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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보 제184호 | |
구미 선산읍 금동보살입상(1976-2) 龜尾 善山邑 金銅菩薩立像(1976-2) | |
소재지 | 대구광역시 수성구 청호로 321, 국립대구박물관 (황금동,국립대구박물관) |
분류 | 유물 / 불교조각 / 금속조 / 보살상 |
수량/면적 | 1구 |
지정연도 | 1976년 4월 23일 |
제작시기 | 삼국시대 말 - 통일신라 |
1. 개요
龜尾 善山邑 金銅菩薩立像.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고아면 봉한2리에서 출토된 신라 시대의 금동보살입상. 현재 국립대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대한민국 국보 제184호로 지정되어 있다.2. 내용
구미 선산읍 금동여래입상(가운데), 구미 선산읍 금동보살입상(1976-1)(좌측)과 나란히 비교한 사진. |
높이 32㎝.
1976년 경상북도 선산군(현 구미시 선산읍) 고아면 봉한2리의 뒷산에서 발견된 신라시대 금동 불상으로, 구미 선산읍 금동여래입상, 국보 제183호 금동보살입상과 함께 발견되었다. 이때 출토된 3구의 보살은 제작시기가 조금씩 다른데 이 불상은 신라시대 7세기 초반(서기 600년대 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다른 두 불상보다 좀 더 이른 시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만들어진 시기는 가장 빠르지만 불상의 화려함과 세련됨은 셋 중 가장 으뜸으로 칠 만하다.
이 시기 제작된 우리나라 보살상으로서는 매우 보기 드물게 화려한 장신구들을 다수 지니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목에는 복잡한 목걸이가 걸리고, 어깨로부터 늘어진 구슬 목걸이가 배 부분의 원형 장식을 중심으로 교차되어 드리워졌다. 이 구슬 목걸이 장식의 원형 연결 부분마다 다른 구슬목걸이들이 걸쳐 있다.
꽃장식의 머리에 꽃으로 장식된 보관(寶冠)에는 화불좌상(化佛坐像)이 새겨져 있다. 약간 길고 각진 얼굴은 근엄한 표정을 하고 있으며, 눈썹이 길고 눈과 코와 입이 뚜렷하여 작품성이 매우 높다,
신라에서 불교가 처음 수용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는 선산 지방에서 출토된 600년대 초 금동 불상으로 한국의 불교사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1976년 4월 23일 대한민국 국보로 지정되었다.
3. 외부 링크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구미 선산읍 금동보살입상
- 두산백과 : 구미 선산읍 금동보살입상
- 한국어 위키백과 : 구미 선산읍 금동보살입상 (국보 제184호)
- 미술백과 : 금동관음보살입상
- e뮤지엄 : 금동관음보살입상
4. 국보 제184호
경상북도 선산군 고아면에서 공사를 하던 중 구미 선산읍 금동여래입상(국보 제182호), 구미 선산읍 금동보살입상(국보 제183호)과 함께 출토되었다. 이 지역에서 삼국시대의 기와조각과 토기조각들이 많이 출토되어서 원래 절터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정면을 향해 꼿꼿이 선 보살상은 머리에 꽃으로 장식된 관(冠)을 쓰고 있으며, 관의 가운데에는 둥근 테두리 안에 작은 부처가 새겨져 있다. 약간 길고 네모진 얼굴은 엄숙한 표정을 띠며, 어깨는 넓은 편이어서 근엄하고 딱딱한 느낌을 준다. 길고 굵은 목에는 복잡한 구슬 장식의 목걸이가 걸려 있고, 어깨로부터 늘어진 목걸이는 배부분에서 X자를 그리며 교차한다. 또 목걸이 장식의 연결부분마다 또다른 구슬을 걸쳐 매우 번잡하게 나타냈는데, 신라시대 보살상으로는 드물게 많은 장신구를 지니고 있어 주목된다. 오른손은 내려서 구슬장식을 가볍게 잡고 있으며, 왼손은 윗부분이 떨어져 나갔으나 정병(淨甁)과 연꽃가지를 들고 있었던 것 같다.
현재 광배(光背)와 대좌(臺座)는 없어진 상태인데, 머리 뒤에는 광배 꼭지가 남아 있으며 발 아래에는 대좌에 꽂기 위한 기둥모양의 촉(觸)이 높게 달려 있다.
전체적으로 근엄하고 당당한 모습이며, 중국적인 요소가 강한 복잡하고 화려한 장신구의 표현이 매우 특이한 이 보살상은 7세기 전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시기 금동보살상으로서는 유례가 드문 작품으로 가치가 매우 크다.
정면을 향해 꼿꼿이 선 보살상은 머리에 꽃으로 장식된 관(冠)을 쓰고 있으며, 관의 가운데에는 둥근 테두리 안에 작은 부처가 새겨져 있다. 약간 길고 네모진 얼굴은 엄숙한 표정을 띠며, 어깨는 넓은 편이어서 근엄하고 딱딱한 느낌을 준다. 길고 굵은 목에는 복잡한 구슬 장식의 목걸이가 걸려 있고, 어깨로부터 늘어진 목걸이는 배부분에서 X자를 그리며 교차한다. 또 목걸이 장식의 연결부분마다 또다른 구슬을 걸쳐 매우 번잡하게 나타냈는데, 신라시대 보살상으로는 드물게 많은 장신구를 지니고 있어 주목된다. 오른손은 내려서 구슬장식을 가볍게 잡고 있으며, 왼손은 윗부분이 떨어져 나갔으나 정병(淨甁)과 연꽃가지를 들고 있었던 것 같다.
현재 광배(光背)와 대좌(臺座)는 없어진 상태인데, 머리 뒤에는 광배 꼭지가 남아 있으며 발 아래에는 대좌에 꽂기 위한 기둥모양의 촉(觸)이 높게 달려 있다.
전체적으로 근엄하고 당당한 모습이며, 중국적인 요소가 강한 복잡하고 화려한 장신구의 표현이 매우 특이한 이 보살상은 7세기 전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시기 금동보살상으로서는 유례가 드문 작품으로 가치가 매우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