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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노 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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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물 음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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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지털 음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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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命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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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 출연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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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 {{{#!wiki style="font-size: .85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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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f '''주요 영화 / 애니'''}}} }}} ||<width=525><-3>{{{-1 [[지옥이 뭐가 나빠]](2013) '''·''' [[묻지마 사랑]](2013) '''·'''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애니메이션)|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2017) '''·''' [[미래의 미라이]](2018) '''·''' [[죄의 목소리|罪の声]] (죄의 목소리, 20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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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 문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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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tablewidth=100%><tablebgcolor=#fff,#1f2023><tablecolor=#373a3c,#ddd><rowbgcolor=#083354> {{{-1 {{{#fff '''관련 문서'''}}}}}} ||
||<width=175><colbgcolor=#083354> {{{#!wiki style="font-size: .85em"
{{{#fff '''활동'''}}} }}} ||<width=525><-3>[[호시노 겐/음악 변천사|음악 변천 과정]] '''·''' [[호시노 겐/공연 및 행사|공연 및 행사]] '''·''' [[호시노 겐/디스코그래피|솔로 디스코그래피]] ([[호시노 겐/노래방 수록 목록|한국 노래방 수록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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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f '''팬클럽 관련'''}}}}}} ||<width=525><-3>[[YELLOW MAGAZIN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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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f '''그 외'''}}}}}} ||<width=525><-3>[[호시노 겐/음악적 특징 및 가치관|음악적 특징 및 가치관]] '''·''' [[호시노 겐/음악의 세계관|음악의 세계관]] '''·''' [[호시노 겐/여담|여담]] ||
호시노 겐의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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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마이니치 영화 콩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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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니치 그랑프리 신인상
제67회
(2012년)
제68회
(2013년)
제69회
(2014년)
히가시데 마사히로
미요시 아야카
호시노 겐
하마다 코코네
토사카 히로오미
코마츠 나나

역대 일본 아카데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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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배우상
제36회
(2013년)
제37회
(2014년)
제38회
(2015년)
니카이도 후미 외 6인 호시노 겐 외 7인 코마츠 나나 외 5인

역대 갤럭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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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DJ 퍼스널리티 상
제53회
(2015년)
제54회
(2016년)
제55회
(2017년)
오기우에 치키
(오기우에 치키·Session-22)
호시노 겐
(호시노 겐의 올 나이트 닛폰)
무라야마 히토시
(아사카라!)

역대 CD샵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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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2015년 2016년 2017년
BABYMETAL
<BABYMETAL>
호시노 겐
<YELLOW DANCER>
우타다 히카루
<Fantôme>
2018년 2019년 2020년
요네즈 켄시
<BOOTLEG>
호시노 겐
<Pop Virus>
Official髭男dism
<Traveler>
오리사카 유타
<平成>
카네코 아야노
<燦々>

엘란도르상 신인상 수상자
{{{#!wiki style="margin:0 -10px -5px; word-break: keep-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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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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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6px -1px -11px"
<colbgcolor=#5f5f5f><colcolor=#fede58> 1956년 이케우치 준코, 이시하라 유지로, 카와구치 히로시, 쿠사나기 고지로, 시라카와 유미, 스기타 히로코, 타카쿠라 켄
1957년 단 레이코, 에하라 신지로, 키타자와 노리코, 나카다이 타츠야, 시라카와 유미, 모리 미키, 츠구바 히사코, 카와사키 케이조
1958년 아사오카 루리코, 카노 준코, 아사오카 루리코, 쿠와노 미유키, 오오조라 마유미, 사토 마코토, 치노 카쿠코
1959년 혼고 코지로, 호시 테루미, 미즈키 조, 나카타니 이치로, 나츠키 요스케, 시미즈 마유미, 야마모토 토요조 }}}}}}}}}
1960년대 수상자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colbgcolor=#5f5f5f><colcolor=#fede58> 1960년 아카기 케이이치로, 후지마키 준, 호시 유리코, 카와구치 토모코, 마츠카타 히로키, 미카미 신이치로, 요시다 테루오
1961년 이와시타 시마, 카야마 유조, 미타 요시코, 타미야 지로, 야마자키 츠토무, 요시나가 사유리
1962년 바이쇼 치에코, 하마 미에, 하마다 미츠오, 스가타 미치코, 치바 신이치, 야마모토 케이
1963년 이즈미 마사코, 카가 마리코, 키타오오지 킨야, 나카가와 유키, 나카오 미에, 타카다 미와, 타카하시 코지
1964년 후지무라 시호, 혼마 치요코, 마츠모토 하쿠오, 카토 고, 카야마 요시코, 마츠바라 치에코, 요시무라 지츠코
1965년 에나미 쿄코, 후지 스미코, 나이토 요코, 오가와 마유미, 타케와키 무가, 와타리 테츠야
1966년 구리주카 아사히, 구로사와 토시오, 오오하라 레이코, 야마구치 타카시, 야마모토 요코, 오오쿠스 미치요
1967년 아즈사 에이코, 쿠리하라 코마키, 나카야마 진, 오가와 토모코, 사카이 와카코, 스기 료타로
1968년 이쿠타 에츠코, 미네기시 토오루, 나카야마 마리, 오카 미츠코, 타카하시 에츠시, 타니 하야토
1969년 아츠미 마리, 오키 마사야, 오자키 나나, 타이치 키와코, 타카하시 노리코, 타치바나 마스미 }}}}}}}}}
1970년대 수상자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colbgcolor=#5f5f5f><colcolor=#fede58> 1970년 하라다 다이지로, 모리타 겐사쿠, 나츠 준코, 오카다 유스케, 오카모토 노부토, 사카이 마사아키, 사토 오리에, 타케하라 에이코, 우메다 토모코, 와타세 츠네히코, 야나미 에이코
1971년 미개최
1972년 이케 레이코, 콘도 마사오미, 사카키바라 루미, 타카하시 케이코, 미후네 시로, 야마구치 카린, 요시자와 쿄코
1973년 우츠노미야 마사요, 스기모토 미키, 시가키 타로, 마츠자카 케이코, 무라노 타케노리, 야마모토 센, 타나카 마리, 후지오카 히로시, 혼다 미치코, 마키 히로코
1974년 아사다 미요코, 코즈에 히토미, 시마다 요코, 세키네 세츠코, 니시나 아키코, 하기와라 켄이치, 미우라 토모카즈, 모모이 카오리, 다이몬 마사아키, 타카하시 요코, 나카지마 유타카
1975년 아키요시 쿠미코, 쿠사카리 마사오, 이케가미 키미코, 단 후미, 시호미 에츠코, 나카무라 마사토시, 하기오 미도리
1976년 히가시 테루미, 오카다 나나, 오오타케 시노부, 다나카 겐, 카타히라 나기사, 네즈 진파치, 미츠바야시 쿄코, 카츠노 히로시, 사오토메 아이, 타키가와 유미
1977년 아사지 요코, 이와키 코이치, 에토 준, 하라다 미에코, 마야 쿄코
1978년 아라이 하루미, 아사노 유코, 이노우에 준이치, 시미즈 켄타로, 나츠키 요코, 타케시타 케이코, 타케다 테츠야, 나가시마 에이코
1979년 쿠니히로 토미유키, 나가시마 토시유키, 후지 마리코, 모리시타 아이코, 유리 치카코 }}}}}}}}}
1980년대 수상자
{{{#!wiki style="margin:0 -10px -5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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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6px -1px -11px"
<colbgcolor=#5f5f5f><colcolor=#fede58> 1980년 쿠마가이 마미, 코테가와 유코, 시바타 쿄헤이, 마츠다이라 켄, 미야우치 준
1981년 카네다 켄이치, 칸자키 아이, 키시모토 카요코, 타키타 사카에, 히구치 카나코
1982년 카가 다케시, 사나다 히로유키, 다나카 유코, 나츠메 마사코, 후루오야 마사토
1983년 카자마 모리오, 콘노 미사코, 나카이 키이치, 나토리 유코, 류 다이스케
1984년 사토 코이치, 토키토 사부로, 나카이 키에, 하라다 토모요, 야쿠쇼 코지
1985년 이시하라 마리코, 에노키 타카아키, 와타나베 토루, 후지타니 미와코
1986년 키쿠치 모모코, 킷카와 코지, 사와구치 야스코, 야나기사와 신고
1987년 사이토 유키, 진나이 타카노리, 나카야마 미호, 야스다 나루미, 와타나베 켄
1988년 고쿠쇼 사유리, 토미타 야스코, 고토 쿠미코, 미나미노 요코, 나카무라 토오루
1989년 아소 유미, 오가타 나오토, 타카시마 마사히로, 미카미 히로시, 와카무라 마유미 }}}}}}}}}
1990년대 수상자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colbgcolor=#5f5f5f><colcolor=#fede58> 1990년 이모리 미유키, 스즈키 호나미, 미나미 카호, 모토키 마사히로, 야나기바 토시로
1991년 쿠도 유키, 타카시마 마사노부, 나카지마 토모코, 노무라 히로노부, 마키세 리호
1992년 이시다 히카리, 센도 노부코, 와쿠이 에미, 나가세 마사토시, 요시오카 히데타카, 다나카 미노루
1993년 카토 마사야, 시미즈 미사, 아카이 히데카즈, 유키 나에, 카라사와 토시아키
1994년 사쿠라이 사치코, 와시오 이사코, 스미다 유키, 츠츠이 미치타카, 하기와라 마사토, 무라타 타케히로
1995년 야마구치 토모코, 스즈키 안즈, 하다 미치코, 키시타니 고로, 토요카와 에츠시, 기무라 타쿠야
1996년 토키와 타카코(대상), 츠루타 마유, 잇시키 사에, 나가사와 토시야, 타카하시 카츠노리, 시이나 킷페이
1997년 마츠 다카코(대상), 이이지마 나오코, 세토 아사카, 카미카와 타카야, 니시무라 마사히코
1998년 칸노 미호(대상), 키무라 요시노, 다나카 미사토, 아사노 타다노부, 우치노 세이요
1999년 마츠시마 나나코(대상), 카시와바라 타카시, 카네코 켄, 사카이 미키, 후카다 쿄코 }}}}}}}}}
2000년대 수상자
{{{#!wiki style="margin:0 -10px -5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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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6px -1px -11px"
<colbgcolor=#5f5f5f><colcolor=#fede58> 2000년 나카타니 미키(대상), 이케우치 히로유키, 이시이 마사노리, 카토 하루히코, 나카무라 슌스케
2001년 이토 히데아키, 쿠보즈카 요스케, 오이카와 미츠히로, 이케와키 치즈루, 카토 아이, 야다 아키코
2002년 쿠니나카 료코, 사카구치 켄지, 다케우치 유코, 츠마부키 사토시, 후지키 나오히토, 요네쿠라 료코
2003년 오자와 유키요시, 키쿠카와 레이, 시바사키 코우, 나카마 유키에, 후지와라 타츠야
2004년 우에토 아야, 오다기리 조, 코유키, 테라지마 시노부, 나카무라 시도, 야마다 타카유키
2005년 이시하라 사토미, 이토 미사키, 나가사와 마사미, 나리미야 히로키, 야마모토 코지
2006년 이토 아츠시, 우치야마 리나, 사와지리 에리카, 하야미 모코미치, 호리키타 마키
2007년 아오이 유우, 아야세 하루카, 우에노 주리, 게키단 히토리, 타마키 히로시, 마츠야마 켄이치
2008년 아라가키 유이, 오구리 슌, 칸지야 시호리, 단 레이, 오오모리 나오
2009년 에이타, 쿠로키 메이사, 토다 에리카, 마츠다 쇼타, 미우라 하루마, 미야자키 아오이 }}}}}}}}}
2010년대 수상자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colbgcolor=#5f5f5f><colcolor=#fede58> 2010년 에이쿠라 나나, 오카다 마사키, 시다 미라이, 타베 미카코, 마츠다 류헤이, 미즈시마 히로
2011년 키치세 미치코, 키리타니 켄타, 사토 타케루, 마츠시타 나오, 미츠시마 히카리, 무카이 오사무
2012년 코라 켄고, 이노우에 마오, , 하세가와 히로키, 요시타카 유리코
2013년 소메타니 쇼타, 오노 마치코, 마츠자카 토리, 타케이 에미, 모리야마 미라이, 마키 요코
2014년 아야노 고, 키무라 후미노, 히가시데 마사히로, 노넨 레나, 후쿠시 소타, 하시모토 아이
2015년 이케마츠 소스케, 키타가와 케이코, 사이토 타쿠미, 쿠로키 하루, 스즈키 료헤이, 니카이도 후미
2016년 에모토 타스쿠, 아리무라 카스미, 스다 마사키, 츠치야 타오, 타마야마 테츠지, 요시다 요
2017년 사카구치 켄타로, 타카하타 미츠키, 딘 후지오카, 하루, 호시노 겐, 히로세 스즈
2018년 타카하시 잇세이, 카도와키 무기, 타케우치 료마, 스기사키 하나, 무로 츠요시, 요시오카 리호
2019년 시손 쥰, 아오이 와카나, 다나카 케이, 나가노 메이, 나카무라 토모야, 마츠오카 마유 }}}}}}}}}
2020년대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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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5f5f5f><colcolor=#fede58> 2020년 카미키 류노스케, 안도 사쿠라, 요코하마 류세이, 키요하라 카야, 요시자와 료, 하시모토 칸나
2021년 카쿠 켄토, 이토 사이리, 키타무라 타쿠미, 카미시라이시 모네, 쿠보타 마사타카, 하마베 미나미, 나리타 료, 모리 나나
2022년 나카노 타이가, 에구치 노리코, 야기라 유야, 카와구치 하루나, 야마다 유키, 히로세 아리스
2023년 나카가와 타이시, 아시다 마나, 마츠시타 코헤이, 키시이 유키노, 마미야 쇼타로, 나오
2024년 이소무라 하야토, 이마다 미오, 마에다 고든, 코시바 후우카, 메구로 렌, 홋타 마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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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빌보드 재팬 뮤직 어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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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아티스트
<rowcolor=#000000> 2016년 2017년 2018년
AKB48 호시노 겐 요네즈 켄시
Hot 100 of the Year
<rowcolor=#000000> 2016년 2017년 2018년
AKB48
翼はいらない
호시노 겐
요네즈 켄시
Lemon

이타미 주조상(伊丹十三賞) 수상자
{{{#!wiki style="margin:0 -10px -5px; word-break: keep-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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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fff> 2009년 2010년 2011년 2012년
이토이 시게사토
(카피라이터, 에세이스트, 게임 제작자)
타모리
(게닌, MC)
우치다 다쓰루
(철학 연구자, 무도가, 사상가)
모리모토 치에
(아트 디렉터, 그래픽 디자이너)
<rowcolor=#ffffff> 2013년 2014년 2015년 2016년
이케가미 아키라
(언론인, 저널리스트)
릴리 프랭키
(소설가, 디자이너, 배우)
아라이 토시노리
(편집자, 인터뷰어)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 감독)
<rowcolor=#ffffff> 2017년 2018년 2019년 2020년
호시노 겐
(배우, 음악가, 문필가)
이소다 미치후미
(역사학자, 에세이스트)
타마가와 나나후쿠
(낭곡사)
쿠도 칸쿠로
(각본가, 배우)
<rowcolor=#ffffff> 2021년 2022년 2023년 2024년
시미즈 미치코
(탤런트, 배우)
코이케 카즈코
(디렉터, 카피라이터)
미타니 코키
(각본가, 감독,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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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호치영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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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우조연상
제44회
(2019년)
제45회
(2020년)
제46회
(2021년)
나리타 료
(사랑이 뭘까 / 굿바이, 입술 / 치와와)
호시노 겐
(죄의 목소리)
스즈키 료헤이
(고독한 늑대의 피: 레벨 2)
}}} ||
호시노 겐의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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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0 -10px -2px; min-height: 26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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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 각본가 / 감독
마츠오 스즈키 쿠도 칸쿠로 카오다 카오히코 아베 사다오
마사나 보쿠조 미야자키 토무 미나가와 사루토키 무라스기 세미노스케
아라카와 요시요시 콘도 코엔 미야케 히로키 코마츠 카즈시게
쇼지 유스케 호시노 겐[A] 카미카와 슈사쿠 시노하라 유신
이구치 노보루[A] 호소카와 토루 이케즈 쇼코 이세 시마
시시도 미와코 네코제 츠바키 타무라 타가메 히라이와 카미
코바야시 키나코 나카이 치사토 아라이 아키
(공식 홈페이지 나열 기준)
그룹

[A] 배우 활동 한정 소속.[A] 배우 활동 한정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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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GER
BABYMETAL BEGIN flumpool
Perfume WEAVER
미사카 사키 사잔 올 스타즈 엘리펀트 카시마시
포르노 그라피티 호시노 겐[A] 후지와라 사쿠라
후쿠야마 마사하루 YU-KA
ACTOR
나카 리이사 노무라 슈헤이 딘 후지오카
마나키 레이카 마츠시마 쇼타 모토지마 준세이
미요시 아야카 미우라 하루마 † 미조구치 타쿠야
미즈노 유이 미즈타 코우키 사카노우에 아카네
사쿠라다 도리 소닌 스즈키 진
시미즈 쿠루미 신원호 아오야기 루이토
아오야마 료타 야기 유키 야마다 안나
야스다 켄 오오이즈미 요 오타니 료헤이
와타나베 케이스케 요시자와 료 요시타카 유리코
이시다 니콜 이즈카 켄타 카네코 다이치
카이 쇼마 키요하라 카야 코세키 유타
테라다 타쿠야 토미타 야스코 하시모토 아츠시
홋타 마유 후카츠 에리 히라오카 유타
후지와라 타이유 효도 카츠미 후루야 로빈
VOICE ACTOR
마에다 카오리 마키노 유이 사토 히나타
아소 카오리 이소베 카린 코이즈미 모에카
타노 아사미 타카츠키 카나코 토미타 미유
후나토 유리에 노나카 코코나 이즈미 후카
SPECIALIST
s**t kingz 타케우치 요시에 토가시 유키
AGENCY[B]
CRAVITY IVE

[A] 가수 활동 한정 소속.[B] 스타쉽엔터테인먼트 소속 아티스트. 일본 활동을 지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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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KEROCK|
SAKER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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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 다이치
타나카 케이
노무라 타쿠시
하마노 켄타

[ 정규 및 미니 앨범 ]
||<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bgcolor=#fff,#1c1d1f><tablecolor=#fff><width=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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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TA|YU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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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03. 10.
[[YUTA|YU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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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12. 26.
[[慰安旅行|慰安旅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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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04. 17.
[[LIFE CYCLE|LIFE CY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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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06.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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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gs of instrumental|songs of instrument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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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11. 08.
[[ホニャララ|ホニャラ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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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11. 05.
[[MUDA|MU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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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12. 08.
[[SAYONARA|SAYON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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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4. 08.
오리지널 스코어 앨범을 포함한 전체 음반 목록은 SAKEROCK/디스코그래피 문서 참고
<colbgcolor=#00b1eb><colcolor=#fff>
호시노 겐
[ruby(星, ruby=ほし)][ruby(野, ruby=の)] [ruby(源, ruby=げん)]|Gen Hoshino
파일:호시노 겐 GQ 재팬 2024.jpg
출생 1981년 1월 28일 ([age(1981-01-28)]세)
사이타마현 와라비시
출신 사이타마현 카와구치시[1]
국적
[[일본|]][[틀:국기|]][[틀:국기|]]
신체 168㎝, 60㎏, AB형
가족 아버지, 어머니
배우자 아라가키 유이 (2021년 결혼 ~ 현재)
학력 지유노모리가쿠엔고등학교[2] (졸업)
직업
장르
소속사 음악 KAKUBARHYTHM[3] (2005년 ~ 2015년)
아뮤즈 (2015년 ~)
배우 극단 오토나케이카쿠 (2003년 ~)
레이블 SPEEDSTAR RECORDS[4](2011년 ~)
데뷔 음악 2003년 3월 10일 SAKEROCK
정규 0집
(데뷔일로부터 [dday(2003-03-10)]일, [age(2003-03-10)]주년) (그룹)
2010년 6월 23일 정규 1집
(데뷔일로부터 [dday(2010-06-23)]일, [age(2010-06-23)]주년) (솔로)
배우 무대공연: 2001년 「ワークインタイムマシン」
미디어: 2003년 「WATER BOYS」

(미디어 데뷔일로부터 [dday(2003-07-01)]일, [age(2003-07-01)]주년)
활동 2000년[5] ~ 현재
담당 악기 기타[6], 마림바[7]호시노 겐의 라이브 퍼포먼스에서 기타 다음으로 자주 볼 수 있었던 악기다. 그의 솔로 데뷔 앨범인 정규 1집에서부터 마림바가 자주 나오며, 가장 대표적인 예시는 「化物(도깨비)」와「IDEA」 M/V. 그 외에 사용된 일부예시는 이 스포티파이 재생목록 참고. 참고로 마림바를 두드리는 스틱은 말렛(mallet)이라고 한다. 한국에는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악기이지만, 그나마 KBS 제1라디오의 날씨 음악으로 유명하다. 매 시각 58분마다 방송하는 날씨 시그널음악이 바로 이 악기의 연주다.
파일:2D6AE368-B1B4-4847-AB7D-1263EF843E94.png]
, 만돌린[8], 밴조[9], 산신[10], 드럼[11], 베이스 기타[12], TR-08[13], MPC, 마림바 외의 체명악기[14]
건반 악기[15], MIDI Recording
대표작 음반 | YELLOW DANCER, POP VIRUS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 츠자키 히라마사
MIU404 - 시마 카즈미
부캐 니세 아키라, 오겐상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16] |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 파일:시나 웨이보 아이콘.svg
{{{#!wiki style="margin: 0 -10px -5px"
정보 더 보기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olbgcolor=#00b1eb><colcolor=#fff> 팬클럽
멤버십
(前) YELLOW PASS (2016년 ~ 2023년 4월 23일)
(現) YELLOW MAGAZINE+ (2023년 6월 1일 ~)
한국에서의 별명 호시노 재석[17], 최악의 가수[18], 브로콜리[19]
그룹 SAKEROCK (2000 ~ 2015)
야마다 이치로
좋아하는
사람
'보통의 감각'을 잊지 않고 계속 가지고 있는 사람, '그 사람밖에 낼 수 없는 표현'을 내는 아티스트
싫어하는 것 스노비즘부심, 세간에 자신을 본인의 모습보다 더 크게 보이고 싶어하는 사람, 사행성 도박
좌우명 '모르겠다'는 것을 알자!
취미 음악 듣기, 영화·다큐멘터리·드라마·애니메이션·라디오 감상, 게임, 책 읽기, 요리
(관련된 상세 내용은 호시노 겐/여담 문서 참고)
}}}}}}}}} ||

1. 개요2. 데뷔 전3. 음악가
3.1. 생애 및 활동
3.1.1. 밴드 활동과 솔로 데뷔 (2000 ~ 2012)3.1.2. 뇌출혈과 밴드 해산 (2012 ~ 2015)3.1.3. '옐로우 뮤직'의 대중화 (2015 ~ 2019)3.1.4. 번아웃 증후군과 재시작 (2019 ~ 2023)3.1.5. 2024년 ~
3.2. 음악적 특징3.3. 음악 변천 과정3.4. 디스코그래피 및 기타 악곡3.5. 라이브
3.5.1. 공연 및 행사3.5.2. NHK 홍백가합전
3.6. 흑인음악과 J-POP의 일체화3.7. 상당한 행동력과 작업량3.8. 음악의 세계관
4. 배우
4.1. 연혁
4.1.1. 2001 ~ 20134.1.2. 2015 ~ 20194.1.3. 2020 ~
4.2. 필모그래피
4.2.1. 무대4.2.2. 영화4.2.3. 드라마4.2.4. 애니메이션4.2.5. 나레이션
4.3. 이야깃거리
5. 작가
5.1. 저서 / 대담집5.2. 연재
6. 미디어 활동
6.1. 예능 / 교양6.2. 라디오6.3. 광고 / CF6.4. 잡지 표지
7. 팬덤 및 팬클럽8. 엔터테이너로서의 호시노 겐
8.1. 독자적인 셀프 브랜딩8.2. 그의 목표?
9. 수상 경력 및 음반 주요 기록10. 배우 아라가키 유이와의 결혼
10.1. 관련 이야깃거리
11. 사건사고
11.1. 아베 신조 총리 관련 피해
12. 여담

[clearfix]

1. 개요

파일:gen hoshino numero(2).jpg
{{{#!wiki style="margin: -20px -10px -16px"<tablewidth=100%><tablebordercolor=#00b1eb,#033E8C>
세계가 점점 변화하면서 제 역할도 계속 달라지겠죠. 그 순간순간마다 제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하고 싶습니다.

