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04 22:22:00

비드쿤 크비슬링

크비슬링에서 넘어옴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5183b 0%, #00205b 20%, #00205b 80%, #05183b); color:#fff"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color: #0f6aaf; word-break: keep-all"
오스카르 2세
<rowcolor=#fff> 초대 제2대 제3대 제4대
프레데리크 스탕 크리스티안 셀메르 크리스티안 슈바이고르
요한 스베르드루프
<rowcolor=#fff> 제5대 제6대 제5대2 제7대
에밀 스탕 요한네스 스텐 에밀 스탕 프란시스 하게루프
<rowcolor=#fff> 제6대2 제8대 제7대2 제9대
요한네스 스텐 오토 블레어 프란시스 하게루프 크리스티안 미켈센
호콘 7세
<rowcolor=#fff> 제9대 제10대 제11대 제12대
크리스티안 미켈센 예르겐 뢰블란 군나르 크누센 볼레르트 코노브
<rowcolor=#fff> 제13대 제11대2 14대 제8대2
옌스 브라틀리 군나르 크누센 오토 B. 할보르센 오토 블레어
<rowcolor=#fff> 제14대2 제15대 제16대 제17대
오토 B. 할보르센 아브라함 베르게
요한 루드비 모빙켈
이바르 리케
<rowcolor=#fff> 제18대 제16대2 제19대 제20대
크리스토페르 혼스루
요한 루드비 모빙켈
페데르 콜스타 옌스 훈드사이
<rowcolor=#fff> 제16대3 제21대 제22대 제23대
요한 루드비 모빙켈 요한 뉘고르스볼 에이나르 게르하르센 오스카르 토르프
<rowcolor=#fff> 제22대2
에이나르 게르하르센
올라프 5세
<rowcolor=#fff> 제22대2 제24대 제22대3 제25대
에이나르 게르하르센 욘 룅 에이나르 게르하르센 페르 보르텐
<rowcolor=#fff> 제26대 제27대 제26대2 제28대
트뤼그베 브라텔리 라르스 코르발 트뤼그베 브라텔리 오드바르 노를리
<rowcolor=#fff> 제29대 제30대 제29대2 제31대
그로 할렘 브룬틀란 코레 빌로크 그로 할렘 브룬틀란 얀 P. 쉬세
<rowcolor=#fff> 제29대3
그로 할렘 브룬틀란
하랄 5세
<rowcolor=#fff> 제29대3 제32대 제33대 제34대
그로 할렘 브룬틀란 토르비에른 야글란 셸 망네 본데비크
<rowcolor=#fff> 제33대2 제34대2 제35대 제36대
셸 망네 본데비크 에르나 솔베르크 }}}}}}}}}}}}

