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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인물을 모티브로 한 '드라마'에 대한 내용은 맨헌트: 유나바머 문서 참고하십시오.<colbgcolor=#000><colcolor=#fff> 시어도어 카진스키 Theodore Kaczynski | |
본명 | 시어도어 존 카진스키 Theodore John Kaczynski[1] |
이명 | 유나바머 Unabomber |
출생 | 1942년 5월 22일 |
미국 일리노이 주 시카고 | |
사망 | 2023년 6월 10일 (향년 81세) |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 버트너 연방의료센터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신장 | 175cm |
종교 | 무신론[2] |
IQ | 167 (스탠퍼드-비네 검사. 12세 때 측정) 136[3] (웩슬러 지능검사. 1996년 5월 1일 측정) |
학력 | 하버드 대학교 (수학 / 학사) 미시간 대학교 (수학 / 석사·박사) |
직업 | 前 대학교 교수 |
저서 | 산업사회와 그 미래 Technological Slavery 반기술혁명: 목적과 방법 Boundary Functions |
에세이 | Hit where it hurts 한국어 번역 Letter to a Turkish anarchist 한국어 번역 The System’s Neatest Trick 한국어 번역 Progress versus Liberty 한국어 번역 Ship of fools 한국어 번역 |
서명 | |
범죄 정보 | |
혐의 | 폭발물 이송 및 배달, 살인 |
범행동기 | 반기술주의 |
범행기간 | 1978년 5월 25일 ~ 1995년 4월 24일 |
체포 | 1996년 4월 3일 |
유죄선고 | 1998년 1월 22일 |
처벌 | 가석방 없는 8번의 종신형 |
사상자 | 26명 (사망 3명) |
수감 | ADX 플로렌스 교도소, 등록번호 04475-0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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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수학자, 반기술주의자이자 테러리스트 연쇄살인마. 본명보다 FBI에서 붙여준 유나바머(Unabomber)라는 별명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4]16번의 폭탄 테러를 자행하여 총 3명을 살해했으며 23명에게 부상을 입힌 흉악범이다. 웩슬러 지능검사 기준 136 (상위 0.8%)의 높은 지능[5]과 냉철한 판단력, 복잡한 행동을 실행하는 추진력을 동시에 가진 인물로 경찰의 수사를 교란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이 때문에 자필 선언문을 대형 언론사에 투고하는 대범함을 보임에도 불구하고 연방수사국은 17년간 그를 체포하지 못했다.
2. 범행 이전 생애
2.1. 초기
일리노이의 시카고에서 폴란드계 이민자 부모에게서 태어났고 애칭은 테드(Ted)였다. 그의 부모는 그가 심한 두드러기가 나서 다른 사람들과의 접촉이 제한되고 병원에 격리되기 전까지는 테드가 행복한 아이였다고 동생 데이비드에게 말했다.
격리가 있은 후 테드는 수개월 동안 거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테드의 어머니 완다는 사진을 보고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테드가 의사와 함께 있었을때, 테드는 우리에 갇혀있거나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수 없는 무력한 동물들에게 동정심을 보여주었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4학년까지 테드 카진스키는 시카고의 셔먼 초등학교에 다녔고 담당선생은 카진스키가 "건강하고 잘 적응함"이라고 평가했다. 4학년 때 일리노이주 에버그린 파크로 이사했고 에버그린 중앙학교에 전학했다.
전학 당시 측정된 카진스키의 지능 지수는 167#이었으며 6학년으로 월반하였다. 카진스키는 나중에 이를 중추적인 사건이라 평가했다. 월반 이전 그는 동료들과 비교적 사교적인 활동을 하고 있었지만, 월반 이후 나이든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자신이 왕따당했다고 생각했다.
2.2. 고등학교 입학
카진스키는 시카고의 에버그린 파크 고등학교에 입학했고 그곳에서 학문적으로 우수했다. 카진스키는 마칭 밴드에서 트롬본을 연주했으며 수학, 생물학, 동전 수집 및 분석, 독일어 동아리의 멤버로 들어갔지만 같은 동아리의 동급생들이 그를 경계하여 좋은 교우관계를 갖지 못했고 겉돌았다. 재학 기간 동안 카진스키는 수학에 많은 관심을 보였으며 라플라스 변환을 비롯한 복잡한 문제를 연구하고 해결하는데 시간을 보냈다.고등학교 전반에 걸쳐 카진스키는 동년배 학생들보다 압도적으로 뛰어난 성적을 보였다. 학교는 더 복잡한 문제를 출제했고 카진스키는 곧 그것을 습득했다. 끝내 그는 11학년을 월반하였고 여름학교에 다니는 것으로 15세에 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미국 고등학생 상위 1%만이 수여받을 수 있는 내셔널 메릿 장학금에서 결선에 선발되었으며 하버드 대학교에 지원하도록 권장받았다.
