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탑의 별칭에서 따온 중앙탑면에 대한 내용은 중앙탑면 문서 참고하십시오.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틀:대한민국의 국보 1~30호, version=27, uuid=b16ef97f-b363-494a-ab2a-e95ccd5f503f,
title2=틀:대한민국의 국보 31~60호, version2=23, uuid2=979147df-3a26-481f-b049-2bed6c206bdc,
title3=틀:대한민국의 국보 61~90호, version3=18, uuid3=a651288c-6ac5-4be6-aabd-d4ff8ce28b2d,
title4=틀:대한민국의 국보 91~120호, version4=16, uuid4=47b78863-c197-4fb3-8fa6-911be58d2f63,
title5=틀:대한민국의 국보 121~150호, version5=18, uuid5=38233d15-3cf9-4c93-833c-94c06a6fbf8b,
title6=틀:대한민국의 국보 151~180호, version6=15, uuid6=edf3cf60-9adb-4a8f-8ee0-0b7fbc07c52f,
title7=틀:대한민국의 국보 181~210호, version7=13, uuid7=dc5f6abf-c5c1-4679-b79e-a752e027eb8b,
title8=틀:대한민국의 국보 211~240호, version8=15, uuid8=0da4ae8e-4b56-4578-9135-01ed7dddf02a,
title9=틀:대한민국의 국보 241~270호, version9=13, uuid9=98999a90-809a-452b-9fd0-6721c558ff35,
title10=틀:대한민국의 국보 271~300호, version10=12, uuid10=d3cf8eb4-7dea-45c4-8db8-f764102672c0,
title11=틀:대한민국의 국보 301~330호, version11=21, uuid11=654db38a-ea8b-426b-a33e-245918ddd995,
title12=틀:대한민국의 국보 331~360호, version12=14, uuid12=6bc2ec27-8f76-40cf-9ef0-c2d80032b65e)]
대한민국 국보 제6호 | |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 忠州 塔坪里 七層石塔 | |
소재지 |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탑평리 11 |
분류 |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 불교 / 탑 |
수량/면적 | 1기 |
지정연도 | 1962년 12월 20일 |
제작시기 | 통일신라시대 8세기 |
<colbgcolor=#315288>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 |
[clearfix]
<colbgcolor=#315288> 충주MBC 캠페인 충주 탑평리칠층석탑 |
1. 개요
忠州 塔坪里 七層石塔.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은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탑평리 남한강 옆 강가 언덕 위에 위치한, 전체 높이 14.5 m 화강암제 칠층석탑으로 통일신라시대인 8세기 후반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보인다.본 석탑은 일명 중앙탑(中央塔)이라는 명칭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데,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신라 제38대 원성왕 때 통일신라 전국토를 기준으로 남북으로 사람이 동시에 출발하여 같은 보폭으로 걸어 만난 국토의 중앙지점에 세운 것이라고 한다. 지금도 남한의 정중앙이 충북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상당히 정확하게 위치를 파악한 듯 싶다.[1][2]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은 1962년 국보 제6호로 지정되었다.
중앙탑 소재지인 중앙탑면의 명칭은 본래 가금면(可金面)이었는데, 이 탑에서 이름을 따서 2014년에 지명을 중앙탑면(中央塔面)으로 바꿨다. 평택제천고속도로에 있는 졸음쉼터 이름도 중앙탑에서 따와 중앙탑 졸음쉼터다.
