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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보물 제1761호 | |
경복궁 향원정 景福宮 香遠亭 | |
소재지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로 161 (세종로) |
분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궁궐·관아 / 궁궐 |
수량 | 1동 |
지정연도 | 2012년 3월 2일 |
제작시기 | 조선 시대 |
<colbgcolor=#bf1400> 향원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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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경복궁의 후원에 있는 정자이다.위치는 건청궁의 바로 남쪽, 함화당과 집경당의 북쪽에 있다.
2. 이름과 현판
'향원(香遠)' 뜻은 '향기(香)가 멀리(遠) 간다'로, 북송 시기 학자 주돈이(周敦頤, 1017 ~ 1073)가 지은 《애련설(愛蓮說)》의, '향기가 멀리 갈수록 더욱 맑아진다(香遠益淸)'는 구절에서 유래했다.<colbgcolor=#bf1400> 향원정 현판[1] |
3. 역사
조선 초기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1456년(세조 2년)에 경복궁 후원에 지은 취로정(翠露亭)이 향원정 자리에 있었다고 하나, 확실하지는 않다.현재 향원정은 경복궁 중건 이후에 처음 세운 것이지만, 정확한 건립 시기는 알 수 없다. 한때 1873년(고종 10년)에 건청궁과 같이 건립했다는 설이 유력했었다. 그러나 하술할 2017년 ~ 2021년 보수 공사 때 문화재청에서 목재 연륜 연대 조사를 통해 1881년(고종 18년)과 1884년(고종 21년) 두 번에 걸쳐 벌채한 목재를 사용한 것을 확인했다. 그래서 현재는 건립 시기를 1885년(고종 22년) 안팎으로 추정한다.#
이후 왕과 왕실 가족들이 휴식처로 활용했다.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거치면서도 무사하여 지금까지 남아있다. 그러나 일부 변형된 부분이 있기도 했다.
건물 구조의 특징에 대해서는 링크 참조.
<colbgcolor=#bf1400> 문화재청에서 제작한 향원정 복원 수리 현장 영상 |
<colbgcolor=#bf1400> 향원정 온돌 발견 내용을 다룬 2019년 11월 20일 자 YTN 뉴스 |
<colbgcolor=#bf1400> 향원정 복원, 보수 공사 완료 및 공개를 다룬 2021년 11월 5일 자 KBS 뉴스 |
4. 향원지
<colbgcolor=#bf1400> 향원지[4] |
향원정의 연못이다. 역사는 향원정과 같다.
천원지방 사상에 따라 사각형으로 지었으나 가장자리 부분만 둥글게 마무리 했다. 연못 가운데에 둥근 섬이 있고 그 위에 향원정 건물이 들어서있다. 현재는 잉어가 살고 있는 듯하다.[5]
넓이 5,438㎡로, 수심은 평균 0.7m, 제일 깊은 곳은 1.1m이다.#
1894년 향원지에서 서양 선교사들이 피겨 스케이팅을 고종과 명성황후 앞에서 시연했다.
5. 취향교
<colbgcolor=#bf1400> 취향교 |
향원정을 건너는 다리이다. 향원정을 지을 때 같이 세웠으며 향원정의 북쪽, 그러니까 건청궁 쪽 방향에 있었다.
<colbgcolor=#bf1400> 조선 말에 촬영한 향원정과 취향교. 왼쪽은 러시아 공사를 지냈던 카를 이바노비치 베베르가 촬영한 사진이고, 오른쪽은 아놀드.H의 편지에서 채록한 사진이다. | |
일제강점기 초 취향교 모습을 담은 엽서[6] | |
유리건판에 촬영한 취향교 사진 | 《조선고적도보》에 실린 취향교 사진. 다리가 일자로 바뀌었다. |
<colbgcolor=#bf1400> 2007년[7] ~ 2017년의 향원정과 취향교 모습. 전면에 보이는 다리가 6.25 전쟁 이후 새로 지은 취향교이다.[8] |
발굴조사를 통해 원 위치를 확인한 후 대한제국 말기에 촬영된 사진들을 바탕으로 GPS 측량과 3D 스캐닝을 통해 정밀측량자료를 확보하는 등 재현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그리고 2020년에 복원 공사를 마쳤다.
복원한 다리는 새하얀 나무 다리인데 전통 목조 양식과 다소 이질적인 모양이라 향원정과 어울리지 않다고 느낀다는 시민들도 많다. 여기서 더 나아가 아예 다리가 철제 아니냐고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목교가 맞다. 문화재청 공식 유튜브의 향원정+취향교 복원 과정 영상. 그러나 새로 지어진 취향교는 엄연히 옛 사진을 바탕으로 복원한 것이기 때문에 디자인 측면에서는 몰라도 재현 면에서 문제될 것은 전혀 없다.# 상술했듯 향원정과 취향교는 1885년(고종 22년) 즈음에 세운 것으로, 시기를 보면 오히려 근대 한옥에 가깝다.
1953년에 재건했던 다리의 구조와 특징에 대해서는 링크 참조.
6. 열상진원
<colbgcolor=#bf1400> 열상진원[9] |
향원정 서북쪽에 있는 샘. 북악산의 지하수가 이 곳에서 솟아나 향원지 물을 채운다. 샘 주변을 덮는 돌과 뚜껑은 화강석이다.
경복궁 창건 당시부터 있었으나 뚜껑은 고종 때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만들었다.