그의 고등학교 동급생은 나중에 카진스키가 정서적으로 준비가 안 되었다고 말했다. "그들은 준비되지 않은 그를 하버드로 보냈다. 그는 운전 면허증조차 갖고 있지 않았다."
2.3. 하버드 대학교
16세에 하버드 대학교 수학과에 입학하였으며 졸업까지 하버드의 기숙사인 엘리엇 하우스에서 살았다. 당시 그를 본 주변인물들은 카진스키가 조용하지만 인격적인 사람이었다고 평가했다. 그와 같은 건물을 썼던 동기는 체포 이후 그의 성격을 묻는 인터뷰에 대해 "단지 개인의견이지만, 나는 그가 똑똑하고 훌륭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한 바 있다.
2학년 때부터 카진스키는 미국의 세뇌 프로그램인 MK 울트라 계획의 피해자가 되었다. 당시 카진스키는 MK 울트라를 주도하던 하버드의 심리학자 헨리 머리(Henry Murray)[6]가 이끄는 "고의적으로 잔인한 심리 실험" 연구에 참가했다. 이 실험은 피실험자에게 동료 학생과 개인 철학에 대해 토론할 것이라고 말하고 개인적인 신념과 열망을 자세히 기술한 에세이를 작성하게 했다. 그리고 해당 문서를 다른 사람에게 인계한 뒤 피실험자에게 에세이의 제목을 과소평가하며 에세이의 내용을 사용하여 조롱, 모욕, 멸시하도록 하고 피실험자에게 전극을 꽂은 후 생리적 반응을 관찰하는 실험이었다. 이 실험은 촬영되었고 여러 번에 걸쳐 반복되었다. 이 실험은 궁극적으로 3년 동안 지속되었는데, 매주 누군가가 카진스키를 언어로 학대하고 굴욕감을 갖게 하였다. 카진스키는 "학문의 일환"으로 이 실험을 200시간 동안 하였으며# 이는 그의 내면에서 악마적 증오와 분노, 열등감과 패배의식을 일깨우는 역할을 하였다. 다만 카진스키 본인은 이 실험이 자신에게 아무런 심리적 영향도 주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1962년 카진스키는 하버드 대학교를 졸업했으며 성적은 Math 210 클래스 B, Math 250 클래스 B이며, 3.12의 GPA였고 졸업 당시 20세였다. 이 성적은 그 당시가 성적 인플레이션이 없었던 시대라고는 해도 하버드에 월반 입학한 것에 비해서는 좋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시카고 대학교, UC 버클리등의 대학원에 합격했지만, 지원금이나 조교의 제안은 어느 대학원에서도 얻지 못했다. 그러나 종국적으로는 미시간 주에서 연 2,310달러의 지원금[7]과 졸업 후 교수 채용을 제안해 미시간 대학교의 대학원에 입학하기로 했다.
2.4. 미시간 대학교
1964년 미시간 대학교 수학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1967년 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의 주요 연구과목은 복소해석학과 기하함수이론이었고 교수들에게 굉장히 뛰어난 학생으로 평가되었다.
수학과의 교수였던 피터 듀런은 카진스키가 "다른 대학원생들과는 다른 특이한 사람이었다"며 "그는 수학적 진실을 발견하는데 있어 뛰어난 힘을 갖고 있다"고 말했고 복소해석학 교수였던 조지 피래니언은 "그는 현명하다는 말로는 충분하지 않은 학생이었다"고 평했다. 미시간에서 카진스키는 총 18개의 과목에서 5개의 B와 12개의 A를 받았다.
그러나 카진스키는 미시간 대학의 추억이 즐겁지 않았다고 말했다. "내가 물리학 과목을 제외하고 꽤 많은 A를 받았다는 것은 미시간에서의 '표준'이 얼마나 비참하게 낮은지를 보여준다..."
