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제국 제62대 황제 로물루스 아우구스투스 ROMVLVS AVGVSTVS | |
<colbgcolor=#9F0807><colcolor=#FCE774,#FCE774> 이명 |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 Romulus Augustulus |
출생 | 465년 |
서로마 제국 판노니아 | |
사망 | 535년 이전 |
카스텔룸 루카라눔 | |
재위 기간 | 로마 황제 |
475년 10월 31일 ~ 476년 9월 4일 (309일) | |
전임자 | 율리우스 네포스 |
부모 | 아버지: 오레스테스 어머니: 바바리아 |
종교 | 기독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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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제국(서로마 제국)의 62대 황제. 당시 서로마 제국 내의 실력자였던 오레스테스의 아들이다. 원래 이름은 로물루스였으며, 황제가 되면서 아우구스툴루스(작은, 어린 아우구스투스)가 덧붙었다. 서로마 제국이 오도아케르의 침공으로 멸망하면서, 서로마 제국의 마지막 황제로 남게 되었다.2. 생애
2.1. 즉위
동로마에서 임명하여 글리케리우스 황제를 쫓아낸 율리우스 네포스가 황제로 있었지만, 이 당시 양 로마 제국 간의 사이가 좋지 않았던 데다 리키메르 사후 그의 지지세력이 동로마 제국과 척을 지게 되면서 그 지도자인 오레스테스[1]는 동로마 제국의 뜻을 무시하고 자신의 아들을 황제로 추대한다.[2] 아이러니하게도 로마 제국 역사상 가장 어린 나이에 황제가 되었다.2.2. 폐위
서로마 제국에 용병으로 고용되어 있던 야만족 출신의 장교들이 봉급으로 땅을 요구했는데 오레스테스가 무슨 배짱에서인지[3]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이 때문에 이들이 오도아케르를 리더로 하여 로마에 쳐들어와서 전투에서 이기고[4] 오레스테스를 죽인 다음 라벤나로 들어가 황제를 폐위시켰다.
물론 여전히 율리우스 네포스는 자신을 제국 서방 황제로 자칭했으며 동로마 제국 측에서는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를 황제 취급하지 않았지만, 율리우스 네포스는 이탈리아 반도에는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죽은 데다, 이후 이탈리아를 손에 넣은 오도아케르가 서로마 황제위를 정식으로 동로마 황제에게 반납하는 제스처[5]를 취하면서 이때를 계기로 서로마 제국 황제위는 동로마에게 흡수되어 사실상 사라졌다.
2.3. 이후 생애
한 사서에 따르면,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는 미소년이었고 여기에 오도아케르가 마음이 약해졌다고 한다. 오도아케르의 관용 덕택인지 그는 6000솔리두스의 연금을 받고 안전하게 퇴위할 수 있었고, 나폴리 근교의 자택으로 돌아갔으나, 그 뒤는 아무런 기록이 없어서 알 수 없다. 그 난리통 속에서도 기원후 500년 이후까지도 살아 있었다는 주장도 있으나, 구체적인 근거는 없다. 다만, 테오도리크 대왕이 편지를 보냈다는 기록이 있어 507~511년 사이 까진 살아있었던건 확실하며 적어도 동로마의 이탈리아 수복전 전에는 죽었을 것으로 보인다.3. 이름 관련 징크스
언제부터인지는 불명이나, 로마 제국은 '실질적인 창건자와 같은 이름을 가진 이의 치세에 멸망한다'는 예언이 은연 중에 돌고 있었다. 근데 '로마국'을 세운 로물루스와 '제정 로마'를 세운 아우구스투스의 이름을 모두 가진 이 인물이 마지막 서로마 황제가 되었고, 첫번째 '카이사르'와 이름이 같은 '율리우스' 네포스를 마지막 서로마 황제로 간주해도 마찬가지라, 예언은 이내 당대의 화젯거리가 되었다.문제는 서로마만 그렇게 사라졌다면 단순 화젯거리로 끝났을 이 예언이[6], 로마의 이름을 이어받은 나라들에게도 들어맞으면서 일종의 징크스로 되어버린 것이다.
당장 서로마 멸망 이후에도 천년 넘게 존속했던 동로마 제국은 점차 자신들의 정체성이 된 기독교를 공인하고 콘스탄티노폴리스를 건설한 콘스탄티누스 대제를 실질적인 창건자로 여겼는데[7], 공교롭게도 같은 이름을 가진 콘스탄티노스 11세[8]의 치세에 멸망하였다.
