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국가폭력 사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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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7C0000,#7C0000><colcolor=#fff> A: 납치, C: 강제수용, D: 군대 관련, E: 교육 관련, F: 누명, L: 노동 관련, M: 민간인 학살, R: 폭동적 시위진압, P: 정치탄압, S: 검열, T: 고문, H: 대중문화 관련 | |
※ 여러 시대에 걸친 경우 시작 시점이 기준. ※ 3공화국기는 국가재건최고회의 시기를 포함. | }}}}}}}}} |
1. 개요
섬유수출기업들은 사익을 위해 대통령에게 부정 청탁하여 국가 공권력의 남용을 부추겨 중앙 정보부로 하여금 故 신경식의 인권을 침해하도록 하였기 때문에 해당기업 및 그 연합체 또는 그 법적 승계자들은 故 신경식의 인권침해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하여야 한다.
진실화해위, 중앙정보부 소취하 강요 사건
진실화해위, 중앙정보부 소취하 강요 사건
지하에 계신 아버지께서 편히 눈을 감으실 수 있게 해드려 그나마 다행이다. 과거 정경유착으로 남의 재산을 강탈해 부를 쌓은 기업들, 그리고 그들의 연합체인 무역협회는 반드시 사과하고 합당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신용보(피해자 아들), '중정'은 왜 '홀치기 특허권자'를 잡아갔을까
신용보(피해자 아들), '중정'은 왜 '홀치기 특허권자'를 잡아갔을까
이른바 '홀치기 특허 도둑질'로 불리는 이 사건은 1960~70년대 박정희 정부와 삼성물산, 코오롱 등의 대기업들이 개인을 상대로 저지른 기절초풍한 범죄다.
홀치기는 직물 특수 염색 기법을 말하며, 박정희 정부는 이 기술을 발명한 사업가 신경식을 협박해 특허를 강탈한 것도 모자라 감옥에 보냈다. 박정희 독재 시절 한국의 대표적인 정경유착, 부정부패, 재산권 침해 사례로 꼽힌다.
1964년에 삼성물산 등 한국 대기업들이 특허를 빼앗기 위해 제기한 집단 소송에서 시작된 이 희대의 사건은 1972년 5월에 중앙정보부와 상공부, 법무부, 검찰 등 국가기관이 나서서 신경식을 고문하고 압박하여 특허를 포기하게 만들기에 이르렀다. 이 사건은 특히 박정희 대통령이 신경식에 대한 탄압을 지시하여 논란이 되었으며, 대법원의 판결까지 무시한 초유의 일이었다.
2023년 진실화해위원회는 이를 신체의 자유와 재산권 등 중대한 인권 침해를 가한 사건으로 규정하였고, 2024년 법원은 국가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중정’의 특허 도둑질, 51년 만에 드러났다(KBS)
2. 전개
2.1. 피해자 신경식의 신기술 개발
신경식의 생전 증명 사진 |
신경식은 1940년 와세다대학을 졸업하고 도쿄에서 작은 회사를 설립해 운영하다가 1959년에 귀국해 대일 무역회사를 설립한 중소기업의 사장이었다. 신경식은 일본 체류 시절부터 기모노 소재의 가공품에 들어가는 문양과 기술에 주목했다. 이 기술은 '홀치기(시보리)'라고 불리는 원단에 다양한 무늬를 넣기 위해 옷감을 잡아매는 기법이었으며 섬세한 공정과 기술이 필요하여 무척 단가가 비쌌다. 신경식은 이를 연구한 끝에 1962년에 '횡인교결포(요꼬비끼 시보리)'라는 신기술을 개발하였으며, 일본 군제산업주식회사로부터 인정을 받고 이 기술로 만든 홀치기 제품 원단을 매월 1만 필씩 공급해 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사라진 '기모노' 홀치기 특허권자(노컷뉴스)
1960년대 초 신경식이 발명한 홀치기 특허 기술 교육을 받고 있는 여성 교육생들 |
1965년 교육생들과 신경식이 찍은 단체 사진 |