1967년, 카진스키의 논문 "Boundary Function"은 미시간 대학교 최고 수학상인 섬너 B. 마이어스상을 수상했다. 그의 박사 지도교수인 앨런 실드는 "내가 지도한 것 중에 가장 훌륭한 논문"이라고 평가했다.
2.5. 교수 입문
1967년 말 UC 버클리 대학교의 조교수로 선임되었고, 이로서 UC 버클리 수학과 역사상 기하학 및 해석학 전공 교원들 중 가장 최연소(24세)에 임용 된 교수가 되었다.↑ 조교수 시절의 카진스키. 1968년 촬영. |
카진스키는 재임 후 불과 2년 뒤인 1969년 6월 30일에 조교수직을 사임했다. 당시 수학과의 학과장인 존 W. 애디슨은 이에 대해 "갑작스럽고 예기치 못한" 사직이라 훗날 밝혔고, 카진스키의 사직을 막기 위해 많은 설득을 했지만 실패했다. 1996년, 버클리의 부총장인 캘빈 무어는 카진스키의 '인상적인' 논문과 저서를 회고하며 카진스키는 정교수가 될 자격도 충분했고 오늘날 학과의 주요 교수진이 될 능력도 충분했다고 증언했다.
2.6. 야생 생활
사직 후 가족들에게 얹혀살거나 막노동을 하며 지냈다. 카진스키는 동생인 데이비드가 관리직으로 있던 고무 공장에 들어가 일했던 적도 있었는데, 그곳에서 같이 근무하던 여성 노동자를 짝사랑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해당 여성에 대한 외설적인 글들을 공장 곳곳에 써붙였는데 결국 동생에 의해 해고당했다.동생에게서 해고 당한 이후 31살이 된 1973년에 몬태나 주 링컨 블랙풋 강가[8]에 가로 3.3m, 세로 3m의 이동식 오두막을 짓고 수도와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자연환경에서 생필품을 자급자족하는 야인 생활을 시작했다.[9]
몬태나에서 카진스키의 목표는 기술문명에 의지하지 않는 자유롭고 자립적인 생활을 하는 것이었다. 그는 트래킹, 식용식물 식별, 유기농업, 활을 이용한 사냥과 같은 기타 원시적인 생존 기술을 스스로 익혔다. 그는 감자와 파스닙(설탕당근)을 재배했고 들짐승을 불에 구워 먹었다. 전등 대신 촛불을 켰고, 시계와 달력도 없어 중요한 일이 있을 때는 근처 마을의 이웃이 알려줘야 했다. 전화 대신 우편을 썼는데 가족들이 우표 밑에 긴급/중요를 뜻하는 붉은 줄을 긋지 않으면 읽지 않을 때도 흔했다. 물은 개울에서 떠왔다. 연 400달러 이하의 돈으로 생활했으며, 마을에 들어갈 때는 기어가 없고 오래된 자전거를 사용하고 고전 작품을 읽기 위해 지역 도서관에 자주 방문했다. 카진스키는 야생생활 중 많은 양의 책을 도서관에서 읽었으며 개중에는 독일어와 스페인어로 된 원서도 있었다. 그외에는 몇 안 되는 이웃 및 친구들과 카드게임을 했다고 한다.
이윽고 부동산 개발을 목적으로 한 산업화와 산림 개발 등으로 인해 자신의 오두막 주변의 생태계가 파괴되어 생계를 위협받았고, 지속적으로 산림업자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했다. 이로 인해 반드시 산업사회에 복수하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카진스키는 오두막에서 계속 칩거하며 무정부주의나 사보타주에 대한 책을 탐독하면서 사회에 대한 분노를 계속 키워갔고, 1978년부터는 사제 폭발물 제조법을 독학으로 익혀 산업화와 기술발전에 책임이 있는 기업가, 과학자들에게 우편물로 폭탄을 배달하면서 테러 행위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3. 범행
자세한 내용은 시어도어 카진스키/범행 문서 참고하십시오.4. 사건 이후
사건 이후 시어도어 카진스키는 수퍼맥스급 교도소 ADX 플로렌스 교도소에 수감되었고 2021년 12월까지 집필 활동을 하며 복역하였다.In fact, The work has barely been started, But I won't be able to do much. I’m not going to "get well Soon"--or ever– because I have terminal cancer. I can't expect to live more than two years at the outside, and I may well be dead in less than a year, so the work will have to be done by younger people.
