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16 16:12:22

판타지를 여행하는 현대인을 위한 안내서


1. 개요2. 전제 사항3. 첫 접촉4. 적응하기5. 과연 현대인이 도움이 될 수 있는가
5.1. 현실의 비슷한 사례: 에르난 코르테스
6. 학문별 안내7. 만약 차원 이동이 자유자재이거나, 국가 전체가 차원 이동한다면?
7.1. 물자 부족으로 인한 너프7.2. 세계들 사이의 밸런스7.3. 약탈꾼/사기꾼/성범죄자/한탕주의자7.4. 판타지 세계의 세대 갈등
8. 만약 판타지 세계의 사람이 지구에 떨어진다면?9. 결론10. 관련 문서

1. 개요

현대인 천재론의 영역을 지나, '현대인이 서양 판타지 이세계[1]에 떨어졌을 때 무엇을 해볼 수 있는가?'를 연구하는 집단연구 문서다. 문서명은 소설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의 패러디.

아래 문단에서는 어디까지나 일반론적이고 가능성이 높은 측면에서 있을 법한 전개를 다룬다. 즉, 당신이 온갖 행운과 인맥을 통한 주인공 보정을 받지 않은 일반인이라는 가정 하에서 서술되어 있다. 애당초 주인공 보정을 빵빵하게 받는 주인공이라면 제멋대로 살아도 운명이 알아서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주니 굳이 안내서가 필요없기 때문이다.

2. 전제 사항

일단 전형적인 서양 판타지 세계를 중심으로 전제한다. 사실 '전형적인' 이라는 것 자체가 논란의 여지가 크지만, 일단 소드 앤 소서리라는 하위 장르명으로 통칭되고, 총보다는 검과 갑옷이 더 많이 쓰이는 전근대적, 중세적 기술을 쓰는 문명인 동시에 마법과 오크, 엘프 같은 이종족이 존재하는 서양 판타지 세계관을 말한다.

더 엄밀하게는, 지구와 같은 물리, 화학적 법칙이 성립하는 세계관이다. 사실 물리 법칙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면 핵력, 전자기력, 중력 등 우리 우주에서 물질들을 유지시키는 힘들과 판타지 세계의 그것이 다르다는 말이 될 수 있으니, 인간으로써 형체를 유지하는것도 불가능하여 가는 즉시 사망한다. 인간의 몸에서 벌어지는 물리적, 화학적 작용들도 다 우리 우주의 법칙을 따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여간 지구에서 사용한 화학 약품이나 물리 기계 등이 판타지 세계에서도 똑같이 재현 가능하다는 것이 기본 전제다.

그러나 초현실적이고 과학으로 증명되지 않는(최소한 현대과학 기준에서) 요소가 있다는 것 또한 고려된다. 그렇지 않으면 초현실의 대표격인 마법, 탈인간 수준의 검술 자체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현실 세계와 같은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혹은 최소한 비슷한 종이 다수 서식하며, 이들은 사회적 동물로써 인간과 비슷한 윤리관과 지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사실 고양이처럼 단독 생활을 선호하는 동물이라면 애초에 문명 사회를 안 이뤘을 것이다(...). 또 인간은 다른 인간이나 동물들에 대해서 상당히 이타적이고 우호적이며, 폭력적이거나 반사회적인 개체는 도태시키는 식으로 인간 스스로는 물론이고 수 많은 동물들도 '가축화'시켰다. 문명화는 이런 사회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이세계의 문명을 이룬 종도 최소한 정도의 비슷한 윤리관을 가졌다고 봐야 한다. 다만 현대적인 윤리가 아닌, 전근대적이거나 이국적인 윤리관 정도의 차이만 있을 것이다.

문명의 수준은 작품별로 천차만별이나, 사실 중세를 넘어서 르네상스는 물론 근세 시대까지 다뤄지는 경우는 매우 많다. 특히 화승총이나 판금갑옷이 등장하는 것은 드문 일도 아니므로 이런 경우 근세로 상정하는 것이 맞다. 드물게 증기기관이 실용화된 산업혁명기까지 다루는 스팀펑크 판타지 세계관도 있다. 산업시대 판타지로는 게임 〈페이블 3〉가 있다. 이 문서는 중세에서 근대 초엽까지 모든 문명 수준을 상상해서 서술하고 있다.

2.1. 마법?

못 쓴 판타지 소설에서 자주 보이는 실수는 마법을 너무 강력하게 설정한다는 것이다. 군대 전체를 몰살시켜 버릴 수 있는 강력한 마법사와 마녀와 마도사가 있는데, 거기다 또 군대를 만들어놓는다! 말도 안 된다. 만 명 병력을 죽일 수 있는 마법사가 있다면 아무도 만 명을 모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대가를 잘 생각지 않는다. 이런 강력한 마법사들이 있는데 어째 왕과 영주들이 또 있고... 당연히 마법사들이 세상을 지배하지 않을까? 힘이 있다면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
얼음과 불의 노래 작가 조지 R.R. 마틴의 타임지 인터뷰
판타지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법, 주문, 혹은 어떤 초자연적인 현상과 관련된 설정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일단 본 문서가 염두에 두는 것은 전반적으로 현실 세계 혹은 현실에서 사용되는 판타지 장르 문법과 유사한 세계인데, 현실 세계 자체는 이미 존재하니까 별 문제가 없다. 하지만 마법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고 작품별로 설정이 극히 판이하기 때문에 어느 작품을 기준으로 잡기가 어렵다.

또한 마법의 힘에 따라 마법이 세계와 상호작용하는 방식도 달라진다. 당장에 위 조지 마틴의 발언처럼 미티어 스웜으로 1만 대군을 싹 날려버리는 마법사가 있다면 그들이 왕으로 군림하는 세상이 될 것이다. 이것도 매우 단순한 예시고, 그런 마법사들의 수가 얼마나 되느냐, 마법의 종류와 기능이 어떠냐에 따라서도 세계의 구성이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저런 마법사가 전 세계에 수십~수백명 정도로 제한된다면 일종의 슈퍼히어로물과 비슷한 모양새가 될 것이다.

또 추가로 가정해서, 마법사 1명 1명의 힘은 엇비슷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사람이 마법을 쓰는 세계관을 생각해 보자. 이런 경우라면 마법을 못 쓰는 사람들이 장애 취급을 받을 공산이 크다. 실제 작품 예시로,《블랙 클로버》에서는 다들 마법을 쓰는데 주인공은 마법을 못 쓴다는 이유로 차별하며, 《크로스 앙쥬 천사와 용의 윤무》 에서는 마법을 못 쓰면 다들 본능적으로 혐오하는데다 사회에서 격리되어 군대로 끌려간다.

반대급부로 얼불노나 반지의 제왕 같은 세계관에서처럼 파이어볼조차 없는 세계라면 마법사들의 역할은 제한적이고 현실 세계와 매우 유사하게 작동할 것이다.

하여간 이렇게 가정을 계속 붙일수록 더 복잡해진다. 때문에, 본 문서는 마법의 힘이 제한적인 세계관을 염두에 두고 작성되었다.

소위 검과 마법으로 표현되는 펄프 픽션, 장르 픽션에서 제일 일반적으로 표현된 마법의 위치를 보면, 마법사는 일반적으로 드문 존재인 데다, 세계에서 순위권에 드는 지식인이다. 전투 마법이 존재하고, 일반 잡병을 넘어서 심지어 기사보다 강력한 파괴력을 뽐내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단독으로 군대를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마법사는 자주 등장하지 않는다. 심지어 Synn 같이 인간인 척 하고 있는 이종족인 경우도 있다. 그 외에 전투 마법에도 이런저런 패널티가 있어서 무한한 힘은 아니다.

하지만, 조지 마틴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여 단순히 강한 마법사, 강한 마법이 많이 있으면 말이 안 된다고 생각을 닫아버릴 필요는 없다. '군대 전체를 몰살시켜 버릴 수 있는 강력한 마법사와 마녀, 마도사'는 현실 지구에서 전투기핵무기의 형태로 구현되어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벙커와 재래식 군대는 남아있고, 축구장 몇 개 분량의 면적을 단번에 날려버릴 수 있는 포병이 있음에도 보병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건 전투기와 핵무기, 포병의 가공할 위력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다양한 군사적 문제가 있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가령, 앞서 언급된 '반지의 제왕'조차 저자인 톨킨이 적당히 뭉뚱그리며 넘어가서 그렇지 해당 작품에서 언급되는 마법의 힘은 의외로 강력하다.[2] 하지만 그 누구도 반지의 제왕을 망작이라고 하진 않는데, 이는 작품 내에서 전략적 균형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핵을 보유한 강대국 간에 전략적 균형이 이뤄지는 것처럼, 일단 문명이 유지되는 판타지 속 국가 역시 전략적 균형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보는 편이 옳다. 분명 그 정도 수준의 대마도사는 드문 한편 양성도 매우 어려울 것이고, 어떤 국가에서 다른 국가에 대량학살마법을 쓰면 대량학살마법을 쓴 국가 역시 당연히 보복을 받을 테니 실질적으로는 마법의 힘이 제한되게 된다.

마법의 힘의 원리나 원천은 다들 설정이 제각각이기 때문에 여기선 따질 필요가 없고, 일반인도 노력해서 누구나 쓸 수 있는 힘인가 아닌가만 따지면 된다. 일단 누구나 마법을 배울 수 있는 세계에 떨어졌다면, 당연히 배우는 것이 좋을 것이다. 당신이 외국어와 외래 문자를 배울 수 있는 지능이 된다면, 문맹이 대부분일 전근대의 일반인보다는 유리할 공산이 크다.[3] 물론 이것도 학비를 부담할 수 있을때나 가능하다.

2.2. 신, 초자연적 인격체

신적 존재 역시 판타지에서 단골로 존재하는 소재이다. 당장 판타지의 걸작이라고 불리는 반지의 제왕에서 나오는 사우론조차 마이아로서 작중 일반인 기준에서는 신이나 다름 없는 존재이며, 판타지 RPG의 시초라 할 수 있는 D&D에서도 신과 종교는 중요한 소재이다.

초자연적 힘을 가진 존재가 실존한다면 당연히 그 눈치를 볼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이를 이용해서 마법의 밸런스를 잡은 창작물도 존재한다. 네이버 웹툰인 히어로메이커에서도 마법사는 중세 기사보다 강한 것[4]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그들의 협약[5]에 더해 마법사에 대한 성직자의 압도적 우위(마법봉쇄 성법)를 두어[6] 조지 마틴의 말로 대표되는 '마법 만능주의'를 차단하고 있으며, 국가간 전쟁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가 아닌 한 재래식 군대에 의해 이루어진다.

양판소를 위시한 현대 판타지에서 강력한 힘을 얻은 주인공이 신을 굴복시키는 경우가 많이 보인다. 하지만 이는 신의 힘을 과소평가한 경우라 할 수 있는데, 판타지는 물론, 현실 지구에서도 신의 권능으로 흔히 묘사되는 화산, 지진, 태풍, 쓰나미만 해도 기본 메가톤급 에너지를 내포하고 있으며, 이는 현대 과학으로도 해결이 불가능한 영역의 재앙이다. 현대 과학과 무관한 예를 들자면, 저승의 신의 존재는 곧 지옥의 증명이 된다. 이는 죽어서도 신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판타지의 다신교 세계관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전근대 신화라고 하면 당연 그리스 신화일 텐데, 그리스 신화에서 '신들에게 거역하는 것은 악행'이기 때문에 거의 대부분의 인간들이 비참한 결과를 맞는다. 예외는 포세이돈도 협박하고 케로베로스도 줘팬 헤라클레스와 고대 말기에 창작된 프쉬케 정도.

다만 다신교 세계관에서도 신들이 인간에게 수모를 당하는 것 자체는 빈번하다. 그리스 신화에서 아레스는 아킬레우스의 창에 옆구리가 뚫리기도 했고, 북유럽 신화에선 신들도 죽을 운명이며, 힌두교 신화에선 인드라도 깨달은 수행자에게 저주 받으면 털린다(...). 민담과 신화에서 저승사자를 속이거나 줘패서 쫓아내 죽지 않은 영웅 이야기도 한둘이 아니다. 신의 영역을 넘나드는 인간의 이야기가 양판소에서만 튀어나온 것도 아니며, 꼭 이야기 속 신의 권능을 현대과학으로 대응해서 코스믹 호러적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는 것.

또한, 신의 존재로 인해 가장 문제가 되는 것 중 하나로 사회 체제를 들 수 있다. 인간이 절대 저항하지 못하는 신이 있고, 그 신의 존재가 증명되었다고 가정한다면 자연히 인간은 그 신에게 종속되게 된다. 따라서 현실 지구와는 완전히 다르고, 현대인은 참 이해하기 힘든 사회 체제와 정치 구도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가령 현실 지구의 아메리카 대륙에선 유라시아 문명과의 접촉 전까진 인신공양 문화가 흔했다. 이러한 인신공양 문화는 아메리카 지역에 제대로 된 가축이 부재하였기에, 신을 위한 제물이 인간에서 정체된 결과였다. 현실 지구에서야 인신공양을 안 해도 별 재앙이 내리지 않고, 마침 유럽에서 돼지 같은 가축이 들여왔기에 식인 문화가 없어졌지만, 정말 인신공양을 받으면서 공양이 마음에 안 들면 신탁 등으로 따박따박 따져대거나 아예 재양을 내리는 신이 실존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현대인이 '같은 인격체를 죽이고 신에게 바치는 것은 야만적인 행위입니다.' 라고 해봐야 씨알도 안 먹힐 것이며, 오히려 신의 의지에 반하는 악질 분자로 여겨져 이단 판정을 받아 살해당할 수도 있다.

식인과 인신공양 의식의 예는 다소 극단적이다. 하지만 신이 실존하고 사회적으로 해당 신을 숭배하는 상황이라면, 굉장히 경직된 사회구조가 형성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진보와 개혁을 통한 구체제의 혁파는 곧 그 체제를 두고 보던 신의 의지를 거스르는 일이 되므로, 사회 전반이 굉장히 보수적일 가능성이 크다. 판타지에서는 교단 조직을 굉장히 부패한 조직으로 묘사하는 것이 무비판적으로 답습되는 클리셰[7]지만, 신이 있다면 지옥도 있을 수 있어, 오히려 일반적인 사람들보다 청렴할 가능성도 크고 그것이 자연스럽다. 대신, 현실 지구의 극단적인 율법학자, 광신도마냥 꽉 막혀서 말도 안 통할 것이다.

다만, 창작물에서는 신을 의도적으로 배제하는 경우가 많은데, 신이 대놓고 개입하기 시작하면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신을 배제하는 방법으로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현실 종교 차원으로 남겨두는 경우가 있고, 신에게도 약점이 있다는 식으로 제약을 거는 경우도 있으며, 유일신이라 해도 신이 하계에 관심이 없거나, 그냥 개입 자체를 하지 않는 것으로 묘사하기도 하며, 아예 주인공들이 타도해야 할 적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판타지에서 신을 다루는 가장 일반적인 묘사는 다신교적 세계관 아래 선과 악이 서로 경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면 '신들 사이의 협약 내지 견제'라는 이유로 신들이 가진 막대한 힘을 전개에서 상당히 지워버릴 수 있는 반면, 신을 대리하는 대리인이나 종교인들의 투쟁이라는 전개요소를 얻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상의 결론으로, 본 항목에서 전제하는 '전형적인 판타지물'에서의 신적 존재는 '존재하더라도 현실세계에 대한 개입이 적거나 매우 제한적인 존재'라고 생각할 수 있다. 세상사 꼬치꼬치 개입하는 신이 있으면 결과는 무조건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되기에, 본 문서는 신의 직접적인 영향력을 상당 부분 배제하는 것을 가정하여 서술한다.

