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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특수전사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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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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陸軍特殊戰司令部
ROK Army Special Warfare Command (ROK-SWC) /
ROK Army Special Forces (ROK-SF)[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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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10000><colcolor=#fff> 안되면 되게 하라
MAKE THE IMPOSSIBLE POSSIBLE
창설일 1958년 4월 1일(제1전투단)
1958년 10월 1일(제1공수특전단)
1969년 8월 18일(특수전사령부)
상징명칭 사자부대[2]
약칭 특전사
부대훈 충성, 명예, 단결
소속 대한민국 육군
상급부대 대한민국 육군본부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평시)
한미연합사령부 / 한미연합특수전구성군사령부(전시)[3]
종류 기능사령부작전사령부
규모 군단[4]
역할 특수작전[5]
사령관 중장 곽종근 (육사 47기)
부사령관 공석[6]
참모장 준장 박정환 (육사 49기)
주임원사 원사 000(특전부사관 000기)
위치 경기도 이천시 마장면
<nopad>
홈페이지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특전부사관 지원센터 | 특전캠프

1. 개요2. 상세3. 역사4. 수뇌부5. 편제6. 출신인물
6.1. 사령관6.2. 장교6.3. 특전부사관6.4. 특전병
7. 특징
7.1. 임무7.2. 훈련7.3. 해외 활동7.4. 부대 문화와 분위기7.5. 계급별 특징
7.5.1. 부사관·병7.5.2. 장교
7.6. 특전 여군7.7. 장비
7.7.1. 사제장비 금지 논란
7.8. 탑팀7.9. 전우회 활동7.10. 충성회관
8. 사건사고9. 기타
9.1. 부대가9.2. 대중매체
10.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육군특수전사령부령
제1조(설치와 임무) 육군의 특수전을 수행하기 위하여 육군에 육군특수전사령부(이하 "사령부"라 한다)를 둔다.

대한민국 육군 소속의 특수작전부대. 명칭은 특전사로 더 많이 불린다. 전사령부를 줄인 말이다.[7]

2. 상세

6.25 전쟁 당시에 대활약하였던 특수 공작 부대인 켈로부대를 모체로 하여 세워진 부대이며, 유사시 육·해·공의 다양한 루트로 적진에 깊숙히 침투하여 게릴라전/민사심리전[8], 수색·특수정찰, 요인암살 및 납치/직접타격, 인질구출, 주요시설 폭파, 사보타주, 항폭유도, 병참선 교란, 외국내부방어 등 각종 국군의 특수작전을 전문적으로 수행한다. 그리고 전시가 아닌 평시에 대한민국 내부로 무장공비들이 침투했을 때 벌어지는 대간첩작전에서 주도적으로 적을 잡거나 소탕하는 임무도 수행한다.

전쟁이 발발하면 오키나와미국본토에서 증원된 미 육군 그린베레네이비 씰을 비롯한 미국 특수부대들은 주한미군 특수전사령부[9]로 배속된다. 그리고 이 주한미군 특수전사령부와 대한민국의 육해공군 특수부대들(육군 특전사, 해군 특수전전단, 공군 특수부대)이 병합되어 연합특수작전구성군사령부[10]를 구성하여 한미 연합 특수작전을 수행하게 된다. 그리고 대한민국 육군 특전사령관이 이 연합특수작전사령부의 사령관으로 지정된다.

부대장의 계급을 고려해서 형식적으로 보면, 사령관중장, 부사령관소장인 군단급 부대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군단이 맞고 육군특수전사령관군단장으로 분류된다.[11] 즉, 특수작전군단에 해당된다. 단, 특수부대이기 때문에 모든 인원을 다 합쳐도 1개 사단급이 안되며, 실제 전투병력 인원은 일반 보병사단의 약 절반 이하인 5,000여명 정도다. 일반 육군 보병이 아닌 특수부대, 非보병대는 임무의 성격과 효율성 등 개념이 판이하게 다르므로 휘하에 두는 병력 수가 똑같지 않다. 당장 같은 소대라고 해도 보병은 인원이 30명 ~ 40명 정도지만, 전차는 9명 ~ 12명(전차 3대 승무원)에 불과하다는 차이가 있다. 그래서 제5공화국 이전까지는 특수전사령관이 소장 자리였다. 똑같이 소장 자리였던 국군보안사령관 및 수도방위사령관과 함께 제5공화국 때 중장 자리로 격상된 것이다.

대한민국 육군에는 특수전 병과라는 게 따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특수부대 소속 전투원인 부사관의 병과 역시 큰 분류로는 보병으로 분류된다. 다만 보병 내에서 일반 보병(111 XXX)이 아닌 특전 보병(112 XXX)으로 구분된다. 해군의 경우도 병과 단위에선 특수부대 병과가 따로 없고 함정 병과 장교들이 들어가지만, 부사관 직별 및 수병의 병종으로 특전을 따로 떼어 놓고 있다.

대표적인 부대 구호로는 "안 되면 되게 하라.", "사나이 태어나서 한번 죽지 두번 죽나", "귀신처럼 접근하여, 번개처럼 타격하고, 연기처럼 사라져라." 등이 있다.

보병, 정보 병과의 육군 장성급 장교의 상당수는 특전사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다. 심지어 특전부사관의 단기 의무 복무 기간보다 긴 기간 동안 복무한 장성급 장교들도 수두룩하다. 두 병과의 경우 대장까지 진급하려면 특전사 쪽 근무가 필수이기 때문이며, 기갑, 포병 등 특전사 진입이 불가한 전투 병과엔 요구되지 않는다.

예전엔 딱딱한 어감의 '특전사'란 명칭보다는, 입에 잘 붙는 어감의 "공수부대"라는 명칭으로 더 많이 불려왔다. 다만, 특전사를 '공수부대'라 부르는 것은 엄밀한 군사용어가 아닌 편의상의 용어일 뿐이다. 특전사는 예를 들어 미 육군제82공수사단같은 공수부대처럼 어느 한 지역에 보병과 포병, 경기갑 등을 포함한 대규모의 병력과 화력, 물자를 집중적으로 투하하여 적의 정규전 부대와 전면전을 펼치는 정규전 공수부대가 아니라, 북한의 전 지역에 소규모 단위로 분산 침투해서 게릴라전 등의 특수전을 벌이는 특수전 부대다. 참고로 현재 대한민국 국군에는 미 육군의 공수부대 같은 개념의 부대가 없다.[12] 현재는 충분한 헬기가 없는 관계로 과거 1960년대에 육군 제5보병사단을 공수사단으로 전환한 적이 있지만 몇 년 뒤에 도로 원위치 됐다.

공수부대라고 불리게 된 이유를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특수전사령부 창설(1969년) 이전엔 사령부 예하가 아니라서 특전사가 아닌 ‘제1공수특전단’이 부대의 명칭이었는데 이 제1공수특전단이라는 긴 이름을 줄여서 공수단이라고도 불렀었다. 그러다가 특수전사령부가 창설되고 예하부대가 '단'에서 '여단'급으로 증편된 70년대부터는 더는 ‘단’급이 아니게 되었으므로 기존의 약칭인 공수단 대신에 ‘공수부대’라고 흔히 부르게 되었고[13] 이 공수부대라는 편의상의 호칭이 관습적으로 굳어져 버린 것이다.

특전사는 전투파병이 전무한 대신, 원래 임무와는 거리가 먼 각종 행정이나 부대관리 등의 부차적인 업무 때문에 타국 특수부대보다 과중한 잡무에 시달린다. 각종 국가행사나 지역행사, 외국 VIP들의 방한 때마다 경호 및 각종 시범을 보여주는 부대도 특전사이고, 심지어는 한강 바닥의 쓰레기를 건져내는 수중 정화 작업에도 해군 UDT, SSU와 함께 매년 한두 차례씩 동원될 정도이다. 해외 특수부대에선 당연히 저런 경우는 없다. 작전대원이 아닌 서포트 유닛의 장병 혹은 외주를 맡긴다.

장교들도 전투 보직은 병과가 모두 보병 혹은 정보이지만, 과거에는 장교의 출세를 위한 필수조건이다 보니 기갑이나 포병, 심지어는 정훈 등 비전투 병과임에도 불구하고 특전사로 전출와서 부중대장 같은 전투 직책을 이수한 경우도 많았으며, 실제 사례로 김태영 전 국방부 장관이나, 차지철 전 대통령경호실장 등은 원래 포병 병과였음에도 불구하고 중간에 특전사로 전입와서 근무를 한 적이 있다. 현재는 포병, 기갑 등 특전과 무관한 병과는 진입 자체가 불가하며, 공병과 통신은 특전사로 올 수 있다. 참고로 공병 병과 소위 또는 중위가 특전사에 오면 여단 직할 시설대장이 되는데, 소위-중위 계급에서 휘하 병력을 가장 많이 거느릴 수 있는 지휘관 보직이다.[14] 비전투 병과는 특전사 내 비전투 지원 부대에 근무한다.

여단 내에 PX 뿐만 아니라 복지회관도 존재한다. 영내 인원은 평상시에는 이용하지 못하지만, 중대 회식을 하거나 당직 근무자에게 보고 하면 이용 가능하다. 하지만 이 역시 여단별로 다르다. 일례로, 13여단에선 영내인원, 심지어는 병사까지도 당직근무자에게 보고하면 자유로이 사용할 수 있다.

특전사 출신 예비군은 예비군훈련을 특전사 예하 여단에서 받을 확률이 아주 높다. 일부 특수보직과 제주도 출신을 제외하면(제주도에는 특전사 예하여단이 없다.) 특전사 예하여단에서 예비군 받을거라 생각하는게 편하다. 그렇기에 자신이 복무했던 부대로 갈 확률이 일반 육군보다 높고, 같이 복무했던 전우를 만날 확률 또한 높다.

3. 역사

6.25 전쟁에서 활약한 켈로부대(KLO부대)가 정전 후 해체되고 소속 부대원들이 대한민국 육군 각 사단들로 뿔뿔이 흩어져 버려서, 음성적인 북파부대를 제외하면 공식적인 특수부대가 따로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이에 육군 수뇌부는 정식 특수부대를 창설하기로 계획하고 대한민국 육군본부 특전감실 주도로 1957년부터 특수부대 창설 작업에 들어갔다. 6.25 전쟁에서 활약한 KLO부대와 각종 유격부대들을 통합한 부대인 제8240유격첩보부대 출신 베테랑 대원들을 창설요원으로 차출하여 1958년 4월 1일 제1전투단을 창설한다. 초대 지휘관은 백문오 대령이었다.

같은 해 4월 15일부터 제1전투단 창설요원들은 일본 오키나와에 주둔하는 美 육군 특전부대 (그린베레)[15]의 제1특전단[16] 교육대로 파견가서 공수교육과 특수전 위탁교육을 받았다. 같은 해인 1958년 10월에 '제1공수특전단'으로 부대명을 개칭했다. 미 육군 그린베레 제1특전단의 정식 영어명칭인 '1st Special Forces Group (Airborne)'에서 괄호 풀고 Airborne자를 앞으로 빼서 자연스럽게 번역하여 한국식 부대 명칭으로 삼은 것이다. 그래서 당시 1950~60년대에 한국 육군 제1공수특전단을 영어로 표기할 때 미 그린베레 제1특전단과 똑같이[17] 'ROK Army 1st Special Forces Group (Airborne)'이라고 썼었다. 미 그린베레 제1특전단 한국 분견대 소속으로 한국 공수특전단에서 파견근무하던 그린베레 대원들이 찍은 1950~60년대 제1공수특전단 시절 사진자료들 링크.

"제1조: 특수전을 수행하게 하기 위하여 육군에 육군특수전부대(이하 특전부대라 한다)를 둔다."라고 시작하는 육군특수전부대령이 1959년 4월에 공식 제정되었다. 이 법령은 이후 특수전사령부가 창설된 다음 해인 1970년 5월에 제정된 육군특수전사령부령으로 대체되었다.

제1공수특전단으로 시작된 특전사 부대는 한국군 공수교육과 특수전교육의 본거지였을 뿐 아니라, 한국군 최초의 전투용 스키훈련 실시 등 여러 특수 교육/훈련 분야에서 '한국군 중 최초'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특수전 분야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수행해 왔다. 그리고 여러 타 특수부대들에게도 특수전학교 위탁교육을 통해 각종 훈련을 꾸준히 교육시켜주고 전파시켜주는 역할도 해왔다. 그래서 육군 특전사는, 해상/해중 침투 분야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해온 해군 UDT/SEAL과 함께, 한국군 특수전 훈련의 양대 메카라고도 불린다.

1960년대부터 흑산도 대간첩작전과 울진/삼척지구 대간첩작전, 괴산 연풍리 대간첩작전, 북평지구 대간첩작전, 서귀포 대간첩작전 등 각종 대간첩 작전에 투입되어 무장공비들을 사살하는 수훈을 세웠다.

