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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은 이집트 상형문자의 필기체이다. 뿔 2개 달린 새는 부엉이의 모습을 나타낸 문자를 간략화한 것이다.
한자 | -象形文字 |
영어 | Egyptian hieroglyphs |
고전 이집트어 | 𓊹𓌃[1] 𓊹𓌃𓏪[2] |
1. 개요
고대 이집트의 이집트 문명에서 사용된 문자를 말한다. 신성문자(혹은 성각문자)또는 '히에로글리프'라고도 한다. 상형문자로 분류된다. 기원전 3000년대 초반에 발생하여 기원전 2700년대에는 문장을 표현[3]하게 되었다. 그림문자[4] + 표의문자[5] + (자음만 있는) 표음문자[6][7]로 이루어진다.어떤 문자는 문자 그 자체로 특정 단어를 나타내는가 하면, 다른 글자는 뜻 없이 특정 발음만을 나타내는 방식. 또한 특정한 문자는 발음 없이 특정 단어의 뜻을 분명히 해 주는 역할을 하기도 하는데[8], 이러한 문자를 대개 한정사로 부른다.
가장 이른 예시로 아비도스의 무덤에서 기원전 32세기에 기록된 상형문자가 발견되었다. 이전까지 이집트 상형문자는 메소포타미아의 쐐기 문자의 영향 아래 만들어졌다는 설이 강했는데, 기원전 33세기의 이집트 상형문자가 동시기의 쐐기 문자보다 형태가 더 발전된 문자체계였음이 밝혀져 오히려 쐐기 문자가 이집트 문자보다 더 오래되었는지 여부조차 불분명해졌다.
문자체계가 갖추어진 후에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로마 제국 시대까지 지속적으로 사용되었다. 상형문자로 기록된 가장 최근의 비문은 서기 394년에 만들어진 것이다. 거의 3500여 년 가까이 쓰였으니 가히 세계사에서 가장 오랫동안 쓰였던 문자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의 한자보다 더 오래된, 오래 사용되었던 문자이며 현존하는 표음문자들 중 이집트 상형문자 다음으로 오래 쓰이고 있는 그리스 문자조차도 약 2800여 년 사용되어 앞으로 700여 년은 더 사용되어야 이집트 상형문자의 사용 기간을 겨우 따라잡을 수 있을 정도이니 이 문자의 역사성을 가히 실감할 수 있다.
문어체가 거의 고정되어 있고 변화가 적어서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때의 사제가 거의 삼천 년 전의 석판에 새겨진 피라미드 텍스트를 해독하여 에드푸 신전의 비문을 적을 수 있었다.
이 문자는 고전 이집트어를 기록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이 고전 이집트어의 후예가 중세까지 쓰던 콥트어이다. 현재는 아랍어로 대체되어 사어가 되었고, 이집트 아랍어에서 쓰이는 단어들을 제외하면 실생활에서는 당연히 쓰이지 않는다.[9] 다만 학자들과 학부생들을 중심으로 수요는 있는 편.
이집트 상형문자가 유럽과 중동 각지로 전파되고 변화되기를 반복하여 그 지역의 고유 문자가 되었기에 거의 대부분의 문자[10]는 이집트 상형문자를 먼 기원으로 둔다. 이집트 상형문자가 기원이 아닌 문자는 쐐기 문자[11], 인더스 문자, 동아시아의 한자와 그 파생문자들[12], 이 문자, 한글, 아메리카의 마야 문자, 아즈텍 문자, 이스터 섬의 롱고롱고 등 일부밖에 없다.
이집트 제1왕조의 파라오인 호르아하의 이름이 적힌 도편. 이 시절에 이미 이집트 상형문자의 초창기 형태가 드러난다. 참고로 호르아하는 대략 기원전 31세기의 인물이다. |
흔히 '히에로글리프'라고도 하며, 이는 그리스어로 '신성한 글귀'라는 뜻의 'τὰ ἱερογλυφικὰ γράμματα'(타 히에로글리피카 그람마타)에서 비롯된 단어이다. 이는 고대 이집트인들이 자신들의 문자를 mdw nTr(메두 네체르 = 신성한 글귀)라고 부른 것에서 유래하였으며, 이 때문에 히에로글리프를 '신성문자'로 번역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 문자의 해독과 관련된 이야기는 로제타 석 문서 참고.