2.3. 이종족

현실세계에서 고도의 지능과 문명을 지닌 종족은 호모 사피엔스 밖에 없지만 판타지 관련 창작물에선 전설속 이종족들도 많이 등장한다. 엘프오크가 가장 대표적인 예시일 것이다.

인간과 유사하거나 혹은 그 이상의 지능을 지닌 이종족들이 어울려서 사는 세계라면 종족차별 문제가 대두되고 있을 공산이 크다. 대표적인 예시로는 엘더스크롤 시리즈에서 등장하는 카짓이라는 수인 종족인데 그들은 대개 취급이 좋지 못하며 노골적으로 차별받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반대로 다른 종족들끼리 교배를 해 혼혈이 생겨난 모습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인간과 이종족간 유전적 차이가 크지 않는다면 하프엘프와 같은 혼혈들도 나타날 것이고 당신 역시도 이종족과 사랑에 빠진다면 그들과 가정을 꾸려 정착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물론 당신은 이종족의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인간의 사고방식을 포기하고 이종족의 사고방식대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물론 그 이전에 인간과 이종족 사이의 근본적인 사고방식의 차이로 인해 당신이 이종족과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더 높으며 사소한 오해도 큰 충돌로 번질 수도 있다. 그 대상이 특히 폭력적이고 호전적인 종족일 경우 당신의 목숨을 잃는 비극으로 결말을 맞이할 가능성이 높다. 후술하겠지만 신중하게 행동하면서 문화와 행동양식을 파악하고 환심을 사도록 노력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당신은 이종족이라는 새로운 변수 앞에 항상 신중히 행동하여야 할 것이다. 이세계에선 잡몹으로 취급받는 볼품없어보이는 종족 조차도 깔보고 무시해서는 안될 것이다. 당신이 간 세계에서는 작은 요정들 조차 사람들을 쉽게 죽일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고블린 슬레이어에서도 초보 모험가들이 고블린들을 잡몹 취급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다가 고블린들에 의해 무참하게 도륙당하는 상황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했다.

2.4. 여성의 문제

2.4.1. 성적 차이

여성은 그 신체적 특성 때문에 남성보다 생존에 불리하다. 특히 여성은 근력이 적고 체력이 약한데다가 유방이 있기 때문에 보호장구를 맞추는 것도 남성 대비 불리하며, 한달에 평균 5~7일의 기간동안 월경을 하므로 생리통 때문에 정상적인 활동이 어려울 수도 있음과 동시에 생존에 치명적인 피냄새를 흘리고 다닐 수 밖에 없다.

야생의 환경에서 피냄새를 흘리고 다닌다는 것은 굉장히 큰 패널티이다. 대부분의 육식동물들은 사냥감의 추적을 위해 발달된 후각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피냄새에는 민감한 편이다. 피를 흘린다는 것은 여러모로 정상적인 신체 상태가 아니라는 의미이기 때문에 피냄새를 따라가면 약해져 사냥하기 쉬운 사냥감을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인간처럼 피를 흘려가며 월경을 하는 포유류는 자연에서 희귀하고, 그런 동물들이라도 발정기가 따로 있어 월경을 하는 기간이 그리 길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반적인 여성의 평균 생리기간인 매달 5~7일의 기간을 환산하면 1년 중 많으면 3개월 가까이 해당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의미로 이는 전력에 치명적이다. 생리혈의 유무가 자연선택에 의한 것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최소한 인간처럼 피를 흘리며 월경을 일년 내내 꼬박꼬박 하는 동물은 포유류 중에서도 거의 없다.

또한 사회적 위생 상황에도 남성보다는 여성이 크게 영향을 받는다. 남성의 생식계는 물리적인 충격에 약하고, 여성보다는 오염에 강하다. 여성의 경우에는 기관이 신체 내부에 있으므로 외력이나 공격에는 강한 편이나, 병리에 약하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남성은 속옷을 안 입어도 당장은 문제가 없다.[8] 반면 여성은 질에서 분비되는 온갖 분비물의 처리를 위해서라도 팬티를 입는 편이 나으며, 가슴이 좀 있다면 스포츠 브라 정도는 있어야 한다.[9]

그나마 속옷은 어떻게든 없이 살 수 있다 해도, 생리대 문제는 확실히 여성을 괴롭힐 것이다. 현대적인 일회용 생리대는 펄프의 대량생산이 일반화된 20세기에 들어서나 대량생산되었고, 이전에는 면 생리대를 빨아서 썼다. 세탁기가 없는 시대라면 정말 괴롭기 짝이 없는 문제라 할 수 있는데다, 대기업의 다양한 기술이 접목된 일회용 생리대와 달리, 면 생리대는 기능 면에서도 한참 떨어진다. 그나마 반영구적인 생리컵을 제작할 수 있다면 상황이 훨씬 낫겠다만 훨씬 간단한 펄프 대량 제작 기술도 없는데 의료용 실리콘 제작 기술이 있을지는 다소 의문이다.

여성이 판타지 세계에 들어가게 될 경우 이런 상황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지만, 실제 창작물에서 이런 한계는 잘 묘사되지 않는다. 대부분 무시하거나, 비정상적인 마법의 존재를 도입해서 개연성을 박살내는 한이 있더라도 일단 판타지 세계관의 위생 수준을 상당히 높게 두는 편이다. 이는 이러한 위생적 한계가 피폐물이 아닐 바에야 남성향, 여성향 막론하고 영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남녀 가릴 것 없이 가녀린 팔로 대검을 휘두르거나 한다면 신체적 차이가 별 의미 없기도 하고.
남성향의 경우 대부분 주인공을 남자 주인공으로 두기 때문에 여성의 실질적 한계를 넣을 이유가 없는 한편, 남자 주인공의 하렘에 들어올 여성 등장인물들을 최대한 매력적으로 표현해야 하기 때문에 작중 현실을 개편한다. 여성들이 깔끔하게 묘사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색기담당 서비스신을 위해 아무리 생각해도 판타지 수준에서는 만들 수 없는 다양하고 아름다운 , 속옷, 장신구들을 마구 투입한다. 그나마, 녹턴 노벨즈 등에서 연재되는 에로 라이트 노벨에서 여성이 겪을 수 있는 온갖 성 문제를 자극적으로 다루는 경우도 존재하지만[10] 그래도 청결한 위생, 다양한 속옷은 포기하지 않는다.

2.4.2. 성범죄

여성은 성범죄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현저히 높다. 현대에도 치안 능력이 부족하거나 여성 인권이 전근대 사회에 머물러 있는 국가에서 연고 없는 여성을 '위험부담 적은 원나잇 스탠드 섹스파트너 A'로 취급하는 경우가 적잖다. 터키에서 강간살해당한 피파 바카의 사례가 이의 극단적 예시이며, 인도 역시 해당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하물며 중세 수준 가치관, 인권 의식을 가진 것으로 보는 판타지 세계관이라면 말할 나위가 없다. 현대인 여성의 대부분은 중세 수준 사회의 여성보다 신체적ㆍ정신적으로 약해보일 가능성이 높은데[11] 전근대 사회에서 잘 먹지 못 한다는 것은 대부분 건드려도 아무도 보호해주지 않는 빈곤층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성범죄는 만만한 대상을 상대로 더 잘 일어난다.

차라리 강간 당한 수준이라면 살아남을 수는 있다. 하지만 생식기 구조 때문에 여성은 남성보다 성병에 더 취약한 편이다. 남성의 생식기는 몸 밖에 툭 튀어나와 있는 구조라서 매독, 요도에 침입해 정착한 임질 같이 정말 끈질기고 더러운 성병이 아닌 한, 바로 씻어내면 대부분 어떻게든 처리가 된다. 하지만 여성은 생식기가 체내에 있기 때문에 헤집어 씻어내도 병원균을 제거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12] 거기에 더해 치명적인 문제로 여성은 임신이 가능하다. 최악의 경우 강간당해 성병에 걸리고 사생아를 임신당해 출산까지 해 버리는 참사가 발생할 수 있다. 이는 에이즈가 만연한 현대 개도국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노예제가 있는 국가라면 아예 씨받이가 되어 인생을 마감하게 될 수 있다.

사실 실제 유럽 중세 사회에서는 생각보다 이방인에 대한 성범죄율이 높은 편이 아니었다. 우선 종교의 영향이 말도 못하게 컸기 때문에 정욕을 부정한 것으로 보는 이들이 많았기도 하고, 그중에는 셀프 거세를 하는 사례도 있었을 정도#. 종교 나름이겠지만, 판타지 세계가 종교의 영향력이 큰 세계관이라면 이런 부분도 비슷할 것이고 만일 신성력 등이 실존한다면 그 세계 주민들은 더더욱 신의 징벌을 두려워할 것이다.

성범죄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봐도 무슨 병이 있을지 모를 낯선 외지 여자를 범하는 것보다는 일반 민가의 여성을 범하는 것이 훨씬 안전하게 느껴질 것이고, 실제 성범죄 사례도 이쪽이 월등히 높다. 프랑스의 시골에서는 19세기 초까지도 지역 유지쯤 되는 남자라면 마을 처녀를 겁탈한 경험을 떠벌리고 다녀도 체포도 안 될 정도로 이런 식의 면식범 성범죄가 만연했다. 무연고자를 쉬운 범행대상으로 생각하는 것은 공중위생이 기본적으로 정착된 현대의 사고방식이다.

하물며 그 대상이 현대의 화장품이나 세정제 등으로 흔치 않은 냄새를 풍긴다면 향료를 접하기 힘든 전근대 사회에서는 고위급 이물이라고 파악할 가능성도 높고, 이런 경우 범행을 저질렀다가 감당하지 못할 처벌을 받을 위험을 감수하기 보다는 차라리 도움을 주고 떡고물을 받아먹으려 할 가능성이 더 높다. 그러다 집도 절도 없는 개털이란 게 드러나면 그때부터는 끝이다.

여성 주인공을 두는 여성향 창작물은 거의 해당 한계를 무시한다. 위생 문제는 그렇다 쳐도 성범죄는 현실 여성들조차 두려워하기 때문에열심히 다뤄봐야 피폐물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설령 여주인공이 이러한 한계를 맞닥뜨리게 된다 해도 바로 주인공 보정으로 빠져나갈 수 있게 만들어둔다. 때문에 상당수 작가들은 백마 탄 왕자님이 나타나 여주인공을 구해주는 전개를 넣어두곤 한다. 아니면 전이 특전으로 강력한 무력 혹은 마력을 각성하거나.

2.4.3. 성차별

서양의 경우 살리카법을 무시하고 여군주, 여왕이 등장하여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고, 이것을 통해 당시 여성 인권이 높았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그러나 실제로 보면 오류가 많은 시각인데, 성별 이전에 '가문'과 '신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근세까지만 해도 신분제는 매우 강력하게 작동해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귀천상혼이 일반적이었다. 즉, 비슷한 신분의 남녀가 혼인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는 말이다.[13] 따라서 비슷한 격을 가진 가문끼리만 혼인하는 경우가 많았고 특히 통치권을 가진 대공가, 왕가는 더욱 그랬다. 성별 이전에 계승권이라는 신분제적 질서(왕, 귀족, 평민, 천민)와 가문의 질서(가문 내부 서열)가 훨씬 중시된 것이다. 결론적으로 급 낮은(신분이 낮은) 남성 계승권자에게 가문과 영지의 통치권을 넘겨주느니, 급 있는 여성 계승권자에게 상속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하여 통치권을 상속한 것이다.

동양 고려 사회의 경우, 대표적 등용제도인 음서에 사위와 외손자까지 포함되었다. 친가 외가간 상복 차별도 없었고, 시집살이조차 강제되지 않았다.[14] 거기에 더해 여성은 상속권, 그것도 성차별 없는 균등상속권을 가지고 있었다.[15] 물론 가문과 귀천상혼을 중시한 당대 가부장적 귀족사회의 특징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가문의 후광이든 뭐든 가정 내 여성의 지위가 마냥 낮지는 않았다고 볼 수 있다. 반면 신라와 달리 고려에서는 여성이 왕위에 오를 수 없었다.

서양과 동양의 사례에서 여성 지배자의 유무, 가정 내 여성의 위치, 여성의 관료사회 진출 유무, 사회에서의 여성의 위치는 동치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빅토리아 시대처럼 여왕과 같은 여성 지배자가 있음에도 사회 전반적인 여성의 위치가 개차반인 경우도 있는 반면, 고려와 같이 여성 지배자가 나오지 않고 여성은 관료사회에 진출하지 못해도 가정 내 여성의 위치나 사회에서의 여성의 위치가 제법 보장된 경우도 있다. 그래도 한가지 확실한 것은, 대다수의 전근대 사회에서 남성 우위적 성차별은 매우 일반적이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판타지물에서 성차별은 그다지 묘사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현실 기준으로, 과거는 물론이거니와 현대에도 일반적으로 여성은 싸우거나 힘쓰는 일과 거리가 멀다고 여겨지지만, 판타지물에서는 여전사, 여기사, 공주기사도 흔하고 고전적인 작품에서도 최소한 궁수, 성직자나 마법사 등으로 싸움에 같이 뛰어드는 여성 캐릭터는 많았다. 게다가 엘프의 경우 모계 사회로 여왕이 지배하는 모습이 그려지곤 한다.

3. 첫 접촉

만약 당신이 떨어진 곳이 인종차별이 심한 곳이거나 잘 모르는 외지인은 일단 죽이고 보는 곳이라면, 무엇을 할 여유도 가질 수 없을 것이므로 이런 설정은 배제한다. 물론 이런 전개를 채택하는 창작물이 없지는 않으며, 이세계로 가자마자 마물이나 몬스터의 습격을 받는 상황을 조성하는 창작물은 비교적 흔히 보이는 편이다. 이런 경우 주인공에게 강력한 특수능력을 부여하거나, 주인공을 도와주는 강력한 조력자를 등장시키는 것이 일반적이다.

노스 센티널 아일랜드와 같이 이방인 자체를 거부하는 경우, 십자군 전쟁이나 독소전쟁 같이 종교나 인종이 다르다 싶으면 일단 죽이고 보는 경우와 같은 아주 극단적 상황이 아니라면, 사실 인간은 '멀리서 온 손님'에게 관대한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인간을 포함한 사회성을 가진 동물은 사회를 형성할 수준의 관대함과 유연성을 가진 경우가 많으며,[16] 인간이 보이는 '접대의 관습' 역시 이에 기반한 일종의 본능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을 만나기 전에 꼭 그 사람의 성향을 관찰해 볼 필요가 있다. 우연히 선량한 사람을 만나 잘 지낸다면 좋겠지만, 예나 지금이나 치안이 좋지 않은 곳은 노상강도에 시달렸다. 문명의 황금기라던 고대 그리스에서도 여행길에는(=문명의 손길이 제대로 닿지 않는 곳에서는) 사소한 시비로 서로 죽고 죽이곤 했으며, 이러한 사회상은 오이디푸스, 테세우스, 헤라클레스 등의 그리스 영웅 이야기에서도 종종 그려진다.