파일:파스케스(가로).svg
파시즘
<bgcolor=#fff,#1c1d1f>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colbgcolor=#000><colcolor=#fff> 이념 국가주의(국가자본주의일부) · 군국주의 · 권위주의(전체주의) · 내셔널리즘(국수주의 · 민족주의) · 대중주의 · 미래주의일부 · 반공주의 · 반자유주의 · 반자본주의일부 · 반제국주의일부 · 반민주주의 · 영웅주의 · 제3의 위치 · 제국주의일부 · 협동조합주의
요소 개인숭배(지도자원리) · 경제적 개입주의(군사 케인스주의 · 지도주의) · 계급협조 · 남성성 · 민족다원주의일부 · 반(反)인텔리 · 우생학(사회진화론) · 쇼비니즘 · 우익사회주의 · 음모주의 · 일당독재 · 재생적 국수주의 · 전쟁* · 팽창주의일부(실지회복주의) · 프로파간다 · 혁명(보수혁명 · 혁명적 내셔널리즘)
분파 교권 파시즘 · 국민생디칼리슴 · 군단주의 · 나치즘(네오나치즘) · 네오파시즘 · 대안 우파파일:모호 아이콘.svg · 러시아 파시즘(유라시아주의) · 렉시즘 · 메탁사스주의파일:모호 아이콘.svg · 영국 파시즘 · 오스트리아 파시즘 · 원류 파시즘 · 이탈리아 파시즘 · 일민주의파일:모호 아이콘.svg · 장제스주의파일:모호 아이콘.svg · 트럼프주의파일:모호 아이콘.svg · 좌익 파시즘(슈트라서주의 · 민족 볼셰비즘) · 천황제 파시즘파일:모호 아이콘.svg · 팔랑헤주의(프랑코주의파일:모호 아이콘.svg) · 프랑스 파시즘 · 민족 아나키즘 · 에코파시즘 · 유사 파시즘파일:모호 아이콘.svg
정당/조직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 · 오스트리아 국가사회주의노동자당 · 국가 파시스트당(공화 파시스트당 · 민주 파시스트당 · 이탈리아 사회운동) · 독일노동전선 · 국민급진기지 · 네덜란드 국가사회주의 운동 · 철위대 · 라푸아 운동 · 슬로바키아 인민당 · 산마리노 파시스트당 · 영국 파시스트당 · 우스타샤 ·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 조직 · 국민대중행동파일:모호 아이콘.svg · 스웨덴 국가사회주의노동자당 · 그리스 민족사회당 · 노르웨이 국민연합 · 대정익찬회파일:모호 아이콘.svg · 동방회 · 러시아 파시스트당 · 렉스당 · 미국 은색군단 · 사쿠라회파일:모호 아이콘.svg · 불가리아 국민군단연합 · 불의 십자단 · 브라질 통합주의 행동 · 시리아 사회민족당파일:모호 아이콘.svg · 영국 파시스트 연합 · 오제바브란트바흐 · 유고슬라비아 국민운동 · 육군전우협회 · 조국전선 · 칠레 국가사회주의 운동 · 캐나다 파시스트 연합 · 팔랑헤,(통합 팔랑헤파일:모호 아이콘.svg), · 페르콩크루스츠 · 프랑키스트 운동 · 프랑스 인민당 · 화살십자당 · 국민조합주의자 · 국민정당 우리의 슬로바키아 · 그레이 울프 · 독일 사회주의국가당 · 민족 볼셰비키당· 소련 자유민주당파일:모호 아이콘.svg,(러시아 자유민주당파일:모호 아이콘.svg), · 조국당 · 조선민족청년단파일:모호 아이콘.svg · 황금새벽당 · 국민공동통치연합 · 혁신관료파일:모호 아이콘.svg · 아르헨티나 파시스트당 · 네덜란드 국가연대주의 연합
국제 조직 추축국 · 1934년 몽트뢰 파시스트 회의
군사 조직 추축군 · 친위대 · 돌격대 · 히틀러유겐트 · 아인자츠그루펜 · 검은 셔츠단 · 오스트리아 친위대 · 보국단· 우스타샤 민병대 · 미국 은색군단 · 마카필리파일:모호 아이콘.svg · 발리 콤페타르파일:모호 아이콘.svg · 반볼셰비키 프랑스 의용군단 · 강철늑대 · 황도파 · 남의사파일:모호 아이콘.svg · 아조우 연대파일:모호 아이콘.svg · 레히
인물 아돌프 히틀러 · 에리히 루덴도르프 · 베니토 무솔리니 · 프란시스코 프랑코파일:모호 아이콘.svg · 안테 파벨리치 · 오스왈드 모슬리 · 코르넬리우 젤레아 코드레아누 · 호세 안토니오 프리모 데 리베라 · 아우구스티나스 볼데마라스 · 비드쿤 크비슬링 · 요제프 티소 · 살러시 페렌츠 · 엥겔베르트 돌푸스 · 쿠르트 슈슈니크 · 안톤 뮈세르트 · 레옹 드그렐 · 파울 요제프 괴벨스 · 그레고어 슈트라서 · 오토 슈트라서 · 에른스트 룀 · 카를 하우스호퍼 · 카를 슈미트 · 율리우스 슈트라이허 · 율리우스 에볼라 · 알프레트 로젠베르크 · 오스발트 슈펭글러 · 에른스트 윙어 · 기타 잇키파일:모호 아이콘.svg · 오카와 슈메이파일:모호 아이콘.svg · 안호상파일:모호 아이콘.svg · 이범석파일:모호 아이콘.svg · 아브라함 슈테른 · 장제스파일:모호 아이콘.svg · 다이리파일:모호 아이콘.svg · 호리아 시마 · 미시마 유키오파일:모호 아이콘.svg · 줄리아노 고치 · 마르셀 뷔카르 · 자크 도리오 · 프랑수아 드 라 로크파일:모호 아이콘.svg · 콘스탄틴 로자예프스키 · 플리누 사우가두 · 이오인 오더피 · 조반니 젠틸레 · 알렉산드르 두긴파일:모호 아이콘.svg · 윌리엄 루터 피어스 · 윌리엄 더들리 펠리 · 찰스 코글린 · 아나스타시 본샤츠키· 도미니코 레치시 · 마커스 가비
국가 나치 독일 · 파시스트 이탈리아** · 스페인국파일:모호 아이콘.svg · 크로아티아 독립국 · 헝가리 국민단결정부 · 국민군단국가 · 노르웨이 국민 정부 · 오스트리아 연방국 · 슬로바키아 제1공화국 · 산마리노 공화국 · 일본 제국파일:모호 아이콘.svg · 국민군단연합 불가리아
기타 크립토 파시즘 · 탈파시즘 · 파스케스 · 파시스트 페미니즘 · 백색 테러 · 멸칭으로써의 파시즘(적색 파시즘)
* 모든 파시스트들이 전쟁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탈리아 파시즘이나 나치즘 등 전간기의 주요 파시스트들은 '전쟁'을 이데올로기적인 수단으로 여겼다. }}}}}}}}}
<colbgcolor=#00001b><colcolor=white> 노르웨이 국가판무관부의 초대 총리
노르웨이 크비슬링 정권의 초대 총리
국민연합의 초대 당수
비드쿤 크비슬링
Vidkun Quisling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Portrett_av_Vidkun_Quisling_i_sivile_kl%C3%A6r%2C_ukjent_datering..jpg
본명 Vidkun Abraham Lauritz Jonssøn Quisling
비드쿤 아브라함 레우리츠 욘쇤 크비슬링[1]
출생 1887년 7월 18일
스웨덴-노르웨이 연합 왕국
텔레마르크 주 퓌레스달
사망 1945년 10월 24일 (향년 58세)
노르웨이 왕국 오슬로 아케르스후스 요새
정당 조국동맹 (1930년 ~ 1931년)
농민당 (1931년 ~ 1933년)
국민연합 (1933년 ~ 1945년)
국적
[[노르웨이|]][[틀:국기|]][[틀:국기|]]
신체 191cm, 94kg
배우자 알렉산드라 보로니나
마리아 크비슬링
서명 파일:quisling's signature.png