}}}||
일본음악가, 배우, 작가.

싱어송라이터, 멀티 인스트루멘탈리스트[20], 편곡가, 음악 프로듀서, 비트메이커, DJ이며, 배우, 문필가, 라디오 진행자, 방송인, 유튜버[21]이다.

배우와 음악, 집필, 이 모든 분야에서 인디 및 무명 생활을 다 거쳐 당시 대중가요 및 연예계를 꽉 잡고 있던 일본 아이돌 시장의 튼튼함 속에 파죽지세로 올라와[22] 음악, 배우, 방송인, 작가 이 모든 부분에서 상을 타고 메가히트친 대표작들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대중적으로 모두 다 성공해본 입지전적멀티 엔터테이너이다.

상당히 암흑기였던 '2010년대 일본 음악'의 국민적 팝 아이콘 중 한 명이었고, 그 당시를 이야기할 때 호시노 겐을 빼놓고는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일본 대중음악에 끼친 영향력이 상당했었던 인물이라 여러 아티스트들에게 샤라웃을 받고 있으며, 요네즈 켄시와 함께 일본 솔로 싱어송라이터 입지 확립의 재시작을 열었던 인물이기도 하다. 2019년 역대 일본 남성 솔로로서는 5번째로 '5대 돔 투어'를 실시하고, 예매 당일 전석 매진시키며 일본 내에서 대중적으로 유명하고 인지도가 높은 연예인 중 한 명[23]으로 완전히 자리잡았다.

코로나 사태 이후부터는 음악 및 배우 활동에 이전과 다른 다양한 변화를 주고 있으며, 2021년 아라가키 유이와의 결혼을 발표해 큰 화제가 되었고, 2023년 현재도 메이저 멀티 엔터테이너 중 한 명의 입지[24]를 가지고 있다. 호시노 겐의 라디오 청취자가 10대부터 60대까지 있을 정도로 청년층부터 중장년층까지 고루고루 팬이 많은 연예인이기도 하다.

2. 데뷔 전

'호시노 겐(星野源)'이라는 이름은 출생명인데, 부모님은 '한자 한 글자', '외국인도 부르기 쉽다', '비 오는 수요일에 태어났기 때문에 물에 관계가 있는 한자'라는 이유로 '겐(源)'이라고 이름을 지어줬다고 한다.

원래부터 부모님이 굉장한 음악 애호가였다. 생계 때문에 사이타마현의 어느 한 시골 동네에서 청과물 가게를 운영했던 서민 집안이었으나 부친은 재즈 피아노가 취미였고, 모친은 과거에 재즈 보컬리스트가 꿈이었던지라 산처럼 쌓인 재즈 레코드와 음악이 있는 환경에서 자랐다고 한다. 재즈가 완전히 그의 생활 속에 있었다. 그렇게 어릴 때는 뭔지도 모른 채 재즈 뿐만 아니라 여러 블랙 뮤직(토미 플래너건, 니나 시몬, 마이클 잭슨, 아이즐리 브라더스, 마빈 게이, 등)의 노래 등을 많이 들었다고 한다. 가장 처음 좋아하게 된 아티스트는 토미 플래너건이었다고. 부친은 'SIGNAL' 이라는 동네의 재즈 카페를 운영하기도 했었고, 부모님이랑 재즈 바나 조그만 라이브 공간에도 자주 갔었다.

어릴 때 식탁에서 밥을 기다릴 때 젓가락을 양손에 하나씩 갖고 기다릴 수 없어서 식기를 젓가락으로 두드리고, 엉망으로 만들어버리는 경우가 많아 이에 부모님이 '그렇게 식기를 두드리고 싶다면 드럼을 두드려라'는 말에 드럼을 초등학생 때 배우기 시작했고, 이것이 음악 인생의 가장 첫 시작이라고 한다. #

집에는 업라이트 피아노가 있었고 피아노를 간간히 쳐보기는 했으나, 호시노 겐은 중학교 때 다들 기타를 치기 시작하여 본인도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래도 음악한다니까 부친이 쓰던 기타를 내주는 등 남들보다 시작하기 쉬운 환경이었던 것 같다고 말한 바 있다. 자신이 어릴 때부터 계속 들어왔던 재즈를 듣는 사람이 주변에 없었기 때문에, 학창 시절 재즈를 듣기는 했으나, 자신의 취향을 공유하지 못하고 당시 거의 모두가 들었던 록을 연주하며 연습했다. 유니콘, B'z, KIRINJI, CHAGE and ASKA 등의 록 밴드 및 그룹들을 좋아했고, 집에서 혼자 블루 하츠의 곡들이나 익스트림(Extreme)의 「More Than Words」 같은 곡을 듣고 카피하면서 놀았다고 한다.

그러나 마냥 순탄하지는 않았는데, 호시노 겐은 소학교 및 중학교 시절 대인 관계에서도 큰 어려움을 겪었고, 엄청나게 내성적이었으며, 망신을 계속 크게 당하며 공황장애를 겪은 적이 있어 안정제를 통한 치료를 한 적이 있었고, 학업측면에서도 거의 꼴지였을 정도로 다른 학생들보다 많이 부족했으며, 위축되거나 맨날 땅만 보고 걸었던 시절이 많았다. 학교를 빠지는 날도 많이 생겨 그렇게 그는 일반 학교에 익숙해지지 못했고 점점 더 고독하고 어두운 성격으로 고립하게 된다.

그렇게 일반 학교랑은 다른 사립 대안학교인 지유노모리가쿠엔고등학교[25]에 입학한다. 그러나 여전히 불안장애적인 증세가 있어 학교를 빠지고 집에서 못 나가는 날도 많았었다고 한다. 자유로운 학교에 다녔기 때문에 기분은 초졸인 것 같다고 밝히기도 했다.

작곡은 14살 때 집에 있던 낡은 거트 기타로 단순한 노래를 가장 처음 만들어봤으며, 고등학생 때 반에서 인기 많은 친구가 "겐, 기타 치는 거면 내 가사에 곡 좀 붙여줘"(源君、ギター弾けるんだったら、僕の詞で曲を作ってよ)라고 부탁해서 곡을 본격적으로 쓴 것이 최초. 이후 자기 곡도 여러 개 썼지만 부끄러워서 발표 같은 건 하지 않았다고 한다. 라이브도 고3 때까지 부끄러워서 못 했다고. 중학교 시절에 음악 뿐만 아니라 연극에도 관심을 가졌어서 연기 연습도 했는데, 고등학생 때 극단 오토나케이카쿠의 연극을 보고, 당시 내성적이었던 호시노 겐은 감동과 충격을 받아 이 극단의 워크숍에 참석하고, 연기에 대한 꿈을 강하게 가지게 된다.

고등학생 때부터 호시노 겐은 독립하여 자취를 시작하고, 여러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면서, 지유노모리가쿠엔고교를 다니고 연기 연습과 음악 연습을 계속한다. 가장 처음 살았던 방이 바퀴벌레곱등이가 나오는 3평짜리 단칸방이었다고 한다.[26]
어린 나이에 독립하고 생계를 꾸리던 그에게 힘이 되었던 것은 음악이었다. 궁핍하던 시절에도 앨범을 구매해 들었던, YMO의 멤버이자 히피 감성과 Exotica(이국적인 느낌의 이지 리스닝 음악)의 대가였던 호소노 하루오미의 오르가닉 스타일에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열심히 돈을 모아 마림바를 구매하여 자신의 작은 방 안에 (식탁 대용으로) 넣어둔 것도 이 덕분이다. 현재(2018)의 호시노 겐을 대표하는 트랙 중 하나인 (사랑)과 時よ(시간이여), 'Continues' 모두 Exotica를 대중 친화적으로 녹여낸 곡들이다. #
음악을 본격적으로 한 건 20세 때 자신이 리더가 되어 고등학교 동급생을 모아 인스트루멘탈 밴드 SAKEROCK을 2000년에 결성했을 때부터다. 처음부터 인스트루멘탈 밴드를 하려고 한 건 아니고, 원래는 오히려 유니콘처럼 시원시원하게 지르는 걸 좋아해서 곡도 그런 걸 썼지만 테이프에 녹음된 자기 노랫소리를 들은 후 급좌절해 본인의 목소리가 싫었고 노래하고 싶다고 말을 못했다고 한다. 또한 클리퍼드 브라운&맥스 로치의 앨범「Study In Brown」에 수록되어 있는 곡들에도 상당한 영향을 받고 인스트루멘탈 곡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외적인 체형을 포함해 뭐 하나 특출난 게 없었던 호시노 겐 특성상 스카우트 제의는 전혀 오지 않았고, 그렇게 여러 아르바이트는 물론이고 밴드 활동을 병행하면서 프리랜서로서 여러 연기 오디션을 보고 일부 연극에 참여하게 되며 잡지의 난외에 노게런티로 잡문을 쓰는 일을 계속 찾아다니며 하게 되었다.

3. 음악가

{{{#!wiki style="margin: -20px -10px -17px"<tablewidth=100%><tablebordercolor=#F2CB05,#033E8C>
'음악적 완성도'와 '사회적 영향력'이라는 두 가지 측면을 (모두) 본다면 일본의 2010년대를 대표하는 뮤지션은 호시노 겐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뮤직 매거진 2021년 3월호, '2010년대 일본 음악 앨범 베스트 100 특집'의 24위 YELLOW DANCER 선출에 관한 코멘트 #
}}}||
{{{#!wiki style="margin: -20px -10px -17px"<tablewidth=100%><tablebordercolor=#F2CB05,#033E8C>
후지하라 사토시: 홍백가합전에서 호시노 겐님을 처음 만나서, 저희 CD를 드리고 이야기를 잠깐 나누고.. (중략)

나라자키 마코토: 저는 긴장해서, 가만히 있었습니다.

마츠우라 마사키: (저도) 엄청 긴장해서... 학창시절부터 팬이었고, 노래방에 가서도 (그의 곡을) 노래했고, 그의 존재는 저에게 있어서 마치 같은 존재기 때문에요.

오오이즈미 요: 다가가기 힘든 그런 아우라 같은 거랑 다르지 않나요? 후쿠야마 마사하루처럼 그런 것도 아니고.

후지하라 사토시: 그 분위기는.. 엄청나게 대중적이고 유명한 음악이지만, 그 안에 담겨있는 건 그 사람밖에 할 수 없어요. 그래서 무서워요.

Official髭男dism이 출연한 2022년 6월 23일자 SO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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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2000년대에 데뷔한 후 그의 음악들은 당시 일본에 자리잡혀있는 대중적 음악과는 항상 거리가 계속 있고 변화를 추구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암울했던 2010년대의 제이팝이 무너지지 않게 지탱해주는 아이콘이 되었었고, 대중음악에 끼친 영향력이 상당했었으며, 일부에서는 대중적인 제이팝의 앞으로의 방향성 중 하나를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이후로도 Official髭男dism, 요네즈 켄시, YOASOBI, Creepy Nuts, imase, 츠네타 다이키 등 여럿 후배 아티스트와 뮤지션들에게 샤라웃을 받고 있다.

30대 중후반의 나이에 발매한 그의 대표적인 앨범들인 정규 4,5집 YELLOW DANCERPop Virus 앨범은 2010년대 J-POP 메인스트림 팝 씬에서는 독보적인 스타일을 가졌다는 평을 받기도 한다. # 이 두 앨범 모두 상업적 성공을 크게 이룬 동시에 뮤직 매거진이 선정한 역대 일본음악 명반 순위에 각각 95위, 138위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다만, 앨범 판매량[27], 차트 성적, 그리고 음원 다운로드 수[28]에 비해 유튜브 뮤직비디오 조회수는 엄청나게 낮다. 그의 최전성기가 음원 다운로드 시대의 후반부 끝자락이었기도 하고, 해외보다는 일본 내에서만 크게 히트친 것 또한 한 몫하지만, 가장 큰 이유로 거론되고 있는 것이 마치 뮤직비디오를 앨범 광고로 쓴 듯한, 노래를 건너뛰고 대신 나오는 중간 앨범 광고[29]와 곡이 끝나고 나오는 호시노 겐의 개인 코멘터리.[30] 일부 팬들 사이에서는 손꼽아 기다리는 컨텐츠가 되었기도 하다.

한국에서는, 음악가 측면에서, (사랑, 2016), Pop Virus(2018), 그리고 스파이 패밀리 애니메이션 1기 1쿨 엔딩곡인 喜劇(희극, 2022)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조금 더 깊게 파고들면, アイデア(아이디어), SUN, 不思議(불가사의), Week End, 地獄でなぜ悪い(지옥이 뭐가 나빠), 桜の森(벚꽃 숲) 등이 그 다음으로 유명한 편이다.

그러나 음악가적인 측면만 본다면 2020년대인 지금 한국에서의 선호도는 그가 쌓아온 음악적 커리어에 비해 적은 편이다. 전반적인 일본 문화를 잘 알고 있던 한국인들을 제외하고, 한국에서 J-POP이 가장 인기없을 때 일본 내에서 메가히트친 뮤지션이고, 현재 나이도 이미 40 중반에 가깝긴 하니.

3.1. 생애 및 활동

3.1.1. 밴드 활동과 솔로 데뷔 (2000 ~ 2012)

고등학생 때부터 호시노 겐은 독립하여 여러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고, 졸업 이후로도 아르바이트를 계속 병행하며 프리랜서 배우로도 여러 오디션을 찾아다니는 동시에 밴드 활동을 계속 해와서 상당히 필사적이었고 암울했다고도 한다.
H(호시노 겐): 음악도 연극도 중학교 때부터 쭉 하고 있어서요, '계속하면 언젠가 좋은 일이 있겠지'라고 생각하게 된 것은 극단 오토나케이카쿠에 들어간 때(2003)부터네요. 그때까지는 연기도 음악도 칭찬받지 못했고, '둘 중 하나만 해'라고 자주 들었습니다. 차츰 '연기 재밌네', '음악 좋네'라고도 듣게 되었어요.
『그리고 생활은 계속된다』 (2009)
SAKEROCK은 그렇게 결성 된지 약 3년 후인 2003년에 첫 데뷔 앨범 YUTA를 본인들이 직접 자체 레이블로서 발매하고 직접 뛰어다니며 홍보한다. 그렇게 SAKEROCK이 소규모 라이브하우스 공연을 여럿 이어가며 매니아층을 형성하고, 여러 극단의 배경 음악을 담당하는 등 활동을 이어왔으며, 이후에는 2005년에 일본의 인디 소속사 겸 레이블인 KAKUBARHYTHM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그의 밴드 팬이던 영화감독 이누도 잇신의 부탁으로 2007년 아라시 주연의 영화 「황색 눈물(黄色い涙)」의 오리지널 스코어를 담당하게 되고[31], 후지 록 페스티벌과 SUMMER SONIC 등에 출연하면서 나름 마니아적인 상승세를 타던 인디 밴드 중 하나로 자리잡는다.
SAKEROCK 慰安旅行(위안여행) 어레인지 라이브
SAKEROCK 会社員と今の私 ('회사원'과 '지금의 나')[32](2008) MV
무엇이라 규정할 수 없는, 장르 불명의[33], 가사도 없지만 듣는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마성의 음악으로 많은 팬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특히 R&B, SOUL 등 해외의 블랙 뮤직으로부터 받은 영향을 J-POP으로 녹여낸 호시노 겐의 '옐로우 뮤직' 장르의 시작이 바로 여기, SAKEROCK의 음악에 있다. #
SAKEROCK으로 활동하는 동안 솔로 데뷔는 무서워서 엄두를 못 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실은 노래도 하고 싶은 마음을 애써 외면해 온 것을 느꼈고 이제 곧 30대이므로 지금 안 하면 못 한다고 생각하던 중에 핫피 엔도옐로 매직 오케스트라의 리더인 일본의 전설적인 음악가 호소노 하루오미의 제안을 받고 2010년에 호소노 하루오미의 레이블인 daisyworld에서 첫 번째 솔로 앨범 「ばかのうた(바보의 노래)」를 발표한다. 그리고 이듬해 두 번째 정규 앨범 「エピソード(에피소드)」를 SPEEDSTAR에서 발표했다. 노래는 여전히 서툴렀고, 가창력 또한 나빴으나 '노래가 많이 서투르더라도 중요한 건 그저 부르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바뀌었기 때문이지, 자신감이 생겼기 때문이 전혀 아니라고 답하고 있으며, 부끄러움을 극복하지 못하면 다음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파일:시시함 속에.gif
파일:꿈 밖으로(1).gif
<rowcolor=#fff> 2011 싱글 1집 くだらないの中に 2012 싱글 3집 夢の外へ
이 때부터 2015년 4월까지는 SAKEROCK 활동을 병행했다. 싱글 3집 夢の外へ(꿈 밖으로)로 솔로로서 처음으로 음악 방송에 나가게 되었으며, 배우업과 음악업 모두 점점 궤도에 오르기 시작해도, 여전히 이전처럼 주변이나, 문필, 가수, 연기 등을 담당하는 업계관계자들로부터 '호시노 겐은 재능이 없다', '직업으로 하려면 하나에만 집중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한다. 그는 '그렇지만 그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을 뿐'이라며 해내기 위해서 수면시간을 줄여가며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3.1.2. 뇌출혈과 밴드 해산 (2012 ~ 2015)

* 트라우마나 약간의 심리적 공포를 유발할 수도 있는 서술을 포함하고 있을 수 있으니 주의
파일:EA8E5950-5250-4428-A478-116BB37F27E4.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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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3집 「[[Stranger(호시노 겐)|Stranger]]」에 수록된 곡들 중 마지막으로 만든 타이틀 곡 「[[Stranger(호시노 겐)#s-3.1|化物(도깨비)]]」을 레코딩하고 플레이백을 마치자마자 스튜디오에서 쓰러졌다. 원인은 '''뇌동맥류로 인한 [[지주막하출혈]]''' 
일반적으로, 지주막하출혈은 50대에서 60대에 자주 걸리는데, 나이를 거듭하면서 고혈압이나 흡연, 음주 등의 영향으로 동맥경화가 진행되면 혹이 생겨 이윽고 파열되는 경우가 다수다. 그러나 이 당시 호시노 겐은 아직 31살이었고, 음주나 흡연도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더군다나 치사율도 높은 병이고 병원에서는 후유증까지 포함해 완쾌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었다고 한다.

한 때 죽음의 직전까지 갔으나 수술은 성공했고, 병원 입원 투병생활을 이어간다. 그러나 음식은 물론 물도 못 마시고 계속 두통과 고통은 계속되었다고 한다. 수술 및 입원치료 후 2013. 2. 28. J-WAVE의 「TOKIO HOT 100 CHART OF THE YEAR」 시상식 무대에 서면서 복귀했고, 솔로 정규 3집 「Stranger」(2013)가 주간 오리콘 차트에서 최고 2위를 기록하고 10만 장이 팔리는 등 좋은 성적을 거두었으나, 그 해 6월 검사에서 지주막하출혈이 재발한 것이 발견되어 재수술을 받았고, 여전히 입원 생활과 신체적/정신적 고통은 계속된다. 고통이 계속되는 2번의 지주막하출혈 투병 생활 당시, 과거부터 쌓여왔던 그의 좌절, 고통, 고뇌, 슬픔, 분노, 증오, 불안, 절망, 억울, 억압, 우울, 공포, 회의, 소외, 고독, 혼돈, 염세주의, 실성, 광기 그리고 그것들에 대한 경험과 저항극복들은 이 당시 에세이와 곡들에 잘 나타나 있다. 심리적 및 육체적인 죽음의 문턱에 다녀온 경험을 사실적으로 솔직하게,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유머를 섞어 그다지 크게 심각하지는 않게 풀어놓고 있다.
당장이라도 침대 머리 위에 있는 창문으로 뛰어내리고 싶다. 빨리 죽어버리고 싶다. 이런 고문 같은 아픔은 이제 더 이상 그만이고 싶다.
『되살아난 변태』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아아아아아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34]
이 당시의 심정과 생각을 담은 대표적인 곡 중 하나가 바로 지옥이 뭐가 나빠(2013)와 Crazy Crazy(2014)이다. 투병 생활 중에 만든 곡인 지옥이 뭐가 나빠(2013)는 자신의 절망을 호소하거나 본인의 염세주의적 시선을 높여 현실을 한탄하며 암울함과 좌절을 이야기하기보다는, 팝 적인 색채로 '이해 불가능한 현실의 부조리함과 아무런 정당한 이유 없이 극한까지 내몰린 절망'으로부터의 발버둥과 저항과 극복을 상당히 밝은 색채로 노래했다. 투병 생활 중에 자신이 죽겠구나라고 생각이 많이 들었으며, 인생관도 많이 변하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는 완치된 상태이나, 수술들을 한 이후로 기압에 따라 컨디션이 좌우되는 경우가 아주 많다고 한다. # 현재도 계속 뇌검사하러 병원에 가끔씩 간다고.
<rowcolor=#ffffff> 지옥이 뭐가 나빠 2019년 도쿄 돔 라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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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가사 펼치기ㆍ접기 ]
病室 夜が心をそろそろ蝕む
뵤-시츠 요루가 코코로오 소로소로 무시바무
병실에서의 밤이 마음을 좀먹어
唸る隣の部屋が 開始の合図だ
우나루 토나리노 헤야가 카이시노 아이즈다
옆 방에서 울부짖는 소리가 시작 신호야
いつも夢の中で 痛みから逃げてる
이츠모 유메노 나카데 이타미카라 니게테루
언제나 꿈 속에서 고통으로부터 도망치며
あの娘の裸とか 単純な温もりだけを
아노 코노 하다카토카 탄쥰나 누쿠모리다케오
그 아이의 몸 같은 단순한 따스함만을
思い出す
오모이다스
떠올려

無駄だ ここは元から楽しい地獄だ
무다다 코코와 모토카라 타노시이 지고쿠다
소용없어 여긴 애초에 즐거운 지옥이야
生まれ落ちた時から 出口はないんだ
우마레오치타 토키카라 데구치와 나인다
태어났을 때부터 출구 따윈 없었어

いつも窓の外の 憧れを眺めて
이츠모 마도노 소토노 아코가레오 나가메테
언제나 창 밖의 동경하는 것을 바라보며
希望に似た花が 女のように笑うさまに
키보-니 니타 하나가 온나노 요-니 와라우 사마니
희망과 닮은 꽃이 여자처럼 웃는 모습에
手を伸ばした
테오 노바시타
손을 뻗었어