당신의 차림새가 아무리 낯설어도 남루하지 않다거나, 남루하다 해도 혈색이 좋다거나 체격이 건장해서 얕보이지 않을 정도라면, 첫 접촉 시에는 인류의 보편적 법칙에 따라 만난 상대에게 호감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 말이 안 통해도 처음에는 손짓 발짓으로 어떻게든 의사소통을 시도하자. 대체로 어느 사회에서건 호감을 사는데 가장 좋은 방법은 선물을 주는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동전 한두 개, 혹은 단추 같은 것도 경우에 따라서는 진기한 물건이 될 수 있다. 특히 초콜릿이나 사탕 같은 간식거리 몇 개라도 가지고 있는 상태라면 이점이 크다.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으로 인해 설탕이 전 지구적으로 범람하기 전, , 조청, 설탕과 같은 단맛 나는 식품들은 왕후장상도 쉽게 못 먹는 고급 음식으로 치부되었기 때문이다.

또 실수를 저질러서 상대가 화내는 것을 막기 위해, 늘 신중하게 행동하며 함부로 돌아다니지 않는 것이 좋다. 궁금한 것이 있어도 친해지기 전에는 자제하고, 특히 뭐라도 돕겠다고 나대다가 해당 사회의 금기라도 어기게 된다면 큰일난다. 결론을 내리자면 그냥 눈치껏 하자.

"낯선 사람이지만 위험하지는 않은 것 같다."라고 받아들여지면 반 정도는 성공한 것이다. 상대 쪽에서도 의사소통을 바라고 그들 말을 가르쳐주려 할 것이므로, 목숨 걸고 언어를 배우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 대항해시대의 모험가들도 완전히 처음 보는 부족이라도 어떻게든 하다 보니 말을 알아듣게 되었다고 하니, 언어 문제에도 너무 절망하지는 말자. 다만 말이 안 통한다고 해서 지구에서의 바디랭귀지에 지나치게 의존한다면 이 또한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지구 내에서조차 V, 따봉 같이 똑같은 동작임에도 불구하고 지역과 문화권에 따라 완전히 상반되는 의미를 가진 바디랭귀지가 있다. 기술을 전파할 수 있을 정도로 고등한 의사소통이 가능해지려면 몇십 년 단위로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니 인내심이 최우선. 그리고 적극적으로 의사소통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글의 경우, 지구의 역사를 예시로 보자면 지배계층의 전유물일 가능성이 높으므로, 당신을 거둬준 인물이 지식인 계층이 아니라면 그냥 가르쳐주지는 않을 가능성이 크다. 당신이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현해야한다. 어떻게든 기회를 얻었다면, 당신이 떨어진 세계의 문자한자처럼 배우기 복잡한 것이 아니기만을 바라도록 하자.[17] 알파벳이나 아부기다 같이 표음문자 수준이라면 당신은 정말로 행운을 타고난 것이다. 아니더라도 긍정적으로 생각해라. 원래 당신이 쓰던 언어를 알고 있는 이세계인들이 있을 리 없으므로, 당신은 제법 강력한 비밀 언어를 갖추게 된 셈이다.[18]

아무것도 없이 알몸일 때 차원 이동될 수도 있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당신이 이 판타지 세계로 떨어질 때 가지고 있던 현대의 소지품들은 분명 있을 것이다. 학생이라면 메고 있던 가방, 교과서, 노트 등이 될 수도 있고, 직장인이라면 서류뭉치 같은 것들 말이다. 만약 흡연자라면 가지고 있던 라이터와 담배 등을 이용해 원주민들의 환심을 살 수도 있을 것이고 하다못해 지갑 속의 100원짜리 동전으로 원주민의 호기심을 끌 수도 있을 것이다. 빈 노트 몇 권과 펜이 있으면 더욱 완벽하다. 가볍고 질긴 종이는 그 자체만으로도 컬처쇼크에 가까우며, 잉크를 찍지 않아도 쓸 수 있는 펜은 마법이나 다름없다. 잘 이용하자.

달랑 옷만 걸치고 떨어진다고 해도, 현대의 의류는 중세시대의 최고급 장인이 정성들여 만든 것과 옷감의 질과 만듦새가 뒤떨어지지 않는다. 특히나 속옷 대용으로 걸치곤 하는 흰색 티셔츠는 면이 신축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경악을 불러일으키고도 남을 것이다. 현대인은 입다가 늘어나면 버리고 걸레 대용으로도 쓰는 민소매러닝만 해도 면사를 니트 가공하는, 당시 기준으로는 그야말로 미친 기술력이 필요했다. 굵어서 그 자체로 신축성을 확보하며 짜기도 쉬운 털실과 달리, 바늘귀에 넣어야 하는 얇은 실을 스웨터 짜듯 짜야 하기 때문이다. 여차하면 선물해 환심을 사도록 하자.

특히 이미 현대인의 필수품이 된 지 오래인 IT제품(스마트폰, 태블릿 PC, 노트북 등)을 가지고 있을 확률이 굉장히 높다. 주변에 기지국이 없으니 신호는 안 잡히겠지만 그 자체로도 훌륭한 도구가 된다. 게다가 미리 저장해놨던 전자책이나 웹 페이지 등으로 지식을 보충하거나, 중요한 정보를 카메라로 기록해두는 등 여러 가지 활용법이 있다.

스마트폰 등은 부피도 작아 활동에 딱히 지장을 주지도 않고 많은 양의 정보들을 저장하고 원할 때 열어볼 수 있어 엄청난 도움이 될 것이다. 배터리가 다 됐다고 버리지 말자. 보통 충전기로는 충전이 불가능하지만 요즘은 태양광 충전 기능을 가지고 있는 보조 배터리 등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4. 적응하기

이 판타지 세계가 지구의 전근대와 비슷한 문명 수준이라면, 현대 선진국에서 살아본 당신에게는 무척 쇼킹할 정도로 가난한 세계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전근대 세계는 6.25 전쟁 직후의 대한민국(876$)[19]보다 가난하다. 심지어 당시 기준으로 세계에서 제일 잘 사는 나라였던 산업혁명 직전의 영국의 1인당 GDP(1750년, 1600$)는, 현대 아프리카의 나이지리아(2020년, 5066$) 보다 낮다.

일단 당신이 입고 간 옷부터 오래 입을 수 있도록 잘 간수해야 한다. 가난함을 묘사하는 옛 말로 '헐벗고 굶주리다'라는 표현이 있는데, 말 그대로 가난하면 변변한 옷조차 못 입는 것이 흔했기 때문. 이 시대는 1년에 셔츠 한 벌 새로 만들어 입는 것만으로도 중산층 이상으로 간주되는 가난한 시대였다. 가난한 사람은 낡아서 버려진 옷을 다시 사서 입었고, 더 가난한 사람은 또 다시 팔린 옷을 꿰메서 입었다. 더 낡은 옷은 천조각으로 잘게 쪼개서 다른 옷을 기우는 데 썼고, 완전히 낡아서 천으로써 기능도 하기 힘든 것은 다시 풀어서 새 천을 만들거나 종이의 재료로 썼다. 가난하고 사정이 안 좋은 사람들은, 옷이나 이불의 천이 올 하나하나를 셀 수 있을 정도로 성긴 수준이기도 했다. 이러한 이유로 전근대의 옷들은 이상하게 부위가 많고 속옷과 겉옷이 층층히 나눠져 있다. 예를 들어 지금은 특정 직업이나 작업에서만 기능성을 위해 제한적으로 사용되는 장갑, 각반, 토시, 모자, 두건 등은 당시에는 생활 필수품으로 간주되었다. 왜냐고? 일단 옷의 보온 능력이 낮아서 겹겹이 껴입어야 체온을 유지할 수 있기도 했고, 피부에 닿아서 쉽게 더러워지는 부분들은 자주 바꿔야 하므로 싼 천으로 만들면서 세탁하기 쉽게 분리할 수 있게 하며, 좋은 천으로 만드는 겉옷은 더러워지지 않게 해서 세탁을 줄이려는 꼼수인 것이다. 옷의 끝단은 닳기가 쉽기에 장갑, 각반, 토시 등으로 보호한 것이고. 세제가 발달하지 않은 시대에 옷을 빨면 옷의 수명이 팍팍 줄었기 때문. 특히 비단옷은 드라이클리닝이 없던 시절이라 옷을 비단 부분만 떼어서 비단용 세제에 세탁한 다음 다시 바느질하던가, 아예 세탁을 안 하던가 였기 때문에 엄청난 품 혹은 비용이 들었다.#

거주 시설도 열악하다. 중세 유럽의 전형적인 농가 집안은 돌을 대강 쌓고 흙을 바른 조잡한 벽에 나무로 서까래를 세우고 짚을 얹은 수준이었다. 그리고 그런 집에서 가축들과 사람이 같이 살았다. 벽은 좀 힘센 사람이 발로 차면 그대로 무너지는 수준이었고, 우풍도 거의 막을 수 없으며 실내는 어두컴컴했다. 시골의 목가적인 풍경을 상상하게 만드는 통나무집도 사실 비교적 좋은 집이었다. 이런 곳에서 겨울에 살아남으려면 불을 항상 때야 했다.[20] 전근대의 평범하고 능력 없는 사람의 대표 직업처럼 여겨지는 나무꾼은 인류의 생존을 위해 연료를 베어오는 매우 중요한 일을 하는 직업이었던 것이다!

치안도 끔찍할 것이다. 판타지 게임에서 나오듯 마을에서 나가면 몬스터가 득실득실한 필드인 것은 현실의 전근대랑 그다지 다르지 않은 부분이다. 최소한의 법치나 문명은 마을이나 도시 안에서 기능하는 것이고, 마을을 나서면 짐승은 물론이고 산적 등의 무법자가 흔했다. 첫 접촉 부분에서 예시로 든 오이디푸스 이야기처럼, 길바닥은 곧 문명에서 벗어난 곳이었고, 이런 길에서는 순간 욱하고 살인을 저질러도 잘 안 잡혔다. 오이디푸스 말고도 전근대에 쓰인 기록들을 보면 그런 일은 너무 흔했다. 헤르메스 신이 도둑과 상인과 여행자의 신인 것은, 이 시대에는 저 셋이 문명을 벗어난 공간인 '길'에서 생활한다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었다. 또 유교에서 상인을 혐오한 것도 실제로 저 셋이 구분이 엄격하지 않았던 탓도 있다. 또 일본 에도 시대에는 '여행 동안에는 무슨 짓을 해도 괜찮다'라는 격언이 있었다. 들짐승도 절대적인 위협이었다. 조선 시대에 호환에 대한 두려움이 만연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또 자연의 영역을 인간들이 개척하는 동안에는, 동물들이 마을을 습격해서 마을이 쑥대밭이 되는 일도 흔했다. 곰이나 호랑이 같은 맹수가 영물로까지 여겨지며 숭배받은 것에는 이런 사정이 있다.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을 밖으로 평생 나가지 않거나, 나가더라도 매우 인근의 도시나 마을로 다니는 정도였다. 물론 종교적 순례자나 상인 등이 저런 점과 점 같이 떨어진 문명들을 연결했는데, 생존을 위해서 최소한 검, 활, 갑옷 등 무구를 갖추는 것이 기본이었다. 이러한 여행자들은 접대의 관습에 의해 어느 마을에 가나 대충 묵을 수는 있었고, 특히 부잣집은 나그네를 환대하는 것을 곧 위신과 직결되는 도덕적 의무로 간주했다. 접대의 관습 항목에도 나오는데, 지금이야 유목민들에게나 남은 관습이지만 원래는 정주민족들에게도 전세계적으로 나타는 관습이었다. 나그네를 박대하는 자는 천벌을 받아 마땅한 이들로 간주되었고, 조선에서는 수령이 일을 잘하느냐 마느냐의 기준에 과객을 대하는 마을의 태도가 포함되었다. 때문에 야박한 집은 수령에게 처벌당하기도 했다. 판타지 세계관의 모험가는 단순히 장르적 허용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좀 더 파고든다면, 상인도적과 권력자도 사실 별로 구분되지 않았다. 당장에 중세의 영주들도 그 유래를 따지면 지방에서 칼 좀 쓴다는 인간들이 뭉쳐서 성을 쌓고, 주변 주민들과 지나가던 사람들에게서 삥을 뜯는 그냥 강도떼였던 것들에게 왕이 공식적인 직위를 주면서 자기 싸울 때 힘을 보태라고 시킨 것이 유래다. 용병 역시 툭하면 강도 떼로 돌변하는 집단이었고, 강도질을 하고 다니는 용병들을 토벌하는 전투도 툭하면 일어났을 정도였다. 또 상인들도 무장을 하고 다니는 게 기본이었고, 사실 아무도 안 보는 외진 곳에서 만만한 다른 놈이 있으면 털어먹고 도시에 가선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그 훔친 물건을 팔아먹는 일이 흔했다. 이런 놈들이 바다에서 활동하는데, 이 놈들을 권력자가 장군으로 임명하면? 이게 말이나 되나 싶겠지만 그게 바로 사략선이다. 판타지에서 무장 안 한 상인들이 도적에게 삥뜯기는 것을 주인공이 구해주는 것은 클리셰 수준이지만, 사실 매체에 나오는 전업 도적, 전업 해적 등은 드물었고 상인이나 군대 등이 부업으로 도적질을 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심지어 중세가 한창 지난 1600년대 말에도 이탈리아에서 경찰에게 강도를 당했다는 여행 수기가 있을 정도(...)로 이런 현상은 흔하고 오래갔다.

식량 사정도 끔찍할 테니, 먹을 것을 가리는 식습관부터 무조건 바꿔야 한다. 농민 입장에서 고기는 구경도 어려울 테고, 몇몇 요리들(파스타, 약과 같은)은 귀족이나 양반 사대부 정도가 되어야 겨우 먹을 것이다. 향신료 같은 것 역시 구하기 어려울 테고 그냥 밥이나 빵 한 끼 제 때 먹을 만하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특히 농사가 중요한 동네에서 쇠고기를 먹는 것은 정말 사치이다. 육식을 금했던 일본이야 말할 것도 없다. 우리나라도 실제로는 많이 먹었지만 농사 때문에 쇠고기 먹기를 매우 꺼렸다. 거기에 더해 현대에 소고기를 즐길 수 있는 것도 많은 소들이 오로지 고기를 공급하기 위해 사육되고 있어서다. 전근대 사회에서 대부분의 가축은 축력 공급용이었기 때문에, 쇠고기를 먹기는 훨씬 어려울 테고 설령 먹더라도 질길 것이다. 이렇게 서민들 사이에서 부대끼며 살면서 쫄쫄 굶으면 현대 산업 문명의 힘에 경탄하며 감사히 아무거나 먹는 것으로 입맛이 자연히 바뀔 것이다.(...) 특정 성분에 알레르기가 있다면 그냥 왠지 시름시름 앓다 죽는 사람 1로 끝나는 수밖에 없다.

