는 곳이자[159] 국제어학원 교수들의 연구실들이 위치해 있으며, 대부분의 외국어강의도 이 곳에서 이루어진다.
건물 이름에 걸맞게 한국어 수업 및 기타 여러 외국어 수업을 듣기 위하여 외국인 학생들이 많이 있는 곳이다. 거기다가 대체로 영어 실력이 뛰어난 국제학부와 국제대학원 학생들이 주로 수업을 듣고 활동하면서 그런 외국인 학생들하고 자주 어울리는 곳이기 때문에 국제관에 있다 보면 다른 건물보다 유독 영어를 쓰는 장면을 많이 보게 된다.
정대후문 쪽의 폭풍의 언덕만 넘어오면 바로 국제관 앞을 지나가기 때문에 국제관 앞에는 점심시간 등에 캠퍼스 안쪽으로 들어오고 정대후문으로 나가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국제관 입구는 두 개가 있는데 정문으로 들어가게 되면 1층 국제대학원동으로 들어가게 되며, 옆 언덕을 조금 올라서 들어가면 2층 국제어학원동으로 들어가게 된다. 국제대학원동과 국제어학원동은 1층, 2층, 3층, 4층이 연결되어 있지만 건물 높이가 다르기에 엘리베이터가 따로 설치되어 있고, 계단도 따로 올라가야 한다. 그리고 2층 입구로 들어가면 고대빵 3호점이 있었다가 2022년도에 철수 후 일반 카페가 들어섰다.[160]
국제대학과 국제어학원에서 관리하는 건물이지만 문과대에서 관리하는 강의실과 세미나실이 국제어학원동 내에 존재하며, 문과대 소속 학생회실 및 동아리실도 2018년 홍보관 철거 이후 국제관 1층으로 이사 와있다.[161]
또한, 인문캠의 전산실이 국제관에 위치해 있다. 2013년 7월 '호화 영어캠프'가 언론에 보도되면서 대학이 주관하는 초중고생 대상 프로그램이 폐지 크리를 먹었다.
9. 미디어학부, 디자인조형학부
9.1. 미디어관
미디어관 |
준공 | 2011년 |
규모 | 지하2층, 지상12층 |
미디어학부와 디자인조형학부[162] 교수들의 연구 공간과 전공 학생들의 강의을 위한 강의실, 교수학습개발원(원래는 중앙광장에 있었으나 11층에 있던 인재발굴처가 라이시움으로 이사감에 따라 들어오게 되었다), 리셉션홀인 크림슨라운지, 교내 방송국[163] 그리고 교육매체실이 있는 지상 12층, 지하 2층의 총 14층 규모의 건물이다. 고대 내에서 가장 높은 건물로 멀리서 보면 혼자 우뚝 서있다. 사방에서 접근할 수 있는 건물로 우선 정문은 큰길과 맞닿아있으며 1층은 교양관, 2층은 정경대 후문과 연결되어 있어 진입이 매우 편리하다. 1층에는 카페와 안내데스크, 라운지가 있고 4층에는 KU시네마트랩[164]이라는 영화관에서 정기적으로 영화 상영을 하였으나 2018년 5월 26일 플로리다 프로젝트 상영을 마지막으로 문을 닫게 되었다. 영화관 운영 주체가 사라지는 것이지 시설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에 정기 상영만 없어진 것이고 영화제나 미디어학부 차원의 강의실로 계속 사용되는 중이다.지하 1층에는 미디어학부생들이 주로 사용하는 미디어벙커와 미디어학부 과방, 학생회실이 위치하고 있으며, 미디어학부 내 동아리인 보도사진학회의 암실도 존재한다.
舊 KU CINEMA TRAP |
주말에는 미디어학부, 디자인조형학부, 방송국 소속 학생들만 입장이 가능하다. 그런데 대부분 보안 시스템이 보통은 학생증을 찍고 들어가고, 나올때엔 버튼을 눌러 나오는데 반해, 미디어관은 학생증을 찍고 들어가서 학생증을 찍고 나오게 되어 있다. 실제로 다른 사람 들어갈 때 따라 들어갔다가 한 시간 동안 나오지 못한 공대생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예전 이야기이고, 1층 미디어관 정문을 통해 나갈 수 있다.
고려대 인문캠 대부분 건물들의 외벽이 돌로 되어 있는데 비해, 미디어관은 유리로 되어 있어 재학생들 사이에서 다른 건물들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까였는데 새로 지어진 CJ법학관이나 현대자동차경영관도 이와 비슷한 모습이다. 특히 미디어관이 너무 높은 건물이라 인문캠 전체적으로 보면 심히 어울리지 않는다. 미디어관 뒷편의 정경대가 미디어관보다 훨씬 높은 부지에 위치해 있음에도 미디어관에 완벽히 가릴 정도니 그 높이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예전 교양관 뒷편의 아늑한 공간이 없어져 아쉬워하는 학우들도 많다.