嘘でなにが悪いか 目の前を染めて広がる
우소데 나니가 와루이카 메노 마에오 소메테 히로가루
거짓인 게 뭐가 나빠 눈 앞을 물들이며 펼쳐져
ただ地獄を進む者が 悲しい記憶に勝つ
타다 지고쿠오 스스무 모노가 카나시이 키오쿠니 카츠
그저 지옥을 나아가는 자만이 슬픈 기억을 이겨내

教室 群れをはぐれた 重い空を行く
쿄-시츠 무레오 하구레타 오모이 소라오 유쿠
교실 무리에서 벗어나 낮은 하늘을 날아
生まれ落ちた時から 居場所などないさ
우마레오치타 토키카라 이바쇼나도 나이사
태어난 순간부터 내가 있을 곳은 없었어

いつも窓の外の 標識を眺めて
이츠모 마도노 소토노 효-시키오 나가메테
언제나 창 밖의 표식을 바라보며
非道に咲く花が 女のように笑うさまに
히도-니 사쿠 하나가 온나노 요-니 와라우 사마니
억척스럽게 피어나는 꽃이 여자처럼 웃는 모습에
手を伸ばした
테오 노바시타
손을 뻗었어

作り物で悪いか 目の前を染めて広がる
츠쿠리모노데 와루이카 메노 마에오 소메테 히로가루
가짜인 게 뭐가 나빠 눈 앞을 물들이며 펼쳐지는
動けない場所からいつか 明日を掴んで立つ
우고케나이 바쇼카라 이츠카 아스오 츠칸데 타츠
움직일 수 없는 곳에서 언젠가 내일을 붙잡고 일어서겠어
明日を掴んで立つ
아스오 츠칸데 타츠
내일을 붙잡고 일어서겠어

幾千もの 幾千もの 星のような 雲のような
이쿠센모노 이쿠센모노 호시노요-나 쿠모노요-나
수많은 수많은 별 같은 구름 같은
「どこまでも」が いつの間にか 音を立てて 崩れるさま
「도코마데모」가 이츠노마니카 오토오 타테테 쿠즈레루 사마
「어디까지든」이 어느 샌가 시끄럽게 무너지듯이

嘘で出来た世界が 目の前を染めて広がる
우소데 데키타 세카이가 메노 마에오 소메테 히로가루
거짓으로 된 세계가 눈 앞을 물들이며 펼쳐져
ただ地獄を進む者が 悲しい記憶に勝つ
타다 지고쿠오 스스무 모노가 카나시이 키오쿠니 카츠
그저 지옥을 나아가는 자만이 슬픈 기억을 이겨내
作り物だ世界は 目の前を染めて広がる
츠쿠리모노다 세카이와 메노 마에오 소메테 히로가루
거짓으로 꾸며진 세계는 눈 앞을 물들이며 펼쳐져
動けない場所から君を 同じ地獄で待つ
우고케나이 바쇼카라 키미오 오나지 지고쿠데 마츠
움직일 수 없는 곳에서 너를 같은 지옥에서 기다릴게
同じ地獄で待つ
오나지 지고쿠데 마츠
같은 지옥에서 기다릴게
가사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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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azy Crazy(2014) MV
죽는 것보다 살려고 하는 것이 압도적으로 힘들다. 산다는 것 자체가 고통고뇌로 얼룩진 짐승의 길을 강제로 걷는 행위다. 그러니까 죽음은 열심히 산 사람에게 주어지는 상이 아닐까. (중략) 나는 마지막까지 발버둥치고 발버둥쳐서, 최고의 기분으로 엔딩 크레딧을 봐주겠다고 생각했다.
『되살아난 변태』 (2014)
2014년 2월 6일 일본 무도관(武道館) 라이브 공연인 「STRANGER IN BUDOKAN」 으로 완전히 복귀하고, 슬픈 라이브가 되고 싶지 않아 유머러스함을 넣고 싶어 그의 첫 부캐니세 아키라를 만들어 무대에 올라가기도 했다.

입원 중에 SAKEROCK의 앞으로의 방향성을 생각하기도 했는데, 그 당시 멤버 개개인들의 활동이 본격화되고, 점차 각각의 '싸우고 도전하는 장소'가 생겨,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하고 싶은 것을 알 수 없게 되어갔다고 한다. 그렇게 완치 이후, 밴드 멤버들의 전원 동의 하에 도전적인 방향이 아니라 그냥 즐겁게 부담없이 연주하는 정규 5집 앨범 SAYONARA를 마지막으로 만들고 2015년 6월 료고쿠 국기관 공연을 마지막으로 ‘다음 생을 기약하며’[35] 밴드를 해체하였다.
2015년 SAKEROCK 해체 발표 호시노 겐 코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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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여름, 입원 중에 'SAKEROCK에서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라고 계속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3인 체제가 되고 나서부터 밴드로서의 활동이 잘 되지 않았고, 다음 움직임을 생각하는 동안 멤버 개개인들의 활동이 본격화되면서 점차 각각의 '싸우고 도전하는 장소'가 생겼습니다.


점점 시간은 흘러, 'SAKEROCK에서 싸우는 의미, 활동하는 의미'를 찾아내려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하고 싶은 것을 알 수 없게 되어 갔습니다. '단호하게 해산할 수 밖에 없는 걸까...' 그런 생각으로 베스트 앨범 'SAKEROCK의 계절'에 수록된 'Emerald Music' 뮤직비디오 편집을 하던 중, 과거의 영상에서 바보처럼 웃고 있는 초기의 저희들을 보면서 문득 '이맘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해산한다고 하면, 이미 무리야'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랬더니 갑자기 긍정적인 감정이 생긴 거죠.

'해산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은 아닌가? 해산하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탈퇴한 두 사람을 불러들이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그러면 지금까지 한 번도 만들지 못했던 '오리지널 멤버 앨범'[36]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 다섯 명이서 싸우거나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멤버 전원이 즐겁게 연주하는' 것을 하고 싶다.'

그 때, SAKEROCK에서 진심으로 하고 싶은 일이 발견되었습니다. 멤버 '이토 다이치'와 '하마노 켄타'와 같이 이야기하면서, 해산하는 것을 포함해 찬성해 주었고, 전 멤버인 노무라 타쿠시와 타나카 케이에게 부탁하자, 둘 다 흔쾌히 맡아 주었습니다. 5명의 제작은 정말 즐겁고 농밀하며 긍정적인 분위기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 기세 속에 1집 같은 마지막 앨범 'SAYONARA'가 완성됐습니다.

6월 라이브로 사케록은 5명이서 해산합니다.

5명이서 동시에 끝낼 수 있다는 게 정말 기쁘고, 멤버들한테 너무 고마워요.

그리고 여기까지 오게 된 것도 지금까지 응원해 준 여러분 덕분입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이 멤버로 연주하는 일은 이제 없고, SAKEROCK으로서 할 일은 이제 없지만, 계속 이어지지 않을까? 같은 느낌이 들었고, 그래서 멤버들이 떨어져 있던 시기도 있었지만, 뭐랄까 역시 멤버들은 떨어져 있어도 밴드는 그 소리에 영향이 절대적으로 있다고 생각하고, 떨어져 있던 시기도 같이 음악을 만들고 있다고 저는 계속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뭔가 그렇게 마지막, 다 같이 멤버들이 모여서 마지막에 다 같이 라이브를 할 수 있었는데요. 그래서 그런 의미에서는 앞으로도 쭉 SAKEROCK은 이 밴드 멤버들이구나라는 게 굉장히 느껴졌어요.
호시노 겐의 올 나이트 닛폰 GOLD (2015) #

3.1.3. '옐로우 뮤직'의 대중화 (2015 ~ 2019)

어느 날 라디오 프로그램 게스트로 나왔을 때 '저는 낯가림이 있어요'[37]라고 나를 설명하는 것에 문득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것도 병인 것처럼 어쩔 수 없는 일처럼 말하고 있는 나 자신에게 짜증이 났다.

그때까지 상대에게 사랑받고 싶다, 미움받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너무 강해서 소통하기를 포기했다. 소통에 실패하면서 인간관계를 배우고 성장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했다.

그걸 상대에게 "낯을 가려서...."라고 마치 피해자인양 말하는 것은 "나는 소통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인간이니 그쪽에서 조심하쇼."라고 대놓고 낯부끄러운 선언을 하는 일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두려고 노력했다.
『생명의 차창에서』
<rowcolor=#ffffff> 時よ(시간이여)(2015) MV
SAKEROCK 해체 후 완전히 솔로로 독립한 바로 그 해, 호시노 겐은 아뮤즈로 소속사를 옮겼으며, 2015년에 일본에서 가장 잘 나가는 솔로 가수 중 한 명으로 성장했다. 2015년, 'SUN'으로 홍백가합전의 첫 출장을 달성했고, 12월 2일 발매된 4번째 정규 앨범 YELLOW DANCER가 락인재팬의 헤드라이너로 등장, 첫날 판매량이 6만 장을 기록하더니 셋째날에는 10만장을 돌파하고 주간 오리콘 앨범 차트에서 1위를 달성하는 등 좋은 성과가 이어졌다. 거의 고사한 2010년대 일본 솔로 시장에서, 더군다나 남자 가수는 더 팔리지 않는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판매량이다. 이 YELLOW DANCER 앨범은 2019년에 뮤직 매거진이 선정한 역대 일본음악 100대 명반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파일:45B1C23B-0880-4E08-A6E0-DCBAF6823045.png
2016. 10. 05. 9th Single 「恋」 2019.01. 200만 음원다운로드를 기록했다
뮤직비디오 & 트레일러
2016년 남주인공으로 참여한 드라마인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와 본인이 만든 엔딩곡인 (사랑)이 일본 내에서 전 세대에 걸쳐 모르는 사람이 없고 사회현상을 일으킬 정도로 국민적인 대히트를 친다.

도망부끄의 시청률이 20%를 기록, (사랑)의 실물 싱글 판매량은 31.8만 장, 음원다운로드 수는 200만을 돌파하고, 일명 '코이댄스'가 일본 전역을 강타해 여러 연예인 및 유튜버들이 커버하면서, 호시노 겐은 배우와 뮤지션 양쪽에서 모두 메가히트를 했다. 2016년 하반기는 호시노 겐의 「恋(코이)」RADWIMPS「前前前世(전전전세)」가 양분했다고 할 수 있다. 「恋(코이)」는 2017년 노래방에서 가장 많이 부른 곡 1위를 달성하기도 했다.
Live Tour 2017 “Continues” 트레일러
이후로도 꾸준히 여러 라이브를 하고, 앨범 및 싱글을 발매하는데, 그 곡들도 「恋(코이)」만큼은 아니지만 히트를 치는 등 유의미한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이러한 인기로 2015년과 2016년에 이어서 2017년 홍백가합전까지 3년 연속 출장했다. 또한 일본에서 가장 공신력있는 조사인 ‘2017년 오리콘 일본인 2만명이 좋아하는 아티스트 랭킹’에 9위를 기록하고, 2017 닛케이 텔런트 파워 랭킹 종합 순위는 17위를 기록하며 상위권에 처음으로 진입했다. 2010년대 일본 아이돌 시장의 강세 속에 새롭게 히트 친 남성 솔로 가수가 잘 나오지 않고 있고, 솔로 싱어송라이터 시장에 주목을 덜하는 측면에서 상당히 유의미한 결과를 거뒀다.

그리고 추가로 2017년에 올 나이트 닛폰의 퍼스낼리티로서 처음으로 「갤럭시상 라디오 부문 DJ 퍼스낼리티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2018년에는 일본 저작권협회에서 전년도 CD판매량, 디지털 다운로드, 가라오케, 착신음 다운로드 등을 종합하여 가장 많은 저작권 수입을 올린 곡에 수여하는 JASRAC 금상을 수상, 현재 사잔 올 스타즈와 더불어 소속사 아뮤즈의 주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아티스트가 되었다.이전부터 여러 예능[38]이나 드라마에 꾸준히 참여해왔기에, 그렇게 호시노 겐은 2016년부터 2019년도까지, 일본 남성 솔로 싱어송라이터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일본 내에서 건재했던 쟈니스 사무소 소속 아이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일본 내에서 엄청난 인기를 가지게 되었다.[39] 그리고 이미 스타가 되어버린 후 출시하는 5번째 정규 앨범 Pop Virus는, 앨범 발매 전부터 대중들의 엄청난 기대를 모으게 된다.
」, 「Family Song」,「アイデア」등이 포함된 5번째 앨범인 『POP VIRUS』는 호시노 겐에게 최초의 도달점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작『YELLOW DANCER』에서 시도한 SOUL, R&B와 J-POP의 융합이라는 주제를 더욱 밀어붙여 현재 진행형인 서양음악 트렌드 (특히 참신한 리듬의 어레인지, 중저역을 강조한 사운드 메이크업)와 맞물리면서, 일본만의 팝 음악으로 승화시킨 'POP VIRUS'는 폭넓은 층의 청취자를 즐겁게 하는 동시에 마니아적인 음악팬들을 신나게 하는 이상적인 확산세를 보였다. 전국 5대 돔 투어 「호시노 겐 DOME TOUR 2019 POP VIRUS」에서도 엔터테인먼트성과 음악성을 공존시킨 무대를 펼치며, 호시노 겐은 완전히 일본을 대표하는 아티스트 중 한 명이 되었다. #
2018년 12월에 출시한 정규 5집 「POP VIRUS」가 주간 빌보드 재팬 앨범 랭킹 및 오리콘 앨범 랭킹 4주 연속 1위를 달성하고, 50만장 이상이 팔리며, Billboard Japan Hot Albums 2019년도 연간 2위[40], 오리콘 2019년도 연간 4위[41]를 기록하는 등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또한 발매 후 2019년 2월부터 일본 5대 돔에서 라이브 투어를 진행했다. 33만명을 동원한 '5대 돔 투어'를 예매 당일 전석 매진시키며 일본 내에서 대중적으로 유명하고 인지도가 높은 연예인 중 한 명으로 완전히 자리잡았으며, 역대 일본 남성 솔로 가수로서는 다섯 번째 5대 돔 라이브 투어 달성이다. 그리고 2019년 3월 스페이스 샤워 뮤직 어워드에서 4개의 트로피를 거머쥔 최초의 아티스트가 되었다.
POP VIRUS DOME TOUR도쿄 돔 두번 째 날은 전부 녹화되어 넷플릭스로 공개되었다
이후 전 세계 스트리밍을 시작하고, Pop virus 월드투어를 진행하며, 애플 뮤직의 라디오 Beats 1에서 일본인 최초로 프로그램 호스트를 맡았었다. 호시노 겐이 선곡을 하고, LA의 Beats1 스튜디오에 가서 현지 스태프들과 함께 제작한 'Pop Virus Radio'가 그 프로그램. 이 라디오에서 호시노 겐은 여러 아티스트들을 샤라웃하며 자신의 창작활동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흉내를 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영혼과 저의 영혼을 공명시켜 저의 음악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나의 문화, 나의 역사 속에서 나의 음악을 만들어 가고 싶다고 항상 생각하고 있습니다.

3.1.4. 번아웃 증후군과 재시작 (2019 ~ 2023)

그러나 호시노 겐이 목표로 하고 있던 것은 '일본을 대표하는 아티스트'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가능한 한 순수하게 음악을 즐기고 설레고 그것을 모든 청중들과 공유하는 것이야말로 음악가로서의 그의 동기이며, 활동의 규모가 확대되는 것은 '결과'일 뿐이다. 그리고 신작 EP 『Same Thing』은 『POP VIRUS』 이후 그가 다시 새로운 자극을 찾아 움직이기 시작한 것의 증거이다. #
2019년 10월 4일 호시노 겐 인스타그램 코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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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0일 돔 투어가 끝난 그 순간, 1집 '바보의 노래' 제작부터 줄곧 이어져 온 제 음악이 하나의 목표를 맞은 느낌이 되었습니다. 그동안의 활동 모두를 쏟아부은 앨범 'POP VIRUS' 제작, 그 이름을 딴 5대 돔 투어를 모두 해내는 순간 강렬한 성취감과 기쁨과 함께 제 모드가 덜컹거리며 변화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지금까지, 다양한 음악에 영향을 받으면서도 흉내가 아닌, 일본인인 저의 필터를 확실히 통한 '호시노 겐의 음악을 만든다' 는 강한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프로듀싱도, 작사·작곡·편곡도 모두 저 혼자 해왔고 콜라보레이션도 일절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왠지 새로운 바람이 부는 것처럼 문득, "사람과 함께 음악을 만들고 싶다", "나의 필터와 사랑하는 누군가의 필터를 겹쳐, 거기에 음악을 흘려 보내고 싶다". 그런 생각으로 변화한 것입니다.

만남이란 미래입니다. 다양한 멋진 사람들과 만남으로써 저는 미래를 열어왔습니다. 앞으로는 다시 거기서부터 나라의 벽을 없애고, 일본도 세계도 관계없이 '이웃'으로 만들어 거기서 순수한 음악을 연주하는 것. 이게 제가 지금 하고 싶은 거에요. 만남과 연결의 음악을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Same Thing』이라는 EP는 제게 있어서 '놀이'기도 하고, '도전'이기도 하며, 음악가로서 외침입니다. 무서울 정도로 두근두근거리는 느낌과 함께, "음악인생, 아직도 이렇게 재밌는 것이 또 있을까?"라는 즐거운 자극을 늘 느껴가면서 제작한 멋진 4곡입니다.
5대 돔 투어 및 월드 투어 이후, 호시노 겐은 번아웃 증후군을 겪었고, 음악을 이제 그만둘까 생각하다가, 2019년 Same Thing EP를 내며 초기부터 작사, 작곡, 편곡, 프로듀싱까지 혼자 해왔던 이전과는 다른 방향으로 활동에 변화를 주고 있다. 그래서 이 EP는 그가 이전까지 달성했었던 음악적, 상업적 성공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지만, 그의 행보와 마음가짐에 있어서만큼은 상당히 중요한 EP이자 전환점이기도 하다. 자세한 내용은 Same Thing 문서 참고. 이후 여러 국적의 아티스트들과 콜라보를 하거나, 리믹스 음원을 내는 등 다양한 협업을 하고 있다.

2020년, 한창 코로나 사태가 터졌을 당시, '코로나 때문에 실제로 만날 순 없지만, 마음이라도 그러한 기분을 내는 컨텐츠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うちで踊ろう(집에서 춤춰요)를 무료배포 했으며, 여러 다양한 커버를 해달라고 추천하였다. 이에 따라 일본 국내에서 여러 쇼츠 및 릴스가 나올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고, 일반인 및 유튜버 뿐만 아니라 오오이시 마사요시, 카메다 세이지, 미우라 다이치, 바나나맨 등 여러 아티스트 및 연예인들도 챌린지에 참여했을 정도로 당시 일본 내에서 음악 밈으로 작용했다. 11월 23일에는, 잡지 GQ 재팬에서 매년 선정하는 GQ MEN OF THE YEAR의 일원으로 선정되었다.
파일:gen hoshino nintendo.jpg
파일:호시노 겐_불가사의.png
<rowcolor=#ffffff> 創造 (창조) 不思議 (불가사의)
코로나 사태 당시, 이전과 같은 활동이 불가능해져서 이 기회에 DAW를 사용한 음악 제작과 키보드를 사용한 작곡을 제대로 시작했다. DAW 소프트웨어 자체를 입수한 지 15년 정도 됐는데 녹음기로만 쓰고 있어서, 제대로 하고 싶다고는 생각했지만 쉽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닐 테니까 차분히 임할 시간이 없으면 안 될 것 같았다고. 그런 타이밍에 코로나 사태가 터지고 나서야 비로소 손을 대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DAW를 통한 음악 제작방법을 터득하면서 만든 곡이 折り合い(타협)과 創造(창조)이다. 더 나아가 不思議(불가사의)나 CUBE도 이런 상황에서 탄생하였다.
Q. 예전에 호시노 씨는 'Same Thing'을 만든 것의 수확으로 '음악은 즐겁구나 하는 굉장히 순수한 것을 체험할 수 있었던 것'을 꼽았습니다. "그것은 지금 제 안에서 매우 중요한 것이고, 여기서 다시 출발선이 그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만약 이 후 거센 파도가 몰아쳐와도 바로 이곳으로 돌아올 수 있는 안도감이 매우 큽니다"고 말했습니다. 새로운 문을 연 '창조'와 '불가사의'를 완성한 현재 호시노씨의 텐션이나 동기는 이야기한 「Same Thing」때의 감각의 연장입니까? 아니면 또 다른 장소에 서 있는 느낌이 있습니까?

호시노 겐: 또 다른 장소인 것 같아요. 'Same Thing'에서 얻은 것들을 'Same Thing'과 같은 선상으로 표현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고, 'Same Thing'의 이전으로 돌아가도 안 된다고 생각했고요. 다른 곳으로 가야 Same Thing에서 얻은 걸 발휘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렇게 사람을 만나면서 받은 것들을 그대로 같은 무대에서 꺼내 버리면 그냥 반복이 되는 것 같아서요. (중략) 예를 들어 이게 'Same Thing' 이듬해인 2020년이었다면 아직 같은 지평에 있었을 가능성도 있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코로나 때문에 1년 스케줄이 미뤄졌고, 그 사이에 다른 무대로 가는 기분 같은 걸 얻을 수가 있었습니다. 이번에 그런 상태로 제작에 임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네요.
호시노 겐, 지금까지와는 다른 음악의 지평으로. 「창조」와「불가사의」에서 말하는 '새로운 호시노 겐'
그리고 2021년 5월 19일 아라가키 유이와의 결혼 또한 발표하여 일본 국내는 물론 한국에서까지 화제가 되었으며, 9월 2일에는 Shang-Chi and the Legend of the Ten Rings: The Album의 수록곡 중 하나이자 Zion.T와의 합작곡인 Nomad가 공개되었다.

호시노 겐이 이전까지 대히트할 수 있었던 곡들과 다른 새로운 도전의 연속이었으나, 빌보드 재팬 HOT 100 전체 1위를 찍거나, 새 싱글인 不思議/創造(불가사의/창조)가 첫날에만 약 10만장이 판매되고, 이런저런 일이 많아 모델프레스 선정 2021년 상반기 가장 활약한 연예인 1위, 2021 닛케이 텔런트 파워 랭킹 뮤지션 3위[42]에 뽑히기도 했으며, GQ재팬 2021년 6월호의 표지와 특집을 장식하기도 했다.

2022년 NHK E에서 새로운 교양 프로그램 호시노 겐의 음악 공론을 런칭하고 진행했으며, 포트나이트의 사운드웨이브 시리즈에 참여하는 등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여러 출연도 좋은 성과를 보이고 있었다.

스파이 패밀리 애니메이션 1기 1쿨 엔딩곡으로 발매한 喜劇(희극)은 가혹한 현실과 그 속에서 태어나는 소소한 사랑에 대해 그려 첨예성과 포용력이 넘치는 사운드에도 호시노 겐의 세심한 고집이 담겨 있어 그의 새로운 시도를 상징하는 새로운 대표곡 중 하나가 되었으며, 아내인 아라가키 유이가 등장하는 고스트북 오바케즈칸의 주제곡으로 異世界混合大舞踏会(이세계혼합대무도회)를 발표했다. 다만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심적으로는 힘들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Q. 첫머리에 2022년은 '힘든 한 해였다'고 하던데, 구체적으로 어떤 게 힘들었나요?