이런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은 단 하나, 즉 사람과 사람들의 유대였다. 말하자면 인맥. 시골 농가 같은 곳이라면 대부분의 사람이 서로 얼굴과 이름을 뻔히 알고 있으며, 서로를 돕지 않으면 가족 한 둘이 몰살당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그런 일이 두 세번만 반복되도 마을을 유지하기 힘들어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요약하자면, 현대인이 판타지 세계를 여행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인맥이다. 그리고 사회 환경에 대한 미칠 듯한 적응력이 필요하다. 또, 모든 능력을 동원해서 권력을 갖는 것이 핵심이다. 사실 대부분의 판타지 세계가 현 지구의 중세 정도의 사회 수준이나 기술 수준을 상정하니 당연하다.

5. 과연 현대인이 도움이 될 수 있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당신의 능력이나 떨어진 곳의 상황에 따라 다르다.

전근대인은 육체적으로야 현대인보다 키는 작아도 체력은 다부진 것이 일반적이었다. 프랑스 혁명군은 평균키가 164cm 에 불과했지만, 노숙해 가면서 하루에 30~40KM를 진군하는 속도를 수백일이나 유지했다. 현대에는 구르카족이 이와 같다.

하지만 지식으로 보면 현대인이 우월한 것은 사실이다. 현대인 천재론에서는 그걸 마구 까지만, 이세계물 항목에서는 또 이세계물이 에디소네이드(Edisonade) 장르와 맞닿아 있다고 서술하고 있는데, 이 중 실제 역사에서 일어난 쪽은 분명 에디소네이드 쪽이다. 제국주의 시절에 비서구를 탐험해본 서구인들은 (실제로 그들이 당시 서구 기준으로도 상당히 교육받은 인물이기는 하지만) 아아 이것은 증기기관이라는 것이다 이 미개한 나라에는 없는 것이지 비서구의 비발달된 상태를 보고 많은 충격을 받았으며, 반대로 비서구인들은 오옷 코쟁이 대단해! 서구인들을 식자 대접해 줬다. 전근대인들은 길이나 무게의 단위도 모르고, 날짜와 시간도 모르고 평생을 사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현대 한국인은 한국 바깥에 사는 동물도 이름과 모습을 아는 게 너무 당연하지만, 전근대인들은 그런 걸 볼 기회가 평생 없었다. 그나마 단위나 날짜는 지식인이나 도시인이라면 알 수도 있지만, 먼 나라의 동물은 귀족들도 평생 못 봤을 가능성이 크다. 중국 황제조차 기린을 데려가니 전설의 동물인 줄 알고 좋아했을 정도이지 않는가. 하다못해 코끼리나 기린 이야기만 해줘도 당신은 '우리가 모르는 세상의 수 많은 곳을 여행한 엄청난 여행가' 혹은 '말도 안되는 소리만 하는 허풍쟁이'(...)로 취급받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것이 당신이 미개한 전근대로 떨어졌을 때 그 사회를 바꾸는 영웅이 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제국주의 시대에 개인이 사회를 바꾼 경우는 거의 없다. 서양 열강이라는 든든한 빽을 가진 사람들이 비서구 국가에 갔을 때 많은 주목을 끌었을지언정, 그들이 그 나라를 바꿔버린 일은 없었고, 특히나 발명품 몇개로 식민지 국가를 열강급으로 만든 인물은 정말 없었다. 하물며 이세계물의 클리셰대로, 당신이 끈 떨어진 연처럼 판타지 세계에 떨어진다면 사회를 바꾸긴커녕 그냥 이민족 A 취급 받을 가능성이 더 높다.

또한, 여기 나오는 기술 중 대다수는 말은 간단하지만 실제로 개발하려면 당신이 아무리 전문지식이 있더라도 시행착오와 사고, 좌절을 겪을 것이라는 것을 명심할 것. 비협조적이거나 여건이 부족한 주변 환경이야 말할 것도 없다. 그러니까 아래 서술할 모든 내용은 대화가 통한다, 그리고 관습에도 익숙하다, 그리고 이동한 시대의 전염병이나 전쟁 등 각종 위험요소에서 벗어나 안전하다라는 전제가 있을 때 성립한다. 현실은 가혹하다. 질병은 당신에게도 위험할 수 있으나, 당신과 접촉한 판타지 세계의 사람들에게는 더 위험할 가능성이 높다. 현대 사회의 단순한 감기나 독감이 그곳에선 천연두급 전염병일 수도 있다. 실제로 아즈텍 인구의 90%를 없앤 것은 유럽인들이 옮긴 아즈텍인들이 겪은 적 없는 전염병이었다.

많은 양판소류에서는 주인공의 사소한 아이디어나 기술이 사회에 거대한 변혁을 일으키는 것처럼 써놓지만, 베블런과 같은 인류학자들에 따르면, 중요한 것은 관련 기술이 발견, 발명되었느냐가 아니라 기술과 사용 패턴이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의 여부이다. 당장에 한 예를 들어보자. 당신이 판타지 세계에서 전구/비행기를 발명한다면, "우리에게는 이미 라이트/플라이 마법이 있는데 이것이 무슨 쓸모가 있죠?"라는 말을 들을 가능성이 높다. 그럼 당신은 뭐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어쨌건 세금을 메길 수 있는 것이 될겁니다."?

당신이 아무리 먼치킨적 능력을 가졌더라도,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어 도착한 세계의 신적 존재와 대등한 능력을 가지고, 현실 조작을 하거나 사회 전체와 대적해도 홀로 박살내고 질서를 재편할 정도의 능력을 갖춘 것이 아닌 한, 인간은 사회적 상호부조가 있어야 하기에, 당신이 조금 잘났다고 세상에 거대한 충격을 줄 가능성은 0에 수렴한다.

또한 문명의 수준에 따라선 이 문서와 하위 문서들에 써 있는 내용들이 이미 진부한 것이거나, 참신하더라도 여러 현실적 요건 때문에 도입할 수 없는 것도 많을 것이다. 중세 성기(11세기~13세기) 유럽에선 이미 시장이나 화폐가 정착해 있지만, 조선의 경우 15세기에 세종대왕께서 강제로 도입하려 했음에도 백성의 반발로 포기하고 말았고, 동전이 화폐로 정착한 것은 17세기에서나 가능했다. 시장과 화폐는 장거리 교역이 가능할 정도의 잉여 생산물이 충분하고 그 가치 보증을 위한 귀금속이 충분해야 가능한데 조선에는 그 둘이 충족되지 못했던 것이다.

게다가 그냥 기술이 묻혀버리는 건 차라리 다행이고, 상상도 못한 상호작용으로 인해 부정적인 결과를 낳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치즈, 버터 등 유제품이 실제로 문제를 일으켰던 좋은 예다. 바이킹들이 유당 분해 효소가 상대적으로 적었던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우유를 선물했다가,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소화를 못해서 폭풍설사를 한 것을 바이킹들이 독극물을 준 것이라고 오해해서 공격당한 사례가 있다. 또 공장 제조업 역시, 실제로 산업 혁명 당시 영국에서 각종 방직 기계를 만든 사람들은 방직물 제조업자들에게 린치당해서 공장이 불타거나 떠돌이가 되는 불상사를 겪었다. 러다이트 운동을 알아두자. 옛날 사람은 결코 어리석은 인물이 아니다. 기술과 사회의 제한에 묶여있었을 뿐.

마지막으로 저작권의 사적 소유 인정은 극히 최근(20세기 중반)에 들어서 나온 것임을 염두에 둘 것. 만약 당신이 의 제조법을 발명한다면, 그것으로 부를 얻기 전에 먼저 지역의 유력자가 와서 좋은 말 몇 마디 해주고 제조법을 내놓으라고 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아니, 한 주방에서 일하면서 옆에서 본 주부 아줌마가(...) 따라하고 퍼트릴 가능성이 차라리 더 높다. 그것으로 돈을 벌 수도 없을 확률은 무한대에 수렴한다. 대부분의 사회에서 충격적인 발견이나 발명은 사회 전체의 노력으로 여겨지기 마련이고, 그걸로 돈을 벌려 한다면 주위 사람들의 미칠 듯한 눈총과 반발, 실력행사들을 받게 될 것이다. 저작권법이 없는 사회에서 오래지 않아 짝퉁들이 수도 없이 등장할 것이고, 그것을 방어할 수가 없을것이다. 실제로 통조림 발명가 '니콜라 아페르'(1750~1841)가 이런 꼴을 겪었는데, 그는 약 100년 가량 조국 프랑스에서 잊혀졌다.[21] 설사 특허가 있더라도 퍼커션 캡처럼 30년이나 보급이 늦춰진 경우처럼 구두쇠 같은 놈들이 특허권 말소될 때까지 채용을 안 하고 버티는 수도 있다.

지금도 러시아, 중국 등 중후진국에서는 짝퉁과 불법 복제가 횡행하고, 한국도 과거에 비하면 나아지긴 했지만 극히 최근에야 저작권에 대한 존중 문화가 자리잡았고 아직도 토렌트 등 불법 다운로드 기술은 건재하다. 하물며 옛날에는 더하면 더할 것이다.

하지만 상기했듯이, 사회를 바꾼다는 거창한 야망이 아니라 내 한몸 잘 보신하자는 정도로 움직인다면 이점이 충분히 있을 수 있다. 전근대는 교육은 커녕 문맹인 사람이 대부분이었고, 현대에는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이 한가득일 뿐더라 그냥 일반 상식 수준으로 알고 있는 지식도 전근대 사람들은 대부분 전혀 몰랐다. 농경 사회에서 '늙은 사람은 지혜롭다'는 인식을 가지게 된 것 자체가, 시간이 흐르며 직접 겪는 일 외에는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것을 잘 보여주는 사료는 다름 아닌 근대와 전근대가 충돌하는 시대의 문학들이다. 한국으로 치면 구한말~일제강점기의 문학들이 딱 그렇다. 중국으로 치면 좀 우스운 사례긴 해도(...) 아Q정전도 그 사례에 포함이 된다. 이 시대의 문학들은 도시에서 배우고 온 젊은이들이 시골 사람들을 미개인 취급하는데, 시골 사람들은 저 도시 사람에게 찍소리 못하는 묘사가 나온다. 한국 근대 문학만이 아니라, 캔터베리 이야기, 돈키호테 등 유럽의 근세 문학도 비슷하다. 이 두 작품에는 대학 나온 젊은이를 시골 사람들이 남녀노소할 것 없이 똑똑하다며 공경하는 장면이 나온다.

심지어 산업혁명 초기 서구에서도 비슷했다. 장 앙리 파브르의 경우 어린 시절 고향의 촌장이 학교 선생과 이발사를 겸했다고 자서전에 기록했다. 또 파브르의 고향 사람들은 성게를 보고 나무열매로 생각했다고 한다. 지식의 수준이 이렇게 별볼일 없었으니 직업의 분화나 전문화도 미비했다. 이 시대의 직업 기술은 교육을 오직 도제식으로 전수하는 것만 존재했기 때문에, 신기술의 개발이나 연구에 매우 무관심했고 기술의 발전도 느렸다.

대한민국의 정규 교육과정에 맞춰서 중학교 수학을 수료해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알고 있다면, 중세 서구 문명처럼 기하학을 존중하는 사회라면 당신은 대학교에 들어가기 충분한 수준의 교육을 받은 고급 인재로 취급받을 수 있다! 그러니 열심히 학력을 티내서 조금이라도 똑똑해 보이는 사람으로 보이게 노력하자.

5.1. 현실의 비슷한 사례: 에르난 코르테스

원활하지는 않았어도, 아시아와 아프리카, 유럽은 꾸준히 교류를 하고 있었다. 대표적인 것으로 실크로드가 있고, 한반도 기준으로도 신라 시대 부터 서역과의 교류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후한의 역사를 다루는 후한서에도 대진국(로마 제국)이라는 명칭이 거론된다. 거기에 더해 13세기에는 몽골 제국중동을 갈아마신 것도 모자라 동유럽까지 침공한 적도 있었다. 즉, 상당히 생소하긴 해도 당시 유럽인들에게 '동양'이라는 개념 자체는 있을 수밖에 없었고, 마르코 폴로동방견문록만 해도 원나라를 다룬 서적이었다.

149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서인도 제도를 발견하기 전까지, 아메리카(편의상 신대륙으로 서술)는 미지의 땅이었다. 실제로는 바이킹이 북아메리카에 진출했었고, 빈란드가 있었다고 하지만, 어디까지나 아이슬란드의 전설 수준으로 남아있었을 뿐,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편의상 구대륙으로 서술)에서는 전혀 그 사실이 알려지지 않았었다. 그 외에 베링 해협을 통해 축치인이누이트간 교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유물이 발굴되기도 했었지만[22], 축치인이 거주하는 축치 반도루스 차르국이 들어서고 나서야 러시아가 근처 지역을 복속시킨 수준이었다. 따라서 15세기 기준으로는 역시나 미개척 야만 지역으로 취급 받았다.

구대륙은 물론, 신대륙에도 다양한 원주민들이 존재하며 그들의 문화와 문명을 꽃피우고 살았다. 하지만 극히 일부의 민족을 제외하면 구대륙과 신대륙의 교류는 사실상 없었고, 교류가 있었다 해도 이미 그 흔적조차 없어졌거나, 당시 각 대륙의 주요 문명권에서 벗어난 지역에서 제한적으로 이루어진 수준이라 서로의 존재 자체를 모르던 상황이었다. 실제로도 구대륙인과 신대륙인은 '사람'이라는 카테고리만 같았지, 문화, 보유 자원, 기술 수준 모두가 달랐고, 대륙간 식생도 크게 차이가 있었다. 즉, 구대륙과 신대륙은 서로 '이세계'나 다를 바가 없었다는 것이다.

즉, 스페인의 아메리카 진출은 사실상 이세계 진출이나 다를 바 없는 상황이었다. 그 중에서 중요한 인물로 콩키스타도르 중에 한 명인 에르난 코르테스가 있는데, 이 사람이 처했던 상황과, 해낸 일은 현대 판타지에서 나오는 '성공한 이세계인'의 상징이라 할 수 있을 정도이다. 침략자라는 점을 빼고 보면, 에르난 코르테스는 정말 대단한 사람인데, 단순히 아즈텍 제국을 멸망시키고 중미를 정복한 정도가 아니라,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돼지를 포함한 가축을 보급하고, 철기를 도입했다. 가축의 사육은 식량(돼지), 노동력(말)과 직결되는 중요한 것이었고, 철기의 도입은 사실상 문화 혁명이나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선사시대를 분류하는 기본 지표가 도구의 재질인 것을 감안하면 철기의 도입만 해도 대단한 일을 한 것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코르테스는 자신이 지배하는 멕시코 지역에 기독교를 전파하며 식인과 인신공양을 없앴다. 전근대 사회에서 종교가 가지는 사회적 위치를 생각해 보았을 때, 에르난 코르테스는 완전히 한 문화권의 성향을 뿌리째 바꿔버린 것이다. 이게 코르테스가 멕시코에서 집권한 약 20여년간 발생한 일이다.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도 이렇게 빨리 사회를 바꾸진 못했다.[23]

에르난 코르테스의 성공에는 비결이 있었다. '기병', '톨레도 산 강철검'으로 대표되는 선진 무기들로 우세를 점했다. 콩키스타도르는 레콩키스타 당시 성장한 정예 병력이었으며, 전쟁과 생존의 프로들이었다. 기마술, 사격술은 기본이고, 자원과 도구만 있다면 즉석에서 무기를 만들어 활용할 능력이 있었으며, 그 자원을 찾아낼 능력 또한 있었다. 이의 예로, 신대륙에 진출한 콩키스타도르들은 화산을 찾아다니곤 했다는데, 이는 화약의 원료인 유황초석을 찾기 위해서였다. 심지어 테노치티틀란 공략 당시 배를 만들어 띄워 공격하기도 했는데, 이는 에르난 코르테스가 거느린 콩키스타도르들이 조선술에도 능했었다는 증거가 된다. 단순히 무기의 우위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 우위를 계속적으로 유지할 능력이 있었던 것이다.