10. 철거된 시설
10.1. 박물관
여학생회관과 법과대 건물 사이에 있던 건물. 현재 고려대학교 박물관은 백주년기념관으로 이전하였다.10.2. 여학생회관
현재 동원글로벌리더십홀 자리에 있던 건물. 동원글로벌리더십홀에 도돌마루와 같은 여성을 위한 시설이 있는 이유가 이 여학생회관을 철거한 자리에 지어졌기 때문이다.10.3. 경영별관
지금의 현대자동차경영관 자리에 있었던 건물. 유원건설 등의 후원을 받아 1988년 건립된 건물로 학우강당, 정진초, 경영도서관, 말굽형 강의실 등이 있었다. 그 전까지 경영본관 건물 하나로 버티던 경영대의 숨통을 틔워준 건물이다. 2011년 철거된 이후 파라, 온돌 방식의 여학생 휴게실, 반실, 동방이 없어졌다. 여학생 휴게실과 학생 자치공간은 따로 현차관에 마련되어 있지 않아 경영대의 자치공간은 사실상 전무한 상태가 되었다.10.4. 사범대학분관
현재는 현대자동차 경영관 공사로 인해 없어졌다.라이시움 항목에도 나와있듯이 원래 사범대 자치공간이 있던 곳이다. 이 때문에 철거될 당시 사범대 학생들이 강력히 반발하였고[165] 결국에는 사대 분관을 철거하지 않고 현차관 공사를 진행하기로 한다.
그러나 공사 시작 한 달만에 균열이 발생했고 어쩔 수 없이 사범대 학생들은 분관을 떠나 라이시움 5층으로 가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디자인조형학부의 자치공간은 라이시움으로 가지 못하였고 미디어관으로 터를 옮긴 지금까지도 디조는 학생자치공간은 물론, 교육·연구 공간까지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10.5. 조형학부관
초기에는 ROTC 무기고로 사용되었던 곳으로 현재는 현차관 공사로 인해 사라졌다. 철거 이후 디자인조형학부는 미디어관을 미디어학부와 함께 사용한다.10.6. 조형학부별관
조형학부관과 같이 현차관 공사를 위해 함께 사라져서 현재는 없다.10.7. 인문강의동
운초우선교육관 자리에 있던 컨테이너 가건물로 현재는 철거되었다.10.8. 홍보관
[166]
준공 | 1968년 |
철거 | 2018년 |
규모 | 지상4층 |
고대신문사, 고려대학교 영자신문사 The Granite Tower, 고려대학교 교육방송국 KUBS, 고려대학교 교육TV방송국 KUTV, 고려대학교 TV방송국 KTN[167]이 있었고 사실상 같은 건물인 홍보관 별관에는 문과대학 학생회실·동아리실·각 과/반 학생회실[168], 국제학부 학생회실[169] 등이 있었다.
4층 구조의 건물[170]로 용도는 그야말로 무궁무진하다. 학생회실, 과방, 방송국 스튜디오, 중앙동아리 서화회[171], 문과대학 풍물패 푸른소래, 문과대학 연극동아리 녹두극회, 문과대학 밴드 녹두울림, 사격부, 조정부, 스키부, 태권도부, 고대산악회, 안암산우회[172]에 심지어는 대학원 열람실과 교수 연구실, 교양독어실과 교양불어실까지 정말 온갖 시설이 들어찬 잡탕 다용도 건물. 2층에는 남자 휴게실과 여자 휴게실이 있어 공강에 많은 학우들이 부족한 잠을 자기 위해 찾는다. 별관 3층에는 우체국도 있다. 휴일에는 잉여로움을 견디지 못한 기숙사생들이 과방에 찾아와 짜장면 등을 시켜 먹기도 한다. 과방에 악기 하나둘 두고다니는 학생들이 많기에 기타나 베이스 연주 소리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사실상 자치공간이지만 밤 늦은 시간(10시 이후)에는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그러나 방송 관련 동아리들이 위치한 건물 특성상 늘 밤샘 인구가 상주한다. 실제로 여름날 더운 건물 안에서 후끈한 컴퓨터의 열기와 씨름하다 보면 경비실 바로 앞에 위치한 자판기의 유혹이 마치 삼손을 유혹하던 데릴라의 그것과 같다.
이 자리에 제2정경관이 지어질 계획이었으나, 정경대가 독점하지 않고, 문과대와 공유하는 9층 규모의 인문사회관이 세워질 예정이다. 이에 따라 2018년 9월 초 고대신문사는 청산·MK문화관으로, 9월 30일에는 문과대학 학생회실과 산하 과반 학생회실/동아리방, 중앙동아리 서화회, 영자신문사가 국제관 1층으로 이전하였다. 3개 방송국들은 미디어관 지하2층으로 이전하였다. 그리고 홍보관은 2019년 2월 현재 완전 철거되었다.