A. 날마다 충실히 보내고, 생활도 일도 잘 진행되고 있어도, 뭔가 막연히 저의 존재 의의 같은 생각에 홀린 듯이 잠겨버려서. '난 이 세상에 필요 없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아서. 좀처럼 사람을 만나고 싶지도 않았어요. (중략) 또 이때까지 제가 살아갔던 방식은, 사물의 사고방식이나 이렇게 하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거라는 이론으로 제어해왔었는데 전혀 통하지 않게 되었죠. 시대가 급변했다는 느낌이랄까? 그리고 코로나19에 감염되고 더 우울해지고... '이래선 안 돼, 바꾸자, 바뀌자'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중략) 그리고, 라이브 콘서트를 못했던 게 너무 크고, 나와 바깥세상의 접점이 물리적인 게 아니라 그저 정보로 되어버려서.. 그게 한계가 왔고 '이러면 안 되는구나'하고 지난 1년에 걸쳐 배워갔다고나 할까. (후략) #
2023년 1월에는 Gen Hoshino presents “Reassembly”라는 이름으로 팬클럽 전용 단독 콘서트를 가졌으며, 3월 18일에 LIVE the SPEEDSTAR 라이브에 참여했고, TBS에서 중계되는 2023 부다페스트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 2022 항저우 아시안 게임 경기 중계 테마곡인 生命体(생명체)를 발표했으며,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예능인 라이트하우스에 고정 출연진으로 출연하고 그 프로그램의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을 담당했다.
파일:UiHSH.jpg파일:서머소닉 2023 호시노 겐.jpg
Gen Hoshino presents “Reassembly” SUMMER SONIC 2023 'So Sad So Happy'
또한 8월에 SUMMER SONIC 2023의 비치 스테이지에서 'So Sad So Happy' 라이브 무대 공연을 큐레이트하고 프로듀싱 한 동시에 진행 MC도 하면서 여러 뮤지션들과의 합동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이 라이브 영상은 녹화되어 12월 29일 오후 8시에 트위치 아마존 뮤직 재팬 채널에서 전달되었다. 그렇지만서도 2023년 초반에 여러 가지 규제가 해제된 타이밍 즈음부터, 긴장상태로 지속된 마음이 안심이 되어 확 풀어져버려 마음에 감기가 든 것 같다고 여러 인터뷰나 라디오에서 이야기했으며, 심적으로 위험하다가 2023년 말이 되어서야 건강해진 것 같다고 밝히기도 했다. # 그리고 12월 27일, 테마곡 4곡을 모은 싱글 13집 光の跡/生命体(빛의 흔적 / 생명체)를 발표했다.

3.1.5. 2024년 ~

2024년, 호시노 겐의 NHK 관 프로그램(이름을 건 방송) '오겐상과 함께'의 스핀오프적인 오겐상의 서브스크당이 정규 방송 결정이 나서 1월부터 3월까지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덧붙여, 올해 앨범을 만들고 싶다는 본인의 희망사항을 생일에 이야기하기도 했다. 이후 '오도리의 올 나이트 닛폰 in 도쿄 돔'에 스페셜 게스트로 깜짝 등장해 와카바야시 마사야스와 콜라보 공연을 펼치고 간단한 토크도 했다. 곡은 이 두 사람이 같이 콜라보했었던 OrangePop Virus (feat. MC waka)의 도쿄 돔 어레인지 버전. # 또한 4월 11일에는 도쿄에서 진행된 티파니앤코의 전시 행사인 Tiffany Wonder에서 오프닝 이벤트 DJ로 약 90분간 디제잉을 하고 행사장 BGM을 담당하는 선곡 셀렉터로 참여했다.[43] 이 두 행사 모두 대외적으로 세간에 미리 알려진 행사가 아니라 상당히 화제가 되기도 했다.
파일:호시노 겐_티파니 원더(3).jpg
파일:호시노 겐 비바락 2024.jpg
Tiffany Wonder 오프닝 이벤트 VIVA LA ROCK 2024
이어 GQ재팬 2024년 6월호(5월 발매)에 표지 및 특집으로 등장했으며 #, 5월 4일에는 VIVA LA ROCK, 그리고 8월에는 SUMMER SONIC TOKYO 2024에 참여할 예정이다.

3.2. 음악적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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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로서 지금까지 발표한 극히 일부 곡들을 제외한 거의 모든 곡들과 음반들을 직접 작사, 작곡, 편곡, 프로듀싱했다.[44] 멀티 인스트루멘탈리스트이기도 하고, 인디 밴드 SAKEROCK의 프로듀서 역할을 하기도 했었으며, 이후로도 전반적인 편곡 및 프로듀싱을 담당하다보니, 기타와 건반, 그리고 타악기 및 전자 악기 쪽은 호시노 겐 본인이 다룰 수 있는 악기가 상당히 다양하다. 다룰 수 없는 현악기와 관악기 등은 편곡할 때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는 편.

가장 먼저 시작한 악기가 드럼이라 기본적으로 리듬과 비트를 중요시하며, 전체적으로 음악의 사운드와 악기와 리듬을 상당히 복잡하거나 컬러풀하고 풍부하게 사용하면서도 여유롭거나 부담없이 들을 수 있다[45]는 큰 특징이 있다. 애초에 그의 맨 처음 활동 시작 및 데뷔 초기(2000년) 장르는 이지 리스닝의 하위 장르인 엑소티카(Exotica)[46]금관악기, 현악기, 건반 악기, 타악기 등 세계 여러 다양한 악기를 여럿 사용하고 세계 여러나라 음악[47]에서 영향을 받은 얼터너티브한 팝 음악, 그리고 영화 및 무대에 사용되는 음악인 오리지널 스코어였기도 하다. SAKEROCK이 전반적으로 구성과 재즈 구성의 인디 밴드(각각의 멤버들이 여러 악기를 할 수 있었다)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밴드의 초~중기작들이 록 또는 재즈가 아닌 팝 음악으로 분류된 요인이기도 하다. 인디 밴드 시절의 곡들이 전반적으로 복잡하고 여러 장르가 섞여있으며 뭔가 어깨 힘 빠진 분위기의 곡들이 많았는데[48], 그 이후 본격적인 솔로 활동에서는 다양한 악기가 변칙적으로 들어가거나, 미묘한 변화를 계속 주면서 곡이 진행되지만 곡이 쉽게 술술 들리는 안정감을 준다. 시대에 따라 차이가 있긴 하지만, '전반적인 건강함과 담백함 속, 그의 고집이 담겨있는 리듬과 비트와 이색적인 사운드'가 그의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

자신의 이야기가 너무 암울하고 설명을 나열하는 듯한 가사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 가사에 본인의 과거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넣는 경우가 거의 없다시피 하며, 그 대신 '본인의 이야기에 기반하여 생성된 가치관'으로, 본인이 느끼는 풍경과 세상을 담아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마치 시처럼 특정 주제에 대해 그가 바라보는 이미지(심상)을 떠올리게 한다. 문인다운 시적인 가사로 '문과 여고생들의 아이돌'이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다.

팝 적이면서도 댄스 음악의 요소를 넣어 몸이 가볍게 움직이는 곡들은 많지만, 그 중 일부에는 특색이 강한 춤 또는 안무가 들어가 있다. 일본의 국민 춤 중 하나로 자리잡혀 수많은 커버 영상을 파생시킨 유명한 2016년의 '코이댄스' 외에도 여러가지 예시가 있다.[49] 이와 관련하여 가사에 '춤추는, 춤추자'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시적인 정취나 메세지성/상징성을 내포한 가사가 많기에 이 단어 또한 특정 뜻을 함축한 표현으로 종종 쓰인다.

본인이 직접 언급했듯이 가창력이 좋은 보컬리스트는 아니다. 그러나 음악 생활을 계속 해오며 점점 실력이 일취월장하고 음역도 넓어졌다. 고음은 대체로 가성으로 처리하고, 보컬이 고음을 질러 대중들에게 기량을 마음껏 뽐내는 노래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며, '읽어주기 창법'을 자주 사용한다.[50] 중저음이 꽤나 편안하게 다가오는 음색을 가지고 있지만, 최근에는 가성을 자주 사용한다.

그러나 청중들이 잘 알아차리지 못하는 다른 의미로 보컬의 기량이 사용되는데, 대체로 가수가 악기 중 하나처럼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목소리를 포함하여, 코러스 또한 본인이 참여해 상당히 다양하게 사용할 때가 많은데, 호시노 겐은 예전 밴드에서 트롬본마림바의 음색을 돋보이게 해주는 코러스(서브 보컬)을 자주 했기도 하고[51], Dead Leaf 등이나 (최근의 작업물 중에서는) 異世界混合大舞踏会(이세계혼합대무도회)나 生命体(생명체)에서 그 예시가 뚜렷하고 확실하게 드러난다. 그 외에도 자주는 아니지만 반주의 박자와 보컬의 박자가 다른 경우가 가끔 있어 어긋나게 부르면서도 상술한 그의 특징 때문에 쉽게 들리며, 라이브할 때 자신의 목소리 음량을 곡의 진행에 맞춰 줄일 때도 종종 있다. 전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악기나 사운드에 더 집중하는 곡들이 많은 편.

깨끗한 음질로 전할 수 없는 것이 있다고 생각해 노이즈가 맞는 곡이라면 음악에 일부러 잡음이나 노이즈를 남기거나, 역재생을 넣을 때가 있다. 특정 물건의 소리나[52], 녹음 및 믹싱을 잘못했을 때의 그 이질적으로 튀는 공기 소리 같은 것[53]이나 악기나 여러 사운드들의 역재생이 자세히 들어보면 군데군데 숨어있다. 그 외에도 여러 실험적인 요소도 집어넣는 경우가 많은데, 밴드 시절부터 생활 소음이나 여러 효과음과 함께 녹음해보는 건 물론이고, 도입부를 본인의 핸드폰으로 녹음한 걸 곡에 그대로 쓰거나, 노래 중간에 기타 솔로 대신 기타 튜닝 소리를 넣는다던가, 대화소리를 넣어본다는 등이 있다.

R&B, 소울, 힙합 등 블랙 뮤직으로부터 받은 영향을 J-POP에 녹여내어 옐로우 뮤직이라는 자신의 장르를 개척해나가고 있었다고 한다. 블랙 뮤직을 그대로 재현하고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필터를 거쳐서, 일본인에게 친숙한 음악으로 승화시킬 수 있도록, '옐로우 뮤직' 이라는 장르를 독자적으로 창출하는 것을 추구하고 있었다고. 정규 5집인 Pop Virus 이후로 그는 '옐로우 뮤직'이라는 '단어'가 상당히 편협한 시각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의 무지했음을 인정하며, 현재는 더 이상 이 단어를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지는 않으나, 그가 만들어내는 음악은 계속 현재 시대상을 반영하여 그가 영향을 받은 다양한 음악 장르를 다양한 접근 방식으로 재해석하거나 계승하고 있다.

자신의 히트 친 음악을 반복하는 걸 '뭔가 설레지 않는다'며, 비록 대중적인 반응이 좋지 않더라도, 여러 음악적 도전 및 도전하는 방향성의 다양화를 좋아하며 꾸준히 많이 하고 있다. '시대는 항상 변화하고 있고, 내가 하는 음악이 똑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는 걸 좋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그의 가치관이 반영된 부분. 가장 대표적인 예시로, 같은 '가볍게 춤추기 좋은 팝 적인 곡'으로 의뢰가 들어와 제작에 착수했던 (코이)와 異世界混合大舞踏会(이세계혼합대무도회)는 전혀 다른 사운드를 보여주고 있다.

3.3. 음악 변천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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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디스코그래피 및 기타 악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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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관련 문서 아이콘.svg   관련 문서: SAKEROCK/디스코그래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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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노 겐 특정 노래 (발매일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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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라이브

3.5.1. 공연 및 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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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2. NHK 홍백가합전

호시노 겐의 출장과는 별개인 오겐상의 홍백가합전 무대는 이 문서를 참고.
<rowcolor=#fff> 연도 출장
횟수
곡명
2015 SUN
2016 2 (사랑)
2017 3 Family Song
2018 4 アイデア (아이디어)
2019 5 Same Thing
2020 6 うちで踊ろう(집에서 춤추자)
2021 7 不思議 (불가사의)
2022 8 喜劇 (희극)
제73회 홍백 라이브 풀 영상 (공식 유튜브)
2023 9 生命体 (생명체)
제74회 홍백 라이브 풀 영상 (공식 유튜브)
여담이지만 유튜브에 라이브 풀 영상이 올라오는 상당히 이례적인 경우이다. 그가 최근에 출연한 SONGS의 무대도 풀영상이 올라와 있다.

3.6. 흑인음악과 J-POP의 일체화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개념적인 내용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호시노 겐/음악적 특징 및 가치관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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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로우 뮤직과 변화 부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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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호시노 겐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 그는 캐치함을 구실로 한 변태 뮤지션, 말하자면 센스 덩어리다. 일본과 서양을 불문하고 여러가지 음악을 흡수해, 그것을 제대로 팝에 담아내는 뮤지션. 누구나 하고 싶어도 잘 할 수 없는 것을 해내고 있는 것이다.

뮤지션은 대부분의 경우 일반인보다 더 많은 음악을 듣고 있다. 재즈, 클래식, 펑크, 일렉트로니카, 민족음악 등등. 그리고 그걸 그대로 아웃풋하고, 결과적으로 팔리지 않는 패턴이 대부분이다. 일본과 해외는 음악적 토양이 전혀 다르고, 대다수의 뮤지션들은, '해외에서는 저렇게 센스 있는 음악이 팔리고 있는데 왜 일본에서는 아직까지 이해되지 않는 것일까?'라고 대체로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럼 재즈나 클래식, 일렉트로니카 등을 일본에서 이해되는 팝에 담아내면 된다. 그런데 그걸 대중적으로 히트시키기는 정말 어렵다. 그러나 호시노 겐은 그것을 계속 해 버린다. 일본인 누구나 마음을 여는 멜로디를 만들어 내고,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을 흥분시키는 어레인지를 넣어 오는 것이다.

호시노 겐의 최강 시대가 될 수 밖에 없다고 생각되었던 참에 출현한 것이 요네즈 켄시. 여기서부터는 이들의 신곡에서 눈을 뗄 수 없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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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 VIRUS 앨범은 "'음악적으로 실험적인 노래'는 대중이 좋아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단순한 변명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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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뮤직을 흡수하거나 차용하거나 해서 고유의 음악적 정체성으로 구축하는, 일본 비주류 및 인디음악씬에서 왕성하게 불고 있던 움직임'에 호시노 겐 또한 그 일원이었다. 그보다 더 뛰어난 음악성을 가진 음악작품들은 인디씬에 많지만, 호시노 겐은 '옐로우 뮤직'이라는 개념을 앞세워, 기존 블랙뮤직에서 그만의 필터를 통과시켜 독자적인 해석을 가미한 동시에 일본의 대중음악 및 상업음악적 색채까지 적절하게 추가하여 일본의 일반 대중들과 매니아적인 음악팬들을 모두 고려한 최대공약수적인 음악을 개척해나갔다.

2011년 싱글 1집의 수록곡인 湯気(수증기)를 시작으로, 2013년 싱글 6집의 곡인 地獄でなぜ悪い(지옥이 뭐가 나빠)까지 단순히 '취미'에 비슷하게 도전해오다가, 지주막하출혈 완치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된 그의 음악 생활인 싱글 7집 Crazy Crazy/桜の森부터 정규 4집 YELLOW DANCER를 거쳐 정규 5집 Pop Virus까지의[55] 그 결과물들은 그의 목표를 보여주며 꽤나 성공적이었다. 이윽고 당대 일본의 아이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중적 네임드 팝 아이콘이 되었으며, 여럿 후배 아티스트들에게 영향을 주거나 샤라웃을 받는 뮤지션이 되었다. 그는 현재, 이전까지 자신이 내세웠던 '옐로우 뮤직'이라는 단어가 상당히 편협한 시각이었다는 것에 대한 후회를 하고 있지만, 이 단어와는 별개로 실제로 이 당시 그의 작업물들은 상업적 대중 음악씬은 물론이고, 인디 음악씬을 포함하여 설명할 때도 종종 사용되는 예시이다.
cero의 「Obscure Ride」와 호시노 겐의 「YELLOW DANCER」, 이 2편은 양자의 디스코그래피에 있어서 분명한 전환점이며, 블랙뮤직의 흡수에 크게 방향을 튼 기념비적인 작품 중 하나라고 하는 공통점을 가진다. (중략)

호시노 겐의 『YELLOW DANCER』와 더불어 cero의 『Obscure Ride』의 선행곡의 제목이 'Yellow Magus'였다는 것은 매우 시사적인 동시성 현상이지만, 옐로우라고 의식적으로 자칭함으로써 블랙뮤직에 대한 거리감을 강제로 해방시킨 것, 또 그 대담함과는 달리 사운드 창조를 쿨하게 마주한 것, 양자의 그러한 도전이야말로 돌파구가 되어,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일본 팝 음악의 지평을 개척해 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Obscure Ride』와 『YELLOW DANCER』에 깃든 반J-POP적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악곡 전개나 사운드 메이킹, 전자에 감도는 도시·도쿄의 느낌이나, 후자에 달라붙는 가요의 맛이 동거하는 모습은, 지극히 앰비밸런스[56]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2023) 연이어 출현하는 카오틱하고 팝적인 소리를 내는 젊은 음악가들의 삐뚤어진 작품을 접하면 이 당시 갑자기 생겨난 이질적인 작품군이 상기되는 것이다. #
호시노 겐이 POP VIRUS(2018)로 그린 '팝'은 혁신적인 것이다. 타이틀 곡인 'Pop Virus'에서 적은 '새기는 한 박의 영원을'이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번 작품은 비트가 음악을 형성한다는 것에 특히 의식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블랙 뮤직을 독자적인 해석으로 자신의 음악에 도입하면서, '옐로우 뮤직'을 만들어 나간다고 하는 호시노 겐의 대처. 그 블랙뮤직 자체가 애초에 시대와 함께 변해가는 것임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옐로우 뮤직' 또한 진화해가는 것을 강렬하게 느끼게 하는 앨범이기도 하다. 그리고 호시노 겐은 당연한 듯 힙합 비트를 민감하고도 자연스럽게 팝과 댄스 뮤직에 도입해 왔다. (중략)

시대를 비추며 변화를 거듭해 온 비트의 트렌드. 그러나 거기에는 변함없는 블랙 뮤직의 유전자가 이어져 오고 있다. 그것이야말로 전세계에 계속 확산되는 '팝'의 '바이러스'라고도 할 수 있다. POP VIRUS는 그러한 마음이 담긴 앨범이라고 생각한다. 순수종보다 잡종이 생명력이 강하도록, 「YELLOW DANCER」를 거쳐 탐욕스럽게 하이브리드의 사운드를 요구해 가는 것으로, 이번에 호시노 겐이 확산하려고 하고 있는 바이러스는 앞으로도 또 변이, 진화, 강화해 나갈 것이 약속되어 있는 소리다. #
호시노 겐이 몇 년 전 ‘YELLOW DANCER’(2015)와 ‘POP VIRUS’(2018)를 통해 부단히도 J-POP과 블랙뮤직의 일체화를 꾀했던 것처럼, TOMOO의 첫 정규작 ‘TWO MOON’(2023) 역시 이 리드미컬한 음악적 유산을 자연스럽고도 사뿐히 일본의 정서 위에 덧대어 놓는다. (후략)
- 황선업 대중음악평론가 #

3.7. 상당한 행동력과 작업량

호시노 겐은 어떤 사람인가? (중략) 제가 대표이사로 있는 소속사인 KAKUBARHYTHM[57]에서는 겐군의 음악 전반의 일만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음악에 한정된 이야기를 하자면, (중략) 정말 음악과 정면으로 부딪치고 있습니다. 그다지 열정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사람이지만, 마음은 굉장한 끓어오름과 하고싶은 일이 넘쳐나곤 합니다. 옛날에도 "카쿠바리씨, 이런 걸 하고 싶어요"라고, 당시의 우리에게 있어서는 조금 큰 목표도, 실제로 곧바로 실행해보고 달성해 오거나 해요. (중략)

재능도 물론이지만 자신 안의 목표를 넘어서려는 노력과 행동력과 확고한 의지가 있습니다. 아, 몇 번이나 들을 수 있는 악곡의 퀄리티와 내구성, 절묘한 어레인지이기도 하기 때문에 그것도 필수로 주목할 점입니다.

정말 잇달아 아이디어도 나오고, 작품을 재미있게 하는 것, 작품으로서 얼마나 좋게 할 것인가 하는 데에 타협은 일절 하지 않습니다. 작품이 좋아진다면, 토가 나와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부딪힙니다. 그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기쁘게 받을 수 있는 즐거움이라고 할까, 전해져 가는 것의 중요성도 이해하고 있고, 소중히 여기는 사람입니다.

작년 9월 정도에 뮤직비디오 촬영을 밤새 한 후 아침에 '데니스'에서, 겐 군과 '궤도 수정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겐군은 "역시 끝까지 해낼 수 있지만, 그만큼, 냉정하게 궤도 수정도 확실히 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이야기해서, 이 밸런스 감각이야말로 호시노 겐이라고, 소속사 사장이 소속사 아티스트를 너무 칭찬하는 감상이지만(웃음), 굉장히 감탄하며 영향을 받아 '담대하게 하면서, 궤도 수정도 확실히!'를 사훈으로 했던 것입니다(웃음).
POPEYE 2013년 3월호
'뭔가 특정 일을 알아가본다던가, 할 때는 업무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 제일이다'라고 하는 제 지론이 있어서요. 저는 게으르기 때문에 업무가 아니면 잘 하지를 않아서(웃음). (중략) 또 저한테 하는 버릇이 있는데, 저에게 압력을 가한다고나 할까요. 그래야 제대로 여러 가지를 배울 수 있을 것 같아서요. #
그가 이때까지 걸어온 행보 때문에 세간에서는 그의 끈기와 행동력 자체를 그가 원래 가지고 있는 예체능적 재능보다 더 크고 높게 평가하고 있다.

여러 일을 하는 멀티 엔터테이너로서 연예계에 자리잡았음에도 불구하고, 타 전업 아티스트들이나 싱어송라이터들의 작업량에 꿀리지 않을 정도로 작업량이 많으며, 일본 내 최일선에서 활동하고 있는 연예인 중 한 명이 되어버린 이후에도 계속해오고 있다.

작사, 작곡, 편곡, 프로듀싱을 직접 계속 하고 있고, 라디오 진행, 집필, 본인이 진행하는 여러 방송, 영상 기획 및 연출, 이름을 밝히지 않은 사운드클라우드 및 유튜브 채널과[58] 광고 및 예능까지 하고 있기도 하며, 필모그래피는 같은 세대의 전업배우에 비하면 조금 적은 편이지만, 배우업도 계속 하고 있다. 또한 팬들과의 이벤트나 공연 라이브, 토크 스트리밍 라이브도 종종 하고 있으며 콜라보나 협업 하는 사람들 또한 그의 멀티 엔터테이너적 행보 때문에 여러 방면에 걸쳐있다.