에르난 코르테스는 용인술과 외교적 능력도 탁월했다. 슬픔의 밤 당시, 코르테스는 재기불능의 상황까지 몰렸다. 레콩키스타에서 살아남아 성장했던 휘하 콩키스타도르들도 학을 떼서, 틀락스칼라로 후퇴하는 것에 성공하자마자 베라크루스로 도망가자고 할 지경이었다. 이게 오툼바 전투의 대승 이후에도 이어진 분위기였으니 당시 콩키스타도르들이 얼마나 겁에 질렸는지 알 법하다. 그러나 코르테스는 부하들을 휘어잡아 이후 테노치티틀란을 공략하는 것에 성공한다. 또한, 슬픔의 밤을 겪고도 틀락스칼텍과의 동맹을 유지하는 것에 성공하였다. 물론 틀락스칼텍이 에르난 코르테스를 끝까지 지원한 것은 그들이 가진 아즈텍 제국에 대한 끝없는 분노와 증오 때문이긴 하였으나[24], 기록적인 패전 후에도 코르테스와 동맹을 유지했던 것은 분명 코르테스의 처신이 믿을 만 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성공한 후에도 코르테스는 신의를 지키려 노력했던 편으로, 틀락스칼텍은 어려운 선택으로 인한 달콤한 과실을 톡톡히 맛볼 수 있었다.

우직한 뚝심과 배짱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였다. 당시 콩키스타도르의 상당수는 높아봐야 입에 풀칠을 간신히 하는 하급 귀족이었으며, 그 외는 죄다 하류층이었다. 그렇다 보니 이들은 부와 성공에 대해 엄청난 갈망을 가지고 있었다. 카락 같은 범선 하나에 의지해[25] 개척된지 얼마 되지도 않은 대서양 항로를 아득바득 기어왔을 정도니, 그 배짱이 어느 정도였는지 상상하긴 어렵지 않다. 요즘도 그렇지만, 당시 시각으로 바다는 죽음의 장소나 다를 바 없었다. 세이렌이 뱃사람을 홀려 바다에 끌고 들어간다거나, 아예 미친 바다괴물이 범선을 부순다거나 하는 온갖 미신이 횡행했다. 오직 성공 하나만 바라보고 그런 지옥에 뛰어든 것이다.

한편, 정복에 성공한 이후에는 본국으로부터 인력의 지원이 지속적으로 왔다. 코르테스가 아무리 성공했어도, 스페인에서 지속적으로 인력이 들어온다는 메리트가 없었으면 정복자측이 피정복자의 문화에 녹아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또 유럽인들이 가져온 병균들도 이것에 한 몫 했다. 유럽산 질병은 지역에 따라서는 원주민 인구를 90% 나 줄여버렸고, 전파 속도 역시 유럽인들의 발보다도 빨라서 유럽인이 직접 발을 들여본 적 없는 마을과 도시들도 그 이전에 이미 유럽의 신질병으로 멸망한 경우도 흔했다. 실제로 바로 남쪽의 잉카 제국은 아즈텍에 비해서 훨씬 원주민 인구 비율이 컸고 스페인인의 지속적인 인구 유입도 적었던 결과, 아직도 페루 지역은 원주민 국가로써 정체성을 강하게 가지고 있다.

반면, 이 문서에서 상정하는 일반적인 현대인은 어떤가? 운동부족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은 당장 완력과 체력부터 걱정해야 한다. 고된 농사일, 혹은 군사 훈련에 찌들어 살던 중세, 근세 사람들에게 있어 대다수 현대인의 체력은 운동부족 도련님 이상이 되질 못한다. 콩키스타도르와 같은 냉병기 전투능력?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창작물 같은 경우, 미리 무도를 수련한 현대인을 상정하는 경우도 있는 듯 하지만, 중근세에 싸움으로만 밥 먹고 살던 군인들과 상대해서 잘 싸울 수 있을리 없다.

기술적 문제도 한 몫 한다. 물론 현대인들이 배운 것은 많기에 당시 사람들보다는 아는 것도 많고, 눈도 높은 것은 명약관화하다. 그러나, 현대인들의 경우, '철기를 쓰면 좋지', '화약은 정말 강하지', '기병은 근세까지 무적의 병종!' 같은 피상적 지식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앞서 콩키스타도르들이 한 것과 같은 '제대로 된 철기를 만드는 방법', '화약 배합법', '기마술, 가축의 번식 및 운용법' 같이 정말 이세계를 여행하는 것에 있어 필요한 실용적 지식과 기술은 하나도 없는 것이 일반적이다. 유관분야 전공자라도 중근세 시기에 확보할 수 있는 자원만 가지고 해내라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수 밖에 없다.

뚝심과 배짱 같은 정신무장도 문제가 된다. 오히려 생존 문제라면 이쪽이 정말로 중요하다. 극한 상황에서 살아남겠다는 의지를 잃지 않고 아득바득 살아나와 기적이 존재함을 선보인 경우는 결코 드물지 않다. 우발적으로 휩쓸린 현대인에게 이런 정신무장을 기대할 수는 없다.

결과적으로 보면, 이세계로 가서 그곳을 뒤집어 놓는 현대인은 의외로 실제 역사 사례에서 존재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에르난 코르테스는 그 시대의 철저히 준비된 현대인이었던 것이다. 또한 개인이 아니라 집단이었다는 점, 구세계와 연결이 지속되었다는 점 등의 요소가 있었고, 그러한 점이 없다고 가정되는 당신에게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게 어려운 일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6. 학문별 안내

판타지를 여행하는 현대인을 위한 학문별 안내
건설 기계공학 물리학 생산업 수학 화학
군사학 신학 예술 음식 의학

6.1. 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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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군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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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기계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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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물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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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생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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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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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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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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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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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0. 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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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1. 화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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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2. 상업

  • 장사를 한다면 복식부기 장부를 도입하는 것이 좋다. 장부의 핵심은 정확함이다. 요새야 다 컴퓨터로 처리해서 잘못 쓸 가능성이 무척 적지만, 복식부기의 차변과 대변은 기본적으로 단순 실수건, 누군가의 조작이건 오류를 쉽게 찾을 수 있다는 신뢰성이 가장 큰 장점이었다. 뿐만 아니라 자산, 비용, 수익, 자본, 부채로 나눈 계정과목으로 인해 자산의 변동이나 손익계산이 쉬워진다. 복식부기는 지금 봐도 어렵지만 옛날 사람들 기준으로도 상당히 어려웠던 것인지라 각국에서 독자적으로 개발된 것이 아니라 중세 초기 유대인들이 개발한 것이 세계적으로 퍼지고 점진적으로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 어차피 이세계로 간다면 현대의 세법이나 회계 기준은 무의미하므로 어려운 수준의 회계학은 필요 없고 학부생이 1학기 동안 배우는 회계원리 수준의 부기법으로도 충분하다. 거래의 8요소 조차 11~12세기에 개발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니, 회계원리 수준의 부기법도 중세적 세계에 도입한다면 혁신적인 시스템이 될 수 있다. 유대인처럼 상업에 이골이 난 종족이 없다면 아예 최초가 될 수도 있다.
  • 간댕이가 부었다면 군대나 용병대를 따라다니며 그들에게 보급물자를 파는 주보상인(酒保商人) 노릇을 하는 것도 좋다. 위험한 일이다보니 50배 정도의 폭리는 기본이었다. 물론 전쟁터를 따라다녀야 한다는 위험은 기본이요, 물건이 생산된 곳에서 군대가 있는 곳까지는 수송 거리도 어마어마해서 위험 부담이 아주 컸다. 게다가 너무 폭리를 붙였다가 병사들에게 흠씬 두드려 맞을 수도 있고, 따라다니는 군대에게 양심적인 가격으로 팔아 거래를 안정적으로 하게 된다 해도 반대로 해당 군대의 적에게 표적이 된다. 이득을 본다고 서로 싸우는 군대를 오고 가며 둘 다에게 거래를 텄다간 박쥐 같은 놈 취급을 받아 죽을 수도 있다.
  • 선도 매매 거래도 상업이 발달하지 않은 문명에서는 좋은 아이디어가 된다. 아직 물건이 완성되지 않아 가격을 확정할 수 없는 물건을 미리 사고팔기로 계약하는 것이다. 계약금만 미리 지불하고, 실제 매매는 물건이 나면 거래를 한다. 예를 들어서 농업 사회라면 당연히 곡물이 제일 좋은 대상. 흉년이 날지 풍년이 날지 모르는 밀밭을 한 단위로 해서 선도 매매하면, 계약한 가격보다 비싼 값어치의 밀이 나면 상인이 이득을 보고, 계약한 가격보다 낮은 값어치의 밀이 나면 농부가 이득을 보는 것이다. 선도 매매는 상업이 발전한 곳이라면 어디든 있었어서 바빌로니아의 기록에도 확인되지만, 조선은 정작 개항 이후 일본 상인들이 시작했다. 상업 발전의 수준차에 따라 큰 차이가 있는 것.
  • 작품 마다 다르긴 해도 골드라는 이름으로 금화가 기본 화폐로 운용되는 경우가 매우 많고, 이런 작품들은 금화들이 무슨 백원짜리 동전마냥 싸게싸게 돌아다니는 황당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금화가 이렇게 흔하게 돌아다니는 것치고는 금으로 된 장신구를 개나 소나 끼고 다니지는 않는 모순이 존재한다. 금이 흔해서 돌이니 다름 없는 무가치한 세상인건지, 아니면 주화로 만들기에 충분한 고가치인 물건인지 알 수가 없다. 아무튼 전자건 후자건 일단 금의 가격을 잘 알아보자. 화폐도 사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가격이 변동되며, 화폐의 재료는 화폐와 다른 상품으로써 다른 가격이 매겨진다. 이를 이용해서 같은 무게의 금이 같은 무게의 돈 가치보다 비싸다면 그 돈을 녹여서 차익을 얻을 수 있다. 예를 들어서 비슷한 크기와 무게의 금화가 액면가가 1골드, 5골드 , 10골드 같은 식으로 나뉘어 있다면 1골드 화폐는 싹 쓸어 챙겨서 녹이면 이득을 볼 가능성이 크다. 21세기 한국에서도 10원짜리 동전의 재료인 구리값이 오르면 10원 짜릴 싹 쓸어가서 녹이는 범죄가 존재했다. 금화가 백원짜리처럼 굴러다니는 세계관이 아니라, 평민들에게는 은화, 동화가 일상에서 쓰이는 세계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이런 세계는 반대로 동화가 액면가 대비 재료의 가치가 높을 가능성이 크다. 동, 즉 구리는 청동이나 황동 등으로 활용처가 많아서 수요가 많기 때문이다.
  • 도시 근처의 던전이나 마족 토벌 같은 것에서 어떤 전리품이 나오는지 잘 알아보자. 유니크 마법 장비 등 현물이 나오는지, 아니면 금화가 가득한 상자가 나오는가? 용사 파티 같은 것이 그런 곳을 토벌하면 그 전리품을 분명 도시로 처분하러 올 것이다. 그리고 그런 막대한 보상이 도시에 풀린다면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그 물품 가치가 폭락할 것이다. 반대로 금화가 쏟아진다면? 용사 파티들은 막대한 금화를 펑펑 써서 도시에서 장비나 포션 등을 살 것이다. 돈은 흔해져서 가치가 낮아지고 현물의 가격이 오른다. 마법 장비가 나오는 곳 근처 도시에는 금화를 많이 챙겨두고, 금화가 나오는 곳 근처에는 장비나 포션 등 현물을 많이 챙겨두자.
  • 당연히 혼자서는 장사를 절대 못한다. 현대 사회에야 치안도 발전하고 금융업도 발전하고 법치주의도 발전해서 개인사업이 가능하지만, 치안도 개판이고, 법치도 있는 둥 마는 둥하고, 돈을 빌리거나 모을 금융업도 발전하지 않은 전근대 사회에서는 혼자 장사했다가는 돈 떼먹히는거나 끔살 당하는 건 예삿일도 아니다. 위에서 언급한 주보상인 역시 혼자 했다간 끔살 당할 가능성이 급격하게 올라간다. 하여간 동업자 길드를 찾아서 속하든지, 능력이 된다면 직접 사람을 모아서 만들어야한다. 길드는 중세 유럽 특유의 동업자 조합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상인 동업자 조합은 상업 발전이 미약한 나라에서도 공통적으로 있을 정도로 필수 불가결한 집단이었다. 조선에서도 주막이 전국 공통으로 사용이 가능한 영수증 발행이 됐던 점이나, 보부상이 전국 조직이 있었던 것 역시 그러한 동업자 조합의 힘이다.
  • 국가 조직은 대강이나마 확고한데, 법치나 조세 제도가 잘 갖춰지지 않거나 그럴 행정 능력이 부족한 문명은 세상에 차고 넘쳤었다. 이런 곳은 징세청부업자가 으레 나타났는데, 현실 세계는 고대에부터 일찍이 전세계 곳곳에 있었다. 관료제가 일찍 확립된 동아시아에서도 반쯤 징세청부업자를 통해 재정을 확보한 경우가 존재했다. 떨어진 이세계에 징세청부업자가 이미 있을 수도 있고, 없으면 해당 세계의 위정자에게 선제안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물론 징세청부업자 문서에 보다시피 온 세상 사람들의 증오를 한몸에 받는 직종이라는 것은 감내하자. 당연하지만 징세청부업자들도 동업 조합을 만들어서 일했다.
  • 어음환어음도 중세에 상업이 발전하면서 발명되었다. 법치, 치안, 상업 발전과 상업 조직이 미약했던 시대에는 신용이 확보되지 않아 현금 거래가 제일 중시되었고 신용거래는 돈 떼먹힐지도 모르는 미친 짓이었다. 치안과 법치, 상업 조직이 어느 정도 조밀하게 발전하면 제한적인 범위에서 신용거래를 개시하면 상당히 편리한 거래가 가능해진다.
  • 은행은 중세에 나타나기에는 좀 이른 제도이다. 은행을 만든다면 돈을 갈퀴로 끌어모을 수 있다는 건[26] 중세 수준의 신용 거래로는 아직 무리다. 막말로 듣도 보도 못한 사람갑툭튀해서 돈을 맡아준다고 하면 누가 그걸 믿고 안심해서 보관할 수 있겠는가? 은행업을 하려면 그에 합당한 담보신용이 없으면 곤란하다. 그리고 자본 집중을 유도하고 기존 시장 질서를 재편하는 행위(즉 권력을 구성하는 행위)를 그냥 '아 그렇구나'하고 넘어갈 위정자는 없다 봐도 과언이 아니다. 당장에 중세에 돈이 급한 권력자들이 돈을 조달하는 방식은 돈을 마구 빌린 다음, 빌려준 놈들을 마녀나 이단으로 몰아서 싹다 죽이는 방식이었다. 위 각주에서 예시로 등장한 프란츠 1세는 황제였기에 가능했던 거고, 당신은 성전기사단마냥 잿더미가 될 가능성이 더 높다. 꼭 죽이지 않더라도 전근대 문명에서 권력자가 배째를 시전하면 돈을 돌려받기 어려워진다. 실제로 이거 때문에 망한 부자들이 유럽사에 많이 등장한다. 거기다 당신은 이세계에서 온 이방인인데, 그걸 꼬투리삼아 중세 유대인들처럼 재산을 몰수당하고 추방당할 수 있다.[27] 하지만 은행이 돌아가는 구조도 알아두면 좋다. 은행의 수익구조를 흔히 '돈 예금을 받고 낮은 이자를 붙여서 돌려주며, 예금된 돈을 남에게 높은 이자를 받고 빌려줘서 수익을 얻는다'라고 생각하는데[28], 사실 은행은 예금된 돈의 10% 내외만 은행 내에 보관하고 90%는 대출해서[29] 없는 돈을 만들어내서 돈을 번다. 은행이 예금자들에게 100두캇의 금화를 받아 보관하면, 그들의 보관 증서 혹은 통장에는 100두캇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은행이 실제 금화 중 10두캇만 남기고 90두캇을 빌려준다면 있는 현물 금화는 여전히 100두캇인데, 예금자들은 보관 증서를 이용해서 100두캇을 거래하고 다니고, 대출자들은 90두캇을 또 거래하고 다닌다. 없는 90두캇이 생겨난 것이다. 이렇게 '없는데 생긴 돈'을 다른 은행들에서도 똑같이 10%만 남기고 대출하는 것을 반복하면, 시장에 돌아다니는 돈은 현물 화폐에 비해서 10배 높아진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것은 경제학적으로 인플레이션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서 중요한 부분이다. 다만 금융업과 대부업이 성숙하기 전에 이런 짓을 했다가 들키기라도 하면 예금자들이 '은행놈이 우리 돈으로 사기를 친다!'하고 격분해서 우르르 돈을 찾으러 몰려와서 쫄딱 망하는 수가 있다. 은행 제도가 자리 잡은 것은 저런 짓을 하던 금융업자들이 권력자들에게 로비를 해서 법적인 특권을 보장받은 것이 시초이므로, 권력자들을 잘 설득해보자. 단, 이렇게 잘 자리잡은 은행은 실제 역사에서는 다름 아닌 영국이 시초인데, 이것도 영국 왕실은 의회의 견제 때문에 프랑스마냥 '돈 빌리고서 빌려준 놈들을 잡아죽이기'를 쓸 수 없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영국처럼 왕을 견제해줄 세력이 없으면 은행업이 자리잡는 건 꿈도 못 꿀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중세 유럽처럼 종교적인 이유로 이자를 받는 것을 금기시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으니 역사처럼 이를 회피할 편법[30]을 찾아야 할 것이다.