이집트 상형문자는 사자의 서와 같은 고대 이집트 종교와 관련된 내용이 많다. 이집트 신화 세계관에서는 달과 시간, 그리고 지식과 지혜의 신이자 법률을 제정하고, 학문을 발달시켰던 토트가 개발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 상형문자(히에로글리프)는 이집트 신화에 나오는 신들의 지혜와 힘을 담은 '신들의 언어'로 여겨졌으며, 한번 이 히에로글리프를 통해 쓰여지게 된 글은 그대로 현실에 이루어진다고 믿었다고 한다. 이러한 점 때문에 고대 이집트에서 전쟁이 일어나게 되면 적군의 이름을 점토판에 적은 후, 점토판에 쓰고 박살내 버리기도 했는데, 왜냐하면 이름을 깨트리는 순간 상대의 힘이 사라져 자신들이 이길 거라고 믿었다고 한다. 그리고 히에로글레프는 실제 세계의 사물을 그대로 재현하고 개념을 지시하는 두 가지 속성을 지니고 있고 실제계의 전체성을 구성하는 사물의 형상으로 정의된다.
히에로글리프를 읽고 쓸 수 있는 사람은 인구의 1%, 즉 왕과 서기와 신관과 귀족 정도로만 한정되었다고 한다.
2. 변화 과정
대체로 시대가 갈수록 자형이 점차 단순해지고, 글자 수는 더 많아지는 양상을 띈다. 이 때문에 후기의 히에로글리프는 그림을 그대로 문자로 만든 상형문자보다는 기호화된 표의 문자에 더 가까워지고, 표음 문자 노릇도 어느 정도 하는 복잡한 체계가 되었다. 순수 상형문자에서 시작한 한자의 변천과정과 유사하다. 그리고 표음자와 표의자를 상하좌우 빽빽이 겹쳐놓은 구조 역시 한자와 비슷할 뿐더러, 파피루스에 갈겨쓴 신관문자를 보면 모양조차도 한자의 초서체처럼 생겼다.가령 이집트어로 '가르치다'라는 뜻의 동사는 오리 모양의 글자와 발 모양의 글자, 이집트 독수리 모양의 글자 그리고 매를 들고 있는 남자의 그림으로 표기되는데, 여기서 오리 모양의 글자는 s, 발모양의 글자는 b, 이집트독수리 모양의 글자는 A[13]의 음가를 나타내는 발음기호이며, 맨 끝에 매를 들고 있는 남자의 모양이 바로 sbA의 뜻이 무엇인지 한정시켜주는 한정사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의 격언 중에 "학생의 귀는 등에 있다. 때려서 귀를 열어주어야 한다."라는 말이 있는데, 매를 든 남자는 바로 선생을 묘사한 것.
그런데 이집트 문자는 모음을 전혀 표기하지 않을 뿐더러[14], 이집트어는 문법에 따라 모음이 바뀌는 굴절어이기 때문에 이것만으로 원 발음을 온전히 알 수는 없다. 그래서 따로 참고할 만한 단서가 없는 이상 학계의 발음 관행에 따라 읽는 경우가 일반적으로, 편의상 문자 '이집트독수리⟨A⟩ˈ와 '앞팔⟨a⟩ˈ, '갈대 하나⟨i⟩'는 /aː/로, '메추라기⟨w⟩'는 /uː/로, '갈대 한쌍⟨y⟩'은 /iː/로 읽고, 이외의 자음들 사이에는 /ɛ/를 붙여 읽는다. 예컨대 상술한 ⟨sbA⟩를 /sɛbaː/(세바)로 읽는 식. 당연히 당대에 실제로 사용되었을 발음과는 차이가 있다.[15]
실제 발음은 다른 주변국의 기록에 나오는 이집트 인명, 지명 등을 대조하여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아카드어 비문과 점토판은 숫자도 많은 편인 데다 그 언어부터가 이집트 신왕국 시기까지 국제어로 널리 쓰였고, 무엇보다 아카드어 표기에 사용된 쐐기문자의 표음자들은 음절문자라 모음까지 알 수 있었으므로 청동기 시대 이집트어 재구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한 그리스어 및 콥트어 문헌도 큰 역할을 했다. 현대인들에게도 친숙한 세트(그리스:Σήθ, 콥트:Ⲥⲏⲧ), 토트(그리스:Θώθ, 콥트:Ⲑⲱⲟⲩⲧ) 등 이름이 바로 여기에 나오는 표기를 따른 것이다. 그 외에 파라오(Φαραώ)란 단어도 70인역 성경의 그리스어 표기에서 비롯된 발음이다.