2. 내용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은 현재 남아있는 신라시대 석탑 중 크기가 가장 크며,[3] 7층의 지붕돌[4]이 균형미를 갖추고 14.5 m 높이로 솟아 있다. 탑평리 칠층석탑은 세월의 흐름에 의해 기단과 몸돌에 금이 가거나 약간 깨진 부분이 있는 등 소실된 부분이 있으나, 대체적으로 보존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하지만 본 석탑도 현전하는 대다수의 다른 탑들처럼 꼭대기 지붕돌 위의 머리장식은 이미 사라지고 없으며, 머리장식 받침 정도가 남아 있다.충주 탑평리 칠층석탑은 2층으로 된 기단 위에 7층의 몸돌[5]과 지붕돌로 구성되어 있다. 본 석탑은 워낙 크기도 크고 높이도 높은지라 보는 사람에게 웅장하다는 인상을 주는데, 탑 1층의 몸돌은 크게 해놨고, 위로 올라 갈수록 몸돌과 지붕돌의 크기가 차츰 줄어들어 비례감이 느껴진다.[6] 다만, 하단부에 비해 높이가 너무 높아서 탑의 전체적인 균형감과 안정감은 덜하다는 평가를 받는다.[7]
본 석탑은 신라의 다른 거탑들처럼 기단부와 각 층의 몸돌을 여러 개의 돌들로 조립해서 만들었다. 하지만 6층의 몸돌부터는 여러개의 돌을 짜맞춘 것이 아니라 돌덩이 하나로 만들었다.[8] 그리고 기단의 네 면과 각 층 몸돌의 모서리마다 기둥형 장식[9]을 양각으로 새겨놨다. 한편 지붕돌의 하단에는 5단으로 이루어진 역계단형 받침 장식이 있으며 지붕돌의 각 모서리는 위를 향하게 들려 있는데 이는 경쾌한 인상을 준다고 평가된다.[10] 또한 지붕돌을 자세히 보면 각 모서리에 구멍이 뚫려있는데, 이는 풍경을 매달았던 흔적이라고 한다.[11] 이상에서 드러나는 탑의 건축방식과 장식들로 미루어봤을 때, 본 석탑의 축조연대는 아마도 통일신라시대인 8세기 후반으로 추정된다.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의 현재 보존상태는 양호한 편이지만, 일제강점기인 1917년 당시에는 탑이 기운다고 판단하여 전면적인 해체수리를 하였다. 이때 탑의 기단과 6층 몸돌에서 청동거울, 나무함, 은제사리함 등의 사리장엄구 유물이 발견되었다. 이 사리장엄구 가운데 청동거울 두 점은 고려시대의 것으로 보여서, 아마도 신라 때 탑을 건립하고 고려에 들어서 다시 한 번 탑을 열고 사리장엄구를 봉안했다고 추정한다.[12] 그런데 일제가 수리를 한 것까지는 좋은데, 기단과 탑신부에 부재들을 어긋나게 끼워넣는 등 복원을 잘못하는 바람에 탑의 원형이 다소 변형되어버렸다고 한다.[13]
<colbgcolor=#315288>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 전경. 석탑 앞에 석등 받침 유구가 보인다. |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이 서있는 곳에는 본래 큰 사찰이 있던 것으로 보이지만, 이와 관련해 지금까지 전해지는 기록이 전무하여 더 자세한 정보는 알 수 없다.[14] 하지만 충주는 현대의 광역시와 비슷한 통일신라의 5소경 중 하나인 중원경일 정도로 당시 전국에서 손꼽히는 중요 도시였기 때문에, 이만한 탑을 경내에 두었고 지금은 이름이 잊혀진 이 절은 당시 중원경의 신앙을 대표하는 사원이었을 테고 규모와 역할도 상당히 컸다고 추측할 수밖에 없다.[15]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은 대체적으로 보존상태가 양호하여 그 자체의 형태와 아름다움이 잘 남아 있으며, 현전하는 통일신라의 가장 거대한 석탑이라는 점, 당대 석탑 양식을 잘 보여주면서도 신라 중원 지방의 문화를 대표할만한 작품이라는 점 등 가치를 인정받아 일찍이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6호로 지정되었다.
3. 기타
<colbgcolor=#315288> 구글 어스로 보는 지도 |
충주 지방이 고대로부터 한반도의 중요지역이자 요충지였던 것을 반영하듯,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 주변으로 선사유적과 장미산성, 누암리 고분군을 비롯하여 여러 고대 유적들이 남아 있다. 또한 탑으로부터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국보 제205호인 충주 고구려비가 위치하고 있기도 하다.
4. 외부 링크
5. 문화재청 소개글
남한강의 아름다운 경관과 잘 어우러져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으로, 당시에 세워진 석탑 중 가장 규모가 크며, 우리나라의 중앙부에 위치한다고 해서 중앙탑(中央塔)이라고도 부르는 이 탑은 2단의 기단(基壇) 위에 7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높은 탑신을 받치기 위해 넓게 시작되는 기단은 각 면마다 여러 개의 기둥 모양을 새겨 놓았고, 탑신부의 각 층 몸돌 역시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었다. 몸돌을 덮고 있는 지붕돌은 네 귀퉁이 끝이 경쾌하게 치켜올려 있어 자칫 무겁게 보일 수 있는 탑에 활기를 주고 있으며, 밑면에는 5단씩의 받침을 새겨 놓았다. 탑 정상의 머리장식은 보통 하나의 받침돌 위에 머리장식이 얹어지는 신라 석탑의 전형적인 양식에서 벗어나, 이중으로 포개어진 똑같은 모양의 받침돌이 머리장식을 받쳐주고 있다.