6.13. 기타

  • 시대를 바꾼 특정 기술의 발명에 대해 알면 그 기술로 인해 시대가 바뀔 때를 대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화약이 나오면 기사들과 친해지지 말고 사냥꾼들과 친해지자. 물론 사석포와 같은 공성병기 등으로 인해 화약의 도입은 군대가 빨랐지만, 개인화기인 총의 경우 재정 및 제식 등의 문제로 군대가 사냥꾼들보다 총의 도입이 늦었으며, 그에 따라 직업적으로 총을 오랜기간 다룬 사냥꾼을 경보병으로 활용하는 경우도 많았다.
  • 현대의 각종 게임에 익숙해진 현대인의 입장에서 유희거리가 부족할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현대에서 간단히 즐길수 있는 게임이나 도박을 보급하는 선택도 해봄직하다. 다른 특별한 도구가 필요없는 마피아 게임이나 야바위 같은 것도 좋고 카드 놀이나 주사위를 이용한 보드 게임을 만들어서 보급할 수도 있다.

7. 만약 차원 이동이 자유자재이거나, 국가 전체가 차원 이동한다면?

서로 다른 세계가 만나거나, 국가 전체가 다른 세계로 차원 이동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위에서 줄곧 설명했던 것과는 상황이 달라진다. 그냥 평범한 현대인 한 명이 이세계에 툭 떨어진다고 가정해보자. 위에서 설명했지만 얼마 안 가 죽을 확률이 매우 높다. 인류가 지구의 지배자가 된 것은 우수한 지능과 그를 바탕으로 도구를 발명하고 다수가 뭉쳐서 문명을 이룩하였기 때문이다. 사람 한 명 한 명은 맨몸으로는 웬만한 야생동물은 물론 한테도 밀릴 수 있을 정도로 약하다. 게다가 문명이 발달하면서 현대인은 크게 신체능력을 기를 필요가 없어지다보니까 단련이 되어있지가 않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당신이 갑자기 무인도나 사막 같은 오지에 조난당하면 살아남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 적어도 이런 상황에서는 지구에 있으니 외부에서 구조될 수 있다. 하지만 생판 다른 세계에 혼자 떨어지면 도움을 받을 수가 없다. 기를 쓰고 방법을 찾아 원래 세계로 돌아가든가, 그 세계에서 어떻게든 쭉 살든가, 아니면 그냥 죽든가 삼중택일해야 한다. 여기에 현실성을 부여한다면 당신은 높은 확률로 세 번째 선택을 강제로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국가나 세계 단위로 접촉한다면 인류가 수천 년 동안 이룬 문명과 기술력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는 소리다. 문명을 발전시키면서 만들어낸 무기들, 식량을 포함한 각종 자원들도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는 것. 자원과 비용이 따라준다면야 문제 없다. 게다가 군인이나 외교관 같은 이세계와 어떻게든 관련되는 인물이 아닌, 평범한 일반인들은 이쪽에 피해가 오지 않는 이상 평소대로 일하고 집에서 밥 먹고 잘 수 있다.

이러한 국가 전이물은 두 세계가 충돌해서 전쟁을 하게 되는 양상과 과정이 주된 내용이 된다. 이런 경우가 바로 《게이트 - 자위대. 그의 땅에서, 이처럼 싸우며》나 《별이 펄럭일 때》 같은 이세계 간의 세계 대전이 벌어지는 상황이다. 이럴 때 당신이 할 일은 간단하다. 당신은 그냥 국가만 믿어라. 그럼 국가가 알아서 한다.

물론 양쪽 간에 평화롭게 교류를 하는 식으로 묘사하는 판타지물도 있다. 《캅 크래프트》, 《SHUFFLE!》, 《변방의 외노자》, 《반지하 오크》, 《게임4판타지》, 《헌터명가 서자는 죽기 싫다》, 《■■을 위한 세계는 없다》, 《아웃브레이크 컴퍼니 ~모에하는 침략자~》가 이 경우. 이쪽도 마냥 평화로운 건 아니라서 각종 이세계에 관련된 범죄가 일어나고, 이세계의 난민들이 몰래 지구로 들어오고, 에로잡지 같은 게 밀수품으로 고가에 거래된다. 하지만 위에서 든 예시처럼 대놓고 전쟁하는 건 아니다. 나름 평화롭게 지낼 수 있고 해가 될 게 없다면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한 문명과 다른 문명이 충돌했을 때 어떤 식으로든 반드시 전쟁이 일어나게 된다. 지금도 세계 어디서는 분쟁이 끊이지 않는데 하물며 전혀 다른 세계 간에 아무런 충돌도 없이 사이좋게 지낼 수 있을 리 없다. 그렇기에 '왜 다들 사이좋게 지내지 않을까?'는 생각에 사로잡혀 격동의 시기에 한탄하며 무력한 자신을 채찍질하지 말아야 좋다.

7.1. 물자 부족으로 인한 너프

나라마다 다르다. 식량, 천연자원이 풍부하고, 군사력조차 세계 수위권에 드는 미국, 러시아, 중국, 인도 같은 국가들이라면 그냥 혼자서 무쌍을 찍어버릴 수 있다. 채산성 때문에 채굴을 포기한 자원이 있긴 하지만, 이세계 특수, 전쟁 특수가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현대 국가의 대부분이 식량, 전략 자원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완전한 자급자족은 사실상 불가능하며, 대표적으로 문제가 되는 자원은 석유, 천연가스이다. 화석연료는 현대 모든 산업의 근간이며, 식량 생산(비료)[31] 및 의학에 있어 절대적으로 관여하므로 화석연료가 없다면 인구를 유지하는 것조차 가능하지 않다. 영토가 넓고 토지가 비옥한 중국조차 북송 시기에 간신히 1억 인구를 돌파했으니 더 말할 나위가 없는 셈. 문제는 의미있는 생산량을 가진 산유국 자체가 얼마 없다. 석탄 부여잡고 석탄액화연료 만들어가며 아둥바둥해야 한다. 이것도 꽤 높은 수준의 과학기술, 시설설비능력이 필요하다.

여기서 선진국과 개도국의 차이가 나타나게 되는데, 선진국의 상당수는 비축유가 많고,[32] 군사력도 강하다. 거기에 더해 원자력 발전을 할 수 있는 국가가 많아 화석연료 부문을 제외하면 에너지 소요가 일어날 일은 적다. 따라서 대충 판단이 될 때까지 가드를 올리고 버틸 수 있으며, 석탄이 풍부한 나라라면 그 사이 석탄액화연료를 만들면 된다. 그러나 개도국은 그것 자체가 어렵다.

물론 단순 소총병으로 구성된 일개 사단이라도 이세계, 특히 현실 세계의 중세 기준이라면 충분한 오버파워이다.당연하지 자동소총에 분대당 경기관총 사수 한 명과 대전차미사일 사수 한 명이 붙는데 특히 일 년 안에 핵무기를 찍어낼 수 있는 상위 20~30위권 내의 선진국이라면 이세계 기준에서는 재앙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그것은 탄약과 폭약, 자원이 있을 때뿐이며, 탄약이 바닥나면 백병전에서 현대 보병이 중세 보병을 이기는 것은 매우 어렵다.

현대의 총검술 자체는 중세 무기술보다 그리 약하지는 않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무술로서의 완성도 차원의 이야기일 뿐이며. 현대 군대와 중세 군대의 군사 교리 차이 때문에 총검술이 압도적으로 불리하게 된다. 현대 군대의 군사 교리는 원거리 병기에 극단적으로 의존하는 체제이며, 백병전은 고립되어 보급이 불가능하고, 권총과 같은 부무장조차 앖는 최악의 상황에서 행하는 최후적 수단으로 치부한다. 반면 중세의 군대는 군사 교리의 기본이 백병전이며, 라인배틀로 대표되는 화승총의 시대에서조차 백병전이 극히 중시되었다.

따라서 중세의 기사와 병사의 돌격을 화기를 상실한 현대 군인이 이길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 군사 교리를 바꾸어 백병전에 특화된 정예 전투병을 양성해야 가능한데, 수 년의 시간으로 될 만한 일이 아니다. 현실의 인간도 산업의 발달로 인한 영양보충의 용이성으로 인해 체격은 점차 커졌지만 기계화로 인해 개인의 체력을 쓰는 업종이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바람에 완력과 체력은 꾸준히 감소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초반의 혼란상을 어떻게 해결하고, 이세계에서 자원을 얼마나 빨리 찾아내느냐가 관건이라 할 수 있다. 현대 국가의 체급 및 자원 수요량, 강력한 군사력 때문에 자원 매장 의심 지역이라면 일단 빼앗고 보는 제국주의적 발상이 대세를 이룰 가능성이 높다.

넘어간 이세계의 수준도 고려해야 한다. 현대에서 사용되는 천연자원이 아예 없거나, 있더라도 그 세계의 사람들의 기술 수준으로는 쓸모가 없다고 여겨져서 채취가 안되고 있을 가능성도 있고, 채취까지 하고 있더래도 현대 문명의 수요에는 턱 없이 부족한 수준으로 채취되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중세적 문명이라면 셋 중 하나는 반드시 해당된다고 생각하는게 자연스럽고, 이런 세계에서는 대체 자원을 찾을 때까지 지옥도를 봐야 한다.[33]

다만 포탈의 생성으로 세계 간 이동이 자유자제일 경우엔 이 항목의 내용은 예외가 될 가능성이 높다. 대신 이 경우는 포탈이 열린 나라와 다른 나라, 특히 강대국과의 그런 알력다툼 외교문제가 벌어질 수 있지만 이 역시 이 항목과는 관련이 없다. 대신 포탈의 크기와 수송 가능한 중량 등 포탈이 감당할 수 있는 수송량이 문제긴 하지만.

7.2. 세계들 사이의 밸런스

작가가 쓰기 나름이기 때문에 일부 작품에서는 이세계 역시 현대 국가와 비슷한 수준의 문명을 갖추고 있기도 하다. 현대 국가에서 과학으로 땜빵하는 걸 전부 마법으로 땜빵하는 식이다. 뭐든지 앞에다 '마법' 한 단어만 붙여놓고 나면 대충 완성. 아예 이세계에서도 총기도 있고 전차도 있고 하는 식으로 과학 문명을 가정하는 케이스도 있다.

극단적으로 가면 마법 때문에 총기가 BB탄총보다 못한 무기로 전락하는 세계관도 있는가 하면, 반대로 총기로 무쌍을 찍으며 대학살극을 벌이는 세계관도 있다. 화염 마법사가 화염방사기 수준의 화염만 만들 수 있는 세계관인가, 아니면 전술핵급 화염 마법을 날려대며 다닐 수 있는 세계관인가에 따라 밸런스가 천차만별로 바뀌게 된다. 과학 vs 마법 문서에서 언급하는 바와 같이, 마법이라는 것 자체가 현실에 없는 것이기에 작가의 마음대로 설정할 수 있다.

그렇기에 이러한 요소를 차용한 작품 같은 경우는 마법, 즉 설정으로 판타지 국가와 현대 국가의 밸런스를 맞추게 된다. 다만 이러한 매체들은 대개 현대-판타지 간에 밸런스가 개판인 경우가 많다. 단순히 국력으로만 따지면 중세 수준의 인구 규모를 지닌 국가는 무슨 수를 써도 현대 국가의 국력을 따라올 수 없는 만큼 몬스터이종족, 마법 같이 판타지 국가 쪽을 좀 더 버프하여 밸런스를 조정하기 위한 설정이 들어가게 되는데, 그 정도에 따라 밸런스가 들쭉날쭉하게 바뀌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당연히 현대 국가가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군사력도 군사력이지만 그 시점에서 해석되지 않은 현상을 미신이나 종교적 관점에서 해석하는 바람에 중세 국가들은 대체로 국가 조직이 종교미신에 영향을 크게 받았다. 따라서 수도에 핵탄두 한방 날려주고 신의 징벌이라고 말한다면 결국 굴복할 수밖에 없다. 상대가 핵무기조차 전혀 안 통하는 괴물이거나 모종의 이유로 화기전자기기가 전부 무력화되지 않는 이상 현대 국가가 딱히 불리한 점은 없다. 아니면 판타지 세계의 마법은 매우 강한데 의학 관련 마법과 과학 기술은 매우 뒤떨어진 세계일 경우 현대 국가가 생화학 무기들을 투발해 그 세계의 국가 기반 자체를 붕괴시키는 방향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러시아북한과 같은 인권은 전혀 신경 안쓰는 독재국가라면 거리낌없이 생화학 무기들을 사용할 것이다.