더군다나 연기 활동은 그 배역에 대한 해석과 몰입 때문에 머릿속에 있는 풍경과 이미지를 담아내는 그의 음악 제작 활동과 병행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인지 喜劇(희극)을 만들고 있었던 당시 '17세의 제국'이라는 짧은 드라마에 참여했는데 이 드라마 촬영 당시에는 희극 악곡 제작을 하나도 잘 할 수 없었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喜劇(희극) 속 풍경 및 인물들과 17세의 제국에서 그가 맡았던 '타이라 키요시' 배역은 완전히 정반대의 성향[59]인 것도 한몫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3년으로 솔로 데뷔 13년 차인 그의 디스코그래피는 리믹스나 피쳐링, 콜라보, 음원으로 내지 않은 CM음악 등을 제외하고 '정규 5개[60]에, EP같은 곡 횟수를 가진 싱글 13개, 디지털 EP 2개, 디지털 싱글 9곡'이다. 물론 싱글 수록곡 중 일부가 정규 앨범에 포함되기도 하지만. 인디밴드 활동을 포함하여 20년을 보면 여기에다가 밴드 명의로 발매한 '정규 6개, 미니 앨범 1개, 사운드트랙 EP 5개'가 추가되는 셈이다. 거기다가 현재까지도 1년에 한 곡은 어떻게든지 무조건 만들어야하는 소소한 이벤트도 있다.

또한 호시노 겐의 초~중기 싱글 수록곡들 중에는 'House ver.'이라고 표시된 곡들이 존재하는데, 음악 장르의 하우스가 아니라 '집에서 혼자 하루만에 만들었다'는 표시이다. 솔로 초기 예산이 없었을 때 '어떻게 하면 싱글 앨범의 곡 수를 늘릴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노 게런티로 집에서 혼자 만들어본다는 게 하우스 버전의 기원이며, 하룻밤 사이에 순발력으로 만드는 그런 걸 자신만의 룰로 정했다고 한다. 이 시리즈의 곡들은 극초기 곡들을 제외하면 어쿠스틱 기타 소리와 TR-808소리가 같이 나온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61]

고등학교 시절 독립 후부터 여러 아르바이트, 밴드 생활, 프리랜서 배우, 집필 다 병행한 건 물론이고, 뜨기 전까지 '재능이 없다'와 '하나에만 집중해라'는 말을 자주 들었었지만, 그때 당시 소속사에는 '이런 일이 직접 왔다' 라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스스로 직접 발로 뛰며 일을 찾고 일을 하고 있었다는 일화도 있다. 다만 이런 행동력이 그에게 있어 안 좋은 영향을 끼칠 때도 있었는데, 그가 솔로 데뷔 초중반에 걸렸던 지주막하출혈은 30대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수면 시간을 엄청나게 줄여가며 몸을 혹사시키고 여러 방면의 작업과 일을 계속할 때 걸린 병이다. 그러나 그는 그의 예전 노래들 가사들을 보며 심적으로 위안을 받고, 여러 다른 노래들을 들으며 투병생활을 견뎠고, 이 지주막하출혈 투병생활 이후 그의 인생관은 변화를 맞이하고 메이저 히트 가수로 점점 올라가게 되는 작용이 되었기도 하다.
아침부터 영화나 드라마 촬영, 장시간 음악 레코딩을 하고 나서 닛폰 방송에 온다. 옆에서 봐도 완전히 지쳐 있다. 그런데도 방송에 임하고, 즐기고, 오히려 기운을 차리고 돌아가는 모습을 여러 번 봤다. 그때 내 자신이 얼마나 편하게 응석 부리고 있는지를 통감한다. 호시노 씨의 앞에서 바쁘다는 등의 말은 절대로 할 수가 없다. (중략)

일이 바빠져서 대충 하게 될 때, 언제나 호시노 씨의 얼굴이 떠오른다. 더 바쁜데도 더 열심히 하는 사람이 있다.
이시이 히카루(전 올 나이트 닛폰 디렉터)의 에세이
그의 행동력은 YELLOW DANCERPop Virus로 음악적 측면, 상업적 측면 모두 대히트치고, 참여한 여러 드라마가 히트치며 30대 중후반에 뒤늦게 성공한 이후에도 계속되는데, 2019년 번아웃 증후군이 왔을 당시 '그것을 타파할 다른 돌파구를 찾았다'는 그 결과물로서 Same Thing EP를 발매했다. 자세한 내용은 문서 참고.

또한 2020년 코로나 사태로 대외적인 활동이 불가능해지자 오히려 이 코로나 사태의 위기를 기회삼아 40살에 DAWMIDI 작곡 공부를 제대로 시작하고 그 작업에 몰두하며 그에게 있어 또 다른 새로운 재시작을 표방하는 여러 작업물을 냈다. 실제로 호시노 겐의 2021년 이후 노래는 DAW로 제작된 것이 많은 걸 감안하면, 그의 전성기 때 만큼은 아니지만, 그가 10~20살 차이나는 후배들과 같이 아직까지 현역으로 계속 뛰게 만들어준 또 다른 발판이 된 셈.

2021년에는 결혼까지 해서 작업시간이 더 줄어들었고, 40대가 된 2020년 이후부터 컨디션 관리에 예전보다 탄력이 덜 붙으며, 생활에도 신경을 써야하기 때문에 예전에 비해 작업량은 줄어들었다. 이제는 본인만의 오리지널 곡들보다는 의뢰형식의 곡들을 많이 만들고 있으나 '의뢰를 받아 일을 만들면 곡을 더 만들 수 있지 않을까'라는 그의 생각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심리적으로 가장 위험했을 때 生命体(생명체)와 光の跡(빛의 흔적) 악곡을 만들고 가사를 쓰면서 극복해나갔고 이후 꽤 건강해졌다고 말하기도 했다.

3.8. 음악의 세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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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배우

4.1. 연혁

4.1.1. 2001 ~ 2013

음악활동을 병행하며, 오디션을 보고 일부 연극에 참여하며 그때마다 연기하는 나날을 보내던 중, 극단 오토나케이카쿠에서 '악기를 칠 수 있는 배우'가 필요하게 되면서, 호시노 겐은 이 역할로 2003년, 무대 연극 『ニンゲン御破算』에 출연하였다. 이전에도 여러 연극에 참여하였으나, 이 작품이 첫 큰 무대였다고 한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오토나케이카쿠에 배우로서 계약을 맺고 들어가게 된다.
"그때 용기를 내서 소속사에 넣어 달라고 사정했어요. 계속 동경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랬더니 '좋아요.'라고 답하셔서. '이렇게 간단해도 되나?'라고 생각했는데, 직접 담판을 짓고 소속된 사람은 저뿐이래요."

이미 음악 활동을 하고 있던 호시노 씨는 "지금 밴드도 하고 있는데, 괜찮을까요?"라고 사장에게 물었다. 그러자 "전혀 문제없어. 오히려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는 게 재미있지."라고, 그런 식으로 말해주는 사람은 처음이었다고 한다. #
그렇게 오토나케이카쿠 연극에 여럿 참여하게 되고, 드라마 쪽에서는 2003년 『WATER BOYS』(후지 테레비)에서 경음악부에 속해있는 부원이자 기타를 들고 나오는 호시야마 배역으로 데뷔했다. 극중 경음악부로 연주했던 곡들은 본인이 직접 작사ㆍ작곡했다고 한다. 첫 드라마 주연은 2007년, 『지난해 르누아르에서』라는 짧은 단편 드라마이다. 이 작품에서 겉으로는 대사가 거의 없지만 속으로는 여러 망상과 마음의 소리를 들려주는 ‘나’로 주변 목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표정이 변하는 연기를 보여주었다. 이후 『 타이거&드래곤 』(TBS), 『 게게게의 마누라 』(NHK) 등의 인기작들에 조연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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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이 뭐가 나빠'의 하시모토 코지 '묻지마 사랑'의 아마노시즈쿠 켄타로
'배우 호시노 겐'이 점점 눈에 띄기 시작한 건, 영화 「지옥이 뭐가 나빠」(2013)와 「묻지마 사랑」(2013)이다. 지옥이 뭐가 나빠에서는 엉뚱한 일이 계기가 되어 영화감독으로 오인받아 야쿠자들의 싸움에 휘말리는 찌질한 청년 역할을, ‘묻지마 사랑’에서는 35세 연애 경험이 없는 시청 공무원이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시각장애인 여성을 사랑한다는 역할로 제37회 일본 아카데미 신인배우상, 마이니치 영화 콩쿠르 신인상 등 여러 신인상을 수상하고 오리콘 2013년 상반기 브레이크 배우 순위 3위를 차지하는 등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또한, 세인트☆영멘의 OVA와 극장판붓다 역으로 애니메이션 더빙을 처음 도전했다.

정석적인 공연, 영화, 드라마 외에 코미디 콩트에도 여러 번 나왔는데, 특히 LIFE!〜人生に捧げるコント〜(라이프! 인생에 바치는 콩트)[62]에 시즌0(2012)부터 시즌4(2017)까지 고정 출연진 중 한 명으로 꾸준히 출연하며 여러 가지 캐릭터를 보여주고 망가지는 연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예시

4.1.2. 2015 ~ 2019

그렇게 배우로서 이름을 서서히 알리기 시작한다. 코우노도리 시리즈에서는 상당히 차가워보이지만 실상은 따뜻한 의사인 '시노미야 하루키' 역으로 아야노 고와 합을 맞추었으며, 처음으로 출연해보는 NHK 대하드라마인 사나다마루에서는 에도 막부의 제2대 쇼군도쿠가와 히데타다 역할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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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fff>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의 츠자키 히라마사
2016년 아라가키 유이와 호시노 겐 주연 드라마인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가 TBS 화요드라마의 시청률 기록을 갱신하며 일본에서 신드롬적인 인기를 얻었다. 연애 경험 제로이며 일본에서 늘어나고 있는 초식남의 모습을 나타낸 노총각 츠자키 히라마사 역으로 대중들의 눈에 확실히 각인되었다. 이 드라마와 관련있는 코이댄스 또한 일본 내에서 엄청난 사회현상을 불러일으키면서 호시노 겐의 입지가 커졌다.
작년 드라마 '코우노도리'에서 배우로서의 다양한 매력을 보고 있었기 때문에, 츠자키의 성실하고 못생겼지만, 귀여움도 함께 살고 있는 절묘한 분위기를 내 주시는 것은 호시노 씨밖에 없다고 생각해서 부탁했습니다. (중략) 2명이 동거하는 가운데 프로 독신을 관철하려고 하지만, 조금씩 그녀에게 끌린다는, 그 츠자키의 내면을 호시노씨가 어떻게 표현할지, 기대됩니다.

두 사람의 사랑이 깊어졌다가 엇갈렸다가, 그런 무뚝뚝한 마음을 밝고 애틋하게 표현해주는 것은 아티스트로서의 호시노 겐. 배우로서 그를 캐스팅할 때부터 느끼고 있었어서 주제가로도 섭외했습니다. (후략)
- 니게하지 프로듀서 코멘트 #
그 이후에도 일본 아카데미 최우수 애니메이션 작품상을 받은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2017)에서는 '선배'역으로, 미래의 미라이(2018)에서는 '아빠'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플라쥬에서는 각성제를 사용해 체포당하고 집행유예로 풀려나 셰어하우스 플라쥬에서 살게 되는 회사원인 '요시무라 타카오'역으로 wowow 드라마 첫 주연을 맡았다. 또한 「이사 다이묘!(引っ越し大名!)」 (2019)에서 카타기리 하루노스케 역을 맡아 제 43회 일본 아카데미상 배우부문 화제상을 받았다.

4.1.3. 2020 ~

호시노 겐은 배우로서 언뜻보면 무기질적이고 무난한 인상이다. 다만 그가 창조하는 음악처럼 저온화상[63] 같은, 언뜻 냉정해 보이지만 사실 열정적인 면이 느껴진다. 젊었을 때는 그러한 면이, 순박하거나 모태솔로 캐릭터를 연기하는데 활용되어 왔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세상을 냉정하게 보고 마음에 무언가를 안고 감정을 닫는 캐릭터로 이어졌고, 이제는 젊은 사람이나 동료를 한발 물러선 위치에서 지켜보는 입장 역할을 하는 인상으로 변해갔다. (중략)

호시노가 배우로 인정받은 것이 2013년 영화 '묻지마 사랑'과 '지옥이 뭐가 나빠'. (중략) 그리고 2016년 '도망부끄'에서 연기한 '츠자키 히라마사' 역으로 대히트. (중략) 그런 호시노가 새로운 배우상을 구축한 것이, 2020년의 드라마 「MIU404」이다. (후략)
'17세의 제국'의 냉정한 연기로 보여준 새로운 설득력
전반적으로 주인공의 주변 친구나, 호구, 귀여운 오타쿠, 모태솔로, 순박한 인물, 찌질하지만 인정이 있는 역할, 죄의 무게를 잘 눈치채지 못하는 서민, 웃거나 귀여운 매력이 있어 호감이 가는 역할, 망가지면서까지 열연을 보이는 B급 코미디성이 짙은 역할, 어딘가 미덥지 못한 역할 등을 주로 했었다. 그러나 이후 냉혈한, 마음 속 어둠을 숨기고 있는 인물, 관찰자 등 어릴 때와 다른 역할들을 중점적으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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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U404의 시마 카즈미
B급 찌질함의 정석을 보여준 하시모토 코지나, 어딘가 귀여운 매력이 드러나는 츠자키 히라마사 때와는 다르게, 2020년 MIU404[64]에서는 마음 속에 안고 있는 어두운 사연 때문에 자신을 포함해서 아무도 믿지 않는 실력파 냉혈한이면서, 자기와 타인의 목숨보다 사건해결을 더 중요시하는 형사인 동시에, 파트너인 이부키 아이와 점점 유쾌한 티키타카를 주고받기도 하는 형사인 시마 카즈미를 연기했다. 마음속 깊이 품고 있는 헤아릴 수 없는 어둠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유쾌한 구석을 보여주며 호시노 겐의 연기를 업데이트했다.

이와 관련하여 2020년, 자신의 라디오에서, MIU404에서 형사 역할을 해보며 새로 알아가는 게 굉장히 많다고 생각해서, 기존에 하지 못한 여러 직업의 사람들을 연기함으로써 여러 가지 일을 체험해보고 싶다고 언급했으며, 나쁜 인물이나, 히어로 등의 역할을 해보고 싶다고도 언급했다. 음악과 관련된 역할[65]도 어디선가 해보고 싶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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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 목소리'의 소네 토시야 '17세의 제국'의 타이라 키요시
같은 해 오구리 슌과 같이 출연한 『 罪の声(죄의 목소리) 』에서는 30년 전 발생한 미제사건 당시 범인들의 협박 테이프에 사용되었던 아이의 목소리가 자신이었음을 뒤늦게 알고 공포와 충격에 휩싸이면서도 개인적으로 수사를 진행해나가는 소네 토시야 역을 하며 진지하면서도 감정을 절제시킨 연기를 보여주었다. 교토벤 연기를 하는 것을 볼 수 있기도 하다. 이 작품으로 제 44회 일본 아카데미상 우수남우조연상을 받게 되었다.
어이없을 정도로 우연한 고백. 호기심과 고뇌가 동시에 존재하는 복잡한 인간성. 변박자다. 게다가 은은하게 츤데레 매력이 있어, 사랑스러운 하드보일드함은 오구리 슌과의 2인 연기 때 명료하게 나타난다. (중략)

오구리 슌을 후방지원하는 가드로서의 단짝감. 관계자와 자신과 가족의 과거를 바라보는 멀리서(소년시절부터)의 시선. 비극의 색채에 기대지 않고 현재의 가혹함을 받아들일 각오. 산뜻한 댄디즘. 심플하면서 다채로운 '사운드'가, 거기에 있다. #
이에 더해 2022년, 청춘 SF 정치 드라마인 『17歳の帝国(17세의 제국)[66]에서는 차기 총리 자리에 가장 가까우면서도 욕망이 있는 내각관방 부장관[67]이자 Utopi-AI 프로젝트의 핵심 매니저인 타이라 키요시 역으로, 배후자이기도 하면서, 주인공에게 충고해주고 도움을 주는 조력자이기도 한 복잡미묘한 인물을 맡았다. 조연으로 표기되었으나, 사실상 서브 주인공의 비중을 가지며 기존 그의 배우상과 차이나는[68] 역할로, 그의 연기 생활 및 배우상에 또 다른 설득력을 부여해준 역할이기도 하다. 또한, 여학교의 별 OVA에서는 호시 미쓰히코 역으로 이때까지 기존에 맡았던 애니메이션 역할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4.2. 필모그래피

4.2.1. 무대

  • Penguin Pull Pale Piles vol.2 「워크인 타임머신」(2001)
  • 시어터 코쿤 온 레퍼토리 2003 「인간 파산」(2003)
  • Penguin Pull Pale Piles vol.8 「246번지의 분위기」(2004)
  • 어른계획 우만리브 vol.8 토도로키텐 VS 미나토 카오루 (2004)
  • M&O plays 프로듀스 「아이스크림맨」(2005)
  • 어른계획 우만리브 Vol.9 「일곱 명의 연인」 (2005)
  • 어른계획 우만리브 「우먼리브 선생님」 (2006)
  • PARCO 제작 뮤지컬 「카바레」 (2007)
  • PARCO 제작 「LOVE LETTERS 2008 SPRING SPECIAL」(2008)
  • 시어터 코쿤 「여교사는 두 번 안겼다」(2008)
  • 어른계획 우만리브 vol.11 「일곱명은 나의 연인」(2008)
  • 어른계획 「삿짱의 내일」 (2009)
  • PARCO 제작「텍사스-TEXAS-」(2012)[69]
  • 시스 컴퍼니 「미야자와 겐지가 전하는 것」(2012)
  • 大人の新感線[70] 「라스트 플라워」 (2014)

4.2.2. 영화

관련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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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코 36세(ノン子36歳)」 (2008) - 마사루(マサル)
    파일:A62D9CC2-CD64-4AC4-A72D-FDE493BA4812.png
  • 「묻지마 사랑(箱入り息子の恋)」 (2013) - 아마노시즈쿠 켄타로(天雫健太郎)
    파일:E06CE64F-A36E-4FC4-83AC-3D1D7B87399E.png
  • 「이사 다이묘!(引っ越し大名!)」 (2019) - 카타기리 하루노스케(片桐春之介)
    파일:힛코시 다이묘.jpg
  • 「죄의 목소리(罪の声)」 (2020) - 소네 토시야
    파일:죄의 목소리2.jpg

4.2.3. 드라마

연도 방송사 제목 활동 배역 비고
2003 파일:후지 테레비 로고.svg WATER BOYS
WATER BOYS
조연 호시야마
(星山)
파일:TBS 테레비 로고.svg 맨하탄 러브스토리
(マンハッタンラブストーリー)
조연 카제마루
(風丸)
6화 출연
2004 파일:TBS 테레비 로고.svg 돌하우스
(ドールハウス)
조연 3화 출연
파일:후지 테레비 로고.svg 여자들의 죄와 벌
(女達の罪と罰)
조연
파일:후지 테레비 로고.svg 이혼변호사
(離婚弁護士)
조연 2화 출연
파일:NHK G 로고.svg 토키오 아버지에게의 전언
(トキオ 父への伝言)
조연 오쿠보 코지
(大久保浩二)
1화 출연
파일:테레비 아사히 로고.svg 동생
(弟)
조연 2화 출연
2005 파일:후지 테레비 로고.svg 상냥한 시간
(優しい時間)
조연 아마노 히로카즈
(天野洋一)
3화 출연
파일:후지 테레비 로고.svg 극단연기자 「잠자는 숲 속의 시체」
(劇団演技者。「眠れる森の死体」)
조연 히로미
(ヒロミ)
8회
파일:TBS 테레비 로고.svg 타이거 앤 드래곤
(タイガー&ドラゴン)
조연 돈츠쿠
(林屋亭どんつく)
2006 파일:TBS 테레비 로고.svg 아키하바라@딥
(アキハバラ@DEEP)
조연 타이코
(タイコ)
파일:후지 테레비 로고.svg 또 하나의 슈가 앤 스파이스
(もうひとつのシュガー&スパイス)
조연 코야마 나루지
(小山成司)
4화 출연
2007 파일:후지 테레비 로고.svg 도쿄 타워: 엄마와 나, 때때로 아빠
(東京タワー 〜オカンとボクと、時々、オトン〜)
조연 사와다 타마오
(澤田玉夫)
파일:닛폰 테레비 로고.svg 탐정학원Q
(探偵学園Q)
조연 네코다 형사
(猫田刑事)
파일:테레비 도쿄 로고.svg 작년 르누아르에서
(去年ルノアールで)
주연
(私)
2008 파일:테레비 아사히 로고.svg 미래강사 메구루
(未来講師めぐる)
조연 에구치 히데오
(江口秀夫)
파일:테레비 도쿄 로고.svg 주간 마키요코 「나비인 채로」
週刊真木よう子 「蝶々のままで」
조연 이노우에 히로시
(井上ヒロシ)
2009 파일:NHK G 로고.svg 고스트프렌즈
(ゴーストフレンズ)
게스트 신지
(信二)
5화 출연
2010 파일:NHK G 로고.svg 게게게의 여보
(ゲゲゲの女房)
조연 오이카와 타카시
(及川貴司)
파일:NHK G 로고.svg 축녀 시즌2
(祝女〜shukujo〜)
게스트 5회 출연
파일:NHK BS 프리미엄 로고.svg
[73]
내가 처음 만든 드라마 - 괴물을 부르는 남자 -
(私が初めて創ったドラマ -怪獣を呼ぶ男-)
주연 소에지마 코타
(副島広太)
2011 파일:테레비 아사히 로고.svg 11명이나 있어!
(11人もいる!)
조연 사나다 히로유키
(真田ヒロユキ)
2014 파일:NHK BS 프리미엄 로고.svg 어젯밤의 카레, 내일의 빵
(昨夜のカレー、明日のパン)
조연 테라야마 카즈키
(寺山一樹)
2015 파일:NHK G 로고.svg 홍백이 태어난 날
(紅白が生まれた日)
조연 조지 마부치
(ジョージ馬淵)
파일:TBS 테레비 로고.svg 코우노도리 시즌 1
(コウノドリ 第1シリーズ)
조연 시노미야 하루키
(四宮春樹)
2016 파일:NHK G 로고.svg 사나다마루
(真田丸)
조연 도쿠가와 히데타다
(徳川秀忠)
파일:TBS 테레비 로고.svg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逃げるは恥だが役に立つ)
주연 츠자키 히라마사
(津崎平匡)
2017 파일:WOWOW 로고.svg 플라쥬
(プラージュ)
주연 요시무라 타카오
(吉村貴生)
파일:TBS 테레비 로고.svg 코우노도리 시즌 2
(コウノドリ 第2シリーズ)
조연 시노미야 하루키
(四宮春樹)
2019 파일:NHK G 로고.svg 이다텐 ~도쿄 올림픽 이야기~
(いだてん~東京オリンピックの噺~)
조연 히라사와 카즈시게
(平沢和重)
2020 파일:TBS 테레비 로고.svg MIU404
(ミュウ ヨンマルヨン)
주연 시마 카즈미
(志摩一未)
2021 파일:TBS 테레비 로고.svg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신춘 스페셜
(逃げるは恥だが役に立つ 新春スペシャル)
주연 츠자키 히라마사
(津崎平匡)
2022 파일:NHK 로고.svg 17세의 제국
(17才の帝国)
조연 타이라 키요시
(平清志)
관련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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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키하바라@딥(アキハバラ@DEEP)」 (TBS, 2005)
    파일:2BC5D9E3-C262-46B9-A22E-FCE308513995.png
  • 「작년 르누아르에서(去年ルノアールで)」 (TV 도쿄, 2007)
    파일:52FAEAAC-F24B-471E-85C5-7C0EF57B7BDC.png
  • 「게게게의 여보(ゲゲゲの女房)」 (NHK, 2010)
    파일:A90D46F0-C15F-4237-86DD-C1F2F250D664.png
  • 「어젯밤의 카레, 내일의 빵(昨夜のカレー、明日のパン)」 (BS프리미엄, 2014)
    파일:97A13C45-4BC7-4436-8200-53DE27268F3C.png
  • 「플라주(プラージュ)」 (WOWOW, 2017) - 요시무라 타카오(吉村貴生)
    파일:9588F9B2-43DA-4AC2-BD53-55A2A573F6E2.png
  • 「코우노도리(コウノドリ) 시즌 2」 (TBS, 2017) - 시노미야 하루키(四宮春樹)
    파일:D0B9244A-7D37-4AE0-B915-C87D150D26F2.png

4.2.4. 애니메이션

연도 제목 활동 배역
2013 <colbgcolor=#daeef5,#191922> 세인트☆영멘
(聖☆おにいさん)
주연 붓다
2015 치에리와 체리
(ちえりとチェリ)
체리
2017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선배
2018 미래의 미라이 조연 아빠
2022 여학교의 별
(女の園の星)
주연 호시 미쓰히코

4.2.5. 나레이션

  • + COLOR (2005년 4월 3일 ~ 9월 25일, 후지TV)
  • 나의 10가지 룰 (2009년 4월 7일 ~ 9월 22일, TBS)
  • 야자와 에이키치 & 이토이 시게사토 ~아마추어 사장 두 사람 지금이야말로 ... 돈 이야기 ~ (2010년 8월 1일, NHK E)
  • 과외수업 어서오세요 선배님 (2011년 4월 9일, NHK종합)
  • 여행의 힘 '내슈빌 28세의 테네시 왈츠 가수 우에무라 카나' (2011년 9월 13일, NHK BS 프리미엄)
  • No Smoking (2019)
    호소노 하루오미의 50주년을 기념한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4.3. 이야깃거리

배우로서도 2013년에 좋은 유의미한 성과를 보여 일본 아카데미상 신인상[74], 마이니치 영화 콩쿠르 신인상을 비롯한 여러 신인상을 받았고, 이후로도 시청률 20% 이상을 돌파하고 사회현상을 일으킨 드라마에 주연으로 참여했으며, 2017년에는 장래 유망한 배우들에게 주는 엘란도르상을 수상[75]했을 정도로 배우로서 자리잡았고, 오구리 슌, 아야노 고 등 여러 배우들과도 여러 합을 맞췄기에 배우로도 일본에 잘 알려져 있을 정도이다.