기단에서의 기둥조각 배치, 탑신의 몸돌과 지붕돌의 짜임수법으로 보아 통일신라 후기인 8세기 후반에 세웠을 것으로 추측된다. 1917년 탑을 보수할 때 6층 몸돌과 기단 밑에서 사리장치와 유물이 발견되었는데, 특히 6층 몸돌에서 발견된 거울이 고려시대의 것으로 밝혀져 탑 조성 이후 고려시대에 와서 2차 봉안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으로 규모가 커서 웅장하기는 하나 너비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듯 하여 안정감은 덜하며, 세부수법이 약화되고 있어, 일제당시 보수하면서 일부 변형되었다는 논란이 있다.
높은 탑신을 받치기 위해 넓게 시작되는 기단은 각 면마다 여러 개의 기둥 모양을 새겨 놓았고, 탑신부의 각 층 몸돌 역시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었다. 몸돌을 덮고 있는 지붕돌은 네 귀퉁이 끝이 경쾌하게 치켜올려 있어 자칫 무겁게 보일 수 있는 탑에 활기를 주고 있으며, 밑면에는 5단씩의 받침을 새겨 놓았다. 탑 정상의 머리장식은 보통 하나의 받침돌 위에 머리장식이 얹어지는 신라 석탑의 전형적인 양식에서 벗어나, 이중으로 포개어진 똑같은 모양의 받침돌이 머리장식을 받쳐주고 있다.
기단에서의 기둥조각 배치, 탑신의 몸돌과 지붕돌의 짜임수법으로 보아 통일신라 후기인 8세기 후반에 세웠을 것으로 추측된다. 1917년 탑을 보수할 때 6층 몸돌과 기단 밑에서 사리장치와 유물이 발견되었는데, 특히 6층 몸돌에서 발견된 거울이 고려시대의 것으로 밝혀져 탑 조성 이후 고려시대에 와서 2차 봉안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으로 규모가 커서 웅장하기는 하나 너비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듯 하여 안정감은 덜하며, 세부수법이 약화되고 있어, 일제당시 보수하면서 일부 변형되었다는 논란이 있다.
6. 둘러보기
충주시의 문화재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 국보 | ||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 | 충주 정토사지 홍법국사탑 |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 | |
충주 고구려비 |
||<-3><tablewidth=100%><tablebgcolor=#fff,#191919><bgcolor=#1d2088> 보물 ||
충주 억정사지 대지국사탑비 | 충주 정토사지 법경대사탑비 | 충주 미륵리 오층석탑 |
충주 미륵리 석조여래입상 | 충주 철조여래좌상 | 충주 정토사지 홍법국사탑비 |
충주 단호사 철조여래좌상 |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 앞 사자 석등 |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비 |
선림보훈 | 충주 봉황리 마애불상군 |
||<-3><tablewidth=100%><tablebgcolor=#fff,#191919><bgcolor=#1d2088> 사적 ||
충주 임충민공 충렬사 | 장미산성 | 숭선사지 |
누암리 고분군 |
||<-3><tablewidth=100%><tablebgcolor=#fff,#191919><bgcolor=#1d2088> 명승 ||
탄금대 | 충주 계립령로 하늘재 |
||<-3><tablewidth=100%><tablebgcolor=#fff,#191919><bgcolor=#1d2088> 국가민속문화재 ||
충주 윤양계 고택 | 이응해장군 묘 출토복식 |
||<-3><tablewidth=100%><tablebgcolor=#fff,#191919><bgcolor=#1d2088> 국가등록문화재 ||