사실, 작업은 거의 시작되지 않았지만 그렇게 많이 하지도 못할 겁니다. 전 말기 암에 걸렸습니다. 금방 낫지는 못할 것이고, 어쩌면 치료가 불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바깥에선 2년도 살지 못할 테고, 1년 안에 죽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이 일은 젊은이들이 마무리지어야 하겠죠.
사실, 작업은 거의 시작되지 않았지만 그렇게 많이 하지도 못할 겁니다. 전 말기 암에 걸렸습니다. 금방 낫지는 못할 것이고, 어쩌면 치료가 불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바깥에선 2년도 살지 못할 테고, 1년 안에 죽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이 일은 젊은이들이 마무리지어야 하겠죠.
카진스키가 말기 암을 진단받았다는 편지가 레딧에 올라왔다.#
5. 사망
카진스키는 2021년 12월 건강상의 이유로 노스캐롤라이나 주 버트너(Butner)에 있는 연방 의료 센터(FMC Butner)로 이감되었다.#2023년 6월 10일 밤 12시경, 카진스키가 자신의 감방 안에서 맥박 없이 쓰러져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그는 변기 옆의 손잡이 레일에 신발끈을 묶어 목을 맨 것이다. 교도소 측은 심폐소생술등 응급 조치를 한 후 인근 병원으로 옮겼으나 결국 사망이 선언 되었다. #ABC 기사 #AP통신 기사 #
6. 평가
미시간 대학교 철학 교수인 데이비드 스커비나(David Skrbina)는 노자, 플라톤, 장자크 루소, 새뮤얼 버틀러[10] 헨리 데이비드 소로, 조지 오웰, 그리고 자크 엘륄[11]과 같은 앞선 세대의 철학자들이 이미 카진스키에 앞서 비슷한 주장을 한 바가 있음을 지적했다. 또한 카진스키 외에도 이런 주장을 한 사람이 여럿 있다는 사실은 카진스키의 주장을 약화시키는 게 아니라 오히려 강화한다고 말했다. 그는 카진스키의 사상과 관련한 몇 가지 에세이를 발표했다. 그 중 하나는 '우리 시대를 위한 혁명가(한국어 번역)'이다. 또한 2000년대 초반에 카진스키와 200통 가량의 편지를 통해 기술 문명의 미래에 대해 논했으며, 이를 엮어 '기술의 노예(Technological Slavery)'를 카진스키와 함께 공동출판하였다.잡지 애틀랜틱(The Atlantic)에서 앨스턴 체이스(Alston Chase)는 "산업사회와 그 미래"에 대해 1995년도의 많은 지식인들이 천재적인 작품이라고 평가했다고 보도했다. 그리고 체이스 자신은 이 글이 "천재도 미치광이도 아닌 사람의 글"이라고 주장했다. 카진스키가 가진 기술 문명의 방향에 대한 비관주의와 현대 세계에 대한 거부는 여느 미국 고등 교육 계층과 다를 바 없이 평범하다는 것이다.[12]
선언문에서 언급된 UCLA의 제임스 윌슨 교수는 더 뉴요커 지에서 "산업 사회와 그 미래"는 신중한 추론과 치밀한 논리로 쓰여진 논문이라고 평가했다. "만약 그것을 미친 사람의 작품으로 치부한다면, 장자크 루소, 토머스 페인, 카를 마르크스 같은 정치철학자들은 거의 제정신이 아닙니다."
이콜로지스트(The Ecologist)지의 부국장 폴 킹즈노스(Paul Kingsnorth)는 오리온 매거진에 기고한 글에서 카진스키의 주장을 "걱정스러울 정도로 설득력 있다"며 "내 인생을 바꿀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강준만이 펴냈던 비정기 시사인문지 <인물과 사상>[13]에서도 카진스키에 관한 컬럼이 투고된 바 있다.