2023년 최종적으로 홍보관 자리에는 인문사회관이 아닌 문과대학이 사용하는 인문관을 세우고, 정경대학은 SK미래관의 3~5층을 리모델링해서 쓰는 것으로 계획하였다.
[1] 해당 사진에는 본관을 중심으로 서측으로는 SK미래관과 국제관, 동측으로는 백주년기념삼성관과 중앙도서관까지만 나와 있다. 서측으로 민주광장 인근 건물들과 동측으로 사범대학, 경영대학 등은 시야에 보이지 않는다.[2] 중앙고등학교의 구. 본관은 화재로 1934년 소실됐다.[3] 그래서 본관의 총장이 사용하는 화장실은 대리석이 깔렸으며 본관 화장실에는 비데가 설치되어 있는 것을 모르는 이들이 태반이다.[4] 연세대학교 백낙준 총장과 비슷한 경우에 해당한다.[5] 1층에 직원들을 위한 '휴게실 같은 회의실, 회의실 같은 휴게실'이 있다.[6] 건물 입구의 중앙광장 방면 벽면으로 고개를 조금 들면 전서체로 '개교 30주년 기념 도서관'이라고 쓴 현판을 볼 수 있다.[7] 김성수는 도서관 건물의 건립을 포함한 기념사업의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전국을 다니며 직접 모금 운동을 전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8] '중앙도서관 구관'으로 표기하기도 한다.[9] 영문도 Graduate School에서 30th Anniversary Memorial Library (Graduate School)로 고쳐 적었다.[10] 정주영 회장의 아들들은 고려대 출신이 없지만, 동생인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회장이 고려대 출신이기도 했다. 이러한 인연이 있어 나중에 현대의 기부금으로 경영본관과 아산이학관이 지어졌다.[11] 실제로 도서관 홈페이지에는 중앙도서관(구관)으로 표시한다.[12] 대도관이 만들어진 때부터 열람실로 쓰인 유서 깊은 열람실이다.[13] 2021년 4월에 새롭게 단장했다. 단, 대학원생(교육대학원, 국제대학원 등 전문/특수대학원 포함)만 이용 가능하다.[14] 2000년 이전까지는 그냥 흙길이어서 나름 숲속 같은 운치가 있었으나, 비가 오면 진흙탕이 되기도 하고 안전 문제도 제기되는 점을 감안해 아스팔트로 포장했다.[15] 최단거리 루트다 보니 이 길을 이용하는 학생은 많은데 길은 좁아서 수업 직전 혹은 수업 직후에 정체현상이 항상 발생한다.[16] 길 중간에 다람쥐 모형이 있어서 다람쥐길이라고 알고 있는 학생들도 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17] 다람쥐길 뒷편 언덕 위가 인촌기념관이라 밀회 장소로 딱이다.[18] 덕분에 과거에 대외부총장 직제가 있던 시절, 부총장을 위해서인지 2층 화장실에 본관과 더불어 비데가 설치되어 있다.[19] 1975년 착공, 1978년 완공[20] 건립 당시에는 절대 작은 규모가 아니었으나, 그 직후인 1979년 완공된 연세대 중앙도서관을 비롯해 서울대나 경희대, 건국대 등의 중앙도서관이 더 크고 인상적으로 지어지면서 상대적으로 작아 보이는 상황이 되었다.[21] 2005년 백주년 기념관 건립으로 중앙도서관 신축 가능성은 거의 제로가 됐다고 볼 수 있으며, 대신 꾸준한 리모델링을 통해 기능적 개선은 이뤄지고 있다.[22] 총 300석 규모의 3개의 열람실이었으나 2019년 리모델링 이후 초록색 타일 마감의 Forest Zone과 파란색 타일 마감의 Ocean Zone의 2개의 열람실(총220석 규모)로 개편되었다.[23] 원래는 도서관 폐관 시간과 같이 문을 닫았으나 2017년 초의 중앙광장 개편과 맞물려 제1열람실(노트북 열람실)은 24시 운영으로 전환되었다.[24] 2019년 리모델링 이후 없어짐.[25] 조지훈이 생전에 소장/저술하고 고려대학교에 기증한 자료들이 소장되어 있으며, 이 자료들은 열람이 가능하다.[26] 모든 도서관(중앙도서관, 과학도서관, 의학도서관, 해송법학도서관)은 단과대에 관계없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과학도서관에서 대출한 책을 중앙도서관에 반납해도 된다. 그나마 제한되는 게 있다면 의학도서관은 자료실 내 무인대출/반납이 불가능하며, 의학도서관 자료 구입 신청은 의대생 같은 의료원 소속만 가능하다는 정도다.[27] 이 때문에 과거의 호그와트 같은 분위기가 사라졌다는 비판이 학우들 사이에서 많았다. 