같은 세대의 전업 배우들에 비하면 참여 작품은 조금 적은 편이지만, 다른 배우들에 꿀릴 것 없는 커리어와 코믹부터 시리어스까지 소화하는 연기 스펙트럼과 팬을 가지고 있어, '배우 호시노 겐'을 먼저 알게 되거나, 혹은 '음악가 호시노 겐'보다 더 좋아하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한국에서 볼 수 있는 작품들이 다른 이름있는 배우들에 비해 엄청나게 적어서[76], 순박한 초식계 너드남능력이 뛰어난 냉혈한 형사를 보여준 그의 대표작들에 비해 한국에서는 팬들을 제외하고 다른 필모그래피가 그닥 많이 돋보이지는 않는다. 물론 그가 비주류적인 작품 속 개성이 넘치는 배역이나, 비주류적인 감성, 또는 배우로서 상당히 부담스럽거나 망가지거나 다사다난한 배역을 많이 맡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5년동안 SNL스러운 일본의 코미디 콩트 프로그램에 고정크루였을 뿐더러, 그의 필모그래피를 여럿 보다보면, 피칠갑되는건 기본이고, 망신당하거나 알몸이 노출되는 장면은 꽤나 흔하며, 여러가지 종류의 격한 키스씬과 베드신 연기 유경험자이기도 하고, 심지어 마약 하는 연기 유경험자이기도 하다. 하나같이 대역없이 이루어진 걸 보면 연기 스펙트럼이 꽤 넓은 셈.[77]

그래서인지 그가 점점 라이징 스타로 이름이 커졌을 때도 본인이 완전히 주인공으로 돋보인다기보다는, 다른 배우들이 자신의 강점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밑바탕과 배경을 만들어주면서도 동시에 자기의 개성을 일부 챙기는 역할이 많다. 상대 배우나 주인공의 옆에 존재하는 역할, 평소에는 우유부단하거나 순박하거나 가벼우면서도 한없이 진중할 땐 진중해지는 경향의 역할, 분위기를 띄우는 캐릭터, 염세주의적이거나 절망적이지만 어떻게든 살아가려고 하는 인물, (호시노 겐의 표현을 빌리자면) '안 된 인물'[78]의 역할, 어둠이나 사연 등을 숨기고 있는 듯 하면서 특정 인물의 행보에 대해 지켜보거나 남몰래 반응하는 역할 등이 꽤 많은 편이었다.

2020년 이후, 직접적으로 표출하지는 않지만, 마음 속에 깊은 어둠을 가지고 있는 배역들이 많아졌는데, 그래서 전반적으로 '조용하면서도 내면의 어둠과 슬픔을 표현하여 압도하거나 휘몰아치는 눈빛 연기'에 대한 호평이 많아졌다. #1 #2

연기와 캐릭터 해석, 그리고 디테일적인 부분을 챙기는 것에 있어서 호시노 겐 고유의 세계관이나 색채가 있다는 평가도 꽤 있는 편. 이와 관련하여, 감독 츠카하라 아유코는 그의 연기에 대해 영화 감독 또는 각본가의 눈높이에 가깝다며 그 시선으로 대본을 깊고 세세하게 파해치고 같이 여러가지 의논한 것이 꽤 있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연기력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그가 맡은 역들에 대해서 '음악가 호시노 겐은 배우 호시노 겐의 배역들을 표현할 수 없고, 그의 배역들도 하나같이 캐릭터가 다 다르다'에는 이견이 거의 없다.
{{{#!wiki style="margin: -20px -10px -17px"<tablewidth=100%><tablebordercolor=#00b1eb,#033E8C>
(호시노 겐은) 공식적으로 혼자서 노래를 부르기 전에 다른 사람을 연기했다. 그가 연기자인 것은 음악가인 그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 그리고 그가 연주가였던 것은 그의 연기에 영향을 주고 있다. 그리고 그것들은 지금 상호작용으로서 각각을 서로 보완하고 있다. (중략)

'죄의 목소리' 당시 같이 합을 맞추었던 오구리 슌은 기본적으로 '누르는' 연기자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때로는 피하고, 때로는 '밸런스 볼'처럼 유연성으로 작용하는, 호시노 겐적 표현의 배경성에 시너지를 일으킨다. (중략) 호시노 겐만이 가능한 '배경'으로서의 연기는, 심플하면서 다채로운 '사운드'가, 거기에 있다. (중략)

그의 연기에는, 보란 듯이 '연출'이 전무하다. 스타일은 바뀌지만, 본질 자체는 일상의 인접한 발화에 의해 뒷받침된다. (후략)

}}}||
일본 내에서 평가가 좋은 각본가인 노기 아키코와의 합이 좋기도 하다. 당장 그가 비중있는 역할로 등장한 노기 아키코 극본의 작품만 하더라도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MIU404, 죄의 목소리이다. 호시노 겐의 신인 시절을 제외하고, 그의 배우 대표작 및 그가 신인상 이후 받았던 연기 관련 상들이 대부분 다 이 작품들에서 나온 거라고 봐도 무방하다. 또한 이 작품들 모두 노기 아키코의 필모그래피에서 상당히 중요한 위치에 있기도 하다.[79]

여담이지만, 수많은 팬들로부터 '호시노 겐의 하라구로 악역이나 사이코패스 빌런 역할을 한번 보고 싶다'고 꽤 종종 들었다고 하며, 호시노 겐 본인 또한 그런 역할을 해보고 싶은데 그런 배역이 들어오는 일이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5. 작가

{{{#!wiki style="margin: -20px -10px -17px"<tablewidth=100%><tablebordercolor=#00b1eb,#033E8C>
십 년 정도 꾸준히 에세이를 쓰면서 깨달은 바는 문장 전문가란 무엇이든 있는 그대로 글로 풀어낼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점입니다.

『생명의 차창에서』 (2017)
}}}||
상대방에게 무언가를 전하는 것이 서툴렀기 때문에 22,23살(2003년) 때 '문필을 계속 하면 혹시 억지로 잘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편집자를 찾아다녔고 잡지의 난외에 100글자나 200글자로 잡문을 쓰는 일을 노개런티로 맡게 된 것이 시작이라고 한다. 당초에는 쓰는 것이 고통스러웠지만, 점차 부탁되는 글자 수가 증가하고, 2009년에는 첫 에세이집 『 그리고 생활은 계속된다 』를 집필한다.

여러 에세이집이 40만 부 이상이 팔리고, '생명의 차창에서'는 여러 서점에서 베스트셀러 1위에 등극하고 북로그 에세이 부문 대상을 받으며 한국에서도 공식적으로 번역판이 들어오게 되었다.

그리고 2023년인 지금까지도 잡지에 글을 기고하는 것을 이어오고 있다.

5.1. 저서 / 대담집

<rowcolor=#ffffff> 『そして生活はつづく』 (2009)
그리고 생활은 계속된다
『働く男』 (2013)
일하는 남자
『蘇える変態』 (2014)
되살아난 변태
파일:そして生活はつづく.png
파일:働く男.png
파일:蘇える変態.png
<rowcolor=#ffffff> 『星野源 雑談集1』 (2014)
호시노겐 잡담집
『地平線の相談』 (2015)[80]
지평선의 상담
『いのちの車窓から』 (2017)[81]
생명의 차창에서
파일:星野源 雑談集1.png
파일:지평선의 상담.jpg
파일:생명의 차창에서.jpg
<rowcolor=#ffffff> 『星野源 音楽の話をしよう』 (2018)[82]
호시노겐 음악 이야기를 하자
파일:星野源 音楽の話をしよう.png

5.2. 연재

  • シアターガイド 「나의 이번 달」
  • Quick Japan 「식물인간도 춤출 수 있는 음악」, 「오늘의 사이타마」
  • 소년문예 「빙글빙글 파아코」
  • 미래창작 vol.1 단편소설 「찻주전자」
  • bounce.com[83] 「호시노 겐의 노래하는 소설」
  • H (에이치) 「우메보시의 픽션 대마왕」
  • 텔레비전 브로스「호소노 하루오미와 호시노 겐의 지평선의 상담」[84]
  • TSUTAYA 프리 페이퍼 "VA" 「호시노 겐의 그리고 SAKEROCK은 계속된다」
  • 매거진하우스 "ウフ" 「그리고 생활은 계속된다」
  • POPEYE 「무릎 위의 영화관」[85], 「호시노 겐의 12명의 무서운 일본인」
  • GINZA 「긴자철도의 밤」
  • 다빈치
    • 「호시노 겐의 잠자코 나를 따라와」 (2012 ~ 2013)
    • 「생명의 차창에서」 (2014 ~)

    역대 호시노 겐의 다빈치 게재호 일람
  • AERA
    • 「음악 이야기를 하자」
    • 「단둘이 이야기하자」

6. 미디어 활동

6.1. 예능 / 교양

음악방송 출연 등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이 곳을 참고. 고정출연인 경우는 연도 옆에 ★ 표시.
  • 보스의 ○○시간 (ファミ通(패미통)WaveDVD)
    • 우리들과 호시노 군과 미소(俺たちとほしのくんと笑顔) (2008. 02.)
    • 우리들과 SAKEROCK과 재밌는 얼굴(俺たちとSAKEROCKとおもしろい顔) (2009. 01.)
    • 우리들과 호시노 군의 미소를 다시(俺たちとほしのくんの笑顔を再び。(2010. 03.)
  • LIFE!〜인생에 바치는 콩트(人生に捧げるコント)〜 (NHK, 2012 ~ 2017)★
  • 사노 모토하루의 더 송라이터스 시즌4 (NHK E) - 2012. 11. 02. / 09.
  • SONGS (NHK)
    - 2013년 1월 26일
    - 2015년 11월 23일
    - 2017년 9월 28일 (호시노 겐 스페셜)
    - 2021년 6월 24일
    - 2022년 6월 16일
  • 오겐상과 함께(おげんさんといっしょ) (NHK, 2017 ~ 2024)★
    호시노 겐이 도쿄 시부야의 가정주부인 오겐상으로 분장하여 음악에 관해 이야기하는 NHK 생방송 프로그램. 제목은 NHK E의 프로그램인 '엄마와 함께'의 패러디다.
  • 호시노 겐 스페셜, 월드 투어 라이브&인터뷰 (NHK) - 2020. 02. 15
  • 게임 게놈(ゲームゲノム) (NHK) - 2021. 10. 15.
    특정 게임을 주제로 토크를 나누는 게임 교양 프로그램인데, 데스 스트랜딩을 주제로 한 회차에 코지마 히데오와 함께 출연했다.
  • 라이트하우스 (Netflix, 2023)★
    괴로움 많은 시대에 누구나 공감하는 고민을 주제로, 2022년 10월부터 한 달에 한 번, 단 둘이 가치토크를 벌이고, 이것을 6개월 연속으로 6회 촬영 후, 2023년 8월 22일 6회분을 공개하는 기획으로 제작된 대담식 토크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와카바야시 마사야스와 함께 고정 출연진으로 참여했다.

6.2. 라디오

파일:A1EB94B2-68F7-47D2-864D-ABF45E8ADD8A.png}}} ||<width=50%>
파일:호시노 겐의 올 나이트 닛폰.jpg
||
2016. 03. 26. - 2017. 03. 27. 매주 월요일 2017. 04. 05. - 현재 매주 화요일
50년의 역사를 지닌 일본 간판 라디오 프로그램으로서 당대 최고 유명인이 퍼스널리티(진행자)에 발탁되는, 일본 연예인이라면 선망하는 프로그램. 시간대에 따라 여러 라인업이 있는데 프로그램과 동명인 「All Night Nippon」이 간판 라인업이다. 바로 여기서 매주 수요일에(매주 화요일 25시 - 27시로 홍보) 호시노 겐의 방송이 있다.

6.3. 광고 / C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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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에트로 「피에트로 드레싱」 - CM
  • 제일생명보험 「知っておいていただきたいこと・風景(알아두었으면 하는 것・풍경)」 (2012) - 「生まれ変わり(환생)」 CM
  • 시세이도 아넷사 「미소가 반짝(笑顔キラリ)」 편 (2012) - 나레이션, 「夢の外へ」 CM
  • 아사히 맥주 「ノンアルコールビールテイスト(무알콜 맥주 테이스트)」 (2016) - 나레이션, 「SUN」 CM
  • AC 재팬 「ライバルは、1964年」 (2016) - 나레이션, 「Hello Song」 CM
    「ライバルは、1964年(라이벌은, 1964년)」
  • 스카파! 「리우 2016 패럴림픽 전문 채널」 - 나레이션
  • 일본중앙경마회(JRA) 70주년 CF 「未来へ、走り続ける。」(2024) - 「一瞬」(일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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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출연한 동시에 악곡이 타이업 된 경우도 포함
관련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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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우스 우콘노치카라 (2016 - 2017)
    파일:638236EC-1CF2-44F7-9333-470DE70C8FFD.png
  • 삿포로 맥주 블랙라벨 「大人エレベーター(어른 엘리베이터)」 제28탄 (2017)
    파일:47CA4252-1A30-4255-BB88-FBD0728E8A1E.png
  • 카오 Biore-u 바디워시 (2017) - 「肌」 CM
    파일:75BB3E9E-6131-4CB7-8393-980A284E6681.png
  • 삿포로 맥주 麦のくつろぎ 「ノンアルを変える」 편 (20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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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잡지 표지

호시노 겐 '잡지 표지 모델' 일람 사이트 (일부)

멀티 엔터테이너이다보니 록킹 온 재팬, 롤링 스톤 재팬, MUSICA 등 음악 잡지는 물론이고, '다빈치'같은 도서 잡지, '키네마 순보'같은 영화 잡지 등 여러 방면의 잡지 표지에 오르는 경우도 많으며, 더 나아가 anan, ELLE 재팬, NYLON 재팬, GQ 재팬 등 패션잡지의 표지에 올라간 경우도 있다.

2018년 3월에는 일본의 패션잡지인 「装苑(장원)」에 1936년 1월 창간 이래 사상 처음으로 남성 단독 표지에 올랐다. # 덧붙여 호시노 겐 표지 및 특집으로 발행한 다빈치 2018년 12월호는 며칠만에 완판점이 속출해 잡지로서는 상당히 이례적인 중판(重版) 결정이 나기도 했다. #

7. 팬덤 및 팬클럽

파일:관련 문서 아이콘.svg   관련 문서: YELLOW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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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팬클럽스러운 장소는 있지만 기존 팬클럽이랑 상당히 다른 점[91] 또한 보이며, 팬클럽팬덤을 특정 호칭으로 지칭하는 말은 딱히 없다.
  • 2016년부터 오프라인 매거진인 YELLOW MAGAZINE와 팬클럽 멤버쉽인 YELLOW PASS를 진행해오다가 2023년부터 구독형 웹진 + 팬클럽 멤버쉽 + 방송 스트리밍 서비스YELLOW MAGAZINE+으로 바뀌었다. 해외에서도 결제가 가능해 기존 오프라인 매거진을 구매해야만 등록할 수 있던 YELLOW PASS보다 접근성이 커졌다.
  • 스타와 팬 사이의 관계에 대해 단순히 헌신하고 소비하는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라, '서로 무언가를 공유하고, 서로 응원해주는 친구 중 한 명' 같은 사이를 이상향으로 두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다른 공식적인 장소나 포맷 같은 게 정해지지 않은 이상, 팬들과 소통할 때 상당히 솔직하고 인간적인 모습을 꽤 많이 볼 수 있다.
  • '(저를) 좋아해주시는 것은 감사하지만, 그것이 완전히 일상을 잡아먹지 않고, 본인만의 생활과 일상을 챙기려고 노력하면서 좋아해주셨으면 좋겠다'같은 뉘앙스의 발언을 꺼낸 적도 있다. 이는 그의 노래콘서트에 종종 등장하는 위버멘쉬적인 개념과 일맥상통하는 부분도 있다.
  • 특별한 거나 내수용이 아닌 이상 호시노 겐은 인스타그램에 게시글을 올릴 때 일본어, 영어, 한국어, 중국어를 다 쓴다. 스페인어도 썼었는데 요새는 안 쓴다
  • 호시노 겐의 올 나이트 닛폰 라디오를 2023년 기준으로 약 8년 동안 진행해오다보니 이 라디오가 팬들과의 소통창구 중 하나나, 호시노 겐의 여러 개인 일화, 악곡 제작 과정 및 해설, 그리고 엠바고가 아닌 간단한 스케쥴[92] 등을 들을 수 있는 곳 중 하나가 되기도 했다. 일본에서만 들을 수 있다가 2022년부터는 스포티파이로 팟캐스트 공개를 실시해 일본어 듣기만 가능하다면 해외에서도 접근성이 꽤나 높아진 셈.
  • YELLOW MAGAZINE+에서 분기마다 팬들의 실시간 채팅을 보면서 이야기하는 스트리밍 토크 생방송을 하는데, 계절마다 바뀌는 테마를 보는 것도 일종의 재미다. 2023년 할로윈 때는 외계인 옷을 입고 왔다. 유부남 40대 아재인데 Z하다
    파일:YM 할로윈 2023.jpg

8. 엔터테이너로서의 호시노 겐

8.1. 독자적인 셀프 브랜딩

「음악가, 배우, 문필가」등의 직함으로 활동하는 엔터테이너. 중학생 때 음악과 연극을 동시에 시작해, '어느 쪽으로 좁히는 것이 좋다'라고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양립을 계속해, 게다가 (20대에) 문필도 시작해 현재의 성공을 쟁취했다. (중략)

호시노 겐이 현재와 같은 엔터테이너가 된 요인 중 하나로서 절대로 빠지면 안 되는 것은, 전례없는 행동력. (중략)

레이와 시대에 들어와서 흔들리지 않는 호시노 씨의 활동 스탠스를 드디어 시대가 따라잡고, 코로나가 찾아옴으로써 그 대단함이 돋보인 것은 아닐까? '부담없이 말을 걸 수 있을 것 같은 친근감을 풍기면서, 막상 일이 되면, 다양한 스킬을 발휘해 간다'라고 표현할 수 있는 호시노는, 엔터테이너 뿐만이 아니라 비즈니스 퍼슨에 있어서도, 레이와 시대의 롤 모델이 될 수 있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호시노 겐이 압도적인 존재로 올라선 납득 가능한 이유 (2020)
배우를 하면서 음악을 하는 사람은 많이 있다. 다양한 재능을 구사하고 다양한 표현을 하는 사람이 많다. 개인적으로도 몇 명 알고 있다. 하지만 호시노 군의 표현 스타일은 아무리 생각해도 뉴타입이라고 생각한다. (중략)

이상한 자기주장이나 시비가 없는 것, '나, 뭐든지 해버리니까 멋있지'라고 하는 기운이 전혀 없다. 실로 냉정하게 행동하면서, 주위의 상황을 판단하고, 그러면서도 표현은 뜨겁게 하는 이상적인 표현자인 것이다. (중략) 그러면서, 마음의 뿌리 부분에는 걸쭉한 마그마가 끓고 있다.
- 오오네 히토시 (감독) (2014) #
'연예인의 제일 필요조건이 큰 키와 잘생기고 예쁜 얼굴, 멋진 체형 등이다.'라는 전제에 들어맞지 않는 인물[93]에 가깝다.

그의 신체적인 조건은 '일반적인 타 연예인들'과 비교해봤을 때 키도 작으며, 얼굴도 잘생기지는 않았고[94], 몸매도 그다지 좋지는 않으며, 가창력도 빼어나지 않은, 거의 일반인이다. 개그맨이나 실력파 배우가 아닐 경우 외모지상주의가 만연하는 연예계에서 이는 치명적인 단점이며, 신체적 조건으로 인해 혜택을 하나도 볼 수 없었고 오히려 불이익을 볼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호시노 겐을 거의 처음 본 사람들의 경우 '호시노 겐이 왜 팔리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도 있다. 이건 한국 뿐만이 아니라 호시노 겐이 한창 라이징 스타로 급부상했을 때의 일본 본토도 마찬가지였다. 또한 호시노 겐은 여러 꽃미남 배우들과 아이돌들이 한창 활동할 당시에 그 시장 속에서 몸집이 커졌기 때문에 더더욱 비교될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호시노 겐은 스카우트 제의를 받지 못했던 사람이었기에 과거에는 계속 발로 뛰며 일을 찾아다녔었고, 그의 과거 행보는 밝지 않았으며, 상황이 그렇게 좋지 못했다.[95]

그러나 그는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넓은 연령층의 고정 팬층이 존재하며, 연예계에서 자신의 이름을 건 방송이나 고정출연, 그리고 광고를 여럿 찍었을 정도로 일본의 최일선에서 활동하고 있는 연예인 중 한 명이다. 당시 연예계에서는 쉽게 볼 수 없었던 사례여서 힐난하는 안티들도 꽤 있으나, 호시노 겐이 이렇게 되기까지에는 1명의 성과라고 보기에는 힘든 그의 다양한 성과와 작업물, 그의 '노력하는 재능'에 기반한 실행력과 태도, 그의 신체적 불이익을 능가하는 어느정도 이상의 실력, 무엇보다 각 업계들에서 부딪혀가며 진심으로 계속 임하고 있다는 일부 관계자들과 스태프들의 평가 및 대외적인 좋은 평판으로 쌓아온 방송계의 인맥들, 멀리서 보는 잘생기고 예쁜 연예인이 아니라 호시노 겐만의 차별화된 사랑받는 매력, 그리고 40대가 되어서도 '음악가, 배우, 문필가'의 활동을 여전히 지금까지 꾸준히 계속 이어오고 있으며 발생되는 그의 여러 직업 사이의 차이에서 나오는 그의 매력 등 여러 작용이 있었을 것이다.