베트남 전쟁에서도 파월 맹호부대와 백마부대 예하에 배속되어 사단 공수특전대원으로 참전하여 장거리 정찰, 적 교란 및 기습작전 등의 특수작전 임무를 수행하였다.
파일:attachment/육군 특수전사령부/파월공수특전대2.jpg
파일:attachment/육군 특수전사령부/파월공수특전대1.jpg
1968년 월남전 적진에서 작전중인
백마부대 배속 특전사 대원들
베트남에 파병된 특전사 대원들
1969년에 제1공수특전단과 동해안경비사령부 예하 2개의 유격여단을 통합하여 '특수전사령부'를 창설하였다. 이 특수전사령부를 줄여서 부르는 약칭이 바로 '특전사'이다. 그리고 1972년에 제1공수특전단은 부대 인원을 증원하여, 대령이 부대장이었던 기존의 단급 부대에서 준장이 부대장인 여단급 부대로 증편되었고[18] 부대명도 공수특전'단'(Group)에서 공수특전'여단'(Brigade)으로 개칭되었다. 이렇게 사령부가 창설되어 독자성이 강화된 후엔 특전사 대원들로만 구성된 공수지구대가 파월 맹호부대와 백마부대에 별도 편성되기도 하였다.

1970년대에는 부대 증편이 이루어졌는데 기존엔 3개 여단이었으나 1974년에 7, 9 여단을 창설했고 1977년에 11, 13 여단이 창설됨으로써 총 7개 여단으로 늘어났다.

1976년엔 북측의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에 대한 보복작전에 투입되기도 하였다.

특전사 예하의 일부 여단이 신군부가 정권 장악을 위해 일으킨 12.12 군사반란(1979년)[19]에 가담하고, 5.18 광주 민주화운동(1980년)[20]에 진압군으로 투입되어 국민들에게 비판을 받기도 했다.

1980년대 중반을 지나, 1986 서울 아시안 게임1988 서울 올림픽 행사의 경호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였고, 또한 수해와 붕괴사고를 비롯한 각종 재난, 재해에 우선적으로 투입되어 수색, 인명구조, 부상자 치료 및 복구사업에 활약을 하였으며, 그 외에도 한강 수중정화 활동 등 각종 봉사활동에도 적극 참여하며 국민의 부대로서의 특전부대의 위상을 점차 회복하였다.

1996년엔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에 투입되어 공비들을 사살하는 수훈을 세웠다.

사령부 본부와 3여단이 원래는 서울특별시 송파구 거여동에 있었는데, 2016년 8월 2일 사령부 본부와 3여단이 경기도 이천시로 이전했다. 그리고 원래 있던 그 자리에는 위례신도시가 한창 건설 중이다.

미 육군 그린베레 제1특전단의 한국 특전사 상설 파견대인 제39 특전단 파견대(39th Special Forces Detachment)[21]도 원래는 송파구 거여동의 한국 특수전사령부 옆에 있었는데, 특수전사령부가 경기도 이천시로 이전하자 미 특전단 파견대도 같이 이천시로 이전하였다.

4. 수뇌부

파일:대한민국 대통령 문장.svg
대한민국 대통령
파일:대한민국 국방부 심벌.svg
국방부 장관
파일:대장 계급장.svg
육군참모총장
파일:중장 계급장.svg
[[육군특수전사령관|{{{#fff 특수전사령관}}}]]
파일:South_Korea_President_Yoon_Suk_Yeol_portrait.jpg 파일:2024-국방부장관 김용현.jpg 파일:51대_참모총장_사진1_1.jpg 파일:곽종근중장.jpg
윤석열 김용현 대장 박안수 중장 곽종근

5. 편제

파일:육군특수전사령부 부대마크.svg 육군특수전사령부 예하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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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출신인물

6.1. 사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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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조문환
2대
조천성
3대
정병주
4대
정호용
5대
박희도
6대
최웅
7대
육완식
8대
민병돈
9대
이문석
10대
서완수
11대
김형선
12대
장창규
13대
정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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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남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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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중
16대
류해근
17대
김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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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군기
19대
김진훈
20대
김상기
21대
최용림
22대
신현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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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익봉
24대
장준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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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범
26대
장경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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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영신
29대
김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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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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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장교

<rowcolor=#fff> 성명 비고
<colbgcolor=#010000> 김기표 군법무관. 검찰관, 군판사 등 역임. 2001년 4월 1일 임관, 2004년 3월 31일 중위 만기전역.
김영중 2006년 10월 31일 임관, 2009년 10월 30일 중위 만기전역.
김오랑 육사 25기, 특전사령관 비서실장 재직 중 12.12 사건이 터졌을 때 사령관을 지키다 총에 맞아 전사했다.
김충립 학군사관 6기, 특전사령관 보안반장 재직 중 12.12 사건이 터졌을 때 김오랑 소령이 특전사령관 지키려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본 인물이다. 이후 김오랑 소령이 특전사령관 지키다 전사하자 김오랑 소령의 권총을 빼앗지 않은게 후회 됐다고 한다.
신광섭 학사53기 소위로 임관하였으며, 3년 복무 후 중위로 예편했다. 미래에셋증권 근무 후 현재 매일경제 애널리스트로 활동 중이다.
이동훈 군의관. 대위로 임관했으며, 3년 복무 후 진급 없이 예편했다. 제9공수특전여단에서 여단 의무대장으로 복무했다.
이탄희 군법무관. 공수 645기, 2005년 4월 1일 임관, 2008년 3월 31일 대위 만기전역.
정태균 학군 56기. 특전장교 소위로 임관하였으며, 2020년 6월에 의무복무기간을 채우고 중위로 예편했다. 원래 래퍼였으며, 예편 이후 래퍼로 돌아갔다.
정필재 군법무관. 1991년 5월 17일 임관, 1994년 2월 28일 대위 전역.
최영재 학사장교 45기로 임관하여 2014년에 전역할 때까지 약 9년 동안 제707특수임무단, 제11공수특전여단, 제13공수특전여단, 동명부대, 아크부대 등에서 다양한 특수 작전을 수행하였다.

6.3. 특전부사관

<rowcolor=#fff> 성명 비고
<colbgcolor=#010000> 강지형 특전부사관 출신으로 9공수특전여단 중사 전역. 전역 이후 프로파일러 활동, 공식적으로 시사평론가 탐정직업과 관련된 전문 서적 4권을 집필한 작가이며 80여 편의 칼럼을 투고했다. 국방부 EBS 프로파일러 편에 출현, 현(주)강지형을 경영하는 대표.
김성웅 특전부사관으로 제13특수임무여단에서 중사로 전역 후 현재 종합격투기 선수 활동을 하고 있으며 SBS 순정파이터 출연 및 2023년 11월 18일 블랙컴뱃 플라이급 챔피언을 달성했다.
김정기 특전부사관 출신으로 만화가로 활동을 했었으며 밀리터리 계열 그림들을 자주 그리며 특히 특수부대 고증에 빼어난 실력을 자랑했다. 안타깝게도 2022년 10월 3일 프랑스 파리에서 심근경색으로 갑작스럽게 별세했다. 향년 47세.
김종만 4년 복무 후 만기전역
노명래 중사 전역 후 2020년 1월 5일 소방공무원에 입직하였다. 이후 2021년 6월 30일 울산광역시에서 상가건물 화재진압 중 순직하였다.
박문호 특전부사관으로 제11공수특전여단에서 중사로 전역했다. 코리안 좀비팀 소속으로 정찬성 제자이며, 2017년 프로파이터로 데뷔하였다. 2022년 정찬성의 유투브 채널 컨텐츠 "좀비트립"에 출연하여 큰 인기를 얻었다.
박수민 특전부사관으로 제707특수임무단에서 중사로 전역 후 유튜브 박중사 채널로 유튜버 활동을 하고 있다.
박수훈 특전부사관 중사 전역 후 2022년 소방공무원에 입직하였다. 2024년 1월 31일 문경 육가공공장 화재 사고 당시 출동했다가 현장에서 순직했다.
박은하 특전부사관 출신으로 제707특수임무단에서 복무, 현재 '은하캠핑' 유튜브로 활동 중이다. 해당 문서로.
박준우 특전부사관으로 제13특수임무여단에서 상사로 전역 후 현재 가수 활동을 하고 있으며 강철부대에 출연했다. 2008년 특전사탑팀 출신이다.
방창석 특전부사관 출신으로 10년 정도 근무했으며 상사로 전역했다고 한다. 베이스 점프를 성공한 아시아 최초의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Team S' 2호점의 대표를 맡았다. 또한 2017년 2월 말에 미국의 모 방송에서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XTM의 '국가가 부른다(XTM)'와 KBS의 '휴먼서바이벌 도전자'에 출연했다.
이건태 특전부사관 중사 전역 후 2009년 소방공무원에 입직하였다. 수필가, 영상제작자 등으로도 활동.
이관훈 특전부사관으로 제707특수임무단에서 중사로 전역했다. 현재 배우활동을 하고 있다.
이병민 특전부사관으로 제9공수여단에서 중사로 전역했다. 8BallTown 소속 싱어송라이터로 활동 중이다. 해당 문서로.
이성촌 특전부사관으로 7년 반 복무한 뒤 중사 전역. 1996년 소방공무원 구조특채로 입직.
이용 1998년 8월 29일 특전부사관으로 임관, 특수임무단에서 의무부사관으로 복무. 2004년 12월 31일 본인 전.공상으로 중사 의병전역. 제21대 국회의원 역임.
이종선 특전부사관 출신으로 국제평화지원단에서 중사로 전역후 특수부대 부사관 준비생 양성학원 스톤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으며, 유튜브 이스톤 채널로 유튜버 활동을 하고 있다.
이진봉 특전부사관으로 제707특수임무단에서 중사로 전역 후 국가가 부른다, 강철부대에 출연한 경력이 있다. 현재 진봉이의 영상일기라는 채널로 유튜버 활동을 하고 있다.
이창준 특전부사관으로 제707특수임무단에서 상사로 전역 후 유튜브 이상사클라스 채널로 유튜버 활동을 하고 있다.
이형석 특전부사관으로 제707특수임무단에서 중사로 전역했다. 현재 배우활동을 하고 있다.
정진만 특전부사관 출신으로 예비역 상사, 폭파, 화기, 정작 등 다양한 임무를 수행했으며 현재 대학 및 정부기관 교수로서 육군발전자문위원, 특전사발전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북한군 출신과 함께 태상호의 밀리터리톡 유튜브 채널에서 활동 중이다.
조성환 "잇빨중사"로 알려진 인물이다. 특전부사관으로 제9공수특전여단에서 1984년부터 1989년까지 복무하다가 중사로 전역했다. 2001년 특전사 시절의 수기를 집필하여 "공수부대 잇빨칼럼"이라는 제목으로 출판했고, 이후 네이버에서 제공하던 개인홈페이지 서비스에 이들 원고를 올려서 유명세를 탔다. 네이버 개인홈페이지 서비스가 문을 닫은 후에는 다음 카페잇빨중사홈피로 옮겼다.
주영국 1990년 7월 24일 특전부사관 임관, 1994년 12월 31일 중사 만기전역. 1995년 소방공무원에 입직.
한호준 특전부사관[22] 출신으로 제5공수여단에서 중사로 전역 후 SBS 생활의 달인 673, 674, 675, 676회 외 다수의 방송에 출연하였으며, (주)한스캠 벤처기업회사와 포천에 위치한 달인캠핑장을 운영하고 있다.
함인철 특전부사관으로 제7공수특전여단 특수임무단에서 중사로 전역했다. 현재 특전사 밀리터리 의류, 각종 브랜드의류 스포츠의류 단체복 도/소매 및 사회후원 활동도 함께 하고 있다.

6.4. 특전병

<rowcolor=#fff> 성명 비고
<colbgcolor=#010000> 고평화 국제평화지원단 복무.
김도현 KBS 성우. 1970년 입대.
김주성 제7공수특전여단 복무. 파쿠르 선수, 스턴트맨, 크리에이터이다.
김상경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당시 투입된 전력이 있다.
김혁건 2009년 입대, 제13공수특전여단 복무.
문재인 제19대 대통령. 제1공수특전여단 제3특전대대 본부 작전과 교육훈련병.[23] 보직은 지역대 작전과 행정병이었다.
민진웅 제3공수특전여단 의무병
박상철 제9공수특전여단 제55특전대대.
서영석 1979년 입대한 뒤 낙하산 훈련을 받던 중 부상당하여 1981년 의병전역하였다. 2006년부터 2010년까지 경기도의회 의원을 역임했다.
송주호 제707특수임무대대에서 복무.
유승균 래퍼 활동을 하다가 현재 인터넷 라디오 진행 중.
윤여철 주영대사. 1985년 11월 18일 방위병으로 입대하여 육군특수전사령부 일반행정병으로 복무한 뒤 1986년 12월 27일 일병으로 소집해제.
윤장호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유일한 국군 전사자. 탈레반의 자살폭탄 테러로 전사하였고 당시 계급은 병장, 보직은 다산부대 8진 민사반 통역병이었다. 현재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
윤종빈 제7공수특전여단에서 복무.
윤종오 제22대 국회의원. 지역구는 울산광역시 북구.
이승기 2016년 3월 16일 논산훈련소 수료 후 특전병으로 차출. 제13공수특전여단 본부 정보특기 행정병으로 배치받았다.[24]
이완규 1981년 11월 20일 입대, 정보작전병 복무 중 본인 전·공상으로 1983년 12월 11일 상병 의병전역.
이진우 제1공수특전여단 제2특전대대 대대장 운전병으로 복무.
장현진 제3공수특전여단에서 복무.
조승연 작가.
주지훈 육군특수전사령부[25] 상근예비역으로 복무.
지대한 해바라기에서 병진이 형 역할로 유명한 배우. 제9공수특전여단에서 특전병으로 복무하였다.
최용주 kt 롤스터 소속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2012년 7월 6일 입대, 2014년 4월 초 병장 만기전역.