게다가 2층 이상 층들은 원래 분위기 그대로라서 이질감이 심하다. 2022년 현재도 고파스에서 고파서들이 부산대학교 새벽벌도서관의 고풍스러운 리모델링과 대조하며 가루가 되도록 깔 정도이다. 마찬가지로 고급스럽게 리모델링된 녹지캠퍼스 해연의학도서관과도 대조된다. #[28] 도서관 4층 제3자료실을 거쳐서 들어갈 수 있는 서고 6층과 7층이 서양서 단행본 비치 구역이다.[29] 도서관 3층 제2자료실을 거쳐서 들어갈 수 있는 서고 4층과 5층이 동양서 연속간행물 비치 구역이다.[30] 참고로 서양서 연속간행물은 서고 3층에 있으며, 2층 제1자료실의 통로를 통해 들어갈 수 있다.[31] 단 법학도서관은 예외로, 그 곳에서 빌린 책은 반드시 법학도서관을 재방문해서 반납해야만 한다.[32] 반납은 캠퍼스 건물 곳곳에 설치된 자동반납기에서도 가능하다.[33] 이와 마찬가지로 연세대 도서관도 학생증을 제출하면 고대생의 출입이 가능하다. 물론(?) 둘 다 소장자료 대출은 불가능하다.[34] 예컨대 도서관에서 검색한 결과 책이 비치된 곳이 중앙도서관에 하나, 과학도서관에 하나 이런 경우다.[35] 원래의 명칭은 종합생활관이었으나 나중에 라이시움으로 바뀌었다. 참고 : http://www.aurum.re.kr/Bits/BuildingDoc.aspx?num=1501[36] 공사기간 : 2000년 6월 30일~2002년 3월 5일. 참고[37] 고려대 중앙광장 이후 서강대 곤자가 플라자, 이화여대 ECC, 한양대 행원파크, 한국외대 미네르바 컴플렉스, 가천대 비전타워, 연세대 백양로 등 학교 개발 부지가 부족한 많은 수도권 대학교의 지하 캠퍼스 개발이 유행처럼 번졌다고 한다.[38] 연세대 잠바야 워낙 흔하고 남자가 이대나 성신여대 잠바를 입고 오는 경우도 심심찮게 보인다.[39] 까페 앞에 'KU 그린캠퍼스 제휴' 어쩌구 하는 녹색 표지가 붙어 있으면, 본인 텀블러를 사용해서 1,000원 정도 할인 받을 수 있으니 참고. 고려대 텀블러가 아니더라도 상관없다.[40] 원래는 홍보관에 있었으나 신축된 미디어관으로 입학처가 옮겨가면서 이곳으로 이사했다. 이사하면서 운영시간이 많이 단축되고 감상실을 강의실로도 사용하게 되어서 감상실 측의 반발이 있었었다. 최근에는 온전히 감상실로만 사용하는 것으로 보인다.[41] 700여석 규모[42] 원래는 1,100여석 규모로 열람 전용실, 유선노트북 열람실, 무선노트북 열람실, 24시 열람 전용실, 대학원 열람실의 5개의 열람실이 존재하였으나 2017년 3~5월의 공사 이후 무선노트북 열람실과 24시 열람 전용실이 CJ Creator Library로 바뀌었다. 대신 기존의 열람 전용실이 24시간 체제로 변경되었고, 백주년기념관 1층의 정보검색실이 C-Lounge라는 이름의 열람실로 변경되었다. 그럼에도 이전보다 열람실 규모가 작다.[43] KU Pride Club에 가입한 기부자들이 이용할 수 있는 라운지인데, 재학생들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44] 당시 기준으로 공사비+시설비 650억 중 무려 418억을 부담했다. 이건희 회장이 LG-POSCO 경영관보다 더 크고 좋게 지으라고 지시해서 내부도 고급 대리석으로 마감했다.[45] 학교 측에서도 '삼성'은 잘 안 붙이고 주로 '백주년기념관'이라고만 부른다.[46] 후술할 H구역 신설로 100여석 늘어나 현재는 1,000여석이다.[47] 나머지 2/3는 박물관에서 인촌 김성수의 생애를 다룬 인촌기념전시실을 운영하는 데 쓰고 있다.[48] 휴게실을 만들 경우 이곳에 들어가기 위해 대열람실을 통과해서 들어가야 되는데 그럴 경우 대열람실의 면학 분위기에 방해된다.[49] 자세한 내용은 분류:고려대학교박물관 소장품 참조.[50] SK미래관 공사와 함께 대강당 리모델링 공사가 진행되었고 2019년 완료[51] 본관, 중앙도서관(대학원도서관), 서관(문과대학)에 이은 새로운 건물이어서 그런 듯하다.[52] 지어진 순서가 여섯 번째이다.[53] 일단 공식적으로는 '강당'이고 대부분의 학생들은 '서관 대강당'이라고 부른다.[54] 주로 문과대 풍물패[55] 리모델링 이후에도 한 세트는 강의실에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56] 현재는 학교의 여러 사무실들이 차지하고 있다.[57] 이러한 사용도 2010년대 들어서 4.18기념관 지하2층 대강당이 대체하더니 SK미래관 공사로 완전히 대체하게 되었다.