또한 호시노 겐은 본인의 목표에 있어서는 야망욕망이 크며, 고유의 세계관이 뚜렷하고, 반골 기질이 크며, 마이페이스가 크지만 그것이 남을 대할 때만큼은 큰 피해를 끼치도록 놔두지는 않는 인물이며, 상냥함광기가 공존하는 인물이다. 거기에다가 추가로 그는 실패를 무릅쓰면서도 어느까지로 본인을 한정짓지 않는 담대함, 실행력 및 끈기, 궤도 수정은 확실하게 하자는 그의 좌우명, 기획 및 아이디어 브레인스토밍에도 꾸준히 적극적으로 참여, 그리고 그의 다채로운 색채와 여러가지 행보 및 작업물들로 제자리에 안주하지 않고 변화를 끊임없이 추구하는 그의 자세를 앞세웠다. 그는 세상에 대한 반항심 및 재미를 추구해가는 마이페이스적인 자신을 꾸준히 확고하게 표현하고 있으며, 빛처럼 밝게 빛나는 온화함 및 스타적인 면모와 팬들과의 소통을 챙기고, 동시에 본인 안에 남아있는 그림자적인 어두운 분위기 또한 큰 위해를 가하지 않을 정도로 미세하게 풍기며 인간적인 인물상을 보여준다. 그렇게 호시노 겐은 엔터테이너로서 사랑받는 매력을 가진 동시에 사람들의 '친근함을 불러일으키거나 끊임없이 도전'할 수 있는 부분을 계속 만들어갔다.

그의 과거와 이야기는 고유의 스토리텔링적인 부분이 되었고, 그 이후 그가 만들어나간 여러 가지 요인은 '개성있는 그의 독자적인 셀프 브랜딩 및 프로듀싱'이 꽤나 성공적으로 작용한 결과이기도 하다. 물론 그가 완전히 이것을 의식하고 있었다기보다는, 그의 마음이 가는대로 진심으로 자신의 목표와 여러 일에 열심히 임하고 있는 와중에 자연스레 생기고, 이후 점점 크게 만들어나갔을 가능성이 크다.[96] 물론 연예계 사업 또한 비즈니스 사업이고, 그는 경영진이 될 생각은 전혀 1도 보이지 않지만, 나이가 점점 들며 상술한 칼럼처럼 기업에서의 '고유의 세계관이 있고 본인만의 야망이 크지만 겉으로는 그것이 주변 사람들에게 큰 위협이나 피해가 될 만큼 크게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성실하게 여러가지 방면의 일을 많이 하며, 자신의 욕망에 따른 어느정도 이상의 실력과 안목과 성과가 출중한 동시에 대중들과 팬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오는 기업인'적인 면모가 보이기도 한다.
"'호시노 겐은, 이런 것으로는 끝나지 않으니까'라고,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미하엘씨. 매우 인상에 남아 있었습니다만, 정말 그렇게 되었네요."

감탄한 표정으로 말하는 후배 앞에서 나는 그의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를 떠올렸다. 이 청년은 다재다능하다, 이 사람은 재능덩어리라고 순순히 느꼈다. (중략) 이미 뮤지션으로서뿐만 아니라 배우, 집필업 등 다양한 활동을 하셨는데 무엇보다 자기자신을 프로듀싱할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처음 봤을 때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호시노 겐이라는 사람은, 앞으로도 서프라이즈를 많이 전해 줄 거야, 분명"이라고. (중략)

그는, 사람의 재능을 꿰뚫어 보는 날카로운 촉이 잘 작용한다. (중략) 재능이 있는 사람은 점점 세상에 나오기를 바라는 호시노씨의 생각이, 결실을 맺어 가는 과정을 몇개나 봐 왔다.

호시노 겐이라는 사람은 섬세하고 감수성이 매우 풍부하며 노력가다. 계속 변하지 않는 뛰어난 능력의 하나로서, 순간적으로 '제3의 눈'이 열리는 타이밍이 있는 사람이라고 느끼고 있다. (중략) 앞으로도, 노력은 물론, 그 직감력, 판단력, 그리고 재능이, 운이 오르는 좋은 만남을 불러와, 유례없는 공적을 만들어 갈 것이다. #

8.2. 그의 목표?

파일:관련 문서 아이콘.svg   관련 문서: 호시노 겐/음악의 세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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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어떤 인생을 살았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까?
A. 인생을 재미있게 살았던 사람으로 봐준다면 기쁠 것 같습니다. #
현재 연예계 구조 특성상 큰 키와 잘생기고 예쁜 얼굴, 멋진 체형 등을 가진 연예인들에 비해서 잠깐이라도 삐끗하면 상대적으로 뒤쳐질 가능성이 충분히 많고, 인기가 상대적으로 적을 수밖에 없는 한계점이 있기도 하지만[97], 호시노 겐이 가장 최우선 목표로 두고 있는 건 '엔터테이너로서, 또는 '호시노 겐'이라는 이름으로서의 단순한 명성이나 인기'가 아니라는 것을 그는 꾸준히 그의 행동과 말로서 어필해왔다.
UMI: 호시노 겐씨는 마음 속 깊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만날 때마다 '이런 사람이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고, 진짜 착하세요. 저뿐만이 아니라 남들 케어도 되게 해줘요. 음악도 사람을 위해서 만드는 마음이 강하다는 걸 느끼고 이기심이 없어요. '사람을 위해서'라는 것을 굉장히 느끼죠. 서머소닉 리허설 때도 모두를 챙겨주시고, 공연이 끝난 후에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감사합니다」라고 말해 주었어요. 저도 그런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
호시노 겐은 「恋(사랑)」의 히트 이후, 혹은 그보다 전부터, 스타로서의 중압과 싸워 왔다. 2015년 'SUN'에서 노래한 스타의 고독. 인류를 비추면서도 아무도 곁에 있지 못하고 마지막까지 고독했던 태양(SUN)과 같은 마이클 잭슨에 대해 노래했던 호시노 겐은 스스로가 스타가 되어 결국 그 비극을 맛보게 되었다.

호시노 겐의 2015년 곡 「SUN」은, 이 히트로 홍백 첫 출장을 완수했을 정도로 캐치하고 즐거운 음악이다. 그러나 그곳에는 고독이 새겨져 있다. 'SUN(=태양)'이라고 나타낸 것은 마이클 잭슨을 말하는 것으로, 많은 사람을 비추면서도 아무도 곁에 다가가지 못하는 팝스타의 고독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리고 2018년 'アイデア(아이디어)'에서는 1절에서 스타로서 대중들이 보는 겉모습을, 2절에서 숨겨진 자신의 진심을 노래하며 그 마음에 쌓인 고민을 풀어냈다.

'さらしもの(사라시모노)'에서는 스타의 입장이 지긋지긋한 그의 내면을 쏟아내고 있다. "나는 태양이 아니야, 빛나 보이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봐주고 있기 때문이야"라고. #
GQ 재팬 | 호시노 겐의 절망과 희망
호시노가 어떻게 역풍 속을 걸어올 수 있었을까. 그는 숙고한 후 "시행착오의 연속이었지만, 언제나 저의 '어쩔 수 없는 생각'을 내세웠습니다"라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호시노 겐: 남들이 뭐라고 하면 그때마다 흔들리는데 하지 말라고 해도 그냥 해요. 바야흐로 인기 프로그램의 올 나이트 닛폰도, 제가 레귤러가 되었을 당시는 '가혹한 환경이니까 틀림없이 손해다. 1년만 있으면 된다'라고 했습니다. 모두가 하고 싶어하지 않는 상황에서 '그래도 나는 라디오를 좋아하니까'라는 생각만으로 시작했어요. 결국 저는 남보다 제 자신을 우선시하는 사람이네요. 지금은 다양한 직함이 따라왔지만, 이것도 제 자신이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따져본 결과입니다. 제 안에서 채널을 바꾸고 있는 것도 아니고, 애초에 내 자신을 잘 조작하고 있다는 느낌이 전혀 없어요.

'창작 충동' 등의 말로 어울리지 않는 곳에 인간미가 엿보이지만, 본인은 "나도 나 스스로 나를 모를 뿐"이라며 애수를 띤 표정으로 웃는다. (중략)

호시노 겐: 제 자신도 모르게 일의 도파민에 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의 직업은 전적으로 도박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이 당첨될지 모르는 가운데 자신의 남은 인생을 걸어야 하는 것이니까요. 이익을 얻지 않으면 안 되는 이상 도박 요소는 뗄 수 없는 것입니다만, 좀 더 자기 자신의 '아트'를 중심에 두지 않으면, 크리에이티브한 기분이 고갈되어 피폐해져 버려요.

분야나 접근방식에 변화가 계속 생겨나고 있는 것 뿐이지, '내가 가고 싶은 장소에 가기 위해서 움직인다고 하는 근본은, 변하지 않았다'. 라고 말하는 호시노. "제가 차분하게 살 수 있는 곳이 계속 없어서 그냥 그걸 만들고 싶은 마음에 지금까지 찾아왔습니다"라고 속마음을 밝힌다. (중략)

호시노 겐: 제가 생각하는 '보통'이 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인가, 라고 하는 것에 대한 반발, 그리고, 그것을 알리기 위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저에게 있어서의 창작입니다. 물론 제가 표현하고 싶은 것은 중심에 있으면서, 원초의 목적은 그 부분. 저의 표현이 세상에 전해지면 뭔가 달라지지 않을까 했는데 전혀 바뀌지 않기 때문에 끝없이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단순한 의문이 떠올랐다. '절망하지 않는 것인가?'고. 피폐해지는 괴로움을 누구보다 알고 있는 그인데, 몇 번이나 '닿지 않는다, 변하지 않는다'고 상처받아도 표현을 통한 타인의 이해를 포기하지 않는가. 왜 계속 버둥거리느냐고 묻자, 약간의 침묵 끝에 "스스로도 안 되는 곳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만, 왠지 모르게 희망을 가져 버립니다"라고 입을 열었다.

호시노 겐: 절망만큼은 아닐 수도 있지만 저는 뭔가 표현을 하고 나면 항상 우울하고 또 전달이 안 됐다며 진절머리가 나요. 하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면 「다음에는 이것을 던지면 바뀔지도 모른다」 「아직 갈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는 제가 있어요. 빨리 포기하고 「아는 사람에게만 전하면 된다」라고 전환하면 되는데, 어째서인지 그렇게 할 수 없기 때문에 계속 힘들고, 제가 어른이 되지 않았다고도 느낍니다. (중략)

호시노 겐: 저는 표현에 있어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볼 때 매우 기쁩니다. 왠지 모르겠지만 굉장한 것을 받으면 '좋아한다! 재미있다!'는 마음이 들뜨고, '내 안에 없지만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설렙니다. (중략) 저는 '알 수 없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전례가 없거나 곤란했다고 해도 그쪽을 목표로 하고 싶네요.

가장 최근에는, (중략) "사회의 기준에 맞춘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속에 있는 '알 수 없는 것'을 소중히 하는 것이 아트다"라고 하는 생각에서 '나는 틀리지 않았다'라고, '살아서 다행이다'라고 환희를 느꼈다고 한다.

우리는 모르는 것을 사랑하고, 여전히 모든 사람에게 전달하려는 자기모순을 잘 알고 있다. 그는 "한 사람의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닐지도 모르겠네요"라고 말하지만, 그 혼돈이야말로 호시노 겐의 독창성일 것이다.

비관과 낙관, 절망과 희망. 둘 다 들고, 그는 나아간다. 미지의 안식처를 목표로.

9. 수상 경력 및 음반 주요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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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배우 아라가키 유이와의 결혼

파일:호시노 겐과 아라가키 유이.jpg
2021년 5월 19일 배우 아라가키 유이와의 결혼을 발표했다 #
배우란 힘든 직업이다.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남이 쓴 대사를 읊는다. (중략) 늘 거짓말을 한다. 인기를 얻으면 주변사람들이 떠받들어 주면서 누가 주의를 주지도 않는다. 그런 환경 속에서 다른 경쟁 배우들과 밑도 끝도 없는 의자 뺏기 게임을 치열하게 되풀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한 정신상태로 '보통'의 감각을 지닐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인기가 올라갈수록 정신은 고립되고, 분주함에 비례하여 에고 또한 비대해진다. 안 그려려고 노력해도 방자해지고 주변을 살피지 않게 된다. (중략) 점점 더 보통에서 멀어진다.

10대 때부터 활약해 온 그녀에게는 틀림없이 상상을 초월하는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으리라. 아마도 처음부터 지금과 같지는 않았을 터다. 그런 와중에 그녀는 일터에서 성취할 수 있는 성실함을 찾았고, 더 나아가 웬만한 배우들이 도달하지 못하는 '보통'이라는 상태를 스스로 손에 넣었다. (중략)

그래서 여기에 몰래 글로 칭찬하려고 한다. 부디 그녀가 크랭크업까지 이 글을 읽지 않기를.

당신은 정말로 근사한 보통 사람이야.
호시노 겐의 에세이, 생명의 차창에서 중
아라가키 유이와는 2016년 드라마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에 함께 출연했으며, 이후 2020년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SP를 촬영할 때 재회한 것을 계기로 촬영을 모두 마친 후 결혼을 전제로 교제를 시작했다고 한다. 결혼 발표 회견은 별도로 하지 않았고, 결혼식이나 피로연 일정도 현재는 미정이다. 아직 입적은 하지 않았으며, 향후 시기를 보고 입적할 예정이라고 한다.#
호시노 겐 결혼 발표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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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응원해 주시는 여러분께

안녕하세요 호시노 겐입니다.
이렇게 세상이 어려운 시기에 사사로운 일로 대단히 송구스럽습니다만,
이번에 저 호시노 겐은 아라가키 유이 씨와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이전에 이런 식으로 조심스럽게 보고를 드렸던 게 병으로 쓰러져서 활동을 중단했을 때로 기억합니다.
이번엔 그 당시 걱정을 끼쳤던 분들을 포함해 항상 지지해 주시는 여러분께 이런 보고를 하게 되어 너무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가득합니다.

앞으로는 둘이서 힘을 합쳐서,
평온한 생활을 살아가면 좋겠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음악 활동이나 배우로서의 활동, 문필 등 여러 가지 일에 대해서 지금까지 이상으로, 하나하나 소중히 마주 보고 싶습니다.

항상 따뜻한 응원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가까이에서, 멀리서, 항상 지지해 주시는 여러분,
응원해 주시는 여러분이 더 즐거워하실 수 있도록,
앞으로도 즐거운 일들을 계속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2021년 5월 19일
호시노 겐
호시노 겐, 아라가키 유이 연명 친필 코멘트 전문
[ 펼치기 · 접기 ]
관계자 여러분

신록의 계절, 여러분이 하시는 일이 번창하시길 기원합니다.
평소 각별히 배려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희, 호시노 겐과 아라가키 유이는 이번에 결혼하게 되었음을 보고드립니다.

앞으로도 서로 지지하며 풍부한 시간을 쌓아 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미숙한 두 사람이긴 합니다만, 따뜻하게 지켜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지도 편달을 부탁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감염 확대가 하루라도 빨리 종식되길 진심으로 기원하겠습니다.

2021년 5월 19일
호시노 겐 아라가키 유이
2021년 11월 호시노 겐이 본인의 에세이에서 올해 결혼하고 가정을 가졌다고 언급했으며, 아내와 같은 집에서 살기 시작했을 때쯤 있었던 에피소드를 밝혔다.#1 #2

2023년 4월, 아라가키 유이가 메자마시 테레비에서 호시노 겐을 언급할 때 '남편'이라는 호칭을 써서[98] 화제가 되었었던 적이 있다. # 호시노 겐도 2023년 라이트하우스에서 아라가키 유이를 '아내'라는 호칭을 써서 언급했다.

10.1. 관련 이야깃거리

일본을 강타한 히트 드라마에서의 인연이 현실에서까지 이어졌다는 점에서 일본은 물론 한국에서까지 크나큰 화제가 되어 여러 이야깃거리나 일화들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나 호시노 겐의 에세이나 라디오에서 아내와의 일화가 종종 나오고 있다.

{{{#!wiki style="margin-bottom: -1.5%"
  • 호시노 겐은 살면서 여자에게 먼저 고백받은 적은 없고 항상 자기가 먼저 고백했다고 한다.
  • 2016년 10월 말 라디오에서 '10년 정도 후의 장래희망은?'이라는 질문에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바라건대 아이가 있고, 크고 못난 개와 살고 싶다라고 대답했다.
  • 결혼 상대에게 요구하는 것으로서 '욕을 하지 않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wiki style="margin-bottom: -1.5%"
  • 결혼 발표 이후에 많이 나온 이야기 중에 하나는 사귀기 시작한 시점이 최소한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SP 촬영 종료 시점보다 더 이전이라는 이야기다. 참고로 2018년에 이미 호시노 겐이 아라가키 유이가 사는 맨션[99]으로 이사했다는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이에 대해 호시노 겐이 자신이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2018년 이사 당시에는 아라가키 유이가 살고 있는 맨션이라는 것은 전혀 몰랐었다고 해명했다.#
  • 두 사람이 2021년 5월 19일 결혼을 발표하면서, 비트코인을 포함한 암호자산 가격이 급락하여, 암호자산 시가총액 1조달러(당시 환율로 약 110조엔)가 순식간에 없어진 것으로 알려져 '각키 쇼크'라는 도시 전설이 생겨나기도 했다.[100]
  • 이례적으로 닌텐도에서 공식적으로 결혼을 축하해주었다. #
  • 아라가키 유이와 극중에서 결혼을 했던 상대 배우들은 전부 다 이미 호시노 겐과 접점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
  • '각자의 일에 대해 참견하거나 충고하거나 훈수하지 않는' 걸 부부만의 룰로 잡았다고 한다. #
  • 호시노 겐은 자신의 라디오로 (아내의 허락을 받고) 아내와의 일화 등을 가끔씩 언급하고 있는데, 들어보면 니게하지랑 거의 비슷한 양상을 띄고 있다. #

11. 사건사고

11.1. 아베 신조 총리 관련 피해

파일:관련 문서 아이콘.svg   관련 문서: うちで踊ろう
, 아베 신조/비판과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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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호시노 겐은 코로나19로 인해 집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코로나 때문에 실제로 만날 순 없지만, 마음이라도 그러한 기분을 내는 컨텐츠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50초 분량의 이 노래를 자신의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에 업로드하였고 해당 영상을 자유 저작권으로 풀었다. 그리고 이를 활용해 노래, 춤, 악기 연주, 일러스트 등 여러가지를 시도해달라고 권장했다. 그리고, 일본 국내에서 이 악곡과 호시노 겐의 얼굴을 합성한 다수의 쇼츠나 릴스 등이 파생되어 나왔다.

그러나 아베 신조 총리가 코로나 사태 대처 미흡으로 많은 비난을 받는 상황에서, SNS에 호시노 겐의 노래와 함께 자신의 일상 모습을 촬영한 동영상을 게시해 외출 자숙을 호소했다. # 국민들의 불안이 커지는 상황에서 국정 최고 책임자가 유유자적한 모습을 공개한 것은 부적절했다는 비판이 올라왔으며, 호시노 겐의 영상과 본인의 영상을 함께 올려버려서 호시노 겐은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아베 총리와 함께 비난을 받는 피해를 겪었다. 일부 네티즌들이 '호시노 겐이 아베 총리를 지지한다'고 오해한 것이다. 이에 '호시노 겐에게 무슨 민폐냐'며 아베에 대한 성토가 이어지기도 했다. 이후 호시노 겐 본인이 직접 동영상에 대해 입장을 밝혔는데 아베 측은 자신과 소속 사무소에 사전 연락이나 확인은 사후도 포함하여 일절 없었다고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