1. 개요2. 생애
2.1. 젊은 시절2.2. 파시스트가 되다2.3. 매국노가 되다2.4. 몰락과 죽음
3. 여담4. 매체에서5.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노르웨이정치가, 독재자, 매국노. 국민연합의 당수로, 나치 독일괴뢰 국가크비슬링 정권의 총리다. 언어사전에서도 크비슬링(Quisling)은 반역자, 매국노와 동의어로 등재되어 있으며[2] 현재에도 노르웨이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입에 담는 것조차 꺼린다. 한국인들이 이완용을 매국노의 대명사로 여기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2. 생애

2.1. 젊은 시절

비드쿤 크비슬링은 노르웨이의 시골 마을인 텔레마르크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수학 실력이 뛰어나서 '천재적인' 수학자라 불렸으며 뛰어난 암기력을 비롯해 재능이 출중한 인물이었다. 육군사관학교를 최고 성적으로 졸업해 노르웨이 육군에서 소령까지 진급했고 1922년 프리드쇼프 난센의 비서로 그와 함께 러시아를 여행하며 러시아 기근 구제 사업과 아르메니아인 난민의 소련 영토 정착 사업에 참여했으며 이때 '러시아'에 대해서는 매력을 느끼게 되어 러시아 여자와 결혼했고 1920년대 후반 외교관 신분으로 러시아를 방문해서 소련과 외교를 단절했던 영국을 위해 영국의 대리대사 자격을 수행, 대영제국 훈장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러시아를 지배하고 있는 볼셰비즘에 대해서는 혐오감을 가지게 되었다. 양심을 지킨 형사를 사법농단으로 죽이고 끔찍한 독재자가 되는 크비슬링이 난센 여권으로 수많은 정치 난민들을 살리고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프리드쇼프 난센의 비서로 일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로 볼 수 있을 것이다.

2.2. 파시스트가 되다

노르웨이로 돌아온 크비슬링은 1931년부터 1935년까지 국방장관을 역임하고 1932년 국정조사를 통해 노르웨이 사회주의자들이 소련의 재정적 지원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내어 소련과 사회주의자들이 스칸디나비아를 무력으로 장악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이후 그는 1933년 국민연합당을 창당하여 노르웨이 파시즘 운동을 이끌었으나 그 결과는 참담했다. 초기에는 국교회의 지원까지[3] 받았음에도 1933년 선거에서 2.2%의 지지를 얻었고 스타방에르 시와 두곳의 농촌에서 12%의 승리를 얻은 것이 고작이었을 뿐 단 한 석의 의석도 얻지 못했으며 1936년 선거에선 지지율이 1.8%로 추락했다. 당원의 수도 고작 2000명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노골적인 반볼셰비즘, 반유대주의 구상은 독일의 이목을 끌었고, 크비슬링 본인도 나치의 지도자 중 한명인 알프레트 로젠베르크의 북해 제국 구상에 공감하여 1939년에 히틀러와 만나 회담을 갖기도 했다. 1939년 12월 14일에 아돌프 히틀러는 비드쿤 크비슬링을 만났는데 크비슬링은 히틀러에게 독일과 노르웨이 사이에 협력관계를 제안했고, 첫번째 회담 4일 후에 치러진 1939년 12월 18일 두번째 회담에서 이 두 사람은 노르웨이에게 가해지고 있는 영국, 프랑스 연합국의 위협에 대해 논의했다.