7. 특징

7.1. 임무

각 공수특전여단 예하에 있는 특전대대들이 수행하는 주요한 전시 특수작전은 아래와 같다. 특수작전 항목도 참조.
  • 특수정찰/정보: 적 후방에 침투하여 적군 동향이나 각종 정보들을 수집하여 보고
  • 게릴라전/비정규전: 빠르게 치고 빠지기를 반복하며 피해를 입히고 괴롭힘과 동시에 적의 군사력과 주의를 전선으로부터 분산시킴.
  • 민사심리 교란작전: 적 지역의 불만세력들을 선동, 규합하여 그들의 도움을 받고 현지 정보도 얻으며, 이들 인원들을 무장시켜 반정부군을 조직하여 단독으로 타격하기 어려운 적의 대규모 부대를 공격, 해당 지역을 수복하는 것을 목표로 함.
  • 직접타격 : 중요 시설 파괴 혹은 고가치 목표물 사살
  • 항폭유도: 아군 전투기를 통제하여 목표지점에 대한 정확한 항공화력 투하를 유도
  • 사보타주: 적군의 무기고, 비행장, 레이더, 군수공장 등 군사시설이나 철도, 다리, 도로, 전기/통신망, 유류저장고 등 중요 기간시설들을 폭파/파괴해서 적측에게 피해를 입힘
  • 외국내부방어: 치안이 불안정한 국가, 전쟁 중인 국가로 파병되어 현지의 치안을 유지하고 군사를 훈련시켜 해당 국가 정부의 군사능력 향상에 도움을 주는 임무. 민사심리/정보작전 필시 동원.
  • 요인암살: 전면전 종료 목적으로 적국 수괴를 암살.

단 전시에는 한미통합작전사령부 예하의 특수전사령부 (한미 공동)에 소속되어 육군 관련 전구작전에 투입된다. 한국군의 작계 수행권한을 한미연합사가 가지고 있고 미군 사령관의 지휘를 받게 되면 한•미 특수부대들도 통합이 일어나게 되어 육군의 관리를 받게 되지만 작전 지휘권은 통합특수전사령부로 이관된다.

참고로 여군은 행정과 민사심리전, 대테러작전에서 여성이 필요한 분야에서만 임무를 수행하기 때문에 혹시라도 여자 특전사가 꿈이라면 폭넓고 종합적인 각종 특수전 관련 훈련을 받을 수 있을거란 기대는 하지않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고공교육의 경우는 수료 가능하지만 스쿠버 교육은 정식 해척조 교육이 아니라 여군용 간이교육이 별도로 있고 이마저도 비정기적으로 이따금씩만 열리는 교육이라 받을 기회가 적다. 애초에 특전사 여자대원들은 전반적인 특수전용이 아니라, 여성이 필요할 수 있는 예외적인 상황들을 대비해서만 존재하기 때문에 그런 특이 상황들에 필요한 한정된 교육만 받을 뿐이다. 그래서 특전사 여군들은 항공사 객실 승무원이나 간호사 등 여초 집단의 직업인으로 위장한 뒤 침투하는 훈련을 받는 경우가 있는데, 707 출신인 은하캠핑에서 언급된 적이 있었다. 또한 이런 이유로 특전부사관은 여군을 매 기수마다 선발하지도 않으며 2기수마다 한번 씩만 선발한다. 그나마도 5명 안팎으로 극소수만 선발한다. 장교의 경우 역시 여군은 특전사에 어지간하면 보내지 않아 여군 특전 장교는 엄청나게 희귀하다. 현재까지 여군으로 입대해서 특전사 출신 장성급 장교가 된 사람은 강선영 혼자이다.


이러한 특수작전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육지/해상/공중의 침투 수단들을 다 동원해서라도 적 지역 깊숙히 침투해야 하므로, 공수훈련, 해상침투훈련, 산악훈련 등을 받는다. 특히 한반도 지형 특성상 작전환경이 주로 산악지형인 관계로 산에서 빠르게 기동하기 위한 산악극복훈련과 체력훈련이 중요하다.

이렇게 다양한 임무들이 맡겨져 있다보니 여단 특전대대들은 전시에 적 후방에 침투하면 비교적 오래 머무르며 장기적인 게릴라전을 주로 펼치는 경우가 많다. 반면에 707특수임무단은 임무 상 평시에는 대테러작전, 전쟁시에는 적 핵심부 등에 침투해 정교한 직접타격 작전들을 수행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여단이나 707특수임무단이나 부대운영 실정을 떠나서 원래 취지만 놓고 보자면, 둘 다 신체적인 능력과 군사적인 전문성이 몹시나 중요시 된다고 볼 수 있다.

7.2. 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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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공강하훈련 VR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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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술사격

적 후방지역 침투와 작전 수행을 위해 육·해·공의 다양한 훈련을 하는데, 공중은 낙하산 강하 훈련 및 헬기 레펠/패스트로프 훈련, 해상은 전투수영과 고무보트훈련 등 해상침투훈련, 지상은 산악레펠 등 각종 산악훈련과 침투, 비트 구축, 은거, 생존, 타격, 전술사격, 사보타지, 도피·탈출, 장거리 행군, 설한지 스키훈련, 방향유지 훈련, 항폭유도, 민사 심리전, 각 주특기 훈련 등의 다양한 훈련을 받는다.

특전사 훈련 중 일반에게도 잘 알려진 천리행군(약 400 km)의 경우, 사실 단순한 행군이 아니라 3주간의 내륙종합전술훈련 후 도보로 퇴출, 복귀하는 훈련으로, 마지막 1주일여간의 행군이 피날레를 장식한다. 내륙전술훈련 3주간 이동 거리만 해도 수백 km가 훌쩍 넘어간다고 한다. 가끔 매스컴에서 잊을만하면 천리행군 중인 부대원들의 물집잡힌 발을 보도하는데, 사실 내륙종합전술훈련에서 이미 아작난 발들이다. 복귀 후에도 몸이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오는 데 한 달 정도 휴식을 취해야 하기에 이때만큼은 웬만해선 무리하지 않는다.1998년 4월 1일, 충북 영동군 민주지산에서 천리행군 중이던 5공수특전여단(현 국평단) 부대원들이, 갑작스런 폭우 이후에 4월임에도 불구하고 체감온도가 갑자기 영하 30도까지 내려가는 이상기후와 폭설 등의 악천후로 인해 저체온증으로 대위와 중사, 하사 4명 등 6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26] 2014년부터 특전사 천리행군의 방식과 성격이 크게 변하게 되었는데, 특전사 초임하사들이 자대배치 전 특수전교육단 초급반 때 천리행군을 엄격한 자격교육 수료제처럼 시행하는것으로 바뀌었다.[27] 마치 지옥주처럼 7일간의 천리행군 동안 잠을 안자는 무박으로 강행군하고, 중도 포기자는 모두 퇴교시키는, 즉 일종의 살아남기식 자격훈련으로 바뀐 것이다.

특전병들은 비전투원이기 때문에 천리행군을 필수로 받지 않아도 되지만, 천리행군 지원자에 한해서 위와 같은 무박 지옥주 방식으로 훈련을 실시하고, 천리행군을 끝까지 완주하여 이수한 자는 전투특전병이라는 칭호와 함께 포상휴가와 상장 등 여러 혜택을 받게 된다.(특수전사령관의 검토 후 결국은 2016년 3월에 공식 폐지되었다)
파일:external/bemil.chosun.com/P1010181.jpg파일:external/bemil.chosun.com/%C0%FB%B1%BA%BA%B9%C0%E5.jpg
적성 장비와 복장으로 훈련 중인 모습

그 외에도 적 후방지역에서 작전시에 적 장비를 노획하여 사용할 경우에 대비한 적 장비 사용법도 익히는데, 그래서 모든 특전사 대원들이 적성화기(AKRPG류) 훈련을 정기적으로 받는다. 그리고 차량, 선박 등을 탈취해 운용해야 할 경우들도 대비해서 각종 차량, 기계화 차량, 탱크, 전동차나 기차, 그리고 각종 선박 등의 운전 및 조작, 항해술도 배운다. 2009년 실제로 서울 지하철 노조 파업이 장기화되자 일부 특전사 부사관이 투입 되었고, 서울 지하철 7호선의 명물로 알려진 '빨간 넥타이' 기관사 역시 특전사 출신이다. 육·해·공 부사관 중에도 기관사 교육을 받는 경우가 있는데 철도노사의 대규모 파업이 있으면 투입된다. 이에 착안해 특전부사관으로 복무한 자 중 희망자를 한국철도공사 기관사로 특별채용하는 제도가 있었으나, 이런 한국철도공사 기관사 특채 제도는 2010년대 들어 폐지되었다.

특전사의 훈련들 중에서 적진의 중요 표적에 몰래 접근하여 폭격 목표의 정확한 좌표와 정보를 아군에 보고하는 항공폭격 유도 등 화력유도 능력배양이 갈수록 중요시되고 있는 추세다. 대한민국 국군의 항공폭격 자산을 유도하는 SOTAC은 특전사에서 전부터 있었지만, 더 나아가 국군이 아닌 연합군의 자산까지 활용하는 다양한 화력유도 임무를 수행하는 합동화력관측관(JFO: Joint Fires Observer) 능력을 인정받는 국제 회원국으로 한국 최초로 승인받았고[28], 2017년엔 JFO 자격자를 독자적으로 양성하는 특수전학교 내의 JFO학교가 2017년에 공식적인 JFO 양성 기관으로 국제 승인되었다. 타국 군대의 화력자산을 유도할 수 있는 자격요원을 배출해내는 국제 승인 JFO과정은 한국에서 뿐 아니라 동아시아에서도 최초고, 세계에서도 6번째라고 한다.

전방쪽 부대에 대한 불시 경계태세 검열을 목적으로 합참 전비태세검열실 주관하에 전방 부대들에 미리 훈련상황이라는 통보를 전혀 안 하고 특전사 대원들을 전방 부대와 강원도 부대들에 침투시키는 비밀 훈련이 실시된 적도 있었다. 특전사 대원들은 그 부대들의 경계대원들을 제압하고 침투한 뒤 무기고와 탄약고 등 주요시설를 접수하고 연기처럼 퇴출하는 데 모두 성공했다. 해당 부대들의 지휘관들은 실제 북한 특수부대의 침투인 것으로 파악하고 해당 지역에 국지도발 최고대비태세인 ‘진돗개 하나’가 발령됐을 정도로 실전 상황에 준하는 훈련이었다.기사

7.3. 해외 활동

파일:external/bemil.chosun.com/%C6%AF%C0%FC%BB%E7%20%B5%BF%C6%BC%B8%F0%B8%A3.jpg파일:external/bemil.chosun.com/BEMIL102_2090_1.jpg
동티모르에 파병된 모습 이라크에서 미 그린베레 대원들과 함께 사격훈련 중인 모습

특전사는 월남전에 맹호와 백마 예하에 배속되어 참전했고, 이후에도 199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까지 소말리아, 앙골라, 동티모르,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레바논, 아랍에미리트, 남수단, 필리핀 등의 지역에 평화 유지를 포함한 여러 임무를 가지고 해외 파병에 앞장서서 참여하고 있다.

2001년엔 미국이 우리 정부에게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한국의 육군 특전사를 파병해달라고 강력하게 희망하며 요청했으나, 국군이 타국 전쟁에 휘말리는 것에 대한 반대 여론을 의식한 우리 정부가 거절해서 결국 실전투작전 목적의 특전사 파병은 성사되지 못했다. 아프간의 추운 겨울에서의 산악 작전을 가장 잘 해낼 수 있는 특수부대를 검토해본 결과, 미국이나 우방국 특수부대들 중에서 한국의 특전사가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한국의 특전사 파병을 이끌어내기 위해, 미국은 베트남 전쟁 때를 예로 들어 이번에도 전쟁 특수를 한국에 듬뿍 안겨 주는 등[29] 경제회복을 도와줄 것이고, 국군 전력의 현대화도 지원해주겠다는 등의 당근을 제시하기까지 했다. 이와는 별개로 샘물교회 선교단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건 때 납치된 우리 인질들을 구출하기 위해 특전사 1 ~ 2개 여단 투입을 검토했지만 성사되지 못했다.