7.3. 약탈꾼/사기꾼/성범죄자/한탕주의자

판타지 세계와 우리가 사는 세상과 만난다면 분명 판타지/우리 쪽에서 서로의 문명 이기를 욕심내는 자들이 나올 것이다. 그래서 당신이나 주변인이라든지, 아니면 판타지 세계 쪽 사람들에게 대놓고 아니면 사기를 쳐서 거하게 한탕을 치려는 무뢰배들이 있다. 그러면 그들을 조심해라. 특히 마법이 통하는 세상이라면 더더욱 조심할 것. 분명 마법으로 협박해서 삥 뜯으려는 작자들이 나타난다. 이 설정을 차용한 작품의 예시로는 《아웃브레이크 컴퍼니 ~모에하는 침략자~》 등이 있다.

그런데, 현실의 근세에서 벌어진 제국주의 침략 사례에서도 보면 알 수 있듯, 이것은 판타지 세계로 넘어간 현대인, 현대 국가들이 더 거하게 벌일 가능성이 높다. 우리 입장에서 흔하고 값싼 물건들이 판타지 국가에서는 매우 귀하게 보일 수 있으므로,[34] 그것을 포장해서 귀한 이권과 바꿔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자원이라면 근세에 용도가 밝혀진 우라늄을 포함한 방사성 원소이다. 현대에 우라늄 함량이 높아 귀하게 여겨지는 피치블렌드의 경우, 과거에는 은광 막장에서 나오는 재수없는 쓰레기 광물 취급 받았다. 따라서 유리 같이 현대인에게는 값싸고 의미가 적지만, 판타지 세계 사람들에게는 귀한 물건을 여럿 안겨준 뒤, '폐광산 하나 주시죠? 어차피 은도 안 나오잖아요?' 식으로 사기 아닌 사기를 칠 수 있다.

7.4. 판타지 세계의 세대 갈등

세대차 문서를 보면 10년 전의 기술력도 심각한 세대차를 보이고, 심지어 고대 이집트 유적에서도 '요즘 애들 버릇없다'는 낙서가 발견될 정도로 세대차는 인류의 오랜 숙제였지만 판타지 세계는 최소 중세, 높게 쳐봐야 근대 중기다. 이런 상황에서 현대의 문물이 들어온다면 어마어마한 갈등이 생기지 않겠냐는 것이다.

극단적인 예시를 들자면, 〈롤랑의 노래〉를 암송하고 마상창시합을 하고 중세식 공성전을 겪던 부모 세대가, 이세계에서 들여온 스마트폰,컴퓨터의 중세 판타지 게임을 보면서 "저런 식으로 공성전을 한다고? 미친 소리!"라고 말하는 기가 막힌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런 상황에서 세대 갈등이 안 일어나는 게 이상할 지경이다. 1000년이나 차이나면 강산이 100번 더 현실적으로 생각한다면 판타지 세계에 떨어진 현대인이 일으킬 수 있는 변화는 현대인 천재론을 도입해도 근대를 여는 게 한계인데, 산업 혁명 문서와 구한말의 문학들을 읽어 봐도 알 수 있듯이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와중에 생겨난 세대 갈등도 만만하게 볼 수는 없다.

그렇지만 사람 사는 세상이 늘 그렇듯 이런 식의 갈등은 적당히 봉합되기 마련이다. 세대 갈등의 끝판왕 사례 중 하나로 뉴기니 섬을 들 수 있다. 뉴기니 섬의 내륙지방에 살던 원주민들은 골짜기 하나 넘어가면 언어의 어군이 달라질 정도로 험한 지형과 형편없는 인구 부양능력 탓에 신석기 시대 수준에서 문명의 발달이 멈춰있었다. 이들은 항공기가 상용화된 1930년대에 이르러서야 외부 문명세계와 접촉하게 되었는데, 그 시기를 살던 세대는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한 세대 간 격차를 경험하게 된다. 부모는 식물 줄기를 엮은 옷차림에 돌도끼 차고 다니며 신석기 시대를 살고 있는데[35] 문명세계로 나가서 근대교육을 받은 자식은 양복을 빼입고 항공기를 조종하는 20세기의 인간이 되었다. 자그마치 1만 년의 세대 격차가 생긴 것이다. 강산이 천번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기니 사회가 세대 갈등 때문에 파국을 맞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반대로 우리가 명절에 고향집 가듯이 20세기 인간이 된 자식세대들이 고향에 가서 신석기 스타일 전통행사에 참석하고, 지푸라기 옷 입고 다니는 부모님께 서양 일상복을 선물로 드리는 훈훈한 융합이 이루어졌다.

사실 한국도, 1945년 독립했을 때만 해도 조선 시대에서 그다지 발전하거나 변한 것이 없는 나라였다.[36] 하지만 21세기 한국은 이미 선진국으로 진입하는데 성공했다. 판타지 세계의 세대 갈등을 남일처럼 상상할 것이 아니라 직접 겪은 나라인 것이다. 하지만 그런 문명의 극심한 변화에서 생긴 세대 갈등을 남일처럼 쓰는 것처럼 와닿지 않는 것이 현실. 판타지 세계의 세대 갈등도 세대 교체 과정에서 어물쩡 넘어갈 가능성이 훨씬 크다.

8. 만약 판타지 세계의 사람이 지구에 떨어진다면?

판타지 세계의 사람 역시 이쪽으로 차원이동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역시 위에서 줄곧 설명했던 것과는 상황이 정반대로 달라진다. 중세 시대의 사람이 현대에 떨어진다고 생각하면 간단하다.[37]

이렇게 된다면 판타지 세계의 사람이 당황해서 뭔 짓을 할지도 모르니 일단은 안심시키는 것이 좋다. 상대가 진정했다면, 그 이상 가까이 하는 것보다는 격리시킨 뒤 그냥 전화로 경찰에 신고하면 된다. 격리하는 이유는 우리에 무해하나 상대에겐 치명적인, 혹은 상대에겐 무해하나 우리에겐 치명적인 병원체에 의해 감염이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신고할 땐 피부색도, 머리색도, 차림새도 이상한 사람이 못 알아듣는 말을 하며 날뛴다고 하면 일단 올 거다. 그 후 같이 동행해서 보고 들은 것 그대로 진술하면 잘 해결해 줄 것이다. 담당 공무원이 일을 대충하게 되면 아마 이계인에겐 불행한 처우가 내려질 수도 있지만 어쩔 수 없다. 신원이 불확실한 무국적자인데 괜히 보호해주면 나중에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 무엇보다 수틀리면 생물재해로 인해 장르가 아포칼립스나 메디컬 스릴러로 바뀐다.

많은 창작물에서는 이렇게 하는 대신, 자기가 그 사람을 떠맡게 된다. 그냥 처음부터 숨기거나, 경찰에 넘기려고 했다가 결국 넘기지 못하고 어찌저찌 자기가 맡거나, 혹은 아예 정부가 자기한테 떠넘기거나 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혹시라도 이렇게 되면 일단 그 사람이 누군지, 어떻게 왔는지 알아내고, 그 후에 차차 우리가 쓰는 문물 같은 걸 가르쳐주면 된다. 현대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일단 신분을 만드는 것이다. 적절한 신분 없이는, 특히 모든 국민에게 13자리 일련번호에 지문날인까지 시키는 대한민국에서는 불분명한 신원으로는 사회활동이 거의 불가능하다시피 하다. 해당 인물이 어려보인다면 한국의 국적법상 대한민국에서 출생한 것으로 간주되어 한국인의 신분을 가지게 되기 때문에 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지만, 성인이라면 꽤나 복잡해진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간단한 방법은 한국인과 결혼하는 방법이다. 아마 그 혹은 그녀는 이세계인과 첫 만남을 하고 가장 큰 점점을 가졌을 당신의 (법적인) 배우자가 될 수도 있다.

다만 이런 경우는 꽤나 난감할 수도 있는데 이쪽은 대량으로 도시 전체, 또는 국가 전체가 우리 쪽으로 왔다는 건데 이럴 때도 당신이 할 일은 간단하다. 당신은 그냥 국가나 UN,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만 믿어라. 그럼 그들이 알아서 한다. 물론 당신이 공무원이라거나 한다면 월화수목금금금 확정이다. 뭐 어차피 실제로 일어나지도 않을 일이지만.

그리고 만약 판타지 세계에서 건너온 사람이 우리 세계에서 우주적 존재에 버금가는 권능을 발현하는 것이 가능한 경우, 인공지능 문서에서 초지능 AI가 등장하면 인류의 운명은 초지능 AI의 손에 달리게 된다는 말처럼 우리 세계의 운명은 그 사람의 손에 달리게 될 수도 있다. 물론 이건 이세계물에서 흔히 나오는 현대인 한 명이 이계에 가서 치트 능력으로 지식을 퍼트려 세계를 바꾸는 것과 별 차이가 없는 가정이라 확률이 거의 없다. 게다가 초지능 AI는 정확한 기간은 알 수 없지만 미래에는 반드시 등장할 것이라고 학자들이 긍정이라도 하지만 우주적 존재의 존재 여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9. 결론

그나마 여기에 기재한 방법들은 현실적인 여건이나 기반 기술들을 무시한 굉장히 단편화한 서술이고, 조금만 더 현실적으로 생각해도 불가능한 일이 더 많다. 과거에 있던 수많은 천재들이 현실적인 벽에 가로막혀 단 한 줄 이름조차 못 남겼음을 상기하자. 그들과 같은 수준의 문명에 떨어진다면 문명의 이기에 대부분의 판단을 기대던 당신은 이들과의 머리싸움에서 밀릴 가능성이 높다. 민주주의 및 태양 중심의 지동설이 대두한 뒤 인정받기 위해 행성들의 궤도를 계산해 수학적 모델을 발전시키고 사람들을 설득하기까지 약 2000년 가까운 세월이 걸렸다.

게다가, 현대 대한민국의 평균적인 중산층 가정이 누리는 각종 생활수준을 따져보면 중세 귀족보다도 나은 점이 많다. 아니, 중세 유럽까지 갈 것도 없이 당장 193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채만식 작 《태평천하》를 봐도 등장인물 중 한 명인 윤직원 영감은 2010년대로 치면 수십억, 수백억쯤 되는 돈을 우습게 주무르는, 당대 서울 장안에서 내로라하는 갑부임에도 불구하고 자가용 자동차도 없을 뿐더러 휴대 전화는커녕 일반 집전화도 없고,[38] 심지어 신문 구독조차 하지 않는다(그가 지독한 수전노임을 감안해야겠지만). 역시 3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심훈 作 《상록수》를 보면 강기천이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내용이 있는데, 30년대 당시 자전거는 지금으로 치면 고급 승용차에 맞먹는 사치품이었다. 지금은 누구나 갖고 다니는 휴대 전화조차 80년대까지만 해도 재벌이나 장, 차관급 고위 공직자의 전유물이다시피 했고 일반 서민에게는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었다. 단적으로 말해서 1000년 전의 고려 노동자가 지금 한국의 노동자를 보면 아마 "어느 나라 왕이세요?" 하고 물을 것이다.

의학으로 보면 더 심하다. 전근대의 평균 수명이 불과 30~40세였다는 것은 사람이 일찍 늙었다는 뜻이 아니다. 고대, 중세에도 60은 되어야 늙은이 취급을 받았고 30~40세는 한창 젊은 청중년 취급을 받았다. 평균 수명이 30~40 정도였다는 것은 살아가는 과정에서 (지금은 상상조차 하기 힘들 정도로) 쉽고 어이없이 죽는 일이 많았다는 뜻이다[39].. 이를테면 추운 겨울에 아침 일찍 일어나는 생활 패턴에 적응하지 못해서 감기에 걸리고 죽는 것도 충분한 사망사유였으며, 심지어 추운 겨울에 똥싸다가 뇌혈관이 터져 죽는 일[40], 오랫 동안 굶주리다가 밥을 오래간만에 왕창 먹었더니 위경련이 일어나 죽는 일[41]도 존재했다. 지금은 인터넷에서 '무지막지 아픈 병이라더라' 하는 이야깃거리로 끝나고 죽을 일은 별로 없는 요로결석도 전근대에 걸렸다면 그대로 죽는다. 흔하고 흔해빠져서 매 여름마다 뉴스가 되지만 죽는 사람은 없는 식중독도 대량 사망으로 이어졌다. 현대에는 암이 사망 원인의 상당 수를 차지하지만, 전근대에는 암 걸릴 나이가 되기도 전에 다른 이유로 죽어서 암으로 죽는 사람이 드물 정도였다.

쓸데없는 소란에 휘말리는 것보다, 주인공 보정을 받지 못한 능력이나 지식도 별 볼 일 없는 일반인으로서 사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일단 귀족이 되었다는 것은 그 시대에 가서 권력과 재력을 어느 정도 고루 갖추었을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 현대 시대의 삶과 비교하면 스마트폰도 없고 자전거, 자동차 등 현대 문물의 편리함이 없다는 것은 불편하겠으나 그것은 자기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 그 시대의 모든 인간이 다 해당되는 것이기 때문에 상대적인 불편함[42]은 없을 것이고 그렇다면 나름대로 그 시대에서 살기에는 우월감도 가지고 다수 서민들보다 생활에도 편리함을 느끼면서 잘 살 수 있다. 판타지 세계에 떨어진 상황을 가정하여 어차피 21세기 현대와는 다른 삶을 살아야 하는 상황이라면 그 안에서 그나마 최선의 시나리오긴 하다.

결론적으로 이세계물을 현실적으로 따져볼수록 우리가 중 · 고등학교 시절에 배웠던, 지금은 쓸데없다 여기고 다 잊어버린 공부 내용들이 실은 선인들의 노력을 거쳐 탄생한 인류 역사상의 지식을 농축한 정수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또한 이러한 것들을 거쳐 탄생한 현대 인류사회를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볼 만도 하다.

사실 당연히 판타지라면 모험과 전투인데 평범하게 현대 생활을 하는 일반인이 할 만한 일이 아니다. 위에서 언급한 여러가지 지식들이 뭉쳐 문명을 만들어낸 결과, 인류의 삶이 편안해진 동시에 인간 개개인의 능력은 상대적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전근대인과 현대인의 평균적인 신체 능력 차이가 제법 크다. 평범한 일반인, 아니 운동신경이나 신체적 스펙이 월등히 좋은 사람이라도 갑자기 검 들고 신체적으로 인간보다 월등한 맹수를 뭉텅뭉텅 썰 리가 있나? 물론 판타지 세계가 우리 행성보다 중력이 낮거나,[43] 슈퍼맨처럼 황색 태양이 진정한 지구인의 힘을 억제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런 건 논외.