[58] 고려대 물리학과 졸업[59] 처음 계획이 나왔을 때는 SK교육관이라는 이름이었다. 그러다 잠시 미래교육관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가 SK미래관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바뀌었다.[60] 대칭으로 지은 백주년기념관 건설 비용이 건축비만 2005년 물가로 580억 원이고 내장 비용이 70억 원으로 총 650억 원짜리 건물이다. 백기관 열람실 의자 하나 가격이 당시 가격으로 10만원을 넘었다고 한다.[61] 대강당의 설계를 맡은 사람이 본관, 대학원, 서관, 사대본관의 설계를 담당하기도 했던 박동진이다.[62] https://www.youtube.com/watch?v=iQ59ybatxAA[63] 해당 층에 있던 캐럴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고, 4층에 약 40여 개 남아있다.[64] 중앙광장은 지하에 열람실, 카페, 편의점을 비롯한 각종 편의시설 및 주차장이 집중되어 있고 구조 상 하중이 심하게 가해질 수 있어서 웬만한 집회나 행사는 허가가 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사실상 학생들에게 중앙광장의 용도는 술 먹는 잔디밭일 수밖에 없었다.[65] 2012학년도까지 존재했었던 작은 매점이다. 홍보관 앞에 있었으나 결국에는 자체 재정 문제 때문에 폐업하고 빈 공터가 되었다.[66] 그래서 예전에는 학생식당을 '지하 1층' 현재 2층을 '1층'으로 불렀다. 그런데 2000년 부근부터 지하 1층을 1층으로 부르기 시작해서, 지하 1층 지상 4층의 건물이 지상 5층짜리 건물로 바뀌었다.[67] 2015년까지 있다가 2016년에 복사실이 문을 닫으면서 무주공산이었던 곳을 학생휴게실로 리모델링하였다.[68] 원래 현재의 호상과 백기관 사이 도로에 자리에 있던 소극장을 허무는 대신 올려준 것이다. 하지만 크기는 이전 소극장에 비해 1/3 정도 줄어들었다.[69] 정경관의 강의실 수가 강의 수에 비해 매우 적은 관계로 짬 안되는 정대 교수/강사들의 전공수업은 대부분 옆 건물인 교양관에서 이루어진다. 심지어 정대 교수님(주로 조교수급)들 연구실조차 교양관 5층에 있는 경우도 있는데 말해 무엇하리.[70] 가끔 가다가 우당이 독립운동가 이회영 선생의 호를 따온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는데, 우당은 박종구 교우의 호를 딴 것이므로 혼동하지 않도록 하자. 당시 기사[71] 기계실에서 시작된 화재라는 이야기가 있다.[72] 특히 스타벅스가 입주한다고 하자 "자본주의의 상징 스타벅스가 교내에 들어올 수 없다"며 학생들의 시위도 있었다.[73] 그도 그럴 것이 원래 이곳을 학생복지관으로 만들겠다고 했다가 학교 측에서 돌연 말을 바꾼 것이기 때문이다.[74] 책은 자기개발서 같이 종류가 상당히 제한적이다.[75] '인촌 선생은 밤마다 주례를 서신다'라는 말이 돌 정도였다.[76] 특히 자연계 지역에 만들어질 예정이었던 π-Ville 22는 원래 2017년 8월 준공 예정이었으나 언제 공사를 시작할지도 모르며 π-Ville 148과는 다르게 부지 확보도 제대로 안 된 상황으로 보인다. 일단 해당 파이빌은 계획상으로 생명과학관 동관 뒤편(고려대로22길 6-3)에 조성될 예정이다.[77] 실제로 SK 미래관, 중앙도서관 1층 리모델링, CCL 등 강의실보다는 새로운 공간 조성에 집중했다.[78] 사진출처: #[79] 물론 중앙광장, 하나스퀘어에도 '출장소'가 있어 간단한 건 해결할 수 있지만 환전같이 복잡한 업무를 처리하려면 이곳이나 안암로타리에 위치한 하나은행 안암동지점 같은 '지점'으로 반드시 가야 한다. 특히 현금 관련 업무는 출장소에서 처리 자체가 불가능하다.[80] 제일 가까운 ATM은 우당교양관 2층이다. 그 외에는 국제관이나 중앙광장까지 가야 한다.[81] 참고로 법구관 지하1층 계단강의실은 경사가 급한 편이다[82] 이는 신법학관이 '법신' 혹은 '법신관'이라고 불리지 않는 데서 확실히 알 수 있다. 문대생들은 신법학관을 지칭할 일이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83] 고려대는 기본적으로 석조건축을 지향하는데, 경영본관과 구법학관, 정경관 등이 이런 원칙을 깼다. 