2.3. 매국노가 되다

파일:크비슬링 히틀러.jpg
아돌프 히틀러와 악수하는 크비슬링[4]
나치 독일의 노르웨이 침공 당일인 1940년 4월 9일, 크비슬링은 공영방송국인 NRK를 점거한 뒤 라디오 방송을 통해 쿠데타를 선언하고 스스로 정부 수반에 올랐음을 선포했는데, 이것은 방송 중계를 이용한 세계 최초의 쿠데타 선언이었다. 비드쿤 크비슬링은 히틀러와 이미 두 차례나 면담한 적이 있기 때문에 히틀러와 독일이 자신을 지지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이 쿠데타는 독일의 침공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도 않았고 독일은 크비슬링이 노르웨이인들에게 전혀 인기가 없고 혐오감만 준다는 것을 포착, 크비슬링이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해 그의 신정부를 6일 만에 해산시키고 폴 베르그 대법원장이 임명한 행정위원회를 새로운 통치기관으로 내세웠다. 크비슬링의 정적들은 역으로 크비슬링이 독일의 사주를 받아 쿠데타를 일으켰다고 생각했으나 독일에선 알프레트 로젠베르크 정도를 제외하면 크비슬링에 주목한 인물이 거의 없었고 오히려 요아힘 폰 리벤트로프를 비롯한 독일 외무부는 그를 적대적으로 보고 있었다.

4월 15일 행정위원회는 크비슬링으로부터 정식으로 권력을 양도받으며 크비슬링에게 위기를 잘 대처해줘서 고맙다고 감사를 표하는 등 뻘짓을 하다가 국왕이 4월 17일 스웨덴에서 망명정부만이 정식정부이며 행정위원회를 불법이라고 선포하는 바람에 역시나 망해버렸다. 결국 히틀러는 노르웨이를 직접 통치하는 게 낫다고 판단해 4월 21일 요제프 테르보펜을 국가판무관으로 파견했다. 또한 4윌 24일에는 행정위원회를 대신할 노르웨이 국가판무관부가 수립되었다. 히틀러는 테르보펜에게 크비슬링이 직접 정부를 구성하게 하라고 했지만 테르보펜은 이 지시를 무시하고 국민연합당 정부를 구성하고 국왕을 폐위, 국민연합당을 제외한 모든 정당을 해산했다. 크비슬링은 국민연합당 위원장이었으나 아무런 권력도 없었다. 하지만 테르보펜의 정부 역시 제대로 돌아가지 않기는 마찬가지였고 테르보펜과 크비슬링의 권력 다툼이 이어졌다. 결국 1942년 1월 23일, 테르보펜은 크비슬링이 정부를 구성하게 허락했다. 2월 1일 아케르스후스 성에서 크비슬링은 정식으로 노르웨이 총리에 임명되었다.

그리하여 노르웨이 국가판무관부내에는 노르웨이 국민정부(이하 크비슬링 정권)가 수립되었고, 노르웨이 자치 정부의 총리로 임명된 비드쿤 크비슬링은 적극적으로 나치에 협력했다. 노르웨이 청년들을 독일군에 보냈으며, 반항적인 인사를 숙청하고, 노르웨이의 유대인들은 나치에 넘겨주어 노르웨이에 있는 유대인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했다. 1942년 9월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의 조사에 따르면, 노르웨이 국민의 95%가 크비슬링에 반대한다고 나왔다. 노르웨이 민중은 크비슬링과 독일에 저항하기 시작했고 곳곳에서 독일에 항거하는 테러가 벌어지자 나치의 노르웨이 주재 국가판무관이었던 요제프 테르보펜은 크비슬링으론 안되겠다고 판단, 크비슬링을 통치 행위에서 배제하고 노르웨이 주둔군 사령관 팔켄호르스트와 함께 노르웨이를 직접 통치했다. 이때부터 노르웨이의 경찰력은 무력화되고 게슈타포들이 실질적으로 통치했다. 크비슬링은 히틀러에게 권력을 더 달라고 징징대긴 했으나 그 이후로도 여전히 독일에 충실히 협력했다. 하지만 이는 크비슬링에 대한 적대를 더욱 부채질하였다. 대표적인 사건으로 1943년 8월 군나르 에일리프센이란 형사가 크비슬링 정부의 노동법을 위반한 두 여자를 체포하길 거부하여 8월 9일 체포되었다. 테르보펜이 이 형사에 대한 처벌을 요구, 만약 노르웨이 정부가 나서지 않는다면 자신의 군대가 나설 것이라고 위협했다. 크비슬링은 8월 14일 1902년 군법을 소급 확장하라는 행정명령을 내려 경찰에게 반역죄로 사형선고를 내릴 수 있도록 법을 고쳤고 에일리프센을 인민법정에 세운 후 처형했다. 이렇게 파시즘적 독재를 펼친 크비슬링에 대해 전 노르웨이는 분노하였다.