미국 등 타국의 각종 특수부대들과도 상호 위탁교육 등 교류도 활발하다. 예전부터 동남아 등의 여러 국가들이 특전사의 교육단에 위탁교육을 들어와 특수훈련을 배워갔으며, 2011년엔 아랍에미리트의 초청으로 각종 특수전 훈련을 UAE에 전수해주러 특전사 대원들로 이루어진 '아크부대'를 편성하여 파견가기도 했다. 그 외에도 몽골네팔 등 여러 나라의 다양한 훈련장에서 연합훈련을 하기도 한다.

네팔히말라야에서 각국 특수부대 베테랑들을 대상으로 실시되는 국제 고등산악훈련과정에서 한국 특전사 대원들이 연달아수석을 차지하기도 했다.

그리고 레바논에 파병된 동명부대 소속 특전사 대원들이, 세계 파병부대들끼리 실력을 겨루는 UN 국제 체력경연대회, UN 국제 사격 대회, UN 국제 마라톤 대회에서 모두 우승을 휩쓸어서 대한민국 특전사의 위상을 세계에 떨치기도 했다. 2013년 11월엔 남수단에 한빛부대로 파병 나가 있던 특전사 대원들이, 새벽에 인근지역의 NGO 사무실에서 근무하던 한인들이 AK소총으로 무장하고 침입한 무장강도단에게 목숨을 위협받는다는 긴급신고를 받고 즉각 출동하여 무장강도들을 제압하고 재외국민들을 무사히 구출해내기도 했다. 이를 통해 유엔 연락장교인 마이크 채드윅 호주군 대령으로부터 "구출작전의 정석을 보였으며 남수단임무단(UNMISS)의 성공적인 작전사례가 될 것이다."라는 찬사를 듣기도 했다.

7.4. 부대 문화와 분위기

  • 육군 장교들이 높은 계급으로 진급하려면 한 번쯤은 복무해야 하는 곳이다. 장성급 장교, 특히 대장으로 진급하려면 중요한 부대들 여러 곳에 복무한 경험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진급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전방부대(메이커 사단 등)와 특전사 등 골고루 복무해야 진급에 유리하다. 실제로 전현직 장성급 장교들의 상당수가 월계기장을 달고 있다.
  • 그러나 해외 특수부대와 차별화되는 특이점은, 위관급 시절 팀에서 복무한 이력 혹은 비슷한 정예부대에서 복무한 이력, 하다못해 관련 지식이 전무한 장교들도 오는 것이 가능하다. 즉, 특수전에 대해 무지한 야전출신 간부들도 영관급으로 올 수 있다. 이러한 문화 탓에 특수전사령부 장교들의 질이 심각하게 저하되고, 특전사가 일반 보병부대화되어가는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 미필이 아닌 이상은 다 아는, 일반화가 아닌 사령부 정책 차원에서의 엄연한 사실이며, 연락사무소의 미합중국 육군 특수작전부대 요원들도 국군 특전사의 매우 저조한 역량적 한계는 매우 엄연히 지적하는 부분이다. 이로인해 일어나는 웃기지도 않은 여러 사례가 바로 사령부, 여단 차원에서 지시가 내려오는 군장 위치 통일, 사격시 탄피받이 착용, 사제장비 제한, 평가식 측정, 필수교육훈련 제한 등이 있다. 관련 기사
  • 장교의 경우 갓 소위로 임관할 때 부중대장으로 특전사로 오거나 중위 혹은 대위 때 오게 된다. 소위는 지원한 인원들의 OBC성적과 체력적으로 우수한 이들을 선발해서 배치된다. 특히나 향후 커리어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국평단이나 707특임단과 같은 곳에 배치 받으려면 그 중에서도 우수한 성적, 특히 체력적으로 굉장히 괄목할만한 성적을 받아야 한다.[30]
  • 특전부사관의 의무 복무 기간은 4년이나, 다른 간부 임용 과정과 동일하게 복무 기간엔 산입되지 않는 부사관후보생으로 복무하는 3개월이 있기 때문에, 임관 후 특수전 후반기교육 3개월과 자대 배치 후 자대 생활 3년 9개월을 합쳐서 실질적으로는 총 4년 3개월이다.
  • 특전병은 전투중대(팀)에 배속되지 않는다. 과거에 특전사 여단과 인원을 급격히 늘리던 1970년대 중반경부터는 특전병이 팀에도 몇 명씩 소속되는 경우가 있었으나[31], 1980년대부터 팀에서 특전병을 차차 줄여나가서 1990년대 초반경부터는 더이상 팀에는 병이 소속되지 않게 된다.[32]
  • 잘 모르는 이들은 '특전사'를 '특전부사관'의 준말로 오해해서 특전병은 특전사가 아니라고 우기는 이들도 있는데, 특전사는 '부대'의 이름이니 특전사 부대 소속이라면 특전부사관이든 특전병이든 특전장교든 당연히 다 특전사인 것이다. 물론 병사들은 팀에 배치되는 작전대원은 아니다.
  • 남성 특전부사관의 경우 707특임단이나 국평단에 지원하지 않는 이상 각 공수특전여단 중 무작위로 배치되지만 지방 출신들은 자신의 지역으로 연고지복무희망을 신청할 수 있다. 신청할 수 있는 여단은 다음과 같다.
    • 7공수특전여단, 11공수특전여단, 13특수임무여단
  • 여성 특전부사관은 사령부 본부 예하에 있는 여군중대로 배속됐었으나 여군중대가 해체되고 여러 여단과 부서에 분산 배치되는 것으로 바뀌었다.
  • 2015년 이전까지는 육군사관학교 출신 장교는 졸업 후 최초 보직이 무조건 소대장이어서 소위 때에는 특전사에 배치되지 않고 중위 때 한 기수당 8명 정도가 특전사로 배치되었다. 이후 이런 차별적인 악폐습은 없어졌는지 육사 졸업 후 참모 보직을 받아서 육사 출신 소위가 특전사 부중대장을 맡는 경우도 생겼다.[33] 보병·정보병과가 아닌 통신·공병소위는 예전부터 바로 특전사로 오기도 했다. 다만 공병 소위는 여단 시설대장[34]이 되지 부중대장이 되지 않는다. 통신 역시 대대 통신장교이지 부중대장이 아니다. 그런데 특전사 부중대장이 되면 훈련 강도가 장난이 아니기 때문에 서로 기피한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일반보병부대에서 코흘리개 병사들과 알콩달콩 꽁냥거리며 편하게 기본보직 이수하고 중위까지 지내는 편이 몸도 마음도 편하기 때문이다. 특전사 부중대장이 되면 몸은 몸대로 축나고 부하들도 없이 거친 인간병기들 틈바구니에서 생존 경쟁을 하느라 많은걸 포기해야 하는데 미쳤다고 할까?당연히 서로 꺼린다. 야전 지휘 경험을 중시하는 육사 출신 소위가 특전사 부중대장을 하게 되면 보통 중위때 일반 보병부대의 소대장으로 전출을 가려고 악을 쓴다. 어쨌거나 소대장 보직은 해봐야 하기 때문에 윗선에서도 갓 소위 때 특전사 온 장교가 그러면 전출 갈 수 있게 만들어 준다. 다만 이건 대한민국 특전사의 인사 구조가 기형적이라서 그런 것이고 외국 특전사는 그린베레처럼 경험이 매우 풍부한 준사관이 부중대장을 담당한다. 대한민국 특전사가 이런건 이 역시 과거 군사정권의 잔재인데 각 부대마다 장교를 최대한 많이 박아넣다 보니 이렇게 되었을 뿐이다. 중대장이야 군대는 무조건 장교가 지휘를 해야 한다는 암묵의 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전세계 어느 특전사든 대위가 오지만 부중대장은 원래대로라면 특전부사관 중 가장 뛰어난 사람이 와야 맞다. 애초에 특전사를 포함한 특수부대 자체가 일반 부대에서 잘 하는 인원을 선발해서 부대를 구성하는 게 맞다. 특수부대는 일반부대에 비해 업무 강도가 큰 폭으로 높기 때문이다.
  • 2012년부터 일반 부사관 및 일반 병들도 특전부사관으로 지원이 가능해졌다. 이전에도 부관, 의무, 통신 병과의 경우 일반부대에서 전입 가능했다. 이 경우는 '특전부사관'이 아니라, '특전사 소속 부사관'으로, 사령부나 여단 직할대에서 근무한다. 특전부사관은 병과가 보병 뿐이다.
  • 주특기는 정작(정보작전)·폭파·화기·의무·통신, 5가지로 분류한다. 후보생 때 희망 주특기를 조사하지만, 적성검사에 따라 결정된다.
  • 특전사는 일반 보병 부대와는 편제가 다른데, 분대와 소대가 없고 최소단위가 중대(팀)다. 규모 순서대로 5가지 단계가 존재한다.
    규모 중대(팀) 지역대 대대 여단 사령부

    지휘관 대위 소령 중령 준장 중장

    1개 중대(팀)는 12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팀장(중대장)은 대위. 부중대장은 소위 또는 중위이고 몇몇 중대는 부사관 선임자(상사 이상)가 부중대장을 맡는다. 단, 이는 대한민국 국군 특전사가 특이한 경우이다. 다른 해외 특수부대에선 경력 없는 초짜간부, 그것도 장교를 팀에 부중대장씩이나 되는 직책에 놓지 않으며, 최정예부대로 갈수록 작전팀에 준사관을 제외한 장교 인원은 없다. 미합중국 육군 특수작전부대에서는 1개 중대(팀)에서 장교는 팀장(중대장, 18A)인 대위와 부중대장(180A)인 준위이고, 준위의 경우 보통 10년 가량의 사병경력이 무조건적으로 존재하므로 다르다. 참고로 미군 준위는 계급에 따라 대위보다도 더욱 권한이 높다. 보통 1개 중대가 8~12명 정도라서 지휘 인원이 매우 적고, 일반 보병보다 심화된 보병 전술을 적용하기에 적응이 어려우며, 부사관들의 경험과 체력을 따라가지 못해 무시당하는 장교들이 많다. 그래서 장교들 사이에선 필수 진급 코스이면서 동시에 장교들의 무덤이라 불린다. 편제상 대위 계급을 달아도 지휘관이라기보단 같은 일선 요원으로 똑같이 고생한다. 과거에는 부사관과 장교 간 알력이 심했다. 간혹 개념 없는 신참 장교가 고참 부사관들을 무시하면 그 위의 장교들이 알아서 처리해주었다. 보통 소위들이 사령부로 전입 오면 사령관이 농담하듯 부사관들한테 앵기지 말라고 하고, 이후에 발령 여단으로 전입 오면 여단장이 면담자리에서 한번 더 이야기하여 중대까지 타고 내려온다. 이런 일이 있어서 소위들은 보통은 트집 안 잡히려고 선임담당관[35]이 하는 말은 무조건 따른다. 요즘은 상호 존중하는 분위기라 상·원사와 중·소위도 상호 존대하며, 장교-부사관 간 갈등도 많이 줄어드는 추세다. 같은 중·소위지만 포병의 전포대장은 지휘 병력이 120명 정도나 되고, 특전사의 경우에는 수행하는 임무도 훨씬 고차원적이고 소수정예이기 때문에 전포대장을 특전사 부중대장과 비교하면 계급이 같은데도 괴리감이 매우 크다. 다만, 특전사 장교는 그만큼 관리해야 할 인원이 적기 때문에 오히려 행정적인 측면에서의 군생활은 편하다. 징병제에다가 실전과는 거리가 먼 한국군이 비정상적으로 행정업무가 많을 뿐이었다.[36] 타군과는 달리 하사 최저 복무기간만 채우면 전원 100% 중사로 진급했다.[37] 장기복무는 지원자가 적어 지원만 하면 대부분 합격하고, 상사 진급도 엄청 빨리 한다. 굳이 특전부사관이 아니더라도, 단순히 특전사에서 행정 관련 업무를 하는 경우에도 알게 모르게 진급 속도에 긍정적인 영향이 있는 편. 대부분이 부사관인 특성상 정말 스트레이트로 상사까지 다는 경우가 많았다. 30대 초반에 상사 달고 40대 중반에 원사 다는 사람이 정말 널리고 널린 곳이 특전사이다.[38] 그러나 특전사 편성이 일반부대와 달라, 심하면 상사인데도 하사 때 직책 그대로인 경우가 있다. 다만 같은 직책이라도 부담당관에서 정담당관이 될 뿐이다.[39]

7.5. 계급별 특징

7.5.1. 부사관·병

각각 특전부사관특전병 문서로.