한편 아나키스트 사이에서 카진스키에 대한 평가는 심히 갈리는데, 그를 추종하는 일부 아나코 원시주의자들은 그가 위대한 혁명가였다고 평가하지만, 그렇지 않은 아나키스트들 상당수는 카진스키가 반 좌파적이며, 아나키스트도 아니며 그저 엉뚱한 사람들을 테러한 테러범으로 취급한다. 물론 아나키스트들은 테러를 긍정하지만, 그것은 반권위적이고 사회주의적이며 기존의 질서와 억압에 대항하는 형태로서의 테러를 긍정하는 것이지 모든 테러를 긍정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저서에서 보인 호모포비아 성향과 반사회주의적 성향(특히 사적 유물론을 따르는 아나코 코뮤니즘에 대해서는 더더욱)[14]은 그에 대한 아나키스트들의 평가를 더욱 극과 극으로 나누며, 비판적인 아나키스트들은 극단적으로는 카진스키를 일말의 동정도 주지 못할 유사 아나키스트로 보기도 한다. 이는 사실 아나키스트들 사이에서 아나코 원시주의에 대한 시선이 나쁜 것도 한몫한다. 대표적인 아나키스트이자 환경보호론자인 노엄 촘스키도 아나코 원시주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15]에 대해 "그게 정말 사실에 근거한 주장이라고 생각하나? 만약 그들이 옳다면 인류는 길을 잃은 것이다. 그것은 곧 대량학살에 동의한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생각해보라. 60억이나 되는 인류가 석기시대, 농경시대 사회에서 살 수 있겠는가? 무슨 일이 일어나겠는가? 아무도 인류를 산업화 이전 사회로 되돌려놓는 것에 대해서 진지한 행동 방침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것은 현실에 대한 처방이 될 수 없다."고 일축했다.
7. 그 외
그는 무려 17년이나 미국 정부의 수사망을 회피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하지만 협박 편지나 선언문 등의 글로 자신의 입장을 당당히 피력하는 등의 행각이 덜미를 잡히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고, 자기 동생의 제보로 검거당했다. 유나바머의 수사와 체포 과정에서 FBI가 투입한 자금은 무려 5000만 달러에 달했고, 그때까지 미국 역사상 최고액의 수사비로 기록되었다.하지만 검거 과정보다 더 논란이 된 것은 카진스키의 인생 역정과 테러 사이의 상관관계였는데, 한때 천재 수학자로 불리던 중산층 출신의 인재가 어떻게 해서 악질 테러범이 되었느냐에 대한 심리학 논문도 검거 전후로 엄청나게 발표되었다.
작가 존 저전(John Zerzan)[16]은 에세이 Whose Unabomber?#에서 카진스키의 우편폭발물은 민간인 피해를 입힐 수도 있었으므로 그에 대해선 비판했지만, 그의 테러 동기 자체는 정의로웠다고 평가했다.
카진스키의 테러 행각은 '강력범죄자는 교육 수준이 낮고 가정 폭력이 빈번한 저소득층 가정에서 발생한다'는 통념을 깬 사례가 되었다. 동시에 유아나 청소년 교육은 지식의 기계적인 전달보다 인성이나 심리학을 통한 접근을 통해 더 세밀하게 이루어졌어야 했다는 교육계의 책임도 제기되었다.[17] 반대로 카진스키가 저지른 범죄는 현대 산업 사회가 저지르는 폭력에 비하면 보잘 것 없으며, 카진스키의 폭력은 현대 산업 사회의 만행을 멈추기 위한 것이었으므로 정당했다는 주장도 있다. 위에서 언급된 존 저잔이 대표적이며, 그 외에도 녹색 아나키스트들 사이에서는 카진스키의 폭탄테러 대상자들이 무차별적인 벌목과 인류를 위협하는 컴퓨터과학, 유전공학의 발전에 책임이 있는 종 배반자(Species Traitor)#였다고 주장하며 칭송하는 여론이 강하다.
아나코 원시주의 잡지 Green Anarchy는 테드 카진스키를 포로라고 평했다.#
경제학자 스티븐 레빗과 뉴욕 타임스의 기자 스티븐 더브너(Stephen J. Dubner)가 함께 쓴 <괴짜경제학(Freakonomics)>은 에필로그 부분에서 하버드 대학교에 들어간 두 사람을 비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 사람은 백인으로서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나 수학에 천재적인 소질을 보이면서 하버드에 조기 입학하였고, 다른 한 사람은 흑인으로서 어머니에게 버림받고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렸으며, 10대 때 폭력조직에 소속되기도 하는 등 불우한 삶을 살았다. 에필로그의 마지막에 가면 두 사람의 정체를 알려주는데 전자는 바로 카진스키이고, 후자는 롤런드 프라이어(Roland G. Fryer Jr.)이다. 프라이어는 하버드대 경제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흑인 사회의 빈곤과 교육 문제를 연구하고 있다. 2015년 존 클라크 메달 수상자이고, 괴짜경제학 책에서도 여러 번 언급된다.