2.4. 몰락과 죽음

내가 한 일이 진정 반역이라면, 조국을 위해 신께 기도하겠습니다. 노르웨이의 젊은이들이 나처럼 반역자가 되기를! 그렇지만 감옥에는 가지 않기를!
1945년 9월 7일, 크비슬링의 최후 진술
이후 동부전선에서 독일군이 밀려나고 노르망디에서 연합군이 상륙하는데도 크비슬링은 히틀러에게 전보를 보내 독일에 대한 충성을 재확인했고 독일의 신무기가 전세를 뒤집을 것이란 망상에 빠져 살았다. 크비슬링 본인은 권력을 모두 잃고 신비주의 사상에 빠져 고향에 돌아가 목사를 하고 싶다고 중얼거리는 수준이었다. 결국 독일이 완전히 몰락하자 크비슬링은 노르웨이 레지스탕스 세력과 협상, 1945년 5월 8일 평화적인 권력 이양에 대해 합의했으나 이 합의는 바로 깨졌고 크비슬링 정권노르웨이 국가판무관부와 덩달아 멸망한다. 권력을 잃은 크비슬링은 5월 9일 체포되어 구금되었다. 크비슬링은 5월 26일 예심법정에 회부되었고 1940년 4월 9일의 불법 권력 취득, 군대에 대한 불법 해산에 대한 1902년 군민법 상의 반역죄, 전쟁 중 적에게 협력하여 형법 86항을 위반한 죄, 불법으로 헌법을 정지시킨 것에 대한 형법 98항 국가질서 파괴 행위, 에일리프센에 대한 불법 처형 죄로 회부되었다.

크비슬링은 4주에 걸쳐 60쪽에 달하는 반박문을 작성해서 제출했다. 그는 자신이 독일의 공습을 사전에 알지 못했고 군대 해산은 부득이한 조치였으며 자신은 노르웨이의 독립을 지키려고 노력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가 1939년에 히틀러와 만났던 것, 1940년 4월 독일군과 접촉했던 것 등이 그가 간첩이라는 주요한 혐의로 해석되었다. 그가 필히 독일에 군사기밀을 넘겼고 독일이 그것을 바탕으로 공습했을 것이란 것이었다. 거기에 뉘른베르크 재판에 회부된 독일 각료들의 증언이 나오자 노르웨이 검찰은 이를 추가적인 증거로 채택했다. 평소에 매우 비사교적이고 과묵한 것으로 유명했던 크비슬링은 재판정에서 전에 없이 자신의 역사와 철학에 대해서 토해내면서 끝까지 무죄를 강변했고 자신이 독일에 협력한 것은 독일이 건설할 유럽연방에서의 노르웨이의 위치를 사수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했다.
저는 바이킹의 무덤들이 있는 곳에서 성서에서 나온 이야기와 오래된 무용담을 들으며 자랐습니다. 오랜 전통을 지닌 가문에서 태어나 늘 가문에 대한 자긍심과 민족적 책임감을 가지라는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비요르손과 입센 역시 저와 같은 가문으로, 제게는 무척 친숙한 사람들입니다. 크비슬링이라는 이름의 기원은 외래어가 아니라 고대 북유럽인의 이름으로, 왕족의 한 분파입니다. 이름의 첫 글자인 Q는 고대 룬 문자로 보호를 의미합니다.[5] 저는 이러한 배경에서, 조국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가슴에 품으며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상황이 좋지 않았다. 처칠의 노르웨이 침공 시도는 아직 증명되지 않은 사안이었고 크비슬링 본인의 건강이 크게 나빠서 제대로 된 발언을 하지 못했으며 그가 쿠데타 시도, 독일 정부와의 접촉 등에서 한 발언은 크게 불리하게 적용되었음에도 그는 재판이 잘 되었다고 착각했다. 크비슬링에 대한 증오와 적대는 엄청나서 크비슬링의 경호원들은 만약 정부가 그를 사형시키지 않으면 자신들이 그를 죽이겠다고 외치고 있을 정도였다. 이러다가 참모본부 장군 할보르 한손, 빌헬름 울만, 노르웨이 군 최고 사령관 오토 루게 등이 전쟁 전의 크비슬링에 관한 유리한 증언을 하자 결국 크비슬링이 정신병에 걸려 독일에 협력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제기되었으나 고통스럽기 그지없는 검사 결과 정상으로 드러났다. 크비슬링에겐 9월 10일 사형이 선고되었고 크비슬링은 항소했다. 크비슬링은 10월 9일 대법원에서 다시 연설했다.
원한다면 사형선고를 내려도 좋습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노르웨이 국민 전체가 살인죄를 짊어지게 될 것입니다. 저는 사형이나 징역을 선고받을 만한 짓을 한 적이 없습니다. 죽음이 두려워서가 아닙니다. 친척이 걱정되고, 노르웨이 국민이 걱정돼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10월 13일 항소는 기각되었고 크비슬링은 자신의 우주교 이론을 요약한 글을 집필하고 성경을 읽으며 마지막 시간을 보냈다. 크비슬링은 마지막으로 국왕에게 편지를 보내 사형이 불법이라 주장했으나 10월 23일 노르웨이 왕실은 특별사면 같은 것은 없을 것이라고 싸늘하게 답변했다. 10월 23일 저녁 7시, 교도소의 목사가 찾아와 자정에 사형될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크비슬링은 마지막으로 아내를 보게 해달라고 부탁했으나 거부되었다. 사형은 덴마크 경찰청장의 비행기가 연착되어서 2시로 연기되었고 목사가 마지막으로 요한복음을 읽어주었다. 크비슬링은 눈가리개를 씌우지 말아달라고 부탁했으나 변호사가 규정상 안 된다고 거절했다.