최근에는 해송법학도서관, 미디어관, 현대자동차경영관, 운초우선교육관, CJ법학관 등이 석조건축 양식에서 벗어나 있다.[84] 심리학부 학생회실만 국제관에 위치하고 있다.[85] 실제 조건 상으로는 법전원 전용 독립 건물만 보유하면 되었다.[86] 매우 큰 규모의 계단식 강의실이다.[87] 옆에 있는 동글리나 앞에 있는 대학원도서관은 안암동에 속한다.[88] 이 건물은 60억원짜리 건물인데 나머지 돈은 한진중공업 조남호 회장이 기부했다.[89] 참고로 조남호 회장이 경영대 출신이라 원래 경영대에 기부하려던 것을 어윤대 당시 총장의 권유로 법학도서관 기부로 돌린 것이라고 한다.[90] 당시 공사 금액은 확인이 어려우나, 건물 규모 등을 감안할 때 상당한 액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91] 초기에 예상했던 예산은 약 30억원이었으나, 리모델링 과정에서 건물 외장뿐 아니라 내부 음향시설, 칠판, 책걸상 등을 최신식으로 교체하면서 총 62억이 들었다.[92] 실제로 학생들은 구관, 신관으로 불렀다. 수강 신청시 강의실 번호는 AXXX, BXXX의 형태. 이후 엘포관 건립 이후 강의실 번호는 AXXX, BXXX, CXXX로 불렀다. 본관에 강의실이 없어진 지금은 다 옛날 얘기다.[93] 경영잔디라고 부른다.[94] 반대로 2층에는 남자화장실이 없다.[95] 사물함이 있던 곳은 원래 대형 강의실이었다가 의자를 제거하고 사물함 보관실로 만들어진 곳인데, 이렇게 개조하는 과정에서 반대쪽 문을 개방했더니 학생들이 드나들면서 소음이 심해져 그 옆의 연구실들이 피해를 보게 되면서 잠그게 되었다는 카더라가 있다.[96] 2016년 여름 경영본관 리모델링으로 경영본관 내 사물함은 없어졌다.[97] 경영 78, 4층 SUPEX홀 옆 위치[98] 상학 61, 2층 위치[99] 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 소장을 역임하는 등 대표적인 재벌기업 비판론자로 유명하다. 경영대학장 역임 이후 고려대 총장에 출마해 당선됐으나 논문 표절 등의 문제가 터지면서 낙마. 현재는 서울대 경제학부 초빙교수로 재직 중.[100] 그 전까지 대학교 전체 기준이 아닌 단과대학 기준으로 이런 발전기금을 모은 사례는 없었으며, 그 이후에도 극히 드물다.[101] 다음은 이필상 교수의 회고. "기업체 사장들은 잘 만나주지도 않았어요. 몇번, 몇십번을 찾아갔습니다. 각 강의실마다 건물마다 기부한 분의 이름을 쓰겠다며 돈이 없다는 분들에겐 책상에라도 이름을 쓸 수 있으니 약간만이라도 도와달라고 청했습니다. 끝없이 부탁하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리하여 돈을 모았고 기부하신 분들의 이름을 강의실마다 책상마다 새기게 됐던 것입니다." 지금은 좀 달라졌지만 1990년대 말에 기업체 찾아다니며 고개 숙이는 대학 교수는 상상하기 어려웠다.[102] 경영대 교수 충원기금으로 활용됐다. 덕분에 고대 경영대는 국내 경영대 중 최대 규모의 교수진을 보유하고 있다.[103] 경영본관 레노베이션에 투입됐다.[104] 수당학술정보관 마련에 투입됐다. 삼양그룹 창업주인 김연수는 고려대를 창립한 김성수의 동생이고, 김연수의 3남 김상홍 삼양그룹 명예회장과 김상홍의 장남인 김윤 삼양그룹 회장은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는 등 삼양그룹과 고려대 경영대학은 연관이 많다.[105] 아이러니인 것은 이필상 교수가 대표적인 재벌 개혁론자인데 정작 경영대 발전기금은 대부분 재벌 대기업에서 기부했다는 것.[106] 인테리어는 신라호텔을 보유하고 있는 호텔신라가 담당했다. 그래서 그런지 2022년 기준으로 지금 보아도 아주 고오급지다.[107] 고대역에서 캠퍼스로 올라올 때 가장 먼저 보이는 문이다.[108] 중앙광장이 아래쪽, 엘포관 1층이 위쪽이어서 올라가기 전용 에스컬레이터이다.[109] 유원건설 등의 후원을 받아 1988년 건립된 건물로 학우강당, 정진초, 경영도서관, 말굽형 강의실 등이 있었다.[110] 그 과정에서 파라, 온돌 방식의 여학생 휴게실, 반실, 동방이 없어졌다. 여학생 휴게실과 학생 자치공간은 따로 현차관에 마련되어 있지 않아 경영대의 자치공간은 사실상 전무한 상태가 되었다.[111] 이 과정에서 사대분관과 조형학부 건물을 허물어 논란이 있었다. 