2.2. 대기업의 '특허 무효 소송' 제기와 패소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신경식의 특허 기술로 만든 홀치기 제품 수출 사업에 배가 아팠던 기업들이 나선 것이다. 국내 기업들은 신경식의 특허에 정당한 비용을 지불하고 쓰기보다는 그의 특허를 도둑질하려고 했다. 우선 신경식이 양성한 인력을 빼가는 것으로 시작으로 총 26개의 기업이 특허를 도용해 물건을 수출했다. 그 중에는 삼성물산, 코오롱, 미원, 동명목재, 조선견직 등 오늘날 한국의 재벌 그룹으로 성장한 곳도 많았다. 직물 특수염색 ‘홀치기’ 발명… 특허권 포기 ‘강요’사건(아이피데일리)1960년대만 해도 한국의 주력 수출 품목은 섬유류와 가발 등 경공업 제품에 머물렀기 때문에 어지간한 대기업들은 신경식의 기술과 신경식이 양성한 기술자들에게 눈독을 들였다. 마침내 이들은 법원에 집단으로 특허 무효 소송을 내면서 '홀치기 기법이 원래 일본에서 유래한 기술이라 신경식의 독창적 기술이라고 볼 수 없다'는 해괴한 주장을 폈다. 5년 동안 이어진 법적 공방 동안 신경식의 기술과 인력을 빼내 간 대기업들은 막대한 대일 수출량으로 큰돈을 벌었다. 1969년에 대법원은 신경식의 손을 들어 줬다. 그 증거로 일본 세관에서 발행한 '횡인교결포 홀치기 기법이 일본에 없는 독창적 기술이라는 증서'를 들었다.
2.3. 대법원 판결을 부정한 박정희
제5차 수출진흥 확대회의’ 대통령 지시사항: 1972년 5월 30일 ‘제5차 수출진흥 확대회의’ 관련, 중앙정보부 보고 문건에는 상공부 장관이 “홀치기 특허의 부당성을 들어 특허제도를 개선하겠다”고 보고하자, 박정희 대통령이 “65년부터 제기된 문제점을 아직까지 시정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이냐”고 반문하고 질책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 다른 각하 지시사항에는 “홀치기 제품에 대해 특허권을 부여함으로써 사회의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는 것은 협잡이 통할 수 있는 법이 되어 있고, 특허를 준 상공부도 잘못이 있으므로, 상공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고, 법무부 장관이 이를 조사 보고할 것”이라고 기재되어 있다. |
기술과 인력을 빼앗기고 투자금 회수조차 불투명해진 처지에 놓인 신경식은 이에 26개 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를 냈다. 대법원 판결에 따라 민사 소송 역시 승리로 돌아갔다. 1972년 5월 18일에 서울민사지방법원은 삼성물산 등 26개 회사가 5억 2200만원[1]을 신경식에게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1972년 5월 30일에 박정희의 지시로 상황이 뒤바뀐다. 당일에 청와대에서 제5차 수출진흥확대회의를 주재하면서 크게 화를 냈으며 법무부와 상공부, 중앙정보부에 대법원 판결을 뒤집으라고 지시하였다. 박정희는 '대법원이 특허권을 인정하여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고 있으며 신경식을 협잡꾼이라 비난하였다. 신경식의 특허가 기업들의 수출에 방해가 되니 처리하라는 소리였다. '중정'은 왜 '홀치기 특허권자'를 잡아갔을까(노컷뉴스)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은 박정희의 지시를 받고 집에 방송사 기자를 사칭한 요원들을 보내 신경식을 납치했다. 남산 중정 지하실로 끌려간 신경식은 무수한 폭행과 협박, 고문에 시달렸으며 특허를 포기하지 않으면 죽이겠다는 협박에 굴복했다. 결국 신경식은 이후락에게 특허권 포기 각서와 민사 소송 취하 각서를 제출했다. 진실화해위 "박정희 지시로 '홀치기'염색 특허권 포기 강요"(연합뉴스)
2.4. 특허를 준 공무원들도 처벌