초기의 상형문자는 상하 이집트를 통일한 나르메르 왕을 묘사한 나르메르 팔레트# 그리고 나르메르 이전의 왕이었던 전갈왕 2세의 지팡이 머리 장식인 스콜피온 메이스헤드#가 있다.
3. 신관문자와 민중문자
이집트인들은 히에로글리프 뿐만 아니라 빠르게 쓸 수 있는 파생형 문자도 사용했다. 가령 기원전 24세기 무렵부터 문자를 기록하던 서기들은 공식기록 이외에 정부문서나 행정업무를 위한 기록을 위해 기존의 복잡한 도형들을 간소화한 문자를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을 신관문자(Hieratic), 또는 승용(僧用)문자라고 부른다. 신관문자는 시대에 따라 점차 더 추상화되는 양상을 띠는데 가령 이집트 중왕국 시대의 신관문자와 신왕국시대의 신관문자만 하더라도 전문가조차 파악이 어려울 정도로 흘려쓴 것이 보인다. 이후 식자층이 좀 더 광범위하게 퍼져가면서 극도로 단순화된 글자체가 나타났다. 이것을 '민중문자(Demotic)'라고 부르는데 이집트 상형문자의 최종진화형으로 여긴다. 유명한 로제타 석에 기록된 문자도 그리스 문자와, 오래전부터 내려온 정체, 그리고 민중문자이다.신관문자의 좋은 예시. 이집트 제18왕조 시절인 아멘호테프 1세 때(기원전 1514~1493년경) 글씨연습용 석판에 쓴 글귀로 중왕국시대의 문학작품인 <아메넴하트의 교훈>을 담았다. 본 텍스트는 제12왕조의 개창자 아메넴헤트 1세가 아들 세누스레트 1세에게 써준 교훈서로, 쿠데타로 전왕을 죽이고 왕이 되었다가 자신도 결국 암살당한 아메넴하트 1세의 사정을 반영하듯 '네 주변 부하들을 항상 철저하게 감시하라. 아무도 믿지 마라. 네 형제도, 알고지내는 친구들도, 친밀한 관계를 만들지 말아라.'고 쓰였다.
sAq tw r smdt r.f tmt xpr
tmmt rdi ib m-sA Hr.s
m tkn im.sn m waw.kwi
m mH ib.k m sn m rx xnms
m sxprw n.k aqw nn km iry
자식들로부터 너를 보호하여라 - 그것으로부터 얻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자신들의 마음을 항상 공포심으로 가지는 사람들 누구나
그들에게 함부로 다가가지 말거라
너의 형제를 믿지 마라
동료를 만들지 마라, 아무 이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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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들로부터 너를 보호하여라 - 그것으로부터 얻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자신들의 마음을 항상 공포심으로 가지는 사람들 누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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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를 만들지 마라, 아무 이익이 없다
기원전 1850년 무렵에 만들어진, 이집트에서 가장 오래된 민중문자[16] 수학서이다.# 바구니(반구)의 겉넓이를 다루었다.
tp n jr.t nb.t
mj Dd n=k nb.t m tp-r
r 4-1/2 m aD HA
dj=k rx=j, AH.t=s jr.xr=k
jr=k 1/9 n 9 Hr-ntt jr nb.t
gs pw n j[...] xpr.xr 1
jr.xr=k jr=k DA.t m 8
jr.xr=k 1/9 n 8
xpr.xr 2/3 1/6 1/18 jr.xr=k
jr=k DA.t n.t pA 8 r-sA pA 2/3 1/6 1/18 xpr-xr 7-1/9
jr.xr=k jr=k 7-1/9 sp 4-1/2
xpr.xr 32 mak AH.t=s pw
gmj=k nfr
바구니를 계산하는 방법
그들이 너에게 지름
4+1/2의 높이를 가진
바구니의 표면적을 알려달라고 하면.