7.5.2. 장교

후보생 교육중 병과를 보병으로 선택하고 지원하거나, 체력이나 성적이 좋으면 차출 될 수 있다. 물론 원하지 않는데도 차출될 수 있다. 참고로 예전과는 달리, 先 참모 後 소대장으로 제도 자체가 바뀌어 육사 출신도 소위 때부터 특전사에 배치된다. 보통은 지원자 우선이다. 다만 육사 출신은 보통 야전 지휘관을 꿈꾸고 오는 경우가 많아 지휘관 경험을 중요시하다보니 소위때 특전사로 온다고 해도 중위 진급 이후에는 대부분 야전 소대장으로 재배치 받으려 전출 신청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이라크 전쟁의 여파로 일시적으로 특전사 부중대장 정원이 급증한 경우가 있는데 대표적인 기수가 학군 42기, 학군 43기, 학사 43기, 학사 44기, 학사 45기, 학사 46기 등이다. 보통 병과가 보병이 될 경우 특수전사령부 인사장교가 와서 특전사에 대한 홍보를 한다. 여기서 보병 병과를 받은 후보생들은 선택, 중립, 거절 중 하나를 택할 수 있는데 거절을 택하면 95%의 확률로 특전사에 안 간다. 거절을 선택했는데도 특전사에 갈 경우는 무술 체육 특기가 있다던지 하면 그렇게 될 수도 있다. 중립은 사실상 반반. 될 수도 있고 안될 수도 있다. 선택을 택하더라도 체력이 저조하거나 다면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얻지 못하거나 기타 특전사에서 정하는 기준에 부합하지 않을 경우 특전사로 배치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런데, 체력이 좋은데 특전사에 차출되지 않은 보병 병과의 후보생들은 높은 확률로 특공연대나 수색대대로 배치된다.
소위로 임관된 이후 바로 입교하는 초군반에서는 특전사, 특공연대, 수색대대 반이 운영되는데 이들은 초군반 기간 후반에 특전사에 위탁교육을 가게 된다. 여기서 특공연대 및 수색대대 학생장교는 특수전을 훈련받고 특전사 학생장교는 특전장교로서 받는 첫 공수훈련을 하게 된다. 일부 공수훈련에서 부상 등 낙오가 되면 특전부적합 판정을 받고 타 부대로 임지가 변경되는데 주로 향토동원사단이 대부분이다. 사실 부상을 당했기 때문에 상비사단으로 가기도 어렵다. 항간에는 위관장교 시절에 특전사에 배치받으면 진급에 크게 불리하다는 인식이 퍼져있으나, 너무 오래 있는 것이 아니라면 딱히 그렇지는 않다.[40] 특전사에 너무 오래 있으면 인맥이 좁아지고 자력이 꼬일 수 있어 불리한 건 사실이지만, 대부분은 대부분 1차 중대장까지만 하고 고등군사교육반에 입교한 뒤 타 부대에서 2차 중대장을 역임한다. 대위들은 고군반 교육을 받고 1차 중대장으로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2차 중대장은 특전사도, 일반 보병으로 갈 수도 있다. 물론 군장학생들은 2차 중대장이 완료된 후 참모를 해야 하는 게 원칙이지만 장기복무자가 아니라면 어차피 전역하게 되므로 3차 중대장으로 많이 가게 되는데 3차 중대장은 적성에 따라 선택하게 된다. 몸이 편한 걸 좋아하면 향토동원사단의 중대장으로 가는 것이고 돈을 많이 벌고 싶으면 특전사의 중대장으로 오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될 경우 아무래도 소위 때부터 특전사 생활한 장교가 특전부사관들에게서 보다 인정받기가 쉽다.
장교에게 특전사가 좋지 않다는 인식이 퍼지게 된 데에는 크게 2가지 요소가 있다고 할 수 있다.
  • 야전 중심의 육군 구조와 그 안에서 비주류 취급을 받는 특전사
    특전사 소위 직책은 부중대장이 전부인데, 지휘통솔을 익혀 야전 지휘관으로서의 역량을 기르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전투병과 장교의 특성상 처음부터 일반 소대장과 크게 괴리되는 특전사 부중대장 보직을 부여 받으면 특히 야전 지휘관 혹은 장성 진출을 지망하는 장교의 경우 달갑지 않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단 특전사 부중대장은 엄연한 지휘자 보직으로, 예비군 동대장 선발에서도 소대장 보직을 이수한 것으로 친다. 허나 실질적인 야전에서의 지휘자 포지션과는 거리가 멀다.[41] 특전사의 복무 기간이 길어 질수록 상대적으로 정규전에 대한 작전 능력이 덜어진다고 볼 수 있다. 특전사를 일정 기간 경험했던 장교들이 일반부대로 전출 명령을 받으면 상당 기간 속칭 '개무(개념 없는) 장교'소리 듣는 것도 이런 이유이다.

    특전사의 구조상 한계에서 오는 단점도 있는데, 여단급 위주로 활동하고 슬림화·간부화된 조직을 가진 특전사의 특성상 참모 및 부대관리 관련 경험을 습득하는 측면에서 대단히 불리하다. 이 참모 경험과 부대관리라는게 FM대로 열심히만 한다고 해서 잘되는게 아니라는 걸 아는 장교와 모르는 장교의 차이가 크다.[42] 물론 케바케는 언제나 있기 마련이지만, 진급 가산에 고군반 성적표 하나 바라보고 자신의 로망을 다 포기해가며 야전의 대대 작전장교라는 생지옥을 극복하고 온 자가 아무래도 비교우위에 있게 되는 상황이 더 자주 나오게 된다. 야전 위주로 돌아가고 실제로 야전 출신 인원들이 대다수 고위직을 차지하고 있는 현 육군의 조직 특성상 특전사는 아무래도 인맥 형성에서 불리한 부분도 경우에 따라서는 생기게 될 수 있다. 또한 징병제 채택 및 행정업무가 과대화된 국군의 조직 특성상 행정실무 경험은 군 생활에서 대단히 중요한데, 이를 익히기 어렵다. 즉, 쓸데없을 정도로 발달된 행정처리 능력을 요구하는 국군의 구조적 문제점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 부상위험
    흔히 '골병'으로 불리는 부상위험이야말로 초임장교가 특전사 배치를 1차적으로 꺼리는 가장 큰 이유인데, 특히 공수낙하훈련 중 허리나 무릎에 골병 한번들면 평생 가기 때문에 단기장교든 장기장교든 피하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이다.

상술했듯 너무 오래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면 별 문제는 없다. 하지만 특전사에 오래 근무하게 될 경우 이러한 문제점들이 상당히 크게 작용하게 된다. 보병 병과의 전문성, 실전성이 상당히 결여된 한국군의 특성은 특전사도 예외가 아닌 탓에 이론학습이나 제한된 환경에서의 훈련 위주로 이루어 질 수 밖에 없다. 즉, 자력과 경험상 핸디캡은 그것대로 다 받는데, 정작 특수전을 익히기 크게 좋은 환경도 아닌 것. 고로 특전사에만 근무했던 인원의 경우 소위 말해서 성적 깔아주는, 가라도 적당히 못치는 FM에 병사들 보모역할도 못하고 하루에 수십개씩 떨어지는 과도한 행정업무 처리도 못하며, 소부대전투나 특수전을 잘 아는 것도 아닌, 체력만 좋은 선배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결국 특전사의 장기간 근무는 진급을 타협할 정도로 병력관리가 너무나도 싫거나 특수전에 뜻이 있는게 아닌 이상 좋지 않은 선택이다.

이는 특전사 내부적인 문제나 인원 자질보다는 한국군의 고질적인 구조적 문제에서 기인하는 바가 훨씬 더 크기 때문에 큰 폭의 개선은 요원해 보인다. 즉 일반 보병 장교들은 전술/전략이 안 되어도 행정이 되고, 이게 전투라는 본 업무 자체를 잃어버리고 국방공무원 집단이 되어버린 한국군대에선 굉장히 잘 맞지만, 특전사 장교들은 후진적인 체계로 인해 전술/전략을 익히기도 힘든 마당에 행정 실무도 익히기 힘들어 도태될 수밖에 없는 것.

이러한 문제점을 지적하듯 미군에서의 특전사 부중대장은 100% 부사관 출신 장교인 준위(180A) 보직이며, 심지어 3호 준위장 이상은 대위급보다 실질적으로 권한이 더 높다.[43] 미군 특전사인 그린베레는 특전후보생(18X) 신분의 이등병 ~ 병장을 제외하면 전원 군 경력 3년 이상만 전입이 가능한 부대이다. 때문에 미군에서는 준사관 신분이 되지 않는 이상은, 장교가 특전사를 가려면 중위~대위 이상으로 강제된다. 즉 일선 보병부대에서 무조건 보병에 대한 이해를 기초적으로 다 하고 오게끔 한다. 이러한 현 한국군 체계의 후진적인 한계 탓에 아이러니하게도 OBC 성적과 체력을 고려해 우수인원을 차출하는 것과 다르게 보직으로서 평균적인 특전사 여단 부중대장의 인식은 꽤 부정적이다. 그래서 특전사에 딱히 뜻이 없다면 소위로 임관하자마자 특전사로 발령받아도 1-2년 정도 있다가 중위 때 야전부대 소대장으로 전출가려고 악을 쓴다.
이러한 특전사 근무의 단점에도 불구하고 대장에 진급하려면 특전사에서의 복무기간이 특전부사관 의무복무 기간보다 길거나 같아야 한다. 육군특수전사령관으로 오는 사람들의 상당수가 소장 때까지 특전사 복무기간을 다 채우지 못하는 바람에 보직분류상 군단장인 특전사령관으로 군단장을 대신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장기복무를 하는 장교들, 특히 육사 출신들은 위관급 장교에서는 어지간하면 안 오고 대부분 소령 때 와서 중령을 달자마자 바로 전출 간다. 즉 장기복무를 원하는 장교들 입장에서는 소령 때 한 번쯤 들러주는 부대로 인식이 된다. 야전장교를 지망할 시 중령 이상부터는 특전사에 있으면 경력이 꼬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44] 또 특전사에서 3년 이상 군생활을 하면 특전사 소령으로 3년 이상 근무한 경우 경력경쟁채용으로 소방위로 특채지원할 수 있는 혜택도 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보병장교 기준 소령 때 가는 편이다. 덕분에 이들은 특전사 내에서 상당한 골칫거리인데, 일반 야전부대 식으로 특전사를 운영하려고 하기 때문에 일선 부사관 대원들 + 특수전에 정통한 장교들과 큰 마찰을 빚는다.# 사실상 특전사가 전 세계 특수전 업계에서 장비든 전술이든 매우 뒤처지는 이유가 이들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45] 심지어 2023년 기준으로도 특수전 교육을 수료하지 않은 야전 출신 중대장이 무대뽀로 작계를 작성하고, 처음부터 특수전으로 전입오는 부중대장 인원들의 특수전 초급 교육을 그저 일이 많다는 이유로 보내주지 않는 등, 굉장히 심각한 질적 저하를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야전 출신의 영관급~장성급 장교들을 필두로 각종 특수전장비 납품 관련 방산비리도 어마어마한 상황.#, #
부사관들이 특전사 위관급 장교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상당히 해괴한데 하사나 중사는 체력으로 비교해 보고 영 아니다 싶으면 마음속으로 무시하기 시작한다.[46] 하지만 대놓고 무시하면 하극상이니까 상사 계급의 중대 선임담당관에게 가서 벌을 받기 때문에 대놓고 까지는 않고, 없으면 군생활이 고달픈 카바나 쇼부를 안 해주는 것 정도. 족구 할 때 패스를 않하면서 대놓고 없는 사람 취급하는 건 기본 스킬.

특전사에서 운동을 잘하는 장교는 가장 빨리 인정 받고,
똑똑하고 완벽하면 그 다음으로 인정 받고,
올바른 인격에 남을 위할 줄 아는 된사람은 맨 나중에 인정 받는 다는 말이 있다.
이 범주에도 포함되지 못하는 상당수는 그저 일방향으로 지시만을 하는 반쪽의 지휘관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특전사에서 부사관들에게 인정 받을려면 뛰어난 지휘 능력이나, 전투 스킬, 똑똑함, 인간성이 아니라 운동을 잘해야 된다. 정규군 부대의 에이스 장교라고 운동을 못하면 특전사 와서 폐급 취급 받는다. 그리고 특전사 족구장에서 날아다니며 전설 취급 받던 장교가 정규군 부대가면 "너는 그것도 모르냐!"며 개무 장교 소리 듣는거고. 하지만 정규군 부대로 돌아가는 것은 나중 일이고, 어쨌거나 특전사에서 위관급 장교는 운동을 잘하고 체력이 좋아야 한다.