현대에는 부정되지만, 당대에는 새로운 로마로 인정받았던 신성 로마 제국 또한 징크스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 합스부르크 가문의 근대 제국[9]을 마치 조선-대한제국처럼 신롬의 연장으로 보는 견해가 여전히 존재하고, 해당 관점에선 신롬은 카를 1세가 세웠고 (또 다른) 카를 1세 때에 비로소 그 기반이 완전히 붕괴되었으니 징크스가 얼추 들어맞는다.
동롬과 신롬 이후에 들어선 제3의 로마 국가들 또한 멸망 이유는 다 제각각이지만, 해당 징크스에서 벗어나질 못했는데.
- 카롤루스 대제의 후계자를 자칭하고 황제로 즉위했던 나폴레옹 1세의 프랑스 제국은 본인의 치세에 멸망했다.[10] 이후 이름이 같은 조카가 겨우 재건하나, 그마저도 조카의 치세에 멸망했다.
- 신성 로마 제국을 제1제국이라 부르며, 후예를 자처한 제2제국은 빌헬름 1세가 세우고 빌헬름 2세 때 망했다. 설상가상으로 제2제국의 후예를 자처한 제3제국마저 창건자 본인의 대에서 사실상 끝났다.[11]
- '불가리아인과 로마인의 지배자'를 자칭했던 불가리아 차르는 시메온 1세에서 시작되어 시메온 2세[12] 때에 끝났다.
- 서방권이 구 동로마 지역에 세운 괴뢰국, 라틴 제국의 최초 지도자는 보두앵 1세였고 최후의 지도자는 보두앵 2세였다.
- 불가리아처럼 '세르비아인과 로마인의 지배자'를 자칭했던 세르비아 차르 또한 스테판 우로시 4세 두샨에서 시작하여, 그의 아들 스테판 우로시 5세로 계보가 끊긴다.
- 아이러니하게도 동로마 제국을 멸망시킨 인물이자, 오스만의 실질적인 창건자로 여겨지는 메흐메트 2세 또한 '카이세리 룸(로마 황제)'을 자처하면서 해당 징크스에 합류했다. 이쯤되면 예상할 수 있듯이, 오스만은 또 다른 메흐메트의 치세에 망한다.
- 황제를 칭하진 않았지만 로마의 계승자를 자처한 이탈리아 왕국은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가 세웠지만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가 실질적인 마지막 국왕[13]이다.
그래도 징크스가 다 그렇듯, 피한 사례도 있다. 제 3의 로마를[14] 표방한 러시아 제국이 바로 그 예. 다만 이들 또한 로마노프 왕조의 창건자 미하일 1세와 이름이 같은 미하일 대공이 하루 남짓 황제를 칭했으나,[15] 이것까지 인정한다는 건 너무 억지스러운 일이다.
4. 창작물에서
배우는 토머스 브로디생스터[16].
<마지막 군단>이라는 영화에서는 이 황제가 나중에 탈출해서 영국으로 가서 아서 왕의 조상이 된다는 내용을 그리기도 하였는데 고증 면에서 판타지에 가깝다. 동로마 제국이 황제를 보호하겠다고 했다거나 뒤늦게 오도아케르를 승인했다거나,[17] 아니면 410년에 이미 황제를 자칭한 인물에게 선동되어 극히 일부를 빼면 일찌감치 갈리아로 떠난 브리타니아의 군단이 서로마 멸망 시점에도 건재하다든가[18] 하는 게 대표적. 미나모토노 요시츠네가 몽골에 건너가 칭기즈 칸이 되었다는 스토리 급이다.
희극인 '로물루스 대제'라는 연극이 있다. 이 작품에선 국정에는 아무런 관심없이 닭이나 키우는 무능한 암군으로 나오는데,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는 어린 나이에 즉위했다가 폐위되어 능력을 입증할 기회조차 없었던 인물이었던 반면 여기에 나오는 로물루스는 결혼할 나이가 된 딸까지 있는 늙고 무능한 황제라서 실제 역사와는 거리가 멀고, 실제로 국정에 관심 없고 닭이나 키우던 인물은 서로마 초대 황제 호노리우스였다. 작가는 프리드리히 뒤렌마트로, 국내에선 야인시대 이승만 역으로 유명한 배우 권성덕이 암투병 이후 복귀작으로 나왔던 작품이라 그쪽 매니아들에게 조금 화제가 되었던 작품이기도 하다.