너는 1/9의 9를 계산할 것이다
바구니는 알을 반으로 자른 모양(반구)이기 때문이고 결과는 1이다
그러면 나머지인 8을 계산할 것이다
그러면 8의 1/9를 계산하고
결과는 2/3 + 1/6 + 1/18이다
그럼 너는 8에서 이들, 곧
2/3 + 1/6 + 1/18에서의 나머지를 구할 것이고 결과는 7+1/9다
이제 너는 7+1/9를 4+1/2로 곱할 것이고
결과는 32다. 이것이 표면적이고
이 답은 맞다[실제_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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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구니를 계산하는 방법
그들이 너에게 지름
4+1/2의 높이를 가진
바구니의 표면적을 알려달라고 하면.
너는 1/9의 9를 계산할 것이다
바구니는 알을 반으로 자른 모양(반구)이기 때문이고 결과는 1이다
그러면 나머지인 8을 계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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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너는 8에서 이들, 곧
2/3 + 1/6 + 1/18에서의 나머지를 구할 것이고 결과는 7+1/9다
이제 너는 7+1/9를 4+1/2로 곱할 것이고
결과는 32다. 이것이 표면적이고
이 답은 맞다[실제_답]
4. 문자의 종말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들어서자 이집트인들은 빠르게 그리스 헬레니즘 문화에 물들기 시작하여 그리스 문자를 바탕으로 한 콥트 문자를 사용했다.최후로 새겨진 이집트 상형문자 비문의 모습. 문구로는 아래와 같이 쓰였다.
m-bꜣḥ Mꜣ-w-r sꜣ Ḥr m-ʿ=f Ist-mḍ-iḫm s* r'Ist1-md ḫm-nṯr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치세로부터 110년(394년 8월 24일)[18], 호루스의 아들 메룰 앞에서, 에스멧 아콤 (판독(칭호)불가) 손에 의해 (판독(계승)불가) 에스멧의 아들이자 이시스 여신의 두번째 가는 예언자, 영원할지어다. 위대한 신이자 아바톤의 군주 메룰[19]이 말하다.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치세로부터 110년(394년 8월 24일)[18], 호루스의 아들 메룰 앞에서, 에스멧 아콤 (판독(칭호)불가) 손에 의해 (판독(계승)불가) 에스멧의 아들이자 이시스 여신의 두번째 가는 예언자, 영원할지어다. 위대한 신이자 아바톤의 군주 메룰[19]이 말하다.
그림에는 실리지 않았지만 이 시대 이미 상형문자의 지식이 일부 소실되어 아래에는 민중문자 비문도 있는데, 민중문자로는
나는 에스멧 아콤이며, 이시스 여신의 기록의 (판독불가) 집의 서기이자, 이시스 여신의 둘째가는 예언자이자 어머니가 에스웨레인 에스멧 하네카테의 아들이다. 나는 이 만둘리스[20]의 조각을 영원히 남기는데, 그는 나에게 언제나 자애로운 얼굴 (판독불가) 이었기 때문이다. 오늘, 오시리스의 탄신일 그의 (판독불가) 봉납축제에서, 110년
한편 이집트가 그리스 문화권에 들고 기독교를 받아들이면서 상형문자를 아는 이들의 수는 점차 줄어들었다. 사실 그 이전부터 정통 글씨체를 읽을 줄 아는 사람들은 신관들밖에 없었고, 민중문자는 로마 제국 통치기에는 콥트 문자에 밀려 거의 사라진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그리스도교도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의 우상 신전폐쇄령으로 상형문자를 아는 이집트인은 더욱 줄어들었다. 결국 540년 아스완의 필레섬에 있던 마지막 사원 이시스 신전이 유스티니아누스 1세에 의해 폐쇄되면서[21] 상형문자를 전수해줄 수 있는 사람이 사라졌다. 위의 만둘리스의 상도 그리스도교도들이 훼손했다. 그 뒤로 불과 100년 뒤인데도 이슬람 제국이 이 땅을 정복했을 때에 이집트 상형문자는 깡그리 잊혀서 당대에 이미 악마의 주문이 새겨진 비밀의 문자 취급을 받았다고 한다.