카진스키는 교도소 복역 중에도 저술 활동을 해 왔으며 심지어 책이 옥중 출판되었다. 다만 전공이었던 수학 관련 서적은 없고, 대부분 선언문에서 쓴 내용을 보충하거나 동어 반복하거나 아니면 자신의 주장을 다시 정리하여 세상에 밝힌 정도다. 관련 서적이나 자료를 외부에서 반입해서 읽고 정리해서 다시 책으로 쓴 것으로 추정된다. 원한다면 카진스키에게 편지를 보낼 수도 있었고, 카진스키가 직접 쓴 답장을 받을 수도 있었다.[18] 실제로 이런 식으로 테드 카진스키의 검거 과정을 다룬 드라마 '맨헌트: 유나바머'에 대한 감상평을 당사자로부터 받아낸 사람도 있다. #[19]
미국 연방 정부에서는 이러한 출판물 간행이 범죄자에게 이득을 가져다 준다고 출판 금지와 봉인을 전제로 한 국유화를 시도했지만, 2009년 연방 법원에서 '언론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패소했다.[20] 대신 법원은 동생이 현상금 받은 돈을 유가족들에게 합의금으로 지불하면서 감형을 청했을 만큼 카진스키가 피해자 배상을 제대로 하지 못한 점을 고려하여 필요 경비를 제외한 저작물 판매 수익은 전액 피해자와 유가족들을 위한 손해배상금으로 지불하라고 판결했다. 카진스키는 무기수라서 돈을 모아봤자 그다지 쓸 데가 없는지라 이 결정에는 이의가 없는지 2010년에 '기술의 노예'라는 신간 서적을 간행하는 등 글을 쓰면서 자신의 범죄에 대한 피해 배상도 겸해 왔다.
오클라호마 폭탄 테러의 주범인 티모시 맥베이와 교도소에서 사형당하기 전에 교류를 가졌다고 한다. 맥베이에 대한 좋은 인상을 받았다고 썼다. 카진스키는 멕베이에 대하여 다른 문화와 인종을 존중할 줄 아는, 인종주의자와는 거리가 먼 청년이었다고 평했다. 그러나 티모시 맥베이는 미군에서 복무하던 시절부터 백인우월주의를 상징하는 "화이트 파워"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다녔으며 유색인종 상관의 명령에 불복종하고 인종차별 표현을 사용했다가 징계를 받는 등 인종주의자로서의 면모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인물이다. 카진스키는 자신과 같이 망상적인 음모론에 기반하여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맥베이에 대해 일종의 동료 의식을 느껴 그의 인종주의 사상을 쉴드쳐준 것으로 보인다.
그의 영향을 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텍사스 오스틴 연쇄 테러, 오바마, 클린턴, CNN에 파이프 폭탄을 배달한 테러미수 범죄 등 소포를 이용한 테러가 늘어나고 있다.
2018년을 기준으로 세계적으로 카진스키의 사상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그가 쓴 편지, 에세이들의 대부분은 웹사이트 The Anarchist Library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다.
MCN 사업을 못마땅하게 본 것 같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렇게나 기술을 혐오하던 카진스키 역시 체포되기 직전까지 기술의 혜택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가 도서관에서 읽었다던 수많은 책들이나, '유나바머'로써 제작한 폭탄을 위한 재료들도 결국 현대 기술을 통해 만들어진 제품을 재활용한 것이다. 현대 산업사회와 같은 대규모 조직에 의존하는 첨단 기술을 거부했지만, 결국 그도 자신의 사상을 정립하기 위해, 범행을 저지르기 위해 첨단 기술을 활용한 점은 카진스키의 사상이 지닌 근본적 한계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카진스키의 반기술주의는 단순히 모든 현대의 기술을 부정하는게 아니라, 현대 과학기술의 발전과 산업화로 인해 인류가 존엄성과 자율성을 박탈당하고 종국엔 생물학적으로 말살당할 것이라는 거시적인 주장으로 따라서 인류의 존엄성을 박탈하지 않는 정도의 기술은 허용된다는 입장이지만 애초에 기술을 활용하는 방향성을 정하는 것이 같은 인류이고, 그가 혐오하는 현대 과학기술의 혜택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된 인류의 수를 생각하면 근본적인 모순점과 그럼에도 그가 말하고자 하는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다르게는 그가 테러리스트가 된 것 또한 기술의 문제점에 대한 반감 때문이고, 그가 테러를 저지르고 상해를 입힐 수 있게 한 것 또한 기술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그가 주장하는 기술의 문제점을 본인이 직접 증명한 것이라는 반론도 가능하다. 또한 그는 현대기술을 무너뜨리기위해 현대기술을 오히려 적극 이용해야한다 보았다.