반면 운동능력이 부족해도 부사관들이 함부로 하지 못하도록 상사급 중대 선임담당관이 막아 주는 것은 나름 이유가 있는데, 그렇게 해야 고과성적을 조금이라도 더 받아서 보다 편하게 복무할 수 있게 되고 나중에 원사준위 자리를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특전 준위를 하고 싶은데 인사권을 쥐고 있는 소령, 중령들이 못하게 막으면 얄짤없기 때문이다. 중대에서는 선임담당관이 최고의 실세인데 그 이유인즉 특전사 중대장은 장기복무자의 경우 1차 마치면 2차를 야전 부대로 가서 하기 때문이다. 그런 즉 어차피 2~4년 있다 떠날 중대장보다는 제대하는 그 순간까지 계속 있는 선임담당관이 더 대우가 좋을 수밖에 없다. 왕보다는 터줏대감이다. 물론 지역대급 이상으로 가면 그런 거 없다. 제아무리 상사 원사라도 영관급 장교에게 개겼다가는 한순간에 훅 가기 때문이다. 위관급이야 비슷비슷하니 맞먹기도 하지만 영관급은 신분도 한참 높은 데다 복무 경험치 역시 상사/원사에게 밀리지 않는다. 가장 무서운 이유는 영관급 장교들에게 인사권이 있다는 점이다. 특히 상사의 경우가 심한데 원사로 진급하려면 영관급 장교들에게 정말 잘 보여야 한다. 평정 하나 잘못 써서 진급이 영원히 막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딱히 징계를 안 하더라도 진급을 영관급들이 쥐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꼼짝 못 한다. 요약하자면 상사, 원사가 위관장교와 부사관 간의 미묘한 갈등을 조정하고 계급 간 위계질서를 유지시키는 형국이다. 훈련이 너무 고되고 힘든 데다가 계급 대비 병력 숫자도 턱없이 적기 때문에[47] 장교들이 서로 꺼린다.# 그 때문에 대장에 진급하려면 중장으로 진급할 때까지 총합 기준 최소한 4년 이상 특전사에서 복무를 해야만 하는 규정이 생겼다. 물론 이 규정의 폐해는 위에 적어놓은 것 그대로다.
육군특수전사령관의 경우 중장 요직랭킹 1위의 극요직으로서, 김대중 정부 이후 모든 정권에서 대장을 내고 있으며 문재인윤석열은 이 자리를 아예 황태자로 만들어 각각 남영신손식을 최대한 빨리 대장으로 올려 보냈다. 1980년대 이후 육군특수전사령관대장을 못 낸건 김영삼 정부가 유일한데 이유는 특전사에 하나회가 너무 많이 포진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음은 각 정부 별 대장에 진급한 육군특수전사령관이다.

7.6. 특전 여군

특전사는 1990년대 후반부터 각종 시범 등 대외 행사시 홍보 차원에서인지 항상 특전여군을 앞세우고 있다. 특전여군의 시초는 1969년 9월 공수기본교육을 수료한 정효단 상사 등 8명으로, 1983년 1월 15일에는 여군 고공전담반도 창설됐다. 육군여군학교 해체 이후 2003년부터는 특수전학교에서 양성되고 있다.#

2014년 이전까지는 특전여군으로만 이루어진 여군중대가 특수전사령부 직할로 편성되어 있었다. 이 여군중대는 1975년 9월 1일 34명의 인원으로 창설되었으며, 대위급 지대장 1명과 상사급 팀장 2명, 그리고 수십명의 중·하사로 구성되었고, 장교는 지대장 혼자였다. 평시에는 대테러가 주임무이며, 전시에는 상대적으로 저항감이 적은 여성이라는 이점을 이용해 북한주민을 상대로 한 선무공작/민사심리전을 담당하는 임무도 있다. 특전사의 전신인 한국 전쟁 때의 켈로(KLO)부대에서도 그런 여성대원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 전통이 특전사로 그대로 내려온 것이다.

각종 행사로 특전사 예하 여단에 파견되면 해당 여단 흉장을 착용하기도 했지만, 평상시에는 사령부 직할 부대이므로 사령부 흉장인 사자부대 마크를 착용하였다.[48] 2014년에 여군중대가 해체된 이후론 특전여군들은 각 여단으로 분산 배치되고 있다.

특전여군 장교는 육군 전체에서도 상당히 드물게 존재한다. 강선영 장군이 엄청 드물게 존재하는 특전여군 장교이며 현존하는 유일한 특전사 출신 여군 장성급 장교다.

7.7. 장비

[ 특전사 장비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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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인 화기는 모든 국군 특수부대들의 공통적인 기본 화기인 K1A 기관단총이다.[49] 한국군은 특전사 뿐 아니라 해군 특수전전단해병수색대, 해병대 보병여단 박격포병, 공군 CCT, SART, 육군 특공대, 수색대, 정찰대 등 모든 특수부대 / 특수임무부대들에도 개인화기로 보급되는 총기가 K1A다. K3 경기관총의 경우(정찰대 제외.)에는 주력 화기는 아니지만 화력 보충용으로 사용한다.[50]

그동안 한국에서 새로 개발된 총기나 신형 장비들도 항상 전군에서 특전사에 최초로 보급되었고 지금은 그런 것이 많이 희석되었으나 부대 규모로나 숫자로나 항상 특전사가 모든 총기 임상 시험의 최전선이라고 볼 수 있다. K1A 기관단총K7 소음기관단총도 지금은 여러 부대들에서 쓰지만, 애초에 특전사의 요청에 의해서 개발된 총기였고 개발이 완료된 후 특전사에 최초로 보급됐었고 국산 저격 소총인 K14 저격소총도 특전사부터 보급되기 시작했다. 즉 미군 특수부대 등 선진국 특수부대들과 장비 보급을 비교하면 당연히 아쉬운 점이 많지만 그래도 육군 위주이고 육군의 힘이 가장 센 국군 중에선 제일 우선적인 대우를 받아온 특전사였다.

그러나 아무리 그러한 상황을 고려해도, 타 서방군의 일반 보병 수준만도 못 한 이들의 무장상태는 도저히 쉴드를 쳐줄래야 쳐줄 수가 없는게 사실이다. 심지어 개선을 한답시고 시행한 워리어 플랫폼과 각종 특전나이프 사업 등에서도 온갖 납품 계약 비리 정황이 포착되고 있는게 현실이고, 그런 비리 정황이 포착되고 명백히 문제가 발생하고 있음에도 상부에서는 아무런 개선의지마저 없는 암담한 상황. 2023년 기준으로도 이러한 문제점은 여전해서, 대원들이 사제로 장비를 돈주고 직접 사입어도 되려 특전지휘관들은 사제장비 금지령을 하달해버린다. 특수전 관련 경력도 하나 없는 본인들이 과거 근무하던 야전부대들마냥 특전사 요원들을 일반 징집병마냥 통제하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이들이 특수전에 문외한이며 진급에만 눈이 시뻘개져 있는 똥별인지 알 수 있다.[51]

장비를 떠나서 한국군 특수부대의 대우는 아주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는데, 일부 대테러부대 이외의 특수부대들은 그냥 몸으로 떼우면 되는 값싼 소모품 정도로 여기는 게 한국군 수뇌부의 인식인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따라서 한국군 수뇌부가 대테러부대를 제외한 특수부대를 전략적으로 크게 중요시 하고 있지 않다는 어처구니 없는 발상이 근본적인 문제점이라고 볼 수 있다.

일반 보병들이 보급받는 장비들과는 다른 특전사 전용 장비들이 지급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특전사의 각 팀마다 기본적으로 운용하는 K7 소음기관단총 같은 총기는 일반 보병들은 사용하지 않는다.[52] 헬멧의 경우에는 보병들이 사용하는 구형, 신형 헬멧도 사용하지만 이와는 별도로 특전사 전용 헬멧이 보급되며 방탄조끼 같은 경우에도 일반 부대에 보급되는 물품이 아닌 특전사 전용이 있다. 전투복의 경우에도 다른 군이 입지 않는 특전사 자체 전투복을 입는다. 이외에도 전투조끼, 베낭, 침낭, 전투화, 개인천막, 야전삽, 물백 등도 특전사 전용 장구류들을 쓴다.

이외에도 특수전에 필요한 여러 장비들이 사용 중이다. 폭파를 위한 폭파 장비나 침투 장비 등 임무 수행에 도움을 주는 장비들을 보급해 사용 중이다. 다만 군 수뇌부는 기계화와 화력강화 쪽에만 최우선적으로 예산을 투입하고 특전사는 인원에 비해 예산이 부족하다보니 특전사 장비 부족이나 노후화가 심각한 실정이다. 이렇게 특수부대이지만 선진국 특수부대들에 비해 충분한 지원을 받고 있지 못하다는 우려를 받아온 특전사도 이러한 문제점을 아는지 차근차근 개선을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런 국산 병기 외에도 해외 업체에서 제작한 수입 병기도 사용하고 있는데 제707특수임무단에서 사용하는 H&K MP5B&T MP9 등이 그 예다. 그리고 2014년 M110 SASS사용하는 모습이 보였으며 밀코 M32 유탄발사기도 도입할 예정이라고 한다.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의 재직 당시 사제장비 허용과 부무장 지급에 대한 인터뷰

이렇게 한국군 수뇌부는 특수부대의 장비에 대해 큰 관심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나, 육군특수전사령관이 된 전인범 중장은 개인장비와 특수전 병력의 전문성과 전술 등에 대해 관심이 많고 열려 있는 선진적인 마인드의 소유자였다. 특전사 대원 전원에게 부무장(Sidearm)으로 K5 권총이나 M1911 보급을 추진하는 등[53] 장비 개선과 전술 개선에 신경을 썼으며, 사제 장비 사용에 대해서도 이전보다 많이 허용 해주는 방침을 세웠다.

전인범 사령관 퇴임 후 후임 사령관[54]들에 의해 사제장비 금지 명령이 내려왔으나, 대북 킬체인의 취약점인 탐지수단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특전사의 장비 보강 및 전술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감시·통신·화력 유도장비 등 여러 분야에서 장비를 보강할 방침이라고 한다. 야간투시경 등은 이미 전력화됐고 부무장 권총(K5)도 이미 보급한 점. 대물저격소총 등도 가까운 시기에 전력화된다. 대물저격소총은 아마 SNT모티브에서 개발중인 제품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2017년에 특수전용 소총은 긴급소요제기로 해외도입하겠다는 방침이 나와서 H&K HK416[55]FN SCAR[56] 가 후보로 올라와 있다.기사 또한 김용우 육군참모총장이 추진하는 워리어 플랫폼 사업에 따라 미군 특전부대 JPC, AACPC, MMAC 등의 플레이트 캐리어와 유사한 특전사용 플레이트 캐리어와 미군 옵스코어 특전헬멧과 유사한 특전헬멧의 보급이 확정되었다. 2019년에는 특수전용 소총을 해외도입 대신 국내개발품을 사용하기로 방침이 바뀌어 HK416과 같은 쇼트 스트로크 가스 피스톤 방식 AR-15 소총의 국내 개발이 시작되어 SNT모티브STC-16을, 다산기공DSAR-15PC를 후보로 내세우고 경쟁하여 2020년 6월에 다산기공DSAR-15PC가 차기 특수전 기관단총으로 선정되었다. 2024년부터 지급이 시작될 예정이었으나, 특수작전용 기관단총 사업 ROC 사전유출 논란으로 인해 사업이 전면 중단되었다가 SNT모티브의 단독입찰로 사업이 다시 진행중이며, 현재 시험평가중이다.#

2023년에는 STC-16K13 기관단총이라는 제식 명칭을 부여 받고 선정됐다. 또한 2020년부터 707 특임단과 제13특임여단, 각 여단 특임대에는 미국 JSOC 예하 부대들이 쓰는 GPNVG-18 4안식 야간투시경이 지급되었다.

7.7.1. 사제장비 금지 논란

사제장비 금지 사태에 대한 홍희범 편집장의 칼럼

2016년 3월 현재 전인범 사령관 이후 취임한 장경석 특전사령관이 전 여단에 사제 장비 금지 명령을 내려, 배낭이나 고글, 모자, 나이프 등 자잘한 물건만 개인 구매가 가능하고 조준경(도트 사이트스코프), 레일, 야간투시경, 방탄복과 방탄판 등의 장비들은 공식 보급품만 쓰도록 하고, 그 외 사제장비는 국가공인인증기관으로부터 인증받지 못했다며 사용 금지 시켰다. 기사 (2011년 터진 방탄복 사건으로 특전사들은 보급 방탄복에 대한 불신이 매우 크고 쓰더라도 미제 방탄판을 넣어서 쓰는 경우도 있다.).[57] 사람들은 특전사령부의 금지령 폐지와 개선을 기대해 보았지만, 비밀에서 문제제기를 하자 반박문이란 걸 올렸다가 비웃음과 비아냥만 들었고 앞에 나온 대로 조선일보에서 기사화까지 되었다. 그런데 여전히 정신을 못 차렸는지 사제장비 금지령 관련해 대원들의 인터넷상 반응을 감시해 공감이나 좋아요를 누른 것까지 색출하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사실로 확인되는 분위기. 그리고 이젠 육본에까지 불똥이 튀었다. 소문이 퍼진 커뮤니티들에서는 온갖 신랄한 표현을 써가며 군의 높으신 분들을 성토하고 있다.

태양의 후예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특전사에 관심을 가짐과 동시에 현실의 특전사 장비 실태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도 높아졌다. 사제장비는 여러 품목에서 금지되어 있고 국산 보급품은 외제 사제품에 비해 질이 좋지 않은 경우가 많아서 문제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러한 여론 때문인지 2016년 5월 5일 어린이날 무술 시범을 보인 1공수특전여단 대원들이 보급품과는 다른 방탄복을 입고 나온 것이 포착되었다.