10월 24일 새벽 2시 40분, 총살대가 배치되었고 크비슬링은 끝까지 무죄를 외치며 살려달라 하였고 결국 그 입은 몇 발의 냉정한 총성이 들리고 나서야 다물어졌다. 같은 날 크비슬링 정부의 핵심인사 25명 또한 사형당했다. 그러나 당시 노르웨이에서 사형을 집행할 때 총살형이 없었는데 크비슬링의 재판 때문에 다시 총살형을 부활시킨 것을 두고 몇몇 사람들은 재판의 공정성에 대해서 비판하기도 했다.

3. 여담

  • 이 사람의 성인 "크비슬링(Quisling)"이 모국인 노르웨이뿐만 아니라 전 세계로 수출되어 배신자, 반역자를 뜻하는 단어로 쓰이기에 이르렀다. 그 시초는 1940년 4월 9일 타임스의 기사로, 그가 몰락하기 전부터였다.[6] 지금도 노르웨이에서는 적군을 도와서 부역을 한 노르웨이 사람들을 크비슬링이라고 부른다. 또 다른 사례로는 "베를린을 방문한 비드쿤 크비슬링"이라는 제목의 풍자 만평이 있다.
    파일:/pds/200808/08/70/e0019270_489b839821afb.jpg
    비드쿤 크비슬링 : 총통 각하, 제가 크비슬링입니다.

    히틀러 : 그럼 이름은 뭔가?

    비드쿤 크비슬링은 자기 소개를 했는데, 히틀러는 저 말을 "반역자/매국노"라는 말로 알아들었다는 만평이다.
  • 크비슬링이 만든 국민연합당의 상징이 원 안에 십자가가 들어간 일명 '태양십자'(solkors)였기 때문에, 현대에도 노르웨이에는 'solkors'란 단어는 'hakekors'의 동의어로 통한다.
  • 비트쿤 크비슬링이 독재자 자리에 있을 때 크비슬링과 친하게 지내려고 노르웨이의 매국노들이 그에게 많은 뇌물을 보냈지만 그는 그렇게까지 사치스럽게 살지는 않았다고 한다.
  • 그가 아내와 함께 살았던 오슬로 외곽의 큰 저택은 홀로코스트와 소수 종교 연구를 위한 노르웨이 센터로 바뀌어 사용되고 있다.