8. 대중매체에서
- 유나바머의 범행과 체포 과정을 다룬 Unabomber: The True Story라는 제목의 TV 영화가 1996년 방영되었다. 유나바머 역은 토빈 벨. 1999년 3월 14일 MBC 일요심야극장에서 '죽음의 발송자 유나바머'라는 제목으로 더빙 방영.
- 유나바머와 언어학 기법을 이용한 FBI 수사관의 두뇌게임과 체포 뒤의 심리전을 2017년에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맨헌트: 유나바머(Manhunt: Unabomber)라는 제목의 8부작 드라마로 제작하였다. 주경찰 출신 FBI 프로파일러인 제임스 피츠제럴드 역에는 샘 워딩턴[21]이, 유나바머 역에는 폴 베타니가 출연했다. 2023년 현재 넷플릭스에서 시청할 수 있다. 정작 테드 카진스키 본인은 이 드라마를 보지는 못했지만 편지를 통해 스토리를 알게 되었다고 하며, 드라마 대부분의 내용이 허구이며 특히 머레이 교수와 MK 울트라 실험에 대해 "그중에 정말로 불편했던 실험은 단 한 차례 밖에 없었으며 30분짜리 실험이었다, 대부분은 그저 인터뷰나 설문조사로 진행되었다"고 평했다.#
- 듀크 뉴켐 3D의 에피소드 4에서는 그의 상상도가 그려진 포스터가 저화질로 붙어있으며 우체국 레벨에서는 아예 대놓고 시어도어 카진스키 관련으로 패러디한 공간이 있다. 포르노 영화 제작소 레벨에는 포르노 제작소 인근 민가 아파트에 그가 사는 곳을 묘사한것이 숨겨진 장소로 있다. 카진스키의 거주지 안에는 가스통이 잔뜩 흩어져 있다.
- 잔향의 테러에서는 주인공 테러범을 언급하는 단어가 됐다.
- 영화 굿 윌 헌팅에서 로빈 윌리엄스가 분한 심리학자 맥과이어 교수가 수학자 램보 교수(스텔란 스카스가드 분)에게 제자 윌 헌팅(맷 데이먼 분)을 가르치는 방향에 대해 얘기할 때 언급된다. 램보 교수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도 제대로 이끌어 줄 사람이 없었다면 스위스의 특허 공무원으로 살았을 것이라고 얘기하자, 맥과이어 교수는 지식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며 하버드 대학을 졸업한 천재였지만 폭탄 테러범으로 전락한 카진스키의 이야기를 하는 식으로 램보 교수의 의견을 반박한다. 즉, 재능이 특출나다고 해서 이끌어주는 것이 꼭 긍정적인 결과를 낳는 건 아니라는 주장.
- 에미넴의 'Brainless'라는 곡이 있는데, 이 곡의 주제는 '자신이 공부를 할 만한 뇌가 없기에 가사를 쓰고 라임을 짜는 천재성이 드러났다'이다. '이런 멘탈의 내가 만약 X나게 똑똑했으면 흉악범이 되었을 거야'라는 부분이 나오는데, 저 '흉악범' 부분에서도 유나바머가 언급된다.