조선식산은행 충주지점 |
||<-3><tablewidth=100%><tablebgcolor=#fff,#191919><bgcolor=#1d2088> 시도유형문화재 ||
||<-3><tablewidth=100%><tablebgcolor=#fff,#191919><bgcolor=#1d2088> 시도기념물 ||
충주 칠금동 제철유적 | 충주 박팽년 사당 | 충주산성 |
충주 대림산 봉수 | 충주 문주리 요지 | 충주 미륵리 요지 |
대림산성 | 충주 주정산 봉수 | 충주 김생사지 |
충주 조동리 고인돌 | 충주 조동리 유적 | 충주 팔봉서원 |
충주 신청리 고인돌 | 충주 부흥사 방단적석유구 | 충주 견학리 토성 |
||<-3><tablewidth=100%><tablebgcolor=#fff,#191919><bgcolor=#1d2088> 문화재자료 ||
}}}}}}}}} ||
- [ 2021~2022 ]
- ||<width=80px><tablebgcolor=#FFF,#1F2023><colbgcolor=#CCC,#1c1d20> 수도권 ||서울 5대 고궁 | 홍대거리 | 서울시립미술관 본관 | 동대문디자인플라자 | 롯데월드 어드벤처 | 남산 N서울타워 | 서대문형무소역사관 | 익선동 | 코엑스(스타필드) | 영종도 | 개항장 역사문화의 거리 | 인천 차이나타운(송월동 동화마을) | 강화 원도심 스토리워크 | 소래포구 | 송도 센트럴파크 | 수원화성 | 한국민속촌 | 용인 에버랜드 | 서울대공원(서울랜드) | 광명동굴 | 화담숲 | 임진각, 파주 DMZ | 두물머리 | 제부도 | 가평 아침고요 수목원 | 파주 헤이리 예술마을 | 농협경제지주 안성팜랜드 ||
강원권 설악산국립공원 | 남이섬 | 한탄강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 강릉 커피거리 | 대관령 | 비발디파크(오션월드) | 강릉 주문진 | 원주 소금산 출렁다리 | 원주 뮤지엄 산 | 원대리 자작나무 숲 충청권 장태산 자연휴양림 | 계족산 황톳길 | 청풍호반케이블카 | 의림지 | 청남대 | 만천하스카이워크, 단양강 잔도 | 예당호 출렁다리, 음악분수 | 대천해수욕장 | 안면도 꽃지해변 | 부여 백제유적지(부소산성 | 궁남지) | 공주 백제유적지(공산성 | 송산리 고분군) | 예산황새공원 | 아산 외암마을 | 신두리 해안사구 | 세종호수공원 일원 전라권 무등산국립공원 | 국립아시아문화전당 | 익산 미륵사지 | 전주 한옥마을 | 마이산도립공원 | 내장산국립공원 | 옥정호 구절초 지방정원 |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 | 죽녹원 | 목포해상케이블카 | 오동도, 여수세계박람회장 | 퍼플섬 | 쑥섬(애도) | 보성 녹차밭(대한다원) | 순천만습지(순천만국가정원) 경상권 태종대 유원지 | 해운대해수욕장 | 용두산·자갈치 관광특구 | 감천문화마을 | 송정해수욕장 | 다대포 꿈의 낙조분수, 다대포해수욕장 | 흰여울문화마을 | 용궁구름다리, 송도해수욕장 | 팔공산 | 서문시장 | 수성못 | 태화강 국가정원 | 영남알프스 | 간절곶 | 대왕암공원 | 반구대 암각화 | 경주 대릉원 일대 (동궁과 월지 | 첨성대) | 불국사, 석굴암 | 울릉도와 독도 | 병산서원 | 안동 하회마을 | 부석사 | 창녕 우포늪 | 황매산군립공원 | 남해독일마을 | 거제 바람의 언덕 | 합천 해인사 제주권 성산일출봉 | 한라산국립공원 | 제주올레길 | 천지연폭포 | 카멜리아 힐 | 우도 | 제주 비자림
- [ 2019~2020 ]
- ||<width=80px><tablebgcolor=#FFF,#1F2023><colbgcolor=#CCC,#1c1d20> 수도권 ||서울 5대 고궁 | 익선동 | 홍대거리 | 서울로7017 | 동대문디자인플라자 | 코엑스 | 롯데월드 어드벤처 | 이태원 관광특구 | 명동거리 | 남산 N서울타워 | 월미도 | 소래포구 | 송도 센트럴파크 | 인천 차이나타운 | 수원화성 | 용인 에버랜드 | 서울대공원 | 광명동굴 | 제부도 | 양평 두물머리 | 광주 남한산성 | 광주 화담숲 | 포천아트밸리 | 가평 아침고요수목원 | 연천 한탄강 관광지 | 파주 DMZ ||