전투 부분을 빼더라도 여행을 하려면 커뮤니케이션이 있어야 한다. 말이 안 통한다면 동료를 만들 수도 없고 물건을 살 수도 없으며, 무엇보다 마을에도 못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모험이고 나발이고 떨어진 다음에 몇 년은 언어와 문자를 익히는데 주력하자. 언어의 차이는 현실에서도 꽤나 발목을 잡는 요소인데 하물며 서로 다른 세계 간에야 언어와 문자가 똑같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다수의 판타지물에서는 세계관에서 언어가 자동으로 번역되거나, 자기도 모르게 그 세계의 언어로 말할 수 있게 되는 식의 묘사가 잘 나온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당연히 공부는 필수다.

정말 아주 드물게 자신이 목숨을 건 실전을 여러 번 겪은 군인이나 용병 출신이고, 서바이벌 기술과 체술 등에 엄청난 조예가 있으며, 인문학적인 소질도 있어서 문자와 언어를 쉽게 익혔더라도 웬만하면 그냥 위험한 일은 안 해야 좋다. 아무리 집에 돌아가는 길을 찾고 싶더라도 직접 무기들며 모험하기보단, 시간이 오래 걸려도 높은 자리에 오른 뒤 아랫사람이 찾게 시켜야 효율/안전 면에서 좋을 것이다.

다만 이것도 어디까지나 인간이 몬스터보다 세가 클 때고, 이종족이나 몬스터 등이 완전히 인간을 압박하는 암흑시대라면 이야기가 또 다르다. 예컨데 《베르세르크》 같은 다크 판타지라면 생존 자체가 최우선 목표일 것이다. 그런 극단적인 세상에 떨어졌거나, MEMORIZE환생좌 같은 상태창이 지배하는 세상에 떨어졌다면 위의 문단은 그다지 쓸모가 없다.[44]

종합하면 이계에서 대단한 인물이 되려면 이계로 넘어가기 전부터 신에 버금가는 능력자인 상태에서 온전히 이계로 넘어가거나 이계로 넘어간 뒤에 신에 버금가는 능력을 얻게 되는 극한의 주인공 보정이 필요하다. 헌데 전자의 경우는 현실에서 신에 버금가는 능력을 가진 인간이 존재할 수가 없으니 처음부터 불가능하고, 후자의 경우는 가능성이 너무나도 막연하며 자칫 잘못되면 죽음보다 끔찍한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다. 그런고로 만약 갑자기 눈앞에 이계로 통하는 포탈이 열려도 자신이 방금 막 살인 강간 방화 등 중범죄 세트를 저질러 남은 인생이 캄캄하거나, 반대로 그런 범죄에 희생되기 직전이거나 하지 않은이상 그냥 무시하고 원래 세계에서 사는 편이 훨씬 낫다. 인권, 치안, 복지, 인프라 등등이 전부 막장인 제2세계제3세계의 어떤 막장 국가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면 더욱 그렇다. 물론 자신이 안락과 평온 따위 상관없는 모험주의자라면... 행운을 빈다. 물론 이마저도 현실보단 낫다고 할 정도라면 더 이상 말은 않겠다.

10. 관련 문서



[1] 읽다 보면 서양 판타지가 아니라 그냥 현대인이 중세 시대 어느 국가에 떨어졌을 때의 상황이나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이는 대부분의 서양 판타지물이 중세 시대 수준의 세계를 배경으로 하기 때문이다.[2] 참조. 그 외 간달프 문서를 참조해도 좋다.[3] 그리고 만약 마법의 원리가 과학과 비슷하다면, 기존 과학 지식으로도 쉽게 배울 가능성이 높다.[4] 사실 해당 작품에는 한국 양판소에는 흔해 빠진 '검기를 쓰는 소드 마스터'가 없다. 오히려 극초반에 클리셰까기 식으로 언급될 정도.[5] 마법사는 인간 사이에서 벌어지는 전쟁에 개입하지 않는다.[6] 여기에 성직자를 독점하는 성국은 타 국가 분쟁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설정을 넣어 밸런스를 유지한다.[7] 사실 이것은 한국형 판타지에서 사회 비판적인 요소가 들어가면서, 현실의 종교 비판이 투영되어 생긴 것에 가깝다. 서구 판타지의 원조인 D&D에서는 사제나 성기사는 교리를 안 지키면 능력에 제약이 생기기 때문에 어길래야 어길 수가 없다.[8] 보통 남성은 팬티민소매러닝만 갖추어 입는데, 사각팬티는 사실상 속바지나 다를 바 없고, 민소매러닝 역시 땀이나 정전기 때문에 겉옷이 몸에 들러붙는 것을 위해 입을 뿐, 안 입어도 그만이다.[9] 1400년에도 브래지어가 있었다고 한다. 조선일보 기사 출처.[10] 여고생을 여주인공으로 설정한 후, 매춘부로 만들어 허리가 빠지게 굴리는 'JK 하루는 이세계에서 창부가 되었다'가 대표적이다.[11] 전근대인들은 여자라고 해도 집안일을 기계 없이 몸으로 전부 때워야 하는 형편상 현대인보다 근육도 많고 훨씬 튼튼한 편이다. 반면 가냘프고 날씬한 몸매가 미로 여겨지는 현대 사회의 통념상 웬만한 여성들은 잘 먹지 못한 나약한 사람이라고 여겨질 가능성이 높다.[12] 헬스경향 기사 출처.[13] 한반도의 경우, 고려시대만 해도 양천교혼(양인과 노비의 혼인)은 엄격히 금지되었다. 노비종모법이 시행된 시기는 조선 세종 시기인데, 이것도 원칙적으로는 양천교혼을 금했지만 양인과 천민이 결혼하는 경우가 증가하는 등, 사회상이 바뀌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시행한 것이다. 또한 서얼 차별도 있어서, 이론상 흙수저에 똥수저라도 양인이면 과거 문과 응시가 가능했지만, 명문가 출신 금수저라도 서얼이면 과거 문과 응시가 절대 불가했다. 현대의 오해가 아니라, 신분 차이가 있는 혼인을 국가 법규를 통해 제재한 경우가 정말로 빈번했던 것이다.[14]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한국문화사 > 01권 혼인과 연애의 풍속도 > 제2장 혼인의 다원성과 국제성 > 2. 혼인 풍속과 혼인 의례 > 시집에 가지 않는 여자 출처.[15]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사료로 본 한국사 > 시대별 > 고려 시대 > 사회 > 혼인과 여성의 지위 > 균등 상속의 관습 출처.[16] 벌목 곤충이 대표적이다. 여왕이 건재할 경우 집단이 나뉘어 전쟁을 하기도 하지만, 여왕을 잃은 쪽이 다른 집단에 머리를 숙이고 들어가는 경우도 빈번하다. 양봉업자들이 이를 이용해 분봉하거나 합봉하여 더 큰 이윤을 낸다.[17] 기본이 3000자 이상인데다(실제로 중화민국, 중공 쪽에서는 기본적으로 3천 자는 외우고 다닌다. 민국이 4천, 중공이 3천) 먼 과거에는 지금과 자형이 달랐다. 갑골문과 지금의 한자를 생각해 보자.[18] 언어는 그 특성상 규칙성이 있기 때문에 해독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19] 2011년 기준 달러 환율로 환산한 수치로, 당대 기준으로는 두자릿수의 1인당 GDP였다.[20] 고대 로마시대에는 독일 지역 정도도 춥다고 생각했고, 중세가 되어도 동유럽에서 견딜 만한 정도로 추운 지역은 독일과 발트해 부근 뿐이었다. 덕분에 동방식민운동으로 엘베강 동쪽에 정착한 독일인들은 엘베강과 동프로이센을 잇는 곳에선 원주민을 대체할 정도로 정착했지만 내륙지역에는 듬성듬성 들어오게 되었다.[21] 출처: 《워 사이언티스트》, 토머스 J. 크롬웰, p147-157)[22] Archaeological Institute of America(미국 고고학 연구소 AIA) 산하 잡지 ARCHAEOLOGY 기사 Evidence of Pre-Columbus Trade Found in Alaska House(알래스카 집터에서 콜럼버스 이전 교역의 증거가 발견되다) 출처.[23] 다만 식인제의를 할 수 있는 것은 군사력을 가진 귀족과 사제 계층만의 일이었다는 점도 고려해야한다. 대규모 식인제의가 가능했던 아즈텍은 멸망했고, 나머지 소국들도 코르테스와 이후 누에바 에스파냐 정부에게 복속하거나 동맹을 맺어야했던 상황에서 식인제의는 유지될 수 없었다. 민간에서의 아즈텍 신앙은 백여년 넘게 유지되었다.[24] 틀락스칼텍의 전투력 자체는 약한 편이 결코 아니라서 아즈텍과의 꽃 전쟁 자체는 종종 이겼다. 그러나 꽃 전쟁 자체가 제의를 명분삼은 제한전이었기 때문에 틀락스칼텍이 이길수 있었던 것으로, 프랑스신성 로마 제국의 인구가 1,500만명을 간신히 넘던 1500년대에, 추정인구 최소 7만, 최대 20~30만 이상의 대도시인 테노치티틀란을 가지고 있던 아즈텍 제국을 틀락스칼텍이 전면전으로 이길 가능성은 희박했다. 아즈텍은 국력을 무기로 주변 국가에 공물과 꽃 전쟁을 강요하였고, 그 결과 메소아메리카의 공공의 적이 되었다.[25] 정말 커 봐야 배수량 1000톤 내외의 범선이다.[26] 오스트리아의 프란츠 1세가 은행을 만들어 모은 돈에서 나온 이자만으로 황실의 사람들이 별도 예산 없이도 살 수 있었다. 한때는 왕실 예산 200년치를 모았다고.[27] 그렇다고 빌려 주는 것을 거부할 수도 없는 게, 강압과 권력을 동원해서 돈을 빌려가는(사실상 갈취하는) 일은 역사적으로 자주 있었다.[28] 이 예금 이자와 대출 이자의 차이를, 예금과 대출의 차이라는 뜻에서 예대 마진이라고 부른다.[29] 이렇게 언제든지 예금자에게 돈을 돌려줄 수 있도록 준비해두는 것을 지급준비제도라고 한다.[30] 환률 차이를 이용해 수익을 얻거나, 대출을 늦게 갚았다고 벌금(사실상 이자)를 물리거나.[31] 프리츠 하버의 업적으로 유명한 공중 질소 고정법, 암모니아 제작에 천연가스와 유기용제가 필요하다.[32] 2016년 기준 대한민국의 비축유는 민간+정부 합쳐 2억 5백만 배럴에 달한다.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산업통상자원부 출처. 1배럴이 약 158.987리터이므로 2016년 기준 대한민국은 약 32,592,335,000 리터(325억 9233만 5천 리터)의 석유를 비축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비축유 규모가 세계 4위인 한국조차 비축일수 300일도 채 못 된다.[33] 현실에서도 삼국시대 촉한에서는 갈라진 지면에서 천연가스가 자연적으로 배출되어 불이 붙는 화정이라는 자연 지형이 존재했지만 제갈량같은 걸출한 천재조차 이 넘치는 화력으로 고작 지하수를 끓여 소금이나 만들었을 뿐이었다. 이것만으로도 촉한의 경제는 엄청나게 성장했지만 현대국가 입장에서 이정도 천연가스는 새발의 피라는게 문제.[34] 제강 능력이 떨어져 다마스쿠스 강이 대단하다고 찬양하고, 저품질 철광석도 어떻게 써 보겠다며 접쇠나 쓰던 시절이다. 현대 제강 기술로 만든 싸구려 마체테만 해도 매우 귀한 물건이 된다. 오늘날 우리가 남아돌아 늘 처분을 고민하는 도 조선시대에는 대단히 귀한 먹거리였다.[35] 물론 외면적인 부분이 비슷하다는 것이지 이들의 농경기술은 신석기인들의 조잡한 농경기술과는 비교도 되지 않고 오히려 유럽에서 온 농학자들이 배워갈 정도였다.[36]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의 담론과는 다르게, 실제로 일제강점기는 정체와 퇴보의 시대였다. 1인당 GDP는 구한말이 일제강점기 말기보다 더 높았으며, 조선시대의 1인당 연간 소고기 소비량 및 일일 칼로리 섭취량을 대한민국이 따라잡은 것은 1970년대 이후의 일이다.[37] 이런 류의 작품이 알바 뛰는 마왕님!하고 테르마이 로마이, 엘프 신부와 함께하는 이세계 영주생활이다.[38] 70년대만 해도 전화 보급률이 낮아서 통장, 반장, 이장 집이나 동네 가게에 전화 1대 놓고 동네 사람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일이 흔했다.[39] 다만, 저 평균 수명이 낮은 것에는 영아사망률이 어마어마하게 높았다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실제로 영아기를 버텨냈다면 40까지는 살 수 있었다고 생각해야 한다. 만약 실제 체감되는 평균 수명이 30~40세였다면 요절 의 기준이 30세 이전 사망이 아니었을 것이다[40] 추울 때는 혈관이 수축하는데 똥쌀 때 혈압이 갑작스레 올라가 뇌혈관이 파혈되는 경우가 존재한다. 지금은 심혈관계 질환에 시달리는 노인 아니고서야 그런 일이 적지만, 전근대에는 난방 수준이 매우 떨어져서 젊은 나이에도 저렇게 죽는 경우가 존재했다.[41]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른다'는 속담이 바로 경신대기근 때 그렇게 생긴 속담이다.[42] 즉 나는 없는데 다른 사람은 가지고 있는 것, 원래 가난이나 빈곤함이라는 것은 상대적인 관념이 절대적인 관념보다 더 큰 법이다. 막말로 예를 들어 스마트폰이 없다고 가정할 때 남들 다 갖고 있는데 자기만 없는 거하고 나도 없고 남들도 없는 거, 어떤 게 더 불편한지는 유치원생도 알 수 있는 문제다. 아예 모두가 다 스마트폰이 없는 사회라면 편지나 전서구 등 다른 연락수단으로 대체할 수라도 있지만, 나만 없고 남들은 있으면 자기만 빼고 남들은 서로 연락하면서 자기만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그냥 도태된 막장으로만 남을 뿐이다.[43] 노비타의 우주개척사, 존 카터[44] 사실 원론적으로 파고들자면, 차원 이동한 세계에서 최소한이나마 생존이 가능하리라는 생각부터가 지극히 인간 중심적이고 편의적인 발상이다. 차원 이동한 곳이 용암 위일 수도 있고, 바다 위일 수도 있고, 사막일 수도 있고, 오이먀콘 뺨치는 마이너스 기온의 빙원일 수도 있고, 여행금지국가 안일 수도 있고, 진공의 우주 공간이거나, 블랙홀 근처이거나, 아주 먼 외계 행성이거나, 고온 고압의 맨틀층이거나, 아직도 입증되지 않지만 물리 법칙이 완전히 다른 평행우주 공간이거나, 저그, 타이라니드, 제노모프, 프레데터, 코버넌트, 플러드처럼 공격적인 종족이 살고 있을지, 크툴루 신화의 생명체들이 지상 위를 활보하는 세상인지 누가 알겠는가. 그렇게 된다면 가장 편안한 방법으로 죽기를 바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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