이름은 '한강(洌上)의 진짜(眞) 근원(源)'이란 뜻이다. 열수는 한강의 다른 말이고 '열상'은 '열수 가', 즉 '서울'을 의미하는데, 편의상 열상을 열수와 같은 뜻으로 쓴 듯하다. 비록 강원도 태백시 검룡소가 한강의 진짜 발원지이지만, 왕궁에서 발원한 물이 한강으로 흐르기에 상징적으로 이름 붙인 것이다.#
샘은 총 3층 계단식이다. 솟아난 물이 2번 직각으로 꺾여 향원지로 들어가게 했고, 특히 연못과 만나는 부분은, 동그란 홈에 물이 고이게 하여 향원지 물 높이보다 아래로 흘러들어 갈 수 있게 만들었다. 이는 한 번에 물이 내려올 때 생길 수 있는 연못의 파동을 최대한 줄여 향원지의 물을 잔잔하게 유지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이렇게 만든 데에는 물고기가 놀라지 않게 하려고 그랬다는 설과 연못에 비친 향원정과 여러 꽃, 나무의 그림자들을 흔들 림없이 보려고 했다는 설이 있다.
<colbgcolor=#bf1400> 관람객이 열상진원 샘물을 떠마실 수 있게 비치했던 바가지. 2000년대 초중반 모습이다. |
7. 기타
- 1887년 3월 6일 아시아 최초의 에디슨식[10] 전등을 건청궁에 설치했을 때 발전기 냉각수를 확보하기 위해 바로 향원정 남쪽에 발전기를 설치했다. 그러나 향원지의 수온이 올라가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하기도 했다. 이 때 전등을 설치한 회사가 토머스 에디슨의 전기 회사였다.
- 한반도 최초의 스케이트 공간이기도 하다. 조선을 방문했던 영국인 이사벨라 버드 비숍의 책 《조선과 이웃나라들》에 따르면, 1894년(고종 31년) 겨울에, 서양 선교사들이 얼어붙은 향원지 연못에서 피겨 스케이팅 시연회를 고종과 명성황후 앞에서 했는데 고종은 선교사들이 미끄러질 때마다 엄청 웃으면서 즐거워했다고 한다.[11] 명성황후는 이성끼리 서로 손을 잡았다 놨다 하는 것을 못마땅해했으나 얼음판 위에 놓인 의자를 훌쩍 뛰어넘는 곡예를 부릴 때는 어린이처럼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고 한다. 이후에도 몇 번 더 경복궁에서 스케이트를 타게 했으며 1895년 1월에는 아예 두 차례에 걸쳐 스케이트 파티를 열었는데 서울에 살던 대부분의 서양인들이 모였다.
- 굉장히 아름다운 풍경에다 서울에 있어서 그런지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출품작 중 가장 많이 나온 소재이기도 하다. 미술대회 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이곳에서 그림을 그리는 경우가 많다.
- 경관이 아름답기 때문에 경회루와 더불어 경복궁을 홍보하는 사진 모델로 자주 나온다.[12] 둘 다 연못 가운데 섬이 있고 섬 위에 건물이 있는 구조인데, 아무래도 규모가 차이가 있다보니 경회루는 특별 관람을 통해 일반인들이 제한적으로나마 들어갈 수 있지만, 향원정은 그런 게 없어서 일반인들이 들어가서 볼 기회가 없다.
<colbgcolor=#bf1400> 문화재청에서 제작한 〈같이 걸으시겠습니까? 🐧 왕이 된 펭수 | 문화유산 방문 캠페인X펭수〉 영상 |
8. 대중매체에서
궁궐 촬영이 비교적 쉬웠던 2000년대 이전 조선을 배경으로 한 사극에서 후원으로 많이 나왔다. 다만, 향원정을 처음 지은 것은 고종 때인데 임진왜란 전 조선 초 ~ 중기를 다룬 드라마에도 후원으로 나오는 재현 오류가 있었다. 200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대부분의 주요 전각들은 거의 세트장을 배경으로 했지만 향원정만큼은 실물이 간간히 나온다. 아마 세트로 재현하기 힘들기 때문에 비용이 더 많이 들더라도[13] 감수했던 것 같다.[1] 사진 출처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2] 건물의 내, 외부를 아름답게 꾸미는 재료.[3] 다만, 펜스는 10월 말에 이미 모두 걷어내었다.[4] 사진 출처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5] 가끔 향원지 물 위에 떠있는 녹조류들을 먹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6] 사진 출처 - 국립고궁박물관.[7] 뒤에 보이는 건청궁은 2007년에 복원되었다.[8] 첫 번째 사진 출처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9] 사진 출처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10] 아시아 최초의 전등이 아니란 것을 유념할 것. 아크식 가로등은 이미 인도(1879), 일본(1882)에 도입된 상황이었으며, 특히 일본은 1878년 도쿄대학 내에 아크등을 시연했다. 중국도 1882년 가로등을 설치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 역시 아크등이었다.[11] 이 때 스케이트를 ‘얼음발굿’ ‘빙예(氷藝)’ ‘빙족희(氷足戱)’ 등으로 불렀다고 한다.[12] 2017년 5월부터 2021년 10월까지는 장기간 복원 공사로 인해 가려져 있어서 저 시기에는 예외였다.[13] 당연하지만 세트장보다 실제 궁궐의 촬영 대여료가 훨씬 비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