결국 조형학부가 미디어관에 들어가고, 라이시움을 증축했다.[112] 기부 금액에 상관없이, 지하 3층부터 가나다 순으로[113] 각 스터디룸마다 스마트 TV가 있고, TV에 연결이 가능한 HDMI선이 있었으나 분실이 지나치게 많이 일어나 결국 HDMI 케이블은 모두 회수하고 RGB 케이블만 비치해 놓고 있다.[114] 스터디룸을 빌리려면 '대여 신청하는 학생'이 경영대학 소속이어야 한다.[115] 만료 30일 내에 1회 연장 가능하다. 비용은 무료.[116] 하지만 스터디룸과 강의실을 제외하면 콘센트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엘포가 라운지나 쇼파 근처에서 쉽게 콘센트를 발견할 수 있는 것과는 다르게) 종종 소화전을 열어서 그 안에 있는 콘센트를 사용하는 용자도 발견된다.[117] 엘포관 280억, 현차관 440억[118] 사실 그 동안의 물가 상승과 현차관이 엘포관보다 더 큰 건물인 것 등을 감안하면 현차관 건축비로는 엘포관급으로 고급지게 짓기가 힘들다고 한다.[119] 엘포관은 5개[120] 노트북을 따로 연결했을 경우 한 스크린은 노트북, 다른 화면에는 강의실 데스크탑 화면을 띄우는 것도 가능하다.[121] 하지만 2014년 가을학기 진행 중에, 지하 3층 강의실에서 옆 강의실 교수님 목소리가 다른 강의실에도 출력된 적이 있다.[122] 후술할 미친 목련[123] 법학관 구관, 우당교양관, 운초우선교육관, 국제관, 청산·MK문화관(주로 일어일문학과), 심지어는 라이시움 등으로 분산되어 있다.[124] 컴실 쪽에서 올라가면 5층이 사실상 3.5층이여서 층계로 구분이 되어 있지만 로비쪽에서 올라가면 시계탑 계단을 따라 올라가는 것인데 시계탑에서 층수를 세는 방법 역시 옛날식의 3층 다음의 5, 6, 7층 형식이기 때문이다.[125] '고그와트', '고대와트'라고도 부른다.[126] 바깥쪽에 있는 연구동의 3층과 같은 높이에 있어서 3층으로 분류했던 것 같다.[127] 1968년 당시 쌍용그룹 회장이었던 김성곤이 희사한 것이다.[128] 소리가 꽤나 명쾌해서 잘 하면 제기동에서도 들릴 정도다.[129] 그런데 이 얘기를 고대신문에서 2010년 만우절 특집으로 써먹었다. #[130] 정확히는 6층. 서관에는 원래 4층이 없었기 때문에 7층으로 표기되어 있다.[131] 이 시기에는 본관을 법대가 사용했다.[132] 이쪽의 서관은 西館 맞다.[133] 문과대학 행정실이 있는 건물이니 딱히 이상한 일은 아니다.[134] '승무'가 새겨져 있음.[135] 각각 3,600명, 3,400명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136] 원래는 홍보관에 고대신문사가 있었으나 2018년 홍보관이 철거됨에 따라 이곳으로 이사했다.[137] 한일 誠信 학생통신사 교류 모임을 가지는 공간이다. 고려대와 일본 와세다대학을 주축으로 한일 화해와 협력을 모색하는 대학생 교류 모임을 이곳에서 진행한다.[138] 연면적 6천평 이상으로 엘포관의 1.8배, 현차관의 1.5배에 달하는 규모[139] 2003년 여름에 방영하였던 MBC 드라마 <옥탑방 고양이>가 고려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주인공(김래원 분)이 법과대학 학생인데 극 중 법과대학이 실제로는 문과대학 서관으로 설정되어 있어 근처에 있는 정경대도 자주 극중에 등장. 잘 보면 공사 중이다.[140] 구자경 명예회장의 호를 딴 다른 대학 건물로는 연세대학교 경영대학의 상남경영원이 있다.[141] 모텔과 비슷하다고 해서 실제로는 정경장이라고 불렀다.[142] 1990년대 말만 해도 남학생 여학생 비율이 거의 7:3 정도였고, 이공계는 10:1이 넘었다. 기계공학과의 경우 1990년대 어느 학번에는 총원 160명 중 여학생이 딱 한명이었는데 한 학기 후 자퇴했다는 전설적인 이야기도 전해진다.[143] 행정학과의 H모 교수님에 의하면 본인이 처음 고려대학교 교수로 오고 나서 정경대 부흥을 위해 정책대학원에 여성 대학원생을 많이 모집했는데, 첫날 그 대학원생들이 화장실이 부족하고 냄새 난다고 불평해서 교수님이 직접 나서서 화장실을 만들고, 개선했다고 한다.[144] 경제학과는 상경계니 말할 것도 없고, 행정학과도 행시 때문인지 이중전공생 숫자가 매우 많다. 행정학과 전공 수업 들어가보면 과반이 타과생이다. 정외과도 상황이 비슷하다.