물론 이 당시에도 그리스어와 라틴어로 된 문헌은 전해져내려왔었기 때문에 이집트의 역사가 실전된것은 아니었으며 몇몇 중세 이슬람 학자들도 고대 그리스와 로마시대 문헌을 토대로 이집트 상형문자를 해독하려고 연구하기도 했다.[22] 그러나 당시 아직 로제타 석이 발견되기 전이라서 근대 서양 학자들과는 달리 중세 무슬림 학자들은 맨 땅에 그냥 헤딩하는 식으로 파고들다가 결국 실패했다. 따라서 이 당시의 고대 이집트 역사연구는 프톨레마이오 왕조 시대와 로마시대 문헌에 의존해야했다. 대신 서양인들이 로제타 석을 발견하여 해독에 성공하기에 이른다. 상형문자 해독에 관한 내용은 로제타 석 참고.
현대 이집트에서는 주로 관공서와 기업 로고, 간판 등 장식용이나 기호로 쓰이는 편이고, 학교에서도 역사공부 과정에서 일부 상형문자를 가르치기는 한다. 물론 능숙하게 상형문자를 읽고 쓸 수 있는 사람은 예나 지금이나 소수이다. 일단 체계 자체가 많이 복잡하다. 영문 위키피디아 "Egyptian hieroglyphs" 문서. Writing Systems 단락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5. 기타
고대 이집트어로 '안녕하세요!'를 Iwy em hotep(이위 엠 호텝)이라고 한다. 뜻은 '평화 속에서'인데, 이 가운데 호텝(htp, 𓊵)은 한 글자로 제단 위에 놓인 제물(빵)을 본땄다. 고대 이집트의 명재상 임호텝 이름의 어원. 또한 고대 이집트어를 계승한 콥트어로는 인사를 ⲛⲟϥⲣⲓ(nofri)라고 하는데, 고대 이집트어의 nfr에서 온 단어이다. 이 단어도 한 글자로 표기하는데 '시스트럼'이라는 신을 위한 제사 때 흔들어서 소리를 내는 악기 모양에서 가져왔다. 뜻은 '즐겁다', '좋다'는 뜻.고대 이집트어는 글자 숫자가 무척 많고 모음을 표기하지 않기 때문에, 같은 단어라도 몇 가지 다른 표기가 존재할 수 있었다.
국내에서 가끔 이집트 관련 행사가 열리면 자기 이름의 이니셜을 상형문자로 그려주는 이벤트가 거의 포함된다. 국립중앙박물관 이집트관에서도 자신의 이름을 이집트 상형문자로 표기해주는 전자보드판이 있다.
2009년 10월에 유니코드에 등록되었으며, U+13000 ~ U+1342F 영역으로 총 1072자. BMP 영역 밖이므로 UTF-8와 UTF-16 둘 다 한 글자당 4바이트를 잡아먹는다.
음모론자들이나 초고대 문명설, 외계문명기원설에 몰입한 사이비 역사 호사가들은 상형문자 중 일부는 헬리콥터를 의미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아비도스 사원의 헬리콥터 문서 참고.
오션월드에 가면 곳곳에서 이집트 상형문자를 볼 수 있다. 특별한 이유는 없고 그냥 여기 컨셉이 이집트라 그렇다.
여담으로 음경을 모티브로 한 문자가 있다. 유니코드 U+130B8인 𓂸[23] 와 𓂺[24]이 그 주인공.
고대 이집트에도 문자를 이용한 언어유희가 있었다. 예시로 에스나 신전 벽면[25]에 새긴 악어 찬송가가 있다. 이집트에서 악어 모양 글자는 msh, jt, xntj, Hnt, Ad로 읽혔는데, 이렇게 한 글자에 여러 가지 음가가 있다는 특징을 활용해서 악어 모양 글자로만 찬송가를 적은 것이다.
또, ~'안에'라는 뜻인 m-Xnw를 정석대로 쓰자면 𓅓𓄚𓈖𓏌𓉐라고 써야 하는데, 이집트인들은 이것을 𓏌𓈗라고 쓰기도 했다. 𓏌𓈗는 모양 그대로 읽으면 '항아리 밑에 있는 물'인데 이를 이집트어로 번역하면 mw-Xr-nw가 된다. 바로, mw-Xr-nw가 m-Xnw와 발음이 비슷함을 이용한 것이다.