호시노 겐은 해당 영상을 자유 저작권으로 풀었고, 네티즌들에게 이를 활용해 2차 창작을 해달라고 했다는 면에서 '원칙적으로는' 아베 총리가 사용한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호시노 겐이 굳이 입장을 밝힌 이유는 일부 네티즌들이 자신이 아베 총리를 지지한다고 오해하자 이를 해명하기 위함과 동시에, 웃는 이모티콘과 함께 '아베 신조 (安倍晋三さん)[102]가 아무 연락이나 허락없이 노래 영상을 퍼갔듯이 노래 영상은 누구나 퍼가도 좋다'고 글을 남겼다는 점이다. 확실하게 선을 그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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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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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인이 되기 전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카와구치시에서 보냈다.[2] 사이타마현에 위치한, 점수로 학생을 평가하는 테스트나 성적표가 없는 사립 대안학교이다. # 일반학교보다 자유로운 학교였기 때문에 기분은 초졸인 것 같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3] cero, 키세루 등이 소속된 일본의 인디 레이블 겸 소속사[4] JVC 켄우드 빅터 엔터테인먼트 산하. 솔로에서의 활동에 한정된 레이블이다. SAKEROCK 작업물의 레이블은 2015년까지 KAKUBARHYTHM이었다.[5] SAKEROCK 결성이 2000년이었고 음반을 통한 데뷔는 2003년. 배우로서는 프리랜서 배우로 여러가지 하다가 2003년에 극단 오토나케이카쿠에 배우로 들어간다. 집필은 2003년부터 시작.[6] 어쿠스틱 기타, 일렉트릭 기타, 랩 스틸 기타(하와이안 기타), 클래식 기타[7] 인디 밴드(SAKEROCK) 시절 자주 사용한 악기이자 2020년 DAW 제작을 시작하기 이전까지[8] 그 중에서도 플랫 만돌린은 만돌린이 현대적으로 개량되어 컨트리 등지에서 자주 사용되고 있는 악기이다. 밴드 시절 '일본풍' 느낌을 내기 위해 자주 쓴 악기로, 殺すな(죽이지 마라), 慰安旅行(위안여행) 등의 악곡에서 볼 수 있다. 호시노 겐이 가장 좋아하는 악기이기도 하다. 어렸을 때 싼 값에 샀던 플랫 만돌린은 아직까지 집에 고이 놔두고 있다고 한다.[9] 컨트리 장르 등지에서 자주 사용되는 악기이다. 灰空(잿빛 하늘), 七拍酒(칠박주) 등의 악곡에서 볼 수 있다.[10] 19세 때부터 4년 정도, 삼선의 명수로 알려진 주인장 선술집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한 그는 매일 오키나와 민요를 듣고 류큐 무용을 배웠다. 밴드 시절에도 이 악기를 종종 사용했으며, 그의 솔로 곡에서의 가장 대표적인 예시는, 「YELLOW DANCER」에 수록된 인스트루멘탈 곡인 Nerd Strut에서 이 악기를 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11] 호시노 겐이 가장 먼저 시작한 악기가 드럼이다.[12] 호시노 겐이 20살 무렵, SAKEROCK와는 다른 레게 밴드의 여성 보컬에게 불려 그 밴드의 베이스 담당이 될 것 같았지만, 그 밴드가 자연 소멸해 실현되지 않았다.[13] TR-08은 TR-808을 현대적으로 복각한 머신인데, 호시노 겐의 음악 공론에서는 TR-808 머신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호시노 겐 본인이 엄청 좋아하고 귀엽다고 느끼는 머신이라고 한다. 호시노 겐의 다른 여러 곡들 외에도 집에서 하루 안에 혼자 곡을 만들어본다는 호시노 겐의 시리즈인 'House ver. 시리즈'에서 어쿠스틱 기타와 함께 아주 자주 쓰이는 머신이기도 하다.[14] 글로켄슈필, 비브라폰, 토이 피아노, 탐탐[15] 기본 피아노나 아날로그 신디사이저, 오르간 외에도 월리처 일렉트릭 피아노 등을 종종 쓴다. 그 악기가 사용된 대표적인 예시가 Sapiens. 또한, 2020년부터 DAW 곡 제작을 시작하고, 2021년 '不思議(불가사의)' 이후 작품을 거듭할수록 (마림바랑 만돌린이랑 밴조는 거의 없어졌고) 키보드의 존재가 커지고 있다. 이는 호시노 겐의 가장 큰 음악적 변화 중 하나.[16] 유일하게 본인이 직접 운영한다.[17] 2016년 일본을 강타한 히트작인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코이가 한국에도 상당히 많이 알려져, 작중 안경을 쓰고 나오는 호시노 겐의 모습이 유재석을 연상하게 해서 '호시노 재석'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그 이후에도 평상시에 닮았다기보다는 부캐일 때의 모습이 닮았다. # 유튜브와 구글에 호시노 재석을 검색하면 관련 검색 결과가 나올 정도.이와 관련하여, 우스갯소리지만, 호시노 겐이 일본의 대표적인 멀티 엔터테이너 중 한 명으로 자리잡았을 때 호시노 겐이 꽃미남은 아니지만 엄청나게 인기 있는 이유라는 칼럼이 나오기도 했다. 같은 맥락으로 일재석, 호재석이란 별명도 가끔 사용된다.[18] 한국에서도 유명했던 여배우인 아라가키 유이와 2021년 결혼했을 때 한국에서 생긴 별명으로, 팬들이 부른다기보다는 일반인들 사이에서 드립으로 불리는 별명이다. 같은 맥락으로 '최악의 배우', '최악의 일본인', '각키 도둑놈'이라는 별명이 있으며, 이때는 '세금 더 내라'는 말이 바리에이션으로 나오기도 한다. 한마디로 일본판 '대한민국 3대 도둑 중 하나인 연정훈' 같은 장난성 드립.[19] 한국 트위치에서 J-POP 이상형 월드컵이 한창 유행했을 때 생긴 별명으로, 전반적으로 노래가 복잡하면서도 건강해서 '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브로콜리, 초장 안 찍고 그냥 먹어도 맛있는 브로콜리 같다'는 말에서 유래했다. 앞 별명들에 비해 많이 쓰이진 않는다.[20] 여러 악기가 가능하지만 연주자로서는 기타리스트퍼커셔니스트로서 활동을 많이 했었으며, 퍼커션에서는 대체적으로 마림바, 비브라폰, 글로켄슈필, 토이 피아노, 탬버린 등을 담당했다. 솔로 활동 시작 이후에도 히키가타리 및 레코딩은 물론이고 라이브에서 기타와, '드럼을 제외한 퍼커션' 연주자로도 자주 참여한다.[21] 다만 호시노 겐 본인의 이름이 아니라 전혀 다른 이름으로 만든 유튜브 채널을 본인이 직접 운영하고 현재(2024년)까지도 영상을 계속 올리고 있다고 한다. 그 채널의 정체가 뭔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22] 2020년대는 쟈니스 사무소의 몰락과 세계화 및 여러 소셜미디어 등의 발달로 완전히 뒤바뀌었지만, 호시노 겐이 한창 활동할 때 및 그의 최전성기때는 솔로 싱어송라이터 시장의 암흑기였다. 그에게 솔로 데뷔를 권유한 호소노 하루오미도 호시노 겐의 지금(2017년) 모습을 상상하지 못했었다고 한다. #[23] 2023년 기준 일본 남자 연예인 연간 CF 출연료 목록에서 상당히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24] 2021년에 발표한 不思議/創造 싱글은 첫날에만 10만장 이상을 팔았고,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신곡이나 앨범 또는 싱글을 발매하면 차트인을 하기는 한다.[25] 시험 및 성적표가 없을 뿐더러, 등교를 안해도 딱히 체벌이 없다고 한다. 기존 수업들에서 벗어난 여러가지 다양한 수업들이나 동아리도 많았다.[26] 호시노 겐의 세대는 1980년대 일본 거품경제 이후 헤이세이 시대의 '잃어버린 10년'을 처음부터 전부 다 계속 겪은 세대다.[27] YELLOW DANCER의 앨범 판매량은 30만장이지만, 타이틀 곡의 재생수는 약 5000만회이며, Pop Virus의 앨범 판매량은 50만장이지만, 타이틀 곡의 재생수는 약 2000만회고, 9번째 싱글 코이의 판매량은 약 31만장이지만 유튜브 조회수는 약 2.5억회이다. 약 8.5억회의 조회수를 가진 요네즈 켄시의 레몬 싱글 판매량 또한 코이와 비슷한 31만장이었다.[28] 가장 쉬운 예시로, '코이'의 다운로드는 2밀리언을 달성했고, 요네즈 켄시의 '레몬' 다운로드는 3밀리언이지만, 유튜브 조회수는 약 6억회가 차이나며, 같은 트리플 플레티넘을 달성한 아이묭의 '마리골드'와 호시노 겐 'SUN'의 뮤직비디오 재생수는 약 2.3억회가 차이난다.[29] 아뮤즈에 소속되어있지 않았던 솔로 극 초기인디 밴드 후반 시절에서부터 호시노 겐 혼자 계속해왔는데, 한 마디로 솔로 초기부터 2019년까지 앨범 또는 싱글 타이틀 곡의 뮤직비디오를 앨범 광고로 직접적으로 사용한 셈이다. 그가 대중적인 히트를 치기 시작할 때도 여전히 중간에 넣었으나 분량은 예전보다 줄어들었다. 뮤직비디오는 광고로 대신 나오는 부분까지 전부 다 촬영하지만, 유튜브에서는 그게 나오지 않고 관계자 인터뷰를 합쳐서 뮤직비디오 수록 DVD로 따로 나왔었다. Pop Virus에서는 노래가 다 끝나고 광고가 3분동안 나온다. 2021년 이후에는 이 광고가 다른 영상으로 따로 분리되었다. 다만 이때는 그의 최전성기가 끝나긴 했다.[30] 광고가 없어져도 그의 개인 콘텐츠인 간단한 코멘터리는 여전히 지금까지 계속 등장하고 있다.[31] 참고로 이누도 감독과는 2018년 영화 「이사하는 다이묘!(引っ越し大名!)」에서 주인공 카타기리 하루노스케(片桐春之介) 역을 맡으면서 OST 뮤지션에서 주연 배우로 11년 만에 재회했다. 2019년에 개봉했다.[32] 앨범의 수록곡은 '회사원'과 '지금의 나'로 따로 분리되어 있는데, 뮤직비디오 하나에 수록곡을 두 개 넣은 셈이다. 중반부터 곡의 흐름이 바뀌는 부분이 있다.[33] 황색눈물 ost의 소개글에는 '재즈라틴을 바탕으로 하며, 자유분방함을 담은 매력적인 사운드'라고 적혀있으며, 한 기사에서는 '엑조티카(Exotica) 계열 밴드'라고 소개한다.[34] 파일:07C5C8CA-A27D-4F57-876E-91814EDF98DB.png[35] 실제 마지막 공연에서 리더 호시노 겐의 마지막 멘트[36] '노무라 타쿠시'는 초기 밴드 멤버로서 활동했으나, 첫 앨범 발매 전에 이미 탈퇴한 상태였다. 물론 피아노를 꽤 자주 쓰는 사케록 특성상 레코딩은 탈퇴 후에도 계속 도와주었다.[37] 실제로 무리에 잘 어울리지 못하는 내향형 인간이었다. 어릴 때와 사춘기 시절에 공황장애불안장애를 겪은 것도 있고.[38] 2012년부터 2017년까지 일본 코미디 콩트 프로그램의 고정멤버였는데, 그렇다보니 그가 메가히트치기 전까지 그를 개그맨으로 알고 있었던 사람도 있었다.[39] 흔한 '스타'의 이미지가 아니다보니 안티들도 점점 생기기 시작했다. #[40] 1위가 기네스에도 등재되었었던 적이 있고, 국제음반산업협회가 발표한 2019년 글로벌 최다 판매 음반인 아라시의 베스트 앨범 5x20 All the BEST!! 1999-2019이다. 코이도 그렇고 1위를 못하고 있다[41] 여담으로 오리콘에서의 1,2,3,5등이 아라시, King & Prince, 노기자카46, 방탄소년단이다. 엄청난 라인업 2020년대 초중반인 현재와 다르게, 그 당시 일본의 대중적 음악 업계는 자국의 아이돌 시장이 워낙 컸다.[42] 1, 2위가 요네즈 켄시사잔 올 스타즈다. 그전까지도 뮤지션 랭킹에서는 매년 10위권 이내에 들었다.[43] 티파니앤코에서 먼저 호시노 겐에게 'DJ로 참여해주실 수 있냐'고 제의가 먼저와, 호시노 겐은 디제잉을 혼자서만 약간씩 해보고 많이 해본 적은 없지만, 재밌을 것 같고 DJ들의 노고들을 직접 몸으로 체험해보고 싶어서 승낙하고 연습을 열심히 했다고 한다. 이전까지 리믹스에는 참여해본 적은 있지만, 사실상 티파니 원더가 호시노 겐의 공식적인 첫 DJ 데뷔전이었던 셈.[44] 솔로 데뷔 앨범인 정규 1집의 13번 트랙인 ただいま 같은 경우에는 일본의 유명한 뮤지션인 호소노 하루오미가 작곡했다. 개그(ギャグ)라는 세인트 영맨 애니메이션 노래는 호시노 겐이 지주막하출혈로 쓰러져 카메다 세이지에게 편곡을 맡겼다.[45] 이는 언뜻 들으면, 그의 개인적인 음악적 특징과 무해하고 건강하게 들리는 그의 음색 및 고음을 그다지 지르지 않는 그의 창법과 합쳐져 악기나 여러 사운드를 복잡하게 많이 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곡들보다 상당히 슴슴하게 느껴진다는 이야기가 일부 사람들에게서 종종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46] 여러 세계 음악들을 활용하는 이지 리스닝 음악의 한 형태이면서도, 장르의 복제보다는 쉽게 식별할 수 있는 민족적 소리를 부드럽고 쉽게 소화되는 팝 음악의 형태로 모으는 엔터테인먼트에 집중하는 장르이다. 이 장르의 가장 대표적인 아티스트는 Martin Denny. 대중적으로는 잘 알려지지 않은 하위 장르이기도 하다.[47] 재즈, 쿠바 음악, 스카, 포스트 록, 컨트리 뮤직, 포크, 라틴 음악, 오키나와 음악, 쇼와 시대의 가요 등[48] 대강 이런 느낌이다.[49] 2012년 꿈 밖으로, 2015년 SUN, 시간이여, 2018년 도라에몽, 아이디어, 2021년 CUBE, 2022년 이세계혼합대무도회 등이 있다. 더 자세한 예시와 관련해서는 이 곳을 참고.[50] 이는 2005년판 '바보의 노래' 앨범에 수록되었었던 '뿔뿔이', '다음은 무엇으로 태어날까' 등에서부터 2021년 불가사의, 집에서 춤추자까지의 예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솔로 초기부터 지금까지 쭉 이어져왔다.[51] 'SAKEROCK의 보컬'은 트롬본과 마림바였다. 자세한 내용은 SAKEROCK문서 참고.[52] 가장 대표적인 예시가 Pop Virus의 유리 깨지는 소리.[53] Present에서 1절 후렴구 시작하기 직전 탁! 튀는 소리나, さらしもの(사라시모노) 도입부의 뭔가 끊기는 소리 등[54] 일본의 밴드 인디고 라 엔드, 게스노키와미오토메, 제니하이에서 활동하는 일본의 싱어송라이터 카와타니 에논이 작성한 칼럼이다.[55] Pop Virus 직후, 그는 번아웃 증후군이 왔고, 40대가 되면서 새로운 자극을 찾아 여러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된다.[56] 전혀 다른 심리 상태가 마음속에 같이 존재하고 있는 것[57] cero, 키세루 등이 소속된 일본의 인디 레이블 겸 소속사로, 2005년부터 2015년까지 호시노 겐은 음악가로서 이 소속사 소속 아티스트였다.[58] 호시노 겐 본인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완전히 다른 이름으로 지금까지 영상을 계속 올리고 있는 유튜브 채널이 있다고 본인이 언급했었다. 그 유튜브 채널은 음악 쪽은 아니라고 한다. 사운드클라우드에도 본인의 이름을 밝히지 않은 계정으로 곡을 만들어 가끔씩 올린다고 한다.[59] '타이라 키요시'는 높은 호감도로 대중적인 팬덤을 가지고 있는 내각관방 부장관으로, 더 높은 자리를 노리는 야심을 가졌으면서도 그 속내를 알 수 없는 정치인이다. 반면에 喜劇(희극) 속 인물들은 힘든 사회 속에서 서로가 다르고 피를 나누지 않았더라도 마음을 주고 받으며 가족을 형성하고, 그 생활 속에서 소소한 행복을 나누며 마음에 있는 어둠을 해소하는 인물들이다.[60] 다만 2018년 12월에 낸 정규 5집 이후로 디지털 싱글이나, 디지털 EP, 싱글은 종종 냈으나, 새로운 정규 앨범이 나오고 있지 않고 있다.[61] 이 시리즈 중 가장 유명한 곡은 Pop Virus에도 어레인지 되어 수록KIDS (House ver.)나 싱글 9집 (사랑)의 수록곡 Amaoto (House ver.)이다.[62] 인생을 테마로 한 여러 코미디 콩트를 고정 출연진들과 게스트들이 선보이는 NHK의 프로그램이다. 아주 간결하고 쉽게 비유하자면 ‘인생을 주제로 한 SNL 코리아’랑 얼추 비슷하다.[63] 일반적으로 화상을 유발하는 온도보다는 낮은 40도 이상의 온도에 비교적 장시간 노출되면서 발생하는 화상을 일컫는 용어이다. 사람이 아주 뜨겁다고 느끼는 온도에 미치지 않기 때문에 회피 반응이 없어 장시간 노출됨에 따라 피부 조직에 열이 축적되어 피부 세포의 손상이 일어나는 것을 말한다. #[64] 제4기동수사대 형사 버디물. 요네즈 켄시Kanden(감전)이 주제가로 사용된 드라마로도 유명하다. 한국에서는 호시노 겐의 필모그래피에서 접근성이 뛰어나 니게하지(도망부끄)와 같이 입문 추천작으로 가끔씩 소개되어 지기도 한다.[65] 그가 음악 관련 역할로 나온 건 데뷔 초기 비중이 거의 없는 단역이나 조연이 많았다. 이름이 알려지고 난 이후에는, 2022년 기준, 모태솔로 직장인, 의사, 도쿠가와 히데타다, 마약 초범, 형사, 양복점 가게 주인, 내각관방 부장관 등 음악과는 멀었다.[66] 극심한 경기침체 때문에 '프로젝트 Utopi-AI'를 실행하고, 그 프로젝트의 핵심인 정치 AI, '솔론'이 직접 선별하여 뽑은 젊은 사람들이 쇠퇴해가는 지방 도시에 내각으로 구성되면서, 그 내각이 자신들의 도시를 미래 도시로 변모시키기 위해 분투하는 모습을 그린 청춘 SF 정치드라마. 죄의 목소리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는 정식으로 볼 방법이 없다.[67] 내각관방은 내각총리대신을 직접 보좌하는 곳으로, 한국으로 치자면 내각관방 부장관은 대통령비서실 차장이랑 비슷하다.[68] 타이라 키요시는 정치인으로서 내각관방 부장관까지 오는 과정 때문에 부패하게 되며 처음에 가지고 있던 자신의 이상을 잃어버렸으나, 정치 부패(아버지의 사건)를 막고 싶다는 일말의 이상으로 'AI프로젝트'를 추진해오면서도 여전히 부패한 인물이다. 그렇게 자신이 '가지고 있던 이상을 잃어버리고 정치(현실)에 찌들었다'는 것을 주인공의 존재로 인해 직접적으로 직시하게 되고, 이상을 말하는 주인공이 성장할 수 있게 도움이 되어준 인물인 동시에, 주인공에게 영향을 받아 초심을 되새기는 완성형 캐릭터. 진지하면서도 복잡하고 숨기는 게 많고 여러가지 생각을 담고 있으며, 특정 인물의 행보에 대해 남몰래 반응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드라마는 그다지 좋은 평을 받지 못했다[69] 무대극 첫 주연작.[70] 오토나케이카쿠극단☆신칸센이 서로 손을 잡고 합동으로 만든 공연이라는 걸 나타내는 이름[71] PFF에 출품된 독립영화[72] Generation Of Animation[73] 방송 당시에는 NHK BS-hi였으나 현재는 BS2와 통합하여 BS 프리미엄이 되었다.[74] 이때 같이 받은 배우들은 아야노 고, 스다 마사키, 쿠로키 하루 등이다.[75] 엘란도르상은 해에 6명을 선발하는데, 이때 뽑힌 다른 인물들은 사카구치 켄타로, 타카하타 미츠키, 딘 후지오카, 하루, 히로세 스즈이다.[76] 니게하지, MIU404, 코우노도리는 여러 OTT에서 볼 수 있어 접근성이 엄청나게 높지만, 호시노 겐에게 있어서 다른 대표작들이나 주연 참여작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다른 필모그래피는 거의 전무하다시피 하다. 그나마 그의 필모그래피가 가장 많은 한국 OTT조차도 니게하지, MIU404, 코우노도리, 묻지마 사랑,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치에리와 체리, 미래의 미라이밖에 없다. 예시로 나열한 것 중 3개는 애니메이션이다.[77] 그러나 한국에 들어온 작품들은 비주류적인 감성이 아닌 역할, 그리고 수위가 낮은 역할들이 많아, 상당히 한정적이다. 당장 위에서 말한 예시를 거의 하나도 볼 수 없을 정도다. 한국에서 들어온 것 중에 그나마 제일 비주류적인 건 묻지마 사랑과,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78] 영웅의 그림자에 가려진 인물, 재능이 없는 인물, 성공하지 못한 인물, 모자라보이거나 미덥지 않은 인물.[79] 니게하지MIU404는 그녀의 대표작 중 일부로 소개되어지기도 하고, 죄의 목소리는 그녀가 일본 아카데미상 최우수 각본상을 받은 작품이다.[80] 호시노겐의 롤모델이자 존경하는 뮤지션 호소노 하루오미와의 좌담집[81] 제5회 북로그 에세이・논픽션 부문 대상, 한국어 번역판 존재[82] AERA에 연재한 바나나맨, 이쿠타 토마, 딘 후지오카, 아리무라 카스미, 노기 아키코 등의 게스트와 호시노 겐의 인터뷰 모음집.[83] 타워 레코드 주식회사가 발행하는 무료 월간 음악 정보지.[84] 호소노 하루오미와의 대담 연재[85] 영화 에세이[86] 지주막하출혈 발병으로 3개월만에 하차[87] 결혼 전까지 요시오카 리호와 함께 출연중이었다.[88] 하마베 미나미와 초기부터 출연중이었으며, 최근에 웹무비로 만들어진 광고에서 하시모토 칸나도 함께 출연중이었다.[89] 직접 기념 노래를 만들었다. 참고로, 2021년 2월 17일 닌텐도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35주년 TV광고로 선공개되었던 노래인 EP 創造가 공개되었다. M/V[90] 요시오카 리호와 함께 출연중이다.[91] 호시노 겐을 중심으로 한 일종의 블로그 + 웹진 + 비하인드 영상 공유 + 인터넷 방송 사이트에 가까우며, 호시노 겐뿐만이 아니라 이시바시 에이코, 아리 애스터, 이가라시 유키 등 감독, 디자이너, 뮤지션 같은 다른 다양한 인물들을 인터뷰하거나 다루기도 한다.[92] 예를 들어, "4일 동안 배우 일 해야해서 밥 양을 조절했어요.", "가나자와에 여행 갔다 왔어요." 같은 것들[93] 개그맨 출신이나 실력파 배우에 가까우면 이 전제에 상대적으로 자유롭지만, 호시노 겐은 완전히 그 전형도 아니다.[94] 그러나 나이를 먹으며 40대 및 결혼 이후에 얼굴의 분위기가 기존의 초식계적인, 그리고 대학생적인 느낌에서 다른 느낌으로 전반적으로 바뀌었다는 이야기도 많다. 그러나 여전히 중년 미남 배우들처럼 잘생겼다는 평가는 못 받고 있지만.[95] 음악과 연기의 연습을 중학교 때부터 같이 시작했고, 그는 무명시절 처음부터 작사, 작곡, 편곡, 음악 프로듀싱을 계속해오고 있으며, 그와 동시에 무명시절 배우로서 여러 무대와 영화, 드라마 등에 계속 단역, 조연으로 계속 참여하는 동시에 힘들거나 비주류적인 역할을 계속 맡았었다. 그와 동시에 어릴 때부터 노게런티로 잡지에 잡문을 쓰는 일을 계속해오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의 20대 배우생활은 순탄하지 못했으며, 인기와 경력이 어느정도 쌓이기 전까지 '하나에만 제대로 집중해'라는 소리를 주변에서 계속 들었고, 30대가 되어서야 여러 신인상을 받으며 배우로서 인정받게 되었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대중적인 드라마나 영화에 주조연으로 참여하기까지 약 13년이 걸렸다. 또한 그가 메인스트림 싱어송라이터가 된 것도 30대 이후이다. 이러한 그의 과거 행보를 보여주는 것 중에서 음악일과 배우일의 소속사가 다른 상당히 이례적인 경우가 그 지표 중 하나일 것이다.[96] 그리고 약 10년 이상의 인디 활동 이후 일본 4대 대형기획사인 아뮤즈로 이적했을 때 매니지먼트 팀 및 A&R팀과의 합이 전반적으로 잘 맞은 것 또한 클 것이다.[97] 실제로 그는 일본에서 그의 아내보다 대중적인 인기가 상대적으로 꽤 많이 적다. 애초에 그의 아내인 아라가키 유이가 배우로서 귀여운 매력을 소유하고 있는 일본 국민 여동생 중 한 명이기도 하다. 성과나 커리어나 업계 공헌도만 봤을 때는 전혀 하나도 밀리지 않거나 그 이상이긴 하지만.[98] '남편'이라는 호칭은 일본에서 잘 쓰이지 않는다.[99] 고급 맨션으로 보안이 철저해서 일본의 유명 연예인들이 많이 사는 곳이라고 한다.[100] 2015년경부터 일본 금융시장에는 '인기 연예인의 결혼 발표와 시장 변동이 겹친다', '연예인의 결혼 발표는 일본 주식을 폭락시킨다, 금융시장에 영향을 미친다'는 도시 전설적인 징크스가 존재하기도 한다. 이런 가운데 2021년 5월 19일 중국에서 금융기관에 암호자산 관련 업무를 금지하는 통지가 내려지면서 전월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던 비트코인 가격이 당시의 반값 가까이 급락한 것이 큰 이유.[101] 함께 남녀노소, 폭넓은 층에 지지받고 있으면서 결혼 후의 공동 출연은 한 번도 없어 화제성은 물론 희소가치도 높다는 것이 그 이유.[102] 보통 부를 때 호칭을 붙이는데 그것을 생략하고 상(さん)으로 말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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