[1] 통칭 테드 카진스키(Ted Kaczynski).[2] 카진스키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편지에서 그는 신으로서 묘사되는 어느것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함을 밝혔다. 동시에 유교 경전이나 성경와 같은 철학, 종교 책들은 인간의 행동을 억제시키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주장한다. 또한 그의 저서를 보면 유물론적이고 합리주의적인 사고관이 매우 잘 드러난다.[3] 상위 0.8%[4] 테러의 표적이 주로 대학(University), 공항(Airport) 또는 항공사라는 점에 착안해서 FBI 수사관들이 붙인 별명이다.[5] 상위 1%의 벽은 넘었지만 흔히 천재의 기준이라고 알려진 IQ 140 (약 상위 0.4%)을 넘진 못했다[6] 주체통각검사를 만든 사람이다.[7] 2017년 기준 18,700달러 상당[8]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의 배경지이다.[9] 동생이었던 데이비드 카진스키도 1984년 텍사스 주 치와와 사막에서 야인 생활을 하였는데 형의 사상에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데이비드는 1990년 아버지의 사망 이후로 고향으로 돌아갔고 고등학교 동창과 결혼도 하는 등 사회에 완전히 복귀하였다.[10] 영국 출신의 작가로 1863년에 "기계 속의 다윈(Darwin among the machines)"을 발표했다. 이 에세이에서 기술-산업사회가 모든 인류를 노예로 만들기 전에 기술-산업사회를 끝장낼 반기술 혁명을 일으킬 것을 주장했다. 이 사람이 만든 에레혼은 이상향의 일종으로 사전에도 남았으며, 버틀레리안 지하드의 버틀러의 모델도 되었다.[11] 카진스키 스스로가 자신이 엘륄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 바 있다.[12] 데이비드 스커비나 교수는 이런 류의 평가들이 새로움에 호소하는 오류를 저지르고 있다고 말했다. 카진스키의 논지가 대단히 견고하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반박하지 않고 논점일탈을 통해 논의를 흐리려는 시도라는 것.[13] 월간 <인물과 사상>과는 같은 강준만 계열이라는점에서 유관하나, 비정기쪽은 월간과는 별개의 간행물.[14] 이것이 아나키스트들에게 문제가 되는 이유는 아나키스트들은 스스로를 사회주의자라고 정체화하기 때문이다. 사회주의가 아닌 아나키즘은 아나키즘 취급도 받지 못할 정도로 사회주의는 아나키스트들의 정체성에 있어 중요한 키워드이며, 그가 산업사회와 그 미래에서 보여준 반좌파적 관점은 카진스키가 아나키스트가 아니라는 주장의 근거가 된다. 물론 포스트 레프트 아나키즘이라는 큰 틀은 아나키즘으로는 인정하는 이들이 많지만, 그게 아나키스트들이 카진스키 개인의 주장이 아나키스트적이라고 생각하는 걸 의미하지는 않는다.[15] 카진스키를 언급한 질문은 아니었고 아나키즘 내부의 동향과 환경파괴문제에 대한 시각 등의 맥락에서 나온 질문이었다.[16] 유명한 아나코-원시주의 사상가이다.[17]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시도 자체가 바로 카진스키가 대단히 경계했던 현상이다. 그는 현대의 심리학, 교육학이 사실상 인간을 체제순응적으로 만들려는 일종의 세뇌작업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18] 당연한 얘기긴 하지만 편지가 교정당국으로부터 검열당하는 것은 감수해야한다. 편지 내용이 부적절하다고 판단될 경우 반송된다.[19] 참고로 수신인 이름이 앤드루 카진스키이다. 앤드루는 CNN 소속의 저명한 언론인으로, 테드 카진스키와는 혈연 관계가 없는 남이다. 카진스키(카친스키)라는 성씨는 본국인 폴란드의 레흐/야로스와프 카친스키 형제도 있고, 저명한 폴란드계 미국인 인사 중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이름이다.[20] 미국은 수정헌법 1조부터 굉장히 표현의 자유에 관대한 나라라 다른 나라라면 민주 국가라도 처벌할 만한 발언(정도를 넘어선 증오발언 등)들이 처벌되지 않는다. 심지어 히틀러 찬양 등의 증오발언도 표현의 자유로 인정되며 벌금형이나 징역을 받지는 않는다. 물론 어디까지나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뜻일 뿐이지 민사적으로는 피해자가 확정된다면 어마어마한 배상금을 물거나 직장에서 해고당하거나 하는 식으로 형벌 못지 않은 사회적 보복이 이뤄진다. 카진스키는 순수하게 자신이 저술한 이론서를 다시 출판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애초에 법적으로 규제할 수 있는 부분이 전혀 없었다.[21] 이러한 역할을 맡은 배우가 태생부터 호주인임에도 불구하고, 충실한 연기를 선보였다.[22] 한국 개봉명은 '유나바머: 테드 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