근데 이런 건 무슨 여론 때문이 아니라 예전부터 특전사 대원들이 각종 사제품을 착용하고 나오는 건 늘 흔히 있어 왔다. 위에 나온 이 문단의 서술들을 보면 사령부의 공식방침이 마치 특전사의 그 많은 개별 팀들마다 똑같이 그대로 현실화되는 것처럼 써놨는데, 실상은 공식적으로 금지됐든 금지 안 됐든 크게 다른건 아니고 그런 방침은 문서상의 글자들일 뿐 실제 부대에선 언제나 융통성 있게 써왔다. 비단 이 문제뿐 아니라 수뇌부의 고지식한 각종 지침들의 많은 부분이 실제 각 일선 부대들에선 흐지부지되고 현실에 맞도록 융통성 있게 운용된다. 그리고 모든 여단/대대의 실상이 다 똑같은 게 아니라 각 여단/대대들마다 케바케여서, 이런 쪽으로 깨어있는 대대장이 부임한 상태인 대대들의 경우는 예전에도 사제장비 사용이 비교적 자유로운 경우들이 있어 왔다.[58]

육군에서 사제장비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했지만 현실은 여전히 사제장비를 금지하는 부대가 많다.

7.8. 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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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전우회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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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특전사 전우회

7.10. 충성회관

충성회관
忠誠會館
Choong Sung Hall
위치 경기도 이천시 마장면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8. 사건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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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기타

  • 매년 하계/동계에 일반인들을 상대로 3박 4일 운영으로 특전캠프(사이트 접속시 군가 '검은 베레모'가 자동 재생됨)를 운영하고 있다. 특수전사령부에서 직접 시행하고 교관 역시 전부 고도로 전문화된 현역 간부들이다. 어중이떠중이 사설캠프에 비하면 훨씬 안전하고 질적으로도 우수하다. 특전사가 어떤지 느껴보고 싶다면 신청해보는 것도 좋다. 그리고 이것을 소재로 훌륭한 힛갤작품도 나왔다(이한석 항목 참조). 사실 특전캠프 시 교관 등을 맡게 되는 일선 특전대원들은 그렇지 않아도 바쁜데 쉬지도 못하고 이런 것까지 시킨다며 귀찮아하곤 한다.
  • 파일:external/kookbang.dema.mil.kr/YA_NP_20140416_00815097.jpg

    IWC 단체전에서 1, 2위를 차지한 육군특수전사령부 3공수특전여단과 707대테러특수임무대대 장병들

    2014년 4월 10일 서울공항 美 복지센터에서 열린 '2014 주한미군 체육대회 IWC(Individual Warrior Challenge)'에 특전사도 초청을 받아서 3여단과 707특임대에서 각각 1개 팀이 참가했는데 3여단팀이 단체전 우승을 차지했다. 이어서 707특임대팀이 2위, 주한미군이 3위로 특전사는 IWC 대회에 참가하여 한국군의 실력을 보여주었다.#
  • 2020년 9월 25일 제72주년 국군의날 행사가 육군특수전사령부에서 열렸다.
  • 대한민국의 특전사는 인사 부분에서 굉장히 개차반으로 운영하고 있다. 다른 나라의 특전사의 경우는 타 부대에서 일정 기간 이상 복무한 인원이거나 병 계급을 달고 특전후보생으로서 일정기간 이상 복무한 자만 특전사에서 복무할 수 있다. 임관하자마자 첫 보직을 특전사 정규 요원으로 받는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다. 미합중국 육군 특수작전부대의 경우만 하더라도 특전부사관으로 선발하지 않으며, 보통 타 일선부대에서 3년 이상 군생활을 한 후 지원하거나, 특전병으로 선발해서 병 신분에서는 계속 특전후보생(18X)으로 지내다가 하사로 진급하고 나서 정규 전투원이 된다. 장교의 경우도 팀장(18A)인 대위 뿐, 중위소위는 존재하지 않으며, 부팀장(180A)도 장교이긴하나 준위이다. 참고로 미군에서 2~3호 준위장부터는 대위보다 장교로서 위상이나 권한이 더 높다. 특전사 자체가 고도의 전문성을 요구하는 부대이기 때문이다.
  • 캡틴 김상호는 일반적인 야전부대의 장교로서 지휘관을 꿈꾸는 이들에게 추천하지 않은 부대는 육군특수전사령부다. 자발적으로 입대한 직업군인들인 특전사와 다르게 징집된 병사들이 있는 일반 부대는 장교가 일일이 병사들을 챙겨줘야 하기 때문에 행정 능력에서 특전사 출신 장교들과 일반 야전부대 출신 장교들의 차이가 생기게 된다. 뿐만 아니라 일반 야전부대 소대장 보직뿐만 아니라 대대급 참모직(작전참모, 인사참모, 군수참모, 정보참모 등)을 경험 못 해봤기 때문에 연대급 참모직을 지휘관이 맡기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전술적으로는 당연히 특전사도 일반 야전보병의 교리와 전술을 질리도록 보기 때문에 문제가 없지만, 행정 업무와 야전부대 참모 경험이 전무한 특전사 출신 장교들이 이러한 행정 업무에 적응을 하기 힘들어 한다고 한다. 이 내용은 캡틴 김상호의 개인적인 의견이 아니라 특전사 근무 경험이 있는 동료들에게 질의하여 얻은 내용들이라고 한다. 때문에 본인이 행정 업무에 능숙하거나, 보직 관리, 교육 경력을 잘 챙길 자신이 있지 않은 이상은 특전사, 특히나 갓 소위 시절에 바로 가는 것은 추천하지 않고 있다.

9.1. 부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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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대영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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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TV 다큐멘터리 대한민국 특수부대 방송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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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대 소개 및 홍보 영상[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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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BUNKER] 안 되면 되게 하라! 대한민국 특전사
<nopad>
대한민국 국방부 [레알!! 군대썰전] 특전사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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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1 TV 내무반 신고합니다 - 육군특수전사령부 여군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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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다큐 이번엔 특전사다! 검은 베레의 전사들

9.2. 대중매체

  • 1993년 방영 MBC 드라마 파일럿에서 조종사의 꿈을 접은 주인공(최수종)이 특전부사관(당시에는 하사관)으로 지원 입영한다.
  • 1995년 방영 SBS 드라마 모래시계에서 주인공 강우석(박상원)이 특전사 군복무 중 5.18 민주화운동을 진압하는 '화려한 휴가' 작전에 투입된다. 전투복 상의 주머니에 부착된 부대마크로 미루어보아 제7공수특전여단인듯 하다.
  • 2014년 개봉된 영화 표적에서 주인공(류승룡)이 제7공수특전여단 중사 출신으로 나온다.
  • 2016년 2월부터 방영된 KBS2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서 주인공 유시진(송중기)이 특전사 대위로 나온다.
  • 2018년 개봉된 영화 PMC: 더 벙커에서 주인공(하정우)이 특전사 출신 미국 민간군사기업 컨트랙터로 나온다.
  • 2018년 JTBC 드라마 으라차차 와이키키에서 주인공 강동구(김정현)가 특전병 출신이다. 후임들 및 중대장이 결혼식 하객으로 특전사의 디지털 픽셀 전투복을 입고 나왔다.
  • 2019년 방영된 OCN 드라마 트랩에서 주인공 강우현(이서진)이 제1공수특전여단 중대장 출신으로 나온다.
  • 2021년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스위트홈의 오리지널 캐릭터 서이경이 특전사 출신이다. 서이경과 별개로 1화에도 특전사 출신 인물이 단역으로 나온다.
  • 2022년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수리남에서 전요환의 범죄조직에 위장 잠입한 국정원 요원 변기태가 특전사 출신이라는 설정이다.[60]
  • 2021년 방영된 SBS 드라마 모범택시 주인공인 김도기
  • 2023년에 개봉한 영화 서울의 봄.
  • 김민수의 군사소설인 505 특전대와 매직 호크, 열도 파괴의 주인공 및 주연급 인물들이 전/현직 특전사 대원들이다. 열도 파괴의 경우에는 그중에서도 대테러부대인 707 특임대 소속이며 505 특전대는 제11 공수특전여단 산하의 가상의 부대 505 특전대대 소속이란 설정이다.
  • 월야환담 시리즈의 등장인물 송덕연이 특전사 상사 출신으로 나온다.
  • '잇빨중사'라는 필명으로 밀리터리 저술가로 활동하는 특전사 중사 출신 조휘준 작가의 소설 함경도의 별, 검은 백조는 근미래에 터진 제2차 한국전쟁에서 북한 후방에 침투한 특전사 대원들의 처절한 사투를 다루고 있다.
  • 게임 스페셜 포스의 캐릭터 중 하나가 대한민국 특전사 대원이다.
  • 게임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 시즌 3에 추가된 밀심 스킨 중 '대한민국 특수부대'라는 이름으로 추가된 캐릭터가 대한민국 특전사 대원이다. 어깨에 부착된 부대 마크에 "대한민국 특전사 ROK Special Forces"라고 씌어있다. 저작권 문제 때문인지 실제 특전사 부대 마크와는 다른 창작 마크를 쓰는 등 고증의 정확성에는 크게 신경을 안 쓴 듯 하다.[61]
  •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 콜드 워의 멀티플레이어 오퍼레이터로 '송'이라는 이름의 특전사 대원이 나온다. 송은 여성 오퍼레이터인데, 게임 내 배경이 1982~85년이고 마침 송의 특기가 고공침투라는 점을 보면 1983년 1월 15일 창설된 30여 명 규모의 여군고공전담반[62]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 게임 쿠키런특전사맛 쿠키라는 캐릭터가 등장한다.
  •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 II의 멀티플레이어 오퍼레이터로 'Horangi', 즉 호랑이라는 이름으로 출연. 본명은 김홍진이다. 왼팔에 부착된 태극기로 트레일러에서부터 공식적으로 그 존재가 확인되었으며 전작인 모던워페어에서의 다소 아쉬웠던 고증과 달리 문서 최상단의 사진과 거의 일치하는 모습을 보인다. 특유의 특전 픽셀과 특이한 플레이트 캐리어[63]를 착용한 모습이 굉장히 개성있고 간지가 난다.