그뿐만 아니라 신경식에게 홀치기 공법 특허를 내준 상공부 특허국 심판 공무원들도 함께 연행됐다. 중앙정보부는 이들을 조사하고 모두 공직에서 추방시켰다. 이후락 정보부장은 홀치기 특허를 승인한 상공부 공무원 4명의 이름을 적시해 해임하라고 상공부 장관에게 직접 지시 공문을 내려보냈다. 인사 조치 결과를 정보부장이 정해준 기한 안에 보고하라는 지시까지 담았다. 이에 상공부는 중정의 지시대로 멀쩡한 특허국 심판관 4명을 해임하고 이후락에게 보고했다.2.5. 발명가를 범죄자로 둔갑시킨 중앙정보부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중정은 신경식의 재산을 강탈한 것도 모자라 범죄자로 만들어 영원히 재기 불능 상태에 빠뜨리기 위해 더한 불법을 일삼았다. 6월 4일 중정은 이미 사법적으로 최종 승소한 홀치기 특허 소지자 신경식을 구속하도록 검찰에 조치했다. 중정의 조사 보고서를 받은 검찰은 곧바로 서울형사지법에 신경식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영장 담당 당직이었던 임대화 판사는 청구 내용을 양심상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러자 중정과 검찰은 이튿날 다시 영장을 청구해 다른 판사로 하여금 기어이 신경식를 구속하도록 했다.이 사건으로 양심적인 판단을 한 임대화 판사는 박정희 정권에 밉보여 그해 법관 재임용에서 탈락했다. 당시 판사 재임용권을 대법원장에서 대통령이 갖도록 바꾼 유신헌법에 따라 박 대통령이 직접 인사 보복을 한 것이다. 법원에서 부당하게 쫓겨난 임대화 판사는 이후 8년간 야인 생활을 하다가 10.26 사건으로 박정희 정권이 무너진 뒤인 1980년대에야 다시 판사로 복직할 수 있었다.
결국 신경식은 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다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2.6. 억울함을 풀지 못하고 죽은 피해자
신경식은 박정희, 전두환 정권 동안 숨죽여 살다가 6월 항쟁으로 민주화가 이루어지고도 한참 지난 2006년에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에 억울함을 호소했다. 하지만 진실화해위는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신경식의 청구를 각하했다. 마지막 기대를 건 신경식은 억울한 피해와 불명예의 한을 풀지 못하고 2015년에 세상을 떠났다.2.7. 진실화해위원회의 재조사
죽기 전 신경식은 아들 신용보에게 자신의 한을 풀어 달라고 부탁했고, 신용보는 2020년 제2기 진실화해위가 꾸려지자 대를 이어 진상규명 신청서를 제출했다. 신경식의 홀치기 특허 강탈을 둘러싼 불법적인 공작 내용은 국정원이 보관하고 있던 기록이 공개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특허권 수사 권한을 갖지 않은 중정이 불법 수사에 개입해 검찰에 인계하고, 기소를 통해 유죄판결을 받게 했으며, 그로 인해 피해자에 대한 재판은 불법 수사로 오염됐던 사실이 밝혀졌다. 2023년 2월 15일 진실화해위는 앞서 1기 진실화해위가 2007년 이 사건을 각하 결정한 데 대해 고인과 유족에게 사과했다.이 사건은 본디 故 신〇식의 특허권에서 파생된 재산권 분쟁에 불과한 것이었으나 수출업자들의 고충을 청취한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중앙정보부가 상공부 등 유관기관과 합세하여 민사소송 제1심에서 승소한 故 신〇식에게 항소심 소송 계속중 소취하를 강요한 사건으로, 故 신〇식의 자기결정권과 인격권, 신체의 자유와 재산권 등 인권을 중대하게 침해하였고, 사적 자치의 원칙 및 사법권 독립의 취지마저 훼손하였다. 故 신〇식은 1기 진실화해위원회에 제출한 자료에서 4일 동안 중앙정보부에 납치되어 몽둥이 타작을 당하고 권리포기각서를 작성했다고 진술하였다. 1기 진실화해위원회는 그 진위를 확인할 수 없어 2007. 3. 6. 각하 결정하였으나 2기 진실화해위원회는 최근 국정원으로부터 전달받은 중앙정보부 내부문서에서 중앙정보부가 당시 故 신〇식의 권리포기 각서를 징수하기 위하여 조직적으로 관여하였으며 故 신〇식에게 권리포기를 강요하였다는 사실을 중앙정보부장에 대한 보고서를 통해 확인하였다. 