이집트 상형문자 가르쳐주는 책들이 여러 권 한국에 발매되었다.#### 이집트 상형문자를 가르쳐주는 유튜브 채널도 있다.# 역사학을 전공한 이집트인이 주변에 있다면 높은 확률로 이집트 상형문자를 알고 있을 터이니, 한번 질문해 보는 것 역시 나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2024년에는 이집트 상형문자 전문가인 서울대 유성환 박사가 세누스레트 1세 시대 쓰여진 소설 '시누헤 이야기'의 원전을 번역하여 최초의 소설 시누헤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출간했다.
대한민국의 대중들 사이에서 유명한 인물들 중에서 이 문자에 정통한 사람으로는 역시 이집트학 전문가인 고고학자 곽민수[26]가 있다. 즉석에서 보여준 간단한 이집트어 문구를 단번에 해독할 정도인데, 사실 이 정도는 위의 유성환 박사의 사례도 그렇고 이집트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6. 대중매체
고대 이집트, 이집트 문명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위해 특히 이집토마니아 작품에서 필수적으로 나오는 문자이다.유희왕에 나온 라의 익신룡의 효과가 이 문자로 기록되어 있다. 페가수스가 다른 신의 능력을 해석했는데 라의 카드만 해석이 되지 않아 그 문자 그대로 카드에 기록한 뒤 카드를 낸 뒤에야 이 문자가 나오게 하는 특수한 처리를 한 것.
[1] 단수형[2] 복수형[3] 2왕조 세트페리브센의 무덤의 유물.[4] 예를 들어서 오리 그림은 그림 그대로 오리를 뜻한다.[5] 오리 그림 옆에 ㉧(태양 그림)이 있으면 sA ra라고 읽고 '태양의 오리'가 아니라 '라의 아들' 즉, 파라오를 뜻한다.[6] 예를 들어 네페르타리(Nefertari Meritmut)는 Nfrt jrj mrjt n Mwt 이런 식으로 표기되었다.[7] 모음은 표기하지 않았지만 소리글자 옆에 뜻글자도 함께 표기했기 때문에 고대 이집트 언어를 안다면 어떤 단어인지 알 수 있다. 예시. 비유하자면, 자동차를 나타내기 위해 한글로 ㅈㄷㅊ라고만 적으면 초성이 ㅈㄷㅊ인 다른 단어들과 헷갈릴 수 있지만, 옆에 자동차 그림 또한 그리면 모음을 적지 않아도 자동차라고 읽을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고양이는 MIW라고 적고 고양이를 나타내는 문자 또한 옆에 적는 식. 참고로 '미우'라고 읽는 게 아니라 M과 I와 W에 각각 모음을 붙여 읽어야 될 것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자신들의 언어를 알기에 읽을 수 있지만, 사멸한 고대 이집트 언어를 모르는 현대인으로서는 어떻게 읽어야 할지 알기 어려워진다.[8] 특정 단어가 지명이나 인명, 또는 동작과 관련된 단어임을 분명히 하는 등의 용도로 쓰인다.[9] 하지만 콥트어와 그리스어의 영향을 받았고, 문법도 시대에 따라 달라져서 표준 아랍어와는 적지 않게 다르다.[10] 페니키아 문자와 그으즈 문자, 그리고 이러한 것들을 기반으로 한 그리스 문자, 키릴 문자, 라틴 문자, 아랍 문자, 히브리 문자, 데바나가리 문자 등이 있다.[11] 쐐기문자가 상형문자에 영향을 줬다고 보는 측도 있다. 그 근거로 쐐기문자가 탄생한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이집트 지역간 교역과 이집트 상형문자가 어느 순간 갑자기 완성된 하나의 문자 체계로서 대두했단 점이다. 다만 둘의 형태가 너무 다른데다가 완성된 문자체계로서의 역사는 이집트 쪽이 더 오래됐기에, 오늘날의 정설은 "기록이란 모티브는 이집트가 메소포타미아에서 따왔을지라도 문자체계를 만든 건 독자적으로 이뤄졌다"이다.