강원권 평창 대관령 | 강릉 커피거리 | 원주 소금산 출렁다리 | 설악산 | 오대산 | 강릉 주문진 | 춘천 남이섬 | 원주 뮤지엄 산 | 하이원 리조트 | 고성 DMZ 평화관광지 | 비발디파크 | 삼척 대이리 동굴지대 | 인제 원대리 자작나무 숲 충청권 계족산 황톳길 | 단양 만천하스카이워크 | 단양팔경 | 청남대 | 괴산 산막이 옛길 | 태안 안면도 | 대천해수욕장 | 서천 국립생태원 | 부여 백제유적지(궁남지 | 부소산성 | 낙화암) | 공주 백제유적지(공산성 | 무령왕릉) 전라권 무등산 | 양림동 역사문화마을 | 전주 한옥마을 | 군산 시간여행 | 내장산 | 마이산 | 무주 태권도원 | 순천만습지 | 여수 엑스포 해양공원 | 담양 죽녹원 | 곡성 섬진강 기차마을 | 강진 가우도 | 보성녹차밭 | 해남 미황사 경상권 해운대해수욕장 | 태종대 | 자갈치시장 | 송도해수욕장 | 마린시티 | 감천문화마을 | 서문시장 | 대구근대문화골목 | 김광석다시그리기길 | 팔공산 | 태화강 십리대숲 | 영남알프스 | 울릉도와 독도 | 불국사와 석굴암 | 경주 대릉원 일대(동궁과 월지 | 첨성대 | 대릉원 | 천마총 | 황리단길) | 청송 주왕산 | 안동 하회마을 | 포항운하 | 영덕 대게거리 | 영주 부석사 | 울진 금강송 숲길 | 통영 스카이라인 루지 | 거제 바람의 언덕 | 창녕 우포늪 | 외도 보타니아 | 남해독일마을 | 진주성 | 합천 해인사 제주권 한라산 | 올레길 | 성산일출봉 | 제주 비자림 | 섭지코지 | 우도 | 서귀포 매일올레시장 | 성읍 민속마을 | 제주 절물 자연휴양림
[1] 물론 통일신라시대 당시 북쪽 경계는 지금의 휴전선 라인이 아니라 더 북쪽의 대동강과 원산만을 잇는 선이었다.[2] 신라의 김필이라는 명필 서예가가 말년에 반송마을에 큰 절을 세우고 탑을 건립했다가 풍수설에 따라 탑만 옮겼다는 설과 근처를 지나던 경주 송림사 주지가 보라색 안개를 보고 왕기(王氣)를 느껴서 누르기 위해 탑을 세웠다는 설이 있다.[3] 신라시대 탑 중에서 현존하는 최대 탑은 17 m인 안동 법흥사지 칠층전탑인데, 석탑이 아니라 흙으로 벽돌을 구워 쌓은 전탑이다. 소실되어 현존하지 않는 것까지 포함하면 81 m인 황룡사지 9층목탑이 가장 높았다.[4] 이를 옥개석(屋蓋石)이라고도 한다.[5] 이를 탑신(塔身)이라고도 한다.[6] 출처: 한국어 위키백과 -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7]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 두산백과 - 중원 탑평리 칠층석탑[8] 출처: 한국사전연구사 한국불교미술대전 - 중원탑평리칠층석탑[9] 이를 탱주(撑柱)라고 한다.[10]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11]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12]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13] 출처: 한국사전연구사 한국불교미술대전 - 중원탑평리칠층석탑[14] 다만 중앙탑 주변에 기왓장이나 약간의 유구가 남아 있어서, 여기가 절터라는 것 정도는 추측 가능하다. 출처: 문화재청 홈페이지 - 충주 탑평리 사지(忠州 塔坪里 寺址) 조사연구자료,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15] 비슷한 예로 마찬가지로 5소경이었던 남원시에 있는 실상사 목탑지가 있다. 여기에서 백제나 신라의 수도 유적에서나 있을 법한 거대한 통일신라 목탑의 흔적이 드러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