또한 국정원 회신문서 가운데 수신인을 ‘중앙정보부장 귀하’로 하는 1972년 6 월 2일자로 작성된 故 신〇식의 권리포기 ‘각서’ 및 1972년 6월 3일자 ‘소취하서’까지 중앙 정보부의 문건에 첨부되어 있음을 확인하였다. 故 신〇식은 중앙정보부의 강압 속에서 특허권 및 배상청구권 등 권리 일체를 포기하는 각서를 작성하고 중앙정보부의 강요에 의해 소를 취하하였다. 故 신〇식은 중앙정보부에 연행된 후 중앙정보부 사무실에서 특허권 취득 과정에서 허위공문서를 이용했다는 혐의로 수사를 받았고 특허권에 연관된 다른 공직자들도 조사를 받고 진술서를 작성하였다. 중앙정보부는 특허권 침해사건이나 그와 관련된 범죄를 수사할 권한을 갖고 있지 않으므로 권한 밖의 사항에 대한 수사는 그 자체로 불법적인 수사이다. 당시 검사는 중앙정보부의 수사자료를 인계받아 故 신〇식을 유죄판결에 이르게 했으므로 故 신〇식에 대한 재판도 불법수사로 오염되었다. 이 사건에서 국가 공권력은 故 신〇식에 대한 소취하 강요에 그치지 않고 범죄자로 만들면서 실업가로서 故 신〇식을 재기불능 상태에 빠뜨렸다. 나아가 중앙정보부는 故 신〇식의 특허권 인정 과정에 관여한 특허심판원 공직자들을 비리공직자로 몰아 인사조치를 취하도록 상공부장관에게 사실상 지시하고 인사조치 결과를 특정한 기한내에 보고하도록 하는 등 권한을 남용하여 관련 공직자들의 인사조치에도 관여하였다. 수출증대나 산업발전은 수출업자들의 탈취 욕망까지 무제한으로 옹호해주는 정책에서 나오지 않고 산업활동에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하는 무수한 경제주체들의 상호존중과 협력에서 나온다. 故 신〇식의 특허권 포기 및 소취하 강요 사건은 국가 공직자들과 수출업자들의 수출지상주의가 빚어낸 탈취 범죄이다. - 진실화해위 보고서, 중앙정보부 소취하 강요 사건(故 신〇식), 2023. 1. 1.~2023. 6. 30. |
2.8. 국가 배상 판결
남산 끌려가 '홀치기 염색' 특허 포기한 발명가…法 "유족에 7억 배상하라"(조선일보)박정희 지시에 '홀치기' 특허 뺏긴 발명가…유족들 23억 받는다(중앙일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0부가 2024년 8월에 신경식의 유족들에게 국가가 23억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는 신경식이 1972년 손해배상 소송 1심에서 승소해 받기로 한 5억2000만여원과 지연이자, 국가의 불법행위에 따른 위자료 등을 고려해 산정된 금액이다.
2.9. 현재까지도 사과 한마디 없는 국가와 재벌
故 신〇식에 대한 소취하 강요사건은 대통령, 상공부 장관, 중앙정보부장이 합세하여 건실한 발명가의 재산권을 강압적으로 탈취한 사건으로서 이 사건에 관여한 국가기관 및 후속기관은 故 신〇식의 인권을 침해한 점에 대하여 사과하고 이러한 공권력 남용에 대한 감시 및 근절 방안을 확립해야 한다. 나아가 국가는 故 신〇식의 명예회복과 피해회복을 위한 실질적인 조치도 취해야 한다. 섬유수출기업들은 사익을 위해 대통령에게 부정 청탁하여 국가 공권력의 남용을 부추겨 중앙정보부로 하여금 故 신〇식의 인권을 침해하도록 하였기 때문에 해당기업 및 그 연합체 또는 그 법적 승계자들은 故 신〇식의 인권침해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하여야 한다. 해당 사안에 대해 아무런 권한이 없는 중앙정보부가 개입하여 불법체포, 불법수사를 하고 강요 행위 등을 범한 정황도 드러났으므로 국가는 재심 등을 통해 故 신〇식의 명예를 회복시켜 주어야 한다. - 진실화해위 권고사항, 중앙정보부 소취하 강요 사건(故 신〇식), 2023. 1. 1.~2023. 6. 30. |
이 사건은 독재 정권과 대기업이 합작한 부패 범죄임이 확인되었지만, 진실화해위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검찰, 사법부, 국정원, 삼성 등의 관련자들은 사과는커녕 인정도 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