4. 매체에서

  • Hearts of Iron IV에서 노르웨이로 파시스트가 집권하면 지도자로 나오며, 국가명은 노르웨이 세습 왕국. 소속 정당은 민족단일당으로 나온다. 2023년 말에 발매된 dlc인 Arms Agains Tyranny가 북유럽을 다루면서 고증에 맞는 위치를 찾았다. 독일이 노르웨이를 공격해 노르웨이 국민단결정부를 세우면 지도자로 등장하며 안정도-10%, 전쟁 불이익의 안정도 변동치+15%, 전쟁 지지도+10%, 매일 파시즘 지지도+0.08의 효과를 가진 '파시즘 아첨꾼'이란 지도자 효과를 달고 있다.
    파일:Vidkun Quisling(Hearts of Iron IV).jpg
    • 위 게임의 모드 카이저라이히에서 노르웨이에 사회주의자들이 집권하면 쿠데타를 일으키고 국민대중주의 정권을 세울 수 있다.
    • 위 게임의 모드 The New Order에서도 등장한다. 요제프 굴브란 룬데, 요나스 리 등의 부역자와 달리 노르웨이 국가판무관부에서 토사구팽당한 인물로, 빌라 그란데 저택에 유폐되어 있는 상태로 등장한다. 이후 1963년 밀로그 저항군이 크비슬링을 암살한다.
  • 세계대전Z에서 좀비의 흉내를 내는 인간을 두고 퀴즐링이라고 부르는데, 어원은 당연히 이 사람.
  • 비정상회담 56회에서 노르웨이 비정상 대표인 니콜라이 욘센에 의해 언급되었다. 당시 화두는 배신. 그리고 옛날에는 비드쿤이란 이름이 굉장히 흔했는데, 지금은 이런 이름 가진 애가 있으면 바로 왕따가 된다고. 이름 뜻이 '널리 알려진 자(widely known)'임을 생각하면 굉장히 역설적이다.
  • 히틀러가 되었다에서는 히틀러와 처음 만났을 때는 쿠데타를 일으킬 생각임을 밝히고 지원을 요청하지만 히틀러에게 현실성 없는 계획이라고 욕만 먹는다.[7] 나흘 후 다시 만났을 때는 자신의 생각이 짧았음을 인정하고 히틀러에게 영국이 노르웨이를 침공할 것이니 그때까지 조용히 있으면 그 후에 위상이 높아질 것이란 조언을 받는다. 이후 정말로 영국이 노르웨이를 침공하자 순식간에 유명세를 얻어 노르웨이의 총리로 선출되었으며, 독소전 참전을 망설이는 호콘 7세에게 강력하게 참전을 주장하여 노르웨이의 참전을 이끌어낸다.

5. 둘러보기

추축국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cc
<colcolor=#fff> 국가 | 지도자
유럽 <colbgcolor=#838383,#191919>파일:나치 독일 국기.svg 나치 독일 | 아돌프 히틀러 · 헤르만 괴링 · 파울 요제프 괴벨스 · 에리히 레더 · 빌헬름 카이텔 · 하인리히 힘러
파일:이탈리아 왕국 국기.svg 이탈리아 왕국파일:전향 아이콘.svg |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 · 베니토 무솔리니 · 피에트로 바돌리오
파일:이탈리아 사회 공화국 국기.svg 살로 공화국파일:나치 독일의 괴뢰국 아이콘.svg | 베니토 무솔리니
파일:헝가리 왕국 국기(1915-1918, 1919-1946).svg 헝가리 왕국 | 호르티 미클로시
파일:헝가리 왕국 국기(1915-1918, 1919-1946).svg 헝가리 국민단결정부파일:나치 독일의 괴뢰국 아이콘.svg | 살러시 페렌츠
파일:루마니아 국기.svg 루마니아 왕국파일:전향 아이콘.svg | 미하이 1세 · 이온 안토네스쿠
파일:불가리아 국기.svg 불가리아 왕국파일:전향 아이콘.svg | 보리스 3세 · 시메온 2세
파일:슬로바키아 제1공화국 국기.svg 슬로바키아 제1공화국파일:나치 독일의 괴뢰국 아이콘.svg | 요제프 티소
파일:보헤미아-모라바 보호령 국기.svg 보헤미아-모라바 보호령파일:나치 독일의 괴뢰국 아이콘.svg | 에밀 하하
파일:비시 프랑스 대통령기.svg 비시 프랑스파일:나치 독일의 괴뢰국 아이콘.svg | 필리프 페탱
파일:크로아티아 독립국 국기.svg 크로아티아 독립국파일:나치 독일의 괴뢰국 아이콘.svg 파일:이탈리아 왕국의 괴뢰국 아이콘.svg | 안테 파벨리치 · 토미슬라브 2세
파일:노르웨이 국기.svg 노르웨이 크비슬링 정권파일:나치 독일의 괴뢰국 아이콘.svg | 비드쿤 크비슬링
파일:모나코 국기.svg 모나코 공국파일:이탈리아 왕국의 괴뢰국 아이콘.svg 파일:나치 독일의 괴뢰국 아이콘.svg 파일:전향 아이콘.svg | 루이 2세
파일:세르비아 구국정부 국기.svg 세르비아 구국정부파일:나치 독일의 괴뢰국 아이콘.svg | 밀란 네디치
파일:바르다르 마케도니아 국기.svg 바르다르 마케도니아파일:나치 독일의 괴뢰국 아이콘.svg | 이반 미하일로프
파일:러시아 해군기.svg 러시아 인민해방위원회파일:나치 독일의 괴뢰국 아이콘.svg파일:모호 아이콘.svg | 안드레이 블라소프
파일:로코트 자치국 국기.png 로코트 자치국파일:나치 독일의 괴뢰국 아이콘.svg | 브로니슬라프 카민스키
파일:벨라루스 국기(1918, 1991–1995).svg 벨라루스 중앙 라다파일:나치 독일의 괴뢰국 아이콘.svg | 라다슬로 아스트로스키
핀란드파일:전향 아이콘.svg | 그리스국파일:이탈리아 왕국의 괴뢰국 아이콘.svg 파일:나치 독일의 괴뢰국 아이콘.svg | 알바니아 왕국파일:이탈리아 왕국의 괴뢰국 아이콘.svg파일:나치 독일의 괴뢰국 아이콘.svg | 핀도스 공국 파일:이탈리아 왕국의 괴뢰국 아이콘.svg | 류블랴나 주파일:이탈리아 왕국의 괴뢰국 아이콘.svg 파일:나치 독일의 괴뢰국 아이콘.svg | 덴마크 보호령 파일:나치 독일의 괴뢰국 아이콘.svg파일:모호 아이콘.svg
아시아 파일:일본 제국 국기.svg 일본 제국 | 쇼와 천황 · 고노에 후미마로 (전쟁 이전) · 도조 히데키 · 고이소 구니아키 · 스즈키 간타로
파일:만주국 국기.svg 만주국파일:일본 제국의 괴뢰국 아이콘.svg | 아이신기오로 푸이 · 장징후이
파일:몽강연합자치정부 국기.svg 몽강연합자치정부파일:일본 제국의 괴뢰국 아이콘.svg | 데므치그돈로브 · 운왕
파일:왕징웨이 정권 국기.svg 왕징웨이 정권파일:일본 제국의 괴뢰국 아이콘.svg | 왕징웨이 · 천궁보
파일:자유 인도 임시정부 국기.svg 자유 인도 임시정부파일:일본 제국의 괴뢰국 아이콘.svg | 찬드라 보스
파일:베트남 제국 국기.svg 베트남 제국파일:일본 제국의 괴뢰국 아이콘.svg | 바오다이 황제
파일:캄보디아 왕국(괴뢰국) 국기.png 캄보디아 왕국파일:일본 제국의 괴뢰국 아이콘.svg | 노로돔 시아누크
파일:버마국 국기.svg 버마국파일:일본 제국의 괴뢰국 아이콘.svg | 바 우
파일:필리핀 제2공화국 국기.svg 필리핀 제2공화국파일:일본 제국의 괴뢰국 아이콘.svg | 호세 라우렐
파일:라오스 왕국 국기.svg 라오스 왕국파일:일본 제국의 괴뢰국 아이콘.svg | 시사방봉
이라크 왕국파일:전향 아이콘.svg | 태국파일:전향 아이콘.svg
이념 파시즘 · 전체주의 · 권위주의 · 군국주의 · 반공주의
영토 확장 계획 레벤스라움 · 이탈리아 이레덴타 / 스파치오 비탈레 · 대동아공영권
파일:전향 아이콘.svg 전쟁 도중 연합국으로 전향 파일:모호 아이콘.svg 간접적 지원 및 여부 논란
파일:나치 독일의 괴뢰국 아이콘.svg 나치 독일의 괴뢰국 / 파일:이탈리아 왕국의 괴뢰국 아이콘.svg 이탈리아 왕국의 괴뢰국 / 파일:일본 제국의 괴뢰국 아이콘.svg 일본 제국의 괴뢰국
}}}}}}}}}}}}}}}