10. 관련 문서



[1] 공식적인 영문명은 SWC이지만 실제 현실에선 미군이 한국 특전사를 호칭할 때 "ROK Special Forces"라고 하고 줄여서는 흔히 "롹에쎞"(ROK SF)이라고 부른다.[2] 육군특수전사령부 본부.[3] 전시에 육군특수전사령부가 연합특수전구성군사령부로 격상되면서 미군특수전부대대한민국 국군의 해/공군 특수전부대 일부를 작전통제하며, 육군특수전사령관이 연합특수전구성군사령관을 겸임한다.[4] 특수부대라는 특성상 총 병력 숫자 및 편제는 사단급 이하지만 육군특수전사령관의 계급이 중장이라서 부대 단위가 군단급으로 분류된다. 부대 내에서도 각 편제가 숫자에 비해 몇 단계는 더 위로 편성된다.[5] 게릴라전/암살, 납치, 교란, 후방 침투/직접타격, 적 주요시설 파괴/특수 정찰/정보전/항폭 유도/대테러리즘, 인질구출이다.[6] 육군특수전사령부령 제2조 제3항 전시에는 육군특수전사령부에 부사령관을 두되, 대한민국 육군장성급 장교로 보한다. <개정 2017. 9. 5.>[7] 특전사라는 이름을 '특별한 전사(戰士)' 혹은 '특전부사관', '특급 전사'의 준말인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 이들도 간혹 있지만 이는 틀린 얘기고, 육군 특수전사령부(特殊戰司令部)라는 정식명칭을 짧게 줄여서 부르는 약칭이 바로 특전사(特戰司)이다. 국군정보사령부를 '정보사'로, 육군 수도방위사령부를 '수방사'로 줄여 부르는 것과 같은 식의 준말이므로, 일각에서 특전사 병 출신 특전병들에게 "니들은 병이니까 특전사가 아니다."라고 하는 주장은 잘못된 주장이다. 특수전사령부 소속 병이기 때문에 엄연히 특전병들도 특전사다.[8] 전투원의 계급이 높은 이유 중 하나이다. 특전사는 전시 적지 마을을 점거한 후 적지 주민들을 징병해서 병력으로 활용하는 임무도 갖고 있다. 이때 여단장 → 사단장, 대대장 → 연대장, 지역대장 → 대대장, 중대장 = 중대장, 부중대장 = 부중대장, 정 담당관 → 소대장, 부 담당관 → 부소대장으로 보직이 상승한다. 현실적으로 제2차 6.25 전쟁이 발발할 경우 이게 굉장히 효율적인 게 남북한 간 식생활 수준 차이가 워낙 넘사벽이다 보니 북한 주민들은 밥만 배불리 먹여줘도 금방 아군의 병력으로 활용할 수 있는 수준이다.[9] Special Operations Command - Korea (SOCKOR)[10] Combined Special Operations Component Command; CSOCC[11] 육군참모총장 중에서 장준규남영신이 군단장을 육군특수전사령관으로 역임했다.[12] 2021년 현재 기존 특공여단을 개편하여 해체된 2보병사단을 대체하여 제2신속대응사단이라는 공중강습사단을 만들었다. 미국 101공수처럼 헬리본 부대가 컨셉이다.[13] 대한민국에는 공수부대라는 부대가 별도로 없어서 혼동될 염려가 없었다는 점도 특전사를 발음의 편의상 공수부대라고 부를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다. 만약 공수부대가 있었다면 그 부대와 혼동될 수 있기 때문에 특전사(공수특전여단)을 공수부대라고 부를 수 없었을 것이다.[14] 소위인데도 무려 중대장을 부하로 두게 된다. 단, 휘하 중대장의 계급은 상사이다.[15] U.S. Army Special Forces: The Green Berets[16] 1st Special Forces Group (Airborne)[17] 물론 US는 ROK로 바꿔서[18] 당시 단장 - 여단장 직무대리 - 여단장을 맡던 인물이 바로 12.12 군사반란을 일으켜 대장까지 진급하고 대통령 자리에 오른 전두환이다.[19] 12·12 군사 반란에는 쿠테타군으로 1, 3, 5여단이 가담했다.[20] 3, 7, 11여단이 계엄군으로 광주에 투입됐다.[21] 원래는 1958년에 만들어진 Special Forces Detachment-Korea (줄여서 SFD-K 혹은 Det-K라고 부름)였는데, 2005년도에 39th Special Forces Detachment로 바뀌었다. 하지만 이런 공식적인 변경과는 무관하게 옛 습관대로 Det-K라는 원래 명칭도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이 파견대 소속의 그린베레 고참급 베테랑들이 한국 특전사의 각 여단들에서 '한미특전부대 연락관'이라는 직책으로 근무한다.[22] 생활의 달인에서 본인이 밝히길, 예전부터 알고 지낸 특전부사관 후배가 후술한 은하캠핑이라고 한다.[23] 박정희 정권 당시 민주화운동에 참가한 대학생들을 강제징집 했을 때 보통 정보사나 특전사로 징집했는데 문재인도 그런 케이스였다.[24] 논산훈련소 훈련병 시절, 소속 교육중대에서 체력, 사격 등 교육성적 1위를 해서 우등표창을 받기도 했다.[25] 당시 서울에 위치하였다.[26] 이 사건으로 민주지산 괴담이 만들어졌다. 알고 싶으면 현역 중, 상사급에게 물어보자.[27] 2015년 사령관 교체 이후부터 다시 여단훈련으로 바꼈으며, 특교단 실시는 안한다.[28] 외국군과 교신으로 의사소통해야 되기 때문에 영어실력이 중요하다. 어설픈 어학실력으로 정보를 잘못 전달해서 오폭이라도 나면 애먼 민간인 희생 등 재앙이 될 수도 있다.[29] 전후에 파괴된 도로·전기·통신시설 등을 복구하는 대규모 공사권을 한국에 우선 배당한다는 조건 등이 있다.[30] 707이나 국평단의 경우 다양한 해외 특수전 위탁교육(미 그린베레 Q코스 위탁 등) 및 해외 파병 등을 노릴 수 있어서 굉장히 좋다. 혹여나 707이나 국평단만을 목표로 특전사에 갓소위 달자마자 올 생각이라면 포기하는게 좋다. 애초에 야전 지휘관을 꿈꾸는데도 진급을 생각해 국평단 갈 생각이면, 그 노력으로 전방 GP 수색대 소대장이나 JSA 노리는게 훨씬 더 이득이다. 특전사는 특수전에 몸 담고 싶은 사람들이 가는 곳이므로, 야전부대 지휘관으로 진급을 원하는데 국평단을 노린다는 건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31] 특히 신생 여단들일수록 특전병의 비율이 높았다.[32] 여단에 따라서는 90년대 중후반까지도 지역대 팀에 병이 있는 경우도 있었다.[33] 현재는 임관 출신 가릴 것 없이 제도 자체가 先 참모 後 소대장으로 바뀌었다. 즉, 참모 보직 수행자 중 업무능력과 리더십을 평가하여 소대장 보직을 수여한다. 그렇기 때문에 예전과는 다르게 육사 출신도 졸업 후 바로 특전사로 배치받게 되는 것이다.[34] 그런 즉 직속상관이 여단장이지 중대장 밑에서 박박 기는 보직이 아니다. 하는 일은 부대 건물을 관리하는 일이다. 부대 전체가 천리행군을 떠나거나 해외파병을 가는 등 외부 임무를 수행하러 떠나면 시설대는 잔류조가 되어 부대 소재지 내에서 여단 당직사령을 한다. 그러니까 특전사 장교임에도 천리행군에는 불참하는 보직이다. 그러나 공수훈련에는 예외가 없다.[35] 부사관 부중대장을 선임담당관이라고 부르지 않는다.[36] 장교 부중대장들은 보통 지역대에서 정작 장교랑 행정 작업을 많이 한다.[37] 이것도 160기(05군번)까지 이야기고, 이후 전역하기 몇 달 전에 진급하거나, 하사 전역하는 경우도 있다.[38] 같이 위탁교육을 받던 해군 하사가 특전사 상사보다 군번이 2년 빠른 경우도 있었다.[39] 그렇지만 보직의 질은 달라지는데 크고 무거운 무전기인 p-999k를 부담당관(조수)이 운용하고, 작고 가벼운 무전기인 p-96k를 정담당관(사수)이 운용한다. 그나마도 들고 다니지도 않고 특전조끼에 넣고 다니는 게 대부분이다.[40] 애초에 실전을 치를 일이 거의 없어 자력과 인맥이 진급에 중요한 한국군에선 어느 부대든 한 부대에만 오래 있으면 진급에 불리하다. 다만 육군 자체가 야전 위주로 돌아가기 때문에 똑같이 고여있는 경우에도 특전사에 있는 쪽의 패널티가 더 큰 경향이 없진 않다.[41] 물론 특수전 자체가 보병전술에 대한 깊은 이해를 깔고 들어가는 분야인 만큼 특전사 장교들이 보병전술과 운용에 대한 이해가 없다고 본다면 곤란하고, 기본적인 특수전 작계 수립 단계에서 일반 보병 전술 교리를 질리도록 본다. 자세한 사항은 특수부대 문서의 7번 문단 참조. 다만 이론만 보는 것과 실제로 하는 것에서는 천지 차이가 있을 뿐더러, 야전 지휘관으로써 가장 리스크가 큰 직무인 병력관리가 크게 상이한다는 점에서 일반 보병 지휘에 대한 경험적 격차가 벌어지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42] 혹자는 이것을 적당히 가라치는 법이라고 폄훼하기도 하나, 이 세상에서 완벽히 규칙대로 돌아가는 것은 없다. 소위 말하는 정치군인 내지 똥별들로 인해 그러한 소양에 대해 좋지 않은 인식이 박히긴 했으나, 그러한 융퉁성 발휘와 조율, 타인에게 어필하는 능력은 조직과 직무를 막론하고 더 높은 위치일 수록 그 중요성이 급증하는 필수적인 능력이다.[43] 애시당초 2호 준위장부터는 일반 위관급 장교들과 아예 동일한 권한 및 대우를 받는다고 대통령령에 의해 보장받는다.[44] 중령 이상부터는 보통 장성급 상관을 모시게 되는데 특전사에 있다 오게 되면 야전부대에서 상관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야전부대와 특전사는 전략/전술적으로도, 부대 분위기적으로도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45] 해군 특수전전단 출신인 레드셀 채널의 박종승의 언급에 따르면 바로 이런 문제 때문에 USSOCOM 오퍼레이터들의 한국군 특수부대 수뇌부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한다고 한다. 현재 대한민국의 특수전부대 중 제일 먼저 미군의 교리와 신식장비를 적용하는 곳이 UDT/SEAL이지만, 그 UDT/SEAL도 이근이 네이비씰 SQT 수료 후 전문화과정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상부와 마찰을 일으켜 전역을 선택했을 정도였다. 그나마 미 특수부대원들이 한국군 특수부대를 인정해 주는 이유가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일선에서 근무하는 대원들이 끊임없이 변화와 개선을 시도하기 때문에 인정해 주는 거라고 직접 언급했다. 하지만 한국군 특수부대의 보여주기식 훈련과 부실한 지원을 지적하는건 아직도 여전하다고.[46] 물론 일반 부대에서도 소대장의 능력이 좋지 않으면 부사관들이 무시하는 건 똑같다.[47] 드문 예로 대위 때 어쩌다 전입한 특전사에서 소령(진)까지 붙어있다가 소령 때 일반부대 참모로 빠지고 중령에 진급한 경우도 있다. 이 경우 부하 수가 10명이었다가 갑자기 500명으로 대폭 증가해 버려서 난처해한 경우.[48] 시기에 따라 다르지만, 특수전사령부 직할부대인 707특임대의 소속 편제로 돼있던 때도 있었다. 유튜버 박은하가 이 시기에 707 예하로 군 생활을 하다가 자이툰 부대 파병을 갔던 것으로 보인다.[49] 단, 화기 주특기들은 K2 소총을 기본화기로 쓴다. K2 소총K201 유탄발사기나 이오시스템에서 제작한 PAS-01K 주야간조준경을 장착해 사용하기도 하며, 현재는 K2C1와 이오시스템이 K15 용으로 제작한 레일 장착형 신형 주야간조준경인 MGS-5(PAS-18K)의 조합으로 대체되는 추세다.K2C1에 PAS-18K를 부착해 운용하는 모습[50] 지역대 연결작전 또는 국지 도발임무 시 화력지원용. 다만 미군 특수전 병력도 Mk.48 LWMG처럼 특수전 사양으로 독자적으로 개수한 기관총을 쓰기도 하는 만큼 없는 것보다는 확실히 낫다. 현재는 K15 경기관총으로 점차 대체되고 있다.[51] 그나마 특전사 장비가 개선되고 있는것도 UDT 파견교육을 수료한 부사관 및 장교들, 그리고 소수 깨어있는 지휘관들 덕분에 개선되고 있다. 그래도 UDT나 707에 비하면 아직도 모자란 수준이다.[52] 애초에 K7 소음기관단총 역시 특전사측에서 국방부에 요청하여 만들어지게 된 총기이다.[53] 이 때문에 특전사 대원들이 사격 훈련에서 매우 자신감을 얻는 계기가 되었다.[54] 바로 후임인 장경석 장군부터 금지했다.이 자는 하나회의 뒤를 이은 군내 사조직 알자회의 일원이다.[55] UDT 가 사용.[56] 707 특임단 이 사용.[57] 이 방탄복은 다기능 방탄복이라고 특전사용으로 삼양컴택이 납품하는 방탄복인데 비리로 사업자체가 폭파돼서 납품 중지가 됐고 JSA에 일부 물량이 넘어갔다가 현재는 다목적 방탄복이라고 현용 육군표준 방탄복으로 채용됐다. 문제는 이 방탄복도 역시 비리문제로 성능자체는 크게 하자가 없으나 조달과정의 비리 등등에 문제가 있어 올해 조달이 사실상 취소됐고 방탄판은 NIJ level 4급으로 다시 조달사업을 벌이고 있다.[58] 사실 이런 사제 장비 금지 문화는 야전부대와 특전사로 혹은 그 반대로 왔다 갔다 하는 제도에서 비롯된 거다. 야전부대 출신 간부가 들어오니 야전부대 문화가 섞여오고 이러니 괴상한 풍토가 생기는 것이다. 즉, 미군처럼 오로지 특수전 전문화 과정을 밟은 특전통 계열 장군들을 양성하는 것이 매우 중요해졌다.[59] 원본이 아니다. 지하철 전철로 추정되는 것에 침투하여 수색하는 장면이 있었지만 검열되고 다시 올라왔다. 그래서 16초 전후에 배경음악이 어색하고, "나는 충성의 검은 베레, 국민과 국가에 헌신한다."라는 문구가 빠졌다.[60] 넷플릭스 유튜브에 올라온 영상에서 윤종빈 감독이 인물 설정을 해설해주면서 특전사라고 설명한다. 감독의 다른 인터뷰에서도 변기태는 특전사 대위라는 설정이라고 일관되게 밝혔다. 그런데 본 드라마의 후반부 국정원 프레젠테이션 화면상에 잠깐 나온 증명 사진에는 정보사 육상(HID) 구형 어반그레이 패턴 전투복을 착용한 모습이 나왔다.[61] 아쉽게도 밀심 스킨이라는 특성상 목소리는 기본 캐릭터와 동일하다.[62] 제707특수임무대대 내에 편제되어 존속하고 있다.[63] S&S Precision 사의 Plate Frame이다. 특유의 해골 뼈대같은 개성있는 모습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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