Why? 시리즈 유럽의 성립과 발전에선 길가의 풀숲에서 주인공(미르)와 대화하는 장면이 나온다.[19] 이때 오도아케르의 수하들이 나타나자 헤어지면서 마지막으로 하는 말이 상당히 서글프면서도 씁슬한 것이, 나는 오늘 황제 자리를 내놔야해.
5. 둘러보기
서로마 제국의 역대 황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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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대 율리우스 네포스 | ← | 63대 로물루스 아우구스투스 | 오도아케르 | |||||||
율리우스 네포스 |
[1] 참고로 아틸라에게 부역한 매국노이긴 하지만 엄연한 로마인이었다.[2] 오레스테스 본인이 로마인이라서 법적으로는 황제가 되는데 하자가 없었지만, 아틸라에게 부역했던 경력 때문에 이미지가 안 좋아서 어린 아들을 황제로 추대했다.[3] 당시 서로마 정규군은 극도로 약화되어 있었던 데다 그나마도 각 지역에 사실상 정착하다시피 한 게르만족에 맞서 분산되어 방어전을 벌이느라 라벤나를 구원할 여력이 없었다. 이들은 서로마 멸망 이후에도 격렬하게 저항했으나 결국 중과부적으로 각개격파당하여 대부분 전멸한다.[4] 두 번 모두 이겼고 두 번째 전투에서 오레스테스를 참살했다.[5] 서로마 황제의 관을 보냈다. 물론 동로마 황제는 당연히 이걸 인정하지 않았고 이는 이후 오도아케르가 동로마 제국의 황제가 보낸 테오도리크에게 죽는 원인이 된다.[6] 당장 서로마가 멸망해도 동로마는 멀쩡했고, 이후로도 천년은 더 갔으니...[7] 물론 여전히 로물루스와 아우구스투스를 시조로 대접했으나, 기독교 국가가 된 입장에선 마르스의 후손을 자처한 로물루스와 로마 고유신의 의례를 주도한 아우구스투스를 예전처럼 기릴 수가 없었다.[8] 콘스탄티누스와 콘스탄티노스는 같은 이름을 각각 라틴어와 그리스어로 표기한 것이다.[9] 오스트리아 제국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10] 멸망하기 직전에 자신의 어린 아들 나폴레옹 2세에게 양위하긴 했지만, 정식으로 즉위한 건 아니라서 큰 의미는 없다.[11] 카를 되니츠가 히틀러 사후에 잠깐 나치 정권의 수장으로 있었지만, 보편적인 관점으론 되니츠 휘하의 독일은 플렌스부르크 정부라 해서 따로 구분한다.[12] 앞으로 슬라브권에 차르가 복고되지 않는다면 세계 최후의 차르이기도 하다.[13] 다음 국왕인 움베르토 2세는 왕정 폐지 투표에서 부정적 결과를 줄 수 있는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가 퇴위하고 한 달 밖에 재위하고 폐위됐기 때문이다.[14] 러시아인들은 자신들의 제국을 '라틴인의 로마'와 '그리스인의 로마'에 이은 '루스인의 로마'로 보았다. 때문에 1차 대전 당시, 콘스탄티노폴을 '수복'할 것을 천명하기도 했다. 결국 실패했지만.[15] 찬탈은 아니고, 형인 니콜라이 2세가 동생에게 책임을 떠넘기기 위해 양위하려 했던 것이었다.[16] 영화 촬영 당시 세는 나이로 16살, 개봉 당시 18살이었다. 동안으로 유명한 배우 답게 영화에서는 배우의 실제 나이보다 어려보이게 나온다. 그래서 배우가 10대 중후반임에도 불구히고 제위 당시 10대 초반이었던 실제 역사속의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와 위화감이 없다.[17] 로물루스 황제는 애시당초 동로마 제국의 승인을 받지 않고 옹립되었으며 그렇다고 오도아케르를 승인하지도 않았다. 테오도리크가 왜 오도아케르를 죽일 수 있었는가를 생각해 보자.[18] 오히려 건재했던 군단은 갈리아 지역에 배치되어 게르만족에 맞서 싸우고 있던 군단들이었다. 이들은 대부분 프랑크족과 마지막까지 싸웠지만 결국 중과부적으로 전멸한다.[19] 이때 주인공에게 충고한 것이 미르가 퀘스트 해결에 큰 도움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