[145] 홍보관은 원래 신문방송학과와 학내 언론기관에서 쓰던 건물이라 그렇다. 지금은 온갖 잡다한 학내 집단의 집합소가 되어버렸다.[146] 6층도 2~3개 정도 있다.[147] 고대는 문과대의 규모가 타 대학에 비해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용 건물은 서관 하나고 구법관을 빌려쓰고 있긴 하지만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수업은 말할 것도 없고 과실이 문과대가 아닌 홍보관에 있는 상황이다. SK관을 문과대학 전용 건물로 하고 홍보관에 들어가 있는 문과대 관련 시설들은 전부 SK관으로 이전한다면 홍보관을 허물어도 상관없다. 그러나 염재호 총장의 얘기에 따르면 SK관은 문과대학 건물이 아닌 인문사회계 종합강의동으로 쓰인다고 한다. 따라서 SK관이 지어지더라도 문과대학의 공간 부족은 해결되지 않고, 그러한 상황에서 홍보관을 허문다면 문과대학 각 학과 과실이 갈 곳이 없어진다. 결국 홍보관을 허물고 지어지는 건물을 정경대학 전용 건물로 할 수는 없고 문과대학이랑 나눠 써야 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148] KT 3G 기준으로 2011년 당시에는 신호 상태가 심히 안 좋았으나, 2013년 현재는 많이 나아진 편이다.[149] 2019년에도 데이터 연결이 불안정한 적도 있었다.[150] 주로 경제학과-정경포효반, 통계학과-정경6반이었다고 한다.[151] 주로 정치외교학과-정경1반, 행정학과-정경5반이었다고 한다.[152] 사범대학·교육대학원, 체육교육과 제외. 사범대학·교육대학원 행정실은 운초우선교육관에, 체교과 행정실은 체육생활관에 있다.[153] 밋밋한 콘크리트 건축물로서 석조건축이 아닌 데서 오는 느낌 차이도 꽤 큰 것으로 보인다.[154] 리모델링을 할 예정이기에 시설 투자를 안 한다는 것인데, 리모델링 시기는 정해진 것이 전혀 없다.[155] 중앙도서관 방향에서 바라본 모습[156] 실제로는 고시반 전용.[157] 원래는 GS25였으나 코로나 때문에 망하면서 2023년에 바뀌었다.[158] 교우회관 방향에서 바라본 모습[159] 몇몇 분반은 다른 곳에서 진행하기도 한다.[160] 원래는 국제학부생을 위한 라운지가 있었으나 2016년 초 갑자기 학교 측에서 통보 없이 공사를 진행해 논란이 있었다.[161] 2018년 홍보관 철거 당시 문과대 자치공간 뿐만 아니라 고대 영자신문사, 체육계 동아리들, 학생회관 바깥에 동방이 있는 유일한 중앙동아리인 서화회도 같이 이사해왔다.[162] 조형학부관, 조형학부별관이 현차관 공사로 인해 헐리면서 이곳으로 오게 되었는데 아무래도 디자인조형학부보다 미디어학부를 위해서 지은 건물이다보니 연구실과 강의실이 매우 부족한 상황이고 과방도 없다. 실제로도 7~10층 밖에 못 쓰고 있다. 이 때문에 2018년 초 자연계캠퍼스에 있는 애기능생활관을 증축, 리모델링하여 디자인조형학부와 공과대 건축학과가 같이 쓰는 건물을 마련하고자 하였으나 애기능생활관 건물 사정상 증축이 어려워 그대로 미디어관에 눌러앉게 되었다.[163] 고려대학교 교육방송국 KUBS, 고려대학교 교육TV방송국 KUTV, 고려대학교 TV방송국 KTN 세 개의 방송국이 모두 지하 2층에 위치해 있다.[164] 건국대에 있는 KU시네마테크 운영주체와 동일[165] 사범대학 분관 철거반대대책위원회가 본관 시설부를 점거하기도 했었다.[166] 사진 출처: #[167] 교육매체실로 홍보관 건물의 관리주체이다.[168] 원래는 교양관 1, 2층에 있었으나 우당교양관으로 리모델링하기 위해 학교 측에서 잠시만 홍보관으로 옮겨달라고 해서 옮겼다가 우당 박종구 교우의 뜻(우당교양관을 교육·연구 목적으로만 쓸 것) 때문에 결국 홍보관에 계속 남아있게 되었다.[169] 진짜 학생회실은 국제관에 있고 여기는 사실상 창고로 쓰고 있다.[170] 정확히는 민주광장 쪽의 4층짜리 진짜 홍보관과 국제관 쪽의 3층짜리 홍보관 별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무도 구분해서 부르지는 않지만 홍보관 별관에 있는 방의 호수 앞에는 A가 붙어있어 호수를 통해 구분할 수 있다.[171] 중앙동아리 중 유일하게 학생회관 바깥에 동방이 있다.[172] 고대산악회가 학생 위주라면 안암산우회는 교수 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