[12] 쯔놈, 고장자, 거란 문자, 여진 문자, 서하 문자, 가나, 이두, 향찰, 구결, 주음부호 등[13] 모음 /a/가 아니라 아랍어의 자음 '알리프' 같은 성문파열음 /ʔ/으로, 원래 구개수전동음 /ʀ/였던 음가가 민중 이집트어 시기인 기원전 9세기에 변형된 것이다. 한편 이 문자를 옮겨적을 때, 혼동을 막기 위해 A대신 ꜣ를 도입한 표기법을 쓰는 경우도 많다.[14] 같은 어족에 속하는 아랍어나 히브리어처럼, 자음으로 구성된 어근을 중심으로 단어를 파생시키거나 굴절시키는 문법 구조를 가졌기 때문에 이런 방식의 표기가 가능했다. 다만 어근이 자음 3개로 구성되는 셈어파 언어들과 달리, 고대 이집트어는 2개나 4~5개의 자음으로 구성된 어근도 사용되었다.[15] 가령 제6왕조 왕의 이름 nTry-kA-ra(또는 nṯrj-kꜣ-rꜥ)는 편의상 '네체리카라'로 읽지만, 그가 살던 기원전 22세기에는 '누츠리-쿠르-리우/nucˈɾij kuʀ ˈɾiːʕuw/라고 발음했으리라 추정한다. 제 18왕조의 DHwty-ms(또는 ḏḥwtj-ms)은 관행대로라면 '제후티메스'가 되겠지만, 그가 살던 기원전 15세기에는 '타하우티-미사우/tʼaˈħawtij ˈmissaw/'라고 불렸던 듯하다.[16] 사실 민중문자는 아니고 후기 북부 히에라틱이다. 하지만 민중문자가 본래 북부 히에라틱으로 유래된 것을 따져보아서 이는 히에라틱보다는 데모틱의 특성을 따르기 때문에 예시로 들어보았다.[실제_답] 실제로는 [math(\dfrac{1}{2} \cdot 4 \pi \left(\dfrac{1}{2} \left(4+\dfrac{1}{2} \right)\!\right)^2 \approx 31.8086256\cdots)]이지만, 당시 수준을 고려하면 꽤 근접한 답이다. 식을 파헤쳐 보면 256/81이라는 원주율의 근삿값이 나오는데 이는 약 3.16049382716... 이다.[18] 이때는 테오도시우스 1세의 치세였는데도 굳이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즉위년을 기준으로 셈한 이유는, 디오클레티아누스 이후의 로마 황제들이 기독교를 앞세워 이집트 전통종교를 탄압하여 신관들이 앙심을 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콥트 정교회는 그와는 반대의 이유로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이집트에서 기독교를 대규모로 박해했기 때문에 현재에도 '순교자기원'(anno martyrum)이라는 이름으로 디오클레티아누스 즉위년인 283년을 원년으로 삼아 전례력을 사용한다.[19] 아래의 만둘리스와 동일한 신이다.[20] 호루스가 누비아식으로 변형된 태양신의 이름.[21] 기독교는 타종교를 우상숭배로 여겨 증오하였기에 이 과정 또한 폭력적이고 파괴적이었다. 성소의 문은 파괴되었고 신전의 신관들은 고문당하였으며# 신성한 매(sacred falcon)는 성직자이던 마케도니우스(Macedonius)가 죽여버렸고 신전은 그리스도교의 상징으로 곳곳이 훼손되었다. #[22] 정형화된 기호나 그림들이 일정하게 배열되어 늘어졌으며, 몇몇 똑같이 생긴 기호가 반복해서 등장하기까지 하면, 누구라도 이것은 아무 의미 없는 그림이나 낙서, 부적이 아니라 당대에 쓰인 문자라고 충분히 추리할 수 있다.[23] 발음은 /mt/이다.[24] 이 가느다란 실 같은 건 오줌도 되지만 한편으로는 정액도 된다. 왜냐하면 이 문자는 '교미(하다)'란 뜻인 단어의 한정사로도 쓰이고, '소변(보다)'의 뜻인 단어의 한정사로도 쓰이기 때문이다. Gardiner Sign List에서는 이를 "Phallus with liquid issuing from it" 라고 하였는데, liquid라는 단어는 오줌과 정액 둘 다로 해석할 수 있으므로 한역하면 "체액을 방출하는 남근" 정도가 되겠다.[25] 맞은 편에는 숫양 찬송가가 있다.[26] 애굽민수라는 별명으로도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