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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河南 校山洞 磨崖藥師如來坐像. 하남 교산동 마애약사여래좌상은 경기도 하남시 교산동에 위치한 선법사 경내에 있는 마애불상으로, 고려 시대인 10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며 바위에 약사여래를 새긴 것이다.선법사(善法寺)는 태고종 소속의 아주 작은 사찰로, 이 절의 연혁에 대해선 자세히 알려진 바가 없다. 워낙 경내가 작아 암자라고 봐도 될 정도의 작은 절이지만, 본 마애불상이 존재하는 점으로 보아 불상이 조성되기 전에 이미 현재 위치 혹은 부근에 어떤 절이 들어섰으리라 추정한다. 아무튼 2023년 현재 선법사에는 본 마애불상 외에도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하남 선법사 석조보살좌상도 모셔져 있다.
하남 교산동 마애약사여래좌상은 1989년에 보물 제981호로 지정됐다.
2. 내용
하남 교산동 마애약사여래좌상 현지 설명판 |
하남 교산동 마애약사여래좌상 근경. 불상 좌측에 명문이 보인다. |
하남 교산동 마애약사여래좌상 명문 확대 |
다만 여기서 말하는 태평은 약간 애매한데,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서기 977년임이 확실하다. '태평'은 송나라 태종이 사용했던 첫 연호인 태평흥국을 말하는 것일 수 있는데, 이는 976년부터 984년까지 사용하였다. 한편 동시기의 고려 경종 역시 연호를 사용 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 역시도 공교롭게도 태평으로 송태종의 것과 명칭이 동일하다.[5] 아무튼 경종의 태평은 그가 즉위한 976년부터 그가 사망한 981년까지 사용하였다. 하지만 이 태평이 송태종의 것이든, 고려 경종의 것이든 간에, 연대를 특정하는데에는 큰 문제는 없다. 왜냐하면 정말 고맙게도 태평 뒤에 육십갑자의 정축을 병기해서 정확하게 서력으로 환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6] 따라서 여기에 적힌 태평2년은 고려 경종 2년(977)이 확실하다.
다시 명문의 내용으로 돌아가자면, 새롭게 불상을 조각한 것이 아니라 옛 석불을 중수했다고 했기 때문에, 이를 토대로 추정해보면 본 마애석불은 977년 이전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하남 교산동 마애약사여래좌상 원경 |
하남 교산동 마애약사여래좌상은 보존상태가 아주 양호하고, 비록 크기는 작지만 표현 기법 등이 수려하여 아름답고, 제작 시기가 비교적 명확하게 드러나 고려 불상 편년 자료의 기준으로 삼을 수 있다는 점 등 가치가 있는 귀한 마애불상이다. 하남 교산동 마애약사여래좌상은 이와 같은 점을 인정받아 1974년 9월 26일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59호로 지정되었다가, 1989년 4월 10일에 보물 제981호로 승격 지정되었다.
3. 외부 링크
4. 보물 제981호
질병에서 모든 중생을 구제해 준다는 약사불을 형상화한 것으로 바위 남쪽면에 전체 높이 93㎝로 새겨져 있다. ‘태평 2년 정축 7월 29일’이라는 글을 통해 만든 시기가 고려 경종 2년(977)임을 알 수 있다.
부드러운 얼굴을 하고 있고 옷은 왼쪽 어깨에만 걸쳐 입고 있으며 옷주름 표현에서는 가지런함이 엿보인다. 손바닥을 위로 한 왼손에는 약그릇이 놓여져 있으며, 오른손은 손바닥이 정면을 향하고 손가락을 위로 하고 있다.
몸 뒤편에 있는 광배(光背)는 머리광배와 몸광배를 계단식으로 새기고 있으며, 주위에는 불꽃무늬가 둘러져 있다. 대좌(臺座)는 연꽃잎이 아래로 향한 모양의 하대석 위에 4개의 짧은 기둥으로 이루어진 중대석이 있으며, 그 위에 5잎의 활짝 핀 연꽃이 불신을 떠받치고 있다.
비교적 보존 상태가 좋은 이 불상은 만들어진 연대에 대한 확실한 기록이 남아 있어 고려 초기 불상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부드러운 얼굴을 하고 있고 옷은 왼쪽 어깨에만 걸쳐 입고 있으며 옷주름 표현에서는 가지런함이 엿보인다. 손바닥을 위로 한 왼손에는 약그릇이 놓여져 있으며, 오른손은 손바닥이 정면을 향하고 손가락을 위로 하고 있다.
몸 뒤편에 있는 광배(光背)는 머리광배와 몸광배를 계단식으로 새기고 있으며, 주위에는 불꽃무늬가 둘러져 있다. 대좌(臺座)는 연꽃잎이 아래로 향한 모양의 하대석 위에 4개의 짧은 기둥으로 이루어진 중대석이 있으며, 그 위에 5잎의 활짝 핀 연꽃이 불신을 떠받치고 있다.
비교적 보존 상태가 좋은 이 불상은 만들어진 연대에 대한 확실한 기록이 남아 있어 고려 초기 불상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1]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하남 교산동 마애약사여래좌상[2] 與願印: 손바닥을 편 오른손을 들어 손가락이 위를 향하도록 하여 밖으로 향하는 자세[3] 이하에서 말하는 좌·우는 본 마애불상을 바라보는 방향을 기준으로 한다.[4] 입(卄) 자는 20을 뜻한다.[5] 이로 인해 경종의 연호인 태평이 독자적으로 정한 연호인지, 아니면 송나라 연호인지 애매하다는 문제가 파생된다.[6] 출처: 한국어 위키백과 - 정축[7] 출처: 김성근, 김덕묵(2006): 경기도 전통사찰을 찾아서.Ⅱ, 전국문화원연합회 경기도지회, pp.253-254. 원문 링크[8] 참조: 경기신문 - “또 다른 마애불 일제에 강탈당했다” - 2014년 10월 20일자 기사 / 하남타임즈 - 하남시 국외반출 문화재 환수해야 - 2016년 4월 29일자 기사