[1] 한국에서는 영어식 발음으로 "비드군 퀴슬링"이라고 적기도 한다.[2] 이 단어는 노르웨이어뿐만 아니라 영어에도 유입되어 (영어권 화자들이 노르웨이어 발음을 그대로 하기에는 불편하므로) 발음만 영어식인 퀴즐링으로 바뀌어 간간이 사용된다.[3] 극초기에는 이랬지만, 반유대주의 친나치 성향을 드러낸 이후 반기독교 성향으로 선회했다.[4] 크비슬링 왼쪽에 파울 베게너 SS대장, 요제프 테르보펜 SA대장이 있다. 히틀러 오른쪽에는 한스 라머스 SS대장, 율리우스 샤우프 SS대장, 마르틴 보어만 SS대장, 알베르트 보어만 NSKK중장이 있다.[5] 사족으로 그의 주장과 달리 룬 문자에는 공식적으로 라틴 문자의 'Q'에 해당하는 글자가 없다. 굳이 따지자면 룬 문자 중에서 "ᛉ"라는 글자에 "보호"나 "방어"의 의미가 있다고 추정되긴 하는데, 이 또한 추정일 뿐이며 이 글자의 음가는 고대 게르만어 *z이다.[6] 멀리 볼 것 없이 영어부터 매국노는 quisling이라고 한다. 그 밖에 스웨덴어, 네덜란드어 등에도 수출되었다.[7] 주인공의 독백에서 어느 군소정당이 한미동맹을 파기하고 한중동맹이나 한러동맹을 맺겠다고 하는 격이라고 비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